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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이스라엘1


성지순례/그리스,요르단









































한국교회 원로목회자의 날 축하예배 개최

“하나님의 사역에 은퇴는 없습니다”

 제4회 한국교회 원로목회자의 날 축하예배가 6일 AW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볼룸에서 1000여 명의 원로·은퇴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평생목회 주님 오실 그날까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한국교회 원로목회자의 날 실행위원회와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재단이 주최했다.
 이날 강사로 초청된 이영훈 목사는 ‘성령님과의 동행’(행 10:38)이란 제목으로 “주의 종은 교회법에 은퇴가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에는 은퇴가 없다”며 “원로목사님들은 마지막 호흡이 다하는 그날 때까지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명을 다하려면 성령님이 함께 동행해야 가능하다”며 성령충만을 당부했다.
 이어 박정근 목사와 이상형 구세군 사관, 백승억 목사는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 ‘한국교회 원로목회자’를 위해 특별기도의 시간이 있었다. 이날 ‘2017 자랑스러운 원로목회자 대상’에는 림인식 노량진교회 원로 목사 등이 수상했다.
 한편 이영훈 목사는 원로목회자들을 위한 특별후원금을 전달했다.


               

황성례권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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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4부 문화의 모자이크-7                

       


요르단 4부 문화의 모자이크-8              

       


 


예루살렘 성지여행

 

기원전 1000년경 다윗 왕이 여부스인들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았다. 이곳은 수원이 풍부하고 유다교, 예루살렘, 벤자민 3파의 종교적 중심지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곳인가 하면, 모슬렘교도들에게는 예언자 모하메트가 승천했다고 믿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로 4,000년 역사를 가진 예루살렘은 그러나 어느 도시보다도 테러와 전쟁을 많이 겪었다. 현재 약 33(유다인 255,000, 아랍인 75,000)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묘지는 성곽 안에 있다. 유다교, 기독교, 회교의 성지로 구시가의 성벽에 둘러 싸여 있다. 고적으로는 겟세마니 동산, 성모성당, 통곡의 벽이 있고, 신시가는 신 헤브라이 같은 문화 기관이 있다
.
예루살렘 성벽은 여량시대의 건축양식이 집약되어 있으며 1542년 슬레이만 지배 아래 터키에 의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로 신축되었다. 성벽 둘레가 25마일이고, 평균 높이가 40피트, 벽에는 34개의 탑과 8개의 성벽 문이 있다. 그리스도는 베타니아 동산에서 오시어 예루살렘을 돌아보신 후 멸망할 것을 영감으로 아시고 우셨는데 그곳이 통곡의 벽이다.

 

1. 통곡의 벽 (The Wailing Wall)

 

유다인은 이곳을 신앙의 원천이라 믿는 중요한 장소이다. 비록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3000년 전통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긍지를 갖고 산다.
모슬렘 교도는 기도할 때 메카를 향해 기도하며 성전을 건축할 때도 메카와의 방향을 고려해 짓는다. 모슬렘 교도는 단순해서 언행을 믿지 않고 유일신만 믿는다
.
70
Titus는 거의 모든 벽을 부수었으나 거대한 벽돌의 일부분은 그의 후손들에게 로마군대의 위용을 보여 주기 위해 남겨 놓았다. 로마 통치기간 동안 유다인이 예루살렘에 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비잔틴시대에 들어와 그들은 사원 몰락 기념일에 신성한 사원의 잔해인 이 벽에 와서 그들 민족의 이산의 슬픔을 나누기 위하여 일년에 한번씩 방문이 허락되었다. 19481967년까지 유다인은 이 벽이 요르단 지역에 있기 때문에 방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
6
일 전쟁 후 통곡의 벽은 예배의 장소일 뿐 아니라 국가의 기쁨의 장소가 되었다. 큰 광장은 수 천명이 예배드릴 수 있게 정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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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올리브동산의 겟세마네동산 

올리브 동산은 300피트의 높은 산으로 키드론 계곡을 가로질러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한 곳으로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하시고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곳이며 명상에 잠기셨던 곳이다.
예수님이 배반을 당하고 체포된 겟세마니 동산은 올리브산 기슭에 놓여 있다.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올리브 산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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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리아산 바위

 

모리아산 바위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봉헌한 곳으로 길이가 5야드, 폭이 12야드, 지상에서 2야드 높이이며 돌이 돔 아래 높여 있다.
바위는 희생제물의 제단으로 사용했고 바위 표면에는 희생된 제물의 피를 흘려 보낸 구멍이 있다. 십자군시대부터 있어온 바위를 둘러싼 철 휘장은 제거되어 최근 튼튼한 난간으로 대치되었다.

4.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갔던 전통적인 길이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이 길을 성역화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길은 좁고 길 양쪽에는 가난한 아랍인들이 의류, 돌 등 각종 토산품을 파는 영세상점이 즐비하다.
이 십자가의 길 중 9개는 복음에 관계되고, 5개는 전통에 의해 전해진다. 그 첫 2개는 안토니오 자리 안에 위치해 있고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십자가의 길을 따라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주례한다
.
이 길의 시작을 나타내는 아치는 Ecce homo로 알려져 있는데 본시오 빌라도가 ", 이 사람이다"(요한 19, 5)라고 한 곳에 이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4처는 기도서에 있는 장면 그대로이다.
3
처는 옛날에 계곡이었고 첫 번째 예수가 넘어지신 장소
.
8
처부터는 밖으로 나옴
.
8, 9
처 처형 받고 묻히신 장소를 모아 교회를 세움
.
10
처 옷을 벗기신 곳
.
11
처 돌아가신 장소
.
12
처 갈바리아 산(처형당하고 묻히신 장소).


갈바리아는 큰 돌로 이 꼭대기에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곳이요, 또 하나는 예수님이 옷을 벗고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이다.
이 두 교회의 양끝은 실제 암반에 놓여 있다.

5. 예수무덤성당, (예수부활성당) -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The Church of the Resurrection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요한19, 41-42)
예수의 무덤은 갈바리아산 기슭에 놓여 있고 이 돌로 깎은 새 무덤은 아리마테아 요셉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리마테아 요셉의 무덤은 부유한 유다인의 묘 양식으로 되었는데 2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어 하나는 애도자를 위한 만남의 장소, 또 하나는 시체가 누워있는 돌로 된 침대 판으로 사용되었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왕후는 80세의 고령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길을 떠나 예수님의 무덤과 십자가, 승천하신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각각 성당을 지었다. 예수의 실제 무덤은 109년까지 존재하였으나 칼리프 하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헬레나 성녀에 의해 복구되었다. 이 성당에는 헬라나 성녀의 동상이 세워졌다
.
교회는 처형된 장소보다 묻힌 장소를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므로 부활신앙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쪽에서 해가 뜨므로 교회도 동쪽을 향하고 있어 희망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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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후의 만찬 성당 (Coenaculum)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신 곳이며(마르 14, 12-16, 루가 22, 7-13) 부활 후 2번이나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사도 2, 1-4)
이와 같이 Coenaculum은 성체/신품/견진/고해성사를 행하신 곳이다. 13C 나폴리 임금이 이곳을 사서 교황에게 희사한 것을 교황께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주었다. 성령강림 때의 견진성사가 이루어진 다락방에서는 회교도에 의해 추방되어 그곳에서 400년간 미사를 드리지도 못했고 1948년 전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공식적인 기도도 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은 프란치스코 수도원 식구들에게 공동기도만 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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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윗왕의 무덤 (Tomb of King David)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통곡의 벽 다음으로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유다인의 성지 중 하나로 Tudela의 랍비 Benjamlne 1173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여기에 안치되었고, 다윗의 무덤이라 불렀다. 돌로 만들어졌고 수놓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Torah의 은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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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황금의 문 (Golden Gate)

 

이는 7C 비잔틴 건축으로 Mercy gate(자비의 문) 장소에 세워져 있다. 측면 벽의 일부는 원시 건축양식으로 이 문을 통해 예수는 개선 입장 후 도시에 들어갔다.
기독교인들은 베드로가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기억을 덧붙이는데(사도 3, 1-8) 이 아름다운 문이 '황금의 문'이고 이곳은 1530년 터키에 의해 완전히 벽을 쌓게 되었다.

9. 겟세마니 동산 (Gethemane)

 

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겟세마니 동산은 올리브산 기슭에 놓여 있고 오늘날에도 2,000년 전 그대로를 보여준다. 키드론 계곡을 가로질러 반대 언덕에 현대 도시들이 줄지어 있으나 이 동산은 변한 것이 없다.
예수께서 가끔 은둔과 기도를 위해 이곳에 오시어 기도하셨고(루가 22, 39) 수난 당하기 전날 밤 가장 슬픈 수난의 시간을 체험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곳이다
.
"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 42) 라는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보니 제자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루가 22, 45) 예수께서 최후만찬 후 이곳에 계신 것을 알고 유다가 대제관의 하인들을 데리고 와 예수를 잡아 넘긴 곳이기도 한 이곳에 헬레나 성녀가 성당을 지으셨다.

10. 주님의 기도 성당 (The Church of the Pater Noster)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쳤고 예루살렘의 몰락을 예언(루가 21, 5-7; 마태 24, 1-4)하셨으며 주님의 마지막 오심과 제3의 종말을 예고하셨다.(마르 12, 1-4)
콘스탄틴 로마 황제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어 올리브산 정상에 교회를 세웠는데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몰락했고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새로 세워졌다. 십자군이 멸망하자 교회도 몰락하여 모슬렘 교도에게 점령되었다
.
1868
Aurelia de Bassi 왕자는 그 교회가 있던 장소를 사서 프랑스에 기증했으며 1875년 프랑스는 가르멜 수녀원을 세워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교회 안의 회당 벽에는 주님의 기도가 62개 국어로 쓰여져 있고, Bassi 왕자는 회당에 묻혀있다.

11. 예수승천성당 (The Chapel of the Ascension)

 

사도행전 1, 9-12에서는 예수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올리브산으로 데려왔고 그들을 축복하신 후 하늘에 올라가셨는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곳은 가장 정확한 승천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올리브산을 떠났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을 떠나는 100야드 거리의 안식일 여행이었고 예수 승천 장소와 예루살렘을 나누는 경계가 되는 거리였다
.
원래 14세기에 이곳에 이미 비잔틴 교회가 지어졌으나 614년 페르시아인에 의해 몰락, 또 다시 십자군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의 작은 성당은 예수 승천 시 남겨진 전설적인 예수 발자국이 난 돌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워졌고 아직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모슬렘 사람들은 아치형의 벽을 쌓고 현재의 둥근 천장을 더했다. 회교도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지만, 예수 승천 날은 우리도 미사를 드릴 수 있다.

12. 베드로 회개기념성당 (닭울음성당) (The 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

 

키드론 계곡을 굽어드는 이 성당은 1931 Caiphas의 전통적인 집터에 지어졌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배반당하신 예수님은 대제관 Caiphas의 집으로 인도되어 그 날 밤을 세웠는데 여기가 베드로의 첫 시험장소였다. 발굴 결과 신부들은 Caiphas집터에 세워진 것을 확인했고 거의 완전한 히브리척도(), 돌절구, 종들의 주거지, 법정, 비잔틴 교회의 잔재가 발굴되었다.

13. 성 안나 성당 (The Church of St. Anne)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했을 때는 그들이 있는 동안 건축했거나 재건한 7개의 교회를 남겨 놓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곳이 안나 성당이다.
1100
년 발드윈의 부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그곳은 성벽으로 된 천장과 아름다운 둥근 지붕, 고딕식 입구를 가지고 있다. 이 교회는 성모가 태어난 곳이고 그의 부모의 집이기도 하였다
.
1856
년 마지드는 전쟁 중 나폴레옹의 지원에 대한 답례로 이곳을 나폴레옹 3세에게 주었고 교회는 복원하여 화이트 신부에게 주었다.

 


야월교회 전교인65명 순교이야기 


 
   전남 영광군 염산면 야월리에 위치한 야월교회는 광주 선교부에서 활동하던 미국 남장로교 배유지(유진 벨) 선교사에 의해 1908년 4월 5일에 설립되었다.


   1950년 6월 22일(한국전쟁 3일전), 공산군 1개 부대가 야음을 타 야월리 창수 앞으로 침투하였다. 그러나 마침 여순 반란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군 병력이 내려와 작전을 펴 거의 전멸시켰으나, 잔당은 옥실리와 야월리 뒷산으로 잠입하였다. 그 후 산에 나무하러 갔던 정문성 씨가 부상을 입은 공산군을 보고 경찰에 신고하여 포위되었을 때, 자수를 권유하고 설득하여 경찰에 넘겨주었는데 그를 총살해버렸다. 이 사건 후 다른 잔당은 동료가 총살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특히, 정문성이 교인이라는 것을 알고 야월교회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6. 25한국전쟁으로 야월리를 점령한 공산당들이 양조장집 주인과 다른 유지들을 교회당 뜰에 무릎 꿇리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처형 하기에 앞서 인민재판을 벌였다. "여러분! 인민의 피와 땀을 착취한 이 악질 반동세력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인민의 원수이니 죽여야 합니다." 그때 야월교회 출신 김성종 영수가 칼칼한 목소리로, "아닙니다. 그 사람은 흉년이 들어 어려웠을 때 쌀을 풀어 나눠주었고, 법 없이도 사는 사람입니다. 나라에선 이런 사람을 상을 주어도 모자랄진대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옳소!" 하면서 동조하였다. 이로써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먼저 죽이려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0년 9월 29일 국군과 UN군이 목포에서 함평 영광을 수복할 때 기독교인들과 우익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국군을 환영한 일이 있었는데, 미처 후퇴하지 못한 채 인근 산 속에 은거하고 있던 공산군과 지방 빨갱이들이 국군을 환영한 교인들과 주민들에 대한 보복계획을 세웠다. 한편, 염산면과 백수면은 가장 늦게까지 수복되지 못하였는데, 지방 빨치산과 공산군들은 인민재판으로 처형을 시작하여 1950년 9~10월에 걸쳐, 야월교회 전교인 65명이 잔혹하게 학살당하였으며 교회당마저 불타는 참상을 겪게 되었다.


   이후 야월교회는 1989년 배길량 담임목사에 의하여 65명 순교자기념비를 건립하면서 다음해 11월 29일 준공예배와 함께 순교자기념탑 제막식을 가졌으며, 2006년 6월에는 전국교회의 헌금과 전남도청과 영광군청의 지원으로 연건평 2백50평 규모로 “기독교인순교기념관” 을 야월교회 옆에 2층으로 건립하였다. 
 

   기념관은 야월교회 뿐 아니라 영광군의 기독교순교자들까지 다함께 기리며 1층은 순교역사자료를 사진과 조형물로 전시하고 있는데 중앙 홀에서 2층까지 세워진 ‘기도하는는 손’ 조형물은, 상처받은 손과 부드러운 손이 마주잡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하여 화해와 용서의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또한 2층에는 예배실과 순교자들의 영정과 한국기독교 교회사적인 고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한국기독교 역사 속에서 야월교회가 6. 25 한국전쟁으로 수난을 당하여 흘린 '순교자의 피'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9.5.14.연합기독뉴스/박경진 장로)


   야월교회(담임 배길량 목사) : 전남 영광군 염산면 야월리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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