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면과 됐을 때 

시편16:1-11

 다윗은 믿음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한 사람은 삶의 끝까지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해서 긍정적인 믿음의 자세를 보인다.
 유리 컵에 반쯤 찬 물을 보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컵에 물이 반 밖에 차지 아니했다고 한다. 반면에 긍정적인 사람은 컵에 물이 반이나 찼다고 한다. 전자의 사람이 '반 밖'에 라고 할 때 부정과 불만이 곁들어 있는 말투를 한다. 그러나 후자는 반이 찼지만 계속해서 채워질 가능성을 보면서 더 많이 찰 것을 보고 있다.

 우리는 매사에 어느 편인가를 점검해 보기를 바란다. 자신이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는가? 아니면 부정적인 믿음을 가졌는가 이다. 부정적인 믿음을 가졌다면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으로 바꾸어 가야 할 것이다.
 현재 여러분에게 주어진 상태를 바라보라. 부정적인 믿음이라면 하나님께서 여기 까지 밖에 복을 주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믿음이라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복을 주시는 과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은 현재 누리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 채워지지 않는 것에 불만과 불평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지금 누리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 자족하며 즐거워 할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믿음과 사고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 자세를 닮아 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으로 명상을 하고 은혜를 받고자 한다.
본문으로 돌아가 본다.

시16: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리이다"에서 부정적인 믿음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한다면 내가 주께 피하리이다'라고 말한다. '보호한다면'은 어떤 조건이 충족 되어져야만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의미이다. 즉 아직 까지 하나님을 내가 완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상태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믿음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믿는다는 뜻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완전히 믿으니까 하나님의 그늘에 피하겠다는 것이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에서.....
 부정적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거나 말한다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면...." 그러면 주 앞에서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고 한다. '....보이시면'에서 '면'이라는 토씨가 부정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부정의 상태는 완전 조건이 아니다. 주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서 기쁨을 얻고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믿음은 온전하게 믿는 믿음은 아니다. 이런 믿음은 축복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완전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부정적으로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 조건으로 노래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즉 미래을 완전히 믿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믿으니까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믿음의 사람은 주를 통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성공적인 사람은 그들의 의식과 믿음에서 '할 수 없다' 와 '만일' 이라는 단어를 지워 없애고 '할 수 있다' 와 '했을 때'라는 말을 사용한다.
 예를 든다면 '부자가 된다면' 과 '부자가 됐을 때'는 다르다. '부자가 된다면'은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해서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부자가 됐을 때'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이 말은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신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신에 대해서 신뢰를 가지며 미래에 대해서 긍정의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틀에서 몇 가지를 더 적용해 본다.
 부정적인 믿음은 '은혜를 받으면'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믿음은 '은혜를 받고서'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다. '건강해 지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 회복 됐을 때'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믿음과 사고는 '미래 소망형'이다. 혹은 '미래 완료형' 이다. 미래 완료형은 언제나 완전한 신뢰를 의미한다.
창세기 12장에서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떻게 축복을 해 주시면 고향을 떠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하고서 무조건 고향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어떤 조건하에 있는 믿음이 아니다. 무조건 따르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완전 조건의 믿음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완전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한 신뢰를 받을 분이다. 부분적인 신뢰를 받을 분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믿음으로 명령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의식에 잘못 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잘 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크고 작은 일을 불문하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반응하자. 설교의 말씀에도 부정적인 측면에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지말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경건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을 긍정적인 믿음으로 행하였을때 우리 자신의 믿음에 신뢰를 가지게 되며 우리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성공적인 믿음의 사람이 된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간섭해 주실 것을 바라며 성공했을 때를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三思一言  (3은 1언) 

   

 

 


 

 

말 앞엔 3번 생각하고

발 앞엔 늘 신중하라.

 

말 많으면 허물이 많아지고

말 적으면 바보라도 지혜롭다.

 

남을 험담하면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고

옆의 듣는 사람은

참고 들을 뿐이다.

 

자칫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격

 

말은 오가지만

대화속의

꽃이 필수도

쓴뿌리가 될 수도 있다.

 

작금의 시간 속에

말 달리듯 말하면

자신의 허물만

드러내게 된다.

 

남을 축복하면

내가 축복받고

저주하면 역시

자기에게 돌아온다.

 

누워 침 뱉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면서도

 

입을 떠난 말이

어떻게 돌아 올지는

생각 못하는 바보가 있다.

 

경청 보다

좋은 말은 없고

수다 보다

나쁜 말은 없다.

 

입으로 말을

전하지 말고

가슴으로

마음을 전하라.

 

미담은 덕담이고

험담은 악담이다

담화라고 다

좋은 말이 아니다.

 

비난과 험담은

세 사람을 잃게 만든다

자신과 듣는 사람

그리고

비난 받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이는

남을 비방하고

헐뜯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한다.

 

남을 비방하면

평생 빈축을 사게 되고

반면 남을 칭찬하고

세워주면

미덕이 되어

축복의 통로가 된다.

 

자신의 입으로

관용의 등불을

밝혀주면

관계가 소통되고

회복되며

마음의 등불을

켜주게 된다.

 

혀 끝으로 내뱉는

말은 아첨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칭찬이다.

 

잘못된 논리로

사람을 설득시키려

들지마라.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적개심 뿐이다.

 

마음 밭이 옥토인

사람은 밝고 맑고

깨끗하고 틈실한

말씨를 뿌린다.


긍정과 부정 --본문 : 잠 17:9-13

제목 : 긍정과 부정

서론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어디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고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쪽을 택하였느냐에 따라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그의 평생의 생활이 매우 고달프고 긍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삶은 매사가 여유가 있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1. 허물을 덮고 덮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본문 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남의 허물을 놓고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남을 비판하는 의식이 앞서지 남을 사랑하는마음이 없습니다. 잠언 저자는 말하기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2) 하였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언제나 사랑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만 보는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줄 수가 없는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입장을 자기와 바꾸어놓고 생각을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자기와는 전혀 관계를 짓지 않고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행동이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긍정적으로 대하여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와야 하겠습니다. 이 사회에서나 신앙세계에서도 부정적인 면은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몰론 좋은 뜻에서 부정적인 면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하는 시편저자의 말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 풍성한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충고를 받고 받지 않는데 있습니다.

본문 10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계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과 충고를 잘 받아들이지만 미련한 자는 충고와 책망을 받지 아니합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나의 선을 말해주는 자는 내게 도적이 되고 나의 악을 말해주는 자는 내게 스승이 되느니라"(논어). 성경의 예를 보아도 다윗은 나단 선지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고 베드로는 닭소리를 듣고도 주의 말씀을 기억하여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잠언 저자는 말하기를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잠 9:7-9) 하였습니다.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잠 6:23), 그리하여 책망을 달게 받는 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이요 책망을 싫어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요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잠언 저자는 기록하기를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 29:1) 하였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책망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3. 반역하고 충성하는데 있습니다.

본문 11-13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악한 자의 특징은반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정책을 부정적으로 보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 현체제를 물리적인 힘으로 빼앗는 것입니다. 이는 순리에 따르지 아니하고 기존법과 질서를 파괴하면서 반역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정적 사고가 낳은 결과입니다. 그리하여 잘 되면 죽음을 면하고 현체제를 파괴하고 잘못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하지 아니하고 지혜로 인하여 무리없이 해결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믿음과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 대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1.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서 그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어떠냐에 따라서 복이 오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무화과 나무를 말라 죽기도 했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병자를 고치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고 했습니다.
누에는 그 입에서 나오는 명주 실로 집을 짓고 결국 그 속에 들어가 살다가 나비가 되어 나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하는 말로 우리의 생활 환경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성공이 오기도 하고 패배가 오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얼마 후에 불뱀에게 물려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로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입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말 한마디로 잘하고 주님께 커다란 칭찬을 듣고 결국 수제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 나쁜 말,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 신앙적인 말, 좋은 말만 합시다.
자녀를 키우는데도 그 말이 영향을 줍니다. 가령 아이가 접시를 하나 깨뜨렸을 때 “저 애는 항상 접시를 떨어뜨린다”고 말합니다. “접시를 떨어뜨린다”는 말과 “접시를 항상 떨어뜨린다”란 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바보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떤 실수를 했습니다. 그 때 “너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이 다음에 사람 구실도 못할 자식이야”하고 말함ㄴ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찌하던지 긍정적으로 용기와 신념을 심어주는 말을 해야 됩니다. 범사에 긍정적인 말을 해야 성공적인 사람이 됩니다.

2.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모든 것의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느냐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됩니다. 자동차의 기어를 전진으로 놓으면 앞으로 나가고 후진으로 놓으면 뒤로 가듯이 그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성공과 승리를 향해 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실패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 속에 생각하고 영상을 그리는 것은 레이저 광선과 같이 위대한 힘이 있다고 놀만 빈센트 필 박사가 말했습니다. 사람의 상상력은 하나님이 사람에게만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다른 짐승들은 상상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부흥되는 영상을 마음에 그리고 기도하니까 끊임없이 부흥되고 돈 하나 준비한 것이 없었지만 세계적인 성전을 건축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믿고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라.”고 한 말씀은 기도 응답을 잘 받으려면 기도할 때 말로만 기도하지 말고 마음과 생각 속에 응답받아 실현된 못브을 실제로 그리며 상상하면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긍정적인 영상을 그리며 흐리지 말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절망할 수 밖에 없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도 결코 말과 생각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할인을 잘 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에도 할인을 잘 해야 됩니다. 특별히 두가지 면에서 할인을 해야 되는데 첫째는 누가 칭찬해 주고 추어주면 그것을 그대로 다 믿지 말고 한 절반 이상 할인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쭐하다가 스스로 속기 쉽습니다. 둘째는 불안과 근심이 다가올 때 그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그대로 받아 들이지 말고 절반 이상 할인 하십시오.
골리앗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굉장해 보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물맷돌 하나만도 못했습니다. 여리고 성과 아낙 자손이 불신앙의 눈으로 보니까 철 성벽같이 보이고 그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들이 메뚜기 같이 보였으나 하나님 앞에는 여리고 성도 종이 한 장만도 못하고 아낙 자손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는 메뚜기 하나만도 못했던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세로 사느냐 부정적인 자세로 사느냐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델프 왈도 에머슨은 “사람은 하루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했고, 막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했으며, 놀만 빈센트 필 박사는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 스마일즈는 “생각을 바꾸십시오. 행동을 바꾸십시오. 행동을 심으십시오. 습관을 거둘 것입니다. 습관을 심으십시오. 성격을 거둘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긍정적인 영상을 그리고 긍정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꽉 채우십시오. 마귀가 갖가주는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 버리시기 바랍니다.

3. 긍정적으로 환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여러분,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그것을 믿음 안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환경과 환난이 다가와도 낙심하는 대신에 ‘무슨 축복을 주시렵니까? 감사합니다.’하고 시험을 축복받을 징조로 보고 환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내게 무슨 사명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명이 큰 사람일수록 고난과 역경으로 연단시키고 때 깨뜨리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사명이 얼마나 크길래 이렇게 큰 시련을 주십니까?’하고 감사하며 참아야 합니다.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든 후에 귀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주시는 시련과 환난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환경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좌절하거나 자살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성공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영원히 긍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밝고 질서있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부활로 바꾸시고 저주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녹다운은 있어도 녹아웃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새로 학교에 입학한 어린이가 강단 뒤에 십자가를 쳐다 보더니 “엄마 엄마, 저기 더하기표가 있네요.”라고 해서 그 때 엄마는 “그렇단다. 십자가는 우리 인간에게 더하기표가 된단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하듯이 십자가를 붙들고 나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긍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긍정적 생각의 축복--일독성경                    


[설교]긍정적 생각의 축복(고후 1:19-22)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갖는 긍정적인 신념은 마치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될 수 있는 진정한 ‘긍정적 신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그것을 얻는 조건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첫째, 회개해야 합니다. 천국에는 긍정적인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천국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단호히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면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아무리 혼자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외친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긍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치 않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정적인 생각을 얻게 됩니다. 

 

넷째, 신실한 신앙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회 생활을 착실하게 하며 헌물과 십일조 생활을 잘하고 이웃에게 전도함으로 순종의 생활을 할 때 긍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를 좇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무시하고 인간의 체면이나 욕심을 좇아 살아간다면 결코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긍정적일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춤으로 긍정적인 신념을 얻어 위대한 축복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긍정적 자세를 가지십시오 

빌립보서 4장 11-13절


오늘날 건강한 신앙을 위해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창조적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있는 공통적인 것은 바로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면 긍정적인 자세와 관련한 몇 가지 원리를 한 번 살펴볼까요?


1. 긍정적인 자세란 매사에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고 말하고 사는 자세가 바로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은 항상 좋은 것을 보고, 장점을 봅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사람은 환경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기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거의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사람은 세상 살기가 힘듭니다.

대개 불행하고,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해서 언제나 그 사람이 들어가면 어두워집니다.


2. 우리의 생애에서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축복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할 수 없다고 하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면 같이 부정적으로 됩니다.


부부도 닮아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 중에 한 사람이라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부간의 관계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경우에 긍정이 부정을 이기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3. 우리가 예수님 믿는 것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부정적 장소가 긍정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이 거의 불행한 사람이었는데 그들에게 가장 먼저 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 자체가 긍정적 자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긍정적인 사람이 되면 충성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사회생활과 신앙생활과 인간관계를 자세히 보십시오.

긍정적인 사람은 대개 충성을 알고 헌신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생활도 보면 긍정적인 사람이 교회에서도 충성합니다.

그리고 덕을 세우고, 그래서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은 설교를 들어도 긍정적인 사람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은 거기서도 하나 흠잡을 것을 생각하다가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여기는 그 하나의 흠 때문에 전체가 은혜를 다 망각하는 망각의 장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 잘 믿어서 누가 복을 받았다고 말하면 부정적인 사람은 "아무개는 예수 잘 믿더니 사업 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잘 믿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한가지 잘못된 것을 보려는 마음 때문에 은혜가 주어질 공간이 없습니다.


목사가 "아무개는 열심히 기도해서 축복 받았다."고 하면 부정적인 사람은 새벽기도 나가서 어려움 당한 얘기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개는 새벽기도 나갔다가 넘어져 다리 부러졌다"고 합니다.


꼭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 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긍정과 부정은 체질이요 습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처럼 긍정적인 자세와 부정적인 자세가 체질이고 습관이라는 것을 알기 쉽게 표현하기 위해서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도 팔자야. 자기 팔자지...."

그렇게 얘기하면 부정적인 사람은 또 이렇게 트집을 잡습니다.

"목사가 팔자란 소리를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리 나라 언어에서는 이미 '팔자'란 말이 '사주팔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복'이라는 의미로 보편적으로 전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 하나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부정적 자세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5. 부정적인 자세는 결국 자기를 수렁에 빠뜨리고 어렵게 만듭니다.


부정적인 것만 보는 사람은 남의 부정적인 것만 봅니다.

그러면 남의 부정적인 것을 보면서 자기는 좋은 삶을 영위하게 됩니까?

아닙니다. 남의 부정적인 것을 보다가 자기도 망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정적인 것만을 보니까 긍정적인 삶이 주어질 수 없습니다.


남의 장점을 보는 사람은 남의 장점을 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기의 단점도 장점으로 바꾸어집니다.


자세히 보면 남의 장점을 발견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들이 됩니다.

그들은 "어떻게 저 사람이 성공했을까?

어떻게 저렇게 남들로부터 저 사람은 존경을 받았을까?"

이런 장점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 장점을 사모하게 되고 결국 그 장점이 생겨서 그 장점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부정적인 사람은 성공도 못하고, 출세도 못하고, 불행해집니다.

보십시오. 불평한 사람 중에서 정상적으로 출세한 사람이 있습니까?

불평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자꾸 좌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도 그 사람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상 사장님을 칭찬하고, 동료를 세워주면 그 사람은 자연적으로 출세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긍정적인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그는 가난했고, 가정도 없어 위로 받을 사람도 없었고, 항상 나그네로 지냈고 거의 반생을 굶고 헐벗고,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현실을 원망하거나 탄식한 흔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희망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전 삶을 언제나 환경에 매이지 아니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어 살았습니다.


감옥을 별장으로, 고난을 영광으로, 슬픔의 눈물을 찬란한 진주로 만들며 사도 바울은 언제나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가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좋은 것을 누렸으니 얼마나 축복된 존재입니까?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긍정적 자세를 가지십시오(2)



고린도후서 4장 7-11절


어제는 긍정적인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면서 감옥과 같은 환경을 별장의 환경으로 만들어 갔던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그런 자세를 배우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사도 바울의 그런 자세가 은혜 받은 자의 자세입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이 그런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와 그러한 자세를 통해서 얻게 되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긍정적 자세와 관련하여 오늘 본문이 교훈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우리 안에 예수님이 있으면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졌습니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매맞으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함이라."


사도 바울은 먼저 자기 자신을 질그릇과 같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질그릇과 같은 자기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큰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은혜 받기 위해서 <질그릇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질그릇 의식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무능함을 알아야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질그릇 속에 보화를 담기 원합니다.

그 말은 포장도 중요하겠지만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 아닐까요?

제가 처음에 인터넷 사역을 시작할 때 무심결에 시작했습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성범 전도사님이 소박하게 겉 페이지를 만들어 주고, 호산나에서 게시판 6개를 얻어다가 그냥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저도 인터넷에 익숙해지다가 보니까 다른 사이트, 다른 교회 홈페이지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잘 꾸몄는지 모릅니다.

그런 홈페이지와 비교할 때 저의 홈페이지는 질그릇과 같은 모습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사람은 금그릇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금그릇 속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질그릇 속에 계셔야 하나님의 존재가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약할 때 강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바로 참된 축복입니다.

우리가 무능함을 느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면 길이 막히는 것 같아도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고, 우리 주님이신데 그냥 길을 막겠습니까?

하나님이 한쪽 길을 막으시는 이유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8-9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길이 열립니까?

새로운 길, 위로 향한 길을 크게 뚫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당해도 탄식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를 하다보면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 형제간도 소용없어!"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 친구도 소용없어!

내가 잘 살 때는 자주 찾더니 어려우니까 이처럼 나를 외면하지 않느냐?"

또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도 합니다. "아, 교회도 소용없어!"

그러면서 아주 굉장한 것이나 발견한 것처럼 말합니다.

"아, 세상은 믿을 것이 못 되고 이 세상에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


그러나 우리가 원래부터 세상을 믿고 살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도 소용없어!"는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형제로부터 어려움을 당해도 그 형제가 좋다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믿음의 대상, 이용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 아침 시간에 새롭게 각오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나를 버릴지라도 절대로 배신감을 느끼지 않기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지냈던 세월이 또한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 안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3. 긍정적인 신앙인이 되는 가장 바른 길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10-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자기는 죽고 주님이 나타나기를 항상 원했습니다.

우리도 매일 우리 자신의 죽음을 통해 주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우리 자신을 죽인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내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이 갈등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판단인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매일의 삶에서 우리를 죽이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가 열리게 되면 신앙생활에 놀라운 진전이 있게 됩니다.


사람의 믿음을 가장 좌절시키고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속에 있는 성질이고, 자기 속에 있는 똑똑함이고. 자기 속에 있는 판단이며, 자기 속에 있는 잘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는 정말로 똑똑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예>하는 모습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처럼 우리가 긍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매사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그러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긍적적인 자세로 사랑의 순종을 함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할 때 감동하시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기억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긍정적인 말의 능력(롬 10:10)

말의 위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부정적인 말을 쓰면 우리의 생애를 파괴시키는 일이 생겨나지만 긍정적인 말을 쓸 때는 위대한 축복이 다가옵니다. 본문을 근거로 긍정적인 말을 할 때 오는 축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긍정적인 말은 축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성경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 몸을 굴레 씌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3:2).

그러므로 우리가 “안 된다, 끝장났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굴레가 되어 정말 안 되고 끝장나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창조적인 말, 승리의 말, 건강의 말, 생명의 말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이 축복의 길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입니다.

둘째, 긍정적인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고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입술로 고백하여 그 재료를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예수님의 손에 얹어드리면 바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셋째, 긍정적인 말은 성령의 검이 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가 말씀 위에 서서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나가서 검이 되어 마귀를 찌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입술로 긍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 원수를 물리치고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 때문에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의 입술에서 부정적인 말을 끌어내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이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 “안 된다, 절망이다.”라고 말하면 그 말이 올무가 되어 신앙을 잃게 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실 수가 없게 됩니다. 또한 마귀는 우리의 부정적인 말을 통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긍정적인 말을 할 때에 축복이 다가오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며 그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마귀의 진을 훼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의 말…환경과 운명을 바꾼다
5만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은 기도의 사람 조지 뮐러. 3000명 이상의 고아를 기른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도 청소년 시절에는 동네에서 부랑자였다. 아버지의 돈을 훔치고 거짓말을 일삼고 친구와 어울려 유흥업소와 경찰서를 자기집처럼 들락거리다가 결국 교도소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잡게 해서 오늘날 기독교사에 빛나는 성자가 되게 한 것은 말 한마디였다.

“조지! 나쁜 버릇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한번 택한 자녀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낙심하지 말고 노력하면 넌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어느날 동네 목사님에게 상담하러 간 그에게 목사님이 한 말이었다. 이 말이 조지 뮐러를 변화시켰다.

말에는 우리의 자아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말이 행복한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일보사에서 ‘당신의 말이 행복을 만든다’를 출간한 박필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대표) 목사는 책속에서 ‘행복을 만드는 5가지 언어’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칭찬의 언어=칭찬을 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칭찬은 잠재력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야,참 잘한다.”“ 대단한데,수고했다. 네가 최고다.”“ 넌 소중한 존재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긍정적인 자아상이 형성된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크게 칭찬하셨다. 당시 베드로는 시몬(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란 뜻)이란 이름처럼 흔들리는 믿음의 소유자였으나 이후 반석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됐다. 칭찬에는 이처럼 사람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다. 그러나 칭찬은 내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그 사람을 위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감사의 언어=성경은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엡5:4).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은 결국 덫이 되어 삶에 불행을 가져 온다. 반면 주어진 삶속에서 감사하고 사는 사람은 장군도 될 수 있고 사장도 될 수 있다.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이라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더라도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말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의 언어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Can의 언어=“안된다”“못한다”“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의 땅,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주인이 될 수 없다. “할 수 있다”“하나님이 도우신다”“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라는 Can의 언어는 당신을 행복한 땅의 주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Will의 언어=“너는 중요한 사람이다. 너는 특별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다. 앞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할 사람이다”라는 Will의 말은 가능성을 키워주는 메시지다. 또 위대한 꿈과 소망을 불어넣어주는 기적의 언어이다. 아이슈타인의 어머니는 “너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너는 반드시 훌륭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Will의 언어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다.

인정하는 언어=사실이 그렇지 않은데 특별히 생각해서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 가치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말이다. 사람의 내면에 소유하고 있는 고귀한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말을 들을 때 사람은 변화되고 새롭게 거듭나기 시작한다. 성경에서 세리 삭개오가 변화된 것은 “삭개오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한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이 말은 ‘삭개오야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무시해도 너를 귀하게 생각한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들을 씻긴 뒤 새 옷을 입혀주고 있을 때 아빠가 아이들에게 “우리 ○○는 참 좋겠다. 이렇게 씻겨주고 사랑해주는 좋은 엄마가 있으니 좋겠다”고 말해준다면 엄마는 인정하는 말을 아이들 앞에서 들어서 기쁘고 아이들은 엄마 뿐 아니라 아빠의 사랑까지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사람을 살리는 말들                  

            

-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 실수했구나 괜찮아 다음에 잘하도록
- 넌 잘할 수 있어!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어!
- 넌 예수님 닮아서 잘 할 수있어
- 형제는 큰 일을 할 분이예요
- 참 잘했어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더 잘 할수 있어
- 차근 차근히 해, 해봐 잘 할 수 있어
- 그래 잘했다. 최고야!
- 천천히 한번 생각해봐
- 넌 자기관리를 잘해,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야
- 너 의젓하구나! 중심이 딱 잡혔구나!
- 겁나게 멋있게 생겼군요!
- 눈부시도록 아름답군요!
- 흠모할 정도로 아름답군요!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                             

             

1장: 긍정적인 기도의 능력
2장: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
3장: 말씀의 치유 능력
4장: 말을 항상 조심하라
5장: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고백할 것
6장: 사망과 생명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혀의 능력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찰스 캡스의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 원 제목은 <The tongue, a creative force>입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8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저자인 찰스 캡스는 한때 거액의 합작 사업에 투자하였지만, 사업이 잘못 되어 전 재산을 모두 날려버리게 됩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후 너무나 낙심하여 믿음도 버리고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사업을 회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게 되기까지 혀의 창조적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생생하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응답받는 믿음의 원리를 깨닫고,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삶에 적용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장: 긍정적인 기도의 능력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서 잉태된 다음에, 입으로 고백하게 되면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영적인 힘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효과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때문에 우리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자기 자신이 포로로 되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혀를 가지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만드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기도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도한대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를 해야 할까요?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되었고, 바울은 자신의 입술을 통하여 이 능력을 담대히 선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고, 그 말씀을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 제가 기도를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마귀에게 패배한 것 같습니다" 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고 말씀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문제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도가 없이도 역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을 나타내는 수단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표현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다스려야 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 즉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영적인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2장: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적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말씀에 이 세상에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창조적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우리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 우리 안에도 내재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말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의심과 두려움과 불신앙을 고백하도록 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에도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의 보잘 것 없었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에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굳게 붙잡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붙잡는다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굳게 붙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만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자체는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즉 소망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 산이 점점 커집니다.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어요.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응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문제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고백에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말씀을 믿고, 그것을 입술로 고백할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산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예수의 이름 안에서 저는 그 산이 들리어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 산이 옮겨진 것을 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긍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산이 얼마나 커 보이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동요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에 의해서만 동기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적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3장: 말씀의 치유 능력
여러분이 감기에 걸렸거나 다른 병에 걸려서 아팠던 때를 뒤돌아보십시오. 병에 걸렸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누군가에게 가서 "몸이 아파"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고,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후에는 병세가 더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질병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인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능력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고, 그 능력이 우리의 말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도록 늘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는 여기에서 '나음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고 '나음을 얻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십시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치유되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을 가지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야고보는 혀를 제어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분이 안 좋거나 몸이 안 좋을 때 이렇게 말하십시오. "말씀에는 뭐라고 되어 있지? 아, 말씀에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되어 있구나. 그러므로 사단아, 나는 너의 질병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나는 질병을 거절한다!"

잠언 6장 2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입의 말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그 혀에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며, 입으로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질병과 죄를 담당하여 주실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건강과 치유를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생명과 건강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말하기 시작하십시오. 지금 그것을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말을 조심하고, 생명과 건강의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4장: 말을 항상 조심하라
우리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누가 그 말을 했지? 이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인가?" 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면 사단의 거짓말이거나,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한 생각임이 분명합니다. 그럴 때는 그것을 자신의 말로 인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마음을 입으로 고백할 때, 그 말은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의 권세를 인정하고, 언어를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 6장 2절의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느니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자기가 말한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에는 말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영적인 힘은 말을 통해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는 요한일서 5장 4절 말씀은 하나님이 마귀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하고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혀의 능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여러분 안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장: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고백할 것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우리가 환경 때문에 요동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을 고백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복있는 사람'이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리로다"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잘 되는데 왜 나는 모든 일이 잘 안될까"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고백으로 바꾸어 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빌립보서 4장 19절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그 사람을 보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긍정적인 말은 재정적 위기에서도 그 사람을 보호합니다. 불황이나 경기 침체를 경험할 때도, 그 입술은 그를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고백으로 시인하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할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성도들은 치유기도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서 매우 근심어린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 치유 받고 싶습니다. 저를 고쳐주세요. 저를 치유해 주세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주님은 문제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이 상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이 상처받고 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는 성경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 잔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성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어떤 이보다 더 크십니다." 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6장: 사망과 생명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혀의 능력
혀에는 우리의 인생을 망하게 하거나 성공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같은 입에서 복과 저주가 함께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말로써 프로그램화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겨나고, 두려움은 대적이 말한 것을 들음으로써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대적인 마귀의 말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말을 자신의 마음에 두고 그것에 붙잡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왜곡되고 쓸모없는 자기 파괴적인 이미지를 심어 놓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함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프로그램화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모두 우리의 입을 통해 나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전의 옛 것들은 모두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되심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거듭난 성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충만한 말은 믿음이 연약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활력을 불어넣어서 그들의 믿음을 발휘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을 담대하게 선포할 때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창조적 능력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그들의 믿음을 발휘하게 하는 것입니다. 혀는 우리를 죽일 수도 있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흘러나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과 생명이 혀의 권세 안에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로 고백하여 고침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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