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Tongue)의 권세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숴뜨릴 수 있다"(J. 위클리프)는 말처럼 혀의 영향력과 파괴력은 엄청나다. 말 한마디에 한 사람의 인생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가정의 불화나 심각하게 악화된 사람들 간의 문제의 배경은 언제나 부정적인 대화가 주된 원인이었다. 흰개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이다. 그들은 작고 잘 보이지 않지만 날카로운 입을 통해 집안의 많은 목재 가구들을 갉아 부순다.

야고보는 혀가 비록 작은 것이지만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말이 가장 적절한 듯 싶다. 아이들은 수다쟁이를 "빅 마우스"(Mr. Big mouth)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의 입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은 입이 만들어 내는 많은 문제성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불이란 작은 영향력의 하나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불같이 격렬한 말은 종종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시킨다. 비록 나중에 그 관계가 회복되더라도 예전과 같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쓰여진 표지를 몸과 마음에 지녀야 할 것이다. 주의 : "인생이란 타 버리기 쉬운 물자이다 - 당신의 혀에 있는 불을 끄십시오.

나의 혀를 지으신 주님!
내 입으로 평생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내 혀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주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핍박받는 자와 함께 주님의 경배하는 소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Ⅰ. 혀의 위력
잠12:8; 18:4,21; 10:11 약3:4-8 마12:35-37

Ⅱ. 혀의 사용과 결과
1) 잘 사용한 예와 결과
잠10:19 12:6 12:19 :22 :25 13:3 15:1 15:2 15:23 16:13 16:21 16:24 17:27,28 21:23

2) 잘못 사용한 예와 결과
잠10:19 10:14 11:9 11:13 12:18 12:19 12:22 13:3 14:3 15:1 15:2 15:4 16:28 16:30
17:9 17:20 18:2 18:13 25:23 26:28

Ⅲ. 혀에 대한 책임과 훈련
1) 약1:19 - 2) 엡4:29 - 3) 약1:26; 전5:2 잠17:27,28 4) 디후2:16 5) 골4:6
6) 잠16:10 7) 잠15:28 8) 잠26:4,5 9) 잠18:2 10) 마5:37(출20:16; 레19:11; 슥8:16 -
11) 엡5:4 12) 잠27:2 13) 잠29:11 14) 마12:35-37 15) 시141:3; 사50:4
16) 시51:15 17) 전10:20

Ⅳ. 적용
1) 나의 혀 사용은 어떠한가?
2)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몸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성경에서 몸의 지체 중 혀만큼 많이 언급된 부분도 없다. 하나님께서 왜 혀를 만드셨을까?

혀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말하는 기능이요, 둘째는 맛을 볼 수 있는 기능이다.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 성경에선 혀의 종류를 구별하고 즉 의로운 혀, 참소하는 혀, 속이는 혀, 날카로운 혀, 둔한 혀, 지혜로운 혀 등으로 묘사하면서 혀의 올바른 사용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

물론 말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겠지만 여기에선 다양한 맛을 구별하는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욥6:6)란 구절은 소금이 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외에도 성경엔 쓴 맛,싱거운 맛, 싱거운 맛, 단맛 그리고 기름 섞인 과자 맛(민11:8) 등이 있지만 식품학에선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4가지 기본 맛으로 분류하고 있다. 식품학에 있어서 맛은 식품의 가치를 정하여 주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 중에서 아직 가장 해명되어 있지 못한 분야가 바로 맛에 관한 미각이다. 맛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화학 생리학 생화학 신경생리학 통계학 심지어 심리학과도 관련이 있어 여간 복잡하지가 않게 때문이다.

혓바닥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오돌도돌하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맛 봉오리 혹은 미회(teste buds)라고 불리는 직경 50-70y 되는 타원형 구조를 갖는 것들로 덮여있다. 이 미뢰는 일명 미각세포(gustatory cells)라고도 하는 40여개의 미각 수용기(taste receptors)를 갖고 있다.

맛을 느낌에 있어서 첫 번째 일어나는 것은 바로 맛을 갖고 있는 물질이 바로 이 미뢰를 형성하고 있는 미각수용기와 만남으로써 시작된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가면 씹기가 시작되면서 침이 분비되어 음식물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가 침에 용해되고 약 1만개가 흩어져 있는 미뢰의 미각수용기의 돌기부분(taste hairs)과 접촉하여 화학적인 자극을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에 의해서 주변에 수용기 전위차(receptor potential)로 알려진 어떤 작은 전위차가 생기고 이 전위차가 어떤 수준을 넘게 되면 미뤼에 연결된 미각신경섬유에 신경신호를 유발하고 이 신호는 다시 복잡한 여러 과정을 거쳐서는 뇌에 전달되어 [어떤 맛]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혀 표면에 각각의 기본적인 맛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부위는 다르다. 즉 쓴맛은 혀의 깊은 곳 설근부에서 단맛은 혀의 끝부분, 짠맛은 혀의 전명 양쪽부분에서 그리고 신맛은 바깥 주연부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색을 구별 못하는 색맹이 있듯이 어떤 물질의 맛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맛을 느끼거나 맛 자체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페닐사이오카바마이드(phenylthiocarbamide:PTC)라는 물질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쓴맛을 주나 일부 사람은 아무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 PTC의 맛을 식별 못하는 현상을 미맹(taste blind)이라 한다. 이 미맹은 유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양인에 비해 서양인이 많으며 여자의 경우 (22.2%) 보다 남자의 경우(26%)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에 관해선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다른 동물이나 곤충들은 맛을 인식할 수 있을까?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사람과 같이 말로 표현을 못하니까. 맛을 느끼는지 않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갖가지 실험을 통해 맛 수용기의 자극액에 대한 반응은, 즉 맛에 대한 인식이 동물에 따라 현저한 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고양이는 설탕에는 반응을 나태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파리 나방 나비와 같은 곤충들은 다리 끝에 달려 있는 털이나 입의 특정부위로써 설탕이나 소금의 맛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파리의 경우 모상감각기라 하는 각피 표면에 돌출된 털로써 선단에 작은 구멍이 있고 그 밑에 감각세포가 있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물고기의 경우는 미뢰가 머리의 표면에 있고 메기 등에서는 수염 표면에도 분포하고 있어 결국 동물의 종류에 따라 정말 다양하다하겠다.

혀가 없는 것은 심지어 다리 끝에 나있는 털까지 이용해서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설계하신 이 솜씨! 정말 놀랍고 놀랍다.

적다는 표현을 우리는 [털끝만큼도]라고 한다. 파리 다리 끝에 나있는 작은 구멍까지 있다니. 과연 이것이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 과학은 아직까지 달고 쓴맛을 혓바닥이 어떻게 감지해내는가에 대한 평범한 명확한 설명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해 놓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 덕분에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진화론자들까지 쓰고 단맛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하나님의 같은 혀를 만드셨던 한 혀는 창조론을 또 한 혀는 진화를 말하는 도다.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시 71:24)

말조심(살전2:5)

신앙생활에 있어서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성경은 말하기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인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3:7-8) 하였다.

한 그리스의 철학자가 자신의 종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말하기를 [가장 훌륭한 고기음식을 준비하라]고 명하였다. 종은 소의 혀로 만든 음식을 담은 접시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말하기를 [이 혀 음식이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우리는
남을 축복하고 행복을 말해주며 슬픔을 이기게도 해주고 실망한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낙담한 사람에게는 새 힘을 주고 또한 인류가 수백 가지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고기음식을 준비해 보라고 말했다. 얼마 후에 그 종은 다시 소의 혀로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아 가지고 들어오면서 [주인님, 이 세사에서 가장 나쁜 고기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남을 저주하기도 하고, 인간의 마음을 여러 갈래로 찢어놓기도 합니다. 남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뜨리게도 할 수 있고 부조화와 갈등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 안에서 서로 싸우도록 전쟁을 일으키는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혀가 가장 나쁜 고기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 종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헛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엡5:6) 아무 의미도 없고 말하는 사람의 위신과 권위를 떨어뜨리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손해를 보는 것뿐이다. 또한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흔히 선거철이 되면 서로 다투어 멋진 공약을 말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한낮 헛된 말장난에 그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삼가야 한다 (벧후2:3).

또한 성경은 아첨의 말을 하지 말라고 권한다(살전 2:5). 사람의 비위나 맞추고 입으로만 봉사하는 위선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것이 아첨의 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결코 저주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시 59:12).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시편 17:18).

이런 말을 늘 하자. 먼저 참된 것을 말해야 한다(엡 4:24). 더욱 이 그리스도인은 그의 말에 한마디도 실수가 없어야 하고 사실을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이기 때문에 그 말에 신뢰성이 있어야 하고, 또 권위가 있어야 한다. 참된 것을 진실하게 말할 때에야 이웃에게 신뢰받는다.

신앙인은 어떤 경우에나 감사하는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원망과 투기의 맡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더 큰 갈등을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말을 아껴야 한다(잠 17:27). 말이 많으면 허물이 드러나고 실수하기 쉽다. 그러나 말을 아끼면 미련한 자라도 지혜자로 인정받게 된다. 말은 필요한 것이로되 그리스도인의 입에서는 아름다운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믿음이 항상 흘러 나와야 한다. 말이 우리의 인격을 세우기도 하고 허물기도 한다.

 



말이 가져온 새 생명


    어느 병원의 환자 중에 심장기능이 극도로 악화된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순간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중증의 노인 환자였습니다. 이 노인은 거의 회복할 수 없는 혼수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심장이 회복되지 못할 상황이 되면 심장 뛰는 소리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심장이 뛸 때 '쿵!'은 제1심음, '탁!'은 제2심음이라고 하는데, 정상일 때는 '쿵탁퉁탁' 하는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심장이 멈추려는 상태가 되면 전혀 다른 제3심음의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아침에 심장과 의사가 회진을 하면서 그 노인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보니 제3심음이 뚜렷하게 들렸습니다. 제3심음은 쉽게 들을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에 그 의사는 의과대학 학생들을 황급히 불러 노인의 심장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죽어가는 노인에게는 슬픈 일이었지만 심장박동의 제3심음을 들어볼 기회가 좀처럼 없는 학생들에겐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 노인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어본 학생들이 기쁨의 탄성(?) 질러댔습니다. "잘 들립니다. 아주 뚜렷하게 잘 들려요!" 의사는 노인의 가족에게 장례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가족은 장례 준비를 하면서 노인이 돌아가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인은 계속 호흡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제3심음의 상태로 봐서는 벌써 하늘나라에 가 있어야 할 노인이 계속해서 살아있자 노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은 너무나 지쳐서 오히려 기진맥진할 지경이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생과 사를 왔다갔다 하던 노인의 상태가 점점 또렷해지더니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장 상태가 급속히 호전되기 시작했고 제3심음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1주일만에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와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아침에 회진을 하면서 의사는 노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감자기 심장이 좋아지리라고는 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박사님, 지난번 아침 회진때 당신과 당신 학생들이 내 심장 소리가 잘 들린다고 기뻐하지 않았소." 노인은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박사와 학생들이 "잘 들립니다. 잘 들려요!" 라고 떠들어대는 말을 듣고서 자신의 심장 상태가 좋아졌다는 뜻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노인의 심장이 에너지를 얻어 힘있게 움직이기 시작했음은 물론입니다. 당신의 말이 행복을 만든다 (저자 : 박 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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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자부심을 기르는 10가지 방법

            

1. 당신의 내면에 긍정적 자부심을 길러라.
- 당신 내부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찾아라.

2. 당신의 외모에 긍정적 자부심을 길러라.
- 곧게 서서 사람들의 눈을 보라. 자주 웃고, 굳게 악수하라. 항상 건강을 유지하라.

3.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기분좋게 느끼도록 만들어라.
- 케네디의 내면적 자부심은 국가 전체를 기분좋게 해 주었다.

4. 자신을 교육하라.
- 마음을 열고, 평생 동안 당신의 지식을 쌓아가도록 애써라.

5. 준비하라.
- 준비는 두려움을 파괴하고 자신감을 구축한다.

6.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라.
- 매일 당신의 삶 속에서 축복과 행운을 생각하기 위해 몇 분을 할애하라.

7. 당신의 시간과 돈을 불운한 사람들에게 희사하라.
- 남들에게 베푸는 것만큼 기분좋은 일은 없다.

8.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활방식으로 건강을 유지하라.
- 건강한 생활방식을 계속 유지하라.

9. 주변에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를 두어라.
- 그들을 모방하라. 하루 24시간 동안 성공을 느끼고, 보고, 숨쉬고, 만지고, 냄새 맡아야 한다.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당신과 같은 파장을 가진 사람을 찾도록 하라. 그들의 후원과 격려와 지혜가 필요하다.

10. 두려움을 외면하지 말라.
- 진짜 실패는 아예 경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은 눈덩이와 같아서 일단 작게 만들어 놓기만 하면 저절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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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권세=====1

                                    

                 

오늘의 말씀은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면서도 가장 악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혀입니다.

구약 잠언 18장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이커 성경주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수다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벽이 없는 집과 같다. 모든 생활에서 말을 절제하면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성질을 죽이라. 남의 말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조금만 말하라. 혀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선과 가장 커다란 악을 행할 수 있는 기관이다』

오늘도 혀의 중요성을 알고 온전한 언어생활을 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혀의 권세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 3:2) 온전한 사람 (성숙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3-6)

사람의 마음은 다스리고 통치하는 통치자이다. 그러나 혀는 그 통치자를 조종한다. 말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신의 혀가 당신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말이 당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당신의 혀는 당신의 배의 키다.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 15:4)

당신의 몸 안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마음에 의심치 않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말에 순종하도록 창조되었고, 우리의 몸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고 있다. 육체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형통하길 원한다면 혀는 반드시 통제되고 다스려져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한데,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초자연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고 고백할 수 있으려면 먼저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이 역사 하셔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은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 : 23) 당신은 당신 자신이 말한 것이 옳든지 그르든지 열매와 결과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와 원리에 대해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어둡게 해서 보지 못하게 한다.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의 말은 씨앗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말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 : 35)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 언약의 말씀과 거스르는 어떤 말도 악한 보고요 악평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받았으며,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 : 36) 여기서 무익한 말이란 <당신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며, 부정적인 말로써 마귀에게 틈을 주는 말들을 가리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고백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살고 있다. 도무지 한마디의 긍정적인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는, 차라리 어금니를 꽉 물고 당신의 입에 지퍼를 채우고 침묵하는 법을 배우라.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 함을 받으리라."(마12 : 37) 당신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근거해서 당신은 의롭다 함을 받기도 하고 정죄 함을 받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후진기어를 넣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원리에 있어서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문제를 기도하고, 문제를 말하고, 그것을 밤낮으로 품고 삽니다. 심지어는 한밤중에 깨어서도 그 문제만을 생각한다. 문제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한다.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이미 이루어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막 11:24)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마음의 상자에 파란 공을 넣으면 파란공이 튀어나오고 빨간 공을 넣으면 빨간 공이 튀어나온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당신이 말하는 것과 당신이 믿고 있는 것 사이에는 반드시 연속성과 일치성이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기에, 당신의 말은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뜻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의 입으로 결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이 갈망하는 것만을 말하도록 지음 받았다.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작은 일들도 인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당신의 말을 다스리는 법을 훈련하고 개발해야 한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당신이 믿고 확신하는 것만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 : 26)

당신의 마음(영)은 "당신의 말"을 "최종적인 권위"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습니다(잠 18:21). 크리스챤은 "나는(너는) 틀렸어, 나는 안돼, 나는 못해, 내가 뭘해, 나는 복이 없어"라는 등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챤은 "나는 희망이 있어, 나는 돼,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복이 있어, 내가 하면 돼, 나는 꼭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 아침에 비가 옵니다. '에이, 하필 오늘 비가오는 거야'라고 투덜댑니다. 저는 비가오는 주일아침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들로 산으로 놀러가는 사람이 가지 않고 교회의 예배의 자리에 앉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일에 날을 잡으면 안됩니다. 달력을 보세요. 원래 주일은 하나님이 날을 잡아 놓으신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잡으면 안되는 날입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오늘 축복하셔서 이 날을 맞게 해 주셨구나라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의 말에는 믿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예배의 자리에 앉은 모습만으로는 믿음의 척도를 알 수 없습니다. 찬양대로 봉사하고 여러 가지로 봉사를 많이 해도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말 속에 어떤 것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 속에 믿음이 담겨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혀를 은혜롭게 길들여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하는 말과, 육적인 사람이 하는 말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할 때 믿음의 위력이 나타나고 없던 믿음도 생긴다고 합니다. 수십년을 교회에 다녀도 의심을 품고 회의적인 말만 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고백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9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불신앙적인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의 말에는 소망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성경도 잘 읽고, 기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 하는데 자신과 삶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서, 교회와 사회에 대해 늘 부정적인 말을 하고 평가를 하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과 남에게 낙심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지고 시험에 빠지게 되면 절망적인 말, 부정적인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식어진 사람의 말 속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의 말 속에 소망이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고생하며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그리던 소원인 "이집트 탈출"에 성공하고 그들의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해 가던 시나이 반도 광야에서 고생스럽다고 생각될 때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집트 노예 생활이 편했다"고 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입으로 말한 대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통해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문제 없습니다.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긍정적인 말을 하던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새로 출생한 사람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이 말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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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능력 ===은혜목회정보

             

 잠13:1-3 말(1) 입술의 열매

우리는 어려서부터 말을 해왔고 늘 말과 함께 생활해 왔기 때문에 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말의 능력 역시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질 못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의 능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말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람이 한 말이 후에 그대로 이루어는 신기한 현상을 보며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연이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신기한 일]이 거듭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과연 말이 능력이 있는가?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진리 중에 진리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자.

1. 성경은 말을 입술의 열매라고 한다.
성경은 말을 일컬어 [입에서 나오는 열매]라 한다. 잠언 18:20에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다. 이 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을 열매로 표현하고 있다.

1) 말을 왜 열매로 표현했을까?.
어떤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씨를 뿌려야 한다. 밭에 뿌려진 씨에서 싹이 나고 그 싹은 자라 때가되면 열매를 맺는다.


입술의 열매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씨다. 사람이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은 곧 씨를 뿌리는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 가운데 씨가 되지 않는 말은 하나도 없다. 사람의 말은 모두 씨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어느 땐가는 열매를 맺게된다.
이것은 말을 만드신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다.

2) 입술의 열매는 누가 거두는가?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했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0장에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하셨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가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보면 말의 씨를 뿌린 사람이 그 열매를 추수하기도 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 열매를 거두기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그 입술의 열매를 먹게 된다는 말이다.

(1) 말을 한 사람이 그 열매를 거둔다.
성경은 '사람은 입에서 나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고,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고 가르쳐 준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입술의 열매는 그 씨를 뿌린 당사자가 먹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향하여 한 말이 자신에게 이루어 진다는 말이다.

또한 이 말은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한 말이 자신에게 이루어 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편109:17-18)."


블레셋의 군대장관 골리앗은 자신이 심은 저주의 씨를 자신이 거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사무엘상 십칠장을 보면 골리앗은 소년 다윗을 향해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는 저주의 씨를 심는다. 이 저주의 씨는 열매는 골리앗 자신의 목이 베이는 것이었다.

(2) 말을 들은 사람이 그 열매를 거두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한 말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윗이 심은 말의 씨를 사울이 추수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그는 부하에게 사울을 죽이지 말라고 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는 말의 씨를 심었다.
이 말의 씨는 사울이 전장에서 그 열매를 먹었다. 사울은 전장에서 활에 맞아 중상을 입고 자기 칼을 취하여 그 위에 엎드러져 죽었다.

누군가는 말의 열매를 거둔다.
입술의 열매는 그 말의 씨를 뿌린 사람이 거두거나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거둔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 가운데 그냥 없어져 버리는 것은 없다.


긍정적인 말의 능력(롬 10:10)

             


말의 위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부정적인 말을 쓰면 우리의 생애를 파괴시키는 일이 생겨나지만 긍정적인 말을 쓸 때는 위대한 축복이 다가옵니다. 본문을 근거로 긍정적인 말을 할 때 오는 축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긍정적인 말은 축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성경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 몸을 굴레 씌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3:2).

그러므로 우리가 “안 된다, 끝장났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굴레가 되어 정말 안 되고 끝장나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창조적인 말, 승리의 말, 건강의 말, 생명의 말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이 축복의 길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입니다.

둘째, 긍정적인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고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입술로 고백하여 그 재료를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예수님의 손에 얹어드리면 바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셋째, 긍정적인 말은 성령의 검이 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가 말씀 위에 서서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나가서 검이 되어 마귀를 찌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입술로 긍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 원수를 물리치고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 때문에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의 입술에서 부정적인 말을 끌어내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이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 “안 된다, 절망이다.”라고 말하면 그 말이 올무가 되어 신앙을 잃게 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실 수가 없게 됩니다. 또한 마귀는 우리의 부정적인 말을 통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긍정적인 말을 할 때에 축복이 다가오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며 그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마귀의 진을 훼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입술의 말에 따라                  


 입술의 말에 따라 이스라엘이 왜 광야에서 다 망했는가?

그들은 입술로 원망하다가 망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심판하셨다.

원망하면 망해도 아주 확실하게 망한다. 말에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악한 마귀를 물리치셨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병든 자를 일으키시고, 귀신 들린 자를 구원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흐릿한 기억이 남아서일까? 이방종교에도 말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주문이라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말의 능력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선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과 설교를 통해 계속해서 성도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이 성도에게 힘을 주고, 능력을 주고, 소망을 품게 만든다. 이 말씀의 능력으로 성도는 세상을 이기는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한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나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임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민수기 14장 28잘 이하에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14:27)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민 14:28,29)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말을 들으시고 또 그대로 행하셨다.



입에서 나는 소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복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기를 원하면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이 '입'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사용되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의 뜻에 따라 여러분의 '입'이 성화된, 구별된 말 만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입술의 열매 1권"입니다. 2권도 있는데 1권을 잘 읽으면 2권은 읽으실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되어 2권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좋아보이네요.
    염려해주는 척 "어디 아프세요?"라고 묻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저도 "어디 아프세요?"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제부터는 "좋아보이네요"라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혹시 옆 사람이 인상이 별로 안 좋아도 "좋아보이네요" 라고 말하세요. 그러면 '아! 난 아파도 이뻐 보이나보다' 생각하며 좋아한다고 합니다.
  •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사람들은 인상이 좋다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저 좀 자세히 보세요. 인상이 참 좋죠? 저를 좀 쌀쌀맞게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쌀쌀맞아서 그래요. 옆사람에게 인사해 보세요.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 그 옷 참 잘 어울리시네요.
    제가 오늘 저녁을 어떤 분과 함께 먹었는데, 그 분에 제게 "넥타이와 와이셔츠가 참 환상적인 매치를 이루셨네요" 라고 하시는데 참 기분 좋더라구요. 그냥 대충하고 왔는데도 "그 옷 참 잘 어울리시네요"라고 하는 것은 "아무거나 입어도 잘 어울리시네요"라는 뜻이에요. 옆 사람이 몸베를 입고 왔어도 인사합시다. "잘 어울리시네요."
  • 맛있게 먹었습니다. 또 오고 싶네요.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은후 "맛있게 먹었습니다. 또 오고 싶네요."라고 인사하세요. 잘 먹고 나서 "아저씨 짜장면이 왜그렇게 짜요? 다음에 기둥교회 나오세요."라고 해봐요. 그 아저씨가 아마도 "너나 가라." 할 거에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또 오고 싶은 가게네요."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 어쩐지 뵐 것 같았어요.
    갑자기 손님이 와도 "어쩐지 올 것 같았어요.", 별로 반갑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어쩐지 뵐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보다)실물이 훨씬 멋있으시네요.
  • 참 운전 잘하시네요.
    남의 차를 타면서 "아유 불안해. 면허딴지 몇 년 됐어요?"라고 묻지 마세요. 운전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 할 것 같아요? '너 다음에 태워 주나 봐라…'라고 생각할 거에요. 그럴땐 오히려 "운전 잘하시네요."라고 말하세요.
  • 이 집에 오니 맘이 참 편하네요.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여기 오니 맘이 참 편하네요"라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들이 남에게 평안을 주는 말입니다. 똑같은 말인데.. 나쁜 말도 있어요.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받아 보고서 "이걸 글이라고 썼니?", 퇴근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집구석이라고 들어와야 좋은게 있어야지?"라고 하는 말, 부부사이에 "당신은 왜 늘 그모양이야? 왜 너같은걸 만나서…"하는 말, 지난번 축구를 보고 "너만 실수 안했으면 이런 꼴 안당하는 건데…" 하는 이런 말들은 상처주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입'입니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지금 이 설교 하면서 스스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 합니다. 목사인 저도 고칠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실수도 많겠지요. 우리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입'이 되도록 노력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입'은 살리는 일을 하는 '입'입니다.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칭찬 하시기 바랍니다 "기둥교회 가면 얼마나 은혜스러운지요. 목사님도 보기 만해도 좋고 목소리만 들어도 편하고, 장로님들 이 조끼 입고 안내 하고 주일 오후면 심방하는 모습이 참 좋고..." 좋은 것만 찾고 말하세요. 오늘 낮예배, 지금 '입'에 대한 설교를 듣는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도 같고 남편, 아내, 여러분이 만나는 자녀들도 이전과 같습니다. 사람이 달라진다고 얼마나 달라집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고 사시기 바랍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나게 해주셨으니까요. 지금 이시간에도 제가 교회안에서 천장을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쓰레기통을 드려다 보면 지저분한 것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한 기쁨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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