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의 기도/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야훼는 네게 복 주시고 지키시기 원하면”
제사장 선포통해 이스라엘에 복 주신 하나님
우리도 하나님이 은혜의 수여자이심 인정해야


 아론과 그의 자손들인 대제사장의 삼중 축복 기도가 민수기 6장 22∼27절에 언급되어 있다. 민수기는 시내광야에서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는 광야로서 뱀과 전갈이 돌아다니고, 먹을 것과 마실 물도 없는 공포의 땅이다. 그러나 광야의 여행이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야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아론의 삼중 축복은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의 힘이요, 담대함의 기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은혜로 왕 같은 제사장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사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열어놓으신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된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예수 안에서 아론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서로에게 선포하며 힘과 용기와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대제사장 아론의 삼중축복은 첫째로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자녀와 재산, 땅, 건강, 그의 임재라는 복을 주신다(창 17:16; 22:17∼18; 레 26:3∼13; 신 28:2∼14). 나아가 이러한 좋은 선물뿐 아니라 모든 위험에서 그를 보호하게 하시고(욥 1:10), 각종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지켜주신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네게 비추신다는 비유는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말씀과 부합된다(시 31:16; 67:1). 그는 곤경에 빠진 백성들을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살피시며, 은혜를 베푸사 대적과 질병과 죄에서 건져 주신다(시 4:1; 6:2; 51:1). 어려운 사람을 보고 얼굴을 돌리는 것처럼 그에게 실망과 낙심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곤고한 인생을 감찰하시고 긍휼히 여기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의 얼굴을 돌리지 않도록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앙망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축복해주어야 한다.

 셋째로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한다.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든다는 말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뜻이다(창 43:29; 시 4:6).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평강이다. 그것은 전쟁과 소요가 없는 평화의 상태뿐 아니라 풍요와 건강, 번영, 구원 등으로 가득한 상태이다. 하나님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총체적인 은혜의 수여자이시다.

 아론의 축복 기도는 모두 세 구절, 15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세 구절은 각각 3단어, 5단어, 7단어로 점층적으로 많아져서 축복이 강조되고 깊어지고 있다. 또한 구절마다 야훼 이름이 한 번씩 들어 있어서 모두 세 번 언급되고 있는데, 야훼 이름이 주어로서 한번만 언급되면 충분하지만 굳이 세 번을 반복한 것은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야훼 이름을 빼면 12단어가 남는다. 이는 복을 받는 사람이 12지파임을 상징한다. 복은 결코 사람인 제사장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매달려도 안 되고, 복 자체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 오직 복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야훼의 복주심이 아론과 그 아들들로 대표되는 제사장들을 통해 전해지게 된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선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러한 축복은 아론의 머리에 있는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적시는 것과 같다(시 133:2). 오늘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인 그리스도인의 축복된 생각과 꿈과 믿음,a 특히 축복의 말의 선포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나아가서 아론의 삼중적 축복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론의 축복 기도는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의 마지막에 주어지는 축도와 연관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 종의 축도가 선포될 때 온전히 예배가 마무리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복과 마음의 복과 물질적 복을 주시는 것이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구역예배-성령의 불

◎ 찬송가(다같이) : 183장(통일 172장), 185장(통일 179장)
◎ 신앙고백(다같이) : 사도신경
◎ 말씀봉독(다같이) : 열왕기상 18장 37∼38절
◎ 본문읽기
◎ 주기도문(다같이) :
맨 마지막에
◎ 오늘의 만나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대,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 같은 각종 우상을 섬긴 결과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누가 참신인가를 가리기 위해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결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아침부터 하루 종일 외쳐댔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 즉시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회개하는 신앙
 엘리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백성들을 제단 앞으로 부르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것이었습니다(왕상 18:30). 원래 갈멜 산에는 야훼의 단이 있었는데 아합 왕 때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단을 헐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헐어버렸던 하나님의 단을 다시 수축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것을 그대로 둔 채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부른다는 것은 주님께로 나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내게로 가까이 오라”라고 하시며 허물 많은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사 1:18). 세상에서 방황하던 사람은 주님 앞에 나아가서 먼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식어진 첫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예배의 제단, 즉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우리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 교제의 자리가 바로 제단입니다.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그 위에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롬 12:1)로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 되는 신앙
 엘리야는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다시 쌓을 때 열두 돌을 취했습니다(왕상 18:31∼32). 열두 돌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합니다. 열두 지파의 조상은 한 아버지의 피를 받은 한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 이후에 열두 지파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갈라졌습니다. 남유다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제단을 쌓았지만, 북이스라엘은 우상의 제단을 세우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갈라진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나라가 갈라질 때 민족이 갈라지고, 민족이 갈라질 때 제단이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라진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제단을 쌓고 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에서 열두 돌을 취하여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하나 될 때 나타납니다. 흩어진 믿음의 식구들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에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1, 22). 각 가정이, 구역이, 교회가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 당을 짓는 마음들을 다 버리고 주 안에서 화합의 마음, 용서의 마음, 한 몸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큰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마 5:23∼24).

3. 십자가 신앙
 제단의 나무 위에 벌인 피의 희생 제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왕상 18:33). 보혈의 능력 외에 우리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속죄의 근거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히 9:22).
 또한 제단 주변 도랑에 가득 찰 정도로 제단에 두루 뿌려진 물은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왕상 18:33∼35).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우상의 거짓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드려야 하는데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제사만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제단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단에는 항상 말씀에 순종함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 드려지는 제사는 형식적으론 완벽할 순 있어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제단을 수축한 뒤 기도의 단을 쌓았습니다(왕상 18:36∼37).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 말씀을 붙잡고 전력을 다해 기도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불이 떨어집니다. 예수님의 보혈,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 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4. 성령충만의 신앙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할 때 드디어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불이 얼마나 강했는지 순식간에 제물이 태워지고 도랑의 물이 다 말라버렸습니다(왕상 18:38). 강력한 불이 임하는 순간 이스라엘에 부흥이 임했습니다(왕상 18:39).
 그러자 그전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우상의 중간에서 머뭇거리던 백성들이 이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야훼가 참신이심을 고백했습니다. 모든 기적과 부흥을 이루는 원동력은 성령입니다(슥 4:6b). 성령께서 우리 위에 불로 임하실 때에 우리의 부족함은 장애가 아니라 주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이제 우리의 작은 능력으로 애쓰지 말고, 성령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우리가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 간추린 만나
 <회개하는 신앙>

1. 엘리야는 가장 먼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2. 우리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 되는 신앙>
1. 엘리야는 이스라엘 전체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2. 삶에 깨어진 관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 신앙>
1. 엘리야는 제물의 각을 떠서 제단에 올리고 제단 주변 도랑에 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2. 각을 뜬 제물은 예수님을, 제단 주변의 부어진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3.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의 신앙>
1.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 성령께서 우리 위에 불로 임하실 때에 개인, 가정, 사회가 변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 내 삶의 만나
 <옆 사람에게 인사>

1.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시다.
2.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합시다.
3.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합시다.
4. 날마다 성령충만을 사모합시다.

<기 도>
1. 우리가 습관적으로 짓는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2. 우리 구역(지역)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3.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4. 불 같은 뜨거운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중보기도>
옆 사람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 함덕기 목사(남구로성전 담임)

 120년 전에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로 한국교회는 토착문화 및 유교의 전통의례와 마찰을 빚어왔다. 그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조상 제사’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제사 때문에 신앙적 갈등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제사의식의 특징은 죽은 자와 산 자와의 관계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사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의 갈등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조상 제사는 여전히 종교적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에 참여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숭배나 한국 민속 종교인 무교에 대한 참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이를 마땅히 우상 숭배로 여기고 피해야 할 일이다.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고전 10:20) 그런 의미에서 목숨을 바치면서 조상 제사를 거부해 온 한국 교회의 역사는 충분히 자랑할 만하며 앞으로도 지켜야 할 신앙의 지조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놓고 한국 교회가‘나중에 회개하면 그만이지!’ 라고 적당히 타협했다면 순교까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운동회를 할 때,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서 응원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고 손뼉 치며 본인이 속한 팀이 승리하도록 자기네 팀을 응원한다. 마찬가지로 손뼉치며 응원해야 할 것은 영적 생활이지 육적 생활이 아니다. 육적 생활에만 집착하여 영적 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패배하게 된다면, 진정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은 육적 생활 보다는 영적 생활인 영혼을 사랑하고 영적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죽은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교에도 없다. 원래 유교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무엇에 절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을 불신자들과 함께 나눌 필요도 있다. 더불어 아직 믿지 않는 가족과 친지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정신으로 사랑의 섬김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행동과 결정들이 공동체 내에서 거침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고전 10:31)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명절 때마다 조상 제사 갈등에 있어서 한국 교회와 우리 순복음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영혼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명절을 보냅시다”


전인구원/조용기목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요한삼서 1장 2절, 사도행전 10장 38절)

 유명한 교육자요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 박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안에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야 우리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면서 언제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말씀을 사랑함으로 죄와 악한 행실을, 질병과 나쁜 환경과 세력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말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 해 농사가 잘 되어 풍성한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는 큰 곳간을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누가복음 12장 19절)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장 20절)

 우리 사람들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으로 좌우할 수 있는 줄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데려가시면, 아무리 재물을 많이 쌓아 놓았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아갑니다. 더 많은 재물을 모으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도, 중요한 자기 영혼에 대한 관심은 내버려두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가 노후에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는데, 이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 노후에 인생의 석양녘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을 위로를 받을 곳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내 영혼이 위로받을 수가 있는 처소가 교회밖에 없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

 교회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신학자 어거스틴도 그의 ‘고백록’을 통해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내게는 쉼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영혼의 참된 위로와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나서 인간의 어떤 일에도 희망과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1. 영혼이 잘됨 같이

 하나님이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 “네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자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자아도 있고, 혼적인 자아도 있지만, 깊은 영혼의 자아가 자기의 참된 자아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이 진정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은 영혼이 참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죄악과 마귀의 억압과 세상의 고난에 처하여 불안하게 되고,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면 영혼이 잘될 수가 없습니다. “지킬 만한 것 중에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했습니다. 이 마음이란 깊은 내가 살아나야 참 사람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어떻게 될 수 있느냐?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나의 생명이 보혈로 속사람이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용서하고,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재생시키면 영혼이 잘 되게 됩니다. 그래야 행복이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에 연결되어서 영혼이 죽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값없이 우리 죄를 용서해주고 영혼을 살려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버림받은 그대로, 주님께 나아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해주겠다.’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은총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은즉’(엡 2:8)이라고 했는데, 은혜는 값없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아무리 가난해도, 부유해도 관계없습니다. 사람으로서 주님께 나아오면 공짜로 구원해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절대로 조건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빈 손 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조건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은즉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옵니다.’ 나오면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여러분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한 것이니 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생활고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심지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두 딸을 안고 바다에 뛰어든 어머니도 있습니다. 어쩌다 인간의 삶에 이런 저주가 들어왔을까요? 원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살도록 하신 에덴동산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 일해서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삶이 가시와 엉겅퀴에 시달리는 고통을 당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다가온 이 고통을 예수님의 은혜와 보혈을 통해서 다 극복하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십자가 밑에서 십자가를 내 가슴에 품어야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더러운 삶을 씻어서 깨끗하게 해주시고, 거룩하게 해주셔서 성령을 받게 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마음의 병, 생활의 병을 치료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가난과 저주를 속하여 주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은혜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도 부활영생한 사람들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2. 범사에 잘되고

 성경에는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잘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의 저주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역하실 때,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뿐 아니라,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내년이면 우리 교회가 60주년을 맞게 되는데, 우리 교회가 시작될 무렵엔 모두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우선 따뜻한 밥 한 공기와 약 한 봉지가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키셨다는 복음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우리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전도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을 제일 중요한 하나님으로 우리 일생을 맡기고 사는 것이 범사에 잘되기 시작한 길입니다. 사람의 탐욕엔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함을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환경에도 만족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1절~13절)고 그는 삶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만족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를 사모하는 영혼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9절에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우울하고 불안해하고 염려와 근심에 시달리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나 마음에 평안과 만족을 누릴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한과 슬픔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해치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간 내어서 기도하는 일도 있지만 순간순간 다가오는 낭패와 실망과 저주와 슬픔과 이러한 것을 해결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일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 다가오면 좋아서 감사하고, 나쁜 일이 다가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이여,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너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이 염려와 피곤함을 하나님께 맡기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주여 주님께서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옵소서.”라고 수시로 늘 기도하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여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합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빴던 일이 오히려 좋은 일로 변화되는 일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시시각각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아뢰고,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살면, 우리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산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으며,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34편 10절)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설교가 비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세 가지 고생을 한다. 일하기 전에 실패할까 걱정하느라 고생이요, 일하면서 수고하느라 고생이요, 일을 끝내고 결과를 걱정하느라 고생이다.”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 늘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장31절~32절)고 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될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지말라.’ 이런 것은 이방인들은 염려해야 된다. 이방인들은 돌보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는 있어야할 줄 알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나는 우스운 얘기지만 올해 들어와서 옷이 전부 나에게 작아요. 옷이 좀 커야 그 옷을 입고 주일 설교할 때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될 것인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말했더니만 일시에 양복이 막 줄지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그 말이 내 입에서 떨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벌써 보시고 날 보고 옷 해주라고 명령한 사람들을 내게 보내서 옷을 해주는 것인데, 제일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애들이 “아버지 다른 옷들이 많은데 그건 어떻게 하렵니까요?”, “야 지금은 뚱뚱해져서 그렇지만, 또 빼빼해질 때가 있을 텐데 그땐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 부모가 되시므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절) 의식주 생활을 다 돌보아 주신다. 우리가 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괜히 사람 꾄다고 그렇게 말한 것 아니냐?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뭐가 필요하여 우리를 꾀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범사에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면서 먼저 해야 될 것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우리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보십시오. 100세에 난 아들을 모리야 산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사실 100세에 난 아들을 하나님이 잡아서 불로 태워 제물로 드리라고 하시는데 순종하기가 힘들지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죽이는 장면까지 들어갔는데 하나님이 그만해라. “내가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는 그게 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 하는가 그것을 보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지. 제가 개척교회 할 때, 우리교회에 나오는 한 식구가 있는데 유하문씨가 그 집주인이고, 그 부인이 이초이씨고, 아들만 아홉이었습니다. 남편은 술주정뱅이, 부인은 굉장히 병들어 아프고 빼빼한 것입니다. 얻어먹고 사는 그러한 사람인데 내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모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는데 예수를 믿고 처음에 기도가 응답되어서 친척으로부터 쌀 한 부대를 받아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늘 하는데 새벽에 나오는 그 시간에 이초이씨가 뭘 하나 이고 왔어요. 그래서 내가 “뭘 가져왔느냐?” 하니까 울면서 그 부대를 비우는데 보니까 흙이 잔뜩 묻은 쌀을 거기에 담고 왔는데 흙인지 쌀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왜 이 흙더미가 된 쌀을 가지고 왔느냐?” 하니까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랬죠.” 어찌나 아까운지 이 쌀을 한 부대를 받았는데 아까워서 이것을 도로 집에 다른 부대에가 부었다가 또 도로 붓고 오면서 쌀이 아까워서 너무 울다가 눈에 눈물이 가려서 앞을 잘 못 봐 논두렁에 넘어져가지고서 쌀을 논두렁에 퍼부어 흩어졌으니까 거기에 흙하고 같이 도로 담아요. 도로 담아서 쌀과 흙이 합쳐서 흙인지 쌀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게 아까운 쌀을 십일조를 바치니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아까운 것을 생각 안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가 듣는데 앞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욕심도 많으십니다. 못 살아 애쓰는 딸내미에게 그냥 줄 것이지, 여기에다가 뭐 십일조를 또 빼앗아갑니까?” 그래서 내가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이 이렇게 하나님 순복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 사랑하는 줄 알고 그 사랑의 부대에 앞으로 넘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제가 개척할 때, 그때 다 미국으로 이민가가지고서 이제 미국에서 잘 산다고요. 그래서 요사이는 쌀과 흙을 섞어서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고, 아주 좋은 쌀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다 보고 계십니다. 마음을 읽어요. 아까우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 그걸 하나님이 드리는 그 정성에 감복하시고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을 또한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도 ‘심고 거두는 법칙’의 하나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과 말을 또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0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입술에서 “나는 못 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괴롭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냥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자기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좋다. 성공한다. 승리한다.”라고 말하면,  그 말에 따라서 우리를 그러한 환경과 운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말하는 것을 듣고 계시고 우리가 말하는 것에 따라서 일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3.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우리가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고, 그 다음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사도행전 10장 38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질병을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병을 앓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병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어서 마귀가 병을 배후에서 들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친다. 귀신들이 왜 주님을 두려워했느냐? 주님의 하시는 일을 훼방하려고 오는데 우리가 대적을 하면 촛불이 바람에 녹아지는 것과 같이 귀신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존재가 녹아져버려요. 그러므로 견디지 못합니다. 사라지고 말지요. 여러분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그냥 달려들고 싸울 수 있느냐 하면, 못 하는 것은 예수 이름과 그 보혈의 능력으로 귀신을 꾸짖으면 귀신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그건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제가 기도하면서 내 눈으로 보았어요. 귀신이 내게 덤벼들어 할퀴고 달려드는 것, 제가 예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니까 내 눈앞에서 녹아지더라고요. 그 전에는 제가 귀신과 싸울 때, 굉장히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또 힘들어서 괴로워했는데 그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귀신은 무섭지가 않아요. 귀신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려고 달려들면 예수 이름과 보혈 능력으로 호통을 치고, 물리치면 등불이 바람 앞에 꺼지는 것처럼 그 존재가 녹아지기 때문에 견디지 못해서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일의 영혼의 괴로움에는 육체의 괴로운 생활에, 괴로움에 귀신이 배후에서 나쁘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라고 늘 부탁한 것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병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기 때문에 마귀를 쫓아내야 됩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으니까 배후에 힘을 주던 귀신이 우리가 쫓아내니까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이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피하는 것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우리나라 남성의 기대수명은 58.7세로 60세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대수명이 81.3세로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건강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하게 살아야 복이 되지, 병들어서 살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요즘 질병 없이 사는 “건강수명”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10년 정도로 평균 10년은 질병과 함께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통계청에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많은 부분을 병을 고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병을 고치는 사역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두 제자를 부르실 때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마가복음 3장14~15절)고 부탁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을 부득불 계속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 아닙니까? 여러분 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도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누가복음 10장 8절~9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과 병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교회가 너무 점잖아서 귀신과 같이 예배를 보고, 쫓아내지 않고 조용하게 좀 있어줘요. 부탁을 하고, 그런 거짓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병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놓고 있고, 귀신도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러니까 귀신이 귀신인지 교회가 교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공생애의 2/3는 병 고치는데 보냈습니다. 부끄럽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2/3는 병을 고치는데 세월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한 일이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신이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들을 용납을 하면 안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그리고 기도와 치료와 함께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에는 영양이 충분하고 환경이 좋고 또 치료의 약도 많고 해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100살을 살게 되겠네요. 100살을 사는 노인이 되도 육신의 질병이 마음, 육신을 괴롭히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일어서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누워도 아프고, 자도 아프고, 깨도 아프고,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다른 병도 아닌 암이 걸려있으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도 나이를 먹을수록 예수이름으로 무장하고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과 말씀을 가지고서 귀신을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병 없는 나이 많이 먹은 세대에도 행복을 누리고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가복음 16장 17절~18절)고 담대한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려면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방언기도도 해야 되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음식에 독이 있어도 무사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라고 하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약한 생각, 약한 꿈, 부정적인 고백을 하게 되면 그것이 마귀에게 틈을 내주는 것입니다. 

결론
 전인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항상 최고의 건강을 꿈꾸고 생각하고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 신체에 영향을 미쳐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아플까’의 저자 대리니언 박사는 데이비드 코필드 박사와 함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증명했습니다. 심리적 충격이 실제 물리적인 충격을 가한 것과 같은 정도로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정적인 말의 파괴력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야고보서 3장 8절에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 죽이는 독에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나가는 말이 어떤 말인지 깊이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은 분노인데, 분노는 만병의 근원이 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심장병에 잘 걸리고 사망률도 높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딜리스트롬 박사가 ‘분노수치와 사망률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분노수치를 높은 그들은, 낮은 그룹에 비해 사망률이 7배나 심장질환 환자는 5배나 많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분노 안 하는 사람보다 7배나 빨리 죽는다는 것입니다. 분노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성경에도 이미 나온 말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장 22절)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전인구원을 이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십자가 은혜를 늘 기억하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고백을 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믿음에 굳게 서서/이영훈목사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전서 16장 13~14절)


 

신앙생활은 마치 영적 전쟁과도 같습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시시때때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우리를 공격해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염려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걱정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그래서 큰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이것이 다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공격해오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1.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늘 우리에게 함께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3절에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이 고린도 지역은 우상 숭배가 만연해 있었고 또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도적적인 타락이 교회까지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편지를 두 번 보냈는데 첫 번째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그 결론 부분에 가서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깨어 있느냐? 언제 마귀가 우리를 공격해올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날 때 어느 날 몇 월 며칠 몇 시에 공격한다고 예고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오는 것처럼 마귀는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우리가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무방비 상태가 될 때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대개 여러분의 영혼을 어두움에 빠트리는 것은 영적인 태만이다. 당신은 그런 상태에서도 평안히 살고 있다. 당신의 전선에는 전혀 싸움이 없으며, 당신은 겉으로만 의무를 지키는 평탄한 길에 주저앉아 머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의 영혼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가? 주님 앞에 생기를 되찾아라! 일어나 먼지를 털어버리라! 강력한 축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씨름을 해보라! 기도로써 당신의 영혼을 쏟아놓으라! 잠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계속 깨어 있으라!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 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여러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지,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영적으로 잠이 들면 그 삶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동경에서 사역을 할 때, 설교 시간만 되면 주무시는 일본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전자 제품을 파는 가게를 하시다가 사업이 안 돼서, 망해서 문을 닫게 되니까 가족들을 보기 부끄럽다고 집에서 나와서 공원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잘하는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찬송도 열심히 따라 하고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도 열심히 듣고, 그런데 제가 설교할 때가 되면 설교 시작하는 순간부터 눈을 감고 스르르 감깁니다. 한 번도 예외가 없이 설교를 시작만 하면 고개가 내려갑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면 또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이 또렷또렷해지구요. 그리고 주기도문 찬송 다 부르고 축도까지 잘 받고 돌아가거든요. 그런데 예배는 또 안 빠집니다. 수요일 날, 주일 날, 금요 철야, 열심히 나와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열심히 주무시다 돌아가요. 참 희한해요. 하여간 설교만 시작하면, 설교만 시작하면 눈이 감기고 꿈뻑 조는데, 습관이에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부흥강사 목사님이 오셔서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나서 언젠가 그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에 졸지 마세요. 예배 시간에 졸면 마귀가 와서 안수를 한답니다.” 근데 이분이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더니 안수 하지 말라고 마구 손을 저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다시는 졸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날 그 말을 듣더니 번쩍 정신이 들어가지고, 설교 시간에 얼마나 열심히 말씀을 듣는지 은혜 받고 믿음이 많이 자랐어요.
 여러분, 설교는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주의 종이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열고 “아멘!”으로 받을 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밤새우며 일을 하다가 와가지고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이 주님 품에서 주무시는 것이야 어쩔 수가 없겠지만, 습관적으로 설교만 시작만 하면 조는 분들은 깨워야 합니다. 습관은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은 계속해서 우리가 잘 훈련해서 좋은 습관으로 만들고, 기도하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예배에 늦지 않고 일찍 나오는 습관, 전도하는 습관 등 이런 좋은 습관은 계속해서 훈련시켜서 더욱 우리 삶 속에 뿌리를 내리게 하고, 예배 시간에 설교만 시작하면 눈을 감는 습관, 또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두리번거리는 습관, 이런 것은 고쳐야 됩니다. 여러분, 깨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영적으로 강건하라

 깨어 있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둘째로는 영적으로 강건해야 됩니다. 전쟁에 이기려면 강한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군사는 전쟁에 나가면 백번 집니다. 강한 군사가 적은 숫자래도 많은 숫자의 준비되지 않은 적군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강한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6장 1절, 2절은 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날 것을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은혜 받고 기쁠 때는 천국 소망이 분명하고, “내가 죽어도 반드시 천국 갈 뿐 아니라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믿습니다! 부활의 사건을 믿습니다!” 그런데 시험에 들고 영적으로 약해져서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면 “예수님이 날 위해서 죽으셨는지, 다시 살아나셨는지, 그게 마음에 와 닿지도 않고... 내가 죽으면 천국 갈 건지, 지옥 갈 건지, 죽어봐야 알지 어떻게 알아?” 이렇게 초보적인 신앙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지 말고 믿음으로 일어나서 전진하라. 할렐루야!

 베드로전서 5장 9절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때때로 이런 어둠의 세력들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우리를 흔들고 우리를 상처 입히려고 하고 우리 삶 가운데 어려움을 끼치고자 하는 이러한 세력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듣고 동요가 되면 안 됩니다. “물러가라!”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에 늘 기쁘고 평안하고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믿음으로 굳게 서서 강건한 주님의 일꾼이 되어서 전진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주시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은혜를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단단히 우리가 무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로 17절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영적으로 무장해서 악한 원수 마귀와 싸워 백전백승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 그레이스처치의 설립자인 브라이언 보그만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죄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삶의 축복을 앗아간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이용해 우리를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따라서 위험한 때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믿음으로 깨어 싸우면서, 기도로 주님을 굳게 붙잡고, 그분의 능력을 구하고 영적 갑주를 단단히 갖춰 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어깨와 어깨, 방패와 방패를 서로 맞대어 방어력을 증대시켰던 로마 군인들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하나가 되어 굳세게 버텨야 한다!”
 영적으로 강한 군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영적으로 늘 깨어 있게 하시고 강건하여져서 어떠한 도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환난과 시험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시험에 들지 아니하고 넉넉히 싸워 이기며 승리하는 주님의 일군들이 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강한 영적인 용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흑암의 권세와 싸워 이기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장차 주님 앞에 설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3. 사랑으로 행하라

 나아가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이 마음고생하고 상처받고 시험에 드는 것이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그것이 때때로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상담학을 전공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이 자기가 어릴 때 아버지가 “너같이 쓸모없는 녀석, 왜 태어나서 날 괴롭게 하느냐.”고 하는 그 말 듣고 정말 오랫동안 그 상처를 지우려고 몸부림쳤다고 합니다. 그때 아버지가 화나서 자식에게 소리쳤는데 그것이 자녀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와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나서 달라져야 할 것 중에 근본적인 모습은 사랑으로 말하고 사랑으로 행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남을 상처 입히고 정죄하고 비난하고 헐뜯고 끌어내리고 고통을 주는 말은 절대하지 말고, 남을 살리고 칭찬하고 용기를 주고 위로하는 그런 사랑의 말을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 14절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말을 하고,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행동하고,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많은 성도님을 섬기고 있으면서 늘 제가 사랑의 빚이 있어서 우리 교회에 가장 어렵게 사시는 분이 누구신가 한 번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가서 뵈니까, 무허가 판잣집에 한 평, 두 평 정도 되는데서 집사님 홀로 사시는데 참 제가 죄송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폐지를 모아서 그걸 가지고 생활하시는데, 하루에 폐지 모으는 것이 오천 원도 안 되고 한 달에 21일을 나가서 폐지를 모아봐야 십만 원도 안 되는 수입을 갖고 사시는 거예요. 너무너무 가 뵈니까 죄송해서 추석 때 선물도 드리고 기도도 해드리고 했더니, 오히려 그 집사님은 제가 심방 왔다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고 눈물 글썽이면서 감사하는데, 참 제가 목사로서 죄송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조금만 관심을 밖으로 돌려보면 이렇게 어렵게 사는 우리 이웃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편하게 모든 것 다 갖춘 곳에서 모든 것 다 가지고 살아가는 분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독거노인들, 소년소녀가정, 또 평생 난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그러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회학교에 또 그런 아이들이 있어서 가보니까 평생 병을 안고 살아야 돼요. 그러니까 의학적으로 완치가 되지 못하니, 루프스 병이라고 면역 결핍증 그런 병인데, 언제 아플 줄 몰라요. 아프면 그냥 누워있어야 돼요. 온몸이 붓고. 여러분, 우리가 말로만 “사랑” “사랑” “사랑” 하지 말고 이번 추석 연휴를 지내면서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려서 여러분 주변에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위선자입니다. 예수님은 분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장 8절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여러분 결심해야 됩니다. 오늘 이후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잘 참고 견디며 살겠습니다. 우리가 못 참으니까 문제고,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니까 문제고, 용서하지 않고 분노를 품고 있으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로 2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주여, 이제는 더 이상 우리 믿는 주님의 식구들끼리 미워하고 다투고 분내고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지 않게 하여주시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하나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에베소서 4장 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목사님인데 의사로서 평생 의료 선교를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이일선 목사님.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신 이 목사님은 슈바이처의 생애와 사상에 큰 감동을 받고 ‘나도 슈바이처처럼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1945년에 신일교회를 개척한 후에 전국을 다니면서 한센병 환자를 섬기다가, ‘이제 내가 저들을 말로만 가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의술로 저들을 치료하면서 도와야겠다.’ 해서 1952년,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여 피부과를 전공합니다. 그리고 1957년, 울릉도에 있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 가는 중 태풍으로 삼일 동안 풍랑으로 표류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죄인 혹여 살려주시면 울릉도 환자와 구령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하소서!”

 다행이 역풍이 불어와서 울릉도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가 울릉도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데 울릉도에 결핵 환자만 무려 팔백 명, 한센병 환자만 60여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슈바이처 박사와 편지를 주고받은 다음에 그곳에 가서 58년, 59년 직접 슈바이처 박사에게 한센병 교육을 받고 돌아와서, 천 명이나 되는 교인들 앞에서 선포합니다. “때가 되어 명령하시니 여러분과 헤어져야겠습니다.”성도들이 울면서 목사님을 울릉도 선교사로 보내드렸습니다.
 울릉도는 너무너무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나무배를 타고 수 시간을 가도 잘 가기 힘들고, 외딴 섬이었고, 60여 명의 한센 환자, 인구 3분의 1이 결핵 환자래요. 그곳에 가서 병원을 개원하는데 오히려 그를 비판하는 그런 악 소문들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되려고 선심 쓴다.’ ‘울릉도 돈을 다 쓸어갈 것이다.’
 무료로 진료를 하고 있는데도 기존 한의원과 무당들이 막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꿋꿋이 그들이 공격을 해도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공중 보건과 식생활 개선 사업을 하고, 저들의 병들을 치료해주고 그래서 팔백 명이던 결핵 환자가 삼백 명으로 줄고, 육십 명이던 한센병 환자가 네 명으로 줄고, 무려 그의 의료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칠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섬기다가 자신은 병을 얻어서 부부가 각각 척추 디스크와 골반 골절로 대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 수술 때문에 다시 미국에 갔다가 교통사고와 성대 종양 등으로 고생하시다가 조용히 천국에 가셨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그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울릉도에서 한평생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순교적인 삶을 사시다가 병으로 고생하며 세상을 마친 목사님.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센병 환자를 위해 일해야 된다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가족과 의논해 봤으나 가족들이 거부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같은 음성이 계속됐고 주의 음성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하겠나이다. 어떠한 희생도 좋습니다.’고 고백하고 결단을 내리니 마음의 기쁨이 오고 십자가의 의미에 눈을 뜨는 것 같았습니다!”
 임종 전에 남기신 말씀입니다. “등에는 십자가가 있다. 그러나 입에는 노래가 있다.”마지막 찬송을 부르시면서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여러분, 짧게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이제는 나 혼자를 위해 사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주위에 병들고 상처입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기주의적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내 자신에 어떠한 피해나 손해가 있으면 더 분노했고 남을 돌보지 않았던 저희들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고, 오늘 이후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우리 주위의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지키라/이영훈목사

“우리 하나님 야훼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명기 4장 7~9절)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근본적인 신분의 변화가 다가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의 노예였고 마귀의 노예로서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마는 예수를 믿는 그 순간,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와 주님의 평안이 넘쳐나는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상처투성이로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과 죄 가운데 살아가던 옛 사람의 모습은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분명하게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하루하루 믿음의 전진을 해나갈 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개인, 가정, 생활, 범사 위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로 늘 하나님과 대화하며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1.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신명기 4장 7절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 야훼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은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이 초청해서 청와대 가서 대통령을 만난다고 그러면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같이 사진을 찍어서 아마 크게 액자에, 집에 걸어놓고 사람들에게 자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여 지명하여 부르셔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매일같이 우리와 대화하시며,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소원을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로부터 놀라운 응답과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9절과 10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여주시옵소서. 기도할 때 주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은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부모가 자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아원을 경영하면서 평생 5만 번 이상 기도를 응답받은 조지 뮬러 목사님이 계십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다섯 개의 고아원을 경영하면서 만 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고아원을 운영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모금하러 다닌 적도 없고, 또 여기저기 편지와 사진을 보내서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엎드려 기도만 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모든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주셔서 그가 일생동안 고아원을 돌보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모든 고아들을 잘 돌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이 천국을 가신 후에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장이 나오는데, 일기장을 펴보니깐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다’, ‘응답하셨다’, ‘응답하셨다’, 얼마나 응답받은 기도가 많은지, 다 쉬어보니깐 5만 번이 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도의 일화가 있습니다.

 1844년 11월, 나는 다섯 사람의 회심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아플 때든 건강할 때든,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 18개월이 지나자, 처음으로 한 사람이 회심했다. 하나님께 감사한 후, 남은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했다. 5년 후 두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6년이 지나자 세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 후, 나머지 두 사람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기도 후 한 시간이나 당일 내로 수만 번이나 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그런 내가 두 사람의 회심을 위해 36년 가까이 날마다 기도했건만 그들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바라고 계속 기도하며 여전히 응답을 기다린다. 그들은 아직 회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회심할 것이다.

 간절히 다섯 명의 친구를 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했는데, 세 사람은 그가 구원받는 것을 보았는데, 두 사람이 아직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네 번째 사람은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마지막 다섯 번째 사람은 장례식장에 와서 “목사님이 당신을 위해서 50년 넘게 기도했습니다.” 그 말 듣고 거기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간절히 기도드리면 반드시 그 기도는 응답되는 것입니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부르짖으면 기적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기도란 응답 받을 때까지 하는 것이 기도이다.”

 여러분, 절대 기도하다가 멈추지 말고 응답이 다가올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친척 가운데 먼 친척이라도 아직 예수 안 믿는 분이 있다면, 그분이 돌아올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반드시 그가 돌아와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복 받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일천 만 기도하는 주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복 주시고, 복 주셔서 오늘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북한이 쏘아올리고 뭐 터뜨려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 모든 문제를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 56장 7절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교회는 기도의 집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예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교회가 부흥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셔서 자녀들이 잘되게 만들어주시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셔서 예수 믿는 사람들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성전을 지은 다음 솔로몬이 기도했습니다.

 역대하 6장 19절입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 야훼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는 권면대로 늘 기도의 창문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적이 임합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기도하는 나라가 부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난이 다가올 때, 어려움이 다가올 때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갔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4절, 25절은 설명합니다.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옥들을 흔드시고, 손과 발에 매인 것을 풀어주시고, 닫힌 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늘 엎드려 기도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으니, 얼마나 이것이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는 굉장히 당황하게 될 겁니다.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고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 말씀 속에 다 담아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신명기 4장 8절은 설명합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세상 법은 죄지은 사람을 붙잡아 벌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지만,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고 복 주시기 위해서 주신 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절 1절로 3절에 ‘복 있는 사람은’ 하고 말씀하면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할렐루야!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따라하시겠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할렐루야!

 신명기 28장 1절 이하에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내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에게 이렇게 복을 주시는 것 입니다.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고,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게 하시고, 적군이 한 길로 쳐들어 왔으나 일곱 길로 도망가게 만드는 그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 그 복이 자손 대대로 임합니다.

 신명기 5장 10절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내가 예수님을 처음 믿었으면 당대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어요, 그러나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기도와 말씀 생활에 힘쓰면, 그 복이 그냥 자손 대대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이 세상이 주는 복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되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됩니다. 신명기 6장 6절로 7절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말씀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말씀과 동행하며 살아갈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랄프 카이퍼 목사님이 그의 책 <성경대로 생각하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향한 계획을 기록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일은 사람의 의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그 말씀을 실천하자.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순종하는지에 따라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축복의 수준이 다르다. 입으로만 말하는 이론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날마다 순종함으로 알게 된 하늘의 아버지를 만나길 고대한다!

 늘 말씀과 동행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복된 인생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평생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믿음의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

 믿음의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삶에 유일한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여!”하고 돈을 따라가지만, 그것이 문제와 어려움에 빠지는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주시는데,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을 따라가고 권력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갔다가는 그 길이 망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 9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라.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다음, 받은 그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자녀들에게 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새사람이 되어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는지, 우리가 죄와 가난과 저주와 절망 속에서 살다가 예수 믿고 나서 생활이 변화됐습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넘쳐납니다. 육신의 건강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가정의 범사의 복을 주셨습니다. 생활의 범사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한평생,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마음의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예배드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열심이 식어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그러다 보니까 입에서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남 탓을 하고, 이런 저런 문제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되는데, 그 은혜가 사라지면 사람이 보이고 문제가 보입니다. “이 사람 이 문제가 있네.” “이 사람 이 문제가 있네.” “교회에 이 문제가 있네.” “이 문제가 있네.” 그래서 은혜를 잃어버리고 교회 내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 이러한 모습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지켜라!’ 말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마음에 기쁨이 없고, 늘 짜증이 일어나고, 원망과 불평이 넘쳐나고, 아무것도 아닌데 분노가 넘쳐난다면, 바로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돌아오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놀라운 은혜 가운데 애굽에서 구원받아 가나안땅에 이르러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그 은혜를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사짓고 나서 수확을 얻게 되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수확을 얻은 것인데도 자기들이 거둔 수확인 줄 알고 자기들의 만족을 위해서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를 풍요롭게 하는 바알신이여, 복 주시옵소서. 아세라 신이여, 복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나라가 반이 나뉘고 그 나라가 북왕국이 앗수르에 의해서 주전 722년에, 남왕국 유다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역사 가운데 자취를 감추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 이 같은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지켜서 여러분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은혜가 사라지셨으면 회개하고 돌아와야 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옵소서!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열심히 사라졌습니다. 찬양이 사라졌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6장 4절과 5절에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유일한 야훼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것이 우리 일생을 주님의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주님 뜻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활짝 여시사 쌓을 것이 없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복 받고 잘사는지요. 요번에 러시아 가보니까요, 한 달 평균 수입이 400불이에요. 별로 안 놀라시네? 우리 한국은 한 달 평균 수입이 2400불인데, 400불이라구요. 그나마 공산화에서 벗어난 때에, 1991년도에 한 달에 20불이었는데 지금 400불이나 돼서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 년에, 6.25 직후 잿더미 되었을 때 1년 수입이 67달러였어요. 1년. 1년. 처음 듣는 이야기 같이 이렇게 쳐다보시는데, 67달러였는데 지금 우리 한국은 28000불입니다. 우리가, 한국이 그만큼 복 받았어요. 할렐루야!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이렇게 부유한 나라가 됐어요.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복 받았을 때에 다시 첫사랑을 회복해야 됩니다. 스스로 삼가며 돌이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복이 임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그 일생이 변화된 한 분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일산 광림교회 박강월 권사님. 두 살 때 사고로 소아마비 진단을 받고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결혼 할 때가 되어 남편을 만나 결혼하려고 하는데, 2년 연하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시아버님이 얼마나 반대를 하시는지 시부모님의 그 반대로 말미암아 눈물의 결혼식을 합니다.

 자녀들이 죽고 못 산다고 하면 그냥 결혼시키지, 그냥 반대를 합니까? 결국 둘이 사는 건데...
 그래서 부모와 인연을 끊고 살았어요. 남편이 그러다보니까 매일 밤 술 먹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본인 신앙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서 본인 신앙도 무너지고, 남편을 원망하며 신앙생활도 포기하고 나니까, 정신쇠약, 불면증, 대인공포증까지 생기고 그 어린 딸이 같이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어린 딸이 4살까지 말을 못했대요.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늘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데, 찬송 소리와 함께 그것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솟구쳤다. 묵은 피를 다 빼고 새 피로 수혈을 한 듯 혈관 하나하나, 뼈 마디마디, 세포 조직까지도 새롭게 갈아 끼운 듯 신선했다! 구름 위를 걷는 듯 몸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주님은 힘든 나를 안고 ‘내 딸아, 그래그래, 괜찮아’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그래서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바로 집 근처 교회를 찾아서 찬양대로 봉사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대인공포증, 불면증이 사라지고, 말 못하던 딸도 말하게 되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기도했는데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내 딸아 용서하여라. 내가 너를 위해 내 살과 피를 주고 용서함같이 너도 그를 사랑하여라.” 남편을 용서하고, 위해서 기도하자 남편이 변화를 받고 같이 교회를 따라 나오는데, 새벽 기도도 나오죠, 주일 예배, 저녁 예배, 수요일 예배, 철야 기도까지 나오더니, 이제는 교회 장로님이 되셨어요. 할렐루야! 그렇게 결혼을 반대하던 시아버지가 폐암에 걸렸는데, ‘그렇게 우릴 못 살게 하더니 벌 받았구만!’ 그러지 않고 자기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는 시아버지를 한 달 내내 병실에 가서 하루 열두 시간씩 금식하며 기도해서 아버님을 기도해드렸는데 시아버님 병이 나았어요. 할렐루야! 예수 믿으시고 부자간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아버지 사업을 둘째한테 물려주셨어요. 다리를 평생 절고 있어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말씀을 받았습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3) 그리고 나서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았더니 40년 동안 소아마비인 줄 알았는데 두 살 때 사고로 인해서 이 대퇴부 뼈가 튕겨 나와 엉치뼈에  잘못 붙는 바람에 짧아져서 다리를 절게 된 것이고 대수술을 받고 다시 원상으로 뼈를 붙여놨더니 정상인이 돼서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너무 감사해서 문서 선교를 하기 위해서 주부 편지를 발간하고, 호산나 드라마 선교단을 만들어서 문화선교를 하고, 2015년에는 파주 기독교 문화 공간, 문리버파크를 만들어서 여기서 문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 뇌종양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대요. 그럼에도 기도로 승리해서 치료함을 받고 더 믿음이 성숙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혼수상태에서 세 개의 십자가를 봤습니다. 저의 나머지 삶은 주님뿐입니다. 세상 끝 날이 와도 절대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증거 할 뿐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와 같은 큰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하나님 제일주의의 믿음을 가진 주님의 큰 일꾼들이 되어서 한평생 복 받는 인생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우리의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여주시고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십자가,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조용기목사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장 1∼3절)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인권운동을 하다가 27년 간 정치범으로 수감생활을 하고 풀려나서 곧장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클린턴이 묻기를 “당신을 괴롭혔던 교도관들을 취임식에 초대한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만델라가 대답하기를 “미워했지요. 아주 오랫동안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27년이나 가두었는데 지금도 그들을 증오하고 미워한다면 나는 계속 갇혀 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몸은 놓여나도 마음으로 미워하면 그대로 감옥 속에 갇힌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미움과 원한을 털어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변화되었기 때문에 비판과 정죄를 버리고 사랑과 용서로 화평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 변화의 원동력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이나 지식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교육수준이 옛날보다 훨씬 높아졌지만 범죄율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고 오히려 더 악한 양상을 띱니다. 교육이 사람의 겉을 변화시킬 수 있어도 속사람 즉 근본적인 사람의 변화를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또 법이나 공권력으로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것을 잠시 제한할 수도 있고 억제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 근본적인 변화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어 새롭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통업체 월마트의 창업자인 샘 월턴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변화의 최전선에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꿈을 꾸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빌 게이츠도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유별나게 머리가 똑똑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지혜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변화하고서 있는 마음을 생각으로 옮기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변화를 향한 꿈과 소원이 있어야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꿈꾸고 변화될 소원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이 변화시키는 기적의 역사를 허락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2.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라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사실이라고 믿으면서도 삶에서 그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오늘 이 시간에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삶에 적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삭개오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삭개오는 남을 착취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삭개오는 ‘마음은 정결한, 무죄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름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세리였는데 당시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요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정부로부터 받은 조세 징수권으로 동족에게 혈세를 가지고 징수를 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정정당한 세금만 거둘 뿐 아니라 세금을 많이 거둬서 그 일부는 자기가 착복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있던 삭개오를 보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거하여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어둠 속에 살던 그에게 생명의 빛과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삭개오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나쁜 놈이라고 여기고 교제를 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에 삭개오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고 말씀하실 때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누가복음 19장 7절에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리와 같은 죄인과는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삭개오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누가복음 19장8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처럼 생각이 달라지고 삶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의 한강변에 난지도가 있는 것을 여러분 잘 아시지요? 난지도는 난소와 지초의 섬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꽃이 많아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매립되면서 거대한 쓰레기 섬이 되고만 것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복구 작업이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멋진 공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아름답게 보기에 심히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한없이 부패하고 더러운 인간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죄악을 청산하고 씻어주셨습니다. 

 3.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삶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마귀의 포로가 되어서 삽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가셨을 때 무덤가에서 사는 광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군대 귀신이 들려 무덤가에 살면서 옷도 입지 아니하고 밤낮 소리를 치고, 돌로써 자기를 쳐서 상처를 입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광인을 만난 후에 그 광인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군대 마귀가 뛰쳐나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35절에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협하고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는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근본적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이 마귀의 종이 되어 무덤가에서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이처럼 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종교를 갖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8장 39절에 보면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마귀의 포로에서 자유함을 얻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무덤가의 광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밤낮 고함을 치고,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이웃을 위협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은 살았다고 하나 죽은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그 삶이 놀랍게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국민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매우 높습니다. 최근 아시아 태평양지역과 유럽의 주요 1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웰빙지수가 13개국 중 최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치적 불안정, 장기적인 경기침체, 날이 갈수록 점점 심화되는 취업난, 치솟는 물가의 전쟁에 대한 불안 등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압박을 받게 만들고, 괴로움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 사람 10명 중 9명이 스트레스에 걸려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가 마음속에 들어와 평화를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동경기를 할 때, 운동을 배워본 사람은 늘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야구를 하든지 테니스를 하든지 모든 구기 종목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에서 눈을 떼지 말라! 공에서 눈을 떼지 말고 운동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선수는 결승점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달려갈 때,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를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생각을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것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유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중복음, 삼중축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항상 십자가를 통해서 죄를 용서하고 의로움을 주는 주님, 보혈로 더러움을 씻어주고 거룩함을 주시는 주님,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 고침을 주시는 주님,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는 주님,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바라보고, 생각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그렇게 해야 예수님의 공로가 우리에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독수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는가?’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다. 아무리 좋은 강의를 듣는다 해도 실제 절벽에서 뛰어 내려서 실천해 보지 않으면 날개를 가지고 있어도 평생 날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적을 체험한다고 말을 하면서 실제로 체험하지 아니하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을 삶에 적용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신 오중복음을 알게 되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삶을 살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은혜를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꿈을 꾸고, 믿음의 기도를 하고, 믿음의 신앙고백을 하면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을 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독이 해소되고, 살아났던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기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죄악의 독이 올라서 지옥에 죽음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못 박혀 매달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매달려 피를 흘리고 우리를 영접해주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밑에 엎드려서 주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내 죄를 다 씻고 나를 의롭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바라보고 “나는 믿습니다. 주님 저는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말씀을 따라 여러분 속에 변화를 일으켜주는 것입니다. 주님 보혈로 추한 내 인생이 씻음을 받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믿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합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께서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내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 주님께서 연약과 병을 짊어지고 가신 것을 나는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여, 주님께서 나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저주를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었으니 이를 바라보고, 믿고, 감사하고, 긍정적인 시인을 합니다.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함께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부활한 은혜를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나도 죽고 부활하는 은혜를 주심으로 주님 감사합니다. 죽음을 겁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합니다.” 하나님이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화되어야 되고,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꾸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변화 받아 하나님에게 복을 받은 것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모든 것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이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헛수고인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이 역사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기가 십자가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을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반드시 우리의 생활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종교인이 되지 말고, 변화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삭개오가 변화된 것을 본 것처럼, 또 광인이 해방되어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본 것처럼, 우리를 보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저 사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와서 저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오늘 교회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 이 곳에 오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받아 주심으로 교회에 왔지 우리 힘으로 온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아들, 딸로써 품에 품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씻어주시고, 심신을 고쳐 주시고, 영생을 얻게 해주셔서 장차 영원히 하나님이 여러분을 데리고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사는 생활은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와서 먹다 죽다 없어진 인생을 사는 것은 압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새로운 삶의 세계를 열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예수그리스도가 살아 계실 동안에 행하신 모든 것을 바라보고,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을 짊어지고, 대신 살고,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영생 내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여러분 소원에게 들어와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꿈을 꾸십시오. “나는 못났다. 나는 못한다. 할 수 없다.” 그것은 참말이지만, “나는 예수 안에서 잘났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그 주님의 은혜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님의 세계를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이 예수 승천 내 승천이 되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속에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하시고 하나님 자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아뢰라/조용기목사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장 6~7절)

 염려가 가득한 마음, 가시떨기, 엉겅퀴가 뒤덮은 세상살이 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마귀가 가져 질병을 뒤덮을 환경을 수 있는 만들어 주는 있습니다.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우리는 푹 자고 나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다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펜스테이트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에 쌓인 채 잠이 들면, 더 높은 스트레스 상태에서 잠이 깬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다음 날 스트레스가 더 증가하고, 그래서 또 다시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될 문제인 것입니다. 염려가 가득한 마음은 예수님께서 가시떨기에 휩싸인 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염려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염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18절로 19절에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염려가 가득한 마음을 가시떨기에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씨앗이 가시떨기에 떨어지면 열매를 못 맺는 것같이, 우리 마음에 염려가 가득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던 조지 뮬러는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염려는 믿음과 반대되는 것으로 염려를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가 들어올 때마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항상 기도를 어떻게 하냐? 염려와 근심이 항상 다가오는 것이니까 염려와 근심이 다가오면 자다가 일어나다 먹다가 일하다가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받아서 농구선수가 볼 던지듯이 “하나님 여기 던집니다. 받아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며 시시각각으로 그렇게 마음에 오는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가시밭, 엉겅퀴 같은 고통을 극복하고 반대로 마음의 평안과 기쁨과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9절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넉넉히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대부분 내일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느라고 오늘 하루를 불행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장3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달에는 추석 연휴가 있는데, 연휴가 길어서 지금부터 여행 떠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휴 때, 터미널이나 공항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남녀 간에 어깨에 걸머지고, 또 잔잔한 짐은 손으로 끌고, 사람은 안보이고 짐만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등에는 큰 배낭을 지고, 손에는 가방을 들고, 짐이 어찌나 많은지 사람은 짐 속에 묻혀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그와 같습니다. 죄악의 큰 배낭을 어깨에 걸머지고 염려, 근심, 불안, 낙심하는 가방을 손에 들고, 온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인생이라는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여행’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짐을 이기기 위한 하루도 빠짐없는 시편 23편을 묵상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편 1절~6절)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거기에서 우리가 세상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염려, 근심, 불안, 낙심 이런 것이 합쳐서 스트레스가 되는데 스트레스는 마음에 받지만 온 마음과 육체의 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낙심과 같은 마음의 압박은 우리의 건강을 헤치는 스트레스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인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심신의 건강의 60%가 스트레스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의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심령의 근심은 바로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스트레스는 뼈가 마르게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평안하지 못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어느 날 어느 날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는데, 마르다는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40절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하느라고 너무 마음이 분주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넘치는 은혜를 받고 있는데, 마르다는 대접하는 일에 바빠서 음식 한다고 부엌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마음이 분주해서 주님이 무슨 말 하는지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자기만 일하도록 내버려둔다고 화가 나가지고서 ‘우리 동생도 좀 시켜주십시오. 나만 부려먹지 말고.’라며 투정을 합니다. 사실 동생이 부려먹은 적도 없지요. 자기가 스스로 대접을 넘치게 잘하려고 하다가 마음에 시험이 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에 걸리면 예수님이 방 안에 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르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성격을 고쳐야 됩니다. 하루 종일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소처럼 먹고 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함께 멍에를 나누자고 우리를 초청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멍에를 지고 힘겹게 밭을 갈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염려와 걱정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해도 안 옵니다.  주님은 짐을 맡아주시겠다고 하여도 맡기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맡길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기도로써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주님이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같은 교회는 예수님이 충만히 이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맡겨야 돼요. 기도해서 맡기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보혈로 씻고, 기도해서 짐을 맡기면 예수님이 우리 짐을 맡아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 위해서 엄청나게 예비해 놓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탄식을 합니다. 

 2.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짐은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보통 생활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랑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새끼소는 어미 소 멍에 안에 같이 들어가서 짐을 지고 나르거나 밭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멍에는 예수님의 목에 걸려있고, 그 밑에 우리를 들어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보면, “야, 예수님과 함께 공동으로 짐을 지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가보면 예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있지 자기 목에는 걸려있지도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면 여러분의 짐을 주님이 맡아주시는데 주님의 멍에 밑에 있는 여러분은 짐이 허리에 닿지도 않습니다. 그냥 구경하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엎드려 기도할 때, 마음에 불안, 초조, 절망이 사라지고 넘치는 평안이 다가오면 통과됐습니다.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세상 생각이 머리에 왔다 갔다 하고 불안하면 안됩니다. 기도는 집중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기도할 때는 전화기를 끄고 집중적으로 그 기도 중심으로 하면 마음에 걱정이 빠져나가고 평안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평안이 다가오면 자기가 압니다. 통과되었다. 하나님께서 맡아주셨다. 기도해서 응답받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휴식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따뜻하고 유순하고 겸손하니 높은 사람만 주님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고통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도 예수님은 품안에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와 함께 멍에를 나누고 짐을 함께 짊어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으면 하나님이 도우러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하십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했으며,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맡긴다는데 어떻게 해서 맡기느냐? 기도로써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되려면, 문제를 하나님께서 맡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잠 16장9절)이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계획해도 계획한대로 안되거든요. 하나님이 계획해서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많은 위기가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걱정을 합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여러분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귀한 존재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두 세 사람 이상 힘을 합쳐 기도하면 듣겠다고 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 하나님은 그 기도의 힘을 이용해서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나올 때, 군대도 없고, 창검도 없고, 무장도 안 되었는데 장정들만 한 70만, 요사이 계산법으로 하면 한 300만 명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도로 포로로 잡힐 위기에 있을 때 모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라. 오늘 너희가 본 이 애굽 군대는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300만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내어 보낸 것입니다.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은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은 맡아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맡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말로 말하면 기도할 때 핸드폰 스위치는 꺼놓고 구할 것은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마음에 흐트러지지 말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냥 기도만 하면 안 됩니다. 기도와 간구를, 간구라는 것은 집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일단 기도하러 들어가면 다른 데는 다 대화를 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둘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는 “기도를 포기하는 자는 전쟁에서 승리를 포기하는 군인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3.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6절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랑은 찰싹 달라붙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에게 찰싹 달라붙으니 내가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저는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은 적어서 내 책상 앞에 두고 들어오며 나가며 이것을 읽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큰 위로와 능력이 되는데 여러분들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의 말씀을 적어서 붙여놓고 들어오며 나오며 바라보십시오.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니까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가서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누가 참신인가? 경쟁을 한 엘리야가 야훼의 불이 내려와서 자기가 내놓은 제물을 태운 뒤에, 거짓 선지자들을 다 잡아서 기손 시내에서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큰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자 그는 광야로 들어가서 나무 밑에 누워서 “하나님이여, 나를 죽여주십시오. 이제 볼 일 다 보았습니다.”라며 낙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이란 스트레스를 받으면 좌절하고 맙니다. 이처럼 염려와 근심은 마음을 황무지가 되게 하고 신앙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을 물리쳐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면 하나님께서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제3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사람 아무것도 아닌데 꾀병한다고. 염려와 근심 속에 있어 다른 사람의 위로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염려와 근심이 붙잡힌 사람은 주야로 마귀의 공격을 받습니다. 마음에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말로 다할 수 없고 육체의 병까지 들게 되고, 환경에 황무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염려와 근심인 것입니다.

 데이비드 니븐이라는 사람은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적어 놓았습니다. 동일본 여객철도는 초고속 열차로 유명한데 이 회사가 다니가와 산을 통과하는 열차 노선을 개설할 때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됐습니다.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어야 하는데 터널에서 물이 솟구쳐 올라와서 꽁꽁 묶이고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물을 터널 밖으로 빼내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터널은 뚫어놓고, 물이 터널에 가득해서 완전히 회사가 파산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정비공 한 사람이 하도 목이 말라서 터널에서 나오는 물을 한 컵 마셔보니까 기가 막히게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라 내가 이거 병에다가 담아가 팔아야 되겠다. 그래서 상사에게 가서 “이게 기가 차게 맛있습니다. 이게 팝시다. 우리.”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까 수백 년 동안 눈이 그 산 위에 내려서 땅에서 들어간 눈의 물인데 광물질까지 녹아있어서 굉장한 양물이요. 그래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그 물을 팔아보니까 철도요금 받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래서 큰 환란이 정비공 한 사람의 생각이 비약적인 생각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물을 지금도 팔고 있는데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물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동굴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물이 안 나오기를 원했는데 지금은 나오라, 나오라, 더욱 나오라.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라고 생각만 하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다가오거든 문제만 생겼다고 말하지 말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을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무조건 문제라고 생각하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꿀 때, 답이 보이는데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성령이 생각을 바꾸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최고의 스트레스 해결법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연구로써 대가인, 한스 셀리에 박사는 하버드 대학에서 고별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고 나올 때, 온 학생과 교수들이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뛰어나오더니만 이 한스 박사님의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박사님, 우리가 스트레스 홍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을 한 가지만 말씀하고 가십시오.” 그러자 셀리에 박사는 그 학생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더니만 한마디 말을 했습니다. “어프리시에이션!” 그러고 나갔습니다. 여러분, 영어를 아는 사람은 어프리시에이션이라는 것은 고맙다는 말인 것입니다. 감사란 말인 것입니다. 스트레스 전문가가 제안한 스트레스 해소의 최고 비결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좋은 때는 좋아서 좋고, 안 좋을 때는 좋아질 것이니 좋고, 고통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시니 좋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만사가 다 오케이 감사한 것입니다.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불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 저보고 감사하다는 말해주십시오.” 그저 그저 감사한 것이 해결방책인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 여러 번 했지만 천막교회 개척할 때 남대문에 장사를 하는 피난민 할아버지 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참석해서 제일 오랫동안 새벽기도를 해요.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저렇게 많이 하냐 싶어서 가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하나님,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조금 있다가 다른 말 하는가 싶어서 또 가보면 또 계속해서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으구 깜짝 놀랍니다. “아니 무슨 기도가 늘 그저 그저 감사합니까?” 그러니까 저보고 “잔소리 해봤자 하나님이 시끄럽기만 하고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은 다 감사한 것 밖에 없어요. 북한에서 살 때,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감사하고, 피난 생활 속에 안 죽고 옮겨 온 것이 감사하고, 또 대한민국에 와서 자유의 기운에 흠뻑 만취하면서 살 수 있으니 감사하고, 천막교회가 있어서 감사하고, 전도사님이 있어서 감사하고, 다 감사한 것 밖에 없지 않아요?” 내가 그 영감님 덕분에 굉장히 큰 기도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저도 그 때부터 시작해서 기도가 할 일이 없으면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한스 셀리에 박사도 이제야 발견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길은 감사한 길밖에 없다. 제가 일찌감치 알았으면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될 것인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릴 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염려와 근심, 초조와 절망,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없는 세상에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연약한 인간이기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염려와 근심과 걱정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기에 철저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오니 늘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나를 붙드소서/이영훈목사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시편 119편 114~119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 것을 많이 가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쌓이면 근심이 함께 쌓인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유산을 많이 물려주고 죽으면, 돈 때문에 자식들이 싸우고 원수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물려줬으면 안 싸울 텐데 물려주니까 형제간에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권력을 쥐면 행복할 것 같지만, 권력에서 내려오는 그 순간부터 온갖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역사 가운데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행복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얻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 

오늘 성경은 첫째로, ‘우리의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편 119편 114절에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곤경에 처하면서, 그 어려움에서 보호받을 은신처를 찾았습니다. 공격으로부터 막아줄, 그러한 도움을 요청할 때에 주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은신처가 되시고, 나의 방패가 되십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절망과 근심과 걱정이 다가오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고, 위로가 있고,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두려워 떨면서, “주님, 주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왜 그냥 내버려두십니까?” 할 때,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풍랑을 꾸짖으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풍랑이 몰아닥칠 때, 여러분 마음속에 염려, 근심, 걱정이 막 끊임없이 여러분 마음을 괴롭히고 상처를 입힐 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풍랑아, 잠잠하라!” “파도야, 잠잠하라!” “모든 문제의 파도는 멈추고 잠잠해질지어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편 18편 2절 3절에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야훼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32편 7절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자꾸 악한 원수 마귀가 사람들을 통하여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마귀는 직접 이렇게, 이런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외쳤습니다. 시편 119편 115절입니다.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원수 마귀가 우리에게 시험을 가져다주고, 우리를 상처 입히려고 하고, 어떡하든지 우리를 흔들어서 절망에 빠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 권세를 잡은 악한 원수 마귀가 우리를 미워해서 어떡하든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상처받게 하려고 그렇게 우리를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모든 흑암의 권세와 죄와 사망까지 이기신 예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와 계십니다. 나의 구세주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주인으로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때 우리는 어떠한 대적이 다가와도 백전백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마음이 약해져서 상처받고 넘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염려, 근심, 걱정은 떠나갈지어다!”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저는 기독교 GOOD TV에서 참 불쌍하고 어려움에 처한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한 시골에 살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모잠비크는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수인성 질병이 자주 발병하고, 의료 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말라리아와 성병 비율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안토니아라고 하는 13살 난 여자아이가 있는데, 엄마가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이 흙집에서 13살 난 여자아이가 혼자서 밤마다 무섭고 외로워 떨고, 평상시에 배고픔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이 방영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집에 가서 허드렛일을 해주고 조금씩 조금씩 음식을 먹고 하루하루를 사는데, 그는 말합니다. “잠잘 때마다 매일매일 무서워요. 하지만 도와주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비가 와서 집에 물이 차면 잠 못 자고 서서 밤을 보내야 해요.”
너무나 불쌍합니다.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니?”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먹는 옥수수 죽이나 호박 삶은 거라도 굶지 않고 계속 먹는 것과 비가 오면 새는 지붕을 새지 않게 고쳐주었으면 고맙겠어요.”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남기는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호박 몇 조각과 옥수수 가루로 죽을 먹고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그것도 없어 굶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교사님을 통하여 그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이 그 아이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이 아이가 그 어려운 환경에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염소를 한 마리 갖다 주셨습니다. 염소는 큰 재산이 됩니다. 그래서 이 소녀가 예수님을 믿고 또 학교도 다니게 되었어요. 이 소녀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이렇게까지 자기의 꿈을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이 제일 되고 싶어요. 왜냐하면 마을에 있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주고 싶어요.”

 자기가 워낙 외롭고 힘들고 어렵게 지냈기 때문에 자기가 선생님이 되어서 그런 아이들을 돌보기 원한다는 그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 가운데 들어가시자 이렇게 이 안토니아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평생 우리 주님 은혜 감사하며,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 바라봅니다!” “주님, 영광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고백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붙드시는 하나님

 성경은 둘째로, ‘붙드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116절에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꾸 내 마음이 흔들리고, 무슨 말을 들으면 그것이 상처가 되고,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솟구쳐 오릅니다. 주의 말씀으로 나를 붙들어주셔서 절대로 내가 요동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믿기 전에는 그런 갈등이 없었는데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는 내 마음 속에서 옛사람과 새사람이 늘 충돌합니다. 옛사람은 우리를 절망시키고, 낙심하게 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갖다 주고, 미움과 분노를 갖다 주는데 새사람은 늘 주님 안에서 기쁘고 감사하며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22절로 24절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신앙생활을 할 때 믿음이 조금 들어가려고 하면 이런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자꾸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 일들이 생겨요. 또 나를 낙심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듣게 합니다. 내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이때에 사람의 길을 듣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19편 117절입니다.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야훼의 붙드시는 능력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생각하라. 우리의 혈관에 피가 흐르고, 폐로 숨을 쉰다는 것, 우리의 육신이 살아 있고, 정신적 기능이 지속된다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붙드시는 능력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때도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고, 여러분이 병상에 있을 때도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고, 여러분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마음에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도 주님이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권면하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위대한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세요.
 그러니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시편 146편 5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피곤하고 지쳐 쓰러져 너무나 고통과 괴로움 속에 낙심하여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안고 가십니다. 저는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늘 읽을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체험합니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늘 위로는 내 인생의 여러 순간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각 장면마다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나와
주님에게서 사라지려는 순간
나는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뒤돌아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행로에서 여러 번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겨져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내가 매우 슬프고 괴로웠을 때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너무나 괴로웠던 나는
주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하리니
너는 항상 나를 따를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내 인생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켜보니
오직 나의 발자국만 남겨져있더군요.
어느 때보다도 주님이 필요했던 바로 그때
어찌하여 주님은 내 곁을 떠나셨는지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어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네가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나는 한 번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느니라.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볼 수 없었던 바로 그때는
내가 너를 안고 가던 때였느니라.’

 걸을 힘조차도 없어서 쓰러져, 지쳐 주저앉아 있을 때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안아주시고 주님이 우리의 모든 짐까지 대신 짊어져주시고 우리의 인생길에서 우리의 삶에 주님이 친히 간섭하시고 인도자가 되셔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어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어도 절대 주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 설명합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우리를 안고 가시는 우리 주님. 도저히 걸을 힘도 없고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져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고개를 돌렸을 때, 오히려 주님은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어루만져주시고 우리를 안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6편 8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야훼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왕 예수님을 믿을 거면 우리가 잘 믿읍시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절대 흔들리지 말고, 뒤로 물러가지 말고, 주저 않지 말고,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괴롭히는 악한 사람들이 있다고요? 여러분에게 너무나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때에 그들을 다 정리해 줄 것이다.” 

3. 심판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시련이 있는데, 로마서 8장 35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어떻게 하든지 교회와 멀어지게 하고, 어떻게 하든지 예배드리는 것 소홀히 하게하고, 어떻게 하든지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게 하려고 자꾸 시련을 갖다 주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시련이 자꾸 다가오는 것은 ‘아, 내가 믿음이 자라고 있다!’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표시, 그 모습이 바로 그런 환란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이 그냥 크는 거 아니에요. 어린 아이들을 키운 부모님은 다 아시겠지만 어릴 때 얼마나 그냥 급하게 아이가 다 죽어가는 것 같아서 응급실로 업고 안고 뛰어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잔병을 치르면서 아이가 건강해져가지고 지금 다 큰 어른들이 된 겁니다. 누구 이야기냐? 여러분들 이야기입니다. 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키워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 우리 얘기가 그냥 열이 39도 올라가지고, 급히 응급실에 갔다 왔다”고 그러고. 그런데 그 집 아기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집도 다 그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시련이 다가올 때는, ‘아 내가 믿음이 자라는 과정이구나.’ 아, 이 어려움을 지나면 믿음이 또 자라고, 또 자라고, 또 자라고, 할렐루야!

 잠언 24장 19절로 20절에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왜 저 악한 사람은 나를 괴롭히는데 잘만 다니는데 나만 이렇게 고통당합니까?”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잡초는 어디다 내버려놔도 빨리 자라요 그냥 누가 뭐 잡초 씨앗 뿌린 적도 없고 거름 준 적도 없는데 막 자라요. 악한 사람들은 잡초와 같이 막 자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싹 베어서 쓰레기에 던져버리고 불태워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가 오면 모든 행악자는 자취를 감춰버릴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8절로 119절입니다.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시편 1편 6절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러므로 절망의 때, 고통의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시편 119편 18절,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내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나그네길 인생길 갈 때, 주님여!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내 갈 길을 보여주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여러분 삶 가운데 큰 은혜를 가져다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13편 5절과 6절입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야훼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주님이 나를 도우십니다. 주님이 인생의 곱이곱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절망의 순간에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미얀마에 여러 부족들이 있는데 성경이 없어가지고, 성경을 번역하여 출간하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한 부족에 성경이 번역되는데 한 사천만원 정도 들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한글을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다 같은 말을 쓰지만, 미얀마는 불교 국가인데 산골에 있는 동네마다 다 다른 말을 써요. 그래서 그들에게 성경이 없어가지고 이제 성경책을 번역해서 벌써 여러 부족에게 번역된 성경을 집어넣었는데,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미얀마 성서공회 총무, 코일람콩 땅 목사님이 지난 주일에 오셔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3부 예배드리고 나서 제 방에 와서 간증을 합니다. 이 성경을 번역하는 일 때문에 산 높이 있는 부락을 찾아갔다 오는 길에 이 산을 깎아질러서 돌고 돌아 차가 올라가는데 그만 차가 길에서 미끄러졌답니다. 그래서 굴러떨어져가지고 차가 완전히 박살이 나고, ‘내가 이제 죽는구나!’ 했는데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깨어나 보니 한쪽 다리가 완전히 다 부스러지고 그래서 병원에서 중환자실에 있다가 7개월 전에 퇴원했는데, 그 후로 걸을 때 계단을 내려가지 못했답니다. 발이 너무 아파서 발을 딛지 못했는데, 저희 교회에 와서 지난 주일 3부 예배 때, “오늘 한쪽 다리가 아프신 분이 나았다”는 말씀을 들을 때 ‘아, 주님 나를 고치셨구나!’ 7개월 만에 처음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오셨대요. 그래가지고 저한테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다고 간증을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먼 길, 미얀마에서 왔다가도 기적을 체험하더라구요. 여러분 매 주일 나오시는데 믿음으로 받으면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두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다시 건강을 회복시켜주셔서, 돌아가서 또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담당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 성서공회 헌신으로 말미암아 미얀마가 불교 국가인데, 무려 6.5%가 예수 믿게 되어가지고 크리스천이 사백만 명이 넘는데요. 할렐루야! 저 그렇게 미얀마에 크리스천이 많은 것은 처음 알았어요. 절만 많은 줄 알았지. 그랬더니 저에게 목사님 한 번 미얀마에 꼭 와보세요, 교회마다 부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선교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불교 국가에서도, 힌두교 국가에서도, 이슬람 국가에서도 지금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선물로 주셔서, 교회마다 부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 일생을 인도하십니다. 한평생 굳센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신앙생활 잘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주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주님이 우리 인생길에 동행하시고, 쓰러져있을 때는 우리를 안고 가시고, 지키시고 붙드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체험했는데, 그동안 감사하지 못하고 산 것을 회개합니다. 늘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을 찬송하라/이영훈목사

너희 모든 나라들아 야훼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야훼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야훼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 117:1~2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은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책 중에 가장 많은 분량이 기록되어있는 것이 시편입니다. 시편은 150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은 절수를 담고 있는 장은 시편 119편입니다. 무려 176절이나 되어있습니다. 또 성경에서 가장 짧은 장도 시편인데, 오늘 우리가 봉독한 시편 117편입니다. 시편 117편은 두 절로 되어있습니다. 이 두 절의 말씀 속에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의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1. 인생의 본분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나서 ‘내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생의 3대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겠거니’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보았는데 돈과 함께 근심이 많이 쌓이고,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으로 인해서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합니다. 세상의 권력을 잡으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 년 가는 권세가 없다’고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면 큰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왜 존재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이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을 하나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이사야 43장 7절과 21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는 찬양의 은사를 받은 우리 찬양대, 오케스트라가 주님을 찬양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믿는 사람들이 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7편 1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야훼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모든 백성들이 주님을 찬양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본분이요, 목적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가 주님을 찬양해야 됩니다.

 시편 150편 6절은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는 다 두고 갑니다. 집도 두고 가고, 자동차도 두고 가고, 좋은 옷도 두고 가고, 가족도 두고 가고, 다 두고 갑니다. 딱 하나만 가지고 갑니다. 그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찬양은 지상에서 영원에 이르는 징검다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생 다 가도록 넘치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찬양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 우울하던 마음이 기쁘게 되고, 찬양할 때 절망이 떠나 우리 삶 속에 희망이 다가오고, 찬양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는 우리의 본분입니다.

 시편 50편 23절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골로새서 2장 6절, 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합니다. 내게 조금 억울한 일이 있고 내게 힘든 일이 생겨나고 문제를 만나고 고통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모든 문제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다 해결되고 주님의 기쁨과 평안함과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러 빌립보에 갔는데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 들린 아이의 귀신을 쫓아버렸더니 이 아이가 점을 치다가 점을 못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인이 이 아이로 돈을 벌다가 돈을 못 벌게 되니까 바울과 실라가 나쁜 풍습을 전했다고 모함을 해서 붙잡아 가서 바울과 실라를 때리고 감옥에 집어 던졌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던져지니 온몸은 아프고, 또 그 당시 감옥 안은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던져지니 얼마나 몸도 마음도 불편했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 내가 주님 일을 하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합니까? 내가 주님 일을 열심히 하는데 상급을 못 주실지언정 이렇게 붙잡혀서 매를 맞고 감옥에 던져질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데, 바울과 실라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핍박 당하거나 억울한 일 당할 때, 절대로 섭섭해 하지 말고 원망 불평하지 말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죄수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저들은 누구기에 저렇게 매 맞고 감옥에 들어와서도 얼굴이 환하게 빛나며 찬송을 부를 수 있는가? 그 흉악한 죄수들이 귀를 기울여 들었던 것입니다. 그 감사 찬양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습니다. 그 찬양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절망의 옥 터를 흔드시고 손과 발에 매인 것을 풀어주시고 닫혔던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는 여러분의 절망의 자리를 흔들어버리고 여러분을 묶었던 모든 결박을 풀어버리는 위대한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를 지키던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 믿고 온 가족이 주님을 영접해서 그로 말미암아 그곳에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만약 바울과 실라가 원망 불평하고 감사를 안 드렸더라면 그 간수가 변화도 안됐을 것이고 교회도 안 섰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게 만들어주시고, 문제가 변하여 축복이 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한평생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데, 주님을 섬길 때 어떤 환난과 핍박이 다가와도 기뻐하고 감사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여러분 가정이 변화되고, 이웃이 변화되고, 이 사회가 변화되고, 우리 대한민국이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세계 전쟁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기적으로 꼽히는 던케르크 해안의 기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어요. 저는 아직 그 영화를 못 봤습니다마는 영화 소개하는 것을 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온 영국 사람의 기도로 말미암아 34만 명이 되는 영국군과 프랑스 연합군을 철수시킨 사건입니다.
 1940년 5월, 영국 프랑스 연합군 34만 명이 독일군에 의해 포위되어서 프랑스의 던케르크라고 하는 해안에 갇히게 됩니다. 이 던케르크라는 도시에서 도로 물러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34만 명이 완전히 몰살당할 그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영국의 처칠 수상이 ‘만약에 3만 명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조지 6세 국왕에게 가서 기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국왕 조지 6세는 5월 26일을 국가 기도의 날로 선포하고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국가기도회를 가집니다. 모든 각료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모든 교회들이 다 문을 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교회마다 사람들로 가득차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영국군 30만 긍휼히 여겨주셔서 저들이 그곳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주시옵소서!”

 그때에 모든 영국 사람들이 자원해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큰 배, 작은 배, 다 배를 가지고 5월 26일 도버 해협을 건너서 861척의 배가 이 도버 해협에 와서 첫 날 7,669명이 철수합니다. 5월 28일에는 17,804명이 철수하는데 놀라운 것은 이날 폭우가 쏟아져 독일은 전투기도 띄우지 못하고, 탱크도 전진해나가지 못했어요. 너무나 폭우가 심해서 멈춰있는데 던케르크 해안은 해가 맑고 바다가 잔잔해서 저들이 철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첫날 7,700명 철수하고, 다음 날 17,804명, 그 다음 날 47,310명, 그 다음 날 58,823명, 그 다음 68,00명, 64,429명, 그리고 6월 2일과 3일 나머지 모든 사람이 다 철수해서 34만 명이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3만 명만이라도 구원했으면 좋겠다했는데, 34만 명이 다 구출됐어요. 하나님이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와 찬양은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저들이 힘을 모아서 다시 준비해가지고 무장을 해서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하여 완전히 제2차 세계대전 전세를 바꾸고 독일군을 쳐부수고 연합군이 대승리를 거두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할렐루야! 세계 평화가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 당했을 때, 고난에 처했을 때, 기도와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해주셔서 여러분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

 우리가 기도할 때 둘째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감사하며 기도하고 찬양해야 될 것입니다.
 시편117편 2절입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야훼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야훼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왜 우리가 찬양합니까? 왜 우리가 감사합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크고,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이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103편 8절은 말씀합니다.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우리는 죄 덩어리에요. 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죄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사랑하라고 말했는데 미워하고, 성경은 용서하라고 그랬는데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하고, 성경은 화목하고 하나 되라고 그랬는데 분열하고 나누고 다투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불쌍하게 보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요한일서 4장 10절, 11절은 설명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그 놀라우신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영국의 조지 보더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성을 논의함에 있어, 그분의 인자하심을 빠트려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것은 그분의 자비, 은혜, 오래 참으심, 진리, 풍성하심 등을 포함한다. 인자하심을 따라 비참한 처지에 있는 자를 구원하실 때, 그것은 자비이며, 인자하심을 따라 무가치한 자에게 은총을 내리실 때, 그것은 은혜이며, 인자하심을 따라 반역을 일삼는 자를 참으실 때, 그것은 오래 참으심이며, 인자하심을 따라, 약속된 축복을 베푸실 때, 그것은 진리이며, 인자하심을 따라 궁핍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때, 그것은 풍성하심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분의 모든 형태의 사랑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처럼 그 인자하심은 우리의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63편 3절에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시편 18편 1절에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되신 주님, 나의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 3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내게 도움을 주고 이익을 주면 사랑하고, 나에게 손해를 주고 나를 불편하게 하면 미워하고 멀어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늘 뭔가를 기대하는 사랑이에요. 내가 하나를 주면 또 하나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조건 주고, 또 주고, 또 주시고,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그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에 우리가 감동되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막 멱살 잡고 싸우다가도 들어가서 막걸리 한 잔씩 이렇게 마시고, 그다음에 “아이, 다 잊어버려. 잊어버려!” 그리고 용서하고 친구가 되서 어깨동무하고 나와요. 그런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간장 종지보다도 더 좁아가지고 한번 뭔가 틀어지면 이야기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리고 살아요. 여러분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사랑과 용서는 하나님의 역사요, 미움과 다툼과 원망과 불평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선택을 잘해야 돼요. 늘 하나님의 역사를 선택해서 사랑과 용서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찬양

 우리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찬양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납니다.
 117편 2절 말씀을 다시 봉독합니다. “우리에게 행하신 야훼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야훼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여기 ‘진실하심이 영원하다’는 하나님이 믿고 의지할 유일한 대상이시고, 그것이 변함없이 영원하다고 하는 것 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다 바뀝니다. 사람의 마음이 한평생 한결같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 삐끄덕 삐그덕 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 주신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 믿게 한 축복이고 그 다음에 예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이 성경책을 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면 모든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절 1절로 6절에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을 지켜 행하면, 말씀을 지켜 행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손을 대는 일마다 다 잘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복덩어리로 만들어주셔서 우리가 가는 그곳이 복이 넘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대로 살면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복을 받고, 내가 속한 직장이 복을 받고, 내가 속한 그 어디든지 간에 나로 인하여 그곳이 복을 받는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업장이 복을 받고, 음식점이 복을 받고, 학교가 복을 받고. 할렐루야! 동네가 복을 받고, 사회가 복을 받고,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 인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하여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 믿고 의지한 사람입니다. 75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큰 민족을 이룬다고 했는데 100세가 될 때까지 아이가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자기를 보면 절망이지만 주님을 바라보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로마서 4장 19절로 22절은 설명합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 결과, 하나님께서 100세에 그에게 아들, 이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아이를 낳겠다고 그러니까 다 이 노망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심치 않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100세에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어느 날 “내가 너 100세 때 준 아들 모리아 땅에 있는 산에 가서 바쳐라.” 그런데,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보통 믿음이 없는 사람 같으면, “아니, 주실 때는 언제고 또 왜 빼앗아갑니까? 안 돼요! 100세 때, 애가 얼마나 나서 예쁘게 잘 자랐는데 이제 데려가시려고 합니까?” 그럴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순종해서 모리야 땅에 한 산에 가서 그를 잡으려고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멈추게 하시고 미리 예비한 양으로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야훼 이레, ‘주님이 준비하셨다. 예비하셨다’ 그 기적을, 축복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 16절로 18절에 복을 주십니다. “이르시되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말씀을 지켜 행했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준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이런 복이 임하지 않느냐? 분명히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내 마음에 미움도 있고, 원망도 있고, 불평함, 불평도 있고, 섭섭함도 있고, 탐욕도 있고, 시기도 있고, 질투도 있고,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있을 거예요. 회개하고 철저히 우리들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나가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이 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복을 쏟아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찬양 사역을 하고 있는 서준호 성도를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길 원합니다.

 성악가 2학년 재학 중에 2003년, 친구들과 차를 몰고 여행을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목뼈가 부러지고 전신마비가 됩니다.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의사들이 말하기를 신경이 완전히 손상되어 회복할 수가 없고, 평생 누워 살거나, 만약에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겨우 휠체어에 앉아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뭐 의사는 차트를 보고 의학적으로 말을 한 거지요.
 그런데 이 준호 형제 가정은 예수 잘 믿는 가정, 장로님 권사님 가정이에요. 하루도 빠짐없이 가정 예배를 드리는 가정입니다. 어머니가 그 아들이 완전히 전신마비로 누워있는데도 환하게 웃으시면서 와서 긍정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기는 병원이 아니라 영적 신학대학원이야 여기서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그러고 병실을 다니면서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줍니다. 어머니의 말씀 듣고 아버님의 기도를 받으면서 마음에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나는 일어난다! 나는 걷는다!” 마음속으로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또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산소호흡기로 겨우 호흡을 연명하고 있는데 폐렴이 다가왔습니다. 폐렴으로 목을 뚫는 수술을 해야 됐습니다. 참, 성악가가 목을 뚫어버리면 나중에 노래를 어떻게 부릅니까? 그런데 수술 동의서에 아버지가 서명을 하고 와서 잠깐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황무지에 물이 콸콸 쏟아오르는 꿈을 꾸고 깼습니다. ‘아! 우리 아들이 낫는구나!’ 그래서 그 아버지가 자기도 모르게 찬양을 불렀어요. 아마 아버지도 찬양을 잘 불렀던 것 같아요.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의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마음에 믿음이 들어왔습니다. ‘아들이 나았다!’ 그래서 CT 촬영을 하니까 그 새까맣게 폐렴으로 문제가 있던 폐가 그 싹 사라져버리고 하얗게 완전히 정상이 되어있어요. 할렐루야! 그날로 산소호흡기를 떼고 일반 병실에 왔습니다. 일반 병실에 와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발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난 찬양해야 되겠어요. 찬양해야 되겠어요. 병원에서 매주일 예배드리는데 내가 다음 주일 날, 내가 찬양을 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일주일 내내 있는 힘을 다해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뇌성마비로 전신장애를 앓고 있는 송명희 시인의 ‘나’라고 하는 그 가사로 된 찬양을 연습했습니다. 최덕신 전도사님이 지은, 작곡한 곡인데,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많은 중증환자가 모이는데 강대상을 붙잡고 간신히 서서 이 찬송을 온 몸을 다해 부르니깐, 그 중증환자들이 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 예배가 막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은 계속 일어납니다. 100일 만에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게 되었고, 6개월 후에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린 합창단 공연에 특별 출연해서 400명 합창단과 함께 ‘나’를 찬양했고, 그리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연습해서 사고가 난 뒤, 13년 후, 2015년 조수미를 배출한 유명 콩쿨인 ‘중앙 콩쿨’에서 당당히 성악 부분에 1위를 차지합니다. 그의 수상 이야기가 중앙일보에 나왔습니다. ‘교통사고로 도레미로 못하던 그가 웃었다.’ 그리고 목사님 딸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지금 찬양을 부르고 간증하며 주님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스스로 호흡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한데,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많은 영혼들에게 전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곳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일생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생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을 주님 오실 날까지,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절망 중에, 고통 중에, 괴로움 중에 찬양하며 살 수 있게 해주시고, 찬양을 통하여 절망을 몰아내고 주님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이 사랑을 만방에 전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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