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천 집사(마포2대교구) - 뇌경색의 고통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IMF 경제 위기 때 의료 기기 사업이 부도를 맞아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아내를 따라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였다. 하지만 내 신앙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2003년 4월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일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왼쪽 검지 첫 마디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면서 마디 일부가 절단 되는 사고였다.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 급한 대로 지인이 의사로 있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손가락을 본 지인은 가망이 없다며 아예 잘라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절단 부분을 봉합해 달라고 했다. 뼈를 고정시키지도 않고 봉합만 했을 뿐인데 이후 뼈와 살이 붙어 지금은 애써 확인하려하지 않는 한 상처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회복됐다.

이처럼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신앙은 또 다시 느슨해져 예전에 했던 것처럼 술과 담배를 즐겼다. 그때 찾아온 것이 뇌경색이었다. 2005년 10월 추석을 이틀 남겨두고 갑자기 쓰러져 오른쪽 손과 발이 마비됐고 언어장애가 왔다. 교구의 한 권사님이 심방 오셔서 기도해주시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하게 되자 아침에 눈을 떠 맞이하는 하루가 힘겨웠고 또 다시 맞이할 내일이 두려웠다. 그러면서 나는 내 신앙 자세를 되돌아봤다.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다시 한 번 똑바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사이 몸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보험금 신청을 위해 병원에서 MRI 사진을 찍었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막혔던 혈관 옆에 새로운 모세혈관이 생겨 죽은 뇌세포가 살아나 있던 것이었다. 의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적’이라고 말했다. 난 새로운 모세혈관이 생기고 신경이 살아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할렐루야!

지금 나는 오른쪽 손과 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뿐 아니라 말하는 것도 정상적으로 회복됐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후로 나의 신앙은 180도 바뀌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웃들에게 전했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 함께 예배를 드렸다. 나 혼자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천국에 갈순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기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의료 기기 엔지니어인 나는 유방암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는 촉감 증진 패드, 체형 측정 기구, 악력을 활용한 오링 테스트 장치 등을 개발해 2012년 2015년 2016년 각각 특허를 받았다. 4차원의 영성(생각 꿈 믿음 말)과 절대긍정의 믿음을 삶에 적용한 결과였다.

향후 상품화될 제품들에는 사도행전 16장 31절의 영문 표기(Acts 16:31)를 넣을 계획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주를 만나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삶이 변했듯 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변화된 삶을 누리길 간절히 기도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김광자 권사(용산대교구) - 희귀병으로 죽어가던 아들 살려주신 하나님

간절히 부르짖을 때 기도 응답 이뤄져
건강회복 후 전도 사명 받고 새 삶 간증

1986년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때 일이다. 평소 건강하고 똑똑했던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조퇴를 하고 집에 왔다. 동네 병원에 아들을 데려가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아들은 집 근처 대학병원과 서울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2주 동안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병명을 알 수 없었다.

아들의 상태는 점점 악화돼 급기야 혼수상태에 빠지게 됐다. 온 몸은 새까맣게 변했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당시 의사들은 방법이 없다며 그만 퇴원하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이라 생각됐던 그때에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르짖었다. 창자가 끊어질듯한 고통이 있었지만 아들이 치유된다면 몇 번이든 견딜 수 있었다. 급기야 나는 “하나님, 아들 대신에 저를 데려가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때 “네가 죽으면 네 아들은 어떻게 살겠니, 내가 살려줄게”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처음 보는 5명의 의사가 아들을 찾아왔다. 그들은 확실하진 않지만 한국 병원에는 없는 약을 수입약국을 통해 구해 온다면 마지막으로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다며 소견서를 건네줬다.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법임을 믿고 약을 구하는데 매진했다. 수많은 약국을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약을 구했고 치료를 할 수 있게 됐다. 의사가 약을 투여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정신을 회복했다. 할렐루야! 아들은 마지막으로 시도한 치료를 받고 급속도로 회복해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당시 아들이 걸린 병은 콩팥 옆에 있는 부신에서 호르몬이 생성되지 않아 생긴 부신피질기능저하증, 일명 에디슨 병이었다. 당시에는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해 희귀병으로 분류됐었다. 만약 의사의 소견에 따라 치료를 하지 않고 퇴원했다면 나는 평생 아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은 지금 건강하게 회사도 다니고 단란한 가정도 이뤘다. 또한 자신이 사는 지역 교회에서 학생 전도의 사명을 품고 열심히 천국복음을 전하고 있다.

나는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도에 힘썼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도할 때 치료 방법을 알려주셨고 모든 길을 인도하셨다. 나는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는다. 앞으로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살아가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강삼예 권사(영등포대교구) - 어깨 통증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

여선교회 성찬실 23년 봉사 섬김의 기쁨 넘쳐

24년 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오게 되면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철야예배를 드리며 성령 충만을 받게 되자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주님을 더욱 섬기고픈 마음에 여선교회 봉사를 시작했다.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기 위해 성찬실에서 봉사했는데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 너무 즐거웠고 지역장도 맡게 되면서 온전히 주님의 일만 하고 싶었다. 직장을 포기했지만 하나님은 때에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셨고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23년간 꾸준히 성찬실 봉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5년 전 오른쪽 어깨가 조금씩 아프더니 뻐근하고 화끈거렸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계속됐고 병원에 가도 딱히 치료방법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아프더니 왼쪽도 통증이 심해져 양쪽 팔을 쓸 수가 없었다. 칫솔을 들기 힘들어 양치도 겨우 했고 옷을 벗을 수가 없어서 찢을 정도였다. 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와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성찬실에서 봉사하려면 어깨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계속 봉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극심한 통증에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는데 2015년 3월 주일 2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담임목사님께서 어깨가 심히 아픈 사람이 치유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왔고 어깨를 돌려보니 통증이 사라지고 편안했다.

오른쪽 어깨는 깨끗이 나았는데 왼쪽 어깨는 여전히 통증이 있었다. 나는 이미 오른쪽 어깨를 치유 받은 경험이 있기에 기도하면 이 또한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 간절히 기도했고 1주일 후 왼쪽 어깨도 치유됐다. 할렐루야!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시작하는 시편 23편 말씀은 내 인생에 큰 힘이 됐다. 늘 부족한 내게 성령님은 때마다 신유의 기적을 일으켜주셨고 환경의 문도 열어주셨다.

올해 4월 중순 쯤 딸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회사 동료 4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는데 자신도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영훈 목사님 말씀대로 매일 밤 9시마다 코로나19가 속히 소멸되도록 기도해왔는데 딸이 격리 중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더 열심히 부르짖어 딸을 위해 코로나19의 소멸을 위해 기도했다. 엄마의 애통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됐다. 목이 아프고 열이 났던 딸의 증상도 깨끗이 사라졌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는 지금처럼 평생 동안 주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김영자 집사·김종욱 성도(동작대교구) - 어머니의 길랭·바레 증후군 치유해

 

전신 마비 증세 회복과 완치 판정
말씀 의지하며 기도로 의심과 두려움 극복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이었다. 나는 어머니(사진 왼쪽)와 아내,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다리에 감각이 없다며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서둘러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어머니를 모셨다. 병원에서는 단순 근육통이라며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증세는 갈수록 나빠졌고 하루 만에 전신이 마비됐다.

병원 진단 결과 말초신경계의 손상으로 마비가 온 길랭·바레 증후군이었다. 주치의는 희귀병이지만 완치율은 높다며 어머니가 80세로 연세가 있으셔서 면역력이 약해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전날 건강하게 산책까지 하신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기도가 막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와 비위관을 의지해 누워계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지 열흘 정도 됐을 때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심각해졌다. 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신다는 믿음보다 의사의 말에 수긍하며 절망에 빠졌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장례를 준비하려고 할 때 이영훈 목사님께서 병원을 방문하셨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이영훈 목사님께 기도해주실 것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 후에도 순간순간 의심이 될 때마다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이겨냈다.

동작대교구 교역자들과 구역 식구들도 밤낮으로 찾아오셔서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지났을 무렵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급속도로 회복됐다. 손가락만 겨우 움직이셨던 어머니의 마비 증세가 점차 회복되더니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셨다. 병원에서 드디어 길랭·바레 증후군 완치판정을 받았다. 할렐루야! 어머니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영훈 목사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가망이 없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로 간구할 때 믿음을 주셨고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다. 무탈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보다 의심이 강했던 나를 굳센 믿음의 자녀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남은 일생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서리 집사로도 임명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윤혁분 권사(마포2대교구) - 계단 오르내리기 힘들었던 왼쪽 다리 치유

예수 보혈 의지할 때 기적 일어나

지난해 1월부터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앉았다가 일어서거나 계단을 내려갈 때면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가을에 산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가 왼쪽 오금이 붙어버린 느낌이 들면서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빨리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30년 째 연말이 되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며칠간 기도하는 신앙 습관에 따라 먼저 기도원을 찾았다.

아픈 다리를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려했는데 하나님은 나보다는 교회를 위한 기도를 먼저 하게 하셨다. 교회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마귀를 물리치고 우리 교회가 이 시대 복음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해를 넘겨 올해 설이 지나자 다리는 부서질 것처럼 고통이 심해졌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난간을 붙잡고 두 걸음에 걸쳐 한 계단씩 내려가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도 그때 뿐 통증은 여전했다.

5월이 지나 하루는 볼 일이 있어 지하철을 이용했다. 힘겨운 걸음으로 겨우 좌석에 앉아 그날도 어김없이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언제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지금 저를 봐 주세요. 이런 아픈 몸으로 사람들에게 좋으신 하나님을 전하면 전도가 될까요? 나를 고쳐주세요.’ 아픈 왼쪽 다리를 한 대 힘껏 치며 “예수 피로 아픈 병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선포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데 이상하게 다리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찰구를 지나는데도 걸음이 자연스럽게 걸어져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보자고 생각하고 걸음을 뗐다. 그랬더니 난간을 붙잡지도 않았는데 계단을 쉽게 오르는 것이 아닌가. 할렐루야!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나는 아픈 다리가 고침 받는 순간 ‘순종할 때 응답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됐다.

집사 시절 성경전체를 필사했지만 지난해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성경필사라는 숙제를 내주셔서 신약을 다 쓰고 올해 구약 필사노트 네 권 중 마지막 권을 남겨두고 있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씩 기도한 후 오전 8~12시까지, 또 늦은 오후에 성경을 필사하는데 하루에 적어도 필사노트 5장씩은 쓰게 된다. 하루에 말씀도 20장씩 읽으며 이웃을 위해 중보하고 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을 갖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나는 믿음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출가한 자녀들과 모여 가정예배를 드린다. 우리 교회 각 기관에서 봉사하는 세 자녀를 보면 우리 가정을 주님께 인도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날마다 은혜를 더하시고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라고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순복음의 권사로 주변에 신앙의 본이 되겠다.


정리=오정선 기자

 

박순교 권사(마포1대교구) - 두 번의 수술 후 찾아온 우울증에서 해방

절대긍정 절대감사 신앙으로 몸과 마음 회복

동서를 통해 주님을 영접한 나는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녔지만 영적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인도된 후 성령을 의지하는 말씀에 은혜를 입고 믿음이 성장하게 됐다.
비록 삶은 어려웠지만 성령님을 의지하면 언제나 힘이 났다. 그런데 신장결석이라는 병이 나를 괴롭혔다.

신장에 돌이 생기기 시작한 건 39살 때부터였다.
잊을만하면 결석이 생겨 2년에 한 번꼴로 제거수술을 받았는데 몇 년 전 종합검진으로 오른쪽 신장에서
혹과 결석이 함께 발견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2017년 11월 3일 결석 제거 수술을 받은 후 남들보다 유독 나한테 결석이 많은 이유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 목 주변 내분비기관인 부갑상선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신장결석 제거 수술과 2018년 초 부갑상선 수술이 이어지면서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가사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게다가 둘째 아들까지 어깨 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게 돼 나는 마음이 무너지면서
우울증이 오고 말았다. 놀란 남편은 기력이 쇠해진 나를 위해 한약을 조제해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교구장님과 교구식구들은 나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었고 친분이 있는 장로님은 내가 이영훈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2018년 여름 전국초교파권사금식기도대성회를 얼마 앞두고 이영훈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주셨는데
신기하게도 몸이 호전을 보였다.

나와 친한 권사님은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나를 데리고 권사 금식성회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나흘간 금식하며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성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금식은 며칠간 이어졌다.
금식기도가 오히려 나를 회복시켜주었다. 또 주일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목사님이 “목이 아픈 사람이 나았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회복됐다”고 선포하시면 “아멘”하며 받아들였고 몸이 많이 힘들면 주기도문을 몇 천 번씩
외우고 또 외웠다. 그때마다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교구에서는 총무 일을 맡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 그리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시련을 이겨냈던 욥을
기억하자 주님은 나의 믿음을 보시고 마침내 연약한 몸을 세워주시고 우울증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해주셨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다.
순복음에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리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을 배웠으니 이제 나의 남은 날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지 지혜를 구하고 전도에 힘쓰겠다.

정리=오정선 기자

육순자 권사(여의도직할성전) - 노인성 우울증 고쳐 주신 하나님

해외에서 직장 생활하던 아들이 최고 대우를 약속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2019년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새 직장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힘든 상황들이 발생해 아들이 곤란해졌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 했다.

급기야 나는 숨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워 응급실에 실려 갔고 신경정신과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노인성 우울증이라고 했다. 병원에 다니며 진찰과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차도는 없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치매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들었다.  

늘 혼자만 있기를 원했고 수면제가 없으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입맛도 잃어버렸다. 반년 동안 무력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나보다 신앙이 좋은 딸이 일어날 힘도 없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동네에서 맛집들을 찾아 함께 외출했고 내게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정성을 다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딸은 자기 일도 바쁠 텐데 매일 집에 와서 나를 살피고 무엇보다 교회에 가기를 권했다. 지인들에게 내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 교회에 가기를 꺼려했는데 딸의 끊임없는 노력에 여의도순복음교회 본당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과 회개 기도가 터져 나왔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받은 은혜가 참 많은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이 나왔다. 여의도직할성전 담임인 방경현 목사님 생각이 자꾸 났지만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까봐 찾아가지도 못하고 전화로 기도요청을 했다. 전화인데도 목사님은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셨다.

나는 복지관도 열심히 다니고 교회 권사님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갖고 대화도 시작했다. 권사님들의 따뜻하고 친절한 한마디 한마디가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됐다. 그러던 중 우리집 난방시설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수리를 해야 했다. 살림살이를 다 빼서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나는 딸네로, 아들은 오피스텔로 옮겼다. 아들을 옆에서 지켜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지만 딸과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상황을 맡겼다. 딸 뿐 아니라 사위도 주일마다 교회 출석에 동행하며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차츰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됐다. 딸의 집에서 한 달 보름을 지내면서 딸과 사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었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회복이 됐다. 또 아들의 직장 문제도 해결됐다. 깨끗이 수리된 집으로 돌아와서 구역식구들과 함께 구역예배를 드리니 그렇게 세상 기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기도했다. 그전에는 나이가 많아 찬양대 봉사를 그만두려 했는데 다시 찬양대에 가니 대원들은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하게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 특별히 구역식구들과 찬양대 권사님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항상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정리=복순희 기자

 


조복연 권사(마포2대교구)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치매 걸린 친정엄마와 나에게 위안은 ‘성경’


나는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엄마와 10여 년 넘게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낮에는 엄마를 돌보는 일이 괜찮지만 밤에는 엄마가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않아 집안일을 하며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나의 건강은 나빠지고 신경도 예민해졌다.

늦은 밤 잠에서 깬 엄마는 화장실에 가는 길을 잊어버렸다며 나를 깨우기 일쑤였고 같이 다녀오면 또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자는 나를 깨웠다. 그럼 나도 모르게 “힘들어서 지역장 못할 것 같아. 교회도 주일만 갈 수 있겠어.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며 화를 냈다.

2018년 교회에서 말씀 통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침마다 담당 교구장님이 읽을 본문과 함께 역사 배경 등을 문자로 보내주시면 그것을 지역 식구들과 공유하며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

말씀을 읽다보면 끝없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는 ‘하나님, 죄송해요. 엄마를 사랑하고 오늘 밤에는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해도 절대 불평하거나 원망을 하지 않을게요’라고 기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불평하지 말자’고 입술을 꽉 깨물며 다짐해도 한밤중 잠자는 내 귀에 대고 찬송가를 크게 부르시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또 다시 화를 내고 말았다.

매일이 바빠도 나는 성경읽기를 쉬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을 보면서 ‘나는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만 싶은데 다윗은 어떻게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지?’라며 큰 위로를 받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성경통독과 함께 저녁마다 엄마와 예배도 드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엄마가 전과 달리 밤에 잘 주무셨고 나에게 ‘미안하다’라고 말씀도 해주셨다. 나는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임을 깨달았다.

어릴 적 한 번도 교회를 다녀보지 않았고 예수님의 ‘예’자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너무 궁금해 매일 성경책을 끼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태해져 말씀을 멀리하고 있었으니 말씀 통독이 나에게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말씀을 읽으면 가슴에 감동이 밀려왔고 감사와 기쁨이 내 안에 샘솟았다. 전에는 ‘전도’라는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됐지만 말씀에 은혜를 입자 전도 열정도 되살아나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했다.

나는 매일 소리 내어 성경을 10장씩 읽는다. 24시간 붙어있는 엄마는 내가 읽는 말씀을 듣고 행복해하신다. 말씀은 곧 힘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묵상이 길어진 요즘은 SNS를 활용해 믿음의 식구들과 매일 성경 통독 및 필사의 은혜를 나누고 있다. 지칠 때 위로를 주셨던 하나님을 통해 크리스천의 삶 속에서 말씀과 기도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교회 교구 개인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김미희 집사(양천대교구) - 기도로 남편 구원받고 신유기적 체험

성령 충만 받고 180도 달라진 삶
조용기 목사 신유기도 선포 후 치유 받아

나는 1992년 파견 근무를 떠나게 된 남편을 따라 남미지역에서 3년간 생활했다. 그곳에서 믿게 된 교회 집사님의 전도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령 침례를 받고 방언도 말하게 됐다. 나는 원래 내가 열심히 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종교는 의지가 약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령 충만을 경험한 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됐고 그동안 자만했던 마음을 회개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나를 우선으로 생각했던 마음이 이타적인 마음으로 바뀌었고 구원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항상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됐고 세상 모든 만물이 아름답게 보여 순간적으로 시력이 좋아진 건 아닌지 착각까지 했다. 나는 이 구원의 기쁨을 가족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남편을 전도했다. 남편은 교회에는 나갈 수는 있지만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면서 교회출석을 꺼려했다.

나는 3년 동안 하나님께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고 행동으로도 남편을 배려하며 섬겼다. 금식기도도하고 인내하며 남편이 구원받기를 소망했지만 남편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2008년 해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귀국해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출석하게 되면서 점차 남편의 태도가 바뀌었다. 주일에 교회에 데려다주더니 주일 예배도 같이 드리면서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이 신앙을 갖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나는 개인병원에서 자궁을 제거해야할 정도로 혹이 많고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대학병원에 가기 전 주일예배를 드릴 때 나는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설교 후 조용기 목사님께서 신유기도를 하셨는데 “자궁에 혹이 있는 자매님,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멘’으로 화답했고 대학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았다. 담당 의사는 혹이 많기는 하지만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할렐루야!

나는 질병을 치유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전도로 고민하고 있던 때에 교회 내에 있는 전도훈련학교를 알게 됐고 훈련을 받아 노방전도를 하게 됐다.

나와 가족의 삶을 바꿔주시고 질병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김재수 장로 (종로중구대교구) -

25톤 트럭과 충돌, 대형 사고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평생 좋으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어린 딸의 생명 위태로울 때도 기적 보여주셔

올해 1월 4일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사업장으로 운전해서 가는 중이었다. 서부간선도로 하행선 안양 방면 철산대교 부근에서 도로공사를 하던 25t 트럭과 내 차가 부딪혔다. 갑자기 튀어나온 트럭과 충돌했고 큰 사고로 이어졌다.

브레이크를 밟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나를 지켜주셨다”는 마음의 확신이 왔다. 차는 순식간에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찌그러졌다. 범퍼는 아예 없어져버렸고 바퀴도 다 빠져나갔다. 도저히 운전자가 살았으리라고 보기 힘들만큼 큰 사고였다. 하지만 에어백이 터지며 손끝만 살짝 데였을 뿐 작은 타박상 하나 입지 않았다. 진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지켜주신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차는 바로 폐차했지만 전적으로 가해차량의 과실이 인정돼 보상받을 수 있었고 새 차를 구입했다. 올해 차를 바꾸고 싶다는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참 좋다. 내가 우리 교회에 오게 된 것은 35년 전이다. 딸이 1.3㎏ 미숙아로 7개월 만에 태어났다.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두 달간 있었는데 당시엔 의료보험도 없어서 물질적으로도 어려웠다. 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분명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실 것을 믿었다. 부모님께서 신앙이 좋으셔서 어릴 적부터 믿음 안에 성장했기에 내 안에는 늘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병원에서 부정적인 말을 할수록 더욱 열심히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고 기도했다. 기도한대로 기적이 일어났고 딸아이는 건강하게 퇴원했다.

하나님은 그 뒤로도 내가 하는 일에 큰 은혜를 부어주셨다. 의류업을 하던 내가 음식점 사업에 뛰어들 때 사람들은 음식점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10분의 1도 안된다고 말렸지만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10분의 1이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아가 승리할 수 있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있지만 오히려 내 신앙을 점검하고 사업장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중국남방선교회에서 26년 동안 봉사하며 선교사명을 위해 힘써왔는데 올해 종로중구대교구 지구장을 맡게 됐다. 올해 내 목표는 성경을 많이 읽고 전도 열매도 많이 맺는 것이다.

주 안에 기뻐하고 꿈꾸며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함께하셨다. 누구나 삶의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고 나아간다면 분명 승리할 것임을 믿는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는 분들이 계시다면 고난을 기회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승리하시길 바란다.  

정리=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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