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임 권사(동작대교구) - 교통사고로 죽을뻔한 나를 살리신 하나님

뼈 부서져 장애인 될 거라 했지만 후유증 없이 퇴원
평생 몸찬양 사역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 다짐


나는 1981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받았다. 젊을 때부터 몸이 워낙 약해서 비실비실했던 나는 30대 초반부터 눈뜰 기력도 없이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고 40대에는 관절염과 오십견이 와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정도가 됐다. 지역장으로 봉사하던 중 몸찬양을 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 순복음영산율동대학을 다니게 됐고 졸업 후에는 선교회와 기도원에서 봉사하게 됐다. 몸찬양 봉사를 하면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 생각과 결심에 따라 봉사를 그만두었는데 봉사를 그만둔 뒤 일주일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건널목을 건너는 중 과속으로 달려오는 승용차에 치였는데 나중에 들으니 내가 공중에 15m 정도 붕 떴다가 떨어졌다고 했다.
 내 머리, 목, 오른팔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부스러져 의사가 붕대로 응급처치만 했다. 손을 대면 더 부서지기 때문에 다른 조치는 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6개월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생명이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걸 스스로 느낄 정도로 혼수상태가 올 때도 있었고, 나를 보고 가는 의사마다 내가 장애인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에스겔서 37장 환상처럼 골짜기에 마른 뼈들을 소생시키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절망 가운데 소망을 보고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를 정상으로 고쳐주시면 다시 몸찬양 봉사자가 되어 하나님께 충성하고 온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모든 뼈가 기적처럼 붙었고 6개월을 사용하지 못한 몸도 물리치료 없이 회복됐다. 70세가 넘은 지금도 후유증 하나 없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건강한 몸으로 찬양하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내게 많은 복을 부어주셨는데 최근에는 3년간 아이를 갖지 못해 고민하던 며느리의 태의 문이 열려 내년 4월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앞으로 천국 가는 그날까지 지금 내가 단장으로 있는 ''엔젤스 워십 전도단''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찬양 ''이제 내가 살아도''의 가사처럼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죽어도 주 위해 죽는 사명자로서 하늘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 것을 다짐한다.정리=김주영 기자


노숙자 권사(순복음세종교회) - 좋으신 하나님 계시니 날마다 감사 넘쳐

기적처럼 둘째 아이 낳고 온 가족 구원
순복음 열정으로 교회 섬길 수 있어 기뻐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이상하게 생리가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없어 처음엔 암인줄 알았다. 여러 병원에 가봐도 면역체계의 문제인지 호르몬의 문제인지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뇌하수체가 파괴된 것 같다고 할 뿐이었다. 호르몬 주사를 맞을 때에만 생리가 나왔다. 스스로 호르몬을 생성하지 못하니 평생 약을 먹어야 했다. 내 몸은 점점 안좋아졌고 탈모와 두통도 생겨났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결혼하고 교회를 멀리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큰 아이가 10살 때 즈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왔다. 주일 수요일 금요일에는 꼭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매일 집에서도 기도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도 늘 머리가 아파서 차를 타려면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다는 현실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려 고침받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나는 과감히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루 한 시간 이상씩 꼭 기도했다. 그런데 자꾸 속이 메슥거려서 한의원에 갔더니 임신이라고 했다. 아이 낳고 12년째 생리가 없었는데 임신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기적을 체험하고 시부모님과 남편까지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됐다. 시아버지는 제사도 없애시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다.  

 남편 김한석 안수집사의 변화도 내게 큰 간증이다. 지금은 믿음이 뜨겁지만 한 때는 술도 많이 먹고  사기도 당하고 속을 많이 썩였다. 나는 남편의 영혼이 잘되게 해달라고 방바닥을 치면서 3년을 기도했다. 기도가 응답 돼 남편은 변화됐고 믿음의 사람이 됐다. 지금은 세종시에서 복숭아 농장을 하며 큰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군인인 큰 아들은 5남매를 낳았는데 중학교 3학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손주들이 모두 신앙이 좋고 바르게 잘 컸다.

 

우리 가족 아홉 식구는 세종시에서 20년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뜨거운 예배를 무척 그리워했다.  개척국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할 정도로 본 교회에서처럼 뜨겁게 예배를 인도해주실 목사님을 기다리고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로 순복음세종교회가 창립됐다. 담임인 염세열 목사님은 본 교회 사역은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10년동안 선교도 하신 순복음의 목회자였다. 내가 기도하던 그 목사님이셨다. 순복음세종교회에서 성령 충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 우리 아홉 식구는 주일, 수요일, 금요일은 물론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즐겁게 신앙생활하고 있다. 늘 모든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진성언 성도(양천대교구)

- 믿음으로 교회봉사 다짐 후 허리디스크 완치

교회학교에서 헌신하며 초등교사 비전 품어
말씀 믿어 의심치 않을 때 치유 역사 일어나


누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교회 봉사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나는 2005년부터 아동4부(지금의 초등교구 길마을)에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교회학교 봉사는 초등 교사가 되는 비전을 품게 했다. 나는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교육대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2013년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초등 교사 생활을 시작할 무렵 갑작스레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잠깐 느껴지는 통증인 줄 알았지만 왼쪽 다리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심각해져 어쩔 수 없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2017년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다. 재수술을 피하기 위해 허리에 좋다고 하는 시술은 모두 받았던 것 같다. 대학병원에서 고액의 시술도 받았지만 시술을 거듭할수록 허리 상태는 더 악화됐다. 학교로 출근할 때는 벽을 짚지 않으면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재수술을 하면 정상적으로 허리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에도 방법이 없어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하게 되면 교회학교 교사를 1년 정도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며 내년도 봉사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하나님, 재수술을 받으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셔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할수록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교회 봉사를 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허리 통증이 두배로 심해졌다. 혼자 힘으로는 일어설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됐다. 내가 아파서 힘들어할 때 아내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는 말라기 4장 2절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허리를 고쳐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말라고 했다. ‘허리가 정말 회복될까?’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실 것이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교회학교 봉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2~3일 정도가 지났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허리에 통증이 사라졌다! 오히려 허리가 가벼워졌다. 마침 수술날짜도 다가와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담당 의사는 허리가 정상으로 회복됐다며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교회학교 교사와 초등 교사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아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며 살아갈 것이다.

정리=금지환 기자


윤기열 권사(관악대교구)

- 질병과 고통의 아픔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

우수교구 전도왕으로 뽑혀 하나님께 영광 돌려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지역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했다. 우리 교구는 2015년부터 4년간 우수교구로 인정받았고 나는 76세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하반기에 전대교구 중 전도왕으로 뽑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기쁨을 누렸다. 내가 열심히 전도를 하는 이유는 40년 전부터 교회에 나오며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많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가족이 믿던 타종교를 커서도 열심히 믿었는데 25세에 결혼해 딸 셋을 낳고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두통이 심해져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언니와 함께 무당집에 찾아가 굿을 했는데 무당은 나보고 안정제 두알 수면제 한 알을 먹으면 병이 깨끗이 나을 거라는 처방을 내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한참을 울다가 무당 말을 믿고 만약 안정제를 한 알이라도 먹는다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빙성 없는 무당의 말을 믿기엔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나는 언니에게 이제부터 귀신을 믿지 않고 싹 잊어버리고 살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교회에 가면 귀신도 쫓고 두통도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갔다.

교회에 찾아가 첫날 예배를 드리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앉아있지 못하고 누워서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 ‘하나님이 계신다면 나를 고쳐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며 잠에 들었는데 꿈에 생시같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이 검은 옷을 입고 다가와 내 옆에 누웠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귀신들아 예수피로 물러가라’를 외치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내 몸에서 새떼가 줄을 지어 큰 방 창으로 날아가는 꿈을 꿨다. 이후에 목사님들의 안수 기도를 받고 내 병은 깨끗이 나았다.

그때부터 나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은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에 힘썼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차와 부딪쳐 몸이 공중에 떠오를 정도로 큰 사고를 입은 적도 있고 12년 전에는 위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선고를 받은 적도 있다. 크고 작은 질병이 걸릴 때 하나님께서 항상 깨끗하게 치료해 주셔서 지금까지 건강한 몸으로 일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봉천동에서 여의도 교회까지 걸어 다니며 새벽기도를 빠진 적이 없고 분초마다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고 성경필사도 2번째 하고 있다. 세 딸은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의 복을 받았고 막내딸은 목회자 사모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지난해에는 주택의 문제도 해결되는 등 살면서 의식주의 어려움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

내 생의 마지막 날까지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소망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김영춘 권사(관악대교구) - 축복과 문제해결의 비결 전도

사랑과 섬김으로 600여 명 영혼 구원

1994년 동네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했던 나는 사업 초기 많은 빚을 지고 시작했다. 개업하자마자 사업이 번창해 금방이라도 빚을 갚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2년 후 갑작스레 동네 재개발이 이뤄져 지역 주민들이 모두 이사를 가게 됐고 사업이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계속되는 불황에 이자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불어났다. 매일  채권자들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고 압박감에 못 이겨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업도 힘들고 가정에도 불화가 생겨 매일 밤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사 41:10)는 말씀을 주셨다. 나는 “하나님, 채권자들이 가게의 모든 물건을 가져가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제 몸 하나밖에 없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남은 일생 전도만 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가게를 닫고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올라가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 동안 금식 기도를 했다. 기도원에서 내려오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철야 기도를 드렸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새 힘과 용기를 주셨다.
 화장품 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손님들에게 화장품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며 전도활동에 주력했다. 같은 교구 진중섭 장로님과 함께 전도한 가정들을 찾아가 쌀 1포대씩 전달하며 새신자 양육과 예배도 드렸다.
 3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600명이 넘는 이웃을 전도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내가 관악대교구 전도왕이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전도에 열심을 다했을 때 우리 가정의 문제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화장품 사업은 차츰 안정됐고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미래까지도 책임져 주셨다. 아들 두 명이 어릴 적부터 배드민턴 선수생활을 했었는데 가정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체육 관련 최고 대학까지 졸업했다. 큰 아들은 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고 있고 막내아들은 식자재 사업을 통해 8년 만에 연 25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가 됐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전도에만 집중했더니 문제가 해결되고 축복받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나는 매년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참석해 한 해 전도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11월 추수감사 특별새벽기도회를 드리며 1년 동안 세운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올해는 30명 전도를 목표로 세웠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목표를 달성했다. 감사하게도 올해 내가 전도한 성도들 모두 집사 직분을 받아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고 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간절함을 경험했고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 남은 인생 천국 가는 그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정리=금지환 기자


이영인 집사(양천대교구) - 뇌출혈, 죽음의 위기에서 회복시킨 하나님

지난해 4월 21일 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던 중 오른쪽 다리에 이상을 느껴 차를 멈추고 119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구급차가 왔고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실에서 정신을 잃었다. 병명은 고혈압에 의한 대뇌 뇌출혈이었다. 출혈 위치가 머리 한가운데여서 수술을 하기 쉽지 않았다.

의료진은 멈춘 피가 몸에 흡수가 될 것을 기대하며 앞으로 3~4일이 고비라고 했다. 재출혈이 일어난다면 사망 또는 식물인간이 될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계속 혈압 수치가 230~240으로 높으면서도 안정적이지 않았고 신장이 나빠지더니 심장과 폐까지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고비였고 기적이었다. 의식 없는 환자가 신장 투석하는 상황까지는 되지 않게 해달라고 가족들은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드디어 23일 째 혈압수치가 200이하로 내려가 일반 병실로 옮겼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부터 남편과 외아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교회와 지인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교회 대성전 금요성령대망회 때 참석한 전 성도가 중보기도를 해주셨다.

일반 병실로 옮겼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또 한 병원에서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없어 병원을 옮겨야했는데 알아보니 대학병원은 3개월 이상 대기해야 자리가 날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이 막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기도했는데, 갑자기 대기자들이 줄줄이 취소를 하면서 예약한지 12일 만에 공백 없이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와 치료가 계속됐고 6월 6일, 쓰러진지 45일 만에 의식이 돌아와 가족과 지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의식 회복 후 말이 나오지 않아 놀랐지만 내 상황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내가 확실히 의식이 돌아오기 전에 흥얼흥얼 찬양을 불렀다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실 것을 기대했다.

의식 회복 후 찬양을 하고 성경 말씀을 읽으니 언어기능이 가장 먼저 좋아졌다. 점차 감각과 운동능력이 살아났다. 병원 내 기도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8월에는 교회에 가고 싶어서 기도를 했더니 외출이 허락되는 병원으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9월부터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됐다.

올해 나는 교회학교 교사 봉사 30년째를 맞았다. 매주 만나던 사랑하는 제자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누워 있는 동안에도 재활을 하면서도 힘을 낼 수 있었다. 아직 오른쪽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둔하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어 감사하다.  

양천대교구 식구들과 교회학교 중등부 교사 학부모 학생들께 감사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심방으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의 사랑 덕분에 다시 눈을 뜨고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님께 받은 사랑을 선교와 봉사로 세상에 전하겠다.      
 정리=복순희 기자

 


김진숙 권사(반석대교구) - 날마다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주를 예배하며 찬양할 때 기적의 역사 일으키셔

1986년 나는 광주순복음교회에서 말씀에 은혜 받고 새신자로 등록했다. 그리고 철야예배가 궁금해 구역장님을 따라 예배에 참석했지만 기도하는 법을 몰라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성령이 강하게 임해 입으로 '예수 피, 예수 피'를 외쳤다. 우상을 섬기고 마귀의 종노릇하며 살았던 지난날이 억울해 바닥을 치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또 남편을 긍휼히 여기라는 말씀을 주셔서 회개 기도하니 방언이 터졌다. 인격적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난 나는 그 뒤 담대한 마음으로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자녀의 학업을 위해 서울로 이사한 뒤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출석하게 됐고 중동성전(현 순복음중동교회)이 생기면서 교적을 중동성전으로 옮겨 여선교회에서 7년간 봉사하며 주님께 충성했다. 이사로 인해 구로순복음교회를 출석하다 10여 년 전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돌아온 나는 반석대교구 소속이 됐고 매주일 예배 참석 후 한국성시화환경운동본부에서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열심을 다해 주를 섬기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으로부터 만 가지 은혜를 받았다.

 2018년 9월 72세였던 남편 한중옥 집사가 갑자기 배가 아프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호소해 병원을 찾았다. 응급실에 입원해 검사를 받은 남편에게 담낭(쓸개)에 돌이 있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담낭을 제거해야 한다며 수술을 권했다. 그 소식을 듣고 반석대교구 교구장님과 지역장 등 믿음의 식구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병원에서 기도할 곳을 찾다가 병원 예배실을 발견하고 수요예배에 참석해 하나님께 남편을 치료해달라고 간구했다. 그때 하나님은 시편 41편 3절인 "야훼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라는 말씀으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

 수술 후 우리 부부는 계속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고 남편은 하나님의 은혜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3일 만에 퇴원했다. 건강을 되찾은 남편은 같은 해 11월 오순절사랑훈련학교(이하 오사랑)에 참가해 믿음을 견고히 다졌다. 이후 오사랑 봉사자로 헌신하더니 지금까지 쉬지 않고 봉사에 임하고 있다.

 우리는 남편의 수술 후 지금까지 매일 밤 9시가 되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자 그때부터 성령이 우리의 연약한 곳을 치료해주시기 시작했다. 남편은 머리가 아파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것을 힘들어했는데 어느 순간 고침을 받았다. 또 남편의 비염과 녹내장도 말끔히 치유됐고 손가락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콩알만 한 것이 튀어나와 주먹 쥐는 것을 괴로워했는데 이 또한 깨끗하게 치유됐다.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구하지 않은 것까지 세심하게 살피시고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요즘은 코로나19가 속히 사라지길 기도하며 '시편 91편' 말씀을 남편과 매일같이 묵상하고 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고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이 전염병과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속히 건져주실 것을 확신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김명자 집사(마포1대교구) - 수술 없이 충수염을 깨끗이 고쳐주신 하나님

지난해 가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두 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열릴 때였다. 첫날 예배를 드린 후 화요일부터 이틀간 복통 설사 구토가 이어졌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초음파검사 결과 ‘급성 충수염’이었다. 의사는 서둘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응급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에 병원을 나왔다가 정확한 검사를 위해 다시 대형 병원을 방문했다. 오후 6시 경 응급실에 도착해 의사를 기다리는데 몸이 덜 아프고 괜찮아지는 듯 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만난 의사에게 동네 병원에서 촬영한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더니 CT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1시간 후 의사는 검사 결과를 전하며 “충수 길이가 생각보다 크다. 당장 아프지 않더라도 내일 상황을 지켜보고 수술을 진행해야 하니 입원하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교구에서 구역장으로, 마포1대교구 아동 지구장으로, 교회학교 초등교구 길마을 교사로 봉사 중이라 수술과 입원이 부담스러웠다. 그 순간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 입원하면 안돼요. 주일에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고요, 주중에는 교구에서 구역을 돌보고 또 아동 구역 봉사 등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수술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의사의 강권에 결국 입원을 했지만 다음날에도 몸은 아프지 않았다. 하루만 더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병원에서 이틀 밤을 보냈으나 아무런 통증이 없자 의사는 “급성이 아니라면 만성일수도 있으니 해를 넘겨 1월 3일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며 퇴원을 허락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구역 일과 교회학교 교사로 헌신하며 하나님께 수술하지 않고 병이 치유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그동안 봉사한 것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열심만 나타내는 행동이었음을 성령을 통해 깨닫게 됐다. 나는 주 앞에 엎드려 회개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나도 모르게 많은 일을 한다는 신앙적 교만이 들어 목이 뻣뻣해지고 내 열심만 앞세워 봉사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교구에서나 교회학교에서 봉사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중 나에게 필요한 말씀만 골라 들었던 부족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새해가 시작되면서 열두 광주리 새벽기도회가 시작됐고 매일 기도회에 참석한 나는 온전히 주만 바라보는 겸손한 신앙과 수술 없이 몸이 회복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다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촬영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은 무척이나 평안했다. 촬영 후 의사는 나를 보면서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응급 환자가 맞는지 질문했다.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충수크기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이런 일은 불가능하고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안된다”고 말했다. 정말 지난번 초음파 사진에서 세 배 가량 컸던 충수가 엄청 작아진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은 하나님의 치유가 확실했다. 할렐루야!

정리=오정선 기자


김형일 집사(반석대교구) -

 “주님의 꿈 이루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하나님 모르던 죄 많은 선데이크리스천 삶에서
파더스드림 참여해 성령의 임재 누리고 변화돼

나는 아내의 권유로 지난해 10월 제28회 파더스드림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 남편 그리고 한 남자로서의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회개 드렸다. 교회에 다닌지 30년이 됐으나 나는 무신론자와 같았다. 아내를 따라 주일 예배에 참석해도 말씀이 삶의 바탕이 되지 못해 예배시간 다른 생각하기 일쑤였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말이 크리스천이었지 사회에 나가서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전혀 살지 못했다.

사회봉사를 한다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만나며 술로 방탕하게 시간을 보내는 죄악을 일삼았다. 건설과 부동산 관련업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과 또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은 항상 술자리로 이어졌는데 술을 마시면 사람과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고 '사회에서는 술이 아니면 다른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하기 힘들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아내의 속을 썩였다. 술을 마시면 그날은 꼭 아내와  마찰이 있었고 아들과 딸은 눈치를 봐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가정의 분위기는 안 좋아졌고 아이들도 술 마시는 아버지를 멀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수도권에 있는 유명 대형교회들을 돌아보자고 내게 제안했다. 남편이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 역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마음 가운데 있는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제안을 따랐다.

여러 교회를 다니며 예배를 드리던 중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의도순복음교회에는 다시 한 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도로 등록하지 않은 채 2년을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다가 재작년부터는 성도등록을 하고 교회에 정착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며 나는 성경학교를 수료했고 올해는 성경대학도 수료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나서  지난해 5주 동안 파더스드림을 참여하니 은혜가 물밀 듯 밀려오는 감동을 체험했다. 내가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자 하나님께서는 내게 큰 은혜와 위로를 주셨다. 찬양과 기도를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고 말씀을 읽으면 기쁨이 넘친다. 특히 세족식을 할 때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고 나를 사랑해서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니 사회에서 즐기던 모든 죄악을 끊어낼 수 있었다. 파더스드림 형제들과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섬기니 마음이 편하고 든든하다. 내가 변화되자 가정의 분위기도 새롭게 바뀌었다. 사회에서 리더가 되려고 했던 나는 이제 28회 파더스드림 회장으로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앞으로도 솔선수범하여 교회 부흥의 기둥 역할을 하고싶다. 또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예전의 나처럼 거짓 믿음을 갖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예수님께 나오기를 기도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임경란 권사(구로대교구) - 수술 없이 내측 반월상 연골판 파열 치유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 의지할 때 큰 복 받아

2017년 4월 봄이었다. 평소처럼 직장에 출근하기 전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왼쪽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발을 헛디뎠다. 생각보다 통증이 심해 이튿날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의사는 관절이 약해 그런 것이라며 물리치료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아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침술 치료도 받아봤지만 소용 없었다.

그러던 그해 11월 17일 새벽에 심한 무릎 통증으로 잠에서 깼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급하게 병원에 갔다. 병원 진단결과 좌측 무릎 골관절염 및 내측 반월상 연골판 파열이라고 했다. 의사는 뼈와 뼈 사이의 충격을 잡아주는 연골판이 파손됐고 그 정도가 심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 1000만 원이 넘는 수술비가 필요했고 수술 후에도 재활 기간이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다행히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약물치료를 시작해보고 수술을 결정하자고 했고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던 내게 하나님께서는 기도 중에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으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나는 이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겠다는 믿음이 생기며 하나님께서 예배와 기도에 집중하길 원하신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후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약을 끊고 예배와 기도에 집중했다.

다리가 불편했지만 주일 외에도 평일 쉬는 날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집에서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정예배와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교회 봉사 또한 쉬지 않았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만 가지고 학원선교회와 호스피스 봉사를 더 열심히 감당했다. 하나님께 기도할수록 통증은 조금씩 가라앉았고 2019년이 되면서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할렐루야! 이제는 매일 퇴근하면 직장에서 집까지 50분 동안 걸으며 운동한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받았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도 했다. 또 딸은 임용고시 합격과 결혼이라는 큰 기쁨을 동시에 안겨줬다.

나는 지금도 아픈 다리를 치유해 주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전도하고 있다.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평생토록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충성하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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