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예빼.10 - 죽음 앞에 선 인생 (왕상2:1~4)

 

찬송:491(534) 242(233) 488(539)

묵도:고전15:12~13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235(222) 기도:가족중

어떤 사람이 병중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노크도 없이 문이 슬며시 열리면서

어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습니다.당신 누구요?환자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나는 죽음이다. 너를 데리러 왔다. 일어나 나와 같이 가자.” 죽음은 검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닙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환자는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내가 무서우냐?

소원이라면 더 기다리지... 그리고 이 다음에 올 때에는 네가 놀라지 않도록 먼저 사신을 보내마...”

말이 끝나자마자 죽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환자는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슬픈 일을 당하고 사업 실패도 맛보고 고통도 많이 맛보고

또 다시 앓아눕기도 하며 사는 동안 그는 꼬부랑 노인이 되었습니다.

침상에 누워 있던 어느 날, 언젠가 만난 검은 사람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죽음이란 분이 아니십니까?” 오냐, 그렇다.” 왜 기별 없이 오셨습니까? 먼저 사신을 보내고 그 다음에 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그 동안 여러 번 사신을 보내지 않았는가? 슬픔도 보내고 고통도 보내고, 나중에는 노쇠까지 보내지 않았는가? 그게 다 사신일세.” 그 사람은 무엇이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을 따라가고야 말았다고 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9:27)“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브리 기자의

이 말은 대체로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인생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이 세상의 삶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죽음에 대하여 무기력하던 과거와는 달리, 죽음이 우리에게 무력하게 된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죽음에 임박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자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 바로 죽기 위해서

바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을 통하여 죽음을

바로 준비하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1. 죽음을 인식하라

먼저 다윗은 죽음의 일반성에 대해서 유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서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여기서 다윗이 말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이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성군 다윗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죽음의 일반성과 보편성을 알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지혜입니다. 9:27 에서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한

것처럼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반적인 재난입니다. 이는 우리 인간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죽음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과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가 사람은 한 번 죽는다고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죽음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오는 죽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쾌락에 빠져서 자신이 누리는 세상 즐거움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여 허랑 방탕하게 삽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죽음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통과해야하는 관문입니다.

죽음은 선택사양이 아니라 필수사양입니다.

그 이유는 죽음은 인생의 필수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준비도 없이, 예고도 없이 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죽음에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므로 잘 죽기 위하여 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된 우리들은 한정된 이 세상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듯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처럼 막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히브리 기자가 말한 것처럼

이 세상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3:1-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말한 것처럼 위엣 것을 찾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완전히 도외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가 물 위에 있으나 물이 배 안에 들어오지 못하듯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면서도

이 세상 죄악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잠식치 못하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세상 즐거움에 마음이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2. 용기를 가지라.

그러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윗은 본문 2절 말씀에서 아들 솔로몬에게 이 세상사는 법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다윗의 많은 아들 가운데 솔로몬은 압살롬이나

아도니야처럼 건장하고 강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잠언 4:13 에서 자기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유약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양친으로부터 항상 염려와 근심의 대상이 되었던 약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하였기에 다윗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 어린것이 어떻게 이 나라를 이끌어 갈꼬?”

그리하여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아들 솔로몬을 향한 다윗의 이 당부의 말은 너는 남자처럼 강하게 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말입니다.

이렇듯 다윗은 자신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려 나갈 막중한 사명을 짊어진 아들 솔로몬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 되는 통치자의 자질이 대장부가 되는 것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대장부처럼 강해야 합니다.

이 세상 죄악과 유혹에 쉽게 무너지는 유약한 존재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입니다.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려면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목전에 둔 모세 역시 이와 같은 심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유언한 것입니다 유약한 심경으로는 죄와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결국 이세벨의 군사에게 쫓기다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처럼 절망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약한 상태로 세상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 부모의 심정처럼 우리가 강한 대장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고전 16: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찾아오는 죽음과 실패, 불행과 낙담에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는 유일한 길이 바로

삶에 대한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대장부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보다 강하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이며 바로 그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해지라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말씀은 때로 찌르는 채찍처럼 강합니다. 본문 2절 말씀에서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며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그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 된 대로 지키라

말씀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며 산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실천함으로써 강하신 하나님에게 붙들려 위대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어 강대한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은

자신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 속, 생활 속에 있었던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이토록 강하게 하고 힘 있게 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들 솔로몬이

지켜 대장부처럼 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생활에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들레헴 촌 목동에 지나지 않았던 다윗을 일국의 왕 되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온전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말씀을 읽는 것,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말씀대로 사는 것은 능력의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향해 일하시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 죽기 위하여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솔로몬에게 주신 다윗의 교훈처럼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잘 죽는 길이며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고 상급 받는 길이며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님의

간절한 바램 이며 기도이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길인 것입니다.

201 . . .


추모예빼.9 - 허무한 인생의 고백(39:4~12,2:17~23)

 

추모예배 시 고인을 기억하는 의미로 사진을 꺼내놓는 것은 가하나,

그 앞에 제사상처럼 음식을 차리거나 절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배순서~

찬송-384(434) 488(539) 430(456)

추도식사-오늘은 어머니의 3주기 기일을 맞이하여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어머니를 추모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묵도-고린도전서15:12~14 기도-(가족)

성경봉독-(39:4~12, 2:17~23)

허무한 인생의 고백 찬송-370(455)

우리는 고인의 기일을 맞이하면 산소를 찾아서 성묘를 하기도하고 추모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기일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감회는 인생의 허무와 무상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 셨다든지 생존해 계신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윗은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한 시를 오늘 시편 394~12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썼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전도서 217~23절에서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지혜롭게 살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종말을 알아야 합니다. (39:4)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하소서종말은 죽는 날입니다. 인생이 끝나는 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입니다.

반드시 사람은 죽는 날이 옵니다. 자기 죽음을 알고 산다는 것은 놀라운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죽음을 압니다. “언젠가 나는 이 세상을 떠난다.” 이것을 알게 되면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둘째로 자기 나이 알아야 합니다. 연한의 어떠함은 나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살 것인지 알려 주십시오. 나의 사는 날을 알려주소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는 날은 짧습니다. 얼마쯤 살았으며 또 얼마나 살 것인가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사는

날을 헤아리게 됩니다. (90: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와 미래에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셋째는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가를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시:39:5-6절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

이니 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 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림자 같은 것이고 우리의 사는 날은 한 뼘 짧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잘 묘사한 솔로몬 왕은 인생의 헛됨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14)“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바람을

잡는다는 말은 전도서에 열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 바람을 손에 잡을 수 있습니까? 못 잡습니다.

바람을 잡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로 인간의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린 사람입니다.

그는 눈으로 본 것을 가졌으며, 입으로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었으며,

몸에 입고 싶은 옷은 다 입어봤습니다. 그가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졌습니다.

인생으로서 그의 영화는 전무후무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생의 향락을 누려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 말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1:2-4)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왜 해 아래서 사는 동안 인간의 하는 모든 일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먼저 인생이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5)“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이것은 인생의 짧음과 허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세월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90:9-10)“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실로 인생은 사는 날이 짧습니다. 덧없이 갈 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한 때 아름다움은 들의 꽃처럼 시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실감합니다.

한 때 아름다웠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쉬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90:3-5)“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이 세상 어느 것도 든든한 것이 없습니다. 지진이 나면 빌딩도 무너집니다. 정권도 무너집니다.

때가 되면 청춘도 내놓아야 하고 건강도 무너집니다. 명예도 빼앗깁니다. 든든한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억척스레 모은 재물도 결국은 내 손에서 떠납니다.

돈을 모으는 것은 욕심일 뿐이지 누가 가져가든지 가져갑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벌어서 모으고 또 모았다가 사기꾼 말에 속아서 다 빼앗기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버느라고 과로해서 그만 병들어서 병원에서 다 빼앗깁니다. (5:10-11)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솔로몬처럼 영광을 다 누린 사람이 없습니다.

런데 솔로몬은 이것이 잘 산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1:8)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

하는도다눈으로 보아서 만족한 것이 있습니까, 귀로 들어서 만족한 것이 있습니까?

눈으로 보아서 만족한 것이 없고 귀로 들어서 만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어느 것 하나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바람 잡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복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늘의 행복을 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직 인생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행복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복으로 만족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주는 은혜로 만족해야 합니다. 살아도 예수 안에서 살고, 죽어도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만 해도 내 가슴이 하늘로 채워지고

내가 길을 걸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만이 이 땅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만족시킨 것이 이 세상에 있던가요? 살아오면서 무엇으로 만족했습니까?

아무 것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더 이상 속지 말고, 마음을 이 세상에 빼앗기지 말고,

내 마음을 예수께 빼앗겨 예수로

만족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예수에게서 찾아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주님을 위해서 땀 흘려 보았느냐, 마음을 바쳤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슨 일로 최선을 다했느냐?” 혹시 한 번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한이 맺혀 울고 서러워 울었던 때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격해서 가슴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쏟아 바쳐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죽고 싶은 감동이 오는 때가 있습니까? ‘내가 순교해야지

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때가 있습니까? 날마다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그럴 때가 있어야 합니다.

 

눈물을 쏟아 주님께 드려지는 마음, 땀을 쏟아 바치는 그 마음, 내게 있는 재산을 가지고

한번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쏟아내는 그 손길이 있을 때 주님이 ~,

그대가 바람을 잡으려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성령의 바람을 탔구나!’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바람을 잡아 흔들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내 속에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 그 바람 타고

그 바람으로 살고 그 바람으로 능력을 얻어 주께로 나아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우리의 사는 날은 길지 않습니다. 분명히 종말을 알아야 됩니다.

연약함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해 물을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은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바람 따라 산다 말하지만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바람 따라 가야 합니다.

앞으로의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서 훗날 주님으로부터 잘했다

칭찬을 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5.9.29.3주기추모/


   추모예빼.8 - 아버지의 집에 거하라 (14:1~6)

찬송:491(534) 242(233) 486(474)

묵도:고전15:12~13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492(544) 기도:000

이 세상에 우리의 사는 삶을 가리켜서 나그네 인생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사람은 축복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내 나그네의

인생길이 130년이나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 " 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기에 험악한 세월이요, 외로움과 슬픔의 세월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이

그에게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많은 지식이나 명예가 결코 그 인생을 편안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돈이 많고 명예나 지위가 높으면 오히려 근신 걱정 염려가 더 많고 평안을 찾기가 힘듭니다.

강건하여 조금 더 사는 자나 조금 덜 사는 자나 역시 인생은 험한 나그네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한 우리는 누구도 죽음이란것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없으며 영원히 함께하지는못합니다.

때가되면 아무리친하고 가까운사이라고해도 우리모두는 헤어질수밖에없습니다.

좀 더 남보다 돈을 많이 모으고 명예나 지위를 확보하려고 남보다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발버둥

쳐보다가 아쉬움과 한을 품고 가야만 하는 길이 나그네인생길인 것입니다.

나그네 길은 정든 이웃과 혈육의 가족과 영원히 떨어져서 이별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본문은 예수님이 세상에있다가 떠나는것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하신말씀입니다.

너희는마음에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믿으라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떠나지만 영원히 떠나는것이 아니고 다시세상에오신다고 했습니다.

단지 이 세상을떠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 완전히 떠나는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고계십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염려근심걱정두려움들이 있지만 죽음만큼 두렵고 무서운것은 없을것입니다.

그것은 죽음뒤에 다가올 일들을 알없기때문입니다.

허나 죽음뒤의 다가올 일들을 미리있고 천국에서 거할 집이 약속이되어 있다면

두려워 할없이 사는길이있습니다.

세상에서 걱정하지않고 죽음앞에 두려움없이 사는길은 바로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사람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고 ㅇㅇㅇ 집사님에게는 이제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고향을 사모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합니다. 이제 예수 믿는 성도의 죽음은 외로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오히려 희망과 즐거움과 희열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온 참 본향으로 가는 길이기에 그러하고,

슬픔과 고통이 없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러 가는 길이니 그러합니다

 정든 가족이 세상을 떠난 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은 이제 나그네의 괴로운 세월을 뒤로 하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셨으니 위로와 소망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 하나님께서 고 ㅇㅇㅇ 집사님의 8-2

목자가 되셔서 세상을 살 동안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인도하신 주님께서 천군 천사들과 더불어 이제 귀한 집사님의 영혼을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해 들이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신 ㅇㅇㅇ 집사님은 결코 혼자 가신 길이 아닙니다. 천군 천사가 와서 귀한

집사님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갔으며, 주님께서 천국 문을 활짝 열고 영접해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 집에 거할 수 있도록 귀하고 복된 길을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먼저가신 귀한 집사님께서는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집사님의 위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 임 이러라 "

" 21: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 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

또한 바울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바라는

모든 자 에게니라.“

집사님께서는 선한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며 모든 이의 모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집사님의

가는 길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러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육신의 헤어짐이 슬프지만은 이제 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아무쪼록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신 00000를 기쁨으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오직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이 택하신 이가정은 주님을 목자로 모신 가정이 되셔서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살 소망을 가족 모두가 가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 . . .


 추모.7-사람들이 나를누구라고 하느냐?8:27-30


추도의 의의: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인륜의 계명에서 제일 되는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하는 것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소천하신 후에도 그 날을 기억하여 하나님께 추모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날은 부모님의 크신 은덕을 기리며, 위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래로는 자손들에게 부모님의

남기신 업적과 본받을 신앙을 기억하여, 자기 인생을 성화 시켜 나가는 계기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추모 예배가 되도록 할 것이다.

천국에 계신 어머님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할 것이다.

자신과 후손들에게 모범이 되며, 복이 되도록 할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술을 금하도록 할 것이다.

가정이나 혹 묘소에서 예배를 드리면, 음식을 차리거나, 절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실 때도 잠잘 때나, 아플 때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무덤 속에 있다하며,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악령에게 하는 것이 되고,

자기 부모를 우상화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헛된 제사를 악한 영에게 드리지 말고, 하나님과 천국에 계신 부모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찬송:491(543) 384(434)

추도식사:지금부터 어머니이신 양순덕 집사님의 제2주기 추모일을 맞이하여 여러 가족들과 같이

고인의 생전의 신앙생활과 교회와 사회에 끼친 모든 은덕을 추억하면서 하나님께 추모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묵도: 1:4~7 신앙고백: 사도신경 찬송: 488(539)

기도: 8:27-30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병든 사람들은 고쳐주셨고, 눈먼 사람은 보게 하셨고,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기도 했습니다.

리고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를 한 마디로 잔잔케 하시기도 하시고 물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심지어는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퍼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아주 훌륭한 선지자와 같은 그런 분이라는 말입니다.

기적적인 일을 하고 사람들을 가르쳐 주시는 특별한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을 진실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질문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기도 하고 함께 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며, 예수님께 묻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상한 선생님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과 살았습니다.

베드로가 대답을 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베드로의 대답이지만,

모든 제자들의 대답 이였습니다.

이 말은 주님은 특별한 선생님 이상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메시야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갈망하고 기다리던 구원자인 것 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예언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시며, 곧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보면 무리들과 제자들의 고백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훌륭한 선지자라고 여겼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시고 구원자이시고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무리들과 제자들의 대답이 달랐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기적적인 일을 경험했지만, 제자들은 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했습니다.

무리들은 기적을 보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기적을 행하시기 이전부터 예수님을 알았고 함께 동행 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보다 먼저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백이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주님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고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니의 추모 기일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제자들처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영혼을 구원해주시는 참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이후의 모든 삶은 그 고백에 어울리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찬송가를 들여다보시며 조용히 찬송하시고, 늘 기도하시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시고 헌신에도 참여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시고 늘 친절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삶이 어머니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수 있으셨던 이유는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사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하셨던 예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좋으신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머니처럼 제자들처럼 살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하나님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우리 마음에 이러한 고백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혹시 아직 이런 고백이 진실로 나오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머니의 추도예배를 드리며 어머니의 믿음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곧 먼저가신 어머니의 깊은 바램과 소원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 고백에 어울리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우리의 남은 삶에서 나타나야 할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는 모습인 것이지요.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주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시고, 주님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품에 안겨 사십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저 세상에서도 주님과 살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모든 가족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머니처럼 고백하고 살아서 영원한

천국의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불러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하시고 남은 삶을 이 고백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서

먼저 가신 어머니의 믿음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4. 9. 10(8.17)추모 2주기

기 도:같이 머리 숙여 기도드립시다.

산자와 죽은자의 주님이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죽음과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도,

영원한 희망을 갖게 하시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언제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소망을 갖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양순덕집사님을 불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신 그 날 이어서,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여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故人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시고,

우리 유족들에게 슬픔을 이기게 하신 일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나이다.

사랑의 하나님! 고인의 유족과, 고인과 관계된 모든 이들을, 믿음 안에서 살아 갈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용서의 하나님 아버지 ! 우리가 고인을 통한 아버지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없어,

그 뜻을 펴지못한 우리의 부족을 고백합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고인에게 다하지 못한

모든 정을 생각하며, 우리의 허물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 여기 우리들은, 고인이나,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영원한 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고인의 아름다운 삶을 영원히 이어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널리 펴 가도록,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추모예배 6.-어떤 삶을 살아야하나 (16: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찬송:235(222) 242(233) 488(539) 370(455) 310(460)

묵도시:고후5:1~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는 세상을 믿고 살았습니다.

사람을믿고, 돈을믿고, 명예를믿고, 세상지위를믿고,또 친구를믿고 살았습니다.

아내는남편을,남편은아내를,자녀는부모를믿고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부모가 떠나고, 남편이 내곁을 떠나고, 아내가떠나고,

친구가 떠나면 우리는 슬퍼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들은 어차피 언젠가는 우리곁을 떠날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세상에 있는한 우리는 누구도 죽음이란것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없으며 영원히 함께하지는못합니다.

때가되면 아무리친하고 가까운사이라고해도 우리모두는 헤어질수밖에없습니다.

인생은 존귀한 존재이지만 땅 위에서 한번목숨이 끊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짧은 세상에서의 나그네인생살이동안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영원한 저세상에서의

삶의 질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머님의 1주기 기일을 맞이하여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어머님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 세상을 떠날 것으로 생각한 욥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먼저가신 어머님께서 살아있는 우리 후손들에게 하시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잘 새겨듣는 것이 어머님께서 하늘나라에서 후손들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그 마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1.어머님께서는 먼저우리들에게 애들아 사람에게는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 있단다.라고

알려 주십니다.

지상에서 여행하는 사람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여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만 인생의 마지막

여행이라 할 수 있는 죽음으로의 길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요, 가는 길만 있을 뿐

돌아오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대상 29:15)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우리의 조상들처럼 나그네로 살아온 세상의 삶은 그림자같이 머무름이 없이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인생길이 영원 할 것처럼 우리는 착각하고 살지만은 성경은 우리의연수가

70 이요 강건하면80 이라고 하는데 100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잠시인 것입니다.

흔히들 세월의 흐름의속도가 나이에 비례 한다고 합니다.

10대에는10Km30대는30Km50대에는50Km70대는70Km

먼 길 같아 보이는 우리의 나그네인생길이 지나고 보면 잠시인 것입니다.

내 나이70, 70년의 세월을 언제 걸어왔나 하지만 지난세월들이 엇 그제 같은데 앞으로

살날들이 70Km 이상으로 달려가면 얼마나 남아 있겠습니까?

모두가 비켜가고 싶은 죽음이란 것이 기다리는 곳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라는 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도 하지만 모든 기회가 사라지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 합니다.

사람이 개과 천사하는 것도 살아있는 날 동안만 가능할 뿐, 이 죽음의 문을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지난인생살이에 대한 평가와 심판만 있을 뿐임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어머님께서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도, 언제나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니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바르게, 무엇보담도 하나님을 잘 믿고 살아야한다고 일러주시는

말씀을 꼭 마음에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어머님께서 오늘 우리 후손들에게 일러주시고자 하는 말씀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날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이다.”라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人命在天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오래 살려고 몸부림친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요,

빨리 죽으려 해서 빨리 죽는 것이 아닌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는사람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때문입니다.

영원할없는 세상의 나그네 삶의여정가운데 하나님을 믿기만하면 짧든 길든세상의가운데도

늘 함께동행하여주시고 사후의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하는삶이

약속되어있는가하면 세상에서 인연을 갖고헤어짐을 슬퍼했던사람들도 예수를믿기만

했다면 모두 천국에서 만날 수있기 때문입니다.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목숨은 하늘, 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귀한 것인 줄 알고, 나고 죽음에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원망하지 말 것이며. 오직 자신의 삶은 자신에게 맡겨진 것이니만큼, 단 하루를 살더라도 떳떳하고

바르게 열심히 살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이 사실은 분명히 알려주어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보람 있고 의미 있도록 살게 지도하는 것이 어머님의 마음을 편케 해드리는 길이요,

어머님에 대한 최대의 효도가 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세 번째로 오늘 어머님을 추모하면서 꼭 기억해야 활 것은 우리후손들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하늘에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서 이 짧은 세상에서도

잘 살아야 하겠지만 영원히 사는 죽음 이후의 삶에서 영생복락을 기약 받으라는 신신당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길에는 영생으로 가는 좁은 길이 있고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두길 중에 영생으로 가는 생명 길을 선택하고 그 길로 가야할 것입니다.

때문에 이 세상에 있을 때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것은 큰 축복이며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부모는 사나 죽으나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계심을 성경 누가복음16:19~31

부자와 거지나사로비유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색옷과 고운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연회를 즐기며 예수를모르는 부자와 그 부자가 먹고 버리는

쓰레기나주어먹고 살며 예수를 믿었던 나사로라하는사람이 어느 날 둘 다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객관적으로 보면 부자는 행복했고 나사로는 불행했다고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의 내면의 삶은 정반대였습니다.

부자는 늘 먹고마시는 연회를 즐기지만 마음은 공허했고 음식 찌꺼기나 주어먹는 나사로의

비참해보이는 삶의 내면에는 예수님이 함께하시기에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사후에 정해진 천국과 지옥으로 간 두사람의 영혼은 어떻게되였을까요?

예수를 모르는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중에 눈을들어 멀리 아브람의품에 있는 나사로를보고 나를긍율히

여기사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서늘하게 해달라고불꽃가운데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얼마나 뜨거운 지옥의 불꽃가운데서 목이말랐으면 생전에 집앞에있던 거지나사로에게 물방울로

목을 적셔달라고 하소연을 하겠습니까?

또한 부자는 세상에 예수를 모르는 내 형제들이 다섯이나 있으니 그들이 예수를 믿고 이 지옥에

오지 않토록 해달라고 브람에게 간청을 하지만 지옥과 천국은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죽은 후에는

어찌할 수 없다고 모두 거절을 합니다.

짧은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영혼의삶을 결정한다는것을 기억하시기바랍니다.

정말 오늘 이 기일에 함께한 후손들이 조금이라도 어머님을 생각하고 어머님에게 효도하고자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머님의 마음을 편케 해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는 자식이 잘되면 자신은 괴로워도 기뻐하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산해진미를 입에 넣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맛을 모르는 것이지요.

어머니는 90평생을 단 하루도 병원에 누어있는 날 없이, 허리가 아프고 불편해도 진통제로 해결하시고,

한 푼 이라도 돈이 되는 일이 있으면 불편한 몸으로도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신 건,

자신이 좀 힘들고 괴롭더라도 자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구차하게 손 벌리지 않으려는

자신보다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에서 마지막가시는 죽음마저도 평소 기도하신대로여러 사람에게 추한모습 보이지 않고

자식들 폐 끼치지 않고 가게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신대로 오곡백화가 익어가는 풍요로운

가을날에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시여 어머님을 천국으로 불러 가신 것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우리후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십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 길을 선택하여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꼭 천국에 올수 있어야한다고

우리 모두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나그네인생길에 낙오되지 말고 구원받고

영생하며 사람에게 전도하여 천국의 상급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3. 9. 21(8.17)추모1주기


추모예배.5-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라(요14:1~4)


참고:16:19~31. 11:1~12 찬송291. 534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는 세상을 믿고 살았습니다.

사람을믿고, 돈을믿고, 명예를믿고, 세상지위를믿고,또 친구를믿고 살았습니다.

아내는남편을,남편은아내를,자녀는부모를믿고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내곁을 떠나고 아내가떠나고, 부모가 떠나고 친구가 떠나면 우리는 슬퍼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들은 어차피 언젠가는 우리곁을 떠날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세상에 있는한 우리는 누구도 죽음이란것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없으며 영원히 함께하지는못합니다.

때가되면 아무리친하고 가까운사이라고해도 우리모두는 헤어질수밖에없습니다.

그렇다면영원히 함께할없는세상에서 우리는어떻게 살아야것인가??


1.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라.

오늘본문은 예수님이 세상에있다가 떠나는것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하신말씀입니다.

너희는마음에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믿으라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떠나지만 영원히 떠나는것이 아니고 다시세상에오신다고 했습니다.

단지 이 세상을떠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 완전히 떠나는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고계십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염려근심걱정두려움들이 있지만 죽음만큼 두렵고 무서운것은 없을것입니다.

순간의 판단의 착오로 스스로 목숨을끊는 자살이란 것도있지만 죽는다는것은 모두들 싫어합니다.

그것은 죽음뒤에 다가올 일들을 알없기때문입니다.

허나 죽음뒤의 다가올 일들을 미리있고 천국으로 약속이되어 있다면 두려워 할없이 사는길이있습니다.

세상에서 걱정하지않고 죽음앞에 두려움없이 사는길은 바로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사람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때문입니다.

영원할없는 세상의 나그네 삶의여정가운데 하나님을 믿기만하면 짧든 길든세상의가운데도 늘 함께동행하여주시고 사후의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하는삶이 약속되어있는가하면 세상에서 인연을 갖고헤어짐을 슬퍼했던사람들도 예수를믿기만 했다면 모두 천국에서 만날 수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않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고아나 소년소녀가장 또는 일찍가족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혼자사는 사람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동정합니다. 그러나 그렇지않습니다.

아무리 많은식구가같이살고 행복하게 사는것 같아도 그래서 의지할 사람이많은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을 믿지않으면 나중에 그 사람은 영원한 고아가됩니다.

따라서 정말불행한사람은 하나님을 믿지않는사람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사람은 세상사람이다 떠난해도 외롭지않고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2.하나님과 함께하는가정

오늘 추도예배를드리는우리모두는 하나님을 믿고의지하는가정의시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다소 외롭다 해도 하나님이 늘함께하심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기쁨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야합니다. 예수를믿고 세상을 떠난사람은 나중에 다시만날 수있기에, 잠시헤어지는 것이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16:19이하에 보면 부자와 거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자색옷과 고운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연회를 5-2

즐기며 예수를모르는 부자와 그 부자가 먹고 버리는 쓰레기나주어먹고 살며 예수를 믿었던 나사로라하는사람이 어느 날 둘 다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객관적으로 보면 부자는 행복했고 나사로는 불행했다고 보일 수 있겠지만 그들의 내면의 삶은 정반대였습니다.

부자는 늘 먹고마시는 연회를 즐기지만 마음은 공허했고 음식 찌꺼기나 주어먹는 나사로의 비참해보이는 삶의 내면에는 예수님이 함께하시기에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사후에 정해진 천국과 지옥으로 간 두사람의 영혼은 어떻게되였을까요?

예수를 모르는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중에 눈을들어 멀리 아브람의품에 있는 나사로를보고 나를긍율히 여기사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서늘하게 해달라고불꽃가운데서 괴로워하는모습을 보게됩니다.

얼마나 뜨거운 지옥의 불꽃가운데서 목이말랐으면 생전에 집앞에있던 거지나사로에게 물방울로 목을 적셔달라고 하소연을 하겠습니까?

또한 부자는 세상에 예수를 모르는 내 형제들이 다섯이나 있으니 그들이 예수를 믿고 이 지옥에 오지 않토록 해달라고 아브람에게 간청을 하지만 지옥과 천국은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죽은 후에는 어찌할 수 없다고 모두 거절을 합니다.

짧은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영혼의삶을 결정한다는것을 기억하시기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오신다고 한 것처럼 먼저간식구들은 다시만나게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납니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가지 믿음생활을 잘하는 일인 것입니다.

인생은 덧없는것임을 생각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보다열심히 충성되이 살아가는 우리모두가되시기바랍니다. 3.믿음으로 사는

11:1~12에서 믿음에 대한 예화가 나옵니다.

믿음은 바라는것들을 이루는것이고,보이지않는것들을 증거보이는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가 지어진것을 믿는것이라고했습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에녹은 하나님을 늘 기쁘시게하므로 죽음을 맞지않고 하늘나라에 올라갔으며, 노아는 보이지않는 경고에 방주를만들므로 의의상속자가되었으며, 아브라함은 부르심에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라 부름을 받고, 100세에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아들을 낳고 그의자손이 해변의 모래알과같이 많으리라는약속을 이루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귀하고 값진 젓입니다.

허나 이 믿음은 거저얻어지는것이아니고 많은 인내와 절재,순종과 행함이 요구되는것입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해 나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가치의 기준을 두어 내 생각이 옳고, 내가 하자는대로 해야하는가하면, 나만 잘 먹고, 소유하고 누리기를바라는 그릇된사고와 생각은 믿음에 저해가되는것들이기에 과감히 버릴아는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것입니다.

내가소유한것이 비록 부족하여도 믿음이,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믿게하고, 하나님이 늘 나를인도하심을 믿게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창조주이신 아버지의품에 살아서는 물론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수있다는것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며 예수믿는것이 자랑스러울있기에 오늘의적은 불편함은 기쁘게 감수할있는것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예수믿는사람으로서의 승화되어지는 삶을통해서 우리 모두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다해도 하늘나라에서 다시만날 수 있기에 슬퍼하지않아도되는것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보다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믿음의 길을가시기를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추모예배.4-세상에서 얻어지는것은헛된(1:2~3)

 

하나님께서는 시90:10에서우리의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건해서 7~80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이세상을 떠나는 날 걸어온 날들을 돌아볼 때 걸어온 세월의 날들이 후회스럽고 부끄러움뿐인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년 수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탐욕으로 인해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런 인생길을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메스컴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양심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말을 합니다.

나 하나 잘 살기위해서 남을 속이는 것은 다반사고 협박하고 위협과 위해를 가하고 목숨까지도 해치는가하면 부모 자식간에도 살인극이 벌어지는 것들까지 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들은 세상 것에 취해 세상 것만을 탐닉하는 자들의 허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부끄러운 일들 인 것 입니다.

세상 것에 취해있는 자들은 마치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 처 럼 물질과 명예와 지위를 쫒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치 불을 쫓아다니다가 결국 그 불에 타 죽고 마는 불나비와 같이 앞뒤 가리지 않고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해서 지옥으로 지옥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은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하나를 얻고 나면 둘을 갖고 싶고 둘을 손에 넣고 나면 셋 넷을 소유하고픈 것입니다. 이 탐욕의 허상을 절재하지 못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여 달리다보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좀먹어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결국엔 껍데기만 남아서 탐욕에 치여 넘어지고 말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솔로몬의 고백 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온갖 부귀와 명예와 권세를 한 몸에 지녔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의미로 보나 모든 것을 소유한 행복한 사람 이였으며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았고 그가 누리는 축복의 그늘에 잠시라도 쉬어가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알고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그의 얼굴에 주름이 하나둘 늘어갈 때 지평선멀리 기울어가는 석양빛마냥 허망하게 사위어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솔로몬왕은 깊은 탄식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역대 왕 중에 가장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왕 이였습니다.

상아 궁에서 기름진 음식과 금은보화로 치장하고 풍유를 즐기며 처첩을 거느리고 명예와 지위와 부를 만끽한 대표적인 인물 이였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의 호홉이 끊기는 순간 돌아갈 참으로 허망한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왕은 만일인간의 내면 깊숙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창조주의 뜻을 좇아 그분의 나라를 고대하며 그분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겸허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실로 인생은 좌절과 허무뿐임을 절실하게 깨달았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탐욕은 짧기만 한 우리의 삶을 더욱 허무하고 허탈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모두는 한생애중 가장귀중한 시점에 와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여겨 질것입니다만 그러나 세월은 머물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가서 멀지 않은 장래에 저만큼의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며 혹은 후회도하고 탄식도 하게 될 것입니다만 지나버린 세월은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을 가리켜서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 인생이요 아침이슬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한 생애를 그려보면 멀고멀기만 한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참으로 짧고 짧은 것이 우리 삶의 여정의 길인 것입니다.

그 짧은 인생여정의 길 중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들 모두는 먼저 부름을 받고 나중에 부름을 받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똑같은 하나님이 자녀로 나그네인생 여정의 길을 마치는 그날까지 모두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성심을 다하기를 주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우리가 땀 흘려 노력하고 일할 때 일한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얼굴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이 우리들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가 주어지고 각기 다른 소명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각자의 그릇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결코 후회 없는 길을 걸어왔다고 후일 자신의 가치를 평하게 될 것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주어진 여건과 환경이 주위사람들보다 불리하다고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각기 다른 그릇으로 지으시고 또 사용하시길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줄이 잘다있어서 남보다 출세의 가도를 먼저 달릴 수도 있지만 영원할 수 없는 것이며 부모의 유산을 많이 받아 풍요롭다고 해서 그 유산을 끝까지 지키는 자 별로 만치 않으며 많은 물질을 갖었다고 해서 행복한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행복의 척도가 결코 물질이나 명예나 지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통해서 얻어지는 물질 명예 지위 등이 삶의 길에 윤활유와 같은 활력소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삶의 목표요 삶의 전부가 되여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 왕이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잠시 살다 가는 이 세상의 삶이 인간에겐 다가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짧은 삶을 마치는 날 발버둥 치며 얻고자 싸웠던 모든 것은 헛된 것이 되고 우리는 빈손으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나 우리의 영혼은 영원토록 하늘나라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은 나름대로 활동하고 움직이며 결과적으로는 온갖 수고를 다하고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순환을 반복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식과 평안이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해 아래서 우리의 수고가 유익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죄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고달프고 허무함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 것만을 쫓다가 인간의 욕심만을 쫓다가 나그네 삶을 마치는 날 지옥으로 떨어지며, 후회하지 않을 현실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한번 각성하는시간이 되셨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귀여운펜더-김병기

추모예배.3-지혜자의마음은초상집에있다.7:1~4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삶을 보면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원히 자신이 죽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운명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의1절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하고 있는데 인생사에 있어서 출생은 모두가 빈손으로 벌거벗은 대로 비슷하게 태여 나지만 삶의 과정에서 어떻게 살고 어떤 이름을 얻느냐에 따라서 죽는 날이 출생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하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사람 ,하나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은 태여 나면서보다 삶의 과정에서 변화되고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4절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음이 모두 연락하는데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리고 세상의 부귀영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을 추구하기에 바빠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운명의 날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는 네가 알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점쟁이도 저 죽을 날을 모릅니다. 누구도 내일 일을 모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 보면 어떤 사람이 굉장히 큰 회사를 차려 놓고 으리으리한 사장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물건을 팔러 오기도하고 인맥을 통해 부탁을 하러 오기도하고 사업상 의논하러 오기도하고 친구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가족들도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이런 각양각색의 사람들 중에 또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 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이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오늘 살아 있을 때 내일을 위해 준비 하십시오하고 권면했습니다.

이 말에 그 사람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여보시오 나는 지금 대단히 바쁩니다. 내 사업이 굉장히 바쁘기 때문에 당신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시간이 있을 때 얘기합시다. 그러니 지금은 제발 나가주시오라고 대꾸를 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 후에도 예수님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수차 그 사람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승사자가 와서 그의 등에 손을 얹고여보시오 이제 시간이 다되었으니 나와 같이 가십시다.”라고하자 그때도 역시 그 사람은나 지금 대단히 바쁘니까 당신과 얘기할 시간이 없소 다음에 오시오라고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친구도,사업가도,장사꾼도,예수님도아닌 저승사자가 서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겐 다음이란 없다 오늘 너를 데리러 왔으니 가자그때서야 그는 놀라서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 이였을 까요? 3-2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14:16절 이하에서 비유를 들어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사람이 큰 잔치를 차려놓고 난 다음 종들을 보내서 여러 사람에게 잔치에오라고 초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오자 한사람이 말하기를나는 논밭을 샀으므로 그곳에 가봐야 하기 때문에 잔치에 못가겠다고 사양을 하고 두 번째 사람도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을 하러 가야 되므로 잔치에 못 참석하겠다.”고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도나는 장가를 들었으므로 못가겠다고하면서 사양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화가 나서 종들에게산이나 들이나 골목으로 다니며 가난한자, 병든 자, 눈먼 자, 불쌍한 자들을 불러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잔치 자리에 나가보니 과연 병들고 불 쌍한 사람들이 잔치 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비유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돈벌고 쾌락을 누리 는데 두기 때문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 배부르고 등 다습고 환경이 좋은 것만 추구하므로 생명의 유한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지불식간에 죽음이 다가오면 허무하게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눈먼 사람들은 인간생명의 유한성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주님이 부르실 때에 언제나 순종하여 내세를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유한성을 깨달은 사람은 하루도 헛되게 살수가 없습니다.

질병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하루는 하루가 아닌 한달이 되기도 하고 1년이 되기도 할 만큼 11분이 아깝고 소중하고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들로 남은 생을 채워가며 하루하루를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에는 탐욕이나 허영이나 거짓이 들어찰 리가 없습니다.

이처럼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는 동안 충실히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도 그것에 취해 살지 않고 겸허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갑니다.

4:14절에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생명의 유한성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이 땅에 영원히 살수 없습니다.

잠깐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이 잠시 왔다가 어느 날 홀연히 너나할 것 없이 모두는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기에 육신을 덧입고 세상에 사는 동안 잔치 집만 찾아 좋은 것만 욕심 부릴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이 세상을 떠난 후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축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미국의 케네디대통령이 유세장에 가는 길에서 괴한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절대 권력의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날 줄을 누가 감히 생각인들 했습니까?

세계의 촉망을 받던 케네디나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 대통령 그 자신들이 잠깐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내세의 준비보단 세상의자랑 인간의 욕심을 쫒아 잔치 집을 찾기에 만족하다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는 날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날과 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아십니다.

허나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으로서 소명을 다하며 잔치 집을 찾기보단 헐벗고 굶주린 자 병든 자를 위하고 하나님사역에 순종했다면 우리들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언제 거두어가시든 조금도 두려 울게 없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자세는 전혀 다릅니다.

믿는 자들은 죽음이 눈앞에 와도 두려워 하지안고 운명 후에도 마치 잠을 자는 것 같이 평온합니다.

허나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음 앞에서 심히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시신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유한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결과인 것입니다.

생명의 유한성을 깨달아 알고 영원한 생명을 간절히 사모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을 사셔서 후일에 모두하늘나라의 백성으로 당당히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귀여운펜더-김병기

추모예배.2-허무한 인생 1:2-11 

 

여기 일국의 왕으로서 세상의 온갖 부귀와 명예와 권세를 한 몸에 지녔었고 누구도 부럽지 않는 초 호화스러운 한 생애를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떤 의미로 보나 모든 것을 소유한 행복한 사람 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았고 그가 누리는 축복의 그 그늘에 잠시 쉬어갈수 있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그의 눈가에 잔주름이 하나둘 더해갈 때 지평선 저 멀리 기울어가는 석양빛마냥 허망하게 사위어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왕은 깊은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라던 모든 재물을 소유했고 지상에서의 최고의 권력의 통치자로 그의 명령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는 무소불의의 권위 위에 굴림하며 원하던 모든 쾌락을 다 맛보았고 하고 싶은 일을 다 성취한 사람 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들은 자신의 호홉이 끊기는 순간 로돌아갈 참으로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왕은 만일 인간의 내면 깊숙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창조주의뜻을 쫒아 그 분의 나라를 고대하며 그분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겸허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실로 인생은 좌절과 허무뿐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삶의 허무함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우리의 삶은 나그네길이다.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 이니 이다 나의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일백 삼십년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험악한 나그네 길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나그네의생활이 무엇입니까?

한곳에 정착해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잠시 머물다 어디론가정처없이떠나가는것이 나그네의 삶인것입니다.

나그네의 삶에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며 떠날 때 가지고 갈수 있는것이 어떤것들이 있겠습니까?

본문의 3절에서 사람이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하냐고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의 삶 가운데 해아래서 수고한 수고의 노고가 나그네 길을 벗어나면 아무런 쓸모없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4-5절에서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나그네의 한 세대가 오래 머물지 않고 가면 또 다른 한 세대가 그곳으로 오고 해는 다시 뜨고 지는 이치와 우리인생의 삶이 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불가의 중에도 인생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과 같은 것이요 죽음은 그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갇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코 길 수 없는 나그네 길의 삶을 그린 인것입니다.

103편에서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고 했고 4:14 너희는 잠깐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삶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잠깐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으니 세상에서 백년을 산다고 한들 그 세월은 잠깐 지나고 마는 것입니다.

2.우리의 삶은 욕심 투성이다.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2-2 오늘 본문의 솔로몬을 비롯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한평생 쌓아놓은 명예 지위 부귀 이런 것들을 가지고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 라고 했습니다.

함에도 사람들은 오래오래 아니 떠나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에 욕심을 더하다가 그 짐 다 짊어지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짐에 눌려서 질식을 하기도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나그네 길에 쌔 까만 먹칠을 해서 세상에 씻지 못할 오욕과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의 나그네 여정을 채우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하루해를 짧게 여길지라도 만족함을 얻지 못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본문8절에서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라 고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을 채우고자 한다면 나그네길이 끝날지라도 만족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탐욕의 마음을 비우고 영원한 삶의 주체가 되시는 주님을 마음가득 채운다면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의 그 어떤 보화보다 클 것입니다.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하여 구하지 말라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받은 하늘나라의 백성들은 먹고 입고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므로 염려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맡기면 되는 것을 우리는 맡기지 못하고 그것을 우리스스로 해결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늘 허기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3.우리의 세상의 삶은 잊혀 진다.

본문11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세대도 그 후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고했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 직계라고 할 찌라도 나와 멀어지면 그분들의 생각조차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하나하나 잊혀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 큰 인물들도 세상을 떠났을 때는 세상이 온통 난리법석을 떨며 애석해하다가도 시간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잋혀 지고 그 사람이 없어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겠습니까?

나의 나그네삶이 끝난 후 시간이 지나면 내 주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하나 둘 지워지고 없을 것입니다.

내 주위에서 먼저 떠난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둘 지워 지듯이 말입니다.

솔로몬의 독백과 같은 헛되고 헛되다는 고백은 하나님을 배제시킨 세상속의 삶은 허무함 그 자체이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만이 참된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4 내가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솔로몬이 고백하는 것과 같이 세상에서 좋다는 모든 것을 소유 했다고 할 찌라도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달아서 잊혀지고 없어질 세상의 욕심을 채우기보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갈망하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귀여운펜더-김병기

추모1-인간은 죽음이 끝이 아니다.(25:7~11)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빈손으로 왔다가 나그네 여정의 피곤한 생애의 길을 걸어서 언젠가는 모두 다 떠나가게 됩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고 아무리 크고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가지고 천하를 호령하며 살았다 할지라도 때가되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혹은 짧게 혹은 길게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어절 수 없이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 우는 아브라함도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나이 많고 기운이 진하여 죽었다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생애를 조명해 보며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과 (먼저 가신분의 업적) 을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인생의 황혼기라고 할 수 있는 75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조상 대대로 정들어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는 것을 창 12: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창12:2~3에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때가 되면 때론 일찍도 부르시고 때론 아브라함과 같이 늦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우리에게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28:2~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 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라고했습니다.......>>>>>

허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에게도 늘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 엿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브라함에게도 고난의 가시는 수시로 찾아와서 아픔을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흉년이 들자 창12:11 이하에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애굽의 왕 바로에게 뺏기게 되는 첫 번째 고난에 처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첫 언약에 불평 불만하지 않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아내를 구해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리를 잡어 갈 때 하나님은 창13:14~17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 진데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동서남북의 땅과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주리라고 다시 약속을 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순종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아브라함과 같이 많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32.00가지 약속의 말씀) 하나님은 약속 하신대로 100세의 아브라함에게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는 기쁨을 1-2

21장에서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약속을 꼭 지키는 식언치 않으시는 것을 우리들에게 교훈으로 주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좀 잘되면 내가 잘나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잘 되였다고 잘못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간의 능력과 한계는 하나님 앞에서 극히 미미한 존재일 뿐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내일 일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극히 미약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했던 복을 오늘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늙어 100세 얻은 아들!!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럽고 또 귀하겠습니까?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바치라고 하시는 마른하늘에 청천 벼락과 같은 말씀을 창22: 이하에서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비인 아브라함에게 100살에 낳은 자식을 직접 산으로 데리고 가서 각을 떠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각을 뜨는 것은 죽여서 내장을 모두 꺼내 버리는 것이고 번제는 불에 태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독자아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죽여서 내장을 모두 꺼내버리고 불에 태워 제사를 지내라는 참으로 잔인한 일을 당신이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직접 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선택받은 저와 여러분들 또한 이 세상을 살자면 가시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찢기고 상처가 나고 것 잡을 수 없는 참담한 일을 당하는가하면 아브라함과 같이 주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아픔의 시련과 시험의 때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큰 아픔을 만나면 그로해서 좌절하고 번뇌하고 낙심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는 순간 창 22:12 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나주시고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 하는 줄을 아노라.....>> 칼을 들어 독자 아들을 죽이려는 아비의 머리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들을 죽이기 위해 사흘 길을 아들을 끌고 산으로 오르는 아비의 참담한 심정!!!.....>>>

수없는 번뇌와 갈등 번민 속에 할 수만 있다면 열 번이라도 아들대신 자기 자신이 죽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100세에 아들을 주신분이 달라고 하면 드려야 되고 드리면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창조주)......>>>

때문에 인간의 갈등을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고 칼을 든 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은 그의 사후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큰 믿음의 사람도 연수가 다하면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기에 향년 175세에 그의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갔다고 했습니다.

신약의 눅16: 이하에서 보면 아브라함의 얘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세상에서 많은 제물을 가지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도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죽어 음부(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보니 하늘나라에 천사들과 함께 있는 아브라함을 보고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는 하소연을 하는 것을 봅니다.

죽은 아브라함이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근심걱정 없이 살아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1-3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년 수가 70 이요 강건하면 80 이라고 합니다.

7~80년을 세상에 사는 것은 긴 세월같이 생각 될 수 있겠지만 세월은 잠깐에 흘러가 버립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우리인간에게는 영혼이란 4차원의 삶을 주셔서 4차원의 영원한 삶을 살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믿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니고 우리를 기다리는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에서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삶의 궁극적인 포인트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에게 맞춰질 때 어렵고 힘들거나 감당하기 힘겨운 시험이 온다 할지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때마다 체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 육신의 쾌락과 즐거움, 허영과 평안함에 취해 가식의 믿음의 허물을 뒤 집어 쓰고 이원화된 믿음의 삶을 산다면, 오늘 세상의 삶은 잠시 즐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내세의 영원한 고통의 세월을 피할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 모두 이유 없이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잠시 머물다 가는 육신의 안이함보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4차원의 삶을 준비하는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의 생활이 되여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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