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성경공부- 33.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 본문 : 렘1 : 4-10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근처 아나돗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나 20세 전후에 부름을 받아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까지 가장 비참한 시대에 예언한 선지자였다.

1.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때의 상황
1) 히스기야가 죽은 후 므낫세의 악정이 계속되고 요시야의 개혁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악한 왕이 다스리는 암흑 정치가 계속되었다.
2) 하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23: 11)고 말씀하셨으며,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23:16)고 하셨다.

2. 예레미야의 생애
1) 예레미야는 유다가 장차 망할 것이기 때문에 바벨론에게 항복을 하라고 예언하므로 매국노라는 누명을 써야 했다.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는 눈물도 많이 흘려야 했다.
2)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라고 외쳤고, 고향 아나돗 사람들도 예레미야를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였다. 심지어는 고향 친척들도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었다.
3) 예레미야는 가장 고독한 사람이 되었다. 선지자나 제사장 중에도 예레미야와 행동을 같이 하는 자가 없고, 한 사람의 동정자도 없었다. 고독한 생활 속에서도 내조자가 있으면 위로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렘16:2-3)고 하셨다.

3. 예레미야의 신앙
1) 예레미야는 천성적으로 부드럽고 점잖은 성품을 지녔으며 동정적인 사람이었다. 이와 결정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내용은 그가 선포해야 했던 사명으로서 무자비하고도 엄격한 심판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사명을 위하여 강철과 같이 강하고 단단하며 흔들리지 않게 만드셨다(1:15, 15:20).
2) 맨 처음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는 기뻐했다(15:16).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들은 금방 그의 마음에 고통과 고난의 근원이었다(15:17 하). 그는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들이 그의 가슴에 불꽃처럼 타올랐다(20:9).
3) 그는 다른 누구보다 자기의 백성을 더 사랑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에 대하여 재앙을 예언하도록 강요를 받았으며, 그래서 그는 자기 민족의 적이 된 것처럼 보여졌다. 진리를 선포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증오심만 가득 찼다.
4) 주님의 명령과 자신 사이에서 예레미야는 슬픈 적대감을 느끼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지 않기를 소원했고, 자기의 생일마저 저주를 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불평들 때문에 그를 책망했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다(15:19).
5)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부름 받은 예레미야는 어디까지나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 그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하셔도 그대로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예레미야는 그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


번제단··─······· 성 막

                           

       
번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제단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놋으로 입혀졌는데
하나님의 본성을 의미하는 금으로 싸인 법궤와 달리
제단은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의미하는 놋으로 싸였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로마제국이 사용한 처형 도구인 십자가를 뜻하는 것이 아닌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제단이 네모 반듯한 것은
사람이시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똑바르게 되고 완전하게 되기 위하여 시련을 받으신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큰 비밀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비밀이기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묘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대속물이신 그리스도 위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외적인 것만을 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심판을 더 체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에 관한 詩인
시편 22편 14절 입니다

나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빠져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창자 속에서 녹아 내렸습니다

네 모퉁이 위의 뿔,  놋으로 입힘,  모든 기구를 놋으로 만듦,  제단 안의 놋 석쇠,
놋 석쇠의 네 모퉁이에 있는 놋고리 넷,   제단의 채.
이 모든 것들이 예표하는 내용들을 볼 때, 참 감사함이 있습니다

채는 단을 옮기기 위하여 있는 것인데
수레를 이용하거나 동물이 메고 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져 운반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멘... 십자가의 전파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생활의 동반자 신앙계 50주년 감사예배

조용기 목사 “민족에게 꿈과 희망 심기 위해 창간”
이영훈 목사 “50년 문서선교의 발걸음 이어 가길”

 신앙계가 지난달 7일 창간 50주년을 맞아 CCMM빌딩 루나미엘레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창립자 조용기 목사를 비롯해 발행인 이영훈 목사, 정운찬 전 국무총리, 국민문화재단 이사장 박종화 목사, 지용수 목사(양곡교회 담임), 최건호 목사(충무교회 원로목사) 등 교계 및 정계 관계자를 비롯해 이영수 장로회장 등을 비롯한 우리 교회 관계자들도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신앙계 대표이사 박장근 장로의 선포로 시작된 이날 예배는 김상길 목사(신앙계 사장)가 진행했으며 이영수 장로회장이 대표기도했고, GOOD TV 오페라단이 특송했다. 이어 초대 발행인 조용기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조용기 목사는 신학교 졸업후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 대한민국에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이 없었다며 “우리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하기 위해 잡지를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현 시대에도 필요한 것이 꿈과 소망이다”라며 신앙계가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할 것을 당부했다.
 발행인 이영훈 목사는 신앙계가 50주년을 맞은 것에 대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며 신앙의 길잡이로서 문서선교의 발걸음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을 강조했다.
 이날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종화 목사, 지용수 목사가 축사했으며 박종구 목사(월간목회 발행인)가 문서선교 50주년 신앙계의 의미에 대해 전했다.

 한편 신앙계가 50주년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함께 문서선교의 후원자로 동반자로 참여한 차일석 원로장로(전 신앙계 발행인), 벤 토레이 이사장(예수원), 김성일 장로(소설가


성전 꽃꽂이-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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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KBS 바이블 루트 01-출애굽           

                 
 


                           

인물성경공부- 32.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

 본문 : 사6 : 8-13

이사야는 "여호와의 구원"이란 뜻으로 웃시야, 요람, 아하스, 히스기야, 이렇게 네 임금 때에 예언한 선지자이다. 그는 아모스의 아들로 왕족이었으며 예루살렘 사람이었다.

1. 이사야기 소명 받던 때의 상황
1) 이사야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던 때는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이 세계 통일을 위해 유다와 싸웠고 이로 인해 당시 유대왕 웃시야가 죽던 해이다.
2) 웃시야는 왕으로서 훌륭한 면이 보일 만큼 정치를 잘하였지만 오히려 물질 문명의 결과로 신앙은 형식적으로 변하고 사회는 부패하였다. 이사야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재물은 더 이상 받으실 수 없도록 되었고, 신앙의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했다(1:10-17).
3) 당시의 사람들을 가리켜 이사야는 말하기를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지만 백성들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식을 양육하듯 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음을 지적하고 있다(1:2-3).
4)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들을 향하여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성읍이 황폐하고, 거민이 없고,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토지가 전폐할 때까지 마음이 둔하게 되고, 귀는 막히고, 눈은 감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6:9-12). 현재로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다.

2. 이사야의 신앙관
1) 나라의 위기를 본 이사야는 하나님께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불결함을 깨닫고 자신이 더러운 자임을 회개하고 숯불로 지짐을 받아 사죄의 은총을 받았다.
2) 웃시야의 죽던 해에는 앗수르와 애굽의 세력이 강하여서 유다는 어느 편에든지 그들을 의지하려는 정책이 강하였다. 이 정책에 반대하여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할 것을 계속 강조한 것이 이사야였다.
3) 북쪽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할 때 애굽의 도움을 구하였고, 유다도 역시 애굽에 원조를 청할 때 이사야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된다고 했다. 말을 의뢰하고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하지 않으면 패망한다고 이사야는 경고를 하였다(31:1-3).
4) 히스기야왕 14년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왔을 때에도 이사야는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니 두려워 말라. 그들은 철수하게 되고 그후에 거기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하리라."고 하였다(37:1-7).

3. 선견자로서의 이사야
1) 선지자는 환상의 사람이요, 앞을 보는 사람이다(삼상9:9). 이러한 면에 있어서 이사야만큼 멀리 그리고 넓게 본 사람은 선지자들 중에도 없었다.
2) 이사야는 가장 험악한 시대에 활동을 했다. 강한 나라가 이웃에 있고, 백성들은 믿고 의지하여야 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3) 종교는 형식 뿐이요, 정치는 부패하여 나라는 기울어지고, 백성들은 사치와 허영에 젖어 있었다. 이러한 때 이사야는 현재의 암흑을 넘어 미래에 빛나는 광명을 보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복역의 때가 끝나고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40:1-2)고 외칠 수 있었다. 

 


성탄절의 뜻과 유래           

             


 
성탄절의 뜻과 유래
 
 
 

 

1.성탄절(Christmas) 단어의 뜻


성탄절은 영어로 크리스마스(Christmas), 프랑스어로는 노엘(Noel), 독일어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합니다. ‘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christ 메시야)'와 ’마스(mass 예배)'가 합쳐진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크리스마스’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고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2.성탄절 축제의 유래


기독교 성립 이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탄절 축제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육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주님의 인성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교회도 성육신의 심오한 의미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동방의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사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고, 교회는 성탄절을 기쁨과 경이로써 축하하기 시작했습니다. 

 
3.산타 클로스(Santa Claus)의 유래


지금으로부터 약1,700년전- 네덜란드의 ‘니콜라스(Nicholas)’라는 사람은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한 니콜라스가 죽자 사람들은 ‘산타(saint, 성자)’라는 호칭을 붙여서 그의 선행을 기념하게 되었고 산타 니콜라스처럼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는 사람을 산타클로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가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참된 왕이요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이 성탄절의 주인공이십니다.
온전히 예수님만 경배하고 기뻐하는 복된 성탄절 되시길 소망합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대성회 역사>1987년 150만명 모인 초교파 구국기도회로 시작


미스바에 모여 기도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국가 위기 때마다 모여서 기도회 연 우리 교회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져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 대각성 기도회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했고, 승리할 수 있었다.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은 대반전의 역사를 일으켜주신 것이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 교회는 나라에 위기가 닥치고 어려울 때마다 한자리에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왔다. 이런 영적각성기도회는 우리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고, 무엇보다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우리 교회가 개최한 나라를 위한 대각성기도회의 역사는 1987년부터 시작된다. 북한의 테러위협과 학생시위, 노동쟁의로 분열과 대립이 고조되었을 때 우리 교회는 10월 3일 여의도광장에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대성회’를 열어 간절히 기도했다. 이 기도회에는 다른 교단에서도 대거 참석해 150만명이 모인 범국민 구국기도회가 되었고, 이날 조용기 목사는 영적각성을 촉구한 후 성도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시청 앞까지 평화행진을 펼쳤다.

 1989년 ‘여의도순복음교회 30주년 기념 및 구국과 통일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6월 2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88서울올림픽 후에 15만명이 모인 기도회는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 교회는 기도회를 통해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통곡하며 4시간 동안 평화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전 세계가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되던 1990년, 우리 교회는 남북통일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9월 28일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 제11회 CGI컨퍼런스에 참석중인 2000여 명의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함께 15만명의 성도들이 모여 회개하며 기도했다. 

 1991년 10월 12일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남북통일과 민족복음화 기도대성회’, 1992년 10월 2일 ‘남북통일과 민족복음화 기도대성회’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1993년 10월 15일에는 ‘교회 갱신과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대성회’를 개최해 남북종교교류와 북한동포의 신앙자유화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여 발표했다.  

 1994년 10월 3일 우리 교회는 여의도광장에서 영적 미스바 대성회를 열었다. 외국인 2500명, 국내성도 100만명이 운집하여  자연환경 살리기,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이웃, 탄압과 고통받는 이웃, 성령 재충만을 위해 기도했던 이 행사는 역사상 손꼽히는 영적각성기도회로 기록됐다. 이날 여의도광장 6곳에서 수거한 폐지와 폐건전지 판매이익금은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로 사용됐다.

 1996년 예수 그리스도 탄생 2000년을 맞아 우리 교회 성도 3500여 명이 이스라엘에 가서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 인정한 최초의 개신교 연합집회인 예수탄생 2000년 기념대축제(JC2000)를 2월 7일 예루살렘 컨벤션센터에서 31개국 5000여 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었다. 그리고 같은해 10월 18일 ‘남북통일과 영적각성을 위한 기도대성회’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개최했다.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로 정국이 불안했을 때 12만명 운집해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1998년 20세기 마지막 영적 올림픽인 제18차 세계오순절 서울대회를 9월 25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었고, 2001년 10월 19일에는 ‘새천년 국가와 교회를 위한 기도대성회’를 잠실에서  ‘지구촌에 사랑·평화 넘치게 하소서’를 주제로 개최됐다.

 2003년 1월 11일·19일에는 시청 앞 광장에서 한기총과 연합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3월 1일 한강둔치에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금식기도회’에 참여했다. 기독인이 앞장섰던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 끼 금식을 통해 헌금, 대구지하철 참사 성금으로 기탁했다. 

 2005년 10월 14일 우리 교회는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세계 평화와 민족구원을 위한 기도대성회’를 열었다. 4년 만에 열리는 기도대성회에는 10만여 명의 성도와 50여 개국 1200여 명의 해외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참석, 민족과 나라를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2006년 10월 20일 우리 교회는 한국 오순절 100주년 기도대성회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 함께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했다. 12만여 명의 성도가 참석한 기도회에서 화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2007년 10월 19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회개와 영적 각성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열렸다. 이날 12만 성도들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죄를 고백하는 회개운동’을 다시금 재현했다. 2009년 10월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세계 평화와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열렸다. 이날 울려 퍼진 기도의 메아리는 르비딤 전투의 승리를 연상케 했다.

 2011년 10월 14일 ‘한반도의 평화와 갱신을 위한 금식 기도대성회’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됐다. 논스톱 기도회로 진행된 이날 기도회에서 경기장을 가득 메운 10만명의 성도들은 한반도 평화와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기를 온 몸과 마음으로 부르짖었다.

 2013년 10월 11일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교회의 희망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되어 8만명이 참석해 기도했다. 기도대성회를 통해 모은 희망나눔기금 3억4400만원과 2억6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서울시와 경기도에 전달했다. 기금과 물품은 서울시와 경기도 내 다문화가정 아동, 북한 영유아, 해외 빈곤 아동을 돕는 데 전달됐다. 그리고 2015년 10월 16일 ‘세계 평화와 한반도 안정, 희망 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려 세계 평화와 국내 경제·사회 위기 극복을 염원하는 기도의 힘을 모았다.

 2017년 3월 1일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우리 교회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진행된 ‘3.1만세운동 구국기도회’에 참석해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진리와 자유’라는 제목으로 “예수님만이 이 민족의 희망”이라며 “우리가 들고 나가야 할 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조했다.

 성령의 시대, 우리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성령운동을 펼치고 있다. 성령운동은 회개운동에서 시작된다. 3.1만세 구국기도회 설교자였던 이영훈 목사의 설교 요지도 회개고 하나됨이었다. 성도들은 회개가 성령의 힘이 된다는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했다. 1904년 영국의 웨일즈 성령운동을 비롯해 역사에 나타난 성령운동은 언제나 개인과 시대,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켰다. 곤경에 처하고 수치스러운 시대, 기독교의 각성운동, 영적운동이 역사와 사회를 변화시켜나갈 것이다.


<3.1만세운동 구국기도회> 대한민국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50만 성도 나라 위해 함께한 ‘순수 구국기도회’
3.1절 기념, 대화합 위한 기도의 장 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억압에 항거했던 3.1절이 98주년을 맞았다.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민족의 단합운동을 세계만방에 보여준 3.1 정신을 되새기고 위기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공동주최한 ‘3.1만세운동 구국기도회’가 1일 ‘지금은 한국교회가 함께 기도할 때입니다’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세종대로 사거리부터 서울광장까지 50만여 성도로 가득 메운 이날 행사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한국 교회가 연합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한 목소리를 냈다. 하나님께 나라의 안보와 정국 안정 등을 간구한 ‘순수 기도회’였다. 
 3.1절 노래 제창과 만세 삼창 후 단에 오른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진리와 자유’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98년 전 만세 삼창을 외치던 이날에도 대한민국의 희망은 예수그리스도 한 분 뿐이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대한민국을 바꿀 것이다. 그 어떤 인간의 사상과 힘으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 구국기도회를 통해 대한민국이 바뀌고 공산 세력이 물러나 평화통일과 대통합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교연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는 “오늘은 3.1절이기도 하지만 사순절 첫날이다. 우리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생각하며 회개와 기도를 해야 한다.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나라를 회복시키고 치유해주실 것”이라고 축사를 전했다. 이날 행사는 1부 연합찬양팀의 특별찬양, 2부 국민의례 및 대회사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이 98년전 선조들의 뜻을 기리며 ‘대한독립 만세’를 재현했다. 이용규 목사(한기총 증경대표회장)는 대회사를 통해  “3.1절 정신을 되새겨 한국교회가 하나 되고 함께 기도하여 분단의 어려움과 사회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3부 구국기도회는 이태근 목사의 사회, 두상달 장로(한국기독실업인회 중앙회장)의 대표기도, 이영훈 목사의 설교에 이어 엄신형 한기총 증경대표회장, 김요셉 고시영 이태희 이강평 목사가 축복의 말씀을 각각 전했다.
 끝으로 이강평 목사(한기총 명예회장)는 “선조들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일제에 항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가슴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신앙이 오늘날 우리의 가슴에도 불붙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이 독실한 기독교 인사였으며 대부분이 다 목사나 전도사였다. 또한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중 기독교가 2%도 안 되었지만, 90%의 기독교인들이 만세시위를 참여했다. 이번 ‘3.1 만세운동 구국기도회’는 믿음의 선조들을 본받아 한국 교회에 희망을 전하고, 또한 한국 교회가 시대정신을 주도하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게 하는 기도회였다.  

 


 


 

 터키중부 아나톨리아 신이 내린 절경 버섯모양바위속교회터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고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네브쉐히르 위르굽, 괴뢰메, 우치사르 등 남한의 4분의1 크기(2만5000㎢)의

 땅이 우후죽순 격으로 솟은 버섯바위들로 채워져 있다.

 

 

 

 

젤베 야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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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바(Pasabag, Valley of the Faity Chimneys)계곡

 

버섯 바위로 유명한 곳으로카파도키아 중에서도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 중 한 바위에 세 개의 버섯이 있다하여 유명해진 세 쌍둥이 버섯바위 등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 만으로도 아름 다운 작품 사진이 나올 것 같은 곳입니다.지금은 포도원이 있으며윗쪽만 파서 은친처 및 교회로 사용한 바위가 많은데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구를 높은 곳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챠브신 전경

 

우치사르 (Uchisar)

마을의 꼭대기에 오래된 성터가 있는데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과 전원 풍경은 가히 환상적입니다.바위산을 깎아 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올라가는 입구는 내부기념품 판매소를 통과해서 올라가야합니다.지금은 조그만 마을로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많은 팬션이 있지만물이 넉넉하지 못하여 문 닫은 곳이 많다고 합니다.

 

 파샤바의주거동굴

 

챠브신 (Cavsin)

괴레메에서 아바노스로 가는 도로를 따라 3km 정도 가다보면아름다운 벌집 모양의 언덕이 오른쪽으로 보이는데 이곳이 챠브신입니다.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지금은 폐허로 변했지만 옛 교회터가 남아있습니다.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생각보다 위험합니다.아래서 올려다 보는것과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것은 천지 차이로한번쯤은 올라가 봄직합니다.이 언덕에서 산을 타고 하이킹 하는것이 인기코스인데,로즈벨리(Rose Vellay)까지 연결되어 있어선셋을 보기 위해 걸어가는 이가 많다고 합니다.

 

 

?파샤바의 버섯바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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