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28일 2차 인티파터(팔레스타인 무장봉기)로 인하여 한 동안 여리고는 일반인들이 출입하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 2004년 10월 아라파트 사망이후 팔레스타인에는 새로운 지도자 아부마젠이 선출되었고, 이스라엘에 매일같이 일어났던 테러도 멈추었다.
이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새로운 평화의 기운이 감돈다. 웨스트 벵크와 가자지구 곳곳마다 보안장벽이라는 높이 9M 콘트리트 장벽이 세워지기는 했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좋은 분위기 인 것 같다. 이제는 여리고를 일반인들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에 위치한 여리고는 해저 258m지역이다. 만년 된 구조물이 발굴되어진 것으로 미루어 도시역사를 만년으로 생각한다. 연중 강우량이 100mm에 불과한 사막과 농경지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지만 주변에 6개의 샘을 통하여 충분히 물이 공급되므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동쪽으로 28km 가량 떨어져 있고, 요단강은 동쪽으로 9km정도 떨어져 있다. 처음으로 성벽이 건축 된 것은 이 도시를 열망하는 이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수아의 정복이 주전 1,400년 전에 있었고, 이후 주전 586년 바벨론에 멸망될 때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눈을 뽑힌 채 잡혀가고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후에 페르시아의 행정도시가 되었으며, 주전 336년 알렉산더의 권력자들에 의해 물이 독점되자 점차 도시가 황폐하게 된다. 헤롯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세를 주고 샘을 사용하다 그녀의 사후 여리고를 차지하고 겨울 별장을 건설한다.
헤롯은 여리고 언덕 위에 어머니를 기념한 요새를 만들었는데 “싸이프러스" 라고 부른다. 헤롯 사후 아켈라오에게 소유가 넘어갔다. 아켈라오는 종려나무를 많이 심어 소득을 얻었다. 유대 전쟁시 로마 10군단의 본부가 되었고, 비잔틴 시대에는 수도사들이 살았고, 순례객들이 몰려오기도 하였다. 십자군시대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되는 것은 1차 세계대전 후이다.
여리고는 하나님께서 홍해와 요단강을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인도하셔서 처음으로 정복케 하신 도시이다. 이스라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홍수기인 요단강을 건너서 이 도시에 접근하였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본 사람은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다.
학자들 중에는 라합은 기생이 아니고, 달신을 섬겼던 여리고 신전에서 봉사하던 여 사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라합의 신분이 어떠한 가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위치보다는 그 사람의 믿음의 모습이다.
언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도 라합은 들려오는 소문의 소리만 듣고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참 귀하게 보인다.
하나님은 상천하지에 오직 한 분뿐임을 고백하였고, 그 고백은 그녀의 가족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았고, 라합은 유대인이 아니면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위대한 성경상의 여인으로 이름을 남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함락 작전명을 받았는데 오직 성 주위를 매일 돌되 엿새 동안하고 7일째는 7번 돌며 제사장이 나팔을 불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 밖에 다른 방법을 하나님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오직 순종으로 이 말씀을 들고 나아 갈 때 견고한 진이 무너졌다.
오늘날 여리고 성 무너진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텔엘 슐탄 이라고 부르는 곳이 고대 여리고 성이다. 일찍부터 여리고 는 달신을 섬겼던 종려나무 성읍이었고, 주변에 산재한 샘들을 통하여 풍부한 관계 농업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주변에 다른 마을보다는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하였고, 견고한 성벽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이스라엘로서는 여리고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함락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겠지만 하나님은 한 가지 방법, 오직 기도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능력을 보라는 것 밖에 다른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오늘날 여리고 성 무너진 곳에 올라 가보는 현대인들은 겨우 이 것 가지고 하지만 3,400년 전의 문화는 그게 아니었음을 알아야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할 때 보았던 거창한 구조물을 본 사람은 여호수와 와 갈렙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곳에서 교훈을 삼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것이다. 언약궤가 항상 앞서 갔음을 기억하여야 한다(수 6:4).
무너진 언덕 위에서 서쪽을 보게 되면 벌거숭이 산 하나가 보인다. 바로 이산 넘어 유대광야에서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셨고(마 4장), 기도 후 우리가 보는 산 정상부근에 보이는 헬라정교회(주후 6세기 건축)가 있는 곳에서 마귀의 3가지 시험이 있었는데 돌덩이를 떡덩이로 만들라고 하는 첫 번째 시험을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으로 물리쳤다. 이 말씀이 바로 이스라엘 여리고 함락작전의 뜻에 대하여 설명해 준다. 곧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말씀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여리고 작전이 많은 교회에서 경쟁적으로 시도되어지고 있다. 왜 여리고 작전인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단순한 소위 “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통, 물통(물을 담는 통이 아니라 물질이 형통함을 나타냄), 건강통, 사업 통 이런 것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운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갈망하며, 오직 기도하고 나아갈 때 여리고는 무너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라합의 신앙고백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
여리고 시내에는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가 있다. 나무의 수령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모두가 알다시피 삭개오를 만나준 예수님의 행적은 곧 라합의 구원을 생각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고,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삭개오와의(눅 19장) 만남을 통하여 극적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경거지 바디매오를 만나 주신 것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나타내 주신 것이라 볼 수 있겠다(막 10:46).
삭개오의 뽕나무 옆에 흐르는 시냇물은(지금을 시멘트로 뚜껑을 만들어 놓았음.) 엘리사 시대에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다던 여리고 백성들을 위해 엘리사가 단물로 만들어 주었던 그 물이다.
여리고에 가면 이와 같이 여리고 성의 흔적, 삭개오의 뽕나무, 엘리사의 샘물을 만날 수 있고, 그 외에 서쪽에는 헤롯의 겨울 별장의 유적이 있고, 동쪽으로는 8세기 아랍시대에 만들어진 히샴의 궁전 유적이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시험산에 올라 예수님이 시험받으셨다는 헬라 정교회의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묘미가 있다.
여리고 건너편 느보산 에서 여리고를 내려다 보면 그 푸른 모습에 한달음에 달려 내려오고 싶은 곳이다. 유대광야와 사해, 그리고 요단강 주변에 가장 발달했고, 과실수와 물이 풍부했던 오아시스의 도시 여리고, 그 도시에 가면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아름다운 가나안의 첫 성은 오직 말씀으로 인하여 정복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도시는 1996년 이후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오직 팔레스타인 아랍 사람들만이 살아간다. 이들은 아직도 모슬렘의 종교를 가지고 이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여리고는 옛날 여리고로 돌아간 것 같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흥왕하는 여리고의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는 여리고에서 다시 한번 라합이나 삭개오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여리고 건너편 요단강에 동편 베다니 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던 곳이 있고, 엘리야는 이곳에서 불 수레를 타고 회오리바람과 함께 승천하였다. 그리고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받고 여리고에 선지학교를 세워 선지 생도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구약과 신약에 많이 등장하는 여리고가 다시 문을 열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순례객들은 구약과 신약의 주제가 하나님의 능력이며, 오직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성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할 때 지나다니셨던 것이 기억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