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 고고학 / 성경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그들이 마주친 첫번째 요새는 여리고였다.육중한 성문과 높은 성벽을 앞에 두고 그들은 오늘날의 전술로는 이해하기 힘든 성벽 돌기를 하루 한 차례씩 6일동안 시행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성벽중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 어디인지 정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성경 여호수아서(6장)에 의하면 일곱째 날 성벽을 일곱 바퀴 돌면서 뿔나팔을 불고 큰 소리로 외치자 그만 그 견고한 성벽이 무너지고 말았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기적적으로 파괴시켰다는 여리고의 성벽은 성서고고학 발굴사에서 오늘날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 하나다. 광활한 요단평원에 24m의 높이로 우뚝 솟은 여리고는 약 4만㎡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도시였지만,19세기 후반에 처음 발굴된 이래로 고고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집중된 유적지였다.끊임없이 맑은 물이 솟아나는 엘리사 샘가에 자리잡은 여리고는 광야 한가운데 위치한 비옥한 오아시스로,로마시대에는 비싼 값에 팔리는 향유의 생산지로 클레오파트라의 영지가 되었고,헤롯의 궁전과 별장이 위치한 휴양지로도 유명했다.

예루살렘 탐사의 임무를 띠고 팔레스타인에 머물고 있던 영국의 워렌(C.Warren)은 1868년 4월 여리고를 방문,수십명의 인부들을 이끌고 성서시대의 여리고로 여겨지는 `텔 술탄'이란 언덕을 발굴하기 시작했다.약 한달동안 지속된 발굴에서 워렌은 마치 참호를 파듯이 텔의 동서로 이어지는 도랑과 텔의 바닥까지 도달하는 수직 갱을 팠다.하지만 그의 발굴에서 흙벽돌건물의 흔적만 밝혀졌을 뿐 이렇다 할 만한 여호수아의 성벽은 찾을 수 없었다.당시에는 돌로 만든 석조건축물만을 가치 있는 유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발굴을 지속할 수 없었다.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워렌의 수직 갱은 1만년전에 건설된 신석기시대의 성벽과 망대를 1m 정도 벗어났다.

두번째의 여리고 발굴은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오스트리아의 젤린(E.Sellin)과 독일의 바찡어(C.Watzinger)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이미 1902년부터 3년동안 이즈르엘 평원의 타아낙을 발굴하여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젤린은 엄청난 흙벽돌의 잔해 속에서 견고한 바윗돌로 기초를 다진 성벽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젤린이 여리고에서 발견한 성벽이 여호수아가 파괴한 성벽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예루살렘을 통해 온 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하지만 발굴이 진행되면서 한 시대의 성벽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서 다양한 시대의 성벽들이 속속 드러나게 되자 발굴당사자들은 과연 어느 것이 여호수아의 성벽이냐는 난감한 문제에 부딪쳤다.결국 그들은 기원전 16세기경 파괴된 중기 청동기시대의 성벽을 선택했고,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입성도 같은 시대로 보았다.이 연대를 기준으로 광야생활 4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출애굽사건도 기원전 1500년경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젤린의 이러한 연대추정은 여리고의 고고학적 중요성을 신봉하는 일부 성서학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도 주장되는 초기 출애굽설을 낳게 된다.

1차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거느린 영국이 이 위대한 발굴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젤린의 발굴결과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리버풀대학의 가르스탕(J.Garstang)은 1930년부터 새로운 성벽을 찾기 위한 대규모 발굴을 시작했다.특히 그는 처음으로 여리고에서 기원전 3000년~1500년 사이의 무덤들을 발굴했다.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부장품들,특히 잘 보존된 토기들을 통해 여리고의 주거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하지만 7년동안의 발굴결과 가르스탕이 내린 결론은 젤린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단지 연대를 1백여년 늦추어서 여호수아에 의한 여리고 성의 파괴가 기원전 15세기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여리고 발굴은 영국의 여성 고고학자 케년(K.M.Kenyon)이 1952년부터 1958년까지 지속한 것이다.그녀는 이 발굴에서 가장 발전된 발굴기술을 적용,토기 분석을 통해 정확한 연대를 추정한 결과 여호수아 성벽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밝혀냈다.이곳에는 이미 1만년전부터 거대한 성벽과 망대가 건설됐기 때문에 여리고가 공식적으로 세계 최초의 도시라는 것이다.도시문명의 고향인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기원전 4천년경부터 성벽을 쌓기 시작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파격적인 결과였다.한편 그녀의 `여호수아 성벽'에 대한 연대추정 결과는 이전의 발굴 결과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868년부터 1백여년동안 유럽의 대표적인 고고학자들에 의해 네차례에 걸쳐 샅샅이 발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리고의 주거역사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그토록 찾기를 원했던 여호수아의 성벽이 아직도 흙속에 파묻혀 있다는 낙관론과 오랜 세월 빗물에 씻겨 내려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비관론이 교차하는 가운데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으로 선포된 여리고는 지금도 새로운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 국민일보에서 발췌 (김성 교수)(협성대학·성서고고학)



'기독,은혜의자료방 > 신앙참고서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막의 덮개  (0) 2017.06.04
에덴동산 [Garden of Eden   (0) 2017.06.02
유다의 왕들은 어디에 묻혔을까   (0) 2017.05.22
성막사진들  (0) 2017.05.20
고대 근동의 등잔   (0) 2017.05.15
43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


“주님의 마음으로 ‘섬김의 선교’ 이루겠습니다”

64개국 파송선교사, 효과적인 지역선교 모색
이영훈 목사 “성령과 동행하는 증인의 삶” 역설

 세계 64개국에서 순복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682명의 선교사가 제43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를 맞아 고국을 방문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이들은 ‘섬김의 선교, 주님의 마음으로’라는 주제로 선교대회에 모여 주 오실 그날까지 보내신 자리에서 주 복음 전하는 사명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제43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는 23일 등록을 시작으로 선교대회 예배와 선교사수련회, 선교사와 함께하는 미스바 기도회, 그리고 다음주에 열리는 시니어 포럼까지 열려 64개국에 파송된 순복음 선교사들은 선교 열정을 재확인하고 지역별 효과적인 선교 방안을 모색하는데 힘을 모았다.

 24일 각 나라 전통의상을 입은 선교사들의 입장으로 시작된 선교대회 예배는 선교사역국장 엄태욱 목사의 사회로 열렸다. 선교위원장 김동명 장로의 개회선언 후 (재)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복음의 증인된 삶’(행 1:8)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며 선교사와 성도들에게 순복음의 선교 열정 회복을 당부했다.

 이영훈 목사는 특히 ‘성령’을 강조했다. “우리 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쓰임 받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권능 받아 목숨 걸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해달라”며 사도행전 1장 8절을 성도들과 함께 다시한번 봉독했다.

 이어 등단한 (재)순복음선교회 총재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이 시키는 일, 선교사는 그 일을 위해 따로 불러 세운 사람”이라며 예수님의 겸손과 삶을 배워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 수고와 헌신을 다해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축복했다. 그리고 “항상 성령이 주시는 꿈을 꾸고 은혜를 믿고 담대히 선언하며 주의 일을 감당하는 대변자가 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
 이날 예배에서는 남미 파라과이에서 신학교를 통한 현지인 제자양육, 교회 개척을 주 사역으로 하는 손강국 선교사가 선교보고를 전했다. 손 선교사는 “4개 제자 교회가 14개 제자교회로 성장됐다. 현 12%되는 복음화율이 25%까지 향상되면 파라과이를 통해 중남미 선교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며 성도들의 기도와 동참을 당부했다. 또 제43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를 맞아 이영훈 목사가 선교사역에 모범을 보인 김유동(일본) 진상훈(브라질) 김갈렙(A국) 김에스더(B국) 선교사에게 우수상을 시상했다.

 예배는 순복음북미총회장 양승호 선교사, 아세안순복음총회장 한치완 선교사, 순복음대만총회장 장한업 선교사, 순복음A총회장 정아브라함 선교사 등이 순서를 맡아 진행했다. 그리고 원주민선교사 연합 찬양팀과 북미총회 선교사 찬양팀의 특송, 순복음 선교사의 선교 열정이 담긴 선교특집영상이 방영됐다.


                 

 성전 꽃꽂이    


    

      --   소재  --

 

 

 

    해바라기(2),신지매(2),

 

    장미(5),리시안(1),잎새란(2),

 

    편백(2),명자란(5)...







 

 



'기독,은혜의자료방 > 성전 꽃곷이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전 꽃꽂이-52  (0) 2017.06.04
성전 꽃꽂이-51  (0) 2017.05.31
성전 꽃꽂이-49 /4  (0) 2017.05.23
성전꽃꽂이-48   (0) 2017.05.20
성전 꽃꽂이-47   (0) 2017.05.15

아하스 ― 가장 사악했던 남유다 제 12대 왕

  1. 인적 사항
① 아하스는 '여호와께서 사로잡으셨다'라는 뜻. ② 요담 왕의 아들(왕하 16:1).
③ 남유다 제 12대 왕으로써 20세에 즉위하여 16년간 통치(왕하 16:2).
④ 아들 히스기야가 왕위 계승(왕하 16:20;대하 28:27).

2. 시대적 배경
B.C. 731-716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베가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이 시기는 가나안 북방의 앗수르가 신흥 강대국으로서 세력을 확장해 오던 시기였다. 이미 앗수르와 적대관계에 있던 아람은 북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강한 반앗수르 정책을 폈으나 남유다 왕 아하스는 도리어 친앗수르 정책으로 앗수르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이 결과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강한 적대적 관계가 되었으며, 또 앗수르의 우상과 문물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아들을 제물로 바치고, 성전 기구들을 훼파 한 것으로 보아 사악하고 이교에 사로잡힌 자(대하 28:2, 3, 24).
②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거부한 채 앗수르를 의지할 만큼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운 자(사 7:2-12).
③ 통치 중 주변국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고, 말년에는 앗수르의 허수아비가 되어 섬긴 것을 보아 군사, 정치적 능력이 전무한 자(대하 28:5, 17-21).
④ 반 앗수르 동맹이 별 득이 없음을 깨닫고 오히려 친 앗수르 정책을 폄으로써 전쟁의 위기를 모면할 만큼 약삭빠른 자(왕하 16:9).

5. 구속사적 지위
① 앗수르에 굴복함으로써 남유다를 앗수르의 속국이 되게 한 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
② 성전 기구 훼파 및 성전 문을 닫음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한 자. 이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늘 방해하는 사단의 획책에 따른 것이다.
6. 평가 및 교훈
① 아하스가 이방신을 섬기고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가증한 일을 행하는 등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에브라임을 들어 유다를 징벌하셨다(대하 28:1-7). 이는 여호와를 섬겨야 할 성도가 세상의 것을 좇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악한 것을 들어서라도 성도를 치심을 교훈 한다.
② 유다를 침입한 이스라엘 군이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노략해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오뎃을 들어 이스라엘을 책망케 하시고 에브라임 두목을 들어 유다 백성들이 놓임 받게 하셨다. 이는 아하스의 통치하에 유다 백성의 수많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아무든지 임의대로 다루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담대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 세상의 어떠한 권세든지, 심지어 사단조차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우리를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롬 8:31-39).
③ 유다가 연합군의 침입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아하스는 여호와께 의지하기보다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앗수르는 도리어 유다를 점령하여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는 등 유다를 더 비참한 지경에 이르도록 했다(대하 28:16-25;사7:3-12). 마찬가지로 성도가 현실적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세상 권력이나 방법을 의지할 때 도리어 이 세상의 악의 올무에 빠지게 된다(잠 11:5,6).
④ 아람과 에브라임의 동맹 침입 소식을 듣고 아하스는 선지자 이사야의 충고를 거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앗수르의 도움을 의지하다가 비참한 지경에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지혜로운 자의 충고를 멸시하는 자는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자임을 교훈 한다(잠 1:7).

7. 핵심 성구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 하여"(대하 28:22).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                             

             

1장: 긍정적인 기도의 능력
2장: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
3장: 말씀의 치유 능력
4장: 말을 항상 조심하라
5장: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고백할 것
6장: 사망과 생명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혀의 능력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찰스 캡스의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 원 제목은 <The tongue, a creative force>입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8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저자인 찰스 캡스는 한때 거액의 합작 사업에 투자하였지만, 사업이 잘못 되어 전 재산을 모두 날려버리게 됩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후 너무나 낙심하여 믿음도 버리고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사업을 회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게 되기까지 혀의 창조적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생생하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응답받는 믿음의 원리를 깨닫고,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삶에 적용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장: 긍정적인 기도의 능력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서 잉태된 다음에, 입으로 고백하게 되면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영적인 힘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효과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때문에 우리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자기 자신이 포로로 되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혀를 가지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만드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기도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도한대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를 해야 할까요?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되었고, 바울은 자신의 입술을 통하여 이 능력을 담대히 선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고, 그 말씀을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 제가 기도를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마귀에게 패배한 것 같습니다" 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고 말씀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문제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도가 없이도 역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을 나타내는 수단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표현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다스려야 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 즉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영적인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2장: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적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말씀에 이 세상에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창조적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우리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 우리 안에도 내재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말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의심과 두려움과 불신앙을 고백하도록 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에도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의 보잘 것 없었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에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굳게 붙잡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붙잡는다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굳게 붙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만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자체는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즉 소망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 산이 점점 커집니다.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어요.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응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문제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고백에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말씀을 믿고, 그것을 입술로 고백할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산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예수의 이름 안에서 저는 그 산이 들리어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 산이 옮겨진 것을 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긍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산이 얼마나 커 보이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동요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에 의해서만 동기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적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3장: 말씀의 치유 능력
여러분이 감기에 걸렸거나 다른 병에 걸려서 아팠던 때를 뒤돌아보십시오. 병에 걸렸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누군가에게 가서 "몸이 아파"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고,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후에는 병세가 더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질병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인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능력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고, 그 능력이 우리의 말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도록 늘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는 여기에서 '나음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고 '나음을 얻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십시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치유되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을 가지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야고보는 혀를 제어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분이 안 좋거나 몸이 안 좋을 때 이렇게 말하십시오. "말씀에는 뭐라고 되어 있지? 아, 말씀에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되어 있구나. 그러므로 사단아, 나는 너의 질병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나는 질병을 거절한다!"

잠언 6장 2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입의 말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그 혀에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며, 입으로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질병과 죄를 담당하여 주실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건강과 치유를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생명과 건강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말하기 시작하십시오. 지금 그것을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말을 조심하고, 생명과 건강의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4장: 말을 항상 조심하라
우리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누가 그 말을 했지? 이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인가?" 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면 사단의 거짓말이거나,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한 생각임이 분명합니다. 그럴 때는 그것을 자신의 말로 인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마음을 입으로 고백할 때, 그 말은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의 권세를 인정하고, 언어를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 6장 2절의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느니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자기가 말한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에는 말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영적인 힘은 말을 통해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는 요한일서 5장 4절 말씀은 하나님이 마귀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하고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혀의 능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여러분 안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장: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고백할 것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우리가 환경 때문에 요동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을 고백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복있는 사람'이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리로다"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잘 되는데 왜 나는 모든 일이 잘 안될까"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고백으로 바꾸어 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빌립보서 4장 19절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그 사람을 보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긍정적인 말은 재정적 위기에서도 그 사람을 보호합니다. 불황이나 경기 침체를 경험할 때도, 그 입술은 그를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고백으로 시인하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할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성도들은 치유기도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서 매우 근심어린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 치유 받고 싶습니다. 저를 고쳐주세요. 저를 치유해 주세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주님은 문제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이 상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이 상처받고 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는 성경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 잔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성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어떤 이보다 더 크십니다." 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6장: 사망과 생명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혀의 능력
혀에는 우리의 인생을 망하게 하거나 성공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같은 입에서 복과 저주가 함께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말로써 프로그램화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겨나고, 두려움은 대적이 말한 것을 들음으로써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대적인 마귀의 말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말을 자신의 마음에 두고 그것에 붙잡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왜곡되고 쓸모없는 자기 파괴적인 이미지를 심어 놓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함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프로그램화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모두 우리의 입을 통해 나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전의 옛 것들은 모두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되심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거듭난 성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충만한 말은 믿음이 연약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활력을 불어넣어서 그들의 믿음을 발휘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을 담대하게 선포할 때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창조적 능력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그들의 믿음을 발휘하게 하는 것입니다. 혀는 우리를 죽일 수도 있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흘러나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과 생명이 혀의 권세 안에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로 고백하여 고침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보내소서
 


이영훈목사, 인도네시아솔로대성회



이영훈목사는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에 있는 솔로에서 '이영훈 목사 초청 인도네시아 솔로 대성회'에 참석해 말씀을 전했다 솔로(인도네시아)=김용두기자

















































성전 꽃꽂이-49   

//



 

'기독,은혜의자료방 > 성전 꽃곷이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전 꽃꽂이-51  (0) 2017.05.31
성전 꽃꽂이-50  (0) 2017.05.27
성전꽃꽂이-48   (0) 2017.05.20
성전 꽃꽂이-47   (0) 2017.05.15
성전 꽃꽂이-46  (0) 2017.05.13

영화 막달라 마리아 1, 2, 3 편                        

//





 


여리고에 대하여 

 

         

 

 

 

 

 

   

2000년 9월 28일 2차 인티파터(팔레스타인 무장봉기)로 인하여 한 동안 여리고는 일반인들이 출입하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 2004년 10월 아라파트 사망이후 팔레스타인에는 새로운 지도자 아부마젠이 선출되었고, 이스라엘에 매일같이 일어났던 테러도 멈추었다.

이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새로운 평화의 기운이 감돈다. 웨스트 벵크와 가자지구 곳곳마다 보안장벽이라는 높이 9M 콘트리트 장벽이 세워지기는 했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좋은 분위기 인 것 같다. 이제는 여리고를 일반인들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에 위치한 여리고는 해저 258m지역이다. 만년 된 구조물이 발굴되어진 것으로 미루어 도시역사를 만년으로 생각한다. 연중 강우량이 100mm에 불과한 사막과 농경지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지만 주변에 6개의 샘을 통하여 충분히 물이 공급되므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동쪽으로 28km 가량 떨어져 있고, 요단강은 동쪽으로 9km정도 떨어져 있다. 처음으로 성벽이 건축 된 것은 이 도시를 열망하는 이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수아의 정복이 주전 1,400년 전에 있었고, 이후 주전 586년 바벨론에 멸망될 때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눈을 뽑힌 채 잡혀가고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후에 페르시아의 행정도시가 되었으며, 주전 336년 알렉산더의 권력자들에 의해 물이 독점되자 점차 도시가 황폐하게 된다. 헤롯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세를 주고 샘을 사용하다 그녀의 사후 여리고를 차지하고 겨울 별장을 건설한다.

헤롯은 여리고 언덕 위에 어머니를 기념한 요새를 만들었는데 “싸이프러스" 라고 부른다. 헤롯 사후 아켈라오에게 소유가 넘어갔다. 아켈라오는 종려나무를 많이 심어 소득을 얻었다. 유대 전쟁시 로마 10군단의 본부가 되었고, 비잔틴 시대에는 수도사들이 살았고, 순례객들이 몰려오기도 하였다. 십자군시대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되는 것은 1차 세계대전 후이다.


여리고는 하나님께서 홍해와 요단강을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인도하셔서 처음으로 정복케 하신 도시이다. 이스라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홍수기인 요단강을 건너서 이 도시에 접근하였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본 사람은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다.

학자들 중에는 라합은 기생이 아니고, 달신을 섬겼던 여리고 신전에서 봉사하던 여 사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라합의 신분이 어떠한 가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위치보다는 그 사람의 믿음의 모습이다.

언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도 라합은 들려오는 소문의 소리만 듣고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참 귀하게 보인다.

하나님은 상천하지에 오직 한 분뿐임을 고백하였고, 그 고백은 그녀의 가족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았고, 라합은 유대인이 아니면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위대한 성경상의 여인으로 이름을 남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함락 작전명을 받았는데 오직 성 주위를 매일 돌되 엿새 동안하고 7일째는 7번 돌며 제사장이 나팔을 불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 밖에 다른 방법을 하나님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오직 순종으로 이 말씀을 들고 나아 갈 때 견고한 진이 무너졌다.

오늘날 여리고 성 무너진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텔엘 슐탄 이라고 부르는 곳이 고대 여리고 성이다. 일찍부터 여리고 는 달신을 섬겼던 종려나무 성읍이었고, 주변에 산재한 샘들을 통하여 풍부한 관계 농업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주변에 다른 마을보다는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하였고, 견고한 성벽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이스라엘로서는 여리고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함락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겠지만 하나님은 한 가지 방법, 오직 기도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능력을 보라는 것 밖에 다른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오늘날 여리고 성 무너진 곳에 올라 가보는 현대인들은 겨우 이 것 가지고 하지만 3,400년 전의 문화는 그게 아니었음을 알아야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할 때 보았던 거창한 구조물을 본 사람은 여호수와 와 갈렙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곳에서 교훈을 삼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것이다. 언약궤가 항상 앞서 갔음을 기억하여야 한다(수 6:4).

무너진 언덕 위에서 서쪽을 보게 되면 벌거숭이 산 하나가 보인다. 바로 이산 넘어 유대광야에서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셨고(마 4장), 기도 후 우리가 보는 산 정상부근에 보이는 헬라정교회(주후 6세기 건축)가 있는 곳에서 마귀의 3가지 시험이 있었는데 돌덩이를 떡덩이로 만들라고 하는 첫 번째 시험을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으로 물리쳤다. 이 말씀이 바로 이스라엘 여리고 함락작전의 뜻에 대하여 설명해 준다. 곧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말씀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여리고 작전이 많은 교회에서 경쟁적으로 시도되어지고 있다. 왜 여리고 작전인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단순한 소위 “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통, 물통(물을 담는 통이 아니라 물질이 형통함을 나타냄), 건강통, 사업 통 이런 것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운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갈망하며, 오직 기도하고 나아갈 때 여리고는 무너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라합의 신앙고백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

여리고 시내에는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가 있다. 나무의 수령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모두가 알다시피 삭개오를 만나준 예수님의 행적은 곧 라합의 구원을 생각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고,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삭개오와의(눅 19장) 만남을 통하여 극적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경거지 바디매오를 만나 주신 것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나타내 주신 것이라 볼 수 있겠다(막 10:46).

삭개오의 뽕나무 옆에 흐르는 시냇물은(지금을 시멘트로 뚜껑을 만들어 놓았음.) 엘리사 시대에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다던 여리고 백성들을 위해 엘리사가 단물로 만들어 주었던 그 물이다.

여리고에 가면 이와 같이 여리고 성의 흔적, 삭개오의 뽕나무, 엘리사의 샘물을 만날 수 있고, 그 외에 서쪽에는 헤롯의 겨울 별장의 유적이 있고, 동쪽으로는 8세기 아랍시대에 만들어진 히샴의 궁전 유적이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시험산에 올라 예수님이 시험받으셨다는 헬라 정교회의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묘미가 있다.

여리고 건너편 느보산 에서 여리고를 내려다 보면 그 푸른 모습에 한달음에 달려 내려오고 싶은 곳이다. 유대광야와 사해, 그리고 요단강 주변에 가장 발달했고, 과실수와 물이 풍부했던 오아시스의 도시 여리고, 그 도시에 가면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아름다운 가나안의 첫 성은 오직 말씀으로 인하여 정복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도시는 1996년 이후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오직 팔레스타인 아랍 사람들만이 살아간다. 이들은 아직도 모슬렘의 종교를 가지고 이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여리고는 옛날 여리고로 돌아간 것 같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흥왕하는 여리고의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는 여리고에서 다시 한번 라합이나 삭개오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여리고 건너편 요단강에 동편 베다니 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던 곳이 있고, 엘리야는 이곳에서 불 수레를 타고 회오리바람과 함께 승천하였다. 그리고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받고 여리고에 선지학교를 세워 선지 생도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구약과 신약에 많이 등장하는 여리고가 다시 문을 열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순례객들은 구약과 신약의 주제가 하나님의 능력이며, 오직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성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할 때 지나다니셨던 것이 기억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