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조용기목사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사도행전 3장 1~10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이 업어서 성전 미문에 데려다주면 하루 종일 길가에 앉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 사람 앞을 지나갈 때, 갑자기 베드로의 마음속에 ‘이 사람이 오늘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라는 확신이 용솟음쳤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주셔서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될 것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베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주려고 쳐다보라고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올라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돈이 없다는 말을 듣자 마음속에 실망이 꽉 들어찼습니다. 은과 금이 없는 사람이 왜 자기에게 우리를 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단호하게 명령을 합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는 어리벙벙하게 앉아있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자 갑자기 무릎이 펴지고 다리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구걸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사람은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 받은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그에게 동전 몇 푼만 주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면 그 날 끼니는 해결했을지 몰라도 걷지 못한다는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평생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면서 살다가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인생의 문제보다도 영원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현실적인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준다.”고 말했는데 베드로는 자기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았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은과 금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인생의 어리석음을 만날 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게 있는 것이 있으니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겠다!” 적어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베드로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나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첫째로, 내게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에 예수 이름에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름을 주셨어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을 주신 것은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바로 죄를 사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양 손과 양 발을 대못에 박히시고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30년이 넘도록 이단 사설에 매여 있다가 회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딸이 어머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전도했으나 도무지 딸의 말을 듣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만 교회에 가달라는 부탁에 못 이겨 예배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의 이름과 그 보혈에 대한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어떤 부부의 간증을 들었었는데 남편이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리는 것입니다. 참다못한 부인이 마지막 방법으로 남편에게 철야예배를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철야예배를 드렸는데 어떤 집사님이 남편에게 와서 “당신 알콜 중독인데 술을 끊지 않으면 곧 죽습니다.”라고 말하고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두려워진 남편이 아내와 기도원에 올라가 7일 금식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 옆에 검은 사람이 쫓아다니면서 술을 먹어보라고 하고 아내를 때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더니 귀신이 떠나가고 그 날 이후로 술을 딱 끊고 착실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일어납니다. 오늘날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쫓아내면 귀신이 나갈 리가 없지요. 우리 힘이 아니라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대만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신유기도가 끝난 후 간증시간에 어떤 부인이 엑스레이 2장을 가지고 나와서 그리고 간증하기에 “코에 중한 병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의사들이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눈 깜짝 사이에 나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엑스레이를 가지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에 전문가인 의사가 마침 집회에 참석했다가 나를 붙잡고 하는 말이 “당신 가짜가 아니죠? 진짜죠?” 그러는 겁니다. 그러고는 내가 쓴 ‘4차원의 영성’을 손에 들고 “이거 거짓말 아니고 참말이죠?” 또 그렇게 묻습니다. 그래서 내가 “거짓말 같으면 안 읽으면 되지 않느냐? 내가 뭐 할 일이 없어 거짓말을 하고 다니겠느냐?”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의사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의학적으로는 그 병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나을 수가 없는 병인데 순식간에 낫는 것을 보고 너무나 믿기지 않아서 진짜인가 자꾸 물어본 것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완전히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시고 마음의 병을 고쳐 주시고 생활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병을 고치고자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절)라고 말씀하고 계셨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간 기도하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에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진짜로 알면 목숨을 걸고 하루도 좋고 한 달도 좋고 매달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번 쫓아내서는 귀신이 나가지 않습니다. 나가는 것이 자기의 멸망이므로 귀신도 안 나가려고 끝까지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나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임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지으셨을 때,  벗고 또는 굶주림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아 우리 삶에 가난과 저주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길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음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육신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부활과 영생을 소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요 그 속에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린 모든 공로가 들어 있으며 그 속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2. 함께하시는 성령님

둘째로, 내게 있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는 고독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했을지 몰라도 고독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있어도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독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에는 나 혼자란 없습니다. 언제든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고백하십시오.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혼자 인생을 살지 않는다, 성령님과 함께 인생을 산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여러분 혼자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힘든 일도 여럿이 함께 하면 넉넉히 이겨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해도 이처럼 힘을 얻는데 하물며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3. 사랑의 손을 내밀라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이라는 길가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사람은 다리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에도 못 가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하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만이 앉은뱅이가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죄의 사슬에 매여서 불의와 더러움에 매여져서 질병에 매여져서 가난에 매여져서 죽음에 매여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갖가지 문제에 매여서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모든 인생이 앉은뱅이인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앉은뱅이로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게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으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 3장6절)’ 그렇게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구세군 창시자인 윌리암스 부스(William Booth)에게 “당신의 전도 비결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런던의 빈민가를 보았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내게 금과 은은 없었지만 나의 전부인 그리스도를 전하여 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전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한 것은 사랑의 외침인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나 걷기를 바라는 베드로의 사랑의 외침이 그를 온전하게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 때문에 절망의 길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교회에 데리고 와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의 삶입니다.

교회가 구제 사역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서 참으로 귀한 사역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사명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근원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인생의 근원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이름으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아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로우시고 긍휼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의 삶이 마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장애인과 같이 서럽고 힘들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아 성령받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연약하오니 날마다 인도하시고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연순 성도(장년국)

- ‘시어머니 구원과 교사임용시험 합격’ 주께 감사

전도 사명 순종할 때
하나님이 복의 복 더해주셔

시어머니는 모든 것은 다 이해하시고 양보하셔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데는 한사코 반대하셨다. 4대째 내려오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나는 그런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늘 기도했다. 그런데 아흔이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는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작년부터 더 강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할머님이 믿으셨는데 어머니 대에 신앙이 끊기니깐 남편이 교회를 다니지 않아요. 저에게는 우리 집안이 주님을 믿는 가정이 되도록 복음 전할 사명이 있어요.”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긴 건지 아마 성령이 주신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몇 년 동안 교사임용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그때마다 최종에서 미세한 점수 차이로 낙방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했을 때 깨달음이 왔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절).

 내가 교사임용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먼저가 아니라 어머니의 구원이 우선이었다. 나는 지난해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를 찾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시며 주일 예배 참석을 차일피일 미루셨다. 영적 전쟁이 치열했다. 지난해 9월에는 장년국 성도들과 우리 집에서 매주 구역예배를 드렸다. 어머니를 위해 구역 식구들이 한 마음으로 간구할 때 드디어 어머니 입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하반기 나는 다시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도전했다. 시험 준비로 밤새 공부하고 새벽녘이 됐는데 어머니가 젖은 두 눈으로 내 방에 들어오셨다. 놀란 나에게 어머니는 머뭇거리시다 입을 여셨다. 꿈을 꿨는데 높은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졌지만 다친 곳이 하나도 없으셨단다. 그런데 주변을 살피니 이전에 보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 좋은 길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시고는 ‘내가 왜 이렇게 좋은 길을 두고 그동안 다른 길로 다녔지?’라고 생각하셨단다.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기억이 또렷했고 그 순간 예배에 빠졌던 것이 미안해 용서를 빌다 눈물이 났다고 하셨다.

 임용시험 전날 나는 친정어머니께 전화로 기도를 받고 시어머니께도 기도를 받고 싶다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때 시어머니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우리 며느리 장원급제하게 해 주세요. 그동안(주님을) 몰랐어요. (주님) 미안합니다. 내가 몰랐는데 이제는 (주님을) 믿을게요.” 어머니의 간절함에 눈물이 났고 행복했다. 나는 어머니의 기도와 장년국 성도들의 중보기도 힘으로 2월 8일 최종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구원과 임용시험 합격이라는 두 선물을 내게 허락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이제 남은 사명은 어머니와 함께 남편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 또 교사로서 앞으로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장년국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은 홀로가 아닌 공동체를 이룰 때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정리=오정선 기자


믿음으로 이겨 나가리              

//

 

 



'말씀과 찬양의방 > 복음송듣고 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 십자가 나도 지고  (0) 2020.03.26
받아 주소서  (0) 2020.01.30
나에게 생수 부으시니   (0) 2019.02.15
오직 하나님 은혜라 //   (0) 2019.02.03
약한 나로 강하게~  (0) 2019.02.03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이영훈목사

<말씀봉독>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0~13)

<등단 후 멘트>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다녀오고 나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교회를 새롭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라.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2019년도에 들어와서 그 새롭게 해야 될 1차 대상을 우리 장로님 그리고 우리 주의 종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기도원의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혁 1호 대상이 바로 너다. 네가 죄인의 두목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1서 1장 9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많이 울었습니다. 이것은 저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겨질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죄에 대해서 너무나 관용했습니다. 은혜라는 것으로 덮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낱낱이 고하고 우리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요한1서 1장 9절 말씀을 우리가 다 같이 한 번 고백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주님 앞에서 죄 사함 받고 치료받고 회복되어서, 다가오는 날들이 여러분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날들로 바뀌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모든 상처가 치료함 받고 죄책감에서 놓여남 받고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통 332)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1절)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소서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2절)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오니 정결한 맘 주옵소서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3절)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면 눈까지도 밝으리라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4절)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악한 생각 다 버려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 일어나서 몸만 불편 않으시면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님 앞에 일대일로 내 죄를 회개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 주님 영광을 위해 살길 원한다고 고백하는 시간 되길 원합니다. 주님만이 아십니다. 오늘 주님과 나와의 만남을 통하여 여러분의 삶이, 일생이 바뀌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것 잘 압니다. 잘 알면서도 예배드릴 때만 그 마음이 조금 표현될 뿐이고 교회를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무너집니다. 죄와 타협하고 물질의 탐욕에 빠지고, 각종 세상의 중독에 빠져서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예수님한테 우리가 빠져야 되는데 세상에 빠졌습니다. 음란 중독, 도박 중독,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 마약 중독, 인터넷 중독, 빠져서는 안 될 죄의 수렁에 빠져서 발목이 잡혀서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겉으로는 거룩한체하면서 안 보이는 은밀한 죄를 지었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 저희들이 그 삶에서 벗어나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회복되어지게 하시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 우리가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설교말씀>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나고 추함에도 불구하고 늘 주님을 배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주님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는 주님의 사랑에 배신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죄책감에 매여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입니다. 한 번 따라하세요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편 10절로 13절 말씀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다시 한 번 제목을 따라해 주세요.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러분 예수를 믿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의 심각성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은혜의 시대에 살다보니까 너무나 은혜 속에 죄를 덮어두었습니다. 주님은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라. 이제 오늘부터가 새로운 날의 출발이 될 것이다.”

제가 일본에서 목회할 때, “목사님, 너무 죄를 지적하지 마세요. 아직 성도들이 믿음이 약해서 죄를 지적하면 교회에서 떠납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주님 말씀하시길, “아니다. 이제 여의도 성도들은 다 믿음이 곧게 자랐기 때문에 담대하게 선포하고, 이를 통해서 치료받고 회복해서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죄짓고 회개한 시편입니다. 눈물로 회개하며 지은 시편입니다. 그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죄 앞에 회개하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통곡하며 드린 기도가 시편 51편이고, 51편에 관계 회복을 위해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1.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먼저 “주님, 내게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더럽혀진 마음, 부패한 마음, 이 마음이 정결하게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순수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변화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시편 51편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이란 “pure heart”, 정결한 마음, 순수한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의 그 모습. 찬양을 불러도 눈물이 나고, 설교를 들어도 눈물이 나고, 기도를 해도 눈물이 나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주일날이 오기만을 손꼽아서 기다리던 시간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이 눈물의 바다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서대문 시절에 제가 처음 은혜받았을 때가 그랬습니다. 저는 5년 내내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알게 모르게 그 눈물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열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첫사랑의 감격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느새 나는 교회에 구경꾼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한 것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서 교회에 대해서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잘못된 모습으로 타락해버리고 말게 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회개하고 다시 순수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시편 24편 3~4절에 “야훼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이와 같이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마태복음 5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해야 주님과 만나고, 마음이 청결해야 주님과 대화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을 받습니다. 욥기 8장 6절에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주 앞에 나아올 때마다 첫사랑의 감격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울고 또 울며 주님의 첫사랑에 감격하며 “주님, 내가 왔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그와 같은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 번의 예배, 또 한 번의 성찬 주일이 아니라 매 예배가 새로운 예배, 나의 운명을 바꾸어주는 축복과 기적의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견고한 마음을 주옵소서

둘째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견고한 마음이란 흔들리지 아니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순수하고 열정적이던 그 마음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흔들리는 것입니다. 흔들려요. 노래에도 뭐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는 노래가 있어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 신앙이 흔들리는 겁니다. 신앙이. 바람이 불면 갈대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영적으로 잠이 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어있으라 그랬는데, 잠이 드니까 흔들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나서 통곡하면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시편 51편 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정직한 영이 바로 견고한 영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주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정직하고 견고한 영을 내게 부어주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해서 기록한 부활장입니다. 사도바울이 부활장 마지막 맨 마지막 결론에 58절에 이와 같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아라.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아라. 다윗이 그 다윗의 고백처럼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그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견고하게 굳건하게 서서 옆에 있었던 것들을 다 내던져 버리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4장 6절 7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1차 세계대전 때에 전쟁에 나가서 죽은 미국 국군 장병이 41만 8600명 정돕니다. 약 42만 명 됩니다. 그런데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불안과 공포, 두려움 때문에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이 100만 명이 넘습니다. 총알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두려움에 공포에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긍정적인 사고’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만 빈센트 필(N. V. Peale) 박사가 말합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중에 4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5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이며, 10%만이 현재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염려하는 것의 10분의 1만 염려해도 되는데 과거의 것 들춰보고 염려하고 앞으로의 것 당겨서 염려하고, 참 그런 걸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시는지 아세요. “걱정도 팔자야”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말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은 물러갈 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 실패와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또 남북전쟁을 하게 됩니다. 초반에 계속 남군에 밀리게 돼서 이러다가 북군이 전쟁에서 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링컨 성경이 보관되어 있는데, 너무 성경을 자주 펴서 손으로 눌러서 손자국이 난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34편 4절입니다. “내가 야훼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계속 소식이 들려옵니다. “대장군 각하! 이번 전쟁에 또 패했습니다. 또 패했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우리가 전쟁에 지면 어떡하지.’ 그 때 엎드려 눈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주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건지셨도다. 건지셨도다. 이 말씀 붙잡고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위대한 대통령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분 마음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의 초점을 탁 예수님께 맞춰야 됩니다. 히브리서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직 예수님, 오직 예수님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닮아가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어 NIV성경은 더 쉽게 표현되어 있어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우리의 눈의 초점을 딱 예수님께 맞추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초점을 맞춰야만 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딱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데, 공부를 잘못하는 사람은 이것도 참견하고 저것도 참견하고 뭔 참견을 다하고 앉았어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가만히 앉아서 잘 들어도 시험 보면 시험을 잘 보는데, 주위가 산만하면 여기 보고 저기 보고 하다가 남의 뒷통수만 보고 앉아 있다가 시험장에 가서 빵점 맞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야 되요. 우리의 초점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늘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 닮아갈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다가가는 그러한 순간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이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여러분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고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나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다윗이 눈물로 고백합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첫째로는 내게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둘째로는 나에게 정직한 영, 견고한 영을 주옵소서, 셋째로는 주여!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통곡하며 눈물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51편 11절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다윗은 알았습니다. 성령이 떠나가시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성령이 떠나가면 죄 덩어리로, 우리는 절망적인 존재로 남게 되고 우리 인생은 비참한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쫒아내지도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늘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도 아니고 죄 덩어리로 전락당하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됩니다.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토요일에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요, 어떨 때는 기도 첫 시간부터 기도가 쫙 풀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2시간이 2~30분쯤처럼 빨리 지나가는데, 어느 때는 기도가 풀리지가 않습니다. 30분이 되도 몸을 비틀며 “주여~주여”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도우심을 간구하며 방언기도를 합니다. 방언으로 쫙 기도하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날 위해 대신 간구해주셔서 다시 기도의 줄기가 잡히고 기도에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하곤 합니다.

여러분! 성령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주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결론입니다.

4.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키소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구약시대의 병 가운데 나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은 한센병이라고 부릅니다. 한센병은 무슨 병이냐면 온 몸의 신경들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경이 죽어가면 손을 화로에 집어넣어 타도 뜨거운지 몰라요. 이 손이 창문에 탁 찧어서 손톱이 떨어져 나가도 우리는 아파서 죽는다고 할 텐데 아프지를 않아요. 왜? 신경이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시면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고, 고쳐주지 아니하시면 평생 병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심각한 병이 영적인 나병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이 병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왜? 죄를 짓는데 죄책감이 없어요, 감각이 없어요. 이미 나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시시때때로 분노하고 사람과 다투고 싸움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요.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정말 사람들보기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마음에 가책이 없는 것은 이미 심각하게 나병이 진전된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그 병에 걸렸음을 알고 가슴을 치고 회개하면 주님께 돌아나오기를 바랍니다.

예배 때 나와서 은혜를 못 받으면 우리는 다 나병 환자인 것입니다. 왜? 영적인 세포가 다 죽어버려서 은혜를 못 받는 것이기 때문에. 찬송만 불러도 은혜가 되야 하고 기도소리에도 은혜가 되야 하고 성가대 찬양에도 은혜가 되야 하고 성경봉독을 할 때도 은혜가 되야 하고 말씀을 들을 때도 은혜가 되야 되는데 이것이 내게서 멀어져있다면 우리는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오늘 영적으로 깨어서 죽어있는 나의 영이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시편 51편 12절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첫사랑을 버린 우리 모습이 과연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인지 오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로버트 로빈슨 목사님의 말씀으로 오늘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한떄 죄의 수령에 빠져서 방탕한 삶을 살다가 회개하고 돌아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25세가 되던 해 캠브리지 침례교회의 목사로 초빙되어 목회에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적으로 점점 타락했습니다. 결국 세속에 물들었고 죄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이가 들어 초라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교통수단은 마차니까요.

그런데 옆에 앉은 처음 보는 부인이 무슨 책을 보면서 굉장히 얼굴에 기쁨이 넘쳐나면서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이 내용 좀 읽어보세요. 제 마음에 너무나 감동이 오네요.” 그 책에 찬송시가 적혀 있어요.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로빈슨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계속 말합니다. “선생님, 1절부터 3절까지 다 읽어보세요. 이 찬송가 가사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데요.”

그 때 로빈슨 목사가 고개를 돌려서 눈물을 흘리면 말합니다. “부인, 나는 오래 전에 이 찬송시를 작시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찬송을 지은 분이 바로 그 목사님이에요. 만약 그 때 경험했던 것과 같은 기쁨을 지금 내가 맛볼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 본인이 오래 전에 지었던 그의 마음을 다시 뒤흔들어 놓았고 그는 다시 잠자고 있던 그의 영혼이 깨어나서 회복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여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된 것입니다. 3절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오늘 이와 같은 회복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죄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사랑해주셔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회복의 영을 보내 부어주셨사오니 이제는 과거의 모든 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회복되어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까지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주님이 빛내시는 위대한 날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류종순 권사·장만섭 집사(사랑의교회)

- 순복음교회 성도들의 중보기도로 살아났죠


심근경색 죽음의 위기에서 뇌손상, 이식 없이 건강 회복

남편 장만섭 집사가 5년 전에 심장 혈관을 확장시키는 스탠트 시술을 했었다. 이 시술을 하면 혈전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남편은 약을 안먹었다. 평소 건강했던 남편이 지난해 12월 18일 자정이 넘어서 갑자기 힘이 없다고 하더니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나는 급히 119를 불렀다. 한참 만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은 남편을 보더니 심장이 멎었다고 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지만 다른 병원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 골든타임이 4분이라는데 심폐소생술도 10분이 지나서 했고 남편이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받기까지는 30분 이상이 지난 후였다.

 병원에서는 급하게 스탠트 시술을 다시 했다. 시술 후 남편은 이틀이 지나도 혈압이 50∼60으로 너무 낮았다. 염증 수치도 5가 정상인데 210이었다. 의사는 이미 시간이 지체돼 살아나도 정상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염증과 혈압이 좋아져도 심장이식을 해야 하고 뇌손상이 얼마나 진행됐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불가능 합니다. 기도밖에 없어요.” 나와 의사의 대화에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잠시 집에 왔는데 그날 오후 의사한테 연락이 왔다. 지금 숨이 끊어지니 당장 중환자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연장치료를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려고 내가 도착할 때까지만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중환자실 문 앞에 있는데 사돈께서 급히 달려오셨다. 안사돈이 권혁순 목사님이신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오랫동안 시무하시다 개척하셨다.    

 내가 상황을 설명해드리니 목사님은 내게 “의사 말 믿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셨다. 정신이 번쩍났다. 나는 그 때부터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다. 나는 30년 동안 사랑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목사님이 연결해 주셔서 여의도순복음교회 금요철야예배 중보기도 시간에 남편의 이름이 올라가게 됐다. 12월 21일 금요철야예배 때 남편의 이름과 기도제목이 스크린에 지나갔다. 목사님과 전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해주시는데 가슴이 뜨거워졌다. 예배에 참석한 나와 딸도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이 하시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그 다음날부터 염증수치가 떨어지고 혈압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며칠 후 심장의 30%가 살아나 심장이식을 안해도 됐다. 혈압도 매일 10씩 올라가 정상이 됐다. 의식이 깨어난 남편은 물을 달라는 등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염증수치도 내려가 정상이 됐고 뇌손상도 전혀 없었다. 기적은 또 일어났다. 남편이 오랫동안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어 자가 호흡이 안되니 폐렴을 막기위해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나는 수술 없이 자가 호흡 할 수 있도록 금식하며 기도했다. 수술을 하루 앞두고 남편의 호흡 상태가 좋으니 수술을 안해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였다. 그날 오후부터 남편은 스스로 호흡을 했고 1주일 후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다. 이 기적은 중보기도의 힘이라고 믿는다.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이혜연 집사(동작대교구)

- “말씀에 순종하면 기쁨이 덩굴째 굴러옵니다”

성경으로 깨달은 사랑 손과 발의 행위로 이어져
전도하면서 말하는 믿음의 선포가 내 영 살려

나는 기도하던 중 4월 윤중로 벚꽃 축제에 온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돌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벚꽃을 보러 놀러온 사람들이 전도지를 받아줄까’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순종하고 교회 전도지인 행복으로의 초대 100장을 접어서 나갔다. 내 생각과는 달리 나는 30분 만에 전도지를 전부 돌렸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해 다시 300장을 접어 전도에 나섰다. 이것이 계기가 돼 나는 6년 반째 전도를 하는 중이다. 나는 본래 고집이 센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었다. 나를 전도하려고 했던 사람이 몇 년 간 찾아와도 문 한 번을 열어주지 않을 정도로 냉담한 성격이었다. 이런 내가 변화된 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남을 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도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사명도 주셨다. 식당 사업을 하기 때문에 토요일과 주일에 시간을 내서 병원과 시장 앞에서 노방전도를 하는데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저 “축복합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면서 몸을 숙이고 겸손하게 전도지를 나눠준다. 100장을 나누면 예수 믿으라는 믿음의 선포가 100번 내 귀에 들리니 먼저 내 마음이 예수로 가득 차 전도를 멈출 수가 없다. 전도현장에 가는 것 자체가 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깨닫고 있다.

 전도 3년째에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는데 왜 정작 교회에 데리고 오는 사람은 없냐”는 물음에 섭섭함도 들었다. 그렇지만 말씀에 순종해 시작했기 때문에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때부터 나를 전도 대상자들과 만나게 하셨다. 교회 밖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교적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다 보니 2017년에는 동작대교구 전도 2등상도 타게 됐다. 또한 지난해 2월에는 요청을 받아 동작대교구 기도원 성령대망회에서 간증을 했는데 놀랍게도 전도하는 내 모습을 봤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했다.

 

나는 사업장에서 쉬는 시간이면 항상 성경을 읽고 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이 있어야 전도를 할 때 흔들림이 없고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14년째 성경을 읽는 모습에 손님들은 몇 독을 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러면 나는 “몇 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씀이 삶이 되게 읽는다. 예수가 내 삶의 가운데 오면 모든 게 변한다”고 말한다. 말씀을 지식으로는 알지만 그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와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되고 손과 발로 행위가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들어 전도의 도구로 사용해주심에 감사하고 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백부장의 믿음/조용기목사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장 5~13절)


어떤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그가 찾아온 이유는 자기 집 하인이 중풍병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사연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서 하인을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이 놀라운 말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살펴봄으로써,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이 칭찬하시고 인정하시는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병을 고치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가’ 이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찾아가면, 그 사람이 아무리 나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와줄 수가 없습니다.

시편 146편 3절로 4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도움이 오지 아니합니다. 사망과 배신감을 얻게 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요? 시편 146편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의 필요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41장 17절에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야훼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처럼,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크고 놀라운 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서 하인을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백부장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놀랍게 여기시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백부장의 말을 보면, 그는 권세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이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로마의 군인입니다. 백부장이 “엎드려!” 하면 엎드리고, “일어나라!” 하면 일어납니다. 말 한 마디에 100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입니다.

교통경찰이 아무리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해도, 손짓으로만 큰 트럭을 세울 수 있는 것은 그에게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권세라는 것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권세가 있는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가시지 않아도 예수님의 말 한 마디면, 자기 하인이 즉시 나을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권세가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한 집안에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면서 자녀가 누리는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도 이러한데, 왕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왕의 자녀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가진 권세는 놀라운 권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장 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할 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자, 그 하인이 나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을 통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젖먹이는 자식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지요. 하지만 설사 사람은 자기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성경주석가 윌리엄 바클레이(W. Barclay)는 “우리가 기도할 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첫째, 우리의 유익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에게 최선의 것만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기억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를 감정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감정에 근거한 믿음은 늘 흔들리고 요동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어떨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바람에 밀려 요동치는 바다 물결처럼 굴곡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통해서는 믿음을 굳건하게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수없이 태평양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있어도 지금 비행기가 어디쯤 왔고, 또 어디쯤 간다는 것이 훤히 마음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비행기를 많이 타고 비행을 하였으면서도 어떤 때는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꼭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이 오면 정신이 아찔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기분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외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이 말씀을 몇 천 번 외치면 조금 전까지 나를 사로잡던 두려운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대한 담대한 믿음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너무나 귀중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집에 아무리 모셔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액자에 넣어서 아름답게 치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마음을 중심에 달아놓고 읽음으로써 마음에 하나님의 가르침이 가득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깨달아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 받은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병 고침 받은 것을 믿게 됩니다.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믿게 됩니다. 부활 영생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 속에 깨달아질 때, 마치 숲을 태우는 불꽃같이, 바위를 깨뜨리는 방망이 같이, 능력의 말씀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성경에 있는 기적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오늘날에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대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신앙을 보십시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는데,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동구 밖에 오셨을 때 마르다가 뛰어나가 그 발 앞에 엎드려 “주여,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나사로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될 것은 믿을 수 있지만, 지금 살아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란 지금 믿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하나님과 미래의 하나님은 믿으면서, 지금의 하나님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기적을 행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너무나 기적을 기대한다고 공격합니다. 옛날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괴로웠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이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망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기적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만났을 때 여기 저기 해결 방법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기도의 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설교가이며 기독교 작가인 토저(A. W. Tozer)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하나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빠서 기도를 못한다고 말하지만,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면,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설교가 찰스 스펄전(C. H. Spurgeon)은 “기도는 황금 열쇠”라고 말했고, 감리교 목사였던 바운즈(E. M. Bounds)도 “기도는 하나님의 거대한 창고를 여는 열쇠”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열쇠입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목사님은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씩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은 외국에서도 자주 받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하면 “목사님, 그런 말씀을 하지 마세요. 우리보고 심방은 하루 종일 한다면서 또 기도는 언제 하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쉬지 않고 하는 기도의 비결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주님 중심에 두면, 말씀 증거를 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상담을 하면서, 밤에도 잠을 자면서도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비결을 아셨으니 여러분도 모든 생각을 예수님께 복종시킴으로 항상 기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끊을 수 없는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기도로 나아가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가 충만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힘이 없는 인생과 물질, 그리고 환경을 의지했던 믿음 없는 우리 모습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음을 믿고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도 그러한 권세가 있음을 기억하고 온전히 사용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이 권사(용산대교구)

- 갓 태어난 손자 ‘장 절제 위기’ 기도로 이겨내

성령 충만으로 기도 하며 평안으로 응답 받아

2011년 딸이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 임신 출산과정 모두 순조로웠는데 태어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아기의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출산 병원에서 강남성모병원으로 아이를 옮길 때 내가 보호자로 앰뷸런스에 동승했다. 위급한 상황에 놓인 손자를 위해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그런데 입에서는 아프지 않게 해달라거나 아무 이상 없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아이가 성령 충만 받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만 나왔다.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한 후 의사는 ‘아이 장에 구멍이 나서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며 수술이 시급하다고 했다. 아마 구멍이 발견되면 상처부위 양 옆으로 각각 10㎝씩 총 20㎝의 장을 잘라야 할 거라고도 했다. “하나님 갓 태어난 아기의 장을 잘라 내야 한다니요. 성령의 불로 구멍이 난 분위가 메워지고 치료되게 해주세요.”

 성령 충만을 외치며 기도 하던 중 어느 순간 깊은 평안이 밀려왔다. 40년간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기도와 응답을 받았고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믿고 감사하며 기다렸다.  

 아이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몇 시간 뒤에 의료진이 나와서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개복을 하고 구멍을 찾기 위해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았는데 구멍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네 명이나 아이의 장을 꼼꼼히 살펴봤고 서로 같은 부분을 지적했는데 돌기 같은 부분이 있어 손길을 몇 번씩 멈췄다고 한다. 오돌토돌한 모양으로 메워져 있는 모습에 ‘여기가 그곳이었나?’라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고 했다. 구멍을 찾을 수 없어서 장을 소독만 하고 봉합 후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는 빠른 속도로 회복해서 수술 5일만에 물을 먹게 됐고 뒤이어 우유도 먹게 됐다. 결국 8일 만에 퇴원을 했는데 이후 크게 아픈 적 한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개복했던 부위도 아이가 성장하면서 희미한 모습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위가 직장일 때문에 스웨덴에 가면서 세 식구 모두 가게 돼 손자는 그곳에서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볼 수 없지만 통화를 자주한다. 나는 손자 진욱이를 “우리 성령 충만 진욱이”라고 부르며 늘 축복해준다. 진욱이가 평생 성령 충만하여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놀라운 기적 속에 사위의 믿음이 강해졌고 우리는 모든 일을 온가족이 기도하며 이겨나가고 있다. 고난 속에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드리며 나의 삶을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 드리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나에게 생수 부으시니                    

//

 



 


'말씀과 찬양의방 > 복음송듣고 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받아 주소서  (0) 2020.01.30
믿음으로 이겨 나가리   (0) 2019.02.23
오직 하나님 은혜라 //   (0) 2019.02.03
약한 나로 강하게~  (0) 2019.02.03
나의 등 뒤에서|복음성가영상악보  (0) 2018.11.28

성경 골든벨 문제-25

잠언

11. 잠언의 교훈을 한마디로 말한 것은?(19:14)  

  ① 전도하라 

  부지런하라 

  지혜를 얻으라 

  싸움하지 말라

 

     

12. 잠언에서 "다투는 여인"을 묘사한 것은?(19:13)  

  ①이어 떨어지는 물방울

  ② 물에비치는 얼굴 

  ③ 굴리는 바퀴

  타작마당의 키

     

 

13.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 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나은 곳은?(21:9,19)  

  움막이나 광야 

   동굴이나 움막 

   사막 

   셋집이나 바닷가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 )에 들어갈 말로서 맞는 것은?(14~25)

      

14.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 ) 길이니라"(14:12)  

   ① 사망의 

   고난의 

   길도 아닌 

   사막의

 

      

15. "( ) 분노를 쉬자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① 유순한 대답은 

   사람의 선물이 

   왕의 위협이 

   진실한 친구가

 

      

16.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 )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 )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

 

   ① 의인, 재물  

   용사, 성 

   장수, 금 

   독수리, 평화

 

     

17. "네가 ( )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26:12)? 

  아내를 얻으려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마음에 악을 품는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18. "( )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28:1)?  

    ① 여호와가 미워하는 자들은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은 

    ③ 이방 무할례자들은 

    악인은

 

 

 

 

19. "마른 먹 한 조각만 있어도 화목하는 것이 ( )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7:1)?

 

재물 자신 육선 손님

 

      

20.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눕자 하니 네 빈궁이 ( )같이  

오며 네 곤핍이 ( ) 같이 이르리라"(24:33-34)?

 

  ① 벼락, 번개 

  강도, 도적

  인수, 도적 

  강도, 군사

 


 



'말씀과 찬양의방 > 성경공부,퀴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 골든벨 문제-27  (0) 2019.03.08
성경 골든벨 문제-26  (0) 2019.03.06
성경 골든벨 문제-24  (0) 2019.02.03
성경 골든벨 문제-23  (0) 2018.11.10
성경 골든벨 문제-22  (0) 2018.10.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