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조용기목사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태복음 7장 24~25절)

창세기에 보면 우리가 보는 지구와 우리가 보는 우주를 지으시기 전에 지극히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좋고 아름다운 지구를 꿈꾸시고 그렇게 되도록 창조적인 명령을 말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지극히 좋은 지구를 지으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 우주를 짓기 위해서는 성령과 꿈과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려고 할 때에도 성령께서 운행하셔야만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4차원의 영성의 주체이시며 창조의 근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환경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으로 꽉 차 있을 때, 성령께서 운행하시면 우리 삶에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1. 꿈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운행하게 하시려면 먼저 꿈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꿈이라는 것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말하는 꿈과 희망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은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복음을 꿈꾸고 소유할 수 있는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가지십시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는 4차원적 존재로서 속사람, 곧 영적 사람을 통하여 3차원의 세계를 마음에 부둥켜안고 기도함으로써 기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도화지에 자기가 소원하는 꿈과 목표를 그려 놓고 이것을 분명히 바라보면서 뜨겁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꿈과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 뜨겁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기적을 체험하고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 중에 뜨겁게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3년 반 동안 가뭄을 당하여 고통할 때, 비가 오기를 위해 기도했는데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던지 머리가 다리 사이에 들어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꿈과 소원이 불기둥같이 타오르면 “주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하고 금식하고 철야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가장 강한 것은 식욕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소원이 간절하고 뜨거우면 먹는 것조차 중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소원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은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소원하면 그 소원 때문에 철야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거룩하게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 그 소원을 따라 내일에 대한 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게 되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여 주시며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과 소원을 가지고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이 큰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 구역장님들을 임명할 때, ‘교육을 얼마나 받았느냐? 용모가 잘 생겼느냐?’ 이러한 것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주님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느냐?’를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뜨거운 열정을 가진 구역장은 그 열정이 구역을 부흥시켜 한 구역에서 두 구역, 세 구역 불어나게 하고 구역원들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인물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은혜를 받아도 그만, 받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신도 죽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게 된 원인은 우리 교회에 뜨거운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교회성장세미나에 참석했던 외국인 교역자들이 수요일 밤과 금요일 밤에는 아예 잠을 안 자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우리 성도들이 성전에 모여서 밤새도록 찬송하고 기도하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에 아예 잠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거룩한 소원이 불타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여러분 안에 거룩한 소원이 있으면 여러분의 삶은 계속 발전하고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응답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2.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

그 다음, 마음속에 꿈을 품고 뜨겁게 기도하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꿈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영적인 그릇입니다. 믿음이라는 그릇을 준비한 후 기도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그릇에 응답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품는 것입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미래의 것을 현재 우리의 가슴 속에 품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탄식하지 않고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장차 다가올 것을 현재에 내 품에 와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자녀도 없는 노부부가 만국의 아비요, 만국의 어미라고 서로 부르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아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아들이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민족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는 아내를 자식을 많이 가진 어미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또,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줄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이미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천하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나에게 아직 다가오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이미 내가 너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면 이미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먼 훗날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무리 훗날의 일일 것이라도 그것이 오늘 내 속에 일어난 것을 바라보고서 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사용하면 우리의 삶은 상상 이상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꿈과 소원을 품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믿으면 성령께서 그것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믿음이 개발될 수 있을까요? 믿음은 말씀을 듣고 성령 충만할 때 강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간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피부병으로 수십 년 동안 고생한 분이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미스 아메리카가 나타나서 자기 다리가 짧았는데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짧은 다리가 길어져서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다고 간증한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간증을 듣고 이분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의 짧은 다리를 고쳐 주셨다면 나의 피부병도 고쳐 주실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성경에 있는 신유에 관한 말씀을 전부 노트에 기록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날부터 그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서 소리 내어 기도하자 마음속에 세상을 움직일만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자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너의 병은 이날로써 낫는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날로부터 피부병과 육신의 질병이 싹 나았다는 간증을 읽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이 믿음을 보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강력한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무풍지대에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도 고난의 바람이 반드시 불어옵니다. 그러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토네이도나 쓰나미가 불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 7:24~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몸이 아주 좋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힘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오면 여기에서도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에 쉴 틈이 없이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장이 나빠졌는데 엉덩이와 허리가 아프고 한기가 나고 하루 종일 졸리고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몸이 안 좋은데도 계속 일이 밀어닥치니까 할 수 없이 다리를 끌고서 일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드러누웠습니다.

그러다가 금요일 저녁에 강남성전에 가서 설교를 해야 하는데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오늘 저녁 설교하다가 “내가 죽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우리 성도들 보는 앞에서 그런 모습을 안 보여야 되기 때문에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 신장을 고쳐주십시오. 이렇게 아프면 제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두 손을 내밀어 한 손은 내 가슴에 얹고 한 손은 내 신장에 얹어서 주님께서 나를 고쳐주는 모습을 늘 마음속에 그리고 기도를 했는데 믿음이 안 생겼습니다. 그래도 늘 그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강남 성전에 가서도 강단에 엎드려서 “주님께서 지금 나를 고쳐 주시옵소서.” 하면서 늘 그리던 그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주님께서 껄껄걸 웃으시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님께서 마귀를 향해서 비웃으시는데 시편에 주께서 저들을 비웃으시리라고 하는 말씀대로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마귀야, 이 몸은 내가 사용하는 성전이다. 내가 사용하는 그릇이다. 네가 아무리 병을 가지고 와서 이 몸을 기한 전에 깨뜨리려고 해도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이 몸은 깨뜨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손을 떼라!” 그러한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리더니 내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 같이 믿어지고 ‘이미 나았다.’ 라는 확신이 마음속에 꽉 들어찼습니다.

그때까지 여전히 몸은 아팠는데도 마음속에 그런 확신이 넘쳐 나서 그날 저녁에 하나님의 은혜로 잘 설교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새벽 2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어갔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깨끗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꿈을 가지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면 성령께서 어느 순간에 확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려고 애를 쓸 동안에 아직 믿음이 적을 땝니다. 믿음이 오면 믿음이 나를 붙잡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의 포로가 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입술의 말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

그 다음에 우리가 창조적 명령의 말씀을 명할 때, 3차원의 세계 속에 창조와 변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입술의 말에도 창조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은 우리가 창조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의 말로써 우리의 삶을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사업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그 입술의 고백을 들으시고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이 말씀을 믿고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업이 안돼요. 끝장났어요. 이젠 절망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을 통하여 마귀가 들어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찬송을 부르고 감사하면서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 예수님이 저주를 짊어지셨으므로 나는 저주와 상관이 없다. 기적이 나타난다.” 그렇게 선포하고 나아가면 여러분이 시인하는 말을 통해 성령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또, 병 고침을 받는 축복도 그렇게 받습니다. “기도를 받아도 낫지 않고 아프기만 해요.”라고 말하면 성령께서 어떻게 병을 고치시겠습니까? 이러한 사람은 의사를 밖에 세워 두고 “의사 선생님, 안에 들어오지 마시고 제 병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병 고치는 말씀을 시인할 때, 병이 치료받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하는 이사야의 말씀을 믿고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병을 고치시는 성령의 역사가 오늘 여러분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고 망하는 것을 흥하게 하시고 패배를 승리로 바꿔 주시고 가난을 부요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능력을 풀어놓는 열쇠가 바로 여러분의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로써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환경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낙심하거나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성도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없고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는 성령님을 모시고 마음의 화판에 좋은 것을 그려놓고 그것에 마음을 집중하여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날마다 여러분의 삶에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다가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하나님께 의지해 모든 짐을 내려놓고 가볍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도와주옵소서. 성령이 활활 타는 불길같이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평안을 품은 가슴/조용기목사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장 27절)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침공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백성들 중에서 싸움에 나갈 자를 모집했는데 3만 2천 명이 싸우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슴속에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사람은 어떤 싸움에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 마귀가 주는 두려움

인간의 삶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감정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크고 적은 두려움의 공격을 받습니다. 두려움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요. 질병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버림당할까 하는 두려움 수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크든 작든 간에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어떤 것이든지 이것이 오랫동안 마음을 점령하게 되면 그 삶이 파괴되고 황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불안은 근본적으로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마귀가 인간의 마음을 점령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슴속에 평안이 넘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반역하고 나자 아담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서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게 오는 편지 중에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하소연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들은 앉아서도 두렵고 서서도 두렵습니다. 일이 안 될 때도 두렵고 일이 잘되어도 두렵습니다. 불행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유 없는 두려움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두려움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심을 가져다주는 것은 원수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때, 마귀는 먼저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을 줍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우리의 믿을 것을 무력화시켜서 마귀에게 저항할 힘을 잃게 만든 다음에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아버님이 과수원을 했는데 우리가 개를 십 수 마리 키웠습니다. 개가 사람이 오면 뛰어 나가서 짖는데 달아나는 사람은 영락없이 물립니다. 그러나 달아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오는 사람은 개가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할뿐이지 결코 달라 들어서 물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의 파장을 개가 느끼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물고 찢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가득하면, 마귀가 와서 물고 찢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두려움과 불안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두려움과 불안은 마귀가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내어 쫓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마귀를 대적하고 가슴속에 평안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할 때, 비로소 가슴속에 평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나무 사이에 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에 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시 91:1~2)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품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어미 새가 그 새끼를 날개 아래 숨기고 깃으로 덮어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품에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품의 안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캄캄한 밤이 와도 어머니의 사랑의 품에 안겨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면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안을 마귀에게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두려움을 가지고 공격할 때,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야고보서 4장 7절은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긍정적인 가슴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니까 자꾸 달려들지요.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피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권세를 가지고도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잘못이지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는 도둑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늘 조심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세계에도 도둑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여러분에게 와서 마음의 평안을 빼앗고 가정의 평화를 빼앗고 화목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다가올 때, 여러분은 서로 원망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는 안 되지요. 오늘 이 시간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갔는데 마치 벌떼가 와서 집을 덮친 것같이 집안 분위기가 저기압일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그럴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집안 분위기가 우울하고 저기압은 마귀가 시험을 하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그럴 때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향하여 호령을 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집에서 떠나가라!” 그러면 얼마 있지 않아서 봄바람 같이 신기하게 모든 것이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평안과 온화함을 기쁨이 온 가정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 권세를 행사했더라면(행사하지 아니했더라면 이라고 말씀) 수없이 많은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고 수많은 마음의 파탄을 부부 간의 파탄 삶의 여러 가지 두려움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평안과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3.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삶

여러분께서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을 다 버리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 내가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어떤 부부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남편이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만 회사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절망하기를 거부하고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생활은 점점 더 절망적이 되어서 더 이상 살아갈 길이 막막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부는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도 절망하기를 거부하고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생활이 어려워지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골목에 처하게 되자 “이왕 죽을 바에는 마지막으로 순복음교회에 가서 운명을 결단 내리자.”하고 저희 교회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 한 번만 기도해 주시면 우리 운명이 바뀔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은 기대에 넘치는 말을 하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위해 평범한 축복의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편지에 보니까 그때 내 기도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리고 예수님의 차랑차랑한 목소리의 이와 같은 말씀이 그의 영혼 속에 뚜렷이 들려오더랍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 네가 오랫동안 잘 견딜 수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겪고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이제 내가 네게 상을 주겠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 후로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는데 3일 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외국 기업에서 자기 발로 걸어와서 30만 달러어치 물건을 수출 계약을 맺고 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꿈과 믿음을 품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는 것을 꿈꾸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꿈의 그릇도 반드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꺼져가는 소망도 아니고 죽어가는 소망도 아닙니다. 살아있는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슴속에 꿈을 품고 늘 희망차고 긍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부정적인 말이나 절망적인 말을 하면 나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남도 희망을 잃게 되고 맙니다. 모든 일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잘 되는 것도 있고 못 되는 것도 있습니다. 축복 받을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좋게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지난 60년의 목회를 되돌아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늘 희망의 전도자가 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 성도들은 삶의 희망을 잃고 절망하여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못 살겠다 변두리로 쫓겨난 사람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희망을 주는 교회로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받아 변화되고 기적을 체험하고 꿈과 희망을 붙잡고 오늘날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절망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그래서 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힘차게 선포했고 성도들은 가슴속에 희망을 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슴속에 꿈과 희망과 평안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바라보고 의지하면 용서와 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면 성령 충만과 거룩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주와 가난이 청산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으며 부활과 영생, 천국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가슴에 품고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로우시고 사랑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한 일들뿐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평안으로 변화시켜주시고 믿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절망하고 낙담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오니 늘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찬균 성도(대학청년국)

- 신생아 경련으로 집중치료실 입원했던 아기 치유


이영훈 목사 신유기도 후 빠르게 호전돼 퇴원
건강히 성장해 헌아식 참석 기쁨과 감사 넘쳐

2018년 6월 9일 아내가 딸을 출산했다. 산부인과에서 퇴원을 준비하던 중 신생아실에서 연락이 왔다. 아기가 경련 증상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구급차를 타고 근처의 대학병원으로 아기를 이송했다. 아기는 태어난지 3일 만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입원하게 됐다. 면회시간에 가보니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 있었고,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던 아기의 몸에 여러 주삿바늘이 꽂히고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힘없이 처져있는 아기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집에서 함께 지낼 행복한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더 큰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신생아 경련의 원인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아내와 아기를 돌봐야 했는데 길을 가거나 눕거나 자는 순간에도 계속 기도했다. 지난날 동안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하고 조리원에 있는 아내와 손잡고 같이 울며 통성으로 기도했다. 몸조리를 하던 아내는 직접 교회를 갈 수가 없어 위성으로 예배를 드렸다. 6월 15일 금요성령대망회 때 이영훈 위임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라는 성경말씀이 레마로 다가왔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이 반드시 고쳐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뜨겁게 기도했다. 17일 주일 3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아내는 아기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고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 때 이영훈 목사님께서 우리 아기의 증상을 정확히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우리의 소식을 들은 이영훈 목사님께서 6월 23일 병원에 직접 오셔서 아기의 인큐베이터에 손을 얹고 치유를 선포해주셨다. 2시간 후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있었다. 아기가 눈 뜨고 있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는데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렐루야!

 의사는 입원한 날부터 아이의 상태를 봐야한다며 퇴원날짜를 계속 미뤘다. 하지만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이틀 만에 퇴원 날짜가 확정돼 3일 후 건강하게 퇴원했다.

 우리 아기는 7월 6일 조용기 원로목사님께도 기도를 받았다. 조용기 목사님께서는 아기를 위해 기도해주시고는 “기도해보니 별 문제가 없는데”라고 말씀해 주셨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딸은 지난 주일에 열린 헌아식에도 참석했다. 딸아이와 우리 가족은 이영훈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며 감사하고 특별한 주일을 보냈다. 아기를 통해 우리 가정에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신생아 때부터 많은 기도를 받고 자란 우리 아기가 평생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딸이 되길 바란다.


정리=이미나 기자

 


이미숙 성도(종로중구대교구)

- 실버타운 운영의 꿈 주님과 함께 이뤄가요

어려운 순간 마다 기도원 올라가 울며 기도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타종교를 믿었다. 시댁 역시 우상을 섬기는 가정이었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교회나 기독교는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 나는 늘 열심히 살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전화로 들을 수 있는 조용기 목사님의 10분 설교를 알게 됐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10분 설교를 들었다. 마음에 큰 위로가 됐지만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 전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선뜻 교회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전화로 설교를 들으면서 ‘내게 지혜가 있다면 꿈이 이뤄지겠구나’라는 생각은 막연히 했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는 외롭고 힘든 이들을 보살피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병환 중인 시아버님을 모시면서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 2009년부터 인천 검단에서 요양원을 운영하게 됐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산하 사회사업선교회에서 우리 요양원에 와서 봉사를 해 주셨다. 매주일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예배도 드려 주시고 말동무도 돼 드리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셨다.

 몇 년간 한결같은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며 저분들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크기에 시간과 물질을 드리면서 이토록 헌신하는가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 4년 전 사회사업선교회 실장님과 권사님의 권유를 받아들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결심했다. 그때부터 주일 예배와 금요성령대망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십일조도 드렸다.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이 무너질 때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올라가 울면서 기도했다. 요양원을 운영하느라 따로 시간 내기가 어려워 새벽에 주로 갔다.

 10년간 사고 한번 없이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고 나은 환경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싶은 새꿈이 생겨났다. 고양시에 장소를 구입하고 400평 규모의 실버타운에 적합하도록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공사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기도하면 기적처럼 해결됐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기도원에 오르는 횟수가 늘어나고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다.

 

무엇보다 나는 당장 눈앞의 어려움만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기도의 순서를 바꿔주셨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업은 실버타운 이전에 나의 딸이었다. 딸은 결혼하고 오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병원을 다니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드디어 결혼 7년 만에 남매 쌍둥이 임신소식을 듣게 됐다.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 뒤이어 실버타운 준공과 인허가도 났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주셨으니 마무리도 하나님께서 해주실 줄 믿습니다. 운영은 하나님이 하시고 저는 관리자입니다’라고 기도했다. 앞으로 나는 아름답게 마련된 실버타운에서 어르신들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소명을 다하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이영훈목사

<말씀봉독>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누가복음 24장 13~14절, 28~32절)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부활 신앙이 2천 년 동안 우리 기독교를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 세계 3분의 1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고 이 부활 신앙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오늘도 인류는 죄와 절망 가운데 낙심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너무나 부정적인 이야기, 절망적인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경제가 어렵고, 국가 안보가 어렵고, 외교 문제가 어렵고, 통일 문제가 어렵고,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긍정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셨다는 이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다같이 기도할 때 다른 기도하지 말고, 감사하는 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오늘 여기까지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자유 대한민국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고, 북한 2,500만 불쌍한 동포들은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면 붙잡혀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서 평생 풀려나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 그러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자유 대한민국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이 대한민국을 붙들고 계심을 감사하고, 우리에게 밝은 내일을 허락해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오늘 다른 기도하지 말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복음성가: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왕의 왕이 되신 주

예수 당신의 끝없는 사랑

오 예수 목소리 높여 찬양해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 찬송, 존귀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께 예배 드리오니 주님 이 예배를 기뻐 받아 주시옵소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부활의 기쁨이, 감격이, 은혜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누가복음 24장을 본문으로 해서 ‘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 ‘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 이래 최대 기적이고 축복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이 펼쳐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내리막길 인생

오늘 말씀은 부활의 날에 부활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내리막길을 가고 있던 두 제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내리막길 인생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다녔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큰 충격을 받고 낙심하여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11km 떨어진 엠마오라고 하는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무덤에 가보니 무덤이 비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는가 큰 충격 속에 슬픔 속에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사는 사람 누구나 때때로 내리막길을 가게 됩니다. 늘 말 잘 듣고 착하고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중학교 가서 갑자기 돌변하더니 폭력적으로 되고, 사사건건 부모에게 대들고, 급기야는 학교를 중퇴해서 온 집안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그러한 가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 제가 아는 어느 분은 결혼한 지 2년이 되어 아이가 태어났는데 남편 되신 분이 위암 말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함 두어 달밖에 안돼서 옆에서 버둥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큰 충격과 슬픔 속에 끝이 모를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을 가는 인생을 살아왔던 분을 기억합니다. 매일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돌봐야 되고 삶을 꾸려나가야 했던 그 힘들고 어려웠던 그 모습을 기억합니다.

또 어떤 분은 잘 나가는 벤처기업 사장으로 승승장구하며 나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주식이 폭락하면서 파산지경이 되어서 완전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런 내리막길 인생을 사는 분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는 알게 모르게 내리막길을 갈 때가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고 그토록 의지했던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나서 낙심하여 삶의 희망도 용기도 다 잃어버린 채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5절 16절은 설명합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하나님 없는 인생길은 내리막길 인생입니다. 아담과 하와부터 내리막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 가운데 방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지금 죄와 절망 가운데 내리막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 내리막길 인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절망의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리막길 인생을 돌이켜 보려고 관심을 갖고 그것을 얻을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돈과 권력입니다. 그러나 최상위층에 살고 있는 분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실망하는 그런 뉴스를 많이 대하게 됩니까? 약물 중독에 빠지고, 도덕적으로 한없이 타락하고, 갈지 자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는 참 안타까운 마음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이 절망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에만이 우리는 이 내리막길 인생에서 벗어나 다시 회복되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절망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신 위대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리막길 인생에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내리막길에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놀라운 것은 이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내리막길 인생에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리막길에 동행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 24장 15절은 설명합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니

원래 두 제자는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저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로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그 놀라운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그 기적을 보면서, 풍랑을 잠잠케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오천 명, 약 이만 명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열두 바구니가 남게 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눈을 뜨고, 나병 환자들이 치료함을 받고 이러한 기적을 보면서 과연 예수님은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다. 예수님을 열렬히 믿고 의지하고 지지하며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붙잡히셔서 그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온몸에 채찍에 맞아 온몸을 채찍에 맞아 찢기시고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크게 낙심하고 실망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꿈과 희망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예수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저들이 살아갈 꿈도 희망도 용기도 다 사라져 버리고 망연자실해서 저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내리막길 인생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절망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수 없지만 주님이 우리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와 동행하셨던 예수님이 지금도 절망의 길을 내려가고 있는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릴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천 년 전 제자들과 동행하셨던 예수님이 지금도 절망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와 동행하시고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사람들은 참 이기적입니다. 자기의 유익이 되면 가까이 다가오고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가차 없이 가까웠던 사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사람들의 인심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때에 가깝게 지낸 친구 아버님이 고위 관직에 계셨는데 어느 날 저한테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관직에 있을 때 문전성시를 이루고 명절 때가 되면 온갖 선물 박스가 쌓였는데, 관직에서 물러나고 나니깐 발길이 딱 끊어졌다고. 매일 같이 문안 인사 드리러 온 사람이 문안 인사 드리러 오기는커녕 전화도 없고, 명절 때마다 들어오던 쌓이던 선물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이게 세상 인심인가 보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유익이 있다고 하면 다 거기로 몰려가지만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등을 돌립니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고 부모님 중에 누가 아프셔서 오 년, 십 년 누워계시면 자식들끼리 눈치 주며 서로 다툽니다. “네가 모셔라.” “네가 모셔라.” 그것이 세상 인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내리막길을 갈 때 등을 돌리고 떠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절망에 처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우리의 길에 동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 우리가 스스로 자기 잘못으로 인하여 큰 상처를 입고 주저앉았을 때, 우리가 어떤 큰 범죄를 저질러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을 때, 그때에도 그때에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가오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의 축복의 길이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네 거적에서, 네 동굴에서, 네 십자가에서, 네 절망에서 일어나 다시 걸어가라!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시간이다. 바로 지금 주님이 당신을 만나고자 하신다. 그저 도움을 요청하라. 무력할수록 더 좋다. 나의 끝이야말로 주님이 나를 만나주시는 지점이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바로 하나님의 시작인 것입니다. 절망의 끝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 싹트는 시간인 것임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길에 찾아온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주의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위로해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 마음에 뜨겁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주님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에 대해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을 보니까 실의에 빠져 걸어 내려가고 있는 두 제자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위로하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저들에게 주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그래서 모든 믿는 사람들의 주님(the Lord)이 되셨다.”

빈 무덤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에도 전혀 이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저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의 눈이 띄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절망이 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예수님이 옆에 계신지 몰랐던 것 같이 너무나 절망이 깊고 상처가 깊으면 아무도 안 보이고 죽어가는 자신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주님이 곁에 계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여러분을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깊은 절망의 자리에서 상처 입은 그곳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절망의 눈을 떠서 생명 되신 우리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저희 마음이 뜨거워지고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날이 저물어서 예수님을 청하여 이곳에서 하루 쉬면서 말씀을 계속 나눠주십사 하고 여관에 들어가서 함께 식탁을 대합니다. 누가복음 24장 30절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절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께서 감사 기도드리고 떡을 뗄 때 그 절망의 자리가 희망의 자리로 슬픔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로 문제의 자리가 해결과 응답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예수님과 이야기하면서도 예수님인지 몰랐던 그들이 예수님이 축복하시고 떡을 떼려고 하는 그 순간 눈이 떠졌습니다.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예수님이시다.” 하는 그 순간 예수님이 사라지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절망에 눈이 감겨 아무것도 보지 못한 분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눈이 떠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위로와 힘과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너져가는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상처 투성이인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면 죽겠다고 그럽니다. 왜, 문제만 보이니까. 자신만 보고 있으니까. 상처만 보고 있으니까. 그러나 상처보다 크시고 문제보다 크시고 문제 해결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눈이 떠졌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은혜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32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절망으로 눈이 감겨버리면 무슨 말을 들어도 마음에 그것이 와닿지 않습니다. 너무 상처가 커서 상처로 인해서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눈 감으면 상처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눈 감으면 절망의 자신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눈 감으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치료합니다.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절망의 눈이 떠지게 되고 상처로 닫혔던 눈이 떠지게 되고 슬픔으로 닫혔던 눈이 떠지게 되고 희망의 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마음에 다시 뜨거움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내리막길의 인생을 걷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온 눈이 감겨 졌습니까. 예배에 와도 아무런 감동도 없고 찬송을 불러도 아무런 감동도 없고 말씀을 들어도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고 혹시 이런 내리막길의 인생 가운데에 있는 분이 안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듣고 치료되고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마음이 뜨거워지게 되길 바랍니다. 뜨거워지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은혜받았을 때의 그 모습으로 다시 회복되어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주여! 우리 마음이 뜨거워져서 성령의 은혜로 말씀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절대 주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먼 길을 가는 야곱에게 준 창세기 28장 15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내리막길 인생이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만난 후 마음이 뜨거워져서 오르막길 인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내리막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든지 간에 예수님을 만나서 오르막길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오르막길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주여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모두가 다시 오르막길 인생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제가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많은 부정적인 소문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너진 우리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절망으로 인해 닫혀진 눈이 캄캄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영의 눈을 떠서 이제는 내리막길 인생이 오르막길 인생으로 바뀌어야 될 것입니다.

내리막길 인생이 오르막길 인생으로 바뀌게 되면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게 된 빌 게이더 부부를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저기 잘생긴 분이 빌 게이더 남편이고 부인이 글로리아 게이더 부인이신데 원래 이 빌 게이더 이분은 영어 선생님입니다. 1959년 알렉산더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계시는 가운데 그 학교에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교를 잠시 못 나오게 돼서 임시 보조교사로 왔던 글로리아 시칼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와서 프랑스어 보조교사를 했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두 분이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3년 후에 1962년에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 빌 게이더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이 찬양을 작곡하는 은사를 주셔서 영어 선생님이지만 많은 찬양을 작곡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복음성가를 그분이 많이 작곡했어요. 부인은 또 글을 잘 써서 작사를 합니다. 그래서 아주 둘이 찰떡궁합이 되어가지고 환상의 콤비로 찬양을 지어서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끼친 그러한 부부가 되었고 빌 게이더는 복음성가의 빌리 그레이엄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분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처음 작사 작곡해서 발표한 것이 1963년에 지은 “He touched me”라고 하는 곡입니다. 우리나라 복음성가로는 “주 붙드네”라고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요 이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엘비스 프레슬리 라고 하는 가수가 이 노래를 71년도에 부르고 72년도에 그래미상을 탑니다. 원래 저분이 우리 순복음교회 성가대원이었는데 말이죠, 교회에서 찬양대만 부르고 있었으면 그 인생이 허무하게 안 마쳤을텐데 너무 유명해져가지고. 가수가 되어 가지고 약물 중독을 40대에 죽고 맙니다.

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He touched me가 전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그 다음 많은 곡들을 이분들이 지었는데 그러다가 이 가정에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이 남편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걸려서 무기력에 빠진 것입니다. 단핵구증이라고 하는 병에 걸렸는데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내리막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가정이 파탄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인이 남편 돌보랴 아이들 돌보랴 너무 하루하루가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까웠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저 사람들 돈벌이하려고 복음성가를 만든 것이다. 찬양이 목적이 아니라 돈벌이가 목적이다. 이렇게 비난을 했습니다. 가까웠던 지인이 등을 돌려 이렇게 비난하게 되니까 그 스트레스와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남편이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의 종착역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깊은 우울증에 빠졌을 때 또 예기치 않게 부인이 임신을 했어요. 세 번째 아이를 가졌습니다. 하루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이제 산달이 다가오는데 매일같이 고민합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이 아이가 당하는 환경은 재정적인 어려움, 주변 사람들의 비난, 아픈 아버지, 온갖 문제와 어려움의 그러한 절망의 구름이 뒤덮고 있는데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절망의 밑자락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 가정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한 가지 몰랐던 것은 그 내리막길을 가고 있을 때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눈을 떴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는 고백합니다.

“그가(주님이) 살아계시기에, 나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내일을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다.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all fear is gone.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다. 할렐루야.

그래서 지어진 불멸의 복음성가가 1971년에 지어진 “because he lives” “살아계신 주”입니다. 이 살아계신 주가 한국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복음성가를 통해서 뮤지컬 알렐루야를 통해서 전국에 보급되었습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빌 게이더 선생님은 이 찬양을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나 4번이나 그레미 상을 받게 되었고 20번이나 도버 상을 받게 되었고, 1984년에는 복음성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내리막길 인생에 우리 주님이 동행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굽이굽이 다가오는 고난의 때에 내리막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혼자가 아닙니다. 외로운 길 혼자 걸어가고 있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 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내리막길 인생이 오르막길 인생으로 변화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으로 내리막길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만나서 오르막길 인생으로 살기 원하오니, 주님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고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셔서 모든 절망과 상처와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주님과 동행하며 오르막길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주미자 권사(마포1대교구)

- 새벽기도 하며 역류성 식도염과 위궤양 치유

통증 심해도 감사하며 치유의 하나님 의지
기도 응답의 시간인 특별새벽기도회 기다려져

지난해 연말부터 위가 너무 아팠다. 계속 참아봤지만 통증이 계속돼 병원에 가보니 역류성 식도염과 위궤양이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통증은 계속됐다. 병원에서 다른 종류의 약을 다시 처방 받아왔지만 그래도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2019년 새해가 되면서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가 시작됐다. 여선교회 섭외실장인 나는 이번엔 어떤 은혜를 주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새벽예배에 참여했다. 특별새벽기도회 10일 째가 되던 날 이영훈 위임목사님께서 “위궤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치료받았다”는 말씀을 선포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지만 통증은 계속됐다. 위가 아픈 것은 물론 소화도 안되고 머리도 아팠다. 집에 가서 어린 손자와 손녀를 돌보고 있는데 몸살이 온 듯 몸이 안좋았다. 밤 11시쯤 되니 턱이 덜덜 떨릴 만큼 오한이 났다. 2시간 동안 그렇게 떨며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새벽 1시가 되니 춥지는 않았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잠깐 누웠는데 새벽 3시 10분으로 맞춰놓은 알람이 울렸다. 새벽예배 가는 시간이었다. 잠도 못자고 온 몸이 땅 밑으로 꺼지듯 처지고 아팠지만 죽더라도 예배드리다 죽자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나는 계속 입으로 몸이 건강해졌음을 선포했다.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과 위궤양을 치료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감사헌금을 드렸다. 사실 온 몸이 너무 아파 괴로웠지만 그냥 감사만 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되뇌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명치끝이 편안해지고 온몸이 쑤시던 통증이 사라졌다.

 특별새벽기도회 11일째 되던 날 이영훈 목사님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위궤양을 치료하셨습니다”라고 선포하셨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멘’을 외쳤고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픈 중에도 감사하며 새벽에 교회에 나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일으켜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나는 새벽예배가 너무 좋다. 이른 아침에 말씀을 듣고 간절히 기도하고 나면 성령 충만해져서 행복하다. 매달 3일 동안 진행되고 있는 제직 및 봉사자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고 있다.  

 

나는 특별새벽기도회가 시작된다는 광고를 보면 이번엔 어떤 은혜를 주실까 하는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부활절을 앞두고 4월 15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기다려 진다. 이번에도 기쁨과 감사로 완주해 하나님께 칭찬받는 충성된 일꾼이 되고 싶다.  정리=이미나 기자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이영훈목사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편 3~4절)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 반 사시면서 그중에 10분의 1, 약 3년 반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한 주간의 그 일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마가복음서는 거의 절반 가까이 그 마지막 일주일간의 기록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오늘 주일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때에 모든 무리들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님을 환영했고 겉옷을 펴서 앞에 깔고 주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날 다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어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는 늘 세속화되지 않고 거룩함을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화요일 날은 하루종일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시고 말세에 되어질 일을 예언하시고 그리고 수요일 날은 베다니에 머물면서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며 하루종일 기도하시며 다른 일정 없이 그날을 보내십니다. 그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와서 기름을 부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목요일 날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고별설교를 하십니다. 고별설교의 내용은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가면 나와 똑같은 너희를 돕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이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다음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수제자는 세 명은 가까운 곳에 기도하게 하시고 나머지 제자 9명은 아래쪽에서 기도하게 하셨는데 마지막 순간에 그 기도할 때까지도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그들을 깨우시면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었더냐?” 하고 안타까운 말씀을 하시고 금요일 새벽을 맞이하면서 가룟 유다가 앞서서 병졸들을 이끌고 와서 예수님을 붙잡아갑니다. 그날 금요일 날 밤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예수님은 단 1분도 쉬지 못하시고 여기저기 끌려다니셨습니다. 제일 먼저 끌려가신 곳이 현직 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인 직전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입니다. 안나스에게 가서 먼저 심문을 받고 그다음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가서 또 심문을 받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끌고 빌라도에게 갑니다. 당시 사형집행권이 유대인들에겐 없었고 로마 제국에게만 있었기 때문에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가서 자고 있는 빌라도를 깨워서 사형을 집행해달라고 합니다. 빌라도는 이 종교적인 문제에 연루되기 싫으니까 당시 자기와 좋지 않은 관계였던 헤롯왕에게 보냅니다. “당신네 사람이니까, 당신이 이 사람을 심문하시오.” 헤롯왕에게 끌려갔을 때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이 예수님을 심문하다가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냅니다.

빌라도에게 돌려보낸 후에 빌라도가 할 수 없이 재판을 열었습니다. 그때 불과 며칠 전에 예수님을 호산나 찬양하던 무리들이 제사장들의 돈을 받고 매수가 되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는 것이 금요일 날 아침 6시쯤 됩니다.

채찍질 당하시고 머리에 가시관 쓰고 피를 흘리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서 금요일 날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6시간 동안 온몸에 물과 피를 쏟으시며 고통당하시다가 오후 3시쯤 숨을 거두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서 주님이 이 모진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금요일 날 3시에 시신이 내려와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들어가 들어가서 안치되고 토요일 날 하루 종일 그 무덤에 계셨다가 신학적으로는 그때 음부에 내려가서 예수님이 계셨다가, 주일날 새벽 동트기 전에 한 4시쯤 그러니까 정확하게 죽음 가운데 사망의 권세 가운데 있었던 시간은 금요일 날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9시간하고 토요일 날 24시간하고 주일날 4시간 합치면 한 37시간 동안 사망의 권세 가운데 계시다가 주일날 아침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한 주간, 예수님의 그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정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나의 죄 때문에, 나의 허물 때문에, 나의 잘못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리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서 이제 이와 같은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 주위의 소외되고 헐벗고 병들고 고난 당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겠다는 그런 마음 자세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한 주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잠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14장 (통 511):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죄와 허물 때문에 우리 예수님께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금요일 밤 한잠도 못 주무시고, 온 등은 찢겨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셔 머리로부터 흘러내리는 피로 범벅이 되어 골고다 언덕에 오르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우리 때문에 그 모진 고통을 당한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 죄를 회개하고 주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시고 우리들의 여생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입니다. 시편 23편 3절, 4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

기독교 신앙에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 가장 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은 바로 십자가 신앙입니다. 그리고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앙이 또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이와 함께 사랑의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 또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일생 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은혜에 은혜를 내려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부 하나님의 역사로 저들과 함께하셨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성자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소외된 이웃들, 가난하고 헐벗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셨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열흘 뒤에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며 우리를 주님의 은혜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은혜에 우리는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때때로 낙심하고 상처 입고 쓰러져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주셔서 우리를 일으켜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에 대해서 시편 23편 3절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영혼의 침체는 우리 영과 혼과 육에 극심한 괴로움과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고통이 우리에게 엄습하면 그 극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다 무너져버립니다.

제 가까운 분이 여러 차례 저에게 얘기한 정부 고위급 인사 중 한 분이 계십니다. 대통령 경호를 책임졌던 분입니다. 또 88올림픽을 준비할 때 공을 세운 분입니다. 스위스 로잔에서 미국 NBC 방송국과 계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몸이 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모시고 왔던 분이 “위원님, 큰일을 앞두고 있는데 건강검진을 좀 받고 그리고 그 일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람아, 괜찮아. 나 지금까지 감기 한 번 안 걸렸잖아.” 워낙 건강 체질이기 때문에 평소에 술을 많이 먹는 게 그 삶의 습관이었긴 하지만 어디 한 군데 아픈 데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를 모신 보좌관이 간곡히 요청해서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와서 이야기합니다. “위원님, 간암으로 판정이 났습니다.”

한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분이 간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 죽는구나!’ 극한 스트레스가 그를 눌렀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분은 병원에 입원한 지 28일 만에 세상을 떠나 시신이 되어 나와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만일 모르셨더라면 그는 2, 3년은 살 수 있을 터인데…” 간암이란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 우리를 이와 같은 절망으로, 이와 같은 고통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이와 같은 권면이 있습니다.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오늘 여러 가지 일로 근심하는 분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마음의 기쁨이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약이 되지만, 마음의 근심은, 스트레스는, 염려는 우리의 뼈를 마르게 하는 그러한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고통의 순간이 다가와도,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절망에 처해 마음이 무너져내려 살고 싶은 의욕도 다 잃어버리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우리들을 붙들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일으켜주시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어떠한 절망과 고통과 스트레스로 이 자리에 오셨든지 간에, 우리를 소생시켜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를 이 시간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영혼의 침체에서 나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러한 힘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사랑의 주님이 절망의 자리에 우리와 함께하여 주셔서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붙들어주셔서 또 일으켜주시고 또 일으켜주시고 또 일으켜주신다는 그 은혜인 것입니다. 잠언에 고백합니다. 24장 16절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일곱 번 넘어져도 또 일으켜주시고, 여덟 번 넘어져도 또 일으켜주시고, 아홉 번 넘어져도 또 일으켜주셔서, 결국 굳건히 서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든지 간에,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과 상처로 낙심하였든지 간에, 주님 앞에 돌아 나와야 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주의 사랑으로 품으시는 주님께, 나의 모든 잘못을 내려놓고 회개하고 돌아 나오면 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6절과 7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야훼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주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고개를 돌리고, 우리가 절망에 처한 모습을 애써 외면하지만은,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는 더 큰 허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남의 조그만 잘못을 보면 다 돌 들어 던지려고 하는 그러한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문회를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미국 청문회는 그런 개인적인 검증은 미리 다하고 청문회에서 그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검증을 하는데, 우리는 개인적인 문제부터 파헤치기 시작하니깐 문제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본인도 그 자리에 서면 또 본인도 그렇게 문제가 또 많아요. 이것은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허물이 있어도, 죄가 있어도 “내게로 돌아오라! 회개하고 돌아오면, 너희를 불쌍히 여기고 너희를 용서하리라. 너희를 용서하리라. 너희를 용서하리라!” 할렐루야!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상처 입은 곳에서 붙들어주시고, 일으켜주시고, 완전히 어그러지고 깨어진 모든 것들을 다시 소생시켜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그 은혜를 여러분 모두가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회복시켜주시고 소생시켜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의의 길’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을 의미합니다.사람들은 늘 자기 의로움에 갇혀서 자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이고 옳았기 때문에 밥 먹듯이 죄를 짓고 잘못을 하고 남을 짓밟고 상처를 주면서도 뻔뻔하게 가식의 가면을 쓰고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 철저히 주님 앞에 그런 잘못된 모습을 회개해야 됩니다.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 위선과 가식과 거짓말과 잘못됐던 모든 모습을 다 용서해주시고, 주 앞에 바로 서서 주님 기뻐하시는 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내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 삶 가운데 큰 은혜 베풀어주십니다. 완전히 상처 입고 망가지는 인생인데도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소생시켜주세요. 소생시켜주신다는 것은 완전한 회복입니다. 버려진 인생이 다시 새 출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고 위기를 만나면, 가까웠던 사람들조차도 곁을 떠납니다. 오래된 병에 효자가 없다고 부모님이 나이 많이 들고 병상에 오래 누워있으면 자식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고 나중에 부모님 곁을 지키는 자식은 거의 없는, 그러한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그렇게 사랑과 정성으로 자녀를 키워줬건만, 아버지 병이 중해서 7, 8년 누워 있는다고 자식은 다 떠나고 어머니가 병간호하다가 어머니까지 병이 드는 그러한 모습을 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그러한 절망의 자리에 있는 우리를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고, 곁에 계셔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88장 1절에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2절에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절망의 자리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소생시켜주시고 나아가서 절망의 자리에도 함께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일생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굽이굽이 인생의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의 말년에 가서 그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그는 고백합니다. “주님이, 야훼가 나의 목자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생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셨기 때문에, 내게 어떠한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의 현실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그때로부터 그것을 시기해서 “저 다윗이 노릴 자리는 내 자리밖에 없구나.” 권력은 부자도 나누지 못한다고 했는데, 다윗을 사위로 삼고 나서는 죽이려고 합계 군사 삼천 명을 풀어서 쫓아갔습니다. 다윗이 도망 다닌 기간이 10년이 넘습니다. 거의 10년 기간 동안 그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때로는 블레셋 진영으로 넘어와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가면서 그렇게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때로는 누구에게 쫓기고 마음에 끊임없는 불안이 있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 줄 아십니까. 하룻밤도 제대로 자지를 못해요. 어디서 잠을 자도 오늘 또 누가 제보해서 왕이 군사를 부르면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옛날에 유명한 신창원이라는 도둑이 오랫동안 도망 다니다가 잡혔는데, “어휴 이제 편하게 잠자겠다.” 그러더라는 거에요. 하루도 편하게 잠을 못 잤다는 거에요. 누가 신고할까 봐.

그렇게 10년 가까이, 10년 남짓한 세월을 쫓겨 다니다가 왕이 되고 난 후에도 7년 6개월 동안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벳과 전쟁을 해야 되었고, 그의 말년엔 그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적해서 반역을 일으키는 바람에 궁궐을 버리고 도망가는 그러한 신세를 그가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을 때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할렐루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 고백해야 됩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내 곁에 아무도 없어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스라엘은 곳곳에 깊은 골짜기가 있어서 가파른 그 골짜기 밑에는 물이 흘러 들어간 다음에 수렁이 생기는 바람에 양들이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지면 어딘가 부러지고 또 수렁 한가운데 갇혀서 막 허우적거리며,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때로 발을 잘못 디뎌서 그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예기치 못한 중병이 다가와서 의학적으로 의사 선생님이 손을 들어서 그 죽음이라는 공포의 사망의 골짜기에서 헤매며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수렁 속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경제가 침체가 되었고, 살아갈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니까 그냥 포기한 것입니다. 그 포기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결혼해도 애를 낳을 의욕이 없습니다. 애를 낳으면 어떻게 키우나. 결혼해서 뭣하나. 그냥 살면 되지 그냥 이렇게 사는 게 편한데. 지금 한국이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것 같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 문제입니다.

올해 말이 되면 1.0명에서 더 내려가서 0.88명까지 내려간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태어나는 인구보다 죽는 인구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인구감소로 우리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은 그 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정치하는 분들이 이걸 몰라요. 싸우느라고 지금 이 나라가 어떤 게 중요한지 모릅니다.

젊은이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제발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 달라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러한 고통의 현장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일수록 따뜻한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우박이 떨어지는 날이 있을지라도 바로 그날 다음에는 맑은 새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러분! 이 모든 과정이 소망을 향해 나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여기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절망에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할렐루야!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더욱 감사하기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늘 자기가 이 세상의 전부였고, 늘 자기중심으로 살았던 고집과 교만과 강한 자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늘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했던 부정적인 모습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가 다시 든든해지고, 겸손해지고, 믿음이 자라고, 강하여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아프고 힘들고 눈물의 골짜기지만, 주님과 함께 잘 통과하기만 하면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며 탄식하지만 말고, 다시 일어나 울고 또 울며 그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골짜기는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중간에 멈추면 안 됩니다. 멈추면 죽는 것입니다. 통과해야 됩니다. 주님과 함께 통과해서 반드시 승리하고 주님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굳건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나면,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의 새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골짜기를 통과할 때 꼭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을 쫓아내야 됩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고 열 자녀를 잃고, 몸에 건강도 잃고,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으라고 하며 떠나고, 친구들이 와서 손가락질하고 비판했을 때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욥기 3장 25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

우린 두려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 교통사고가 난 사람은 운전할 때마다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 중병을 앓았던 사람은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내가 또 병을 앓는 것이 아닌가? 또 암이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려움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두려움은 떠나갈 찌어다. 나를 짓누르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또 고민하게 하고 또 상처 입게 하고 또 아프게 하는 이 모든 부정적이고 날 아프게 하는 생각들은 떠나갈지어다! 두려움은 떠나갈지어다!”

시편 23편 4절에 말씀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이라! 영원토록 동일하심이라! 동일하신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셔서 여러분을 그 자리에서 붙들어주시고 전혀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여러분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주님 주신 평안함으로 무장해서 이제 주님과 함께 위대한 승리와 축복을 맛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이 다가오면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있는지, 약국에서 가장 불티나게 팔리는 약이 신경 안정제 수면제입니다. 인기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불안한지 마약에 손을 뎁니다. 급속도로 마약이 퍼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마약 청정국가로 불렸던 우리나라가 지금 완전히 곤두박질하고 있습니다. 또, 프로포폴이라고 하는 그러한 중독성의 그러한 주사를 계속 맞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인 것이요.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절망을 이겨내십시다.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으십시다. 예수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시편 91편 2절입니다.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주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를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년 6월 9일, 본 교회 출석하는 우찬균 성도의 아내가 아기를 낳았는데 아이가 낳자마자 경련증세가 나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화되어서 급히 동네병원을 갔는데 병명을 몰라요. 그래서 다시 세브란스로 옮겼는데 세브란스에서도 이 아이가 왜 발작을 하고 경련을 해서 혼수상태가 됐는지 병명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큐베이터에 집어넣고 24시간 집중적으로 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이 우찬균 성도 부부는 아이를 가서 보니까 온몸에 바늘이 꽂혀있고 얼마나 아이가 작은지 요만한데 거기에 온갖 바늘이 꽂혀있으니까 그 아이를 보며 그냥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월 15일 철야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제가 말씀을 전할 때 이사야 41장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부부가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고 우리 아이와 하고 계신다. 지금 혼수상태로 아이가 흙빛이 되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주님이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신다. 할렐루야!

제가 병자를 위한 신유기도를 할 때 어린 자녀의 난치병이 치료를 받을지어다. 이 부부가 아멘! 우리 아이는 낳았습니다. 믿음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며칠 동안 아이가 계속 혼수상태고 의학적으로 손을 대지 못해서 링거만 꽂아 놓고 체크하고 있는데 “목사님 한 번만 와서 기도해주세요.”

가서 인큐베이터를 들여다보니까 아이가 온몸이 새까맣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얼마나 불쌍한지 의식이 없으니까 인큐베이터 통에다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가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아이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눈물로 기도하고 나오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요. 2시간 후에 아이가 의식이 돌아와서 밝게 웃게 되었고, 3일 만에 완전히 건강해져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달에 건강한 모습으로 이 아이 헌아식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저렇게 얘가 컸어요.

히브리서 13장 5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가 너희를 절대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과 아픔이 있어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여주시고 떠나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합니다. 우리 일생 다가도록 우리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 골든벨 문제-28

시편

  

21.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 )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

하 리이다"(88:13) 영광 중 고요한 중 아침 밤 중

 

      

22. "우리의 연수가 ( )이요 강건하면 ( )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 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칠십, 팔십 무한, 유한 다함, 계속 오늘, 내일

      

 

2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 )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 )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95:1-2)

 

찬송으로, 노래 감사함, 노래, 찬송으로 즐거움, 감사함

 

      

24. "의인을 위하여 ( )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 )을 뿌렸도다"

 

(97:11) , 기쁨 기쁨, 평안 의인, 정직 , 평안

 

    

 

25. "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 )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 )이 로다"(100:1-3)

 

찬양, 기쁨 말씀, 사슴 찬양, 사슴 기쁨,

 

     

 

26. 시편 중에서 제일 짧은 시는?

 

12312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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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이영훈목사

<말씀봉독>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6~28)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늘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 큰 축복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장애는 후천적 장애입니다. 살다가 사고를 당해서 팔, 다리를 잃고 또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몸이 마비가 되고 하는 그러한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진짜 장애는 우리 마음의 장애입니다. 마음에 장애가 있으면 세상을 굽게 보고 늘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살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장애로부터 벗어나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 함께 불렀던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이 찬송은 태어난 지 두 달이 안 되어서 눈에 병을 앓아가지고 의사가 약을 조제해줬는데 너무 강한 약을 써서 눈이 멀어버린 한 여자아이가 평생 앞을 못 보는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 은혜 너무 감사해서 그때로부터 주님 주신 재능을 가지고 찬송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9,000편의 찬송을 지었습니다. 1820년에 태어나서 1915년까지 구십오 세를 살면서 찬송을 지었습니다. 오늘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이 찬송은 그분이 55세 때, 1875년에 하루 종일 기도하다 응답받고 나서 너무 감사해서, 감격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써 내려간 찬송 시입니다.

여기 보면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다 잃어버려도 이 절대긍정의 믿음을 꼭 붙잡고 승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인간의 이성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384장 (통 434)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한평생 믿음으로 살게 하여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나서 믿음으로 살게 하여주옵소서. 인간의 이성을 의지하고 나의 경험을 의지하고 내 뜻과 내 생각으로 살아가지 않게 하여주시고, 절대 긍정의 믿음,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약속의 말씀 붙잡고 승리의 삶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모든 고난을 헤쳐나가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로마서 8장 26절로 28절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제목을 따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람이 한평생 사노라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감당하기 힘든 큰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제 날씨와도 같습니다. 아침엔 비가 오는 듯 하더니 또 눈으로 바뀌고 또 우박까지 내리는 그러한 궂은 날씨가 되더니, 오후가 되니까 얼마나 화창한 날씨로 변화되던지 그렇게 맑은 하늘을 최근에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사가 그런 것입니다. 맑고 밝고 환한 날이 있으면 캄캄하고 어둡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 같은 그러한 고난의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당하면, 만나면 낙심하고 무너지지만,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이 항상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우리에게는 절대 희망이 되신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한평생 우리와 함께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시냐?

1.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첫째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불완전하고 연약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말씀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새사람이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죄성이 남아 있어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자꾸 우리를 죄 가운데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절망시키고 상처입히고 분노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우리를 고통 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약함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 23절 24절 이와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예수님 믿기 전에는 내가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는데, 예수님 믿고 나서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 오시고 주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심으로 내 삶에 두 가지의 모습이 존재합니다. 죄를 따라가는 옛 사람이 있고 또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새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새사람과 옛 사람이 늘 충돌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갈 수가 있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말씀 보지 아니하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믿음이 약해지면 다시 옛 사람이 나를 죄의 법 아래로 이끌어서 미워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자꾸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해서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러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절대 희망 되신 예수님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절대 희망 되신 예수님이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떠한 고난도 문제도 어려움도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시고 우리 모두의 절대 희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다 잃어버려도 예수님만 붙잡기만 하면 예수님만 붙잡기만 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절대 희망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고 예수님만 붙잡게 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게 만듭니다. 바로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일이 우리가 연약해서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보고 무너지는 우리를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시고 주님만 믿고 의지해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에 이와 같은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의 축복으로 주님의 기적으로 이끌어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왜냐?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모든 권세를 짊어지고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셔서 나의 구세주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절망도 문제도 고통도 괴로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이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이길 순 없지만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신 은혜로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 당할 때 상처 입고 절망하여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눈물 흘리고 있을 때 그때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는 못합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나를 긍휼히 보시고 내 삶 가운데 이 다가온 이 고통, 괴로움, 슬픔을 위로하시고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는 옆에서 도와주는 분입니다. 변호사, 상담자, 이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을 곁에서 도와주시고 그들을 변화시켜주시고 그들의 모든 문제를, 인생 문제를 상담해주신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보혜사로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모든 인생의 문제를 상담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변호해주시고 그리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 은혜가 감사한지.

요한복음 14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가 힘들어 지쳐 쓰러졌을 때 말 못 할 고민으로 눈물로 베개를 적실 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를 안고 씨름하고 있을 때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셔들이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2.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

그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도우실 뿐 아니라 둘째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8장 26절 이하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극한 절망에 처했을 때 너무 힘들고 괴로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낙심의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할 힘도 없고 내가 스스로 일어날 힘도 없고 그 누구도 나의 고통과 괴로움을 대신하여 줄 자가 없고 그 고통과 괴로움을 알고 나를 붙잡아 줄 자가 없어서 탄식하며 눈물을 흘릴 때 성령께서 우리를 꽉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절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여러분을 버리고 떠나고 여러분이 홀로 고아같이 내동댕이쳤다고 할지라도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이와 같이 호소합니다. 시편 42편 1절로 3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절망에 처해 그가 쓰러져 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당신이 어떻게 그런 어려움 가운데 있는데 그렇게 당신을 내버려 두십니까? 내가 힘들고 지쳐 쓰러져 있는데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지 못할망정 와서 손가락질합니다. “당신이 교회 다닌다면서? 그런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당신을 왜 이렇게 내버려 두셔?” 이 얘기가 더 상처가 되고 그래서 눈물로 침상을 적시는 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성령께서 오셔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시편 42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고난에 처했을 때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갑자기 몰려왔을 때 건강하던 몸이 갑자기 중병이 들었을 때 그때 하나님께 엎드려 눈물로 간구하며 도우심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여러분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 내게 생겼든 간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살펴보라고 하는 뜻입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주님 앞에 무엇이 부족하고 내가 주님 앞에서 어떤 면이 바로 되어야 합니까? 내가 주님 앞에 교만했습니까? 내가 어리석었습니까? 내가 주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갔습니까? 말씀을 어겼습니까? 주님 나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보여주시고 우리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을 꺾어주시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때 성령이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심으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때 응답이 신속히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내 뜻대로 기도하면 응답이 다가오지 않지만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주님 뜻을 따라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 15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여러분, 절망의 때에 절망에 집중하지 말고 여러분 절망이 우리를 더 큰 절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그러면 문제가 더 커지는 것입니다. 문제보다 크시고 절대 희망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눈을 돌려야 돼요. 더 이상 나를 보지 말고 내 문제를 보지 말고 내 상처를 보지 말고 내 아픔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위로가 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같이 벌레만도 못하고 부끄럽고 허물투성이인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여 주셔서 붙들어 주시고 간구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그 은혜에 우리가 들어가게 되면 셋째로 우리에게 깨닫게 하여 주시는 것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8장 28절은 한평생 여러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해야 될 축복의 말씀 기적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다시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찌 내게 이런 일이 다가왔습니까?” 탄식하며 울고 거기서 무너지지 마시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위대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나서 당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별일이 없었는데 예수 믿고 나서 갑자기 아이가 아프고 교통사고가 나고 사업이 어려워지면 믿지 않는 가족들이 말합니다. “당신 예수 믿고 나서 그렇게 문제가 다가온거야. 어려움이 다가온거야.” 이때 절망하게 되죠. “하나님 살아 계시다면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어려움이 다가오게 허락하셨습니까. 왜 사업이 곤두박질 칩니까. 왜 갑자기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고 이렇게 문제가 많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참고 견디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체험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이러한 축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뜨겁게 우리 주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뜻을 따르게 되고, 그 뜻을 따르게 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에 다가오는 모든 고난이 모든 상처가 모든 아픔들이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의 도구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란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환란을 통하여 우리가 강한 영적인 군사로 거듭나게 되고 세상 줄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했던 교만을 내던져 버리게 되고 이기주의를 내던져 버리게 되고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으로 살게 되는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3절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야훼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자꾸 무너지고 상처받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이 모습이 환란을 통하여 우리에게로부터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약한 모습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밤낮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그렇게 살지 말고.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 때 거룩한 꿈을 꾸었습니다. 장차 자기가 큰 인물이 되고 온 가족이 자기 앞에서 다 절을 하게 되는 그 정도로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고 하는 그러한 축복을 꿈으로 받았습니다. 그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꿈을 이야기하고 나서 다가온 것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핍박이었습니다.

결국 그 꿈으로 말미암아 형들이 그를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죽이려고 하다가 죽이지 않고 노예로 팔아버렸는데, 그 당시 노예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그냥 소모품입니다. 일을 시키다가 병들면 내다 버려, 묻어주지도 않고 광야에 짐승의 밥이 되어 죽게 합니다. 그래서 노예의 평균 수명이 삼십 세에서 사십 세 그 사이입니다. 그런데 열일곱 살이니까 아주 가격을 잘 쳐줘서 그가 노예로 팔렸을 것입니다. 혹독한 노예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는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후 노예 생활의 고난이 끝나고 나서 그 가정의 총무로 인정받게 되니까 또 그 집에서 모함을 받게 되고 억울하게 그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감옥에 가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냈지만, 그는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이겨냈습니다.

13년의 긴긴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고 난 후에 서른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높여 주셔서 당시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7년 동안 대풍년이 일어났어요. 그 풍년을 위해서 많은 곡식을 저장해 두었는데 그다음 7년간 큰 흉년이 다가옵니다. 그 전에 그와 같은 흉년이 없었습니다. 애굽 뿐 아니라 인근 각처에 있는 모든 나라가 다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흉년이 든지 두 번째 되는 해에, 그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옵니다. 그러니까 17살 때 요셉을 노예로 팔아서 13년이 지나고 7년 풍년이 지나고 2년째 흉년이 되었으니까 13년 7년 2년 다 합치면 22년 후에, 요셉이 꿈을 꾸었던 대로 형들이 와서 그에게 넙죽 절을 합니다.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셉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총리로서 옷을 갖춰 입고 그가 딱 의자에 좌장하고 있으니 바라보지도 못하고 벌벌 떨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셉이 노예로 안 팔려 갔더라면 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다 그것이 고난이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향해 나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을 초청해서 애굽에 와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형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우리를 내버려 두었으나 아마 우릴 불러다 다 감옥에 집어넣을지도 모르겠다. 두려워 떨었을 때 그들을 불러 한 말이 있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형들은 그에게 악을 베풀었지만 하나님이 그 악이 변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선을 이루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이번 4월 신앙계 표지에도 나왔습니다만, 석창우 화백은 국내 최초의 의수 화가입니다. 30년 전 전기 기사로 일하던 중에 차단 장치를 수리하다가 2만 2,900볼트 고압 전류에 감전되어서 기절해 버렸는데 깨어나 보니까 이미 두 팔이 다 타서 없어져 버리고 발가락 둘도 사라졌습니다. 죽지 않고 산 것만도 기적이에요. 무려 수술을 12번을 받았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두 팔이 타서 없어졌으니 그 얼마나 절망이 심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여의도 순복음교회 집사님이 매일 와서 기도를 해줍니다. 기도만 해주면 그 통증이 싹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 병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의수를 달게 되었는데 아들이 어느날 병상에 있는 아빠한테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요. 그래서 그 의수에 펜을 꽂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날마다 발로 먹을 갈고 의수에 손을 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수묵화 크로키라고 하는 자기만의 장르를 개척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위대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분을 고난 중에 고난의 풀무 불에서 건져내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1월 30일부터 붓으로 성경 필사를 시작해서 작년 7월 9일까지 3년 6개월 동안 하루에 4시간에서 5시간씩 성경 필사를 합니다. 성경 전체를 기록했는데 너무너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는 고백합니다.

성경을 4년 6개월 동안 쓰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 눈이 나빠서 큰 글씨밖에 못보던 것이 이제는 작은 글씨도 볼 수 있게 눈을 밝게 해 주셨고, 두 번째로 이 뇌가 손이 없는데도 손이 자꾸 아프다고 하는 환상통을, 손이 없는데 뇌에서 자꾸 아프다 아프다고 하는 그 환상통이 사라지게 만들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환갑이 지나고 삶을 뒤돌아보니 전기감전 사고가 있기 전 양팔을 갖고 살던 30년의 삶보다 사고 후 팔 없이 살았던 30년이 훨씬 소중하고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쇠갈고리에 펜을 끼어 한 획 한 획 그렸던 참새와 독수리, 수묵화에 입문하고 수묵 크로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던 힘겨웠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고, 계획해 놓으신 삶의 여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분의 간증을 읽으면서 또 우리 신앙계 4월호에 소개되어 있는데요, 참 부끄러웠어요. 이만큼 우리가 감사하고 있는가. 여러분 사고로 두 팔을 잃어버렸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손가락 하나만 없었어도 난리가 났을텐데. 여러분 감사해야 됩니다.

오늘 여기 우리가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이 사실로 이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가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믿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을 굳게 붙잡어야 돼요.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우리 삶 가운데 문제와 어려움 당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난 후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이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꼭 붙잡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 중에 슬픔 중에 고통 중에 깊은 상처 가운데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만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절망의 그 밑바닥에서 주님 붙잡고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만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변재수 장로(소하교회)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니 복의 문 열어주셔

주님이 주신 사업장 선교 도구 되도록 기도

우리 가정을 전도한 누님이 2003년 교회를 개척하셨다. 당시 나는 1989년부터 운영해오던 국민일보 지국을 2000년 마무리하고 새 사업에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는데 1년 반 동안 개척교회에서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사업을 통해 선교에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2004년 8월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나섰다가 승용차와 정면충돌 했다. 왼쪽 쇄골이 완전히 부서져 응급실로 실려가 다섯 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나중에 보니 병원부터 가라며 사고 수습은 걱정 말라던 상대편 운전자는 경찰이 오자 오토바이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마침 우연히 사고 현장을 본 동네 분이 “그분은 교회 다녀서 술은 입에도 안 대는 사람”이라고 증언을 해줘서 사고 수습이 잘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사고 후 팔이 올라가지 않는 장애가 생겼다. 지인들이 영구장애 판정을 받아 혜택을 받으라고 할 때마다 “하나님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게 해주세요”라고 더 크게 기도했다.

 올라가지 않던 팔이 기적처럼 완쾌돼 건강한 몸으로 2005년 6월, 7명의 지인들과 동업으로 숯불갈비전문점 ‘상상초월’을 창업했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고 맛있는 고기를 제공하자 손님이 200명씩 줄을 설 정도로 번창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님 수가 줄자 동업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들은 그만두겠다며 투자금을 회수해 빠져나갔다.

 아내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그리고 투자금 줄 돈이 모자라지 않고 손님들이 다시 많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단독 경영을 하며 나는 하나님의 지혜가 더욱 간절해졌다. 직접 회사와 모임들을 다니며 전단지를 돌리면서 ‘행복으로의 초대’도 함께 전달했다. 회식과 가족 모임에 적합한 곳으로 소문이 나자 다시 사업이 재점화됐다.

 힘들 때마다 기도밖에 답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시편 91편·109편, 이사야서 41장 등을 외웠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구제역, AI 등 각종 사태가 있으면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명절 때는 손님이 없어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어느 날 손님이 고기를 포장해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또 얼마 뒤 한 손님이 제주도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드리겠다며 얼려서 포장해 달라고 했다. 그 손님들로 인해 포장과 택배로 판매 지경이 넓혀졌다. 맛있고 정직한 음식을 부담 없는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약속이었다. 이런 영업방식으로 지역 주민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보람을 누리고 있다. 지금은 시에서 연결해 준 20∼30명의 독거노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 갈비 정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가장 감사한 것은 힘든 시절부터 함께 고락을 나눈 아내와 믿음의 가정을 세워 두 아들에게 신앙과 더불어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금년에는 세금과 급여 등이 올라 어려움이 생겼지만 정책 탓하며 불평불만하는 대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내 꿈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정직하게 매일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정리=복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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