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조용기목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요한복음 11장 40절)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고 난 다음에, 예수께서 나의 생애 속에 행하시는 여러 가지 역사를 체험하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믿음만 있으면 기적이 나타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라는 마을에 오실 때, 자주 들리던 가정이 있었습니다.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삼남매가 살고 있었던 집인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갑자기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 누이들이 온 힘을 다하여 돌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의사들을 불렀지만 의사들마다 와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나가 버렸습니다. 이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신속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자, 나사로가 병이 들었으니 빨리 와서 고쳐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출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1.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근처에 도착하셨을 때, 마르다가 뛰어 나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줄을 나는 압니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마르다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미래로 연기해 버린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기적이 일어날 것은 믿어도 지금 기적이 일어날 것은 믿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믿어도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역사하신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역사하실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셔서 지금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지금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르다 말고 마리아의 믿음은 어떻게 했을까요? 마리아는 집에 있다가 예수님이 동구 밖에 오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에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마리아도 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둘 다 울고 있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지금 바로 앞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니까 절망에 빠져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예수님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절망하고 낙심하여 울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불신하면서 말로써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장례식에 왔던 유대인들 중 어떤 사람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다.”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불신앙의 말을 들으시고 속으로 비통해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못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님은 과거에는 하나님이고 미래에도 하나님이겠지만 지금은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도울 수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매우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뻐하시고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시신으로 무덤 안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니,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났고 시신에서 썩는 냄새가 나고 있으나 누가 봐도 절대절망의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마르다의 말은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께 기도하러 나오실 때, ‘이것은 절대절망의 상황이다, 너무 늦었다. 이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예수님께 가지고 나오면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너무 늦었다,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그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무덤 문에 버티고 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여러분, 3차원의 세계에 속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의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4차원의 하나님이시라 눈에 안 보이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무덤은 단 한 번도 죽은 자를 토해낸 적이 없습니다.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삼키지만 그 삼킨 자를 토해낸 적이 없는 악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명령하시자 죽음의 세력은 더 이상 나사로를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 15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시자, 나사로가 화닥닥 일어납니다.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위엄 있는 말씀에 놀라서 화닥닥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고는 수의를 입은 채, 수족이 묶인 그대로 무덤에서 나온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도 보면 어떤 과부가 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아들이 죽어버렸습니다. 비통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장례행렬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동묘지로 가고 있는 장례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관속에 누워 있는 청년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죽어서 관 속에 누워 있던 청년이 즉시 살아난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죽은 자도 다시 살아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 성도님 한 분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과다출혈로 인하여 병원에서는 살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신체 기능은 물론 의식도 없어서 곧 영안실로 옮겨질 상황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의사에게 말하기를 “남편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살아납니다. 그러니 절대로 영안실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완강히 버텼던 것입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설령 살아나도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으니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 봐도 의사들이 다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심지어 성도님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서 친척들과 교회 식구들이 조문을 하러 영안실로 갔다가 다시 중환자실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중환자실에 있고 그 아내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성도님이 나중에 간증하기를 그렇게 의식이 없이 누워 있은 지 3일째 되던 날 “내가 너를 살렸으니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었고 그 순간 깜짝 놀라서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의식을 되찾기는 했지만 음식물이 전혀 소화가 되지 않은 채 여러 증상이 있는데 병원에서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어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계속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병원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19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퇴원 후에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진통제를 먹어야만 겨우 버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것입니다. 고개를 조금이라도 돌리면 너무 아파서 늘 앞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그 교회에 가서 축복성회를 인도했는데 그때 이 분이 와서 저에게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진통제를 받으러 병원에 가다가 차를 후진하려고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아무런 통증도 없이 멀쩡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여러분의 죽은 가정이 살아나고 죽은 건강이 살아나고 죽은 사업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악과 더러움에 묶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죽음에 묶여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께서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남에게 빌려 줄지라도 빌리지 않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오라버니 나사로를 껴안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하늘에 사무쳤겠습니까? 이런 것이 바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기쁨을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4차원의 믿음을 가져라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예수님이 아니요, 미래의 예수님이 아니요, 지금 살아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해도, 내가 믿음으로 용기 있게 모험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 우리는 모든 세상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보는 앞에서 불가능의 무덤 문을 옮겨 놓으셔야 됩니다. 우리의 불신앙의 무덤 문을 옮겨 놓으십시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음이 적다고 통곡할 필요가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의 행위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은 그가 돌을 옮겨놓는 행동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무덤 문의 돌을 옮겨 놓을 것이요, 믿음이 없으면 돌을 안 옮겨 놓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르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믿음은 3차원의 믿음이었습니다. 마르다는 3차원에 세계에 속했기 때문에 자기의 경험과 이성을 의지하여 죽은 지 나흘이 지난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르다와 예수님의 대화를 보면 3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과 4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의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3차원의 믿음을 가지면 마음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4차원의 믿음은 성경 말씀을 따라 성령에 의지하여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생활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마음속에 저장하고 그 믿음을 따라 행함으로써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며, 11장 3절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도 주님이 주신 말씀을 의지하여 4차원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항상 함께 계셔서 나에게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마음에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전능하신 그 능력을 불신임하면 예수님이 비통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불신앙을 내어 버리고 말씀을 의지하여 4차원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나의 신앙 고백과 믿음의 실천 위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데 주님 스스로 나와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광야에 나갔을 때,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와 아이까지 기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빌립에게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직접 그냥 다 먹이시지 무엇 때문에 빌립보고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신앙고백과 믿음에 따른 행동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여기는 광야요. 돈도 없고 떡 살 곳도 없으니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없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주님께서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으니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면서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아서 주님께 들고 왔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에 따른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과 그에 따른 행동’ 그것이 있어야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여러분께서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면 주님께서 돌봐 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의 말씀대로 여러분께서 담대하게 믿음을 실천하면 그 믿음의 실천을 통하여 주님께서 오늘날도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크고 작은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에서 죄와 허물, 병과 저주와 사망과 죽음을 다 청산해버렸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은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보고 믿으면 죽지 않고 살 것이라 했는데 오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 성령이여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바라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에게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죄 짐을 허물의 짐을 질타하시고 보혈로 씻어 주시고 나아가서 질병을 고쳐 주시옵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늘 풍성한 축복을 주시옵시고 영생을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마귀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임하여 성령의 생명이 넘처날지어다! 성령의 생명이 넘쳐나라! 생명의 성령이 넘쳐나라!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에게 능력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 기도할 때, 더욱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이영훈목사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장 6~7절)


귀한 은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그냥 허공에 메아리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회의 문제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하면 주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특별히 우리 대한민국의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또 외교적인 어려움, 국가 안보적인 어려움,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나누어졌다는 것입니다. 심한 편 가르기로 인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우리 1천만 크리스천들이 앞장서서 온 국민을 한마음으로 묶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지 못한 것 회개하고 감사하지 못한 것 회개하고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철저히 회개해서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가 더불어 기도해야 하는 것은 전 세계의 핍박받는 교회들을 위해서 오늘 기도하는 날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박해 속에, 특별히 저 북한, 이슬람, 또 힌두 이러한 종교 지역에서는 말할 수 없는 박해가 있습니다. 주님 함께하여 주셔서 저들의 믿음을 잘 지키게 하여 주시고 그 모든 박해하는 흑암의 세력들이 물러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도와주옵소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복음성가 : 주님여 이 손을>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열정이 식어졌고 감사가 사라졌고 기쁨이 사라졌던 저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금 신앙의 열정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고 굳건한 믿음 지키게 하여 주옵시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함으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다 헤쳐나가고 승리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빌립보서 4장 6절~7절 말씀 가지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우리는 어떻게 보면 염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염려할 것이 많은지 모릅니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질 않습니다. 수많은 염려가 우리를 괴롭히고 병들게 합니다.

모든 병의 근원이 바로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이 스트레스가 온갖 병을 우리에게 가져옵니다. 두통을 가지고 오죠. 심장병을 가지고 오죠. 위장병을 가지고 오죠. 무엇보다도 암. 발암의 첫 번째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염려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염려, 근심, 걱정 때문에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디에서 우리가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물질로도, 지위, 명예, 권세로도 참된 평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평안과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염려의 감옥에 갇혀 있지 말고 과감히 문을 열고 뛰쳐나오기 바랍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이 염려의 감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염려의 문을 열어 제기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먼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목사님, 염려할 게 태산인데요."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주님이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서 편지 쓴 것이 다 성경이 되었는데, 옥중 서신이라고 그럽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에베소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빌립보서. 골로새 교회에 보낸 골로새서, 또 빌레몬에게 보낸 것이 빌레몬서인데, 이 엡빌골몬 이 4권의 책이 옥중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절망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히려 격려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라.

사실 그 반대가 되어야 맞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도 바울을 빌립보 교인들이 염려해야 되는데 거꾸로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32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해서 염려하지 말아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져다주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염려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영적인 힘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가고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의 문을 닫아서 말씀이 마음에 와닿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염려인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집니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마태복음 6장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키가 작은 사람이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쑥쑥 자랍니까? 작으면 작은 대로 사는 거고, 크면 큰 대로 사는 것이지.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염려는 염려를 낳고 근심은 근심을 낳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났습니까? 어떤 걱정거리를 만났습니까? 문제를 바라보고 염려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함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유일한 문제 해결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은 말씀합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가 요동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는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러분,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염려는 과거의 것에 대한 염려, 오늘의 것에 대한 염려, 내일의 것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면 염려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염려와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와 간구를 드려라

어떻게 해야 우리가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둘째로 우리는 기도와 간구를 드려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이와 같이 이어집니다.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할렐루야. 염려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염려가 있습니까? 어떠한 근심이 있습니까?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걱정거리가 여러분 마음을 꽉 붙잡고 있습니까? 염려할 시간에, 근심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엎드려서 주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이 염려, 근심, 걱정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여 주시며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넉넉히 해결하고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 해결자 되신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 주님이 내 마음속에 참된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용서와 긍휼이 풍성하신 주를 바라보고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부르짖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특권이요, 영적 전쟁의 최고의 무기인 것입니다. 기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의 약으로 고치지 못할 병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알고도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고,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사탄의 공격을 물리쳐 주시고 사탄의 세력을 박멸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고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새 힘을 허락해 주시고 샘솟는 기쁨이 넘쳐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갈 때, 간절히 기도할 때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야고보서 5장 16절은 말씀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사람, 의인이 되어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기도를 못 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기도하고,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주님만 꽉 붙잡고 나아가면 주님이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형이 받을 장자권의 축복을 대신 받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20여 년 만에 큰 부자가 돼서 열두 아들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형 에서가 20년 동안 마음에 미움, 원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가 400명의 군사를 끌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그 형의 마음에 분노가 가득했던지 "내가 이 녀석 오는 즉시 죽여버리겠다."

야곱은 겁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비 겁쟁이였습니다. 이기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살려고 자기 가축들 다 먼저 보내고 열두 아들 보내고 자기 아내들 보내고 혼자만 달랑 남았습니다.

그때, 그 얍복강 나루터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천사에게 매달렸습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당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천사가 그의 환도 뼈를 쳤습니다. 그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에서가 와도 도망가지 못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꺾였습니다.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네 믿음이 크도다."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보셔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 밤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동생을 죽이려고 20년 동안 분노와 미움과 원한에 쌓여있던 그 형 에서의 마음이 하루아침에 눈 녹둣이 녹아져 내린 것입니다. 그 마음에 가득했던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사라지고 긍휼이 넘쳐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 멀리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어서 절뚝절뚝 오는 야곱을 보는 순간 얼마나 불쌍한지 달려가서 그를 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20년 동안 그를 죽이려고 원한과 복수의 칼을 품고 있었던 그가, 미움과 분노의 칼을 품고 있던 그가 야곱이 깨어지는 순간 주님이 그 마음을 녹여주셔서 이전처럼 동생을 사랑하는 형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 염려를 기도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 시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낫고 훨씬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 때,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나에게 도움의 손길이 없을 때 주님만 바라보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주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고백합니다. 시편 121편 1절~2절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할렐루야. 기도는 우리의 축복의 통로요, 기적과 응답의 통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절망 가운데 처한 자, 상처 입은 자, 고통당하는 자, 병들어 신음하는 자, 헤어나올 수 없는 문제에 빠져서 괴로워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의 그 신음소리를 듣고 계시며 그 기도를 듣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며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지금까지 부르짖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불퇴전의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다가오고 큰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3. 감사하라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한 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감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라. 4장 6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단순히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할렐루야. 신속한 기도의 응답이 감사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다시 말씀하면,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감사는 잘될 때 하는 감사가 아니라, 물론 잘될 때 감사해야 하지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안될 때도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고통스러울 때도 기쁠 때도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이 풀리지 않고 계속 나를 힘들게 해도 감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것을 믿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계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지금 내가 고통의 사슬에 얽매여서 밤잠 이루지 못한 시간이 오래됐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이 속히 오지 않아서 지금 몇 달 때 또 기도하고 기도해도 아직 아무런 사인이 안 보여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감사를 강조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 그는 말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로새서 2장 7절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3장 17절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나를 얽맨 복잡한 문제들이 어느 순간 풀려버리고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며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어도, 왜 내게 이런 일이 다가왔는지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연속적으로 다가와 나를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도, 무조건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에 의하여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고 고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고 슬픔이 변하고 기쁨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는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우리는 고난 속에서 인내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이 더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고, 감사가 멈추면 사단이 들어가 역사합니다. 감사가 멈출 때 사단이 들어와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부정적인 생각을 심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자꾸 하게 해서 원망과 불평이 습관화되고, 미움과 분노가 넘쳐나서 시도 때도 없이 미워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파멸을 향해 가게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같이 허물 많은 죄인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셔서 구원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실 뿐만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 많은 고난에 굽이굽이 어려운 시절을 지나왔지만 그 때마다 함께하시고 돌봐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앞으로 나의 일생 다 가도록 함께하실 주님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시편 50편 23절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신앙의 자세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골로새서 2장 6절 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여러분 마음에 기쁨이 사라졌습니까? 신앙의 열정이 사라졌습니까? 무엇에 실패했습니까? 낙심되고 상처받은 일이 너무도 많습니까? 되는 일이 없습니까?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만 생각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의 축복을 주십니다.

4. 마음의 평안을 누리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누리라고 말씀합니다. 4장 7절에 이와 같은 위대한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염려에 집중하면 염려가 점점 더 자랍니다. 염려가 점점 더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하고 감사하면 염려가 물러나고 주님의 평안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넘어서는 모든 환경을 초월한 모든 마음에 생각과 염려들을 초월하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근심할 시간에, 두려워할 시간에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기도하라. 할렐루야! 십자가를 단단히 붙잡고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전진할 때 주님 우리의 마음 가운데 평안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참된 평안함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찬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후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주여! 이 평화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이 평화가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평안함이 넘쳐나서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골로새서 3장 15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할 때 평안함이 임하고, 평안함이 임할 때 감사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평안과 감사는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할 때 감사기도를 드리면 평안이 다가오고, 평안이 다가오면 넘치는 감사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우리를 삼킬 듯이 큰 파도를 치며 폭풍우를 몰고 다가와도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그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염려할 것이 많은 세상이지만은 끊임없이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육신의 질병의 문제,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 우리를 공격해오지만, 주님만 바라보고 "주여,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감사함으로 나아가면 넘치는 평안함이 여러분을 위대한 승리자로 만들고 행복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미국의 복음성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이 두 분 있습니다. 토마스 도르시라는 분하고, 빌 게이넌 두 분인데, 빌 게이넌은 나중 분이고 오늘은 도르시라는 분을 설명 드리기 원합니다.

침례교 목사님 아버님과 피아니스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클래식 음악을 했다기보다는, 이 재즈 음악을 좋아해서 그 음악을 했는데 그 다음 찬양사역자가 되어서 많은 복음성가를 작곡하고 또 연주하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가는 곳마다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고 잘나가던 그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1932년도 만삭이었던 아내 '네티'를 집에 두고 나와서 부흥회 때 찬양 사역을 통해 크게 영광을 돌렸는데, 매니저가 전보를 전해주었습니다. "당신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은거에요. 너무 놀라서 급히 집으로 돌아가 보니 도착하는 날 그 태어난 아이도 죽고 말았어요. 자기 아내와 아이를 한 곳에 장례를 치르면서 '당신이 정말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귀한 생명 주셔서 감사하다고 할 때가 언제인데 그 아이 낳다가 아내도 죽고 그 아이도 죽어버렸으니 그는 그냥 망연자실한 것입니다. 너무 낙심돼서 축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그 절망은 그 누구도 그 어떤 위로도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를 사랑하는 가까운 친구가 와서 "자네 이렇게 절망에 주저앉아있지 말고 나와 같이 나가세." 그래서 음악실로 데려가서 피아노 앞에 앉혀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기도를 많이 하고 온 모양입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주님 주신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이전에 자기가 체험했었던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그 평안함이 마음에 찾아온 순간 마음에 슬픔도 절망도 고통도 괴로움도 분노도 미움도 사라져 버리고 주님의 평안함이 넘쳐나서 그때 주님이 가사를 주시고 선율을 주셔서 작곡을 하게 되었는데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Precious Lord, take my hand,

귀하신 주여, 제 손을 잡아주소서,

lead me on, let me stand!

저를 이끄소서, 저를 세우소서!

I am tired, I am weak, I am worn,

제가 힘들고, 제가 연약하고, 제가 지칠 때,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폭풍우와 밤을 지나서,

lead me on to the light,

저를 빛으로 이끄소서,

Take my hand, precious Lord, Lead me home.

제 손을 잡아주소서, 귀하신 주여, 집으로 저를 이끄소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부르고 있는 복음성가 '주님여 이 손을'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 찬송을 불러서 미국 전역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끼쳤고, 마틴루터 킹 목사가 그 인권 운동할 때 이 찬송을 부르며 행진을 했고, 존슨 대통령이 장례식 때 이 찬송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던 곡이기도 합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1절)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2절)

이분은 9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천곡이 넘는 복음성가 찬송을 지어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어떤 염려거리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어떤 밤잠을 이루지 못할 큰 고민거리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간절한 기도로 감사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참된 평안함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임하시게 되어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큰 믿음의 사람으로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에게 문제가 다가오면 그냥 주저앉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다고 하면서도 남이 문제를 당할 때는 그저 지켜보고 있다가 내 문제가 되면 좌절하고 절망하고 상처받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믿음이 깊지 못하고 우리 믿음이 굳건하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오늘 빌립보서 4장 6절 7절의 말씀을 내 마음의 믿음의 좌표로 삼아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아니하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어서 주님 주시는 평안함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명옥 집사(동작대교구) - 나의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영광

직장과 가정의 문제 해결, 버팀목 되신 주 찬양

내게 어려움이 닥쳐올 때마다 돌파구를 예비해 두신 ‘야훼 이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숱한 고난을 극복하며 오히려 나의 신앙은 깊어지고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1979년 나는 고등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처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왔다. 타종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와서 심장병과 불면증을 고침 받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게 됐다. 아버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교회에 나오게 되면서 온가족이 구원을 받았다. 어머니는 얼마나 열정적이신지 80세가 넘은 지금도 대방역에서 전도를 하신다. 시댁도 어머니의 전도로 전부 예수님을 믿게 됐다.

 어머니는 항상 내게 한 교회를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주변에 곁눈질하는 떠돌이 신앙인이 아닌 신앙의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열매를 맺으라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말씀에 순종해 교회학교 교사로 10여 년을 봉사했고 또 동작대교구의 지역장으로 10여 년을 봉사하고 있다. 연고지 없이 기댈 곳 하나 없는 우리 가정에 교회는 큰 버팀목이 됐다.  

 가세가 기울 때 남편이 교회 전기실에서 3년간 일하면서 큰 복을 받았다. 남편은 부지런히 노력해 소방설비와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했다. 반 지하에 사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내게는 꿈이 있었다. 절망과 낙심하기보다 하나님을 믿으며 항상 방 3칸에 빛이 잘 들어오는 집을 바라보고 기도했다. 원하던 집을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고 대출을 70% 이상 받아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연히 크리스천인 은행 직원을 만나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햇볕도 잘 들고 방 3칸에다가 1층으로 창고를 겸해 사용할 수 있어 남편의 장비들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됐다.

 또 지역장의 사명을 감당하며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놓고 기도했는데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 30분까지 일하는 직장을 구하게 됐다. 그곳에서 감독님의 권유로 연마기술을 배워 남들보다 연봉도 높게 받게 됐고 같은 직장의 동료들 중에는 크리스천이 많아 함께 기도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 무엇보다 직장이 교회 근처라서 퇴근 후 새벽예배에도 참석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직장에서 중국인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고 있다.

 무소불위하신 하나님은 아들의 결혼자금 문제도 해결해주셨다. 아들은 일식 셰프로 일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외식산업 CEO가 되는 걸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의 빽만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가정은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영광 돌리기에 힘쓸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하나님이 주신 권세/조용기목사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권세 있는 자가 있습니다. 권세는 스스로 잡은 것도 있고 더 큰 자가 대리권 행사를 하도록 다른 사람에게 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시편 8편 3~9절)

1. 인간이 가진 권세

먼저, 권세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권세의 근원은 우주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훼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야훼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천지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모든 권세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만이 사람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하나님의 권세 밖에서는 움직여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가진 권세는 무엇인가요?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해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심을 받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권 행사를 하는 권세를 부여 받은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기록하되 인간은 하나님보다 조금 낮은 피조물로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 받았다고 말합니다. 시편 8편 5절로 6절에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권세를 상실한 인간

인간이 받은 권세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대리권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절대권세자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복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남용해 결국 권세를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을 못하도록 특별히 지적해 명령하셨는데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권세를 뛰어 넘어 사탄의 반역에 동조해 선악과를 따 먹고 절대 권력자이신 하나님을 반역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심판을 받고 모든 4차원의 권세를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창조와 변화를 행사하는 권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이 4차원에 속했는데 영이 죽은 인간은 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신론자들이 되고 탐욕의 노예가 돼 버렸습니다. 또, 3차원의 물질세계를 다스리지 못하고 3차원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죄와 허물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의 노예가 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라

이와같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이 땅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고 죽으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허물에서 병에서 저주에서 죽음에서 건져 주시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그 십자가를 우리 삶에 단단히 모시고 우리의 길이신 예수님을 쫓아 살면 이 세상에서 행복의 길을 가고 그 다음에는 낙원의 길에 서고 그 다음 천국 가는 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모두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은 영의 세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차원의 세계에 속하시고 온 세상은 3차원의 세계에 속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은 인간이 4차원의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아담과 하와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모습을 회복해 영의 사람, 즉 4차원의 사람으로 중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중생에 따르는 권세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의 권세를, 말씀의 권세를 사용해 하늘나라를 증거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 중국계 의사 한 분이 제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얼마 전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면 제가 진찰도 하기 전에 성령께서 환자의 병명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 나중에 진찰을 해 보면 성령께서 일러주신 병명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에게 “당신, 예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하고 전도를 하고 기도를 해 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속에 계셔서 나와 함께 환자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나는 약도 주고 주사도 놓고 기도도 해 합동 작전으로 병을 고칩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에 오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믿고 병 고침을 받아서 병원이 날로 번창할 뿐 아니라 우리 교회 교인수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증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하늘나라를 증거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골랐을 때, 부모님이 물건 값을 지불하면 우리는 권세 있고 당당하게 그 물건을 가지고 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한 가지 종교를 갖게 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 1장 13절)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얻고, 이제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님을 믿자마자 여러분과 나의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면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마귀를 제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태어날 때부터 쥐를 이기게끔 돼 있고 독수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새를 이기게 돼 있는 것처럼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자마자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자기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해 마귀를 대적했더라면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요, 수많은 자녀들이 방종과 방탕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이며 폭우같이 쏟아지는 세상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내가 어떤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우리 생활에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어떠한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먼저, 주님은 죄를 다스리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과를 다 도말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를 당신의 몸으로 격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를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스리는 자가 다스림을 받는 사람 앞에서 “제발 명령 좀 들어줘요. 이렇게 빕니다.”라고 한다면 그는 권세자가 아니라 거지입니다. 우리가 권세자이면 죄가 우리를 유혹할 때, 강하고 담대하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탐욕의 죄야 물러가라! 음란의 죄야 내게서 떠나가라!”하고 우리가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창세기 4장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기록해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 앞에서 벌벌 떨고만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원수 마귀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사람과 힘이 센 사람은 다릅니다. 권세는 지위에 따라 오는 것이고 힘은 체력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교통경찰은 육체적으로는 연약해서 힘이 없지만 정부가 주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덤프트럭은 힘은 굉장히 세지만 교통경찰이 손가락 하나로 가리키면 바로 정지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힘은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으로는 대적해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에게 “나가 주세요.”하고 사정하지 말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귀신아, 묶음을 받고 떠나가라!”하고 단호히 권세 있게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병을 고치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을 다 청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병에 걸려서 쩔쩔 맬 필요가 없습니다. 권세와 위엄을 가지고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이미 나음을 입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병은 내 몸에서 묶음을 놓고 떠나가라!”하고 권세 있게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 하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권세 있게 병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제가 독일의 카를스루에에서 성회를 할 때, 네덜란드에서 앰블란스를 타고 온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신장 장애가 문제가 있어서 끊임없이 피를 쏟으며 일어서지도 못하는 환자였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서 겨우 성회에 참석했는데 자기가 병 나을 것은 생각지도 않고 다른 병자 위해서 기도하고 있던 중, 갑자기 “신장이 썩은 사람이 나았다.”는 말을 하나님께서 제게 하셔서 제가 그 말을 했더니, 그는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 즉시로 병 고침을 받고는 서서 뛰어다녔습니다.

성회를 마치고 제가 일행과 함께 식당으로 갔는데 그 사람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제게 뛰어 와서 말하기를 “목사님, 저를 보십시오. 올 때는 들것에 들려 왔는데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이렇게 새사람이 돼 걸어갑니다. 이층으로도 마음대로 뛰어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있고 이제는 피도 나오지 않을 뿐더러 기침도 하지 않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병 나은 거 말고 또 한 가지 기적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기적입니까?” 물으니까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저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 나오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계속 거짓말을 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장염과 함께 거짓말하는 것도 깨끗이 나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면 몸과 마음이 치료되고 강건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나가서 우리는 저주를 물리치는 권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아담과 하와가 초래한 가시와 엉겅퀴를 청산하시고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저주의 세계에서 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이상, 저주가 우리에게 폭풍우처럼 밀려올 때, 숙명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그것에 복종해 벌벌 떨어서는 안 됩니다. 저주를 향해 정면으로 나아가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저주는 묶음을 받으라! 우리 가족, 사업체에서 묶음을 받으라! 모든 저주는 이 시간에 떠나갈 지어다!” 그렇게 단호하게 저주를 물리치는 권세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갚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사망이 와도 겁나지 않습니다. 바울 선생은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올 테면 와 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죽음이 겁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다가와 우리의 육신의 장막 집을 헐어버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권세 있게 죽음을 향해 “내가 나간다. 길을 비켜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간다. 사망아, 음부야, 무덤아 길을 비켜라!”하며 큰소리치며 눈을 감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죽음이 다가올 때, 죽음 앞에서 벌벌 기고 두려워하지 말고 한 번씩은 죽음을 맞이할 터인즉 가슴을 펴고 죽음을 향해서 “올 테면 와 보라. 길을 비켜라. 나는 천국으로 간다!”라고 외치는 권세 있는 우리들이 돼야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자마자 권세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총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권세를 알지 못해 낙심하고 절망해 “나는 못 산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 마귀가 “요 녀석 봐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란 애송이구나.”하고 공격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알고 하나님 자녀답게 권세 있고 말하고 행동하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알고 활용하게 될 때, 이로써 영혼이 잘되게 됩니다. 저주가 떠나가고 범사가 잘되게 됩니다. 또한 질병을 묶어 쫓아버리고 강건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가 있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권세를 사용해 온 세상이 하나님의 빛과 영광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시간부터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권세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권세 있는 기도를 하고 권세 있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고 그런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다 되었으니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하나임의 권세를 받아 태어납니다. 아무리 힘이 있는 원수 마귀가 와도 우리가 대항하면 도망치고 맙니다. 두려워 말고 용기 있고 담대하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누리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성경퀴즈 예상문제-1

 

내 용 :

 

인자의 출현

 

인자의 사역

 

인자의 배척당함

 

인자? 죽음과 부활

 

 

누가복음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은 누구일까?(1:1-2)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등......

 

누가복음은 누구에게 쓴 책입니까?(1:3) :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누가복음을 기록한 목적은?(1:4) :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세례 요한의 부모는 누구인가?(1:5-6) :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새, 주의 성소에 들어가는 차례는 어떻게 정하는가?(1:9) :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기도 후에 행한다.(1:23-25)

 

하나님께서 제정하셨다.(26:55-56)

 

불신자들도 행한다.(27:35)

 

땅을 분배할 때 행한다.(26:56)

 

제사장이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선택할 때 행한다.(16:8)

 

범죄자를 찾을 때 행한다.(7:14-18)

 

용사를 선택할 때 행한다.(20:9-10)

 

왕을 선택할 때 행한다.(삼상10:19-21

 

천사가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에 대하여 전하는 내용은?(1:13-17) :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누가 세례 요한의 탄생을 알려 주었는가?(1:19) :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천사가 전해준 말이 이루질 때까지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게 되었던 이유는?(1:20) :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엘리사벳은 수태하고서 얼마 동안 숨어있었는가?(1:24) :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수태됨에 있어 얼마의 시간 차이가 있는가?(1:26)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

 

인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지식이요 정보였다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위대한 교육자로 보냈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술이라면 하나님은 구세주를 위대한

과학자로서 보냈을 것이다.

우리가 최고로 바라는 것이 쾌락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풀어줄 자를

가수나 연주자나 코미디언 같은 위대한 연예인으로 보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위대한 경제학자로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이다.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해 주실 자비뿐이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져주실 자, 우리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실 자,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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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권사(서대문대교구) - 8년 된 축농증의 고통 사라졌어요

8년 전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2월에 수술을 받았다. 같은 해 6월에는 갑상선에서 눈꼽만한 아주 작은 이상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았다. 연속된 수술 후 안도감도 잠시 뒤이어 코에 이상이 생겼다. 콧물이 생기면 앞으로 흐르거나 뒤로 넘어가든 해서 배출이 돼야하는데 비강 안에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끈적해 숨쉬기가 힘들었다. 평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스토리텔링까지 따로 배울 정도로 대화를 즐겨했는데 코가 막히니 대화를 할 때도 집중하기가 어려워 피하기 일쑤였다. 밤에 잘 때도 깊이 잘 수가 없어 힘들었다. 처음에는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해 주는 약을 먹었지만 잘 낫지 않았다. 내 사정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병원을 소개해 주면 빠짐없이 찾아갔다. 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자 의사는 소견서를 써줘서 상급병원에 갈 수 있도록 해줬다.

 3년 동안 대학병원을 다녔는데 듣는 약도 없고 증상은 더 심각해 질 뿐이었다. 검사 결과 병원에서는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며 내가 남다르게 불편감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암도 고치는 세상에 왜 내 축농증은 아무도 고쳐주지 못하냐고도 말했다. 병원과 의사를 몇 년간 찾아다녀도 달라지는 게 없고 나만 아는 고통을 더 이상 호소할 데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와 기도 시간에 기도하고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다면 콧속에 그대로 있는 노폐물이라도 빼내어 보려 소금과 코 세정제 여러 가지를 써봤지만 노폐물이 속 시원히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죽염으로 효과를 봤다는데 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식초를 아주 엷게 희석해서 사용해 봤는데 가장 효과가 좋았다. 병원에서는 코에 식초를 사용하면 안 된다며 만류했지만 그나마 그게 나에게는 맞았다.

 그러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리고 시편 23편 말씀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평안함을 간구했다. 9월이 다가오면서 기도 중 마음속에 추석 때까지 기다리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9월 8일 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는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코 점막에 접착제처럼 붙어 있던게 나사 빠지듯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코 세정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15일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목사님이 축농증과 비염이 나았다는 선포를 하셨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두 손을 들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요즘 하루하루 지날수록 편해지고 말소리를 낼 때도 공명이 느껴져 신기하다. 8년이란 세월동안 꾸준히 중보기도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는 그동안 건강 때문에 열심히 하지 못했던 직장선교회에서 봉사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금보다 귀한 믿음/이영훈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3~7)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기도할 때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이 어려움은 어떠한 정책적인 노력으로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1천만 크리스천이 하나 되어서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이 경제적인 어려움, 외교적인 어려움, 국가 안보의 불안, 북한의 무력도발, 일본의 경제 제재, 중국의 사드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이 어려움, 이 모든 문제들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 둘 해결되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회개하고 기도해야 할 것은 이 대한민국 조그마한 나라가 반이 나누어졌는데도 너무나 편 가르기를 하고 극렬한 다툼이 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나누어진 상처 입은 대한민국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만드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닙니다. 기도할 때입니다.

1천만 크리스천이 하나가 되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주여, 우리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더 이상 나누어서 싸우지 않게 하여 주시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화목해서 하나 되는 역사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서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나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들으시고 응답해주셔서 우리 1천만 크리스천이 한마음 되어 우리 대한민국에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미래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한국교회를 섬기면서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지금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우리나라에 임하게 하여 주셔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모든 분열과 다툼이 사라지고 하나 되는 역사를 이루어서 복음을 통한 진정한 남북통일의 역사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540장 (통:219)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내가 매일 십자가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피로써

나를 정케하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고 1천만 크리스천이 한마음 되어 우리 대한민국을 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은 온 인류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님, 사분오열된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들어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복음을 통하여 남북통일의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주님 함께 하여 주옵소서.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흩어져 주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금보다 귀한 믿음" 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을 본문으로 하여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 "금보다 귀한 믿음"

크리스천의 일생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그 신앙이 시작되고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고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시는 날, 기쁨으로 우리가 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

오늘 성경은 먼저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에 대하여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과 4절은 설명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산 소망은 영원히 변치 않는 소망,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구원하고 영생으로 이끄는 위대한 소망을 말씀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제국에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켜냈던 것은 그들이 갖고 있던 산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A.D. 60년 네로황제로부터 시작된 기독교 박해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25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붙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죽기도 하고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또 십자가형으로 죽기도 했습니다. 로마 귀족들이 예수를 믿다가 그것이 발견되면 지위를 박탈하고 온 재산을 몰수하고 평민으로 전락시켜서 추방했습니다.

이런 말 할 수 없는 박해가 25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늘어났습니다. 그들이 공동묘지 옆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굴속에서 태어나서 굴속에서 살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 기독교 인구가 무려 8%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인들을 박멸하려고 많은 황제들이 노력을 했지만 저들이 가진 산 소망, 부활의 믿음이 모든 고난과 죽음의 위협도 이겨낸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 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난도 핍박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 길 인생입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이 주는 소망은 일시적인 소망이고 사라지는 소망이고 헛된 소망입니다. 우리가 가진 산 소망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 잘 믿고 하나님 영광 위해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저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이 산 소망을 가지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우리를 예정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귀한 사명을 맡기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과 4절은 설명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고 산 소망을 갖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은혜를 주신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정치인으로 부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치를 하며 국민들을 잘 섬겨야 됩니다. 국민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됩니다. 할렐루야. 법조인들은 법을 잘 집행하고 법이 공정하게 모든 백성에게 차별 없이 잘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의료인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가지고 환자를 잘 돌봐서 치료하고 살려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예술인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재능을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사람을 감동시키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든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때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가정주부는 집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어디서든지 주님 내게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하고 상급을 크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저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아 주십니다. 골로새서 1장 5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우리가 이 일을 해나갈 때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5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고 살아가는 동안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 강한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복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그러한 삶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둘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니까 이 죄악 세상이 우리를 자꾸 핍박합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핍박을 당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죄짓는 사람들이 버젓이 사는 그러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셔서 믿는 사람들이 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로 인해서 어떤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믿음으로 이겨내게 하여 주옵시고 오히려 환난과 핍박이 다가올 때 기뻐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은 우리를 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게 해 주시는 축복의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때 이 고난이라고 하는 보자기에 싸서 주세요. 이 고난이라고 하는 보자기를 풀 때는 힘들고 어렵지만 풀고 나면 그 안에 축복 덩어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문제를 만나도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할렐루야. 환난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지만, 문제를 만나지만, 때때로 질병도 찾아오고 때때로 삶의 어려움도 다가오지만 믿음을 지키고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할렐루야.

환난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는 훈련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과 3절은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우리가 연단을 받아서 인내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부족한 것이 인내입니다. 우리들이 좀 너무 급해요.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쉽게 화를 내고 아무 일도 아닌데 다투고 요즘은 사람이 포악해져서 칼부림을 하고 이런 일들을 우리가 뉴스에서 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연단을 통하여 우리 믿음이 성숙한 믿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 13절, 16절은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이 다가와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붙잡아가는 사람 없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예배를 드리면 그 즉시 붙잡혀가서 노동 교화소에서 무기징역을 살면서 평생 노동하다가 거기서 죽어갑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힌두교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불 지르고 예수 믿는 학생들이 학교 가다가 테러를 당해 칼에 찔려 죽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들이 산 소망을 갖고 있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죽음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결국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다가온 것처럼, 여러분이 지금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잘 견디어 나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 믿음의 연단을 통한 축복

셋째로 믿음의 연단을 통한 축복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 '인내는 연단을'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게 되면 우리가 연단 받게 됩니다. 연단이라는 것은 훈련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원어를 보면 훈련받은 성품을 말합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우리의 성품이 성숙 되어서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것이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요. 믿지 않는 사람하고 달라야 하는데 똑같이 소리 지르고, 똑같이 욕하고, 똑같이 거짓말하고, 똑같이 남에게 상처 주고 있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거 고치라고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서 7절은 우리가 연단 받은 후에 달라져야 할 모습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믿음에서 사랑에 이르는 이 여덟 가지 계단은 우리가 연단을 통과하고 나서 얻어지는 주님의 성품입니다. 그런데, 출발이 믿음에서 출발해서 사랑으로 완성되는데 마지막 일곱 번째 단계가 형제 우애에요. 그러니까 그만큼 우리가 하나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숙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천만 크리스천이 성숙해서 하나만 되면, 우리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만 되면,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만 되면, 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을 말씀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연단 받아서 우리 믿음이 정금같이 변화되어서 나가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셔서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이 연단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학생들이 뭘 제일 싫어하냐고 물어봤더니 "목사님, 저는 시험 보는 걸 제일 싫어해요!" "시험을 봐야 네가 실력이 늘어나지?" "그래도 싫어요!" 학생들은 시험 보는 걸 싫어해요.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해서 실력이 늘어나는 것처럼, 우리가 믿음의 연단을 통하여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생활이 어렵고 가정이 풍비박산이고, 정말 죽고 싶어요." 그러나 믿음으로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 어려움을 이겨낼 때, 정금같이 믿음이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연단을 받았습니다. 욥은 늘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행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서 그를 시험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다 날라가고 열 자녀가 다 죽고. 여러분, 부모가 그 자녀를 잃을 때의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열 자녀가 다 죽고, 온몸에 피부병이 나서 피고름이 나가지고 기와로 벅벅 긁고 있고, 부인은 와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그러고, 가까웠던 친구들은 무슨 죄를 지었냐고 그를 책망하고 아무도 욥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연단과정을 통과한 다음 욥은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그에게 열 자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모든 재산을 두 배로 주셨습니다. 왜 자녀는 똑같이 열 명을 주셨나요. 이미 천국에 열 자녀가 있기 때문에 두 배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꿈 많은 요셉이 열일곱 살, 가장 혈기왕성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그 때에 형제에게 미움받아서 노예로 팔려갑니다. 노예 생활 13년입니다. 거기다가 또 나중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서 죄수가 됩니다. 젊은 청년이 낯설고 물설은 이방 나라로 끌려가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종 생활을 하면서 갖은 고난을 겪고,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고, 문화적으로 달라 고난을 당하다가, 마지막엔 또 감옥에 들어가서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는데, 믿음으로 지켜내니까 서른 살에 당시 최대강국인 애굽에 총리대신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다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믿음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실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왕 공주의 아들로 입양돼서, 그냥 잘 있으면 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집트 박물관에 가보니까 그 공주가 나중에 여왕의 바로 왕이 되었더라구요. 그러니까 잘 있었으면 왕도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겠다 하다가 실패하고 광야로 도망가서 40년 동안 연단을 받습니다.

말이 그렇지 40일 연단 받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40년을 하루같이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 외로운 광야에서 낮은 뜨겁게 덥고, 모래 바닥에 가시떨기만 있고, 밤에는 전갈이 나오고, 독사가 나오는 그 척박한 환경에서 누구도 찾아오는 이 없는데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연단 받고 준비가 되니까 80세가 되어 그를 세우셔서 120살까지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쓰셨던 것입니다.

연단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환난은 여러분을 축복으로 만드는 축복의 훈련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을 당했으면, 그 어려움을 당한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많은 아픔이 있었고, 상처가 있었고, 고통이 있었고, 괴로움이 있었고, 잠 못 자고 눈물을 흘린 날이 많았다고 하면 그만큼 더 위대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위대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지키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국 역사 가운데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억되는 손양원 목사님. 1902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나신 목사님이 24살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시고, 그 마음에 꿈이 아무도 돌보지 않은 불쌍한 사람을 내가 돌보겠다. 그래서 그 당시 고개를 돌리고 돌을 던지고 피했던 한센병 환자들을 가서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시설물이 열악하고, 의술도 발달하지 않은 때라 참으로 척박한 환경에 처했었는데, 온몸에서 피고름이 나고 몸이 썩어가니 얼마나 냄새가 고약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일그러져 보기가 무서우니 무섭지 않게 해주십시오. 살이 썩어 냄새가 심하니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한센인과 목회를 시작했으니 한센인 목회로 삶을 마치게 해주십시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한센인 한센병 환자들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피고름을 닦아주고, 안아주고, 그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저들을 돌봤습니다.

여수 애양원에 가서 저들을 섬기는데 가서 일 년이 안 되어서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감옥에 들어가서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그때 재판장을 나가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천왕이 사람이지 신이냐? 참된 신은 오직 야훼 하나님 한 분이다!"

그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5년 동안 옥살이를 하는 동안에 몸이 영양실조가 걸리고 한쪽 눈은 녹내장으로 눈이 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8월 해방을 맞아서 어서 풀려나왔는데, 해방 이후 이 나라가 좌파 우파가 나눠서 크게 대립을 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좌익 청년들이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을 일으켜서 경찰서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 손양원 목사님의 아들 동인이 동신이가 붙잡혀서 총살당해 죽습니다. 두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정말 사랑하는 아들이 공산 폭도 앞에서 죽임을 당한 그 이후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충격이었지만 내 아들이 천국 간 것에 대해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더 나아가서 자기 아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좌익 청년 안재선을 양자로 삼아가지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서 자가 집에 데려와, 원래 붙잡혀서 총살당하게 되었는데 안재선 청년을 자기가 총살시키지 말고 살려달라고 해서 목사님이 양자로 삼았어요, 그 집에서 가장 충격받았던 건 동희라고 하는 여동생이 있는데 오빠 둘을 죽인 그 원수를 자기가 오빠라고 불러야 되니까 이 사춘기 때 이 아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날마다 울었던 기록이 나옵니다. 이 안재선 양자의 아들이 또 목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좀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피신시켰는데 걷지 못하고 불편한 사람과 함께 그곳에 남아 있다가 1950년 9월 28일 만49세 나이에 공산군의 붙잡혀 총살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 말할 수 없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 그의 믿음은 빛나 한국 기독교 역사의 금자탑을 쌓았던 것입니다. 일기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인해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을 위해 살면

주 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할렐루야! 이와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손양원 목사님 말처럼 우리가 무언가 중독되어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요즘 청년들은 K-Pop에 중독되고, 게임에 중독되고, SNS에 중독되고 요즘 돈 있는 사람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약에 중독되고 술에 중독되고 도박에 중독되는데 이 잘못된 곳으로 가면 결국 폐인이 되고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에 중독되어서 예수님 위해 살다가 예수님을 위해 죽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용사가 되어 한평생 우리 일생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복 받은 인생 되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주셔서 일천만 크리스천이 한마음 되어 이 대한민국을 살려내게 하시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조용기목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중략)…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중략)…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1~6절)

오늘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을 피하면서 삶의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길에는 삶의 길이 있는가 하면 죽음의 길이 있고 행복의 길이 있는가 하면 불행과 슬픔의 길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섬기며 의지하며 믿고 따라가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 되어 주십니다. 어두울 때 밝히 비춰주는 길이 되시고 죽음의 길에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1. 길을 찾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죄에서 의의 길을 찾고 허물의 길에서 성결의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또, 마음과 몸이 병들어서 치료와 건강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으며 삶의 부요와 행복의 길을 찾고 죽음을 이기고 영생하는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어디서도 이러한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원래 에덴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이라는 곳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아무 부족함이 없는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누리고 즐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죽고 4차원 영이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에덴에서 쫓겨나서 저주받은 땅에서 갈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다시는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 3장 24절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화염검을 두어 그들이 한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에덴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매일같이 일어나고 일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들은 자기들의 힘을 모아 높은 바벨탑을 세워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 길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에서 나온 심판을 인력으로 벗어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인간의 언어를 흩으심으로 말미암아 서로 대화가 되지 않아 결국 성 쌓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또, 인간은 종교적 길을 찾아 헤매다 공허하고 혼돈한 땅에서 스스로 진리의 길을 만들고자 했으나 인간은 진리의 길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종교를 만들었지만 그러한 것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모두가 헛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물론적 무신론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영혼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을 하나의 물질로 보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또, 마귀의 미혹에 빠져서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귀에 속아서 자기가 재림주요 보혜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 한국에도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쟁이인 마귀에게 속아서 “자기가 재림주다. 자기가 보혜사다.” 이런 말을 하는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마귀를 만들어 놓은 거짓의 길에서 참된 길을 찾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계속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2.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

그런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셨고 공생애 33년 동안 사람들에게 길을 깨우쳐 주셨으며 최후에는 십자가의 영원한 대속물을 통해 끝없는 은혜의 길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지도입니다. 지도 없이 가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한없이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 가는 지도는 바로 성경이요, 그 지도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전부 예수님을 가리킨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천하에 종교는 많습니다. 지도자도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을 이름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은 예수밖에 없고, 죽었다가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신 분도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 아버지께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갈길을 찾기 위해 헤매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고 변함없는 길은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라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 되시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로 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죄의 담이 무너진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의 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용서와 의로움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아담 이후 하나님을 반역하고 원죄를 짊어지고 또한 몸으로 행하는 자범죄에 눌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이 죄악을 아무리 씻으려고 해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힘과 노력을 다 한다고 해도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의 길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용서와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 대한 기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다른 곳에서 끌려가지 않고 예수님 앞에 끌려온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만일 모세의 율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앞에 끌려갔더라면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예수님 앞에 끌려왔기 때문에 용서를 얻고 생명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감춰진 죄악을 드러내심으로 여인을 끌고 왔던 사람들은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다 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죄의 사슬에서 풀어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의의 길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용서와 의로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얻는 길이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길이신 예수님이 같이 계시면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성령이 같이 계셔서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곳에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이 전파되고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가 주어지고 억압된 사람에게는 해방이 있어지고 은혜의 해가 전파되고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계신 곳에 성령이 언제나 계셨는데 오늘날에는 어디 계시느냐? 바로 교회에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삶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치료의 길이 되시므로 예수께 나아가면 치료와 건강을 얻게 됩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다 병들었습니다. 영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고 생활이 병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가정이 병들고 사회가 병들고 나라가 병들었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 국가, 세계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며 서로 살상을 즐겨하고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원한과 원망이 온 세계에 가득 찼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치료를 받을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이 발전시킨 정치, 철학, 과학, 윤리나 도덕이 인간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을 치료해 줄 수 있다면 오늘날 세상은 어째서 점점 더 무섭게 병들어 가고만 있을까요?

여러분, 인간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질서나 병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아가면 무질서는 질서로 흑암은 광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그의 옷자락을 만지면 누구든지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됐느냐?”고 물어보시자, 그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 9:21~22)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시며 즉시로 그 아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 그의 도우심을 청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치료자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호주 시드니에서 성회를 인도했을 때,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성회에 참석했는데 그분은 심장마비 증세로 절대로 움직이지도 말고 과로하지도 말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나이가 70세에 심장마비 증세가 있으니 그로서는 끝장이 난 셈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딸은 얼굴에서 가슴까지 온통 암이 퍼져서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지막 저녁성회를 인도하는데 그 자매님이 고침을 받았다고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겁이 좀 났지만 순종하여 단호히 암에서 놓여남을 받았다고 제가 말했습니다. 또, 그 목사님에게도 “심장마비를 낫게 하여 생명을 연장해 주신다.”는 성령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1년 후에 그 소식을 들었는데 그 두 분이 다 나아서 따님은 피아노 반주로 교회에서 봉사하고 목사님은 고령의 나이에 다시 강단에서 설교하고 목회를 계속 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2주 전, 여기서 신유기도 시간에 “소변이 새는 분을 하나님이 치료하셨다.”고 선포했는데 며칠 전 성도님 한 분이 비서실로 전화를 해서 간증을 했어요. 50대 여자 성도님이신데 그분은 요실금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으면서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편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병원에서 수술 치료를 받자.’ 그런 결심 하고 있었는데 2주 전 신유기도 시간에 “소변이 새는 분을 하나님이 치료하셨다.”라는 말을 듣고 “아멘!”으로 받아들였는데 그날부터 요실금 증상이 싹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께로부터 치료의 강물이 흘러내립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영적인 병, 마음의 병, 도덕적인 병, 가정의 병, 생활의 병, 그 밖의 모든 병을 다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삶의 부요와 행복의 길이 되어 주십니다. 제가 덴마크로 선교 여행을 갔을 때, 피터라는 목사님으로부터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당시 덴마크에 경제 불황이 닥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성도님 한 분이 건축업을 크게 하다가 파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분이 우리 돈으로 천만 원을 가지고 와서 “목사님, 제가 여태까지 주님 중심으로 사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파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지금 제게 있는 재산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인간적인 수단과 지혜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길이 없습니다. 저는 이제 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를 해 주었는데 3개월 후,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분이 정부에서 주도하는 10억 상당의 공사에 입찰을 했는데 많은 경쟁사를 물리치고 이분이 낙찰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쏟아져서 파산했던 사업을 다시 일으키고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하는 성도가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사업이나 물질의 문제도 길이 없을 때 주님께 나아가면 기도하면 주님께서 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고 영생하는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는가? 우리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올라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에 참여한 성도의 영화로운 삶은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은 육을 쓰고 흙 속에 살며 벌레와 같이 생활하지만 부활의 그날에는 우리가 영광의 모습으로 변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미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길을 찾으면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길을 찾아가다가 낭패와 실망을 경험하고 고통당할 때가 많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우리의 살 길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만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희망과 행복의 길이요, 사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주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고통을 대신 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좋을 때도 같이 계시고 고통당할 때도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예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쳐해 있을 때, 주 예수님을 의지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반드시 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의 몸에 병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원수 귀신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넘치도록 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손을 내밀어서 우리 모두를 안수해 주시옵시고 우리 성도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희정 집사(장년대교구) - 하나님 나라 전할 때 난치병에서 해방

2013년 난소암이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 부인과로 유명한 병원 두 곳에서 검진 한 결과 같은 진단을 통보받았으니 오진은 분명 아니었을 터라 속이 말도 못하게 상했다. 두 병원 중 한 곳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 한 후 나는 이영훈 목사님께 인터넷으로 편지를 보냈다. 내 사정을 읽어 보시고 기도의 답글을 요청 드렸다.

 수술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비서실에서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이영훈 목사님이 직접 안수기도를 해주기 원하신다며 언제까지 방문해달라는 답장이었다. 뜻밖의 회신에 나도 모르게 감사고백이 흘러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목사님을 뵙고 안수기도를 받는데 마음이 뜨거웠다. 그리고 그 길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달려가 삼일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만 드렸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영훈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얼마 후 오른쪽 난소에 있던 6㎝ 혹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치유 손길로 난소암에서 깨끗이 고침 받았다. 할렐루야!

 내겐 암 외에도 오랫동안 강직성척추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고질병이 있었다. 두 질병은 난치병으로 평생 고통이 따르기에 사실 암보다 무섭다. 나는 요한삼서 1장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을 부여잡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했다. 하지만 강직성척추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이 나아지지 않아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지내야 했다.

  암 선고로 직장을 그만 뒀던 나는 장년대교구 비전2교구 전도실장 중보실장으로 활동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했다. 온 몸이 경직돼 아플 때도 복음전파와 예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단기선교에 참여해 잃어버린 영혼을 주께 인도하는 일에도 헌신했다.

 특히 올해는 아프리카 르완다 선교팀장을 자원해 사역을 준비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내 몸은 온통 파스로 도배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내 몸의 건강보다는 사역과 팀원들 그리고 현지를 위한 중보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부어주시는 은혜는 참으로 컸다. 내 영혼이 평안해졌고 준비기간 동안 강직성척추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복용하던 약을 끊었다. 선교 준비에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고 움직임도 컸지만 신기하게 몸이 아프지 않았다.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자연히 선교사역을 은혜 속에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곧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8월 29일 병원 검진 후 9월 16일 병원에서 강직성척추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이 깨끗이 나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할렐루야!

 

르완다 선교사역에 동역했던 교구장 박근재 목사님은 ‘예수의 피’를 외치며 나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주셨다. 날마다 보혈을 의지해 기도하라던 목사님의 가르침 따라 기도할 때 심각했던 질병에서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했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그로 인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복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리=오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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