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시는 하나님/조용기목사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야훼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왕하 4:1~7)

인생을 살다보면 갑작스러운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한 여인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엘리사가 운영하는 선지학교의 생도였는데, 갑자기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산더미 같은 빚을 남기고 죽었는데,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당장 빚을 갚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것도 하늘이 무너질 일인데, 빚 때문에 자식까지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으니, 눈앞이 캄캄한 것입니다.옛날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졌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병원비 때문에 가정경제가 파탄나기도 하고, 생활고 때문에 비관하거나 빚을 갚지 못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 생도의 아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여기저기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편 146편 3절에서 5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기도하라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마태복음 6장 31절~32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실뿐 아니라, 우리의 약함도 다 알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로 16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배고픔과 피곤함과 연약함을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며칠 전, 기쁨이라는 14살 소녀가 저에게 간증을 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첫 번째 간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해서 힘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 교회에서 하나님이 다정한 목소리로 “기쁨아”라고 부르시는 소리를 두 번이나 듣고,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나는 외롭지 않다.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게 되고 정말 기적 같았어요. 그 후에도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제가 씩씩하고 밝게 자랄 수 있었던 건 그때의 하나님의 음성이 저의 친구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간증은, 이 아이가 작년부터 교회학교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참 기특합니다. 철야예배를 한 주도 빠질 수 없는 이유가, “통성기도 시간에 마음에 힘든 것들을 하나님께 다 말씀드려야, 일주일을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하는 말이, “목사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바꿔주세요. 하기 싫은 공부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고, 꿈을 주셔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가 보니 이 아이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가?’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그 마음을 따라 환경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인생에 막다른 골목을 당하면 사람들은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물이 없는 사막에 강을 내시고, 길이 없는 광야에 길을 내어 주십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템플 감독이 캠브리지 대학 채플에서 초청을 받아 말씀을 전하였는데, 설교가 끝난 후 한 청년이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아직까지도 기도의 응답이라는 미신 같은 소리를 믿고 계십니까? 우연히 어떤 사건이 맞아 떨어진 것을 가지고 기도의 응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템플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 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것이네.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 때문에 나는 기도하는데 마음을 쓴다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시게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 13절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했던 선지 생도의 가정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고난조차 유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17살에 폐병으로 쓰러졌을 때, “다른 애들은 다 건강한데, 왜 내가 폐병에 걸려야 합니까?” 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지금 뒤돌아보니, 이제야 대답이 됩니다. 저를 주의 종이 되게 하고, 그렇게 주의 종이 되도록 병을 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 주의 종이 되고 나서도 늘 몸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님은 은혜를 주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몸이 허약하니까, 늘 기도하게 됩니다.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기도하고, 새벽에도 일찍이 일어나 기도하고, 늘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어려움을 당해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순종하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엘리사는 도움을 청하러 온 여인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합니다. 여인이 “기름 한 그릇밖에 없다”고 하자, 엘리사는 “이웃에 가서 그릇을 많이 빌려다가, 집에 있는 기름을 빌려온 그릇들에 부으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해가 힘들지만, 이 여인은 엘리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러자 빌려온 그릇이 다 찰 때까지 기름이 끊이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믿음의 입을 크게 벌려야 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기적을 베푸실 것을 믿었습니다. 만약 기적을 믿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릇을 그렇게 많이 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갈 그만큼이라면, 꽤 큰돈을 빚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빚을 다 갚고도 남을 만큼의 기름을 얻었다면, 이 여인은 온 동네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릇이란 그릇은 다 빌렸던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그릇을 준비한 만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입을 넓게 열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실 때,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묻습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가지고 있던 기름을 사용하여 기적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제가 천막교회에서 목회할 때, 서울역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소년이 찾아왔는데, 몸 상태를 보니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마음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말을 했다. 조용기 전도사여, 그렇다면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 이 말을 듣고 저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딱히 뭐라 대답할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5시간 이상을 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그 소년을 위하여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갑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점점 커져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손가락으로 지구를 밀 수 있을 것 같은 큰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한쪽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박수 소리에 눈을 떠 보니까, 그 소년이 울면서 천막 교회 안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오늘날에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3절로 34절에 보면, 애니아라는 사람이 중풍병으로 8년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지냈는데, 베드로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라고 명령하니까, 그 사람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면서 여러 날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하니, 귀신이 즉시 떠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3. 채우시는 하나님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장 31절~32절)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하루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빈들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는데,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빌립이라는 제자는 “1인당 아주 조금씩 먹는 것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한 어린 아이의 오병이어 도시락으로, 오천 명이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후하고 넘치게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든 줄 때, 차고 넘치게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후히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비록 적은 양의 기름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위에 역사하시면, 그릇마다 차고 넘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라도,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수천 명을 먹이고도 남을 만큼 풍성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도 나도 부족한 것이 많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며칠 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빚이 4천만 원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빚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많으면 괜찮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도 여전히 부족한 인생인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채워지지 않는 인생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면, 텅 빈 마음이 채워지고, 그 인생도 예수님이 주시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분이 사업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죽으려고 하다가, 우리 교회 성도님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왔어요. 늘 술에 취해서 가족들을 괴롭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자, 사람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던 사람이 채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과를 하고 반드시 재기해서 빚을 갚겠다고 약속하니까, 채권자들이 감동해서 그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다시 사업에 성공해서 빚을 다 갚았는데, 그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목사님! 빚을 지고 자살밖에는 아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희망 때문에 제가 오늘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다니시면서 소망을 심으십시오. 그러면 몇 십억의 자본을 제공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당하는 모든 문제의 답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올 한해 어떤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좋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능력과 권능으로 마음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고 자비로우시며,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아무도 이러한 부족함과 갈증을 채워 줄 수 없음을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와 고백합니다.
이제 온전히 갈보리 십자가 앞에 나아와 엎드려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채워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오니 날마다 지켜주시고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에 소망과 은혜를 채워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새 역사를 창조하라/이영훈목사

<말씀봉독>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1~5)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새해 하나님의 축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한 번 더 인사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축복으로 주신 한 해에 주님을 향한 넘치는 감사와 찬양이 드려지는 복된 한 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79장(통합 40장):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1절)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절)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3절)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셨네

(4절)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후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다가 우리 주님 부르시는 날 기쁨으로 주님 앞에 가서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한 해는 감사와 찬양의 한 해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더 이상 우리가 과거의 상처나 우리의 현재 힘들고 어려운 일들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지 않게 하여주시고,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내일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할렐루야! 여러분의 일생이 주님을 찬양하는 일생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창세기 1장 1절로 5절 말씀 가지고 “새 역사를 창조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새 역사를 창조하라” “새 역사를 창조하라”

축복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품고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정복하며 새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위대한 선언으로 성경 말씀의 기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창조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바라’라고 하는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고 부름받았으니 이제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스스로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1. 성령의 역사

먼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말씀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조의 역사는 혼돈을 질서로, 흑암을 광명으로 바꾸어놓습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운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죄로 인해 어둠이 깊고, 절망이 가득한 그러한 문제와 어려움의 환경으로 변화된 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이 세상에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이 어둠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오히려 죄악성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탐욕을 가지고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몸부림치는데, 탐욕은 더 깊은 공허감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서 몸부림치며 살아보려고 하다 더 큰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니까 공허감과 절망이 마음속에 쌓이면서, 이것이 분노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면 분노에 지배되는 사회가 되어버린지 모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분노조절 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5,986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2014년에 4,968명, 2015년에 5,390명, 2016년에 5,920명 이 4년째 4년 세에 20퍼센트가 넘는 많은 분노조절 장애 환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2015년 4월 우리나라 성인 만 20세에서 59세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3 정도가 자신이 분노, 우울, 불안 증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중에 42%는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자기가 말을 했고, 11%는 실제로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혼돈, 공허와 흑암이 깊어졌기 때문에 이 세상이 분노로 뒤덮인 것입니다. 이런 분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성령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바나 리서치 그룹에 조지 바나(G. Barna)는 말합니다. “우리의 타고난 성향은 사탄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낙담하게 되며, 불만을 갖게 되고, 회의적이며, 이기적이 된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의 존재를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의 반응하는 방법을 180도 바꿀 수 있으며, 바꾸려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우리가 이 죄와 어둠의 권세를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다 저들이 겁에 질려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는 자기들에게도 그러한 환란이 다가올 것을 두려워하여 문을 꽁꽁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2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00년 전 부활의 날 저녁,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새해 벽두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으라!” 죄악 세상을 이길 위대한 능력은 오직 성령을 받는 데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우리는 죄와 흑암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다시 한번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했을 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은 설명합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을 받은 다음 그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그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모인 청중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며 “어찌할꼬 어찌할꼬” 고백하며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 나왔는데, 그날 하루 침례 받은 사람이 남자 어른만 3,000명입니다.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약 10,000명이 넘는 사람이 그날 주님께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꿉니다. 우리 삶 가운데 모든 문제를 축복의 응답으로 바꾸어놓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제 생애를 바꿔놓은 것이 1966년 2월의 성령체험입니다. 저는 4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나가지고 굉장히 ‘거룩’ ‘거룩’을 찾던 그러한 습관을 따라 신앙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순복음교회에 와서 가만 눈치를 보니깐 성령을 안 받으면 살아남지 못하겠더라구요. 조 목사님께서 매 시간마다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시는데, 저는 그때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저는 처음으로 순복음교회에서 성령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에, “주님 그게 뭔지 모르지만 받아야 되겠습니다. 주시옵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안 주시는 거에요. 그런데 66년 2월에 조용기 목사님이 닷새 동안 부흥회를 하시는데 네 번째 날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혀가 딱 굴러가면서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왔구나. 왔구나. 왔구나.’ 그래 가지고 기도를 하는데 막 얼마나 통곡이 나오는지 저는 어디서 그 울음이 쌓였다 나오는지 막 한 시간 내내 통곡하고 울었어요.

그전에는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5분을 기도해도 기도할 게 없어서 시계를 보면, ‘시계 죽었나? 이거 왜 이러나?’ 그렇게 기도가 안 되던 사람인데, 성령의 체험을 하고 나니까 막 눈물 콧물이 쏟아지면서 엎드려 기도만 하면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보여서 그냥 울고 또 울고, 울고 또 울고 그 눈물이 5년을 가더라구요. 5년을 가요. 요즘 저를 보면 많이 타락했어요. 한 번 울려면 몸부림쳐야만 하니깐. 여러분 늘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메마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할렐루야! 성령충만이 모든 문제 해결의 비결인 것입니다. 죄악 세상을 이기고 절망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 성령충만에 있습니다. 올 한 해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든 문제와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의 역사

성령충만의 역사는 말씀 충만의 역사와 함께 갑니다. 우리는 성령충만과 함께 말씀 충만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나로 온 우주만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력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기적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인 것입니다. 말씀 속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듣고, 흔들리고 상처받는 여러분 안 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말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데 상처받고 여러 가지 염려 근심이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나이다.” 주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순종할 때에 말씀이 내게 축복이 되고, 기적이 되고, 은혜가 되고, 치료가 되고, 용서가 되고,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듣고 흔들릴 것이 아니라 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주님 말씀을 내 마음에 가득 채워서 우리가 입술을 열면 긍정적인 고백이 쏟아져 나오게 되길 바랍니다. 감사와 찬양이 쏟아져 나오게 되길 바랍니다.

올 한 해 지나가면서 절대 여러분 입에서 부정적인 말. 원망 불평하는 말, 남을 헐뜯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흑암의 역사입니다. 흑암의 세력에 여러분 지배받지 말고, 성령의 능력에 지배받아서 절대 능력 절대 감사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죽었던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 살아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맹인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 말씀의 역사가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절망은 떠나갈지어다. 염려, 근심, 걱정은 떠나갈지어다. 내 몸을 약하게 하는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우리 가정을 흔들고 상처를 주는 모든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담대하게 외치셔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외치십시오. 문제는 떠나가라. 기적이 일어날지어다.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적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편 1절로 2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죄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른 길, 의의 길, 축복의 길, 기적의 길로 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 필사를 해서 전시회까지 하게 되신 윤여선 권사님을 소개합니다. 지금 97세 신데, 96세 때 전시회를 하셨어요. 전주 동산교회 권사님이신데, 자녀들에게 성경 필사본을 남겨주기 위해서 70세에 성경필사를 시작해서 처음에는 참 시간 내기에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끝까지 쓸 자신도 없었는데, 결국 신약은 완성해서 자녀들 여섯 명을 모아놓고 복사해서 나눠줬더니 한 딸이 말합니다. “엄마, 복사본 말고 원본을 갖고 싶어요.” 이 딸도 하여간……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매일 여섯, 일곱 시간씩 어머니가 필사를 해가 지고, 97세가 된 지금까지 필사를 하고 계신데 필사의 유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말씀을 편식하지 않고 모두 볼 수 있음. 둘째,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됨. 셋째, 성도의 거룩한 삶을 살게 됨. 그러면서 고백합니다. 성경 필사를 하면 시간을 소중히 쓰게 합니다. 말씀을 늘 읽고 쓰다 보니 말씀을 거울삼아 늘 생각과 행동을 조심하게 합니다. 권사님이 좋아하는 찬송은 304장인데 그중에 3절을 제일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그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토를 달지 마세요. 무조건 믿고 순종하면 그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따르면 복이 되어 돌아와요. 말씀에 순종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단단히 붙들리게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올 한 해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말씀을 읽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혜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성찬 주일이라서 일찍 깨었어요. 오늘 2시 8분에 깨었더라고요. 깨어보니까요. 그래서 일어나서 침대에서 한 시간 기도하고 나와서 성경을 보는데 얼마나 말씀이 은혜가 되는지 그냥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 또 오늘 주일 1, 2, 3부 주님께서 주시는데, 또 감사하고 아침 내내 감사하다 왔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여러분을 생명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나아가서 우리는 말씀과 성령충만을 받은 다음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올 한해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1장 4절에 보니까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만드셨는데 만드신 온 우주만물을 보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렐루야!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좋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귀한 존재로 우리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날 어떻게 보느냐 이게 중요한게 아니예요. 사람이 날 무시하고 깔보고 나를 상처 주는 말해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와 같은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일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1년 365일 224시간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계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인생이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21편 3절 4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가 혼자 외롭고 쓸쓸해 밤잠을 자지 못하고 베개에 머리를 눈물로 적실 때 주님이 내 곁에 오셔서 나를 꼭 품으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슬퍼하지 말라~ 외로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돌보고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할렐루야! 때때로 우리가 주님 앞에 죄짓고 불의해서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 마음 아파하십니다. 얼른 주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돌아오면 주님이 다시 사랑의 품에 안으시고 우리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주님이 인정하신 주님의 자녀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갓난아기를 둔 부모님은 아이로부터 눈을 떼지 못해요. 이 아이가 어떻게 어디 가서 부딪히지는 않나? 또 아무거나 막 집어먹지 않나? 애들은 보이는 것마다 막 집어먹으니까. 그래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데 하나님이 그처럼 우리를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를 주님의 사랑의 품에 안으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넘치게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넘치는 감사와 넘치는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왜? 예배에 우리 하나님 친히 좌정하셔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는데 이 복된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봉사 할 때, 남녀선교회가 주님을 섬길 때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길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섬길 때, 우리 찬양대 오케스트라가 찬양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을 드릴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찬양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크게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말씀합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님을 섬기면 주님이 내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기쁨으로 찬양하고 기쁨으로 감사하고 기쁨으로 섬기면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거룩한 꿈을 품고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나갈 길을 주님께 맡기세요.

시편 37편 5절입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가장 주님이 기뻐하시는 발걸음 그곳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우리 발걸음이 복된 발걸음, 기적의 발걸음, 축복의 발걸음, 생명의 발걸음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올 한해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을 갖고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도전이 다가와도, 어떤 환난과 시련이 다가와도, 넉넉히 싸워 이겨서 여러분의 신앙이 정금같이 변화되어 위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예수님 머지않아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주님 앞에 서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렀던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마지막 4절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나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찬송가 79장(통합 40장):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4절)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호흡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주님께 찬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살다가 주님 앞에 가기를 원합니다. 지난해에 우리 마음속에 상처를 입혔던 것들을 다 떠내려 보내길 원합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했던 일들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직장의 문제, 몸의 질병의 문제, 힘들게 했던 일들 주님 다 떠내려 버리고 오늘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올 한해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기로 결심했사오니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문귀호 성도(영등포대교구)
- 신장암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


지인들의 오랜 중보로 7월부터 교회 출석
모두 한마음으로 금식 기도할때 기적 일어나

나는 회사 직원과 친구의 오랜 전도에도 불구하고 교회 가기를 거부했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형제들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마음이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교회가 갑자기 떠올랐고 올해 7월 나를 계속 전도했던 직원(오순례 집사)에게 ‘교회에 가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에서는 “문 사장이 교회에 다닌다고? 기적 일세”라고 말했다. 그 무렵 시골에 사는 형수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었지만 다시 검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경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의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바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간에서 문맥혈전증 소견이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신장에서 지름 4㎝ 종양이 발견됐다. “암이다.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청천벽력이었다. 10월 19일로 수술날짜를 정했지만 한 번 더 검사를 받고 싶었다. 아내(노갑임 성도)는 개복수술을 두려워하는 나를 위해 로봇수술 최고 권위자가 있다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해당 의사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아내는 무작정 인터넷에 접속해 관련된 사이트를 검색했고 우연히 예약 창에 들어가 ‘선생님께 무조건 로봇수술을 받고 싶다. 남편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내용의 글을 남겼다. 내 소식을 들은 교구장과 성도, 친구(정동환 안수집사)와 지인들은 새신자인 나를 위해 금식기도를 선포하며 새벽 낮 밤으로 눈물로 기도했다.

 며칠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최고 권위자가 있다는 병원이었다. 10월 5일 내원하라는 통보였다. 우리 부부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달려갔다. 교회에 안가겠다며 오만을 부렸던 내가 눈물 콧물 쏟아가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내원한 날 의사는 MRI 검사를 실시하더니 ‘혹시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기대감이 생겼다. 검사결과까지  다시 20여 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 기간 주변 사람들의 중보기도가 또 다시 시작됐다. 이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기도의 동아줄을 엮었다.

 드디어 결과가 나오던 날 의사는 ‘신장에 있는 종양은 양성으로, 간에 있던 혈전증은 깨끗이 사라진 것’으로 최종 판정했다. 의사는 “정말 드문 경우”라며 기적이라고 했다. 종양을 떼어내는 간단한 시술로 모든 상황은 마무리됐다. 수술대에 오를 때 나는 이사야 53장 말씀을 외웠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힘들 때마다 위로를 주던 말씀이었다. 나는 요즘 행복하다. 회사에서 일할 때면 직원들과 말씀 찬양을 함께 듣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모든 것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오정선 기자


권정희 권사(강서대교구)

- “야훼 라파 치유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영훈 목사 신유기도 후 방광염 치유
날마다 넘치는 은혜 주시는 주님께 감사

나는 방광염을 자주 앓았는데 올해는 한 두 달 사이로 4∼5번씩 아팠다. 그 때마다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먹고 염증을 치료하곤 했는데 8월 24일 저녁에 아랫배가 찌릿찌릿 아파왔다. 금요일 저녁이라 주말을 지나고 병원에 가야할 텐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다. 힘들게 견디다가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갔다. 아이들과 같이 차타고 교회에 오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목사님께서 예배 후 신유기도하실 때 방광염이 낫는다고 선포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날이 8월 26일이었는데 주일 2부 예배를 드리는 중에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방광염을 치유해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 큰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다. 약간의 통증이 남아있었지만 약을 먹지 않고 믿음으로 나았음을 선포했다. 그 뒤로 완전히 나아서 지금까지 건강히 지내고 있다.

 2006년에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9월 22일 기도원에서 성령대망회가 있는 날이었다. 기도원에 가려고 오전 8시 반에 일어나서 서둘러 준비하는데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가다 미끄러지면서 뒤로 꽝 하고 넘어졌다. 평소 골다공증이 있고 척추 협착증에 디스크 증세도 있던 나는 순간 허리가 부러진 줄 알았다.

 화장실에 누운 채로 꼼짝 할 수 없었다. 입에서는 “하나님 어떻게 해요”라는 소리만 나왔다. 조금씩 움직여보니 다행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온 몸이 아팠지만 조금씩 걸을 수 있어 기도원에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넘어지면서 대리석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친 탓이었다.

 기도원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 가는 중에 “하나님 머리가 너무 아파요.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뒷머리를 만져보니 계란만한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눈을 감고 속으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원한 바람이 휙 지나갔다.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었다. 바람같이 성령님이 임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체험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두통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 나는 너무 감격해서 감사기도를 드렸다. 잠시 후 뒷머리를 만져보니 혹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그 순간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1979년부터 우리 교회에 다니며 강서분교 고등부 교사로 18년을 봉사하고 지·구역장으로 섬기면서 은혜를 많이 체험해왔다. 날마다 크신 은혜를 부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내 평생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생명의 물과 양식/ 조용기목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문명의 혜택들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프고 인생이 고달픈 그대로인 것입니다. 육신의 배고픔은 이전보다 크게 나아졌지만 마음이 영양실조에 걸려서 죄책감과 무의미, 죽음과 허무, 미움과 원망,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 목마르고 배고픈 인생


 “목마르고 배고픈 인생”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마음속에 샘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는데 그 생기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영혼의 샘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의 샘물은 마시면서 살 동안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삶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평안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깨어진 것은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죄를 짓자 그 영이 죽고 생명의 샘물도 말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장 17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른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목마른 배고픈 인생이 돼버린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온갖 수고를 다해도 고생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시며 살아가게 됨은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라고 말씀한 것처럼, 생수의 근원되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니 목마르고 배고프고 고달픈 인생을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2.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인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떡이요 생명의 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장3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가셨을 때,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는 있지만 영혼의 목마름은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위, 명예, 권세, 부귀라는 세상의 물을 마심으로써 갈증을 해결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마를 때 소금물을 마시면 더욱 갈증이 심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것으로는 아무리 채워도 끝없이 목마르고 갈급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5장 10절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참된 평안과 기쁨, 만족과 행복은 환경이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입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의 필요를 채운다고 해서 영혼까지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공명을 다 가지고 있어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영적으로 배고프고 목마른 인생은 치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1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인생은 맹물 같다”고, “아무런 기쁨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포자기하고 절망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께서 맹물 같은 인생을 포도주와 같은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기쁨이 없고 고달픈 인생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서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은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이고 헛된 것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충만한 기쁨이요 영원한 즐거움이요. 기쁨입니다. 그 무엇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3.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만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만 해결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 삶의 배고픔과 목마름도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꿈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꿈 공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누구든지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백화점 주인이 고아원 아이들을 초청해서 장난감을 선물해 주기로 했습니다. 장난감 코너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한 가지씩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하나씩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장난감을 고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화점 주인이 “왜 너는 고르지 않니? 원하는 것을 고르면 이 아저씨가 선물로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백화점 주인의 다리를 힘차게 붙잡고, “그럼, 저는 아저씨를 고를래요.” 이 아이는 백화점 주인을 선택했습니다. 거기 있는 장난감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백화점 주인은 그 아이를 자녀로 입양했고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는 그 백화점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장1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은혜의 비가 쏟아져도 그릇을 준비하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데 그 그릇이 바로 꿈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꿈이라는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발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출장도 가고 여행도 가고 하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사람이 지구를 벗어나는 일, 달에 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달에 가는 꿈을 꾸었고 그 결과 지금 달에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 옛날에는 인간이 화성에 간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가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에 미국서 나사의 화성 탐사선이 화성에 무사히 착륙해서 큰 이슈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꿈이 있는 사람의 가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인류의 역사도 발전하고 우리 인생도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과 장애물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사람인데 어떤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그처럼 높은 산을 정복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니 확고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시도합니다. 저도 역시 꿈이 있었기 때문에 도중에 장애물이 나타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던 것입니다.” 조셉 마셜이라는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산꼭대기를 향해, 해돋이를 향해, 희망을 향해 내디딘 가장 연약한 한 걸음이 가장 맹렬한 폭풍보다 강하다.” 이 말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희망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말해 줍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일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폭풍우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계속 전진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꿈과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 17장 2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중국의 어린 이광이라는 사람은 밤중에 산에서 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활을 겨누어서 화살을 당겼습니다. 화살이 “탁”하고 호랑이를 맞췄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처럼 생긴 큰 바위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활을 쏘았더니 화살이 바위를 꿰뚫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기도에는 참으로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해외 성회를 하면서 기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많이 체험했습니다. 한 번은 필리핀에서 성회를 인도할 때, 암에 걸린 젊은 자매님이 성회에 참석했는데 이미 온몸에 암이 퍼져서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회의 소문을 듣고 그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가 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고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성령의 불이 떨어져 그 길이 암이 깨끗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할머니는 남편을 데리고 왔는데 남편이 직장암 때문에 바깥 피부까지 곪아 터졌다고 해요. 그런데 병자를 위한 기도 시간에 남편의 엉덩이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고 집에 갔는데 다음 날 자고 일어나 엉덩이를 쓰다듬어 보니까 깨끗이 나았습니다. 할머니가 다음 날 집회에 와서 남편을 대신 해서 간증을 하는데 “자고 일어나서 우리 영감 엉덩이를 만져보니까 깨끗이 나았어요.”하고 “하하하하!”라고 좋아서 웃으면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청중들이 다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전에처럼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기적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9절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야훼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 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모든 필요한 것들을 예비해 주십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경험을 통해서 보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을 이길 수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것을 한두 번 체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항상 피할 길이 있다고 믿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길을 찾습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사람은 B. M. 바운드는 자신의 책에서 “오직 주님만이 산들을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면 전능하신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꿈과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놀라운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김혜자 목사(영산회 부회장)

- 사망의 고통에서 영생으로 이끄신 하나님

 

작년 10월 1일 남편과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우리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나는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게 됐다. 나는 왼쪽 뇌를 심하게 다쳐 두 번의 뇌수술을 받았고 눈 팔 다리 허리 역시 모두 망가지는 심한 중상을 입었다. 8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중환자실로도 여러 번 옮겨지니 의사들은 내가 죽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중보기도의 힘으로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있을 때 이영훈 목사님께서 병원을 방문해 기도해 주시고 금요성령대망회 때에도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해주셨다. 또한 영산회를 비롯한 나를 아는 타교회 성도들까지 모두 기도를 해주어 나는 올해 6월 퇴원할 수 있게 됐다. 할렐루야!

 퇴원을 하기 직전까지 의사는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적 같은 일이기에 앞으로 얼마간 살지 장담을 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퇴원 후 타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기 위해 소견서를 가지고 방문하면 의사들은 “담당의사에게 굉장히 힘든 수술이었을 거다. 이건 죽는다는 말밖에는 드리지 못한다”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야훼라파 치료의 하나님은 나를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지신 것뿐만이 아니라 내게 건강까지 허락해주셨다. 보험료를 받기 위한 검사에서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아 보험료는 못 받았지만 나는 물질보다 더 큰 위로와 평안을 얻었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셨음에도 내 마음속에는 항상 두려움과 불안함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고 검사를 통해 확신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 의사들이 나의 놀라운 회복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네요”라며 믿음을 가지게 됐다.

 나는 검찰신우회 예배를 22년 간 인도했었다. 사고로 13개월 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신우회원들이 그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예배 자리에 서며 나는 단 한 명만 나와도 초심을 갖고 예배를 인도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족한 종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실 일이 남아있다는 것을 예배를 통해 알게됐다. 눈 수술을 한 사람, 빚보증을 잘못 선 사람 등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내 간증을 통해 소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덤으로 주신 삶을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감사로 살고 있다.      

정리=김주영 기자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조용기목사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 고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5~17절)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 빛을 지으시고 기뻐하셨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갖가지 생물들을 지으시고 기뻐하셨으며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아담과 하와를 거하게 하셨는데 에덴으로 ‘기쁨’이라는 뜻은 그야말로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1.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사건

그런데 그 기쁨을 깨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장 16절~17)”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에게 죽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선악과는 스스로 주인이 되게 하는 과실인 것입니다. ‘선하다’는 것은 좋다는 의미이고 ‘악하다’는 말은 나쁘다는 의미인데 선악과를 따먹으면 ‘좋다’와 ‘나쁘다’를 자기가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주의 절대 주인인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주인 노릇을 하면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주인인가?’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집에 비유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4절로 26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빈 집은 한 개인일 수도 있고, 한 가정일 수도 있고, 사회나 국가일 수도 있습니다. 빈 집에는 좋은 주인이든 나쁜 주인이든 주인이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주인으로 들어오면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라든 고통을 당하고 결국 파멸하고 마는 것이 되고 맙니다.

에베소서 2장 2-3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마귀가 주인이 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죄를 지으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살면 기쁨과 행복의 에덴을 잃고 그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하게 됩니다. 창세기 3장 17~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삶에 저주가 다가왔을 뿐 아니라 영이 죽어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공비들의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부산으로 아버님과 식구들이 다 이사를 갔는데 당시 조부모님께서는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고집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조부님을 위해서 저를 남겨두고 떠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제가 국민 학교 5학년 때였는데 학교 갔다 오니 나만 남겨 놓고 다 이사를 가 버렸습니다. 그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방에 가도 아무도 없고 건넌방에 가도 아무도 없고 그냥 하늘 보며 울고 땅을 보고 울고 정신없이 울었습니다. 그때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깊이 느꼈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분리돼 살았던 경험은 그 때 내게는 뼈와 살을 깨뜨리고 찢어놓는 슬픈 일이었습니다.

가족과 단절이 이렇게 슬픔을 준다면 하나님과의 단절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길 때 행복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되면 불안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인간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계가 죄로 말미암아 이처럼 고통과 탄식으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고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

그러나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폐하시고 우리의 구원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의 길은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장 15절)”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오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인류의 죽음을 철폐하시고 진정한 생명을 복구하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우신 놀라운 계획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은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인류의 역사는 길을 찾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저마다 진리의 길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길이요,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아무리 빨리 달려서 1등으로 들어와도 정해진 길로 뛰지 않으면 실격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잘못된 길을 달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받을 이름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고 또 죽었다가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으므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도 오직 예수님만 아십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생명을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길을 잃은 존재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 서울대학교 학생들 중 절반이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극심한 경쟁과 여러 가지 스트레스 때문에 저마다 가슴 속에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삶의 근본 되신 하나님과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우울한 것입니다. 여러분, 길을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 소련 공산당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크렘린 궁에서 제가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크렘린 궁에 들어가서 집회를 여는데 소련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들었습니다. 집회 강단에 서보니, 제 뒤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 레닌의 동상 앞에서 제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을 때, 모든 소련 사람들이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니까 모두 다 손을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뭔가 잘못 생각했는가?’ 싶고 하도 이상해서, “예수님을 안 믿던 사람이 오늘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만 손을 들라”고 하니 그래도 모두 다 또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러냐?”고 물으니까 그들이 대답하기를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은 물질로만 돼 있지 영혼은 없다고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소련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제가 소련의 여러 도시에서 집회를 했는데 그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 아무리 ‘인간은 물질로만 돼 있다’고 가르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을 누리고 살려면 예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잃어버린 모든 자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가면 새로운 신분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오면 출소할 때 죄수복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죄인의 신분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옷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모를 때, 죄인의 신분으로 죄인의 옷을 입고 살았으나 예수님을 믿고 나면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의 신분으로 예수님께서 보혈로써 값 주고 사신 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3. 오중복음은 에덴의 회복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오중복음은 아담이 잃어버렸던 에덴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 때는 죄가 없었고 더러움도 악이 없었고 질병도 없었던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가 없었으며 죽음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청산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에덴에서 누렸던 의와 거룩함과 성령의 충만, 건강과 치료와 풍요로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오중복음은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목회생활 하던 60년 동안에 발견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환경이 어렵고 궁핍한 가운데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천막교회에 가마니를 깔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춥고 덥고 굶주렸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의 샘이 넘쳐났고 이로 인해 행복했던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장 9절~11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은혜를 주심으로 기쁨이 가득한 에덴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똑같이 광산에서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금을 캐내고 어떤 사람은 종일 괭이질을 해도 아무것도 캐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종일 헛된 괭이질 만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금을 캐며 사는 값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삼서 1장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슴속에 꿈과 믿음을 가지고 살면 늘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오중복음을 삼중축복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의 말로 선포하셔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에덴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사입력 : 2018.12.02. pm 14:31 (입력)
 


가인이냐 아벨이냐/이영훈목사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야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세기 4장 1~8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거룩한 꿈을 꿉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희망의 70년을 바라보면서 제2의 도약을 하는 꿈을 꿉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든 잘못된 구습은 다 내던져버리고 새롭게 교회가 개혁되어서 제2의 부흥의 역사를 이룰 것을 바라봅니다.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바라봅니다. 이 통일은 정치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체제가 다른 이 체제가 우리와 합쳐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냥 적화통일이 되면 우리는 다 순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복음이 북한에 먼저 들어가서 북한 전역에 증거되고, 교회가 서고, 그러고 나서 남북이 함께 8000만 명이 예배드리는 그 날에 진정한 통일이 올 것입니다. 이 통일을 위해 우리 교회를 쓰실 것입니다. 심장병원을 완성시켜 주시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북한의 전역에 병원과 교회가 서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거룩한 꿈을 가지고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찬송가 490 : 주여 지난밤 내 꿈에>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희망의 70주년을 바라보며 거룩한 꿈을 꿉니다. 우리 교회 제2의 도약과 부흥이 있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지나간 60년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부족했던 모든 부분들, 잘못됐던 것은 주님이 다 벗어버리게 하여주시고, 이제 새로운 도약, 제2의 부흥, 영적인 성장과 놀라운 변화가 우리 교회에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남북통일의 꿈을 꿉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체제가 다르고, 73년 동안 헤어져 있던 우리 남한과 북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는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을 줄로 믿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물결이 온 북한을 뒤덮고, 곳곳마다 교회가 서고, 찬양이 울려퍼질 때에, 그때 진정한 통일이 올 것을 믿사오니 주님 도우시고 함께하시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창세기 4장 1절로 8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가인이냐 아벨이냐?”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인이냐 아벨이냐?” “가인이냐 아벨이냐?”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는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그 놀라운 축복과 놀라운 권한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명령을 불순종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로부터 인류 역사 가운데 죄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축복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육신에는 질병과 사망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1.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 죄의 역사는 그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갑니다. 오늘 특별히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데,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4장 1절 이하는 이와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야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았는데, 큰아들의 이름이 가인입니다. 그 동생의 이름이 아벨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장성해서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 저들이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자기가 농사하여 지은 곡식으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4장 3절, 4절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속에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드리는 예배, 찬양, 기도, 헌물을 기뻐 받으시지만 먼저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받기 원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나와 예배를 드리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 가운데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감격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이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모아 가장 귀한 것, 양의 첫 새끼를 잡아 피를 흘려 그 피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먼저 그 마음을 드린 것입니다. 그 정성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을 향한 그 사랑과 그 믿음의 모습으로 나아와 그 정성을 주님 앞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참으로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가인의 제사와 같습니다. 가인은 형식은 갖췄습니다. 얻은 것으로 제물로 드렸지마는, 하나님 보실 때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과 감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자세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나와서, ‘그저 내가 직분자니까, 그저 내가 이 교회 오래된 성도니까, 주일은 지켜야지.’ 나와서 이렇게 예배드리는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습니다. 피의 제사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부터 시작된 그러한 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그들이 수치를 무화과로 가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죄 없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로부터 구약의 제사는 피의 제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

“야훼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죄 없는 짐승이 우리 인간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이 구약의 4000년의 피의 제사는 장차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실 그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히 우리의 모든 죄와 질병과 가난과 저주를 다 멸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치료가 임합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주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 평안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우리를 정결케 해야 되는데, 우리가 너무나 죄 가운데 살면서 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잘 회개하지 않습니다. 죄로 얼룩져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귀한 신분을 만나러 갈 때는 옷도 깨끗하게, 단정하게 입고 가서 그분과 만납니다. 막 이리저리 때가 얼룩져있는 그런 옷을 입고 갈 사람이 없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내가 귀한 분을 만나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예수의 보혈로 씻어서 정결케 되어 우리 주님 보시기에 부끄럼이 없는 모습으로 주님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민감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올 때 형식적으로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모습이 가인의 제사와 같지 않은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주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내가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거짓말하고 욕하고 남을 속이고 이러한 삶을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내 주의 보혈은>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

죄는 먼지와도 같습니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갔는데 저녁에 들어오면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들이 내 몸에 붙어있기 때문에 또 세수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예수의 보혈로 씻고, 또 씻고, 또 씻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나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가인의 분노

둘째로, 가인의 분노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4장 5절, 6절입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고, 동생의 제물만 받으신 것에 대해서 가인은 격분했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속에 분노가 차고 넘쳤는지 얼굴 안색이 변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실, ‘왜 나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봐야 될 그였는데, 거꾸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니, 왜 내 제물은 안 받으시고, 동생의 제물은 받으셨습니까?’ 원망과 섭섭함으로 그 마음에 분노로 가득 채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혹시 이와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혹시 내가 가인이 아닌가? 그동안 많은 경우에 가인의 모습으로 살지 않았는가?’ 주님 앞에 기도하고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내 뜻대로 안 될 때 분노하고, 내 뜻대로 안 될 때 다투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앞서야 되는데 내 계획, 내 뜻, 내 생각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분노하고 다퉜다면, 그 순간 나는 가인이 된 것이고, 가인의 분노가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존심이 더 강하기 때문에 이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과연 가인이 아닌가?’

저희 작은 아버님께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부산의 광안교회 담임목사님으로 30년 넘게 목회하시고 은퇴하셨습니다. 부산 지역의 동노회장도 지내시고 통합측 해외선교회장도 지내셨는데, 교회 공동의회가 끝나면 꼭 저한테 전화가 옵니다. “이 목사, 참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 올해도 공동의회가 은혜롭게 끝났어.” 무슨 말씀인고 하니, 장로교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장로 피택 투표를 하는데 많은 경우에 절반 이상이 떨어집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님 말씀을 들었더니 “우리 올해 한 사람도 안 됐습니다.”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제 장로 피택 투표를 해가지고 반이 떨어지고 반이 붙었을 경우에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고 합니다. 떨어진 사람들 가운데 ‘내가 무엇이 부족한가? 내가 더 열심히 교회를 섬겨서 선임들에게 신임을 받아야겠다.’고 충성하시는 분들이 있고, 떨어진 그날로 집에서 가족회의를 하고 “이 교회가 나를 우습게 봤어. 야, 보따리 싸서 딴 교회 가자.”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교회 목사님들은 공동의회할 때마다, 장로 피택 투표할 때마다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한답니다.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한답니다. 또 떨어진 분들의 어떤 상처받고 교회 떠나는 분들은 없는가?

여러분, 그것은 그 순간 자신이 가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얼마나 많은 헌금을 드리고 우리 가족이 이 교회에 공헌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감히 나를 떨어뜨릴 수 있냐?”고 그래서 분노해서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당한 이유를 대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의 길을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화를 내는 가인을 꾸짖으셨습니다. 창세기 4장 7절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네가 바른 일을 했다면 네가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 죄가 너를 점령하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 분노할 때 죄가 딱 기다렸다 우리를 쳐들어와서 점령해버리는 것입니다. 죄는 바로 내 마음의 문 앞에 와있습니다. 언제? 분노할 때. 언제? 내가 사람들한테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때. “나를 무시해? 내가 누군데 내 말을 우습게 들어?” 그 순간 죄가 나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가인의 길을 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한 분들이 가인의 길을 가서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고, 분노하고, 교회 소란을 일으키고, 교회 분열을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가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옵소서.’

주님께서 요번에 예루살렘 다녀오는 동안에 주신 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목사, 이 교회는 내가 세운 교회고 이 교회는 내가 영광받을 교회이니까 이후로 너는 은퇴할 때까지 이 교회 사역을 맡을 때까지 너의 흔적을 지워라. 주님의 모습만 나타내고 주님의 영광만 나타내라.’ 주님 앞에 회개 많이 했습니다. ‘주님, 제가 혹시 가인이 되어서 내가 사람들한테 무시당할 때 상처 받고 분노한 일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분노할 때마다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데 사람들이 나를 짓밟냐? 내가 누군데 사람들이 무시하냐?” 그 순간 나는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 길을 가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가인이 우리를 끊임없이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딱 깨어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가인의 문제가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모세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던 모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백만이 넘는 불평분자들을 데리고 40년을 광야 길을 가서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는 “온유함이 지상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자나 깨나 이백만이 불평을 했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겠습니까?

이 사람도 와서 불평하고, 저 사람도 와서 불평하고, “물이 없습니다. 고기가 없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부추, 파, 마늘로 맛있게 음식을 해먹었는데 맛있게 해먹을 음식도 없고, 뭐도 없고.” 하루에도 열 번씩 열이 받아서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나안 입구까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불평하니까, 물이 없다고 또 불평하니까, 그 순간 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바위를 명하여 물을 내라 하셨는데 분노한 그가 자기 지팡이를 들어가지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바위를 힘껏 두 번 쳤습니다. 물은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에 너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한 번의 실수가 그토록 사모하고 사모했던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멀리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는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순간 그가 가인이 안 되었더라면, 한 번만 더 참았더라면, 그 이백만을 데리고 당당히 가나안에 입성했을 터인데 그 순간을 놓쳐서 그가 분노하여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 이 가인을 십자가 앞에 못 박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누구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자꾸 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것은 여러분을 깨어지고 낮아지게 하기 위해서 도구로 쓰시는 것입니다. 내 분노가 가라앉을 때가지 계속 이 사람이 와서, 저 사람이 와서 여러분을 한 번씩 분노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을 짓밟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존심도 짓밟고, 여러분 무시하고 상처를 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면 안 됩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됩니다. 여기서 분노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아벨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벤처 크리스천 처치의 칩 잉그램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존재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침투하도록 내어드릴 때 분노가 머물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 사랑이 우리의 혈관을 타고 흐르게 하면 분노는 사라지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분노의 가장 좋은 해독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능력이 우리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우리 삶 가운데 모든 분노와 미움과 아픔과 상처를 다 치료하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가 오늘 이 시간 이후로부터 가인의 길을 가지 않게 하시고 아벨의 길을 가게 하여주시옵소서.”


3. 죄와 은혜

가인의 길을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죄와 은혜에 대해서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을 말씀드립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동생에게 쏟아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장남인데, 어떻게 나를 인정하지 않고 동생을 인정합니까? 내가 부모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겠습니다.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나를 장남으로 인정하겠습니까?” ‘저 녀석은 뭐가 잘났다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나?’ 들에 불러내서 돌로 쳐 죽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동생을 분노로 인해서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아, 그것은 가인의 이야기라고요?’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다 가인이 있습니다. 제 마음 속에도 가인이 있습니다. 분노와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가인으로 뒤덮여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분노, 충동 조절하지 못해서 사건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부터 이런 분노가 사라져야 합니다. 미움이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가 사라져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가 넘쳐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가인을 뽑아내지 않으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부터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인을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부터, 여기 있는 모든 여러분들이 가인을 제거하면 우리 교회에 미래가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4장 12절입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농부인 가인인데,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무엇을 해도 곡식을 거둬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 외롭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그러한 노숙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가면, 우리는 가인처럼 외롭게, 쓸쓸하게 고통스러운 그러한 방랑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치료하시고 고쳐주셔서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여주시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길을 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늘 말씀으로 새로워져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아야 합니다. 시편 1장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자신 속에 있는 가인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으로 내가 늘 새로워지고 변화되어 영적으로 성장하여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주님 앞에 볼 때,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죄인입니다. 잘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할 때, 주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돌아 나올 때, 주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에서 일어난 하디 선교사님의 회개운동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의 명문대학인 토론토 대학의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였습니다. 의사이며 선교사입니다. 항상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내가 저 배우지도 못하고 지지리도 못사는 저 조선 땅에 가서 저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복음을 전한다!’ 그런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와서 선교를 하는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3년 동안 강원도에 교회가 처음 세워진 곳에서 애써 일하였으나 선교 사역에 실패하였다. 이 실패감은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타격을 주었고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기진맥진의 상태에 이르렀다.”

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줘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낙심해서 ‘이제 내가 선교를 접어야겠다.’ 하던 그때에, 1903년 8월 원산에서 중국에서 오신 화이트 선교사님과 함께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갖습니다. 기도회를 갖는데, 성령체험을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어 첫 번째 명하신 것은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했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실패하였다는 사실과 실패한 원인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죄의 고백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내가 교만했습니다. 내가 우월감을 가지고 한국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깔보고 늘 내가 저들을 도와준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 속에서 내 자존심을 세워 사역을 했기 때문에 선교사역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가 눈물로 회개할 때, 거기 있는 선교사님들이 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눈물로 회개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교회에 나가서 성도들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합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선교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주의 사랑으로 섬기지 못하고 늘 우월감을 가지고 여러분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때, 모든 교인들이 통회자복하며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깨달은 후 그 첫 주일 아침 우리 원산 감리교회 회중 앞에 서서 부끄럽고 당황한 얼굴로 나의 교만, 심령의 강퍅함, 그리고 믿음의 결핍과 또한 이것들이 가져다준 많은 결과들을 고백하면서, 그들은 처음으로 ‘죄의 확산과 회개가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이 1907년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우리에게 다시 사랑과 용서를 주시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벨이 죽고 난 다음 셋을 주십니다. 창세기 4장 25절입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가인입니까 아벨입니까? 어느 길을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자존심 하나 갖고 살면, 그것은 가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 안에서 다시 거룩한 꿈을 가지고 아벨의 길을 가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이뤄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과거의 잘못됐던 나의 모습을 다 던져버리고 주님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가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늘 교만했습니다. 늘 자존심 하나 내세우면서 누가 날 건들기만 해도 분노하고 다투고 상처를 받으며 살았던 저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항상 분노가 내 마음속에 숨어있다가 언제든지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분노가 폭발했던 저희들의 연약한 모습을 용서하여주시고, 오늘 이후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가인의 모습을 내던져버리고 아벨같이 순수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곽은정 집사(양천대교구)

- 이스라엘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과 치유

이스라엘 성지 순례 중 자궁의 혹 사라져
선교 여행 때마다 감사와 기적 체험

 10월 16일 나는 일본 선교여행(10월 7∼11일)을 다녀온 뒤 예정되어 있던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산부인과 검진에서 자궁에 혹이 3개가 발견됐는데 의사는 나쁜 것일 수도 있으니 자세한 것은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자는 말에 “제가 11월 초에 일주일간 이스라엘을 다녀와야 해요. 그 후에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의사가 왜 가느냐고 물어 나는 “성지 순례하고 기도하러 간다”고 말했다. 의사가 활짝 웃으며 그럼 기도 많이 하고 오시라는 말을 해주어 내 마음도 환해지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11월 28일 ‘입원’ 29일 ‘수술’이라는 메모와 함께 수술에 앞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혹이 3개나 있다고 하니 신경이 쓰일 만도 했지만 원래 하던 대로 매일 새벽예배를 다니며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기도를 했다. 검진 전 다녀온 일본 나가사키 순교지 방문을 떠올리니 참혹한 고난 속에서 죽음도 불사하며 믿음을 굳건히 지킨 일본의 크리스천들이 생각났다. 이들을 생각하며 나 역시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잠잠히 기도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11월 4일부터 10일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 이영훈 목사님과 함께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참여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던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성지순례에 임했다.

 그러던 중 11월 7일 아침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요단강을 방문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 지역이라 양쪽에 군인들이 서 있고 강이라 하기엔 좁은 폭에 흙탕물인 곳이었지만 가만히 예수님의 침례를 묵상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요단강 안쪽으로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아랫배에 수술 직후처럼 통증이 몰려왔다. 갑작스런 통증에 놀랐지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해주시는 중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고통은 사라졌고 다음 장소인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 유적지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확신하고 더욱 성지 순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은혜롭게 전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11월 20일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의사는 “지금은 혹이 없어졌네요”라고 말했다. 22일 혈액검사도 받았는데 역시 결과는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셨다는 사실도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만 30년 넘는 신앙생활을 뒤돌아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걱정과 눈물 대신 언제든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하다.

 고침을 받은 것도 이번만이 아니다. 4년 전 조용기 목사님의 대만성회에 참석했을 때는 어렸을 때 물지게를 지면서 굽었던 허리를 하나님께서 곧게 펴주셨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아픔과 상처도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듯해 마음의 응어리도 사라졌다.

 나는 젊었을 때 두 자녀를 양육하면서 맞벌이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랬던 내가 노년기를 향해 가는 지금은 하나님께서 때마다 물질을 채워주시고 환경을 열어 주셔서 내가 가고 싶은 선교 여행에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어 마음에 결단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신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우경구 성도(순복음강북교회)

- 조용기 목사 신유 선포 후 실명된 눈 또렷이 보여


‘예수님 부활, 내 부활’ 바디매오의 기적 나타나    
좋으신 하나님 믿고 어려운 삶과 환경 모두 변화

 “눈이 먼 사람이 지금 치유를 받았습니다” 지난달 26일 순복음강북교회 성전확장 및 독립6주년 기념 축복대성회에 참석한 나는 조용기 목사님의 신유 선포에 심장이 터질 듯 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얘기인가?”하고 조심스레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내 눈에 하얀 불빛이 회오리쳤고 눈을 까맣게 덮고 있던 피가 아래로 쓱 빨려내려갔다. 형광등, 태양 빛도 못보던 내 눈에 강대상의 십자가가 보이더니 조용기 목사님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기적이었다.

 2년 전에 실명한 눈이 하루아침에 깨끗하게 보였다. 평생 안없어진다고 했던 눈의 잔상도 깨끗해졌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가 체험하게 됐고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나는 성경책, 찬송가를 보면서 하루하루 감사의 고백으로 살고 있다. 

 지난해 6월 전도를 받고 교회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절대 절망에 빠져 살아갈 힘이 없었다. 11년 전 아내는 갓 돌 지난 아이와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아이를 버리고 내 퇴직금과 전 재산을 갖고 도망갔다. 그 뒤로 세차장, 고물상, 계란장사 등 안해본 일 없이 일했다. 트럭운전을 하게 됐는데 백내장을 앓고 있던 왼쪽 눈은 2년 전부터 실명돼 오른쪽 눈으로만 의지해 운전을 하며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운전을 하며 내부순환로를 가는데 오른쪽눈에 피가 터져 고이면서 앞이 안보였다. 내가 당장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하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병원에 가서 전 재산이었던 300만원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했는데 예후가 좋지 않았다. 희미하게 보이던 색 마저 안보이게 됐다. 나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종합병원으로 옮겨 다시 수술을 받았다. 왼쪽 눈은 이미 너무 늦어서 수술이 불가능했고 오른쪽 눈에 약간의 신경이 남아있는 것에 희망을 걸고 수술을 했다. 퇴원하고 집에 왔는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눈이 빠질 듯 아팠다. 병원에서 오라는 날짜에 다시 병원을 찾으니 눈이 아팠으면 진작에 왔어야지 왜 눈을 실명해가지고 왔냐며 이미 신경이 다 죽어 더 이상 손쓸 수 없다고 했다.

 수술이 분명 잘못됐는데 내 탓을 하며 실명한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내게 남은 것은 절망 뿐이었다. 수술 후에 양쪽 눈이 완전히 안보이게 됐으니 말이다.

 세 아이랑 당장에 먹고 살 일이 막막해 한 달 동안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간 그 날, 길에서 강북교회 권사님의 전도를 받았다. 권사님의 손을 붙들고 주일에 교회에 갔다. 교회는 다니기만 해도 복을 받는 곳이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물질의 복을 먼저 주셨다. 나와 세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었는데 교회, 구청, 동사무소에서 쌀과 라면 등 먹을 것을 보내줬다. 새신자교육을 마친 후에는 더 좋은 소식이 왔다. 구청에서 당뇨병을 치료해준다며 병원에 입원을 시켜줬는데 이랜드 복지재단에서 찾아와 200만원을 주고 돈을 잘 관리하는 법까지 알려줬다. 그리고 지원이 끝나던 날 바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동사무소에서 40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달부터 매달 생활비를 지원받게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했는데 입학금과 등록금 300만원이 당장에 필요했다. 나흘안에 등록하지 않으면 입학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마감 몇 시간을 남겨두고 어느 독지가가 300만원을 보내주어서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당뇨로 인한 팔과 다리의 마비증상도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깨끗이 고침받았다. 

 교회에 가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채찍질을 당하시고 피흘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성경 속 바디매오처럼 눈을 뜨게 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좋으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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