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감사/이영훈목사

<말씀봉독>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서 2장 6~7절)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한 번 더 인사합니다.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복음성가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1절)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절)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절)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한해를 뒤돌아보면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힘들고 어렵던 순간에도 주님 함께하여 주시고, 아프고 병들고 누워있을 때에도 주님께서 위로해주시고, 모든 어려움 헤치고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하신 주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해서 우리 삶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주님, 우리의 남은 일생 감사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다 같이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시고 오늘 이 시간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원망과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오늘 이후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넘치는 감사”입니다. 골로새서 2장 6절과 7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함께 은혜 나누겠습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주세요. “넘치는 감사” “넘치는 감사”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맞이하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만 넘치는 감사가 아니라 우리의 일생이 넘치는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620년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에서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나서 65일이라는 긴긴 항해 속에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플리머스라는 곳에 도착을 합니다. 그 지역은 미국 북쪽에 뉴욕에서도 한 2시간 이상 올라가는 곳인데, 우리나라의 신의주같이 북쪽에 위치해있어서 매우 추운 겨울을 보내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도착하자마자 교회를 지었어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해 보았는데, 400년 전에 지은 교회인데도 견고하게 교회가 잘 지어져서 지금도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추운 겨울을 지나며 식량도 떨어지고 배고프고 또 어린아이들이 병이 들고 그래서 그해 겨울이 지나가면서 102명 중에 44명이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들이 이제 봄이 되어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데, 원래 청교도들이 농사를 하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사회 지도급에 있던 분들이고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에 농사가 서툴렀습니다. 그 지역의 착한 원주민 인디언들이 와서 농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 첫 수확을 거두었는데 풍성한 수확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같이 3일 동안 감사잔치를 했습니다. 먹을 고기 없으니까 야생 칠면조를 잡아서 그것으로 요리를 해서 함께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터키 칠면조를 주요리로 해서 온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함께 추수감사를 드리고 또 가족끼리 교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이 바로 추수감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데 수, 목, 금, 토, 주일 닷새 동안에는 온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추수감사절 축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추수감사절이 정식으로 미국의 공휴일이 된 것은,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한참 남북전쟁으로 그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고난 가운데 1864년에 12월 넷째 목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추수감사절이 지금까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절기로 지켜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이 건국 정신은 기독교 정신이요, 감사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추수감사절의 이 아름다운 전통이 전해지게 되었고, 우리 한국에서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추수감사절은 풍성함에서 드린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없을 때, 부족할 때, 고난 중에 드린 감사였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고난 중에 드린 감사입니다. 없을 때 드리는 감사입니다. 건강할 때 누구나 감사할 수 있고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을 때 누구나 감사할 수 있지만, 사업이 안되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몸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성숙한 믿음의 모습이요, 진정한 감사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일생이 감사의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만큼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감사하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감사하는 만큼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골로새서 2장에 우리에게 세 가지 감사할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할 것을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2장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어주셨다고 하는 것은 한평생 감사해야 될 감사의 제목이고, 감사의 내용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악 덩어리입니다. 죄 가운데 다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인생입니다.

 요즘 사회가 얼마나 악한지, 분노 조절이 안 되어서 결혼을 앞둔 사람이 결혼 대상자를 칼로 난도질해서 죽이고, 또 얼마 전에는 이혼하자고 하니까 이혼하자고 하는 부인을 또 칼로 난도질해 죽였어요. 얼마나 이 세상이 험한지 모릅니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섬뜩섬뜩해집니다. 이 같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창조주가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 16절은 설명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며, 친히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뉴욕의 리디머교회의 담임인 팀 켈러 목사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시 말해 죄인인 인류를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하시기 위해 죄에 합당한 벌을 직접 받으셔야 했다. 성자 하나님은 당연히 인간의 몫으로 돌아와야 할 징벌을 대신 받으셨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무한한 고뇌와 고통을 스스로, 온 마음으로 끌어안으셨다.”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와 질병, 저주, 가난을 짊어지시고 주님 친히 돌아가신 것입니다. 왜?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뼛속 깊이 있는 이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주님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구원의 은혜가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되어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과 5절은 설명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영원히 우리가 감사해야 될 감사의 제목입니다.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내가 주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예수 믿고 이렇게 복 받은 삶을 살게 되었으니 첫째도 감사, 둘째도 감사,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예수 믿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된 사람들입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은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는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바뀌어야 됩니다. 입만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 내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기독교 정신, 감사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제일 많이 듣는 말이 “Thank you.”입니다.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돈을 주고 물건을 사면서도 내가 “Thank you.”예요. 저쪽이 “Thank you.”여야 되는데. 하여간 감사가 입에 붙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감사를 보고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감사가 소홀했습니다. 너무나 부정적인 것에 익숙해서 원망과 불평이 앞섰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은 쉽게 하면서도 감사는 없었던 내 자신의 모습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가 우리의 삶의 모습을 이제 바꾸어서 새롭게 해서 넘치는 감사의 삶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갚으려고 해야 갚을 수 없는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한평생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감사의 고백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은혜의 빚을 갚기 위해서 우리 주위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그분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2. 주 안에서의 은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둘째로, 주님 안에 거하는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려야 됩니다. 우리가 어디에 신앙의 기초를 두느냐 이것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물질에 나의 모든 것의 기초를 두면, 물질이 사라지면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에 뿌리를 두면, 권력이 사라짐과 함께 그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에 줄을 댔다가 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까? 여러분, 세상 것에 여러분의 뿌리를 내리면 안 됩니다. 세상 지식에 뿌리를 내려서도 안 되고, 세상 권력에 뿌리를 내려서도 안 되고, 세상 물질에 뿌리를 내려서도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견고히 서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환란이 다가오고 핍박과 어려움이 다가와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전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과 5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다고 해도 늘 한계에 부딪히고 부족할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주님 안에서 뿌리를 깊이 내려서 우리가 주님 은혜 가운데 거하면, 우리의 성품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성품이 긍정적인 성품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감사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분노와 미움이 사랑과 용서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안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평안함이 임하면 “평화, 평화로다.” 주님의 평화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마음의 평안함을 빼앗아가는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나 부정적인 말에 영향을 받지 말고 마음의 평안함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릴 뿐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의 신앙 고백인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그는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 다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날마다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하나 되고, 주님과 죽고 주님과 부활하면 우린 주님 안에서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굳건히 서서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염려 근심 걱정은 물러갈지어다! 부정적인 생각은 물러갈지어다!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그때 은혜가 임합니다.

3. 말씀에 근거한 믿음

셋째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믿음으로 인하여 감사드려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야 됩니다. 이 말씀은 생명입니다. 이 말씀은 능력입니다. 이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약입니다. 치료의 약, 약인데, 약이 두 첩이 있어요. 구약, 신약. 할렐루야! 이 말씀을 묵상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면 치료가 임합니다. 마음에 건강이 임하고, 마음에 건강이 임하면 육신에 건강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병드냐? 마음에 분노가 다가와서, 마음에 미움이 다가와서, 마음의 상처가 나를 짓눌러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것이 온갖 병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의 이런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염려 근심 걱정을 다 내던져 버리고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보니까 로마 시대의 유물을 보여주는데 칼을 하나 보여주더라고요. 칼이 양쪽에 날이 아주 날카로운 그런 칼을 보여주면서 이 칼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없냐고 하며 그분이 히브리서 4장 12절을 말씀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말씀이 살아 역사해서 우리를 치료하고, 우리를 수술하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 자녀답게 만들고,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여줍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로 17절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에 서있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말씀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입니다. 말씀 없이 기도하는 기도는 허공에 메아리가 될 뿐인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과 만족을 위한 그러한 도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응답이 다가오고, 치료가 다가오고, 회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니라! 우리가 좋은 일에 감사하고 좋지 않은 일에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좋은 일은 좋아서 감사하고, 나쁘고 힘든 일은 좋게 만들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그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내가 다듬어짐을 감사하고, 내가 질병을 통하여 건강의 축복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할렐루야!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시편 50편 23절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니까 이 말씀에 근거하면, 감사를 하지 않으면 행위가 틀린 거예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 행위를 옳게 한다고 했기 때문에 오늘 이후로부터는 감사만 하시기 바랍니다. 불평하면 행위가 틀린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했기 때문에 그저 입만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은혜가 임합니다. 예배 끝나고 막 밀려 나가다가 버스가 떠나는데, 막 급히 탔는데, 누가 발을 꽉 밟았어요. 그때 소리를 지르면 은혜 다 쏟는 겁니다. 그때는 조용히 “죄송합니다, 제 발이 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당신 눈도 없어? 누구 발을 밟고 그래, 발 빼!” 그렇게 되는 순간 은혜를 싹 쏟는 거예요. 여러분, 은혜는 감사로부터 출발합니다. 메말라 있는 감사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시편 136편 1절입니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의 표현이 찬양입니다. 시편 150편 6절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에서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 중 하나가 "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고 하는 찬양입니다.

 어린 시절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님 밑에서 자라난 존 뉴턴은 어머님에게 기도를 받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배우면서 자랐는데, 그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아버지가 배의 선장이었는데, 배를 타고 다니면서 거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밤낮 술 먹고 포악한 짓을 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거부하고 무신론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붙잡아다가 노예시장에다 파는데 얼마나 그가 악독했던지, 사람 잡아먹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노예들이 반항하면 그 자리에서 총을 쏴 죽이고 바다에 집어던져 버렸어요. 그렇게 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예들을 싣고 오는데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책이 한 권 딱 떨어졌는데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고 하는 책이 꽂혀있다 떨어지는 그 순간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늘 눈물로 기도해주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 같은 죄인을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고, 날 살려주시면 내가 이제 새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내가 이제 이 잘못된 모습을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기도가 끝난 다음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래서 영국에 돌아와서 노예들을 다 해방하고 배를 팔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39살에 목사가 되었는데, 그의 간증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막 몰려왔습니다. 그는 그 당시 정치가인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영향을 주어서 영국에서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통화시키게 했고, 그로 말미암아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친 귀한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82세까지 43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는 이와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내 영혼을 나의 자비로우신 하나님과 구세주께 위탁한다. 그는 내가 배교자요, 신성 모독자요, 방탕자였을 때, 자비롭게도 나를 남겨두시고 보존해주셨으며, 가장 쓸모없는 나에게, 그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파하도록 허락하셨다!”
 평생 300여 편의 찬송을 작사했는데, 대표적인 찬송가가 우리 찬송가 305장에 있는 "Amazing Grace"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그는 자기의 삶을 이 찬양에 고백하면서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 신앙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 안에 거하며,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나의 등 뒤에서|복음성가영상악보

       



 

나의 등뒤에서 나를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평안히 길을갈땐 보이지 않아도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주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때 나를 말어주시네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때면 다가와 손내미시네

잔잔한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새 힘을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어를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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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기도   (0) 2018.10.07
너는 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조용기목사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야훼를 경외한 줄을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열왕기하 4장 1~7절)

서론

할렐루야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가득하게 거하시고 계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왕하 4장 1절로 7절까지를 가지고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본론

1. 삶에 닥친 어려움

여기에 엘리사 신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엘리사는 선지자 학교, 요사이 말하면 신학교를 운영을 했는데, 자기 밑에서 자기를 받들어주는 참 성실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만 병들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아파 누워있을 때에 돈들이 다 빚이 되고, 그래서 그 사람이 의지했던 의원들에게 줘야 될 돈, 이웃에게 빌려온 곡식 값 다 지불하고 나면 이 세상에 가진 것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 둘이가 있는데, 모두 다 종으로 그들이 데리고 가겠다고 말을 하고 있으니 참 두렵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 부인은 울다 울다 갈 데가 없어서, ‘선생님에게 찾아가자 엘리사의 신학교에 다녔던 그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내 앞길을 묻자’ 그래서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2.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

엘리사 선생은 그 말을 듣고 난 다음에 물은 것이 있습니다. “너 뭐 가지고 있느냐?” 그 부인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기름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깐 “그래, 너와 아들들과 함께 이웃에 가서 어디에 가든지 그릇을 빌려되 많이 빌리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릇을 구하러 이웃으로 갈 때에 그 부인에게 엘리사가 물은 질문을 우리도 단단히 생각해봐야 될 것입니다. “너희들에게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은 무엇이 있는 것을 가지고서 더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너 무엇이 있느냐?”, “기름 밖에 없다.” 그러면 기름 밖에 없으면 기름이 별 값이 안 나가지 않습니까? 좀 비싼 것을 말을 해야지요. 그러고 기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 그것이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들은 무엇이 있느냐고 물을 때, “꿈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꿈이 있으니 너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있는지를 단단히 알고 그것을 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름병에 기름이 조금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시시하게 구하지 말고 좀 크게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있느냐?” 여러분은 뭘 구하겠습니까? 기름을 구하지 말고 다른 금이나 은 보화를 구해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있는 것을 통해서 복을 주시지, 없는 것을 구해서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있느냐?” 아주 굵직한 것을 구해야 돼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아주 귀한 것을 말을 하고 그것도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물질적인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광야를 지날 때 메추라기를 보십시오. 고기를 먹으려고 간구하니깐 메추라기를 주시고, 그 다음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시고, 물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은 것이라도 귀한 것을 구하고, 그리고 꿈을 갖고 희망을 갖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부인은 없는 것을 구하긴 구하였는데, 무엇을 구했느냐? 기름병에 조금 있는 기름을 그걸 가지고서 나왔으니 뭐 줄 것이 없어요. 예수님께서도 오천 명의 남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먹을 것을 달라고 왔을 때, 주님이 요한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찾아보니 “선생님, 이 많은 사람 뭘 먹일 수가 없습니다.” 아예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가져 왔습니다. 아주 오병이어, 기름병에 기름 부스러기처럼 오병이어를 가지고 나오니깐 주님이 그 오병이어를 가지고서 사람들이 먹고 열두 바구니 남게 한 것입니다. “무엇이 있느냐?”, 있는 것을 풍성하게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 열심히 주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것을 보태어서 넘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더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집에 가서 동네에 돌아다니면서 그릇을 다 집에 모아오고 두 아들과 함께 기름을 모읍니다. 기름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부으니깐, 부으면 또 나오고, 부으면 또 나오고 굉장히 많이 기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름을 많이 가져야 기업인들은 기업을 할 수가 있으니깐, 사업하는 사람은 많이 구해야 돼요. 예수 믿는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십일조 근본책임만 다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그릇이 있는 대로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기름을 다 하고 난 다음, 아들들에게 “또 그릇을 가져오너라.” “어머니 그릇이 없습니다.” 그러니 기름이 뚝 떨어졌습니다.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도 뚝 떨어지게 하는 겁니다. 어디든지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요. 있는 것도 없다고 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엘리사에게 와서 기름병에 기름이 많이 나와서 이정도 나왔다고 하니깐 그걸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으니깐 그것을 팔아 빚을 갚고, 그 남은 것으로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사람에게 복을 안 준다고 그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빚을 갚고 난 다음, 남는 것이 얼마나 남았길래 그것을 가지고서 가정에 먹는 것으로 삼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걸 보면, 언제든지 주님은 남은 것을 여러분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채우고 난 다음에 입에서 넘쳐 나오는 것은 네가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힘차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 기뻐하는 것을 드리고 기도하면 넘치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물고기를 낚기를 좋아해서, 물고기를 낚으러 나가면 같이 낚으러 가는 사람이 그릇을 가지고 와서 중간쯤 된 크기의 고기는 잡아서 그릇에 넣고, 다른 것은 큰 물고기는 잡으면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도로 놓아주고 합니다. 그래서 하도 이상해서 “당신은 대박이 터져서 물고기를 잡으면 놓아주고, 적은 물고기는 잡으면 그릇에 담아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니깐 “뭐 이유가 있나요? 우리 집에 프라이팬이 이만큼 밖에 안 됩니다. 굵은 물고기를 가져가면 프라이팬에 넘기 때문에 맛을 못 보지만, 중간쯤 되는 이놈은 가자마자 프라이팬에 맞아서 다 먹을 수 있으니깐 그렇다.”고.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프라이팬이 작다고 느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있는 것을 하나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3. 넘치게 채우시는 하나님

오병이어, 어린아이의 점심도시락이 다른 것을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오병이어가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나오니깐 그것을 많게 해서 오천 명이 들판에서 먹을 수가 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아무것도 없어도 꿈이 있으면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축복을 해줄 때 “밖에 나가서 산을 동서남북 산을 바라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것 그 땅을 너에게 주리라” 별들이 많이 있는데 “뭘 보느냐?” “별들을 봅니다.” “말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너의 자손이 저 헤아릴 수 없는 별들만큼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지도 않고 불평만 하면 안 됩니다. 제일 처음부터 꿈을 꾸고, 꿈이 희한하게 믿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꿈을 갖고 기도를 하면 그것이 믿음이 되어서 ‘믿습니다.’가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다.’가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라고.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의 생활 속에 가진 것을 기도로써 응답받는 체험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하면 여러분은 점점 많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차원의 영을 알면 여러분이 꿈을 꾸고 그것을 믿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선언하면 꼭 믿음으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돼요. “가서 모든 이웃의 그릇을 빌리라”라는 하나님도 그 있는 것에 축복을 해주시지 없는데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릇을 빌리고 그 빌린 그릇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면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채우지 여러분이 못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진 그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릇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냥 채우시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에 있는 것을 가지고서 빚을 다 갚고 넘쳐나게 해서 남은 것으로 축복받을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여러분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차원의, 오차원의 영성을 마음속에 가지게 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그릇을 준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차원의 영성은 그릇을 가지고서 입으로 시인함으로 하나님이 더 주실 수 있는 그릇이 예비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체험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체험을 많이 하면 그 체험이 믿음을 가져옵니다. 내버리지 않습니다. 오병이어도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온 믿음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았습니다. 말하기를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된다.”고 했는데, 겨자씨만한 믿음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습니다. 그걸 믿음으로 가지고 나오면 그것도 믿음으로 하나님 받아들여서 내 믿음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적은 믿음은 적은 대로 “하나님 내 믿음이 적은 믿음입니다. 성령이여 도와주셔서 적은 믿음이 큰 믿음이 되도록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이 그 적은 겨자씨 믿음을 주시면, 그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서 큰 믿음이 이룩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돌보시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고 구하고, 재미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기도를 많이 하고 밤에 철야를 하다시피 기도를 하고 나왔는데 기도가 효과를 발생할 것입니다. 아멘.


이경술 안수집사,정해경 집사(영등포대교구) -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주신 하나님

이유 없이 아팠던 몸 교회 다니며
치유예배와 기도로 가족 사랑 회복
남편과 아들 생명 지켜주신 주께 감사

 올해 남편이 집사 안수를 받았다. 시댁은 어머니에 이어 큰형님이 신내림을 받아 굿을 하던 무속인 집안이었다. 그랬던 집안에서 남편이 세계적인 교회의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나는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이유 없이 아팠다. 형님은 내가 자신에 이어 신내림을 받아야만 아픈 몸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굿 하는 것을 보며 자란 남편은 결사반대였다. 차라리 교회에 다니라고 했다.

 마침 이웃 주민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녔는데 그 구역 식구들과 함께 나를 전도했다. 계속된 전도에 ‘한 번만 교회에 나가고 말자’는 생각으로 그들을 따라 교회에 왔다. 그때 말씀이 ‘혀’에 관한 것이었는데 입술의 부정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말씀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나는 부정적인 말을 자주 쏟아냈다. 이유 없이 주변 사람들을 미워했던 마음을 반성하게 되면서 나는 더 말씀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예배를 사모하게 됐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에 출석하게 되자 남편과 자녀들도 함께 교회를 출석했다. 신기하게도 눌렸던 마음과 아팠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언젠가 말씀을 듣는데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꽂혔다. 가정과 자녀의 축복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임한다는 사실이 강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나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상 집안에 흐르는 저주를 기도로 끊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먼저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자 영적 전쟁이 시작됐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이었는데 남편이 일터에서 사고가 나 허리를 크게 다쳤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그나마 다친 부위가 신경을 살짝 비껴나가 전신마비는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기도로 위기를 이겨내고 4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으며,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아들이 초등학교 때 일어났다. 남편과 아들이 탄 차가 교차로에서 승용차와 정면충돌 후 인도로 올라가 벽을 치고 반 바퀴 돌다 멈춘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는 내가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던 중이었다. 기적적으로 큰 부상은 없었는데 그 사고로 아들 머리에 물혹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내 사정과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 아들을 치료해달라고 매일 철야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던 중 아들의 오른쪽 뇌에서 뱀이 빠져나가는 환상을 보게 됐다. 아들은 그 뒤 아무런 탈 없이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는 이렇듯 큰 기적을 낳았다. 놀라운 주 은혜에 보답할 길은 오직 주를 향한 순종과 예배, 기도와 전도뿐이었다. 이웃들에게 전도지 ‘행복으로의 초대’를 건네며 복음을 전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기도할 때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올해 계속 새벽기도회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우리 가정에 주셨다. 그 말씀에 순종해 남편이 안수집사가 됐다. 남편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성도들을 위해 새벽마다 차량 봉사에 나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크니 모든 이들에게 주의 사랑을 베풀고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연단을 통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더 큰 사명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겠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리=오정선 기자


차정숙 권사(강서대교구)

- 성경 읽는 동안 혹이 사라졌어요

고난 오면 감사하고 작정예배 드려
온 가족이 하나님 은혜로 감사 찬양

 

지난해 4월 20일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어 올해 1월 8일까지 3독을 했다. 그런데 올해를 시작하면서 이영훈 목사님께서 성경 통독을 적극 권장하셨다. 나는 하루에 5시간씩 성경을 읽어 다시 8독을 했다. 평균 42일이면 1독을 하는 것 같다. 올해가 가기 전까지 9독을 마칠 예정이다. 성경을 읽다보니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됐다. 갱년기가 심해 5년 전부터 호르몬제를 먹고 있는데 이 때문에 매년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11월 20일 정기검사를 받는데 목에 있던 2㎝ 크기의 혹이 사라졌다. 원래 2016년 검사 때 목에서 혹을 발견하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성경 통독을 할 때 소리를 내서 읽었더니 목에 혹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처음 주님께로 나올 때부터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 1988년 4월 5살짜리 작은딸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면 무료로 심장병 수술을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교회에 등록했다. 아이는 당장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교회에 간 지 2주 만에 딸아이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교회의 지원이 확정됐다. 그때부터 우상을 섬기던 어머니와 나는 좋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작은딸 수술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폐동맥협착증을 앓았는데 검사를 해보니 심장에 구멍까지 생긴 상태였다.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 쇼크가 와서 온 몸이 마비돼 식물인간으로 20일간 누워 있기도 해서 사람들은 다들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새신자였지만 아침 금식을 하며 20일 작정예배를 드렸다. 작정예배가 끝나자 온 몸이 마비됐던 아이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심장 수술도 성공적으로 받았다.  

 딸아이의 건강이 회복되자 나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했다. 구역장 직분을 주실 때도 지역장 직분을 주실 때도 ‘아멘’으로 기쁘게 순종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20년 동안 지역장과 구역장 직분을 통해 주님께 내 삶을 드릴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큰딸도 중학교 1학년 때 녹내장으로 실명의 위기가 왔으나 1주일 작정예배를 드린 후 수술하지 않고 깨끗이 치유됐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가까이 두시려고 작은 문제를 주셨네요. 기도할게요” 말하며 곧바로 작정예배를 시작한다. 그러면 고난은 기쁨이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된다.

 남편은 척추협착증으로 6년 동안 다리가 저려 고생했다. 급기야 2016년 추석에 왼쪽 다리가 마비되어 병원에 실려 갔다. 명절이라 병원에 가도 수술 일정을 잡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척추 분야의 명의를 만나게 해주셔서 바로 검사를 받고 수술할 수 있었다. 5시간 수술을 예상했는데 10시간 동안 수술이 진행됐다. 길어지는 수술로 불안했지만 대기실에서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은 큰 수술을 하고도 한 달 만에 회복해서 직장도 다니고 건강하게 지낸다.

 

나는 지역장으로 섬기면서 늘 이렇게 기도했다. “저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셨으니 직장에 나가 돈을 벌지 않겠습니다.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남편은 직장생활을 잘하고, 집도 여러 채 생길 만큼 넘치는 복을 주셨다.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참된 이웃/조용기목사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25~37절)


 예수님께서 ‘참된 이웃’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한 율법사하고 바꾼 것을 알아보고 은혜를 받으십시다. 율법사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로써 대단히 율법 중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율법주의자가 많은 군중과 함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서 예수그리스도를 낭패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주님을 보고 “무엇을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켜라. 그러면 천국에 갈 것이라.” 율법은 무엇인지 그 사람 잘 아는 사람인데 그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에는 무엇이라 했느냐?” 도로 질문을 하니까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을 하라.” 하니까 “나는 벌써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이 어떠한 분이십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에 예수님께서 이웃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데 아주 놀랍습니다. 저는 언제나 성경 이쯤에 와서 예수님께서 대답을 주시는 것이 하도 신기해서 여러번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그렇게 합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이웃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갑니다. 여리고에 내려가면 위험한 일이 많습니다. 왜 그러냐면 여리고 평지에는 곡식이 잘 되어서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그것을 어디서 소비하느냐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소비합니다. 그 여러 가지 상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팔고 돈주머니를 가지고 여리고로 내려오다 잡혀서 돈도 빼앗기고 생명도 잃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물건을 팔아서 돈을 주머니에 가득 채워서 몸에 지니고 여리고로 내려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잡혀서 돈 다 뺏기고 실컷 얻어맞아서 죽게 되어서 있는데 마침 그리로 율법사가 지나가다 혀를 “쯧쯧쯧쯧쯧”혀를 차고 “조심해서 가지 어떻게 이렇게 되었냐?”고 그러고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 살릴 생각은 안하고 율법으로 꼬집어서 이 사람을 욕을 하고 걸어갔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회생활에도 율법주의자는 도와줄 이웃이 없습니다. 심판하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 사람이라도 율법주의자가 있으면 판단합니다. 그리고 심판합니다. 율법주의자가 있으면 이해할 이유 없이 서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려면 죄악 짓는 것을 완전히 거치려고 애를 써도 다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위하여 기도하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변화를 가져오면서 살아야지 비난하고 비평하고 손가락질만 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날 우리 사람들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사람을 비평만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율법사가 이 매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혀를 차고 그냥 지나가고 그 다음엔 율법주의자를 도와주는 사람 누구지요? 레위인입니다. 눈이 어두워서 빨리 성경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젊으니 레위인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은 율법사를 도와서 율법주의자가 율법을 행하는데 뒤를 따라 제사의식을 도우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는 거룩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거룩한 사람이 선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 곁에 와서 보고는 고개를 설레 흔들고 ‘저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나는 성전에 율법을 도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만 하면 됐지, 저건 내가 할 일, 저 사람을 도와주는 건 나의 일이 아니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지나가버렸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죽게 됐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인이 이리저리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다가 이 상황을 보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개라고 합니다. 자기들 무리 속에 받아들여 주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마리아인을 아주 비천한 사람으로 보느냐면 사마리아 사람들을 완전한 유대인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랜 생활 동안에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이란이나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살다가 그 후손들이 들어와서 유대인으로 조상이 있는 땅에 살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은 배반자요 배신자고 외국인들하고 섞여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마리아인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유대인이다 사마리아인이다 따질 리가 없이 살려놓고 봐야 되기 때문에 그는 당장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포도주와 기름을 가지고 기름으로 상처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포도주는 부어서 아픈 데를 방부제로 포도주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기 옷을 찢어가지고서 붕대를 만들어가지고 이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자기의 말에 실어서 다운타운 예루살렘 지역에 다운타운에 가서 의사를 만나가지고서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이 자리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줄 수 있지만 나는 해야 될 사업이 있으니까 그 사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로 다시 이 집을 들러서 갈 테니까 이 환자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두 달란트의 돈을 주어서 “돈이 더 들면 제가 올 때 다 갚을 터이니까 이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의 얼굴을 보고 “자, 이 중에서 제사장이 이웃입니까? 레위인이 이웃입니까? 사마리아인이 이웃입니까?” 여러분 생각에 누가 이웃입니까? 사마리아인이 이웃이지요. 잘못 된 것만 본 것이 아니라 이웃이란 서로 도와주는 것이 이웃입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참 이웃이냐?” 예수님이 물으시니까 그 율법사가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그와 같이 하라. 그러면 영원히 산다.” 몇 마디 말로 예수님이 대답을 정확하게 해드렸습니다. 오늘 날 율법으로 우리 규율에 의존해서 옆의 사람을 비난하고 욕보이는 일을 쉽게 하지, 돌봐주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의식과 형식을 하지만 고통 받는 사람에게 도움을 계속해서 베풀지 않습니다. 참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이웃을 도와주는 그것이 참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비난하고 공격하고 손가락질 하면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한 사람도 죄를 짓지 않고 의만 행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다 죄를 지어서 아담의 후손으로 죽음을 결정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내놓고는 참 이웃이 어디가도 없습니다. 비평하라면 다 비평 잘 하지, 비평을 막아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찾기가 힘듭니다. 이게 우리가 간접적으로 보면 이 피투성이가 되고 도적맞아 죽게 된 사람 누구냐? 여러분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 것입니다.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살다가 도적을 만나 있는 것 다 뺏기고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되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 이 사람이 우리 인생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웃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살리려고 하고 서로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서로 변명을 하고 서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이 누구시냐? 여러분 참된 이웃은 누구십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있는 분이 오늘 여러분의 이웃이요. 불이웃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참이웃으로 의지하려고 하면 예수님이 참이웃인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제공하고 도와주는 그 사람의 잘못을 대신 도와주는 이웃이 참된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낭패를 당해서 고통과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찾아와서 귀에 입을 대고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라. 내가 다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고통하지 말고 내가 걸머진 십자가를 생각하라. 십자가는 예수님이 짊어진 이웃의 짐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도적질 당하고 도적질 하고 모든 죄 덩어리인 사람들을 대신 짊어져 주고 변화를 받도록 해주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니면 우리는 살아나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할 죄인들을 위해서 주님이 오셔서 변명해 주시고 죄를 짊어져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비용을 다 지불해 주시고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도움을 주는 예수님과 같습니다.

 우리가 빈 손들고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님은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고 대신 고통 받아 주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만들어주는 그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지 비평하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손가락질 하고 언제나 이웃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고통을 갖다 줍니다. 사망의 고통을 당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보면 살리려고 하시고 참된 인간이 되게 하시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은 여러분은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이란 우리를 비평하는 것이 참된 이웃이 아닙니다. 참된 이웃은 대신 일해 주는 것이 참된 이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저의 설교를 듣고 계시는 저에게는 여러분이 참된 이웃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 짐을 나누어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수고했다. 잘 한다. 그렇게 살아라.”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이 온갖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때라도 예수님께 찾아가면 천부여 의지 없어 손들고 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그 모습 그대로 회개하면 주님께서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 절대로 버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 손 들고 주께 회개하고 나오면 주님이 구원하시고 그런 사람 천당에 반드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이웃이 되는 것이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강도를 만나서 모든 선한 행실을 빼앗기고 비난받고 공격하고 말이 아닙니다. 요사이 교회가 사회에 보여주는 모습은 아주 눈을 뜨고 볼 수가 업습니다. 교인들 앞에 교인들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보다 못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용서해야 되고 이웃을 도와줘야 되고 나누어야 되고 함께 잘 살아야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이때에 비난에 공격하지 말고 서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면서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 때려잡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 사람 붙잡아 살리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사회를 욕하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주는 것, 짐을 대신 져주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훌륭한 교회가 되려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말씀을 들어봐야 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도와주리라.” 짐이 있으면 예수님께 나와서 기도하면 여러분 예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두 사람, 세 사람 연합해서 나오면 주님이 그 두 세 사람의 연합기도를 주의 깊게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예수님은 필요한 것을 도와줄 뿐 아니라 이미 대신으로 다 이루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저를 도와주시는 이 일을 다 이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변명하지 말고 예수님께 가서 주님 앞에 엎드리고 기도하면 주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 앞에 손들고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처음 말을 잘하는 기도를 해야 될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한 가지 목적을 두었으면 그것을 계속 계속해도 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마음에 고통이 오면 “주님,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같이 해주십시오.” 한 가지 줄기를 부여잡고는 계속 그것을 첫 주장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를 할 줄 모르겠는데 기도 할 줄 알고 모르고가 아닙니다. 일단 여러분이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 도움을 주실 것을 계속해서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이 우리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야 돼요. 할 수만 있으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요. 그다음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활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희망을 갖고 절망을 내어 던져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고통당한 사람에게 가서 희망을 나누고 격려해주는 것이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꿈을 꾸어야 되지요. 꿈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첫걸음인 것입니다. 꿈을 꿔야 무엇을 얻을 수 있지 꿈도 꾸지 않고 안 된다고 하기만 하면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의 바탕에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서 꿈을 꾸고 소망을 가지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그 사람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면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걸 통해서 나의 모든 부정적인 것을 철폐하고 나의 죄를 그 피로 사하시고 그 보혈의 능력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그 꿈속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다 이루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가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떠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 십자가가 은혜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십자가는 여러분을 보시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여러분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바라보면 꿈을 꿀 수 있어요. 십자가를 떠나서는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마귀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고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한 것처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리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해서 죽을, 하나님이 뱀을 만들어서 광야에서 놓아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뱀에 물려서 죽어가면서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하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뱀을 만들어서 높이 들으라. 그 뱀을 보고 믿으면 산다.” 모세가 뱀을 만들어서 높이 들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바라보면 산다.”고 하니까 믿음으로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참 꿈이라는 것은 주님이 직접 주시기로 하시고 우리마음에 꿈을 그리게 기도하고 그 꿈을 바라보니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믿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말을 하면 힘이 있습니다. 그 말이. 창조적인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절대로 인생을 살면서 긍정적이고 꿈을 잃지 말고 꿈을 바라보고 희망을 얻고 희망찬 믿음의 선언을 하면 여러분 생활에 살아갈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셔서 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잘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강도 만나 도적이 하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도적은 우리가 대적해서 내가 물리쳐야 되고 예수님 십자가 바라보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기도하면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근원이 되어서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어 믿음으로 입술로 주장하면 없는 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비출 때, 항상 길이 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이 말씀할 때 빛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같은, 닮은 인생들이 우리가 꿈을 꾸고 희망을 갖고 믿음으로 선언하면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8.11.11. pm 15:14 (입력)
 
 


주여진 성도(여의도순복음동탄교회)

- 고난 통해 온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

첫 딸 하나님께 보내며 주님 영접오빠의 상처 보듬으며 온 가족 구원돌아보니 걸음마다 하나님 인도하심

 결혼 후 나는 시험관으로 어렵게 딸 아들 쌍둥이를 가졌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보니 첫째 딸이 피부가 생성되지 않는 심각한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기를 보며 나는 정신을 놓아버렸고, 병원과 조리원에서 매일 통곡하며 미친 사람처럼 다녔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위로를 했다. 알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기도하자. 하나님이 계신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반감은 더 커져갔다. 충격은 산후우울증으로 발전하여 나도 죽고 아기도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울증은 점점 심각해져 정말이지 같이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날, 갑자기 하혈을 해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때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지옥의 모습을 보게 됐다. 의식을 차린 후 시아버지의 지인인 교인 한 분이 “첫 아이는 곧 하늘나라로 갈 테니 마음으로라도 살인하지 말라”는 쪽지를 보냈다. 당시에는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는 하나님의 사인임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다 교회 목요찬양예배 현수막을 보았고, 나는 교회로 들어가 통곡하며 울부짖었다.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나라로 갔다.
 이후 우연히 여의도순복음동탄교회를 알게 되어 남편과 함께 교회를 섬기게 됐지만 점점 신앙은 식어갔고 교회와는 다시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 전역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된 오빠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년이 지나도 오빠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심해지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조차 만나기를 꺼렸다. 이러고 보니 부모님까지 피폐해져 친정 전체가 병들어갔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금요철야예배에도 참석했다. 어느 날 철야예배에서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던 중 뜨거운 성령이 임했다. 그동안 머리로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던 십자가의 복음이 온몸으로 믿어지고 모든 일들이 날 위해 예비하신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 그때부터는 내 문제가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보였다. 하도 크고 감사하여 기쁨이 충만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눈물로 회개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내 모든 생각이 바뀌고 영혼 깊숙이 평안함이 임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오빠 집 앞으로 가서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순종하고 당장 오빠를 찾아 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빠가 집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병세가 심해져 1년간 가족도 만나지 않던 오빠였다. 나는 달려가 그런 오빠를 꽉 안아주며 말했다.
 “오빠 미안해. 내가 그동안 오빠의 아픔을 모른척했어.”
 그렇게 용서를 구하고 교회에 나가 함께 기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령님의 온전한 도움으로 놀랍게도 오빠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금요철야예배에 함께 참석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남매가 온전한 믿음으로 서기를 바라셨던 거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제는 친정과 시댁이 모두 교회에 나가게 됐고 믿음 안에 서게 됐다. 게다가 앞으로 아이가 생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딸을 선물로 주셔서 위로해 주셨다. 할렐루야!

 이 모든 일들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절대 행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지금은, 교회에서 남편과 함께 찬양 봉사를 하며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씨 뿌리는 비유/ 조용기목사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는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 (마가복음 4장 3~8절)    
  

 오늘 저는 주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를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은 도시 사람들은 모르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농촌에 가면 씨를 뿌려야 농사를 짓지, 씨를 뿌리지 않고 농사짓지는 못합니다. 밭농사도 씨를 뿌려야 되고, 물 농사에도 씨를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씨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릴 때, 길가에 뿌리면 새가 와서 우리 먹이를 얻었다 즐거워 씨를 잘 주워 먹어버린다” 씨를 뿌릴 때는 밭을 만들어서 뿌리지 않고 길가에 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다음에 씨를 뿌릴 때, 돌밭에 뿌린답니다. 돌짝 밭에 씨를 뿌리면 열심히 뿌려 놓아도 뿌리가 밑에 튼튼히 내리고 그 씨가 물길을 받아서 자랄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하므로 열매를 맺지를 못합니다.

 그 다음엔 그 씨를 뿌리고 영양분을 충분히 거두도록 하지 아니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씨를 뿌려 놓으면 씨가 자랄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야 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데는 여러 가지 잡초가 나고 가시가 나면 그 씨는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면 앞에 수고한 것이 반드시 농부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밭은 긍정적인 생각이나 말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씨를 뿌려 놓고 난 다음에 안 된다. 못 한다. 열매 맺지 못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농사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농사에 성공하려면 씨를 뿌리고 난 다음에 가슴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꽉 들어차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씨가 싹이 나서 열매를 거두어 풍년이 되어서 좋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잡초를 다 제하고 가시를 제하고 꿈을 꿀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씨를 심어놓고 난 다음 씨가 열매를 잘 맺을 것을 꿈꾸는 보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현재에 없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해보는 것이 꿈꾸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보고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주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양분인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만 꿀 뿐 아니라 그 다음에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보는 것이 믿음인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속에 생각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도 “빛이 있으라.” 말을 명령합니다. 창조적인 선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이 잘 돼라. 행복해라. 건강해라.” 여러분, 우리에게 말이 성령 보혜사께서 받아 가지고서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창조적 선언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을 하면 얻은 것은 빨리 되고 다른 것은 늦게 되더라도 말을 통해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말할 때가 많습니다. 조금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럼 실제로 안 되고 말아요. 우리가 생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안 된 것을 되는 것으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 하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어주는 적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람도 ‘아브라함.’ 많은 조상, 자식의 조상이라. 사래를 사라로. 그 부인 사래를 ‘사라’. 여주인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름까지 바꾸어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의 대통령이 이름을 바꾸고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나도 그걸 본받아봐야 되겠다 싶어서 제일 처음에 제 이름을 조용기인데 조용기로 하지 않고 나를 다윗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David Cho라고. 다윗처럼 나라를 안정시키고 성공하는 이름을 David라고 붙여서 David Cho를 가는 곳 마다 내 이름이 용기 조가 아니고 David Cho로 했는데 아무래도 안 돼요. ‘David 이름을 바꾸어도 나는 안 되는구나.’ 그래서 한 번 바꾸기 시작하니까 자꾸 바꾸는 겁니다. 바울, 사도바울이 성공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었으므로 나도 바울로 바꿔야겠다. 그래서 Paul Cho로. 그러니까 우리 한국사람 아니고 외국에 들어가면서 구라파나 아프리카, 남미나 그런데 에서는 사람들은 내가 세 사람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찾으러 오면 "용기 조가 있느냐? David가 여기 있느냐? David Cho가 여기 있느냐?" David Cho도 별로 효과가 없어요. 그것은 자기 육체에 붙잡혀서 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이제는 용기 조 바른 이름으로 들어섰어요. 내 이제는 David Cho나 Paul Cho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저를 David Cho, 용기 조로 부르니까 모든 것이 잘 되어요. 내가 부를 때는 안 되던데. 여러분들도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성령님이 주시는 이름을 받아서 입으로 선언하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선언하는 것은 굉장한 권세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낼 때에도 마귀를 “이 나쁜 마귀. 더러운 마귀. 이 죽일 놈의 마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안 가면 물러갈 때까지 입으로 명령을 해야 돼요. 말을 거듭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말을 거듭하는 것은 기도에 힘을 보태어주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올지어다! 기쁨이 올지어다! 건강하라!” 그 이름을 그렇게 자꾸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굉장히 힘을 얻게 되어요. 30배, 60배, 100배 수확을 많이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부탁하고 긍정적인 창조적인 입술의 선언을 가지고 나갈 때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길거리에 씨앗을 심어서는 새들이 와서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반 불신앙의 생애 속에서 말을 청하며 마귀가 와서 다 벌레 먹듯이 먹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잘 밭에 심어서 수분을 얻지 못하고 양분을 얻지 못해서 그대로 다 말라서 죽어 버리고 생산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자갈밭, 가시밭에 씨가 뿌려지면 기운을 빼앗겨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옥토에 씨를 뿌려야 되는데 옥토를 가만히 있는데 옥토가 지지 않습니다.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옥토를 만들려면 길거리에서 떠나고 나와야 되고 자갈밭에서 떠나 나와야 되고 가시밭을 가시를 뽑아야 돼요. 그럼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옥토에 씨를 뿌리고 난 다음에는 긍정적인 생각,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언제나 마음에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옥토가 되지 않으면 농사가 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옥토를 만들고 난 다음에 정말 조용히 하나씩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국민들이 지금은 굉장히 꿈을 가질 때가 왔습니다. 그것은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꿈을 마음속에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된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입니다. 통일한국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진 것이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 것입니까? 그리고 정치가들은 사업가들처럼 일이 잘 될 것을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성공할 것을 꿈꿔야 돼요. 꿈을 꾸면 믿음이 생겨요. 꿈은 그 꿈을 꾸고 사는 사람 마음속에 믿음을 생산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산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굉장한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분께서 꿈과 믿음과 입술의 선언. 이것은 정말 잊지 말아야 됩니다. 꿈을 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믿음을 갖고 꿈을 꾸고 말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30배, 60배, 100배를 거둔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수확인 것입니다. 그것도 겨자씨만한 믿음도 그 수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수확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자본으로 가지고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흑인 학자가 있는데 여자입니다. 과학을 하면서 백인 사회에서 큰 고통을 당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루스벨트가 대통령일 때 백인들에게 굉장히 구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인사회에서 흑인 미국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을 꿈꾸었습니다. 자기가 학교를 졸업할 때 포켓에 있는 돈이 1달러 50센트 밖에, 1달러 50센트는 한 끼니도 못 먹습니다. 그러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꿈을 가지고 우리 흑인들도 잘 살 수 있다. 미국 흑인 시민들이 자연 백인 미국인들과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깊이 믿었습니다. 꿈꾸고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래서 그가 흑인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1달러 50센트 형편없는 돈을 가지고 꿈을 꾸었습니다. 흑인들 젊은이들이 교육받으러 나오는 것을 꿈을 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통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어서 미국 남부주에 있는 대학을 통해서 흑인 인재들이 많이 나왔고 흑인의 지위를 높여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 속에 꿈을 갖고 믿고 입술로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은 우리 삶을 창조하는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한 번 내 말을 따라해 주십시오.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나는 꿈을 믿는다. 내 입술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선언한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을 사용하면 정말로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승리를 가져오고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이 산을 변하여 저리로 옮겨가라. 산이 변해서 바다가 변해서 산이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겨자씨가 있고 다른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과 창조적인 선언을 합치면 굉장한 자본이 됩니다. 반드시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협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외로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이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태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 이름이 야훼라고 하는 자가 이 같이 말하노라. 네 입을 넓게 열라. 하나님이 채우리라.” 일 하시는 하나님,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위로해주고 여러분과 함께 하려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 믿는 것은 하나의 종교를 믿는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처럼 살게 되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믿고 말하고 동물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담의 타락한 인생길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어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 하나님처럼 변화되어 나오려고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셔서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밭에 씨앗으로 뿌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옥토가 되게 하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을 꾸고,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입술의 고백으로 많은 결실을 맺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적


진실과 화해를 통한 참된 용서

 1996년 9월 1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비쇼에서는 특별청문회가 열렸습니다. 4년 전 이곳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을 벌인 흑인들을 향해 군인들이 총을 쏴 50여 명이 사망한 대학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청문회였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백인들이 수백 년간 흑인들을 지배하며 차별한 나라였습니다. 식당 버스 화장실은 물론이고 공원 벤치와 구급차, 심지어 교회도 백인용과 흑인용이 따로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들을 백인 경찰과 군인이 마구잡이로 잡아 가두고 죽였습니다.

 1994년 마침내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백인에게 복수하길 원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위원회는 인종차별의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위원장은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주교였습니다. 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는 누구나 와서 지켜볼 수 있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생중계했습니다.

 청문회가 진행될수록 흑인들의 분노는 커져갔습니다. 이날은 비쇼 대학살 사건의 책임자였던 군인들이 증인으로 불려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증인들은 냉소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흑인들은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이런 청문회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차라리 우리가 직접 저 군인들을 처벌하겠다.’

 마지막으로 소베스버거 대령이 나왔습니다. 그는 군인다운 태도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도 차분히 진실을 밝혔습니다. 자신이 총을 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고 담담하게 인정했습니다. 방청객들은 곧 분노를 쏟아낼 기세였습니다. 그때 소베스버거 대령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는 함께 청문회에 나온 동료 장교들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평생 동안 비쇼 학살 사건의 책임을 어깨에 짊어졌습니다. 감히 잊어달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저희를 용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방청석이 일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제 동료들의 무거운 마음을 이해해주시고 다시 받아들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베스버거 대령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청문회장은 침묵에 빠졌습니다.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점점 커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분노한 표정이었던 방청객들의 얼굴에 감동과 경의가 가득했습니다. 투투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집시다. 우리는 지금 대단히 의미심장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모두 아실 겁니다. 용서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고 용서하는 일은 더더욱 힘듭니다.”

 투투 위원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내가 백인의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았으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백인들의 잘못을 너그럽게 봐주거나 눈을 감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서글픈 처지에 이르렀음을 한탄하며 함께 웁시다. 우리는 용서가 아니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값싼 고백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도 같은 처지였으리라!”

 투투 주교는 진실을 찾아내고 용서하고 용서하자고 호소했습니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 차별 받아온 흑인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백인들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히 고백하길 두려워했습니다. 투투 주교는 그럴 때마다 흑인과 백인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청문회 자체가 지옥과도 같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섬뜩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도 여전히 회개하고 달라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눈을 감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곳으로 따라 갑시다. 용서와 화해는 쉽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라는 주기도문을 함께 실천했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우리를 자유케 하는 영/조용기목사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크게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중략)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사도행전 16장 16~34절)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죄와 궁핍과 질병과 죽음 등 갖가지 삶의 문제로 인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그러한 문제들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고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믿지 않는 자들의 핍박

 바울은 전도여행중에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 하던 중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는데,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냄으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행 16:16~18) 여종은 바울과 실라가 예수의 영으로 가득 차 있으니 점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따라와서 ‘이 사람들이 누군지 아느냐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치며 여러 날을 괴롭혔습니다. 이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그 여종에게서 쫓아냈습니다.
 귀신이 쫓겨 나간 여종이 점을 칠 수 없게 되자 수익을 잃게 된 여종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의 관리와 상관에게 끌고 가 고발했습니다. 이에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고 매로 많이 친 후에 그 발을 차꼬에 채우고 깊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바울만 권세가 있는 게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이 권세를 주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그러므로 여러분도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2. 바울과 실라의 태도

 한 밤중에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차꼬가 풀어졌습니다. 간수는 죄수들이 다 달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큰 소리로 그의 행위를 막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했습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에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 16:28~31).
 여러분 힘들과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찬송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이들 중에 쉽게 낙심되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살이 문제의 해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성령 충만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고 긍정의 믿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십시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원하는 바를 긍정적인 마음의 터전에 그려야 합니다. 자기가 마음에 원하는 것을 그려놓고 늘 바라보십시오. 기도하면서 원하고 바라는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면 꿈이 이뤄지는 믿음이 생깁니다.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꿈꾸고 믿으면 입술에 창조적인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천지를 지으실 때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습니다. 

3. 하나님의 대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적인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면 창조적인 놀라운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보고 믿고 말함으로 창조적인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창조적인 말을 하십시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할 지어다.” 그러면 행복의 파도가 다가오고 행복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2)
 여러분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늘 함께 해주시는 것을 꿈에서 현실에서 느낍니다. 하나님은 잠에서도 깨워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점점 더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오셔서 말씀을 나누시고 깨우쳐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할 때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린 것처럼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 찬송을 하십시오. 그리고 소리 내어서 기도하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찬송을 하면 하나님께서 병을 치유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성경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고 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찬양하고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힌 그 이튿날 해방이 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 복음을 계속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주일 동안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여러분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따라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 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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