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희 권사(순복음강남교회)

- 내 인생을 바꾼 예수님 사랑

우연히 전도 받아 교회 출석
상담공부하고 봉사하며 새 세상 맛보고
가족 이웃들에게 감사의 전도
자녀도 주 안에서 믿음으로 형통

 나는 철저한 유교 가정에 시집와서 한학자인 아버님이 계시는 12대 종손의 맏며느리였다. 그런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랄 일이다.

 결혼 후 나는 공직생활을 하는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고, 서울에서는 남들처럼 평범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마음에는 언제나 종손의 아내라는 압박감이 있었다. 입시를 앞둔 시동생들을 서울에 올려 보내도록 재촉해서 한 사람씩 서울에 왔고, 나중에는 사촌 시동생까지 합쳐서 고등학생 세 명을 뒷바라지하여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그 사이 2년 터울의 남매가 태어났고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살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니까 맹목적으로 가족만 생각하며 산 셈이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의 심부름으로 여의도에 사는 지인 댁에 가던 날 우연히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 후로 내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예배와 성경말씀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 사랑을 모르고 살아온 게 속이 상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전도도 열심히 하고, 구역장과 지역장으로 섬기면서 예수님 사랑을 전했다. 또 찬양대와 율동부에도 들어가서 비록 중년의 나이지만 젊은이들처럼 춤추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렇게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주님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중에서도 아가페전화상담실 봉사는 벌써 28년째이다. 처음에 우리 교회가 하는 상담학교과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상담이 뭘까?’ 하는 호기심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공부가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시간이 흘러 전화상담 봉사를 시작했다. 마음과 육신이 힘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어느새 나라는 사람도 성장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이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봉사하는 모습을 본 아들도 철저히 순복음의 자녀로 자라났다. 고3인 아들이 찬양대 봉사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좀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책임져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그해에 15박 16일 선교여행까지 다녀왔다.

 아들은 고3 때 음대를 가고 싶어 했다. 음대 입시준비는 어릴 때부터 해야 하는 것이라 우리 부부는 음대 지원을 만류했다. 아들은 우리 조언을 받아들여 홍익대 전기과에 입학했다. 입학선물을 주려고 물었더니 아들은 전자키보드를 원했다. 교회 봉사를 하려고 하나 보다 싶어서 사주었다. 아들은 악기를 다루면서 음악에 더 깊이 빠져들었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 했다. 3학년으로 올라갈 때는 아들의 열정이 너무 대단해서 말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좋다. 서울대나 연세대에 가지 않으면 복학해야 한다. 그러면 재수를 허락하마.”

 아들은 약속을 하고 1년간 음대 준비를 했다. 결국 아들은 서울대와 연세대 음대에 동시 합격하더니 서울대를 선택했다.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야훼시라는 말씀을 우리는 비로소 체험했다.

 마지막으로 가족 전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에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다. 예수님 사랑으로 부모님을 섬겼다. 시부모님은 돌아가시기 전 주님을 영접하시고 장례도 기독교 예식에 따랐다. 이 일로 우리는 제사를 모두 추도예배로 바꿀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다. 그 사랑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꿔주셨다고, 그 사랑으로써 나는 지금 행복을 누리고 산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예수님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정리=복순희


소향 복음찬양 (하나님의 나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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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기 (o, x퀴즈 

 

 

 

1. 이야기는 모압 땅에서 시작합니다. O

 

2. 오미는 룻의 어머니입니다. X

 

3. 나오미는 두 명의 며누리가 있었습니다. O

 

4. 아비가일은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X (오르바와 룻)

 

5. 두명의 며느리들이 나오미와 함께 있기로 했습니다. X (1:14-15)

 

6. 오르바는 떠나서 아라비아로 가버렸습니다. X (1:4 - 모압)

 

7.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에 있는 나오미의 고향으로

    가기위해 마차를탔습니다. X

 

8. 보아스는 나오미으 옛날 남편이었습니다. X

 

9. 보아스는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아주 부자였습니다. O

 

10. 룻과 나오미는 양식과 돈이 없었습니다. O

 

11. 룻의 남편은 죽었습니다. O

 

12. 룻과 나오미가 유다에 도착했을때 보리를 심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X  

     (1:22 - 보리 추수 시작할 때)

 

13. 나오미의 남편은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O

 

14. 룻의 고향은 모압 이었습니다. O

 

15. 보아스는 룻의 남편의 친척이었습니다. O

 

16. 이삭줍기는 들에서 추수가 끝난 후에 남은 것을 모으는 것입니다.O

 

17.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의 추수한 곡식들의

     얼마를 남겨 두었습니다. O

 

18. 보아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의 추수한 곡식들의 얼마를

      남겨 두었습니다. 0

 

19. 보아스는 룻이 고향을 떠나와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잘 돌보아주는

      착한 여인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O

 

21. 보아스는 오르바와 결혼했습니다. X (4:10 - 룻과 결혼함)

 

21. 룻은 예수님의 조상이었습니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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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권·배희숙 집사(동대문성전) - 사업도 사역도 하나님 복으로 충만



사업 어려워지자 새벽예배 드리며 극복…영적 회복도
하나님의 ‘맞춤 축복’에 감사, 이웃 섬기며 복음 전도

 우리 부부는 동대문 상권에서 액세서리 사업을 한다. 하루 수백 명이 오가는 이곳은 우리의 일터이자 복음을 전하는 선교센터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나 고객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께 받은 은혜와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 결혼하면서 주님을 영접했다. 어릴 적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닌 아내는 교회학교 교사를 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진 나를 위해 아내는 교사를 그만두고 함께 성경교육과정에 등록해 성경학교 성경대학 성경대학원 등 전 과정을 이수했다.

 고된 일이 많아 휴일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아내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공부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다. 힘들어도 참고 공부해 매진하던 어느 날 나는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됐다. 그리고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일을 해야 하는 액세서리 사업은 힘들었다. 투자 금액도 수억 원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물질로 인해 시험에 들 때가 비일비재하다. 크리스천도 예외는 아니다. 영적으로 올바로 서 있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마귀의 계략에 쉽게 쓰러지고 만다.

 동대문 상권의 상인들은 야시장을 마친 새벽에 퇴근을 한다. 지친 몸과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식사를 하러 가거나 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 부부는 새벽기도를 드리러 성전으로 향했다. 그 시간이 우리에겐 영적 쉼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물질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당할 때 새벽예배는 우리에게 영적 회복의 길로 안내했다.

 2008년부터 인터넷 쇼핑몰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자 동대문과 남대문 상권은 큰 타격을 입어 오프라인으로만 사업을 하던 상인들의 매출은 급락했다. 우리 가게도 재정난에 시달렸다. 금전적으로 낭패를 겪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기도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고 곧바로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물질적으로 힘들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업장을 통해 물질의 복도 받고 이를 토대로 이웃에게 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일에 헌신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힘들어도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자 어렵던 사업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났으며 사업의 지혜도 얻게 됐다. 새벽 제단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도 우리 부부에게 신앙의 자양분이 됐다.

 나아가 우리는 사업 확장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매장 바로 옆이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지만 가진 돈이 많지 않았다. 작정하고 1년을 기도했는데 지난해 10월 매장 주인이 우리를 찾아와서 “혹시 우리 매장 사지 않을래요? 내가 시세보다 싸게 줄게요” 하고 제안했다. 놀랍게도 주인이 제시한 금액은 우리가 가진 돈과 정확히 일치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셨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셨으니 우리의 할 일은 축복의 통로가 돼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동대문상권은 3만 개의 매장이 있는 어마어마한 전도의 황금어장이다. 우리 부부는 만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 또 올해부터 동대문성전의 ‘사랑의행복나눔센터’ 센터장까지 맡게 돼 주일 아침 인근 지역의 독거 이웃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또 장애 성도를 위해 주일 차량봉사도 하고 있다. 우리의 것을 이웃과 나눌 때 우리 부부의 신앙은 계속 성장됐고 삶의 기쁨도 두 배로 커졌다.             

정리=오정선 기자


죄를 이길 수 있게 함/조용기 목사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일서 2장 1절)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 섬기시고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모진 고통 받으시고 보혈을 흘려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는데, 예수님이 이와 같이 고생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들을 만들어주는 장면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 중에 바리새인, 사두개인이 있는데 바리새인은 굉장히 율법주의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루 저녁에 집에 계신데  니고데모라고 하는 바리새인 지도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찾아왔냐?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의 지도자요, 예수님의 지도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바리새인들이 약해지니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자기는 바리새인이고 예수님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니 틀림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안 보냈으면 그러한 큰 표적을 행하실 수가 없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간단한 대답을 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일을 말을 해도 알 수 없다. 사람은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니 깜짝 놀랐습니다. 대답이 이 세상의 대답과는 너무나 틀리기 때문에, 니고데모는 “사람이 하늘에서 또 태어나야 된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또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중생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하는 것이지 실제로 인간의 육체 속에 잉태되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그러므로 내가 중생이라고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물과 성령으로 중생했다는 것은 바람과 같다. 바람같이 태어나서 이리 불고 저리 불고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니고데모가 바람과 같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역을 하시는 예수님을 말씀을 해도 알 턱이 없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바람과 같이 되어서 이리 불고 저리 불어 하늘나라 일을 가르치는데, 그런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람과 같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올 때 하나님께 반대하고 거역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하나님이 뱀을 보내서 그들을 물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때 회개한 사람들은 모세에게 와서 우리를 살려달라고 해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깐 ‘놋뱀을 만들어서 나무에 달아라. 쳐다보고 믿는 자는 나음을 얻을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죽을 것이다.’ 그러니 놀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빨리빨리 놋 뱀을 만들어서 나무에 달아 누구든지 이것을 믿으면 죽지 않고 산다고, 그러니까는 놋뱀을 만들어서 다니깐 죽지 않을 사람은 쳐다보고 믿음을 고백하니깐 살아났습니다. 뱀을 바라보고, 그 뱀의 역사가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서 없어지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에 따라 살아납니다. 그에 사람들이 자기의 뱀에 물린 부모, 처자를 데리고 그 뱀의 형상으로 나무에 달린 형상에 와서 쳐다보게 하니깐 쳐다보는 사람마다 뱀의 독에서 당장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뭐 뱀에 물린 사람이 하루, 이틀 만에 나은 게, 그게 나아버려요. 그게 인간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니고데모를 보고 말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4절~15절)’ 그래도 믿음으로 뱀을 쳐다볼 줄 알았는데, 니고데모는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에 경험한 사실을 말씀하니까는 그것을 믿는 모세는 하나님이 준 약속을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4차원입니다. 3차원은 입체적인 그 자체는 몰라요. 의미를. 그런데 그 나무에 달린 뱀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고, 예수님께서 뱀의 독, 타락한 아담과 하와의 독을 대신 짊어졌다는 것은 다 가르쳐 줬는데도 바리새인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고 난 다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유지하려면, 예수님 대신 나무에 달린 니고데모같은 사람들이 밑에서 의지하지 않고는 인간의 힘으론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주님을 믿고 바람과 같은 하나님이 오심과 같이 계심과 진리를 계시하심을 듣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실 때 귀를 기울여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깜깜이 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은 죄를 사함 받고 더러움에서 씻음을 받지만은, 또한 예수님이 보혜사가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같이 있으면서 도와주시는 분이 보혜사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가 오늘 우리 교회 안에 가득히 와 계십니다. 여러분 다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가시고, 아버지가 예수님 있는 자리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럼 성령으로 보혜사이기 때문에 간편하게 ‘성령 보혜사시여, 바람과 같은 ,불같은, 생수 같은 성령님 믿습니다.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과 깊이 같이 있으면 성령은 여러분에게 나타나서 하늘나라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데 가서는 이 이야기를 안 하겠지만 제가 우리 교회가 29년인가 전에 지은 교회 축하하기 위해서 제가 그날 집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가지고서 과로로 인하여 인지는 모르겠지만 졸도했습니다. 내가 깨어난 것은 세브란스 병원 신경외과에 깨어났습니다. 거기서 깨어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고 “내가 누군지 압니까?” 내가 잘 아는 의사 선생님이라 “의사 아닙니까? 내가 왜 병원에 여기 와서 선생님 보고 있습니까?”, “그러게 말이지요! 그러게 나도 왜 목사님이 여기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저희 처가 나타나고 자식들이 손자손녀들이 다 나타났는데, 다 아느냐고 물어요. 알고말고요. 나는 졸도 한 것을 모릅니다. 지금도 모릅니다. 그냥 기도했는데, 기도하는 중에 깜빡한 것이지요.

사도바울 선생이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할 때 지진이 일어나서 깜빡하면서 열쇠가 다 열리고 감옥 문이 열린 것처럼, 나는 인생의 감옥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평생에 주의 종으로서 일하면서 꿈과 환상 가운데 우리 예수님을 만나여 축복을 받고 힘과 용기를 얻어 예수님이 제게 ‘무엇을 보느냐’ 그래요. 보니 확~사막이에요. 사막에 사막, 사막에 사막, 중국의 고비사막은 말도 아니에요. 그 사막이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 그 사막에 사람들이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그렇게 애를 쓰면서 일을 하는데 손을 내밀어서 뜨거운 손을 가지고서 모래사장에 뭘 잡으면 한 2분 동안 자기 꿈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그 다음에 와르르 변해서 사라져 버려요. 2~3분 오래오래 동안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집, 명예, 권세, 돈, 청춘, 뭐 소원을 가지고 잡은 것은 2분 내지 3분 동안 실천돼요. 그 원하는 것을 손에 잡아요. 그럼과 동시에 사라져요. 잡았다 하는 동시에 사라져요. 그러면서 날보고 “너 원하는 것을 붙잡아 보아라. 그리고 소유해 보아라.” 그래서 나도 소유를 가지고 있으니깐, 내 소유를 가지고 모래를 잡으니깐 모든 것이 모래성이라 2, 3분 동안 깜짝 놀랐습니다. 내 손에서 그렇게 바라던 것이 다 이루어 진 것을 보고 “아 주님 다 이루어지네요.”

그러자마자 다 모래는 모래로 돌아가고 사라져 버려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우주에 내가 없이는 너희들의 인생이 모두 이 생활이다. 모래생활이다. 네가 나를 데리고 나와 함께 살면 현실적이지만은, 그 외에는 다 모래처럼 어리석게 살고 있다.” 그 짧은 묵시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그와 같은 환상을 보여준 것입니다. 꿈도 환상도 하나님의 진리와 연결되어서 보여주실 때는 참 깊은 감동을 통해서 봅니다. 그 환상을 보고 난 다음에, 이 세상에 사는 것이 그렇게 꿈같은 인생일 수가 없어요. 꿈은 꿈이에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중생해서 속사람이 살아야 돼요.

겉 사람으로 얼마 2~3분 세상을 누리려고 하면 큰일입니다. 하나님 성령 안에서 4차원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모시면 육 안에서 영혼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알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같이 하나님의 진리를 알면 희망이 있고 기쁘고 즐겁고,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으면 이 세상이 모래 인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뭐 주일날 교회 와서 꿈 이야기를 하고 있네.’

여러분, 이 세상에 꿈 아닌 꿈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꿈 다 이루어졌지요, 야곱의 꿈 다 이루어졌지요. 이사야의 꿈 다 이루어졌지요. 다 이루어지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으로써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저보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네가 무엇을 해도 모래성을 쌓는 것이다. 하늘나라 없는 곳에서 무엇을 해도 모래성을 쌓는다. 교회에서는 지위, 명예, 권세, 돈이 있다고 해도 모래성이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기 전에는 모래성을 쌓으니깐 이것을 알고서 나와서 내가 주는 남은 인생을 살아라.” 그러고 깨니깐 위에서 날 보고 명령을 통해서 “내가 누구지요? 내가 누구지요?” 내가 모래성이라고 하면 날보고 미쳤다고 하니까 자꾸 물어봐서 “의사 선생님이요.” 어떻게 아느냐고 해서 “어떻게 알아요? 눈 보고 알지.”, “누구요? 누구요?”, “의사 선생님이요.” 내가 만일 “모래성이요”하면 “이거 미쳤구나.” 그렇게 할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 따라가면 거듭나게 되어서 하나님이 성령에 주는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물질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만질 수가 없는 그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4차원이 왜 희한하냐면, 3차원까지는 물질적인 세계 아닙니까. 4차원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눈에 안 보이는 세계, 눈에 안 보이는 4차원의 세계, 영혼의 세계가 물질의 세계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입니다. 그 꿈과 환상이 3차원의 세계에 들어가 하늘나라 성령하고 같이 있으면 꼭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번개같이 사라지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번개같이 이루어지는 것도 하나님 4차원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하나님은 영원이고, 이 세상 눈 깜짝할 사이니깐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4차원의 세계 속에서 살고, 이 3차원의 세계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거듭나게 돼요. 차원이 달라집니다. 육체가 영혼이 되는 것처럼, 영혼이 4차원의 차원이 다른 영성을 가지게 돼요. 그 사람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령과 더불어 살고 하나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 꿈을 깊이 마음에 갖고 믿으면, 시인하면 이루어집니다. 깜빡할 사이에 이루어지고 사라지더라도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장 2절)’ 여러분 이 세상에 희망을 걸지 마십시오. 예수님 믿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여러분이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람 속에 거하시고, 물질 속에 거하시고, 그 안에서 여러분 입으로 시인하면 이루어지고, 이루어진 것을 조금 눈 깜빡할 사이에 누리고, 사라져 버리고,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이 육체가 아니라 영으로서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정말로 기가 막히게 긴 생활 삽니다. 그 생활은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품는 것이요, 또 꿈을 꾸는 것이요, 꿈을 꾸면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은, 꿈을 꾸면 이루어집니다. 꿈을 꿉니다. 꿈을 꾸고 기도하고 있으면 믿음이 됩니다. 믿음이 꿈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이루어진 믿음을 입으로 시인합니다. 창조적인 선언을 합니다. 그러면 완전히 이루어지지요. 우리 그 선언을 따라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적인 사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지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형상을 좇았고, 남자인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그러니깐 아담과 하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권세를 주어서 하늘 하에 있는 만물을 다스리게 하십니다. 죄만 짓지 않았으면 천사를 다스립니다.

하나님, 하나님 다음으로 천사를 다스려요. 그런데 하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어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지만, 이제는 중생해서 4차원의 영성을 얻어 옛 모습이 복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기름 부으시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주시고, 하나님의 권세를 성령께서 옷 입혀 주시면 여러분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 깜짝 놀랄만치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앞에서, 안에서 여러분은 위대한 인생을 살고, 즐기고, 마귀의 세계에 끌려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래서 성령을 항상 성령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그래서 성령이 같이 하시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인정하지 아니하면 역사하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오늘 설교하러 와서 여기 서서도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의지하고, 모시고, 설교하는데 여기에도 이 두 사람, 두 사람이 앉은 데 내 마음에는 두 사람이 와서 내 옆에 서 있어요. 보면 없어요. 안 보면 있고. 그러니 여러분도 그 성령님을, 같이 계시는 성령님을 믿고,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감사 찬송하고, 그리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달라고 기도하고 하나님과 같이 사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사니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보다 단계가 높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을 통해서 같이 살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주시지, 모래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시니까 오늘도 여러분이 사랑을 받고 치료를 받고 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아직 목숨을 내놓고 믿으면 하나님이 꼭 이루어주십니다. 아멘.


오가타 히데코 성도(순복음후쿠오카교회)

- 예수님이 온 몸을 고쳐주셨어요

무릎 통증 사라지고 손바닥은 다시 펴졌으며
어깨 탈골도 바로잡고 심지어 암까지 치유


 

나는 15년 전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사업을 하다 망했는데 보증을 서준 가족들이 나 때문에 큰 피해를 입어 마음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는 오로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열 번 이상 반복할 만큼 증세가 심각했다.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고 정말이지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가 다니던 정신병원의 의사가 순복음후쿠오카교회 성도였는데 내가 자꾸 자살을 시도하자 순복음후쿠오카교회로 나를 전도했고 지난해 6월 18일  교회에 등록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렇듯 나는 집에 사당도 만들어 놓고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다. 교회에 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의사의 전도로 교회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2년 전 무릎 뼈를 뚫고 철심을 박은 수술을 한 뒤로 무릎을 구부리지 못해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그날 예배를 드린 후 무릎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지팡이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걷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의사는 평생 무릎을 꿇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신유기도 시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교회에 온 첫날부터 이런 기적을 체험한 것이었다. 나는 기적을 보며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이심을 고백하며 그동안 숭배해 온 모든 우상들을 버렸다. 집안 곳곳의 우상숭배 도구들을 모아놓으니 세 보따리나 나왔다.

 교회에 나오기 전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자살을 시도할 때 식칼로 손을 여러 차례 찍는 바람에 동맥이 끊어져 많은 피를 흘렸다. 그 후 손바닥이 당겨 구부릴 수 없었는데 예배를 드리면서 이것도 치유되어 주먹을 쥘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 넘어져 어깨뼈가 탈골돼 오른팔을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이 또한 예배 시간에 치유를 받아 지금은 팔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나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 7개월 전부터 성경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성경필사를 한 결과 지금 노트 25권에 달하는 필사본이 생겼다. 가장 큰 은혜를 받은 말씀은 이사야 53장 5절 말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였다.

 성경을 읽으며 설교 말씀을 들으니 매주 은혜와 감사가 넘쳐났다. 최근에는 먹으면 자꾸 토하는 바람에 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했더니 악성 림프암이라고 했다. 위와 장에 모두 전이된 상태였다. 나는 낙심했다. 그러나 죽을 각오로 성경을 쓰며 기도했다. 김일 담임목사님께 매일 기도도 받았다. 어느 날 목사님이 내게 “춤을 추면서 찬양해 보세요”라고 하셨다. 나는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 춤추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2주가 흘렀을 때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암이 사라졌어요.”

 

예수님이 또 고쳐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여기 저기 아픈 곳도 많고 죽고만 싶던 내가 교회에 다니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내 삶은 활기로 가득 찼고 성경을 읽으면 새 힘이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며 전도하는 것이 가장 기쁘다. 이전엔 TV만 보던 내가 항상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고 쓰게 됐다. 주 안에 살아가는 것이 너무 기쁘다.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존귀히 여김을 받으라/이영훈목사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야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야훼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야훼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이사야 44장 1∼5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진짜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이제 북한의 문이 활짝 열어지면 북한에 복음이 들어가서 그곳에서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는 날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통일입니다. 복음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상적으로 70년 동안 나누어져 있던 나라가 하나 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가실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복음성가: 주님이여 이 손을>

(1절)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2절)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이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주님,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가시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의 손을 꼭 붙잡고 가셔서 속히 통일의 날이 다가오게 하여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길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 자녀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주님 은혜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사명 잘 감당하여,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 말씀>

오늘은 이사야 44장 1절로 5절의 말씀을 가지고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우리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를 내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 순간 나는 죄에서 해방되고,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한평생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 된 것을 감사하며 한평생 주의 뜻을 이뤄나가는 복된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특별히 선택된 자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깐 첫째로, 하나님 우리를 특별히 선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선택된 자라고 하는 말씀이 44장 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내가 너를 택하였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77억의 인구 가운데 크리스천이 25억입니다. 그러니깐 아직도 50억이 넘는 인구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 않고 죄와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우리가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의 일생은 절대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42장 8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기를 “너는 나의 종이다.” 나의 종.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이 하는 일은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택함 받은 자의 모습은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인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 인생이 복되고 그 인생에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를 하나님의 벗,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친구는 늘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가깝게 지내는 그러한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런 동반자의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벗이 되고 친구가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과 늘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멀어지면 친구가 아니에요. 친구는 늘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로서 하나님과 늘 교제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교제하고, 말씀을 통해서 교제하고, 찬양을 통해서 교제하고, 예배를 통해서 주님과 교제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사 복에 복을 더하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지으시고, 택하시고, 부르셔서 우리 일생 다하도록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이사야 44장 2절에 이와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 줄 야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이 우리를 만드셨는데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일생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예상치 않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염려, 걱정, 근심이 우리에게 엄습해올 때 주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기억해야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이렇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특별히 선택해주셔서 복 주고 복 주셨으니, “주님, 감사합니다! 나의 남은 여생 오직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기 원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드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세요.


2.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둘째로,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이사야 44장 3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것이 물입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목이 마르면 물을 먹으면 돼요. 물을 먹으면 그 순간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영혼의 목마름은 이 세상 것으로 그 목마름을 해결할 수가 없어요. 영혼의 목마름을 메꿔보려고 밤새 술을 마셔도 그 술이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침에 깨면 머리만 아프고 속만 안 좋고 더 공허감이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혼의 갈급함을 메워 보려고 마약에 빠지기도 하고,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 세상의 인기 명예를 얻기 위해서 그것으로 목마름을 해결해보려고 하지마는 영혼의 목마름은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영혼의 목마름은 주님이 주시는 생수, 성령의 생수가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에게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는데, 이 여인은 2000년 전에 얼마나 잘난 여인이었는지 다섯 번 남편을 갈아치우고 여섯 번째 사람하고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 영혼에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 마주치는게 싫어서 대낮에 물을 길으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을 만나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물동이를 내려놓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서 “내가 오늘 메시아, 그리스도를 만났다!”하고 모든 동네 사람들에게 선포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사막 같은 인생에 주님께서 생수의 강을 흘러가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데, 어디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는 광야 같은 인생에 길을 내주시고, 사막같이 모든 것이 메마르고 그 어디에도 마실 물을 찾기 어려운 그곳에 강물 줄기가 흘러나게 해주셔서 우리 영혼에 만족함을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 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야훼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어떠한 가뭄에도 메마르지 않는 물 댄 동산 같은 은혜를 너희에게 허락해주리라. 주여, 우리 마음이 늘 물 댄 동산이 되게 하여주셔서 우리 영혼이 메마르지 않게 하여주시고, 가뭄이 없게 하여주시고, 주님의 평안함이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다윗이 한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그의 일생을 회고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1절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안 계시면 그것은 헛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면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셔서 여러분의 일생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굽이굽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여러분의 갈 길을 이끌어주시며,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기쁨이, 주님의 평안함이 우리 삶 가운데 넘쳐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해서 광야 길을 40년 갔습니다. 광야 길은 참 힘든 길입니다. 낮엔 얼마나 더운지 보통 평균 40도 이상 웃돌고, 밤에는 추워서 모닥불을 피워야 되는 그러한 환경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야 길에서 불평을 많이 한 것을 우리가 이해해줘야 되요. 저는 캬! ‘이 사람들, 불평분자들이 정말 밤낮 불평만 하고 앉았고. 못돼 먹었다.’ 그랬는데, 제가 아프리카 케냐 투르카나 가가지고. 평균 온도 50도에요. 그래 그래서 그 투르카나 사막 길, 광야 길을 걸어가 보니까 ‘에효! 불평할 만도 하구나. 봐줘야 되겠다.’ 그래서 그들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광야 길에서 낮에는 시원한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따뜻한 불기둥으로, 그리고 아침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또 때에 따라 바위에서 물이 샘솟게 해주셔서 저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고, 놀라운 것은 40년 동안 옷이 닳아지지 아니하고, 신발이 닳아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신명기 8장 4절에,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분 삶 가운데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만나는 많은 분들이, 기업인들이, 또 작은 영업을 하는 분들이 와서 말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먹을 양식도 없다면 정말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다 있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이 없는 분이 있다면 우리가 도와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참고 견디면 이 어려움의 시기를 지나서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왜?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할렐루야!

인생의 가뭄이 다가올 때에 우리는 주님께 매달려서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됩니다. 경제적인 가뭄이 다가오지요. 육신의 질병이 다가와서 육신의 가뭄이 다가오지요. 믿었던 사람이 다 떠나서 인생의 관계의 가뭄이 다가오지요. 많은 문제가 다가오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시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의 은혜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엘 서 2장 28절에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구약 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성령을 부어주셨지마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모든 사람에게,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절을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렇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결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성령충만 받고 방언을 말하며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3,000명, 5,000명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 많고 어려움 많은 세상에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한 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을 받고 또 받고, 또 받고, 또 받고, 또 받아서 일생 동안 성령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자동차가 한 번 휘발유를 넣고 평생 가는 자동차가 없습니다. 며칠을 타고 나면 또 휘발유를 또 채워 넣고, 또 채워 넣고, 또 채워 넣고 하듯이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았지만 세상에 나가 살다보면 성령충만의 역사가 설설설설 내 마음속에서 소멸되어집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시 또 예배드리면서 재충만 받고, 또 재충만 받고, 재충만 받아서 주님 안에서 위대한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 목사님에게 성령충만이 일시적인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전에는 사자였던 사람이 이제 어린 양이 되었고, 술주정뱅이가 이제는 술을 끊고 누구에게라도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되었고, 바람둥이였던 사람이 이제는 ‘육신의 욕망으로 더럽혀진 옷’을 몹시 미워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근본적으로 삶의 모습을 바꾸는 것입니다. 늘 소리지르고 남 욕하고 싸우던 사람이 온순해지는 것입니다. ‘아멘!’을 잘 안 하시네요. 사람이 성품이 달라집니다.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러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설명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이 임하면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의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은혜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존귀한 자다.” 이와 같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모습을, 그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3. 존귀히 여김을 받는 자

셋째로, 존귀히 여김을 받는 자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이사야 44장 5절입니다.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야훼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야훼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예수를 믿고 나면 그 순간 우리의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로 바뀌게 되고, 비참하고 보잘것없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던 내가 주님 보시기에 아주 존귀한 자로 내 모습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과거의 상처 때문에 일그러진 자화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입을 열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야.” “나는 실패자야.”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칭찬받아 본 적이 없어. 늘 야단만 맞고 나는 패배자야.” 이런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그것은 예수를 믿기 전의 옛 사람이지, 예수님 믿고 난 다음 그 과거의 실패, 과거의 상처는 여러분과 이제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보시기에 아주 존귀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존귀히 여기시는지. 그래서 우리는 고백해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난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일생을 은혜 가운데로 인도해주십니다.”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히 낮아져 주님을 섬기면 주님이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이제는 복 받은 자로, 존귀히 여김을 받는 자로,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우리들의 변화된 신분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인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나의 일생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이다.” 믿음으로 선포하며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늘 주님 앞에 겸손의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면, 주님이 우리를 반드시 높여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주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높이시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을 보면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입니다. 그 당시 여러 기록들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들려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완전히 밑바닥 인생, 비참한 인생,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인생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일곱 귀신 들려서 미쳐 날뛰는 이 여인을 귀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다들 그녀만 나타나면 침을 뱉고 돌을 던지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는데, 그 버림받은 여인이 일곱 귀신에 들려 상처투성이로 허무한 인생을 살던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는 그 순간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 은혜 너무 감사해서 주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열심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예수님 붙잡혔을 때 도망갔는데 그리고 예수님 십자가 밑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감히 따라가지도 않고 멀리 숨어있었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 주님의 고난을 지켜보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자리에까지 간 사람은 성경에 보면 손가락 꼽아 몇 사람입니다. 남자 중에는 죄송하게도 사도 요한 한 사람밖에 없어요.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만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가시고 나서 그 무덤 곁을 지킨 이도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무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다른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그곳을 떠났을 때,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그 자리를 지키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가장 낮은 신분이었던, 그런 천한 모습이었던 그가 하나님 은혜로 이렇게 예수님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 만나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한 130여 년 되는데, 기독교가 들어와서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바로 조선 시대 500년 동안 내려오던 양반, 상놈 제도를 없앤 것입니다. 그전에는 태어나면 양반 집에 태어나지 않으면 상놈 집에 태어나는데, 상놈 집에 태어나면 평생 하인으로 살아야 되었습니다. 사람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 그래서 양반 상놈 제도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상놈 중에서도 가장 사람 취급받지 못하고 가장 밑바닥에 그 천한 인간으로 취급받던 것이 백정입니다. 백정. 백정은 가축을 도살하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사람 숫자에 헤아려지지도 않았고 이름도 없었어요. 백정은 늘 허리를 숙이고 다니면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처럼 사람들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던 이 백정이었는데, 예수님 믿고 변화되어서 한국의 최초의 의사가 된 박서양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장티푸스로 죽어갈 때, 한국에 와서 선교하던 에비슨 선교사가 아버지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이 아버지가 박성춘이라고 하는 이름을 받고 그 아들이 박서양인데, 이 박성춘, 이 아버지는 나중에 숭동교회의 장로님이 됩니다. 아들은 머리가 참 뛰어났던 것 같은데, 에비슨 선교사의 조수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서 세브란스 전신인 제중원에 제1회 졸업생이 되었고, 그다음 한국 최초의 의사 면허를 받은 의사가 되고, 또 의과 대학 교수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가 백정 의사라고 손가락질할 때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백정이다. 하지만 내 신분보다 기술을 보라. 내 속에 있는 500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우라."

그는 세브란스에서, 또 간호원 양성소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또 중앙학교, 오성학교, 휘문학교에서는 화학과 물리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후에는 고종 황제의 진료를 보기도 했습니다. 1917년 그는 의학 교수의 이 편안하고 좋은 직업을 내려놓고 간도, 저 만주 땅으로 올라가서 병원을 세워서 독립군을 후원하고, 1년에 만 명 넘는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하루에 한 300명씩 환자를 본 거예요.

그가 백정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고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찾아보니까 그가 죽은 지 68년 지나고 난 후에 2008년에야 대한민국에서 건국포장을 추서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이 사랑의 아름다운 흔적은 우리 한국 역사 가운데 길이길이 남는 귀한 사랑의 흔적이 된 것입니다.

가장 신분이 낮은 백정에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존귀히 쓰시는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 가지고 한평생 하나님 영광위해서 살았던 박서양 교수를 우리가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고 계신다. 할렐루야! 우리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존귀히 여김을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시고 여러분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여러분의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었다는 것을 믿고, 한평생 그와 같은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가장 비천한,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택하여 구원하여주시고, 이렇게 존귀한 자로 저희들을 세워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 이제 하나님 영광 위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로서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받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예수 보혈과 기도/조용기목사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브리서 10장 19~20절)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다 지으셨다고 하십니다.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지었습니다. 사람이 천지 만물의 사물에 이름을 부르는 대로 그것을 이름으로 삼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음을 받았고 하와는 아담을 닮아서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해서 살로 메꾸고 여자를 지었던 것입니다.


1. 죄로 인해 막힌 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지으셨는데 그들에게 주의시킨 것은 아담이나 하와가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왜 선악을 아는 것을 먹으면 죽느냐 하면 선악을 분별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평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을 ‘올바르게 했다’ ‘잘못하게 했다’ 하나님을 평론하고 시비를 걸고 그렇게 되므로 큰 고난을 당하고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마귀는 뱀의 모습을 통해서 나타나서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창조요 역사를 실패하게 하기 위하여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했습니다. 선악을 아는 선과 악을 아는 지혜요. 하나님처럼 될 터이니 먹으라고.

그래서 뱀의 꾐에 빠져서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아담이 선악과를 받아먹고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그 때문에 죽었습니다. 사람이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는데 영이 영원히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누구도 그들을 살릴 수가 없는 죄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우리들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서 아담과 하와의 유전을 따라 죄 중에서 태어나 죄 중에 살다가 죄 중에 죽습니다.


2. 길을 여신 예수님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그러므로 죄에서 벗어나려면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죄 중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셔서 오랜 계획을 세워서 죄를 벗어나도록 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사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짐승을 죽여서 그 피를 흘려 피 값으로 죄를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 값으로 사람의 죄를 청산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값을 청산하느라고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사야서 50장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사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기를 도모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을 것을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사람으로 살고 서른세 살 정도 되어서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지 않았으면 여러분과 저는 반드시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죽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이제는 죽지 않아도 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처럼 와서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을 대신해서 죽었고 사람을 대신해서 살아주셨고 이제는 사람을 대신해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또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 흘려서 이 세상에 사는 사람에게 다가올 고통을 면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피 능력으로 이 세상에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추한 죄를 씻으시고 의로움을 주시고 또 인간을 영적으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저주를 청산하시고 죽음을 청산하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오중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어떤 종교도 실상 사람을 도와주지 못했는데, 예수님은 이 땅에 있을 때 실천적으로 사람을 살렸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을 병을 고쳤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예수 그리스도는 실천적인 구원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의식이나 형식으로 구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실천적으로 우리를 돌보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불러서 그들에게 너희들은 각자 촌락으로 가서 용서해주는 일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신 권세를 통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고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는 실천적인 체험을 하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 날 여러분도 깨달으면 하나님이 이와 같은 권능을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또 귀신을 쫓아내야 됩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여러분이 병자를 고치고 치료를 시키는 기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저주를 제하고 사람들을 스트레스에서 건져내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점은 예수님이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오중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살리는 그것을 여러분 보게 될 때, 기독교 복음은 실천적인 것이고 말만 구주지 실제성이 없는 그런 구주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은 지극히 사랑하셔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걸머지고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짊어졌습니다. 피 흘림이 없는 즉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피를 흘려서 의로움을 값 주고 산 것이고 더러움을 제하여 주시고 그의 십자가의 고통 받은 대가로 심신을 낫게 해주시고 죽음과 부활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의 사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병이 나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매 주일마다 새로운 첫 주일에 성찬예식을 드리는데 그것이 살아 계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있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교훈인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와 살을 상징하는 떡을 가지고 예수님을 먹고 마시고 예수님화가 되는 체험을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그리스와 하나가 되는 체험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고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영혼과 같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3.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여러분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영혼이 살아서 하나님이 영혼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만리 장천 먼 곳 하늘 저 끝에 계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여러분 오늘 앉아계신 그 자리에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계시고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상징하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당장 나가려면 양을 잡아서 피를 뿌리고 불로 태우고 짐승을 대신 죽여서 피를 흘려서 인간에게 속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짐승들을 희생 제물로 하다가 청산하고,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 인간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흘리시고 몸이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었다가 사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음으로 우리는 참으로 감격적인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기를 원하면,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 주님이 당신(에게) 나타나 계십니다.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너는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에게는 손을 얹으면 낫는다. 귀신을 쫓아내고 실제적으로 능력이 되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돕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기독교회가 말만 하고 싸움은 교회에서 싸우라고 하면 싸움은 잘 싸우고 사랑은 하지 않고 기사와 이적은 말만 하고 교회가 참 하나님 앞에 실천적인 구원의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예수님을 실제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의의 증거를 얻고 성결한 삶을 믿음으로 얻어서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스트레스를 벗어나고 각종 병에서 고침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너는 저 병자를 만나거든 고쳐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병자. 서로 대결이 됩니다. 주님은 어디를 가든지 병을 고쳤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도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믿음으로 병자를 고쳐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기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저주에서 해방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인간의 힘의 노력으로 잘 살지 못하고 가난하고 헐벗고 그런 사람 주님께서 저주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 승리하고 축복을 받는 것을 주님께 감사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림으로 주님이 우리를 복 주실 것을 마음에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일조를 바쳐서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생각을 하는데 십일조라는 것은 주님과 약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바치고 주님은 그 십일조를 조건으로 해서 우리의 생활에 부요와 풍성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죽은 자도 죽어서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한다는 것을 믿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다 영원히 삽니다. 죽어서 낭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의) 지상강림을 기다려서, 그 때가 오면 모두 다 죽은 자가 살아서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당에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신앙이란 실제로 체험하고 우리가 체험하는 그 힘을 나누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예수님은 살아서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믿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주로 믿고 감사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집에서 기도하고 교회에서 기도하고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주님께 기도하면 여러분이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적으로 품에 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저보고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얼마 기도하지 않으면 말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기도는 여러분, 주님의 도움을 우리가 필요로 할 때,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나 하나님께 나갈 때,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를 막으려고 하는데 그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알아야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서 피를 흘려서 죄를 제하여 여러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앞에 나갈 길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은, 여기서 부산에 가는 경부선 철도가 있듯이 철도, 비행기, 자동차. 이 몇 편리한 자동차나 기차나 비행기를 사용하듯이 우리 기도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기도하고 난 다음, 다음에 기도할 것이 없으면 같은 말, 기도를 반복, 반복해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에 슬픔을 제하고 기쁨을 얻기를 원하면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슬픔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똑같은 기도를 하루 종일 해도 효과가 있습니다.

 기도는 말을 잘 한다고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타고 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악을 십자가에서 다 청산하고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 피가 우리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세월도 닦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이 청산한 피 흘림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지하면 영원한 은혜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 나갈 때 당당하게 나가십시오. 죄가 다 청산되고 의인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으니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하기 않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야 죄에서 해방되고 저주함에서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다는 것, 참 간단하게 기도를 하지만 그 은혜는 큰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 가슴속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입으로 시인한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마음에 믿고 그것을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필요한 것을 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하나님은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우리가 사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주님 보혈의 죄에서 여러분 샀지요. 병에서 여러분을 고쳤지요. 저주를 제쳤지요.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의 능력을 주셔서 오중복음은 우리가 어디 가든지 질머지고 가야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복음은 절대로 놓칠 수가 없습니다. 오중복음을 품고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필요한 은총을 꼭 얻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주님 앞에 나왔는데 마음에 스트레스를 제쳐버리고 평안을 얻게 되고 영육 간에 병든 것을 고침 받고 여러분 필요한 것을 기도로써 응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오늘 살아계신 예수님이 주신 은혜를 실제로 체험을 해보십시다. 저는 한참 젊을 때, 지금도 젊지만 성경에 보면 성경에는 창세기에 사람들이 120살, 180살, 800살 이렇게 살았는데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우리와 함께 120만 사십시다. 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 마음에 평안을 얻어야 되는데 우리 마음의 평안을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를 내가 하겠고 또 병을 가지고 있는데 심신의 병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 병을 제하고 삶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것을 청산하는 기도를 하십시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스트레스가 있고 고통이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일어서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잠든 자를 깨운다/조용기목사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서론

 ‘고난은 잠든 자를 깨운다’ 바로 나보고 하는 말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그 누구도 고통의 문제를 피하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생이 고난으로 가득하였습니까?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고통의 원인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장 17절)”고 그렇게 경고하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꾐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모든 인생이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 인류의 조상이 가시와 열매를 얻는 것을 먹음으로 인류는 고통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모든 인생이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던 사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죄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을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에 대한 관심을 그렇게 가지고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은 지혜와 총명을 갖게 되면 하나님과 시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다.” 하면 아담은 “안 좋습니다.” 하와가 “참 예쁘다.” 하나님은 “예쁘지 않다.” 이런 경쟁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두 쪽, 세 쪽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결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경쟁하며 우주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시려면 이담과 하와가 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아야 되는데 사탄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인생을 망치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의 미혹이 이 세상에 계속됩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은 이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사탄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죄를 통하여 사람들을 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정욕의 노예가 되어 이 세상에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은 이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죄를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본론

1. 고난의 원인

고난의 원인은 정욕에 따라서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을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욕이 인간을 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타락한 성격, 방종, 마치 돌로 떡으로 변한 것과 같은 방탕이 있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쾌락의 환경, 자기의 잘남을 천하에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자력이 못 미쳐도 재력을 취득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떠나 무신론을 주장하고 물질 만능주의를 주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에게 고난받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떠나 무신론을 주장하고 물질 만능주의를 주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난을 당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입니다. 기독교의 작가,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세상은 죄와 불신앙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귀먹은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고통의 메가톤을 불고 호통을 당하도록 허락해주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야 사람들은 돌이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야 돌이켜 회개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둘째가 달라는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가 아버지 재산을 먼 나라에 가서 방탕히 다 쓰고 돼지소굴로 들어가서 돼지 열매를 먹어도 없는 처지에 처해 고통으로 굶어 죽을 지경이 되니까 그는 회개했습니다. “내가 아들이라 일컬음 당하고 아버지에게 빈 손들고 가니 아버지께서 날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돌아왔는데 고난이 선생이었습니다. 고난을 당했음으로 이 사람이 회개할 수가 있던 것입니다.

전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 노인들이 이야기 할때 소 움막에 불이 나거나 집에 불이 나면 빨리 가서 그 밥그릇을 소의 밥그릇, 짐승의 밥그릇을 뒤엎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밥그릇을 바로 세워놓고 짐승이 따라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에 불이 나서 외양간의 소를 끌어내려고 하면 불빛을 무서워하는 소는 도무지 나오려고 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때 여물통을 엎어 버리면 고분고분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소도 자기 장래가 여물통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물통 뒤엎어버리면 굶어죽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물통을 따라가지요. 우리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사람들도 어려움을 당하면 어려움 당하는 그것을 따라서 나갑니다.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우리는 따라 나가지요. 먹을 것이 있는데 버린 사람 없습니다.


2. 새로운 인생

새로운 인생을 예수님을 믿으면 죽은 영이 살아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한복음 3장 5절~6절)”

중생한다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난 영혼을 성전 삼고 거하시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모신 사람이거니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 양은 내 말을 따른다. 양의 성격이 이상한 것입니다. 양은 자기 주인의 말은 듣고 따라가지만 주인이 아닌 사람이 양 앞에서 아무리 인도하려고 해도 양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변화되어 영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우리들은 새로운 인생, 즉 중생 거듭난 삶을 갖게 된 사람으로 영도 살고, 혼도 살고, 몸도 살아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을 따라서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장 1절~2절)” 유신론적인 삶을 주장하며 성령으로 중생하여 천국 진리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 고난의 유익

고난은 고난 당하는 사람을 깨우치게 됩니다. 인생의 수많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인생길을 따라 회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언 22장 15절)” 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자녀들이 잘못을 하면 종아리를 걷게 하고 회초리로 징계를 했습니다. 부모가 이렇게 자녀를 징계하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도 우리를 그의 친 자녀로 여기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은 징계의 유익을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브리서 12장10절~11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우리가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야훼께로 돌아가자 야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세아 6장:1절)” 이사야도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이사야 55장7절)”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를 당하는 것은 변화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회개를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잘못된 길을 가다가 고난을 만났을 때는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고 치료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밭에 대나무가 울창하다가 바람이 불어도 대나무는 좀처럼 꺾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대나무는 줄기에 대나무 둥지가 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 둥지가 대나무를 받치고 있기 때문에 대나무는 좀처럼 부러지지 않습니다. 또한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먼저 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그리고 나서 뜨거운 불에 넣어 굽습니다. 그러면 거친 그릇이 매끈하고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고난을 통할 때 더 아름다운 그릇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욥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장10절)”

대나무가 바람이 불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것은 중간에 마디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162층인데 이 빌딩도 30층마다 대나무의 마디 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넣었기 때문에 바람을 견딜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마디가 생기는 동안 성장을 멈춥니다. 겉보기에는 성장이 멈춘 것 같지만 실상은 마디를 속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생도 갖가지 장애물을 만나나 마치 성장이 멈춘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사업에 실패하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가 바로 인생의 마디가 생기는 시간이지, 버림받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인생의 마디가 많이 생길수록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는 “슬픔이 크면 클수록 슬픔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는 더욱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라도 창조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고 다시 한번 힘을 내어서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성도들의 삶에는 다 가슴 아픈 죄악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변화된 삶을 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십니다. 아멘.


김갑석 성도(용산대교구)

- 꼬리에 꼬리를 문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내 따라 교회 다니기 시작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원서 믿음 좋은 권사님 만나
여의도순복음교회 등록하고 파더스드림 참여
말씀안에서 ‘좋은 아빠’로 거듭나고 헌신 봉사

 나의 아내는 믿음의 가문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목사님이셨고 그 믿음의 유산이 아내에게까지 전해져 교회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던 나는 단지 가정의 불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갔다. 매주일 교회에 가긴 했지만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말씀이 시작되면 어찌나 졸리는지 시작과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깊은 잠에 빠져들고는 했다. 나는 사업을 하며 세상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토요일 새벽까지 술을 마신 후 다음날 교회에 나갔고 술 냄새가 나는 나에게 목사님이 손을 얹고 안수해 주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느니 차라리 교회에 안 나가겠다고 아내를 설득했으나 아내는 완고했다.
 “술을 마시고 언제 들어오든 상관 안 할 테니 무조건 예배는 드려요.”
 나는 6∼7년간 등록하지 않고 교회에 잠시 들러 낮잠 자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길에서 마주 오는 차와 정면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났다. 초보운전 승용차가 앞에서 돌진한 것이다. 이 사고로 우리 부부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인실이라 여러 환자들과 함께 있었다. 환자들 중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는 권사님 한 분이 계셨는데 우리 부부에게 어찌나 친절하시던지 곧 친해졌다.

 교회 새신자부에서 식사봉사를 한다는 권사님은 우리에게 등록하여 새신자교육을 받도록 권유하셨다. 우리 부부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교회에 등록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런 우연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신자교육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믿음은 생기지 않았으나 여전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과 이야기하던 중에 그도 우리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와 함께 파더스드림 프로그램에 등록하지 않겠어요?”
 나는 그의 권유로 20기 모임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이런 모임들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동기들이 나를 살뜰히 챙겨줄 뿐만 아니라 열정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가는 회장님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변화했다. 전에는 아들에게 “야! 임마” 하거나 “이 자식아” 했다면 이제 “아들∼” 하고 따뜻하게 부른다. 때로는 포옹도 해주며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눠주고 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아들도 어느새 아빠의 변화된 모습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파더스드림에서 팀장으로 봉사하면서 세상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제는 술 마시고 다른 사람 험담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 내 안의 옛 모습을 비우자 성령으로 충만한 새 부대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기도와 말씀 안에서 봉사하며 살아가야겠다.

정리=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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