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집사(마포2대교구)

- 내 주부습진에 동생까지 치유해주신 주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닌 것이 결혼 후에도 답답하면 절을 찾게 됐고, 무당을 통해 굿을 하게 됐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럼 또 다시 무당을 찾아 굿을 했기에 돈도 많이 버렸다. 또 외로움을 잊기 위해 친구 술 세상을 벗하며 지내다보니 결국 가진 재물을 다 잃고, 심한 주부습진으로 두 손은 갈라지고 벗겨져서 지문조차 사라졌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다. 이런 나를 안타깝게 여긴 여동생이 어느 날 교회에 가자고 했다. 나는 냉정하게 “너나 잘 믿어” 하고 핀잔을 주었다. 다음에는 마포2대교구 정옥수 권사님이 찾아오셨다. 손주를 등에 업고 매일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와서 “교회에 한 번만 가자”고 했다. 나는 또 “제 동생도 순복음교회 다니면서 저에게 전도를 하지만 전 절대로 교회 안 다녀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권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찾아와서 성경도 사다주시고,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어떻게든 하나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말이 많죠?” 하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토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우리 교회 한 번만 가자”고 했다. 결국 나는 못이기는 척 권사님을 따라 2009년 어느 날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후로 나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나 신앙이 깊지 않으니 1부 예배를 드리고는 등산을 했다. 등산을 가면 점심은 언제나 절에서 절밥으로 때웠다. 그런데 하루는 절밥에서 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먹지 못하고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술병만 봐도 헛구역질이 나와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 산에 가면 머릿속에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맴돌았다. 권사님이 나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셨으면 찬송이 떠오를까 생각했다.

 나는 2010년 7월 30일 침례를 받았다. 세상 자랑, 세상 욕심 다 버리자고 다짐했다. 그 후로는 예배마다 참석하고, 오산리 금식기도원에도 자주 갔다. 하루는 기도원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방언주세요” 하고 간구했더니 바로 그날부터 방언기도가 나왔다. 풀리지 않던 내 인생도 그때부터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또 양약으로도 한약으로도 고치기 어렵다던 주부습진이 손뼉을 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이에 매끄럽게 치료됐다.

 전에는 ‘하나님은 한 분인데 이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어떻게 하나하나 다 들어주실까” 했는데 때로는 음성으로 때로는 말씀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은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임을 확신했다.

 최근에는 남동생도 낫게 해주셨다. 남동생은 7년간 간암 수술을 네 번이나 받고, 지난해 겨울에는 수술이 어려운 부분에서 암이 발견되어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빈혈에다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까지 낮아서 나와 여동생은 매일 기도했다. 몇 달 전에는 남동생이 코피를 흘렸는데 멈추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동생 등을 두드리며 간절히 기도하자 코피가 멈췄다. 동생은 그제야 아침까지 편안하게 잠을 잤다. 일주일 후 또다시 코피가 쏟아져 다시 동생 등을 두드리며 간절히 기도했더니 코피가 멈추고, 빈혈 백혈구 혈소판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간절히 기도할 때마다 내 곁에서 모든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정리=오정선 기자


고난을 다스리는 믿음/조용기목사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마태복음 8장 23~27절)

서론

 ‘고난을 다스리는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고 난 다음 주님이 이제 제자들을 데리고 호수를 건너서 자기가 옛날 고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중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풍랑 위 바다에 띄워진 조그마한 배의 뒷머리에 주무시면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제자들은 곧장 물에 빠져 죽겠거든요.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서 깨웠습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파도야, 바람아, 잠잠하라.” 그러니 파도도 그렇게 큰 파도가 삭 없어져버렸어요. 바람이 삭 그쳐버렸어요. 놀랍고 굉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주 놀란 얼굴로 예수님을 쳐다보니 예수님께서 “왜 두려워했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작은 자들을 보고 꾸짖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살아가면 인생의 파도를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도 역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야지 우리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큰 고통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본론

1. 절대 믿음의 모범

예수님과 제자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한 과거의 마귀의 수단은 통과가 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로 24절에 보면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큰 놀입니다. 적은 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큰 놀이라 하면 한강같이 조용한 강물이 아닙니다. 태산을 뒤엎을만한 파도가 친 것입니다. 근데 거기에 조각배 하나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태워서 건너가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눈도 깜짝할 사이 없이 물에 빠져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조각배에 타고 그 놀을 겪으면서 주무십니다. 사람이 생각해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데, 감당하시고 거기에서 주무시니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의지하면 못 의지할 것이 없다. 할 수 있거든이 무엇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 참말인 것입니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놀과 같은 시련을 겪을 때, 적은 시련이나 큰 시련이나 예수님이 오시면 까딱없다고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랜 목회생활 동안에 하나님 앞에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 교훈이 뭐냐 하면, ‘귀신과 같이 살지 마라. 항상 귀신을 쫓아내라’ 사람들이 이 세상에 귀신이 와글거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귀신이 가는 곳마다 와글거린다는 것을 못 보니깐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귀신과 같이 살지 말라’고 나보고 ‘항상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수차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그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잠 잘 이부자리를 펴고 드러누워 귀신을 쫓아냅니다. “이 더러운 귀신아! 나하고 같이 잘 수 없다. 내 어느 곳을 괴롭히는 괴로움을 데리고 물러가라!” 그리고 어떤 때에는 밤중에 소변을 보고 싶고 몸이 괴로울 때, 그대로 자면 안 됩니다. “하나님, 몸이 괴롭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너 더러운 귀신아! 네가 나를 괴롭혀도 예수님이 계시므로 내가 너의 압박에 들어가지 않는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 다음 잠을 깨고 난 다음 새벽에 일어날 때, “이 귀신아 오늘은 새로운 날이다. 나하고 관계가 없다. 너희가 훼방을 할 수 없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러고 내 몸에 허약이 있고 괴로우면 주님께 기도하여 치료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들이 와글거리는데, 이걸 우리가 쫓아내지 않고 같이 살면, 우리의 생활에 귀신의 방해를 많이 받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나니’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마귀와 상관없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대적을 해야 피하지, 가만히 있는데 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삶에 풍랑이 일어날 때, 두려워하지 말고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도망치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보면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주님이 주시는 이 보증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풍랑이 불어 닥치는 상황에서 평안히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절대 믿음을 가져라’ 그냥 믿음이 아니라 ‘절대 믿음’을 가져라. 절대 믿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작은 자들아” 적은 믿음을 꾸짖었습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태산을 옮길 수가 있는데 그보다 더 작은 믿음을 가지고 꾸짖음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은 단순히 마음이 약한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의 문제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해도 하나님이 그 길을 완성하는 것이니깐, 아무리 능력을 다해서 하나님 없이 길을 계획해도, 하나님 없이는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집을 짓는데 도움을 주지 아니하시면 집 짓는 자가 헛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절대 신앙인 것입니다. 절대로 믿고, 절대로 맡긴다.

 인생이 위기를 만났을 때 절망하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8절에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피난처가 되신다는 겁니다. 시편 34편 18절로 19절에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신실하게 믿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바람처럼 생각하고 맙니다. 이제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 예수님께 절대 의지하고, 절대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맡기느냐.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 구원을 요청했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깨워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것을 깨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깨우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깨웁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세계의 교회를 흔들고 깨우는 것은 새벽기도, 철야기도 하는 교회가 세계를 다니면 열 손가락을 헤아려서 얼마 안 됩니다. 새벽기도 하는 것을 강조하면 놀랍니다. 왜? 새벽에 기도한다는 것은 그 시간이 잠이 제일 달콤하다고, 새벽기도를 할 수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고 금요일 날 철야기도도 말만 철야기도지 방문기도입니다. 교회 와서 한번 보고 그냥 집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자들이 놀에 흔들리면서도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을 본받아서 철야기도, 새벽기도 이 여러 가지 기도의 방법을 통해서 기도해서 예수님을 깨우시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주님이 우리가 시험을 당해서 낭패하게 만들어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고난을 다스리는 방법인 것입니다. 제일 마귀가 무서워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2.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

 그 다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에게 재앙을 주거나 환난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평안하게 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성령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축복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시험에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실패할까 두려워하고, 친구에게 상처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었다는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리는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움이 더 많아집니다. 생활에 시험이 들까, 일이 잘될까, 몸이 병들까, 이러한 두려움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자녀의 앞날 때문에 두렵고, 병에 걸리지 않을까 두렵고, 불안한 노후가 두렵습니다. 혹시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마음에 들어와서 억누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풍랑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풍랑이, 놀이 내려치는데 그 위에 조그만 조각배에 예수님이 주무시니깐, 예수님은 안 보이고 그 놀과 물결만 보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이 다스리는 삶을 살려면, 만사를 제쳐놓고 예수님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갈보리산 위의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려 계신데, 십자가를 보지 않고 갈보리 산만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 주를 믿는 사람도 문제가 다가오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문제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지 않고 문제를 바라보고 탄식을 하고 뒤로 물러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4절에 ‘내가 야훼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장 17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고, 기도하고, 이런 것이 합쳐져서 우리가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과 기도,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면 터널을 통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우리가 이 도로에서 저 도로 가는데 터널이 몇 개 있습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이 터널을 지나갈 때 겁을 내서 떠는 사람 있습니까? 핸들 잡고 덜덜덜덜~“아이고 이거 어쩌나” 그렇게 하는 운전수가 없습니다. 택시뿐만 아니라 자기 자가용을 끌고 갈 때도 차를 터널을 통해서 갈 때 안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터널에 들어가면 출구(입구)가 있으니 반드시 나가는 입구(출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긴 터널을 간다고 해도 들어갈 때 벌써 마음속에 출구가 보입니다. 그러므로 터널이 겁나지 않습니다.

 인생에 터널이 많이 다가옵니다. 우리 인생에 적은 터널, 큰 터널이 다가오는데, 겁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들어가는 데가 있으면 나오는 데가 있습니다.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못하게 나오는 길이 없는 인생의 터널은 없습니다. 들어가면 나갑니다. 주인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터널은 두려워 떠는 사람이 없는 것이 출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고난이란 터널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 없지만, 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내 말을 따라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모든 터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출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나도 출구가 있기 때문에 컴컴한 터널을 지금 지나가고 있어도, 얼마 안 있으면 출구가 나올겁니다. 여러분도 어려움을 당하면 출구를 바라보면서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이사야 43장 1절~2절)’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 멋있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3.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야훼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편 14절)’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 말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근데 이 말이 4차원의 영성으로서 말은 우리가 형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있는데 보질 못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권능이 큽니다. 왜?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있고, 지금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이 저희와 함께 있으니깐 우리가 말하는 것이 창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은 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 것도 말을 통해서 축복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줄 때 언제나 말부터 먼저 하신 것입니다. “동쪽을 보라. 서쪽을 보라. 남쪽을 보라. 북쪽을 보라. 네가 보이는 그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식들에게 주겠다.” 축복도 말로써 주셨지, 실제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주시되 시간이 지나매 그 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굉장한 언약의 은혜를 여러분 마음에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야훼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편 14절)’ 입의 말, 마음의 묵상, 이것이 이루어지길 원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축복을 주려거든 창조적인 말을 이웃에게 하십시오. 말이 이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이고 일이 잘 되겠네,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 잘된다.” 그 말은 축복이 그 말을 신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잘되게 하기 위해서 축복을 해야 되는데, 아들과 딸에게 되기를 원하는 말을 해야 될 것입니다. 이웃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면 ‘빛이 있으라’ 할 때 빛이 생긴 것처럼, 하나님의 은총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언 16장 24절)’라고 했습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언 20장 19절)’ 화도 말로 따라옵니다. 말을 통해서 축복이 가기도 하고, 말을 통해서 화가 따라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 많은 사람 친구 삼지 말라고 성경에 말하는 것입니다. 말을 조심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계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누가복음 6장 45절)’ 입을 손수건으로 닦는데 이거는 괜찮아요.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말이 축복을 싣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병자를 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이 나을지어다!”, “믿습니다.”하고 받아들이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왜 말이 무서우냐,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모세가 열두 지파의 열두 스파이를 가나안 땅에 미리 보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정탐을 하러 간 다음에, 열두 명을 보냈는데, 열 명이 아주 흉악한 보고를 했습니다. 그 말을 이스라엘 백성이 다 듣고 그 말에 동요를 해서 반항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가 계획한 일에 대해서 대항을 하고 반대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진노해서 그 사람들은 다 죽고 말았지만요. 거기 가나안 땅에 곧 들어갈 것을 그 사람들 말 잘못해가지고서 못 들어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했으면 그 말을 가지고 나가야 되지, 자꾸 변화를 시키거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불과 열 사람의 입에서 나온 불신앙의 말 때문에 열 명의 정탐꾼이 전한 부정적인 보고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퍼져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은 전염성이 높고 이처럼 무서운 파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을 말을 통해서 받은 사람은 욥입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식들 다 죽고, 곡식 거둔 것 다 빼앗기고, 몸은 병들고, 아주 불쌍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욥은 부정적인 말을 안 하고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신앙고백을 보면, 비록 자기가 지금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은, 하나님의 고통이 자기를 금 같은 사람이 되게 만든다고, 고통을 통해서 모든 찌꺼기가 불타버리고 순수한 순금이 되어 하나님께 나간다고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욥은 입에서 좋은 말만하고 원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장 10절)’ 이와 같이 욥이 말한 것입니다.

 불을 통과함으로서 찌꺼기가 불로써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 고단한 땅에 같이 계시는 하나님이 고난을 태우고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이익을 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고 능력을 행한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고난 속에서 건져주는 경험을 함으로 말미암아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서 힘있는 신앙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했는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제사가 감사로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하는 말은 하나님이 한없이 좋아하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언어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보십시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받으셔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한 수필가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인데, 한 곳은 천국이요, 한 곳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한 곳은 천국에 하나님의 거처가 있으면, 따로 이 땅에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그러니 여러분 감사한 성도들이 이 4부에만 해도 굉장히 많으신데, 거기 다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니깐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아끼지 않고 해야 될 것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서 3장 17절)’고 바울선생이 말하고 있는건데, 바울선생이 신약성경에 들어와서 제일 일도 많이 하고, 제일 감사를 많이 한 분입니다. 여러분도 일생에 감사를 많이 하십시오. 기억에 남는 축복이 감사를 따라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린도후서 1장 9절)’ 이것은 바울선생이 환난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깨달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밤이 있어야 낮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밤이 없으면 낮이 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병이 들어봐야 건강이 좋고 건강이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이 들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병이 있으면 건강이 있습니다. 천당이 있으면 지옥도 있고요.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는데 왜 고난이 다가오느냐고 묻습니다. 고난을 당해야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너희는 야훼를 만날 만한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이사야 55장 6절)’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멘.


성경 골든벨 문제-20

               

모세오경(, , , , ) 여호수아

      

21.다음은 누구에 관한 내용입니까? (1:1)  

"모세의 시종이기도 하고 눈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론 미리암 여호수아

 

22. 여호수아가 죽은 나이는?(24:29)  

4080120110 

      

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모두 몇 번을 돌았습니까?(6:15)  

7101324

      

24. 아간이 훔친 물건은 은과 금덩이와 또 무엇입니까?(7:21)  

황금으로 만든 금송아지 백향목으로 짠 금고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보리떡과 누룩 한 줌

     

25. 부지중 오살한 자(실수로 살인한 자)가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성읍을 무엇 이라고 하나요?(20 

아이성 여리고성 도피성 예루살렘

      

26.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한 장소이기도 하고 애굽에서

메고 나온 요셉의 뼈를 장사 지낸 곳은 어디인가요?(24:32)  

헤브론 시내산 길갈 세겜

      

27.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한 사건이 기록된 이스라엘의 노래 책은

무엇인가 요?(10:13)  

탈무드 출애굽기 모세오경 야살의 책

   

28.여호수아에 관한 내용이 아닌 것은 

그의 아버지는 ``이다.(1:1) 그의 본명은 `호세아`이다.(13:8,16)  

그는 레위 지파이다.(13:8,16) 모세의 시종이며 후계자이다.(1:1)

      

29. 일곱째 날 여리고성을 일곱 번을 돌기를 마친 후,

어떻게 해서 성이 무너졌습 니까? (6:20)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음으로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고 크게소리를 지름으로  

여호수아가 두 손을 번쩍 들어 기도를 할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앞서 싸울 때

      


30.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면`

어떻게 된다 고 경고하는가?(24:20)  

복을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화를 내리신다 분배받은 땅을 빼앗아 버린다 

다른 지파의 종이 되게 한다. 블레셋의 포로가 되게 한다 


 


주님은 내 편이시라/이영훈목사

내가 고통 중에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야훼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편 118편 5~9절)

 

오늘은 시편 118편 5절로 9절 말씀을 가지고, “주님은 내 편이시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큰 소리로 한 번 따라 해주세요. “주님은 내 편이시라” “주님은 내 편이시라” 오늘 이 말씀의 제목으로부터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내 편이시라” 이 세상 살아가면서 문제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고, 또 고통 가운데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다.”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잔병치레하면서 날마다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은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떻게 문제를 헤쳐 나아갈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밝히 그 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갑자기 내 몸이 약해지고 큰 병이 임했을 때, 큰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1. 부르짖는 신앙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부르짖는 신앙으로 무장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8편 5절입니다. “내가 고통 중에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안전한 자리에, 견고한 자리에 세워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 고난의 때에 우리가 깨어지고 낮아져서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만드는 훈련 과정인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겸손해집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더 큰 하나님의 일꾼으로 우리가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 탄식하고 원망, 불평하지 말고, “주님, 나를 도와주셔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여주시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세운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명령이 임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선포해라.”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적인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그러니까 요나 선지자는 ‘아니, 내가 왜 우리 원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까?’ 그래서 말씀에 불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고난의 풍랑이 일었습니다.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나서 온 배에 있는 사람이 다 위태롭게 된 것입니다. 때때로 나 하나의 잘못 때문에 온 집안이 풍랑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요나가 깨닫고 “저 때문에 이런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저를 바다에 던지십시오.” 그래서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까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큰 물고기가 딱 기다리고 있다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여러분,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다는 것은 죽음의 상태와도 같습니다. 사람의 위에 음식이 들어오면 위가 산을 내가지고 음식을 소화시켜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내려보내는데, 마찬가지로 이 물고기도 뭔가 큰 걸 털푸덕 받아먹었으니깐 이것을 소화시키려고 막 활동을 했을 것입니다. 위에서 분비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냄새나고 고통스럽고 힘든 그 물고기 배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요나는 부르짖었습니다. 캄캄한 물고기 배 속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요나서 2장 2절은 말씀합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부르짖었더니!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절망의 자리에서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중병에 걸려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의사가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 그때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질병에서 자유함을 받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를 명하여 육지에 토해놓게 했습니다. 육지에 토해놨는데 그곳이 바로 니느웨 성 앞입니다. 가서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온 백성이 다 회개하고 그들의 잘못을 돌이켰습니다.

 여러분, 고난은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더 자라게 하고 말씀에 더 순종하고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평상시 기도하지 않다가 어려움 당할 때는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늘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기도의 습관을 쌓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40편 1절, 2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구렁에서 끌어올리시고!” 할렐루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그 깊은 절망의 자리에 처했을 때 깊은 웅덩이에 빠짐 같은 그러한 상황에 있는 모습에 처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곳에서 우리를 건져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시편 111편 4절입니다. “내가 야훼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야훼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예레미야 33장 3절을 다 같이 고백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에 주님의 응답과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9절은 말씀합니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나를 구원하셨도다! 할렐루야!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의 평안함이 임합니다. 주님의 치료가 임합니다. 주님의 회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2. 우리 편이 되시는 하나님

 그런데 주님께서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우리에게 큰 위로와 평안을 허락해주십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편이라.” 할렐루야! 둘째로, 우리 편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118편 6절에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라!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라!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에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할렐루야! 시편 56편 4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위대한 선언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계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 바울은 선포한 것입니다. 시편 54편 4절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할렐루야! 대부분 환란이, 시험이, 고난이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참 강한 것 같고 과학이 발달하여 달나라에 로켓도 쏘아 올리고 온갖 무기를 만들어서 세상을 정복한다고 하지만, 말 한마디로 무너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누가 뭐라 그러더라 하면 그 말에 상처가 되어서 그냥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려앉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1980년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요. 공부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일 년에 집을 나가는 청소년들이 300만 명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의 ABC 방송에서 집 나가는 아이와 부모를 연결시켜주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제가 본 적이 있는데, 왜 집을 나갔느냐? 어느 날 부모 중에 한 사람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보기 싫으니까 저기 꺼져버려. 어떻게 너 같은 것이 태어나서 날 괴롭히느냐?”하고 부부가 싸움하다가 아이를 보고 소리친 것인데, 아이는 그 말에 그냥 마음에 탁 상처로 비수처럼 말이 꽂혀가지고 ‘난 잘못 태어난 인생이구나. 엄마 아빠가 날 쓸모없다고 그러고, 보기도 싫다고 그러고, 왜 너 같은 것이 태어났냐고 그러고. 나는 이 집에 있을 가치가 없다.’ 그래서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는 거예요.

 우리 어른들이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화가 났다고 내가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쏟아내면 그것이 아이에게, 상대방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너 같은 애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이런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날부터 ‘난 잘못 태어난 인간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말 때문에 상처를 입고 그 상처 난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고, 많은 문제 속에 살고 있는 그러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혹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과 다투고 싸우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온갖 악한 말로 나를 참소한다고 할지라도, 그 말 듣고 무너지지 말고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하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가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8편 7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로마서 12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난 다음, 감정이 폭발해서 다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의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해서 당장 쫓아가서 “너 그때 그런 말 했다면서.” 확인도 안 해보고 먼저 큰 소리가 나가지고 서로가 감정이 폭발하면 큰 싸움이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 사람들끼리 큰 소리 내고 싸우고, 싸우고 그러면 안 됩니다.

 부부 싸움 잘하는 사람 보면 끝까지 서로가 안 질라고 그러고, 그래서 자꾸 싸움이 커집니다. 한 말하면 두 말하고, 두 말하면 세 말하고, 세 말하면 네 말하고, 그래가지고 밤새 싸우고 있어요. 그래서 이긴들 이기는 게 아니에요. 이기고 나면 그 마음만 씁쓸하고 집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끼리 다툼이 생겼을 때에 져주는 게 낫습니다. 왜 억울하게 져줍니까? 져주시면 되요. 그럼 내 마음이 편안해요. 주님이 책임져주시니까. 주님이 그 사람을 또 야단쳐주실 것 아닙니까. 쪼금 억울한 것 같아도, 쪼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렇게 살면 인생이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손해 보며 살지요 뭐. 아, 유행가도 있잖아요. ‘바보처럼 살았군요.’ 좀 바보처럼 살자고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지적으로 좀 저능한 사람이래요. 늘 웃으니까. 허허허허허. 누가 욕을 해도. 허허허허.

 좀 그렇게 살면 안 될까요? 우리 인생이 왜 너무나 그렇게 따지고 이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고, 그래서 소리 지르고 내가 이겨야 되고, 내가 저 사람을 갖다가 밟아야 되고, 꼭 내가 승리해야 되냐 그 말입니다. 그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라. 내가 너의 마음을 알고 내가 너의 그 진실을 알기 때문에 내가 다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와서 여러분을 물고 뜯는다고 할지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말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전진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이 찬송가 88장인데 2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맘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도 주님 항상 같이 하여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 나를 지키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찬송가: 내 진정 사모하는>

내 맘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도 주님 항상 같이 하여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 나를 지키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아멘!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얼마나 감사해요.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할렐루야! 참 주님의 은혜 감사하지요.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하시고 돌보아주시는 우리 주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3.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우리가 환란에 처했을 때 피난처가 되십니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118편 8절과 9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고 어려움을 당하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권력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보세요, 시편 146편 3절에도,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권력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권력이 없습니다. 영원히 힘 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우리 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 모든 기도를 응답해주시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시편 118편 21절입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118편 23절에, “이는 야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할렐루야! 주님이 해결해주십니다. 주님이 해결해주십니다. 주님이 해결해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절대긍정의 믿음입니다. ‘주는 나와 함께하신다. 반드시 나는 이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한다. 반드시 주님께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를 건져주신다. 내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주여,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로부터 응답받고 상급 받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예배드릴 때 아멘은 했는데, 나오면서 시험에 들고 상처받고, 문제가 다가오면 흔들리고 절망의 자리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있으면 안 되고, 환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시험이 다가와도 억울한 일 당해도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 다 믿고 의지하고 맡기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에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넘치는 감사와 찬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18편 28절 29절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13편 1절로 2절, “할렐루야, 야훼의 종들아 찬양하라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야훼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 성경은 우리에게 찬양하라고,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했던 지난 7월 달에 태국에 있는 그 동굴에 갇혔던 13명 그 구조 소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사건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소년이 있는데, 한 소년의 이름이 바로 ‘아둔’입니다. 유일한 크리스천인데, 이 동굴의 길이가 얼마나 길고 먼지 약 4킬로미터 정도 되는 동굴인데, 물이 들어차가지고 중간 중간에 다 물이 차서 이 굴을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갇힌 지 열흘이 지나도록 아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잠수부원 하나가 그 긴 길을 굴속을 잠수하고 헤엄쳐 들어가서 가보니, 그들이 살아있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이 아둔 하나였습니다.

이 아이는 그 태국에 와서 부모님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었는데, 교회에 와서 그곳에 컴패션이라고 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신앙생활하고, 영어도 배우고, 미얀마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또 찬양을 잘하는 그러한 소년이었습니다. 이 소년이 유일한 크리스천인데, 이 소년이 이 굴에서 절망 가운데 ‘이제 우리 모두가 죽는구나’라고 할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 이 소문이 알려져서 전 세계에서 잠수부들이 한 백여 명의 전문가들이 오고 많은 구조대원들이 왔는데 구조대원 한 사람이 이 아이들을 구조하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그 세상을 떠난, 순직한 구조대원을 위해서 절에서 추도식을 갖게 되었는데, 본인은 크리스천이라고 교회 와서 추모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고립된 지 10일째가 되자 저희는 참을성을 잃어갔어요. 희망도 사라지고 기운도, 용기도 없어졌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저는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는 너무 어린 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시고 모든 것에 능하십니다. 지금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지켜주세요. 이 자리에 함께해주시고 저희 13명 모두를 도와주세요!”
코치 한 사람과 열두 명의 축구단인데, 열한 살부터 열여섯 살짜리의 어린 아이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동굴 속에서 열흘 넘게 굶주리면서 이제는 다 죽었다고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을 때, 이 아둔은 기도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했는데, 기도한지 얼마 안 되어서 저 컴컴한 어두운 곳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그가 영국인 잠수부원입니다. 구조대원이 와서 이 아둔과 영어로 대화를 해가지고 소식을 밖에 알리고 구조해내게 되었는데, 그는 간증했습니다. “구조대원이 우리를 구하러 왔을 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랐어요. 이것은 기적입니다!”
 할렐루야.
이 소식이 알려져서 미국 컴패션에서 이 아이가 자랄 때까지 모든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또 국적을 갖지 못했는데 태국 시민권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부르짖어 기도하면,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이 찾아오고, 문제가 찾아오고, 어려움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김남수 권사(금천대교구)

- 사고로 척추 다친 남편 하나님 도움으로 ‘완쾌’

휴일에도 원하던 의사의 집도로 수술 … 빠른 회복
‘좋은 교회’ 만난 덕분에 ‘가족구원’의 기쁨도

 지난해 12월 23일 새벽, 일찍 출근한 남편(이문재 집사)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주차장에서 후진하던 버스에 치여 넘어진 뒤 버스 아래에 허리가 눌렸다. 바퀴에 깔리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사고 후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하필 토요일이라 오후 2시가 넘도록 별다른 조치 없이 기다려야 했다.

 남편은 통증을 호소했고, 우리 가족은 기도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2009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경력이 있어서 가족들 마음은 더욱 초조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예전에 수술을 받은 병원으로 옮길 작정으로 검사한 서류들을 챙겨 병원을 나왔다.

 옮긴 병원에서도 처음에는 병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다급히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다. 고맙게도 병상이 났고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입원한 뒤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는 10년 전 남편을 수술한 선생님이 이번에도 맡아주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려워 보였다. 왜냐하면 이튿날은 주일인 데다 다음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벽에 게시된 의료진의 스케줄을 확인해 보니 우리가 바라는 교수님은 크리스마스인 월요일엔 휴무인지 일정이 없었다. 화요일은 진료 일정으로, 수요일은 수술 일정으로 바빴다.

 나는 아이들과 또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목사님과 함께 진통제를 맞고 누워 있는 남편 곁을 잠시 떠나 병원 내 예배실로 갔다. 우리는 간절하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채 기도했다. “하나님 남편이 수술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보고 계시죠? 다 아시죠?”

 그리고 이튿날 같은 예배실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뒤 병실을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을 수술하신 교수님이 나타나시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얼굴을 보자 우리는 고맙고 기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교수님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신 뒤로 10년 동안 남편은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을 만큼 수술 결과가 좋았으므로 교수님에 대한 우리 가족의 신뢰는 대단했다. 그런 교수님이 “오늘부터 금식하시고 내일 점심 때 쯤 수술합시다” 하고는 자리를 뜨셨다.

 크리스마스 휴일에 수술 일정이 잡힌 셈이었다. 그리고 수술 결과도 대만족이었다. 70세 고령이었음에도 남편의 회복속도는 매우 빨라서 11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척추를 다쳤지만 디스크수술 부위 위쪽이었고 다른 데는 상처가 없었다. 모든 게 참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긴박한 이틀이 기적처럼 지나간 뒤 우리 가족은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고 확신했다.

 32년 전 나는 우편함에 꽂혀 있던 ‘행복으로의 초대’를 보고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교회에서 뛰놀며 성장했고, 중학생 때 성령침례와 방언기도를 받았으나 그 후 잘 사용하지 않아 소멸됐다. 결혼 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와서 교회들을 전전했으나 무엇보다 기도가 갈급했던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행복으로의 초대를 통해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불러주신 셈이었다.

 나는 인생에서 크고 작은 일을 만날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1남 1녀)도 신앙 안에서 잘 자라서 믿음의 배우자를 만났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대를 이어 신앙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게다가 부모님과 형제들까지 부족한 나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 천국의 소망을 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니 모두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야곱의 축복            

//

 

 

 

 

 

 



'말씀과 찬양의방 > 복음송듣고 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 이 몸을   (0) 2018.10.13
요나의 기도   (0) 2018.10.07
사명자의 길   (0) 2018.08.28
그 사랑 얼마나   (0) 2018.08.21
찬란한 영광의 길  (0) 2018.08.03
아직 희망이 있다/조용기목사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장 46∼52절)

서론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다. 다른 데 목을 내밀고 찾지 말라. 네가 숨 쉬는 곳에 내가 있고, 네가 고함치는 소리에 내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니, 나를 너희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여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야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이 수렁에 빠지면 누가 건져주지 아니하면 수렁에서 절망하고, 절망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스트레스를 받아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려야 해요. 스트레스에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스트레스를 여러분께서 언제든지 다스리고 그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가 와서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절망함을 주어서 우리를 죽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막아주시고, 생명을 주되 영원한 생명을 우리 마음속에 주셔서, 스트레스를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1. 길 위의 인생

 오늘 말씀 가운데 보면 우리가 종종 보던 말인 것입니다. 한 가족이 있었는데, 아버지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스스로 사는데 힘이 들고, 아들은 거지였습니다. 그 옛날에는 거지가 길거리에 앉는 데에도 상좌와 하좌가 있어서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살기가 힘들었어요. 절망 일보 직전에서 목숨이 걸린 일인데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가 여리고 성의 밖에 그래도 제법 좋은 자리에 앉아서 구걸을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삶이 다른 사람의 동정을 받는 구걸을 통해서 인생을 사는 그가 좌절 일보 직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라고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성문 밖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사렛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에게 가면 전에는 걷지 못하던 사람도 벌떡벌떡 일어나 걷고, 말 못 하는 사람 말을 하고, 못 듣는 사람 듣고, 못 보는 사람 보게 해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일 처음에는 이야기로 들었으나 점점 이것이 진실하고 사실적인 것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그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탄식을 잘하고 울고 하던 사람이 웃고 희망이 찼습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의 병이 나았냐?” “오늘은 맹인이 나았다.” 매일 매일같이 병 나은 소식을 듣고 ‘나도 병이 나을 수 있다. 나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지만 예수를 만나면 내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절망 가운데서 희망의 불꽃을 태울 수가 있으니 예수님을 나는 만나야 되겠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가 돈 한 푼 달라고 손을 내밀고 간구하는 것보다도,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언제 한번 지나가느냐’ 그것을 기다렸습니다. 이는 맹인이니깐 눈이 안 보이니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오는지 안 지나오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을 곤두세워서 있는데, 하루는 사람들이 많이 여리고 성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다, 갔다 하네.”, “야 이 사람아 그것도 모르냐.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 “어? 예수가 지나가요? 아이고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다.” 그는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 말소리가 너무 마음을 진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 거 참 시끄럽다. 좀 조용히 해라.” 그러니 바디매오는 시끄러운 것이나 조용한 것이 상관 안 됩니다. 일생일대의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얼마나 크게 고함을 쳤던지, 여리고 성 입구가 쨍쨍 울렸습니다. 예수님이 가다가 말 걸음을 중지시키고 뒤돌아 바디매오를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에 좀 보십시오. 예수님이 바디매오 곁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찾아야 예수님이 응답한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쳐다보기 전에 바디매오를 돌보아 줄 수 있을 땐 그 바디매오 곁을 지나오면서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부르짖어야 예수님이 서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르짖는 것 흉보지 말아야 됩니다. 어떤 때는 체면불구하고 고함고함을 치고 하니, 점잖은 사람이 보기가 사납다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병 든 점잖은 체를 하겠습니까? 손가락질 받아도 사는 게 좋지, 점잖게 죽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점잖을 빼고 “예수님 오셔서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목숨을 다하여 고함을 쳤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서셔서, “내게 오라 하라” 그래 옆에 있는 사람이 “야, 너 오라고 한다. 팔자 폈다. 빨리 가라” 그러니 바디매오가 일어나서 제일 먼저 처리한 것은 돈 깡통입니다. 돈 있는 깡통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겉옷을 벗어서 내던집니다. 그때는 거지들이 옷 한 벌입니다. 단벌신사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일어나서 예수님께 가는데 일초라도 걸리적거리면 안 되기 때문 겉옷을 벗어서 던져버렸습니다. 그 겉옷은 그 몸을 가리는 예의를 차리게 하는 겉옷입니다. 겉옷은 추울 때 외투가 되고, 더울 때 햇볕을 가리어주는, 그에게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 옷을 낮에는 체면 차리게 하지만, 밤에는 덮어야 추움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 국가에서 옷을 전당 잡거들랑 해가 지기 전에 옷을 돌려주라고 그래요. 국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만큼 귀한 것이 겉옷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라는 소리를 듣자 겉옷이 체면차림이라고 팔을 꿰고 단추를 다 채우고 그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은, 양복 입을 때나 셔츠를 입을 때마다 성가셔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뒤를 돌려서 옷을 입자니 어깨가 아프고, 그 많은 단추를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옷이 비뚤어지면 또 옷을 벗어서 새로 입어야 되고, 우리 자매님들, 누님, 어머님들 이런 많은 단추 옷을 입지 않은 분은 체험을 해보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이 바디매오는 맹인 거지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마가복음 10장 46절에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우리 사람은 누구나 절망을 상속받은 인간들인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인간이 죄와 허물, 질병과 가난 그리고 죽음을, 절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인간의 삶이 저주 아래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바디매오는 그 일생에서 그 장님이 눈을 뜬다는 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좋은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그에게는 희망이 돋아 올랐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못 삽니다. 독에 쌀을 잔뜩 부어놓아도 그 가슴에 희망이 없으면 독에 있는 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살지, 세상 양식을 먹고 살지 않습니다. 바디매오는 동전을 구하고 살았지 희망은 들락날락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희망을 발견하고 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던 것입니다.


2. 아직 희망이 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예수님만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내게 부르짖으라. 노래와 같이 조용하게 하지 말고. 우리 성가대 노래 참 잘 부르잖아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노래하는 것을 기쁘게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라도 예수님만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120편 1절에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부르짖으니까 응답을 하셨더라. 점잖 빼지 마십시오. 남에게 시끄럽게 한다고 숨을 죽여서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부르짖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한국에 저하고 신현균 목사하고 감리교 대표들하고 여러 대표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기도를 했는데, 그때에 우리 소원은 기독교인이 백만 명만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되기 전에 천만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고함을 치고 기도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백만 명의 성도를 달라고 기도를 할 때는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쳐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원같은 곳에 통성으로 기도한다고 하니깐 기도원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고함을 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고 기도할 수 있는 이상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살아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해서 믿음을 얻느냐? 들어야 됩니다. 바디매오가 구걸을 하는데, 동전을 구걸하더라도 지나온 사람이 무심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셨고,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인들을 구원한다고. 그런데 바디매오는 이것이 복된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이 복음을 싣고 있는 이 말을 들었은즉 꼭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결심하면 있는 힘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날은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는 소문을 들었고, 또 어떤 날은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듣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놀라운 소문이 계속되던 어느 날, 바디매오는 자기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눈을 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바디매오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나도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떠야 되겠다’ 그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있는 그 길을 지나가실 것을 날마다 꿈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와 달리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기회가 오면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까운 일은 바디매오가 앞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꿈을 품고 있었던 바, 바디매오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사람들이 “잠잠하라. 너 장님 거지, 너를 알아줄 이가 없다.” 사람들이 꾸짖어도 바디매오는 더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여기 나를 불쌍히 보아 주옵소서!”

 꿈을 가진 사람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장애물이 다가와도 꿈이 있는 사람은 장애물 위에 올라타고 나오지, 장애물에 짓밟히지 않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걸음을 멈추신 예수님.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야, 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예수님이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바디매오를 부르고 기다려줍니다. 아멘.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서 야훼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편 18편 6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다 목소리가 컸습니다. 부르짖어서 하나님 귀에 목소리가 들리게 한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점잖을 빼고 기도를 한다고 하나님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을 하나님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시자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리고 예수께 뛰어 나갔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9절로 50절에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구태여 맹인이라고 말한 것은 옷이 그렇게 귀할 때입니다. 바디매오는 옷을 귀하게 귀하게 간수하면서 살아왔는데 그 옷을 뒤에 던져버리고 발에 거슬리니까 짓밟아 버리고 예수님을 찾아 나간 것입니다. 겉옷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습니다.

 유대 땅은 일교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밤이 되면 외투로 걸쳤던 겉옷을 이불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장 26절은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이게 하나님 말씀이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겉옷이 한 벌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옷을 돌려주어야 추위에 떨지 않기 때문에 옷을 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거지로 살아가는 바디매오에게는 겉옷은 전 재산이 다름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자 미련 없이 겉옷을 던져버렸습니다. 이것은 바디매오의 꿈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얼마나 믿음이 굳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죽기 살기로 믿는 것입니다. 고함을 치고, 뛰고, 구르고, “예수여! 나를 보아 주시옵소서!” 간구한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향해서 뛰어나올 때, 이때 응답 못 하면 이제 절망입니다. 이제 죽는 것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절대 신앙이 절대 불신앙이 되고, 절대 생명이 절대 파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앞을 보겠다는 간절한 꿈을 품고,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반드시 고쳐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뛰어 나간 것입니다. 바디매오처럼 복음을 들었을 때 믿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 교회 구역장님들은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전도를 했습니다. “의사는 못 고쳐도 예수님은 고칠 수 있습니다. 나랑 교회 갑시다!” 그렇게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와서 병이 낫고 치료함을 받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우리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에 하나님께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를 다 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중복음을 통하면 신약성경을 환하게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죄를 씻어주시는 예수님, 의로움을 주시는 예수님,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시는 예수님, 죽음에서 살려주시는 부활의 예수님, 이 예수님을 성경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예수를 알고 나면 그 예수를 통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차원의 영성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바람과 같은 세계가 있습니다. 삼차원의 세계까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차원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사차원은 바람인데, 바람과 같은 성령인데 그려보십시오. 못 그리거든요. 못 그리기 때문에 마음에 뜨거운 믿음으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순복음을 알고, 사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꿈꾸고 믿고, 그 다음에는 명령 내리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하면 빛이 있는 것 같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꿈꾸고 믿고, 그 다음에는 고함치는 것입니다. “생명아 돋아라. 곡식아 잘 되어라. 아들, 딸 건강하라.” 입술로 축복하는 것 굉장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로 스스로 축복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3. 예수님만이 희망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한복음 10장 9절)” 예수님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인데,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면 들어가고, 나오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니 귀신은 도둑입니다. 내가 우스운 것은 요사이 나에게 자꾸 연락이 오고 핸드폰에 문자가 더러 오는 것은, ‘조목사님, 1936년 2월 14일에 태어난 것 아는데, 몇 시에 태어났습니까?’ 날짜를 대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귀신같은 소리 하지 마라. 날짜 같은 거 뭐가 필요가 있냐?” 그러면 그래도 날짜가 들어가야 내 팔자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날짜가 들어가야 내 팔자를 알 수 있다면, 내 팔자가 일어나서 날짜를 올라 맞추는 듯 하면 될 것이지 왜 자꾸 묻느냐고 묻지 말라고. 내가 예배 마치고 핸드폰을 보면 오늘도 올라와 있을 것입니다. 날짜 알려달라고. 희한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 희한합니다. 날짜가 무슨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예수님만이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좌절과 절망에 처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영원한 용서가 있고, 영원한 의로움이 있고, 영원한 치료가 있고, 영원한 축복이 있고, 영원한 부활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으면 절망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좌절감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언제나 희망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절망적인 말을 우리에게 하는 것은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그 일을 하도록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면, 의와 정결함과 치료와 아브라함의 복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말씀으로 성령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저주받게 하고, 말씀으로 축복받게 하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우리가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이므로, 입술의 말로 서로 칭찬하고 서로 축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은 쌀독의 쌀이 떨어져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속의 꿈이 떨어져 가면 죽습니다. 내 가슴 속에 꿈이 떨어지면 그건 죽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꿈을 붙잡고 있을 수 있나요? 예수님 십자가. 예수님 십자가를 끌어안고 있으면 꿈은 우리와 같이 있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생활은 귀한 생활인 것입니다. 꿈을 품고 사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나이가 95인데 인터넷에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해서 인정을 받았고, 65세 때 당당하게 은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95세 생일을 맞던 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릅니다. 은퇴 이후 ‘이제 다 살았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기다림이 30년이라는 세월을 허송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살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람, 희한한 사람이지요. 95세 생일도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이끌었고, 갈렙은 85세에 꿈을 품고 헤브론을 정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어떤 환경에서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52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매오가 예수님 곁에 왔을 때 예수님께서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 보기를 원합니다.”, “네 눈이 열려서 볼지어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번쩍 뜨여서 사물을 보게 될 때, 여리고 성 문 밖에 아주 좋은 자리가 있는 것을 도로 돌아갔느냐?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았은즉,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길 위에 앉아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바디매오는, 이제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바디매오처럼 그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에게 절망이란 없습니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오,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고, 꿈과 희망을 품고 새롭게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맹인 바디매오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갖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청산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도인순 집사(종로중구대교구)

- 고난의 길을 지나 축복의 땅으로

우리 교회로 불러 기도하게 하시고
사업의 난관 겪으며 더 매달리게 하신 뒤
고비마다 지혜 주시고 길 열어주셔서
헌 집 버리고 새 집 얻게 하셨네


 나는 24년 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한 지역장을 통해 우리 교회에 인도를 받았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전에도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에 치우쳐 살다가 2014년 권사님이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본격적으로 믿음생활을 시작했다.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구역예배도 드리고, 십일조를 시작하고, 성경통독도 하면서 신앙이 깊어졌다.  

 2016년 11월 나는 방언을 받고 싶었다. “주님 방언을 허락해주세요. 방언으로 기도하며 주님과 더 깊이 교제하고 싶어요.” 그렇게 기도하며 방언을 사모했다. 구역예배 통성기도 시간에 방언기도가 안 나온다고 안타까워하자 구역장님은 자신이 방언을 받게 된 이야기를 해주면서 함께 기도해주었다. 나는 방언을 받을 때까지 기도해보자는 작정으로 매일 아침과 저녁 1시간씩 기도를 했다. 그렇게 기도한 지 이틀이 지났을 때 갑자기 나도 모르게 혀가 움직이면서 방언이 나왔다. 그 뒤로는 기도시간이 그렇게 즐겁고 신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충만한 은혜 속에 살면서도 사업은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거래처에서 결제를 자꾸 미루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내가 받았다. 한 달 두 달 기간이 길어지자 직원들의 월급은 물론 사무실 월세, 가정의 생활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살던 아파트의 보증금을 빼서 월세로 돌리고 여기저기 돌려 막기를 하면서 버텼다. 6∼7개월 동안 계속 거래처에서 결제 대금을 받지 못하자 나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살던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임대아파트를 신청했는데 그것마저 떨어졌다. 캄캄하고 막막했다. 어디를 봐도 길은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기도하면서 겨우 견뎌냈다. 그야말로 바닥에서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아시고 임대아파트조차 허락하지 않으신 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내 입가에는 한 곡의 찬양이 맴돌았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 시각, 나는 저녁마다 겟세마네기도회에 가서 성령의 도우심을 느끼며 눈물로 기도했다. 겟세마네기도회를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났을 무렵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파트에 당첨되도록 해주셨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계약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나는 낙심하지 않고 더 힘을 내어 기도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은 겟세마네 동산 위에 십자가 세 개가 서있고 저녁놀이 지는 산 위에 무지개가 걸린 환상을 보여주셨다. 다음날에는 처음에 본 것보다 더 큰 무지개를 보았다.

 또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나는 거래처 담당자에게 나의 형편을 조목조목 적어서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다음날 밀린 결제대금 전액이 입금됐다. 만약 그때 입금이 안 됐으면 나는 아파트를 포기해야 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 돈으로 계약금과 잔금을 모두 치렀고, 우리 가족은 더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예상을 뛰어넘어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다. 나는 그런 주님을 체험하면서 믿음이 더 깊어졌다. 주일 예배시간에 나는 담대히 고백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여 40년간 광야를 헤매다 죽었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는데, 불쌍한 나를 구원해주시고 만나주셨으니 이보다 큰 복이 어디 있을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주님은 내 편이시라/이영훈목사

내가 고통 중에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야훼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편 118편 5~9절)

 오늘은 시편 118편 5절로 9절 말씀을 가지고, “주님은 내 편이시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큰 소리로 한 번 따라 해주세요. “주님은 내 편이시라” “주님은 내 편이시라” 오늘 이 말씀의 제목으로부터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내 편이시라” 이 세상 살아가면서 문제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고, 또 고통 가운데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다.”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잔병치레하면서 날마다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은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떻게 문제를 헤쳐 나아갈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밝히 그 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갑자기 내 몸이 약해지고 큰 병이 임했을 때, 큰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1. 부르짖는 신앙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부르짖는 신앙으로 무장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8편 5절입니다. “내가 고통 중에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안전한 자리에, 견고한 자리에 세워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 고난의 때에 우리가 깨어지고 낮아져서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만드는 훈련 과정인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겸손해집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더 큰 하나님의 일꾼으로 우리가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 탄식하고 원망, 불평하지 말고, “주님, 나를 도와주셔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여주시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세운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명령이 임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선포해라.”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적인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그러니까 요나 선지자는 ‘아니, 내가 왜 우리 원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까?’ 그래서 말씀에 불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고난의 풍랑이 일었습니다.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나서 온 배에 있는 사람이 다 위태롭게 된 것입니다. 때때로 나 하나의 잘못 때문에 온 집안이 풍랑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요나가 깨닫고 “저 때문에 이런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저를 바다에 던지십시오.” 그래서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까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큰 물고기가 딱 기다리고 있다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여러분,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다는 것은 죽음의 상태와도 같습니다. 사람의 위에 음식이 들어오면 위가 산을 내가지고 음식을 소화시켜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내려보내는데, 마찬가지로 이 물고기도 뭔가 큰 걸 털푸덕 받아먹었으니깐 이것을 소화시키려고 막 활동을 했을 것입니다. 위에서 분비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냄새나고 고통스럽고 힘든 그 물고기 배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요나는 부르짖었습니다. 캄캄한 물고기 배 속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요나서 2장 2절은 말씀합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부르짖었더니!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절망의 자리에서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중병에 걸려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의사가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 그때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질병에서 자유함을 받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를 명하여 육지에 토해놓게 했습니다. 육지에 토해놨는데 그곳이 바로 니느웨 성 앞입니다. 가서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온 백성이 다 회개하고 그들의 잘못을 돌이켰습니다.

 여러분, 고난은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더 자라게 하고 말씀에 더 순종하고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평상시 기도하지 않다가 어려움 당할 때는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늘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기도의 습관을 쌓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40편 1절, 2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구렁에서 끌어올리시고!” 할렐루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그 깊은 절망의 자리에 처했을 때 깊은 웅덩이에 빠짐 같은 그러한 상황에 있는 모습에 처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곳에서 우리를 건져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시편 111편 4절입니다. “내가 야훼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야훼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예레미야 33장 3절을 다 같이 고백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에 주님의 응답과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9절은 말씀합니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나를 구원하셨도다! 할렐루야!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의 평안함이 임합니다. 주님의 치료가 임합니다. 주님의 회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2. 우리 편이 되시는 하나님

 그런데 주님께서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우리에게 큰 위로와 평안을 허락해주십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편이라.” 할렐루야! 둘째로, 우리 편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118편 6절에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라!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라!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에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할렐루야! 시편 56편 4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위대한 선언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계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 바울은 선포한 것입니다. 시편 54편 4절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할렐루야! 대부분 환란이, 시험이, 고난이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참 강한 것 같고 과학이 발달하여 달나라에 로켓도 쏘아 올리고 온갖 무기를 만들어서 세상을 정복한다고 하지만, 말 한마디로 무너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누가 뭐라 그러더라 하면 그 말에 상처가 되어서 그냥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려앉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1980년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요. 공부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일 년에 집을 나가는 청소년들이 300만 명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의 ABC 방송에서 집 나가는 아이와 부모를 연결시켜주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제가 본 적이 있는데, 왜 집을 나갔느냐? 어느 날 부모 중에 한 사람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보기 싫으니까 저기 꺼져버려. 어떻게 너 같은 것이 태어나서 날 괴롭히느냐?”하고 부부가 싸움하다가 아이를 보고 소리친 것인데, 아이는 그 말에 그냥 마음에 탁 상처로 비수처럼 말이 꽂혀가지고 ‘난 잘못 태어난 인생이구나. 엄마 아빠가 날 쓸모없다고 그러고, 보기도 싫다고 그러고, 왜 너 같은 것이 태어났냐고 그러고. 나는 이 집에 있을 가치가 없다.’ 그래서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는 거예요.

 우리 어른들이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화가 났다고 내가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쏟아내면 그것이 아이에게, 상대방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너 같은 애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이런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날부터 ‘난 잘못 태어난 인간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말 때문에 상처를 입고 그 상처 난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고, 많은 문제 속에 살고 있는 그러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혹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과 다투고 싸우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온갖 악한 말로 나를 참소한다고 할지라도, 그 말 듣고 무너지지 말고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하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가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8편 7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로마서 12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난 다음, 감정이 폭발해서 다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의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해서 당장 쫓아가서 “너 그때 그런 말 했다면서.” 확인도 안 해보고 먼저 큰 소리가 나가지고 서로가 감정이 폭발하면 큰 싸움이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 사람들끼리 큰 소리 내고 싸우고, 싸우고 그러면 안 됩니다.

 부부 싸움 잘하는 사람 보면 끝까지 서로가 안 질라고 그러고, 그래서 자꾸 싸움이 커집니다. 한 말하면 두 말하고, 두 말하면 세 말하고, 세 말하면 네 말하고, 그래가지고 밤새 싸우고 있어요. 그래서 이긴들 이기는 게 아니에요. 이기고 나면 그 마음만 씁쓸하고 집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끼리 다툼이 생겼을 때에 져주는 게 낫습니다. 왜 억울하게 져줍니까? 져주시면 되요. 그럼 내 마음이 편안해요. 주님이 책임져주시니까. 주님이 그 사람을 또 야단쳐주실 것 아닙니까. 쪼금 억울한 것 같아도, 쪼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렇게 살면 인생이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손해 보며 살지요 뭐. 아, 유행가도 있잖아요. ‘바보처럼 살았군요.’ 좀 바보처럼 살자고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지적으로 좀 저능한 사람이래요. 늘 웃으니까. 허허허허허. 누가 욕을 해도. 허허허허.

 좀 그렇게 살면 안 될까요? 우리 인생이 왜 너무나 그렇게 따지고 이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고, 그래서 소리 지르고 내가 이겨야 되고, 내가 저 사람을 갖다가 밟아야 되고, 꼭 내가 승리해야 되냐 그 말입니다. 그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라. 내가 너의 마음을 알고 내가 너의 그 진실을 알기 때문에 내가 다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와서 여러분을 물고 뜯는다고 할지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말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전진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이 찬송가 88장인데 2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맘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도 주님 항상 같이 하여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 나를 지키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찬송가: 내 진정 사모하는>

내 맘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도 주님 항상 같이 하여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 나를 지키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아멘!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얼마나 감사해요.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할렐루야! 참 주님의 은혜 감사하지요.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하시고 돌보아주시는 우리 주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3.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우리가 환란에 처했을 때 피난처가 되십니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118편 8절과 9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고 어려움을 당하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권력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보세요, 시편 146편 3절에도,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권력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권력이 없습니다. 영원히 힘 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우리 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 모든 기도를 응답해주시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시편 118편 21절입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118편 23절에, “이는 야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할렐루야! 주님이 해결해주십니다. 주님이 해결해주십니다. 주님이 해결해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절대긍정의 믿음입니다. ‘주는 나와 함께하신다. 반드시 나는 이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한다. 반드시 주님께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를 건져주신다. 내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주여,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로부터 응답받고 상급 받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예배드릴 때 아멘은 했는데, 나오면서 시험에 들고 상처받고, 문제가 다가오면 흔들리고 절망의 자리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있으면 안 되고, 환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시험이 다가와도 억울한 일 당해도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 다 믿고 의지하고 맡기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에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넘치는 감사와 찬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18편 28절 29절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13편 1절로 2절, “할렐루야, 야훼의 종들아 찬양하라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야훼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 성경은 우리에게 찬양하라고,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했던 지난 7월 달에 태국에 있는 그 동굴에 갇혔던 13명 그 구조 소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사건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소년이 있는데, 한 소년의 이름이 바로 ‘아둔’입니다. 유일한 크리스천인데, 이 동굴의 길이가 얼마나 길고 먼지 약 4킬로미터 정도 되는 동굴인데, 물이 들어차가지고 중간 중간에 다 물이 차서 이 굴을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갇힌 지 열흘이 지나도록 아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잠수부원 하나가 그 긴 길을 굴속을 잠수하고 헤엄쳐 들어가서 가보니, 그들이 살아있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이 아둔 하나였습니다.

이 아이는 그 태국에 와서 부모님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었는데, 교회에 와서 그곳에 컴패션이라고 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신앙생활하고, 영어도 배우고, 미얀마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또 찬양을 잘하는 그러한 소년이었습니다. 이 소년이 유일한 크리스천인데, 이 소년이 이 굴에서 절망 가운데 ‘이제 우리 모두가 죽는구나’라고 할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 이 소문이 알려져서 전 세계에서 잠수부들이 한 백여 명의 전문가들이 오고 많은 구조대원들이 왔는데 구조대원 한 사람이 이 아이들을 구조하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그 세상을 떠난, 순직한 구조대원을 위해서 절에서 추도식을 갖게 되었는데, 본인은 크리스천이라고 교회 와서 추모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고립된 지 10일째가 되자 저희는 참을성을 잃어갔어요. 희망도 사라지고 기운도, 용기도 없어졌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저는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는 너무 어린 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시고 모든 것에 능하십니다. 지금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지켜주세요. 이 자리에 함께해주시고 저희 13명 모두를 도와주세요!”
코치 한 사람과 열두 명의 축구단인데, 열한 살부터 열여섯 살짜리의 어린 아이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동굴 속에서 열흘 넘게 굶주리면서 이제는 다 죽었다고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을 때, 이 아둔은 기도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했는데, 기도한지 얼마 안 되어서 저 컴컴한 어두운 곳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그가 영국인 잠수부원입니다. 구조대원이 와서 이 아둔과 영어로 대화를 해가지고 소식을 밖에 알리고 구조해내게 되었는데, 그는 간증했습니다. “구조대원이 우리를 구하러 왔을 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랐어요. 이것은 기적입니다!”
 할렐루야.
이 소식이 알려져서 미국 컴패션에서 이 아이가 자랄 때까지 모든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또 국적을 갖지 못했는데 태국 시민권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부르짖어 기도하면,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이 찾아오고, 문제가 찾아오고, 어려움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금정렬 권사(양천대교구)

- 전도상에다 끊어진 인대까지 덤으로 치유

전도상 시상 앞두고 인대 끊어져
이영훈 목사님 신유기도로 치유
전도상에 치유 축복, 권사 임명까지
‘할렐루야!’ 더 없이 행복한 날들

 나는 8월 26일 ‘2018 상반기 전도 정착 종합시상’에서 대상을 받은 데 이어 9월 5일 제직임명예배에서 권사로 취임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상을 두 개씩 주신 셈이니 올해는 무엇보다 뜻 깊은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결혼 후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1년 넘게 다른 종교에 공을 들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오면서 비로소 귀한 딸을 낳았다. 결혼 13년 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 동안 나는 내가 만난 그 좋은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전도는 나에게 마땅한 책무요 사명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마음으로는 굴뚝같은데 막상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6년 전 우리 교회 교회성장선교회가 전도훈련학교를 열었을 때 등록하여 교육을 받았다. 이때 함께 교육받은 분들과 협력하여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붕어빵 전도, 토스트 전도 등을 시작했다. 전도지 ‘행복으로의 초대’는 어디를 가든 꼭 지참했다. 무엇보다 나의 전도 열정에 불을 붙여준 건 전도를 받은 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삶과 인격이 변화될 때의 기쁨이었다. 세상에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또 아픈 몸으로 오셨다가 예배를 드린 후 병을 치유 받는 분들도 많았다. 이런 기쁨들이 나를 전도하게 만들었다.

 올해는 특히 전도에 모든 것을 걸고자 생각했다. 전도된 분들이 잘 정착하여 신앙의 뿌리까지 내릴 수 있도록 관계 전도에 최선을 다했는데 갑자기 교회에서 전도대상을 주신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 기쁨을 다 만끽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왼쪽 팔에 심한 통증이 시작됐다. 시상식을 나흘 앞둔 아침이었다. 아마 그 전날 스트레칭을 무리하게 한 까닭인 것 같았다.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끊어졌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수술을 할 수는 없어서 다음 예약을 잡은 뒤 집으로 돌아와 진통제를 먹었다.

 주일에는 전도 시상식에 참여했다. 이영훈 목사님이 예배 때 시상을 하셨는데 상을 받고 나자 이상하게 팔이 아프지 않았다. 시상식을 마치고 교구 식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는데 한 집사님이 바삐 물었다.
 “아까 목사님께서 신유기도 시간에 왼쪽 팔이 아픈 사람이 나았다고 하셨을 때 ‘어머 이건 지역장님께 하신 말씀이네’ 싶어 ‘아멘’을 했는데, 지역장님 지금 팔 어때요?”
 “신기하게 아프지 않아.”
 가만히 생각하니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목사님의 말씀도 잘 듣지 못했는데 정말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예약한 날 병원에 가서 MRI 촬영을 하고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와 마주앉았다.
 “인대가 멀쩡해졌어요. 끊어진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지금은 해줄 게 없네요. 나중에 아프면 오세요.”

 하나님이 전도상에다 덤으로 인대까지 낫게 해주신 셈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낫게 해주신 건강한 몸으로 더 열심히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로 다짐했다. 게다가 이제는 기도의 어머니인 권사가 되었으니 만나는 모든 분들이 주님을 만나 행복하기를 기도하며 전도의 사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정리=복순희 기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