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이영훈목사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장 7~10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번 주가 지나가면 이제 더위가 꺾일 것입니다. 더워도 감사하고, 또 시원해도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복음성가: 약할 때 강함되시네>

(1절)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2절)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후렴)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주님,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 기도 제목입니다.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에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날 위해 십자가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평생 주님의 은혜 감사하며 주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 말씀을 가지고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신앙생활은 평생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내가 내 뜻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어요. 왜?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 삶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두 사람이 존재하는데 옛 사람, 내가 주인 되어 살던 옛 사람하고, 예수님이 주인 되어 사는 새사람하고 둘이 늘 충돌하게, 그렇게 우리 삶이 일생 동안 그러한 삶을 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세히 그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21절로 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가는 곳마다 많은 교회를 세우고,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 기록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수많은 병자를 고친 사도 바울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평생 옛사람과 싸워야 했습니다. 사람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 소홀히 하고, 기도하는 것 소홀히 하고, 찬양하는 것 소홀히 하고, 말씀 보는 것 소홀히 하면, 성령의 은혜가 내게서 사라지고 옛사람이 싹 올라와서 나를 옛사람의 모습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옛사람과 싸워 승리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7장에서 이와 같은 옛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에 대해서 기록하고 난 다음, 8장으로 넘어가면 2절에 이와 같은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옛사람을 지배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옛사람을 정복하고, 주님 안에서 승리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보니깐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1. 육체의 가시

 먼저,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과 8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지만 육체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질병이 있었습니다. 무슨 질병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마는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성경 학자들은 그가 간질을 앓았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적인 학자들은 그가 눈이 심히 나빠서 눈이 낫기를 기도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얼마나 눈이 나빴는지 글을 쓰려면 크게 써야되고, 그렇지 않으면 누가 대신 옆에서 불러주면 받아 적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도 더디오라고 하는 분이 옆에서 그가 불러주면 대신 적었습니다. 로마서 16장 22절을 보면,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세 번이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나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나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나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 주지 아니하시고 그냥 그 몸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나가서 말씀을 전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수많은 병자를 고칠 때, 늘 그를 부정적으로, 이렇게 구부러지게 보는 사람들이 그를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아니, 자기 자신의 병도 못 고치면서 무슨 병을 고친다고 그래? 자기 자신이 그렇게 문제가 있으면서 무슨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그래?” 그렇게 비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핸디캡이 있습니다.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으로 그 약점을 바라보면, 약점은 더이상 약점이 아니고 핸디캡은 더이상 핸디캡이 아닙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청소년 수련회를 한 번 인도한 적이 있는데 그날 수련회가 끝난 다음 한 여자 중학생이 저한테 왔습니다. “목사님, 너무너무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근데 사실 저는 그동안 늘 핸디캡이 있어 수치스럽게 여겼는데, 오늘 말씀 듣고 완전히 자유함을 받았어요. 제 손등에 점이 있는데 늘 수치스러워서 수건으로 항상 칭칭 싸고 다녔고, 한 번도 제가 수건을 푼 적이 없고 늘 손을 감추고 다녔는데, 오늘 이후로 제가 수건을 풀어버렸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요만한 점이 하나 있어요. 아무도 그 점이 있다고 신경도 안 쓸 그런 점인데도, 본인에겐 핸디캡이 되어 ‘누가 보면 어쩌나?’ 그래서 손수건을 칭칭 감고 다녔다는 것이요.

 누구나 이런 남에게 내놓고 싶지 않은 그러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있습니다. 핸디캡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서는 이것이 나에게 더이상 핸디캡이 될 수 없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시를 허락하신다면, 그것을 감당할 은혜도 주신다. 당신의 모든 근심을 갈보리로 가지고 가라. 십자가에 매달린 하나님의 아들이 베푸시는 은혜의 그늘 아래 서라. 그분의 상처를 보라. 가장 값진 선물을 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과거의 상처, 실패, 배신당한 경험, 복잡한 가정사,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열등의식을 가져다주고 핸디캡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내던져버리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다 같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실패와 절망과 과거의 상처에 짓눌려 살아가는 그러한 과거의 옛사람의 모습은 우리에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간 것입니다. 지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나의 일생동안 주님이 내게 큰 은혜를 베푸신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고백합니다. 12장 9절에 세 번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어떻게 응답을 주셨느냐?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미 너에게 충분하다. 네게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너에게 충만히 임했다.” 그 말씀인 것입니다.

 병이 고침 받은 것이 아닙니다. 뭐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가 달라진 것입니다. 늘 내게 병이 있어서 이것이 나의 핸디캡이고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내게 부끄러운 모습이었는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이 음성이 들려오고 난 다음 더이상 이것이 핸디캡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내게 풍성하고 내게 족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만족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여러분 뭔가 부족하십니까? 뭔가 여러분의 상처가 있습니까? 연약함이 있습니까? 부끄러움이 있습니까?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더이상 그것이 너의 상처가 될 수 없고, 더이상 그것이 너의 핸디캡이 될 수가 없고, 더이상 그것이 너의 약점이 될 수가 없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 가슴을 펴고 담대하게 선포해야 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더이상 나는 상처받은 쭈그러지고 망가진 옛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완전히 변화된 모습으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주님께 사랑받는 주님의 자녀로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사도 바울의 한평생 신앙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사는 것 같지만 주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면 얼마나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고, 상처투성이가 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입만 열면 남 탓을 해요. “내가 아버지 잘못 만나 갖고 오늘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어요. 밤낮 아버지 술 먹고 들어와서 엄마 때리고. 크! 내가 그래서 오늘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 내가 또 마십니다. 크!” 아니, 자기가 술을 마시는 것이지 아버지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에요. 아버지가 술 마셔서 그렇게 잘못되었으면 본인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아버지 때문에 나도 마십니다. 크! 부어라 마셔라, 그냥.” 이것은 본인이 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길을 가는 거예요. “아!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밤낮 집에 오면 어머니가 안 계셔서 밤낮 라면만 먹고 살았습니다.” 라면이 맛만 좋구만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자기가 남 탓을 하고 살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아요. 늘 모든 것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해야 인생이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글쎄 눈에 콩깍지가 꼈지. 이런 사람을 내 남편이라고 모시고. 아이고, 내 팔자야!” 아니 자기가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내 팔자라고 그러면서. 또 그러면서 또 잘 살아요, 또. 여러분, 남편 탓할 게 아니에요. 아내 탓을 할 게 아니고, 부모 탓을 할 게 아니고, 시부모 탓을 할 게 아니고, 장인 장모 탓을 할 게 아니고, 자식 탓을 할 게 아닙니다. 다 내 탓입니다. 문제는 100% 나에게 있는 것이에요.

 저 사람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고요? 아니에요. 괴롭힌다고 느끼는 내가 잘못이지. 뭐라고 그래도 “못 들었습니다. 못 봤습니다. 나랑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면 되는거예요. 그런데 지나가다 누가 뭐라고 하면 가다가 멈춰서, “뭐라고 그랬어, 지금 방금!” 막 이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평생 인생이 힘들고 피곤한 것이에요. 여기 혹시 저거 내 얘기다 하는 분 내 손들어보라고 안 그럴 테니까, 오늘부터 마음 자세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따라 하세요.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인생이 행복한 거예요.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 찬양을 부르는데 얼굴이 환한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아! 찬양 부를 때 얼굴이 기쁨이 충만하고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은혜고 그것이 축복이다. 그중에 한두 사람은 ‘...’ 하고 있지만 다음 주일 날부터 얼굴이 환하게 펴질 줄 믿습니다. 제가 속으로 그렇게 기도했어요. 할렐루야! 늘 주님 안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평생 고아로 살아도요, 마음 자세를 바꿔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아니, 부모가 버려 가지고 프랑스에 입양되어 갔는데 거기서 떳떳하게, 자신 있게, 자신의 열등감을 딛고 일어나서 장관까지 되더라고요. 장관! 과장, 국장이 아니라 장관. 장관. 그게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꿔 져서 그렇습니다. ‘아, 난 버림받았다. 난 버림받았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머리 색깔은 새까만데, 저 사람들은 머리도 노랗고 눈도 파란데, 나는 버림받았어.’ 이렇게 살면 그분은 거기서 장관은커녕 아무것도 못하고 끝났을 거예요. 그러나 마음의 자세를 바꾸니까 당당하게 그곳에서 입양아로 와 가지고 장관까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인의 질병의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했어요. 고린도후서 12장 7절과 9절입니다.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가 너무나 큰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그러한 위치에 있기때문에 주님이 나를 낮추시는구나. 낮추시는구나. 그래서 날 겸손하게 하시려고 내게 이 질병을 허락하셨구나. 그래서 고난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고난을 축복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위대한 작가 베토벤도, 그가 두 귀가 다 멀게 된 후에 위대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1795년부터 점점 청력이 나빠져 가지고, 1798년 그 이후로는 급속도로 청력이 나빠져서 두 귀가 완전히 멀어버립니다. 그런데 1798년 이후에 그가 거의 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위대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가 다 그때 이후에 작곡된 것이고, 우리가 잘 아는 3번 영웅, 5번, 빠바바 밤! 운명, 9번 합창, 이 교향곡이 그때 이후로 나온 거예요.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도, 그리고 그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도 그 이후에 다 작곡한 것이고, 1824년, 베토벤의 합창 9번, 그것이 초연했을 때, 사람들이 공연이 끝나고 박수를 치는데 베토벤은 못 들으니까, 박수 치는 것도 몰랐어요. 그때 알토 독창을 맡았던 분이, 솔리스트가 선생님을 잡아서 이렇게 돌려드려서 관객석을 보게 했습니다. 아,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 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그는 비록 육신의 귀가 닫혔지만, 하늘을 향한 귀가 열려서 하늘의 선율들을 따갖고 와가지고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희 작은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 위대한 작곡가들은 그들의 능력으로 작곡을 한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아 작곡을 한 것인데, 하늘에 흐르는 많은 그런 음률을 받아 적어서 그러한 위대한 작품이 나온 것이다.”

 여러분들의 영적인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늘의 신비한 것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오늘 이후로 주님 안에서 위대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것이 여러분 삶 가운데 풍성히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매 맞고 붙잡혀 감옥에 던져졌지마는 그 절망의 자리에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설명이 나옵니다. 25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 결과로 그를 지키던 간수와 온 가족이 예수를 믿습니다. 16장 31절, 32절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내가 약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그때 내가 강하게 됨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환란이 축복이라는 것을 늘 고백을 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이라’고 하는 주님의 축복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축복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세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 같지만 은혜를 받고 난 다음 영적인 눈을 떠보면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이 여러분의 능력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셔서 여러분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능력이 있어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을 부어주셔서 오늘 여기에 와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서 이 자리에 와 앉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재능을 주셔서 주님을 찬양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됩니다. 모든 것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일생을 살아온 동안 우리는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의 인생도 성공으로 바꿔지게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 성결교의 창시자가 되는 요한 웨슬레를 소개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목사님 아들로 태어났는데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어요. 그 어머니가 자녀를 많이 낳았지요. 별로 안 놀라시네. 열다섯 번째. 다섯 번째가 아닌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는데, 명문대학인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아주, 본인이 자신감을 가지고 목사가 되고 난 후에 미국에 선교사로 건너갑니다. 좋은 대학도 나왔죠, 스스로 실력도 있다고 생각했죠, ‘내가 가서 선교를 하면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했는데, 조지아주에서 3년 동안 선교사역이 제대로 되지 않고 완전히 죽을 쑤고, 기록을 보면 완전히 실패해서 두 손 들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돌아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풍랑을 만나 가지고 배가 곤두박질해서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선교에 실패하고 이제 난 죽는구나.’ 가장 낮아졌던 그 시간에 찬송 소리를 듣습니다. 보니까 당시 성령운동을 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요즘 말하면 순복음 교인들이 거기 있었던 거예요.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길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저렇게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는가?’ 그래서 영국에 돌아오고 난 다음에 그들이 예배드리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날 밤 8시 45분, 말씀을 듣다가 불이 임했습니다. 그가 뒤집어졌습니다. 그때가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날 이후로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주님께 쓰임 받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1월 1일 다시 한번 철야기도를 갔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는데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새벽 3시까지 계속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소리쳤다. ‘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 당신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성령의 불이 떨어지니까 그가 말씀을 선포할 때 사람들이 막 구름 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자기가 3년 동안 그렇게 미국 가서 사역을 해도 실패했는데, 이제는 그가 스스로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불을 토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세계는 나의 교구다!” 다시 말하면 온 세계가 나의 구역이다! 그렇게 그는 선포하면서 52년 동안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전역을 말을 타고 복음을 전했으며, 하루 평균 4번 반, 평생 총 4만2천 번의 설교를 하고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낸 귀한 종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한 곳에 그 지역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부랑자, 술주정뱅이들이 사라지고, 범죄율이 줄어들고, 수많은 병자가 낫고, 하나님의 은혜가 막 폭포와 같이 임했던 것입니다.
 가장 낮아져서 실패한 자로 있던 그가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니까,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주님의 은혜가 임해서 실패자인 요한 웨슬레를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서, 세계 역사 가운데 길이길이 기억되는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지금 그 하나님이 우리도 그렇게 쓰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과거에 어떠한 실패가 있었고, 어떤 상처가 있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님 앞에 붙잡힌바 되면 주님이 요한 웨슬레를 쓰신 것처럼 여러분의 일생도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의 일생으로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 찬송, 존귀,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내가 약한 그 때 강함이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한평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이영훈목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1~6절)


 오늘 말씀의 제목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6절 말씀 가지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말씀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다가옵니다. 예기치 않은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럴 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큰 문제와 어려움과 걱정거리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절망하고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위대한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1. 믿음의 대상 예수 그리스도


먼저, 우리의 믿음의 대상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전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 그 예수님의 말씀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을 예수님의 고별설교라 말씀하기도 하고, 다락방에서 전한 말씀이기 때문에 다락방 강화라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내가 너희를 떠날 것이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과 함께 자고, 깨고, 먹고,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 저들이 함께했는데, 하늘처럼 믿고 의지하던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하니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사나?’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가득했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둘러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말씀은 오늘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절망 가운데 살고있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여러분, 근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근심은 근심을 낳고, 걱정은 걱정을 낳는 것입니다. 염려는 더 큰 염려를 가져오고,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근심해서 문제가 해결되면, 너도나도 근심하지요. 그러나 절대로 절대로 근심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근심거리가 있어도, 걱정거리가 있어도, 염려할 거리가 있어도 근심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할렐루야!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 당했을 때,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어려움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시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영어 성경에는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자.” 이렇게 되어있어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딱 초점을 맞추라고 되어있어요. 여러분, 환경을 바라보면 내게 그 환경을 통해서 더 큰 절망이 다가옵니다. 나를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떠났을 때,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마음이 괴롭고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아아, 환경도 바라보지 말고, 사람도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봐라. 주님께 딱 초점을 맞추고, 포커스를 맞추고 주님만 바라보라! 주님만 바라보라! 주님만 바라보라! 주님은 영원히 너와 함께하시며 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다.” 세상 사람도 변하고, 환경도 변하고, 모든 것은 변하지만 예수님은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동일하시니라. 변함이 없으시니라. 할렐루야! 변함이 없으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면 주님께서 내 발걸음을 은혜의 길로, 축복의 길로, 기적의 길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인 것입니다.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길이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참 진리가 되시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그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우리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 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주님이 주신 평안함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해서 염려도 떠나가고, 근심 걱정도 떠나가고,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14장 27절에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걱정하고 근심합니까? 주님이 하지 말라는 걸 왜 이렇게 청개구리처럼, 자꾸 하지 말라는 걸 하려고 그럽니까? 주님이 하지 말라 하면 안 하면 됩니다. 근심은 떠나가라! 염려 걱정은 떠나갈지어다! 문제는 떠나갈지어다! 믿음으로 외치고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 기적이 다가오고, 응답이 다가오고, 치료가 다가오고, 회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에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다 같이 고백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염려할 시간에, 근심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말씀 붙잡고, 기도하고, 부르짖고, 감사를 드리면 주님의 평안함이 임하고, 문제가 해결되고, 주님의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가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근심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근심하는 마음이 가득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하실에 갇혀있으면 태양이 떠 있어도 볼 수 없듯이, 근심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근심하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 자리를 믿음의 기도로 채우십시오.
 할렐루야! 염려하고 근심해서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염려할 시간에, 근심할 시간에 말씀 붙잡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2. 거처를 예비하신 주님

 예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둘째로,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하고 말씀해주셨습니다. 14장 2절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저 천국에 가셔서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시고, 때가 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 ‘거처’라고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데요, 영어 성경을 보니까 ‘Mansion’이라고 되어있어요, ‘Mansion’. 우리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주택에서 살기도 하고, 또 아파트에서 살기도 하고, 또 쪽방촌에서 살기도 하지만 저 천국 가면 ‘Mansion’에서 삽니다. 우리 모두에게 저 천국에 주택이 예비 되어있는 것입니다. 거기는 청약부금 낼 필요도 없어요. 주택을 얻기 위해서 돈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가는 저 나라, 그 천국에 가면 여러분 모두의 저택이 예비 되어있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우리가 돌아갈 우리의 본향, 저 천국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정거장입니다. 나그넷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고 지고 할 것 같지만, 이렇게 둘러보니까 백이십 년 산 사람도 많지 않아요. 여러분,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천국 소망을 두고 예수 잘 믿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힘써 일하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저 영원한 천국에 한 분도 빠짐없이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장 2절 3절에 이와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언제고 우리의 본향인 저 천국으로 갑니다. 우리 앞에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살다가 주님 앞에 부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13절 이하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며, 빛 가운데 거하시며, 주님의 백성들이 주 앞에 오는 것을 두 팔을 벌리고 기쁨으로 맞아 주실 저 천국이 우리에게 예비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집 떠난 사람은 집 떠난 것이 고생이라고 하죠. 자기 집밥을 먹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죠. 왜? 자기가 자기의 고향이 있고, 자기가 자라난 곳이 있기 때문에, 늘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우리의 영적인 고향은 저 천국에 있습니다. 눈물도 없고, 근심도 없고, 걱정도 없고, 고통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질병도 없는 영원한 기쁨만 있는 저 천국이 우리에게 예비되어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가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 23절 똑같은 칭찬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할렐루야!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맡겨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 보시기에 잘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네게 맡겨 줄 것이다. 할렐루야.
 그런데요, 이 마태복음 25장 21절을 다시 한번 우리가 주목해야될 필요가 있는 것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어떤 일에?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한 일들을 자랑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했습니다. 내가 큰 업적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주님 보시기에는 그게 다 아주 작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 하늘 보좌에서 이 땅에 내려 우리들이 하는 일을 다 보실 때, 주님 보시기에 다 작은 일이에요. 미국 뉴욕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그 밑에 있는 모든 차들이 아주 손톱만큼 작은 모습으로 다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위에서 보면 큰 차인지 작은 차인지, 좋은 차인지 낡은 차인지 구별이 안 돼요. 다 작은 차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한 업적을 내세우고 자랑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래서 천국 가면 저 시골에서 한평생 이십 명, 삼십 명, 그저 농촌에 산골에 있는 분들 섬기다가 가신 목사님이나, 또 조금 숫자가 많은 교회를 섬기던 저 같은 목사가 올라가면 주님이 하시는 칭찬은 똑같습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받은 이 축복의 크기를 내가 이룬 것으로 착각하고 자랑하지 말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서, 하나님의 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을 보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우리가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이 보혜사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고, 천국에 가신 후에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보혜사라고 하는 말이 헬라어 원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은 ‘곁에서, 옆에서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우미입니다. 가사 도우미, 간병 도우미가 있잖아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도우미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시고,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 삶 가운데 은혜에 은혜를 더해주셨습니다. 이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이 도우미라는 뜻도 있고 ‘카운슬러, 상담자’라는 뜻도 있고, 또 ‘변호사’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의 대변자가 되어주셔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이 우리 마음을 위로해주셔서 우리가 슬피 눈물 흘릴 때 우리 눈물을 닦아주시고, 피곤하고 지치고 쓰러질 때 우리를 일으켜 새 힘을 허락하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잘 알고 돌보는 도우미로서 한평생 우리를 떠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 18절입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이 예수 믿는 순간 우리에게 임해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아니하고 한평생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이 오셔서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15장 26절을 보면 이와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이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님입니다. 주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고, 주님의 은혜를 전파하게 만드는 그러한 복음의 증인된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닮게 하고, 예수님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4절입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 충만함 받으면 누구 생각이 나요? 예수님. 누구 생각 난다고요? 저 시골에 부모님 생각이 난다고요? 그게 아니고 성령 충만하면 내 사랑하는 예수님, 내 사모하는 예수님,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보기 원합니다. 예수님 닮기 원합니다. 예수님 전하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성령충만 받으면 예배드리는 것이 좋고, 찬양하는 것이 좋고, 기도하는 것이 좋고, 말씀 읽는 것이 좋고, 말씀을 보고 듣는 것이 좋고, 늘 주님의 은혜가 충만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기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진행형입니다. 받고 또 받고, 또 받고, 또 받으라. 한 번 받은 것으로 그것이 충만하지가 않습니다. 늘 충만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몸이 건강하듯이, 우리가 충만하고, 또 충만하고, 또 충만하고, 또 충만하고, 또 충만하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평안이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성령의 은혜로 주님의 평안함이 여러분께 넘쳐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412장입니다. 

<찬송가 412장 (통 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와 같은 평화가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넘치는 평화가 여러분에게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떠한 환란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평화가 넘쳐나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가 인도네시아입니다. 이억사천만 가운데 87%가 이슬람입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공직자가 되려면 이슬람교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푸르나마라고 하는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정치에 뛰어들어서 자카르타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이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 이 주지사는 백성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대통령을 도와서 나라를 개혁하는데 크게 공을 세운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과격주의 무슬림들이 고발을 해서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고발한 이유는 이슬람교도도 아니면서 코란을 인용해서 연설을 했다고 해서 신성 모독죄로 잡아넣었어요. 그런데 그가 감옥에 들어가서도 예수 믿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가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저는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죽어서 갈 곳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제가 가야 할 처소가 예비 되어 있고, 먹을 것도 걱정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저는 예수를 따르는 자입니다. 그것이 제가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게 되길 바랍니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주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함이 넘쳐나서, 환란이 다가오고 핍박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나는 예수님만 섬기기를 원합니다!” “예수님만 높이기 원합니다!” “예수님만 전하기 원합니다!” “예수님만 닮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고백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말씀으로 충만케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셔서, 넘치는 평안함을 가지고 모든 문제와 싸워 승리하며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우뚝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일생을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잠시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이제 더 이상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근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주옵소서.


송시윤 장로, 지유정 권사(구로대교구)

- 뒤돌아보니 걸음마다 인도하셨네

병마, 자녀문제, 삶의 고민들…고비마다 기도로 응답

 30여 년 살아온 낡은 빌라는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여든이 넘은 부부가 살기에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이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팔리지도 않고, 전세도 안 나가고, 재건축도 번번이 안 됐다. 우리 집만 이런 게 아니라 이웃집도 마찬가지여서 포기하고 기도만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계단을 내려가다 다쳐서 반월상연골판이 파열됐다. 걷지도 못할 만큼 심해서 결국 수술까지 해야 했다.

 수술 후 요양을 할 때 딸의 도움을 받기 위해 큰딸 집에서 잠시 지냈다. 하루는 내가 장로수련회에 참석하고 있을 때 아내는 비워둔 집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하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때마침 부동산에서 찾아와 집 살 사람과 만나게 됐다. 부동산에 내놓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 물으니 원래 매매를 원하는 집에 들렀다가 사람이 없어 돌아가는 중에 이웃 사람으로부터 이 집도 팔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아내는 곧장 나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나는 그때 예배중이어서 무조건 알아서 하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저소득자에게 급히 임대해줄 집을 구하는 중이었다. 계약 조건은 주방기구를 놓고 가는 것이라고 하여 돕는 마음으로 흔쾌히 계약했다. 그 집을 정리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우리 부부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부부가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당신의 계획대로 인도해 주셨다. 나는 젊은 시절 전쟁을 겪고 수없이 많은 육체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았다. 얼마나 생사의 고비가 많았던지 내가 환갑을 맞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는 꼭 환갑잔치를 하도록 권고할 정도였다.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도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였다. 맹장수술을 한 데가 잘못되어 주먹만한 혹이 생겨 수술을 했는데 그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

 60세가 넘어서는 장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했는데 그래도 낫지 않아서 세 차례나 더 수술했다. 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으면 배설물 통을 차고 다녀야 할 만큼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아내는 이런 남편을 위해 금식하면서 부르짖었다. 남편의 고난을 알기에 그야말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아내가 기도 중에 성령 충만을 받아 감사기도가 흘러나오던 그 다음날 나의 상처가 감쪽같이 아무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밖에도 살아오면서 겪은 기적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고난은 우리 부부가 기도하는 기회가 됐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든 해결해 주셨고 자녀들에게도 복을 주셨다. 반듯하게 잘 자라 약사로, 유치원장으로 일하는 자녀들을 볼 때면 내 자랑으로 삼기보다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영훈 목사님이 모세는 여든 살에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으니 인생은 80세부터라고 설교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에 큰 용기를 얻는다. 나와 아내는 앞으로도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는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성경 골든벨 문제-16

모세오경(, , , , )

1.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무엇을 하셨을까요?(2)

   1)에덴동산을 창설하심 2)안식하심 3)식물을 만드심 4)인간을 창조하심

2.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누구인가?(2)

   1)아담 2)므두셀라 3)야렛 4)모세

3. 노아가 방주에서 처음으로 내어보낸 새는?(3)

   1)비둘기 2)올빼미 3)까마귀 4)참새

4. 다시는 홍수로 이땅을 멸망시키지 않으실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

    주신것은 무엇일까요?(4) 

   1)2)햇빛 3)구름 4)무지개

5.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곳은?(2)

   1)시내산 2)모리아산 3)느보산 4)호렙산

6. 다섯 가지 제사를 써라(1 : 1 - 7 : 38)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7. 번제에 드리는 예물이 수송아지일 경우 그 희생을 잡아

    번제물로 드리는 절차를 요약하여 쓰라(1:3-9)

   (번제물에 안수할 것,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앞 단사 면에 뿌릴 것,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나무 위에 뜬 각을 벌여 놓을 것 등등)

8. 속죄제를 드릴 때 어린양이나 염소에 미치지 못하면

    그 대신에 무엇을 로 예물 을 삼았는가?(5:5-7)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여호와께 드림)

9.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에 위임할 때에 모세가

    그들에게 피를 뿌렸는데 어디 에 뿌렸는가?(8:22-24)  

   (아론의 오른 귓 부리와 오른손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아들 들의 오른 귓 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뿌림)

10.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료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분향하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은 이유를 쓰라(10:1-2)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한 때문)


'말씀과 찬양의방 > 성경공부,퀴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 골든벨 문제-18  (0) 2018.08.28
성경 골든벨 문제-17  (0) 2018.08.21
성경 골든벨 문제-15  (0) 2018.08.03
성경 골든벨 문제-14   (0) 2018.07.30
성경 골든벨 문제-13   (0) 2018.07.26

화해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 한 분이 자신이 용서받은 체험으로 인하여 그의 사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는 너무도 자존심이 강해서 교인들 중의 누가 자신보다 더 신령하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교회 초신자들 중의 한 명이었던 필리스라는 여인은 대단한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다른 교인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이 목사님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첫째로 목사님은 주일 저녁예배 시간 중에 그녀에게 회심에 관한 간증을 하라고 한 뒤부터 화가 났다. 그녀의 간증 내용 자체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설교라고 칭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영적으로 그녀보다 우수하며 사람들은 자기를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그녀가 정말로 영적인 일들에 관해 별로 모른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노렸다. 필리스는 초신자였지만 마침내 목사님과 대면을 청했다. 그녀는 사랑속에 갈등을 품고 말했다.“목사님, 목사님은 저의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목사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제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우리는 같은 편이니까요.”그녀는 또 목사님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였다. 두 시간 반 동안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자신이 얼마나 비굴했었는지 깨닫고 심지어 당황하기까지 했다. 이 초신자는 목사님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도와드렸다. 그는 순전한 사랑 안에서 용서를 받았으며 자신의 사역을 가로 막았던 경쟁심과 시기심을 고백했을 때 그는 다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뿌듯한 해방감인가? 수 개월도 안되어 전 교인은 새로운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그의 설교도 더 나아졌다. 그의 부당한 싸움을 관대하게 품어주었던 필리스의 사랑의 영이 그가 갖고 있던 나쁜 감정을 덜쳐버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말씀과 찬양의방 > 설교 예화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해 속에서도 용서를  (0) 2018.08.28
사랑의 실천  (0) 2018.08.21
용서를 배우라  (0) 2018.08.03
아이히만의 용서  (0) 2018.06.26
한 수도승의 회고에서   (0) 2018.06.13

김상준 안수집사(구로대교구)

- 교통사고 순간 터져 나온 ‘감사 기도’

작은 상처 하나 없이 기적처럼 깨끗

 얼마 전 수요일에 동생을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내어 포항에 들렀다. 시내버스에 올랐는데 자리가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들고 수요예배 실황중계를 보며 예배를 드렸다. 평소 수요예배와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할 수 없을 때는 종종 휴대전화를 활용해 예배를 드렸으므로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이영훈 목사님의 말씀강해에 푹 빠진 채 이동하던 중이었다.

 쾅! 갑자기 들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는 운전석이 있는 앞자리까지 쭉 미끄러져서 거의 날아가다시피 했다. 차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췄다. 벌떡 몸을 일으켰을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터져 나왔다.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지만 아무 데도 아픈 데가 없었다.

 “누가 119에 신고 좀 해줘요.” 운전기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로 신고를 했다. 다시 주변을 돌아보니 사고의 충격으로 버스 안은 엉망이었다. 한 승객은 머리를 다쳐 피가 흐르고 있었고, 움직이지 못하는 승객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사고는 여러 언론 매체에 보도됐다. 12명이 다쳤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나도 버스에 서 있었으므로 큰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다는 말 외에 더 설명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보니 입고 있던 옷이 찢어져 있었다. 나는 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다시 서울에 올라와 병원에 들러 검사를 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었고, 보험회사 직원에게도 아무 이상이 없으니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고 보호해주신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나는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았다. 아내의 권유로 10년 전부터 교회에서 새가족을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적 같은 시간들을 보냈고 한순간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일에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하던 때만 해도 스트레스가 많아서 무슨 말을 하려면 헛기침부터 나오고 만성 속쓰림에다 어깨 통증까지 그야말로 종합병원이었다. 그러던 몸이 예배에서 은혜를 체험하고, 봉사활동하며 말씀읽기를 시작하면서 어느새 깨끗해졌다. 나는 어느새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으로 충만했으며, 불평할 일이 사라지면서 삶이 평온해지는 기쁨을 누렸다. 주 2교대 근무를 하는 작업환경은 하나도 바뀐 게 없지만 내 삶은 어느새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그리고 급기야 위태한 사고의 순간에서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내 일상의 일거수일투족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에너지 삼아 더 열심히 봉사하는 인생을 살아가고자 한다.

정리=복순희 기자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조용기목사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장 11절)
  

서론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에 대해서 말씀을 읽겠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요나 1장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로서 악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의 마음과 요나의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느웨가 심판 받기를 원치 아니하셨던 것이 하나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리라 하셨던 것입니다. 요나서 1장 2절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나님은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요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달랐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심판을 받아 멸망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니느웨에 가지 아니하려고 했습니다. 요나서 1장 3절에 “그러나 요나가 야훼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야훼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78년 성령님께서 저에게 일본 선교를 명령하셨는데 당시 저는 미국과 유럽으로 다니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역은 최자실 목사님에게 맡기고 나는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일본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너를 선택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나 마음에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일본에서 목회자 세미나 강사로 초청해 주셔서 가 보니 1000여 명 이상의 일본인 목사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학교 교실 안에서 한국말을 쓰고 일본 말을 쓰지 아니했습니다. 담임선생이 와서 보고 제가 일본 말을 쓰지 않고 한국말을 쓰는 것을 보고는 끌고 나가서 옷을 벗기고 얼마나 때렸던지 피투성이가 됐습니다. 그는 그런 나를 복도로 끌어내어서 복도에 구경거리로 삼았습니다.

 그 기억이 마음에 떠오름과 동시에 총과 칼을 가지고 온 동네를 휘젓던 일본 헌병들이 생각이 나고 전쟁터로 끌려가는 이웃집 형들과 누나들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자 몸이 부르르 떨리며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5분 이상 그렇게 서 있다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증오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망하기를 원합니다.” 순간 강당 전체가 그 말을 듣고 일본 목사님들이 수근 거렸습니다. 저는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일본에 태풍이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나서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얼마나 기쁘고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 일본의 침략으로 큰 고통을 겪은 사람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옛 상처들을 치료해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절대로 설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말을 하고 강단에 서서 그만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일본인 목사님들이 강단 위로 뛰어 올라와 울면서 저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일본인 목사들이 말하기를 “목사님,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저희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이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부모님 세대를 대신해서 용서를 빕니다. 우리 일본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속에는 일본에 대한 증오가 가득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에 눈앞에서 하늘이 확 열리는 것 같더니 큰 손이 내려와서 내 머리에 속에 있는 무엇을 끄집어내어서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증오가 마음속에서 사라져버리고 온 몸에 일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꽉 들어차 들어왔습니다. 그 날 그 사랑이 많이 들어가서 그 사랑에 의지해서 두 시간 넘게 설교를 했습니다.

 니느웨에 가기 싫어했던 요나의 심정을 저는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니느웨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했고 그래서 그 니느웨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2. 요나의 회개와 하나님의 구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폭풍을 만나 결국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또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는 요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요나서 2장 1절로 2절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건지신 후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서 3장 1절로 2절에 “야훼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요나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다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잘못을 하거나 실패를 하면 이젠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잘못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한 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와 유다가 있는데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판 후 자살을 선택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회개를 선택된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자살을 선택했던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악인으로 역사에 남았고, 회개를 선택한 베드로는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나서 초대교회의 지도자인 사도로서 그 사명을 훌륭히 감당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인이 멸망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6절로 7절은 “너희는 야훼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 우리는 나와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장7절)”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 뱃속에 구원받는 사건을 통해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요나를 용서하시고 선지자로서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하나님의 마음을 요나가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3.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의 구원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요나 3장 5절에 보면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시는 모습을 보시고 심판을 거두셨습니다. 요나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요나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는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혹시라도 니느웨에 멸망이 임하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요나서 4장 1절로 3절에 보면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야훼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고 요나가 하소연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거두셨음에도 불구하고 요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니느웨의 심판을 원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서 “너희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죄하고 심판하는 마음에는 ‘나는 의롭고 너는 악하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막을 짓고 니느웨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요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기위해 한 가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 만에 박넝쿨이 머리를 덮도록 예비를 했는데, 그 박넝쿨 때문에 햇빛이 내리 비취고 더운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그 박넝쿨을 보고 “그 좋다. 기분 좋다. 박넝쿨 참 멋있다.”고 즐거워했는데 그만 하룻밤 자고 나니까 벌레가 와서 박넝쿨 줄기를 갉아먹어서 박넝쿨이 말랐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고 도우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가 화가 나서 막 죽겠다고 가슴을 치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기를 “이 사람아, 네가 이 박넝쿨 태어났다가 하루 만에 죽는 것을 그렇게 아깝게 여기느냐? 여기는 이 성에 사는 사람들만 해도 십 이만 명이요 가축도 많은데 생명이 이렇게 많은데 이들이 불쌍하지 않느냐? 내가 불쌍하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03편 8절로 9절에는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아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이미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태복음 18장 21절)”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태복음 18장 22절)”고 하셨습니다. 용서에는 끝이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용서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처럼 끝없이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정말 몸도 춥고 마음도 춥고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가마니를 깔고 예배를 드리는데 성도가 없으니 낙심이 되지요. 잠자리는 추워서 벌벌 떨지요. 항상 밥상은 비어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에도 성령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제게 깨닫게 해주셔서 주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마음속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천막에 있어도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가마니 위에서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빈 밥상을 만나도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로 13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진리를 통해서 나중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깨닫게 해주셔서 그 말씀 통해서 평생에 은총을 얻었습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8.07.29. pm 17:32 (편집)
 
 


강록희 집사(강서대교구)

- 말씀에 순종했더니 공황장애 치유

기도시간 기다려지고 대중교통 이용도 ‘거뜬’

 13년 전에 공황장애가 생겼다. 직장에서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으면서 여러 사람을 미워하게 됐고 그만두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견디기 힘든 시간에 병이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생의 결혼 문제로 말다툼이 일어나 집안 분위기까지 침울해졌다. 나는 동생의 결혼을 반대했다. 하나님이 허락한 배우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영적으로 교만하기 짝이 없었다. 동생은 누나의 반대에도 결혼식을 올렸고, 나는 의절하기로 결심했다. 이 일로 부모님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동생과는 왕래도 끊어졌다.

 그러면서 공황장애를 앓게 됐다. 증세가 시작되면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고 마치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몰려왔다. 그러면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온 몸이 쩌릿쩌릿 하고 손발과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몸은 붕 떠서 중심을 못 잡고 쓰러질 것 같았다. 급기야 나중에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이런 증상들이 13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됐다. 병원을 드나들며 1년 이상 약을 먹어보았으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증상이 나타나면 기도를 했고, 1시간 쯤 기도를 하면 비로소 증상이 사라졌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으나 공황장애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쉬면서 나는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나의 미래가 걱정됐고 불안감과 초조감이 몰려오더니 위경련이 생겼다. 3개월 동안 잠도 못자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어도 소용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새벽예배를 시작했다. 아마 2년 전 어느 날 새벽이었지 싶다. 기도 중에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결코 순종하고 싶지 않았으나 나는 어느새 동생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누나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나는 너와 화해하고 싶구나.”
 그렇게 화해하고 나자 비로소 공황장애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시때때 나에게 깨달음을 주셨고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이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하나님께 회개했다. 교구에서 진행하는 기도회와 성경세미나에 참석하여 최진용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성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말씀이 그렇게 달게 와 닿았다.

 ‘버스를 타보고 싶다.’ 어느 날 그렇게 마음을 먹고 버스에 올랐는데 거짓말처럼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갔다. 이전의 나는 공황장애로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지하철을 타도 증세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오랜 상처가 치유됐다.

 

나에게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매달 열리는 기도회와 성경세미나를 기다리고, 사람들 앞에 서기를 꺼리던 내가 찬양팀의 일원으로 헌신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으로 충만하다. 내게도 행복이 찾아온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찬란한 영광의 길                       

//


 

 



성경 골든벨 문제-15


1. 예수님이 태어났던 당시의 로마 황제는 누구일까요? (2:1) -아구스도-

 

2.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8복이 있는 데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은

    누가 받는가? (5:8) -마음이 청결한 자-

 

3. 다음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사마리아인-

    ①10문둥병자중 고침받음을 감사한 사람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한 남편을 다섯 번이 나 바꾼 여자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이웃

 

4.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간 산은?(22:2) -모리아산

 

5.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무슨 실과만 먹지 못하게 하셨나?(2:17) -선악과-

 

6. 탕자가 아버지께서 나눠 주신 재산을 다 탕진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왔다.

   아버지께서 제일 기뻐 하셨다. 그런데 탕자가 집에 돌아 온 것을 누가

    제일 싫어했을까요이웃사람 어머니

    살진 송아지  


 

   

   

'말씀과 찬양의방 > 성경공부,퀴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 골든벨 문제-17  (0) 2018.08.21
성경 골든벨 문제-16  (0) 2018.08.17
성경 골든벨 문제-14   (0) 2018.07.30
성경 골든벨 문제-13   (0) 2018.07.26
성경 골든벨 문제-12  (0) 2018.07.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