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골든벨 문제-12

1. 예수님께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 우니라고 하셨는가?(19:24)      -부자-

2. 다음은 어느 새를 가리킬까요? -까마귀-

날고기를 먹음(30:17) 부정함을 상징(11:15)

혼자 사는 습성(34:11) 노아의 방주에서 제일 먼저 나옴(8:7)

하나님이 양육하심(12:24) 엘리야에게 음식을 날라줌(왕상17:47)

 

3. 하나님과 함께 300년동안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처음으로 승천한 사람은?(5:24) -에녹-

 

4. (넌센스퀴즈) 성경 인물중에서 "이삭"을 제일 좋아한 사람은?

   (여기에서 이삭은 보리나 밀의 이삭을 말합니다.) --

""이 이삭을 참 좋아했죠. 이삭을 줍다가 보디발도 만나서 팔자를 고치고

이삭으로 시 어머니인 나오미를 봉양했고 이삭 없으면 아마 못살았을 거에요.

 

5.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가 잡혀가신 동산은?(26:36) -겟세마네-

 

7.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귀영광과 원수 갚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구한 것은?

(왕상3) -지혜-

 

 

6.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사람으로서 기독교 역사상 돌에 맞아

최초로 순교한 사람은 누구인가?(7) -스데반-

 

8.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8복이 있는 데 위로를 받을 복

누가 받는가?(5:4) -애통하는 자-

 

9.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850명과 엘리야 선지자가 이 산에서

대적해서 이겼는데 이 산은 어느 산인가?(왕상18) -갈멜산 -

 

10. (넌센스퀴즈) 애국가에 나오는 산은 모두 몇 개일까요?(정답의

숫자에 O표하도록3(백두산,남산,화려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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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의 성령이 - 워십 베울라 선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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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와 재판장/조용기목사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1~8절

서론

‘과부와 재판장’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갖가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떠한 어려움을 당해도 넉넉히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실망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그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꺼이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론

1. 불의한 재판장과 힘없는 과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한 사람은 과부입니다. 과부는 당시 사회에서 절대적인 약자였습니다. 1세기 당시에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죽으면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주라고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 나오는 과부도 무슨 일인지 몹시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래서 과부는 억울한 마음을 풀기 위해 재판장을 찾아갔습니다.

 재판장은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질서를 가져오는 책임이 있는데, 하필이면 이 과부가 찾아간 재판장은 불의한 재판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 재판장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무시하는 최악의 재판장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힘없고 가난하고 자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 과부를 도와줄 리가 없습니다. 그는 과부의 간청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부가 매일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매일 찾아와서 번거롭게 하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재판장은 ‘빨리 들어줘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내가 달달 볶여서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부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너무나 귀찮아서 마지못해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2.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한나’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한나는 결혼 후 아이가 없어서 브닌나의 멸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남편이 다른 여자 브닌나를 첩으로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나는 첩인 브닌나와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브닌나와 싸운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한나는 누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의 응답으로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야훼께서 기도에 응답을 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다윗도 사울과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답답한 일을 당하고 위기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높여 주셨고 다윗은 그 감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훼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야훼께 아뢰어 이르되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사무엘하 22장 1절~3절). 대단한 구원을 받고 감격을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목표를 가지고 기도를 해야 응답받기 쉽습니다.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재판장을 찾아온 과부는 자기의 원한을 갚아 달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소원이 있으면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꿈과 소원을 바라보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한 이야기를 봅니다. 거북이는 산꼭대기에 세워둔 깃발을 바라보고 꾸준히 올라갔고, 토끼는 열심히 뛰다가 도중에 교만해져서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도중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목표를 바라보고 꾸준히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또 사람들은 기도가 즉시 응답 되지 않으면 낙심을 합니다. 그런데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습니다. 이 대나무는 심은 후 5년 동안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하루에 한 자씩 자라서 6주 만에 15m 이상 자란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하루 이틀 기도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고 도중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기도하면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한겨울에는 나무도 죽은 것처럼 보이고, 논밭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나무줄기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나무줄기에서, 땅속에서 파란 싹이 돋아 오르고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눈에 당장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보이지 않게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8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은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등 따습고 배부르면 간절한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만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를 보십시오. 에스더는 자기 민족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자 3일을 금식한 후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장 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가장 큰 적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낙심하면 싸우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싸워 보기도 전에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민수기 32장 9절은 “그들이 에스겔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을 낙심하게 하여서 야훼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고 말합니다. 낙심 때문에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낙심하면 이미 패배한 것이 됩니다. 마치 권투선수가 싸우려고 링 위에 올라갔다가 1라운드도 싸우지 않고 기권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싸우는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인 것입니다. 오늘 비유를 보면, 원수에 대한 원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 원수는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는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포기하고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상대가 사탄인 이상 물러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 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 6절로 8절에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신명기 10장 17절로 18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니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 모든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

 인생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영을 다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편 81편 10절)고 하셨는데 내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온 것을 평안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굉장히 평안하고 즐겁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땐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을 때 방언으로 한 시간 해도 좋고, 두 시간을 해도 좋고, 방언 기도를 하면 좋은 일이 기도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서대문에 목회할 때입니다. 구역장 한 분이 얼굴이 백지장같이 되어 뛰어와서 저를 만나서 “빨리 같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 기도를 해달라는 겁니까?” 하니까 “우리 남편이 지방의 버스 운전기사인데 돌아올 시간대가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아 알아보니까 남편 버스가 벼랑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사람들과 함께 벼랑에 떨어질 것인데, 지금 벼랑에 달랑달랑 달려있다고 빨리 살려 달라고 하는 겁니다. 저도 그 말을 듣고 나니까 “하나님이여 달랑달랑 달린 버스 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우습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하나님 이 상황을 방언으로 기도할 테니 들어주십시오.” 하고서 그 부인하고 열심히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고함을 쳐서 방언 기도를 하니 마음이 환해지고 평안해졌습니다. 그러자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 기적은 그 지역사회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앞바퀴 두 개가 바위에 걸려서 뒹굴지 아니하고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기 위해서 그렇게 기도의 방향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쁘고 좋을 때 방언 기도하고,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때 방언 기도하고, 무섭고 괴로울 때 방언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기도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 도움이 많이 되는 것입니다. 큰 바다에 파도가 칠 때 우리는 기도로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김남수 권사(금천대교구)

- 사고로 척추 다친 남편 하나님 도움으로 ‘완쾌’

휴일에도 원하던 의사의 집도로 수술 … 빠른 회복
‘좋은 교회’ 만난 덕분에 ‘가족구원’의 기쁨도

 지난해 12월 23일 새벽, 일찍 출근한 남편(이문재 집사)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주차장에서 후진하던 버스에 치여 넘어진 뒤 버스 아래에 허리가 눌렸다. 바퀴에 깔리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사고 후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하필 토요일이라 오후 2시가 넘도록 별다른 조치 없이 기다려야 했다.

 남편은 통증을 호소했고, 우리 가족은 기도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2009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경력이 있어서 가족들 마음은 더욱 초조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예전에 수술을 받은 병원으로 옮길 작정으로 검사한 서류들을 챙겨 병원을 나왔다.

 옮긴 병원에서도 처음에는 병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다급히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다. 고맙게도 병상이 났고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입원한 뒤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는 10년 전 남편을 수술한 선생님이 이번에도 맡아주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려워 보였다. 왜냐하면 이튿날은 주일인 데다 다음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벽에 게시된 의료진의 스케줄을 확인해 보니 우리가 바라는 교수님은 크리스마스인 월요일엔 휴무인지 일정이 없었다. 화요일은 진료 일정으로, 수요일은 수술 일정으로 바빴다.

 나는 아이들과 또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목사님과 함께 진통제를 맞고 누워 있는 남편 곁을 잠시 떠나 병원 내 예배실로 갔다. 우리는 간절하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채 기도했다. “하나님 남편이 수술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보고 계시죠? 다 아시죠?”

 그리고 이튿날 같은 예배실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뒤 병실을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을 수술하신 교수님이 나타나시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얼굴을 보자 우리는 고맙고 기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교수님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신 뒤로 10년 동안 남편은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을 만큼 수술 결과가 좋았으므로 교수님에 대한 우리 가족의 신뢰는 대단했다. 그런 교수님이 “오늘부터 금식하시고 내일 점심 때 쯤 수술합시다” 하고는 자리를 뜨셨다.

 크리스마스 휴일에 수술 일정이 잡힌 셈이었다. 그리고 수술 결과도 대만족이었다. 70세 고령이었음에도 남편의 회복속도는 매우 빨라서 11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척추를 다쳤지만 디스크수술 부위 위쪽이었고 다른 데는 상처가 없었다. 모든 게 참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긴박한 이틀이 기적처럼 지나간 뒤 우리 가족은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고 확신했다.

 32년 전 나는 우편함에 꽂혀 있던 ‘행복으로의 초대’를 보고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교회에서 뛰놀며 성장했고, 중학생 때 성령침례와 방언기도를 받았으나 그 후 잘 사용하지 않아 소멸됐다. 결혼 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와서 교회들을 전전했으나 무엇보다 기도가 갈급했던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행복으로의 초대를 통해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불러주신 셈이었다.

 

나는 인생에서 크고 작은 일을 만날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1남 1녀)도 신앙 안에서 잘 자라서 믿음의 배우자를 만났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대를 이어 신앙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게다가 부모님과 형제들까지 부족한 나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 천국의 소망을 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니 모두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는 자/이영훈목사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나 1:15)

 오늘은 구약 소선지서 가운데 나훔서 1장에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는 자”입니다. 구약성경의 소선지서 가운데 요나서와 나훔서는 똑같이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는데, 그런데 똑같이 니느웨를 향해서 선포하신 말씀이지만 그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말씀을 선포했고, 나훔서는 계속해서 악한 길을 가는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계속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 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1. 심판하시는 하나님

 먼저,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나훔서 1장 2절과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훼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야훼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야훼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야훼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야훼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에 티끌이니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고 우리를 늘 바른길로 가게 하기를 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근데 하나님은 아무 때나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또 참으시다가 결국 돌이키지 않을 때에, 마지막에 가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8절은 말씀하시기를,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말씀합니다. 긍휼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다시 우리가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폴 워셔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고 정죄하신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으시지만,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벌하셔서 공의를 실현하시고 그 거룩하신 이름을 옹호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과 공의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를 보내서 니느웨를 향해 회개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왕과 모든 신하들, 백성들이 금식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그들은 악한 길로, 죄짓는 길로, 방탕한 길로 나아갔습니다.
 150년 후 나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 그들이 교만하여져서 우상을 숭배하고, 악한 일을 행하고, 이방 족속을 짓밟고 그들의 잔인함을 나타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입니다. 나훔서 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임할 때, 그 누구도 주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무너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나와야 합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여주옵소서!” 회개가 빨라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변명하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는 진짜로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처음 선포하신 메시지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입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덩어리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됐지마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꾸 죄의 유혹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그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옵시며’, 그 말씀입니다.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이 죄의 유혹에 우리를 빠지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유혹을 받을 때 회개해야 됩니다. 생각이 잘못될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 욕심, 교만, 탐욕, 더러운 생각, 남을 해하려고 하는 생각, 속이고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려 하는 그 생각의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로 짓는 죄도 많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상대편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좋지 않은 소문을 막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용도 알아보지 않고 먼저 옮기고 나서 봅니다. ‘아니면 말고...’ 그래서 이 잘못된 소식들 때문에, 메시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입힐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끔 상담 오는 그 내용들에 보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들이 있다 합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요즘은 또..., ‘아멘!’ 소리가 크게 여기서 나왔는데..., 요즘은 또 남편이 아내한테 매 맞고 사는 남편이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어쨌거나 폭력은 안 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용서해야 됩니다. 잘못해도 돌이키도록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을 얘기하고, 용서를 얘기하고 있지, 싸움을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마다, 때마다,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내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 돌아 나올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복된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저의 허물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제가 죄덩어리입니다. 제가 교만하여서 남을 짓밟고 상처를 준 것을 용서하여주옵소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2.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

둘째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환난 날에 산성이 되어주십니다. 1장 7절에,
야훼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절망에 처할 때,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산성이 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될 때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몰려옵니다. 사업이 잘될 때,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건강할 때. 그런데 사업이 망하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앉고, 몸이 아파 누우면 하나, 둘 사람이 다 떠나버리고 외롭게 홀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복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산헤립이 이끄는 18만5천의 대군이 유다 나라를 초토화하고 예루살렘을 둘러쌌습니다. 이제 곧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산헤립이 저들을 조롱합니다. 열왕기하 18장 35절에,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야훼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그가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내가 정복한 모든 나라의 신들이 다 굴복하였거늘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편지를 써서 사신에게 들려 보냈습니다. 그를 조롱하는 온갖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받고 너무나 속상하고 원통한데 그 편지를 그대로 들고 성전에 가서 주님 앞에 펴놓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주님 보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모멸하고 짓밟고 이렇게 무시하고 있나이다. 주님 보시옵소서! 하나님을 모르는 저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조롱할 수 있습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9절입니다.
우리 하나님 야훼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야훼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갑니다. 도움을 못 주더라도 내 마음에 그 속상하고 원통한 것을 들어달라고 여기저기에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문제가 어렵게 되고 힘들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의 해결자 되신 주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저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굴에 들어가서 금식하며 눈물로 부르짖을 때 주님이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 절망의 자리에서 저를 건져주시옵소서!” “지금 가정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이 다가왔습니다.” “사업이 파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한 번만 살려주셔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날 밤에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일을 하셨습니다. 만일 이 히스기야가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가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그다음 날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아니하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날 밤에 18만 대군을 다 멸하셔서 그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다 시체가 되었더라.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우리가 열심히 뛰면 하나님 구경만 하세요. “그래 잘해봐라.” “잘해봐라.” 그런데 우리가 어려움 당했고, 문제를 만났고, 중한 질병에 걸려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이 들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에 처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럴 때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시편 136편 1절입니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믿고 나서 그날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감사만 하며 살아야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한평생 감사해야 되고, 어떤 일을 만나도 절대적으로 감사해야 되고, 무조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만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작년 10월 달부터 저희 교회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그분들이 하신 말씀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정말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데, 한 달 수입이 15만원, 20만원밖에 안되는데도 감사해요. 왜 감사하냐? 그 수입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금할 수 있어 감사하고, 예배를 열심히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고. 할렐루야!
 넘치는 감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았으니까 구원받은 그 은혜에 대해서 그저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감사하라고 이렇게 복을 주셨는데 우리의 입술에서 원망과 불평이 안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설탕 통에 설탕이 담겨 있으면 우리는 설탕을 통해서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설탕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설탕이니까 우리에게 단맛을 주는 것입니다. 설탕이 갑자기 쓴맛을 내거나 그 짠맛을 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 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안에서 감사만 나와야 하는데 희한하게 감사 통에서 불평도 나오고 감사도 나오고, 그것은 설탕 속에 소금이 섞여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감사만 하시기 바랍니다. 불평이 나오면 ‘읍’ 닫아버리고 “감사합니다.” 어려워도 감사, 속상해도 감사, 답답해도 감사,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환란 중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1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슴이 숲에서 놀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도 도망가지를 않아요. 보는데 목에 이런 이름표가 달려있었습니다.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 나는 황제의 소유입니다.

 황제의 소유이기 때문에 사냥꾼들이 손을 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황제의 소유인 사슴과 비교할 바가 없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말로 가장 이 세상에서 귀하고 으뜸가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정한 종은 항상 안전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전하고도 조용한 도피처이자 우리의 요새가 되신다. 거기는 어떤 공격도 미칠 수 없으며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다.

 주님이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일을 만나도, 문제를 만나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 당하는 일이 있어도, 질병이 다가와도, 자식이 속을 썩여도, 사업이 곤두박질해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반드시 주님께서 잘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린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긍정 절대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서 한평생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나아가서, 우리는 이 받은 은혜를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1장 15절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나훔 선지자는 이제 니느웨가, 앗수르가 멸망한다는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해야 된다고 선포했습니다. 앗수르는 얼마나 교만하고 얼마나 악했는지 잔인하게 그들의 식민지를 짓밟았습니다. 평화를 빼앗았습니다. “이제 그 앗수르가 망하게 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자. 우리에게 다시 주님께서 평화를 가져다주신다. 평화의 소식을 전하자!”

 여러분, 예수님 믿고 난 다음 우리는 이 구원받은 이 놀라운 사실을 만방에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 보니까,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우리 인간 사이에 참된 평화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과 16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이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이 놀라운 평화의 소식을, 이 놀라운 기쁨의 소식을, 이 놀라운 사랑의 소식을 만방에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로마서에 사도 바울이 인용해서 말씀했습니다. 10장 15절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주여, 우리의 발걸음이 사랑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옵시고, 기쁨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옵시고, 희망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옵시고, 치료와 용서를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전하고,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전하고, 상처 있는 곳에 위로와 용서를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오실 때에 이러한 삶을 산 우리 모두에게 큰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할 참 기쁨의 소식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모르고 죄와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해야 됩니다. 구세주이심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희망의 소식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될 때 장차 주님 오실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하고 하는 칭찬을 다 받게 될 것입니다.

 주일 날만 교회를 겨우 왔다 갔다 하던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한 의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변화되어서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의료선교사가 된 최병한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중국과 아프리카 브룬디, 방글라데시 등 지구촌 곳곳에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최병한 선교사님. 본래 믿음이 없이 부인 따라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던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같은 의사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시간만 나면 나가서 의료선교를 하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지금 안양 샘여성병원 산부인과 과장이시기도 한데요, 그런데 이 아내가 1999년에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의사니까 벌써 진단을 받았을 때, 상태가 굉장히 위중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여러분, 환란이 다가올 때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주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때 주님께 돌아 나오기만 하면 환란이 변하여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과 함께 기도원을 함께 가고 내려오고 하면서 주 앞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 집사람을 살려만 주시면 제가 의료선교사로 나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내를 치유해주셨습니다. 부인이 치유함을 받게 되자 그가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2006년도 57세의 나이에, 자기가 26년간 운영하던 병원을 청산하고 중국에 의료선교사로 나갑니다. 사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서원을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의사가 평생 동안 자기가 하던 그 병원을 다 문 닫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너무 은혜에 감사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병원을 내려놓고 중국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지하 가정교회를 섬기며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중 2012년에 몸에 간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간의 삼분지 일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의사가 한 2년은 쉬어야 된다고 하는데 다시 또 중국으로 복음 전하러 들어갑니다. 그의 아내인 최 권사님의 말씀입니다. “의사는 재발 위험이 있으니 2년 동안 안식하라고 했지만 한 달 만에 선교지로 돌아갔죠. 중국에 대한 그 열정은 눈물 없이는 못 봐요. 결국은 사랑이거든요. 열악한 환경에서 쉬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며 선교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삶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안에 노출되어서 중국에서 선교를 마치고 나와서 아프리카 부룬디에 들어가서 한센병, 옛날에 나병 환자라고 했지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섬기다가 최근에는 로힝야 난민촌에 저들을 섬기는 발걸음을 옮겨 행하고 있습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쫓겨나서 지금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난민촌에 있는 92만 명의 불쌍한 로힝야족. 정말 가장 비참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저들에게 주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이제 지구의 땅끝이라고 하는 그곳에 복음을 들고 주의 사랑 들고 갑니다. 그는 고백을 합니다. “중국 지하 가정교회의 어려운 분들을 돌보고 부룬디에서 한센 환우를 돌보던 때가 40년 의사 생활 중 가장 보람되고 기쁜 때였습니다. 남이 안 가는 곳에 가서 더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마음에 소원을 주신 것 같습니다. 로힝야족을 무슬림으로만 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주면 이분들도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픔이 있는 곳은 어디나 저의 선교지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구원받고 변화된 자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나의 환란 때의 산성인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우리는 복음의 빛을 전하는, 사랑의 빛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주여, 우리의 발걸음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시고, 꿈과 희망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주옵시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예수의 사랑을 전하며 살다가 기쁨으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렇게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데,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한평생 감사하며 살게 하여주옵시고, 회개하며 살게 하여주옵시고, 복음을 전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의 발걸음이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옵소서. 사랑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옵소서. 꿈과 희망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옵소서. 사랑과 용서를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한정희 성도(대학청년국)

-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희망 잃은 집시청년들 보면서 선교사 꿈
가치있는 선교사의 길 선택하고 신학결심


 2014년 독일로 유학을 떠날 때의 나라면 3년 뒤 선교사가 되기 위해 귀국한 나를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꿈과 비전을 품고 신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선교사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 그 때는 분명한 비전은 아니고 막연하게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선교사라는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사진작가가 되어 평신도선교사로 사역하겠다는 꿈만 품었다.

 성인이 된 나는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갔다. 독일에서 베를린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그 곳에서 몇 차례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를 진지하게 마주하게 됐다. 이전에는 선교사는 단지 그 나라에 가서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선교사님들의 사역과 삶 그리고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면서 기존의 생각이 깨어졌다. 심지어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평신도 선교사가 아닌 선교사가 되는 꿈을 품게 된 것이.

 나는 내가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평신도 선교사인지 아니면 선교사로서 온전히 사역을 감당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년 정도는 그 고민을 내려놓고 사진작가가 되기 위한 입시준비에 집중했다. 1년 여를 열심히 공부해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했다. 이제는 결단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하루는 내게 김한수 선교사님이 “세월을 아껴라. 진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결정을 내려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런데 이 말씀이 내게는 기도의 응답으로 다가왔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는 확신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로 단기선교를 처음 갔을 때 집시들이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꿈도 희망도 없는 청년들은 오늘이 전부인 양 오늘을 즐기는 데만 열중했고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쓰레기통에서 놀고 있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에 마음이 아파왔다.

 2년 후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희망이 없던 그 마을에 교회가 세워지고 우리가 복음을 전한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교회의 일꾼이 되어 누구보다 열심히 내일을 위해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슬럼가였던 마을에 큰 도로가 생기는 등 복음이 들어간 곳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목격했다. 나는 단 한 번 단기선교를 갔다 왔을 뿐이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계속 일하고 계셨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때 영혼을 사랑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작년 9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현재 신학교를 다니며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나의 결정에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더 우선이라는 생각에 부모님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았다.
 

최근 나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 부족한 것을 느끼고 어려움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그 부족함을 스스로 채울 것은 채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바라기는 선교사 준비를 마친 후에 그 곳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그러하듯 주님이 주시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 이를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어려움 중에도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부모님도 지금은 누구보다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다. 앞으로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린다. 할렐루야.               

 정리=정승환 기자

 


너 자신을 믿지 말라/조용기목사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립보서 3장 10∼16절)


 지난 4월, 공군 소속 전투기 한 대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추락하여 조종사 두 명이 비참하게 순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고 원인은 구름 속을 비행하던 전투기가 잘 비행을 하지 못하여 조종사의 비행 착각으로 추락했다는 것입니다. 비행 착각이란 눈으로 볼 때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현상인데, 이로 인해 사고가 종종 일어나 모든 조종사들은 육안을 의지하지 않고 계기판을 보는 훈련을 받습니다.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서는 절대 자신의 감각을 믿지 말라. 비행기 특히 악천후 속에서 비행할 때나, 고도가 높아질 때, 공중에서 항로를 이탈했을 때에는 더욱 자기 자신을 믿지 말라. 그때는 계기판만 믿어라.”

 인간의 감각이나 경험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믿을 수 있는 계기판이 필요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의 계기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1. 자기 자신을 믿지 말라

 조종사가 자신의 감각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무신론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삶을 삽니다. 시편 53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한 땅에 가서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행위에 옳은 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죄 중에 빠져서 헤매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이 삶의 주인은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잠언서 16장 25절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망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그러한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삶을 다스리고 돌보실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인생의 폭풍을 만났을 때

 우리 인생에는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거센 폭풍이 몰아쳐서 어디로 가야할지 한치 앞도 길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병에 걸리기도 하고, 잘 되던 사람이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갑작스런 재난을 만나 갑자기 재난을 당하여 큰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살면 낭패에 처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백성들에게 칭송받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삶에는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폭풍을 잠잠하게 하고 큰 위로를 주십니다. 시편 43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3장 2절로 3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야훼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말씀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

 조종사가 계기판을 믿고 따르듯이, 우리는 성경을 믿고 따라가야 됩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15편 11절에 “야훼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야훼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오 너희는 방패시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폭풍우가 수시로 몰아칩니다. 그럴때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계기판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시로 변하는 환경이나 불완전한 자기의 경험을 의지한다면, 안전한 비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정경”이라고 부르는데, 영어로는 “캐논(canon)”이라고 말합니다. 바이블(bible)이라고 하기도 하고 캐논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캐논은 “기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의 기준이 성경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연어는 알을 낳을 때 약 2만 km를 이동해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찾아갑니다. 또 북극제비갈매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남극까지 날아갔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북극으로 돌아오는데, 그 이동 거리가 약 7만 km나 됩니다. 이런 동물들은 몇 만 킬로되는 길도 잘 찾아갑니다. 하지만 양이라는 동물은 시력이 나빠서 쉽게 길을 잃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그런 양에 비유합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짐승보다도 눈이 나쁜 것이 양이라고 합니다. 양은 쉽게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라가야만 맛있는 풀도 먹고 사자의 공격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라고 말씀하고, 요한복음 10장 27절에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에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출애굽기 13장 21절로 22절에 “야훼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척박한 광야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마실 물도 없고,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모래 폭풍과 위험한 뱀과 전갈이 들끓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1장 33절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위험한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이처럼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인생이란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인도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가 그의 말씀을 따라갈 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잠언 16장 20절에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분명한 삶의 목표를 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인생에 비바람이 불고 폭우가 내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하시고 그 삶에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골든벨 문제-11


121. 별이라는 의미, 베냐민지파 아비하일의 딸로 태어났다.

하만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한 자는? 에스더 4: 16-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말 한자. 3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고

기도해 줄을 요청한 자.

(정답-에스더)

 

122. 여호와께서 지명하신 자(여호와께서 세우시다)라는 의미

나는 아나돗 지방에서 힐기야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눈물로 회개를

선포한 선지자. 유다가 70년동안 포로 될것이라고 예언했다.

(정답-예레미야)

 

123. 예루살렘의 부유한 레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래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지만 [이것]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 하였다. 어머니 마리아는 신실한 신앙인이어서 그의 집(이분의 다락방)을 가정 기도회에 참석하고 그의 집을 방문한 사도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마가의 마음에는 신앙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외삼촌인 바나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마가는 베드로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베드로전서 5:13참조)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앙의 열기를 전달받은 혈기 왕성한 청년 마가는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열심도 보였다.

마가는 오랜 연단기간을 거쳐 다시금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공헌을 세우고 위신을 회복하였다. 겁많고 실수를 거듭하던 마가는 주 안에서 그 믿음이 장성해지자 병약한 몸으로 감옥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바울의 곁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다. 또한 마가는 제2복음서인 [이것복음]을 기록하여 로마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기도 했다.

(정답-마가복음)

 

124. 찬양, 찬송이라는 뜻, 유다는 레아의 소생으로서 야곱이 넷째아들이다.

메시야의 후손으로 약속받은 자.

맏며느리 다말과 취중 불륜의 관계를 맺어 베레스와 세라를 낳음(38: 11).

(정답-유다)

 

125.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의 시체를 찾아다가 장사함(19:38-42). (정답-니고데모)

 

126. 정의 의로움이라는 의미?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자.

(정답-멜기세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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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안수집사(은평대교구)

- “전도는 예수님의 지상명령”

성령 체험 후 세상의 즐거움 버리고 주님만 바라봐 
전도에 대한 두려움, 교회성장선교회 통해 기쁨 돼

 나는 원래 다른 교회에 출석하다가 1992년 즈음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아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당시 조용기 목사님의 속사포 같이 빠른 설교를 못알아 듣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부산 출신인 내게 목사님의 설교는 또렷하게 들렸다. 특히 강남기도원에서 성령체험 후 세상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교회 출석을 하면서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술과 담배를 쉽게 끊지 못했었다. 그런데 성령체험 후 놀라운 체험을 했다. 하루는 직장상사 등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는데 담배가 벌레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술은 도저히 목구멍을 넘길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억지로 술을 삼키려다가 그 자리에서 술을 뱉어내 상사의 눈치만 살펴야했다. 그 후로 난 자연스레 술과 담배를 모두 끊게 됐다.

 2003년에 안수집사가 되어 남선교회 봉사실 등에서 봉사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기도 중에 ‘전도’라는 말에 강한 끌림을 받았다.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이기도 한 전도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실상 나는 전도만큼은 참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평소 주일성수하고 봉사도 하면서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직장에서도 쉽게 ‘예수님을 믿으세요’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노방전도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우리 교회의 교회성장선교회였다. 그 곳에서 난 전도학교를 통해 전도에 대한 자신감과 전도 방법에 대해 배우고 매주 토요일이면 선교회 전도활동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며 “예수∼”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갔다. 그래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매주 전도활동에 참여했다. 몇 주 지나니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기도였다. 그 후에는 선교회에서 배운 대로 뜨겁게 기도하고 나가니 어느 곳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하나님은 거의 매주 세사람씩을 내게 붙여주셨다. 한 번은 병원전도를 갔는데 인사를 해도 대꾸도 안하던 분이 차츰 마음의 문을 열더니 내게 기도를 요청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환우도 ‘나도 기도해달라’며 한 번에 두 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있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절대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해 하는 것임을 매 번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일이 바빠도 반드시 매주 금요철야예배는 빼놓지 않고 참석하며 성령의 재충만을 위해 기도한다.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 때 있었던 일이다. 기도회 마지막 날에도 선교회원들과 전도를 나가는데 왜인지 모를 기대감이 가득했다. 금천대교구 성도들과 연합으로 시행된 이날 전도대회에서 나는 시장 서쪽 주택가에서 복음을 전하게 됐다. 마침 주택가에서 나오는 한 젊은이를 붙들고 복음을 전했다. 그 청년은 순간 당황했지만 내 말을 경청하더니 더듬더듬 내게 자신은 중국 흑룡강성에서 한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신학에 꿈을 가지고 믿지 않는 부모와 남동생과 함께 이곳에 왔으며 자신이 다닐 교회와 신학교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만나게 됐다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래서 난 우리 교회의 위치와 예배시간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추후 회원들과 그 청년의 집을 심방하기도 했다. 이 청년은 최근에는 교회성장선교회에 등록해 함께 전도활동도 하며 신학교 진학을 준비 중에 있다. 나는 이 청년을 통해 중국지역에 복음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확신하며 중보하고 있다. 내게 전도는 두려움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큰 기쁨이 됐다. 예수님을 믿는 모두가 이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할렐루야.
 


나니 두려워 말라/이영훈목사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5~29)

 할렐루야! 오늘 마태복음 14장 25절로 29절 말씀 가지고 ‘나니 두려워 말라’ 이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니 두려워 말라’ ‘나니 두려워 말라’   흔히 인생을 고난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모든 인생이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크고 작은 고난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큰 고난이 다가오고, 어떤 이에게는 또 작은 고난이 다가올 수 있어도 고난을 피할 수 있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축복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고난이라고 하는 보자기에 싸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고난의 보자기를 풀 때, 힘들고 어렵지마는 그 보자기를 풀어놓으면 그 안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기자가 시편 119편 71절에 고백하기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고난 중에 문제와 어려움을 당한 분들이 있으면 말씀을 통하여 위로함을 얻고, 어려움을 이겨 내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풍랑을 만날 때

먼저,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기 원합니다. 마태복음 14장 22절로 24절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오천 명,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약 이만 명 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다 보내고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먼저 배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 있어라.” 그리고 홀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중간쯤 들어서 갑자기 바람이 불고 큰 풍랑이 쳐서 저들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됐습니다.  


 왜 저들에게 풍랑이 다가왔습니까?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바다를 항해해나갈 때, 선장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들끼리 먼저 가 있어라.” 그래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곁을 지키겠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면 같이 따라 올라가서 같이 기도해야 되는데, “너희들 먼저 가라.” 그러니까, “예, 가겠습니다.”하고 가는 제자들도 생각해 보면 한참 모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멀리 떠나서 자기들끼리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 큰 풍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 인생의 선장이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면,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면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잘못된 길을 갈 때,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요나라고 하는 선지자에게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 했는데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큰 풍랑을 만나는 기록이 나옵니다. 요나서 1장 3절, 4절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야훼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야훼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야훼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여러분, 고난의 풍랑을 만날 때 먼저 여러분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멀어지지는 않았는가? 내가 내 인생의 길을 주님 없이 나 혼자 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유 없는 풍랑이 없습니다. 모든 풍랑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우리 믿음이 더욱 자라게 하시려고, 더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풍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설교자 토마스 보스턴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고난의 섭리는 모두 회개하라는 하늘의 부름이다. 고난은 ‘그 자리에서 발길을 멈춰 더 나가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재앙을 모면하라는 하늘의 명령이다.

 요한계시록 2장에서도 에베소 교회를 이렇게 주님이 책망하십니다. 2장 4절, 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우리가 처음 은혜 받을 때 모습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처음 은혜 받을 때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이었는지. 처음 은혜 받을 때 말씀을 들을 때 눈물이 나고 마음이 큰 감동이 임하고, 예배드리는 시간이 너무너무 좋아서 예배드리는 시간을 기다리고, 찬송을 불러도 은혜가 되고, 기도를 해도 은혜가 되고, 교회 들어와도 은혜가 되고, 나가도 은혜가 되고 그러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차차 지나가면서 그 감동과 열정이 식어지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교회에 대한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때 돌이키라고 풍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1966년 2월 달에 성령 체험을 했을 때 얼마나 강하게 은혜가 임했는지, 예배만 드리면 눈물이 나고,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나고, 그 눈물이 5년 동안 마르지 않았습니다. 고3이 되니깐 이 고3이 뭔지, 대학이라는 관문 때문에 잠시 눈물이 마르게 되더라고요. 그때를 돌아보면 참 주님 은혜가 너무 감사하고 너무 기쁘고 매 순간순간이 은혜의 시간이요, 축복의 시간이요, 기적의 시간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그 모습을 회복하려고 몸부림칩니다. 60주년을 맞이하며 기도굴에 들어가 기도하는데 주님 말씀하십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첫사랑을 회복해야 된다. 처음의 모습을 회복해야 된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도행전적 교회 모습을 회복해야 된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 저 대조동 그 산골에서 천막을 치고 시작했던 그때의 모습, 서울에서 갈 데가 없는 분들, 가장 힘들고 어렵고 고통당하는 분들이 몰려와서 지내던 그곳, 천막 교회에 가마니를 깔고 예배를 드리던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 교회의 가장 힘들고 어렵고 고통당하는 분들을 먼저 섬겨야 되겠다.’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마음에는 감사가 넘쳐납니다. 은혜가 넘쳐납니다. 팔십 넘으신 노모께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딸을 함께 돌보며 지내신 집을 심방을 갔는데, 제가 은혜를 받고 왔어요. 그 지역장, 구역장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저들을 섬기는지, 저들이 주일날 교회 나오는 그 기쁨 때문에 또 한 주간을 지낸답니다. 그 같은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 예배 때문에 한 주간 행복하고, 주일 예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아무리 문제가 많고 어려움이 많아도 그 문제를 극복해내고, 사업이 곤두박질해도 주님만 붙잡고 다시 사업을 일으키려고 하고, 먹고 살 것이 없어도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가 복음을 전하고, 우리 성도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우리 모두가 주의 사랑으로 하나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2.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풍랑에 대해 둘째로, 우리 주님이 그 풍랑의 바다 위를 걸어오십니다. 14장 25절로 27절은 설명합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밤 4경은 새벽 동트기 전, 가장 캄캄하고 어두운 때입니다. 새벽 3시에서 다섯 시 여섯 시 그때의 그 가장 밤이 깊었을 때, 가장 절망이 깊었을 때, 배가 가라앉기 직전에 바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풍랑의 바다 위를 걸어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우리는 지금 힘들다고 어렵다고 두 손을 놓고 무너지면 안 됩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경제가 완전히 바닥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바닥이기 때문에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에 취해서 경제가 곤두박질해 있는 이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이 진짜로 되면 우리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5만 불 시대, 세계 5위권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이야말로 밤 4경 즈음, 풍랑이 아주 높아진 때와도 같습니다. 이때 우리가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나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지쳐 쓰러져있을 때, 병상에 누워 더 이상 의학적으로는 그 몸이 치료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깊은 절망에 빠져 죽음의 문턱에 와 있을 때, 이때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만이 환란 때 만날 도움이 되십니다. 시편 46편 1절로 3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환란의 때에, 남들이 그 누구도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 홀로 깊은 절망의 밤을 지날 때에, 그 풍랑 위로 주님이 걸어오셔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간절히 찾고 또 찾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42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할렐루야! 간절히 주 앞에 부르짖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반드시 주님께서 풍랑 위를 걸어오셔서 여러분을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시편 40편 1절 2절입니다.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할렐루야! 시편 18편 1절로 3절입니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야훼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풍랑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4장 27절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문제와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주님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안심하라!” “안심하라!”
 어저께, 세브란스 병원에 의사들로서는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해드릴 일이 없습니다.” 우리 장로님 권사님 한 분이 암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곳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참 평안하고 은혜가 충만하더라고요. 왜일까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손을 댈 수는 없지만 하나님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크게 지었는데도 병원이 꽉꽉 환자로 만원이에요. 주여, 주님의 은혜가 이 병원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또 어린이 병동에 가니까 우리 교회 청년국 카리스 선교회의 다니는 젊은 부부의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있는데, 뇌혈전으로 지금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큐베이터에 손을 대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뇌가 다시 정상이 되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들은 지금 큰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풍랑, 아이의 일생이 달린 그 뇌의 혈전의 그 풍랑을 만났지마는 주님이 그 풍랑을 걸어오셔서 그들을 붙들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약속의 말씀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물 위를 걸어간 베드로

 셋째로, 물 위를 걸어간 베드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14장 28절, 29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참 베드로는 다혈질이고 또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주님, 주님이시면 나를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발을 내딛었는데 물 위를 걷게 된 것입니다. 인류 최초로 물 위를 걸어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고 갔으면 되는데, 우선 성격이 급해서 물속에 발을 담그고 가다보니까, ‘내가 지금 어디 있지?’ 옆을 바라보니 풍랑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서 물에 빠집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믿습니다!” 이렇게 해놓고 돌아서 나가다가는 “아이고, 나 죽었네.” 우리가 그렇게 늘 엎치락뒤치락 하는 연약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은 무엇이냐?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고 의심하지 않고 나아가면 기적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맹인 되었던 자에게 예수님께서 실로암에 가서 씻고 오라고 했을 때 가서 눈을 씻고 왔더니 눈이 떠졌습니다. 요한복음 9장 7절입니다.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만일 이 맹인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평생 눈을 못 떴을 것입니다. 주님이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했을 때, “지금 내가 날 때부터 못 보았다고 날 놀리는 것이요?” 성질을 냈더라면 그냥 그대로 맹인으로 있었을 터인데, 믿음으로 가서 눈을 씻었더니 나면서부터 보지 못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듭니다. 믿음으로 없는 것을 있게 만듭니다. 믿음은 기도의 응답을 가져오고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그 믿음의 모습이 이와 같았습니다. 14장 29절, 30절을 보니까,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믿고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믿고 의심하면 베드로처럼 다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됩니다. 견고해야 됩니다. 믿고 구하는 자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시는데, 문제는 우리 믿음이 자꾸 엎치락덮치락 엎치락뒤치락 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우리 삶이 기적으로 바꿔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풍랑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만나면 고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고,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잘 나가던 그 음악가로서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를 마주하게 된 김혁건이라고 하는 분을 소개합니다. ‘더 크로스’ 멤버 가수인데, 이 잘나가던 가수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루아침에 전신마비가 됩니다. 1999년 더 크로스를 결성하고 ‘Don’t cry’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습니다. 실용음악 학원을 열고 사업도 번창하고, 병역도 특전사로서 마치고, 무대 복귀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신호 위반한 차에 부딪쳐 목이 부러지고 전신마비가 됩니다. 전신마비가 되니까 스스로 대소변도 받아내지 못해서, 옆에서 대소변을 다 가리지 못해서 대소변을 옆에서 받아 내줘야 되었고, 2년 동안 누워있으니까 욕창이 나서 온몸이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고 모든 그 수술과 치료 가운데 그는 죽기만을 원했어요. 그런데 목 아래가 완전히 다 마비가 되어 있기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목이 부러져서 믿음으로 이겨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통스러운 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거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대요. 자꾸 눈물을 흘려도 닦지를 못하니까 울음도 참아야 되고, 죽고 싶은 마음도 참아야 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더욱 더 힘들었던 것은 마음의 절망, 그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되고. 그런데 병실의 벽에 이와 같은 성구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치유할 수 없는 이 마음의 병이 있는 나를, 아무도 없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나를,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붙들어주실까?’ 그런데 미국에 유학 갔던 친구가 소식을 듣고 와서 울면서 그를 기도하고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여서 식물인간으로 있던 그가 조금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해서 휠체어에 앉게 되었고, 휠체어 의자에 앉아서 온 지역을 다니며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경희대 실용음악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고, 2015년에는 대중예술 부문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을 받고, 2017년 1월 KBS 2TV에서 ‘불후의 명곡’에 ‘기도’라 하는 노래로 최종 우승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목소리가 참 좋으니까 꼭 유튜브에서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처음에는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요?’ 그런데 이제는 ‘다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만났을까,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 이렇게 축복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다시 노래를 하고 일어서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함께 천국에 갈 수 있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유튜브로 이분 찬양을 여러 곡을 들었는데, 참 하나님이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그를 다시 회복시켜주셔서 그 주신 재능으로 그 좋은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요. 여러분, 그에게 있어서는 고난이 축복의 도구였습니다. 그에게 고난이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그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의 부귀영화 속에 타락의 길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난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인생의 꿈과 비전을 주었고 내일을 향하여 믿음으로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 가운데 어떠한 풍랑을 여러분 만나고 계십니까? 크고 작은 풍랑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문제, 부부 간의 문제, 자녀의 문제, 요즘 자녀의 풍랑이 참 거셉니다. 중학교만 들어가면 풍랑이 일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이 아이를 걷잡을 수가 없어요. 사업의 풍랑, 직장을 잃어버리고 실업자가 되어서 무직자의 풍랑이 다가온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 풍랑에서 좌절하지 말고 풍랑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손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나가 풍랑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로 바꾸는 그러한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의 풍랑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하는 축복의 도구요, 축복의 과정인 것을 믿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예수를 만나 인생이 변화되어 모든 풍랑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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