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조용기목사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시편 91편 1~16절)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시편 91편 11절은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니 어떤 상황에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을 믿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갔습니다.


1. 4차원과 3차원의 대결

 3차원의 눈으로 볼 때, 다윗은 골리앗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약 3미터나 되는 거인이었고 다윗은 한낱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24절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3차원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볼 때, 다윗은 4차원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생각하고 승리를 꿈꾸고 승리를 믿고 승리를 입술의 말로 선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다윗이 전쟁에 나가서 상대가 되지 아니하는 골리앗을 보고 말로써 대항하는 것을 볼 때 깜짝 놀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3차원, 점과 선과 평면과 입체와 그 외에는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그 외에는 없는데 거기에 예수님께서 4차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그 새로운 세계를 예수님은 가지고 와서 여러분에게 열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오늘날 새로운 세계에 삽니다. 3차원 유물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서 바람이 부는 것이 우리가 느껴지나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천국을 소유하고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과 3차원의 대결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역대하를 보면 아사 왕은 구스 사람 백만 명이 쳐들어 왔을 때, 전쟁터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야훼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야훼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역대하 14장1절)” 적군이 백만 명이니 3차원의 눈으로 보면 이미 패배한 것은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사는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주님밖에 도와 줄 이가 없다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역대하 14장 12절에 “야훼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적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3차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눈에 보이는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차원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를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영적인 세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주장인 것입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주파수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또 나이에 따라서도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다릅니다. 그러나 듣지 못한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빛이 없는 곳에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볼 수 없을 뿐이지 사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적외선 카메라로 보면 어둠 속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은 3차원의 세계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런 3차원의 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한 번 따라서 말씀해 주십시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3차원의 세계.” 그런데 그 3차원의 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4차원의 영적 세계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4차원은 한번 따라 말해 주십시오. “4차원은 생각의 세계, 꿈의 세계, 믿음의 세계, 신앙의 고백의 세계.” 4차원의 영성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와 4차원의 영성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4차원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옛날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사람이 되면 그 새사람은 4차원의 영성을 들이고 그 안에서 삽니다. 새사람은 생각을 통해서 살고, 꿈을 꾸고, 믿음을 갖고, 믿음의 고백을 하는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4차원적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오중복음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이 주신 선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죄 사함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룩한 삶을 꿈꿀 수가 있고, 치료와 건강을 꿈꿀 수가 있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복된 삶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 영생 천국을 꿈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오중복음입니다. 오중복음을 우리 삶에 누릴 수가 있게 하는 방법이 4차원의 영성입니다. 첫째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각을 바꾸면 꿈을 품게 되고, 꿈을 품게 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면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습관을 바꾸는 것은 처음이 가장 어렵습니다.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순식간에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생각과 믿음과 꿈과 말 이런 4차원의 영성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도 처음에는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에서 가장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잘못된 식습관으로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습관적으로 폭식을 하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즐겨 먹으면 병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몸의 건강뿐 아니라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언어생활은 영적인 건강에 큰 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도록 훈련을 해야 합니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물론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티븐 코비라는 작가는 이것을 ‘우주선이 지구의 중력을 돌파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우주선이 발사된 후, 지구의 중력을 돌파하고 대기권을 벗어날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모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력을 벗어나기가 힘든데 잘못된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같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어둠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등불을 켜서 방 안이 빛으로 가득 채우면 어둠은 저절로 물러갑니다. 우리의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면 의심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시편 119편 147절에서 148절에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새벽기도 한 사람이 쓴 옛사람의 고백인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인생에 대해 가르치면서 말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 마음속에 선과 악의 싸움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마치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는 것과 같단다.” 그러자 손자가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그럼 할아버지, 두 늑대 중에 어느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는 손자의 질문을 받아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그 늑대가 이긴단다.” 얼마나 간단한 대답입니까? 가슴속에 두 마리의 욕심이라는 늑대가 있는데 늑대가 서로 자기를 지배하려고 하는데 어느 늑대가 지배하느냐? 네가 먹이를 자주 주는 그 늑대가 너를 지배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또 믿음과 의심이 서로 마음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영의 생각이 육의 생각을 이기고 믿음이 의심을 이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삶을 변화시키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시편 147편 15절로 18절에 보면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는 창조적인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에 보면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을 주고 생명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면 생각이 변화되고 꿈과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마음에 의심이 들어올 때,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찬송가의 가사는 대부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믿음의 고백으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를 통해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을 부를 때, 지진이 일어나서 매여 있던 것이 모두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묶인 것들을 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71편을 보면 원수들이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 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라고 위협을 가할 때,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편 71편 12절)”라고 기도하고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시편 71편 14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긍정을 선택한다고, 우리가 잘 아는 류태영 박사님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때 마음에 심은 세 가지 그의 평생을 움직인 원동력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 둘째,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셋째,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 이 세 가지를 마음에 품고 늘 긍정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2절로 7절에 보면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엄청나게 긍정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나이가 젊을 때는 손이 떨리지 않는데 나이를 먹으면 손이 떨리는 것입니다. “손아, 떨리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시편 119편에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며 사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어둠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등불을 켜서 방 안을 빛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면, 의심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습관을 바꾸는 것도, 물론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습관도 계속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험난한 세월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길을 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와 창조의 역사를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안교숙 권사(은평대교구) - 독사에 물린 아들을 살려주신 하나님

 

24년 전, 그러니까 1994년 7월 넷째주일이었다. 나는 예배에 빠지고 동네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일영계곡에 바캉스를 떠났다.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물속에서 뛰쳐나왔다. “엄마 뭔가 이상한 게 내 발꿈치를 물었어요.” 자세히 보니 오른쪽 발목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재빨리 딸의 머리끈을 풀어 아들의 허벅지에 묶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독사에 물렸네요. 독이 이미 퍼졌으니 빨리 큰 병원에 가보세요.” 우리는 서둘러 서울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받았다. 하지만 아홉 살밖에 안 된 아들의 다리는 점점 부어오르고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구토까지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 모습을 바라보는데 가슴은 뛰고 숨도 쉴 수 없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무슨 말로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었다. “살려주십시오, 하나님 살려만 주십시오.” 그렇게 무조건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 가고 의사는 독이 머리까지 오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다.

 “그런데 왜 해독제를 안 쓰세요?”
 “해독제가 외국에서 오는데 도착하려면 3일이 걸려요. 그리고 해독제를 쓴다 해도 쇼크로 사망할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상태가 됐을 때 최후 수단으로 쓸 수 있을 뿐이에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더 캄캄해졌다. 그때서야 지역장님께 중보기도를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응급실 밖으로 나와서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세상 즐거움에 빠져서 주일성수도 안 하고 구역장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주세요.” 한참을 기도한 뒤 응급실에 돌아왔다. 의사는 다시 경고했다.
 “독이 조금만 더 퍼지면…. 게다가 산다고 해도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상처 부위가 썩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절단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거예요.”

 나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서 기도했다. 걷지 못해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고,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주신 생명이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달라고, 살려만 주시면 주일 범하지 않고 구역장 사명 잘 감당하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했다. 아이는 하룻밤을 응급실에서 보낸 뒤 병실로 옮겨졌다. 6인실인데 다들 아들의 상태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혀를 찼다. 다리는 부어서 본래보다 두 배는 되었고, 피부는 뱀가죽처럼 얼룩덜룩했다.

 지역장님이 심방 오셔서 아들 상태를 보고 나서 지역 식구들에게 아침 금식을 부탁한 뒤 병실을 떠나지 않고 아들의 손을 잡고 기도를 계속했다. 나는 그동안 주님 앞에서 온전히 믿음생활을 하지 못한 잘못을 회개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아들이 일어나 앉았다. 의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이제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상태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독이 더 빠지고 붓기가 사라지면 물리치료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아들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제야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이 눈에 보였다. 모두들 기적이 일어났다며 자신들을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다른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주면서 아들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다.

 주님의 은혜로 아들은 건강하게 잘 성장하여 지금은 국방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결혼도 하고 예쁜 딸도 얻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한다.            

정리=이미나 기자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이영훈목사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사도행전 20장 7~12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눕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는가 자신을 살피고 주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날마다 사모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복음성가: 아버지 사랑합니다>

(1절)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경배합니다 아버지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2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경배합니다 예수님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3절)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경배합니다 성령님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모두에게 임하도록, 우리 교회 가운데 임하도록, 주님을 섬기는 모든 주님의 백성들 삶 가운데, 오늘 또 영상을 통해서, TV를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또 모바일로 전 세계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같은 은혜가 임하기 위해서 우리 ‘주여!’ 삼창하고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의 전에 나와 마음과 뜻과 정성 다하여 예배드리오니,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눌린 심령이 자유케 되게 하여주시고, 상처 입은 영혼이 치료받게 하여주시며, 주님의 기쁨과 평안함이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사도행전 20장 7절로 12절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제목을 따라 해주세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
 잠은 몸의 건강을 위해서, 휴식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잠을 잘 때가 있고 깰 때가 있는데, 깨어있어야 할 때 잠을 자면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됩니다. 장거리를 운전하는 분들이 가끔 졸음운전을 해가지고 큰 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깨어있어야 하는데 잠을 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또 열심히 일을 해야 되는데 자꾸 쉬려고 그러고, 잠만 자고 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잠언 서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24장 33절로 34절에,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성공하는 사람들 대부분 보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열심을 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유두고라고 하는 이 청년이, 이 유씨 청년이 말이죠, 예배 시간에 졸다가 떨어져가지고 죽었어요. 야! 참, 성경에 예배 시간에 졸다 떨어져 죽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하필이면, 칭찬받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유두고라는 청년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말씀을 전하는 바울

 먼저, 말씀을 전하는 바울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을 보면 이렇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사도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 때 드로아라는 곳에 갔습니다. 드로아라는 곳은 2차 선교여행 때 가서 복음을 전한 곳이고, 그 후에 그곳에 교회가 서고 교회가 부흥했던 곳입니다. 그곳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많은 성도가 모여와서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언제 모였느냐? 그 주간의 첫날, 그러니까 안식 후 첫날이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일요일, 주일 날에 저들이 모여서 예배드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에서는 토요일 날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그러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 주일이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주일 날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찬을 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 날 예배드리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고,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날 저들이 모여서 말씀 듣고 예배를 드리는데, 다음 날 다른 장소로 이제 사도 바울이 가야 되기 때문에, 지금 가면 사도 바울이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들이 말씀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간절히 사모해서 말씀 듣다 보니까 시간이 막 지나서 밤이 깊어지게 됐어요. 그래서 모든 등불을 다 켜놨습니다. 사도행전 20장 8절에,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여기저기 등불을 켜놓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어야 됩니다. 갈급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이 말씀이 얼마나 내게 참 은혜가 되는지, ‘입에 꿀처럼 달다’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가 새로워지고 힘을 얻고 변화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헤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의 길잡이가 됩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포로 생활하면서 돌아와서 저들이 모여 말씀을 들을 때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 선지자가 말씀을 읽을 때, 다들 다들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말씀 앞에 “아멘” “아멘”하고 엎드렸습니다. 느헤미야 8장 5절, 6절은 설명합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야훼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야훼께 경배하니라

 이 귀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 저들이 누가 일어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성경 말씀을 펴니까 다 일어나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다음 말씀을 들은 다음, “아멘, 아멘”하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얼마나 저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가져다주었던지 저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9절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야훼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얼마나 말씀이 감격이 됐던지 말씀을 들으며 울었습니다. 이 귀한 말씀 70년 동안 우리가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이 사모하는 말씀을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것 회개하며 그 말씀 앞에 감동돼 울었습니다. 성경을 읽기만 해도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임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밤낮 설교를 들어도 말똥말똥. 우리가 은혜에 대한 갈급함과 사모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서 ‘전 성도 1년 1독 이상 읽기’ 성경 읽기를 함께하고 있는데, 교회학교 교사인 김재웅 교사는 올해 벌써 35독을 했어요. 전자 계열 기업의 엔지니어로 일할 때 하루 3시간밖에 성경을 못 읽다가, 지금 독서코치로 일하면서 성경을 많이 읽게 됐습니다. 이분이 속독하는 법을 갖다 가르치고 있는데, 그냥 책 한 권을 몇 시간만 읽으면 다 읽어버려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습관을 끊었습니다. 성경 읽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 보니 술 마시느라 버리는 시간과 돈이 아까웠어요. 세상 것 버리고 나니 하나님이 독서 코치라는 새 길을 열어 주신 셈이지요.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걸 깨달았죠.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 욕심에서 벗어나고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신앙생활을 너무 경솔히 해왔다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서 성경 읽기는 제 삶의 우선순위가 됐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은혜의 말씀입니다. 기적의 말씀입니다. 치료의 말씀입니다. 올 한 해 여러분 열심히 말씀을 읽고 묵상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 읽을 때 말씀이 살아 역사해서, 내 심령을 치료하고 잘못된 것을 잘라내고, 변화시키고, 회복하는, 회복케 하는 놀라운 은혜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고,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과 평안함을 가져다주고, 주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 앞에 늘 깨어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잠을 잔 청년

 둘째로, 잠을 잔 청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합니다. 20장 9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사모해서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데, 유두고는 저 뒷자리 3층 창문턱에 앉아가지고 졸다가, 성경을 보니까 “깊이 졸았다” 그랬어요. 보통 살짝 이렇게 조는 게 아니라, 깊이 잠에 빠져가지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마 ‘쿵!’하고 떨어졌는데, 내려와 보니 즉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졸다가 죽은 첫 번째 사람으로 기록이 됐습니다. 왜 유두고에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느냐?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사모했더라면 절대 이런 일이 없을 텐데, 맨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말씀 듣지 않고 있다가 이러한 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 사랑을 받던 베다니 동네의 한 가정이 있습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의 가정입니다. 예수님이 자주 그 집을 방문하셨는데, 마르다는 예수님 오시면 제자들과 함께 많은 손님이 오기 때문에 언제나 음식 준비하는데 바빴습니다. 막 음식을 준비해가지고 대접하는 것을 참 기쁨으로 알았어요. 어느 교회나 이렇게 손재주가 있어 열심히 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음식 만드는 것보다 맨 앞자리 예수님 발밑에 앉아서 말씀 듣는 걸 좋아했어요. 누가복음 10장 3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그런데 마르다가 열심히 음식을 하다 보니까 바쁜데, 손이 필요한데, 동생은 예수님 앞에 앉아갖고 말씀 ‘어’ 하고 듣고 있거든. 그래서 속이 상했어요. 그래가지고 예수님 말씀 전하는 데 와서, “예수님, 저 마리아가 내가 바쁜데 도와주지도 않고 저러고 앉았다고. 좀 마리아를 나를 도와서 일 좀 하도록 하라.”고 마리아를 비판했습니다. 마르다가 실수한 것은 주님이 말씀을 전하셨는데, 예배를 방해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방해한 거예요. 예수님 말씀을 전하는데 자기가 음식 준비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 말씀을 가로막고 마리아를 비판했으니,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이 말씀을 멈추시고 분위기가 이상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10장 42절에,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가끔 심방을 가면 주의 종이 오신다고 막! 주방에서 음식하는 분들 계세요. 예배드리러 오라는 데도 “아이! 조금만이요, 조금만 좀 있으면 갑니다. 갑니다.” “아니, 예배부터 먼저 드리고...” “아니에요. 다 됐어요. 준비됐어요.” 예배드리러 갔는데 음식 준비한다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예배드리고 끝나고 나서 차 한잔 대접해드리면 됐지. 음식 만드느라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본인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절대로 구경꾼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강대상만 바라보고 말씀을 주목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뒷자리에 앉다 보면 시선이 흐트러집니다. 맨 뒤에 앉아 있으면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저 사람은 왜 부채질하고 앉았나?’ ‘저 사람 저 핸드폰 보고 있네.’ 자꾸 신경이 흐트러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유두고는 사람이 많이 모여서 아! 말씀 듣는데, 또 등불을 켜니까 더우니까 저 뒤에 가서 창틀에 앉아가지고 바람이 선선하게 들어오니,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졸음이 깊이 들어가지고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 쾅 떨어져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받을 때는 욕심을 내야 됩니다. 앞자리에 나와서 이 앞자리가 금 자리니까 나와서 은혜받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여긴 그런 분 없지만, 옛날에 있었어요. 들어오자마자 맨 뒤에 앉아서 팔짱 탁 끼고, 눈도 탁 감고, 아주 쉴 준비를 하고 계신 분이 있어요. 근데 주일 날 와서 이렇게 습관적으로 잠이 들면 영적으로 큰 손해가 있습니다. 유두고의 문제는 영적인 잠을 잤다는 데에 있습니다.

 제가 동경에서 목회할 때에 교회 앞에 그 ‘신주꾸 공원’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그 속에 노숙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성도님들이 가서 전도를 해서 많은 사람이 전도 받고 교회 왔는데, 그중에 전자 제품 큰 상점을 하다가 사업이 안 돼서 문을 닫아, 집에 들어가는 것이 부끄럽다고 노숙하고 있던 사장님 한 분 계셨습니다. 공부도 많이 한 분이에요. 영어도 참 잘하고 그런 분인데, 자존심 때문에 내가 회사 사장으로 있다가 이렇게 문을 닫게 돼서 이제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으니 그곳에서 노숙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분이 전도 받고 교회에 나오는데 주일 날도 안 빠지고, 수요일 날도 안 빠지고, 금요 철야도 안 빠지고. 모든 예배를 열심히 나왔습니다.

 주일 날 교회에 나올 때면 넥타이를 탁 메고 머리도 쫙 이렇게 기름 바르고 나와 앉아 있는데, 찬송도 열심히 따라 부르고. 또 찬양대가 찬양하면 열심히 찬양대도 바라보고 그랬는데, 제가 딱 설교를 시작하면 눈을 벌써 감고 잠을 자기 시작해요. 참 희한해요. 설교 시작하면 잠이 들고 설교 끝나면 잠이 또 딱 깨요. 깨서 눈이 멀쩡해져서 이렇게 쳐다 봐요, 언제 잠이 들었나 할 정도로. 설교만 시작하면 예외 없이 잠이 드니, 제가 설교하다가 자꾸 그분이 눈에 띄는 거예요. 어쩌다 한 번 밤을 세고 와서 한 번은 깜빡 졸 수도 있지요. 그런데 예배 시간만 되면 설교 시작할 때 그냥 계속 주무시니까 제가 어느 날 금요 철야 설교하다가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잠을 자면 안 됩니다. 습관적으로 잠을 자면 마귀들이 와서 안수합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그때 졸다가 그걸 듣고 마귀들이 안수한다고 그러니까 놀래서 막 손을 머리위로 저으시는 거예요. 그 후로  ‘아휴! 졸면 마귀 와서 안수한다는데 내가 졸면 안 되겠구나!’ 정신 차려서 졸음이 올려고 하면 벌써 손으로 막 머리위로 저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그분이 예배 시간에 설교 잘 듣고 안 주무시게 되고 은혜받고 나니까,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서 다시 삶이 회복되었던 것을 제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은혜받아야 되요. 예배 시간에 나와서 은혜받고 한 주간 또 승리하며 살아야지, 이 예배 시간, 이 귀한 시간을 놓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3편 3절에 다윗이 기도했습니다.

야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여러분, 영적인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신앙에 열심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복음 전도자인 베스 모어는 말합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불을 붙이고 경건한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하는 데에는 불변의 두 열쇠가 있어야 한다. 두 열쇠는 기도와 성경 공부이다. 이 두 개의 막대기를 서로 비벼 불을 점화했을 때,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영적 열정의 불길은 타오르게 될 것이다.

 기도에 깨어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깨어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깨어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3. 다시 살아난 청년

 셋째로, 다시 살아난 청년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20장 10절로 11절을 보니까,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마귀의 역사는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역사는 살리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을 때에 사람들이 달려 내려가서 유두고를 살펴보면서 “아이고, 이 청년 죽었네. 큰일 났네! 큰일 났네!” 그때 사도 바울이 내려와서 그 청년을 품에 안고 말했습니다. “떠들지 말라! 떠들지 말라! 이 청년은 살아 있다!”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교회에 어떤 조그만 문제가 있었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막 동네방네 큰 문제가 있다고, 문제가 있다고 막 퍼서 나릅니다. 문제가 있을 때에는 퍼서 나르는 것이 아니라, 껴안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떠들지 말라!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떠들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지 말라.” 품에 안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갔을 때 가는 도중에 딸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막 사람들이 모여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곳에 가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마가복음 5장 39절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리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시고 그 소녀를 살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걸 끌어안고 기도하라고 주신 것이지, 동네방네 떠들면서 오히려 작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사실도 아닌 소문을 진짜처럼 퍼뜨려서 주님 몸 된 교회에 피해를 주는 일이 절대로 절대로 없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는 어떤 경우에도 교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고백만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얘기는 널리 전하고, 좋지 않은 얘기는 품고 기도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부흥시키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둥켜안고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되는 것입니다. 20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이 성경에 기록은 되어있지 않지만, 유두고는 그 후로 평생 동안 예배 시간에 졸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우리에게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 문제가 생겼을 때는 조용히 하고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라! 셋째로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이름을 최권능이라고 불렀던 최봉석 목사님 계십니다. 구한말에 정부 관리로 있다가 공금 횡령의 죄를 뒤집어쓰고 평북 삭주라고 하는 곳에 유배되어 갑니다. 너무 원통해서 밤낮 술을 먹었습니다. 술 취해서 완전히 밑바닥 인생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해서, 그에게 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깊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을 꾸는데, 불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깼습니다. 그로부터 주님을 열심히 섬겼어요. 신학교에 가가지고 주의 종이 되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만주로 파송받았을 때에 12년 동안 교회를 50개나 세웠다고 합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 말을 전하다가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또 두들겨 패고 해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입만 열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한 위대한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평양감옥에 갇혔는데 그를 붙잡아놓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그를 붙잡아놔서 “너 신사참배 왜 반대하냐?” 대답을 안 합니다. 왜 말이 없냐고 때리니까, “예수!” “어? 이 영감탱이가 뭐 하는거야?” 퍽 때리니까 “예수!” 때리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예수!” “예수!” 하니까, 도대체 당신은 할 말이 없냐고. 왜 ‘예수’밖에 소리치지 않냐고 그때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몸 속에는 예수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무리 때려도 예수밖에 나올 것이 없소!“ 1944년 3월 1일, 그가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합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나니까 온몸이 쇠약해져서 그 형무소에서 보니까 곧 죽겠어요. 그래서 빨리 이 영감탱이 데려가라고. 기력이 다 쇠해서 그 감옥에서 병보석으로 나오는데 실려 나오면서도 “예수 천당!” 그래서 나온 지 나흘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지막 유언입니다.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 하신다. 부디 승리하시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 천당’만 외치고 간 이 최권능 목사님을 보면, 우리가 과연 이와 같은 신앙의 열정을 지금 갖고 살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깨어야 합니다. 기도에 깨어있어야 됩니다. 예배에 깨어있어야 됩니다. 말씀에 깨어있어야 됩니다. 전도에 깨어있어야 됩니다. 교회 봉사에 깨어있어야 됩니다. 열정을 회복해야 됩니다. 한 사람도 오늘 이후 영적인 잠에 들지 말고 깨어있어서, 열심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세상의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 우리가 영적인 잠을 자지 않게 하여주시고,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며 사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예수님과 니고데모/조용기목사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5절

‘예수님과 니고데모’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먹지 말라는 과일을 먹고 범죄해서 그 영혼이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해야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 길을 묻는 니고데모

 어느 날 밤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요, 유대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의 회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절에 보면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마음속에 깨달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거듭남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로 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니고데모는 영생의 길을 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길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2.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요한복음 3장 5~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강조한 것은 사람이 부정모혈로 태어나서는 절대로 천당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결코 거듭나지 못합니다. 나무에서 잘려 나와 죽은 나뭇가지에 아무리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정성을 다해 가꾼다 해도, 죽은 가지가 다시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이 죽은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자기 힘으로는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똑똑히 기억하고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구약에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5절로 26절에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미 예언의 말씀을 거기에 주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 요한복음 3장 7절로 8절에 보면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할 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4~16)”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자기들이 믿는 신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빠라고 부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라나면서 아빠라고 친아버지를 부른 적이 있습니까? 저는 한 번도 친아버지를 아빠라고 못 불러 보았습니다. 


3. 삶을 변화시키는 4차원의 영성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4차원의 영성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1~2절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으니 그 권능으로 모든 병과 마음을 고치고, 병든 가정을 고치고,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와 비교조차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우리 말에 귀를 기울여서 들어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야훼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이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복입니까? 대통령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준다는 것도 든든한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말을 듣고 계신다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누리는 권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할 때가 왔습니다. 그 앉은뱅이를 보고 우리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고 했습니다. 오른손을 내밀어 잡고 일으켰더니 뛰고 구르고 고함을 치고 감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이와같이 깨달아 알아서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서 저의 설교를 듣고 아멘 하지만은 여러분 저도 그렇지 겁쟁이들이 되어서 주님이 주신 권세를 받아 사용하지 못 합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는 놀라운 것입니다. 권세를 사용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고치러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마태복음 17장 16절)”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고침을 받고 사람들이 돌아간 후,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태복음 17장 19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쫓아내려고 애를 쓰다가 실패했거든요. “너희 믿음이 적은 까닭이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 17장 20절)”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은 믿음이 작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으며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장 23절)”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자라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시편 107편 19~20절에는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선포할 때, 치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의 꿈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입술로 선포하십시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얼마 전에 구스타보라는 멕시코 사람이 저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만났습니다. 그는 신실한 크리스찬인데,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가, 저에게 꼭 간증할 것이 있다고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2002년 이 분의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져서 생사를 오가고 있었는데, 그때 이 분이 백약이 무효라 혼수에 빠진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 ‘4차원의 영적세계’를 구해서 읽고, 4차원의 영성을 어머니에게 적용하였습니다. 두 손을 어머니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서 외쳐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기도 3분 후에 어머니가 기적같이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왔을 때 저를 꼭 한번 만나고 싶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하나님의 권세로 환경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 3차원의 세계를 다스리시고 변화시키시고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를 얕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변치 않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여러분이 사용하면, 여러분의 권세를 통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실 마귀가 우리를 보면 벌벌 떱니다. 우리가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니깐 마귀가 살아 견디지, 우리가 깨닫고 나면 한 놈도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기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갈 길을 찾았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인생길에 주님이 동행하여 주셔서 능력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상쾌함이니/조용기목사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야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이사야 28장 11~13절)

서론

 이것이 너의 안식이요 상쾌함이니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방언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다른 지역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은사인 방언 역시 하나님과 교통하는 언어로서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본론


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인간이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저주에 처한 것은 아담의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영적인 회복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을 앞뒤에서 응원하고 돌보아줄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자기 몸의 피를 쏟으시고 살을 찢어서 여러분과 나에게 삶을 주신 신은 역사상에 없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속하시고 영적인 회복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회복뿐 아니라 몸과 마음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확실히 붙잡으면 지금보다 훨씬 큰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였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병에서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에 이 오후에 나도 치료가 필요하고 여러분도 치료가 필요하니 우리 치료의 예수님을 받아 들입시다.  


3. 기도를 통해 이기는 삶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있는데, 기도에는 일상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방언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9절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성도들에게 방언을 하게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 보면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방언을 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누구든지 방언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믿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방언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 약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했는데 그때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그들이 사는 지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5절로 8절에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외국어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하게 됨으로써 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주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예전에 한 일본인 성도로부터 들었던 간증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구원을 위해 늘 기도했는데 방언을 받은 후에도 동생의 구원을 위해 방언으로 많이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 동생은 이탈리아의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갑자기 방언 기도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동생이 전화를 받았는데도 방언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모시모시, 모시모시가 달구모시도 아니고 사람모시로 보는데 자꾸 방언이 나옵니다. 얼마 후 방언이 멈추고 나자 성도님이 동생에게 방금 있었던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말하기를 “누나가 지금 이태리어로 나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 누나는 이태리어를 전혀 모르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는 누나가 이탈리아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고 그 동생이 마침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간증했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방언은 하나님만이 그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비밀히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우리가 속사정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믿을 사람이 없어서 혹은 다들 사는 게 바빠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설사 마음을 털어놓아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더 외롭고 또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사정과 마음속에 있는 고민을 하나님께 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시편 62편 8절은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넉넉히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는 나가서 기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방언으로 기도하면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성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으로 기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종로에 살았는데 남편은 형사였어요. 그 남편은 교회를 안 나오고 권사님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권사님이 구역 예배에 가는 도중, 갑자기 마음이 위기감이 느껴지며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디에 조용한 데가 없어서 전봇대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막 기도하는데 아는 기도로 해서 무슨 뜻이 있습니까? 방언으로 막 기도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미친 사람인 줄 알고 돌아볼 때까지 방언으로 기도를 했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평안하고 가벼워져서 구역 예배에 가서 예배를 다 드리고 집으로 갔더니 그 사이 집에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도둑이 서랍을 샅샅이 다 뒤졌는데 금붙이와 현금이 든 보따리만 그대로 둔 것입니다. 권사님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도둑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저도 그런 체험을 종종 합니다. 뭘 기도해야 할지 모르지만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기도하라는 재촉하는 것입니다.

 제가 해외 나가서 선교할 때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되는데,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30분이나 1시간 기도하고 나면 믿음이 꽉 들어차게 되고 대중 앞에 담대하게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해 얼마나 절실한 기도인지 감탄할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면 더 오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린도전서 14장15절)”고 말합니다. 자신이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이렇게 기도하면 몇 시간도 기도하고 밤새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피곤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피곤하면 아는 말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방언으로 스위치 해가면서 기도하면 몇 시간이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주십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26절로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기도해주시는 그런 특권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항상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장16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도 혼자 외로운 삶을 살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성령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를 못하고 너무 피곤해서 기도 못하고 너무 고난을 당해서 낙심해서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어지간한 고난을 당할 때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이렇게 탄식하고 기도하지만 너무 큰 고난을 당하면 기도조차 나오지 않고 다리를 뻗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어도 성령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항상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장 16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그런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막막해서 기도할 수가 없을 때, 그럴 때는 성령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입니다. 성령님,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함께 기도하십시다. 입술을 열어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과 직접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방언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는 것, 기도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악한 마귀의 궤계를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는 말로써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할 때, 성령께서 다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유 없이 슬퍼지고 비정상적인 것은 많은 경우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쫓겨나갑니다.

 저도 이런 것을 종종 체험합니다. 미운 사람도 없고 싸운 적도 없고 답답한 일도 별로 없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 마음이 왜 이렇습니까?”하고 기도하면 “방언 기도를 하라.” 그렇게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을 열어놓고 방언으로 기도해서 “하나님, 제 마음이 하나님 앞에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너희 짐을 내가 맡았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방언으로 한참 기도하다 보면 귀신이 하나 둘 떠나가고 마침내 마음이 평안해졌고 조용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늘 함께 있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도와줄 수 없습니다. 또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있어도 도와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다릅니다.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도움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부르는데 이는 ‘돕기 위해 옆에 와 계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도움을 위해서 항상 같이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혜사라는 말은 참 중요하니 한 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나와 같이 계신자.” 이 보혜사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박수로 환영하십시다. 성령께서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즉시 내주하시는데 우리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여주실 것입니다. 아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이영훈목사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16~18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이번 수요일은 우리나라의 광복절입니다. 일본에 36년 지배를 받다가 1945년 8월 15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해방된 날입니다. 해방된지 73년.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깐 우리 대한민국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북한은 소련 공산주의가, 남한은 미국이 3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민주주의를 심어서 1948년 8월 15일 70년 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70년 동안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셔서 아시아 최대 기독교 국가가 되게 만들어주셨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70년 만에 이제 북한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이제 남북통일이 되는 날이 우리 살아생전에 곧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70년 동안 사상과 이념 체계가 다른 분단 국가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북한으로 들어가서 북한의 2500만의 마음의 문을 변화시켜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주님, 이땅에 평화가 임하여서 남북이 통일이 되게 해주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북한에 증거되게 해주시옵소서! 그 마음을 가지고 찬양합니다.

 
오늘은 고린도후서 4장 16부터 18절의 말씀을 가지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힘은 우리가 예수를 믿은 그 순간부터 날마다 새로워지는인생을 산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구세주로 모시고, 내 마음에 영생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그러한 변화된 삶을, 새로워지는 삶을 산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의 겉사람은 날마다 낡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1. 낡아지는 인생

먼저, 낡아지는 인생에 대해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말씀 그대로 우리의 겉사람, 우리의 육신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낡아지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른이 되는 것이에요, 어른!”  “왜 네 소원이 어른이 되는 것이냐?”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도 내가 먹을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잖아요! 그래서 어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에요. 꿈이에요.”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보면 내가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경제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경제를 헤쳐나가는 것이 삶의 고통입니다. 그래 살려고 애쓰다보니까 금방 중년에 접어들고,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가 히끗히끗해지면서 노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참 세월이 빠르다. 어떻게 이렇게 세월이 금방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열 살 때 우리 순복음교회에 첫발을 디뎌가지고, 늘 그 순간에 머무를 줄 알았는데 벌써 훌쩍 55년이 지나가지고 60대 중반이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안 보이죠?
 ‘참 세월이 빨리 지나는구나.’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서 황혼의 저녁이 오면 꿈도 잃어버리고 이제 하루하루 나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지내는 그런 시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을 풀에 비유하며 인생의 아름다움을 꽃에 비유합니다. 이사야 40장 6절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야고보서 1장 11절입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지금 이 풀이 푸르고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 풀은 시들어 버리고 꽃도 시들어져서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 풀처럼 시들어가는 인생인 줄 알면서도, 이 세상이 전부인 냥 이 세상 것을 더 얻을려고 몸부림치면서 살아갑니다. 남을 짓밟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도 내가 또 잘되고 더 많은 것을 모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놓고 가야 합니다. 빈손 들고 온 인생이 빈손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 앞에 장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바라보면서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됩니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역동 우학의 시가 생각납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하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모든 것이 다 변하고 세월을 이길 수 없지만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축복과 기적과 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25절은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낡아져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의 말씀에 우리의 신앙의 토대를 세우고 말씀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될 것입니다. 겉사람은 낡아지지만 그러나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2. 새로워지는 인생

둘째로, 새로워지는 인생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 육신, 겉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지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모신 우리의 속사람, 영에 속한 사람, 새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날로 날로 새로워지도다!”

 할렐루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의 두려움 앞에 두려워 떱니다. 미국에 있을 때 그 교회 장로님이 저한테 해주신 말씀이 늘 기억됩니다. 그분은 한국에 법무부 장관을 지내신 분의 동생이신데, 아주 저명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었던 분입니다. 그런데 아주 돈이 많은 회사 사장이 있는데, 그분에게 예수 믿으라고 그렇게 전도를 해도 “예수 믿으면 밥 먹여줘?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여.” 그래가지고 그렇게 전도하고 또 전도했는데도 교회를 안 나왔답니다. 그리고 사업 상 늘 거래처 사장님들을 만나고 그러다보니까 매일 밤마다 그냥 술을 마시고, 담배는 줄담배로 하루 종일 몇 갑씩 피고 그러다가, 어느 날 몸이 상태가 안 좋아서 가보니까 간암 말기라,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40년 전에, 지금은 많이 의학이 발달해서 왠만한 암은 다 치료합니다. 뭐, 암은 병도 아니라고 합니다. 40년 전에는 간암 말기면 의사들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쉬십시오.” 그런 때입니다.

 돈이 많으니까 병원 큰 특실을 얻어가지고 독방을 쓰면서 소리 소리를 지릅니다. “돈을 얼마든지 줄테니까 날 고쳐내라!”고.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 암의 고통에 진통제를 놔주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는 거에요. “내 병 고쳐내!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까 내 병 고쳐내!” 담배를 못 끊어가지고, 병실에서 절대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데 의사, 간호사가 나가면 침대 밑에서 담배 숨겨놨다가 피고, 의사 선생님한테 야단 맞으면서 담배 피우고. 그런데도 예수님을 안 믿더래요. 그때라도 예수님 믿었더라면 마지막 죽는 순간만은 저 천국으로 가는 가장 복된 시간이 되었을 텐데. 그분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세요? 옆에 있는 재떨이 들어가지고, “나 살려내!” 하고 재떨이 던지고 죽었대요. “살래!”하고 죽은 거예요.

 참, 인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마쳐지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고 사는 인생은 이렇게 허무한 거예요.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여러분 마음 가운데 와 계시기 때문에. 뿐만아니라 우리에게는 우리 심령에 이미 천국이 이뤄져있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 생활하다가 장차 우리의 본향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내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내가 천국에 가게 되니까 오히려 나는 더 주님 앞에 감사할 수 있다.”는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늘 천국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날마다 거룩한 꿈을 꾸며 인생을 가장 의미있고 보람되고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26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우리의 욕심, 교만, 미움, 원망, 불평, 섭섭함은 다 못 박아버리고 주님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져서 기쁨, 은혜, 감사, 평안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에베소서 5장 18절은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제임스 패커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정적인 신앙인은 자신이 살든 죽든, 건강하든 병들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 무엇에도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만을 위해 불타오른다.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몸이 노쇠해져도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열정만은 끝까지 요지부동이어야 한다. 날마다, 온종일 그래야 한다!
 겉사람은 낡아져도 여러분 마음이 늘 새로워져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쁨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다가오는 하루하루 그 모든 날들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의미있고, 가장 기쁨이 넘치는 그러한 날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이제 성경을 읽는 부분이 출애굽기입니다. 이제 세 번째 성경 읽거든요. 그런데 출애굽기를 읽다보니까, 무엇을 발견했느냐? 모세가 80세에 사역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오늘 나이 많이 드신 분들에게 위로와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생은 80부터!” 40세에 모세가 “내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 했을 때,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는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돼서 왕자의 신분에서 그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도망자의 신분으로 미디안 광야로 그가 도망쳐 40년을 살게 됩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더운 사막 지대, 광야에서 양들을 돌봐야 되는 그러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점점점 나이가 들어 80이 되어 인생 황혼기가 됐을 때, 그의 꿈도 사라지고 희망도 다 사라지고 ‘이제 이렇게 나의 인생 끝나는구나’ 할 때에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80세에 새로운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80세에 그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80세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무려 120세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어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면서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왔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부터가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가 중요한 것입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모세처럼 믿음으로 전전해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열정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10절로 13절에 권면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할렐루야! 영국의 유명한 크리스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가장 좋은 날은 이제부터’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나와 함께 늙어가세
가장 좋은 날은 이제부터네
인생의 끝을 위해 처음이 지어졌으니
우리의 일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네
분은 말씀하셨네
“모든 것은 내가 계획하였노라
젊은 시절은 겨우 반절만 보여줄 뿐이다
나를 믿어라
전체를 보아라
두려워하지 마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3.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된 미래

 오늘 우리가 셋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스러운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4장 17절, 18절은 설명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환란을 당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잠시 당하는 환란이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너무나 내게 그 환란이 크게 느껴집니다. 나에게만 환란이 오래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잠깐 지나가는 환란이고 그 환란은 경한 것, 가벼운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영광은 크고 영광스러운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담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장차 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보면, 우리가 갈 영광스러운 천국에 대하여 설명이 나옵니다. 21장 3절, 4절 말씀을 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 다음부터 참 감동적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2장 3절로 5절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할렐루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는 결국 먼 훗날 언젠가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주님이 오라 부르시면 우리는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마는 우리가 오늘 사는 이 하루가 내게 주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주님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있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 믿은 사람들은 절대로 적당히 살아서는 안됩니다. ‘적당히, 적당히’ 절대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무에게나 주는 축복이 아니라,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딱 무장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거 안 고치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누릴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뒤덮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내용도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0.0001 퍼센트도 부정적인 사람들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얘기는 차단해버리고, 긍정의 얘기는 널리 전하여서 모두가 주 안에서 같이 믿음이 성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로 2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거룩한 꿈을 꾸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십시다. 야고보서 1장 12절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잠시 잠깐 환란이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오지만, 믿음으로 참고 견디고 승리하면 우리 모두에게 주겠다는 큰 상급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엉망진창인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오늘 이후로는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날마다 새롭게 사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주 앞에 가는 그날까지 중단 없는 전진,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2월 21일,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99세를 일기로 천국에 가셨습니다. 원래 아버지 목장에서 젖소의 젖을 짜던 소년입니다. 그냥 ‘나는 나중에 야구 선수가 될래’ 하는 소박한 꿈을 갖던 평범한 소년이, 열여섯 살 때 모데카이 햄 목사님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그가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고 ‘나의 남은 여생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예배 자주 나와야되요. 언제 어느 순간 운명을 바꾸는 그런 은혜가 임할 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예배를 빠지면 안 됩니다.

그 예배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일생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스물한 살에 목사가 되고, 그리고 그로부터 11년 후에 1950년 ‘빌리 그레이엄 복음 전도협회’를 설립하고 전 세계 복음 전도 사역을 하는데, 그의 업적을 살펴보면 이와 같습니다. ‘전 세계 185개국 이상을 다니며 2억1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라디오 청취와 텔레비전 시청을 포함해서 그의 설교를 들은 청중이 22억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 인구 삼분의 일이나 되요.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12명의 미국 대통령들의 영적 멘토 역할을 담당했고,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인물 20명 중에 한 명으로 선정이 됬습니다.’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그의 사모님은 평양에서 학교를 다녔고, 본인은 1952년 6·25 전쟁 당시 서울과 부산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피난민들을 말씀으로 위로했고, 또 1956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서울에 와서 부흥회를 했고, 그리고 한국 역사에 길이 남는 1973년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대성회에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연인원 334만 명, 결신자 4만4천 명을 기록한 대성회를 인도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1973년도가 지금 45년 전인데, 그 당시 334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그는 이와같이 고백을 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내 속에서 가장 깊이 우러나오는 감정은 넘치는 감사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사역을 통해서 하신 모든 일에 나는 조금도 공로를 취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내 일생의 유일한 목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노년에 그는 ‘천국 소망’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나는 천국으로 가는 그 영광스러운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손자 윌 그레이엄 목사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전에 그가 말하기를, “언젠가 너는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야. 하지만 그것을 믿지 마렴.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이란다. 나는 단지 주소만 바꿀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지금 샬롯에 잠깐 머물러 있지만, 죽는 그 순간 나는 내 영원한 본향인 천국으로 가게 되기 때문에, 주소만 바뀌는 것 뿐이지 나는 영원히 살아있을꺼야!”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낡아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날마다 천국 소망을 가지고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서 하나님 영광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감사와 감격하는 그 모습으로 우리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다가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 앞에 가는 그날까지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서 하나님 영광 위해 살다가 우리 주님 맞이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그 사랑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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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골든벨 문제-17

모세오경(, , , , )


11. 물에 있는 고기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을 쓰라(11:9-12)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

      

12.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았을 때 그 아이에 대하여

      명한것을 쓰라(12:2-4)  

    (제 팔일에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

      

13. 제사장이 피부에 병을 진찰하여 문둥병으로 진단을 내리는 증거를 써라  

    (13:1-8) (환처에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 졌으며 이문둥병의 환처라)

      

14. 문둥병 환자가 정결케 되면 먼저 그를 누구에게로 데려가게 규정되었는가?

         (14:1-9) (먼저 제사장에게 데리고 감)

 

15.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자에 대한 벌과 그렇게 하는 것을 못 본체 하는

      자에 대한 벌을 쓰라(20:1-5)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들이 돌로 칠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를 백성 중에 서 끊으시리라)

     

16. 여호와께 예물을 드릴 때 흠 있는 것을 드리지 말라고 명한 뜻은 무엇인가 

    (22:17-21 ) 

 

17. 속죄일에 백성들이 각기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23:26-30)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 하는 것이다 

 

18. 안식년의 의의를 요약하여 쓰라(25:1-8)  

    (6년 동안 밭에 파종하여 그 열매를 거들 것이라 제 7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 하게 할 것)

   

19. 희년의 규례를 요약해서 쓰라(25:8-12)  

    (일곱 안식년을 계수하면 49년이요 제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 를 공포하고 이해를 희년으로 지킴 

      

20. 화목제 드리는 예물의 동물종류를 써라(3:1-7)  

    (소 양 염소)

   

 


사랑의 실천

 

나는 김성준 선교사님과 같이 지내면서 그분의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사랑을 볼 때마다 참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내가 목사로서 이분처럼 구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열정을 가졌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당신은 왜 선교사로 갔습니까.”하고 그분께 물었더니 그 야만인 지역은 전파가 통하지 않습니다.

또 글이 없어서 책을 줘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몸으로 직접 가는 방법 외에는

다르게 그들을 사랑하는 표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사랑으로 옮겨 행할 때는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사람들의 감정은 부풀어 올랐습니다. 사랑해야겠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 설교, 예수님의 실재설교, 사랑의 그 많은 설교 앞에, 예수님의 사랑의 행동 앞에

제자들과 사람들은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누가 높은가하는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실재적으로 사랑할 때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기위해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친히 대야에 물을 떠오시고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면서 자신의 몸 전체로 사랑의 수고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은 실제로 어렵습니다. 참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치루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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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집사(금천대교구)

-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아세요

암 직전에 발견, 투병 생활 없이 회복
건강 찾은 후 봉사하는 삶의 기쁨 얻어

 결혼 직후 임신을 했다. 기쁨도 잠시 난소에 물혹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것 때문에 아이를 잃게 됐다. 이후 3년간 두 번이나 계류 유산을 했다.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러던 중 감기에 걸려 항생제까지 먹었는데 뒤늦게 임신사실을 알았다. 병원에서는 중절을 권했다. 간절히 기다렸던 아이인데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수술대에 누웠다. 의사가 자꾸 이상하다고 했다. 아무리해도 마취가 안되고 또 자궁문도 열리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며 방법이 없다며 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신기한 일에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아이를 품고 있는 열달 내내 예배란 예배는 모두 찾아 드렸다. 그리고 드디어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들은 심방중격결손증이 있었지만 건강하게 자랐다. 7살에 수술을 했고 12시간의 긴 수술 시간 동안 친정 고모님이 기도를 해주셨는데 아이 옆에 예수님이 지켜주시는 모습을 보셨다고 했다.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감사해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5년 전 소화가 안 되서 약을 먹었는데 잘 낫지를 않아 병원에 갔다. 검사 때 대장에서 용종 하나를 떼었다는 소리를 들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조직 검사 결과 암이었다. 수술하기는 애매했지만 일단 혈관을 2㎝ 정로 타고 올라갔다고 해서 수술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암이라니 나에게 왜 이런 병이 생겼나,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걱정과 근심으로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정말 운이 좋은 분이라며 너무 미세해서 발견되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항암치료도 방사선 치료도 받을 일이 없었다.

 수술 후 나는 똑같은 생활로 돌아가 바쁘게 직장 생활하며 세상에 젖어 살았다. 일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 뭔가 몸이 이상한 것 같아 병원에 갔는데 이번에는 유방암이 발견됐다. 육안으로도 확인이 안 되고 아주 작은 몇 개가 있는데 다발성암이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심각하게 이야기 했다. 주변에서 투병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게 치료 받는 것을 봐서 제발 항암치료를 안받았으면 하고 기도했다. 밤을 새우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 순간 비로소 내가 그전에 서원기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똑같이 세상으로 나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술 4일 후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을 때 의사로부터 ‘정말 운이 좋은 분이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상피내암인데 암이 되기 전 0기에서 발견이 됐다고 한다. 대장암이 발견 됐을 때와 똑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종교를 갖고 계신 분이냐고도 질문했다. 내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그분은 ‘정말 신이 계시나 보네요’라고 말하셨다. 

 수술 후 몸을 회복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기도처에서 여선교회 봉사자가 부족해 굉장히 힘들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술 부위가 아물자마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도 아셔서 평일에는 어린이집 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다.

 내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유아교육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교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는데 병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공부를 잘 마쳤고 더욱 소중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가장 감사한 것은 불신 가정에 시집을 가서 오랜 세월 남편을 위해 기도한 것이 응답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집안에서 제사 때 절하는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렸는데 이제 남편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가 됐다.   

 언제나 함께 하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이 건강을 허락해주시는 그날까지 봉사하며 기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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