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3대신앙/이영훈목사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야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세기 28장 18~22절)


 오늘은 창세기 28장 18절로 22절 말씀을 가지고 “야곱의 3대 신앙”,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3대 신앙” “야곱의 3대 신앙”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없고, 더 큰 축복이 없고,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죄와 절망 가운데 살다가, 거기서 우리 인생이 마쳐지면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는 운명이었는데,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내가 택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렇게 주님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게 되었으니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우리들이 한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면 우리 일생은 복된 일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야곱이 형의 미움을 받아서 그 집에 같이 있을 수가 없어, 집을 떠나 먼 길을 가다가 광야에서 잠이 들게 되었고, 잠을 자는 가운데 그가 하나님을 만난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잠에서 깨어나고 난 다음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리는데, 이 기도 가운데 세 가지의, 우리의 야곱의 신앙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첫째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입니다. 창세기 28장 20절 21절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야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그가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까지 가야 했었는데, 그 거리가 무려 800 km입니다.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말을 타고 간 것도 아니고, 혼자 그냥 보따리 짐 하나 메고 가는 것입니다. 정처 없이 가는데 그 길이 또 광야 길입니다. 가도 가도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다가 어디를 둘러보아도 쉴 데가 없어 그냥 광야 한 바닥에 푹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돌을 굴러다가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는데, 외롭고 힘들고 피곤하고 지쳐 쓰러져있는 그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늘부터 사닥다리가 촤악 내려오더니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그 위를 올려다보니 빛나는 광채 속에 하나님이 계셨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래서 야곱이 너무 너무 감동을 하고 탁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서 그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16절에,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야훼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0절, 21절에,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야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야훼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여주셔서 나를 돌봐주시고, 내가 무사히 다시 부모님 계신 곳으로 돌아오게 만들어주신다면, 나를 그렇게 이끌어주신다면 나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야곱이 살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유익을 따라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또 두려워하는 존재들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하늘에 해를 섬기고, 달을 섬기고, 큰 바위를 섬기고 나무를 섬기고 어부들은 바다를 섬기고. 각자 자기에게 복을 달라고 많은 신을 섬겼는데, 야곱은 고백하기를 나는 이러한 어떤 신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면 그것이 다 우상이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우상이 뭐냐? 물질이라고 하는 우상입니다. 돈이라고 하는 우상입니다.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여!’ 그래 가지고 돈을 섬겨요. 요즘은 그런 일이 흔치는 않지만, 옛날에는 건물을 지을 때는요, 고사를 지내는데 거기다가 돼지머리를 갖다 놓고 돼지 입에다가 돈을 갖다 이렇게 물렸어요. 물려 가지고 복 달라고 그랬어요. 아니, 돼지머리가 건축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게 아닌데 말이지요. 사람들이 그만큼 미신적으로 섬기면서 돼지머리에다가 돈을 물려놓고 복 달라고 그랬어요.

 이 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돈을 주시는 것은 잘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돈은 잘 쓰라고 주신 거예요. 움켜쥐고 있으면 그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돈은 잘 쓰라고 주신 것이고, 섬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베풀고 쓰라고 주신 것인데, 돈을 섬기니까 탐욕이 들어와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그렇게 의가 좋았던 형제들이 부모님이 재산을 많이 남겨놓고 가서, 세상을 떠나시면 재산 때문에 막 장례식 중에 막 싸우는 거예요. 싸우다 못해 재판 걸고 소송하고 완전히 원수가 되요. 물질이 무엇이관데 물질이 우상이 되어가지고 우리에게, 가정의 화목이 깨지고 형제들이 원수가 되는지요.

 그리고 우리가 조심해야 될 우상 중의 하나는 권력이라고 하는 우상이 있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꼭 부패하게 되어있어요. 권력을 오래 쥔 사람의 말로가 아름다운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왜? 권력은 썩기 때문에. 권력은 섬기라고 준 것인데, 권력을 내 것인 줄 알고 휘두르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 총리가 총리가 되고 난 다음, ‘내가 다 가졌다’ 해서 돈을 막 끌어 모았대요. 결국 그는 백성들이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전의 총리가 너무나 그들의 존경받는 총리였기 때문에 다시 세웠는데 나이가 93세에요.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목사님 만나니까, 지난번 총리가 너무나 많은 돈을 갖다 그가 횡령을 해가지고, 모든 재산을 환수하고 감옥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을 거라고 그러더라구요. 권력이 그를 그렇게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생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을 따라 살지 말고, 물질을 따라 살지 말고, 권력을 따라 살지 말고, 만군의 주 야훼, 우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교회를 세우는 신앙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교회 중심의 신앙입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 교회를 세우는 신앙. 창세기 28장 22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잠에서 깨어난 다음 자기가 누워서 베개로 베고 자던 돌을 세워가지고 기름을 붓고,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임을 고백했습니다. 28장 16절, 17절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야훼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아무리 건물을 잘 지어놓고, 그 인테리어를 잘해놨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안 계시면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그냥 건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성령의 은혜가 넘쳐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 되었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해야 되요. 하나님의 집이니까 함부로 굴리면 안 됩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인 우리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라기보다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곳이 건물이지, 진짜 교회의 참모습은 우리들의 모임입니다. 이 교회는 구원의 방주요, 선교센터요, 축복의 통로요,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열흘째 되는 날 성령이 임해서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고 계신 것입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돌에 기름을 붓고 나서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하였는데, 벧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8장 18절, 19절입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벧엘’이라는 말은 두 단어가 합쳐진 말인데, ‘벧’하고 ‘엘’인데 이 ‘베이트’라고 하는 말은 ‘집’이고, ‘엘’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벧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 그런 뜻인데,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구별되어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주님 앞에 드려진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 일생동안 우리의 신앙이 교회 중심의 신앙, 예배 중심의 신앙, 십자가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머리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 23절은 설명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의 머리가 누구라고요? 예수 그리스도. 그럼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되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들어야 되요. 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이 교회의 최고 주권자도 예수님이시고, 이 교회에서 우리가 지키고 따라야 될 것이 예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절대로 교회를 인간의 왕국으로 세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이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예수님이 거하는 주님의 전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나올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620년 영국을 떠나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의 동북부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1620년 늦가을에 미국의 동북부 쪽에 도착을 했는데, 그 먼 길을 와서 피곤하고 지치고 어떤 분은 몸이 쇠약해서 아픈데,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온 것이고, 예수 잘 믿기 위해서 온 것이니까 교회부터 짓자!” 교회를 잘 지어놨어요.
 이것이 바로 미국의 건국 정신인것입니다. 미국이 세워진 것은 예수를 잘 믿기 위해서 믿음의 조상들이 와서 세운 것이 바로 미국이 세워진 그 기초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외 없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성경책에 딱 손을 얹고 선서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백성을 잘 섬기겠습니다.” 대통령 선서 맨 마지막이 “So help me, God! 내가 이렇게 이 백성을 잘 섬길 때 하나님 날 도와주세요! 하나님 나 도와주세요.” 선서의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미국을 복 주시고 복 주신 것입니다.

 말씀에 선 나라, 교회 중심의 신앙을 가진 그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주셔서,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플리머스를 방문에 보니까 400년이 지났는데도 교회가 견고히 서있어요. 할렐루야! 여러분의 신앙이 교회 중심의 신앙, 예배 중심의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 70년이 지났을 때, 회개하고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주후 70년, 지금부터 약 1900년 전에 로마의 디도 대장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나라가 사라져버렸습니다. 1900년 동안 전 세계를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뭐냐면, 그들이 정착할 곳에 가서 그곳에 성전을 세운 일입니다. 회당을 세웠습니다. 회당을 세워놓고, 회당을 중심으로 마을을 만들어서, 그들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1900년 동안 그 성전 중심, 회당 중심의 신앙을 지켜오다가 1948년 5월 14일 그들이 독립해서 올해 7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전 세계의 역사 가운데 1900년 동안 나라가 없다가 다시 생겨난 나라는 이스라엘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고구려가 망한 것은 지금 1300년도 안 지났어요. 그런데 저 중국한테 “저 만주 땅이 다 우리 거니까 내 놓으라!” 그러면 내 놓겠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셨어요.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곳에 이스라엘이 탄생이 되게 만들어주셔서 올해 건국 7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고 성장하고 세계 교회가 주목할 만한 그러한 성장한 이유는 한국 교회가 교회 중심, 예배 중심의 신앙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는 북한 황해도 장연에 세워진 소래교회입니다. 1883년에 우리 한국 사람들에 의해서 이 교회가 먼저 세워지는데, 성경을 로스 선교사님과 함께 번역했던 서상륜이란 분하고 동생 서경주란 두 분이 이 황해도 장연에 교회를 세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선교사가 발을 들여놓은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일본을 거쳐 한국 제물포항, 인천항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우리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부터 먼저 세웠어요.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렇게 교회가 막 부흥하게 되니까, “이제 우리, 교회를 건축하자!” 그래서 저들이 이제 다들 힘들고 어려웠을 때인데 모금을 하기 시작하니까,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선교부에서 도와줄까요?” “아닙니다. 자손만대에 우리가 신앙의 유산을 물려줘야하는데 우리의 힘으로 교회를 짓겠습니다.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우리 힘으로 짓겠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자기 소유의 서낭당을 교회 대지로 바쳐서 귀신을 섬기던 그 서낭당을 허물어버리고 그 교회의 대지가 되었고, 성도는 십시일반으로 헌금만 십칠만 냥을 모았고, 어떤 이는 선산에 좋은 나무를 소나무를 베어서 건축자재로 기증했고, 어떤 사람들은 재능 기부로 교회 건축에 나와서 70일 동안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한 양반 댁 과부는,
 당시 양반들은 일을 안 합니다. “이리 오너라!” “물 떠 오너라!” 이렇게 시키기만 했지,
그런데 이분은 남편을 잃고 외롭고 힘들게 살던 과부인데,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캐서 그 조개를 껍질을 벗겨내 가지고 모아서 헌금으로 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감동을 해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가진 게 없었지만, 양반 댁 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 나가 무릎까지 갯벌에 빠지면서 조개를 파서 그 판 돈 전부를 하나님의 집을 돕는 데 연보했다. 이 부인은 매 주일 40리 이상을 걸어서 교회에 오는데, 개종한 후 지난 1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주일도 빠지지 않았다” 할렐루야!

 그때는 얼마나 순수하게, 열심히 믿었던지 예수를 믿은 그날부터 단 한 주일도 빠지지 아니하고,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가고.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니까 나가서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가지고 그걸 팔아서 건축 헌금을 하고. 그래서 그 자손들이 복에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교회가 1895년 7월 달에 준공되어서 언더우드선교사 외 많은 선교사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이 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예배 중심의 신앙이 될 때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예배 잘 드리는 사람. 시험에 든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예배드리기 싫어하는 사람이 시험에 든 사람이에요. 참 희한합니다. 시험에 들면 교회에 나오기가 싫어요. 예배드리기가 싫어요. 기쁨이 넘쳐나면 예배드리는 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지고 예배 시간을 사모하게 되는데, 구역 식구들끼리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난 다음 구역식구들끼리 다투는데, 주일 날 교회가 나가기가 싫어져요. 여러분,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십니다.

3.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

그리고 교회 중심, 예배 중심의 신앙이 우리의 생활 속에 믿음으로 드려지는 신앙이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입니다. 28장 22절에 이와 같이 야곱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앞으로 제가 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내 수입이 생길 터인데, 나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 고백은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고, 그 중의 십분의 일을 떼어서 주님께 도로 드리겠습니다.”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 이러한 믿음의 결단을 보일 때 더 큰 은혜와 축복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 주님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서 십분의 일을 도로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하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자라나면서 하나님 앞에 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드리는 믿음의 결단을 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내려주시는데, 여러분의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 되어서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국내 최초로 대학에 ‘부자학’을 개설해 가지고  ‘부자학연구학회’를 창립한 서울여대 한동철 교수님이 그의 책, ‘新한국의 부자들’에서 10의 2조를 드려서 복 받은 사람들을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2011년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통해서 말라기 3장 17절의 축복의 말씀이 확실한 하나님 약속이라고 말씀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크리스천 부자들은 대부분 십일조 생활이 철저합니다. 10의 1조가 아니라 10의 2조, 10의 3조를 내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크리스천 부자들은 대부분 새벽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도 크리스천 부자들이 가진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크리스천 부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느냐 가만 살펴보니깐 그가 3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하나는 십일조 이상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또 하나는 새벽 기도를 잘 드리는 분이었고, 또 하나는 긍정적인 신앙을 가진 분이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늘 입에서 남을 헐뜯는 얘기만 한 사람들은 절대로 복을 받는 적이 없습니다. 잘되는 게 없어요. 왜? 본인의 부정적인 말로 자신이 묶여버리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백년 역사 가운데 가장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사람이 록펠러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그가 가진 그의 벌었던 돈을 갖다가 환산해보니까, 지금 세계 최고의 부자인 그 빌 게이츠의 3배 정도 되는데, 172조 정도 된데요. 172조! 별로 안 놀라시는데, 내년도 우리 1년, 우리나라 대한민국 전체 일 년 예산이 470조인데, 이분이 혼자서 벌은 돈이 172조라니까요. 물론 록펠러가 돈을 버는 과정에서 비판도 있었습니다. 전체 석유 시장을 독점해가지고 돈을 막 쓸어 모았거든요. 그리고 또 어떤 비판을 보면 그가 십일조를 한 것은 인정하지만 노동자들에게 탄압한 기록도 있다. 막 기업이 일어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하는 그러한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삶을 보면 그가 40대 미국 최대 부자가 되고, 50대 세계 최대 부자가 됐는데, 그때까지는 돈을 버는 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까 이런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의 말년, 그가 97세까지 살았거든요, 살면서 많은 선한 일을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도 바꿔놓고, 미국의 대학교에 대학교마다 도서관을 짓고, 시카고 대학을 짓는데 전액을 내서 시카고대학을 짓고, 그분에게 교회를 짓겠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다 교회를 지어주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복을 주신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비결이 뭐냐? 6살 때부터 어머니의 말씀을 순종해서 십일조를 한 일에 그렇게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용돈을 주면서 “너, 십일조 해라!” 그 말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가난하고, 어렵고, 먹을 것이 없는 어려운 시절을 지난 그가 40대가 되어서 미국 최대의 부자로, 50대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어서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드리는 그러한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십일조 뿐 아니라 시간의 십일조도 드려서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의 십분의 일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에 여러분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하여주실 것입니다.

 계산적으로 보면 십일조를 한 사람이 십일조를 안 하는 사람보다 더 부족할 것 같아요 왜냐면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렸으니까.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일조 드리는 사람이 더 여유가 있어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하나님 편에서는 다 십일조를 받으신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복을 주시지만 자발적으로 안내면 다른 방법으로 그 돈을 쓰게 만드시는데, 약값, 치료비, 사고 나서 사고 수습하는 비용, 그래서 돈이 더 나가게 하신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야곱이 이 십일조 신앙을 지켰기 때문에 돌아올 때는 20년 만에 큰 부자가 되어서 가축 큰 두 떼를 부리며, 열두 자녀를 데리고 당당하게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광야 길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 잠시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무엇보다도 첫째로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교회 중심의 신앙, 십일조 드리는 신앙으로 한평생 복 받은 인생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서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십일조 신앙으로 무장하여 복 받은 인생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바라봄의 법칙/조용기목사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세기 32장 24~29절)

서론
 ‘바라봄의 법칙’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삶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는데, 그중에 바울을 손꼽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늘의 별을 바라본 아브라함
 하늘의 별들을 바라본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일흔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서 자기의 자손을 상속할 아들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식을 안 주셔요. 하루는 그 지역의 훌륭한 청년들을 모아놓고 천상 자기는 아들을 얻을 수 없으니 그 청년들 중에 제비를 뽑아 양자로 삼아서 아들을 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깜짝 놀랐습니다. 잘 기도할 줄 몰라서 아들을 못 받았는데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 저녁에 아브라함을 천막 밖으로 불러내어서 “야, 저 하늘을 쳐다보라. 푸른 하늘을.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있고, 별들이 밤이니깐 저렇게 많이 있습니다.”, “맞았다, 잘 봤다. 별들이 얼마나 있느냐?” 눈 비벼 닦고 보니깐 말할 수 없이 많았어요. “아버지 하나님, 별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수없이 많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이렇게 웃었을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지. 헤아릴 수 없이 네 자손이 훗날에 그렇게 많게 될 것이다.” 굉장히 아브라함이 감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눈을 비벼 닦고 다시 별들을 쳐다보니 많은 별들이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하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5장 2절에 ‘아브람이 이르되 주 야훼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큰 탄식을 했지만 하나님은 당장 이 해답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세기 15장 4절~5절)’ 그래서 왜 여태까지 응답을 못 받았느냐? 기도할 줄 몰라서 응답을 못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청각 교육을 잘못 받은 것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말로만 하지 않고, 그림이나 많은 것을 통해서 가르칩니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면, 청중의 기억력이 약 40%나 향상한다고 말합니다. 그림을 그려 넣고, 저기는 통계 숫자를 그려 넣고 바라보면 기억력이 40%나 머리에 남습니다. 그래서 여러 분야에서 시청각 교육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도 시청각 교육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줍니다. 아브라함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언제든지 시청각을 통해서 바라봄의 법칙을 이용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동쪽을 보고 산을 보아라, 서쪽의 땅을 보아라, 남쪽의 유복한 땅을 보아라. 보는 그 땅을 너에게 주겠다.” 보라 합니다. 목적을 삼고 보지 않고 축복을 해줄 수 없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봄이 마음에 응해질 때 지금 교회처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장 14절~15절)’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바라보게 되면 기도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실 때에도 “눈을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그것을 네 자식으로 간주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4절로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주신 것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과 자녀를 바라봄으로 가슴에 꿈을 품고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은, 이 마음의 밭에 씨를 쏟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밭입니다. 여러분, 밭에 하나님이 약속의 씨를 심고 기도하고 기다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고생만 하는 겁니다. 씨앗을 심고, 씨앗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기도하기가 어려워서 그게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 둘, 셋, 하고 기도를 시작하면 할 말이 없어요, 하나님 앞에 미안할 정도로 한 말을 되풀이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목적을 정해놓고, 인생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기를 기도해야 됩니다. 목적을 계속해서 기도해도 괜찮습니다.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응답이 올 때까지 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할 것이 없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안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에게 치여서 자꾸 보태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세기 15장 5절)’ 하나님께서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에, 자녀를 바라봄으로 가서 가슴에 꿈을 품고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꿈을 품고 기도하여 마침내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로마서 4장 18절~21절)’ 그러므로 반드시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마음에 목적을 정해놓고 불화로같이 목적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그 목적의 문을 두드리고, 문을 두드리고...

 나와 내 자식들이 침대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데 내 친구가 와서 밥을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친구가 “밥 좀 달라”고. 그래서 “내일 오라. 우리는 이미 잠옷으로 다 갈아입고 잠을 자려는데 새삼스럽게 밥을 달라는데 밥을 어떻게 줄 수 있냐?”, “그래도 수고 좀 해주게. 밥 좀 주게”  “밥을 못 줘.” 그러니까는 사정이 변해서 공갈이 됩니다. “어디 못 주는가 보자.” 문을 막 쾅쾅, “밥. 밥. 밥. 밥. 밥. 밥. 밥!” 소리치니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아유 시끄럽다,  밥 줄게. 시끄럽다.” 하며 밥을 줬단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도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몇 번 기도하다가 응답 못 받는다고 들어가 버리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 아주 마음에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부르짖는 사람을 위해서 응답을 하시는 겁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꿈을 품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3차원과 4차원이 어떻게 틀리냐 하면, 3차원까지는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3차원에 속합니다. 여러분 큰 도화지를 가져다놓고 상대방을 호박같이 그리더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그것은 3차원입니다. 4차원이라는 것은 못 그려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볼 수가 없으니깐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은, 마음에, 꿈속에 표현을 해요. 꿈속에 꿈을 꾸어서 마음에 그림을 그릴 순 없으나 꿈을 마음에 붙잡으면 아예 일사천리로 그 꿈을 꿈꾸어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뒤로 물러가고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하늘의 별들을 믿음을 다하여 바라보고 구했습니다.


2.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한 야곱

 야곱이 당한 문제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외삼촌 집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많은 자녀도 얻었지만,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결혼하기 위해 14년 동안이나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외삼촌 집에서 일하는 20년 동안 외삼촌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고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와주셨습니다. 야곱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어서 꿈을 이루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야곱에게도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창세기 31장을 보면, 야곱은 자신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많은 가축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꿈에 알려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31장 10절로 12절에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새끼 낳는 것마다 얼룩덜룩이를 낳으면 야곱 소유로 하라고 그 삼촌이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양의 새끼가 나오면 아들을, 수놈을, 얼룩덜룩이를, 얼룩덜룩이 새끼만 낳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기도를 하고 그 기도 그림을 양 얼룩덜룩이 새끼를 그려서 바라보고 하니깐 새끼마다 얼룩덜룩이가 나와요. 여러분 그렇게 해 보십시오. 체험할 겁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놀랍게 능력과 역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옷이 옷가게에 걸려있는데,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도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그 옷을 바라보고 내가 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가슴으로 바라보고 감사를 하면, 꿈이 확신이 되고, 믿음이 내 것이 되어 고함쳐서 기도합니다. ‘저 옷은 내 것이 되었습니다.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 옷이 내게로 누구 손을 통해서든지, 손을 통해서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십시오.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곤할지라도 꿈과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어야 됩니다. 씨앗은 작지만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씨앗은 단단한 껍질을 뚫고, 자기 무게의 몇 백배나 되는 흙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꿈이라는 씨앗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이라는 씨앗은 심으면 꿈이 꽃피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꿈이 열매를 맺느냐? 꿈을 생각하고, 꿈이 이루어질 줄 믿고, 꿈을 자꾸 이야기하고 자랑하면, 꿈이 자라기 시작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바라봄의 법칙으로 환경을 다스리라

 바라봄의 법칙을 가지고 내 인생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아브라함은 복을 누렸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자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꿈을 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신학대학에서 강연할 때, ‘희망을 주는 목회자’가 되라고 늘 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오늘 올해도 가진 거 없어서 손을 내밀면 내가 줄 돈은 없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돈보다 훨씬 더 나은 희망이 있습니다. 손을 내미는데 그 위에 희망의 메시지를 줌으로 거기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는데, 그리고 “그 기도를 자꾸 하라”고, 그러면 꼭 그 희망이 물질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4차원은 보이는 3차원에 밀려서 여러분 것으로 다가옵니다. 보이는 것은 안 보이는 것의 외로 주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것에 보이는 것이 잔뜩 쌓여지는 것입니다. 3차원을 통해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4차원이 3차원을 감아서 심어서 이루어지는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십시오.

 여러분은 3차원에 꿈꾸던 것이 4차원에 전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난 당하셨고,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끌어안고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병이 청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소망은 오직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언제든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 모두가 4차원의 영성을 좇아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어 기도하고 믿으십시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됩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환경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마귀가 역사하면 늘 잘못된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현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때도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못한다. 나는 실패할 거다.” 이런 그림을 바라보면,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내일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누가복음 12장 29절~3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슴에 바라보는 것에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꿈과 희망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한번 따라 말씀해보세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수확할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으며, 이익을 거둘 희망이 없다면 상인은 장사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자를 찾아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슴에 꿈을 품고 희망의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콜럼버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목적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닻을 올렸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꿈이 그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갑니다. 꿈을 마음에 품어서 희망을 가져야 다음에 더 나은 꿈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슴에 꿈을 심고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믿음의 시험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이 천지를 지을 때 무얼 지었습니까? 빛으로 지으셨습니다. “빛아 있으라!” 다른 것 아무것도 그린 것 없고 본 적도 없습니다. 말씀. 천지가 말씀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러분도 말씀으로 인생을 지어가십시오. 입술로써 만들어 갑니다. 네 믿음으로 될 지어다. 그러니까 그 믿음이 뭐냐, 말씀입니다. 믿음을 본 적 있습니까? 믿음 못 봅니다. 믿음이 안 보이니 4차원입니다. 그러므로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꿈이 그 사람의 인생을 끌어가는 것입니다.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무엇을 바라보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시편 121편 1~2절)’라고 고백합니다.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 여러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아 마음에 바라고 시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러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야곱은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만납니다. 형 에서가 4백 명을 이끌고 야곱을 향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씨름을 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형과의 화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삶이 꿈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로써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바라봄의 법칙을 알게 됐고 야곱도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여 꿈을 이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도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극복하고 만사형통한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용서

 

어떤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가 저는 버림을 받은 인간입니다. 제가 회개해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지 않을 겁니다. 목사님, 저 같은 사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형제님,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든 용서하십니다. 형제님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형제님이 주 안에서 회개하는 순간 죄를 용서받았습니다.”라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언젠가 이런 어린이의 작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을 본다. 온갖 더러운 쓰레기가 지나간다. 다시 본다. 이번엔 아주 맑은 물이 흐른다. 형제님, 왜 이미 용서받은 죄를 붙들고 괴로워합니까? 형제님의 온갖 더러운 죄는 십자가 다리 밑에 흐르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해 다 떠내려갔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기뻐하고 새로운 용기를 가지십시오.”그러자 이 사람은 , 그렇군요. 이제 저는 새로운 생수를 받아서 새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밝은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1: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은 용서와 의와 사랑과 소망입니다. 우리는 정죄 의식이나 열등 의식이나 좌절감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마귀의 참소를 제하여주시며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의인으로 삼아 주십니다.

'말씀과 찬양의방 > 설교 예화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제에 대한 용서  (0) 2018.10.07
아빠를 용서해 주세요  (0) 2018.10.02
박해 속에서도 용서를  (0) 2018.08.28
사랑의 실천  (0) 2018.08.21
화해 / 2  (0) 2018.08.17

박태근 장로(용산대교구)

- 암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신앙회복


이영훈 목사 ‘주께서 고쳐주신다’ 안수기도

 지난 2월 아내(안순덕 권사)는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오른쪽 폐에 이상이 있어 다시 대형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혹이 발견됐다. 다시 조직검사를 받고 나서 의사는 폐암일 확률이 80∼90%라며 수술을 제안했다. 암이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렇더라도 혹이 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농후하니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또 만약 암이라면 오른쪽 폐의 절반을 절제하고, 심하면 오른쪽 폐 모두를 절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건 혹이 발견된 위치였다. 하도 위험한 부위라 수술이 커질 경우 갈비뼈 두 개를 절단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아내와 나는 생명을 주신 이도 야훼시고, 거두시는 이도 야훼시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고 했다. 혹을 제거하고 2차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은 8월 7일로 잡혔다. 수술을 나흘 앞둔 8월 3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는 전국장로연합회 수련회가 열렸다.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이영훈 목사님을 우연히 만났다.
 “목사님, 제 아내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바쁘시니 전화로라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니에요, 권사님을 직접 만나서 기도를 해드릴 테니 이번 주일예배 후에 권사님과 비서실로 오세요.”

 나는 감사한 마음에 뛸 듯이 기뻤다. 우리는 주일3부예배 후에 비서실에 들렀다. 목사님은 아내와 나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오려는 우리 부부에게 “암은 병도 아니에요. 이미 주님이 고쳐주셔서 다 나았습니다”라며 은혜의 말씀을 선포해주셨다. 그 순간 우리 안에 있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그래, 나을 수 있다. 주님이 고치신다’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아내가 입원해 있던 병실은 5인실이었는데 비슷한 증상으로 수술을 앞둔 환자가 아내를 포함해 네 명이었다. 입원실 바로 앞에는 기도실이 있었다. 우리 가족들 그러니까 나와 목사인 사위, 전도사인 딸을 비롯해 모든 자녀들이 번갈아가며 이곳에서 중보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한 병실에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수술 받는 당일에는 대교구장님과 담당교구장님이 방문해서 기도해주셨다.

 수술은 대기자가 많아 기다리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자 다시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아내를 살려달라고 온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했다. 드디어 수술을 마친 아내와 함께 의사도 회복실로 들어왔다.
 “암이 확실했는데 다행히 암이 아니니 안심해도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의사가 확신한 암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 아내는 급기야 지난 8월 20일 병원에서 암이 아니라 ‘결절’이라는 판명을 받았다. 더 이상 암이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는 최종 진단이었다.
 아내는 이번 일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소홀하지 않았나’ 회개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감사드렸다. 세 딸은 중보기도의 능력이 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배우며 모든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십자가 승리의 믿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많은 복을 허락하셨다. 우리 가족을 목사와 전도사, 장로와 권사, 교사, 교회학교 헌신반 봉사자 등 믿음의 일꾼들로 세워주셨다는 것은 곧 섬김의 자리에서 더욱 충성하라는 주님의 말씀임을 기억하고 기쁨으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예수님과 4차원 세계/조용기목사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장 3절)

 

‘예수님과 4차원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세계는 흠과 점이 없는 지극히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대표해서 그 아름다운 곳에 다스림을 갖고 살았는데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먹지 말라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고 하나님을 거역했음으로 온 세상이 저주를 받고 아담과 하와도 생명을 빼앗기는 고통 속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중에 세계에 실상이 한세상입니다. 


본론

1. 두 세계의 실상

 밝고 맑고 환한 한 가지 한 세상이 있는데 죄를 짓고 땅이 저주를 받고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은 이후로 이 세상은 두 개의 실상으로 나눠졌습니다. 사람이 두 개로 나누어있다는 것이 겉 사람하고 속사람으로 나누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겉 사람도 시간이 되어 죽고 속사람도 겉 사람이 되어 죽습니다. 이자들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고 난 다음에는 3차원의 감각적 물질 속에 살았습니다. 여러분, 1차원의 세계, 2차원이 세계, 3차원의 세계. 이 세계가 달라진 곳에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1차원의 세계는 직선이나 곡선을 우리가 1차원이라고 부릅니다. 2차원은 평면을 2차원의 세계로 부르고, 3차원은 입체를 3차원이라고 부릅니다. 3차원의 세계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인간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물질세계가 3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는 직선, 평면, 입체 이것을 볼 수 있고 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직선이 그어진 1차원을 그리고 평면인 2차원을 그릴 수가 있고 3차원의 그림도 그릴 수 있는데 4차원은 못 그립니다. 4차원은 영의 세계이기 때문에 속사람이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죽은 사람을 그립니까? 4차원의 실상은 그리지 못하고 1차원, 2차원, 3차원에 속해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적 세계는 인간이 감각을 넘은 영적 세계인 것입니다. 감각적 물질세계 속에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감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감각 속에 우리 눈에 보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세계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질세계 속에 심령의 세계가 있어 두 세계가 여러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겉 세계는, 물질세계는 보고 듣고 말하고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데 속세계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여러분이 죽었기 때문에 죽은 영의 세계가 무엇을 큰 소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2. 무신론적, 유신론적 세계

 무신론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무신론적 3차원 물질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4차원의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죽은 영이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4차원의 영적인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하고 요한복음 9장 39절에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 주님께서 은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안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맹인입니다. 속사람이 죽은 겉 사람만 살아있는 영적 맹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영적인 맹인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기적을 알고서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을 안 지켰다고 비난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 진짜 맹인인가를 잘 보여 줍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이 진짜 맹인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 않고 3차원의 물질세계만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적인 눈을 뜨고 성령님과 함께 4차원의 세계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중생하고 속사람이 살아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되고 영적 세계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적 4차원, 영적 4차원 두 가지로 우리가 나누어 볼 수 있는데 4차원의 세계는 생각의 세계, 꿈의 세계, 믿음의 세계, 신앙고백의 세계가 4차원의 세계입니다. 그럼에도 4차원에도 인간적인 4차원과 영적인 4차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동물과 달리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생각도 할 수 있고 꿈도 꿀 수 있고 신념도 가질 수 있고 긍정적인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인간적인 4차원입니다. 이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어도 4차원의 형태를 갖출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4차원은 인간적인 4차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영적인 4차원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성령의 4차원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4차원에 들어가니까 홍해수도 갈라지고 만나도 내려오고 만나도 내려오고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전쟁에서 이기는 기적이 따르는 이와 같은 역사가 영적인 4차원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4차원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신앙의 고백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시편 9편 10절로 보면 “야훼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무신론적인 세계인데, 성령께서 제가 4차원의 영성을 이해하고 깨달은 것은 제가 스스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과의 오랜 시간 동안 교제한 끝에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신 비밀입니다. 당시 저는 기도실에서 매일 한 시간 이상씩 하나님의 음성을 거듭해서 들었습니다. 굉장히 감격적이고 저의 영혼 속을 뒤흔들어놓는 그러한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이 계시를 마음속에 받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을 얻게 됐는데 그 때에 내 가슴속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영을 다스리라!” 로마서 8장 5절로 절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영을 다스리라. 시편 4장 8절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8장3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장 2절)” 그러므로 무엇보다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믿고 영이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영을 살리는 것이 제일 첫째 명령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이 강건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시편 19편 7절로 8절은 “야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야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야훼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을 살리고 우리 마음도 건강하게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의 상태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4장 2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래서 잠언서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을 지켜라. 그래서 사람이 뿌리 뽑히고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면 영을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또 영을 지키는 사람이 마음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우리 삶에는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 아픔, 생활의 슬픔 등 수많은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똑같이 환경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슬프게 살지만 어떤 사람은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 차이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환경만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환경을 다스리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다스려진 사람은 환경이 다스려 질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28절에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적군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도둑이 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든 상황을 만난다 해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영과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건강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가정도 사업도 지킬 수 없고 하나님의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병이 들었을 때라도 병을 물리치고 이겨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가복음 16장17~18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고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고난 속에 보면 이미 다 약속을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로 19절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배움은 죄를 씻고 의를 선물로 받고 치료를 베풀어 주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주시는 오중복음을 얻어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이 얻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

 하나님은 그 권세를 하나님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에게 줍니다. 야곱과 같은 사람도 믿음으로 복을 받고 하나님께 원대한 은총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님 또한 하나님 백성에 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장 10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세는 아주 오래전에, 미국의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성장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강의를 의뢰한 분이 피터 와그너 박사였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짧은 다리를 길게 하는 은사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짧은 다리를 길게 요사이도 할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 이튿날 와그너 박사 대학교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이튿날 그의 사무실에 들렀는데 마침 기차사고로 다리가 일부 잘려나간 이라크인이 기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사무실에 들어가니까 이라크인이 앉아있고 짧아진 짧은 다리를 엮어 가지고서 있는데 와그너 박사가 그에게 손을 얹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다리야 길어질지어다! 길어질지어다!” 그렇게 5분이 넘도록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계속 외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다리가 그대로였어요. 5분 동안 안 길어지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사님이 무안해할까 봐 위로를 했습니다. “박사님, 지금 길어질 수도 있지만, 서서히 천천히 자다가 깨어나서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니 그렇게 조바심을 갖지 마십시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자기 기도를 따라 하라고 말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고쳐주실 것을 믿는다.”고 “나의 짧은 다리는 길어진다.” 그렇게 따라 말하라고 하면서 열심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다리야 길어질지어다!” 그런데 믿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다리가 30초도 안 되는 순간에 쑥하고 길어졌습니다. 내가 한평생 병자 위해서 기도했지만 그 때만큼 혼비백산 한 적이 없습니다. 기절할뻔했어요. 내가 살았나? 죽었나? 아, 금세 내 눈 앞에서 짧았던 다리가 쑥 길어지는데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아니한 살결에 그와 같은 변화가 다가온 것입니다.

 제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니 그가 말하기를 “조 목사님이 저술한 4차원의 영적 세계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 그러더군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루려면 꿈을 꾸어라. 그리고 이루어지라고 명령하라. 그래서 다리가 길어질 줄 확실히 믿고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바라보고 꿈을 꾸며 명령했더니 정말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보고 “당신이 책에다 그렇게 하라고 기록해놓고 그렇게 하는 나를 자꾸 쳐다보고 있냐고.” 사실은 꿈꾸고 믿고 신앙의 고백을 하라고 강하게 제가 책에 기록했는데 그 사람이 그대로 확실히 믿고 아예 전문적으로 병을 고쳐요. 내가 그 사람의 신앙생활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마음에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은 당연히 능력이 없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가지고 입술의 말로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은 스스로는 무슨 있이 있나요? 그러나 입술의 고백을 하면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론

 열왕기하를 보면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곳을 완전히 포위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고 엘리사의 사환은 엄청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는 3차원의 세계만 보고 절망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4차원의 영적 세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열왕기하 6장16절)” 그래서 엘리사가 기도를 합니다. 사환의 눈이 열려서 4차원의 영적 세계를 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6장 17절에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다 끝났다”고 절망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감각적 물질세계만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4차원의 영성을 통하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3차원의 세계는 물질세계, 낮은 세계, 4차원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 하나님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영이 죽었음으로 3차원의 세계 사람이고, 예수를 믿어 중생하여 영이 살아나면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서 4차원의 세계 사람이 되며 기적을 체험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두 세계가 있습니다. 3차원의 세계와 4차원의 세계. 3차원의 세계는 죽은 속사람이 되고, 4차원의 세계는 무신론의 세계 중에서 4차원의 세계가 그들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영, 혼, 육 다 살아나서 영적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3차원의 세계 속에 살지만 성령이 속에 들어와서 4차원의 세계 속에 태어나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4차원의 세계가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제 설교를 듣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능력 있게 발전하려면 4차원의 세계 활짝 열려서 하나님이 4차원의 세계에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말씀하시고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푸는 것을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형식과 의식은 다하면서 하나님 앞에 성경말씀을 믿지 못하고 기도를 부지런히 하지 못하고 그저 3차원의 물질세계 속에 속해 살면 하나님이 와 계셔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손을 잡지도 못하니까 완전히 죽은 교회와 같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신이 우리 눈에 안 보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큰 기사와 이적을 행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꿈꾸고 믿고, 그 다음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나음을 입었느니라! 나음을 입었느니라! 결과가 생기도록 끝까지 입을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아라. 병은 나아라. 병은 나아라. 병은 나아라. 그렇게 계속적으로 저항하고 고백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 따라서 4차원적인 역사를 함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활동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이 사업을 해도 사업은 될 지어다. 사업은 될 지어다. 사업은 될 지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계속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큰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큰 기적을 보려면 입술로 고백하는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기적을 주셔서 여러분 더 많은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모세오경(, , , , ) 여호수아-19

 

11.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작전 중심지는 다음에서 어느 곳 입니까?

    (4:19,5:10) 예루살렘 세겜 길갈 사마리아

 

12.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 진을 치고 나서 한 일은?(4:19-20))

여호와를 찬미함

희생을 드려 여호와께 예배함

요단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세움

정탐군의 보고를 받고 군대를 세움

 

13. 이스라엘에게 내리던 만나가 언제 그치게 되었습니까?(5:10-12)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부터 

 요단 동편 기슭에 이르렀을 때

요단을 건넌 직후부터

요단 서편 길갈에서 그땅 소산을 먹은 다음날부터

 

14. 무너진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는 사람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한 사람은?(6:26)

라합 발람 갈렙 여호수아

 

15. 여리고를 함락시킨 뒤 여호와께 바친 물건을 취함으로 범죄한 사람은?(7:1)

갈미 세라 아간 삽디

 

16. '아골'이란 말의 뜻은?(7:26)

괴로움 희망 눈물 죽음

 

17. 여호수아의 책명 약자표는?

여호수아 수아

 

18.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 )에 들어갈 말로서 맞는 것은?(24:15)

"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 )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나는 홀로 나와 내 집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나는 전심 전력하여

 

19.여호수아 다음에 오는 성경은?

사사기 룻기 신명기 사무엘상

 

20.여호수아는 총 몇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11243032


'말씀과 찬양의방 > 성경공부,퀴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 골든벨 문제-21  (0) 2018.10.02
성경 골든벨 문제-20  (0) 2018.09.21
성경 골든벨 문제-18  (0) 2018.08.28
성경 골든벨 문제-17  (0) 2018.08.21
성경 골든벨 문제-16  (0) 2018.08.17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이영훈목사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로마서 6장 6~7절)

 오늘은 로마서 6장 6절과 7절 말씀을 가지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그 삶을 힘들게 하고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한 이래 죄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환경이 저주를 받아서 우리는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살아가야 했고 저들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질병과 사망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질병 속에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서 우리는 영적인 고아처럼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3절에 이와 같이 우리는 죄에서 자유로 울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죄의 결박에서 자유함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복된 생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죄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죄 아래로 굴복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날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탄식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위대한 사도 바울도 늘 육신의 죄의 도전과 유혹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1. 죄가 지배하는 삶

 먼저, 죄가 지배하는 삶에 대하여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로마서 6장 12절, 1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그리고 잘못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우리에게 도전해오는 이 죄의 유혹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한은 끊임없이 죄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흑암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7장 14절과 15절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분명히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내가 죄의 유혹에 빠져서 원치 않는 그러한 행동을 하고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분노하고 다투면 안 되는데, 성질을 내고 다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주님 말씀하셨는데, 마음에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19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그런데 이 죄의 문제에서 우리가 민감하여서 늘 대적하고 물리쳐야 되지, 그냥 내버려 두면 죄가 완전히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범죄를 한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 작은 죄를 저지르다가, 점점 완전히 양심이 마비되어서 큰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까지 가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목회자인 조셉 얼라인 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죄가 지배하는 삶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불만을 품은 마음에서는 쉴 새 없이 폭풍우가 일고, 지나친 염려는 심령을 갉아먹는다. 분노는 마음의 열병이고, 정욕은 뼈들을 태우는 불길이다. 교만은 치명적 부종이고, 탐욕은 충족될 수 없는 갈증이며, 악의와 시기는 마음속의 독이다. 영적 나태함은 마음의 괴혈병이고, 육신적 안일함은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문제에 대해서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쉽게 죄의 유혹에 빠지는 자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축복받은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 노예에 살지 아니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죄를 극복해야 합니다. 로마서 6장 13절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다.” 하기 전에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자신 안의 죄의 모습을 몰아내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의의 무기로 쓰임받게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될 때 하나님께서 복의 복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절대로 나약한 모습으로 살지 말고, 죄의 지배를 받고 살지 말고, 죄와 싸워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죄에 대해서 우리가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로마서 6장 2절, 3절은 설명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교회에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는 내가 구원받은 사실을 모든 사람 앞에 공적으로 알리는 예식인 것입니다. 내가 물속에 잠길 때 나의 옛 사람이 죽고, 물에서 나올 때 다시 내가 주님과 함께 부활한 새사람의 모습으로 내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침례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바로 흐르는 물에 가서 침례를 받았어요.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을 붙잡아 감옥에 넣고, 또 네로 시대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원형경기장에 짐승의 밥이 되어 죽게 하고, 불에 태워서 저들을 고통 가운데 죽게 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이러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하는 것을 만방에 알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나서 다 침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이 침례는 주님이 직접 명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을 보면 이렇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반드시 우리가 침례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만방에 알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하신 두 가지 예식이 하나는 성찬이고 하나는 침례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침례와 성찬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침례 받고 새사람이 된 것을 만방에 알리고, 그다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새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변화 받은,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내가 죽었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났습니다. 로마서 6장 11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이를 가능케 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설명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옛 사람이 죽었습니다.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미 새로운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새롭게 변화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분명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변화된 나의 모습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옛 사람과 새사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다룬 전기가 ‘두 권’으로 기록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1권은 ‘옛사람, 거듭나기 전의 우리 이야기’이고, 2권은 ‘새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고 난 후의 우리 이야기’다. 우리의 옛 삶은 끝났고, 하나님께 대한 새 삶이 시작되었다. 성인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생각을 하거나, 석방된 사람이 감방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옛 삶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주님 안에서 새사람의 모습을 입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미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슴을 당당히 펴고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나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전에 나를 늘 괴롭히고 상처입혔던 과거의 실패의 경험은 다 지나간 것이다. 어두운 과거는 다 지나간 것이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고백하고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삶

세 번째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삶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6장 6절과 7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미 새사람이 되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6장 17절, 18절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어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늘 과거의 상처를 또 꺼내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자꾸 무너집니다. 그 좋은 일이 그 앞에 얼마나 많이 펼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나가지 아니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어두웠던 과거, 어린 시절, 실패의 경험, 배신당한 경험, 상처 입은 경험, 이것들을 돌아보면서 자꾸 또 가라앉고, 또 가라앉습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변화된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담대하게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주님 나와 함께하신다! 내 일생은 하나님 은혜 가운데 가장 복된 일생이 될 것이다. 행복한 일생이 될 것이다. 축복받은 인생이 될 것이다.” 고백하며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의 신앙고백처럼 고백했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우리가 다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것입니다. 절망과 상처와 패배로 가득했던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더 이상 그 패배가, 그 실패가, 그 절망이 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분께서 나를 대신하여 사신다는 것을 늘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주님의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삽니다. 주님, 나의 일생을 인도해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그렇게 살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충만하지 못하고 내게서 은혜가 멀어지면 다시 우리는 옛 사람의 모습에 사로잡혀서 한숨 쉬며 낙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성령으로 충만, 재충만, 또 재충만 받아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의 위대한 선언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죄에서 놓여나, 해방받아, 새 사람이 되었고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우리를 누구도 정죄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8장 31절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어떤 흑암의 권세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우리를 죄 있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8장 33절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하나님이 죄 없다고 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죄 있다고 흉보고 비난할 수 있느냐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부로 남을 정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는데 “너는 버림받은 인생이야. 너는 죄덩어리야.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복 받은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 37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겨우, 간신히, 가까스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에게 도전해올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죄는 물러가라! 염려 근심 걱정은 물러가라!”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늘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서 살아나고, 하나님의 변화된 자녀로서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사람의 모습을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을 10년, 20년 하면서도 쉽게 시험에 들고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문제에 붙잡혀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 한 1년만 지나가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어져야 합니다.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옛 사람의 모습에 붙잡혀서 절망과 탄식의 삶을 살지 말고,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무장해서 앞만 바라보고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이천 년 전에 “다 이루었다.” 하실 때, 그 승리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의 모습으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큰 역사를 감당하고 있는 이강호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불우 이웃을 40만 명 이상을 먹이고, 그들을 돌보며 사랑으로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귀한 목사님이십니다. 40여 년 전 동대문에서 섬유사업으로 큰돈을 벌어가지고 서울 시내 곳곳에 최고급 레스토랑을 세우고, 또 국내 최대 카바레까지 운영합니다. 직원만 이백 명이 넘고 빌딩과 집이 네 채였습니다. 밤의 황제로 불리면서 낮에는 사냥과 골프, 밤에는 술 파티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밤낮 밤마다 술에 취해 들어오니까, 남편 모르게 예수를 믿고 있던 부인이 견디다 못해서 어느 날 남편에게 선포했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과 살 수 없습니다. 나랑 이혼해주세요.”하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그때 더 삐뚤어 나갔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그런데 본인이 애들이 셋이나 있는데 ‘우리가 깨어지고 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녀를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원장님을 만나서 상담을 하니까, 그분이 권사님인데 기도문을 적어주면서 “이 기도문을 가지고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세요.”
그래서 이 기도문을 가지고 그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읽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점치는 집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부적을 사 온 것이 생각이 났어요. 그것을 꺼내가지고 찢어버리고.
 대부분 부적을 보면요, 그 두꺼운 창호지 같은 데에다 빨간 도장을 막 찍어놨어요. 잘 찢어지지도 않더라고요. 다 찢어버리고 태워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돈 많이 받아가지고 점치는 사람들이 파는데, 종이쪽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원가는 이삼십 원도 안 되는데, 그걸 막 찍어가지고 백 만원 이백 만원 받고 있다니까요.

찢어버리고 나서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해가지고 눈물 콧물 쏟으면서 회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8일 동안 간절히 기도하는데, ‘이제는 아내를 만나러 가라’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그래서 아내가 가 있는 처남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하며 고백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예수님 잘 믿을 테니 용서해줘요!” 그래서 아내와 재결합한 후에 이분이 사업을 정리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어요. 신학교에 들어가 보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 금식하며 지내는 신학생들이 많은 것을 알고, 매일같이 서른다섯 명 정도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에 안수를 받고 잠원동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일 년 365일 교회 문을 열어놓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삼십 년째 매주 목요일이 되면 노숙자,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식사를 제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십 년째 일 년에 두 번씩 어르신 이백 명에서 삼백 명을 모시고 효도 관광을 합니다. 모든 비용을 내서 어른들을 모시고 효도 관광을 해요. 그리고 교도소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교도소에 있던 재소자들 가운데 예수 믿고 나중에 목사가 된 사람이 일곱 명이나 되고, 그리고 옛날 직원 다 데려다가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니까 저들이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주의 종이 되고. 그래서 그의 손에서 주의 종이 되고 주님을 섬기는 많은 일꾼이 생겨났는데, 무려 130명의 목회자를 그가 길러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섬기는 동안 단 한 번도 쌀이 떨어지거나 물질의 어려움 없이 늘 하나님께서 돕는 손길을 보내주셔서 지금까지 이렇게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주님의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큰 종이 된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죄악 가운데 있던 저를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과거 호화롭던 생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행복합니다. 장차 하나님이 내게 주실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죠. 남은 인생 노숙자, 재소자,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다 주님께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좋아하시리라 생각하니 그래서 더 행복합니다!”

 할렐루야!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지 말고 이처럼 변화된 새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미래가 펼쳐져 있습니다. 가슴을 당당히 펴고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무장해서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쓰임받는, 그리고 믿음의 전진 또 전진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죄덩어리였는데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옛 사람의 모습에 얽매여서 살지 않게 하여주시고, 옛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사명자의 길                       

//

 



'말씀과 찬양의방 > 복음송듣고 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나의 기도   (0) 2018.10.07
야곱의 축복   (0) 2018.09.18
그 사랑 얼마나   (0) 2018.08.21
찬란한 영광의 길  (0) 2018.08.03
우리 주의 성령이 - 워십 베울라 선교단  (0) 2018.07.17

성경 골든벨 문제-18

모세오경(, , , , ) 여호수아

 

1.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하나님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 니까?(1:7)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엘리야에게

 

3. 이스라엘의 아이성 점령 실패의 원인은 무엇입니까?(7:16~26)

병력의 부족으로 적의 전략을 몰랐기 때문에

죄 값으로 당한 징벌(아간의 범죄로) 지리를 몰랐기 때문에

 

4.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처음으로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곳은 어디입니까?(5:7~8)

길갈 세겜 여리고 실로

 

5.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보낸 정탐 군의 수는 몇 명입니까?(2:1)

51223

 

6.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정탐군을 가나안으로 보냈을 때 그들이 정탐한 도성은 어디입니까?(2:1)

여리고 예루살렘 아이 두로와 시돈

 

7.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 준 사람은 여리고의 여인은 누구입니까?(2:1-22)

라합 사르밧 과부 나오미

 

8.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널 때 언제 물이 갈라지기 시작을 했습니까?(3:14-17)

여호수아가 손을 들어 기도를 할 때

여호수아가 지팡이를 들어 명할때

법궤를 멘 제사장의 발이 요단강 물을 밟기 시작할 때

제사장들이 일제히 나팔을 불었을 때

 

9. 가나안의 칠족속이 아닌 족속을 고르시오?(3:10)

가나안 여부스 블레셋 기르가스

 

10.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후 맨 나중에 강에서 올라온 사람들은?(4:17-18)

갓 지파 사람들 여호수아와 그 인도자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 갈렙과 각 족장들

박해 속에서도 용서를

 

J.H.크라웰이라는 사람이 선원이 되어서 떠날 때 매일 말씀 묵상과 하루에

세 번 기도할 것을 어머니와 굳게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12명의 선원 중 단 한 사람의 크리스챤으로,

신앙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원들은 그가 독실한 그리스도인임을 알자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에 물을 붓기 시작하였지만 아무도 그의 가슴에 붙은

신앙의 불을 끌 수는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박해의 강도는 심해졌습니다. 기둥에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릴 때도 그는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원들은 그의 허리에 밧줄을 묶어 배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자신이 죽을 것으로 안

그는 하나님께 선원들을 용서해줄 것을 기도했고 또 자기의 시신을 어머니에게 보내 줄 것을 선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다시 그를 끌어올린 선원들은 그가 자기네들이 가지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선장을 비롯한 몇몇의 선원들이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찬양의방 > 설교 예화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를 용서해 주세요  (0) 2018.10.02
하나님의 용서  (0) 2018.09.04
사랑의 실천  (0) 2018.08.21
화해 / 2  (0) 2018.08.17
용서를 배우라  (0) 2018.08.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