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4 장                      

            

   

 열왕기상 4장

 
1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2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3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대장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5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관리장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6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
 
7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 위에 열 두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식물을 예비하되 각기 일년에 한달씩 식물을예비하였으니
 
8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이요
 

9 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
 
10 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와 헤벨 온 땅을 저가 주관하였으며
 
11 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저는 솔로몬의 딸 다밧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12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소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소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13 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저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촌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 장 있는 큰 성읍 육십을 주관하였으며
 

14 마하나임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요
 
15 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니 저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16 아셀과 아롯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
 
17 잇사갈에는 바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이요
 
18 베냐민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요
 
19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왕 옥의 나라 길르앗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니
그 땅에서는 저 한사람만 관장이 되었더라
 
20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21 솔로몬이 하수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그 나라들이 공을 바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
 

22 솔로몬의 일일분 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석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석이요
 
23 살진 소가 열이요 초장의 소가 스물이요 양이 일백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
 
24 솔로몬이 하수 이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 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 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25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 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26 솔로몬의 병거의 말의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며
 

27 그 관장들은 각각 자기 달에 솔로몬왕과 왕의 상에 참여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28 또 저희가 각기 직무를 따라 말과 준마에게 먹일 보리와 꼴을 그 말의 있는 곳으로
가져왔더라

 
29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31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와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들렸더라

 
32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33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34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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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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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에 대한 용서

 

보물섬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스코틀랜드의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가정에서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부인이 놀라 뒤따라 나가서 남편을 붙들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스티븐슨이 말하기를 오늘은 내가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기도문을 주님께

드리기가 몹시 괴롭소. 마음이 편치가 않소라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스티븐슨은 그래도 염치가 있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사례들이 비일비재 하면서도 주일마다 의젓하게

 하나님 앞에 이 기도를 드립니다.

정말 괴로운 문제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하나님 앞에 뻔뻔스럽게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시편 109: 7에 있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109:7에 나오는 저주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말입니까? 그러므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백 번, 만 번이라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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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것이라/이영훈목사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야훼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이사야 43장 1~3절)

 귀한 은혜의 찬송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이번 한가위, 추석 명절을 맞아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개인, 가정, 생활, 범사 위에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시대에 통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북한에 들어가야 진정한 통일이 됩니다. 북한과 남한에 정권이 들어선 지 70년이 됐습니다. 사상적으로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두 나라가 됐습니다. 예수님의 복음만이 우리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어서 8000만 명이, 우리가 주님 앞에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그 날이 바로 진정한 통일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주시고 우리가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모두가 되도록, 우리 사명을 가지고 힘써 하나 되기를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이사야 43장 1절로 3절 말씀 가지고 “너는 내 것이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사람의 일생은 만남의 일생입니다. 만남. 태어나면서 부모님과 만나고 자라면서 형제와 친구들과 만나고 장성하여 평생 함께 살 배우자를 만나고, 그리고 또 자식을 낳아 자식을 만납니다. 이 만남이 그 삶의 행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관계. 중국 사람들은 이 관계를 ‘꽌시’라 그러는데, 이 ‘꽌시’가 매우 중요하다고 얘기해요. 한 5년은 그 사람과 교제하고 나서 믿을 만하다 하면 ‘꽌시’가 형성된다고 하는데, 관계 중에 가장 중요한 관계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면,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우리 이웃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이 되고, 보람 있는 삶이 되고,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세 가지 모습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창조주 하나님

 이사야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이사야 서 43장 1절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진화론자는 이 세상의 시작이 우연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저 수억 년 전에 우연히 아메바가 생겨나서 이것이 진화하고, 진화하고, 진화하고, 진화해서 사람이 되고 이 우주 만물이 지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여기 있는 종이 한 장도 만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우주 만물은 말씀 하나로 지으셨지만, 흙으로 빚으셔서 그 코에 ‘훅!’ 생기를 불어넣어서,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동물들은 영이 없습니다. 여러분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두 손 모으고 기도하고 밥 먹는 것 봤어요? 그 개나 고양이가 혼은 있지만 영이 없어요.

 영은 하나님과 나와 교제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축복 된 장소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만들었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 돌리게 하시기 위해. 영광 돌리게 하시기 위해서. 이사야 43장 7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원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어디서 있든지, 나의 삶을 통하여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가정주부는 그 집에서 가정 일을 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고,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장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범사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찬양”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찬양은 지상에서 천국에 이르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고 이 찬양은 영원토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려드려야 할 우리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상 16장 29절은 말씀합니다.

 “야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야훼께 경배할지어다”
 42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산간벽지 저 외딴 섬에 있을지라도 그곳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주님을 찬양하라! 주님을 찬양하라! 시편 113편 1절로 3절입니다.
“할렐루야, 야훼의 종들아 찬양하라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야훼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야훼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이스라엘의 찬양과 기도를 담은 시편 150편 마지막 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호흡이 다하는 그 날까지 주님을 찬양하다가 주님의 부름 받고 저 천국에 가서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원자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가 되시고 둘째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구원자 하나님에 대하여 이사야 43장 1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성경에 구속하였다는 표현은 ‘값을 지불했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이 지불하셨습니다. 어떻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핏값으로 우리의 죄에 대하여 모든 빚을 다 갚으시고, 청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고귀한 구원을 받은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지만, 이 구원은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 일생 다 바쳐 주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부족할 것이 구원에 대한 감사요, 감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야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물론 야곱의 열두 자녀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긴 했지만, 야곱이라고 하는 그 이름의 뜻은 ‘속이는 자, 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라고 부를 때는 ‘너희들이 그렇게 허물많고, 남을 속이는 자고 사기꾼 같은 그런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그런 너희를 내가 구원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여주셔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사야가 선지자로 활동할 때에는 당시 앗수르라고 하는 그 거대한 나라가 중동 지역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가 이 유다까지 멸망시키기 위해서 계속 침공해왔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완전히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 당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남 왕국 유다를 무너뜨리려고 했는데 산헤립 왕 때 18만5000 명의 대군을 이끌고 남 왕국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예루살렘을 둘러쌓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 직전에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이사야서 37장 20절입니다.
“우리 하나님 야훼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야훼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하나님께서 그 눈물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그날 밤에 18만5000명 모든 대군이 다 멸살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37장 36절 보니까,
“야훼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18만 5000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날 밤에 18만5000 명의 대군이 한꺼번에 다 몰살당한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말하기를 페스트 같은 아주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아서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페스트는 얼마나 세계 역사 가운데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 한때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이 페스트로 죽었습니다. 손만 잘 씻어도 이 전염병을 옮기지 않을 텐데 그런 위생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치료하면서 병이 또 옮고, 또 옮겨서 집단적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으니 어마어마한 재앙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나라는 이렇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앗수르처럼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와 어려움, 고통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께서 위대한 승리를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내 마음속에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이 먼저 다가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너지고 육신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켜야 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렐루야!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사야 43장 3절입니다.
“대저 나는 야훼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구원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사 구원하신 하나님이 매 순간순간 어려울 때마다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시편 116편 6절입니다.
“야훼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116편 8절입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할렐루야! 얼마나 주님 은혜 감사한지.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시셨나이다! 이사야 43장 2절은 이와같이 고백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불의 시험도, 물의 시험도 우리를 어떻게 해치지 못합니다. 왜? 주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 NIV 성경을 보면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초점을 딱 맞추자.” 이렇게 되어 있어요. 주님께 초점을 딱 맞추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위대한 축복이, 승리가 우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자꾸 낙심하고 절망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내게 중병이 다가왔을 때, 여러 가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고통을 당할 때,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동행자 하나님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동행자가 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 외롭고 힘들고 멀고 긴 인생길에 주님이 동행자가 되어주십니다. 이사야 43장 2절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예수님 믿은 그 날부터 천국 갈 때까지 한평생 주님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모든 환란과 시험에서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여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을 때에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홍해 바다였습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준 것을 후회하고 전 군사들을 풀어서 쫓아옵니다.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바로 군대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우리가 장사 지낼 데가 없어서 이 광야에 나와서 우리를 죽게 하느냐”고 불평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오늘 너희에게 행할 일을 지켜보아라!” 그래서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 위로 내 밀매 바다가 쫙 갈라져 가지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넙니다. 그 뒤를 바로의 군대가 따라오니까 물이 합쳐져 모든 군대가 한꺼번에 거기에서 몰살당하고 멸망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9장 11절, 1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또 주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들을 돌을 큰 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이 행할 길을 그들에게 비추셨사오며”
 할렐루야!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가게 하시고, 낮에 40도, 50도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쬐는데 시원한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덮어주시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그들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추운, 그러한 온도가 떨어지는 기온인데 불기둥으로 그들을 덮어서 따뜻하게 해주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축복의 땅으로 인도해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말씀의 구름 기둥과 성령의 불기둥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 일생을 인도하시고 우리 일생을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할렐루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가나안 입구에 도달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 감사하며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한 설교가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회고록이요, 설교입니다. 1장 30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3절에,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하나님이 우리보다 먼저 가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우리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넘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다가온다고 낙심하여 주저앉지 말고, 여러 가지 어려움 다가온다고 몸이 아프다고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가십시오. 예수님은 위대한 승리자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그 승리를 지금도 선물로 부어주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란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당하지만, 문제를 만나지만, 질병이 다가오기도 하지만, 내게 상처가 다가오고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담대하라! 마음을 지키고 담대하여서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하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주시고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영국 최대의 설교자로 불리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 3대째 목사님 가정에 태어나서 벌써 16살 때부터 설교를 시작했고요, 스무 살 때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그 설교가 은혜롭고 성령이 충만하고 능력이 나타났는지, 스물두 살에 이미 영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그러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서 그가 런던 중심부로 옮겨서 교회를 지었는데, ‘메트로폴리탄 테버나클’이라고 하는 이 어마어마한 교회를 지었는데, 지하철이 들어왔을 때 이 교회 때문에 지하철 노선이 이렇게 굽어서 가야 했다고 하는 그런 기록도 남겨져 있고요.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데, 그러나 그 목사님의 이면을 살펴보면 목사님이 많은 병에 시달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류머티즘 성 통풍과 신장병을 앓았는데, 너무나 통증이 심해서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있어서 외출을 하는 것이 참 힘들었고, 또 젊은 나이에 너무나 목회 잘하고 잘나가니까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많아 온갖 비난을 퍼붓고 그를 공격해서, 요즘으로 말하면 SNS 같은 것으로 막 공격해서 잘나가는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그런 모습과 똑같아요. 너무 스트레스도 받고 힘들어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 우울증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깊이 우울증에 빠져서 낙심했다가 다시 믿음으로 일어나고 그러면서 우울증과 싸웠고요. 또 그 아내 수잔나 역시 삼십 대에 신장병이 발병해서 평생 동안 아팠습니다.

본인도 아프고, 아내도 아프고, 사람들은 ‘젊은 녀석이 뭐하느냐’고 손가락질하고. 그런데 강대상에만 딱 올라가면 불을 토하는 설교를 합니다. 지금이야 과학이 발달해서 이렇게 좋은 마이크도 있고 스피커도 있어서 이 많은 성도님들이 한꺼번에 설교를 들을 수 있지만, 그 당시 마이크가 없이 육성으로 만 명을 모아놓고 설교를 했어요. 불을 토하는 설교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왔어요. 그 소리를 듣고 은혜받고 변화되고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평생 3,500번 이상의 설교를 했는데 그가 너무나 설교하는 데 전력투구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쉰여덟 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모님이 말씀하기를 “너무나 설교하는 데 집중해서, 온 에너지를 쏟아 빨리 돌아가셨다.” 그랬어요. 그 정도로 그냥 설교에 올인한 거죠. 목숨 걸고 말씀을 전했는데 이와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주께서 사역에 더 큰 축복을 베푸시려 준비할 때마다 낙심의 파고가 나를 덮쳤다. 해가 나오기 전 검은 구름이 뒤덮듯이 절망이 찾아왔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보다 내게 많은 축복을 주셨다. 문질러 닦아서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게 해주셨다. 광야를 통과해야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골짜기가 깊어야 산은 더 높다! 패배를 맛본 후에 승리하게 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문제가 다가온다고, 몸에 치료하기 힘든 병이 생겼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한평생 여러분과 동행할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다가 신명기 1장 31절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우리를 안아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고 상처 입고 지쳐서, 쓰러져 걸어갈 힘도 없고 일어날 기운도 없을 때, 나와 동행하시던 주님이 나를 덥석 안으셔 가지고, 그 사랑의 품에 우리를 안고 인생의 굽이굽이 어려운 시간을 다 이기게 만들어 주시고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지. 우리를 안고 가시는 하나님. 여러분, 세상에서 나 혼자밖에 안 남았다고 외롭다고,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마세요. 주님이 그 눈물을 아시고, 슬픔을 아시고, 그 외로움을 아시고 여러분을 안고 가십니다. “낙심하지 마라. 슬퍼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한평생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와 동행하리라.” 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날마다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보면 부끄러움뿐입니다. 상처도 많고, 슬픔도 많고, 문제도 많은, 또 여기저기 아픈 데도 있고, 말 못 할 고민도 있는 그런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우리를 사랑하여주셔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안고 가시는 그 은혜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절대 낙심하지 아니하고 주님만 붙잡고 의지하며,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땐 우리를 안고 가시는 주님을 믿고 따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박임출 권사(순복음강북교회)

- 23년 봉사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도우심’

남편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상담봉사 결심
‘어머니’처럼 베풀고 나누는 여생 살고 싶어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아가페전화상담실에서 매주 3시간씩 23년째 상담봉사를 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령님과 함께하며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에서 가장 귀하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93년, 남편(노대영 장로)이 뇌종양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수술을 받고 깨끗이 치유된 뒤였다.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하루 저녁 머문 응급실에서 남편의 침대 양쪽에 누워 계시던 분들이 2시간 간격으로 돌아가셨다. 이후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거기서도 연달아 환자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젊디젊은 청년이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삶을 마치고, 맹장수술 후 가스가 나오기 전에 물을 먹어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남편은 수술 전 조용기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뇌수술 끝에 시력이 돌아오고 수술 후유증 하나 없이 건강을 회복했다. 두렵고도 힘든 과정이었으나 시련을 극복하면 신앙과 삶에 큰 유익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인생에 대한 나의 생각과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 나는 교회에서 지역장을 맡고 있었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면서 인생에서 소중한 것과 허무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러면서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일에 더욱 헌신해야겠다고 결단했다. 한 번뿐인 인생을 가치 있게 쓰임 받고 싶었다. 그리고 기도하던 중에 상담으로 이웃을 섬기는 소명을 받았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고민이 생기면 나에게 와서 털어놓았다. 그래서 나에게 혹시 상담의 달란트가 있나 보다 생각하여 상담사역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고 상담을 할수록 부족함을 느꼈다. 비록 무료봉사지만 누구에게나 제대로 된 상담을 해드려야겠다 생각하여 서강대학교 사회교육원 카운슬러 전문과정을 이수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시작한 상담봉사인데 정작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지 싶다. 상담을 하면서 슬픈 사람과 함께 울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때로는 격한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모든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다. 이는 지속적으로 사람에 대해 공부한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신앙 안에서 내가 배운 것으로 이해하고 베풀고 누리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뒤를 돌아보니 기도 응답도 많이 받았다. 삶에 여러 문제가 있을 때마다 기도원에 가서 두세 시간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속상한 마음을 다 풀어놓았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봉사하며 살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해주셨고 시간과 건강도 주셨다.

 

그동안 서원기도를 많이 했는데 지금 나의 기도는 할머니가 아닌 ‘어머니로 살다가 죽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어머니’로서 베풀고 섬기고 보듬고 안아주며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성경 골든벨 문제-21       

         

사사기

      

1. 기드온의 별명은 무엇입니까?(6:32)

    여수룬 여호야다 여룹바알 여호수아

      

2. '엔학고레'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15:19)

    평안한 자의 샘 열심있는 자의 샘 파는 자의 샘 부르짖는 자의 샘

    

3.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 신상을 만들고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

    소년을 자기 제사장으로 삼은 사람은 누구입니까?(17:12)  

  ① 마가 미가 누가 요가

    

4. 이스라엘의 처음 사사는?(3:9)

    사울 드보라 에훗 옷니엘

 

5. 메소포타미아왕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낸 사사는?(3:10)

     드보라 옷니엘 기드온 돌라

    

6.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인 세 번째 사사는?(3:31)

     삼갈 사무엘 삼손 에훗

    

7. 다음 중에서 여자 사사는 누구입니까?(4:4)

    드보라 삼손 들릴라 미리암

    

8. 사사 중에 바알과 아세라 제단을 훼파한 사람은?(6:25-27)

     에훗 기드온 아비멜렉 옷니엘

 

9. "여호와 살롬"이란 말의 뜻은?(6:24)

     여호와는 나의 힘 여호와는 나의 목자 여호와는 평화

     여호와는 나의 준비

    

10. 기드온의 군사가 왼손과 오른손에 든 것은?(7:20)

     횃불과 항아리 횃불과 나팔 나팔과 창 칼과 나팔

 



아빠를 용서해 주세요

 

우리나라 최후의 전국 순회 곡마단인 D서커스단의 소녀곡예사 윤정숙 (가명. 16) 미숙(14.가명)양 자매는 18일밤 경남 울산공연에서 눈물을 훔치며 공중에서 줄을 탔다.

아슬아슬한 묘기가 나올 때마다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소녀곡예사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아버지(57.전남 영광)가 자신들을 곡마단에 팔아넘기고 출연료를 뜯은 혐의 (아동복지법 위반)18일 서울 노원경찰서에 구속된 것이다.

정숙양은 코흘리개 7살때, 미숙양은 국민학교 3학년이던 10살 때 각각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커스단에서 곡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매는 학교도 가지 못하고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곡예체조, 줄타기, 상자속에 몸집어넣기 등을 연습했다. 아직 열살도 채 되지 않은 두 자매에게 곡예연습은 너무 가혹한 시련이었다. 아버지는 한때 정숙양에게 밤무대에서 곡예사일을 시켜 아동학대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처벌을 받았다.

윤씨는 지난해 11월 정숙양도 D서커스단에 팔아 매달 두 자녀의 출연료중 60만원씩을 꼬박꼬박 챙겼다. 자매곡예사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년전 어머니가 가출한데 이어 자신들을 맡아 기르던 안씨로부터 폭행까지 당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 윤씨는 올 8월 노원경찰서에 안씨를 고소했으나 합의금 5백만원을 받자 두 딸을 그대로 서커스단에 머물게 했다. 경찰조사결과 안씨는 자매를 2년 전부터 17차례나 상습폭행 한 것으로 밝혀져 결국 구속됐다. 그리고 아버지 윤씨도 곧 구속된 것이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싶어요. 아빠도 빨리 풀려나 집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의지할 곳 없는 소녀 곡예사들에게 아버지는 그래도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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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신 권사(은평대교구)

- ‘오직 예수’로 무속신앙 떨쳐냈다

 

나는 박수무당인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결혼 후 만난 시어머니도 철저하게 미신을 섬기는 분이었다. 나도 시어머니를 따라 무당집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알 수 없는 병이 나를 억눌렀다. 매순간 목이 조이고 머리가 무거워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내 몸조차 가누기 힘든데 이번에는 갓 돌이 지난 막내딸이 심한 화상을 입어 입원을 했다. 의사는 사흘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며 경고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셈이었다. 그때 옆 병실에서 찬송과 기도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읊조리듯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계시면 저 찬송 소리를 내게 들려주시고, 우리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데 하나님이 살려주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누군가 우리 집 문 앞에 두고 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소식지가 있어서 가끔 읽은 적이 있을 뿐이었다. 내 몸이 아팠으므로 병이 나았다는 간증을 열심히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안개 속에서 빛이 내리쬐며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침례를 받아라. 그러면 너와 네 딸이 살 것이다.” 그 소리가 세 차례나 들렸다. 희한한 꿈이었다.

 교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나는 침례가 무엇인지 물어보기 위해 옆집 문을 두드렸다. 얼마 전에 이사 온 사람인데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나는 무작정 침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집 아주머니는 대뜸 성경책을 건네며 “창세기를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마태복음을 읽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기도도 할 줄 모르는 내가 기도를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막내딸이 사흘 고비를 넘겨 살아났다.

 나는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예수를 믿어?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소리가 또 밤마다 들렸다. 하루는 기도하는 모습을 시어머니가 발견하고는 내가 읽던 성경책을 가져다가 불태우고 나를 방안에 가둬버렸다. 며느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시댁의 식구들은 온갖 방법으로 나를 회유했다.

 그러나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내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왜 나에게 교회를 못 가게 합니까?” 하고 소리쳤다. 집안이 흑암이었다. 이번에는 일곱 살인 큰딸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교회로 달려가 “우리집에 와서 찬송과 기도 소리를 좀 들려주십시오” 하고 간청했다.

 교회에서 20여 명의 사람들이 우리집에 와서 예배를 드려주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자 피를 토한 채 쓰러졌던 큰딸이 열이 내리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이 모습을 본 시어머니가 결국 “하나님의 힘이 진짜 강하시구나” 하며 자신이 여태까지 섬긴 신을 내려놓았다. 수많은 우상들을 모조리 꺼내 태웠다.

 내가 이런 일을 겪는 동안 우리집 형편은 급격히 기울었다. 그동안 미신을 믿으며 쌓은 집안의 재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물질의 축복이 밀려왔다. 그 후 큰딸과 막내딸은 모두 목회자의 사모가 되었고, 둘째아들도 우리 교회에 다니는 믿음 좋은 여인을 만나 결혼했다.

 박수무당 집안이 그렇게 믿음의 가정으로 바뀌었다. 시댁을 온전한 믿음으로 무장시키려면 아직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도 믿음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 영적인 무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 가정을 사랑하셔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정리=김주영 기자


가슴속의 희망/조용기목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3절)

 

오늘 아침예배에 ‘저는 희망을 갖자.’ 이와 같은 내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경제적인 문제, 전투적인 문제, 국가적인 문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문제가 쌓여 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세계에 개인, 가정, 사회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소망을 달라고 하면 “소망을 주지. 내가 바로 소망인데.” 주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1. 빛이신 예수님

 세상이 하도 추해지고 어두워지니까 우리들을 건져달라고 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기 위하여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어둠을 빛으로 정복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영은 죽어있으니까 하나님이 오시면 사람의 마음에 영의 등불이 다 켜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걸 통해서 인생에 빛으로 들어오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당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600년 전에 예수님 오시는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9장 2절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빛이 비치는 이 세상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말미암아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우리가 넘어지지 아니하고 길을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빛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난해 시민희망지수를 조사했는데 전체 연령 중에서 30대가 가장 비관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30대라면 가장 힘차게, 가장 의욕적으로 일할 나이인데 우리나라의 30대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우울증에 걸려 있고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낙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고달픈 삶을 살고있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누가 그들을 구출할 수 있습니까? 마음에 힘과 생명을 주어야 하는데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빛과 힘을 줄 곳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힘이요. 빛이요. 생명이요. 그러므로 그 예수님이 들어와야 힘과 능력과 용기와 미래가 있지 그렇지 않고는 아무것도 희망을 얻을 데가 없습니다.

 주님께 희망이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이라는 깊은 바다속에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면서 “내 삶에 희망이 있을 것인가?” 그 질문을 늘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주님 내게 희망이 있습니까?” “있고말고. 내가 그 희망 아니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얼마나 깜짝 놀랄 좋은 소식입니까? “희망이 있습니까?” “있고말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이 일들은 찬란합니다.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오중복음의 축복속에 들어가게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림으로 모든 흉악한 죄가 다 용서하고 의로운 사람이라 주님이 시인해주셨는데 예수님의 보혈로 행위가 없이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평생의 용서를 영원히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고통을 통해서 병의 세계를 다스립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을 때마다 우리들의 병이 고침을 받는데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채찍에 맞은 것을 믿어야 주님 얻어맞은 그 피가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난에 허덕이는 이 세계에 오셔서 저주를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로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이 성경을 해석을 정직하게 하지 못하고 너희로 부요케 할 것이라고 너희 영혼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육체의 생활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와서 아담과 하와가 죄지은 벌로 저주를 받아서 헐벗고 굶주리고 살아온 그 모든 세월과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가 십자가 못 박히고 피 흘림으로 모든 가난과 저주를 처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 살게 됩니다. 제가 건방진 말인 것 같지만 한참 6.25 전쟁을 하는 그 마당에 남쪽에서 남부여대하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 시내에 조그만 틈만 있으면 천막을 치고 들어가 살 때였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어린 여러분은 그때 상황을 잘 알 것입니다. 내가 강단에 서서 내려다보면 이 4부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나하고 같이 주님을 믿었으니까 고생을 많이 같이 했어요. 여러분이 고생을 한 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제가 함께 고생했으니 친숙함이 깊기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많이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물지게 지고 잡상인도 있고 가난하고 어려움을 해보려고 고통 많이 했는데 우리교회 와서 예수 믿고 용기와 힘을 얻고 난 다음 요사이는 그 사이 빵빵 자가용을 타고 와요. 굉장히들 부자가 됐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흘린 보혈로 네 죄와 병만 아니라 물질문제도 주님이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한 그가 가난하게 된 것은 그의 가난을 인하여 너를 부요케 하려 함이라. 우리가 축복을 받고 부요케 되었으니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다음엔 죽음,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셨는데, 우리가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절망은 죽음입니다. 60년 동안 제가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의 장례에 참석하기도 하고, 또한 장례식 설교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거나, 어린 자녀들을 둔 어머니가 세상을 뜬 것을 볼 때는 정말 마음이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죽음이라는 이 권세를 고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죽음을 다스릴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관에 넣어서 묻으러 가는데, 통곡을 하고 비참한 눈물을 흘리고 가는데 예수님이 “거기 서라. 잠시 서라.” 그리고 관 뚜껑을 열고, “왜 이렇게 잠을 오래 자냐? 일어나” 그러니깐 “와, 오래 잤네.”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뭐가 대단합니까? 완전히 죽어 파묻으러 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한마디에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이 사랑하는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 이들이 한 가정으로 사는 것인데, 여기에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가 죽어서 예수님께 연락을 해도, 그때의 통신수단으로는 빨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파헤쳐서 흙을 얹지 않고, 굴에 그냥 넣습니다. 다 묻으면 산굴에 무덤을 넣어서 무덤 문을 돌로 만들어서 막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사로는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됩니다.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마다 다 절망을 느끼고, 그 누이들은 ‘예수님이 너무 섭섭하게 일을 해주신다. 평소에 우리를 사랑해 주시더니 우리 형제가 이렇게 죽어서 무덤에 가서 안치하도록 기다릴 수가 있나. 이렇게 형편없이 대해주니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무덤에 가서 “무덤 문을 열어 놓아라.”하니깐 마르다가 “주님, 열어 놓는다고요? 무덤에 이미 들어가서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무덤의 돌문을 열어서 뭐합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마르다를 딱 정면으로 보고, “날 봐.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기적을 볼 것이라고 늘 말하지 않았냐. 너희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을 믿으라.” 믿으면 돌문을 옮겨 놓고, 믿지 않으면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 그 여형제가 돌문을 열어놓았습니다. 돌문을 열어놓은 믿음은 행위를 믿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릇입니다. 적은 믿음은 적은 그릇이고, 큰 믿음은 큰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작게 믿으면 작은 기적밖에 체험 못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힘이 얼마나 큰지, 그 작은 겨자씨의 믿음도 태산을 옮겨 놓을 수가 있다. 그럼 그런 겨자씨 믿음이 어디서 나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것이 마음에 심어지면 태산을 옮기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엄격해졌을 때, 그 여자 형제들 마음속에 겨자씨보다는 큰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나흘 만에 수의를 입은 채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2. 희망으로 가득한 삶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하는 신앙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죄의 어두움이 세상을 다스릴지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모시면 희망찬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흑암의 권세 즉 마귀의 지배 아래 섬기던 자를 예수님의 나라로 옮겨 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주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실천적인 일을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믿을 때, 그 믿음대로 되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의 나라로 이미 옮겨진 우리는, 마음속에 오중복음을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믿어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무얼 해야 되냐? 마음에 오중복음을 채워 넣으면 기막힌 사람이 됩니다. 오중복음을 만들어 놓으면 여러분 마음에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서 오중복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중복음까지는 물질적인 생각입니다. 그 다음, 4차원의 영성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오중복음을 4차원의 영성이 다스립니다.

 우리 환경은 생각과 꿈과 믿음과 신앙 선포를 통해서 다스립니다. 창조하고 다스립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면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엄청난 권세를 주었는데, 그거를 쓰지 못하고 있느냐?” 탄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생활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하려면, 생각의 밭에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다 생각이 있지요? 여러분은 생각이 있으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생각이 있는데, 생각에 무엇을 심느냐? 꿈을 심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무슨 꿈이냐?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여러분 마음에 소원하는 것을 마음의 생각에 꿈을 심습니다. 그러고 꿈을 심고 기도하면 믿음으로 변하고, 믿음을 가지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오중복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결론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더 설교하겠는데, 오늘은 이것밖에 못 하겠군요. 우리가 여하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모셔드리면 희망찬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오중복음이 있으면, 오중복음까지는 물질이지만 그게 4차원의 영성은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4차원의 영성을 통하여 꿈, 믿음, 창조적인 선언이 돼서 우리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 보면, 우리는 기막힌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아멘.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이영훈목사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베드로젖서 2장 1~5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 통일의 문을 열어주시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잘 진행되어서 북한에 복음이 들어가 복음을 통한 진정한 통일의 날이 다가올 줄로 믿습니다. 믿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복음성가: 약한 나로 강하게>

(1절)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2절)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3절)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후렴)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우리 기도에 웅답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내려주셔서, 복음이 북한 전역에 증거되게 하여주심으로 무너졌던 모든 교회가 다시 수축되게 하여주시고, 북한 전역에 교회마다 부흥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남북 8천만이 함께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진정한 통일의 날이 속히 다가올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저는 오늘 베드로전서 2장 1절로 5절 말씀 가지고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

우리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합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들이, 어떠한 조건도 갖추지 못한 우리들이 죄 가운데 살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택함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첫 출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신앙이 시작하게 된 것이고, 우리 일생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일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 일생은 감사의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택하여 구원하여주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살기 원합니다!” 날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믿고 난 이후에 하나님 자녀답게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소아시아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버릴 것과 사모할 것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먼저 버릴 것이 있고, 또 사모할 것이 있다고 저들에게 권면합니다. 버릴 것과 사모할 것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2장 1절과 2절은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신앙생활은 평생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내 원하는 대로 맘대로 선택하고 결정했지만,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는 그 선택이, 그 결정이 주님 보시기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냐, 기뻐하지 않는 것이냐에 기준을 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우리가 하면 안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먼저 이러한 것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버릴 것이 무엇입니까? 2장 1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그랬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죄에 속한 사람들이 늘 행하는 그러한 잘못된 모습이다. 이러한 나쁜 것을 버리라.”하고 말씀합니다.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제 더 이상 악한 의도를 갖고 남을 해치는 그러한 악독을 버리고, 남을 속이는 기만을 버리라.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모습을 버리라.”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사람들 앞에 자기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듣는 거리에 나가서 크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합니다. 십일조를 드립니다. 말씀을 지켜 행합니다. 난 이렇게 거룩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탐욕과 교만과 분노와 시기, 질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이러한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모습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기를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 고쳐야 될 것이 하나 있어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해주고, 가서 “참 잘됐다.”하고 그렇게 격려해주지는 못할망정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말로 남을 참소하고 비판하고 물고 뜯는 이러한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 SNS에 떠돌아다니는 많은 이야기들이 부정적인 이야기입니다.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얘기는 적고 대부분이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그 사람을 끌어내리는 그런 부정적인 말로 뒤덮여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같은 잘못된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절대 그러한 잘못된 길로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이 좀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좋은 것은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그리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참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나 없나 들춰내 갖고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우리는 주님 앞에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버려야 되고,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장 2절에,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아이가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한 끼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픈 것을 아는데, 말씀을 하루 이틀 건너뛰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데도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사모하는 마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 믿음이 자라게 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돼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로 17절은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5만 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 목사님.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기도의 사람이기 이전에 앞서서 그는 성경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성경을 200번 정도 통독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말씀을 사모했는데, 100번 읽을 때 그 성경을 읽는 것이 너무나 감동스러워서 무릎을 꿇고 말씀을 보았다고 합니다. 성경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영적인 생명력은 우리의 생각과 생활에 말씀이 얼마나 자리 잡고 있는가와 정확하게 정비례합니다. 저는 100번이 넘게 성경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매번 기쁨이 점점 커졌습니다. 성경은 늘 저에게 새로운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날마다 성실하게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 놀라운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날 성경을 읽지 않았던 시절을 저의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성경을 읽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TV 드라마 앞에서 ‘헤...’ 하고 정신을 빼놓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까? 신문 보며, 잡지 보고 이런 시간은 얼마나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고 거기 빠져있는데, 말씀 보는 것은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것을 우리가 반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일생이 말씀과 동행하는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1년에 한 번 이상은 통독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지구역장 하려면 열 번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아멘 소리가 잘 안 나오네. 안수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돼서 교회를 섬기려면 한 20번은 읽어야 될 것입니다.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모르고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에 굳건히 서서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뜻을 실천해 나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주님께 나아가라

둘째로, 우리는 말씀을 붙잡고 날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3절, 4절입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날마다 우리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나아가고, 찬송으로 나아가고, 예배를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라!” 체험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8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야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만남의 체험인 것입니다. 내가 지식적으로 아는 것 가지고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주님의 은혜가 임할 때 감동이 오고, 기쁨이 넘쳐나고, 감사가 넘쳐나는 그러한 체험을 날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예배 구경꾼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예배 시간에 구경꾼으로 왔다 가는 것처럼 그 삶이 불행한 것이 없습니다. 이 시간이 나의 운명을 바꿀 그런 축복의 시간인데, 그런 기적의 시간인데,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복된 시간인데.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예배 시간마다 주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내 일생 다 가도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때에, 소아시아에 있는 모든 교회에 이 편지를 보내 믿음을 격려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그 기독교 박해를 피해서 뿔뿔이 흩어져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버린 바 된 모습으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네로 황제 시대 이후로 시작된 기독교 박해가 약 250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어서, 또 불에 타서, 십자가형으로 죽었습니다. 귀족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버린 바 되었지마는 주님은 그들을 붙드시고, 세워주시고, 함께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핍박을 당할 수도 있고, 믿지 않는 집에 시집을 가서 핍박을 당할 수도 있고, 어려움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면 주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여러분을 모든 고난을 이기게 만들어주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시편 118편 17절에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야훼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를 핍박하고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주님이 다 심판하시고 우리를 그들 앞에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고난은 잠깐입니다. 고난 뒤에 다가올 영광과 축복과 이 고난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때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또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나를 도우시고 함께하여주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고, 놀라운 역사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힘든 일이 다가옵니다. 어려운 일이 다가옵니다. 요즘 참 경제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중학교만 올라가면 벌써 사춘기가 와 가지고 반항하고 집을 뛰쳐나가고,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다가오지만, 그때가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때인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눈물의 기도를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그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주셔서 주님의 기적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3.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며 거룩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셋째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할렐루야! 여기 보니까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집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들어와 계셔서 내가 신령한 집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집인 우리의 집을 잘 보전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관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신령한 집을 함부로 내버려두면 안 되요.

성격이 부지런한 사람은 일을 찾아서 합니다. 쉬는 시간이 없어요. 집에서도 계속 바닥을 청소하고 또 닦고 또 닦고 반짝반짝하게 만들고, 설거지통에 그릇 쌓이는 것을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주저 없이 또 닦고 또 닦고 또 닦아요. 그런데 성격이 원래 게으른 사람은 막 설거지 이만큼 쌓아놓고. 집안에 청소하지 않아서 먼지가 쌓여 가지고 이렇게 만져보면 막 먼지가 묻어나오고.

그런데 여러분은 신령한 집이기 때문에 그 집을 아름답게 가꿔야 됩니다. 늘 기도하고, 말씀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집을 아름답게 가꿔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말씀도 보지 아니하고, 예배드려서 예배드릴 때도 전혀 그냥 구경꾼으로 앉아 있으면, 그 집에 먼지가 가득 앉아서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집을 잘 가꾸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집인 우리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 건물은 예배드리는 우리를 예배 잘 드리도록 건물이 되어서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고, 진짜 교회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신령한 집이 되어서 주 앞에 거룩한 제사장으로 예배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주춧돌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춧돌을 빼내면 건물이 흔들리고 집이 무너지게 되는데,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주춧돌이 되시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예수님이 전부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시고,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바로 세우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베드로가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이 믿음의 고백의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울 터인데, 그 어떠한 흑암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 기독교와 맞서서 이긴 정부가 없습니다. 기독교와 맞서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그 악한 세력을 하루아침에 와르르르르 무너뜨려버리시는 것입니다.

1917년, 기독교 국가였던 러시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다 잘살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의 문을 닫고, 기독교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74년이 지난 후에 1991년에 소련은 와르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들이 한때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국과 맞서는 대국이라 했지마는, 소련이 무너진 다음 들어가 보니까, 어떻게 이 나라가 이렇게 유지가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1993년도, 94년도, 제가 6개월마다 모스크바에 들어가서 신학교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는데, 그 당시 한 달 평균 생활비가 20달러입니다. 2만 원, 별로 놀라지도 않으시네. 2만 원, 20만 원도 아니고 200만 원도 아니고 2만 원.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 두 끼만 먹습니다. 딱딱한 빵, 요만한 것 하나가 한 끼입니다. 정말 딱딱하고 질기고 맛이 없는데, 그게 한 끼에요. 그것도 세 끼를 못 먹고 두 끼만 딱딱한 빵 하나를 먹고 지내는데, ‘아!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핍박하더니 이렇게 가난과 저주가 다가왔구나.’ 완전히 소련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마음껏 주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이 놀라운 일을 감사해야 됩니다. 이 우리는 주 앞에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가 있는 곳에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우리 삶이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특별히 택하고 부르셔서 위대한 사명을 맡겨주신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분명한 정체성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택하신 족속으로, 거룩한 나라로,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은 여생 우리를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33년 동안 몸담고 있던 불교에서 벗어나 승려였다가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서건석 성도를 소개합니다.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사춘기 때 방황하면서 나쁜 길로 들어섰습니다. 주먹을 휘두르며 깡패로, 폭력배로 방탕한 삶을 살다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서 그는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주도까지 도망을 갔는데 한밤중에 목탁 소리를 듣고 찾아가 보니, 그곳이 절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주지 스님을 따라서 훈련을 받으면서, 하루 삼천 배씩 하면서 승려가 됩니다. 승려가 돼서 나와가지고 금산에서 이제 절을 짓고 승려로 살게 되었는데, 이분이 결혼을 합니다. 승려도 결혼을 하는 모양이에요. 그래 결혼했는데,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변화되어서 하나님 일꾼 되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합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심방 오신다고 하니까, “제 남편이 승려예요.” 그래 목사님도 놀래고, 교인들도 놀라고. 그래서 교인들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분 남편이 변화되어서 예수 잘 믿게 하여주옵소서.” 본인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남편이 청년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 만나 변화된 것처럼 변화되어서 하나님 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되는 분이 나가던 교회가 오래되어서 건물에 금이 가고, 비가 새고, 건물을 다시 짓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 남편이 그 소식을 마을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한 번 가보니, 건물이 낡아서 다시 안 지으면 굉장히 위험하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그 부인에게 말합니다. “교회 짓는 데 돈이 얼마나 드냐?”고. 그래서 승려가 건축 헌금을 해가지고 교회를 다시 지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교회 올 때마다 교회에다 데려다주고 본인은 가는데, 성탄절 날, 부인을 따라 교회 들어와가지고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송을 들으니까 마음이 뭉클해지고, 내가 어떻게 살았나 주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부인을 따라서 교회를 나오게 되는데 부흥회 때 나와 가지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강사 목사님이 아픈 데에 손을 얹고 기도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고쳐주신다고 하니까, ‘아니, 저 사람 사기 치는 것 아니야?’ 그러나 혹시 하는 마음에 오랫동안 허리가 아파서 고생을 했는데, 허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하나님 살아 계시다면 제 허리를 고쳐주옵소서. 약으로 또 의학적으로 못 고치는 이 허리를 고쳐주옵소서.’ 기도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까 허리가 말끔히 나아버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33년 동안 승려 생활에서 완전히 돌이켜 모든 자기의 삶을 정돈하고 올해 첫 주부터 교회를 열심히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주님께 돌아오기까지 3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세상에서 죄 짓고 불의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용서하여주옵소서. 너무나 많은 세월을 방황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하나님을 직접 더 간절히 만나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절을 처분하고 거기다가 기도원을 짓는답니다. 할렐루야!

우린 이렇게 하나님 앞에 귀한 존재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택하여 부르신 것은 이 어둠이 깊은 세상에 사랑의 빛, 치료의 빛, 용서의 빛, 구원의 빛을 비추라고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여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아름답게, 위대하게 쓰임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우리가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주시고 이제부터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거룩한 제사장으로 쓰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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