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묵 안수집사(강서대교구)

- 갑자기 닥친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신 주님


서부간선도로에서 운전 중 원인모를 어지러움 느껴
사고 없이 정차하고 병원 후송돼 기도로 치료받아

 지난 4월 7일 토요일 밤 10시경이었다. 나는 서해안 고속도로 서울방향 서부간선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광명대교에서 약 100븖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순간적으로 차가 뒤집히는 것 같은 심한 어지러움이 엄습했다. 내 몸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나도 모르게 기도가 먼저 튀어나왔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 아직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나간 모든 잘못을 회개하오니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주세요. 목숨을 보전하여 교구 총무 일도 감당하게 하시고 안수집사회 중보기도 팀장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지금 저를 데려가시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치료하여 주세요”

 돌이켜 보면 어떻게 기도부터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 차들과의 충돌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핸들을 꼭 부여잡고, 비상등을 켠 채 천천히 차를 도로 옆 갓길에 정차시켰다. 서부간선도로는 하루 종일 많은 차들이 오가는 곳이라 불안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때 서부간선도로에 오가는 차가 단 한 대도 없었다. 정지되어 있는 차 안에서도 어지러움은 멈추질 않았다. 도리어 더욱 심해져 마치 몸이 차에서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진정될 줄 알았지만 어지러움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물을 마셨지만 도리어 구토와 설사로 인해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결국 나는 구급차를 부를 수밖에 없었고 구급차는 순찰차를 앞세워 나를 인근 홍익병원으로 후송했다.

 병원에서 나는 방사선촬영, CT촬영을 했고, 소식에 놀라 달려온 아들이 병원입원 수속을 진행했다. 나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어 휠체어로, 병실로 옮겨졌다.
 자정 무렵 검사를 마친 당시 나는 혈압이 196mmHg에 이르고 알 수 없는 추위가 엄습해 벌벌 떨고 있었다. 다음 날이 마침 주일이라 간호의료진의 진료만 받을 수 있었다. 온종일 구토만 하는 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교구 권사님을 통해 안수집사회 중보기도팀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소식을 들은 소속 교구(강서 1교구)에서도 심방을 와서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월요일 아침 담당 의사는 토요일 검사결과를 가지고 “목동맥의 폐색 및 협착증”이라며 동맥에 혈전이 있으니 정밀 검사를 통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자고 말했다. 자칫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불안감을 갖고 MRI촬영 등 정말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들으러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토요일에 CT상으로 있던 혈전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반대편 쪽 3군데에 혈전 가능성이 높으니 치료를 하자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 상황 가운데 날 살려 주신 것도 모자라 혈전도 사라지게 해주신 것이다. 앞서 주일에 간절히 기도하고 또 나를 위해 기도해준 분들이 있어 혈전이 사라졌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남은 혈전들도 하나님께서 제거해달라고 간구하기 시작했다. 평소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한 이사야 38장 16∼17절을 반복해 읽으며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다.

 평소 나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고, 마라톤 완주를 위해 일주일에 2∼3회씩 10km를 뛰는 것은 물론 매주일 오후면 축구도 했다. 그랬던 내가 한순간에 생사를 오가는 갈림길에 처할 줄이야. 나는 회개기도하고 또 회개기도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것 밖에 없다. 예배 때면 사고의 위험 속에서 지켜주신 것도 모자라 지금처럼 깨끗하게 치료해주셨음에 감사의 고백과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 바라기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주님의 일에 앞장 서는 삶을 살고 싶다. 할렐루야.

정리=정승환 기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신앙/조용기목사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편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입은 자로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1.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고달프고 지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담이 마귀의 시험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고 후손도 평생에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것을 마귀의 꾐을 받아 따먹어서 죄를 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시험에 낙제하도록 유혹을 하지만 우리가 마귀의 시험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 하면 마귀는 기도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로 41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잠시 후에 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힐 터인데, 그 십자가에 매달린 주를 끝까지 밑에서 격려하지 못하고 다 달아나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죽는데 가실 지라도 나는 안 달아나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제일 먼저 달아났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시험에 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마가복음 14장 29, 31절에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도 마태복음 25장 26절에 보면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땀이 땅에 떨어지도록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할 때에 모두들 잠을 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잠든 것을 보시고 누가복음 22장 46절에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이나 동료들이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기도하고 결정을 내리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잠을 자면 마귀의 시험에 듭니다. 마귀는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전문가입니다.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기도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큰 힘을 주십니다. 시편 118편 8절로 9절에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E.M.바운즈는 기도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랜 가뭄 끝에 넉넉히 쏟아지는 단비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복된 물을 나르고 보존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입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할 일은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향해 베드로가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은과 금은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얻었다!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라!” 우리는 기도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포기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먹을 것과 모든 필요한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을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감사할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마귀와 친구가 되어서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마귀의 꾐에 넘어가고 마귀의 불평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보면 마귀가 아담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자 아담의 마음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면 결국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범사에 감사하라

 저는 살면서 감사를 많이 하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아침밥을 먹을 식사를 주니 감사합니다.”하고 감사합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를 만났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항상 그때그때 감사를 했습니다. 그 감사가 저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서 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었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범사라는 것은 온갖 일, 모든 것에 걸쳐서 감사를 하면 그 감사를 통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인생의 모든 시험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감사를 더 넘치게 만들어 줍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당시에는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펌프 물을 퍼올려야 했습니다. 당시 신학교 논 쪽에 펌프장이 한 곳이 있었는데 물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물이 나오느냐? 한 바가지의 물을 미리 부어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물을 붓는데 그 물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마중물을 붓고 나서 펌프질을 하면 나중에는 콸콸콸  물이 쏟아집니다. 감사는 이 마중물과 같습니다. 처음엔 감사의 말이 잘 안 나오지만, 감사의 마중물을 실천하면 넘치는 감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사할 제목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감사할 거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방해하는 원인 중 하나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건강한 몸을 갖고 잠에서 일어나는 것에도 감사할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은 감사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은 우리가 매일 보는 풍경을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의 제목인지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과 비교하다 보면,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 차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참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대조동 천막교회를 대성전 앞마당에 지어놨는데 그 재현도 실제에 비교하면 대궐입니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던 천막교회를 통해서도 한 소년이 희망을 얻고 꿈을 가진 결과 미국 백악관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길을 열어주는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남과 비교해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에도 감사하고, 힘든 일에도 감사하고, 그야말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시편 9편 1절로 3절로 보면 “내가 전심으로 야훼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찾아옵니다. 고난 중에서 감사하고 찬양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실컷 얻어맞고 밥도 못 먹고 밤중에 감옥에 제일 구석진 냄새나는 곳에 쇠고랑에 차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원망하고 불평했으면 아무것도 안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감옥 구석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감옥 문이 다 열리고, 속박에서 풀려난 것입니다. 간수자는 책임감을 느끼고 칼로 찔러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죽지마라. 한 사람도 도망친 사람이 없다. 사람이 문을 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문을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감사를 하니 감사의 능력이 채워놓은 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를 하면 속박에서 풀려납니다. 속박을 당하여 고통스러울 때 감사하십시오. 그 감사에 속박을 푸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시편 95편 6절과 7절에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야훼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18편 28절과 29절에도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10명의 문둥병 환자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모두 다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뛰어 와서 그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9명은 문둥병이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집에 돌아가기가 급급하여 고쳐주신 예수님께 와서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께 은혜를 감사로 갚게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의 반대말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십니다. 민수기 14장 27절로 29절에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이 지극히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 중에도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감사는 모든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늘 감사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삶을 풍성한 은혜로 채우시는 것입니다


모리타 요시츠쿠 목사(순복음사카이교회)
수술 불가능한 뇌종양, 4차원 영성의 기도로 고침 받아

조용기 목사의 치유메시지 테이프로 전해 듣고 신유체험

 20년 전 내가 열 살이 좀 넘어서였다.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계속되는 두통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당시 시골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내 머리에 종양이 있다고 했다. 결과는 악성 뇌종양이었고, 뇌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암의 위치가 뇌 깊숙이 있고 많은 신경이 지나가는 자리라서 수술과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부모님과 나는 죽음이라는 절망만 안고 시골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종양이 커지면서 뇌압이 상승되어 참을 수 없는 두통과 구토가 이어졌다. 여기에 신경마비 증상까지 나타났다. 팔과 다리가 마비됐고, 시력 장애로 눈이 보이질 않았고, 안면신경도 마비됐다.

 나의 신경이 죽어가자, 잠을 자고 싶어도 마비증상 때문에 눈꺼풀이 감기질 않았다. 가족들은 나의 눈을 감겨준 후에 그 위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줬다. 그러면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죽음만 기다리고 있던 중 큰누나의 친구가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전해줬다. 일본에서 열린 큰 성회에서 일본어로 ‘치유와 기적’에 관해 설교하신 것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성회에 참석해 병고침을 받았다면서 설교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나는 TV소리나 음악을 켜놓으면 구토증세가 더 심해졌다. 하지만 누나가 틀어준 설교를 들으면서 한 번도 구토를 하지 않았다. 말씀을 들으면서 치유라는 메시지가 매우 생소했다. 하지만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게 또 치유였다. 어머니도 신기해했다. 거의 24시간 내내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테이프를 통해 듣고 또 들어 외울 수도 있었다. 조용기 목사님 설교말씀은 매우 강력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라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말씀은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 있는 나에게 희망을 전했다. 그래서 설교말씀을 나에게도 적용했다. 잠을 자기전 몸의 한부분과 특정증상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나았다고 선포했다.

 “모리타의 눈은 나을 것이다. 이미 나았다. 제 눈을 고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반복하면서 기도했다.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기도하고 감사로 선포했다. 시간이 흘렀다. 기도는 더욱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 내일 아침에 눈이 나을 것이다”라고 믿으며 기도했다. 진짜 다음날 기적이 일어났다. 잘 안보이던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귀가 나았다고 선포하면서 기도했다. 다음날 나의 귀는 청명하게 잘 들리는 것이었다. 또 팔이 나았다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다음날부터 팔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할렐루야!

 나는 신체 하나씩을 위해 기도했고, 구체적으로 드린 믿음의 기도는 모두 응답됐다. 6개월이 걸렸다. 할렐루야! 수술조차 할 수 없었던 암덩어리는 사라졌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매우 건강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순복음신학교를 졸업해 지금은 목회자로서 오사카에 있는 사카이순복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주님께 영광 돌린다. 할렐루야!

 나는 이번 간증을 통해 조용기 목사님께 가슴깊이 감사를 전한다. 일본 복음화를 위한 헌신으로 우리 시골동네까지 성령충만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었고, 내가 살아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죽은 씨앗


초등부 교사 한 분이 하루는 주일학교 성경공부 시간에
조그만 알맹이 하나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호기심 어린 투명한 눈망울들이 일시에 선생님의 손을 바라보자,
미소만 머금고 있던 선생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얘들아, 이것은 씨앗이란다. 그런데 이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니?"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말문을 열 기회만 찾던 개구장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생님 흙이 제일 중요해요. 씨앗은 흙이 있어야 자랄 수 있잖아요."
한 녀석이 자신 만만하게 으쓱거리며 대답을 하자,
또 한명이 "햇빛이 가장 필요해요. 햇빛이 없으면 영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라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한참 듣고 있던 선생님이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시간이란 듯이 입을 열었다.
"얘들아, 사실을 이 씨앗은 삶은 것이란다."
그러자 꼬마들은 억울한 듯 얼뚱한 눈들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선생님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란다.
생명이 없는 씨앗에는 햇빛도, 물도, 흙도, 공기도 더 이상 소용이 없는 법이지."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으며 참 생명의 근원이 된다.
우리는 이 생명을 분여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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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을 부어 주리니/이영훈목사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2장 17~21절]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성령강림 주일을 맞이해서 사도행전 2장 17절로 21절의 말씀을 가지고 “내 영을 부어주리니”,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듣고 배웠지만 성령 받기 전에는 무기력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간 제자들은 손꼽아서 몇 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나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나와서 말씀을 선포할 때 하루 3천 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2천 년 전의 오순절 날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선포한 메시지의 일부입니다. 오늘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성령의 시대

 첫째로,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시대가 열렸음을 그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우리는 이 세상의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많은 도전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성령충만 받고 우리 삶 가운데 은혜가 넘쳐가게 될 때,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요엘서에 예언한 그 말씀을 사도행전 2장 17절에 베드로가 인용하여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마지막 때에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줄 것이라. 너희 자녀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성령을 부어주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반드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증인 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성령 받으면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권능을 받으면 증인 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시험에 들고 낙심을 하고 좌절을 합니까? 그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권능이 임하기 때문에 이 권능을 가지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물리치고 승리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우면 술 취해가지고 그것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술이 깨고 나면 속만 뒤집어지고 오히려 머리만 더 아프고, 그 뒤의 후유증이 오히려 그에게 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성령에 취하면 우리 삶 가운데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가고 주님의 기쁨과 은혜와 평화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계 최대의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60년 동안 성령께서 역사하여주셔서 우리 교회가 세계 최대 교회를 이루었는데, 과거의 환상에 머물러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다시 재 충만 받아야 합니다. 다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다시 모든 것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머물러 있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꿈을 꾸며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권능이 임하여서 우리 삶 가운데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게 되고,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시대에 살면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가오는 문제와 어려움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 늘 말씀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성령 충만하기를 사모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꿈꾸는 사람

 둘째로, 성령충만 받으면 우리는 거룩한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꾸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2장 17절, 18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예언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이 인간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했습니다. 환상은 비전을 말합니다. 거룩한 꿈과 비전을 갖고 내일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이 없이 삽니다. 비전이 없이 삽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다 보니까, 그 삶에 아무런 기쁨도 의미도 행복도 보람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꿈을 꿔야 합니다.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앞에 다가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는 꿈을 꿔야 합니다.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일생동안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다고 하는 그런 비전을 가지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비전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에 대해서 비전을 갖고 꿈을 꾸면 그 자녀들이 그렇게 변화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로 대한민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은 안 됩니다. 긍정적인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신다. 북한의 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때에 통일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에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해서, 남쪽은 미군이 들어와서 3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했습니다. 그 결과 3년이 지나고 나서 북한은 공산국가가 되고, 우리 남쪽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70년이 지났습니다. 70주년이 지난 이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 통일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문을 여시면 그 문을 닫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거룩한 꿈과 환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지금 내가 나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꿈을 꾸는 데는 돈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꾸는 데는 건강해야 되고 가진 것이 많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긍정적인 생각만 들어오면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나는 이제 늙어서 끝났어.”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꿈을 꾸고 나가야 합니다. 모세가 팔십 세에 사역을 시작했으니 “인생은 팔십부터!” 꿈을 꾸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꿈을 주셔서 그 꿈이 내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가져다주고, 건강을 가져다주고, 은혜를 가져다주고,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꿈과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한평생 자기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부여잡고 달려 나갔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에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분명한 꿈이 있었습니다. “나의 생명 다 바쳐 주의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한평생 달려 나갔습니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옆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그 목표를 향하여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서 마지막 순교의 자리에서 그가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다하기까지 복음 증언하는 일을 최선을 다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여, 소홀히 하지 아니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헌신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주여, 우리가 그와 같은 꿈과 비전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 나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많은 도전이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물러서지 않고, 믿음 가지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게 하여주옵소서.

 성령충만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게 만들어 주십니다. 늘 입만 열면 “할 수 없다.” “안 된다.” “못 살겠다.” “죽겠다.” 하던 그 입술이 이제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삶이 기쁘다.” “행복하다.” 그렇게 언어가 바꿔지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환경은 어렵고, 자녀들은 속을 썩이고, 몸은 아프고 하지만, 생각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면 그 삶에 변화가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입니다. 뒤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앞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KTX을 타고 출발해서 부산으로 가면 목적지까지 두 시간 조금 지나면 도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그 기차가 출발해서 목적지 향해 가다가 다시 멈추어서 뒤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목적지가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기차도 한 번 출발해서 목적지를 향해 가면 뒤돌아가지 아니하고 계속 가는데, 기차를 만들고 기차를 조종하는 우리 사람들이 목표를 정해놓고 뒤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만든 기계보다도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꿈을 꾸고 목표를 정했으면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 개인을 향한 거룩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가정을 향한 거룩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자녀들을 향한 거룩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섬기는 이 교회를 향한 거룩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거룩한 꿈을 꾸고, 믿고, 바라보고 나아갈 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거룩한 꿈을 꾸기 위해서 우리는 부정적인 나의 자화상의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실패와 상처로 얼룩졌던 이 나의 옛 사람의 모습을 내던져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에게 실패란 없다!” “더 이상 내게 절망이란 없다!” “더 이상 내게 좌절이란 없다!” “내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미래만 예비 되어 있을 뿐이다!”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 가족 구원의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직장이,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가, 캠퍼스가 복음화 되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지금 너무나 많이 우리가 분열되어 있고, 다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우리 옆에 가까운 큰 집이 밤낮 그러고 있어요. 하나님 아버지, 정치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하나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통일의 놀라운 역사를 우리 눈앞에 두고 저렇게 나뉘어서 비판하고 다투지 않게 하여주시고, 한마음 되어 통일을 향해 달려 나가게 하여주시옵소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하나 되는 역사 있게 하여주옵소서. 가진 자는 많이 내놓게 하여주시고, 없는 자는 더 내놓으라고 싸우지 말고 서로 화해하고 하나 되는 역사를 이루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여당이나 야당이나 사랑으로 하나 되어서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하여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이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달려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 내에는 여, 야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교회는 모두가 여당, 야당도 아니고 예수님 당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서 위대한 대한민국 건설에 앞장서 나갈 때, 성령을 우리에게 기름 붓듯 부어주셔서 거룩한 꿈을 꾸게 하시고, 그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

 우리가 성령의 시대를 살면서 거룩한 꿈을 꾸며,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2장 21절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꿈은 온 인류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난 다음 성령충만 받으면 모든 문제가 단 번에, 따뜻한 볕에 눈 녹듯이 싹 녹아져버리고 해결되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나오는 일에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복음의 증인이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받고 권능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증거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가 한 사람이 여섯 명 이상 전도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섯 명이 아니라 60명, 160명이라도 전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의 열정을 갖고 전도할 때 믿음이 자랍니다. 전도할 때 기쁨이 넘쳐납니다. 전도할 때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예수를 믿으면 나뿐 아니라 나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된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여러분이 사돈에 팔촌까지 아직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 있으면 올해가 가기 전에 모두 다 주님께로 인도해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충만 받은 베드로가 나가서 말씀을 선포할 때, 저들에게 감동이 왔습니다. 2장 37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40절에 또,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할렐루야! 이 말을 듣고 저들이 가슴을 치며 저들의 죄를 회개하고 줄지어 주 앞에 몰려나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그날 3,000명이나 몰려나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3,000명이 쫙 줄을 서갖고 침례 받는 장면은 아마 역사 가운데 큰 감동을 남긴 사건으로 남겨졌을 것입니다. 2장 41절입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천 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오늘 이 땅에서도, 이곳에서도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주여,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름 떼처럼 몰려와서 줄지어 침례 받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는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의 권능으로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 나올 때,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했습니다. 폭발적으로 부흥하는 그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2장 43절로 47절은 설명합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주여, 이 은혜가 우리 교회에 다가오는 60년 동안 날마다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절대로 단 하루도 성장이 멈추는 날이 없게 하여주시옵소서.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 축복의 메시지가 아시아 전역에서 온 모든 아시아 교회에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대교회는 기사와 표적의 공동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 받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눔과 돌봄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을 다 나누었습니다. 교회 안에 궁핍한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배가 고파 굶어 고통당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회만 들어오면 다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을 가져온 힘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 이 부분이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성숙해도 물질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인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질은 쓸 때 그것이 진짜 나의 것이 되는 것이지, 갖고 있는 동안에 쓰지 못하면 나의 것이 아닙니다. 돈은 써야 돈이지 갖고 있으면 돈이 아닙니다.

 뉴욕에서 한 홈리스가 겨울에 얼어 죽었는데요, 슬리핑백을 열어보니까 구걸하면서 얻은 달러가 1불, 2불, 5불, 10불, 20불 짜리 합쳐서 5만 달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달러를 품고 죽었어요.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니지요. 그 돈의 100불만 꺼내가지고 호텔에 들어가 가지고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거기서 또 20불만 꺼내서 먹을 것 자기가 나가서 사 먹었더라면 그렇게 추운 겨울에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슬리핑백을 갖고 겨울에 얼어 죽은 사람이나 오늘날 돈을 갖다가 금고에만 가득 쌓아놓고 쓰지 않고 있다가 ‘윽!’하고 죽는 사람이나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은 쓸 때 가치가 있고, 돈을 쓸 때 하나님이 더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낌없이 돈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가 그것을 내놓아서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 병든 사람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교회에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서, 우리 교회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없게 하여주시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나누어주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서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주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칭찬 받는 교회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루살렘 교회를 모두가 칭찬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했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누구길래 자기가 가진 그 재산까지 다 내놓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가?’ 크게 놀라고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2장 47절 보니까,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교회 되게 하여주옵소서. 존경 받는 교회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이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교회가 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주님의 사랑이 차고 넘쳐나서 칭찬 받는 교회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100여 년 전에 20세기 초, 1901년 1월, 미국 캔자스 주 토피카 시에서 놀라운 성령 운동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팔함 목사님이 세우신 벧엘성경학교에서 19세기를 보내고 20세기를 맞이하는 1900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통성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20세기가 열리는 1901년 1월 1일, 오전 11시에 그곳에 와서 예배드리던 아그네스 오즈만이라고 하는 처녀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팔함 목사님이 휴스턴으로 옮겨가서 거기서 다시 이 성령 운동을 할 때, 노예의 아들이었던 윌리암 시무어 목사가 와서 성령 체험을 하고 1906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주사 거리에 성령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1906년부터 3년 동안 매일같이 하루 12시간 이상 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송과 기도와 병 고침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그곳에 계속 되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몰려오고 몰려와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온 세계로 확산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출석하던 교회에서 찬양대로 봉사하던 메리 럼시라고 하는 자매가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기도하며 성령의 불을 받았을 때, “넌 한국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 공부를 하고 준비하여 1928년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첫 번째 우리 오순절 선교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 전역에 이 성령 운동이 확산되어지고 해방 이후 1953년에 하나님의성회가 이곳에 서게 되었고, 그리고 그 신학교를 졸업한 우리 조용기 목사님이 1958년 5월 18일, 대조동에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대조동 천막 교회에서 서대문으로,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이사 오면서 교회는 폭발적으로 부흥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다섯 명이 오백 명으로, 오백 명이 만 명으로, 만 명이 10만 명으로, 20만 명으로 30만 명으로, 창립 50주년을 맞을 때, 78만 명으로. 할렐루야! 교회가 계속 부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010년 우리가 20개 교회를 33만 성도와 함께 독립시키고 난 후에도 계속 성장하여 20개 지교회와 우리를 합치면 지금 88만 명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지금 오순절 성령 운동에 참여한 교회 숫자의 성도님 숫자가 6억7천만 명이라고 하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전 세계에 성령 운동하는 교회가 다 부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말합니다.

오순절주의는 한때 주류였던 개신교 그룹들을 갓길로 몰아내고, 주류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21세기는 성령 운동을 하는 교회가 이끌어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 선두 주자가 되어서 전 세계에 성령 운동을 주도하고 전 세계 부흥을 가져오는 귀한 사명을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 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증인이 되어 이 귀한 역사를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여 임하시옵소서! 우리에게 권능을 더하여주시고, 우리 모두가 복음의 증인 되어 이 주님의 놀라운 귀한 역사를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 이루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함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사오니,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 받고 거룩한 꿈을 꾸며, 권능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성령님과 동행한 지난 60년, 다섯 명으로 출발하여 주님, 오늘 이르기까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60년도 그와 같은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임하시면 성령께서 동행하시면, 그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우리 교회 가운데 임하고, 부흥이 지속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맡긴 사명 감당하고 주의 뜻을 이뤄나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믿음으로 바라보라/조용기목사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요한복음 6장 5~11절]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큰 무리가 광야에서 주님을 향해 모여오는 것을 보시고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자기의 경험과 지식으로 결코 그 무리들을 쉽게 먹일 수 있지 못할것이라고 판단하여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밀려오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받으시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1. 감각으로 사는 삶


 빌립은 자신의 감각과 지식을 의지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수천 명의 남자들, 수만명의 부녀자들을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절로 7절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묻는 질문을 빌립은 부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조종하여 공중에서 날아갈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눈, 코, 입, 귀 등 감각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비행기 조종사는 자기 감각을 믿고 판단하면 안됩니다. 앞에 있는 계기판을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갈 때에 자신의 경험이나 감각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는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5절로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태어난 곳에서는 믿음이 없으므로 큰 기적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할 때 큰 그릇을 가지고 나오면 크게, 적은 그릇을 가지고 나오면 적게 역사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떠한 그릇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주님이 채우기도 하고 중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아무것도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릇이 다 막혔으니까, 하나님이 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형제였던 안드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기적을 행할 때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서 기적을 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나오는 그것을 가지고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삶


 안드레의 믿음은 작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 8절로 9절에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말씀합니다.

 빌립은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안드레는 뭔가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도시락을 가지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초라한 양식이고 물고기 두 마리는 당시 반찬으로 먹던 소금으로 잔뜩 졸여놓은 조그마한 물고기입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그것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빌립은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안드레의 그 작은 믿음을 받으시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주께 가지고 나가면 주님께서 기적의 재료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빈 손들고 나와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7장 6절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주님께서 행하시고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면 주님이 크고 적은 것을 판단하셔서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3.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욥기 5장 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전도서에도 7장 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되 우리가 얼마나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고 늘어지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과 같이 계셔도 예수님을 붙잡지 않고 방황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고 기적이 생겨날 것을 우리는 믿고 시인해야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기도하고 믿었으면 믿은 분량의 응답이 올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4절과 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구하는 분량을 따라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녀들을 잊지 않고 돌봐 주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젖먹이는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사람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 지구상에 새들이 몇 마리나 살고 있을까요? 생물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것이 새라고 합니다. 전 세계 인구보다 몇 십 배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새도 하나님께서 친히 다 먹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마태복음 6장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새보다 더 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굶기실 리가 만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고난이라는 보따리에 싸여서 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은 고난이라는 보따리만 보기 때문에 좌절하고 맙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문제 속에 감추어진 기회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 인간적인 경험이나 지식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송영미 집사(강서대교구)

- 10년간 앓은 딸의 난치병 하나님 은혜로 치유


이영훈 목사 신유기도 받고 정상 판정
선천성 질환 치유에 의사도 기적 인정


 2007년 예쁜 막내딸을 낳았다. 하지만 출산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갓난아이의 폐에 공기가 차있어서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했는데 그러던 중 우리 아기가 선천성부신피질호르몬증식이라는 난치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무슨 병인지 귀에 들리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완치가 어렵다는 것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생 12시간, 24시간 마다 2종류의 약을 먹고 살아야 하는 병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평생 이렇게 약에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니 막막했다. 그저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약에 의존해서라도 아이가 잘 자라나고 있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3개월에 한번 씩 정기적인 검사와 호르몬제로 인한 부작용 반응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이루어질 때마다 아이가 먹는 약의 양이 늘지 않고 이대로만 잘 유지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가장 위험한데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3차례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이가 건강하게만 자랄 수 있기를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공중에 나는 새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내버려 두시지 않으실 것을 믿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이 아이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분명히 있을 것을 믿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016년 아이가 10살이 되던 어느 날 이영훈 목사님께서 주일예배 설교 후 신유기도 시간에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엄마 아빠가 아주 오랫동안 눈물의 기도를 하고 있는데 오늘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닦아주시며 ‘다 나았다’고 말씀하십니다”라고 선포하셨다. 우리 부부는 “아멘”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렸고 아이를 끌어안고 기뻐하며 응답받았음을 확신했다.

 다니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호르몬이 약으로 10년 째 잘 유지되고 있으니 유전자 검사를 해서 좀 더 세밀한 부분을 확인해보자고 하셨다. 검사결과가 나오던 날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몸에서 호르몬이 생성되고 있고 더 이상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할렐루야!”로 대답했고 의사 선생님도 기적이 일어났다며 함께 기뻐해주었다. 그 후로 12시간, 24시간 마다 먹어야 하는 약을 끊고 6개월에 한번씩 정기적인 검사를 하며 호르몬이 잘 생성되고 있는지 확인만 하고 있다. 늘 가슴 졸이던 부작용 검사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3개월 전 정기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도 호르몬 수치가 정상이고 모두 정상적인 발달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다. 우리 아이 현주는 지금 아동5부에서 순복음의 어린이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우리 가족 모두 배웠다. 아이를 통해 가족의 믿음도 많이 성장했다.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린다.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정리=이미나 기자


윤남수 집사(동작대교구)

-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따르니 복 받아

술,담배 중독 시아버지 극진히 모셔 전도해
좋으신 하나님 전하니 마음에 기쁨 넘쳐  
   
 

나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구원의 열매를 맺고 있다. 나 또한 다른 분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 번 나가겠다는 말을 어길 수 없어 나오게 된 교회에서 성령침례를 받고 그때부터는 교회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됐다.   20여 년 농산물가게를 하며 내가 받은 기적과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다. 나에게는 두 가지 사업 원칙이 있었다. 매달 첫 주 사업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주일은 가게를 쉬는 것이다. 대목이어도 주일은 장사를 하지 않았다. 야채가 시들면 팔 수 없기에 주일을 쉬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걱정보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내 삶에서 작은 부분까지도 보살펴 주셨다. 기도하면 토요일에 뜻밖에 손님이 찾아와 물건을 전부 구입해 갔다. 만약 물건이 다 팔리지 않았더라도 남은 물건으로 불우한 이웃들을 돕고 전도용으로 사용하면 되기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3년 전 남편이 농산물가게를 내놓을 때 역시 기도하니 40도가 되는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계약이 되는 응답을 받았다.    

 내가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십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따라 시아버지를 잘 봉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0여 년 전 “아버지가 몸이 정상이 아니다. 올해가 마지막 생신일 것 같다”는 시누의 전화를 받게 됐다. 가보니 시아버지의 얼굴이 술 중독으로 벌겋게 올라있었다. 술을 쉬지 않고 마시고 담배를 하루에 6갑씩 피우는 시아버지를 모실 사람이 없어 둘째 아들인 남편이 맡게 됐다. 시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셔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 거동하기 힘들었고 담뱃재로 옷은 물론 집안 곳곳에 구멍을 내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기가 막혀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교회를 가야하니 어쩔 수 없이 모시고 가는데 십자가탑 앞에서 술을 한 병 마셔야 따라오셨다. 내가 명색이 집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는데 시아버지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부끄러워 힘들었다. 그렇지만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 내 마음에 시아버지를 먼저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님 내 가족 구원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전도 하겠어요. 부모부터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내 부모님도 나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되셨고 다른 사람들도 전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아버지 구원도 들어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고집을 부리는 시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맛있는 걸 사드리겠다고 모셔오고 평소에는 좋아하는 곳을 함께 다녔다. 부은 다리를 매일 주물러 드리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시아버지가 변화된 건 한 순간이었다. 몇 년 동안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배 때면 대성전에서 목사님을 향해 삿대질하고 고함을 지르던 시아버지가 어느 날부터는 교회에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시아버지는 그 후로도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시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89세에 소천 했다. 기독교를 멸시하던 시동생도 아버지의 변화에 감동해 하나님이 참 좋으신 분인 것 같다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나는 곧 시댁 가족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저 나는 좋으신 하나님을 전할 뿐이다. 앞으로도 전도에 힘쓰며 사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영훈목사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야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야훼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삼상 7:12~14]

 오늘은 사무엘상 7장 12절로 14절의 말씀을 가지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고 날마다 풍성한 축복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저들은 다 같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 반복된 내용입니다. 예수님 믿는 우리 모두에게도 주시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나서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가고, 세상을 사랑하면,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용납하시고 용서하셔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고 잘못된 길로 갔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기도대성회’를 열었습니다. “미스바에 모여 우리가 기도하자. 우리 하나님께 회개하자. 우리가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실 것이다.” 그래서 ‘미스바기도대성회’를 여는 장면이 오늘의 사무엘상 7장의 말씀입니다.

1. 주님께로 돌아오라

그 첫 번째 메시지는 주님께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주님께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사무엘상 7장 3절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야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야훼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잘못됐었던지, 엘리 제사장의 자녀들이 타락하고 잘못된 길로 가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법궤가 돌아오긴 했는데, 저들이 법궤를 성소에 모시지 못하고 기럇여아림이란 곳에 20년 동안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들이 법궤를 빼앗기기까지 한 그러한 수치를 당하고 나서도,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잘못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던 모든 모습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머물러있고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면서,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모습이 있으면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초창기 같았던 신앙의 뜨거운 열정을 잃어버리고 우리 신앙이 미적지근해지고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변해버렸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금 영적 대부흥운동을 일으켜야 될 것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삶 가운데 우상을 철저하게 제거해야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다 우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했으면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습니다.” 올바른 물질관의 신앙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더 사랑하고 따라갔으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삶 가운데 있는 교만의 우상을 제거해야 됩니다. 교만은 ‘내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교만입니다. 나 혼자 스스로 의로워서 늘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요즘 세상 말로 하는 갑질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철저히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섬김, 희생, 낮아짐이었지, 절대로 군림하고 다스리고 짓밟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면서 그렇게 변질되어간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주여, 우리 교만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많이 배웠다고, 많이 가졌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주님이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을 철저히 회개하오니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올 때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첫 사랑을 회복해야 됩니다. 주님 앞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그 모습을 회복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큰 은혜를 부어줄 줄 믿습니다.

2. 주님께 부르짖으라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 나와 주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 돌아 나오라!”고 말씀한 후에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상 7장 5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야훼께 기도하리라 하매
 “미스바로 모여 기도하자! 이제 우리는 주 앞에 회개하고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민족의 살 길이다!” 사무엘이 외쳤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미스바에 몰려왔습니다. 그때 블레셋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들이 미스바에 모인다고 하니 미스바를 포위해서 저들을 전멸시키자.’ 사무엘상 7장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때 사무엘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7장 9절입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야훼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야훼께 부르짖으매 야훼께서 응답하셨더라
 신앙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 눈물로 회개하고, 주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젖 먹는 어린 양을 잡아 피를 흘려 번제를 드렸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흘러넘쳐날 때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주님 앞에 예배드릴 때, 주님께서 우리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하늘의 문을 여시고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앞에 회개하고 돌아 나와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많은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영적으로 무기력해졌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기도 생활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말씀하기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서대문 시절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했던지 아무리 종을 쳐도 기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종을 들어다가 여기다가 종을 쳐야만 기도가 그쳤습니다. 요즘 그런 열정적인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생활이 좀 더 나아지고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열정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진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됩니다. “주여, 우리를 용서하여주셔서 우리의 기도가 다시 회복되어지게 하여주시옵소서!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던 우리의 옛 모습을 다시 회복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7장 10절은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야훼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군대와 비교해볼 때 군사력으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철기로 병거를 가지고 무장한 강력한 군대였지만, 이스라엘은 그 전력이 그들과 맞서 싸울 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패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가 구름 떼처럼 우리에게 몰려온다고 할지라도,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이기고 또 이기고 또 이기는 것입니다.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을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들이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고 해서, ‘우리가 다 가졌다.’ 그렇게 착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천이백만 크리스천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천이백만 크리스천이 있는 한 우리 대한민국은 절대 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도전에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고 또 이기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대적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어떤 질병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어떤 문제가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우린 예수님의 이름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6장 7절에,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때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날마다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문제가 끝없는 교회는 기도가 사라진 교회입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밤낮 나뉘어서 싸우고 있으니, 교회가 사분오열되고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교인이 줄어들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밤낮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많아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들어주시고 교회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미국의 처치온더웨이의 설립자인 잭 헤이포드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각 신자들이 자기 안에 기도의 위대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 시대 최초의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능력은 기도에 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며, 우리의 가정과 삶을 보다 낫게 만드시고,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을 주어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시기 위함이다. 오직 기도하는 교회만이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일구어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이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많은 기도를 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사명을 감당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사랑해주셔서 많은 기도하는 주님의 일꾼들을 세우시고 60년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주 앞에 감사드려야 될 것은 여기까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여기까지 도우셨다

 세 번째로,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길 원합니다. 7장 12절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야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이라는 말은 ‘도움의 돌’이라는 말입니다. 이 도움의 돌이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이 장소는 20년 전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블레셋에게 패해서 법궤를 빼앗겼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게 하시고 그 패배의 자리, 절망의 자리, 수치의 자리, 슬픔의 자리가 영광의 자리, 축복의 자리, 기적의 자리, 승리의 자리가 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여주시며, 우리의 절망의 자리가 변하여 희망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변화되게 만들어주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생 살아오면서 많은 고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질병도 찾아왔을 것입니다. 문제도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절망으로, 수치로, 질병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영광의 상처가 되고, 오늘날 승리와 축복의 자리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주님, 절망의 자리가 축복의 자리가 되고, 고난의 자리가 영광의 자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저 불광동 천막이 고난의 자리였지만 영광의 자리가 되어서 서대문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서대문에서 폭발적인 부흥을 일으켜서 허허벌판 아무것도 없는 이 모래사장에 이 여의도교회가 세워졌을 때에 유류파동으로 교회 건축이 중단되고, 녹물이 슬고 하는 그러한 고난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고난의 자리가 변하여 영광의 자리가 되었고, 오늘 이 축복의 자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우리가 잘나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고백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우리는 고백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 60년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한 고난과 영광의 60년’이라고 하는 제목을 걸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50년, 후임 목사의 10년, 60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뿐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다가온 가장 큰 시련은 80년도에 들어와서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며 한국 교회 부흥을 주도해나갈 때, 우리 교회의 부흥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비판의식을 가졌던 몇몇 분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예장통합 측 교단이 1983년 제68차 정기총회에서 ‘조용기 목사님을 사이비에 준한다.’고 하는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를 빌미로 해서 우리 교단 내에서도 우리 교회를 공격하고 문제를 삼으면서 교단이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10년이 지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우리 교회가 사이비로 비판을 받고 도전을 받을 때, 교인 수가 20만에서 30만, 40만, 50만, 60만, 70만, 세계 최대 교회로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의 기간이 영광이 된 것입니다. 결국 예장통합 측은 1994년 제79차 정기총회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오순절교단의 신학의 특수성에 근거한다.’는 보고와 함께 사이비를 철회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이단 시비가 종료된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 교회가 급속히 성장한 가운데,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우리 교회가 더욱 견고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교단도 우리 순복음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교단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성령 운동을 본받고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박수 친다고 이단이라고 했는데, 요즘 박수 안 치는 교회 없어요. 다 박수 칩니다. 옛날에 드럼 치고 북 친다고 이단이라고 그랬는데, 요즘 북치고 드럼 치지 않는 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가장 문제 삼았던 영락교회도 제가 지난번에 성회를 인도하러 가보니까, 드럼 치고 북 치고 하더라고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해서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2008년 5월, 한국 교회 역사 상 초대형 교회로는 처음으로 세 차례 투표를 거쳐 민주적 절차에 의해 후임이 세워져 온 교계와 언론의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0년 1월 1일, 20개 지성전이 완전히 독립해서 떨어져나갔습니다. 성도 33만이 같이 분리해 나갔고, 교회 재정이 반으로 줄게 되었고. 그런 상황 가운데서 2010년도에 담임 목사를 물러가라고 3년여 동안 교회를 강하게 흔든 세력이 있었습니다. 3년여 시련 동안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함께하셨습니다. 2010년에 44만 9,438명으로 우리 교회가 시작을 했는데, 2010년도에 10,064명의 새 신자가 늘고, 2011년에 12,114명, 2012년에 12,403명, 계속해서 증가하여 2017년 12월 말, 55만 5,275명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만 명씩 성장한 그러한 평균 성장을 가져온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무엘이 살아있는 한평생 동안 미스바기도의 이후에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셨습니다. 사무엘상 7장 13절, 14절입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야훼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빼앗겼던 모든 영토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이스라엘을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해주셔서 이스라엘이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의미이지만, 그것은 어제 도우신 하나님이 오늘 여기까지 도우시고, 앞으로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60년 동안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 교회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그 어떠한 세력도 우리 교회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어제도 도우시고, 오늘도 도우시고, 앞으로도 도우실 주님 앞에 모든 것 다 맡기고 이제 우리는 거룩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다가올 60년을 또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에게 북한 복음화와 통일이라고 하는 꿈을 주셨으니 주님 함께하여주옵소서! 10년 동안 멈춰있던 평양조용기심장병원도 다시 건축하여서 완성을 짓게 하여주시옵시고, 북한 전역에 교회가 서게 하여주옵소서. 북한 전역에 복음이 들어가게 하여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남북이 복음으로 하나 되는 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사회의 소외되고 병들고 지치고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우리가 사랑을 펼쳐나가게 하여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만이 인류의 희망인 것을 우리가 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지금 한국 사회는 정치가 완전히 좌우로 나뉘어 극한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고, 노사 문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또 지역적으로 동서 양극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라고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막아내야 합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들어오는 급진 좌경주의자들도 있습니다.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잘못된 모든 사상을 막아내고 철저하게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하나 되어서 예수의 사랑을 온 천하에 전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에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마는 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은 오히려 우리를 더 주님 앞에서 견고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들고, 주님 앞에 준비되는 그러한 훈련 과정이었던 것을 깨닫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 우리가 60주년을 맞이하면서 벅찬 감정으로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앞으로 다가올 60년도 그렇게 함께하여주셔서 하나님의 영광만 온 천하에 드러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미련한 타조에게 주신 은혜  

 
 타조는 날개가 달렸으나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타조는 알을 낳을 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타조는 여름날의 열기가 밀 이삭을 패기 전에는 결코 알을 낳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 시기를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알아냅니다.
타조가 굳이 이때를 기다려서 알을 낳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워낙 금새 잊어버리는 성질을 가진 타조는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은 뒤에 모래를 덮어 두면

자기가 알을 낳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전혀 돌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운 계절에 알을 낳는 것입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타조 알은 저절로 부화되고 새끼가 제 꼴을 갖추고 태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미련한 것 같아 보이는 타조에게도 가장 적합한 때에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얼마나 풍성한 것들을 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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