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부모/이영훈목사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1~4)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을 행복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 충실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가정에서 자녀와 부모의 역할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장 1절, 2절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 십계명에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가 사람에 대한 계명인데, 이 사람에 대한 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이 계명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나와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야훼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를 잘 섬기는 자에게 장수의 복을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모 공경, 그 효의 그 삶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대들고,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참으로 못된 사람은 부모님 중에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된 그런 부모님을 어머님이나 아버님을 모시지 않고 그냥 내팽개쳐두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 가장 어려운 분들 심방을 가보면 독거노인들이 많이 계신데,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살고 계세요. 그런데 독거노인들에게 나라에서 복지 기금으로 매달 지원금이 나오는데 그 지원금도 못 받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알아보니까, 자녀들이 있는데 부모님과 연락을 단절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있지 않은 그런 가정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명히 호적상에는 자녀가 있고, 자녀가 잘살기 때문에 나라에서 복지 혜택을 줄 수가 없는데, 본인은 그 부모가, 부모에게 그 자녀, 자녀가 연락하지 않으니까, 홀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분이 꽤 있습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인 것입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됩니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 땅을 치고 통곡해도 돌아가신 부모님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버이 살아실 제 효도를 다 하라’는 우리 옛말이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말도 좀 안 통하고, 또 부모님께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실 때도 있고, 좀 부모님 고집이 세실 때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을 더 이해해 드리고, 더 사랑해드리고, 잘 섬기는 그러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기 때문에 우린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래도 이만큼 하나님께 복 받고 잘살게 된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우리의 전통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효라고 하는 것이 우리 전통 사상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요즘, 이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데,, 우리가 다시 부모를 공경하는 이러한 전통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보면 위대한 인물 뒤에는 눈물로 기도하는 위대한 어머니들이 다 있었습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 그리고 찬송 작가인 찰스 웨슬리의 어머니는 수산나 웨슬리라고 하는 기도의 어머니였습니다. 기록을 보면요, 이분이 자녀를 참 많이 낳았어요. 열아홉을 났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병약해서 아홉 명이 세상을 떠나고 열 명을 잘 길렀습니다. 매일같이 아이들 모아놓고, 기도하고, 말씀 가르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해서, 그 열 자녀가 하나님 은혜 가운데 잘 자라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중세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인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도 그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열일곱 살 때 아들 어거스틴이 집을 나갔습니다. 카르타고라는 지역에 공부하러 갔는데, 젊은 나이에 혼자 나가니까 좀 잘못된 길로 갔어요.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또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살면서 애를 낳았어요. 그런 방탕한 삶을 15년 동안 살아가는 동안, 어머니는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마침내 그 아들을 변화시켜서, 아들이 서른두 살이 되었을 때 자기 발로 다시 돌아옵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을 데리고 돌아와서 침례를 받고, 그다음 변화 받아 신학교 들어가 주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큰 일꾼이 되어서 북아프리카 히포라는 곳에 가서 평생 사역을 하면서 많은 신학을, 책을 저술했는데, 그 책들이 중세 신학의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죽고 난 다음 그의 이름 앞에 ‘Saint’, ‘성자’라는 이름이 붙어서 성 어거스틴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어머니에 대해서 남긴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면 그것은 오직 아버지께서 제게 이런 어머니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신실한 여종인 나의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위해 우는 것보다도 살아 있는 나를 위해서 더 울었습니다.

 이 말이 제게 큰 감동이 됐어요.
어머니께서 늘 기도하던 곳은 눈물로 바닥이 흥건히 적시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위해 흘린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할렐루야! 위대한 제사장이요, 선지자였던 사무엘도 그 뒤에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습니다. 모두가 기도의 어머니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한 만큼 그 자녀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저도 새벽에 깨면 늘 어머니께서 눈물로 저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가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최선의 것이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들을 예수 잘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놀라운 복을 내려주시고, 또 자녀들에게도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자녀로서 가장 큰 효도는 뭐냐? 부모님이 예수 믿고, 신앙생활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우리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여 영원한 세계의 천국으로 가게 될 터인데, 부모님이 예수님 믿지 않고 세상을 떠나시면 다시 만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실 때 반드시 예수를 잘 믿도록 여러분께서 부모님을 인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이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남은 여생이 정말 하나님 은혜 가운데 충만하고 행복한 여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마음을 늘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잠언서 23장 25절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틈틈이 전화드려서 안부를 묻고, 시간 내어서 찾아뵙고, 건강을 잘 체크해서 어디 불편하고 아프신 데 없나를 살펴보고 또 제일 좋은 것은, 정기적으로 용돈 좀 드리고. 딴 거 필요 없어요.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명절 때,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선물도 드리고 그래야 부모님 마음이 즐거운 것입니다. 어머님에게 용돈 드리면 “아이, 뭐 이런 걸 가져왔냐? 관두고 말지.”라고 하시면서도 그 마음이 흐뭇한 것입니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되면 에베소서 6장 3절의 복이 임합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잘되고 장수하리라. 할렐루야! 부모에게 효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자녀를 사랑하라

둘째로, 자녀를 사랑해야 됩니다. 6장 4절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것은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잘 예우해서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자녀를 인격적으로 무시하거나 부모의 감정을 그대로 다 나타내면, 자녀들이 자라나면서 지울 수 없는 그 마음의 상처, 인격의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그 상처 때문에 그 쓴 뿌리가 깊이 내려서, 예수님을 믿고 우리가 새사람이 되어 이전 것이 지나갔다고 하지만, 때때로 내가 약해질 때마다 그 쓴 뿌리에서 쓴 물이 나와서 나를 괴롭힙니다. 나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늘 자녀를 돌볼 때는 인내로, 주의 사랑으로, 말씀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은 말씀합니다.
보라 자식들은 야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자녀를 사랑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래서 잘 양육하는 그러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저께 뉴스를 보니까, “부모하고 자녀하고 하루 대화하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되겠느냐?”고 물어보니까, 부모님들의 평균 시간은 하루 종일 우리 아이와 얘기하는 시간은 48분이다 그랬어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물어봤어요. “너희 하루 종일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몇 분이냐?” 그러니까 13분이라고 했어요. 그만큼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갈급해하는데, 아이들에게는 13분밖에 대화할 시간이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겁니다. 그 13분도 “공부해라!” “밥 먹어라!” “세수해라!” “이 닦아라!” 그게 전부에요. 인격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대화를 나눌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사랑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아이들을 안수해달라고 데려오는 것을 꾸짖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절, 14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당시 여자와 아이가 존중을 받지 못하던 사회였는데, 예수님께서 여자와 아이를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특별히 감정 조절이 안 될 때 화부터 먼저 내면 안 됩니다. 격분해서 자녀를 때리는 것도 자제해야 됩니다. 무자비하게 자녀를 폭행하면 그 자녀의 인격이 비뚤어지고 결국 자녀들은 난폭해집니다. 결국 폭력이라는 것은 대물림하게 되요. 부모가 폭력을 휘두르면 그 자녀도 대부분 폭력적인 자녀가 됩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면 그 자녀도 알코올 중독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절대 나는 아버지처럼 밤낮 술 먹고 들어와서 들어 엎고 엄마 때리고, 나 이런 사람 싫다. 안 되겠다’고 하지만 나중에 보면 자기가 그렇게 되어있는 거예요. 자기가 술 취해가지고 부인을 때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한 것 그대로 뇌리에 새겨놓았다가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늘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인내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돌봐주면 자녀도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함부로 하고 소리 지르고 감정 조절을 못 하면, 그런 자녀를 또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그런 분이 있었다고 하면, 오늘부터는 완전히 그것을 고쳐서 자녀를 인내와 사랑으로 돌봐주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저는 자라나면서 한 번도 우리 부모님이 부부 싸움 하는 것을 못 봤어요. 또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소리 지르고 다투는 것을 제가 못 봤어요. 오히려 저희들이 잠이 들면 조용한 소리로 조곤조곤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도 우리말로 안 해요. 일본 말로 서로 주고받으세요. ‘아! 부부 싸움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자녀들이 못 알아듣게 일본 말로, 뭘로 왔다갔다 하시는데 그것도 조용하게. 우리 다 잠들은 줄 알고, 우리는 잠 안 들었는데. 그렇게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큰소리로 다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안 되겠구나.’ 배운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앞으로 자녀들에게 정말 감정이 폭발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마시고, 늘 화목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에 미국 ABC 방송에서 집 나간 아이들과 부모님을 연결해서 전화를 하는, 대화를 나누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1년에 200만에서 300만이나 되는 아이들이 집을 나간다는 거예요. 미국이 워낙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집을 나가면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그 방송에서 계속 그 기자들이 사람을 찾아가지고 연결해서, 이제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플로리다에 있는 엄마가 뉴욕에 가 있는 딸을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그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는데 엄마가 얼마나 우는지 몰라요. “애야, 애야, 너 건강하니? 너 잘 있었니? 너 몇 년 동안이나 소식도 없고 어떻게 지냈니? 너 나 보고 싶지도 않니?” 그랬더니 그 딸이요, 얼굴이, 어머니가 자기한테 울면서 전화했는데도 반가워하지 않고 시큰둥해갖고 “엄마가 날 사랑하기나 해? 엄마가 나보고 꺼져버리라고 했잖아!” 엄마 아빠가 부부 싸움을 하는데 얘가 들어와서 뭐라고 하니까 “꺼져버려! 보기 싫어!” 그러니까 애가 평소에 엄마가 대화 잘 안하다가, 잘 안 해주는 걸 봤는데, ‘오늘 속마음이 나왔구나. 꺼져버리라니 꺼져버려야겠다.’ 그때 또 순종을 잘해가지고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 버렸어요. 말 한마디가 그 자녀의 삶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내가 잘못했다, 내가 화가 나서 소리 지른 것이었다, 진심이 아니었다.” 얘기해도, 그 딸은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더라고요. 이미 그 마음속에 ‘엄마가 나를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고, 마음에 있던 말을 해서 나를 쫒아냈다.’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아이가 거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입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무엇보다도 교회학교에 잘 나오게 하면 됩니다. 교회학교 열심히 나와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며 자라날 때에 장차 큰 인물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3.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

셋째로, 우리는 화목한 가정을 이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4절에서 25절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성경에 부부와의 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가 나눠질 수 없듯이 부부도 나눠질 수 없는데, 그 부부 관계의 연결고리가 바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를 줄 때 하나를 받는다’는 조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이 먼저 나를 사랑하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러한 사랑도 아닙니다. 사랑은 먼저 하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먼저 주는 것입니다. 그때 진정한 사랑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자기가 기준이에요. 자기 기준이기 때문에 내 기준에 맞추라고 얘기를 합니다. 늘 부부가 싸우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둘 다 자아가 강해서 그래요. 자존심이 세가지고, 나한테 맞추라고 하니까 부부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부부 싸움을 열심히 하신 분들은 오늘 반성하시고 오늘부터 들어가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잘 위해주고 사랑으로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잖아요, 조건 없이 먼저 사랑하셨어요.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조건 없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서, 우릴 구원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랑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므로,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먼저 이렇게 하세요.”라고 하면 서로 그것이 피곤한 것입니다.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섬기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일생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늘 우리가 은혜가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하고,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늘 다투는 부부 아래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늘 다투는 것만 보고 배우기 때문에 잘 다투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부부가 화목하고 사랑을 보여주면 그 자녀도 사랑 가운데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행복해야 그 삶이 행복하게 되고 그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님의 어머니 되시는 여귀옥 권사님에 대해서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여귀옥 권사님은 대성그룹 창업주 되시는 김수근 회장님과 결혼해서, 정말 기도를 많이 하는 기도의 어머니로서 가족을 화목하게 하고. 여러분 기억하세요? 대성 연탄하면 우리 그때 연탄 다 집에서 때면서 난방을 했는데 그 연탄 공장으로 시작한 대성 그룹을 국내 재계 서열 10위로까지 성장시키는데 있어 크게 내조한 그 부인이요, 어머니입니다. 특별히 근검절약 정신을 가지고 절제 운동을 전국에 펼쳤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돈을 벌려고 서울에 상경한 시골 처녀들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편물을 가르치고, 양재를 가르치고, 미용 교육을 가르쳐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었고, 또 전쟁 후에 고아들이 넘쳤는데 그들을 위해서 학교를 세우고, 생활비의 80퍼센트를 떼어서 장학 기금을 만들어 장학생들을 키워내고, 금주 금연 캠페인을 벌이면서 술 담배 마약의 해독을 사람들에게 깨우치고 해서,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 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교도소 전도, 유아원 사역, 여러 가지 일을 앞장서서 일하시면서, 자기 자녀 네 명을 다 성공시켰어요. 다 명문 대학을 나오고, 다 있는 위치에서 큰 사업가가 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적십자 총재가 되고, 하여간 이렇게 복을 받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녀들이 늘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어머니에 대해서 고백했습니다.

“어머니가 저희에게 주신 값진 유산은 절제와 나눔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당연히 내 것인 것은 없다, 못 가진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에게는 헌옷을 내리 입히셨고, 어머니 자신도 속옷을 기워 입으시며, 평생을 검소하게 생활하며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중심의 삶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저희에게 늘 강조하고 가르치신 건 봉사였습니다. 저희는 그런 어머니를 통해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나라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살피셨던 어머니의 사랑과 절제의 정신은 지금도 저희들 가슴속에 숨 쉬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가정을 신앙으로 회복해야 됩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데 힘쓰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보기에 “저 집은 참 행복하다!” 이렇게 보일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여러분 가정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그 화목한 모습이 이웃을 변화시키고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시면, ‘어버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고 했으므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모님들은 자식을 사랑으로 돌보고, 부부는 다투지 말고 사랑 안에서 서로 섬기고 그리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이 넘쳐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복된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며, 자녀를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루어서 우리 가정이 주님께 사랑받고, 이웃에게 칭찬받는 가정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김선영 집사(금천대교구)

-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아세요

암 직전에 발견, 투병 생활 없이 회복
건강 찾은 후 봉사하는 삶의 기쁨 얻어

 결혼 직후 임신을 했다. 기쁨도 잠시 난소에 물혹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것 때문에 아이를 잃게 됐다. 이후 3년간 두 번이나 계류 유산을 했다.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러던 중 감기에 걸려 항생제까지 먹었는데 뒤늦게 임신사실을 알았다. 병원에서는 중절을 권했다. 간절히 기다렸던 아이인데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수술대에 누웠다. 의사가 자꾸 이상하다고 했다. 아무리해도 마취가 안되고 또 자궁문도 열리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며 방법이 없다며 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신기한 일에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아이를 품고 있는 열달 내내 예배란 예배는 모두 찾아 드렸다. 그리고 드디어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들은 심방중격결손증이 있었지만 건강하게 자랐다. 7살에 수술을 했고 12시간의 긴 수술 시간 동안 친정 고모님이 기도를 해주셨는데 아이 옆에 예수님이 지켜주시는 모습을 보셨다고 했다.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감사해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5년 전 소화가 안 되서 약을 먹었는데 잘 낫지를 않아 병원에 갔다. 검사 때 대장에서 용종 하나를 떼었다는 소리를 들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조직 검사 결과 암이었다. 수술하기는 애매했지만 일단 혈관을 2㎝ 정로 타고 올라갔다고 해서 수술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암이라니 나에게 왜 이런 병이 생겼나,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걱정과 근심으로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정말 운이 좋은 분이라며 너무 미세해서 발견되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항암치료도 방사선 치료도 받을 일이 없었다.

 수술 후 나는 똑같은 생활로 돌아가 바쁘게 직장 생활하며 세상에 젖어 살았다. 일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 뭔가 몸이 이상한 것 같아 병원에 갔는데 이번에는 유방암이 발견됐다. 육안으로도 확인이 안 되고 아주 작은 몇 개가 있는데 다발성암이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심각하게 이야기 했다. 주변에서 투병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게 치료 받는 것을 봐서 제발 항암치료를 안받았으면 하고 기도했다. 밤을 새우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 순간 비로소 내가 그전에 서원기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똑같이 세상으로 나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술 4일 후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을 때 의사로부터 ‘정말 운이 좋은 분이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상피내암인데 암이 되기 전 0기에서 발견이 됐다고 한다. 대장암이 발견 됐을 때와 똑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종교를 갖고 계신 분이냐고도 질문했다. 내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그분은 ‘정말 신이 계시나 보네요’라고 말하셨다. 

 수술 후 몸을 회복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기도처에서 여선교회 봉사자가 부족해 굉장히 힘들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술 부위가 아물자마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도 아셔서 평일에는 어린이집 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다.

 내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유아교육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교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는데 병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공부를 잘 마쳤고 더욱 소중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가장 감사한 것은 불신 가정에 시집을 가서 오랜 세월 남편을 위해 기도한 것이 응답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집안에서 제사 때 절하는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렸는데 이제 남편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가 됐다.   

 언제나 함께 하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이 건강을 허락해주시는 그날까지 봉사하며 기쁘게 살아가고 싶다.  


성경퀴즈가 좋다-8

11. 다음의 성경 말 에 들어갈 을 순서대로 말하세요. (정답:행함,진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18절 말씀 

12. 다음의 성경 말씀에 들어갈 을 순서대로 말하세요. (정답:감사,하나님,)

범사에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절 말씀)

 

13. 다음의 성경 말씀 중에서 안에 들어갈 알맞은 단어를 말하세요. (정답:구원의 날)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 □이로다

(고린도후서 62)

 

14.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원하나요?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도록 ○○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성경 

 

15. 다음의 성경 말씀에 들어갈 을 순서대로 말하세요. (정답:전심,찾으면,만나리라)

너희가 ○○으로 나를 찾고 ○○○ 나를 ○○○○

(예레미야 2913절 말씀)

   

16. 다음의 안에 들어갈 성경 말씀을 순서대로 말해보세요. (정답:,)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12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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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조용기목사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야훼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야훼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여호수아 3장 5~13절]


 애굽을 떠나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가나안땅에 목전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마지막 관문인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때는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난 시기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을 건널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단에 들어서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요단에 들어서자 하나님께서 강물이 멈추고 육지처럼 땅이 나타나게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1. 언약궤를 메고 건너가라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상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강을 건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언약궤가 있어서 언약궤를 메고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언약궤 속에는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 곳에 있던지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말할 필요 없이 광야를 지나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데 법궤를 짊어지고 제사장들이 요단강 물가로 들어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강을 건너라고 말씀하셨다고 여호수아 3장 6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하나님은 눈으로 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법궤는 그들 가운데서 모시고 있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궤를 메고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나간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5절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예수님과 함께 여러 가지 문제의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슨 언약궤가 있습니까? 너희 몸은 하나님이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 자체가 언약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언약궤인 우리 속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무엇이든지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갈 때에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언약궤를 짊어지고 가듯이 우리는 모시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공로를 통해서 우리가 새로운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는 우리 언약궤 진리인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언약궤를 메고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5절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언약궤가 되어서 우리 속에 계시며 어느 곳에 가든지 주님이 볼지어다 내가 너와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예수님과 함께 여러 가지 문제의 요단강을 건너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늘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경쟁해서 이길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 언약궤 예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주를 의지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폴 스톨츠 박사는 지능 지수나 감성 지수보다 역경 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역경 지수가 높은 사람은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은 첫째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 자기 자신을 비난하거나 비하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 어려움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요즘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물이 없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 뿌리를 더 깊게 내리듯이 삶의 환경이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뿌리를 깊이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주기를 간절히 바라야 할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옛날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 동리에 나가면 온 동리가 캄캄한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걸어가기가 두려운 곳이 우리 동리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전기사정이 좋아져서 동리마다 대낮같이 밝은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 빛이 아무리 어둡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빛이시라 예수님을 모시면 대낮같이 밝게 우리는 우리 환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가는 곳에는 주님의 영광이 항상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힘을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도 이 세상에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갈 때는 두렵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생은 한 번도 안 가본 세상에 태어나서 사니까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 때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반드시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인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요단에 들어서라

 말씀을 붙잡고 불가능에 도전해야 인생의 승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4장을 보면 갈렙이 믿음으로 도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4장 12절에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갈렙이 요청한 헤브론 산지는 지형이 험하고 요새가 많아서 정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갈렙은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갈렙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 곳에는 아낙 사람들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갈렙이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믿음을 가진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제게 하는 말씀같이 느껴집니다.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불과 83세이니 더욱더 용기와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면 이 세상에 마귀의 모든 악한 공격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야훼께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우리는 늘 믿음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새로운 일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으면 폭풍은 만날지라도 파선될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묶여 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더 넓은 바다를 누비며 일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배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항해를 떠나라.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고 탐험하고 꿈꾸며 발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적으로 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전을 얻기 위해서 항구에 피해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대양을 항해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도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의심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2장 27절에 “나는 야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 3장 5절은 “야훼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시고 내일이 오자 요단강이 갈라지게 만드신 것입니다.

 고난 중에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 막힌 담을 허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데 예수님이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화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임마누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다는 말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영원히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켜 버림받은 우리들을 임마누엘 즉 하나님과 같이 화해를 시키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십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에는 예수님이 우리 속에 있으면 영원히 화목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쫓을 자가 없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어떤 일을 당해도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하나님의 아들, 딸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와 영원토록 함께 화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기이한 일을 행하시고 불가능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야훼께로부터 나오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서 16장 3절에도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잠언서 16장 9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믿음으로 요단에 들어서자 하나님께서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을 그치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믿음과 순종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런 여러 가지 기이한 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메면 모든 문제의 요단강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 허물, 가난, 저주와 죽음의 강이 갈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큰 문제는 교회 와서 기도하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막혀져 버립니다. 교회 당회와 제직회가 갈라지고, 제직들이 갈라지고, 교우들이 갈라지고 너무 분쟁이 심해서 요사이 교회의 장래가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적이었던 남한과 북한이 화해의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 교회가 앞장서서 보호자가 돼야 될 것인데 교회는 싸운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고난을 많이 당하는 것은 영광을 많이 체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말하고 행하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2절로 27절에 “내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쳐다보면서 복을 빌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바라보고 저주하면 너도 저주받고, 나도 저주받고 같이 저주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바라보로 서로 용서하고 축복하면 너도 용서하고 축복받고, 나도 용서받고 축복받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고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종목이 ‘장애물 달리기’입니다. 장애물 달리기에서는 아무리 빨리 잘 달려도, 장애물을 넘지 못하면, 결승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장애물 경주 선수였습니다. 장애물이 높으면 높을수록 제가 실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까지 장애물 경기에는 언제나 제가 앞장섰는데, 세월이 흘러가니 그것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이라는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가진 것이 많아도, 장애물을 돌파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능 지수가 높으면 좋고, 감성 지수도 높으면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역경 지수(AQ)가 높은 것이 제일 좋다고 말합니다.  

 또 제사장들이 매일 메는 언약궤는 하나님 말씀이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담고 다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기이한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역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역사하기 시작할 때 “회개하라 천국의 백성이 되라”하시고 난 다음에 곧장 기사와 이적을 행해서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며 고치며 건강하게 만들어 놓고 그 열두 제자들 불러서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주는 것은 먹고 그곳에 있는 병든 자를 고치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성령이 계셔서 희한한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나야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아무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기적은 일어납니다. 내 믿음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때 마귀가 가져온 악한 모든 일을 주님께서 제하여 주실 줄 믿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될 것입니다. 시편 119편 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07편 19절과 20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희망찬 꿈을 매일매일 꾸면서 광야를 지날 때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세계를 인도해가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03편 5절에는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섬기고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가슴속에 모시고 살면 우리 생활 속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간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요단강에 들어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활 속에 믿음으로 무슨 일이든지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3절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 24절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해서 하나님과 함께 나아감으로 우리의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환경을 새로운 세계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서 이제는 영혼이 살고 범사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쁜 세상, 즐거운 세상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시고, 행복을 갖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떠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모시면 예수님을 우리를 광야를 지나 악의 세력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다스리는 아름다운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원수마귀는 어느 곳에 가도 물고 죽이고 좌절에 처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좋은 일을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기적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는 문제의 요단강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사입력 : 2018.05.06. am 10:40 (입력)
 


김도영 집사(마포1대교구)

- 하나님이 아내의 암을 치료해 주셨어요


갑작스런 아내의 암판정, 주께 오는 계기 돼
‘바라봄의 법칙’ 따라 믿을 때 기적 일어나


 본가는 원래 천주교를 믿는 집안이었지만 나는 신앙의 갈급함이 없었다.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열심히 노력만 하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결혼 후 기독교 집안 출신인 아내가 시댁식구들과 같이 성당을 다니길 바랐지만 조율이 안돼 결국 우리는 교회도 성당도 다니지 않게 됐다. 둘째 딸이 태어난 지 1년 후인 2007년 11월 아내(전윤정 집사·사진)는 가슴에 무언가가 만져진다고 했다. ‘매년 검사결과 이상이 없었으니 아내에게 아무 이상 없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검사 결과 유방암 4기였다. 뼈로 전이가 의심스런 상황까지 되면서 병원 측은 절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다른 병원도 “가망이 없다”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만 3살인 큰 딸과 이제 겨우 돌이 지난 둘째 딸,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어질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무거운 절망이 온 집안에 가득했다.

 그때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시고 전도사 사역을 하시던 장모님이 찾아오셨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사람은 고칠 수 없지만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 자 이제 교회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바로 아내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출석했다. 첫 주 조용기 목사님은 ‘삶과 고난’이라는 주제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왜 우리 삶에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셔서 큰 위로가 됐다. 그 다음 주일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하면 반드시 이뤄주신다”는 말씀에 희망을 품게 됐다. 당시 조용기 목사님은 유난히 유방암 치유에 관한 신유기도를 예배 중 선포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아내가 고침 받는 믿음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속해있는 마포1대교구 교역자님과 교구 식구들도 우리를 위해 힘써 중보 기도해 주셨다. 우리에겐 큰 위로였다.

 아내는 다른 대형 병원으로 옮겨 한달 반이나 걸리는 힘겨운 검사를 다시 했다. 그리고 치료가 시작됐고, 30회 이상 항암치료를 받았다. 고가의 항암 치료 약, 병원비만도 엄청났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움의 손길을 통해 임상시험에 참여토록 인도해주셨고, 비용의 부담을 덜게 해주셨다. 아내는 수술 전 조용기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평안을 찾았다. 이영훈 목사님의 기도도 깊은 감동이 됐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우리는 기도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살아날 가망이 없다던 아내는 성공적인 수술은 물론 뼈에 전이됐던 암세포의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다. 할렐루야!

 나와 아내는 우리가 신앙의 방황기를 보냈던 것과 달리 두 딸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아이들로 성장되길 기도했다. 두 딸은 아내의 기도대로 드리머 콰이어(구 엔젤스 합창단)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했다. 10년이 지나 지난해 우리에게 한차례 고비가 다가왔다. 아내의 유방암이 재발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신다는 확신으로 간구했다. 수술 전 조용기 목사님이 또 다시 기도해주셨다. 그리고 마포1대교구에서도, 드리머 콰이어에서도 아내를 위해 기도했고 올해 2월 좋은 검사결과를 얻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에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나’로 바뀐 우리 가족.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끄신 주를 찬양하며 주께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라며 칭찬을 얻도록 믿음의 행진을 이어가겠다.

정리=오정선 기자

 


너를 세워 빛이 되게 하리니/이영훈목사

나 야훼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야훼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사 42:6-9]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인생의 분명한 목표와 삶의 목적을 깨달을 때, 그 삶이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 다 바쳐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분명한 목표의식, ‘나는 누구인가?’ 분명한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님 안에서 나는 누구이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것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그것을 밝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보면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할렐루야! 이사야 42장 6절에,
나 야훼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정해서 부르시고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연히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가족 따라와서 예수 믿게 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교회 처음 나오신 분들이 누가 이끌어서 교회 나온 거 같지마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 가운데 여러분을 택하고 지정해서 불러서 예수 믿게 하시고,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게 한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이 내 이름을 지명하여 부르고, 나에게 무슨 일을 맡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고 신이 나는지 몰라요. 그래서 선생님이 뭘 시켜도 선생님이 자기를 불러주는 게 너무 좋아서 열심히 시키는 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도 그렇게 기쁘고 좋은데,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주셔서 나를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말씀에 “의로 너를 불렀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죄투성이 인간인데,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죄 덩어리인데,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의로운 자로 불러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우리 일생 다 가도록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감사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9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 믿고 나서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릴 것은 넘치는 감사뿐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때 은혜가 임하고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일생은 넘치는 감사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신 주님 은혜에 감사해,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내가 어떤 사업을 경영하든지 간에, 내가 어떤 전문 직종에서 일하든지 간에, 그 내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일생을 복 내려 주실 것입니다.
 새들백 교회 담임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섯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돌린다.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다른 믿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영광을 돌린다.
절대로 믿는 사람들끼리 다투고 싸우고 분열하고 나누면 안 됩니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 영광을 돌린다.
넷째, 우리의 은사로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영광을 돌린다.
다섯째,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함으로 영광을 돌린다.

 우리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하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하면서, “주님, 나의 삶이, 나의 존재가 하나님께 영광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러한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늘 하나님 안에서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살아가면 실수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죄짓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절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싶다고 다 마음대로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싶다고 마음대로 소리 지르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화 잘 내는 분은 오늘부터 끝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러한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의 이와 같은, 인격적으로 다음어지지 않은 모습을 오늘부터 내가, 내 자신을 잘 다스려 정리하게 하시고, 나의 말도, 나의 행동도, 나의 삶 전체가 오직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2. 우리를 세우신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둘째로, 우리를 굳건히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42장 5절에, 6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를 세워주셔서 빛이 되게 하신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보통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빛으로 세우신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에 어둠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세우시고 빛으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죄의 어둠이 물러갑니다. 절망의 어둠이 물러갑니다. 염려, 근심, 걱정의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주님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온 천지는 변해도 일점일획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주님께서 어제도 나를 붙들어주시고, 오늘도 나를 붙들어주시고, 내일도 나를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왜? 우리가 빛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혹 실수하고 잘못해서 쓰러져 넘어져도, 다시 우리를 용서하시고 어루만져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의 빛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빛이 어떻게 알려지느냐?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방법을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말로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말로만 “힘내세요.”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직접 그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임으로 말미암아, 절망한,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빛이 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은 착한 행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착한 행실이란 우리의 성실함과 충실함과 사랑과 자기희생과 인내와 열정 등을 의미한다

 누가 아파서 병원에 오랫동안 누워있단 얘기를 들으면 그 병원에 달려가서 기도하고 위로해주는 것이 착한 행실인 것입니다. 갑자기 상을 당해서 슬픔에 처한 그 가족을 가서 조문하는 것, 그것이 착한 행실인 것입니다.
 저는 일정이 참 바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장례 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달려갑니다. 유족에게는 그 장례식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입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장례식이기 때문에, 그때 가서 기도해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잔칫집에 좋은 일이 있을 때 관심을 갖고 그곳에 가는 것보다, 성경에 초상집에 가는 사람이 더 지혜롭다고 그랬습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 슬픔에 처한 사람, 고통에 처한 사람, 질병에 처한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위로해주는 것, 몸에 장애가 있어서 제대로 일을 못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분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고개를 돌려보면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한국이 복지에 대해서 그렇게 돈을 쏟아 붓지마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번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분들이 얼마나 우리 주변에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서울역 뒤의 쪽방 촌에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도님이 한 평 반 정도 되는 곳에 살고 계신데, 두 사람이 앉으면 방이 꽉 차요. 쪽방촌에는 그런 방이 칸칸이 쭈욱 있는데, 그 건물 전체가 그 쪽방으로 가득 차있고 화장실은 끝에, 공동화장실도 하나입니다. 복도가 정말 좁아서 불편해보이는 그런 곳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있어요. 우리가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지 않으면, 그들은 절망 가운데 살다가, 절망 가운데 생을 떠날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여주실 줄 믿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통하여 빛을 비출 때에 그것이 바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의 합당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대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주여, 내가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원하오니 나의 삶을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고, 내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 이후로는 내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기 원합니다. 이웃에게 빛이 되기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사용하여주시옵소서!” 할렐루야!

3.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새 일을 우리에게 행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우리를 세워주시고, 나아가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여주십니다. 42장 9절입니다.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어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내일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 앞에, 하나님 은혜 가운데 펼쳐져서 우리가 그 축복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9절로 20절은 설명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할렐루야!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다! 광야에 길을 내고, 물이 터져 나오게 할 것이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사는 너희들이 이제 그 물을 마시고 기쁨을 얻게 될 것이라!” 할렐루야! 우린 광야 같은 인생을 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내주실 것입니다. 은혜의 길을 내주실 것입니다. 천국의 길을 내주실 것이고,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가 목마르지 않게 광야에서 샘이 터져 나오게 만들어주시고, 그 기쁨의 물을, 은혜의 물을, 치료의 물을, 용서의 물을 마시며 축복의 길을 걸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새 일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새 일을 예비한 그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옛 사람의 모습에 매어있지 않고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며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어떤 사고가 생기면, 몇 년 동안 그 사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트라우마로 그 상처 속에 갇혀있습니다. 어둠 속에 갇혀있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난 사람은 그 불우한 어린 시절의 그 모습에 그냥 갇혀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는 이것을 벗어버려야 됩니다. 이사야 43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과거에 붙잡혀 사는, 절망에 처해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 말씀하시기를 “이전 일에 붙잡혀있지 마라! 기억도 하지 마라!” 어떤 분은 죄를 회개하고 나서 기억나면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해요. 한 번 회개한 죄는 다시 또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다 잊어버리셨기 때문에. 이사야 43장 25절은 말씀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롭게 변화된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기분이 좋냐? 낡은 차를 한 10년 이상 타다가, 새 차로 바꾸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 이미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난 후 새 차를 탄 것입니다. 왜 20년 된, 30년 된 차를 아직도 끌고 다니시려고 그러십니까?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 차를 탄 사람같이 구원 열차 올라탔으니, 이제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기쁘고 감사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옛 모습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새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그 주님의 축복 속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우리 힘으로 참 다가오는 도전을 이겨내고 감당하기 힘든데, 주님이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31절입니다. 다 같이 우리, 말씀을 고백합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할렐루야!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고 나가면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독수리는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을 타고 하늘 상공 높이 올라갑니다. 바람에 의해서, 힘이 없어서 그 바람에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들이 그 거센 물줄기를 거슬러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새 힘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어떤 거친 바람이 불어와도 오히려 거친 바람을 타고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는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얻은 여러분들이 주님께서 나에게 어떠한 일을 행하실까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탈북민으로 다리 하나를 잃은, 또 장애를 갖고 우리 남한에 와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다가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여 메달을 딴 최광혁 선수를 소개합니다. 아이스슬레지하키라고 하는 그 장애인 올림픽 경기입니다. 아이스하키와 이 썰매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일곱 살 되는 때,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전 국민이 굶주림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이혼하고 각각 탈북을 했는데, 본인을 돌봐준 외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 구걸하는, 소위 말하는 꽃제비가 되었습니다. 열세 살 때 생계를 위해서 기차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만 기차가 출발해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내려야 되는데, 시간을, 타임을 놓쳐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다가 왼발이 바퀴에 깔려서 왼발이 잘려지는 그러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왼쪽 다리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 브로커가 접근해 와서 “너의 아버지가 남한에 있으니까, 탈출시켜서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는 말에 , 고생 고생 끝에 2001년, 15살 때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또 북한에서 내려오셔서 물정을 모르니까 사기를 당해서 정착금을 다 날려버렸어요.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에게 나라에서 정착금을 주는데,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이 물정을 모르니까 이 정착금을 사기 치는 사람이 또 그렇게 많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어 보육원에 들어가서 학교를 다녔지만 탈북민에,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따돌림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그래서 자퇴하고 나와서 술과 담배, 게임하는 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탈북청소년을 위한 기독교 공동체를 알게 되었고 그 학교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어느 날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하셨어요. “목사님이 ‘우리는 부자다’라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셨어요. 처음에는 그 말씀에 공감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목사님 말씀을 통해 공기나 땅 등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값없이 누리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 깨닫게 되었어요. 이후 걷고 일어나고 깰 때마다 그 말씀이 생각나면서 살아 숨 쉬는 거 자체로 현재 상황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여명학교를 거쳐서 그 다음 자기 같은 장애인을 도울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국복지대학교 의료보장구호과, 이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학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학교 교직원의 권유로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알게 되어서 장애인 국가대표 꿈을 가지고 매일 주말마다 연습을 해서 드디어 5년 만에 2017년 국가 대표 선수가 되고, 2018년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하게 되어서 동메달을 따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고백합니다.
“예수의 ‘예’자도 들어본 적 없던 저는 이곳 공동체에 와서 복음을 접하면서 세상을 향한 원망이 다 녹아졌어요. 절망 가운데 있던 제게 살 소망을 주신 분은 바로 주님이세요. 그렇게 주님은 저를 찾아오셨어요. 사는 거 자체가 고통이었던 제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산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 사는 장애인들을 위해 좋은 의족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장애인이었던 그에게 꿈을 주시고 새 일을 행하여주셔서, 그가 국가 대표 선수가 되고 이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서 동메달을 따는 그러한 은혜 가운데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이 청년이 자기의 과거를 돌아봤더라면 그냥 절망 안에 가라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모님도 의지할 수 없고, 고아처럼 자랐고, 꽃제비로 길거리에 떨어진 음식 주워 먹고 살다가, 또 기차에서 떨어져 다리가 잘려지고, 그 무엇 하나 자기에게 좋은 기억이 없어요. 절망의 기억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그 삶에 빛을 비춰주셨고 그의 삶에 어둠이 걷혀지고 은혜가 임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에게 새 일을 행해주시므로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을, 우리가 가진 과거를 지났던지 간에 그것은 주님이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기억도 않으십니다. 예수님 믿고 난 다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나를 왜 부르셨고,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닫고,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잠시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우리를 택하여 부르시고, 빛으로 삼아주시고, 우리 앞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남은 여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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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구원                            

            

돼지의 구원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중에 우찌무라 간조 선생이 있다. 

 그는 어느 날 한 부자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이 부자는 저녁을 성대히 잘 차려 놓고 극진히 선생을 대접하였다. 

 선생이 식사를 잘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 부자에게 인사치레를 했다.

"잘 먹었다, 이 돼지야!" 순간 부자는 심한 모멸감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집으로 들어온 부자는 분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럴 수 있는가? 

 그토록 존경받는 사람이 기껏 식사 대접을 했더니, 그런 식으로 밖에 인사를

못하는가? 돼먹지 못한 인간 같으니라고 .' 씩씩대며 잠을 못 이루었다. 

 한참 뒤척거리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마음 한구석에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찌무라 간조는 존경받는 인물이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째서 내게 그런 몰지각한 말을 했을까? 

 그 분의 성품으로 보아 절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뭔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자신의 삶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내 삶이 그분이 말한 돼지와 다를 바가 뭔가? 나 혼자 이렇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버리는 것, 그러다가 끝장나는 인생. 이게 돼지지,

별 게 돼진가!' 다음날 부자는 일찍 일어나 선생을 찾아가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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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될지라/이영훈목사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 30:37-43]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꿈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하는 축복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고 열정이 없는 사람은 절대 큰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평범하게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우리 때문에 이 세상이 행복해지고 이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지도력을 잃어버리면, 세상이 어두워지고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며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야곱의 꿈

오늘은 빈손 들고 집을 떠나서 외삼촌 집에서 고생 고생하던 끝에 큰 축복을 받은 야곱에 대해서, 야곱의 꿈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그는 외삼촌 집에 가서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이 큰 부자가 됐어요. 창세기 30장 30절, 31절은 설명합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야훼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형 에서를 피하여 정처 없이 집을 떠난 야곱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손에 지팡이 하나 들고 그 먼 길을 와서, 외삼촌 집에 와서 외삼촌의 일을 열심히 잘하니까, 아예 평생 부려먹을 생각으로 딸을 자기 조카에게 주고. 딸을 둘이나 주었어요. 그래서 사위로 만들고 그곳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하고 수고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외삼촌이 가져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는 일마다 복을 줘서 그 하는 일이 잘되었는데 그걸 다 그 외삼촌이 가져가게 되니까, 야곱은 ‘내가 이곳까지 와서 이 오랜 세월 지나면서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제 내가 어떻게 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라반이 이를 알았습니다. 창세기 30장 27절을 보니까,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야훼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외삼촌이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붙잡아만 놓았지 그에 대한 마땅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열심히 일만 시키고 월급을 주지 않고 임금 체불한 그런 문제 있는 사장,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사장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외삼촌에게 말합니다. 30절입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야훼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외삼촌을 위해서 일을 했는데,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언제나 내가 내 집을 세웁니까? 언제나 내 분깃이 생겨날 것입니까?” 물었습니다. 31절에 외삼촌이 답변합니다.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그때에 야곱이 월급을 달라든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제안을 합니다. 31절, 32절에,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외삼촌, 제가 매달 월급을 얼마 책정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제가 양 떼나 염소 떼 중에 살펴보아서 얼룩덜룩하고 점 있는 것은 그것을 제 소유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양 떼 가운데 어쩌다 이 얼룩덜룩한 것이 가끔 태어나긴 하는데, 아주 극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라반이 ‘허허, 애가 어리석은 제안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즉시 허락합니다. 34절입니다.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즉시 라반이 허락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도 외삼촌이 자꾸 속이고 또 속이고 해서 조건을 바꾸고 하니까, 아예 그냥 분명하게 양 떼 중에 얼룩덜룩하고 점 있는 것만 내 것으로 주면 더 이상 다른 제안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마음속에 가진 꿈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많은 얼룩덜룩이, 점 있는 양들이, 염소들이 생겨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으로 그와 같은 제안을 한 것입니다.

 라반은 믿음의, 그 야곱의 꿈을 보지 못했습니다. 라반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래! 흰 양이 백 마리 있으면, 얼룩덜룩이는 한두 마리밖에 불가하지 않으니까 그거 주면 되지!’ 라반은 인간의 눈으로 그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야곱은 믿음을 가지고 그의 꿈을 꾸며 그 같은 제안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말씀 붙잡고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로 2절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6절에,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이 놀라운 역사를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2. 야곱의 믿음

둘째로, 야곱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제안을 하니까 그 외삼촌 라반이 아예 자기 양 떼 중에서 얼룩덜룩이가 섞여서 얼룩덜룩이를 못 낳게 하느라고 얼룩덜룩이를 골라내서 삼 일 길을 떼어서 자기 아들들에게 “이 얼룩덜룩이를 너희들이 잘 지키고 간수해라. 절대 섞이지 못하게 해라.” 지시를 내렸습니다. 35절, 36절을 보니까,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얼룩덜룩이가 어차피 적고, 잘 태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삼 일 길을 떼어놓고 얼룩덜룩이를 자기 아들에게 “얼룩덜룩이들을 잘 지켜라” 다 야곱이 가져간다고 했으니까 이 얼룩덜룩이가 이쪽 흰 것에 섞여가지고 얼룩덜룩이를 낳지 못하게 하고, 삼 일 길을 떨어뜨려서 “야곱, 너는 내 양 떼를 지켜라!”고 합니다. 얼마나 외삼촌이 이기적이고 철저하고 자기 재산을 지키려고 했는지, 자기 재산을 자기 아들에게 맡겨놓은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 맡기고 야곱이 가져갈 분깃인 얼룩덜룩한 소수의 양과 염소는 자기 아들들이 지키게 했어요. 그것도 삼 일 길이 떨어지게 했으니, 같이 있어야 얼룩덜룩이도 생겨날 텐데, 그렇게 삼 일 길을 떼고 양들과 염소를 돌보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참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설명되어 나옵니다. 37절로 39절입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플라타너스 나무를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가지고 그리고 물가에다 딱 세워놓고, 이 나뭇가지를 세워놓고 난 다음 양 떼들이 와서 그 벗겨진 나무로 얽혀진 그곳에서 새끼를 배게 하는데, 희한하게 새끼를 배면 얼룩덜룩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아무 양들이나 와서 그 거기서 새끼를 배게 한 것이 아니라 튼튼하고 건강한 양이나 염소가 오면 그걸 딱 쳐놓고 새끼를 배게 해서, 튼튼하고 건강한 양이나 염소는 다 얼룩덜룩 얼룩덜룩 얼룩덜룩이 되고, 그리고 비실비실한 것은 그냥 둬요. 그러면 비실비실이는 그냥 흰 양이 나오는 거예요. 보세요, 41절로 42절입니다.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과학적으로는 참 설명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어떻게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치고 야곱이 바라보고 있는데, 거기서 새끼를 배면 얼룩덜룩 얼룩덜룩 얼룩덜룩이 나오고 비실비실하면 그것 치워가지고 “그냥 낳아라.” 그래서 낳으면 비실비실한 흰 양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설명하기를, “그 새끼를 밸 때, 튼튼한 양일 때 얼룩덜룩이가 와서 같이 새끼를 배게 하면 얼룩덜룩이가 우성이니까 얼룩덜룩이가 나오게 했다”라는 설명도 있지만, 성경에 그렇게 얼룩덜룩이가 기다렸다 새끼를 배게 했다는 말은 없어요.

 어쨌건 그 가지를 놓고 바라보면서 튼튼한 양이 왔을 때 새끼를 배면 얼룩덜룩 얼룩덜룩 그런데 가지를 치우고 비실비실한 양이 와서 새끼를 낳으면 그냥 흰 양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튼튼한 양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힘없고 비실비실한 흰 양들은 다 삼촌의 것이 됩니다. 외삼촌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걸 믿음으로 바라보는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건강한 모습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건강함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절대 긍정의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껍질 벗겨진 가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14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껍질 벗겨진 이 나무들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사역과 그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이 이제부터는 우리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면 늘 우리는 비판적이고, 늘 부정적이고, 늘 자기중심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어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내가 싫으면 싫은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빨간색 안경을 끼고 있으면 온 세상이 빨개지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안경을 끼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고 십자가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활짝 핀 벚꽃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바람에 불어 떨어진 그 꽃잎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벚꽃 지고 나니까 철쭉이 곳곳에 피어서 철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라일락도 있고, 목련도 있고, 또 꽃 지고 난 다음 푸릇푸릇 잎사귀가 돋아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러나 내가 예수님 믿으나 은혜 받지 못하고 그냥 내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으이그, 또 왜 꽃잎이 떨어져? 지저분해, 이거”라고 할것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그 옛 사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으로 바꾸고, 여러분의 눈에 십자가의 안경을 끼고 모든 것을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사람을 보면 미웠던 사람도,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도 불쌍히 보이는 마음을 주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사람을 보면 내가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은 늘 나보다 못났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십자가의 사랑으로 바라보니까 나보다 나은 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제도 결혼 주례를 두 번 했는데, 결혼하는 날부터 싸우는 부부들이 있어요. 내 눈에, 내 눈을 가지고 상대편을 보니까 맞지 않아서 싸우는 것입니다. 십자가 눈으로 바라보면 그냥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부족해도, 좀 못났어도, 좀 성질이 고약해도, 우리가 십자가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사람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기적을 창조해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거룩한 꿈을 꾸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보는 그대로만 믿고, 생각하고, 살았던 그 모습이 아니라, 이제는 십자가의 관점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바라볼 때 모든 것이 달라지고,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사랑을 갖고 나아갈 때,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고, 십자가 사랑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로 5절은 말씀합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우리가 십자가 사랑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는데,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의로움으로 살면 늘 우리는 부딪치고, 피곤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내가 의로우니까. 내가 의롭다 보니까 모든 것이 마땅치가 않아요. 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뿐입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는 오직 십자가라고 하는 렌즈를 통하여 우리에게 비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십자가 사랑으로 무장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서 바라본 우리의 미래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바라보면 지금의 고통도, 괴로움도, 슬픔도, 상처도, 아픔도, 절망도 다 합력해서 잘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야곱이 크게 번영하게 됩니다.

3. 야곱의 번영

셋째로, 야곱의 번영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43절 보니까,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이 그의 아내들에게 고백합니다. 31장 9절에,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아버지가 늘 속이고 자꾸 사위의 분깃을 빼앗아가니까, 하나님이 역사해주셔서 튼튼한 양이 나면 얼룩덜룩 얼룩덜룩 얼룩덜룩 그 얼룩덜룩을 다 야곱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아버지가 나에게 줬고, 억지로 가져간 것을 빼앗아 다 나에게 주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는 부유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왜?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요,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신 구세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유를 선물로 주신 예수님이기 때문이기에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 질병과 사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 우리는 죽음을 뛰어넘어 영생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축복이고, 은혜요, 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쌍하고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나눠주는 믿음의 부자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여,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게 하여주옵소서!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날마다 고백하며 약속의 말씀 붙잡고 전진해나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야곱은 꿈꿀 수 없는 꿈을 꾸었는데도 하나님이 그 꿈을 귀하게 보시고 그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거룩한 꿈을 꾸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 꿈으로 인도해서 놀라운 축복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밤낮 내 처지만 바라보고, 밤낮 옛날의 실패만 되돌아보고 낙심하지 말고, 거룩한 꿈을 꾸고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 장애인대교구 창립 30주년 예배를 드렸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서 우리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얼마나 많이 우리 장애우 성도들이 오셨는지, 성전, 세 성전에 나눠서 가득가득 차고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면서 찬양을 통해 영광을 돌리고 있는 장은도 목사님 간증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장은도 목사님은 세 살 때, 척추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하반신과 척추가 마비되는 소아마비 판정을 받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 병원 생활을 시작해서 10년 동안 총 네 번의 대수술을 받고난 이후에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하여 평생을 살아가는 1급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완전히 인생의 실패자였습니다. 그는 늘 자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난 평생 이 장애인으로 살아갈 팔자다. 평생 고생할 팔자다. 평생 이 가난과 어두움, 절망에 살 팔자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한탄하며 살았는데, 예수 믿고 나서 그 팔자타령이 사라져버리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배가 가방을 들어주면서 전도를 하는 것을 듣고 교회를 나온 것이 계기가 되어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자기가 절망하며 한숨 쉬는 팔자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주님을 찬양하는 주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플루트를 배우게 됐는데 학교 기악반에서 연주법을 배우게 되었고 플롯과 평생 인연을 맺게 됩니다. 독학으로 플루트를 불었고, 대학 연습실에 들어가서도 학생들에게 레슨을 해달라고 하면서 연습을 합니다. 플루트를 하니까 심폐기능도 좋아졌어요. 몸도 건강해지고, 그는 장차 플루티스트로 전 세계에 다니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꿈꾸었던 대학 입학은 번번이 좌절됩니다. 4년의 방황 끝에 그는 다시 플루트에 도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달란트를 갖고 교회를 섬겨라.” 그래서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아이들에게 플루트를 가르치고 악기반을 만들어 지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 지역 내에 6년 동안에 20개 찬양단과 이 관현악단 악기단이, 악기 연주반들이 생겨났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셨는데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니까 한국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 유학의 문이 열려가지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예술대학에 가서 그곳에서 대학, 대학원 최고연주자 과정 10년 과정을 6년 만에 마치고 돌아옵니다. 할렐루야!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곳에서 출강을 요청해 와서 그는 많은 곳에 가서 연주도 하고 또, 학생들 가르치면서 부와 명예를 다 얻게 됐는데, 그러면서 점점 주님 섬기는 일에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연단시키시는 과정 가운데, 빚더미에 앉게 되고 건강도 급속히 나빠져서 합병증이 찾아와 다시 밑바닥에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주님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섬길 때 그 받은 복을 내가 한 번에 다 잃어버렸구나.’ 그는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주님께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은혜를 부어주시고, ‘너는 평생 주님 일 해라.’ 그래서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플루트 앙상블을 만들어서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찬양 집회를 통해서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모금을 해서 양로원 어르신들 응급 이동 차량도 마련해드리고, 홀로되신 독거노인의 겨울 난방도 지원하고, 자선음악회도 열고 많은 선한 사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2013년에는 장애인 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나무십자가플루트앙상블이라고 하는 오케스트라를 조직해서 여러 소외된 지역을 다니며 찬양으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돌아보면 삶의 모든 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1급 소아마비로 태어나 70도가 넘는 척추측만에 하반신마비, 또 학력은 지방대학 졸업장, 가정은 서울의 허름한 지하실 단칸방에 사는 여섯 가족, 교통사고로 일을 못하시는 아버지, 반대하는 결혼, 이 모두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꾸고, 가진 것만으로 감사하는 저의 인생을 축복하셔서 유학과 대학교수, 목사로 이끄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육신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인 것입니다. 어떤 분은 육신은 멀쩡한데 마음에 장애가 있어서 꼬부라져 갖고 늘 부정적으로 얘기하고, 남을 끌어내리고, 상처를 주는 분이 있어요. 이 분은 육신에 장애가 있지만, 마음에 장애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렇게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야 되는 그러한 1급 소아마비에도 불구하고, 온 세계를 다니며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는 희망 전도사가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고 살 것이냐?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거룩한 꿈을 꾸며,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우리가 꿈 없이 목표 없이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렇게 헛된 인생을 살지 않게 하여주시고,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진 또 전진, 도전 또 도전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내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인생의 세 친구 이야기.

 
임금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세친구가 있었다.


첫 번째 친구는 그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 친구 또한 그가 사랑하고 있었으나 첫 번째 친구만큼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고 있었다.   세 번째 친구는 친구로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친구였다.
임금의 소환장을 받은 그는 자기가 나쁜 짓을 저질러 임금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서 무서웠다. 그는 혼자 임금에게 갈 용기가 나지 않자 세 친구에게 차례로 함께 가자고 부탁했다.
그가 첫 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자 그 친구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그냥 싫다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두 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대궐 문 앞까지는 함께 가 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은 곤란해."   그가 다시 세 번째 친구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을 때,  세 번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함께 가주고말고. 너는 아무 나쁜 짓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 내가 임금님께 함께 가서 잘 말씀 드려줄게."
세 친구는 각각 어떤 친구이며 왜 그렇게 대답한 것일까?
첫 번째 친구는 돈, 물질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재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 한다 할지라도, 죽을 때는 고스란히 남겨 둔 채 혼자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두 번째 친구는 혈육, 친척의 상징이다.

무덤까지는 함께 따라가 주지만, 그를 무덤 속에 남겨 둔 채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세 번째 친구는 선행의 상징이다.  

선행이란 평소에는 별로 남의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죽은 뒤까지도

영원히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계 20 : 12 -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사랑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친구가 있고,
선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외롭지 않고,
정의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함께 하는 자가 있고,
진리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듣는 사람이 있으며,
자비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평이 있으며,
진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기쁨이 있고,
성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믿음이 있고,
부지런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즐거움이 있으며,
겸손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목이 있으며,
거짓 속임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신이 있고,
게으름과 태만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멸시 천대가 있고,
사리 사욕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원망 불평이 있고,
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화가 있다.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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