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이 와도 헤치고 나가면

 
 안나 로버트슨은 농장에 고용되어 일하는 젊은 여자였다. 이 안나는

자기처럼 농장에서 일하던 착실한 총각을 만나서 결혼했다.

그 신랑의 이름은 탐 모세스였다.

이 두 사람은 열심히 일해 마침내 자기들의 농장을 마련하게 되었고, 슬하에는 10남매를 두었다.
안나는 농가의 부인으로 또 여러 자녀들의 어머니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뜨개질이나 수를 놓았다.

그러던 중, 80세에 접어들면서 안나의 손은 관절염으로 점점 고통스럽고 둔해졌다.

그래서 안나는 손이 덜 고통스러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그래도 견딜만 했기 때문이다.

안나의 그림은 대부분이 농장과 시골 풍경이었다.

 

하루는 뉴욕의 어떤 미술작품 수집가가 안나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한 상점에 들어갔다.

그때 벽에 걸려있는 몇 점의 그림이 그 사람을 감동시켰다. 물론 안나의 그림이었다.

이 후로 안나는 갑자기 유명한 화가로 데뷔하게 되었고, 모세스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역사적인 화가가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안나가 80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도 무려 1,500점의

그림을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80세의 노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성공을 할 수 있었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손에 관절염으로 인한 고통이 왔기 때문이다.

또한 고통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열심, 의욕, 추진력,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경과 고통이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일까?
- 「코끼리 남편」/ 윤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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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신앙생활/조용기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5∼23절)


 

우리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의 자녀들을 들여다볼 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자랑스러운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항상 기뻐하라

 행복이 우리 삶에 제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는 동안에 행복하게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과 혼과 몸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어느 순간이라도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면서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부르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을 해주려고 밤낮 일하면서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20편 4절은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꿈과 소원을 이루어주시고,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16편 8절로 11절에 보면 “내가 야훼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웃음은 어떤 보약보다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데, 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니 우리 몸의 면역을 높이는 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웃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면역력에 좋다고 하면 이것저것 안 먹는 음식이 없는데,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웃음인 것입니다. 웃을 일이 없어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감기도 웃으면 떠나갑니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병도 웃으면 떠나갑니다. 몸에 질고가 웃음을 웃을 때 우리 몸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주셨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짧게 혹은 길게 기도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회개의 기도, 탕자의 고백같은 것은 우리가 꼭 해야되는 기도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1절에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둘째아들이 아버지 재산을 쪼개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둘째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용서해준 것을 보면 감탄할 일입니다. 형은 동생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반역을 한 자식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준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우리의 모범적인 기도문이 됩니다. 기도를 너무 어지럽고 복잡하게 하는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시편 146편 3절로 5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을 찾아가면 실망과 상처만 남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34편 8절에 “너희는 야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11절에도 주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속여서 우리를 낙심하게 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들어 주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자다가 몸을 뒤척이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21편 4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좋으신 분이시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가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07편 9절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평안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69편 14절로 15절에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말씀합니다. 평안의 기도입니다. 평안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시편69편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치유의 기도는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는 부분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로 구하고 응답의 기쁨을 누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그 결과 인생의 영원한 투자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인생에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인생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는 쓴 물을 달게 만드는 마라의 쓴 연못물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가 야훼의 부르심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나가는데 수르광야에서 물을 사흘 동안 얻지 못해서 목말라 죽어갑니다. 그때 발견한 연못물은 쓴 물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나뭇가지를 꺾어 던지라고 해서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수르광야입니다. 우리가 손대는 것은 크고 작은 일에 쓴 물 안 나는 데가 없습니다. 인생사가 다 쓴 물이 나는데, 쓴 물을 달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물이 달아 집니다. 

 기도로써 십자가를 던지면 달아 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큰 호숫물을 달게 만들어 마시게 해준 그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광야이고 단 물을 먹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쓴물을 달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는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 주신 이 말씀이 참으로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행복이 들어오는데 불평, 원망을 하면 그 문으로 행복이 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아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가 언어를 배우기 전에 먼저 감사의 언어를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말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감사하는 말이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꿈과 믿음으로 나아가라
 
 우리는 꿈을 변화시켜 믿음의 옷을 입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빌립보서 2장 13절에 말씀합니다. 또 히브리서 10장 38절과 39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꿈과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꿈과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일분 일초도 살아갈 힘이 없어집니다. 사람은 쌀통의 쌀이 떨어져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의 꿈이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수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꿈과 희망이 없으면 1초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에서도 꿈과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사람은 꿈의 크기만큼 자란다. 사람들은 스스로 설정한 기준, 즉 자신이 성취하고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성장한다” 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로써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 나아가자. 주님의 주신 꿈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 된 한편으로는 천국을 기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귀를 쫓아내고 행복한 삶,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에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면서 꿈과 소망을 품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혜리 집사(오아후순복음교회)

어린 딸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깨닫게 됐어요


생후 8개월 때 발견된 머릿속 혹, 수술 위험성 경고
치료 과정 이끄신 하나님의 손길 통해 기적 체험


 모태신앙인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시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할 방법을 몰랐고, 세상과 하나님의 길을 동시에 걷는 자체가 늘 고민이었다. 교회 안에서 젊은 엄마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항상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성령을 체험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8월, 둘째인 딸(사진)이 9개월 때였다. 보통 아이들보다 발육 상태가 늦어보였던 아이는 다리의 힘이 약했고, 배로 기는 것을 힘겨워했다. 혹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병원을 찾았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뭔가 이상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아이 머리가 조금 크다는 것 외에 특이점을 찾진 못했지만 그래도 희망한다면 MRI 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아이의 머리에서 혹이 발견됐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 더군다나 혹이 깊이 그것도 중요한 혈관 앞에 있어 수술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흔치 않은 경우다”라고 말했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했다. 문득 몇 주 전에 들었던 설교 말씀이 떠올랐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던 사건이었다. 4대째 아들만 있는 집안에서 귀하게 태어난 내 딸. ‘나는 아브라함처럼 내 아이를 주께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걸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자 놀랍게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보통 병원 진료 후 수술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다. 그런데 월요일 검진 뒤 딸의 수술은 그주 금요일로 바로 잡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우리는 딸의 성공적인 수술과 회복을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고난의 시기를 믿음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명확히 깨달았다. 갈등과 번민의 사이에 있던 가족은 딸의 수술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됐고,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됐다.  

 예정된 수술 시간은 6시간, 끝없는 기도가 이어졌다. 3시간 앞당겨 수술이 끝났고, 수술실을 나서는 의사의 얼굴은 자신감에 찬 행복한 표정이었다. 중요한 혈관의 손상 없이 혹을 정확히 떼어냈다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정확히 들어 주셨어” 모두들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왔다. 문제는 떼어낸 혹의 검사결과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틀 후 나온 결과 암이 아닌 일반 종양으로 밝혀졌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의 연속이었다.

 딸아이가 입원해 있는 3개월 동안 병실 안은 나와 딸 둘 뿐이었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다. 누군가 힘든 시간을 홀로 견뎌내기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병실 안에서 하나님과의 시간을 보냈다.
 한없이 나약해 보였던 나였지만 고통을 통해 주님을 비로소 만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절망의 상황이 하나님 안에서는 절대 긍정의 소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나의 연약함을 들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도구로 삼아주신 것이 감사했다.

 

딸은 지금 17개월이 됐다. 수술 후 아이는 발가락과 다리에 힘이 생겨났고, 정상적인 삶을 회복해가고 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주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게 하소서’라고 고백한다. 함께 기도해주신 지인들과 오아후순복음교회 믿음의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항상 선을 따르라/조용기목사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5~18절]

 사람은 누구나 생존을 위한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슬픈 일을 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을 따라야만 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기는 방법도 세상 사람과 비교해서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생태계의 생존 경쟁을 보면, 힘이 센 동물이 힘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고 이깁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도 권력과 재력이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다스리고 굴복시킵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힘이나 처세술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1. 믿음으로 이기는 삶

 우리는 마음속에 승리의식을 늘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나는 이긴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이긴다.’ 그러한 마음으로 단단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보면, 동네 불량배들이 와서 장난감도 빼앗고 돈도 빼앗아 가는데, 그러나 아버지나 어머니와 함께 계시면 마음에 용기가 백배해서 ‘누가 덤비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도와주시니 괜찮다’는 마음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주먹을 불끈 쥐게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어린아이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고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싸워주시므로 이깁니다. 정말로 이깁니다. 용기를 갖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는 생각이 부정적이 되지 않고, 승리의 기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패배했다’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올 때, 생각이 부정적이 되지 않고 성령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여, 저는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좋습니다.’는 생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하늘나라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이 능력을 주시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큰 능력으로 우리 속에 계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을 가지면 세상을 이깁니다.

 감정이 기쁘고 즐거워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기뻐할 뿐 아니라 감정도 기뻐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시고, 시편 107편 30절에는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28편 7절에는 “야훼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은 생각이 긍정적이 될 뿐 아니라 감정이 기쁨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했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로 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가진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 모시는 신앙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있으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긍정적이고, 감정이 기뻐하고, 우리의 범사의 생활 속에 감사해야 되는 겁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명령입니다. 기뻐해도 좋다, 안 해도 괜찮다가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것은 명령입니다. 웃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웃어야 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우리에게 굉장한 변화를 갖다 주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명한 자기계발 전문가 지그 지글러(Zig Ziglar)는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태도 중에서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태도는 바로 감사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할 때 상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환경도 달라지고 우리 자신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어요. 밥도 못 먹었습니다. 한밤중에 쇠고랑에 차여서 들어가며 ‘이런것도 하나님이 막아주지 못하십니까. 너무합니다’는 마음의 원망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쇠고랑에 묶여서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감옥에는 죄인들이 다 쇠고랑에 묶여있는데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릴 때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잠긴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삶에 묶여 있는 것들을 다 풀어 주십니다. 고약한 성격도 감사 찬양을 하면 풀어집니다. 우리 생활의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도 감사 찬송이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의 상황도 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주시고 여러분의 환경이 자유롭게 되고 변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고난 후에 다가오는 승리의 기쁨

 여러분의 삶에 좋은 일을 보고자하면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 불평하지 말아야 됩니다. 영광은 고난을 지나야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좋은 일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빌립보 2장 6절로 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것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 아들로 특권을 가지고 태어난 것 없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땅에 살면서 희로애락을 사람들과 같이 겪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사람들 부족한 것,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 이런 것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갈보리 십자가 밑에 가서 꿇어앉으면 여러분의 생애 속에 못난 것은 십자가에서 다 예수님이 거두어주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얻은 성령의 은총을 여러분에게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가서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대신 끌어안아 주시고 예수님의 승리가 여러분에게 주어지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고통 후에 영광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난 또한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에 말할 수 없는 중병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을 증거했어도, 자기 몸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려도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약해야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부족함이 없이 당당하면 “하나님 없이도 내가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해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을 붙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 것은 축복을 넘치게 주기 위해서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 3번 고쳐 달라고 간구하였으나 하나님은 거절했는데, 그것은 바울 이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극복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에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은 약한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강하게 되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눈부신 승리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중에 욥이 있습니다. 욥은 고난을 당했을 때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욥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 심정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욥기 23장 8절과 9절에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말씀합니다.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도무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는 절망적인 상태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소망을 잃지 않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2장 10절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말씀합니다. 불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쳐야 순금이 만들어지듯이, 우리 인생도 시련을 통과해야 순금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영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3.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4차원의 영성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는 4차원의 영성은 늘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늘 긍정적이어야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4차원은 물질세계가 아닌 영적인 세계입니다. 4차원의 근본 영이 성령인 것입니다. 이 성령이 4차원의 주인인데, 우리가 성령과 같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일대일로 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보이는 세계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성령이 와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상상 속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뭡니까? 꿈입니다. 꿈은 꿈이지 물질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안 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꿈속의 성령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안 보이는 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가지고 있는 것중에 안 보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안 보입니다. 성령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말, 말은 공중으로 파장을 울리고 떠나갈뿐 말이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생각, 꿈, 믿음, 말을 통해 보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과 같이 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여러분 생각을 붙잡아 주시고, 꿈을 변화시켜 주시고, 믿음의 말씀을 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하라고 하니깐 그냥 방언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는데, 방언은 성령이 와서 비밀로 대화하는 것으로 우리는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한다는 것은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져라”는 말씀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믿음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도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기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군사적인 용어로써, 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군인이 보초를 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들어올 때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와 꿈이 분명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소원이라는 것은 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꿈을 주어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꿈을 가지고 기도 하면 점점 믿음이 꿈을 점령하게 되고,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들을 보고 꿈을 꾸었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실천하기 시작하면 꿈이 믿음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4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것은 4차원의 영성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각에 말씀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통해 꿈을 꾸고 꿈을 믿음으로 점유하게 되면 새로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 믿는 분들은 영육간의 기적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며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데, 생각 속에 만나고, 꿈속에 만나고, 믿음 속에 만나고, 입술의 고백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도와줌으로 꿈과 믿음의 형태가 입술의 고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을 말하면 그 말이 나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꿈을 말하고, 믿음을 말하면 그 꿈과 믿음의 세계는 성령이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령이 가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입술로 고백하며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고난이 없는 즐거움, 힘들이지 않는 안식을 원합니다. 하지만 고난이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낼 때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생기 넘치는 승리의 삶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다 할지라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이영훈목사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막 11:1~6)


 
 오늘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날로서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모든 백성들이 나와서 겉옷을 펴고 그 앞에 깔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것을 기념해서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을 보면 이 한 주간의 기록을 전체 3분지 1이나 할애해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마가복음뿐 아니라 마태, 누가, 요한복음, 이 4복음서 전체가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월요일 날,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청결케 하셨고, 화요일 날에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셨고, 수요일 날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고난을 준비하면서 하루 종일 기도하시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루를 보내셨고, 목요일 날에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며 말씀을 전하시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셨고, 그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밤새 기도하시다가, 한밤중에 가룟 유다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예수님을 붙잡아 가지고 대제사장의 장인인 가야바의 집에 먼저 갔다가, 그다음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에 갔다가, 자고 있는 빌라도 총독에게 갔으나 빌라도가 자기가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헤롯왕에게 보냅니다. 헤롯왕에게 갔는데 헤롯왕도 이 말 저 말을 물어보았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까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그래서 밤새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예수님을 끌고 다니던 그들이 와서 예수님을 사형 선고하도록 재판한 것이 새벽 6시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예수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쳤던 그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고 그래서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산을 올라가셔서 금요일 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십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누이셨다가 안식 후 첫날, 주일 날 새벽에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천 년 전에 주님께서 행하신 그 마지막 한 주간의 행적을 우리가 뒤따라가면서 이 한 주간 정말 뜻깊게 경건한 모습으로 보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겸손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1장 7절에 보니까,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일반 다른 왕이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앞뒤에 호위대를 세우고 나팔을 불며 입장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한 번도 사람이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뒤에 갑자기 등에 무거운 사람이 앉으니까 뒤뚱거리면서 들어온, 그러한 보잘것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 어린 나귀 새끼는 겸손, 낮아짐, 평범함, 가난, 이런 모습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온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가장 낮아지셨고, 겸손의 종으로 그 일생 동안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 땅에서 행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셨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에 대해서 예언하였습니다. 마태가 그 예언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5절에,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겸손과 온유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끌었던 모세는 그 많은 무리들이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들었음에도, 온유한 모습으로 장정만 60만 명, 약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이끌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사람의 마음을 얻고, 세상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임하셔서, 평생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 제자들을 향한 가르침도 제자들이 옆에서 목에 힘을 주고 예수님이 높아지면 한 자리 하려고 하는 그런 교만함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 15절은 설명합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사람의 근본 뿌리가 교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 순간부터 교만이 우리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이 교만에서 벗어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만이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쓱 나를 점령하고, 그 교만이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활한 뱀이 자신의 교만한 독을 최초의 인간에게 주입했을 때, 모든 인간이 비참함에 떨어지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에 참여하는 자들로 만드시기 위해, 그럼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셨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우리가 높아질 때, 많은 것을 소유했을 때, 남보다 더 많이 배웠을 때, 내가 사람들 앞에서 칭찬 받고 인기를 얻고 있을 때, 이때 조심해야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면 하나님이 더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옛말에 완장을 채워주면 알 수 있다고 했어요. 보통 때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감투를 하나 씌워주면 목에 힘주고,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꼭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더욱 귀한 일을 이룰 줄로 믿습니다.

2. 순종의 은혜

 둘째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순종의 은혜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건너편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면 끌고 와라. 누가 뭐라 하면 ‘주가 쓰시겠다’하고 말을 전해라.” 마가복음 11장 2절, 3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누가복음을 보면 그 임자들이 나와서 왜 가져 가냐고 항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3절, 34절입니다.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런데 “주님이 쓰신답니다” 라고 말하니까 거기에 저들이 아무런 토를 달지 아니하고 “예, 그러면 가져가셔서 주님이 쓰시도록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말씀 중심의 사람이 되어야 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길이요, 등불입니다. 말씀을 읽고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거울입니다. 말씀에 비춰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회개해야 됩니다. 말씀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데, 그것이 바로 순종의 삶입니다. “주여, 말씀만 하시옵소서! 제가 순종하겠나이다!” 할렐루야!

 순종은 희생을 동반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받게 된 것은 그가 100세 때 낳은 아들, 이삭을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아브라함의 기록은 믿음의 조상으로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100세가 되어서 낳은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자녀를 사랑하지 않은 부모가 없습니다. 더구나 100세가 되어 낳았으니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눈만 뜨면 “이삭아, 이삭아, 어디 있냐?” 찾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그것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가서 바쳐라.”

 3일 길을 가야되는데 아브라함은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었지만 마음을 정하고 말씀에 순종해서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올라가 그를 묶고 칼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창세기 22장 16절로 18절입니다.
이르시되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온전한 순종이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생도 순종의 일생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브리서 5장 8절, 9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길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순종은 내가 그 말씀을 스스로 동의하고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복종은 내게 그것을 따를 마음이 없어도 억지로 따르는 것이 복종인데, 그러나 복종을 해도 복을 받고 순종을 해도 복을 것이니까, 어차피 복을 받을 길을 가려면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다. “주님, 내게 주신 재능, 내게 주신 시간, 내게 주신 물질 가지고 기쁨으로 순종하며 주의 일하기 원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내게 가르쳐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주님의 자녀들 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사 쌓을 곳이 없이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3. 영원히 찬양받으실 주님

 셋째로, 우리의 삶은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우리 삶 속에 영원히 찬양 받으실 주님이라는 것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합니다. 11장 8절로 10절을 보니까 이와 같이 성경은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예수를 맞이했습니다. 겉옷을 펴서 그 앞에 깔았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깔고 흔들었습니다. 저들이 최고의 예의를 갖춰서 예수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를 환영한 목적은 그때 마음 가운데 ‘이 메시야가 우리를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구원해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그러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 성경에 메시야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고난 받는 종의 메시야의 모습이 있고, 위대한 승리자의 메시야의 모습이 있는데, 저들은 고난 받는 메시야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승리자의 모습의 메시야를 상상해서, 예수님이 저들을 로마에서 구원해주실 것으로 알고 그렇게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마음 가운데 소원했던 것을 예수님이 이루지 못하는 것을 아는 순간 완전히 돌변했습니다. 며칠이 안 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성난 군중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내 개인의 유익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날 위해서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만이 높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만이 존귀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이곳에 와있는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택하셔서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시고, 이렇게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북녘에 있는 이천오백만 우리 동포는 예수를 믿고 싶어도 마음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발각이 되면 붙잡혀서 감옥에 갑니다. 평생 노동을 해야 되는 수용소로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북한에 있는 불쌍한 우리 동포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이렇게 은혜 받고 이렇게 축복된 땅에 살게 되었으니,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살게 되었으니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고, 받은 바 은혜를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나누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은 ‘내가 믿는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영원히 존귀함 받고 찬양받으실 주님이십니다’라는 점입니다. 내가 나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고 내가 나의 뜻대로 되면 그것이 좋아서 신앙생활 하고, 그것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고 하는 그러한 잘못된 신앙의 모습이 되면 안 됩니다.
 저희 작은아버님이 부산 광안리에서 오랫동안 목회하셨는데요. 지금은 천국 가셨습니다만, 부산 광안리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목사님으로서 가장 큰 교회를 목회하시면서 그쪽의 노회장, 우리 교단으로 말하면 지방회장을 지내시면서 사역을 하셨는데,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또 여러 가지 교회 일을 말씀해주셨는데, 꼭 그 교회에서 장로님 투표하는 공동의회가 지날 때면 저한테 연락을 합니다. “이 목사,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공동의회 끝내서 추천된 장로님들이 다 뽑혔어.” 그런데 이 장로교회에서는 장로님을 뽑을 때 교인들이 투표를 하는데 잘 떨어집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것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면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장로님이 온 가족을 데리고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여기 아니면 교회 없나?” 그리고 딴 데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동의회를 치른 다음에 교회에 후유증이 남게 되고, 어려움이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 작은 아버님이 공동의회만 다가오면 기도를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교회에는 장로추천위원회에서 6개월 동안 심사를 해서 공동의회에 나오니까 한 사람도 안 떨어뜨리고 다 붙여드리는데, 그 교회 가면 어떤 사람은 1년, 2년, 3년, 4년 계속 떨어지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진정으로 주님이 나의 구세주이시고 주님이 나의 삶의 모든 것이 되신다면 열 번 떨어져도 교회를 떠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네 번, 다섯 번 떨어졌다가 장로가 되면 더 충성해야 됩니다. 더 겸손해야 됩니다. “그래도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보다 그 자리가 높은 데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높은 곳에 계시면 “내가 사람들이 나를 인정 안 해줘도 좋고, 인정해줘도 좋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사나 죽으나 나의 삶은 주님의 것이로다!”라고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낮아져서 순종하고 복종하면 주님이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 고난당한 예수님을 높여주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낮아지시고 겸손하여 십자가를 지시니까, 하나님이 높여주셔서 온 천하 만물이 주님 앞에 다 무릎을 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은 여생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내가 가진 모든 것 다 바쳐 헌신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청각장애인이면서도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던 김동현 선수에 대한 간증을 끝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봅슬레이라고 하는 경기 종목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썰매 타는 것입니다. 썰매 타는 시합인데, 우리나라에는 이 봅슬레이 경기장도 없고, 장비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나무로 이것을 바퀴를 달아 만들어가지고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네 명의 은메달 리스트 중에 장애를 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김동현 선수는 모태 신앙인인데,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청각장애인입니다. 어릴 때부터 보청기를 끼었는데, 어머니가 입술을 보고 상대편의 말을 알아듣는 법을 가르쳐줘가지고, 얘기를 하면 가만히 입술을 보고 있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듣고 답변을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너는 장애인 학교 가지 마라. 일반 학교에 가서 똑같이 생활해라. 장애인 학교 가면 오히려 네가 마음껏 활동할 수 없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학교에 가게되었고 또 체육에 특기가 있어가지고 연세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을 했는데, 대학에 가서 독실한 크리스천인 교수를 만나고 신앙이 점점 더 자랐습니다. 감사하게도 2008년에는 인공와우관 수술을 받아서 청각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봅슬레이 대표 선수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신청을 했는데, 원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뽑히기가 힘듭니다. 30대 1의 경쟁을 뚫고 거기에 뽑혔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그래서 30대 1의 경쟁을 뚫고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고, 벤쿠버올림픽, 소치올림픽에 참가했으나 성적이 좋지않았습니다. 그는 굉장히 낙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연습중  썰매가 엎어져서 부상을 당하고 입원하게 되었는데, 입원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늘 경기 때마다 기도했지만, 생각해보니 제 마음속에는 내가 더 잘해서 인정받아야지라는 숨겨진 욕심이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하루하루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메달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만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그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은 미국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게 하셨고, 이번에 은메달을 따게 하셨는데, 주님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네 명이 팀이 돼서 출발했는데 계속해서 지고 있다가 마지막 네 번째 레이스에서 백분의 일초 차이로 역전해서 은메달을 땁니다. 할렐루야! 사실 계속 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백분의 일초 차이로 뒤집는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저는 청각장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믿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으로 단련하게 해주시고, 우연처럼 대표로 뽑아주셔서 청각장애를 가지고도 올림픽에 나가게 하신 이 모든 것이 마치 퍼즐을 맞춘 것 같아요. 하나님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이번 올림픽에서 극적인 순간에 저를 세워주셔서 주인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의 경기를 통해서 세상의 많은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 제 소명입니다. 앞으로도 복음의 경기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드러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인생은 금방 지나갑니다.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우린 하나님 자녀로 택함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남은 여생을 겸손의 종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으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종으로 살다가,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받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잠깐 지나가는 세상길에서 나의 욕심을 위해 살지 않게 하여주시고, 하나님 영광 위하여 살게 하여주옵소서. 나를 어떤 모습으로 부르셨던지 그 모습에 우리가 최선을 다하며 노력해서 거기서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시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잘 감당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장차 주님 앞에 설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이영훈목사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4장 2~9절]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 마음의 자세를 바르게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의 자세를 늘 밝고 환하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갖고 사는 사람은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그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로 다 이겨내고 복 받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둡고 부정적인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도 늘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삶이 점점 더 문제와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그리고 불행한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4장 23절에 권면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 우리 마음 가운데 달려있으므로, 우리가 늘 예수님을 믿는 그 신앙 안에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하여 놀라운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를 통하여서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 길가에 떨어진 씨

그 첫 번째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에 대해서 마가복음 4장 3절, 4절은 설명합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농부들이 나가서 씨를 뿌릴 때 때때로 바람이 불어서 씨가 길가에 떨어지면 얼마 있지 않아서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버립니다. 길가란 어떤 곳입니까?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고 밟고 다니기 때문에 땅이 굳어지고, 또 굳어지고, 굳어져가지고, 어떠한 씨앗이 떨어져도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다보니까, 마음이 굳어질 대로 굳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물질 문제로 씨름하다보면, 마음이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그 마음에 어떠한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이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굳어지고 나면 문제는 무엇이냐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 자기 주관대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삶에 문제가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를 다녀도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찬양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기도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저 구경꾼으로 앉아있는 것입니다. 전혀 예수 믿을 마음이 없는데 자꾸 가족이 “교회 가자, 교회 가자” 그래서 와서 앉아있기는 한데, 그냥 구경꾼으로 ‘빨리 예배가 끝났으면’하고 시계만 바라보고 있는 그러한 모습의, 그러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자가 있다면, 지금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을 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이 마음을 갈아엎어야 됩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사소한 것에서 비판적이 되고, 원망 불평하기 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4장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마음이 굳어져서 예배 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있는 그 복음의 씨앗을 삼켜버렸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은혜를 빼앗아 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신천지 이단집단에서 교육을 맡았던 분이 회개하고 돌아 나와서 목사님이 되었고, 이단상담소장을 하고 있는 분이 계신데 신현욱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신천지에서 각 교회마다 사람을 풀어 넣어서 그 교회에 등록하고 열심히 다니게 합니다. 한 달, 두 달, 서너 달 다니면서 교회 내에서 ‘원?불?교’ 신자를 찾는대요. 무슨 말씀인가 하니, 원망하고, 불평하고, 교만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찾아가지고 접근해서 그 사람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가서 세뇌시켜가지고 이단으로 만들어내는데, 이와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신천지에 빠지는 신도들의 한 부류는 성향 상 소속감이 적고, 순종적이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불만하고, 교만한 부류의 신자들, 소위 말하는 원?불?교 같은 신자들이에요. 소속 교회와 목회자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신앙하던 성도보다, 불평불만과 원망 불신 가운데 신앙하던 성도들이 이단에 쉽게 노출되고, 이단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굳어진 마음을 갈아엎어야 됩니다. 자꾸 우리 맘이 굳어지려고 하기 때문에 갈아엎어야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 10장 12절을 말씀합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야훼를 찾을 때니 마침내 야훼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주님, 굳어진 마음을 용서하여주시고, 은혜 받지 못하는 이 마음을 용서하여주시고, 주님 내가 회개하오니 나의 마음을 갈아엎어서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 옥토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배 때마다 여러분의 마음을 갈아엎으시기를 바랍니다. 굳어진 마음, 무감각해진 마음, 은혜와 멀어진 마음을 여러분이 압니다. 여러분이 알아요. 내 마음이 굳어지면 전혀 교회에 와서 내가 은혜를 못 받습니다. 오히려 옆에 사람이 울고 기도하면, ‘저 사람 왜 저래? 별난 사람이네.’ 그렇게 비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옥토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 큰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돌밭에 떨어진 씨

둘째로, 돌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에 대하여 마가복음 4장 5절, 6절은 말씀합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 돌밭은 그 위에 쌓인 흙이 얕기 때문에 씨앗이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지마는 해가 떠서 그 열기를 발하면 뿌리가 말라서 죽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16절, 17절에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교회에 나와서 은혜도 받고, 기쁨도 넘쳐나고, 눈물도 쏟고 하는데,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해서, 열심히 섬기는듯하다가 환란이 다가오고 핍박이 다가오면 금방 주저앉아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시험에 드는 이 같은 모습을 말합니다.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그러한 모습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지금 그 마음이 돌밭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 이건 지금 아무개의 이야기다.’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는데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크고 작은 돌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이 돌들이 은혜의 뿌리 내리는 것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자라난 사람은 그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불신의 돌이 다 자리 잡고 있어가지고 은혜를 받을 때는 잠깐 은혜 받는데, 조금 어려운 일만 다가오면 다시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고 옛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왜? 그 마음에 그 돌덩어리가 너무 깊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의 돌덩어리, 미움의 돌덩어리, 분노의 돌덩어리, 외로움의 돌덩어리, 이런 돌덩어리들이 마음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가지고 은혜를 받을 때는 잠깐 받는 것 같은데,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뒷걸음질 치고, 또 뒷걸음질 치는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노의 돌덩어리들이 자리 잡고 있으면 이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감정을 못 다뤄서 막 폭발하고, 이웃과 다투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폭력을 행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 피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되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 마음속에 들어있는 돌덩어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돌덩어리를 깨부숴야 됩니다. 예레미야 23장 2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말씀으로 이 돌덩어리를 다 깨야 됩니다. 불신의 돌덩어리를 깨야 됩니다. 미움의 돌덩어리를 깨야 됩니다. 상처의 돌덩어리를 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덩어리들이 깨어져 부스러져 내 마음이 옥토가 될 때, 은혜가 임하고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들여다보면 여러분이 압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돌덩어리들이 무엇인지 압니다. 어떤 분은 평생 결혼해서 사는데도 한 번도 자기 남편을 사랑해 본적이 없다는 얘기를 해요. 왜? 중매결혼을 해서 원치 않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가지고 평생 그것이 돌덩어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 그 돌덩어리를 깨야 됩니다. 깨야 되는 거예요. 어쨌건 지금 내가 예수 믿고 있고,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이 감사해서, 그리고 그 사람도 그래도 나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같이 있어준 것도 감사하고, 우리가 모든 것을 은혜로 생각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같이 신앙생활 잘 하다가 천국가면 되는 것이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돌덩어리가 있든 간에 오늘 다 깨버리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세 번째로,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에 대해서 7절은 설명합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가시떨기는 아주 생명력, 본성이 강한 잡초인데, 이 잡초들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어디서나 잘 자랍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가시를 내밀어가지고 거기 있는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막아버리고 피해를 줍니다. 이 마음속의 가시떨기가 자라면, 참 신앙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자꾸 가시가 찔러가지고 기쁨을 빼앗아가고, 감사를 빼앗아가고, 내 신앙의 열심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시가 세상 것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시인 것을 주님이 설명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18절, 19절입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이 가시들이 찔러서 믿음이 온전히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너무 힘들고 어렵게 물질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어린 시절을 자라난 분들은 이것이 가시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 가서 목사님한테 이야기를 들으니까, 자기 전임 목사님이 “십일조 설교하니까 교인 삼분지 일이 나갔다”고 그러면서, “자네는 절대로 십일조 설교하지 말라”고 그래서 설마 그럴까 하고 설교했더니 교인들이 진짜로 나갔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시가 되어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물질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을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나의 만족과 나의 유익만을 위하는 물질이 된다면, 그것이 가시가 돼서 여러분을 찌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가지고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큰 소리로 “아멘!”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은 망설여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마음에 큰 부자가 되게 해주셔서 물질의 축복을 베풀고 나누며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면 절대 이 물질이 여러분의 가시가 안 됩니다.

 세상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권력이라는 것은 섬기라고 준 권력인데, 딱 올라간 순간 군림하고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에, 누구의 말 듣지 아니하고 자기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그것이 가시가 되어서 결국 자기가 찔려가지고 권력자의 말로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 우리는 역사 가운데 지금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조심해야 됩니다. 많은 물질을 가졌을 때, 권력의 정점에 올라갔을 때,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고 인기의 정상을 달려갈 때, “주여! 이것이 가시가 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이 가시들을 우리 스스로 제거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놓여남을 받고 주님 안에서 축복받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해주신다. 존 맥아더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단단한 길, 얕은 땅, 공격적인 잡초가 씨를 뿌려 결실하려는 당신의 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다. 그렇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추수의 주님은 제아무리 단단한 땅도 부수시며, 제아무리 끈질긴 잡초도 뽑아내신다. 하나님은 아무리 완고한 마음의 땅도 갈아엎을 수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의 농사 방법 중 하나가 먼저 씨를 뿌리고, 그다음에 쟁기질을 하는 것이다. 혹시 공중의 새가 그 씨를 빼앗아가려 한다 해도, 성령께서 땅을 갈아엎어 씨가 땅속에 묻히게 함으로써, 싹을 내고 많은 결실을 맺게 하신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갈아엎어주시고, 돌밭과 같은 마음을 주님 깨뜨려서 부숴주시고, 가시떨기 같은 마음을 성령의 불로 태워서 우리 마음이 좋은 땅, 옥토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4. 좋은 땅에 떨어진 씨

네 번째 땅이 바로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 8절은 설명합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우리 마음이 좋은 땅이 되면 말씀이 뿌리를 내려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4장 20절은 설명합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여러분,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내게 주신 축복의 말씀으로 받을 때, 그것이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고, 기적이 되고, 치료가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이 누구냐? 시편 1편 1절로 2절을 보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늘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행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자들이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 주시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복을 주시고,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해주셔서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게 해주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훈련해야 됩니다.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하고 자신을 쳐서 연단시켜서 늘 자신을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날마다 달라져야 합니다. 날마다 더 좋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야 합니다. 끝없는 자기반성과 자기 훈련, 개혁을 통하여 새로워지고 많은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8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주여,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열매를 통하여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주의 뜻을 이뤄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사람이 변화되면 큰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길가와도 같았고, 돌짝 밭과도 같았고, 가시떨기와도 같았던 한 사람이, 사형수가 변화되어서 옥토가 되어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 분에 대한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늘 전도에 열정이 있으셨던 우리 어머니께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대문 형무소에 가셔서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매 주일 한 아주머니가 와서 복음을 전한다고 그러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귀찮게 여겼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도과장이 저희 어머니를 부르시더니 “아주 골칫덩어리 사형수가 하나 있는데, 얼마나 성격이 강하고 악한지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에게 좀 복음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위장 부부 간첩으로, 위장 부부로 고정간첩으로 있다가 잡힌 사람인데, 1964년에 잡혀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였습니다. 그 당시 간첩으로 잡히면 100% 사형이었습니다. 그래서 1964년의 기록에 보면 많은 간첩들이 잡혀서 사형을 당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김을윤이라고 하는 분인데, 인터넷을 치면 이분의 이름이 뜹니다. 북한에서 내려와서 남한에 거주해 살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보냈던 그러한 간첩이었습니다. 그런데 붙잡혀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이미 죽을 몸이니까 얼마나 사람이 악하고 거친지... 그런데 어머니가 찾아가서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갑시다.” 하면 소리를 지릅니다. “나는 김일성 주석을 위해 죽을 사람이다! 나에게 복음을 전하지 마라. 오지 말라!”고, 거칠게 대해도 또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의 그 길가와 같은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부셔지기 시작했습니다. 돌짝밭 같은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시떨기 밭의 가시떨기들이 뽑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누군데, 나는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고 나는 사형수로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왜 저 아줌마는 자꾸 나한테 와서 예수 믿으라고 그러나? 도대체 예수가 누군가? 저분이 믿는 예수가 누구고 과연 죽음 후에 천국이 있는 것인가?’ 그런데 어느 날 만나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성령이 임했어요. 눈물 콧물 쏟으면서 대성통곡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남은 여생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내가 그것도 모르고 공산주의에 속아 간첩 노릇을 했지만 이 감옥 안에서 예수를 만나게 됐으니 이제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김을윤 씨가 예수 믿고 변화 받았다는 소식에 교도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김을윤 씨는 성경 공부하는 것을 너무 너무나 사모해서, 어머니가 오시는 날이면 아침 일찍 목욕을 하고 말짱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 일부러 면회하는 방을 마련해서 주면, 성경책을 펴고 무릎을 꿇고 딱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말씀을 전하시면 그 말씀을 받고 “아멘! 아멘!”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하는지 흉악한 사형수가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있는 모든 주변 사람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도 이제 어머니가 교도소에 와도 귀찮아하지 않고 아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날도 김을윤 씨 면회를 가는 날이어서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김 집사님, 오늘은 교도소 오지 마십시오. 교도소에 행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보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후 2시쯤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교도관에게 전화가 와서, “집사님, 김을윤 씨가 오늘 사형 집행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형무소로 달려갔습니다. 달려갔더니 평상시에는 교도과장이나 거기 있던 직원들이 어머니가 오셔도 그냥 이렇게 쳐다보고 저리로 가시라고 손짓하고 그랬었는데, 그다음에 막 들어오는데 기립해가지고 경례를 하면서, “김 집사님, 제가 오늘 거룩한 죽음을 봤습니다. 그렇게 흉악했던 사람이 그렇게 천사 같은 모습으로 천국 가는 것을 제가 오늘 지켜봤습니다.” 하면서 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설명을 했습니다.

 보통 사형수가 다닐 때는 두 사람이 옆에서 꼭 같이 호위하고 가는데, 가다가 이쪽으로 꺾어지면 면회 장소로 가는 것이고, 반대편으로 꺾어지면 사형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만약 면회장으로 가지 않고 반대편으로 꺾어져 가면 그 순간부터 막 발악을 하고 난리쳐서 건장한 사람이 와서 꽉 붙잡고 막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머니가 오실 줄 알고 목욕도 하고 단장하고 있는데 가다가 반대편으로 꺾어지니까, 여기서 탁 교도관이 붙잡을 때, “붙잡지 마세요. 저는 제 아버지가 계신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형 집행 장에 들어와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할 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갑니다. 여기 계신 사형 집행하는 여러분들이 법에 따라 저를 사형 집행하지만, 저는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 품 안에 안겨서 기쁨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믿고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제가 마지막으로 찬송 하나 부르겠습니다.” 항상 어머니와 함께 즐겨 불렀던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 493장(통 545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김을윤 성도가 찬송을 부를 때 교도소장도 울고 교도과장도 울고 그 사형 집행 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을윤 성도는 사형 집행을 당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시신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연고자가 없으니 우리는 그 시신을 저희들이 그냥 처리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그 시신을 저에게 주세요. 제가 장례를 치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교회로 달려와서 최자실 목사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최자실 목사님, 이렇게 사형수가 예수 믿고 천국에 갔는데 우리 오산리기도원에 자리 하나 좀 주세요.” 그래서 최자실 목사님이 “좋다. 오산리기도원으로 그 시신을 가져가서 우리가 장사지내자.” 그 결과 오산리기도원에 김을윤 씨의 무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제가 그곳에 가서 그 김을윤 성도님의 묘를 보고 왔습니다. 생전에 천국가면 우리 김을윤 성도가 제일 먼저 보고 싶다고 했던 어머님께서,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깨어나셔서 간호사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다가 89세를 일기로 두 주 전에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 복음은 어떠한 흉악한 사람도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고 부르시는 날, 저 천국 가서 기쁨으로 우리를 앞서간 성도들을 만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이 길가의 밭과 같았고, 돌짝밭과 같았고, 가시떨기 밭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의 은혜로 우리가 변화되어 우리들이 깨어지고, 낮아지고, 새로워져서, 옥토가 되어 주님을 섬기게 됨을 감사합니다.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오니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그 굳어진 마음을 깨뜨려주시고, 우리 마음에 있는 돌들을 제거하고 부스러뜨려주시고, 가시들을 태워주셔서, 좋은 땅, 옥토로 변화되게 하여주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영자 권사(종로중구대교구) -

0.1% 믿음을 보시고 살려주신 하나님


패혈증, 간암 말기의 절대절망에서 승리
이영훈 목사 중보기도 후 급속도로 회복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남편 백일현 안수집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위가 뜯기듯이 아프고 오한이 나며 몸이 평소와 다르게 아프다고 했다. 다음날 집 근처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검사 결과 혈액과 복부, 전신에 염증이 퍼져 신장, 간 등 장기가 다 손상된 상태였다. 진단명은 ‘심각한 중증 패혈증’이었다. 약 30∼50%의 사망률을 보이는 심각한 병이었다. 혈압이 더 떨어지면 심장이 멎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바로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남편은 밤새 2번 혈압이 떨어져 승압제를 썼고 고열로 얼음판 위에 누워 있어야 했다. 장기가 손상되어 CT촬영이 불가능해 초음파 검사를 했다. 의사는 간에 두 덩어리가 보이는데 한 덩어리는 간농양, 즉 간에 고름 주머니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나머지 한 덩어리는 종양일 수도 있다고 했다. 아는 의사를 통해 초음파 결과를 다시 확인했는데 의사는 남편이 간농양이 아닌 간암 말기라고 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고 남은 기간은 6개월에서 길면 1년이라고 했다. 위험 부담을 안고 CT촬영을 진행했고 여러 의사 선생님들과 판독한 결과 99.9%의 확률로 간암 말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간농양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의사는 단호하게 간농양일 수 있는 확률은 0.1%라고 말했다.

 남편은 오직 하나님 밖에 모르고 주일이면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22년 동안 교통실에서 봉사해 왔다. 비록 간암 말기일지라도 하나님이 치료하시면 0.1%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바로 담당 교구 목사님과 교구 식구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남편은 계속되는 금식과 39도가 넘는 고열로 힘들어했다. 크리스마스 날 남준희 부목사님께서 병원 심방을 오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씀을 주시며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다음 날 아침, 의사를 만나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실 0.1%의 기적을 믿는다고 선포하고 다시 검사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초음파를 다시 촬영하고 온 의사의 첫 마디는 “정말 고름 주머니일 수도 있겠네요”였다. 의사가 설명하기 위해 그려주는 간의 모양이 처음과 달랐다. 순간 “주님이 하셨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름을 빼내는 배액관을 2개의 덩어리 중 하나에 삽입한 후 MRI를 촬영했다. 하나는 암이 아닌 농양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지만 나머지 하나는 큰 종합병원에서 최종 확진을 받으라고 권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감사가 터져 나왔다. 남편에게 고열이 계속 되었고 폐에 물이 찼지만 치료의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12월 31일 주일3부 예배 때 이영훈 목사님은 통성기도를 인도하시며 백일현 안수집사가 믿음으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셨다.

 2018년 1월 1일이 되자 열이 처음으로 36.5도인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새 일을 행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큰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다시 CT와 MRI판독 결과, 2개의 덩어리 모두 암이 아닌 간 농양 고름덩어리로 진단 받았다. 하나님께서 간암 말기를 간농양으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 농양을 잘 제거하고 치료 경과가 좋아 남편은 10일 퇴원을 했다.

 남편이 퇴원하고 며칠 뒤 나는 그 의사를 다시 찾아가서 0.1%의 기적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다며 예수님을 꼭 믿으라고 전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정리=이미나 기자


성경퀴즈가 좋다-4

<4번 문제지>

 

1. 다음 중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갈 수 없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답:2)

믿음

사랑

 

2. 다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닌 것은? (정답:3)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구더기도 죽지 않고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있게 한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귀한 보석과 같고 수정처럼 맑다.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저 영원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

 

3. 다음 중에서 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할 일이 아닌 것은? (정답:3)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며,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서로에게 친절하고 격려의 말을 한다.

나쁘고 더러운 말도 하고, 그 입으로 찬양도 하면 된다.

나쁜 말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항상 기도하는데 힘쓴다.

 

4. 다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답:2)

· 예수님을 사랑하는 다른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

· 특별한 우정을 말함.

친구

친교

칭찬

축하

 

5. 하나님은 우리들이 서로에게 있는 무거운 짐(걱정,문제 등)을 나누어 지기 원하세요. 다음 중에서 서로 짐을 나누어 지는 방법이 아닌 것은? (정답:4)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짐이 있나 주의 깊게 살펴본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며 격려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괴로움을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기도한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니까 혼자서 하도록 둔다.

 

6. 다음의 설명에서 공통되게 들어갈 말은? (정답:예수님)

·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

· 교회의 기초되시는 분.

· 교회를 사랑하는 신랑과 같으신 분.

 

7. 성찬식이 무엇인가요? 성찬식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는 의식이에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를 나누어 먹어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순서대로 말하세요.(정답:,포도주)

 

8.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경배의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2가지 이상을 말하시오. (정답:찬양,기도,헌금,하나님의 말씀을 읽음)

 

9. 다음의 말씀을 차례대로 정리해 보세요. (정답: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격려하며 서로 돌아보아 선행을 사랑과

① ② ③ ④

(히브리서1024절 말씀)

 

10. 다음은 누구입니까? (정답:므비보셋)

사울왕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로, 사울왕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자 유모가 급히 데리고 피난하다가 떨어뜨려 절름발이가 됨. 다윗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사람에게 한 가족처럼 친절하게 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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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이영훈목사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마가복음 2장1~12절)


 우리 기독교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한평생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 앞에 큰 믿음을 갖고 온 중풍병자와 그 네 명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

 우리가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넘어서고 극복하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마가복음 2장 1절로 3절은 설명을 합니다.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이미 예수님께 나아가면 모든 병이 고침 받는다는 소문이 온 지역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중풍병자를 둔 네 명의 친구가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가 이번에 이 중풍 병에 걸린 우리 친구를 완전히 예수님께 나아가 고침 받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어, 앞으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게 만들어주자”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 명이 중풍병자를 들것에 뉘어서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와보니,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집에 꽉 들어찼는지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어요. 절대로 양보를 안 합니다. “좀 비켜주세요!” “아니, 우리도 주님 말씀 들으러 왔는데, 더 가까이 가지 못해서 우리도 이렇게 뒤에서 발을 까치발을 하고 앞을 바라보는데, 당신네들이 어떻게 여기를 뚫고 지나가려고 하느냐?”하고 아무도 양보를 안 합니다. 여러 번을 비켜달라고 부탁해도 누구 하나 꼼짝도 안 합니다. 은혜 받는데 욕심 있어서 절대 양보를 안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병을 고침 받는데 나아갈 길이 막힌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도저히 안 되겠으니 우리 갔다 다시 오자’든지 ‘다음 기회를 보자’하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이 네 사람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어떻게든 예수님 만나야 된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 친구가 고침을 받아야지 여기서 돌아서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 넷이 머리를 맞대고 같이 의논을 했습니다. 그중에 누가 아이디어를 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되니깐 우리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자!”

 이스라엘 집들은 다 지붕이 평평하게 되어있는데, 나무를 놓고 진흙을 이겨서 지붕을 만들었기 때문에 평평한 지붕이고, 또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집마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사람들을 뚫고 갈 수가 없으니깐 아예 옆으로 돌아서 지붕에 올라서 지붕을 뚫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이 집주인이 난리가 날 텐데.’ ‘또 지붕을 뜯다보면 흙이 쏟아지고 밑에 사람들이 흙더미를 뒤집어쓸 텐데.’ 이러한 염려를 뒤로 합니다. 중풍병자를 고쳐야 되었으니까요. 저들이 들것을 메고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을 쿵쾅쿵쾅. 뾰족한 것, 딱딱한 돌멩이를 갖다가 찧으며 지붕을 뚫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한창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뭐가 쿵쾅쿵쾅하는데 흙이 막 쏟아집니다. 밑에 사람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씁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집주인이 나와서 “여보오! 뭐하는 짓이요, 당장 멈추고 내려오라고!”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이 침상이 들어갈 만큼이니까 얼마나 지붕을 크게 뚫었겠습니까? 지붕을 뚫어서 예수님 앞에 그 들것을 달아 내린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뒤로 물러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가 뭐라고 비판하고 공격해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뜻을 위해서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사람이 결국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장애를 보고 장애물을 보고 물러서거나 주저앉으면 어떠한 기적을 체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을 가지고 어떤 장애물도 우리가 뛰어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은 말씀하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믿음의 사람은 불가능 속에서 가능을 봅니다. 남이 다 안 된다고 말할 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우리가 홍해를 건너 가냐?”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일을 행할 때 너희는 지켜보아라.” 홍해를 갈라주셔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바다를 육지처럼 건넌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듯이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아갈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앞에 문제가 있다고, 절망적인 상황이 있다고, 절대 포기하고 주저앉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2. 그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

둘째로, 그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마침내 그 들것이 주님 앞에 놓였습니다. 마가복음 2장 5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 보니까 예수님이 그 네 사람의 믿음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보여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 보여져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욕을 먹느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을 보이는 사람은 바르게 삽니다. 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적당히 죄와 타협하고, 문제도 일으키고, 감정도 컨트롤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다툼을 하기 때문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욕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말이 달라야 합니다. 행동이 달라야 합니다. 그 삶이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 저 사람은 진짜로 예수님 믿는 사람인가보다!” 칭찬 받는 우리가 될 때 그 보이는 믿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로마 장교였던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 병에 걸렸습니다. 거기도 중풍병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 하인을 고쳐달라고 말할 때 “내가 너희 집에 가겠다.” 하니까 “주님, 저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 한마디면 우리 하인이 나을 겁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8장 10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3절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이와 같은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보이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중풍병자의 네 명의 친구들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중풍 병 들린 하인을 둔 백부장이 예수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주여, 우리가 주님 앞에 보이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믿는다고 말만 하면서 그 삶에 열매가 없는 그런 부끄러운 신앙인이 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야고보서 2장 17절에 경고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지만, 믿고 난 다음에는 행위가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난 후에도 행위가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행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의 본향, 천국으로 가게 될 터인데, 거기는 우리의 믿음의 행위에 따라서 열매에 따라서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그날부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욱 헌신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레이크우드 담임인 조엘 오스틴 목사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도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믿음은 있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탓이다. 믿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장애물을 극복하고 꿈을 이룰 수 없다. 죽은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할 수 없다. 매일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에 미소를 띠우는 것도 믿음의 행위다. 우리가 행동하는 믿음을 보이면, 하나님이 우리의 싸움을 대신 싸워주신다. 꿈이 멀게만 느껴지는가? 믿음의 발걸음을 떼면, 하나님이 새로운 문을 열어주실 것이다!

 주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거룩한 꿈을 꾸고, 그 꿈을 믿고 바라보며 믿음으로 선포하고, 그다음에 여러분의 삶을 이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성공이라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지,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나태한 사람들에게, 또 꾀를 부리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되요.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전문 직종을 가진 분은 거기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음식 먹고 배가 탈이 나면 이것은 만드는 사람의 책임이 있고 위생 관리를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겨난 거예요. 왜 병원에서 대형 사고가 터집니까? 그 작은 일에 소홀히 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니까, 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균이 옮겨져서 많은 환자가 생겨나고 그러는 경우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아주 작은 것부터 내게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고, 헌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모습이고, 그 모습을 주님이 축복하시고 칭찬하실 줄 믿습니다.

3. 예수님의 선포

셋째로, 예수님의 선포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2장 5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그 육신의 병보다 그 마음의 병을 먼저 고치기를 원했습니다. 마음의 병에서 육신의 병이 온 것을 아셨기 때문에, 먼저 그의 마음의 병을 고치고 육신의 병을 고친 것입니다. 만약 육신만 고침을 받고 그가 떠나갔더라면 또 다시 죄 가운데 머물러있으면서 그는 영원히 중풍병자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근본적인 치료를 해주기 위해서 먼저 “네 죄사함을 받았느냐?” 마음의 병을 치료하시고 육신의 병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덩어리입니다. 죄의 DNA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쉽게 죄에 동화되고, 부정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고, 그래서 죄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 앞에 나올 때마다 우리의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의 보혈로 내 삶 가운데 있는 모든 죄를 주님, 치료하여 주시고, 용서하여주시고, 내가 회복되어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일꾼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죄사함 받았다는 말에 그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0절, 11절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의 은혜와 함께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가 우리,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죄사함을 받고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된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건강도 주시고, 생활의 풍요로움도 선물로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명령하십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12절에,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예수님 명령하시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자기가 누웠던 그 침상을 들고 그곳을 걸어 나갑니다. 들어올 때는 사람들에게 막혀서 길이 막혔었는데, 이제는 침상을 들고 나가니까 길이 열려가지고 사람들 박수갈채를 받으며 그 길을 나왔을 것입니다. 들어올 때는 자기가 누웠던 그 절망의 자리가 이제는 자기 손에 들린 승리의 상징이 되어서 그 자리를 들고 나갈 때 모든 사람이 감격하고, 무엇보다도 그 친구 네 사람은 그 뒤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따라 나갔을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절망의 침상을 들고 일어나서 걸어 나가라!” “네 상처의 그 절망의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 나가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영적으로 들것에 누워 살고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의 깊은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상처로 고통하고 눈물 흘리며 그 상처의 침상에 누워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배신당했던 그 배신의, 그 경험의 침상에 누워있습니다. “나는 자라날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래서 그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이미 버림받았다고 하는 그 배신의 침상에 누워있는 거예요. 지금 나가서 직장에 가서 일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 영혼은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었던 친구에게 상처받고 따돌림 당했던 그 기억들. 요즘 ‘미투’ 때문에 한국 사회가 전체 떠들썩한데, 간절히 바라기는 다 그 미투의 침상에서 일어나서 이제 털어버리고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그 침상에 누워있는 한은 희망이 없습니다. 평생 침대에 누워 있다가 우리가 세상을 떠날 것입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 상을 들고 가라!”

 그 침상을 어떻게 했을까요? 그 때 구정물 있는 침상, 당장 가져다가 쓰레기통에 버렸을 거예요. 아님 불살라버렸든지. 당장 오늘 예배 끝나고 나갈 때 다 들고 나가고 다 가져다가 버리시길 바랍니다. 더 이상 침상을 끼고 살지 마세요. 밤낮 침상 들고 왔다가 갈 때 거기 또 들고 나가고 하지 마시고, 오늘 이 예배 시간에 결단하고 침상을 다 내려놓고, 이제는 가져다가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우리에게 예비된 축복과 기적과 은혜의 내일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기도가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믿음으로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한1서 5장 14절, 15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믿음으로 믿고 구하고, 이제 믿음으로 결단하고 전진해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치료가 임합니다. 용서가 임합니다. 중풍 병에서 놓여남 받고 완전히 건강하게 된 이분은 네 친구의 믿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건강하게 된 이후, 그 절망의 침상을 내다버리고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 삶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이것이 다 이전의 것으로 우리와 상관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에 결단하시고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 나가서 침상을 내버리고 믿음의 위대한 역사를 이뤄나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방직공장에 공원으로 있다가 변호사가 된 분이 있어요. 이분은 너무 너무나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김미애 변호사입니다. 경북 포항 구룡포의 작은 어촌 마을에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납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가셨어요. 어머니는 해녀로 살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얼마 후에 어머니가 보니까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들어왔는데, 어머니를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까 자궁암 말기입니다. 의사가 너무 늦게 왔다고, 이제는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는 일념으로 어머니와 함께 새벽 기도, 수요 예배, 금요 예배, 그리고 근처 교회 부흥회에 어머니를 리어카에 실어 모시고 다니면서 어머님 바닥에 누이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어머니가 4년 동안 병과 투쟁을 하시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그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명문인 포항여고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곳까지 갈 차비가 없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옆집에 가서 차비를 빌려서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고 그 공부를 계속 할 수 없어서 학교를 중퇴하고 방직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을 합니다. 공부를 합니다. 너무너무 힘들다보니까 점점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어느 날, 새해를 맞아서 그가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이 절망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여주옵소서.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살기로 원하노니 제게 새로운 꿈을 주시고 내가 그 꿈을 이루게 하여주옵소서.” 기도하는데 마음에 두 가지 소원이 왔습니다. 하나는 법을 공부해서 법관이 되는 것이고, 하나는 선교사가 되는 거예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법률을 전공하기로 결정을 하고 그가 이제 대학을 갈 준비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다 말립니다. “너는 대학을 가도 어려워서 등록금도 없는데 어떻게 가려고 그러느냐?”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하는 그 말씀을 붙잡고 마음을 지키고, 누가 앞에서 “너는 할 수 없어. 안 된다.” 그런 말 듣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그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 경제적 어려움, 어머님의 질병으로 돌아간 그 절망의 침상을 그는 믿음으로 거둬들이고 내다버리고 기도로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수능을 준비해가지고 27세에 수능을 보고, 29세에 동아대 법대에 합격을 합니다. 법대에 합격을 하는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입학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졸업할 때까지 주님께서 책임져주세요.” 아, 그랬는데 4년 동안 전체 수석으로, 학과 수석으로 장학금 받고 졸업을 해서 지금 변호사가 되었는데요. 하루 12시간씩을 넘게 공부하는 가운데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면서 방직공장 공원에서 변호사가 되기까지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간증합니다.

 “방직공장에 다니며 야간여상, 쇼핑센터 점원, 초밥집 사장으로 생계를 꾸려갔던 제가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변호사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인생이었습니다. 주님 안에 계획된 꿈, 하나를 이루면 다음에 또 다른 꿈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그분의 손길을 따르는 삶이 진정 성공한 삶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 되십니다. 그 희망의 상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약속의 말씀에 굳게 서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주님 주신 거룩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때, 위대한 역사가 여러분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상처와 고통을 주는 과거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마는, 이제 그것에 매여 있지 않게 하여주시고 그 모든 절망의 침상을 내다 버리고 주님 주신 약속의 말씀 붙잡고 꿈을 꾸며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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