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에 관한 예화 모음-1

똑 같은 경험 반복

 

항상 무사안일 하게 10년을 한 직장에서 지낸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창의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적당히 대처하며 지냈다.

이런 소극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이 사람은 승진에서 계속 밀려 났다.

그는 회사 고위 간부에게 하소연을 하며 {그래도 내게는 10년간의 경험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간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바로 그 점이 당신의 문제 입니다. 당신은 한 해의 경험을 10회나 반복했을뿐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무리 몇 십년 동안 믿었어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최수자 권사와 아들 부부(영등포대교구)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 아들도 살려주셔” 

수면 중 갑자기 심장 멎어 뇌사상태된 아들
이영훈 목사 안수기도 후 깨어나 회복 돼

 나는 결혼 1년만에 남편을 잃었다. 겨우 25세에 돌 지난 아들과 함께 세상에 단 둘이 남았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아들을 훌륭하게 잘 키워야 한다는 일념 아래 나는 살던 지역을 떠나 무작정 상경해 취업했다. 힘든 직장 생활 중에 전도를 받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처음에는 혼자 아등바등 살던 삶에 지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지금까지 마음에 숨겨두었던 설움이 터져 나오고 알 수 없는 평안이 찾아옴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이 하나님도 예수님도 교회도 잘 모르는 내가 다음날부터 무작정 새벽기도에 참여했다. 교회 행사나 예배가 있다면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자연스레 전도도 하면서 전도상도 받고 구역장, 지역장을 거쳐 지금은 권사가 됐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게 아니 우리 가족에게 복을 주셨다. 주님께 다가갈수록 건강의 축복은 물론, 물질의 축복도 받았다. 무엇보다 아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 가정을 꾸리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아들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영훈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우리 가족을 신앙으로 이끌어 준 정길영 목사님과 구역식구들의 기도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4월 16일 목요일 새벽에 며느리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쓰러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안산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아들이 최근 많은 업무로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날 잠을 자던 중 갑자기 숨이 멎었다는 것이었다. 응급구조대가 일찍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고대안산병원으로 아들을 옮겼지만 뇌에 산소공급이 일시 중단되어 뇌사상태가 됐다. 며느리는 아들이 중환자실로 옮겨져 당장 면회가 안되니 아침이 밝으면 병원에 올 것을 당부했다. 나는 이른 새벽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영훈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요청하고는 안산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이해조차 되지 않았지만 다음날 다시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하고 이영훈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또 한 번 요청했다. 그리고 그날 병원 면회시간에 이영훈 목사님이 오셔서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목사님은 내게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말씀을 주시고 가셨다. 그 말씀을 붙잡고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지·구역 식구들은 물론 이대현 대교구장 목사님과 아들이 다니는 여의도순복음안산교회 김유민 담임목사님도 함께 기도해주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들이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분명히 기도응답의 징조였다.

 실제로 다음날에는 아들이 실눈을 뜨기 시작했다. 주일에 전도한 새신자 5명과 교회에 함께 가서 예배를 드리고 왔는데 아들이 완전히 눈을 떴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월요일에는 의식을 거의 차렸고 화요일에는 동료 직원들의 말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말도 하고 일반병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할렐루야.

 돌이켜보면 아들과 단 둘이서 살아갈 때는 너무나 외롭고 힘든 삶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늘 함께 해주시고 지켜주시고 이번처럼 큰 위기가 닥쳤을 때는 구해주셨다. 다시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아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이영훈 목사님을 비롯한 목사님들 그리고 지·구역식구들에게 감사 드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조용기목사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5~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를 돌아볼 때, 우리의 생애를 지배하는 두 가지 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사상의 멍에를 짊어지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면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것과 죽는 것까지도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인 것입니다. 인간은 존재적 무거운 짐에 눌려 있고 살기 위해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욥기 5장 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은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신 바는 아니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고 그리고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들이 안식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고난 받고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수고롭고 무거운 삶은 무엇 때문입니까? 왜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수고’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남자에게는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담을 쳐놓고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가난과 죽음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쉼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평안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짐이 넘치면 침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입니다. 배에 적재 한계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선을 보고 짐이 한계를 넘지 않았는지 측정합니다. 만약 이 적재 한계선을 무시하고 더 많은 짐을 실으면 결국 배는 바다에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인생의 짐이 계속 늘어나면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있는 이혼이나 자살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라는 마음의 짐이 쌓이고 쌓여 한계를 넘어갈 때, 문제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을 위하여 짐들을 그대로 방치해 놓아서는 안 됩니다. 


2.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인간의 죄 짐을 대신 지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한 이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쉼을 줄 수 없는 곳에 가서 쉼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물 없는 우물가에 가서 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위로를 얻으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경치가 좋은 휴양지에 가서 쉼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영원하고 참된 쉼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쉼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거스틴은 “주님! 내가 당신의 품에 쉬기까지 나에게 참 안식이 없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은 목마르고 지친 인생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이 여인은 정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삶에 지친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 14절)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로 잔치를 베풀 때, 친척이나 친구들을 선택해서 초청하는 사람들도 있고, 몇 십 명, 몇 명을 초청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 오라고 합니다. 선택적 초청이 아니라 “다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초청에 믿음으로 응하기만 하면 예수님 안에서 쉼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초청받는 것도 아니고, 가문이 좋기 때문에, 돈이 많기 때문에, 권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무조건 주님이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참된 만족과 쉼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 것입니까?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영혼의 잘됨이 먼저입니다. 영혼의 죄부터 청산해야 그 다음 사업도 건강도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잘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유일하게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잘 믿으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고 말씀합니다. 눈동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눈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3중 보호 장치가 되어 있어요. 첫째로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자동으로 눈을 감아서 눈꺼풀이 눈을 덮어 보호합니다. 또 눈썹과 속눈썹이 있어서 먼지와 티끌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물샘이 있어서 눈에 물질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눈물이 나와서 씻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눈동자처럼 여기시고 보호 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죄의 문제와 티끌이 우리를 삼키지 못합니다.  

 부모가 있는 자녀들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장 1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어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장 14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태복음 21장 22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로 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필요한 것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뿐만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통치자인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장 6~7절)”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형체로 오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계획하고 싶은 대로 해봅니다. 하지만 시편 127편 1절에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시고 인생의 짐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짐승에게 멍에를 메게 해서 짐을 끌 때, 새끼를 어미 밑에 같이 멍에를 메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은 여러분 일생의 짐을 자기가 다 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짐을 예수님 목에 다 걸쳐놓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의로움이 되시는 것입니다. 죄를 다 대신 짊어지시고 의로움을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편 68편 19절)”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고 동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는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고 예수님을 거부할 것입니까? 아니면 손들고 항복하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할 것입니까? 선택은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내가 내 주인으로 살겠는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는가? 우리의 선택입니다. 세상의 멍에를 메면 고통이지만 예수님의 멍에를 매면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들이 죄의 짐, 질병의 짐, 가난과 저주의 짐, 그리고 죽음의 짐을 진 채 아무런 소망도 없이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부활의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가 우리를 맑고 밝은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참 쉼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권성근 집사(마포2대교구) -

디스크 파열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유 받아

성경 말씀에 감동받아 죄의 고리 끊어내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한 성도 될 것


 나는 아내의 권유로 교육개발연구소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듣고 현재는 성경대학까지 수료했다. 아내와 함께 성경대학원도 공부할 계획이다. 나보다 먼저 성경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 아내는 재작년에 갑자기 장모님이 백혈병으로 판정받으며 공부를 잠시 중단하게 됐다. 장모님을 한 집에서 모시며 간병하는 아내의 마음과 그 수고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성경대학을 공부하던 시기 나 또한 병중에 놓이게 됐다. 허리의 극심한 통증으로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서지도 앉지도 못하게 되어 대학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다. 의사는 디스크가 파열이 돼 허리수술은 불가피하니 빨리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혹시나 다른 병원에서 다른 판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갔지만 거기 또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리에 마비까지 오니 내 마음이 무너졌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또 우리 가족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장모님에 이어 나까지 수술을 하게 되면 아내는 두 사람을 병간호해야 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또 수술비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내가 오기 쉽도록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의사와의 면담을 2주 후로 예약했다.

 나는 시련 가운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깨닫고 감격해 감사했다. 성경학교에서 배우고 읽었던 말씀들이 몸이 아픈 가운데 계속 떠올라 힘이 되었다. 성경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말씀들은 내 신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2주의 기간 동안 나는 기적을 체험했다. 갑자기 다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걷게 됐고 마비로 걸을 때 통증을 느끼며 힘겹게 걷던 것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 말씀으로 2주를 보내고 병원에 가기 전 날 잠결에 나는 ‘성근아’라는 부름을 들었다. 그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님께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회개 기도를 했다.

 모태신앙인 아내는 결혼 전 나에게 함께 예배드리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결혼 후 직장을 핑계로 나는 술과 담배를 일삼았고 나쁜 행동도 많이 했다. 내 게으름으로 인해 한 두 번의 참석 이후 믿음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세상의 일이 아닌 교회 안에서의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자계열에서 일했던 나는 가장으로서 월급이나 모든 면에서 교회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내는 앞으로 물질은 덜 사용하면 된다며 믿음생활을 건실하게 해 딸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는 아빠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고 나는 따랐다.

 

그때부터 나는 신앙생활을 다시 하게 됐다. 주일 예배를 드리며 가끔 내 죄를 회개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눈물로 간곡히 회개를 드린 것은 처음이었다. 주님이 나를 잊지 않고 못된 죄인을 회개 시켜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다음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수술은 안 해도 된다며 한달치 약을 먹고 경과를 보자고 했다. 한 달 약을 먹고 또 진료를 받으러 가는데 이제는 약도 필요 없다고 했다. 할렐루야! 말씀으로 치유함을 얻은 나는 앞으로 우리 가족이 대대손손 아브라함의 자손들처럼 믿음의 가문이 되는 것을 소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나는 아내와 함께 말씀과 기도를 쉬지 않을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하나님의 사람, 다윗/조용기목사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중략)...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중략)...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사무엘상 17장 31~54절]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까요? 마음에 꿈이 있고 믿음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림으로써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는 것인 줄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라는 꿈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꿈을 품고 나아가는 다윗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에 놀라운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과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1. 블레셋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접전을 앞두고 있을 때, 골리앗이라는 장군이 나타났습니다.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골리앗이 나타나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8절로 10절에 보면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고 큰 소리로 협박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삼상 17장 11절에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 다윗

 사울 왕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말을 듣고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할 때 다윗이 자원합니다. 다윗은 목동 생활을 할 때 참으로 위대한 체험을 했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체험은 꼭 필요합니다. 작은 체험, 큰 체험 모두다 믿음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생활가운데 체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귀중한 일인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로 35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보통이 아닙니다. 맹수들이 새끼를 물고 가는 뒤를 따라가서 곰과 사자와 일대 격전을 벌여서 새끼 양을 구출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도 말합니다. 사무엘상 17장 37절에 “또 다윗이 이르되 야훼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다윗은 자원해서 나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했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골리앗을 만납니다. 사업상 골리앗이 다가오고, 건강에도 골리앗이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두고 달아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다가와도 과거에 고난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문제를 극복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자산입니다. 우리 신앙은 체험이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체험을 통해서 원수 마귀를 이기는 믿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어린 목동이었지만 곰과 사자를 때려잡는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체험을 주셨기 때문에 그는 굉장히 담대한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으려면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갈 때에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기도를 못 한다고 말을 합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에서 바쁠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빠서 기도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쁘니까 더 기도해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인 것입니다. 기도할 때 야곱과 에서처럼 가족 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고, 히스기야처럼 병에서도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계속 체험하면, 믿음이 점점 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의 체험으로 가지고 있으면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 믿음의 경험을 되살려서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계속 체험하면, 믿음이 점점 자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 생활을 하면서 사자나 곰이 나타나 양을 물고 가려고 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자와 곰을 이겼던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체험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5만 번 기도해서 응답 받은 조지 뮬러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체험할수록 믿음이 점점 성장했다고 말했습니다. 5만 번 응답을 받았으니 웬만한 기도는 다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믿음을 갖는 것이 우리의 무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시편 146편 3절로 5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다윗은 체격도 너무 작고, 무기도 다룰 줄 몰랐고, 심지어 갑옷도 입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다윗이 이길 가능성은 제로였습니다. 사울이 다윗이 일선에 나가기 전에 자기 군복을 입히니깐 바지는 질질 끌리고 갑옷은 다윗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칼을 들어보니 질질 끌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무장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다윗이 무장을 제껴놓고 목자의 도구만 가지고 나갑니다. 담대함으로 나아갑니다. 시편 3편 6절에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천만 인이 쳐들어와도 다윗은 그들을 대적할만한 담대함의 경험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다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문제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역대상 29장 11절에 “야훼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야훼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약해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불평, 불만을 쏟아내면 당장은 속이 시원해지겠지만 사실은 건강을 해치는 것입니다. 콜럼비아 대학의 심리학과 제프리 로어 교수는 “화가 난다고 해서 불평을 쏟아 놓는 습관은 마치 밀폐된 엘리베이터에서 방귀를 뀌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불평, 불만을 쏟아 내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어 건강에 해롭고, 주변 사람들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코넬대의 칼 필레머 교수는 65세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답변을 예상했지만,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너무 걱정하며 살지 말 걸 그랬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 또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을 놓고 미리 걱정부터 한다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고 삶을 낭비하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날마다 마음에 걱정을 가득히 안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염려, 걱정, 두려움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을 보고 혼비백산한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알았으면 골리앗이 아무리 장군이라도 하나님 앞에는 먼지 부스러기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3.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골리앗이 보니 다윗는 어리고 작은자처럼 보였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2절과 43절에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라고 설명합니다. 옛날 시골에서 보면, 개는 늘 부엌 주위에 얻어먹으려고 서성거리는데, 부엌에 개가 들어오면 어머니들이 긴 부지깽이로 개를 내쫒았습니다. 골리앗도 다윗을 보고 그와같이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7장 43절과 44절에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아주 평가 낮게 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골리앗을 사무엘상 17장 36절에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라고 평가합니다. 다윗은 윗옷에 시내에서 돌멩이 다섯 개를 주워서 거기다 넣었습니다. 아마 다윗이 올림픽에 나갔으면 ‘던지기’부문에서 금메달을 땄을지도 모릅니다. 골리앗이 완전 무장을 했기 때문에 온 몸이 다 철통같이 방어가 되고 오직 눈과 눈 사이밖에 열린 곳이 없습니다. 거기를 맞춰야 했습니다. 다른데 때려봤자 꼼짝도 안 합니다. 그러니 다윗이 하나님께 의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다윗과 같이 함으로 던진 돌이 골리앗의 눈과 눈 사이를 뚫고 머릿속에 들어가 밖힌 것입니다. 그 큰 골리앗이 거꾸러졌습니다. 다윗은 뛰어가서 칼로써 골리앗의 머리를 베어버립니다. 믿음이란 그만큼 담대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1서 5장 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중에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만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믿고 기도해야 됩니다.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4차원의 영성으로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꿈과 새로운 믿음과 새로운 입술의 고백은 다윗과 같은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31장 8절에 보면 “야훼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임효준 선수가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겨 주었는데, 이로 인해 전 국민이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임효준 선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동안 부상으로 일곱 차례에 걸친 수술과 재활훈련을 받으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기도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상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치료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때를 위해 낫게 해 주신 것 같다고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임 선수가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금메달을 따서 전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듯이, 우리가 삶의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앞에는 골리앗이, 옆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문제의 골리앗을 만나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골리앗과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내 앞에 골리앗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고 이사야 43장 2절에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기차 여행을 하는데 옆에 앉은 청년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성경책과 볼펜을 꺼내어 “이 성경책 위에 볼펜을 세울 수 있습니까?”라고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청년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자, 목사님은 성경책 위에 만년필을 세우고 손으로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만년필이 어떻게 혼자 서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면 아무리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안겨 드렸습니다. 전쟁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전쟁은 우리 삶의 모든 국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전쟁입니다. 어른들은 직장에서 전쟁을 치르고, 아이들도 입시 전쟁을 치르고, 부부간에도 전쟁이 치러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은 인간적인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삶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꿈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러한 꿈을 품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요즘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이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는데, 그들이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꿈을 꾸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슴 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겨울이라 메마른 땅과 앙상한 나무 가지만 보입니다만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봄이 되면 땅에서 풀이 올라오는 나무에도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가슴 속에 꿈이 있으면 인생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윗과 같이 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삶을 산다 하더라도 기도할 수 있으면 이깁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생각을 언제나 좋은 꿈을 꾸고 믿음을 갖고 입술로 승리를 고백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4차원의 영성이 성령님과 동행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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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퀴즈가 좋다-1

 

 

1.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중에서, 예수님을 믿은 나사로는

    죽어서 어디로 갔나요? (정답:1)

천국

지옥

불구덩이

어두운 구덩이

 

2. 다음 중에서 성경을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은? (정답:2)

설교 말씀을 잘 듣는다.

성경은 교회갈때만 꺼내본다.

공과 공부 시간에 열심히 공부한다.

성경을 하루에 10분씩 읽는다.

 

3. 다음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요? (정답:3)

원래 양을 사랑하며 지키던 목동이었는데,

사자의 공격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용기로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 이긴 후 감사한 사람.

헤롯

동방박사

다윗

골리앗

 

4. 다음 중에서 당신에게 어렵고 두려운 일이 생길 때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정답:4)

예수님은 나를 보호하시는 선한 목자이심을 기억한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다.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법을 성경에서 배운다.

혼자라고 생각하고 울어버린다.

 

5. 다음에서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답:기도하기)

·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대화하기

) · 매일 아침 일어나서 _____를 하겠어요.

· 주신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도 ______를 먼저 하겠어요.

 

전도하기

성경읽기

기도하기

봉사하기

 

6. 다음의 이분은 누구입니까? (정답:예수님)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도 버리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

참된 만족과 영원한 행복을 주시는 분.

 

7. 하나님께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다음의 ( )에 들어갈 말은? (신령,진정)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 )( )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4:24)

 

8. 다음의 성경속 인물은 누구입니까? (정답:바울)

· 친절과 격려의 말이 담긴 편지를 썼음

· 로마, 에베소, 데살로니가, 골로새 그리스도인에게 격려와 친절의 편지를 썼음.

· 예수님을 전하다 옥에 갇혔으나 찬양과 기도 중에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림.

 

9.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선물(6가지)을 준비하셨어요. 여러분은 그 선물을 받은 주인공인가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알려주길 원하세요. 복음의 선물을 전할 때, 다음의 색깔을 기억하면서 전해보세요. 그렇다면 어두운 색이 말하는 것은? (정답:우리는 죄를 지었어)

· 황금색 :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셔서 아름답고 놀라운 하늘나라를 준비해 주셨어.

· 어두운색 : (그런데 )

· 붉은색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사셨어.

· 깨끗한():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깨끗하게 용서 받았어. 예수님을 영접하면 천국에 갈 수

있어.

· 초록색 : 하나님의 자녀는 나무가 자라나듯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어야 해.

 

10. 다음의 말씀 중에서 공통되게 들어갈 말씀은? (정답: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이 우리와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역대하13:12)

·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하심이라 (이사야8:10)

·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1:23)

 

전도에 관한 예화 모음-2

두려움 없는 삶의 비결

 

어떤 사람이 공동묘지를 넘어 막 마을로 가려하다가 너무나 밝은 얼굴로

뛰어노는 한 꼬마를 만났다 

{공동묘지 근처인데 너는 무섭지 않니}이 사람이 이렇게 물자  

꼬마는 {아뇨}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 봤다. {왜 무섭지 않니?}  

다시 이 사람이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이사야41:10)


정현자 권사(금천대교구) -

혈압으로 실명한 어머니, 예수님 믿기로 결단

예수님 영접 후 시력 돌아오는 기적 일어나
매일 새벽예배 드리고 성경 읽으며 기쁨 누려


 

김제가 고향인 나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결혼 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녔다. 형제들도 하나둘씩 예수님을 영접하며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6남매를 낳고 기르느라 고생이 많은 친정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매일 같이 기도해왔다. 하지만 자식들이 전도를 해도 어머님은 “나는 죽어도 예수를 믿을 수 없으니 너희들이나 잘 다녀라”라고 말씀 하실 뿐이었다.  

27년 전 너무나 절망적인 일이 생겼다. 혈압이 높은 어머니는 그때 환갑의 나이셨는데 혈압 때문에 눈이 터져서 보이지 않게 됐다. 서울로 모셔 와서 제일 좋다는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한쪽 눈은 실명, 한쪽 눈은 흐릿하게 형체가 보이는 정도로 98% 실명이라고 했다.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어머니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내가 그렇게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님들을 잘 모셨는데 이제와 내게 남은 것은 눈이 먼 것 밖에 없구나”라고 허탈해 하시며 “너희들이 그동안 나를 위해서 많이 기도한 것을 안다. 나도 너희들이 믿는 예수님을 믿어 보겠다”라고 결단하셨다. 외동딸로 귀하게 자란 어머니는  시집을 오셔서 일년에 12번의 제사상을 차리셔야했다.

 이튿날 어머니는 나와 함께 우리 교회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셨다. 어머니는 예배를 드리자 너무나 머리가 아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며 나가려고 하셨다. 그것이 영적 싸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있으면 하나님이 분명히 치료해 주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주일예배와 철야예배를 드릴 때 지역장님도 함께 하며 기도로 우리를 붙들어 주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는 확률은 낮지만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았던 어머니는 뜻밖에 “수술로 내 눈에 손을 대고 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겼다”라며 수술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내 눈을 고쳐 주실 줄 믿는단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신다면 눈이 멀어도 좋다”라고 고백하셨다.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왔다. 어머니의 고백에 감동한 나는 어머니께 약을 챙겨드리기 전 약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꼭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제 어머니의 고백을 하나님도 들으셨지요. 저희를 위해 살이 찢기셨고 피 흘리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이제는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점심을 맛있게 잡수시고 약을 드신 어머니는 낮잠을 푹 주무셨다. 한잠 주무신 후 어머니께서 눈을 뜨셨다. 그러더니 나와 아이들을 향해 흥분한 목소리로 “얘들아 왔다 갔다 해보거라”라고 하셨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아이들이 손가락을 할머니 앞에서 흔들며 “이게 몇 개예요?”라고 묻자 보이는 대로 어머니는 숫자를 맞추셨다. 어머니는 눈이 점점 밝아지고 잘 보인다고 하셨다. 그때부터는 어머니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 섬기겠다고 다짐하시고 고향으로 내려가셔서 그곳 교회를 섬기며 새벽기도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다니신다. 지금 88세이신데 몇 년 전에 뇌졸중이 왔음에도 큰 불편함 없이 강건하시다. 눈을 다시 뜨신 이후부터 떠듬떠듬 읽는 속도이지만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고 읽으셔서 성경을 세 번이나 통독하셨다.

 

어머니가 눈이 머셨을 때는 온 가족이 절망에 빠졌었는데 그때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되셔서 고통이 오히려 기쁨과 기적으로 바뀔 수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을 주신 참 좋으신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하며 살아가겠다.

정리=복순희 기자


삼위일체 하나님(구역예배)

◎ 찬송가(다같이) : 8장(통일 9장), 10장(통일 34장)
◎ 신앙고백(다같이) : 사도신경
◎ 말씀봉독(다같이) : 고린도후서 13장 13절
◎ 본문읽기
◎ 주기도문(다같이) : 맨 마지막에
◎ 오늘의 만나
 삼위일체는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일체를 명백히 증거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분명 삼위일체로 존재하십니다. 성경은 삼위일체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으며, 삼위일체를 대하는 바른 태도는 무엇일까요?  

1. 삼위일체의 성경적 근거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신앙이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구약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단수 ‘엘로아’가 아닌 복수 ‘엘로힘’을 사용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이 창세기 1장 1∼2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스스로를 지칭하실 때 ‘나’가 아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또한 삼위일체의 근거가 됩니다. 대표적인 구절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구약은 성부, 성자, 성령 모두에 대해 말씀하시며 삼위일체를 나타냅니다. 구약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성취되는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의 오심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7:14, 53:1∼12, 욜 2:28∼32).
 둘째로, 신약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보겠습니다. 신약은 구약보다 더 확실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데,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마 3:16∼1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내리실 때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8∼20).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하고 있습니다(고후 13:13).

2.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견해
 초대교회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신비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들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단일신론이라고도 불리는 ‘양자론(養子論)’이 있습니다. 양자론은 유일하신 하나님은 결코 세 분일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양자론에서는 예수님은 본래 인간일 뿐인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양자로 삼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양자론은 창세전부터 존재하시고, 창조된 적이 없으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함으로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사 9:6).
 둘째, 성부수난설이라고도 불리는 ‘양태론(樣態論)’이 있습니다. 양태론 역시 양자론과 같이 유일하신 하나님은 결코 세 분일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양태론에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자신을 드러냈다고 주장합니다(구약에서는 성부, 신약에서는 성자, 신약 이후에는 성령의 모습으로).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각각 개별 존재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성부가 십자가 수난을 당했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셋째, 아리우스주의라고도 불리는 ‘종속설’이 있습니다. 종속설도 다른 이단들과 마찬가지로 유일하신 하나님은 결코 세 분일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종속설은 성부만이 유일한 최고의 신이고,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자와 성령을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주장이기에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만약 성자와 성령이 피조물이면, 성자와 성령을 예배하는 행위는 우상숭배가 되고, 성자는 구원자가 되지 못하며,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어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생겨났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를 한계를 가진 인간 이성으로 무리하게 정의 내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셋이자 완전한 하나’, 즉 삼위일체는 이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수학 공식이나 철학 이론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적 진리입니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해하기 위한 존재이기에 앞서 믿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믿는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3. 순복음 신앙과 삼위일체 하나님
 순복음의 삼위일체 신앙은 구원론적이며, 성경적이며, 실천적입니다. 순복음의 삼위일체 신앙에서는 삼위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주로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조화를 이루는 성경적 표현입니다.
 첫째, ‘좋으신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순복음 신앙에서 성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도들 안에 내주하게 하시고, 마지막 날 구원의 때까지 인도하십니다.
 둘째, ‘구원자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순복음 신앙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안에서 하나님과 성령님의 사역을 이해합니다.
 셋째,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순복음 신앙은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고 믿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성자에게로 인도되며 성자를 통해 성부를 만납니다.

◎ 간추린 만나
 <삼위일체의 성경적 근거>
1.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구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성부와 성자의 오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신약은 여러 구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견해>
1. 기독교 역사 가운데 삼위일체와 관련된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2. 대표적으로 양자론, 양태론, 종속설이 있습니다.
3. 삼위일체를 해석하려고 하기에 앞서 말씀 그대로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순복음 신앙과 삼위일체 하나님>
1. 순복음의 삼위일체 신앙은 구원론적이며, 성경적이며, 실천적입니다.
2. 순복음의 삼위일체 신앙은 삼위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부릅니다.
3. 성도들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성자에게로 인도되며 성자를 통해 성부를 만납니다  

◎ 내 삶의 만나
 <옆 사람에게 인사>
1. 성경은 삼위일체를 말씀합니다.
2. 이해보다는 믿음이 먼저입니다.
3. 순복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기 도>
1. 성경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2.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3. 순복음 신앙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중보기도>
옆 사람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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