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찬양 /나를 위해 오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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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권사(금천대교구)-

심장병 고침 받고 복음의 증인돼

20여 년째 새벽기도, 봉사와 전도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님 응답해주셔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최전방에서 살다보니 밤낮 없는 대북방송에 내 심장은 견뎌 내지 못했다. 심장병이 생겨 숨도 잘 쉬지 못했고 의사가 내게 아이를 낳지 말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 그러다 1972년 순복음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됐다. 기댈 곳이 필요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집 근처에 교회가 있기에 가보니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기둥만 세워진 상태였고 예배를 드리려면 서대문의 교회에 나가야한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먼 거리는 다니기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지 못한 채 1년이 지나 시흥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집에서 찬양소리가 들려왔다. 찬양이 내 마음에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나는 곧장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놀랍게도 그 이웃은 순복음교회 성도였고 나는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 안양에서 조용기 목사님 부흥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나는 이 부흥회에서 꼭 병고침을 받겠다는 소망을 가졌다. 기도를 받기 위해 따라 다니는 날보고 목사님은 내 병이 고침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날부터 숨이 차지도 않고 찬송을 부르는 나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심장병이 다 나았다며 기적이라고 했다. 그 일이 주변에 알려져 나는 많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기적의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목욕탕에서 할머니들의 등을 밀어주며 또는 새벽기도 가는 길에 만나는 미화원들에게 음료를 나눠주며 열심히 전도했다. 전도를 한 사람들 가운데 5명의 목사님이 나왔고 병고침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많은 기적들을 경험했다.

 작년에는 거식증을 앓는 사람이 병고침을 받는 기적도 일어났다. 김중열 성도는 5년 간 거식증을 앓았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 빼빼 말라 양쪽에 사람이 붙들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대로 어떠한 병이든 고쳐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배를 드리러 온 그 자매에게 “걱정하지마라.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고 못하는 일이 없는 하나님이 3개월 내로 병을 고쳐주실 것이다”라고 선포했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 때 전도한 사람들의 기도 제목을 놓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김중열 성도를 위해서도 “하나님 김중열 성도 거식증을 고쳐주셔서 주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사용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1월 김중열 성도와 함께 3부 예배를 같이 드리는데 이영훈 목사님이 소화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식도로부터 위까지 기능이 상실되고 자꾸 토하는 사람의 기능을 회복시켜달라며 신유기도를 하셨다. 곁에 있던 나는 김중열 성도를 일으키며 “나았다. 할렐루야!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날 김중열 성도는 먹고 싶었던 자장면 한 그릇을 다 먹고도 탈이 나지 않았고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우리 교회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할렐루야! 20여 년째 직장생활을 하며 작정 새벽기도, 기도처 꽃꽂이 봉사 그리고 전도를 하면 하루 3시간밖에 잘 수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상을 감당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할 뿐이다. 주님께서 주신 생명, 앞으로도 베풀며 남을 돕고 전도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      정리=김주영 기자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자/이영훈목사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마가복음 10장 13~16절)

  어린아이들은 가정의 꽃이고 희망이고 행복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의 미래입니다. 장차 교회의 큰 일꾼들이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어리고 힘이 없고 연약하다는 이유로 많이 무시당해왔습니다.  1923년 5월 1일, 어린이 날이 처음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 운동가들과 함께 외친 구호는 우리 어린아이들을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였습니다. 얼마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쉽게 욕을 하고 잘 때리고 아이들을 막 함부로 다루고 부렸던지 그때 캠페인이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였던 것입니다.  94년이 지난 오늘날 얼마큼 아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모습이 달라졌습니까?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오늘날도 아이들이 부모에게 매 맞고, 심지어는 생명을 잃기까지 하고,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가 종종 뉴스를 통해 대하게 됩니다. 지금도 무시당하고 매 맞고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저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고, 사랑으로 섬기는 그런 본을 보여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러한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이 기도받기 위해서 나올 때 제자들이 이를 막고 꾸짖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제자들의 태도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마가복음 10장 13절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자녀들에 대한 부모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예수님 당시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훌륭하신 선생님이나 또 존경하는 분들에게 기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 받으러 나왔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니까 제자들이 사람들이 오는 것을 막으면서 특별히 기도 받기 위해서 온 아이들을 막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왜 선생님 피곤하게 이렇게 와서 괴롭히느냐고.
  마태복음 19장 13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님 당시는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수를 헤아릴 때에도 여자와 아이의 수는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때 마태복음 14장 21절을 보니까,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대 시대에 어린아이들의 인권은 전혀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이후 아이들을 존중하는 그러한 아름다운 관습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원하지 않는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재산분할을 원치 않아서, 여자 아이라서, 사생아라서, 쓰레기 더미나 배설물 구덩이에 아이들을 던져버렸습니다. 거의 다 죽게 되는데 어쩌다 구조된 아이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덕분에 교회가 세워지고 난 이후, 아이를 버리는 악습은 폐지가 됩니다.
  존 오트버그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시작한 운동이 퍼져 나가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초창기 교훈서에 보면, 당시 널리 성행하던 낙태와 유기와 영아 살해 같은 관습들이 금지되어 있다. 4세기 말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황제가 전 제국에 걸쳐 유기라는 관습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세월이 가면서 서서히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아기를 똥구덩이에 던지지 않고, 수도원이나 교회 앞에 데려다 두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고아원이다!”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고아원을 세우게 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곳곳에 고아원들이 세워져서 버려진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아이 사랑으로부터 출발된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들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이들까지 데려와서 기도받는다고 그것을 꾸짖고 가로막은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예수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스스로 사람을 판단하고 당시 관습에 따라 아이를 멸시한 그러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 믿고 우리가 달라져야 되는데 예수님 믿고 난 후에도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이, 힘이 없고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존중하지 않는 데에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들이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될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힘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문제 있고 버림당하고 소외된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돌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으스대면서 오히려 자기들이 권세를 휘둘렀던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오래 다닐수록 우리가 더 온유와 겸손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야 될 것입니다. 처음 나와서 잘 뭘 모르는 성도들을 사랑으로 잘 돌봐야 됩니다. 무엇을 잘 모른다고 꾸짖고 야단치면 새로 나온 성도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본을 보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2장 3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예수님의 제자들 같은 그러한 태도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좀 더 배웠다고 가진 것이 많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없는 사람을 소홀히 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태도
 
  예수님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마가복음 10장 14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꾸짖으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다. 이런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인데 왜 너희들이 내게 오는 것을 가로 막느냐?’ 제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 6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주님을 섬기는 자들의 모습은 온유와 겸손과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우월의식에 빠져있으면 안 됩니다.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돌보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인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인 것입니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고 아이들에게 욕하고 아이들을 때리고 이렇게 상처를 주는 모습들이 우리 주변에 흔히 발견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부터 먼저 그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들이 아이들을 잘 사랑으로 돌볼 때 이 나라에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남자만 5천명이고 여자와 아이를 합해서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다 먹게 되었는데 정작 이 일의 큰 기적을 행하도록 그 헌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찾는다고 하시니까 자기가 먹을 것을 주님께 내놓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9절입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어린아이의 헌신이 굶주렸던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나 남는 큰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한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아이들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격을 가진 존중받아야 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이 화났을 때 아이들에게 막 함부로 말을 하고 욕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아이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교육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집에서나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돌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 가면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그러한 교육을 해야 되는데 권위적이고 야단치고 꾸짖는 그러한 모습의 교육풍토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어린아이였을 때 그를 부르셨습니다. 다윗이 소년이었을 때 그를 불러 기름 부으셨던 것입니다. 엘리사에게 가서 나병을 고침 받은 나아만 장군도 작은 여종의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가 그 나병을 고침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들이 주 앞에, 주님께 오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그들에게 기도해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6절입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몬테소리 교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유명한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가 제창한 교육으로서 전 세계에 이 몬테소리 교육이 파급되어 있습니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원래 의사입니다.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의사였는데 어느 날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합숙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을 우연히 방문을 하였다가 아이들이 마치 짐승처럼 대우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지적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저렇게 아이들이 소홀히 여김을 당하나!’ ‘짐승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 가둬놓고 먹을 거만 세끼 주는 것이, 그것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인가!’
  그래서 그가 그때부터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최초로 공립재활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특수 기구도 만들고 그래서 아이들이 거기서 행복을 느끼면서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잘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의사 직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공원에서 길거리의 거지로 살고 있는 엄마와 아이를 보았는데, 아이가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이들의 마음에 갖고 있는 저 내일을 향한 꿈을, 저 빛을 비취게 하자. 어린이의 영혼 속에 있는 저 빛을 비취게 하자.’
  그래서 가난한 동네에 가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집을 만들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 집입니다. 지적장애 아이들에게 하던 모든 노력의 몇 배로 다시 또 어린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버려져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것을 교육을 받으면서 아주 뛰어난 인재들로 성장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느 날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았다. 나는 그리스도가 어린아이를 팔에 안으시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 중 한 사람을 영접하는 자는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한 그 어린아이를 만났는가? 나는 이렇게 그들을 만났다! 어린이집에 온 아이들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가난하고 방치된 어린이로 자란 아이들이었다. 말을 건네지 못할 만큼 위축되고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아이들이 변화해서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다!”  
  그는 세 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올랐지만 그때마다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를 돌본 것 밖에 없습니다.” 상 받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녀의 묘비에 이와 같은 글이 적혀져있습니다.
  “나는 나의 친애하는 모든 어린이가 인류와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 의사의 헌신이 전 세계 어린아이의 교육의 풍토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어서 주님께 쓰임받기만하면 이와 같은 위대한 일이, 놀라운 일이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사용하여 주셔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변화되게 하시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지게 하여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북한이 핵무기 가지고 위협하는 것도 아니요,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동서로 나뉘어서 지역 간에 다툼을 하는 것도 아니요, 진보와 보수가 다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출산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결혼해서 두 사람이 둘을 낳아야 현상 유지인데 두 사람이 한 사람 밖에 낳지 않습니다. 1년에 40만 명이 태어납니다. 80만 명이 태어나야 되는데 40만 명이 태어납니다. 앞으로 2, 30년 후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노동시장이 완전히 붕괴되고 큰 위기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중앙일보에서 1년 넘게 특집 기사로 내보내는데도, 102조를 쏟아 부었는데도 아직 저출산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명 존중 캠페인을 벌여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셋에서 다섯은 낳자. 다섯! 기본적으로 다섯씩만 낳으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국가가 아무리 캠페인을 벌여도 안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실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아이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게 하기를 바랍니다. 

3. 천국을 소유할 자

  천국을 소유할 자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마가복음 10장 15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순수함입니다. 우리가 순수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7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린아이는 백지와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 마음에 심어준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사랑을 심어주면 사랑을 그리고 미움을 심어주면 미움을 그립니다. 기쁨을 심어주면 기쁨을 그리고 분노를 심어주면 분노를 그립니다. 그것이 어린아이입니다. 순수합니다. 어린아이에게 흰색이라고 하면 흰색이라고 믿어요.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먹으면 몸에 안 좋다. 그러면 순수하기 때문에 안 좋은 건 먹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순수함이 다 사라져버렸어요.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뒤에 가서 다른 말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사업 파트너에게 피해도 주곤 합니다.
  대한민국에 없어져야 될 것 중에 하나가 어음 제도입니다. 지금 공사를 했는데 공사가 끝나서 돈을 줘야하는데 3개월 후에 받으라는 3개월 후의 수표를 주는 거예요. 6개월 후, 1년 후. 현금으로 주고 계산을 해야 경제가 이렇게 돌아가는데 나중에 갖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6개월 후에 돈을 못 갚게 되면 부도를 내요. 연쇄 부도가 일어나서 많은 사업이 문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남에게 사기를 칠 줄 모릅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힐 줄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어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런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서 늘 순수한 믿음을 갖고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었을 때 그 모습으로 돌아가서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러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어린아이는 겸손합니다. 겸손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절을 보면 이와 같은 제자들의 질문이 나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님, 천국 가면 누가 높은 자리에 앉아있습니까?” 항상 이 사람들은 높은 자리, 위로 올라가는 것만 관심을 갖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절과 3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들은 늘 부모를 의지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압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꼭 부모에게 와서 “이것 좀 해줘.” “이것 좀 열어줘.” “나, 무엇 좀 사줘.” 늘 부모에게 부탁해요. 왜?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 더 배우면 교만해지고, 조금 더 가지면 교만해지고, 조금 더 높아지면 교만해지고. 교만이 독선이 되고 그래서 실수를 하게 되서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겸손해야 되고 배우면 배울수록 겸손해야 되고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겸손해서 섬기는 자가 될 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35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20장 26절, 27절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섬김을 체질화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섬길 것이 무엇인가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같이 여러 사람이 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휴게소에 들어가면 앉아서 음식을 시킵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섬김이 체질화 된 사람은 앉자마자 휴지를 가져다가 놓고 수저통을 열어서 수저를 차립니다. 물컵도 가져다가 물도 따릅니다. 거기에 비해 어떤 사람은 손도 까딱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앉아서 차려주는 밥만 먹곤 합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도 그냥 밥 먹고 일어나서 나가는 사람이 있고 다 정리해서 다시 식기 반납 통에 갖다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체질화 되어있는 사람은 아예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체질화 되지 않은 사람은 어디 가서 먹고 놓고 그냥 나와요. 분명히 반납하라고 되어있는데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의 본을 보이지 않으면 이 세상이 굉장히 불편한 세상이 되고 문제 많은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본을 보여야 되고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내 것, 네 것, 다투고 싸우지 말고 베풀고 양보하고 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히 임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베푸시기 바랍니다. 더 많이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움켜쥐고 사는 인생은 평생 불행한 인생입니다. 움켜쥐고 살다가 그렇게 쓰지도 못하고 쓸쓸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풀고 또 베푸는 인생은 더 주시고 더 주셔서 풍성함을 누리고 살다가 장차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영광 가운데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과연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한평생 섬김의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마음이 굳어진 제자들처럼 늘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교만의식에 살 것이냐. 그것이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한평생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서 온유와 겸손을 옷 입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겸손히 섬기며 살게 하여주시고 사랑을 베풀며 살게 하여주시고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쌍하고 병들고 문제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성도들아 이시간은           


 


민수기7장~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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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지혜

 

두루미들을 일반적으로 학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순수한 우리말은 학이 아니라 두루미가 맞습니다. 두루미는 날개를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춤을 추고, 하늘을 향하여 목을 뽑고뚜르르- 뚜르름-” 구애를 합니다. 얼마나 울음소리가 큰지 조용한 시골 같은 곳에서는 무려 십리 밖에서도 청아한 울음소리를 들을 있다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두루미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냥하기가 제일 쉬운 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루미들은 땅에 있을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떠듭니다. 그래서 소리를 듣고 독수리는 어디쯤에 두루미들이 모여 있는 금방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두루미는 자신의 본능적인 울음소리 때문에 적들에게 노출되고 마는 것입니다. 위치를 추적한 독수리는 두루미가 있는 곳으로 와서 풍성한 먹이 사냥을 즐기게 됩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경험과 나이가 많은 두루미들은 지역으로 이동을 입안에 잔돌들을 잔뜩 물고 날아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본능적으로 울음소리가 나와도 입안에 가득한 때문에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습니다. 두루미는 미물의 날짐승이지만 지혜가 사람을 감동시킬 만큼 놀랍기만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속에서 사나운 독수리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지혜라고 있습니다. 두루미는 침묵만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킬 있는 유일한 길임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침묵은 금이다(silence is gold).”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타인의 약점을 알게 되거나 혹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서 남을 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작은 돌을 입안에 채운 두루미처럼 입을 다물고 침묵을 배울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인간관계를 깨뜨리지 않는 복을 받을 있게 되는 것입니다.(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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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조용기목사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한복음 3장 14∼21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주셨으니 하나님에게는 이보다 더 큰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꿈을 가지게 되고 믿음으로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첫째가 건강이요, 둘째가 가족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건강도 좋고, 가족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1.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예수 믿는 자는 이러한 긍정적인 믿음의 자세를 항상 그 생활태도에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이 삶의 요점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염려, 근심을 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간구를 하고 맡기면 하나님이 그 자리에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개인문제, 가정 문제, 생활 문제, 자녀 문제, 사회 문제, 국가 문제. 문제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려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바다 파도가 잠잠해지고 고요해 지는 것처럼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가 평안을 주시면 굉장히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운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우리가 살아나가면 하나님께서 굉장히 영화롭게 여기시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느냐 하면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뿐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몸 찢고 피 흘려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 주시는 긍정적인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속에 끊임없는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은 갈보리 십자가 밑에 엎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가 내는 고통의 소리를 마음에 들으면 마음에 어떠한 평안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면 염려 걱정할 일이 많고 변명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흐르는 핏방울을 받아가면서 예수님 고난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은 예수님 보혈로 말미암아 목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던 우리가 예수님 보혈을 덮어썼으니 그 대가로서 용서와 의롭게 된 저 자신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 해도 예수님이 나 때문에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 피가 “너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고 고함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우리가 지금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바라보십시다. 마음의 눈으로. 예수님의 피가 나의 생애 위에 떨어져서 씻어주신 그 대가로 용서와 의로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다 굉장히 의로운 분입니다. 이 세상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가 의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보기 때문에 여러분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받은 의인 앞에 마귀가 참소할 수가 없습니다. 참소할 거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가슴 뿌듯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예수님 온 몸이 찢어져서 갈기갈기 찢어진 살점을 통해서 보혈이 우리에게 덮어졌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예수님의 찢어진 몸에서 고함을 칩니다.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 내가 너 위해서 채찍에 맞아버렸기 때문에 대가는 지불해버렸다. 이제 문제는 너희들이 이를 인정하고 믿고 효과를 발생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서 우리 질병을 다 짊어졌을지라도 믿고 맡기지 아니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효과를 발생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헛맞은 것입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 그 수많은 질병과 고통을 예수님이 맞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 알고 그 보혈의 능력을 통해서 건강한 생명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자유, 해방을 얻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가 난다. 가정에 결혼을 하고 나니까 부부간 결혼생활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장사를 하니 장사 터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일어나도 가시와 엉겅퀴가 앉아도 가시와 엉겅퀴가 생겨난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모든 가시와 엉겅퀴는 내가 영원히 갚았다. 다 이루었다.” 우리가 저주를 받은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청산되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우리가 나아갈 때 우리의 가시와 엉겅퀴는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저주받은 사람 아닙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을 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크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때문에 저주 받았는데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절대 저주받은 사람이 복을 받았다고 믿지 아니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 복받은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너무 기뻐하시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볼 때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무수한 죄인이 들끓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복이고,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써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하심또한 우리의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복된 여러분은 부요한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도움을 베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장사 지낸 바 되고, 부활에 동참한 바가 되었음으로 여러분 속에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 11:26)라고 말씀하셨는데, 참 엄청난 선언 아닙니까?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80먹은 할머니가 죽어서 시체실로 옮겨 놓았는데, 다시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있어 응급실로 옮기고, 의사 선생님들은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 모르겠다”고 놀라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니 이것을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가 죽음을 보고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비웃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충만한 분들입니다. 참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그는 예수님은 우리를 외롭게 내버려 놓지 아니하고 자기와 꼭 같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늘 기다려주시는 분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파라클레토스라고. 그러므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바람과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큰 위로를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모략과 재능을 주십니다.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이 보혜사 성령께서 같이 계시고 도움을 베풀므로 항상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성령이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으로써 저와 같이 계심을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로 인정합니다. 저는 환영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의지합니다.”라고 기도하면 성령 보혜사께서 그 반응을 주십니다. 마음에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기쁨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밑에 들어가서 십자가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깨달아 보면 참 놀라운 은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소망과 꿈을 품어야한다

  우리의 삶에는 성령께 의지하고 소망과 꿈을 품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망과 꿈이 있어야 돼요. 마음에 소망이 없으면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꽃피어 나면 꿈이 만발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 여의도 윤중제의 꽃들이 만발한 것처럼 우리들의 소망도 만개하게 될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삶은 좌절하고 절망하나 소망이 꽃피어나면 꿈이 만발합니다. 꿈을 품에 품고 기도하면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19절에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원과 소망을 갖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있고 소망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소원도 소망도 없는 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위해서 고쳐주실 때 그가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꼭 물어보았습니다.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여리고성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가 장님 거지였는데 성 밖에 앉아서 구걸하고 살았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병 고침을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떠들면서 떼를 지어 지나가는 것을 느껴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으니까 예수님이 지나갔다고 하니까 일어나서 동냥하던 밥그릇을 던져버리고 겉옷을 벗어서 던져버리고 벌거벗은 몸이 되어서 나가면서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살려주시옵소서!” 그는 예수님이란 소식을 듣고 마음에 뜨거운 소원과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만 만나면 구걸하지 않고 살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돈 담은 그릇을 던져버리고 겉옷을 벗어버렸어요.
  그 당시에는 거지 노릇하는 데로 등수가 있어서 일등 장소에 있는 사람은 국가가 주는 제복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제복을 벗어가지고서 예수님 향해서 제복을 던져 버렸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거지의 제복을 다시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지의 제복은 바디메오의 살림 밑천인 것입니다. 비올 때 우비도 되고, 추울 때는 외투도 되고, 잘 때는 이불이 되고, 손님을 만났을 때는 예복이 되고, 그에게는 바꿀 수 없는 예복인데 예수님 지나간다니까 예복도 던졌습니다. 왜 그러냐면 사람들이 “야, 이 장님 거지야. 너 같은 사람은 부르짖어도 안 돌아봐주신다. 돌아가라!” 그리 고함을 치니까 뛰고 구르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시고 바디매오를 보시면서 “내가 네 무엇해주기를 원하느냐?” 간절한 소원이 있는 것을 주님이 보셨거든요. 그러니까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장님은 떠나가고 보게 되었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병 앓던 여인도 군중 사이로 뛰어 들어가서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나을 것이라고. 그는 목숨을 걸고 뛰어 나갔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는 혈루병은 나병과 같습니다. 군중 속에 들어갔다가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므로 죽느냐 사느냐의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헤치고 들어가서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혈루병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돌이켜 보시면서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둘러싸고 밀고 댕기는데 누가 손을 댔다고 말합니까?” 하고 베드로가 물으니까 “아니야 손 댄 사람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그 여인이 더 감추지 못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서 “내가 손을 대어서 나았다”라고.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고쳤으니 평안히 가라.” 마음속에 뜨거운 믿음과 소원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믿음과 소원이 있으면 예수님이 그를 통해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소망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고 하나님께 나가면 반드시 우리에게 크고 작은 꿈을 주시고 소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꿈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외국에 잡혀가서 종노릇 하더라도 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꿈과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하심으로 백성들의 마음에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장 13절)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소망과 꿈을 주시고 그 소망과 꿈을 통해서 주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꼭 가지십시오. 여러분 꿈을 꼭 가지십시오. 마음에 안 떠오르면 글로써 쓰십시오. 꿈은 하나님의 영광을 여러분께 가져올 것입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굉장히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었습니다만 꿈 때문에 강철왕이 되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볼품 없는 그림 한 폭이 벽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림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룻배 그림인데 그는 이 그림을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사람이 다 지나가고 배들이 다 떠나가 버리고 없는 휑한 해변 모랫가에 덩그러니 오랜 배가 한 척 버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 ‘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니, 그날에 나는 바다로 나간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지금은 썰물이 되어서 모래에 파묻히다시피 되어서 버림받고 있으나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밀물이 다가온다. 그땐 덩실 뜨면 나도 바다로 나간다. 이 카네기는 패가망신해서 빈손 들고 있었으나 때를 기다리고 있어서 강철왕이 되었습니다.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낡은 배 같다고 생각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밀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기도 올리면 반드시 하나님이 밀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썰물에 고배를 먹었지만 밀물이 다가오면 바다를 향해서 건너갈 수 있는 것입니다. 때가 오지요. 때를 기다린 사람은 때를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모래사장에 덩그러니 남은 나룻배와 같아도 바다로 가겠다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밀물을 보내어 드넓은 바다로 출항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꿈은 삶의 척도인 것입니다. 얼마나 꿈을 꾸었느냐? 얼마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느냐? 성공적인 인생을 산 척도가 꿈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이 얼마나 채워주셨는가 그것을 보고 인생을 성공하고 살았는가, 안 살았는가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여러분은 희망과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입을 넓게 벌리십시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입을 벌리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소원대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0편 4절에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는데 또한 믿음을 통해서는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각도, 꿈도, 소망도 믿음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3. 믿음에는 놀라운 창조력이 있다
 
  꿈이 믿음을 통해서 이뤄지게 되는 것 때문에 꿈이 마음에 있으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게 되고 믿음은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능치 못한 일이 없다니까 그 믿음이 얼마나 창조적인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듣거나 읽거나 말씀을 통하여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말씀을 갖고 기도를 하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생겨나면 창조적인 기적이 일어나고 맙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마음속에 생기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단 믿었으면 믿음이 늦게 이루어진다고 탄식하고 소망을 놓아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때 철옹성 여리고를 만나게 됩니다.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에는 성을 일곱바퀴 돌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순종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도는데, 아무리 돌아도 한 번 돌아도 까딱없고 두 번 돌아도 성이 까딱없고 세 번 돌아도 까딱없습니다. 백성들이 “이거 우리가 속은 것 아니냐? 성이 무너질 것 같으면 지금 돌 한 덩어리라도 떨어져야 될 것이 아니냐?”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 7일째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일제히 고함을 칠 때, 성이 와르르르 무너졌습니다. 


이에 앞서 여호수아의 명을 받아 여리고를 정탐하였던 군사들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갑니다. 라합은 비록 그의 신분이 천한 기생이었으나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피신시키면서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내가 너를 고발하지 아니하고 감추어 놓을 테니까 너희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우리를 살려다오. 우리 아버지, 내 형제들을 살려다오.’
  이 때 정탐꾼들이 라합과 약속을 합니다. ‘우리가 이 성을 점령할 때 네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살려 주겠다.’
  정탐꾼을 떠나 보낸 후 라합은 자신의 집에 가족들을 불러 모읍니다. 부모도 형제 자매도 다 불러 모으고, 한 사람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믿음없는 가족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며, 라합을 꾸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출입문을 봉쇄하고 끝까지 이스라엘 정탐꾼과 한 약속을 믿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대로 정한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게 되는데, 라합의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라합의 믿음대로 다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 인내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견제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도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인내를 체험하게 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될 것이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 같이 마음에 담아서 감사하면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담아서 감사하면서 기다려야 돼요.
  히브리서 11장 1절로 2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것이 실상이고 그것이 증거인 것입니다. 실상과 증거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게 하면 결정적인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없는데 있다고 합니다. 안되는데 된다고 합니다. 지는데 이긴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확실하게 마음속에 부둥켜안고 인내하면 “너희 가슴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4. 창조적 선언을 하라

  그러고는 우리가 기도하고 믿음이 생겼으면 입술의 말로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 하지 말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업이 잘된다. 내 육신의 병은 고침을 받았다. 하나님의 축복의 때가 다가온다.” 입술의 말을 믿음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일이 다 실패가 되었다. 끝났다.” 그렇게 되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일이 되어간다. 성공이 다가온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믿은 줄로 마음에 믿으라 하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입으로 시인해야 믿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믿음의 선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수기 14장 28절)
  이제 말도 안하면 하나님 귀에 들리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믿음의 고백을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꿈을 품고 믿음을 나아가면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십자가를 의지하며, 소망과 꿈을 품고, 믿음으로 전진하며, 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고백을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유정임 집사(송파교회) -

“성경일독과 전도로 제 인생이 변화됐죠”

류마티스 관절염과 습관성 유산 모두 치유 받아
두 아이 엄마로 행복한 신앙생활하며 복음전파 주력

 나는 24년 전 송파교회 구역장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오게 됐다. 당시 나는 결혼해도 아이가 없어 괴로운 상황이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전신에 앓고 있었기에 몸이 약했다. 병원에서는 류마티스는 면역계 질환이라서 완치가 어렵다고 했고 온몸의 뼈 마디마디 마다 상상할 수 없는 통증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임신을 해도 자꾸 유산이 됐다. 세 번이나 유산을 하고 나니 병원에서는 습관성 유산이라며 앞으로도 아기를 갖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어려움에 있을 때 여의도순복음송파교회 구역장이 전도하러 집을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주실꺼라는 구역장의 말을 듣고 믿음을 갖고 교회에 나오게 됐다. 매주 은혜가 넘쳐났고 희망이 생겼다. 아이를 갖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1년 정도 교회에 다니다 성경일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소리내서 읽겠습니다. 다 읽으면 저에게도 건강한 아기를 선물로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말씀을 읽다보니 꿈꾸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응답을 주신다는 바라봄의 법칙을 깨닫게 됐다.

 1년이 지나 성경을 다 읽었을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서 침례식이 있어 침례를 받았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산부인과에 가보니 임신이었다. 할렐루야! 성경 말씀 완독을 마치던 그 달에 하나님이 아기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나는 기도한대로 예쁘고 건강한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바로 아이를 또 주셔서 아들을 낳았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받은 말씀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줬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 전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넘쳐났다. 아이들은 주 안에 무럭무럭 잘 자랐고 딸은 대학에서 4년간 장학금을 받았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해 지난해 전도 2등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에 부침개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보내주셨다. 그 분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분은 교회에 나오기로 했지만 한 달 동안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영혼 구원의 마음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보내주세요”라고 계속 기도하며 더 많은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그 분이 교회에 나오면서 열심있는 신앙인이 되었고 고구마 뿌리처럼 그 분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돼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다.

 어느날 밑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에 그물을 내렸더니 큰 물고기들이 가득 올라와 포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꿈을 꿨다. 전도에 더 뜨거운 열정이 생겼고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150명 이상을 전도했다. 교회에 정착해 꾸준히 나오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고 매주 8명 정도가 새로 교회에 나온다. 2월 마지막 주에는 51명의 새신자가 교회에 왔다. 입술로 선포한 기도가 이렇게 큰 능력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조용기 목사님 말씀처럼 바라보고 믿고 꿈꾸고 선포하니 그대로 이뤄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이루신 것이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날마다 크고 작은 은혜와 기적을 체험한다. 완치가 어렵다던 류마티스 관절염도 깨끗하게 고침받았고, 20년 넘게 기도해 온 부모님의 구원문제도 응답됐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에 꼭 응답해주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을 기대하면 큰 감동이 된다.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길에 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 날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오늘도 주안에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사사기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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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기 20장
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3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8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 고
 
9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뽑아서 그들을 치되
 
10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1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 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15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 백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명이니 다 전사라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 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 더라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 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29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 이스라엘 자손이 제 삼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31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편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33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별였고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일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 을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36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간 베냐민 사람 앞을 피 하매
 
37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38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상약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39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삼십명 가량을
쳐 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40 연기 구름이 기둥 같이 성읍 가운데서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41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42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서 진멸하니라
 
43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44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일만 팔천이니 다 용사더라
 
45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따라 기돔에이르러 또 이천명을 죽였으니
 
46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 다 용사더라
 
47 베냐민 육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
 
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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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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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기 19장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
 
3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 니라
 
4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를 머물리매 그가 삼일을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 나흘 만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어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에 그대의 길을 행하라
 
6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하라
 
7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첩장인의 간청으로 다시 유숙하더니
 
8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돕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 그 사람이 첩과 하인으로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해가 저물어가니 청컨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찌기 그대의
길을 행하여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 가서 유숙하사이다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 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행하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 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20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 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대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 하리라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 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그 주인의 우거한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 두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 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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