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말하는 혀를 조심하라
'말'이란 사람이 '음성 기호나 문자 기호로 나타내는 사고의 표현 수단, 또는 그 체계'를 의미한다. 즉 '사람이 자신의 사고를 객관화하는 수단'이 곧 '말'이다. 따라서 이런 '말'은 '사람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일정한 소리의 체계에 따라 발음 기관을 통해 내는 소리'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말'로 다른 대상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다. 여기서 관계란 '둘 또는 여러 대상이 서로 연결되어 얽히는 것'으로 서로의 사이에 '말'이 없으면 관계를 맺는 일이 쉽지 않아 '말'은 관계를 맺는 일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사람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두 가지 권면이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권면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밝혔다.
사도 바울의 두번째 권면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한다. 이는 곧 사람이 입 밖으로 내는 더러운 말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선한 말은 인치심을 받은 자가 구원의 날까지 마땅히 해야 할 말이라는 것이다.
왜 사도 바울은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하면서,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선한 말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권면했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그가 오늘의 본문말씀에 앞서 기록된 말씀을 살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했다.
그렇다. '듣고'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는 모두 '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누군가 '말'을 했기에 그 말을 듣게 되고, 가르침도 선생이 하는 '말'을 많이 들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군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한 권면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는 말로 선생되는 것을 경계하셨다(마23:8). 또한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도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하여 선생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를 밝히며 경계했다.
우리말의 선생(先生)을 중국어로는 '老师(라오스) 또는 师傅(스푸)'라고 한다. 모두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무릇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선생이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야고보가 선생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참으로 '사람이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야고보는 사람의 몸에서 '말'을 하는 지체인 '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말했다. 그러면서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라고 하여 사람이 '혀'를 얼마나 조심해야 할 것인지도 말했다(약3:1~11). 이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하든지 그 '말'은 반듯이 입의 '혀'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무릇 말하는 혀를 조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듣는 귀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은 대부분 어떤 것을 귀로 듣고, 그 들은 것을 머리로 사고하여 혀로 그렇게 사고한 것을 '말'로 나타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본문말씀에서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면서 더불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이는 곧 마귀의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인류의 범죄는 태초의 첫 사람 하와가 뱀을 통해 마귀가 하는 거짓말에 귀를 기우리면서 시작되었다. 뱀은 아주 교활하게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회의하게 하는 거짓말을 했다. 따라서 하와는 뱀의 거짓말을 조심하여 귀담아 듣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하와는 뱀의 거짓말에 귀를 기우렸다. 그로 인해 하와의 내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회의가 일어났다. 그러나 하와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한 순간에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고 불순종 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자기만 범한 것이 아니다. 자기 남편 아담까지 같이 범죄하게 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해 특별하게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창3:1~6).
사도 베드로는 그가 쓴 편지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권면했다(벧전5:8~9). 그만큼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그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미혹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랬기에 그가 감히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세 번이나 도전하기까지 했다. 이로서 마귀의 계략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고 끈질긴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며,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 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 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는 권고도 빠지지 않았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고하는 것은 그의 간곡한 마음을 담은 고백이다. 성도로 하 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합당한 생활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내용이 오늘의 본문말씀이다.
그렇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분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분냄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서로의 관계를 깨뜨려 한 몸된 지체의 장애를 가져오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어떤 분노가 일어나면 그것을 해가 지기까지 마음에 품고 잠자리에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해지기 전에 화해하여 풀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이셨다(마5:23~24).
도둑질은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을 좋아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욕심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요, 욕심이 장성하여 죄가 되기 때문이다(약1:15). 그러므로 욕심을 내어 남의 것을 탐해 도둑질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가 가진 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 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가 한 몸된 공동체를 실현했다(행2:44~46). 이런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삶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런 삶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렇다. 이런 삶이 비로소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용서받음과 같이' 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내게 본문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너희 만큼은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다'라고 선언하신 말씀대로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다(마5:13~14). 새 사람으로 거듭난 삶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다. 오늘도 이런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로 엎드려 경배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