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오래된 음식 골목 열전
한 가지 음식으로 유명해진
오래된 식당 골목이나 거리
오래된 이야기를 전한다
한 가지 음식으로 유명해진 식당 골목이나 거리가 있다. 대부분 그런 곳들은 오래됐다.
사람마다 다 다른 입맛을 뛰어넘어 오랜 세월 그 맛을 내고 있는 오래된 음식 골목에는
음식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도 오래됐다.
공릉동 국수거리와 남대문시장 칼국수 골목
음식 소문은 낼수록 좋다. 개인 취향이든, 어느 집이 잘한다는 정보든 말이다. 국수를 좋아하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이 공릉동 한 국숫집이었다. 멸치 육수의 향이 진한 국물 맛도
좋았고 잘 삶긴 면도 술술 넘어갔다. 그곳이 지금의 ‘공릉동 국수거리’였다.
1980년대에 그 거리에서 밤에 국수를 팔던 식당이 있었다. 국수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국수를 파는 식당이 하나둘 생겼다. 주변 벽돌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주요 단골이었다. 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국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간단하고 빨리 먹을 수 있으니,
택시 기사도 많이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게 지금의 ‘공릉동 국수거리’다.
처음에는 멸치로 육수를 낸 멸치국수가 인기였다. 짜장면과 짬뽕의 조합처럼 멸치국수와
비빔국수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비빔국수를 찾는 사람도 많았다.
어느 날 공릉동 인근에서 산행을 마쳤다. 택시 기사께 공릉동 국수거리로 가달라고 하니 대뜸,
“어느 집으로 모실까요?”라고 되묻는다. 인기 많은 집 상호를 대니까 택시 기사가 그 집보다
더 오래된 집이 있다며 국수거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날은 기사가 추천한 집에서 국수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국수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칼국수다. 남대문시장 5번 출입구 가까이에 칼국수 골목이 있다.
40년 안팎의 세월을 이어왔다.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나 메뉴를 갖추었던 건 아니다.
지금 같은 골목이 만들어지고 호황을 누리게 된 건 20여 년 전이다. 식사 시간 때는 두세 시간
정도 그 골목에 사람이 가득하다.
칼국수·냉면·잔치국수·찰밥·보리밥 등을 파는데, 여러 음식을 골고루 조합해서 파는 세트 메뉴가 인기다. 보리밥이나 찰밥을 시키면 칼국수 또는 냉면을 맛볼 수 있다. 보리밥 칼국수 냉면 세트도 있다.
그런 세트 메뉴가 시작된 지는 10년 정도 됐다. 세트 메뉴가 생기기 전에도 그 골목에서는 한 가지
음식을 시키면 맛보기로 다른 음식을 조금씩 내놓았다.
종로구 돈의동 해물칼국수와 멸치육수 칼국수 골목과 아귀찜·해물찜 거리
종로구 낙원상가 동쪽 돈의동 음식 골목에 칼국수의 양대 산맥인 해물칼국수를 파는 식당과 멸치육수
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50여m 거리를 두고 오랜 세월 함께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익선동 한옥 골목과 가깝기도 하다.
해물칼국수를 파는 집은 1965년에 문을 열었다. 홍합·바지락·생새우로 국물을 낸단다.
바지락과 홍합 껍데기를 건져놓을 작은 바가지가 식탁에 함께 오른다.
멸치 육수 칼국수를 파는 집은 1988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밀어서
칼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칼국수의 양대 산맥이 있는 골목에서 서쪽으로 약 150m 정도 거리에 낙원상가가 있다. 낙원상가
주변에 있는 아귀찜과 해물찜 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음식 거리다. 이른바 ‘낙원동 아귀찜 거리’다.
낙원동 아귀찜 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40년 세월이 훌쩍 지난다. 그동안 그 거리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시류에 따라 1~2년 사이에 열 집 넘게 문을 닫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터줏대감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집들과 새로 생긴 집들 때문에 낙원동 아귀찜
거리는 다시 살아나곤 했다.
낙원동 아귀찜 거리의 초창기 멤버 중 한 집에 들러 옛이야기를 들었다. 경남 마산의 아귀찜을 본보기로
삼았지만 그대로 만들면 언제나 2인자가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아귀 살이 꾸덕꾸덕해지지도,
물러지지도 않으면서 좋은 식감을 내도록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다. 그 결과가 맛의 비결 중 하나다.
끓이고 얼음물에 담금질하는 횟수와 시간 조절이 비결 중 하나라고 귀띔한다.
세월이 흘러 갖은 해물이 들어간 해물찜도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낙원동 아귀찜 거리가 아니라
이제는 낙원동 아귀찜과 해물찜 거리라고 해야 마땅하겠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과 응암동 ‘감자국’ 거리
응암동 ‘감자국’ 거리의 역사는 30년을 넘어 40년으로 향하고 있다. 전성기에는 15~16집이 호황을
누렸는데, 지금은 네 집밖에 남지 않았다. 그중 두 집에 ‘토박이 음식점 지정증’이라는 게 붙어 있다.
은평구에서 30년 이상 영업 중인 음식점으로, 앞으로 백년가게가 될 수 있도록 토박이 음식점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2018년 은평구청에서 지정한 것이다.
1980년대에 응암동 대림시장 주변 한 식당에 새로운 요리가 등장했다. 돼지 뼈를 우린 국물에 감자와
우거지를 넣고 끓인 ‘감자국’이 그것이다(식당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콩나물·깻잎·쑥갓·배추 등을 넣는다).
‘감자탕’이 아니라 처음부터 ‘감자국’이었다. 한 식당 주인의 말은, 탕은 좀 있어 보이고 비싸 보이기
때문에 서민들이 마음 놓고 드나들며 부담 없이 즐겁게 먹을 수 있도록 ‘감자국’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다. 그 거리에서 ‘감자국’이 인기였다. 다른 음식을 팔던 식당도 ‘감자국’을 팔기 시작했고,
아예 업종을 변경해서 식당을 차린 곳도 있었다. 한창때는 지금 ‘감자국’ 거리 길 건너편에도
‘감자국집’이 있었다.
호황을 누리던 이 거리 ‘감자국집’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는 감자탕 체인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기 때문이란다. 그 거리에 남아 있는 네 집은 오늘도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그동안 주인들은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재료도 바꿔보고 조리기구도 바꿔봤다. 그 시행착오의
결과가 지금 ‘감자국’의 맛이다.
술안주이자 해장국이 된 건 감자국만이 아니다. 용산구 한강로1가에 이른바 ‘삼각지 대구탕 골목’이 있다. 40년 전 그 골목에 대구탕집이 처음 생겼다. 대구탕의 인기가 치솟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탕을 파는 식당이 늘어나면서 대구탕 골목이 됐다.
대구탕 골목의 단골은 인근에 있던 육군본부와 국방부 군인들이었다. 사병, 장교 할 것 없이
부대를 드나들 때마다 식당을 찾았던 군인들 덕에 소문이 퍼졌다.
뻘건 국물로 끓이는 대구탕과 함께 맑은 대구탕도 인기다. 어떤 식당에서는 맑은 대구탕을 항아리에
담아낸다. 기호에 따라 식초를 넣어 먹는데, 식초의 자극적이고 신맛은 나지 않고 국물이 더 깔끔해지는
느낌이다. 맑은 대구탕 한 항아리를 다 비우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무슨 보약을
먹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