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예화/우산을 준비하고 비오기를 준비하자

한 작은 농촌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모든 농작물은 메말라 가고 가축들이 죽어가고,

 

모든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어느날 오후, 마을 주민들은 비를오게 하도록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다. 그들은 계속 모여 기도했다.

 

마침 그때 하늘이 번쩍이고 침침한 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속 기도했다.

그들도 모르게 바람이 거세어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천둥이 치고 대문이 흔들거렸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서로들 껴안고 춤을 추고 기쁨의 환성을 올렸다.

 

갑자기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8살쯤 먹은 한 소녀가 온통 함박 웃음을 짓고 우산을 쓰고 비를 바라다 보는 모습을 돌아 본 것이다.

 

모든 주민들이 비오기를 기도했으나 소녀처럼 비올 것을 믿고 우산을 준비하는 신앙이 부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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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희 학생(관악대교구)

- 뇌출혈 죽음의 위기, 절대 긍정과 감사로 승리

이영훈 목사 기도 받고 기적 일어나  
빠른 속도로 건강 회복, 의료진 모두 놀라


 나는 다음 달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등학교 졸업은 평범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은혜이자 기적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2014년 12월 2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지체됐기에 수술이 불가능했다. 가족들은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간곡히 요청했고 나는 6시간 이상 대수술을 받았다. 가족들은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수술을 마친 후 의사는 깨어날 가능성이 없고 일어나도 일상생활은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엄마는 중환자실 앞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기도에 매달렸다.

 쓰러진지 13일째 되던 날 이영훈 목사님이 소식을 듣고 찾아 오셨다.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는데 목사님이 기도해주시자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눈을 뜬 것이다. 두 번째 오셨을 때는 목사님 말씀에 눈물을 흘렸다. 목사님은 내가 침을 흘리자 닦아주시며 기도해주셨다. 소리가 들리면 ‘아멘’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눈을 깜빡이며 표현을 했다. 쓰러진지 27일 되던 날, 목사님은 세 번째로 찾아오셔서 기도해주셨다. 말을 못할 때였지만 ‘엄마’라고 처음으로 말을 하게 됐다.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갈 때 꿈 속에 예수님이 환한 빛으로 나에게 오셨다. 그리고 내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꼬옥 안아주셨다.

 빠른 속도로 회복한 나는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실로 옮겼고 재활전문병원으로 옮겨져 재활에 힘썼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목사님은 재활병원까지 와서 기도해주셨다. 바쁘신 일정에도 수 차례 찾아와주신 목사님께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 때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다. 의료진들도 처음에 가망이 없다고 한 말과는 달리 회복이 빠르다고 다들 놀라워했다.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기도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5월 퇴원을 하고 2016년 3월부터 복학을 해서 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런데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재활 과정을 오랜기간 해야 했지만 바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친구들은 3학년이 됐지만 나는 2학년으로 다니게 돼 친한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몸 한쪽이 마비돼 움직여지지 않고 걷는 것도 불편하다보니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스스로 위축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수록 교회를 더욱 열심히 다니고 설교 말씀에도 귀기울였다.

 나는 유치부 때부터 우리 교회에 다녔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아프고 나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교회에 올 때 마다 이영훈 목사님은 설교를 통해 절대 긍정 절대 감사를 강조하셨다. 나는 힘을 내 학교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퇴원하고 1년 후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내가 의식없이 누워있을 때 와서 기도해주신 목사님께 내가 직접 뵈러가서 기도를 받으러 가니 꿈만 같았다. 목사님은 내가 갈 때마다 목사님의 저서를 여러 권 주시며 격려해주셨다. 나는 졸업하면 아빠가 계신 태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려고 한다. 국제대학교에서 미술치료상담사 공부를 해서 아픈 사람들을 상담을 통해 치유해주고 싶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하는 내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희망을 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다시 꿈을 꾸게 해주신 이영훈 목사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조용기목사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사랑 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닌데 길거리에 생낯선 사람에게 가서 구하면 들어주겠습니까? 아버지라는 관계가 되어 있어 아버지가 자식의 요구에 응해주는 것입니다. A.W 토저 박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하나님 일에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기도를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도의 힘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기도가 의무로 생각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이라는 것을 알면,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줄 것인데 기도를 재껴놓고 다른 것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2천 명의 고아들을 돌보았던 조지 뮬러는,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면 위대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 마음에 꿈이 생기고 기도 시간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반드시 응답 받을 것을 믿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더 좋은 방법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기도는 황금열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열쇠가 있어야 집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금고문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열쇠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E.M. 바운즈는 “하나님의 거대한 창고를 여는 열쇠가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라는 열쇠를 주셨으니 그 열쇠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1.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지킴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예수님 말씀을 우리 마음, 내 마음 속에 가지면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그것과 꼭 같이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런 깊은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죄 용서함을 주시고, 거룩함을 주시고, 병 고침을 주시고, 물질적인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생명을 주시고, 천국을 주시는 오중복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건 예수님 몸속에 가지고 계신 것인데 우리가 예수님의 속에 들어가면 우리 밥상에 오중복음의 밥그릇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고린도전서 2장 9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은혜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을 받아서 가슴에 모시면 그 말씀이 굉장한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2.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를 따라 나와 홍해를 건너서 수르 광야에 들어옵니다. 나흘 길을 물없이 고난을 당했는데 다행히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물을 먹으려 하니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알려주신 것이 나뭇가지였고,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니까 물이 달아졌습니다. 그 나뭇가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은 든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반대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니까 하나님이 노하셔서 뱀을 보내 뱀이 광야에서 백성들을 무니 뱀에 물린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들이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고함을 치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뱀을 잡아서 막대기에 매달으라고 합니다. 그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고침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뱀을 잡아서 놋뱀을 만들어가지고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쳐다보고 믿으면 뱀을 통해서 놓여남을 받는다고 했는데, 안 믿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거역하고 욕만 했습니다. 그러나 뱀독에 물려서 죽어가던 사람도 회개하고 쳐다보면 독이 사라지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일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마귀의 독에 들린 두 사람이 양쪽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오른쪽 달린 강도와 왼쪽에 매달린 강도 죄인인데, 이 사람들이 다 마귀의 독이 올라 온갖 죄를 다 짖다가 십자가에 예수님 못 박힐 때 함께 좌우편에 못 박혔는데, 그 독이 오른 사람이 구원 받을 수가 있나요? 구원받을 수가 없는데, 그 한 사람이 주님보고 “주여, 주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예수님이 그를 용서하고 구원을 주었던 것입니다. “네가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여 아주 버림받은 인생일지라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리고 도움을 구하면 순식간에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때는 육신의 장막 집에 들어있지 않습니까? 육신의 장막 집에 사는데 나이가 먹어서 혹은 사고가 나서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에 들어가서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이 상당히 괴로워 보이지만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가 있을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에 육신의 장막 집이 천막처럼 무너져도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버림받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방해물은 의심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의심을 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다 받아 누릴 수가 있는데 의심이 자꾸 생기는데 어찌해야 될 것입니까? ‘의심’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려 재어본다’는 말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룰 것이냐? 안 이루어질 것이냐?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이렇게 인간의 이성으로 재보는 것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 일이 될 것이냐? 가능한 것인가?’하고 이성으로 헤아리고 봅니다. 그러고 나서는 ‘절대 안 되. 못 해’라고 합니다. 그것이 의심인 것입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사물을 볼 때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아야 합니다. 의심으로 재보면 결국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생각을 가지고 이리 저리 따지면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의심이 들어올 때, 의심을 물리치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입술로 고백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써 의심을 제어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할 때 그저 하나님께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난 다음에 조용히 앉아서 내 귀에 들리도록 고백합니다. “용기야, 하나님이 너와 같이 계신다. 알지?” 내가 나보고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에 “용기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 찢기고 피 흘려서 너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너를 귀하게 여기신다. 알지? 용기야, 낙심하지 말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의심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말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보고 말을 해주고, 또 자기 이웃을 보고 말해주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축복해도 기적이 일어나는데, 다른 사람 위해서도 축복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불어 다른 사람에게도 격려하는 말, 축복의 말을 해 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실제로 큰 축복이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과 싸우지 못하고 의심에 짓밟혀서 고통당하는 이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 의심을 이기는 위대한 도구인 것입니다. 


 3.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합니다.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는 뜻은 원하는 것을 꿈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구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에 크고 적은 것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고 난 다음에 의심이 들어올 때 와서 그걸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했으니 하나님이 들으셨고 이루어진다. 절대로 구한 것이 이루어진다. 의심은 물러가라.” 그렇게 말로써 투쟁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하면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하되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동료들, 제자들과 같이 배를 타고 밤바다를 건너는데,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이 놀라서 유령이라고 고함을 치니까 예수님께서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이시거든 나를 물 위로 오라하소서”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저벅저벅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광풍이 불어와서 물보라가 얼굴을 때리자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 물보라를 바라보고 의심이 들어와서 물에 빠졌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요란한 소리가 나오는 것을 바라보면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해주신 것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목표만 바라보도록 훈련 받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도록 계속 훈련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올림픽 선수들이 그 공을 칠때 공만 바라봐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면 그것이 이루어진 것만 바라봐야 합니다. 방해물을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우리가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우리 생애 속에 창조적인 힘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15살에 중국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는 늘 선교사가 된 자기 모습을 꿈꾸고 바라보았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중국 음식을 먹고, 포크 대신에 젓가락을 사용했습니다. 잠잘 때, 침대가 아니라 마룻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잤습니다. 그가 몸이 약해져서 수개월 동안 침대에 누운 채 지낼 때는 벽에 큰 중국 지도를 걸어놓고 그 지도를 바라보면서 자고 깼습니다. 이렇게 꿈을 바라보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일으켜 중국선교사역을 허드슨 테일러만큼 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놀랍게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테일러는 그 몸속에 중국이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중국이 테일러 몸속에 들어 있는 것은 중국을 늘 꿈꾸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창에서 겨울 올림픽을 하는데 이것을 못하도록 막는 세력이 있다해도 우리의 일천만 성도가 올림픽을 전부 마음속에 담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방해를 못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꾼다. 환상을 가진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본다. 말 한다’는 모든 것은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아직 달성하지 못했던 것을 속에 품고 입으로 시인하므로 성령이 우리 속에 꿈과 환상과 믿음을 통해서 역사해서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선교사와 후보생들이 허드슨 테일러의 기도를 통해서 중국선교에 뛰어들게 하셨습니다. 시편 37편 4절은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바라보고 소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마음에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 하나님은 상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마음속에 그리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을 마음에 그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꿈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꿈을 종이에 적으십시오. 자기계발과 성공학의 대가로 유명한 지그 지글러는 “목표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뿌려지지 않은 씨앗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목표를 종이에 적고 바라보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도 바라봄의 법칙을 이용해서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들어가며 나오며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들어가며 나가며 “저건 내 것이다.”라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의  땅을 줄 때도 나와서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의 종들이 목회를 할 때도 교회를 시작할 때, 오백 명이면 오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교회를 꿈꾸고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다섯 명 앉혀놓고도 오천 명을 바라본다면 오천 명을 바라보고 설교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없는 사람 숫자세기를 잘합니다. 세 명 앉혀놓고 삼백 명 바라보고 하나, 둘, 셋, 삼백. 그런데 하나님이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렇게 큰 꿈을 가지고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고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소원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소원을 하면 소원이 꿈입니다. 소원과 꿈은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그림을 그려서 벽에 붙여놓고 바라보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몸에 병이 나서 잘 낫지 않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자기 책상 앞에 건강한 모습을 사진 찍어 놓고 그려놓고 그 앞에 “참 건강하고 보기 좋다‘라고 적어놓고 긍정의 입술로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를 기록함으로써 분명한 목표를 가지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분명한 꿈과 소원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무엇이든지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한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가면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셔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인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 퀴즈 25문제

 

1. 여리고를 정탐하러 간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들은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산에서 몇 일을 숨어 있었는가?(수2;16)

  ①3일 ②2일 ③하루 ④7일

2.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여호와의 언약궤의 뒤를 따르되

    그 거리는 얼마를 유지해야 하는가?(수3;4)

  ①3000규빗 ②2000규빗 ③1500규빗 ④1000규빗

3. 히스기야 왕이 기도함으로 하루 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몇 명이 죽임을 당했는가?(사37:36)

  ①273,000명 ②54,000명 ③203,000명 ④185,000명

4.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가 몇 살이었는가?(창12:4)

  ①100세 ②75세 ③99세 ④90세

5. 모세의 형 아론은 모세와 나이 차가 몇 살이었는가?(출7:7)

  ①12살 ②쌍동이 ③3살 ④1살

 

6. 여인이 아들이나 딸을 낳으면 칠 일동안 부정하되 산혈이 깨끗해졌다고 정해진 날은

   남자아이의 경우 33일, 여자 아이의 경우는 몇 일인가?(레12:5)

  ①33일 ②66일 ③24일 ④8일

7. 아브라함은 몇 살에 아들 이삭을 얻었으며, 그 때 사래의 나이는 몇 살이었는가?(창21:5)

  ①100세/75세 ②99세/89세 ③100세/85세 ④100세/90세

8.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은 나이와, 에서와 야곱 쌍둥이 아들을 낳은 나이는

   각각 몇 살이었는가?(창25장)

  ①30세, 40세 ②25세, 40세 ③30세, 60세 ④40세, 60세

9.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을 때 정한 값으로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레27장)

  ①20세-60세의 남자 : 50세겔 ②5세-20세의 남자 : 20세겔

 ③1개월-5세의 남자 : 10세겔 ④60세 이상의 남자 : 15세겔

10. 하나님의 명에 의해 애굽을 나온 후 2년 후에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사람의 수는

   몇 명인가?(민1:46)

 ①603,550명 ②630,550명 ③603,505명 ④605,350명

 

11. 모세와 아론이 레위인을 각 가족대로 계수하니 모두 몇 명이었는가?(민3:39)

  ①2,200명 ②22,000명 ③6,200명 ④7,500명

12. 레위의 자손들이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수 있는 나이는 다음 중 어느 것인가?(민4:3)

  ①20세 이상 ②20-50세 ③20-60세 ④30-50세

13. 싯딤에서 음행함으로 인한 염병의 재앙이 그친 후 두 번째로 이스라엘 민족을

  계수하였을 때 계수함을 입은 자의 수는 얼마인가?(민26:51)

  ①630,550명 ②601,730 명 ③610,730명 ④603,550명

14. 레위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받게 되는 성읍은 도피성 여섯 성읍을 포함하여

  모두 몇 개의 성읍인가?(민35:7)

  ①7 성읍 ②48 성읍 ③60 성읍 ④42 성읍

15.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모두 몇 바퀴를 돌았는가?(수23장)

  ①3바퀴 ②42바퀴 ③13바퀴 ④7바퀴

 

16. 전쟁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을 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옆구리의 가시로 남겨 둔 열국 가운데 불레셋 방백은 모두 몇 군데인가?(삿3:3)

  ①3군데 ②10군데 ③7군데 ④5군데

17. 기드온이 미디안 군을 무찌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았을 때 처음에 모여든 수가

  모두 3만 2천명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수가 많다고 지적하시므로 기드온이 "두려워서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하자 그 중 몇 명이 돌아갔는가?(삿7:3)

  ①12,000명 ②300명 ③10,000명 ④22,000명

18. 엘리는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40년에 법궤를 불레셋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 때 엘리의 나이는 몇 살이었는가?(삼상4:15)

  ①76살 ②102살 ③110살 ④98살

19.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다윗의 용사는 모두 몇 명인가?(삼하23:39)

 ①37명 ②39명 ③36명 ④38명

20. 다윗은 몇 살에 세상을 떠났는가?(왕상2:11)

  ①120세 ②110세 ③80세 ④70세

 

21.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기간과 자신의 궁전을 건축한 기간이 맞는 것은

    어느 것인가?(왕상 6:38, 7:1)

  ①3 - 7 ②7 - 7 ③7 - 13 ④14 - 7

22. 솔로몬의 영광은 넘치고 넘쳐 금 방패 200개와 작은 금 방패 300개를 만들었다.

  이중 큰 금 방패 하나에 든 정금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가?(왕상10:16)

  ①이백세겔 ②삼백세겔 ③육백세겔 ④오백세겔

23. 예후가 바아사를 향해 여호와께서 네 집을 쓸어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라는 예언을

    하였는데 이 예언대로 왕을 모반하고 바아사의 온 집을 죽인 시므리는 얼마간 왕노릇

    하였는가?(왕상16:15)

 ①102일간 ②7일간 ③3개월간 ④2년간

24. 이스라엘왕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찾아갔을 때 아람을 이기게 하기 위해 엘리사는 살을

     들어 땅을 치게 하였다. 이 때 요아스는 땅을 몇 번 쳤는가?(왕하13:18)

  ①세 번 ②네 번 ③여섯 번 ④일곱 번

25.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아들이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동안 통치하였다.

    히스기야는 병이 나은 후 15년을 더 살았고 므낫세는 12살에 왕이 되었다.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몇 살에 낳았는가? (왕하18장, 21장)

 ①42세 ②39세 ③54세 ④45세

전도예화/기도를 위한 제안

여기 당신의 기도를 돕기 위한 몇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1.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말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06:1)

2.고백하십시오. 당신의 조그만 잘못이 당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오"(요일1:9)

3.말하십시오, 하나님께 당신과 형제들의 필요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6,19)

4.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는데 도우시도록.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


 


추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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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순 권사(서부성전)

- 고난 속에 하나님께 감사하면 기적 일어나

대장, 신장, 담낭 세 군데 암 초기에 발견
항암 치료 없이 건강한 삶 되찾아


 올해 초 운동을 다니는 건물에 있는 병원에 검사 기계가 새로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태어나서 59년 동안 단 한번도 장에 대한 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냥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검사를 받았는데 대장에서 4㎝ 크기의 혹이 발견됐다. 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대학병원으로 갔다. 종합적으로 다시 검진을 하니 대장, 신장, 담낭 총 세 군데에서 암이 발견됐다. 수술을 하게 됐지만 원래 하던 대로 하나님만 바라봤다. 나는 모태신앙이라서 부모님의 신앙생활과 모습을 보고 또 그동안 살면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기에 수술에 앞서 우선 감사 헌금을 했다. 기도를 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을 해서는 오직 주기도문만 암송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부분에서는 ‘하늘에 계신 명순이 아버지’라고 내 이름을 넣어 외웠다.  

 마음 편히 수술에 임했고 수술 결과도 좋았다. 장기가 자리를 잡고 가스가 나오는데 2∼3일이 소요될 거라 했는데 하루 만에 해결이 됐다. 빨리 회복이 되면서 수술 전과 다름없이 밥맛도 좋고 기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밀 검사를 보니 초기 중에서도 이제 막 암이 나타난 상황이었다. 병원에 잘 가지 않는 내가 이렇게 발견한 것도 신기했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예전에 지인들이 보험 영업을 하면서 인정 때문에 들었던 작은 액수의 보험들이 이미 납부 만기도 한참 지나고 60세가 되면 효력도 없어지기 직전이었는데 그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험을 들 때는 그냥 하나 들어주자는 생각에 보험 내용도 잘 모르고 들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예비하심 같다.  워낙 초기에 발견되어서 수술 후에는 항암 주사나 방사선 치료도 받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주고 상심했던 지인들도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함께 감사하고 다행이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있다.
 나는 기도할 수 있어서 조금도 마음이 약해질 틈이 없었다. 그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만 했다. 수술 후에도 집에서 한 시간 씩 찬송가를 틀어 놓고 혼자 춤을 추며 하나님을 예배 한다.

 모태신앙이지만 결혼 전 아가씨 때는 신앙이 그리 좋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구역에 소속되어 구역식구들과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면서 신앙이 자라났다. 그 전에는 봉사에 대해 잘 몰랐는데 신앙 생활을 하다 보니 30대 후반 무렵 너무나도 봉사가 하고 싶어 기도를 했다. 꿈에서 수화하는 손이 보였다. 학창 시절 잠시 가졌던 꿈이 20년이 지나 생생하게 마음속에 다시 살아났다. 수화를 열심히 배워서 10여 년 넘게 수화 봉사를 하며 예배 통역도 했었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를 낳으면서 정말 많이 기도하게 됐다. 아이가 키가 작고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재능이 무엇인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강서에서 여의도 성전까지 수시로 오고 새벽예배를 드렸다. 1996년부터는 지금 서부성전의 모태가 된 기도처의 열쇠를 갖고 내가 가장 먼저 가서 문을 열고 가장 나중에 나오며 문을 닫아 왔다.

 새벽시간에 기도할게 뭐가 있냐고들 하지만 우리나라와 교회, 주의 종들,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면 아침 8시까지 기도해도 기도할 게 많다. 내 자녀 때문에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더 많이 한다. 나를 새벽예배 드리게 했던 아들은 또래보다 일찍 신앙 좋은 배필을 만나 초등학생, 유치원생 두 아들을 낳고 오손 도손 재미나게 살고 있다. 키는 작아도 단단하게 몸을 다듬고 내성적인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해 사회생활도 잘하고 교회에서는 찬양대 봉사를 한다. 

 얼마 전 나는 서부성전에서 전도팀장으로 임명받았다. 전도 팀장으로서의 사명도 있지만 매일 전도하면서 참 좋은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내가 만난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하나님은 내 편이시니/조용기목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41장 10절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전지전능한 줄 알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골짜기를 내려가면 우물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바쁠때에는 “용기야, 저 우물에 가서 물 좀 길어오너라”라고 시키십니다. 그러면 제 마음속에 ‘이제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물로 내려가는 길에는 짐승들이 숨어있다가 뛰쳐나오거나 새들이 갑자기 날아가거나 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저와 함께 가면 조금도 겁나지 않았습니다.

 새나 짐승이나 그런 것 겁나지 않고 무섭게 생긴 귀신이 나와도 나는 어머니가 귀신을 능히 이긴다고 믿었습니다. 전지전능한 분으로 여겼기에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어머니 같은 연약한 여성과 같이 행한다고 해도 이와 같이 담대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행하시면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야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우리는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생각이 기막힌 일을 이루어 줍니다. 꿈이 상상할 수 없던 일을 갖게 해주고, 믿음은 없는 것을 있게 해주고, 창조적인 선언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금년도 새해에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영적인 세계가 다가올 것을 믿으십시다.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하나님 편에 서있으면 어떤 환경에도 우리는 이기고 마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생각

 성령님은 인격이시므로 생각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 사용하는 생각을 우리가 마음에 품으면 보혜사 성령님과 우리는 함께 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함께 가면 생활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각에 내 생각을 합치면 성령님과 생각을 같이 하므로 그 생각 속에서 기도를 하면 놀라운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나의 생각을 항복시켜서 보혜사 성령이 사용하는 생각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7절에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우리 생각을 받아들이고 성령이 우리 생각을 통해서 축복을 해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100편 3절에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므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항복할 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때,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생각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갖고 하나님 생각을 쫓아내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불러서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한 주일 동안을 돌다가 고함을 치면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성 안에 있는 원수하고 전쟁을 해야합니다. 줄을 서서 성을 빙글빙글 돌므로 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생각과 사람 생각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 그들은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께 항복시켜서 여리고성을 한 주일 동안 돌고 마지막은 여섯 바퀴 돌았고 일곱 바퀴 때 고함을 치니까 성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님께서 초청을 받아갔는데,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어떻게 합니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혼인잔치에 가서도 포도주를 안 마신다고 하는데 당시 중동 사람들은 포도주를 물마시듯이 마셨습니다. 포도주는 마시는 음료수니까 취하지 말고 마시라는 것입니다. 음식 먹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조금씩 먹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절제하고 정제하면 나쁠 수가 없습니다. 혼인 집에온 하객들이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니 큰일 났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니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있습니까?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라고 답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명하신대로 항아리에 물을 채워서 그 물을 갖다 드리니 아주 맛있는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군중들에게 떼어 주라고 하셨을 때도 제자들의 생각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각을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생각을 따라서 행할 때,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열 두 바구니가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꿈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꿈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요셉은 성령님이 주시는 꿈을 가슴에 품고 가는 곳마다 자랑을 했습니다. 형들이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자랑을 했습니다. 그는 꿈에 곡식단이 자기를 향해서 절을 하는 것,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를 세워서 경배하는 꿈을 자랑했습니다. 저는 최근에 80평생에 안 꾸어본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조그마한 촌락에 갔는데 그 산 위에 우상이 말로 다할 수 없이 큽니다. 엄청나게 큰 우상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그 우상을 아래에서 쳐다보면서 누가 저런 것을 세웠을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한 사람이 내려와서 지렛대로 돌을 굴리는데 엄청나게 큰 돌이 나를 향해서 막 굴러오는 것입니다. 내가 그걸 피하니까 그 우상이 박살이 났습니다. 그 옆에 수영장이 있어서 아주 물이 좋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상이 깨어진 것을 보고 수영장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니까 너무 좋은겁니다. 우리 성도들 보고도 들어와서 수영하라고 하니 장로님, 권사님, 교회학교 학생들까지 수영을 기분좋게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소원은 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꿈을 주어서 그것을 행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5절에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마음속에 꾸는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19절에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에 꿈을 꿈꾸시면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준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꿈인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믿음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믿음을 우리가 써야 합니다.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믿음은 성령님이 주시는 말씀에 항복할때 보혜사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면 하나님 말씀을 잘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이 마음에 감동으로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꿈은 실상이 없는 껍데기 그림인 것입니다. 믿음은 알맹이입니다. 껍데기 그림을 보고 하나님 이렇게 해주십시오 하면 믿음이 마음에 생겨서 그 껍데기 그림이 알맹이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적게 믿으면 적게 꿈이 이루어지고 크게 믿으면 크게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은 꿈이에요. 꿈이 될 것 같지 않아도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역사하지, 꿈이 통하지 않으면 역사하지 않습니다. 꿈을 갖고 기도하면 꿈을 소유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 17정 20절)”

 제가 청년 시절에 어느 곳 넓은 들을 바라보고 “이 들판이 정비되고 이 비행장이 들어올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꿈같은 소리한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었을 때, 우연한 일로 그곳을 지나가면서 보니까 비행장이 들어와 있어요.  꿈을 꾸었더니 하나님이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성경책 곳곳에 T.P라는 두 글자가 적어놓았습니다. T.P라는 것은 ‘Tried and Proved’ 즉, ‘실제 해보니까 되더라’입니다. 무디 선생님은 성경 말씀을 눈으로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적용하여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 말씀이 사실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더 큰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은 경험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경험해보면 더 믿음이 커지고 커집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는 우리 모두가 더 큰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점점 더 큰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려고 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천상륙을 못 한다고 했습니다. 인류역사상 바다에서 육지로 공격을 감행하는 상륙작전이 500번 있었는데 오직 노르망디 상륙작전만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인천 앞바다는 불리한 지형조건이 가득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다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500번 중에 한 번이라도 성공했었다면 이 작전도 성공할 것이다.”
그는 절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사용해서 인천상륙을 성공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개인도 국가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개인과 민족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면,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4절로 7절에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운 고비를 겪을 때, 하나님이 건져주어서 믿음을 체험하게 만든 것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면 근심, 염려, 불안, 공포 이것을 이기고 희망의 삶을, 미래적 소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내 편에 늘 계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46편 1절~3절)’

 


황에스더 권사(여의도순복음새평양교회)

생명과 실명의 위기에서 살려주신 나의 하나님

가족과 함께 탈북, 위기 때마다 주님 인도해주셔
권사 직분받고 여선교회장으로 교회 열심히 섬겨


 나는 북한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러다 김일성 사후 북한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중국으로 돈을 벌러 나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중 딸도 중국으로 건너갔는데 그만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딸을 찾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중국에 갔지만 문제가 생겨 한달 넘게 중국에 지체하고 말았다. 이것이 발단이 돼 결국 나는 탈북하게 됐고, 이어 북에 두고 온 또 다른 딸과 9살된 아들을 중국으로 데려오게 됐다.

 중국에서의 삶은 참 험난했다. 다행히 소식이 끊겼던 딸을 찾았고 친척의 도움으로 생활할 수 있었지만 신분을 감추고 살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는 10여 년 동안 적발을 피해 많은 지역을 옮겨다니며 흩어져 살았다. 그러다 A지역에 정착해 가족이 함께 살게 됐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공안에 적발되고 말았다. 나와 아들 그리고 손주 둘은 가까스로 위기를 면했지만 두 딸은 탈북자라는 꼬리가 붙어 결국 강제 북송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남은 가족을 어떻게든 돌보고, 두 딸과 만나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를 악물었고, 2010년 남한에 오게 됐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아파트 청소 일을 시작했다. 그런 중에 탈북자 중심으로 모인다는 여의도순복음새평양교회를 알게 됐고, 전도를 받아 교회를 출석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됐다. 날마다 북송된 딸을 위해 기도하며 살려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어렵게 딸의 소식을 들었다. 북송된 두 딸 중 큰 아이는 상상조차 어려운 수감 생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단다. 시체 사이에 버려졌던 딸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나 감옥에 함께 있던 동생과 마침내 탈북에 성공, 먼저 남한에 온 우리와 2012년 재회할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가족 재회의 기쁨도 잠시, 나는 그동안 쌓인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육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는지 국립의료원에 6개월 반 입원해 있는 동안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지 못한다. 물조차 다 토하며 제대로 걷지 못했다는 나는 가족의 말에 따르면, 주일이 가까워지면 ‘교회에 데려다 줘’라고 했단다. 그러면 차만 타면 토하는 나를 아들이 자전거에 태워, 그래도 힘들어하면 두 팔로 안아 교회까지 데려다 줬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내가 살 수 있는 길이 오직 예배 뿐이었음을 알았나보다.

 박상식 담임목사님의 헌신적인 돌봄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로 나는 기력을 회복했고, 하나님 앞에 더욱 열심이었다. 지난해에는 탈북자 최초로 권사 직분도 받아 여선교회장직을 더욱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축복도 많이 받았다. 두 딸은 각각 회사원, 세무 회계 일을 하게 됐고, 아들은 명문대 공대에 재학 중이며 기독동아리에서 활동할 정도로 신앙이 뜨겁다.

 그런 나에게 지난해 10월 두 번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앞을 볼 수 없어 병원에 갔더니 뇌에 이상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세종병원에서 MRI를 촬영한 결과 뇌혈관 70%가 막혀 생명과 실명의 위기가 발견돼 당장 수술이 불가피했다. 12시간이 소요되는 대수술이었지만 자녀들은 1시간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수술 전 의사는 내 몸에 약을 투여했다. 그러는 사이 내 옆에서는 의료기계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수술 중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내가 받을 12시간 대수술을 위한 준비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가 “어머니! 어머니! 하늘이 도왔다. 기적이다”는 말을 했다. 알고 보니 뇌수술 전 뇌혈관이 확장되면서 생명의 위험도 실명의 위기도 넘기게 된 것이다. 기적 중 기적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 할렐루야! 나는 분명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살아온 북한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조용기목사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야훼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열왕기상19장1~8절]

 엘리야의 하나님과 바알의 선지자들이 격렬하게 싸웠던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이스라엘을 온통 우상 숭배하는 나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아합왕이 결혼할 때 바알신을 열렬히 섬기는 이세벨을 택해서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바알신을 섬기고 아세라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벌하려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부르셔서 권세를 주시고 “이스라엘에 엘리야가 기도하고 간구함이 없이는 우로를 보지 못할 것이다,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가뭄이 극도로 심해졌고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1. 기도로 하늘에서 불을 내리다

 그런데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왕이시여! 이대로는 당신의 백성들이 다 죽습니다. 바알신의 선지자 450명, 그들을 보좌하는 아세라 신을 섬기는 자가 400명이나 되는데, 야훼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저 혼자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갈멜산에 가서 야훼의 선지자인 나와 우상을 섬기는 저 악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시합을 해서 불로 응답하는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으로 결단을 내리십시다.
 우리나라가 결단을 내리지 않고 이대로 어물어물 하다가는 다 굶어 죽게 됩니다. 그래서 아합왕이 전국에 선포해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갈멜산으로 모이도록 했습니다. 갈멜산이 인산인해가 됐습니다. 거기에 제단 돌을 쌓았는데 바알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사람 수가 많으니 제단을 먼저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는 혼자 나와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열두 돌을 세우고 거기에 도랑을 파고, 물을 도랑에 흐르게 하고, 제단에 장작불을 펴 놓고, 짐승을 잡아서 그 위에 얹어놓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태우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니 사람이 불을 태우는 것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을 정하기 위해서 경쟁이 붙었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야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야훼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야훼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열왕기상 18장 36~38절) 천둥이 치고 번쩍 번갯불이 내려서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태우고 나무를 태웠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을 다 잡고, 아세라 선지자도 다 잡아라” 고 말했고 그래서 전부 잡아 산골짜기에 물이 흐르고 있으니 그곳에 가서 엘리야가 팔을 걷고 칼을 들고서 한 사람씩 줄을 세워 거짓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2. 기도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준비를 하십시오. 우상숭배자들을 다 죽였으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비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엘리야는 믿음의 사람인데,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않는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하는 선지자들 목을 자르고 난 다음에 “당장 이제 비가 온다”고 큰소리를 하는 것은 굉장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우리는 들어봐도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그러나 우상을 멸하고 난 다음에 엘리야같이 나온 사람은 믿음의 귀로써 듣는 것입니다. 믿음의 귀로 빗소리를 듣는데 참 멋있는 일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열왕기상 18장 41~45절)

 무엇이든지 간절하고 뜨겁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간절하고 뜨거움 없이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자기 종을 보고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이 떠오르는지 살펴라.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간절함은 얼굴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을 정도였습니다. 그 부르짖음이야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로 종이 뛰어 와서 자기 주인을 흔들며 “주인님, 주인님. 저 동쪽 하늘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떴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큰 비가 내릴 징조이다. 올라가서 왕에게 마차를 정비해서 시내로 달려 들어가야 된다고 전하거라”고 말합니다. 얼마 안 있어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데 말로 다할 수 없는 광경입니다.

 지난주에 광주에 큰 눈이 내렸습니다. 전라도 광주에 목요일에 부흥회를 하러 내려갔다가 큰 눈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눈이 허리까지 왔어요. 그리고 온 길거리가 다 얼음판이에요. 눈이 녹아가지고서 얼어가지고서 얼음판이에요. 그런데 당시 갈멜산에는 눈 대신 비가 내렸던 것입니다.   


3. 엘리야의 절망과 하나님의 위로

 아합왕에 앞서서 엘리야가 이스라엘로 들어왔는데 큰 시련이 다가오게 됐습니다. 방금까지 그렇게 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목을 치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오던 이스라엘에 비가 오도록 만든 엘리야가 샤워를 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아 오늘 큰일했다’하고 안도하고 있을때 이사벨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왕의 부인에게서 “니가 내가 데려온 사람들을 다 목을 쳐서 죽였다고 하는데 어디 두고 보자. 내 이맘때까지 너의 목을 붙여놓을 것 같으냐?”는 전갈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같이 위대한 인물이 그 말을 듣자 그냥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그가 이세벨의 협박과 공갈에 완전히 주저앉아 버린것입니다. 그는 마음을 놓아버렸습니다. ‘이제는 이방 신들을 다 치웠으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세벨이 “너를 곧 죽이겠다”고 하니깐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열왕기상 19장 2절) 그 말을 듣자 좌절하고 절망하여 갈멜산에서 불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왕의 부인인 이세벨의 협박만 그 몸을 점령했습니다. 이세벨의 말을 듣고 미처 기도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아니하고 그냥 입은 옷 그대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유대 땅 브엘세바에 광야에 접한 경계선까지 뛰어 도망을 치는데, 이번에는 성령의 바람에 올라타고 신바람 나게 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싫어서 절망 가운데서 뛰니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열왕기상 19장 3절) 자기 형편을 하나님 중심으로 보지 않고 육신의 눈으로 보고 공포에 질려서 도망을 치게 된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시편 55편 4~5절) 유다의 브엘세바에 사환을 두고 한 시간을 걸어 유다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밑에서 낙심하여 쓰러져서 잠이 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열왕기상 19장 4절) 엘리야는 “나를 이제는 죽여달라”고 호소합니다.

 새해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지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85%가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습니다. 불타는 것이 번(burn)입니다. 가정주부나 직장인이나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심신이 불타 버리는 것입니다. 번아웃(burnout)이란 ‘연료 소진’이라는 뜻인데, 자동차에 연료가 부족하면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경고등을 무시하고 계속 달리면, 결국 자동차는 멈춰 서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면,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절단 납니다. 우리가 이것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하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지만, 자신이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이세벨의 협박을 받자, 광야로 도망가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완전 기진맥진하고 만 것입니다.

 며칠 전, 중국 중동부 지역에 폭설이 내려 주택 200여 채가 붕괴되고 10명이 숨지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눈 자체는 굉장히 가볍지만 치우지 않고 그대로 계속 두면 그 가벼운 눈이 쌓여서 산사태를 일으키고 집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마음속에 매일매일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그냥 내버려두면 언젠가 터지게 됩니다.

 눈은 아주 가볍지만,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면 계속 쌓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 마음에 매일매일 염려와 근심과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이것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휴식을 가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하는 것만큼 휴식도 중요합니다. 휴식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야를 다시 살려내십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야훼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열왕기상 19장 5~8절)” 사람을 어떻게 살립니까? 먹고 잠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육간의 기운을 차리는 것은 먹고 자야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먹고 자면서 다시 힘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는데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어떻게 하셨습니까? 쉬셨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하나님도 쉬셨습니다. 이렇게 사람도 쉬지 않고 일만하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시편 91편 14~16절)”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살아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 2장 9절)”

 엘리야가 탈진한 첫 번째 원인은 신체적인 피로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지만 육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영과 육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몸이 매우 쇠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갈멜산 전투에서 많은 힘을 쏟았고, 또 비를 내려 달라고 머리가 무릎 사이에 들어가도록 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약 26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아합 앞에서 마차보다 더 빨리 달렸습니다. 이러한 일을 행한 후, 몹시 지쳐 있는 상황에서, 이세벨의 협박을 받아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피곤도 무서운 것입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당시 설교를 통역을 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져서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저는 깨어나자마자 교회로 가서 새벽기도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장로님이 비장한 얼굴로 저를 좀 만나자는 것입니다. 대뜸 장로님은 제가 교만하다고 일침을 주었습니다.  열심히 설교하다가 쓰러진 사람에게 그게 할말입니까. 그런데 그 말 덕분에 정신이 번쩍났습니다. 그분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뭐 잘났다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또다시 교회 새벽기도를 인도하러 나갑니까. 마음속으로는 ‘나만큼 훌륭한 사람 없다. 이렇게 어제 쓰러졌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말씀 전하러 나가니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냐? 휴가도 없이 일했는데...’라고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게 훌륭한 줄 알았는데 아주 교만한 거였습니다. 저는 60년 목회하면서 목사로서 휴가를 한 번도 누린 적이 없습니다. 그걸 자랑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깐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시간을 쉬는 데 쓸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밤낮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결국엔 병에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쉼을 가져야 건강하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밤에는 잠을 자야 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쉬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마가복음 6장 3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를 위한 하나님의 첫 번째 처방전은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잠들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일어나 머리맡에 있는 떡과 물을 한 병 먹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가 또 와서 “일어나 먹으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 먹고 힘을 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자기를 배반하고 낙심에 빠져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서 생선을 굽고 떡을 준비해서 “조반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치고 힘들 때, “밥 먹었니? 밥 먹자.”라고 하는 말이 굉장히 따뜻하고 좋은 말씀인 것입니다. 시편 37편 24절에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넘어질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결코 실패하지는 않습니다.

 엘리야가 탈진한 원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협박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십시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열왕기상 19장 3절)” 여기에 보면 엘리야가 ‘이 형편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믿음을 보고 살아야합니다. 형편을 보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그 위대한 영광을 나타냈다는 것은 보지 않고, 엘리야는 이세벨이 죽이려고 하는 그 형편만을 바라보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형편을 바라보니까 죽을 것 같았고 두려움에 처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전투에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도록 기도하여 하늘에서 비가 3년 6개월 동안 안 오던 비가 내리게 한 위대한 주의 종인데, 이세벨의 협박을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처한 형편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믿음이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나 환경을 바라보면 마음에 두려움이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낙심한 엘리야를 위한 하나님의 두 번째 처방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호렙산에 이른 엘리야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보면 “내가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열왕기상 19장 14절)”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이 남아 있다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음성을 들음으로 온전히 회복되어서 다시 사명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온전한 회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장 28절~3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피곤치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살다가 보면 너무 힘들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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