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희 선교사(몽골)예수님 보혈로 변화, 부흥하는 몽골 교회 기대

예수님 보혈로 변화, 부흥하는 몽골 교회 기대
날라이흐 교회 성도들 성령 충만해 방언기도 뜨거워 
현지인 선교사 파송, 어린이 무료급식 등 사역 지경 넓혀
  
 시베리아와 중국 대륙 사이에 위치해 있는 몽골. 북쪽으로는 러시아의 투바, 브리야트 공화국과 남쪽으로는 중국의 신강위구르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은 한때 징기스칸에 의해서 13세기 중원의 땅을 다스렸던 나라였다.

 처음 몽골 땅에 왔을 때 이 땅에서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영하 40도의 추울 겨울 날씨였다. 교회에서 파송 받을 때만 해도 “몽골을 주께로”라는 사명감 하나로 왔는데, 정작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먼저 청년들의 도움으로 언어를 집중적으로 익혔다. 2년이 지나서 날라이흐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다. 날라이흐는 울란바타르에서 32km 떨어진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겨울에는 울란바타르보다 5도 정도 더 춥다고 보면 된다. 지리적 위치상 도시와 가까워서 위성도시 개발구역으로 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인구 2만3000명이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은 3만5000명이 됐을 만큼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처음 날라이흐에 왔을 때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외국인이 거의 없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은 저들이 저렇게 나를 쳐다보지만, 후에는 ‘센베노! 파스트라’(목사님)라고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이 올 줄로 믿습니다” 현재 날라이흐 지역에 가면 우리 교회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거리 여기저기에서 성도들을 만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오히려 울란바타르보다 날라이흐가 포근할 정도로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됐다.

 처음 여기에 교회를 개척할 당시만 해도 하나님은 내게 많은 것을 기도 중에 알려주셨고 말씀으로도 보여주셨다. 몽골에 처음 올 때는 10년 후에 몽골 민족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센터를 세우리라는 원대한 꿈을 가졌었다. 그런데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그 꿈은 잊은 채 소박한 교회목회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파트교회에서 몽골 전통 게르로 옮긴 후 어린이 예배시간에 공과를 하는데 어느 한 아이가 미래의 우리교회 모자이크를 하면서 빨간 지붕과 벽돌교회를 그렸다. 처음에는 너무 이상해서 그 그림을 사진 찍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우리 교회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부목사님이 오셔서 내게 가로 25m, 세로 12m의 건물을 지어 보라고 했을 때 나는 반대했었다. 아니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니 역사는 일어났다. 건물을 지으려다 상황이 안되어 지어진 건물을 사서 들어갔고, 그 건물 등기부와 지적도를 보니 건물의 사이즈는 정확히 가로 25m, 세로 12m 였다. 놀라웠다. 교회 지붕도 빨간 지붕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시작하시려고 보여주셨고 알려주셨었다.

 처음 이곳에서 나는 14살 아이들 6명을 데리고 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어디선가 친구들을 데리고 왔고, 아이들과 1년 365일 몽골에서 하기 힘든 매일 새벽기도를 했다. 우리는 순복음선교사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방언이나 성령에 대해서 처음부터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침기도회를 통해 모든 아이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의 소리가 커지고 여기저기서 울면서 통곡을 했다. 놀라웠다. 마치 하나님이 이곳에서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다리신 것처럼 우리의 교회는 이렇게 자리잡아갔다.

 현재는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만큼 성장했고 하나님의 은혜도 컸다. 먼저 지역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평균 50명에서 70명이 이용하고 있고 많을 때는 100명이 넘을 때도 있다. 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마당을 밟고 들어와 전통 게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두 번째는 몽골 국제기아대책과 연합하여 200여 명 아이들과 자매결연하고 그 아이들을 위한 센터 역할을 교회가 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는 처음 개척해서 지금까지 한 장로님의 후원으로 어린이 무료급식이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4세부터 13세까지의 아이들에게 매일 점심을 제공한다. 그리고 예배사역이다. 우리교회 예배는 특이하다. 몽골에서 최초로 아침 1부 예배를 드렸다. 처음 타교단 동료 선교사들이 실패할 거라며 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오전 10시 본 예배 전에 기도로 봉사자들을 준비시키고 싶은 마음에 교회 지도자들과 상의하여 1부 오전 8시 예배를 만들었다. 그것이 벌써 3년이 넘었다. 지금은 1부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봉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예배를 10시 본 예배에 다시 드리는 ‘자신의 예배화’가 우리교회의 특징이다.

 최근에는 하나님이 또 다른 마음을 주셨다. 예배의 기본적인 설교는 전도사에게 맡기고, 우리 부부는 성경공부, 일대일 양육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이 사역 또한 참으로 놀라웠다. 사모가 인도하는 젊은 부부 중 여성 모임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고 귀신이 떠나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또한 직장인 여성 모임에서도 일대일 양육이나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여시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 사역을 하나님이 원하셨음을 깨닫게 되어 너무 기쁘다.

 마지막으로 지난 4월 첫째 주에 10년 만에 드디어 첫 몽골 현지인 선교사를 중국 내몽골로 파송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됐다. 그동안 만 7년 동안 열심히 함께 사역하며 도와준 귀한 동역자 멘드바야르 선교사가 현재 중국에서 사역 중이다. 이제는 몽골로 파송되기 전에 했던 기도를 하나님이 이루시는 때라 생각하며 앞으로 교회 개척과 선교사 파송도 함께 몽골 땅에서 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또 하나의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매주 5∼6가정을 방문해 가정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몽골은 복음화율이 처음 5%정도 된다고들 했다. 그러나 최근 복음주의 협회와 외국인 선교사단체 JCS, 그리고 한국 선교사협의회와 연합하여 몽골 전국 교회와 성도들을 리서치 한 결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몽골 교회가 하향선을 그리고 있었다. 기독교 전체인구가 0.9% 미만이며, 지도자들의 보수교육의 부재, 성도들의 방치 등 다양한 문제들이 몽골 전체교회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시골 지방 교회들은 거의 방치상태다.

 몽골의 전체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몽골의 교회가 다시 일어서서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에 하나님의 사용하시는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본 교회 성도님들께 중보기도를 부탁드린다. 13세기에 중원의 땅을 다스렸다면 21세기에는 한 손에 복음을 들고, 한 손에 회개와 용서를 구하며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몽골 교회가 되길 바란다.


남광우 선교사(남아프리카공화국)

“예수 보혈만이 남아공에 기적 가져올 수 있다”
복음화율 60%지만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3%미만
케이프타운서 1시간 떨어진 시몬디움에 교회 개척  

 

 할렐루야! 하나님의 보석 아프리카, 특별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섬기고 있는 남광우 선교사입니다.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러 오고 공부나 이민 등으로 이 땅을 밟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공은 2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만큼 여러분들에게는 먼 나라일 것입니다.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이 철폐되고 흑인 정당 ANC(아프리카민족회의)가 정권을 잡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대다수의 흑인빈민 문제와 더불어 수많은 백인들이 역차별 돼 하루아침에 직장을 흑인에게 내어 주고 쫓겨나 외국 이민을 선택하거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도시는 노숙자들이나 도로의 걸인들 중 오히려 백인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공 전체 대부분(70%)의 부(富)를 소유한 소수의 백인들은 대다수의 흑인들을 종처럼 부리며 자기들만의 왕국 속에서 살아가고 부의 분배문제, 도시의 흑인빈민, 치안 부재, 정부의 부패 등은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남아공은 공식적으로 60%이상의 복음화율을 가진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선교사들의 사역 속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인구는 3%미만으로 조사됩니다. 많은 교회들이 아프리카 토착 종교와 혼합되거나 변질돼 각종 예식과 미신적 요소를 신앙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신학교 사역을 통해 현지 무허가 목회자들을 올바른 신학으로 교육하고 좋은 교회 공동체를 세우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청년 때부터 예배 사역자로 하나님이 훈련하고 사용하셨기에 현지 사역자들에게 찬양과 예배에 대한 강의를 통해 미신적 불신앙적 요소를 버리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예배자의 성경적 원리를 가르칩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들에게 말씀안에서 도전받아 예배 사역자로 혹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리더들로 세워지도록 이들을 양육합니다.
 3년 전부터 개척이 시작된 시몬디움순복음교회는 남아프리카 남단의 유명한 관광지 케이프타운에서 내륙으로 1시간 거리인 팔(Paarl)이라는 지역과 스텔란보쉬, 프렌치훅 사이 농장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산맥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농장들이 이 지역의 주된 산업입니다.

 대다수가 농장에서 나고 자라 농장에서 일하는 이곳 사람들은 칼라드라는 인종적 계급으로 분류되는데 칼라드 중에도 또 많은 사회적 계급이 존재합니다. 백인들은 아니지만 상류층 직업과 재산을 소유한 칼라드로부터 주로 모슬렘이 많은 인도계 칼라드, 거기다 가장 사회적 지위와 삶이 열악한 극도의 빈민층 농장 소작농들까지.

 교회를 개척할 때 주신 주님의 마음이 ‘교회는 내가 이 땅에 보내는 마지막 사랑의 초청장이다’였습니다. 그 마음이 오늘도 저희가 시몬디움순복음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섬기는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술과 마약과 담배와 영적 타락 속에 허우적대던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보다 시내에 장을 보러 가거나 빨래를 하는 것이 더 당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술과 마약을 끊고 담배를 멀리하며 깨끗한 옷을 입고 손에 손잡고 교회로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10년 넘게 여러 교회를 다니며 말씀을 찾았지만 한번도 이런 복음을 듣고 배우지 못했다”며 “이 교회에서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복음을 부끄러워하며 성경도 감추고 교회 다녔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심방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불가능하다 말하는 ‘새벽기도’를 시작하라는 주님 말씀에 1년 반 전부터 새벽제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많지 않은 사람이지만 추운 겨울 이불을 둘러쓰고 어둠과 비를 뚫고 교회를 찾아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이들을 보면 주님이 어찌 이들을 귀히 여기시지 않겠는가, 주님이 어찌 이 땅을 버리실 수 있겠는가라는 감동과 함께 하나님의 마음에 감격하곤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역시 순수한 건 아이들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알코올중독인 부모의 방치 속에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늘상 교회에 찾아와 수줍게 배고프다고 말하곤 합니다. 많은 아이들의 부모가 임신 중 알코올중독이다 보니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코올신드롬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은 손이 마르며 굽거나 심하게 체구가 작고 지적 능력이 떨어져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동네의 천덕꾸러기로 살아갑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제일 열심인크리젤다라는 아이는 찬양과 율동을 너무 좋아해 가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하지만 율동 연습을 할 때보면 한쪽 팔이 마르고 손이 굽어 제대로 올리지를 못합니다. 부모의 무지와 죄로 평생 굽고 마른 팔로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 복음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축복이 허락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얼마 전에는 설상가상 이 집에 불이 나 그나마 있던 세간살이와 교복 등 모든 것이 타 버렸습니다. 교회의 성도들과 어린이들이 이들을 돕겠다고 옷가지를 모으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에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부족하고 가난하지만 주님 사랑이 우리를 부요하게 하고 넉넉하게 합니다. 이 일을 기회로 이 가정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이 기억나게 하실 때마다 1분이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남아공과 시몬디움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주님만이 소망이고 예수 보혈만이 이 땅을 씻어 내고 기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우리 사역이 힘을 얻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교회학교 샘스쿨 인도네시아 말랑 단기사역


“우리는 꿈꾸는 청소년 선교사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꿈을 품은 소중한 시간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이웃들을 섬김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뿌듯해요. 이번 선교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녀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졌어요”
 교회학교 샘스쿨 29기 학생들은 지난달 8일부터 18일까지 담당 전도사와 교사3명의 인솔 하에 인도네시아 말랑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학생들은 5월부터 12주간 단기선교사로서 교육을 받고 인도네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로 선교를 준비했다.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븡2학년이 모인 이번 29기 학생들은 방학 동안 학원에 나가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을 볼 때면 학업 때문에 걱정되는 마음도 컸다. 단기선교를 떠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이러한 마음은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감사로 바뀌었고 선교지에 도착하는 순간 복음전파에 대한 기대감으로 넘쳐났다.

 국민의 87%가 무슬림으로 이슬람이 강한 인도네시아지만 의외로 개신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와 유교를 공식 종교로 받아들이고  6개의 종교를 기념하는 공휴일 또한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의 땅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종교로 인한 영적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 영적전쟁에서 승리코자 샘스쿨 학생들은 10일 동안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 사랑을 전하며 다양한 사역들을 펼쳤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마친 오후 9시부터는 에클레시아순복음교회에서 매일 개인기도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현지 아동들의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눴다. 한치완 선교사가 섬기는 유치원을 방문해 페이스페인팅과 풍선아트로 아이들과 기쁨을 누렸다. 왕복 7시간이 넘는 지역에 있는 노숙자 마을과 시골 교회에도 방문, 찬양과 율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복음전파의 사역과 더불어 현지의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만나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교류 하는 시간도 보냈다. 1박2일 동안 운동회, 바자회, 장기자랑 등을 함께 준비하고 진행한 학생들은 그새 서로 정이 들어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동역자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했다.

 선교사역이 없는 시간에는 현지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매시간 준비한 스킷 드라마와 워십댄스를 선보였고 사역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29기 맏언니인 이성은 학생은 말랑 선교를 오기 전과 후의 변화된 자신을 간증했다. “너무 앞선 미래를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습관들이 하나님과 제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선교를 하며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을 위해 기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의 꿈을 주세요’라고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성은 학생뿐만이 아니라 이번 선교를 다녀온 학생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꿈’을 품었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에 돌아오기 사흘 전 열린 성령대망회에서 29기 학생 모두 방언의 은사를 받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다고. 이번 말랑 단기선교는 우리 교회의 미래인 교회학교 학생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꿈을 꾸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복된 시간이 됐다.

 


전근일 선교사(헝가리)

헝가리 향한 주님 주신 마음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집시, 헝가리 전체 인구 10% 차지
유럽복음화 위한 중요한 인적자원
기독교 세계관 통해 차세대 리더 양육 예정 


 헝가리는 1989년 민주화를 맞이하면서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괄목할만한 도약을 이룩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부정부패의 잔재가 남아있고 또한 지하경제 규모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또 빈부격차의 양극화가 심각하며 실업률은 점점 높아지고, 고급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  기업들은 점점 철수 혹은 축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차량들이 도로에 즐비한 한편 도로 옆 인도에서는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헝가리는 과거 구(舊)소련의 40여 년 동안 통치로 인해 영적인 암흑기를 맞이했고 민주화를 통해서 강력한 신앙적 부흥을 기대했었지만 현재 헝가리는 유럽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쇠퇴했고 신비주의적 교회들이 부흥하고 다양한 이단 혹은 타종교의 영향이 점점 강력해지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이라는 말씀처럼 영적인 교만이 너무도 강합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헝가리’(Hungary)는 진짜 영적인 측면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상황에서도 ‘헝그리(hungry)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1000만명에 달하는 헝가리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집시들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집시는 세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집시는 헝가리 정부의 골칫거리이며 헝가리 사람들의 혐오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교사역 6년차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제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집시들은 유럽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인적자원이며 그들 또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현재 이곳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인교회와 헝가리 현지인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또 부다페스트에서 조금 떨어진 벌코라는 곳에서 집시 사역자인 오또 형제와 300km정도 떨어진 어라니셔빠띠라는 곳에서 사역하는 이슈트반 그리고 슬로바키아 국경 지역에 있는 떼레쉬케라는 지역에서는 가정교회 사역을 하는 에떠 자매와 동역하고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그동안 한인사역과 현지인 사역에 집중하는 가운데 2012년 4월부터는 집시사역을 향한 소원이 싹트게 됐습니다. 그리고 집시마을 아이들을 위한 학교(헝가리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학교)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인구의 10%를 차지하며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집시들에게 복음을 전해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면 유럽의 재복음화에 적지 않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헝가리에는 여러 지역에 집시마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집시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아이들을 지도할 경우 이 아이들이 차세대 리더로 자신들의 삶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첫째, 마을재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정부는 집시들의 문제를 방관하며 이들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문제를 해결코자 집시들을 도시 외곽에 거주토록 하고 있습니다. 원래 집시들이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로 인해 일자리를 얻으려 해도 얻기 힘든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집시아이들이 부모들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보고 배워 집시의 습성과 더불어 가난을 대물림한다는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집시의 암울한 삶이 세습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자 집시들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먼저 신앙적으로 훈련되어지고 일할 의지가 있는 집시들을 선별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양, 염소를 키우고 양계장을 지어 일할 터전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생산 원가를 절약하기 위해 저희가 소유한 땅에 사료작물을 심을 계획입니다. 주변에 있는 땅도 임대해 수확량을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둘째, 집시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미 성인이 된 집시들은 복음을 들어도 그 삶이 잘 개선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집시들의 보다 실제적인 삶의 개선을 위해서는 어렸을 때 체계적인 교육과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심어주어 자라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교육이 진행되면 수백 명의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한 마을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 교육을 받게 되어 질 것이고 결국 유럽의 복음화에도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와서 우릴 도우라”고 요청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유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각국을 통해서 많은 나라들이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은 철저하게 복음이 필요한 곳이며, 유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유럽의 사회복지 제도로 인해서 이미 ‘천년왕국’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선교의 대상이 아프리카 혹은 동남아, 중앙아시아만을 국한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유럽을 위시한 모든 민족과 열방을 향한 우리들의 책임을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원을 두고 역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헝그리(hungry)한 헝가리(Hungary)에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은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하나님의 신실하심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며 오늘도 복음 전파를 위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배드보라 선교사(I국)

선교 불모지에 세워진 기적의 비전센터

핍박과 고난 중에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
차세대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 역할 기대 

 할렐루야. 2015년 새해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으세요! 하나님의 뜻과 믿음으로 세워지는 I국 비전센터 건축으로, 간증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특별히 여의도순복음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조용기 목사님, 이영훈 목사님 그리고 선교국, 서아세아선교회, 굿피플, 서귀포순복음교회의 기도와 후원의 손길 그리고 순간순간 성령님의 인도로 함께 힘을 모아 주신 한분 한분의 이름을 나열하며, 기도의 공간에 감사를 새깁니다. 연합의 힘은 장애가 될 수 있는 어떤 환경과 부족한 재정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했고, 믿음의 주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 비전센터 현장 모습을 눈으로 보게 했습니다.

 이번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믿음은 바라보는 것의 실상이 창출되듯이 마치 아무 것도 없는 땅 위에서 설계도면을 그리고 실상이 나타나는 모습처럼 생각하며 믿음으로 8년의 시간을 기도해왔습니다. 기도 시간을 통해 온전히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영적 기초공사를 마무리 할 즈음, 2013년 11월에 건축을 시작하게 됐고, 선교지에서 수월히 넘어 갈 수 없는 행정 일들과 현지의 건축법과 현지인들과 건축 과정으로 부딪히는 소통의 한계를 겪으며 더욱 깊은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2014년을 감사로 보내면서, 2015년을 새로운 소망을 품고 맞을 수 있는 기쁨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주신 말씀을 다시 입술로 되뇌이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 58) 기도 안에서 말씀은 지금의 건축의 과정을 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건축을 시작 할 즈음부터, 신문 기사에서는 센터 지역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장·단기 미래 계획의 청사진이 실리면서 하수도 공사와 도로 확장, 지하철 공사 그리고 고가도로로 한꺼번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센터 지역이 교통과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이 변화되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건축업자의 음해와 궤계, 경찰과 건축담당자들의 우회적인 압박으로 심리적·감정적으로 힘이 소진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건물 내부의 전기선을 연결한 후에는 누군가 밤에 몰래 들어와 모터를 이용해 건물 5층으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건물 내부에 물이 가득 차 이를 퍼내며 마음 조이던 일, 전기연결공사에 문제가 없기를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환경보다 더욱더 하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교를 위한 비전센터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건축업자의 괴롭힘을 정면으로 대항하는 대신 하나님의 방법을 구할 때마다 성령께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악한 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 큰 선을 베풀어야 하고, 악한 사람을 축복할 때 내게 돌아오는 축복이 무한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고, 실제 그 축복을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선교사에게 중요한 일은 비자를 받는 것입니다. 현지 외국인 등록소의 직원들은 어떤 이유와 구실을 만들어서 비자 연장을 까다롭게 합니다. 비자 연장 등록을 위해서 등록소 사무실에 앉아 순번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갑자기 기다리는 그 시간에 건축에 관련된 사람들 중 저희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기억케 하시더니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면서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등록소 직원이 제 이름을 호명하며 여권을 달라하더니 비자 도장을 찍어주고 얼른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본 직원에게 성령께서 마음의 감동을 주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번 선교 센터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일을 또 한 번 겪었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5층 높이로 세워 맨 윗 층을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건축 재정은 4층 건물을 세우는 예산 밖에 안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사람의 환경을 훌쩍 넘었습니다. 현지 화폐 가치가 하락되고 달러 환률이 올라가는 바람에 그 차익으로 건물 한 층을 세울 수 있는 재정이 마련된 것입니다. 한 층을 올리기로 결정한 후 알아보니 건축법이 일주일 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5층 건물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센터 건립을 통해 저는 선교 사명을 되새김하며 건축의 분명한 목표와 비전의 방향을 세우게 됐습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푯대를 보고 달려갈 길을 간 것처럼, 제 자신도 푯대를 향하여 갈 때 뒤에 오는 후배 선교사 역시 푯대를 향해 전진하며 하나님 나라의 군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은 2014년 12월 신문을 통해 비전센터 건립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분명히 알게 해주셨습니다. 기독교국가도 아닌 이 나라 일간 신문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타이틀로 1면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내용은 “2014년 이전에 건축된 건물은 어떤 구조로 세워졌든지, 정부에서 허가를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한 정부의 특별한 배려 같지만 결국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이 또한 이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역사가 I국에서 계속 진행되길 원하십니다. I국의 13억 인구 중 50%는 25세 미만입니다. 비전센터는 차세대를 향한 지도자들이 세워지는 현장이며, 헌신된 영적 지도자들이 배출되는 복음의 전초기지가 될 것입니다.
 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사라는 자부심을 안고 비전과 사명의 푯대를 향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비전센터를 통해 아름다운 결실이 맺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복음 심어 희망의 열매 맺는 캄보디아(구현서 선교사)

척박한 땅에 13년간 오중복음 삼중축복 전해 
원주민 위한 교회 세우며 제자 양성 힘써
 

 2003년 8월 16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이 말씀을 붙잡고 캄보디아에 도착했습니다. 선교지에 도착하고 어느덧 긴 세월이 지나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전하며 땀 흘렸던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4개 교회와 쯔라이민족 라오민족 크넝민족 참족 프넝 소수 민족 5곳 교회를 주님께서 개척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 사역지에 왔을 때는 무법 지대였습니다. 지금도 사회적으로 혼탁하고 도심 주변에는 도로개발로 교통체증이 증가하고 있으며 공단 주변에는 근로자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변함없이 새벽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족을 살리려는 모습들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부정선거로 인해 시위를 벌이다 총을 맞고 죽어가는 근로자를 보면서 매우 슬퍼했던 때도 있었고 근로자들을 교회 안 기숙사에서 재우고 새벽 기도회를 드리며 성경말씀 공부를 통해 믿음이 자라도록 축복해 주던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아이들이 즐겁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어느덧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핍박과 무시와 멸시 천대를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이 지금 돌이켜 보면 저에게는 큰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양육해온 어린아이들이 어느덧 청년이 되어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였더라면 성도들을 향한 소중한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마 4:23∼24).

 말 못하는 청년이 말을 하는 기적,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가는 모습 그리고 목디스크 환자가 통성기도 드릴 때 성령의 역사로 치료받아 기뻐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3년 전에 만난 코흘리개 어린 아이가 23세가 되고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기를 안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참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캄보디아는 제가 처음에 왔을 때보다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캄보디아 나라의 정부정책이 변하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는 비자, 워크퍼밋, 법인, 국제결혼, 세금, 종교 등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며 어려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에 388명이 가입하여 서로 협력사역을 잘하고 있으며 선교사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선교사들이 지역별로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며 학교와 유치원 그리고 교회개척사역에 집중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껌므리응순복음교회에서도 간호중고등학교를 건축하여 간호학생을 매년 70명씩 사회로 배출하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한인 선교사회에서는 많은 선교사님들이 교통사고 및 질병을 얻어 병상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교회 예배허가 받은 것을 2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어려움 등 모두가 선교사의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회장직을 맡고 있는 한인 선교사회에서 선교사님들과 협의 아래 공원묘지를 마련하여 캄보디아 불교 장례문화를 기독교 장례문화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은 부지를 마련했는데 자금부족으로 완성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만간 완성 될 것으로 꿈꾸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불교문화권에서 벗어나 의무적으로 불교사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복을 받아 가족들이 추모공원에서 예배드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어린자녀들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2013년과 14년에 제자들의 배신, 국제 결혼문제로 인한 후원자의 거짓말 등으로 성도들이 줄고 양육받던 청년들이 단체로 떠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마음이 무척 아프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13년을 양육해 제자로 삼고 전도사로 목사로 성장시키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나와 한마디 의논도 없이 결혼하고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갈 때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주의 사역은 계속 이어지고 더 단단한 열매가 맺어질 것을 믿습니다. 굿피플은 이 곳 사역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길거리에 돌아다니며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모아 굿피플 학교를 운영하여 해마다 언어 교육을 가르치고 정규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 모유가 부족한 아기 엄마에게는 우유를 공급하여 어린아이가 잘 자라도록 합니다. 예쁘게 잘 자라는 어린아이들의 뒤에는 굿피플 후원자들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님들의 사랑이 세계 구석구석에 들어가 오중복음 삼중축복의 열매를 맺고 만민이 구원받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김보혜 선교사(르완다)

아프리카의 스위스 ‘르완다’에 은혜의 열매 맺어 

11개 지역에 교회 건축, 부룬디까지 사역 확장 
키니냐교회 중심으로 6개 지역에 아동 교육 진행 
   
 르완다라면 종족 간 내전의 참혹한 학살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전후 20년이 지난 지금 아프리카에서 빨리 발전하는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아프리카라고 하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량한 땅 위에서 얼굴에 파리를 다닥다닥 붙이고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흘리고 있는 아이들을 연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 개의 언덕’, ‘아프리카의 스위스’ 등의 별명을 가진 르완다는 상록(常綠)의 산야에 영양 풍부한 대지와 많은 호수를 가진 자연이 좋은 나라입니다. 최근 5년간 주택 건설이 붐을 이루면서 초록의 동산 위에 붉은 함석지붕들이 예쁘게 어우러져 종종 방문객들이 깨끗한 환경에 감동하며, 이곳이 아프리카가 맞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지역 간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해발 1400∼2400m 지역에 위치해서 기후도 좋습니다.

 르완다는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 아프리카의 50여 개의 나라들 중에도 유난히 국토가 작은 나라로서, 우리나라의 4분의 1 정도의 크기에 2012년 기준 1200만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한국과 물리적 거리로는 멀지만, 식민, 내전 등의 역사 속의 아픔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있어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희귀동물인 마운틴 고릴라를 기반으로 한 관광자원이 나라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는 탓인지, 제일 고액권인 5000프랑과 비자 등에 인쇄될 만큼 마운틴 고릴라는 상징적인 동물이지만, 서민들은 소를 가장 좋아합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춤추는 것이 일상입니다. 피부색이 다른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청하며 인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대중교통으로 이용하는 크고 작은 버스에, 유난히 종교적(기독교 혹은 이슬람)인 문구를 많이 장식하고 다닙니다. 식민시대 때에 가톨릭 국가였기에 여전히 가톨릭이 50%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병원 대학 교육 기관 등 모든 시설이 가톨릭과 연관된 곳이 많이 있으며, 개신교에서는 오순절 교단 산하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발전하면서 시설물 건축 기준을 강화하여 수도 지역에서는 교회 건축 허가 및 시설물 관련 규정들이 강화되어 교회 건물들이 견고해지고 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건축요건을 갖추지 못해 폐쇄되는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여전히 흙으로 된 허름한 주택에서 때로 지붕 없이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저는 선교사역 초기에는 도서관을 만들며, 어린이 교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골 지역에 다니며 ‘Jesus(예수)’ 영화 상영을 하며 전도 집회를 하고, 빵과 학용품을 지원하고, 현지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현지 오순절 교단인 PEFA 교단과 협력하면서 르완다 뿐 아니라 같은 종족들로 구성된 부룬디까지 사역을 확장하여 교회 건축 후원과 목회자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염소, 닭 등을 분양하며 에이즈 가정, 피그미족, 빈곤 가정 등을 구제 하면서 카나지와 챠니카에 교회를 개척, 건축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재정이 열악해, 건축 중인 작은 주택을 임대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어 11개 지역에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지방에는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큰 건물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교회가 주민 센터 역할을 하여 교회를 찾지 않던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도 합니다.

 수도 지역은 이제 고급 승용차들을 몇 대씩 보유하고, 스마트폰을 들고 인터넷으로 세계와 접속하며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이 있지만 조금만 깊숙이 동네 안을 살피면, 아직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전기 없는 작은 흙집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살아갑니다. 물을 길어야 해서, 혹은 땔감을 주워야 해서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의 전근대적인 삶이 공존합니다.

 식민지의 역사 때문이든 내전 이후의 원조 때문이든 손을 벌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기보다 그걸 바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등식화합니다. 무조건 외국인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자신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는 방식의 사고를 갖고 있으며, 작은 난관에라도 부딪히면 굳이 그걸 돌파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포기합니다. 현재만을 살 뿐이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어른들의 사고에 대해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세대는 달라지도록 어려서부터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첫번째 지은 교회인 키니냐를 중심으로 6개 지역에 유치원, 초등학교를 시작하고, 자립을 위한 직업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교육과 함께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목회자들이 말씀에 온전히 서도록 목회자 보수교육을 통해 성경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마을 단위 전체를 도와야 하는 피그미 족을 비롯한 빈곤 가정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굿피플 아동결연 사업을 진행하면서 후원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서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자라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에볼라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피부색 탓인지 아프리카를 한 나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부아프리카와 이곳은 너무나 먼데도 이곳까지 차단시키려 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지만 너무 익숙해져서 어느덧 감사를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물만 나와도 감사, 전기를 사용할 수 있으면 더 감사할 수 있는 이곳에서 새삼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를 기억하도록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걱정거리인 극단적인 무장단체들의 위협도 문제이지만, 그들이 젊은이들을 파고들어가는 배경 중의 하나인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맘모니즘도 큰 문제라고 봅니다. 많은 자녀들로 인한 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는 이곳 사람들에게 무료 교육, 해외 취업 알선 등 현실의 고민 속으로 파고드는 이슬람의 전략에 맞설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복음으로 무장된 목회자들을 더 많이 세워야 합니다. 

 


김병천 선교사(미얀마)

미얀마에 하나님의 나라 이루기 위해 복음화 주력 



정부 핍박 속에서 미얀마 선교훈련원 개원 
졸업생들 미얀마 전역에서 순복음 영성 전해 
7년동안 신학교 건축 진행, 곧 이사할 예정 
미전도 종족 전도해 100개 교회 세우고파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미얀마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1996년 12월 14일 미얀마에서 파송을 받아 현재까지 19년차 선교를 하고 있는 김병천 선교사입니다. 미얀마에 도착하여 양곤 외국어 대학에서 미얀마어와 문화를 배웠습니다. 
 1999년도에 양곤순복음교회를 가정에서 개척 했고 주님의 은혜로 성도가 부흥함에 따라 교회를 임대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가 부흥을 하니 정부의 조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교회의 문을 3번이나 닫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이후 제자들을 양성해서 미얀마 복음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미얀마 선교훈련원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허락을 받아서 개원했습니다. 계속해서 2년제 3년제로 발전하다가 이제는 4년제 미얀마하나님의성회의 인정을 받아 미얀마 영산신학교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1학년 17명, 2학년 14명, 3학년 17명, 4학년 16명 총 64명이 신학과 선교훈련을 받고 있고 올해는 약 70명이 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124명이 졸업을 했고 그 중 약 70%정도인 90여 명이 미얀마 전역에서 순복음의 영성을 전하는 주님의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양곤에 3966㎡ 정도의 부지를 구입하여 2009년도부터 약 7년동안 신학교를 건축했습니다. 이제 건축이 완공이 되어서 임대를 하던 곳에서 이전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미얀마에 100개의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드리고 미얀마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미얀마에는 아직 교회가 없는 수많은 종족이 있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주님의 다시오심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미얀마 선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얀마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아웅산 폭파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83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아세안 5개국을 순방하였는데 미얀마에 도착해 아웅산 장군의 묘소에 참배를 하려다 북한공작원들이 설치한 폭탄에 의해서 17명의 정부 각료들이 유명을 달리한 곳입니다.

 서쪽으로는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라오스 태국 이렇게 5개의 나라 사이에 있는 전략 요충지역이고 아직도 우리나라의 70년대 초를 생각할 정도로 저개발 국가로서 이제 잠에서 깨어나 발전을 하려는 나라입니다.

 정치적으로는 군부가 절대적으로 행사를 하고 있지만 5년 전에 대통령제로 바뀌면서 새롭게 도약을 하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85%이상이 불교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으며 기독교는 정부 발표 약 5%로 소수종족이 믿는 정도입니다. 국토 면적은 68만평㎢로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약 3배에 달하는 큰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인구수는 2014년 통계로 약 5100만 정도입니다. 미얀마는 약 135개의 종족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주 종족인 버마족이 68% 그리고 나머지는 소수종족들입니다. 

 가난과 저주를 전생의 업보로 믿고 사는 미얀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미얀마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여러분 미얀마 선교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유동 목사(순복음나고야교회)

일본 일천만구령 위해 나고야에 복음 심어 
조용기 목사의 설교방송 듣고 성도 모이기 시작 
긍정적인 믿음 갖고 선교 힘써 15년전 성전 건축 
 
 할렐루야!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한국과 거리는 가깝지만 과거사 문제와 영토문제로 양국 간의 냉랭한 관계 가운데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리우는 일본. 영등포대교구장으로 사역하다 1987년 6월 13일, 일본선교사로 파송받은 저는 우츠노미야, 오사카순복음교회를 거쳐 1989년 9월에  순복음나고야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나고야는 아이치현의 현청 소재지로서 도쿄와 오사카 가운데에 위치해 주쿄(中京)지방이라 불리웁니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갖는 나고야는 일본 동서지역의 문화가 적절히 융화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섬유와 도자기 산업이 발달하였고 지금도 일본 최대 무역항 나고야항을 필두로 도로, 철도, 항만 산업기반시설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또한 토요타 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공업과 정밀기계 등의 기술집약적 산업을 통해 세계 산업기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구 227만의 도시입니다.

 성도도 없는 가운데 빌딩 2층을 빌려 지교회로 출발한 교회는 조용기 목사님의 일본선교에 대한 열정과 본교회 성도님들의 중보기도에 힘입어 순조롭게 부흥하였습니다. 당시 나고야 아이치TV를 통해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방송인 ‘행복으로의 초대’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나고야에 순복음교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인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1월에는 독립교회로 성장하여 본격적인 목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배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토대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선교한 결과, 일본에서도 보수적이라 불리우는 나고야지역 일본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차별 가운데에서도 일본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재일교포와 사업 및 학업으로 거주하는 한국분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어 힘차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일본은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선교하기 힘든 나라 중의 하나 입니다. 1859년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많은 순교의 피가 흘려지고 메이지 4년(1872년)부터는 법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종교적 이유나 정치정책으로 기독교가 박해받는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총 인구 대비 크리스천 비율은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메이지 유신 이후 1%를 넘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순복음나고야교회는 불어나는 성도들로 인해 성전이 협소해졌습니다. 척박한 복음의 불모지인 일본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전파를 하기 위해서는 교회건축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성전건축을 위한 전성도 작정기도회를 매일밤 드렸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약점과 교회에 대한 이해부족 등등 여러 악조건 가운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섭리 가운데 1996년 7월에는 이마이케에 교회부지를 구입하게 되고 1998년 9월에는 일본에 있는 순복음교회 최초로 종교법인을 받게 됩니다. 몇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성도님들의 아낌없는 헌신과 눈물의 기도가 있어 기적적으로 4층의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되고 2000년 11월 11일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큰 성회는 동경이나 오사카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나고야에서도 조용기 목사님을 모시고 중부지역의 교회들이 초교파적으로 연합하여 성회를 개최하고 싶은 꿈을 갖고 기도하였습니다. 성전건축과 함께 성회준비가 진행되며 23일에는 기도하던대로 조용기 목사님을 모시고 나고야에서 3000명 이상이 모이는 지저스 페스티벌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다음날인 24일에는 조용기 목사님을 모시고 감격스러운 헌당예배를 눈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일본은 섬나라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활화산이 곳곳에 즐비합니다. 외세에 의한 침략보다는 지진, 쓰나미,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입어온 일본은 지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사상초유의 인적,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인류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될 후쿠시마 원전문제로 일본의 미래는 불투명하며 언제 또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대지진의 공포로 인터넷에는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고 있는 나고야 지역도 30년 전부터 “내일 지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며 연일 TV에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보도대로 남해 트러프 거대지진이 일어나는 경우 나고야 시내에서만 최악 6700명이 사망한다는 피해 상정을 일본국가에서 공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기 또한 1990년에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아직 특별한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업차 거주하던 한국 성도들이 대거 한국으로 귀국하며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일본의 이러한 상황은 복음전파하는데에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32장 10절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눈동자 같이 지켜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담대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선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히려 이러한 악조건들을 통해 일본이 하나님께 빨리 돌아오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지난해인 2014년 11월 3일에는 창립 25주년을 맞이하여 적극적으로 일본선교를 후원해 주시는 이영훈 목사님을 모시고 ‘사명자 초청 영성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역중인 순복음교회 목회자들과 중부지역 초교파 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영적으로 재무장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5년의 교회목표를 두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으로부터 이사야 43장 19절 말씀을 받아 ‘새 일을 행하는 한 해’라는 교회목표를 세우고 힘차게 선교하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동북아일본총회 총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동북아일본총회는 일본, 러시아, 괌 지역의 복음화를 위하여 1978년에 세워졌습니다. 일본총회 산하 80여 교회와 110여 명의 선교사들이 불철주야 복음전파를 위하여 매진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사명에 감사하며 동북아일본총회에 속한 모든 교회의 안정과 부흥, 그리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4월부터는 예배개편을 통해 총 4번의 주일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주일 9시 1부 예배는 위성생중계로 이영훈 목사님, 11시 2부 예배는 담임목사, 오후 1시 3부 예배는 위성생중계로 조용기 목사님, 오후 5시 4부 찬양예배는 조종현 총무 목사가 인도하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시간마다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은혜로운 예배가 드려지고 있으며 부흥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도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로 나누어 오전 9시 30분에 예배를 각각 드립니다. 아이들 또한 믿음 가운데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주 무료로 제공되는 점심을 통해 성도 간의 아름다운 교제와 본예배 후 구역모임 및 각종 부서활동이 운영되어 초대교회의 섬김과 나눔의 모습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영훈 목사님의 깊은 사랑과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시는 동북아선교회 회원님들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조용기 목사님이 눈물로 이루신 일본선교 38주년을 맞이하여 2015년 9월 21일 동경 나카노 제로홀에서 기념성회가 열립니다. 일본을 향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님들의 아낌없는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성도님들의 기도로 일본 일천만구령은 꼭 이뤄지리라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박문례 선교사(우간다)

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 공화국’에 심은 순복음 열정  
미티야나순복음교회 통해 성도들에게 꿈과 비전 세워  
“주 안에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신앙으로 양육  
예수님의 사랑으로 고아와 어린이 교육에 앞장서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리는 ‘우간다 공화국’은 인구 약 3590만명(2014년 기준)으로 아프리카 동부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수도는 캄팔라로 영어, 우간다어, 스와힐리어를 쓰고 있고 농업 국가입니다. 주변국가로 케냐, 르완다, 탄자니아, 수단, 콩고 동서남북의 국경을 이루고 있어 복음의 요충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간다 퍼스트레이디 자넷 무세비니는 교회 설교에서 “소도 동성애를 하지 않으니 인간도 동성애를 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반동성애법을 지지하고 통과시킨 작고 가난하지만 저력이 있는 민족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해외 원조가 줄어 과중한 세금징수, 테러의 위험, 전염병으로 삶과 죽음에 항상 노출되어있고 무지하고 가난의 큰 무게를 짊어지고 가면서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외치며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나라가 우간다입니다. 

 미티야나순복음교회(MITYANA NEW LIFE CHURCH UNDER YOIDO MISSION)는 하나님의 작품이십니다. 2004년 처음 선교지에 발을 딛고 영혼 구원을 외치며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아래 먼지를 마시며 금식하고 기도하며 아이들과 함께 온 타운을 휩쓸고 전도를 했습니다. 말씀이 살아있고 기도가 응답되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은혜를 눈으로 보면서 저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제가 꾸는 꿈을 내려 놓아야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한 영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라하시고 저는 조금만요 미루다가 어느 날 말라리아로 눈이 멀고 죽음에까지 가서야 “주님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하고 간 곳이 미티야나라는 도시입니다. 교회 개척 당시 참 힘들었던 것은 열악한 환경도 아픈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수를 꽂고 날선 칼을 휘두르는 말쟁이들 때문이었습니다. 말쟁이들을 빼고 나니 제 주위에 동료는 없고 하나님만 제 옆에 계셔서 저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일으키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렇게 8개월간 나 홀로 가정교회를 마치고 6평 정도 되는 현지인 방 2개를 얻어 2009년 5월 미티야나순복음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5살 반 한 소녀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의 품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한 소녀의 구원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작은 순종의 상은 참으로 컸습니다. 주님은 하나에 충성되었기에 더 많은 영혼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여러 개의 지교회가 개척이 되었고 영혼들도 늘어났습니다. 그 밖에 학교와 목회자 양성을 위한 조그만 신학교와 장학사역을 통해 어린 영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개인 마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작은 소녀의 꿈입니다. 고아와 가난한 가정을 위한 유치원 과정인 헬프센터(help center)의 시작으로 복음이 전해지면서 한 소녀는 예수님을 만났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무료로 고쳐주고, 선교사님처럼 되고 싶다던 소녀의 꿈을 지켜주고 싶어 학교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많은 아이들이 모입니다. 귀한 어린 영혼들의 희망과 소망 그리고 꿈을 주고 지켜주기 위해 어른 성도들이 먼저 꿈과 비전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조이 스쿨(JOY SCHOOL)’ 기쁨 유·초등학교는 꿈이 만들어 낸 학교입니다. 성도들이 사비를 털어 나무 기둥을 사고 화장실을 파고 소똥과 진흙을 가져와 벽을 막고 멀고 험한 길을 지나 20ℓ 물통을 머리에 이어 나르는 사랑의 헌신과 믿음의 기도가 제2의 제3의 학교가 되었습니다. 그중에 제3의 학교 은냐루테테 조이 스쿨은 놀라운 꿈과 비전의 실상입니다. 



 은냐루테테에 가는 길은 정글을 연상케 합니다. 실제로 교회로 들어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다시 돌아서 나오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시작한 교회는 말이 교회지 나무 가지와 비닐을 덮어 만든 작은 비닐하우스를 연상케 합니다. 그곳에 꿈과 미래가 자라고 있습니다. 처음 은냐루테테 성도들은 나무와 진흙 소똥으로 만든 양철지붕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양철판을 하나 둘 사서 모으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교회 먼저 짓고 학교나 병원이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한 성도님의 양철지붕 후원으로 5개 소똥 진흙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기적을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큰 물질이 없어 아주 느리게 기둥 하나 하나가 세워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저는 고맙고 마음이 짠하고 감사하여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질이 없어서 할 수 없다” “교회가 없어서 의자가 없어서 예배들 드릴 수 없다” 이런 말에 “절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은 물질이 성전이 되고 그들의 꿈과 비전이 예배의 부흥을 일으키는 모습에 저는 항상 배우고 감동합니다. 아프리카 성도들이 일어나서 한발 한발 선교를 위해 발을 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한발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보면서 시골 농부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시켜 쓰시는 멋진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아프리카 영혼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같이 영혼을 구원하자고, 꿈을 꾸자고,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고, 빈 손 들고 외치는 것 같으나 그들은 참 용기와 희망과 꿈과 비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를 선교사처럼 만들어 주는 이들과 함께 손잡고 오래도록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프리카 영혼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함께 손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간다의 모든 사역의 결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성도님들의 헌신과 기도가 낳은 열매입니다. 그리고 더 굳건히 손잡아 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 기도를 통해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주를 위해 헌신하리라 저는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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