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목사(호주 멜본순복음교회)

호주 멜본을 성령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매진

공장건물 구입해 성전으로 사용, 교회 부흥 가속화
캄보디아, 중국 등 선교에도 앞장서는 교회
 

 저는 26년전 중소기업의 중견사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 현장 근무를 마치고 한 달동안 여행을 하려고 했습니다. 호주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며 휴가를 보내고자 호주에 입국했던 평신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저는 지금까지 26년동안 단 한번의 다이빙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호주 뉴캐슬과 고스포드 그리고 세번째로 이곳 멜본이라는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세번의 교회 개척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저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호주’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캥거루’와 ‘코알라’라는 동물과 함께 순하고 정직한 호주인들 그리고 삶에서는 한 박자 템포가 느린 여유 있는 쾌적한 환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호주는 사실 기독교문화를 배경으로 시작한 나라이긴 하지만 현재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영적인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다행스러운 것은 오순절 교단의 힐송교회와 함께 각 도시에 많은 교회들이 열정적인 찬양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순수한 복음적 신앙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특히 제가 사역하고 있는 인구 약 450만의 호주 ‘멜본’은 한때 교회마다 매너리즘에 빠져 목회자들이 교회 부흥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조용기 목사님이 오셔서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교회부흥에 큰 도전을 주셨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멜본은 유럽과 영국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고풍이 있는 도시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1996년 12월 15일 첫 예배를 가족들과 함께 드리므로 멜본순복음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당 건물도, 성도도 없는 낯선 땅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항상 묘한 설렘과 함께 두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삿짐을 싣고 도착하던 날, 아무도 환영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이삿짐 하나 들어줄 사람 없었던 막막하기만 했던 그때 그 시간을 떠올리면 제 앞에 어떤 난관이 있다 해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 개척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조용기 목사님 설교를 통해 하나님 주신 비전(꿈)을 갖고 멜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회, 영적인 장자의 교회를 마음에 그리며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꿈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대하며 기도 했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는 말씀에 의지해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공항을 오가며 6개월간 비행기에서 내리는 분들에게 다가가 전도했습니다. 멜본에 처음 도착 하신 분들에게 집을 얻어드리고 집을 얻을 동안 그분들에게 숙식제공을 해드리며 섬기면서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의 말씀을 그들과 나누며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이민교회들이 겪는 공통된 어려움 중 하나가 자체 성전이 없다는 불편함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당시 비록 적은 숫자의 성도들이었지만 매일 새벽마다 또 금요일 밤마다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사택거실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던 저희들에게 하나님은 매일매일 모이는 수를 더하는 교회부흥을 선물로 주셨고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에 하나씩 하나씩 응답해 주셨습니다.
 외로운 지역 노인들을 정성으로 섬기는 일,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푸른 꿈을 갖고 이 땅에 온 젊은이들에게 이곳에 온 목적을 정기적으로 상기시키며 격려하는 일, 교민 사업장들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 해주는 일 등을 통해 한 분 두 분 주님의 몸된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는 분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유학생들 위주의 모임을 가진 교회모습이었지만 이제는 그 청년이 자라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어 지금은 어린이를 포함하여 약 400여 명의 성도님들이 모이는 교회로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는 지역에 있는 공장건물을 구입하게 하셔서 마음 놓고 예배 드릴 수 있는 교회건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난과 무지로 인하여 복음이 더욱더 필요한 캄보디아 땅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그곳에 교회당을 지어주고 물이 없는 마을에 우물을 파주고 감옥 안에 죄수들에게 소망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에 영적인 지도자를 훈련시켜 지역을 영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며 지원하는 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추천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일, 북방선교의 일환으로 중국 단동지역에 의료 선교를 지원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재작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캄보디아 현지에 있는 저수지에서 약 600명 가까운 예수 믿고 구원 받은 분들에게 침례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조용기 목사님의 교훈을 늘 보고, 들으며 자라난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멜본순복음교회는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불신자는 구원, 낙심자는 회복시켜 헌신케하며 이들을 사역자로 양육하는 교회’라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금요 기도모임 때마다 성도들과 함께 ‘불신자를 헌신자로! 헌신자를 성공자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호주 멜본이 성령의 도시로 변화되도록 기도와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늘 선교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세계 최대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있음은 우리의 자랑이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 뵙는 그날까지 계속 주신 사명을 위해 힘써 달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명준 선교사(파라과이 남미순복음델에스떼교회)


한인 및 현지인 복음화 위한 선교센터 교육관 완공

경제적 어려움 딛고 똘똘 뭉친 성도들이 이뤄낸 결실
창립 32주년 향한 달음질 ‘하나님 앞에서’ 헌신 다짐

 

]할렐루야! 새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파송 선교사로서 늘 교회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저는 파라과이 씨우닫 델 에스떼에 위치한 남미순복음델에스떼교회를 섬기고 있는 장명준 선교사입니다. 2001년 멕시코 원주민 사역을 시작으로 2002년 멕시코시티에 주 다스림 순복음 한인교회 개척, 현지인 교회 개척과 치아파스 지역의 쏘칠 종족 복음화를 위한 사역을 진행했고 2004년 5월, 파라과이의 제2의 도시인 씨우닫 델 에스떼(Ciudad Del Este)로 임지를 이동하게 됐습니다. 남미의 심장이라 불리는 파라과이는 아순시온이 수도이며 크기는 남북한을 합한 면적의  약 2배 정도에 해당됩니다. 2017년 외교통상부 자료에 의하면 파라과이 인구수는 689만 명이며 언어는 스페인어와 현지인 원주민어인 과라니어,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파라과이 동쪽에 위치한 씨우닫 델 에스떼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관광지 이과수 폭포가 인접한 관광과 상업 중심의 도시입니다. 하지만 인접한 주변국의 복잡한 경제 구조와 세법, 전자·의류 등 다양한 상품은 물론 마약, 무기류가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어 세계적인 블랙마켓이라는 어두운 면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중남미 사람들은 물론 중동, 아시아 등 다양한 인종들이 거주하며 한국인도 지난해 11월을 기준으로 472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남미순복음델에스떼교회는 한인 성도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던 교회였으나 2004년 제가 부임했을 때 지역 경제·사회적 어려움으로 많은 한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역이민을 떠났고, 그 무렵 교회의 분쟁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임 즉시 먼저 한 일은 분열된 한인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의지해 밤낮으로 예배하고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화해와 일치의 물결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역한 지 14년이 지난 현재 남미순복음델에스떼교회는 성도들의 헌신과 수고,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남미선교회의 끊임없는 기도와 관심에 힘입어 많은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지난 2012년 우리 교회에 새로운 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디아스포라 한인들의 다음 세대와 현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비전센터 교육관 건립이었습니다.   이 비전센터 교육관은 비좁은 한인 교회학교 예배실과 식당 확장, 실내 체육관, 영아·유치부를 위한 놀이터, 현지인 연합 찬양예배 시설 확충이 목적이었습니다. 건축에 앞서 성도들과 무리한 건축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한인 성도들의 삶은 날로 어려워져 갔고, 이로 인해 교회의 비전은 커녕 사역이 위축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 3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의 열매로 하나님은 비전센터 교육관(사진 위) 건축 부지를 구입할 수 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2016년 12월 축복 속에 비전센터 교육관의 첫 공사가 시작됐고 1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2017년 11월 24일 비전센터 교육관 준공 감사예배를 은혜 가운데 드렸습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기도와 열정으로 건축된 비전센터 교육관 건축은 기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인 사역과 6만6000평의 수양관 관리, 4개 현지인 지교회 지원과 보조 사역, 한인과 현지인 대상 장학금 지급, 타교단 선교사 후원, 이웃들에게 늘 나누는 일들까지 여전히 이어질 수 있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사역에는 순종과 희생의 본을 보인 성도들의 수고와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똘똘 뭉쳐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한 성도들 덕분에 앞으로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까지 마련됐습니다. 현재 남미순복음델에스떼교회는 한인 사역과 함께 4개 현지인 지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한인 사역은 안정화를 이루었고 현지인 4개 지교회 중 3곳이 모두 자체 건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2018년 남미순복음델에스떼교회는 “하나님 야훼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 27:6)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어를 가지고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창립 32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만큼 새로운 지교회 개척과 다양한 교육 및 구제, 선교, 찬양 사역 감당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듣고 말하고 겸손히 행동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미순복음델에스떼교회가 불같은 성령의 능력과 오직 야훼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그래서 더욱 강한 영적 군사로 맡겨진 사명 잘 감당토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중남미의 9개 나라 16명의 선교사들과 200여 개 지교회를 위해서도 중보기도를 요청드립니다.


김선자 선교사(코트디부와르)

코트디부와르에 순복음의 희망 전해


내전 속에 하나님 의지하며 교회개척 앞장
현지인들, 조용기 목사 성회 기억하며 희망 가져

 할렐루야! 저를 보내신 이의 사랑에 힘입어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가 인사를 드립니다. 코트디부와르(아이보리코스트)는 비가 많이 와서 대체로 땅이 비옥하여 주변 서아프리카에 비하여 환경이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전체인구 2200만명 중에 26%가 거의 주변나라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입니다.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서 주일은 당연히 교회에 가지만 종교가 많이 혼합되어 있으며 형식과 서류에 얽매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4년 전부터 이 나라 무슬림들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내와서 초청 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모스크로 향하는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부쩍 늘어난 상태입니다. 복음화율은 개신교가 15%, 가톨릭이 20%, 무슬림이 35%, 토속신앙이 20%, 타종교 10% 순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님의성회 소속 교회들이 열심히 사역하며 부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곳에서는 항상 인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길을 물어볼 때도 꼭 인사부터 해야 합니다. 인상이 고약한 사람에게도 ‘봉∼주르’(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하면 완전히 순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합니다. 또 처음 가는 빌리지에 도착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추장집부터 가서 신고를 해야 합니다. 시골은 아직도 주술행위가 심해서 한번씩 빌리지에 갔다오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과 중보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이 곳은 1999년도에 내전이 시작되었고, 2001년도에 조용기 목사님께서 성회를 하셨습니다. 이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목사님이 성회를 하셨고, 갈급했던 성도들이 목사님 말씀을 통하여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님을 알고 있으며, 그 당시 옆에서 성회일을 도왔던 현지인 목사님과 함께 협력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성회 때 조용기 목사님께서 코트디부와르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코트디부와르 교회와 성도들은 본인들이 순종을 하지 않아서 이 나라에 내전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기도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교회들에 약간의 타격이 있었으나 지금은 환난 후에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 다시 내전이 일어났고, 지난해에 참으로 어려운 내전을 또다시 겪으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 주신 것을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터진 내전 중에 피난을 못갔는데 교회주변지역에 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 몇 명과 아기, 학생들과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숨죽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나 우리의 기도소리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에 갑자기 계속 대포와 총을 쏘아대는데 아파트 전체가 다 흔들렸습니다. 총을 들고 문앞까지 온 것 같아서 성도들에게 “우리는 이 순간 죽어도 천국에 갈 것이니 담대하게 마음을 먹자”고 했습니다. 모두가 “아멘”으로 대답을 했는데 그 순간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총을 쏘던 반군들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그 이튿날 아침에 확인하니 벽에 탄피가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지하벙커에 숨어있던 대통령을 향해 밤새도록 폭격을 가하더니 이튿날 잡히고 내전이 끝이 났으나, 지금도 산발적으로 불씨가 일어나면서 군인들이 여러 명씩 죽고 치안이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기도하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전을 치르고 나서 참석한 지난해 선교대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도 특별했습니다. 선교대회 끝나고 돌아와 교회수리를 하면서 감사가 넘쳐났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갑자기 교회주변 동네와 교회를 강제철거 했습니다. 2주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도시빈민들이 돈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보상도 없이 도로변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도둑도 설치면서 교회에서 부설로 하던 학교(교실 3칸과 유치원)도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당장 교회가 짐도 옮길 곳도 없어 긴 장의자만 근처 초등학교에 보관하였다가 빌리지 교회로 가져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철거된 빈민 교회는 처음 뵙는 장로님의 관심과 선교의 열정으로 세워진 귀한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무너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고 떨리기만 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 주님은 저를 빌리지(방기에)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진흙탕길이 깊게 파여서 대중교통 차량이 없고, 영업용 오토바이 뒤에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도, 하나님이 기뻐하셨는지 감사의 눈물이 넘쳐났습니다. 건축자재는 중간도시에서 사서 싣고 들어가며, 물건을 사가지고 갈 때는 트럭에 함께 타고 가면서, 차가 웅덩이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마음을 졸이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차가 서버리면 도둑과 강도들에게 물건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셨고 건축할 때는 자동차가 없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주님께서 선교개척국을 통해 튼튼한 자동차를 주셔서 감사하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도 어느 권사님의 손길을 통해 건축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손길로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으로 넘치도록 다시 채워 주신 줄 믿습니다. 앞으로 멋쟁이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저와 빌리지 주민들을 또 놀라게 하실지 기대됩니다.

 며칠 전에 아그보빌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신 곳인데 중간에 사탄의 방해로 이제야 들어가게 되어서, 10월부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워진 두 빌리지 교회를 연결시켜주는 길목이고, 빌리지로 들어가는 숲 속 군데군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서 전도를 해야하는 사명 때문에 지금 새로 개척된 교회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그 교회에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으니 길도 내실 것이며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가기를 바랄뿐입니다.

 1992년도에 남편 장태식 선교사와 저와 아들은 알지도 못하던 서부아프리카 모리타니아로 파송되었습니다. 남편은 불같이 타오르는 선교열정을 갖고 온 서부아프리카의 교회개척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 당시 서부아프리카는 선교가 열악해 이곳을 찾는 선교사가 적었습니다. 남편은 10년정도 서부아프리카를 위해 기도하더니 복음을 활발하게 전할 수 있도록 순복음교회를 하나 더 개척해보겠다며 2002년도에 코트디부와르로 왔습니다. 하지만 10년된 나무를 뽑아서 다른 곳에 옮겨 심어 자라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프게 되면 선교지를 들어갈 수 없으니 건강검진도 스스로 안받고 하나님께만 맡겼었고, 2008년 선교대회를 마치고 현지로 돌아오기 3일전 남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뿌려놓은 기도로 인하여 아내 된 제가 사역하고 있으며, 아들 영호도 지금 신학공부를 하며 선교사의 길을 준비하고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순수하게 선교하셨던 아빠를 존경한다는 고백을 아들의 입술을 통해 들었을 때, 자식걱정 안하고 이곳에서 홀가분하게 사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사랑과 관심과 배려로 기도해주시며 마음을 담은 물질까지 후원해주신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 모든 성도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곳에서 이 나라의 한 부분을 위해 성실히 사역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두가 주 안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용만 선교사(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에 순복음의 희망 심고 은혜의 열매 맺는다

마약중독, 10대 자살률, 이혼율 유럽 1위
중독자 위한 재활사역, 신학교 운영하며 복음화 주력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당회장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뜨거운 기도에 힘입어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이곳 우크라이나는 한국의 성도님들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처음 우크라이나로 선교를 나갈 때,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우즈베키스탄…” “우루과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드리고, 그간의 사역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프랑스보다 조금 큰 크기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며, 한국의 6배 정도의 크기입니다. 동북쪽은 러시아, 북쪽에 벨라루스, 서쪽에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지형학적으로는 국토의 98%가 평지이고, 산지는 2%에 불과합니다. 제가 사역하는 도시에서 산을 가려면, 가까운 곳은 500km 정도, 멀리는 1000km를 가야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내륙은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7월이 가장 덮고 온도는 평균 23도이지만, 최고 온도는 43도까지 올라 해마다 폭염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추운 12월, 1월에는 평균 영하 10도 정도를 유지하지만, 특히 제가 사역하는 동부지역은 차가운 시베리아 풍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는 최저 온도 영하 42도까지 내려가는 아주 추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오랜 동맹을 단절하고 유럽과 서구세계와 수교를 맺고 있으며 비록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러시아, 터키, 유럽의 영향권의 교차로에 자리 잡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경제와 특히 선교의 미개척 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음주량 세계 5위(한국은 13위, 2010년 세계보건기구 통계)를 자랑(?)하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가장 마약중독자가 많은 나라, 유럽에서 10대 자살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유럽에서 이혼 가정이 가장 많은 나라(이혼율은 약 36% 정도 된다고 함) 등으로 유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동거하며 살고(이것을 합법적이라 생각하는 문화가 평범화 되어 있습니다) 이혼과 불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흔한 경우입니다. 특히 중독자 자녀들 대부분이 청소년 탈선, 정신장애, 혼전관계, 낙태 등이 한국의 몇 배나 되는 아주 심각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보면 10대 초반의 남녀 아이들이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보드카를 마시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나라, 눈물 없인 선교 할 수 없는 나라, 그래서 더 많은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해야 하는 나라, 복음의 어장인 나라입니다.



 구소련에서 독립 한 이후 자유의 물결 속에 기뻐했던 1996년 조용기 목사님께서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대성회를 인도하신 이후에 매일 수천 명씩 교회로 몰려들어 당시 국민의 80%가 예수님을 믿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세상으로 다 빠져나가 복음화율이 15%도 안됩니다. 그래서 잃은 양이 국민의 50%나 됩니다. 과거 구소련권인 CIS가 다시 종교적인 문이 닫혀지고 있는 이 때, 유일하게 복음의 문이 열리는 나라가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는 100여 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국가입니다. 종교 상황을 보면, 국민의 약 60%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정교회 신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만, 국교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2009년 조사를 보면 종교를 가진 사람 중 51%는 정교회, 28.4%는 개신교, 12%는 가톨릭, 4%는 이슬람 그 외 기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곳은 우크라이나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인 자포리쟈입니다. 인구는 100만 명 정도이고 한국의 울산처럼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공업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교회와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재활사역과 제자양성을 통한 복음화 사역을 위해 신학교를 통해 교육하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현재 교회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성인교구로 나누어 각 부서에 사역자들을 배치하여 사역하고 있으며, 성인교구를 구역조직화 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중고등부와 청년사역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신학교는 올해로 9회 졸업생을 9명 배출하고, 13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여 현재 50여 명의 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지난 9년간 기도훈련, 영성훈련,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4년 동안 훈련받은 졸업생들이 우크라이나 각 도시에 나가 교회를 세우는데, 현재 39명이 나가서 개척을 하고 있고, 이 중 10명이 30∼100명 정도의 성도를 섬기고 있으며, 향후 5년을 기점으로 100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비전을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교회와 복음 외에는 마약중독자들을 치료할 대안이 없기에 여러 제자 교회에서도 현재 마약중독자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저희교회도 현재 15명 정도를 수용해 치료와 재활을 하고 있으며 영적으로 매일 성경통독, 묵상, 기도, 체력단련을 통해 많은 형제들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6개월간의 재활을 통해 회개하고 성령체험을 하고 기름부음을 통해 주님과 진심으로 교제하는 법을 배우며, 그 후 교회에서 1년을 봉사한 후 주님께 헌신된 자들은 신학교로 들어와 신학을 하고 주의 종이 되어 복음을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가 됩니다. 현재 많은 제자교회 목회자들도 중독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고 그들이 또 마약 센터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신학을 졸업한 제자들이 교회를 세워 우크라이나 각 지역에 교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매달 제자교회들을 돌아보고 설교를 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 나가는 연합사역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기도와 후원을 통해 돕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들께서 구 소련(CIS)지역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부족한 제가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잘 깨달아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치완 선교사(인도네시아)지붕에 확성기 달고 방언 기도하며 영적 승리에 힘써 

인도네시아를 성령의 땅으로!   
20년 만에 열린 조용기 목사님 성회는 올해 최대의 은혜
지붕에 확성기 달고 방언 기도하며 영적 승리에 힘써 


 “빨리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라”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신 주님의 음성이었다. 교육연구소에서 여름휴가를 앞당겨 겨울에 받아 인도네시아를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밤에 비행기가 김포 공항에 착륙하려고 할 때 창문으로 김포 지역에 있는 많은 교회들의 십자가 빨간 불빛이 비취면서 형언 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주신 음성이었다. 주님의 음성에 따라 우리 가족(아내와 3년 반, 6개월 된 두 아들)은 한 달 만에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과 사역을 정리하고 1990년 3월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는 현대와 고대가 섞여 있는 나라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문화와 풍습을 지닌 나라이다. 자카르타는 현대적인 빌딩들이 즐비하고 파푸아의 와메나 섬은 세계에서 제일 뒤떨어진 오지가 있다. 그래서 루스터커는 한국에서 ‘선교사 열전’이라고 번역된 책의 원 제목을 ‘from Jerusalem to Irianjaya’라고 하여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일 오지인 이리안자야까지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리안자야를 지금은 파푸아로 부르고 있다. 지구상에서 아직 식인종이 살고 있는 곳이 있다면 와메나의 발견되지 않은 숨겨진 부족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므로 인도네시아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부족마다 문화와 풍습들이 다 다른 것이다.

 반둥에서 1년 간 언어 공부를 마친 뒤 우리 가족은 점벌 신학교가 있는 자바섬 동부의 점벌시로 옮겨 오게 됐다. 그 곳에서 신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오후엔 병원 전도를 했다.
 1992년 1월 자카르타 스나얀 경기장에서 조용기 목사님 초청 대부흥 성회가 열렸다. 3일간 연인원 45만 명이 참석하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3만 여 명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결신했으며 수많은 신유의 기적이 나타났다. 마지막 날 조용기 목사님은 모든 성회 참석자들과 함께 여리고 성을 돌았다. 스나얀 경기장을 돌며 인도네시아의 모든 흑암의 세력들이 무너져 내림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성회 기간 중 짬을 내어 목사님께 “앞으로 자카르타에서 사역을 할까요, 말랑에서 사역을 할까요?” 여쭈었더니 조 목사님께서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고 하셔서 기도하는 가운데 말랑으로 오게 됐다. 1992년 말랑으로 와서 점벌을 오고 가며 신학교 강의를 하고 말랑 병원 전도를 했다. 그러던 중 성령님께서 “수꾼 지역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라. ‘수꾼’이 선교 지역, 빛의 지역, 파수꾼의 지역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1993년 4월 수꾼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 말랑 수꾼에서 사역하고 있다. 수꾼에 신학교를 세우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기술 고등학교를 열게 됐다. 신학교를 통해서는 주의 종 선교사들을 배출하고 교육 기관을 통해서는 평신도 선교사들을 배출하고자 한다.

 1994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제2 도시인 수라바야에서 조용기 목사님 초청 대성회가 열렸다. 연인원 15만 여 명의 성도가 참석했고 교역자 세미나에는 1만 여 명이 참석했다. 수라바야 성회에서 기억되는 놀라운 일은 성회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성회 장소는 마치 하늘이 뻥 뚤려 열린 것처럼 화창하게 한 방울의 비도 없고 성회장소 스타디움 바깥쪽에서는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는 기적의 현장이었다.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사건이었다.

 그 다음 해인 1995년 조용기 목사님을 초청 이리안자야 성회는 그야말로 인도네시아 성회 중 최고의 성회이었다. 도지사 부부가 중심이 되어 성회를 위해 기도하며 힘썼는데 도지사 부인은 새벽 1시에 성회 장소에 나와서 악의 영을 묶는 기도를 했다. 성회 시간에는 이리안자야 섬의 수도격인 자야뿌라 도시가 텅텅 비었다. 자야뿌라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성회 장소에 참석한 것이다. 성회 장소를 꽉 메운 성도들로 성회 장소는 은혜의 도가니였다. 조 목사님께서 도지사를 위해 안수기도 해 주실 때 우람한 체구의 도지사는 감격의 눈물을 철철 흘렸다.

 말랑 사역지에 조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갖는 소원이 있었다. 그 소원이 2002년 7월 15일 이뤄지게 됐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말랑 수꾼 사역지에 오신 것이다. 10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한량없는 감사를 드린다. 목사님께서 오신 후로 변화된 것은 설교를 매주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에 근거하여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10년간을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에 입각하여 설교하니 복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주님 주시는 귀한 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올해 자카르타 스나얀 경기장에서 20년 만에 조 목사님께서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20년 전 여리고 성을 돌았던 그 장소였다. 여리고 성을 돈 후 20년 간 어떤 일이 벌어졌나? 인도네시아가 기도로 뭉치게 됐다. 20년 후에 열린 이번 성회는 인도네시아 350개 도시에서 동시에 기도 성회로 가지고 350개 도시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흑암의 세력이 무너지고 승리의 함성이 기도로 울려 퍼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조용기 목사님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2024년까지 말랑의 수꾼에서 계속 사역할 것을 말씀하신다. 내년에는 교회 설립 20주년이 되어 4월에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을 모시고 아세안순복음총회 선교사님들과 함께 세미나와 교회 설립 2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게 된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새벽을 깨우는 종교가 그 나라를 좌우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사원에 확성기를 달아놓고 새벽 3시 경에 코란경을 읽는다. 우리 교회의 지붕에도 확성기를 달았다. 우리는 새벽 2시에 30초 간 방언 기도로 새벽을 먼저 깨우고 있다. 주님께서 이 믿음의 행동을 받으실 줄 믿는다. 기독교가 인도네시아를 좌우할 줄 믿는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믿음과 사역의 동역자로 주심에 감사드린다. 아내는 세상에 또 태어나도 선교를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신바람이 나서 선교를 계획하고 생각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앞으로의 비전은 유치원부터 기술 고등학교까지 있으니 기독 대학이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꿈꾸고 있다.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와 세계를 복음으로 살리는 평신도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복지 타운이 세워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하고 꿈꾸고 있다. 복지 타운을 통해 봉사 요원들이 인도네시아 어느 지역이건 복음과 함께 의료와 기술을 가지고 달려가기를 바란다.
 주님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주님 재림을 준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 오시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겠다. 엘리사의 시대에 7000인을 남겨두신 주님께서 그 시대에 그들을 사용한 것처럼 주님 재림이 가까운 이 시대에 7000인과 같은 주의 사역자들을 우후죽순처럼 일으켜 세계 선교와 복음화에 귀히 쓰시기를 바란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이동준, 이숙희 선교사(멕시코)

“디오스 레 밴디가”(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멕시코 엔세나다에 순복음의 영성 심어 믿음 전해 
인디오 원주민 위한 아동사역, 제자훈련에 주력


 샬롬, 주 안에서 평안하십니까? 새해를 맞이하는 멕시코는 새로 선출된 대통령 페냐 니에또에 대한 큰 희망과 기대로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마약에 대한 정부의 전쟁선포로 많은 지역들이 위험하게 됐고 정부의 부정부패로 국민들은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2013년도 새해를 맞이하는 순복음 가족 성도 여러분들의 교회와 생업에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함께 하시고 평강 주시옵기를 축복합니다.

 저희는 북미총회 소속 선교사입니다. 2008년 코스타리카에서 스페인어 언어연수를 일년동안 한 후 멕시코 후아레스(Juarez)에 와서 일년 반 동안 현지 선교사님들과 선교필드훈련을 하고 엔세나다(Ensenada)에 들어온지 일년 반이 지났습니다. 정든 교회와 집을 떠난지 벌써 4년이 넘어오네요.

 통계에 의하면 멕시코의 헌법상으로는 국교로 정해진 종교는 없지만 가톨릭이 82.7%(2010년)이고 기독교는 9.7%입니다. 기독교의 부흥으로 점점 가톨릭의 숫자는 성장저하 추세입니다. 멕시코 도시마다 곳곳마다 교회들이 세워지고 교인들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이 생겨나 우후죽순격으로 교회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목회자들을 ‘파스톨’(Pastor)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정식 신학교육과 교단을 통하여 안수를 받는 절차를 불문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을 다 ‘파스톨’이라고 부릅니다. 목자라는 뜻이지요. 적어도 50퍼센트는 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학교육이 필요하고 리더십 훈련, 목회 훈련 등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식 교단으로서 수준과 실력있는 지도자들을 만들어 내는 사역이 시급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도자 양성에 초점을 가지고 제자훈련을 통해 주님의 제자들과 지도자들을 세워가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인구는 1억 1300만 정도가 됩니다. 그 중에 1100만명이 인디오 원주민입니다. 약 10%가 되지요. 1519년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즈텍 문명의 인디오 원주민들을 학살한 역사는 인디오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3000만명 중에 300만명을 죽였다고 하나 사실은 절반이 되는 1500만명을 죽였다는 역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멕시코는 120개의 원주민 언어가 있었는데 점점 사장되고 현재는 68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겉모습은 스페인 계통과 혼혈된 멕시코인들과는 다릅니다. 한국인의 옛날 시골 농부들의 겉모습을 기억케 해줍니다. 

 티화나(Tijuana) 지역에 신학과정을 만들어 감옥과 어두운 삶을 살아온 삶을 청산하고 새생명으로 태어난 형제 12명이 현재 재활원(Fuente de Esperanza)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특수지역을 위한 사역자들로 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범지대, 감옥, 마약중독자들, 재활원사역 등 일반인들이 하기 어려운 사역에 특공대로 투입될 기대를 합니다. 이 사역을 시작한지 일년이 되어 옵니다.

 저희들이 살며 사역하고 있는 지역은 엔세나다(Ensenada)에서 남쪽 30분 거리에 위치한 마네아데로(Maneadero Parte Alta)이며, ‘오벧에돔의 집’ 선교센터로서 인디오 원주민들을 위하여 아동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오하까(Oxaca) 인디오들이며 그들의 언어는 띠라끼(Tiriqui), 미즈떼꼬(Mizteco)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에게 오전에는 두시간동안 성경이야기를 들려주며 복음을 전하고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녀온 아동들에겐 방과후 숙제를 돕고 있습니다. 맛있는 멕시코 전통음식을 준비하여 점심 식사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정은 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농장에서 일하려고 오하까(Oxaca)지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사는 지역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에는 농장에서 일하기 위하여 온 인디오 원주민이 5만명으로 추산합니다. 대형 농장들이 많이 있어 토마토, 오이, 양파, 아스파라거스, 양배추 등을 생산하는데 종사하고 있습니다. 생산품은 주로 미국으로 갑니다. 그들의 하루 일당은 한화로 약 만원입니다. 이 곳은 미국보다 물가가 15%가 더 비싸기에 생활은 아주 열악합니다. 농사가 없는 겨울에는 하루의 끼니를 이어가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엔세나다 도시에 거지로 전락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인디오 원주민들입니다. 겨울이면 저희 센터에 먹을 것을 구하러 오기도 합니다.

 저희 센터에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40∼50여 명의 아동들이 옵니다. 아이들이 적응 못해 학교에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부모님과 아동들 중에는 출생증명서도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복음과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은 저희를 부르신 주님의 사명입니다. 새생명을 받은 저희는 주님께 대하여 복음과 사랑의 빚을 졌기에, 그들을 향하여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들이 스페인어를 배우고, 학교에 가게 되며, 사회에 진출하여, 성장한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에 등대의 역할을 할 지도자로 세움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사는 지역의 주변에 세 교회(Mesiah, Los Pirules, San Telmo)를 세워 교회개척 사역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역하는 미겔 목사님, 루벨리 목사님은 열정적입니다. 그들은 신학교도 졸업했고 신실한 디모데와 같은 목회자들입니다. 어려운 인디오 원주민들과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며 성령충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에는 싼뗄모 교회 대지를 구입하고 성전건축을 하여 35명의 교인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급성장하기에 속히 건축을 했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인디오 원주민들과 지역에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시간은 제한되고 몸은 하나이기에 마음만 바쁠 때도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뒤에서 기도해주시는 순복음가족들과 선교후원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일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계에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윤호용 목사(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알래스카의 젊은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알래스카의 젊은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문화 전파 힘써
 ‘예배자·중보자·전도자’로 알래스카 변화 기대

 
 앵커리지(Anchorage)는 미국 알래스카 주 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주 도는 아니지만 상공업과 금융, 문화, 관광의 중심지이며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도시로 알래스카 전체 인구(약 74만명)의 40% 이상이 이곳에 살고 있다. 알래스카에 거주하기 시작한 건 가족이 이 곳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서부터다. 사역은 이곳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후 신학공부를 마치고 뒤늦게 시작하게 됐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앵커리지에 교회를 개척한 건 2005년 7월 10일이었다. 가정에서 시작된 첫 예배에 참석한 성도는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전부였다. 그 후 10월 23일 작은 성전을 구입하고 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 첫 입당예배를 드렸지만 이민교회 사역이 어려운 만큼 전도의 열매는 좀처럼 맺히지 않았다. 알래스카는 지도상에서 북반구에 위치한다. 그러다보니 겨울이 6개월간 지속되어 외부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이 기간 동안 실내 축구 경기를 즐긴다. 우리는 여기에 착안해 실내축구경기장을 찾는 많은 젊은이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청년들의 경기장 사용료를 지불해주는 대신 축구경기 시작 전후에 이들을 위해 짧게 기도를 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면서 친해지게 됐고, 이듬해에는 두 팀의 경기장 사용료를 후원하면서 더 많은 청년들과 친교를 가지게 됐다.

 교회를 개척한 지 3년 째 되는 해, 실내 축구를 통해 우리와 교류하던 청년들이 ‘더 이상 교회의 후원을 받지 않겠다’고 나섰다. 경기장 사용료를 스스로 충당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축구 외 모임을 교회에서 하겠다’며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는 알래스카 교회 중 청년들이 가장 많은 교회로 부흥하게 됐다. 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신 열매였다.

 교회는 청년들이 늘면서 활기를 띠게 됐고, 그만큼 다양한 활동에 나서게 됐다. 노방전도는 물론 노숙인 무료 급식 사역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또 청년들이 앵커리지를 비롯해 알래스카 전역에 크리스천 문화를 확산하겠다며 콘서트를 자발적으로 기획해 나섰다. 2008년 청년들은 인근 대학 콘서트홀을 빌려 ‘청년들은 환상을 보며’라는 주제로 제1회 콘서트를 열고 그날 이렇게 고백했다.
 “한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작고 연약했지만 큰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청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청년들을 교회는 주님의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여러 모양으로 살았던 그들은 사랑 안에서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울고 웃는 동안 세상의 즐거움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청년들은 함께함이 즐거워 이 즐거움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던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준 교회의 사랑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 우리에겐 교회가 있고, 교회에겐 우리가 있고,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이후 청년들은 해마다 ‘네 행복을 위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행전’ ‘십자가의 도’ 등 다양한 주제로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콘서트를 진행하는 이들이 교회 청년들이라는 것이 지역 사회에 알려지면서 청년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스스로 절제와 경건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교회 간 연합콘서트를 열어 선교 후원에 나서는가 하면 자신들을 부르는 곳이라면 몇 시간씩 거친 눈밭을 헤치고 달려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들에게 찬양으로 고백했다. 청년들을 비롯한 성도들이 늘면서 교회는 더 큰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교회 건축’이라는 큰 꿈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은 턱 없이 부족한 재정 상태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지역 신문 두 곳에 ‘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가 성전을 건축하니 기도해 달라’는 광고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타 교회 한 형제가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2주치 주급을 성전건축헌금으로 내놓으면서 성도들의 헌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성도는 김치를 만들어 팔고 그 수익금을 건축헌금으로 내놓았다. 청년들도 어른들에게 질 수 없다며 자신들의 정성을 하나님 앞에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턱없이 부족했던 재정(1만 달러)이 한 달 만에 30만 달러가 되면서 교회 개척 5년 만인 2010년 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새성전(현 위치)을 선물로 받게 됐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게 정말 맞았다. 이후 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는 앵커리지에서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이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됐다. 오순절 성령 운동을 통해 부흥을 경험한 성도들은 말씀 쓰기 운동, 사랑 실천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은 다 성령이 행하신 기적의 은혜였다.

 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는 ‘주님의 사랑과 섬김, 나눔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공동체’로써 한 걸음씩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지상명령을 이루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 ‘예배자·중보자·전도자’라는 비전을 안고 도시를 섬기고 사랑을 나누고 선교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파에 힘쓰며 범사에 오래참고 기도하는 교회, 어른을 공경하고 자녀를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며 청소년·청년들을 지원하는 교회가 되겠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 돌아온다. 해마다 그래왔듯 우리 교회 청년들은 지역과 이웃을 돌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전야 새벽송에 나설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이 사명을 온전히 지키는 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가 되겠다. 할렐루야. 메리 크리스마스!


이강산 선교사 (인도)

순복음의 열정으로 인도(하이데라바드)에 희망이 솟다


조용기 목사 성회 후 인도인들 비전 갖게 돼  
영산훈련센터 통해 훈련된 현지인 제자 양성하고파

 인도는 종교의 나라입니다. 힌두교에서 약 3억 3000가지의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신들을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주의 신에게 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이유는 자신의 집과 가족에게 오지 말아달라고 제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삶 구석구석에 종교성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종교의 나라 인도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힌두교 바탕의 공동체 생활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로 개종을 할 경우, 정부에서 주는 혜택이 끊기고 주변 가족, 친척들과의 관계도 끊어져서 중매결혼이 대부분인 인도에서 자녀의 결혼 길이 막히게 됩니다. 개종 이후 마을 공동 우물과 가게 이용이 금지당하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집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을 것과 기독교 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강요받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집을 헐고 그 위에 힌두 신전을 세우거나 핍박을 피해 새로 이사 간 마을에까지 사람을 보내 계속해서 핍박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인도에서 2012년 11월에 열린 조용기 목사님 성회는 대단히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수 년 전부터 조용기 목사님께서 하이데라바드에 오신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이번 성회에 거는 현지 사람들의 기대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성회 1달 전부터 조용기 목사님의 서적 재고가 모두 소진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고, 목사님의 방문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목사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걸음에 하이데라바드로 오기도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은혜받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을 본받아 기도와 성령으로 변화된 삶을 결단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2000년 3월에 파송 받아 인도에서 13년째를 맞이하면서 인도의 관문도시인 첸나이, 뭄바이, 뉴델리 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하이데라바드를 소개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 성회를 통해 성도님들께 알려지게 되어 기쁩니다. 하이데라바드는 다른 인도 지역에 비해 무슬림 인구가 많은 도시로서 인도의 영국 식민지 독립 때, 과격 힌두교도들이 무슬림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종교적 갈등이 심해져 테러가 일어나거나, 특수부대가 도시를 주둔하여 치안을 유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많은 기독교 선교 단체들이 이곳에 센터를 두고 북인도 선교의 교두보로 두고 있는 중요한 선교적 지역입니다.

 처음 인도에서 사역을 시작 할 때,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과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을 정탐하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의 제자양육을 묵상하며 훈련센터를 통해 현지인 제자를 양육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이데라바드에서 처음 개척한 호수순복음교회 성도인 암루따이야와 인디라 부부의 헌신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에 훈련센터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수개월 후 예배를 드리던 작은 홀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교회가 부흥하자 그 부부는 센터 옆에 성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또한 훈련센터 1기 훈련생인 피터가 인근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두 번째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지역은 힌두 과격 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매우 위험했지만 성도들의 놀라운 열정으로 성전이 없이 정부 학교 나무그늘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힌두교도들의 반대로 학교에서 쫓겨나 한 성도 집에서 비좁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셉이라는 성도는 자신의 집 건물 2층을 자기 평생에 무상으로 교회로 사용해 달라며 헌신했고 이렇게 두 번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빈민촌에 학교를 세워 지역을 섬기면서 저희 현지 사역자가 나무 잎으로 조그맣게 지은 집에서 머물며 세 번째 교회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운 장로님의 헌신으로 세 번째 교회가 건축되어 지금까지 빈민촌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약을 나누어주고 복음을 전하며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 개척으로 사역이 넓어지고 있을 때, 주님께서 다시 미전도 종족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주셔서, 하이데라바드가 속해 있는 안드라 프라데쉬 주에서 가장 기독교 복음화율이 낮은 지역 다섯 곳을 선별하여 정탐을 하고 현지인 사역자를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도의 3대 미개종족 중 하나인 곤드족, 수렵채취 생활을 하는 첸추족, 그리고 반자라 부족과 기타 산족에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외부와 전혀 소통하지 않는 부족들도 있어서 처음에는 의료캠프를 통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부족민들에게 의사 진료와 약을 제공하거나 시력 측정 후 안경을 무료로 전달하여 그들의 마음 문을 열고 관계를 쌓았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담요와 옷가지를 나누어주고 점차 예수 복음 영화를 상영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는 각 부족민들과의 관계에 신뢰가 쌓였고 예배를 드릴 때 자연스럽게 다 같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처럼 사역에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 현지인 리더를 세워 그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교회 사역을 하고 지경을 넓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깊은 시골에서도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인도할 목회자가 절실히 필요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인도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제대로 신학을 하거나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에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성령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어서 식어져 있는 사역지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하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미전도 종족을 대상으로 사역 후 현지인 리더를 발굴하여 훈련시키고 있으며, 특별히 올해부터 도시에서 현지인 사역자 양육을 위해 훈련 프로그램을 정비하여 ‘영산 훈련 센터’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체험과 훈련을 통해 오순절 성령의 불길을 전인도 구석구석에 퍼트리고자 체계화된 제자 훈련센터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제 사역 모토는 ‘ONLY onE’(오직 하나)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기 전, 마지막 한 영혼을 향한 간절함으로 사역하는 것입니다. 곳곳에 숨어서 힘겹게 신앙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아직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기 위해서는 ‘오순절 영성으로 훈련된 현지인 제자를 파송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인도에서 순복음의 역사를 이어나갈 영산 훈련센터를 위해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손강국 선교사 (파라과이)우상숭배 만연하지만 복음화율 높아지고 있어 

“순복음은 파라과이의 소망입니다”
우상숭배 만연하지만 복음화율 높아지고 있어 
교회개척 및 신학교 사역 통해 성령운동 앞장

 저는 지구 반대편 남미의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사역하고 있는 손강국 선교사입니다. 1993년도에 선교사 임명을 받아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위치한 엔카르나시온에서 11년간 현지인 선교사역을 하다가 9년 전에 수도인 아순시온으로 임지를 이동했고, 지금은 한인교회와 현지인 선교사역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이 파라과이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얘기하는 카톨릭 국가이지만 실상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나라입니다. 카톨릭 주교였던 전 루고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에 여러 번의 친자 소송에 휘말렸던 것처럼 정치, 종교, 사회적으로 많이 부패했고, 그로인해 나라의 발전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이웃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는데,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불황이 이웃 나라들을 흔드는 바람에 파라과이도 영향을 받아 많이 위축된 상황입니다.

 그 가운데 감사한 것은 대도시 중심으로 복음화율이 조금씩 높아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파라과이의 복음화율은 5∼7%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수도인 아순시온의 복음화율을 15%까지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파라과이 전체로 볼 때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사명은 교회 개척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11개의 지교회(임마누엘, 시온, 샬롬, 엘림, 베데스다, 엘까미노, 삼중축복, 하나님이 함께하심, 하늘문, 생수의 근원, 까삐아따)와 2군데의 기도처(산로렌소, 깜뽀 그란데)가 세워졌고, 5년제 신학원을 통하여 소명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11개의 지교회 중 8개 교회가 자체성전이 있고, ‘엘 까미노’ 교회는 성전기초공사를 마쳤으며, ‘생수의 근원’ 지교회는 성전부지를 구입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헌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순시온에서도 가장 가난하다는 동네 중의 한 곳에 위치한 ‘생수의 근원’교회 성도들은 어려운 중에도 헌신적으로 헌금을 모아서 현재 약 8000달러의 재정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까삐아따’ 교회도 성전부지를 구입하여 전기 시설을 마치고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중보해 주시는 기도의 힘인 줄 믿습니다. ‘산로렌소’ 기도처에서는 매 주 2번씩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데, 평균 40여명의 어린이들이 모여서 영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육의 양식도 나누고 있습니다.

 또한 한인 교회 학생부를 훈련시켜서 방학이 되면 자체적으로 행사하기 힘든 작은 교회나 지교회에 단기선교를 보내고 있으며, 지난 7월에는 ‘엘 까미노’교회와 ‘엘림’ 교회에 가서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인도하여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좋은 동역자를 보내주셔서 현재 함께 사역하고 있는 모든 목회자들이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헌신하고 있으며, 서로 협력하고 교제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지교회와 연합해 청소년·청년 수련회, 연합 체육대회, 여성 수련회, 연합 철야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순복음의 영성으로 하나가 되고 성령의 역사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수련회를 통하여 많은 청년들이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 파라과이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됩니다. 작년 마지막 연합 철야예배에서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어서 거의 말을 하지 못했던 라켈 자매가 안수 기도 받은 후에 말문이 트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자매는 그동안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꺼리며 스스로를 울타리 안에 가두고 살아왔는데, 입술을 열어 말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지금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며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교회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이 말을 세 번씩 따라하라고 합니다. “나는 파라과이의 소망이다! 나는 파라과이의 소망이다! 나는 파라과이의 소망이다!” 아무리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부패한 나라라 할지라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나라는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 10명이 되어서 파라과이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되게 하라고 비전을 심어 줍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입으로 선포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을 저는 믿습니다.

 매월 지교회 목회자들과 모이는 정기 기도회에서는, 영적으로 묶여있는 파라과이를 예수의 보혈로 덮고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5년제로 운영하고 있는 신학교를 통해서도 같은 비전으로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있는 주의 종을 배출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두 번째 졸업식을 통해 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됩니다. 그들이 나가서 각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꿈을 꾸면서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비전은 일 년에 한 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한 개의 지교회가 더 생겼고 2군데의 기도처가 생겨서 활발하게 전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 제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묵상하면서 새로운 힘을 받는 성경 말씀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땅 끝 남미에서 오늘도 파라과이의 복음화율 25%를 일차 목표로 삼고 계속 기도하며 전진하겠습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실 때마다 중남미와 파라과이를 위해서도 꼭 기도해주십시오. 샬롬!


윤성호 목사 (브라질 순복음상파울로교회)

순복음의 영성으로 상파울로, 브라질 변화시킨다
남미에서 가장 큰 한인 교회 세우며 부흥
성도 말씀훈련, 소외 이웃 도우며 지역 복음화 힘써

 브라질은 남한 면적에 84배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제가 사역을 하고 있는 상파울로는 인구가 약 2500만 명에 달하는 남미 최대의 도시입니다. 여느 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브라질의 국교는 천주교이지만 국민 대부분이 명목상의 신자일 뿐 믿음이 없습니다. 브라질 곳곳에서는 토착종교와 혼합된 각종 우상숭배가 이뤄지고 있으며, 국민들의 타락을 부추기는 카니발과 동성애자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기에 현재 브라질은 복음과 함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순복음상파울로교회는 올해로 창립 3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977년 3월 20일에 창립돼 주일 출석이 500여 명에 이르며, 성인교구가 4교구, 8지역, 24구역으로 조직되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브라질 한인들과 원주민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상파울로에서 3000km 떨어진 세아라 주에 7개의 지교회와 히오 그란지 두 놀찌 주에 2개의 지교회를 개척해 10명의 원주민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재교육을 통해 그들이 순복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선교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1월과 7월, 두 차례씩 지교회를 중심으로 단기선교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고등부와 청년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 단기선교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브라질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고, 사역을 통해 놀라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수련회 이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자녀들이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고 부모님들도 큰 도전을 받았으며,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부모님도 자녀를 따라 교회에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으로 변화되지 않던 자녀들이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되는 은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 부부선교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 순복음제자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와 함께 매년 두 차례씩 성령수양회를 통해 회원들 전체가 성령침례를 체험했으며,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결단하고 삶의 현장에서 온전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 교회는 23년째 걸인선교를 해오고 있습니다. 매 주일 오전 7시 30분에 빠울리스타 공원에 있는 250여 명의 걸인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며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데,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제하는 일도 지속적으로 감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일에 새성전에서 이영훈 목사님과 브라질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 주상파울로 총영사, 브라질 한인회장, 브라질 한인 기독교연합회장 등 수많은 내빈들과 성도들이 참석하여 입당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2007년 12월에 공사가 시작된 이래 5년 4개월여의 공사 끝에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성전 공사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2004년 성전부지를 구입할 당시 토지 주인이 10여 명이 넘어 계약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의 영적세계’를 통해 은혜를 체험한 부동산업자가 일일이 땅주인을 찾아다니며 계약을 성사시켰으며, 공사때 마다 필요한 돈을 하나님께서 정확히 채워주셔서 성전공사가 중단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심지어 건축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전토지세금을 시청에서 환급해 주는 일까지 있었는데, 브라질에서 세금을 다시 환급해 주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부임했던 2010년도에 브라질은 풍부한 자원과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막대한 투자에 힘입어 경제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2011년부터 경제성장이 둔화되더니, 작년에는 경제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교회 성도 대부분이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민 온 이래 가장 사업이 힘들다”며 극심한 재정적인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성전건축에 큰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상파울로내 한인들과 한인교회 목회자들도 순복음상파울로교회 새성전 건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아니면 중단되는지를 예의 주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 가운데 ‘너희들의 헌신을 통해 성전건축이 이뤄진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2012년 6월 4일부터 9월 11일까지 ‘새성전 건축완공을 위한 100일특별새벽기도회’를 개최했습니다.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전 건축 마무리를 위한 마지막 헌신을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노후를 위해 준비한 돈, 필요한 사업자금, 개인적인 용도로 쓰기 위해 아껴 두었던 옥합들을 깨서 하나님 제단에 기꺼이 바쳤습니다. 그 결과 성전건축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으며, 남미에서 가장 큰 한인 교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금년 4월 3일에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을 모시고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올해가 브라질 이민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농업이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브라질에 이민을 와서 거주하고 있는 한인은 5만여 명에 달합니다. 대부분이 상파울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파울로내에 한인 교회가 45개 정도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한인은 5000여 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한인들은 교회에 한두 번 출석했던 잃은 양들이거나, 아예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는 불신자들입니다. 먼저 이들을 복음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와 구제 사역에 더욱 힘을 쓸 것입니다. 현재 포르투갈어에 능통한 고등부와 청년부 학생들은 선교의 큰 자원들입니다. 꾸준히 진행된 단기선교를 통해 장기 사역자로 헌신하는 청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어렵고 소외된 한인과 원주민을 구제하는데도 소홀히 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데 전 성도가 앞장 서 나갈 것입니다.   

 특별히 저와 순복음상파울로교회 성도들은 1907년 평양장대현교회에 임했던 부흥이 상파울로에 임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 성장이 아닌, 상파울로와 브라질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함께 동역할 많은 사역자들이 세워지도록, 마지막때 순복음상파울로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중보기도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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