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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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연제문제-15

141. 구름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는가?(17:5) (2002714)

142.. 제자들이 귀신을 좇아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17:19-20)

143.. 형제가 범죄하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가?(18:15)

144.. 교회 말을 듣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라고 하여Tss?(18:17)

145.. 주님의 이름으로 두 사람만 모인 곳에는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는가?(18:20)

146..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라고 하였는가?(18:21-22)

147..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무엇을 질문하였는가?(19:16)

148.. 생명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지키라고 하였는가?(19:17)

149.. 온전하고자 할진대 무엇을 하라고 하였는가?(19:21)

150..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19:22)

 

 

---------------------정    답-------------------------------

 

 

141답.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였다.

142답. 믿음이 적은 연고이다.

143답. 그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해야 한다고 하였다.

144답.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하였다.

145. 주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였다.

146답.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하고 하였다.

147답.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148답.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다.

149답.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하였다.

150답. 재물이 많아서 근심했다고 하였다.

 


미즈타 미사키 성도(순복음후쿠오카교회)

하나님 사랑으로 위기에 놓인 가정 회복됐어요



남편의 잦은 방황, 심각하게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
성도들의 사랑과 위로, 기도로 미움 원망 사라져


 교회를 다니시는 어머니를 통해 내가 순복음후쿠오카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국제학교에 온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복음을 전해 듣고 침례를 받았지만 가슴으로 예수님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사람을 용서하고, 기도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건지 믿기 어려웠다.

 학교를 졸업한 뒤 교회는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만 드리는 곳일 뿐, 나는 세상이 더 좋았다. 재학시절부터 알게 된 남편과 결혼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였다.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런 아이들,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가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4살 연상인 남편은 아직 어렸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 가정보다는 세상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첫 아이를 임신했다. 몸이 약한 나는 많이 아팠고, 복통이 심했다. 남편의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내 옆에 없었다. 첫 아이를 출산할 때도 남편은 곁에 있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안타깝게 여겼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그들의 걱정보다 심각했다. 아이가 태어나 아빠가 됐지만 남편의 방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둘째를 임신했다. 편치 않는 마음에 몸 상태는 다시 나빠졌다. 몸과 마음이 지쳐 어린 딸을 안고 친정에 왔다. 우연히 후쿠오카기독교국제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남편을 위한 기도’라는 책이 눈이 띄었다.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께 내 어려움을 말하고 기도해볼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이렇게 아파하는 나를 위로해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다.

 둘째는 아들이었다. 새생명은 언제나 신비로웠다. 그런 귀한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침대에서 떨어진 아이는 온 몸이 마비가 됐다. 순복음후쿠오카교회 성도들은 아이를 살려달라고 한 마음으로 중보했다. 방황하던 남편도 아이를 살려보겠다며 교회에 와서 기도했다. 그러나 끝내 아이는 주님 품에 안겼다. 아이의 장례식 날, 성도들은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나를 위로했다. ‘왜 이런 고난이 나에게만 임하는 것일까’ 원망이 생겼다. 그런데 그런 고난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됐다.

 김 일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순복음후쿠오카교회 성도들의 참 위로와 사랑, 무엇보다 김선교 목사님의 사모님 격려가 큰 위로가 됐다. 고난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그분의 존재를 믿게 되면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주일 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그리고 매일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현존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찬양만 부르면 눈물이 주룩 흘렀다. 기도할수록 용서할 수 없던 남편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다. 삶에 대한 원망이 가슴에서 녹아 없어졌다. 남편의 방황은 여전했지만 그때마다 기도하며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런데 내가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은 나의 마음 뿐 아니라 남편의 마음을 만져주셨다. 방황하던 남편이 사회복지 일을 시작했다. 함께 지낼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을 돈을 벌기 시작했다. 교회도 꼬박꼬박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기도로 이룬 기적이었다.

 하나님은 3년 전 나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셨다. 아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던 나는 한나회(어머니모임)에서 활동하는가하면 찬양팀에서 싱어로 봉사하고 있다. 순복음후쿠오카교회는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게 해주는 보금자리’였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처럼 “나의 길을 그분께 맡길 때 이뤄주시고 의를 빛같이 나타내어 보이시는 분”이셨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을 나. 아이들에게 ‘하나님은 너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나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고난 중에 회복을 이루시고, 당신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을 우리 가정의 중심으로 모신다. 그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증거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겠다.  


요셉의 눈물/이영훈목사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세기 45장 4~8절)

  요즘 우리는 눈물이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위로가 없고 미움과 분노로 가득차서 온 세상이 절망의 소식으로 뒤덮여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사라졌습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 찬송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기도해도 눈물이 나고, 말씀을 들어도 눈물이 났는데 눈물이 메말라버렸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 상처받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을 우린 반성해야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눈물을 회복해야 됩니다. 고난 가운데 간구하는 눈물, 용서와 화해의 눈물, 그리고 십자가 은혜에 대한 감격의 눈물을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을 가장 닮았다고 하는 요셉이 자기를 애굽에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만났을 때 분노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 은혜에 감사, 감격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형들을 만난 요셉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늦둥이, 요셉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형들에게 입히지 않았던 고급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당시 귀한 집 자제들이 입는 옷입니다. 형들이 그것을 볼 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왜 아버지는 요셉만 특별히 더 사랑하느냐’ 생각을 했습니다.
  또 요셉은 형들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아버지께 와서 그들의 잘못을 고했기 때문에 형들이 더욱 동생, 요셉을 미워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3절과 4절은 설명합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아버지가 요셉만 사랑해주니까 형들의 마음에 시기심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요셉을 미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는데, ‘형님들 들으세요. 제가 어젯밤 꿈을 꿨는데, 글쎄 제 추수할 때 곡식 단이 가운데 서니깐 형님들 곡식 단이 다 일어나서 제게 절을 하더라고요.’
  장차 자기가 높은 사람이 되어서 형님들이 자기에게 절할 것이라는 꿈을 이야기 하자 형들이 그를 더욱더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쟤가 아버지 사랑을 받더니 저런 말 되지 않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형들이 멀리 양들을 치러갔을 때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불러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가까이 오자 그를 붙잡아서 은 20냥에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요셉은 13년의 긴 고난의 세월을 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노예로 팔려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고, 그다음에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절망에 갇혀서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께 사랑 받는 아들에서 하루 아침에 밑바닥에 떨어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절대 절망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될 때 자기에게 그렇게 어려움을 주고 자기를 절망에 내려 몰아낸 사람들에 대해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억울한 마음에 원한에 사무친 삶을 살아가게 돼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감정에 자기를 맡기지 아니하고 자기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요셉이 억울함에 밤잠도 자지 못하고 눈물 흘리며 고통 가운데 괴로워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잘 섬겨서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과 3절은 설명합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야훼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야훼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어떤 문제를 만나도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이 13년 만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바로의 꿈을 해몽함으로 일순간에 죄수의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총리가 된 후 7년 동안 풍년이 있을 때, 그 풍년의 곡식을 거두어 들여 창고에 쌓아놓고 이어질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흉년이 임했을 때 쌓아놓았던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인근 각처에서 온 사람들에게 곡식을 팔게 되었습니다.


  흉년을 당한 지 2년 후에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옵니다. 그러니까 13년 세월 지나고, 7년 풍년의 세월도 지나고, 흉년에 2년 지났으니까, 22년 지난 후에 요셉이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몰랐어요. 형들이 와서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순간 요셉은 자기 형들이 자기에게 절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22년 전 자기가 꾸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들이 곡식을 사갖고 와서 또 곡식을 사러 올 때 그의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왔는데 그 베냐민을 볼 때 동생을 보고 싶었다가 22년 만에 보니까 감정이 북받쳐 견딜 수가 없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1절 2절입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의 눈물은 미움과 분노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그렇게 고생하게 하고 고통을 주었던 형들, 어디 두고 봅시다. 내가 철저히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저들을 당장 잡아서 감옥에 넣어라.’라며 흘린 눈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형들을 보는 순간, 또 동생을 보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사랑으로 품어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면 나를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고, 누명을 씌우고,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내 가만 두고 보자. 내 가만 두지 않겠다.’라고 하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는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값없이 용서해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를 상처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며, 사랑하며,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24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난 후에 자기를 감옥에 넣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용서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미국 켄사스 부활교회의 부교역자인 데럴 버튼 목사님은 198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살인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아 24년 동안 교도소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을 때 담당판사, 검사, 배심원들이 다 같이 공모해서 자기를 감옥에 넣었다고 그가 너무 억울해가지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며 펄펄 뛰었던 사람입니다. 복수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그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한때 교회를 다녔지만 세상으로 멀리 떠났을 때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얘야, 오래지 않아 너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게 될 게야. 그때 잊지 말고 꼭 예수님께 부르짖으렴.”
  이 말씀을 기억하고 감옥에 갇힌 지 15년 만에 예수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때를 설명합니다.
  “처음 15년 동안 제 힘으로 모든 것을 시도했어요. 당연히 저의 억울한 상황에 대해 너무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죠. 하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마침내 저는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당신이 계시다면 제게 보여주세요. 저를 도와주시면 당신을 섬기고 세상에 당신을 전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만난 후에 2008년 한 단체의 도움을 받아 그가 다시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판결 내렸던 판결에 위증이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가 출소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 기도한 그대로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가 된 후에 자기를 억울하게 옥살이하게 한 그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지금도 가는 곳마다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그에게 행하신 것과 같은 일을 제게도 하셨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악으로 행한 것을 선으로 바꾸신 것이지요! 저는 제게 일어난 일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 사람에 대해 원한과 복수심을 갖고 있는 한, 여러분은 미움의 노예가 되고, 원한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쉽지는 않지만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자유함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형들을 위로하는 요셉


  형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들이 팔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다 죽었구나.’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요셉이 말합니다.
  창세기 45장 4절, 5절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을 그렇게 고통 가운데 몰아넣었던 형들을 단번에 다 용서한 것입니다. 용서에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용서할 때 내 자신이 먼저 치료받고 그리고 나에게 상처 준 이웃도 치료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한 나는 늘 상처 입은 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상처에 매여서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서 또 슬퍼하고 또 괴로워하고 또 아파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면 상처 입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움을 받게 되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용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할 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용서에 대해서 마태복음 5장 23절 24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배드리러 오기 전에 누구와 다퉈서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으면 먼저 사과하고 나서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을 대판 토요일에 했다고 하면 주일 예배에 오기 전에 싹싹 빌고 “여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고 나서 예배를 드려야지 그거를 풀기 전에 두 분 다 은혜를 못 받아요. 여러분 상처 입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오기 전에 전화를 해서 “내가 화낸 것 미안합니다.” “내가 상처 입힌 것 죄송합니다.” 전화가 안 되면 문자로라도 ‘내가 마음 아프게 한 것 다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화목하고 와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미국 뉴 라이프 교회에 릭 비젯 목사님 말씀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기로 결정할 때, 당신은 성장하기 시작한다. 용서가 들어설 자리를 낼 때 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에 몰려든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을 때, 당신은 스스로 갇히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독을 마시고는 상대방이 죽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을 괴롭힌다. 과거에 갇히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계획해두신 미래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당장 연습하자. 그들을 생각하며 말하라.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을 놓아줍니다! 당신은 더 이상 내게 빚진 게 없습니다!’”

  여러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 상처 입은 모습에 갇혀서 평생 고통 속에, 괴로움 속에 미움, 원망, 분노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 말씀은 끊임없이 용서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게 원수 된 자들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 44절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러나 내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고 너무나 내가 억울하고 나는 상처를 받았고 내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있기 때문에 참 힘듭니다. 요즘 SNS가 발달 되  확인도 안 해보고 무조건적으로 나쁜 이야기를 올리고 또 퍼서 올립니다. 나중에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아니면 말고.’식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담고 살면 우리는 평생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무조건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 무조건 용서하고 다 털어내고 마음에 평안함을 갖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용서한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토록 자기를 힘들게 해서 노예로 팔아 가지고 13년을 고생하게 한 형들을 단번에 용서한 요셉처럼,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용서하신 예수님처럼 여러분도 용서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그거는 요셉이야기죠. 난 절대 못해요.”
  이래서는 신앙의 성장이 없습니다. 그럼 평생 과거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용서해야 됩니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3.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요셉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문제를 당하면 남 탓을 합니다.
“나는 부모님을 잘못 만나서 그래.” “나는 운이 없어서 이런 일을 당했어.” “나는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 “참, 나는 불행한 과거를 살았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셉은 한 번도 자기가 당한 고난을 운이 없다고, 형들 때문에 그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 말씀을 보세요.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형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니까, “형님들 걱정하지 마세요. 근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에 나는 형님들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보십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런데 요셉이 딱 한 번 사람에게 자기 잘 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자기가 꿈을 해몽해줘서 복직하게 된 술 맡은 관원에게 말합니다.
‘당신 복직되어서 바로 왕한테 가게 되면 저는 절대 죄지은 사람이 아니니까 나를 좀 풀어놔주도록 말씀드려주세요.’
  그러니까 술맡은 관원장이 ‘걱정하지 말라고 내 나가자마자 너 풀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창세기 40장 14절 15절입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런데 이 관원이 감옥을 나가자마자 요셉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자기의 은인같은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무려 2년 동안이나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요셉은 ‘오늘 풀려 나나, 내일 풀려 나나’라며 고대하고 고대합니다. 그래도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자난 후에야 풀려나게 됩니다.

  만일 2년 전에 풀려났더라면 요셉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있었겠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기회를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2년을 더 낮추시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만드신 다음,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요셉이 꿈을 해몽함으로 말미암아 죄수의 신분이 애굽으로 총리의 신분으로 일순간에 바꾸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우리 모든 상황을 변화시켜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입니다. 죄수가 변하여 총리가 되듯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문제가 변하여 응답과 해결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3절은 말씀합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야훼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한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은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넓은 마음을 가지고 형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했고 그리고 절대긍정의 신앙으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뤄나가는 주님의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45장 7절 8절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사람들 보고 분노하고 원망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상처 입힌 사람들을 보고 분노하는 순간 여러분이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멀쩡한데 상처를 받은 내가 더 상처를 받게 됩니다. 내 마음에 분노와 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마음에 분노와 미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고, 형들을 품을 수 있었고 오히려 형들이 그렇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말씀 붙잡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한평생 주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고 나서 고백한 시편 23편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시편 23편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과거의 상처 난 그 옛 모습에 붙잡혀 살지 마시고, 거기 묶여 살지 마시고, 이젠 다 풀어놓아 자유함을 받고, 상처 입은 나의 과거의 모습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두 아이를 죽인 가해자를 용서하고 쌍둥이를 얻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2015년, 교통사고로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포레스트힐스 교회의 찬양사역자이며 협동목사인 젠트리 에딩스 목사님이신데, 2015년 5월 가족과 함께 여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오다가 과속하는 트럭이 차량을 덮치면서 두 살 난 아들이 현장에서 사망합니다. 그리고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는 병원으로 급히 실려 옮겨져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지만, 복중에 있던 둘째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삼일 만에 뇌출혈로 사망을 합니다. 사고당한 날이 두 부부의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결혼기념일 날 아이 둘을 잃게 되었지만 목사님 부부는 트럭 운전사를 용서합니다. 장례식장에서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두 아이를 빼앗아간 트럭 운전사를 용서합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사고를 낸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매우 쉬웠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들에게 잘못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들리 에딩스 사모 역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 이후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다르게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셨다면, 여기서 끝내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이 원망하지 아니하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자기 아이 둘을 죽인 운전사를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고 용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대로 최근 보도에 따르면 주님이 쌍둥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올여름에 출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지난 2년 동안 잠시도 우리가 두 아이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속자요, 회복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상상 그 이상으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 부부는 천국에 간 돕스와 리드가 쌍둥이들의 형이 된다는 사실에 설렙니다.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신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정말 기쁩니다! 이렇게 귀한 두 아이를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쉽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자기 두 아이를 사고로 죽인 운전사를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인 된 우리를 용서하셔서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 용서에 힘입어서 그 용서에 근거하여서 그 주님의 사랑으로 자기 아이를 빼앗아간 그 트럭 운전사를 용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지만,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지금 어떠한 상처를 여러분 붙들고 있습니까. 어떠한 분노가 여러분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어떠한 사람이 여러분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여러분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짓밟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이 시간 예수의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합니다. 다시는 내가 미워하고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여 주시고 한평생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용서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평생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있게 하여주시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돼지의 비애|

 


돼지가 길을 가다 암소를 만나 쌓인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죽어서 사람들에게 살코기와 베이컨을 제공하고 심지어 내 발까지도

맛있는 먹을거리로 그들에게 내주는데 사람들은 왜 나보다 너를 좋아하는 걸까?”

그러자 암소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유가 있지. 너는 죽어서야 유익한

것을 제공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우유를 나눠주거든.”

세상에는 움켜쥐는 데에만 급급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언젠가 여건이 좋아지면

다른 사람을 위해 큰일을 할 거라고 큰소리칩니다. 어떤 사람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더 멋지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일까요?

경기침체로,태풍피해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속담에

“인간은 주는 가운데 풍요로워지나 탐욕은 쌓는 가운데 빈곤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행도 함께 나누면 보다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축복된 기회가 됩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이영미 집사(양천대교구) -

“서연이를 멋지게 고치신 하나님”



화농성 고관절염 후유증에 다리 이상이 와
이영훈 목사 안수기도 후 성장판 생성 ‘확인’

 딸 서연(사진)이는 2008년 2월에 태어났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귀한 아이였다. 그런데 아이가 8개월이 되던 그해 10월, 감기바이러스가 아이의 관절에 침투하면서 급성 화농성 고관절염이라는 생소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고관절에 염증이 나서 곪으면 그 고름이 뼈를 녹이는 무서운 병이었다. 입원 당시 아이는 40도의 고열이었고 거기에 패혈증까지 와 최대 고비를 맞았다. 다행히 다음 날 열이 내려 한 고비 넘기면서 수술이 진행됐다. 이런 일이 왜 나에게 닥쳤는지 원망스러웠고, 왜 아이를 빨리 병원에 데려오지 않았는지 나의 무지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아이는 가슴부터 발목까지 깁스를 하고 있었다. 또 수술이 이뤄진 왼쪽 대퇴부에는 남은 고름을 빼내기 위한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말도 못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한 달 가량 입원 후 퇴원했지만 수술 부위에 계속 문제가 생겼다. 우리 부부는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 재검사를 실시했고,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당황스러운 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남편과 나는 15개월이 된 딸 서연이를 데리고 다시 명의를 찾아 나섰다. 그곳에서도 역시 성장을 마칠 때까지 서 너 차례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 어른이 되서는 왼쪽 대퇴부 고관절에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려 큰 수술을 견디는 것이 당장은 무리라고 하셨다. 우선 6개월마다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는 화농성 고관절염의 후유증으로 왼쪽 고관절이 기형으로 자라고 있었고 성장판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에 비해 짧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우리가 기댈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2010년 새해가 되면서 나는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새벽기도회 때 이영훈 목사님이 말기암 환자 등 많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했지만 우리까지 순번이 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자 목사님의 안수를 받게 됐다. 그리고 정확히 그 해 6월, 우리는 의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엑스레이 결과 보이지 않던 성장판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2년 뒤, 서연이는 1차 수술을 위해 전신 마취를 받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그동안 제멋대로 자란 뼈를 부드럽게 다듬고 찢긴 연골을 봉합하기 위한 수술이었다.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간 지 1시간 뒤 담당 의사가 급히 보호자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수술실 입구로 달려갔더니 의사가 조영술 검사결과 상황이 호전돼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그 후 7살 되던 해 서연이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또 다시 수술을 받지 않았다. 상태가 호전된 것이다.

 그리고 2개월 전인 2016년 12월 초, 정기 검진 결과 서연에게 더 이상 수술이 필요치 않다는 최종 진단 결과가 내려졌다. 의사는 “기적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려라”고 말하며 서연이의 결과를 우수 사례로 뽑아 학술회의 자료로 쓰겠다고 하였다. 나와 남편은 감격하며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렸다. 우리 가정은 서연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 하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올해 10살이 된 서연이가 정상적으로 뛰어다니는 것을 볼 때면 내 고백은 오직 감사, 절대 감사뿐이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조용기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장 12절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말’이 중요합니다.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조금 주고 그 대가로 몇 배나 많이 받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도 되로 주고 말로 받습니다. 부부싸움을 한번 해본 사람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을 하면 돌아오는 말은 더 독한 말로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비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입히는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서로 상대 간에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유익을 가져오고 행복을 가져옵니다.
 잠언 18장 20절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 구절을 “사람은 말 한마디 잘해서 만족을 얻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비슷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한 말, 좋은 말로 대접하면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다 같이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 입술의 말은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말을 주의해서 잘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말을 잘 사용하는 것일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일상생활에 잘 이용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1. 말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창조주를 성경에는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조주는 창조하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마음속에 솟구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로 4절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야훼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세 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이 야훼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하는데, 아브라함이 75년 동안 살았던 정든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의 간증을 들어 보면 그는 하나님이 번개와 천둥처럼 자기에게 다가와서 믿음을 주실 줄로 생각을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천둥이 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을 읽고 나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이 자라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이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가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시편 33편 6절로 9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그 성경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하나님 말씀을 맡은 우리들은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계신 곳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창조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놓고 이를 따라서 창조하며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계실 뿐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옷 입고 직접 나타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로 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우리가 보고 알게 만들어 주셨으며 예수님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말씀을 찾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죽은 것처럼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로 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 용서하신 예수님인데 동일하게 오늘 날도 용서해 주시고, 어제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쳐주셨는데 오늘도 그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어제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는데 오늘날도 믿고 기도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어제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는데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문제에서 해결해 주시고, 어제 성도들을 인도해 주신 예수님은 오늘날도 ‘내가 길이다. 문제를 해결할 길이 내게 있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에서 우리를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읽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아무리 외워도 변화를 받지 못하면 효력이 없습니다.

 D.L. 무디는 “성경은 정보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책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정보를 얻어서 우리 지식을 쌓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렵고 불안할 때 말씀을 읽으면 용기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말씀을 읽으면, 꿈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이 변화를 받고, 삶의 환경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꿈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다 크고 작은 꿈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그 꿈을 성경을 읽었다가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꿈을 주시는데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주시는데, 그 소원이 바로 꿈입니다. 하나님이 그 꿈을 통해서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말씀은 믿음을 줍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흔한 말씀이 어째서 나에게는 없냐?”고 물으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연구해야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면 그가 마음속에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꿈을 얻으면 꿈이 믿음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은 꿈을 이루어 주시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해야 되며, 말씀이 주는 믿음을 마음에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0절에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치료하는 영도 말씀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아가는 말씀이 이렇게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입술을 통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로 16절을 보면,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야훼께서 밤새도록 큰 동풍을 보내시어 바닷물이 물러가고 마른 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 하시는게 좋을 텐데 왜 모세를 통해서 모세에게 부탁을 하십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이 직접 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직접 변화를 가져오면 좋겠는데 여러분을 통해서 변화를 가져오고 기적이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여러분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과 전쟁할 때, 여호수아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수 10:1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을 멈추게 하셔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대개 간청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저 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러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해서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믿음 가지고 “될지어다!” 환경과 운명을 향하여 명령하는 명령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업아 번창하라! 너희 병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 지어다! 슬픔은 떠나가고 기쁨이 내 마음을 점령하라!” 명령하는 기도를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도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시옵소서. 저렇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세가 “하나님 홍해수를 갈라지게 하시옵소서. 백성들이 무난히 걸어가게 하시옵소서.” “아니라. 네가 손에 있는 지팡이를 내밀어서 홍해수야, 물러가라 고 호령을 하라” “그 하나님 직접 하시지 왜 나보고 시키십니까?”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 하나님이 여러분께도 꼭 같은 말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문제가 답답한 문제가 생겨서 괴로울 때 “자꾸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만 하지 말고 기도하고 고개를 들어 그 문제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문제는 박살이 나라! 해결될 지어다!” 그것을 수십 번을 수백 번을 반복을 하십시오. 그 말씀이 나가는 횟수에 따라서 파괴력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자매님 한 분이 뇌수술을 하러 병원에 갔는데, 내가 조금 전에 병원에서 기도를 해주게 되었습니다. “자매님, 이제 수술하러 들어가니 살아서 나오기를 바라고 정신이 있을 동안에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너희 뇌 암은 물러갈 지어다!’ 그 말을 할 수 있거든 수만 번이라도 하십시오.” 그리고 그는 수술 받으러 들어가고 우리는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들면서 “이 암은 물러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암은 물러갈지어다!”라고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이 내게 나와서 “목사님께서 무슨 말을 했기에 자꾸 입으로 중얼거리는데 정신이 어지러워서 수술을 잘 못하겠으니 조용히 하라고 말을 좀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요.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할 뿐 아니라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라도 명령하는 기도를 하는 성숙된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 때문에 성경을 주셨습니까? “너희는 몰라도 괜찮다.” 그러면 성경은 왜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당신의 뜻을 성경을 읽어서 깨달아 알고 미리 나가서 하나님 앞서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우리나라에 중대한 재판을 하는데 자꾸 모른다는 대답만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 뭐냐?” “모릅니다.” “이 성경으로 명령을 좀 하라.” “나는 못합니다.”

 못하는 증인들이 왜 자꾸 하나님께 짐을 맡깁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함께 너와 동행하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선물을 성경으로 주신 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변화가 다가오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이 말씀 속에 있는 창조의 능력을 충만히 깨달아야 됩니다.

 인도에서 일평생 헌신한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이 중풍으로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동안 그는 간호사에게 특이한 부탁을 했습니다. “간호사님, 제가 잠에서 깰 때, 내 곁에 오셔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명령을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 간호사가 선교사님이 잠에서 깨어나려고 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못 일어나니까, 방에 들어올 때마다 그 환자에게 간호사는 명령을 했습니다. 하루는 정말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고함을 치고 난 다음에 간호사가 기겁을 하고 뒤로 쓰러져 주저앉았습니다. 선교사님이 “예”라고 하면서 일어나 앉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창조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죽음을 물리치고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 총독부에서 인도의 지방 부호에게 자동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인도 부자가 자동차를 선물로 받아놓고 이게 뭔지 모릅니다. 쓰다듬어도 보고, 두들겨도 보고, “이거 희한하다. 이걸 나에게 선물로 줬는데 어찌할지를 모르니까 소 두 마리를 끌고 오라.” 힘찬 소 두 마리를 끌어서 거기다가 멍에를 씌웠습니다. 두 마리를 차에다 연결해서 “이랴~” 차 뒤에 올라 앉아가지고서 핸들 잡고 “이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러면서 동네에 자랑하기 위해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나는 이렇게 좋은 구루마를 가지고 있다.”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 때 영국에서 공부를 한 학생들이 와가지고서 “아유~ 선생님 이것은 올라타서 소로 끌 것이 아니라 소 몇 백 마리를 끌고 갈 수 있는 힘 있는 자동차입니다.” 그래서 소 두 마리는 다 집어치우고 거기에 기름을 넣어서 엔진을 걸어 페달을 누르니까 ‘부릉~’합니다. 사람들이 기겁을 합니다. 소처럼 ‘음메~’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차가 달리니까 무서운 힘이 생기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선물을 주면 소를 주지 말고 자동차를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보다 더 멋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엄청난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제가 응답하겠고 너에게 할 길을 보여주겠다고 하십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여러분에게 무수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소 두 마리를 걸어가지고 끌려가는 건 인도 부호의 경험같이 그런 경험을 하고서 살면 안 됩니다. 오늘 이 설교를 여러분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너 말 잘했다. 내 아들 딸들이 내 말을 몸에 적용해서 말을 사용하도록 가르쳐라.” 그렇게 제게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물로 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사용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앞으로 쓰인 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있는 말씀이 입으로 나오면, 입 밖으로 나오면 에너지가 되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챨스 스펄전 목사님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사용하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냥 구경하라고 주신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박물관의 골동품처럼 다루지 말고 매일 위로의 근원으로 삼으십시오. 매일 위로와 근원의 능력이 말씀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적용함으로 그 말씀의 유익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실까요?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따라서 기적적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것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가 성경에 직접으로 간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능력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광명한 빛을 쫓아 걷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에 넘치도록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축복을 주셨으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명령해서 하나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일은 바다에 떠있는 배에서 “바람아 바다야 잠잠하라!” 명령하시니까 바닷물이 잠잠해졌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이 “왜 믿음이 없느냐?” 꾸짖으셨는데 제자들이 모여가지고서 “우리 주님 모시고 가는데 웬 바람이냐?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았을 것인데 기도의 반쪽은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한번 시험해 볼까요? “이 고난은 내게서 떠나가라.” 고난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 보내는 것도 되니까 전체 대표가 안 되겠지요.
 귀신보고 말해보십시다. “너희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하나님이여, 나를 귀신의 속박에서 놓여주시옵소서.” 그러고는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떠나가라!” 그렇게 하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좌우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운행하는 비밀 책을 우리에게 주셔서 안 믿는 사람은 읽어도 뭔지 모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예수님께 밤에 찾아와서 전혀 모른다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영으로 난 사람이야 성경을 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오해하지 말라.”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아무리 읽어도 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것을 읽으면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셔서 이것을 가지고 성공저인 삶을 살다가 천당에 오라는 하나님의 책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성경을 연구함으로 자자손손이 위대한 기적을 체험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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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4 장            

            

   

민수기 4장
1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총계할지니 
3 곧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4 고핫 자손의 회막 안 지성물에 대하여 할 일은 이러하니라 
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6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후에 그 채를 
꿰고 
7 또 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8 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후에 그 채를 꿰고 
9 또 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대와 그 등잔들과 그 불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10 등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위에 두고 
11 또 금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12 또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 쓰는 모든 기명을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3 또 단의 재를 버리고 그 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14 봉사하는 데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
들과 대야들과 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1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 지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멜 것이며 
16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맡을 것은 등유와 분향할 향품과 항상 드리는 
소제물과 관유며 또 장막의 전체와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성소와 그 모든 
기구니라 
17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18 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말지니 
19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 할 일과 
그 멜 것을 지휘할지니라 
20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것은 죽을까 함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2 게르손 자손도 그 종족과 가족을 따라 총계하되 
23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24 게르손 가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 
25 곧 그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그 위의 해달의 가죽 덮개와 
회막 문장을 메이며 
26 뜰의 휘장과 및 성막과 단 사면에 있는 뜰의 문장과 그 줄들과 그것에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메이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 
27 게르손 자손은 그 모든 일 곧 멜 것과 처리할 것에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명대로 할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멜 짐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니라 
28 게르손 자손의 가족들이 회막에서 할 일이 이러하며 그들의 직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할지니라 
29 너는 므라리 자손도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되 
30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31 그들이 직무를 따라 회막에서 할 모든 일 곧 그 멜 것이 이러하니 곧 
장막의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2 뜰 사면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그 말뚝들과 그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과 
무릇 그것에 쓰는 것이라 너희는 그들의 맡아 멜 모든기구의 명목을 지정하라 
33 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수하에 있을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이 
그 모든 사무대로 회막에서 행할 일이니라 
34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족장들이 고핫 자손들을 그 가족과 종족대로 
계수하니 
35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36 곧 그 가족대로 계수함을 입은 자가 이천 칠백 오십이니 
37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고핫인의 모든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38 게르손 자손의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는 
39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라 
40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이천 육백 삼십명이니 
41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게르손 자손의 
모든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42 므라리 자손의 가족 중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는 
43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라 
44 그 가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삼천 이백명이니 
45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므라리 자손들의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46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족장들이 레위인을 그 가족과 종족대로 다 
계수하니 
47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48 곧 그 계수함을 입은 자가 팔천 오백 팔십명이라 
49 그들이 그 할 일과 멜일을 따라 모세에게 계수함을 입었으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 하신 대로 그들이 계수함을 입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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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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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장

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와 말씀하실 때에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가
이러하니라
 
2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은 장자는 나답이요 다음은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니
 
3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
 
4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리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5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6 레위 지파로 나아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7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8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장막에서
시무할지니
 
9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중에서 아론
에게 온전히 돌리운 자니라
 
10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 이라
 
13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14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5 레위 자손을 그들의 종족과 가족을 따라 계수하되 일개월 이상의 남자를
다 계수하라
 
16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그 명하신 대로 계수하니라
 
17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
 
18 게르손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가족대로 이러하니 립니와 시므이요
 
19 고핫의 아들들은 그 가족대로 이러하니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20 므라리의 아들들은 그 가족대로 말리와 무시니 이는 그 종족대로된
레위인의 가족들이니라
 
21 게르손에게서는 립니 가족과 시므이 가족이 났으니 이들이 곧 게르손의
가족들이라
 
22 계수함을 입은 자의 수효 곧 일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 합계가 칠천
오백명이며
 
23 게르손 가족들은 장막 뒤 곧 서편에 진을 칠 것이요
 
24 라엘의 아들 엘리아삽은 게르손 사람의 종족의 족장이 될것이며
 
25 게르손 자손의 회막에 대하여 맡을 것은 성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
문장과
 
26 뜰의 휘장과 및 성막과 단 사면에 있는 뜰의 문장과 그 모든 것에 쓰는
줄들이니라
 
27 고핫에게서는 아므람 가족과 이스할 가족과 헤브론 가족과 웃시엘 가족이
났으니 이들이 곧 고핫 가족들이라
 
28 계수함을 입은 일개월 이상 모든 남자의 수효가 팔천 육백명인데 성소를
맡을 것이며
 
29 고핫 자손의 가족들은 성막 남편에 진을 칠 것이요
 
30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은 고핫 사람의 가족과 종족의 족장이 될것이며
 
31 그들의 맡을 것은 증거궤와 상과 등대와 단들과 성소에서 봉사하는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과 그 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32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리아살은 레위인의 족장들의 어른이 되고 또 성소를
맡을 자를 통할할 것이니라
 
33 므라리에게서는 말리 가족과 무시 가족이 났으니 이들이 곧 므라리 가족들이라
 
34 그 계수함을 입은 자 곧 일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 총계가 육천 이백명이며
 
35 아비하일의 아들 수리엘이 므라리 가족과 종족의 족장이 될 것이요 이
가족은 장막 북편에 진을 칠 것이며
 
36 므라리 자손의 맡을 것은 성막의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모든 기구와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37 뜰 사면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말뚝과 그 줄들이니라
 
38 장막 앞 동편 곧 회막 앞 해 돋는 편에는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성소의 직무를 지킬 것이며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
 
39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레위인을 각 가족대로 계수한즉 일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가 이만 이천명이었더라
 
4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남자를 일개월
이상으로 다 계수하여 그 명수를 기록하라
 
41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난 것의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4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처음 난
자를 계수하니
 
43 일개월 이상으로 계수함을 입은 처음 난 남자의 명수의 총계가 이만 이천
이백 칠십 삼명이었더라
 
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5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나는 여호와니라
 
46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가 레위인보다 이백 칠십 삼인이 더 한즉
속하기 위하여
 
47 매명에 오세겔씩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취하라 한 세겔은 이십게라니라
 
48 그 더한 자의 속전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줄 것이니라
 
49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들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
 
50 곧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대로 일천
삼백 육십 오 세겔이라
 
51 이 속전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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