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익하므로/이영훈목사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몬 1:10~12)

 오늘은 빌레몬서 1장 10절로 12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이제는 유익하므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그 삶이 변화되어서 축복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난 다음 주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그 삶이 완전히 달라져서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받는 사람으로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도 그와 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의 것을 훔쳐서 도망간 도둑이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아주 훌륭한 주님의 일꾼이 된 이야기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1. 변화된 인생

먼저, 변화된 인생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빌레몬서 1장 8절로 10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사도 바울의 동역자요, 훌륭한 교회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간곡히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이 편지 내용에는 빌레몬의 종이였던 오네시모를 용서해줄 것과, 또한 오네시모가 자신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는 그러한 내용을 편지에 담아 보낸 것입니다.

 빌레몬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하고 주의 종으로 만든 제자와도 다름없는 훌륭한 동역자였는데, 사도 바울 위치에서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라.” 그런데 이 오네시모에 대해서만은 간곡히 요청을 합니다. “내가 사랑으로서 간곡히 요청한다. 나도 나이가 이렇게 많이 들었고 지금 이 감옥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간청하니 잘 들어달라!” 이러한 내용을 담아 보냅니다.

 도대체 오네시모가 누구인가? 오네시모가 누구길래 사도 바울이 제자에게 간곡히 요청하고 있는 가를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입니다, 노예. 우리나라 옛날의 하인들이죠. 종이고 노비였습니다. 그런데 아마 빌레몬이 굉장히 부자였던가 봐요. 어느 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을 살펴보았다가 주인의 물건을 도둑질해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어요.

 당시 노예가 주인의 것을 훔쳐 달아나다가 잡히면 큰 형벌을 당했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아주 가혹하게 채찍질을 하고, 얼굴에 낙인을 찍기도 하고, 쇠사슬에 묶어놓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했어요. 매를 맞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안 붙잡히려고 도망을 가고, 멀리 멀리 멀리 로마까지 갔다가 거기서 사도 바울을 만나가지고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가 변화되었는지 사도 바울을 열심히 섬기는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가택 연금 상태의 그러한 그 제한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형이 확정되기 전에도 막 집어넣는데, 로마법이 우리나라 법보다 훨씬 더 앞서있는 것 같아요. 형이 확정될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로 거기서 있으면서 마음껏 사람도 만나고 거기서 복음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부분에 이러한 설명이 나옵니다. 30절, 31절에,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 표현은 그가 죄수로 끌려가서 형 확정되기 전까지 한곳에 머물러있으면서 마음껏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마는 밖으로 나가서 활동할 수는 없는 그런 연금 상태에 있었던 것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오네시모를 만납니다. 오네시모를 만나서 복음을 전할 때 오네시모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도 바울을 옆에서 열심히 잘 섬기는지, 아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서 1장 11절에 설명하기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이렇게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오네시모란 이름이 ‘유익하다’는 뜻입니다. 종들에게 이름을 붙일 때, “너는 유익한 종이다” “쓸모 있는 종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네시모란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너는 오늘부터 이름이 ‘유익’이다”, “너는 내게 유익을 끼쳐야 된다”, “유익아. 유익아!” 이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은 오네시모인데, 유익한 자인데, 무익한 자가 되어서 주인의 물건을 훔쳐 도망가서 이렇게 멀리 멀리까지 간 그러한 사람이었는데, 예수 믿고 나서 이름 그대로 다시 유익한 자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네시모가 우리들의 옛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다 무익한 자였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우리를 매우 귀한 하나님의 존재로, 유익한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죄짓고 불의하고 타락해서 무익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입히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갈등하고 다투며 살아왔던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예수님 믿고 나서 삶이 변화되어서 다시 유익한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원래 지음받은 그대로 하나님 앞에 유익한 존재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무익한 종이 유익한 종이 된 것을 갖다가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은 설명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 믿고 나서 ‘내가, 내가’ 이렇게 하지 못하도록, 주님이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은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폴 워셔 목사님께서 ‘복음(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우리와 그때에 우리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형벌을 생각하면, 복음의 위대함을 더욱 크게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본성으로나 행위로나 영락없는 죄인이었다. 영원한 정죄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무기력한 죄인이요, 하나님의 원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분의 피를 통해,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과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할렐루야! 죄 가운데 살던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7절, 18절은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할렐루야!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 ‘나의 남은 여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이다’ 믿음의 결단을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용서의 은혜

 둘째로, 용서의 은혜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1장 13절 14절은 설명합니다.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오네시모를 다시 그 주인에게 보냅니다. ‘내가 당신의 물건을 훔쳐가지고 도망쳐왔던 당신의 노예인 종을 다시 돌려보내는데, 억지로 용서하지 말고 진정으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그를 용서하고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네시모 같은, 도둑 같은 우리들을 무조건 용서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는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을 믿고 반드시 오네시모와 같이 주님 앞에서 유익한 존재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고 용서입니다.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데 무조건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인 용서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돌로 치려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돌을 들고 그 여인을 치려던 저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죄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 둘,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이것이 주님의 용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떡해서든지 뭔가 이렇게 파헤쳐서 죄가 나오면 그를 정죄하려고 합니다. 온 사방에 알려서 그를 심판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사랑의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죄에 대해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의 법정에서는 사랑과 용서뿐인 것 입니다. 로마서 2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 세상에 재판장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우리가 누가 거짓말한다고 그를 데려다가 재판장에 세워서 심판하고 벌을 준다면 우리도 언젠가 거짓말을 원치 않게 할 수 있고, 또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도 그 재판장에 설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까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용서하십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이것이 예수님의 용서의 기준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주님이 용서하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절대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고 말합니다. "절대 용서 못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용서 못해" 그래서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되기도 하고, 부부 간에 헤어지기도 하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원수가 되어서 다투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온 세상이 싸움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정치하는 분들이 다 예수를 잘 믿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좀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싸우는 것 때문에 국민들이 마음이 아픕니다. 북한은 자꾸 쏘아올리고, 뭐 터뜨리고. 중국은 중국대로 막 밀고 들어오고, 일본은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완전히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정치인들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 같아요. 주여, 저들이 예수 잘 믿게 하여주셔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골로새서 3장 13절, 14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가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 찬송을 드립니다. 그 찬송의 그 내용이 이것입니다. 그 찬송 내용 속에 용서에 대한 부분이 이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 15절을 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를 하면 좋고, 안 하면 할 수 없고 그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용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기준을 만들지 말고, 예수님을 본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까지 용서하는 그 사랑으로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사람들을 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평안과 자유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상처가 왜 옵니까?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왜 자꾸 미움과 분노가 생각납니까?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함을 본받아서 무조건 용서해버리면 그 용서로 말미암아 내가 자유함을 받게 되고 기쁘고 즐겁고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모든 미움의 사슬을 다 풀어버리고 진정한 용서로 거듭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3. 사랑받는 형제의 삶

 세 번째로 사랑받는 형제의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1장 16절, 17절입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오네시모에 대한 설명입니다.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얼마나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가 변화된 모습에 감동되었던지, ‘전에는 네가 그 노예의 주인이었고 상관이었지만, 나 사도 바울이 너에게 간청하니 사랑받는 형제로 대해달라. 옛날처럼 종으로 부리지 말고 사랑하는 형제로 동역자로 오네시모를 받아달라’고 편지를 보냅니다.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도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4장 9절에 보니까,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얼마나 오네시모가 변화되었으면 이렇게 사도 바울을 감동시켰고 그리고, 이렇게 간곡하게 그의 제자와 다름없는 빌레몬에게 구구절절이 간청하고 또 간청하고 간청합니다. “전에는 너에게 노예였고 너의 하인이었고 너의 물건을 도둑질한 도망자였고 도둑놈이었지만, 다 용서하고 나를 대하는 것 같이 그를 동역자로 대해 달라.” 할렐루야!

 예수 믿고 이렇게 달라져야 됩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 오네시모가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어요. 우리의 삶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정말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러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빌레몬 재산을 훔쳐 도망갔잖아요. 그래서 또 갚아주겠다고까지 말합니다. 빌레몬 1장 18절에,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다 갚아 줄게.” 1장 20절입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이렇게 간곡하게 “오네시모를 받아주면 내가 참 기쁘겠다. 간곡히 간곡히 부탁한다.” 사실 빌레몬은 오네시모에 대해서 아주 분노가 가득해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아껴줬더니 내 물건을 훔쳐 도망을 가? 그래? 어디 두고 보자.’하고 벼르고 있었는데, 글쎄 이런 편지가 온 거예요. 오네시모가 그 멀리 로마까지 가서 예수 믿게 되고 자기 스승이신 사도 바울의 오른팔과 같이 일하는 훌륭한 일꾼이 되어서 편지를 들려 보내면서, 이 편지를 갖고 가니까 나를 만난 것처럼 맞아주고 용서하고 형제처럼 대하라. 그래서 이 오네시모는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어서 귀하게 쓰임받고 역사에 기록 가운데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사랑의 결과요, 용서의 결과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네시모처럼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둠의 자식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9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모든 어둠이었을 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오네시모처럼 새사람의 옷을 입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이웃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러한 모습으로 살았지만, 예수 믿고 나서 날마다 날마다 달라져서 가족에게 사랑받고, 이웃에게 존경받고, 친구들에게 칭찬받는 그와 같은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만난 다음 달라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그의 주인 빌레몬도 예수 믿는 사람이고 주의 종이니까, 그 집에 찾아오는 크리스천들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레몬 안에 있을 때는 그가 변화되지 못했어요.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한동안은 변화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데도 집에 가면 옛 모습 그대로 소리 지르고 싸우고 미워하고 주일날 교회 와서는 “주여!” 한 번 하고 또 돌아가고, 이랬던 모습으로 살았던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 만나서 완전히 변화된 것 같이, 그러한 강력한 은혜의 체험을 우리가 반드시 해서 달라져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모습으로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늘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러한 옛 사람의 모습은 이제는 다 내던져버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 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했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오네시모를 변화시킨 사도 바울처럼 변화시키지 못했다면 우리가 그것도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변화시킨 것처럼 이제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됩니다. 우리에게 해를 입힌 사람까지도 변화시켜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남이 안 달라졌다고 남을 손가락질하는 일이 한사람도 없게 되길 바랍니다. 남을 얘기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되어서 나를 만난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리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은 공부 못 하는 게 굉장히 스트레스가 될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요, 저희 반에 수학 선생님 아들이 있었는데 반에서도 늘 맨 아래 꼴지 근처에 왔다 갔다 해요. 선생님 아들인데 그 선생님이 늘 아들 때문에 막 속상해하고 하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도 성적이 안 나와요. 그래서 나중에 아이큐를 조사해 보니까 아이큐가 80인가밖에 안 나왔어요. 100은 넘어야 되는데, 그래가지고 남이 10분 공부할 것 3시간씩 하는데도 시험을 보면 성적이 별로 점수가 안 나와요. 그와 같았던 한 사람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된 간증으로 오늘 말씀 마무리합니다.

 아시아 지역의 최고의 에이즈 전문가로 알려진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과 조명환 교수님. 금호성결교회 장로님이신데요. 전 세계의 에이즈 예방과 퇴치에 앞장서는 세계적인 학자요, 사회운동가였지만, 늘 학창시절에는 반에서 꼴찌를 할 만큼 열등생입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늘 바닥이고 아무리 가르쳐줘도 늘 이해력이 늦어서 별명이 형광등입니다, 형광등. 깜빡 깜빡 깜박하는 형광등. 그런데 그 주위에 기도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모태신앙으로 자란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외할머니, 부모님, 또 한 분의 어머니가 계셨는데,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그는 태어날 때부터 국제구호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고 하는 단체를 통해서 자매결연을 맺어갖고 미국의 한 어머니가, 에드나 넬슨이라는 분이 매달 15달러, 15불을 보내면서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 (하나님은 너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을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그 미국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104세 천국 갈 때까지 45년 동안 계속 매달 15불씩 보내준 거예요. 참 미국 사람들의 이 선교, 또 자선하는 모습은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와 격려가 그 어려울 때마다 다시 믿음으로 일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갈 대학이 없어요. 그 성적을 가지고 어디도 갈 수가 없었는데, 아버지 지인인 건국대학교 교수님이 한 분 집에 오셔서 물었습니다. “너 대학 갈 때 되지 않았니?” “근데요, 갈 때가 됐는데 갈 데가 없어요.” “너 꿈이 뭐니?”  엉겁결에 그분이 교수니까, “교수요.” “아! 그러면, 우리학교 미생물공학과에 와라. 생물공학과가 미달됐다.”

 아! 그래가지고, 미달은 원서만 넣으면 붙어요. 그래서 여러분 자녀 때매 자녀들 중에 혹시 이렇게 성적 때매 스트레스 받는 학생 있으면 미달을 찾아서 보내시면 됩니다.
대학을 갔는데 어머니가 한 봉투를 주셔서 ‘야! 금일봉인가’하고 열어보았더니 편지가 들어있었어요. 성경 말씀이 들어있었어요. “야훼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그러면서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너에게 좋은 머리를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너의 머리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 주님이 네 안에 들어오게 하셔서 주님이 능력을 베푸시도록 해라. 주님을 네 인생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라!”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해서 미국 유학을 갔는데, 처음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갔는데 일 년 만에 성적이 나빠서 쫓겨났어요. 그래가지고 다른 대학을 갈라고 다 원서를 내도 다 입학을 거절당합니다. 일 년 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때 미국 어머니 그 에드나 어머니가 매일같이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God loves you. God loves you.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라’ 편지가 옵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다 그 거절하는데 한 명의 교수가 그를 받아줍니다. 에이즈를 연구했던 찰스 스털링 교순데, 당시는 에이즈라는 것을 잘 모를 땝니다. 사람들이 에이즈가 에이즈란 말이 처음 나왔을 그때에 이 스털링 교수 밑에 들어가서 참, 훌륭한 교수님을 만났어요. 이분이 잘 지도해서 박사 학위를 받고 건국대학교 교수가 됩니다.

 에이즈를 연구하지 않았을 때 제일 먼저 연구해서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가 이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이 되고 그리고, 개인과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가난한 나라의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돼서, 현재 8개국에서 2조원을 거둬들여 가지고 에이즈 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일 년에 에이즈 치료비가 2천에서 4천만원 정도의 약값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일 년에 2조씩을 모금해가지고 에이즈 환자를 도와주는데, 글쎄, 매달 15불씩 미국에서 지원받던 이 꼴찌였던 학생이 35세에 교수가 되고 지금은 매년 2조원을 거둬들여서 수많은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많은 상도 받았어요.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내 인생 경로를 결정해본 적이 없어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머리가 나쁘니 하나님이 일일이 다 해주셨어요. 꼴찌에서 대학을 입학한 것부터 국제무대에서 에이즈 퇴치 운동을 하게 되기까지 이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하고 간 길이 아니었어요. 단 한 가지라도 당당히 내 힘으로 계획하고 성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 자랑할 게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하나님뿐입니다. 남은 인생 저의 기도는 ‘아버지, 감사합니다!’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무익하고 쓸모없었던 그러한 존재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렇게 복을 받아서 유익한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녀들이 머리 나쁘다고 구박하지 마세요. 다 부모가 물려준 거지, 왜 구박합니까? 그러니까 오늘 설교를 가서 전해주세요. 꼴찌한 애도 미달된 곳에 들어가서 교수가 되었다더라. 열심히 미달 학과 찾아보자. 기도 같이하고 격려하고 수능시험 좀 안 나와도 “그래, 괜찮아. 너 갈 데 많다.” 그래가지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한때 오네시모처럼 무익한 종이었지만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남은 여생이 유익한 존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무익한 종과 같았던 오네시모가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와 같은 삶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참참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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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제 (민수기7장~24장)          

                




 




문준우·이한빛나 성도(워싱턴제일순복음교회)

엉켜 있던 비자 문제 기적적으로 해결

건강 악화로 접었던 학업의 꿈 회복돼
사랑하는 자녀를 돌보시는 하나님 만나


 2012년 결혼 후 학비면제 장학생이 돼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하지만 갑작스레 건강이 안 좋아지고 여러 상황이 겹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귀국 후 나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가족을 제외한 아무에게도 귀국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나를 아는 누구와도 만날 일이 없는 대전으로 내려가 카이스트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게 됐다. 카이스트에서 근무하면서 몇 개월이 지나 미국 출장을 가게 됐다.

 그런데 미국 입국 과정에서 신분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학업 중 갑작스럽게 귀국하면서 제대로 관련 서류 업무를 마무리 못하고 출국을 하는 바람에 비자 상태가 엉켜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출입국사무소에서 소명자료를 제출해 겨우 입국할 수 있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안 나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을 추슬러 꿈을 향해 다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난감한 가운데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분뿐이었다. 출장기간 중 신기하게도 묵었던 숙소 인근에 상항순복음교회(現 예수인교회)가 있어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에 간절히 하나님께 다시 미국에서 공부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20일간의 긴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그날. 매년 2명만 선발하는 조지메이슨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전공 박사과정에 학비면제 및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전액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를 통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제일 큰 고비인 학생비자 발급이 있었다. 이미 학업을 한번 중단했었고, 과거에 신고조차 제대로 안하고 출국해 미국 입국 시에 문제가 있었기에 비자 관련 전문가는 내가 다시 학생비자를 발급 받기 어려울 것이라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기에 대사관에 비자발급 관련 모든 서류를 접수했다. 나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 초조하고 답답해 하는데 아내 이한빛나 성도는 정반대였다. 분명히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우리를 도울 분을 보내주실 거라고 말하며 강건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비자 면접 당일 상상하기도 힘든 기적이 일어났다. 은행 창구처럼 번호표를 뽑아 순서에 따라 무작위로 미국 영사에게 인터뷰를 하기에 기다리는 동안 제발 말 수 적고 깐깐하지 않은 영사랑 인터뷰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저기 2번 창구의 말 많고 계속 비자발급을 거절하는 영사는 피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으나 순서에 따라 우리 부부는 그 공포의 2번 창구 영사에게 비자 인터뷰를 하게 됐다.

 적막 속에 영사의 한마디 “오! 조지 메이슨?” 영사는 조지메이슨 동문에다가 심지어 내가 전공하는 커뮤니케이션과의 선배님이셨다. 그 다음부터는 학교이야기, 동문 자랑, 축하, 덕담이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걱정했었던 부분들을 살펴보시더니 큰 문제가 아니라며 깔끔하게 기록들을 정리해주셨다.

 솔직히 지금도 신앙이 연약하고 예수님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번 일을 통해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앞으로 살면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끝까지 자녀를 돌보고 책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로만 산다고 확신한다. 오직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말이다. 미국에서 얼마나 큰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을 지, 매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되길 소망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이영훈목사

온 땅이여 야훼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야훼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100:1~5)


 오늘은 시편 100편 1절로 5절 말씀 가지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일생은 감사의 일생이 되어야만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 믿는 그날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우리의 입에서는 넘치는 감사가 주님께 올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감사와 찬양을 기뻐 받으십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교회 직분을 받으면 더 받을수록 더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됩니다. 신앙생활은 오래했는데 그 삶에 감사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문제를 만나도, 어려움 당해도, 환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 기뻐하시고 그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심해야 됩니다. “주님, 한평생 감사하며 살기 원합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당해도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1. 찬양과 감사

 첫째로, 우리의 일생 동안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아야 될 것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시편 100편 1절과 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온 땅이여 야훼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야훼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성전에 올라가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은혜의 찬송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나아갈 때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나아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땅이여 즐겁게 주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즐거운 소리로 찬양하라’는 이 표현의 원어 내용을 보면 환호를 지르며 기뻐 뛰고 즐거워하며 주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해야 됩니다. 어저께 뉴스를 보니까 페루가 월드컵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 시합에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골이 들어갈 때마다 페루에서 지진이 측정되었대요. 그런데 그 시간을 보니까 골이 들어갈 때 “와!” 소리를 지르면서 막 온 국민이 난리를 하니까 그것이 진동이 와가지고 지진계에 잡혔다는 거예요.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아니 우리가,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는 그렇게 막 온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하지 못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골 하나만 넣어도 그냥 지진계가 움직일 정도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고 하니 우리가 한참 감사가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양과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 기뻐 받으시고 하늘의 문을 활짝 여시사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 입에서 찬양과 감사가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긴 책인 시편 맨 마지막의 결론입니다. 시편 150편 6절에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호흡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망에 처했을 때 감사하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문제가 변하여 응답과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짧은 인생길 지나가는 동안에 넘치는 감사와 찬양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그 행위를 옳다 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감사하지 아니하면 그 행위가 옳은 것이 아니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습관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그러한 모습을 가졌다고 하면 이 순간부터 바꾸어야 됩니다. 입만 열면 늘 남의 문제점만 지적하고 부정적인 얘기만 쏟아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삶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뭐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입술이 바뀌어 감사하는 입술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잘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인관계도 잘 풀리고, 건강도 좋아지고, 내가 하는 일에 정말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고, 범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에서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라고 하는 배를 타고 65일 간을 항해해서 미국 북동부 지역에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라는 지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 102명이 이 배를 타고 있었는데 이 102명을 기념해서 지은 빌딩이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입니다. 102층으로 되어있는데.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마흔네 명이 추위로, 굶주림으로,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그 플리머스 지역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교회를 지은 일이고 그리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일입니다.

 그리고 봄이 되어서 저들이 나가서 농사를 짓는데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농사를 지어서 가을 첫 수확을 거둬들이게 되었는데, 그 수확이 그렇게 풍성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넘치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영국에 모든 자신들의 삶의 기본 재산을 다 내려놓고 왔는데, 전 재산을 다 영국에 내려놓고 온 것에 대해서 그들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또 65일 동안 배를 타고 오면서 고생했던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이 지나면서 마흔네 명이 죽은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 해 동안 크게 고생해서 수확이 별로 많지 않은 것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서 넘치는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또 고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당시 날짐승이었던 칠면조를 잡아서 음식을 해서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3일 동안이나 감사 예배를 드리고, 많은 사람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건립 정신입니다. 기독교 정신, 감사 정신. 할렐루야!

 이것이 북동부 지역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지역에 확산되었습니다. 그래서 11월 말쯤 되면 너도나도 모여서 감사하게 되었는데, 남북전쟁이 한창이었던 1843년,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전쟁 중에, 또 북군이 남군에게 막 밀려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을 때, 그런 고난 중에 감사를 선포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감사하자. 진정한 감사는 고난 중에 감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 절기를 지켜오다가 1941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11월 넷째 목요일로 고정을 해서, 넷째 목요일은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은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인데, 수, 목, 금, 토, 주일, 닷새를 추수감사절 절기로 지킵니다. 그때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예배드리고 주 앞에 감사를 드리는 그러한 귀한 시간을 갖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뼈아픈 남북 갈등에서 비롯된 미망인, 고아, 가까운 이를 잃어 슬퍼하는 자, 전쟁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과 상처 난 미국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선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조선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세워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록 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지만, 기독교의 전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수확한 곡식과 열매로 인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하는 날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복음을 보내주신 것을 감사하는 날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고난 중에 드려진 감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어려움을 당하든지, 문제를 만나든지, 가족 중에 누가 아프든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많은 고난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둘째로,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신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시편 100편 3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시고 우리의 한평생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신다.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 할렐루야! 시편 62편 7절입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나의 구원이 나의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에 모든 만물과 구별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이 눈, 코, 입, 우리와 같은 그러한 형상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창세기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2장 7절에도 말씀합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다음 ‘후’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는데 그 생기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언어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이 루아흐라는 말은 영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숨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바람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생기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헬라말로 바뀔 때 ‘프뉴마’라고 합니다. 프뉴마. 우리 청년국에 프뉴마라고 하는 부서가 있는데요, 이 프뉴마라는 뜻이 이 루아흐라는 말이고 그 말이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의 생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흙으로 사람을 지은 다음 ‘후’하고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으심으로 이제 우리가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계신 이용규 선교사님이 최근에 가정에 대한 책을 하나 쓰셨습니다. 제가 엊그제 그 책을 받아서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좀 펼쳐보았습니다. 보면서 그 선교사님의 진솔한 간증을 통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몽골에서 사역하는 중에 그 학생 한사람과 상담을 하는데, 신앙이 들어갔는데 많은 고난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동생이 자살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주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데도 되는 일이 없이 다 집안일에 어려움만 다가오고 또 동생은 자살을 하고...’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려고 할 때, 그때에 선교사님이 질문을 한 가지 합니다. “너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냐?”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자기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자기가 잘 살아보려고 했고, 자기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많았던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모든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내게 절망이고 아픔이고 상처고 슬픔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다 맡겼더라면 내가 이런 상처가 없었을 터인데... 다 하나님께 맡겼더라면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겼을 터인데... 그래서 그 자매가 말씀 듣고 다시 자신을 돌이키게 되었다는 얘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냐?,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냐?’ 우리가 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멘은 잘하는데 살다보면 그렇지 않은 게 많아요. 왜 상처를 받습니까?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지 않으니까 상처를 받는 거예요. 내가 하려고 하니까 상처가 되는 거죠. 하나님께 다 맡겼다면 상처받을 일이 없어요. 왜 분노합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뜻대로 안 되니까 분노하는 거예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왜 다툽니까? 하나님이 문제를 다 해결해주실 것인데 내 뜻대로 하려고 그렇게 주장을 하다보니까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존귀하시고 모든 것을 이루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이후로 우리의 믿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러한 모습이 되어서 “다 맡깁니다. 내 문제도 맡기고, 내 가정도 맡기고, 내 자녀도 맡기고, 다 맡깁니다. 다 맡깁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늘 물어보세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내가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내가 충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 외에 돈도 필요하고, 높은 자리도 필요하고, 내가 나를 따르고 추종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자꾸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진다고 하면, 아직 나는 주님 보시기에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인데 순서가 바뀐 거예요. 내가 다 모든 것을 챙기고 나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니까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 되기를 바랍니다.

 3.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

 셋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인하여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100편 4절 5절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완전하고 흠이 없으신 하나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에요. 우리는 불완전하고 하나님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흠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흠이 많고 하나님은 흠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무어냐?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본분인 것입니다. 시편 29편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야훼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야훼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야훼께 예배할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얼마나 문제가 많았던 사람인지 모릅니다.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때때로 남을 짓밟고 피해를 주었던 적도 있습니다. 나의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적도 있고 남을 속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허물투성이인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인자하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우린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내가 어디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어서, 자격이 있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죄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허물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택하고 구원하여주셔서 오늘 여기까지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세요. 43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해방 받았는데도 불평하고 또 불평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40년 동안 먹이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셔서 가나안까지 저들을 이끄셔서 여호수아와 그의 자손들이 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또 불평하고 또 원망하고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해서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졌다가 삼대가 지나고 난 다음에 사 대째 가서 나눠집니다. 그래서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 때 북 왕국 이스라엘, 남 왕국 유다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저들이 회개하지 않고 또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하니까 북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주전 722년에, 남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주전 586년에 망합니다. 망했는데도 하나님이 또 사랑하셔서 70년 만에 포로 생활 끝에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주시고, 그리고 저들이 절망 가운데 살고 있을 때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저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주시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첫째로는 유대 민족을 구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로는 온 우주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그저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시편 106편 1절은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소아조로증이라는 말을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소아조로증. 남들보다 여덟 배가 빨리 자란답니다, 여덟 배. 여덟 배. 그러니까 한 살이 되면 여덟 살이 된 거에요. 그런데 홍원기라고 하는 이 학생은 지금 열두 살인데요, 107센티 14킬로그램, 그런데 신체 나이는 팔십 세. 이 소아조로증 때문에 그렇답니다. 평균수명이 십대 중반. 그래서 보통 십오 세에서 십칠 세 사이에 세상을 떠난답니다.
다섯 살 때 발달 속도가 더뎌 검사를 받았더니, “소아조로증입니다.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이면 사망합니다.”라고 하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신데도 너무 기가 막히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소아조로증이 대한민국에 한 명 있다는데, 어떻게 그 한 명이 하필이면 원기인지…. 아버지께 제 삶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많은 것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보통 아이처럼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불쌍한 우리 원기 도와주세요!”

 수없이 이유를 물었지만 답이 없으신 하나님. 사 년 뒤 미국 조로증연구센터에서  새로운 약이 나와서 임상 실험을 하는데 이 아이에게 실험해 보겠냐고 그래서 그 약을 받아왔는데, 너무 독해가지고 먹는 족족이 토하다가 결국 위벽이 헐어가지고 피를 쏟아내는 바람에 투약을 중단합니다. 병을 알게 된 원기는 이렇게 기도해서 부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엄마, 나 엄마보다 하늘나라 먼저 가는 거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 빨리 데려가지 마세요. 엄마랑 동생이랑 오래오래 살래요!’”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죽음 또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받아들이면서 온 가족이 ‘지금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자. 어차피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오는데 이렇게 절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지 말고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자.’ 할렐루야! 아버님의 고백입니다.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원기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와 저는 원기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걱정만 했다는 것을, 원기의 그 예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한 번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저한테 원기를 주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갔으면 매일 슬퍼했을 텐데, 전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그래서 저한테 원기를 주셨다는 것을요.” 열두 살 생일 때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 원기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준 아버지의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원기도 신앙적인 고백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 만나러 가요. 그건 하나님만 아세요. 그러니까 매일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면 되요.”
목사님이 쓴 책, 내 ‘새끼손가락 아들’이라는 책의 고백입니다. “한때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아들과 함께하는 그 운명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원망과 분노는 사라져버렸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즐겁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니까. 온 힘을 다해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삶이 내게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되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자체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과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 있는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절망을 바라보지 말고, 상처를 바라보지 말고, 아픔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결심하시길 바랍니다. 나의 남은 여생을 매일매일같이 감사하며 살리라.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리라.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다 죄덩어리입니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우린 늘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부정적인 말을 쏟아놓으며 살았습니다.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주옵소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부터 먼저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감사의 언어를 쏟아놓을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들이 달라져서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너무나 부정적인 이야기가 꽉 들어찬 우리 대한민국을 우리들의 긍정의 고백이 바꾸게 하여주시옵소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들을 두고도 매일매일 감사할 수 있는 그 큰 믿음의 모습을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게 하여주시고,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정희 집사(양천대교구) -

멎었던 심장, 주의 손길로 다시 뛰다

갑자기 닥친 남편의 심근경색, ‘가망 없다’ 판정
이영훈 목사 기도 후 급속도 회복, 병원측 ‘이건 기적’


 2주간 열린 추수감사절 특별새벽기도회 첫 주를 은혜 속에 마치고 둘째 주 새벽기도회가 시작된 13일이었다. 머리가 심하게 아파 병원에 갔다 왔다. 운영하는 가게에 앉아 있는데, 남편이 대신 가게를 봐 줄 테니 잠시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발걸음이 떨어졌을 텐데 그날따라 가게를 떠나는 게 편치 않았다. 대신 앞 집 과일가게에 가서 잠시 쉬었지만 이마저도 마음이 무거워 남편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다던 남편(이현우 안수집사·사진)이 손을 덜덜 떨더니 이내 의식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심장이 멎었다. 119를 불렀다. 남편의 얼굴은 짙은 보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30∼40분 간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남편은 의식을 찾지 못했다. 인근 대형병원으로 이송했다. 급박한 상황의 연속이었고, 곧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1%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런 가망이 없다니,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의사가 다가와 마지막 방법이라며 ‘저체온치료법’를 권했다. 저체온치료는 심장기능이 일시 정지된 환자의 체온을 인위적으로 내려 신진대사 및 산소 소비량을 감소시킴으로 뇌세포 파괴를 막는 치료법이라고 했다. 남편의 상황을 교구담당이신 윤병옥 전도사님께 알리자 전도사님은 교구 성도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급히 병원으로 오셨다.

 저체온치료법이 시작된 남편은 부천에서 강남 대형병원으로 이송돼야 했다. 그런데 하필 퇴근 시간과 우천이라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전도사님은 다시 문자로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교구에 기도를 요청했다. 그리고 기도대로 20분 안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곧바로 남편의 수술이 시작됐다. 저체온상태에서 심근경색을 일으킨 막힌 혈관 세 군데를 뚫었다. 의사는 1차로 48시간 안에, 최대 72시간 안으로 환자가 깨어나지 않으면 사망이라고 했다.

 14일 화요일이 됐다. 의사는 여전히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판단했다. 그때 전도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오 즈음 이영훈 목사님이 병원으로 심방오신다는 얘기였다. 목사님의 심방 소식에 더 큰 희망이 생겼다. 12시 40분 경 이영훈 목사님이 중환자실에 오셨고, 전도사님과 함께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보시고 치료해주셨다”고 선포하셨다. 오후 2시 경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환자가 약간의 의식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녁에는 병문안 온 딸이 아빠를 부르자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의사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발바닥을 비비자 환자의 반응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심하게 요동쳤다. 남편은 수요일(15일) 오전 마침내 의식이 돌아왔다.

 중환자실에서 남편을 지켜봤던 간호사들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목사님이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나요? 어제 목사님이 기도해주신 후 환자의 상태가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정말 목사님이 기도하면 낫나 봐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 되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금요일부터는 일반병실로 이동해 회복 중이다. 남편이 걱정돼 교구 성도들이 심방 온 추수감사주일, 의사는 성도들 앞에서 남편을 향해 “당신은 하나님이 살려주신 사람이다”라고 선포했다. 여러 차례 심정지가 일어났지만 뇌에 전혀 손상이 없고, 몸에 마비가 오지도 않았고, 어느 한 군데 이상이 없다는 건 정말 하나님의 손길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오직 주만 바라보고 남선교회 교통실에서 열심히 봉사했던 남편,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사까지하며 전도에 매진했던 우리를 주님은 그저 바라만 보지 않으시고 ‘생명’이라는 큰 선물을 이번 추수감사주일에 안겨주셨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영훈목사 주일설교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4~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디도서 3장 4절로 7절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우리 기독교 신앙은 “나는 죄인입니다!”하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데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 절망적인 존재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 건져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요 축복이요 기적입니다.

 1.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 같은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디도서는 먼저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3장 4절, 5절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우리의 어떤 노력과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심으로, 다시 말하면 우리를 불쌍히 보심으로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 원하고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봤으면’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늘 변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있을 때에는 그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 지내다가도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되면 금방 등을 돌리고 원수처럼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늘 긍휼히 보십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 많고 늘 상처받고 쓰러지는 우리를 불쌍하게 보시고 우리를 그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해주기를 원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5절은 말씀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할렐루야! 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의 귀한 사역을 행하실 때에 주님께 나아오는 모든 병든 사람, 문제 있는 사람,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다 불쌍히 여기셨어요. 하루는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게 된 맹인 바디매오를 만나게 됐습니다. 이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크게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7절입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다르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앞을 못보고 구걸하던 거지가 소리치니깐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꾸짖었어요. 마가복음 10장 48절입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더 크게 외쳤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께서 가시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내게로 오게 하라.” 그리고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51절, 52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할렐루야! 저는 어릴 때 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야, 만약 예수님이 내게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 물으시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무조건 들어주셨으니까. 할렐루야!

 제가 미국에서 베데스다 대학교의 총장으로 학교를 섬기면서 이제 미국 정부로부터 학력 인가를 다 받아 정식 대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 목사님께서 “이제 거기서 일이 끝났으니 동경으로 가라.” 그래서 제가 이제 이삿짐을 싸고 한국에 와서 목사님께 “목사님! 명령 받들어서 제가 내일 동경으로 들어갑니다.” 목사님이 나를 가만 보시더니 “가서 교회 지어라.” 그래서 동경에 가보니 교회를 지을 상황이 아닌 것이, 그 이전에 있던 목사님이 교회 건축 헌금 다 모아놓던 것을 가지고 우리 조 목사님을 등지고 떠났어요. 그 당시 교회 재산이 30억 엔. 그러니까 300억이 넘는 재산을 갖고 떠났어요. 그래서 성도들이 예배드릴 장소가 없어지니까 공원에서 예배드리고 여기 옮겨 다니고 저기 옮겨 다니고 그렇게 8년을 옮겨 다녔어요.

 그런데 가서 교회를 지으려하니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이 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내 마음속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기도할 때 지금부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기도해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래서 1년 내내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사마, 와타시오 아와렌데 쿠다사이” 계속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시간마다 얼마나 큰 은혜가 임하는지 성도들이 예배 때마다 그냥 설교 들으면서 그렇게 울어요. 그래서 지금도 동경교회에 가보면 이 장의자 위에 큰 크리넥스 티슈 박스가 두세 개 있는데 성도들이 그냥 와서 한참 말씀 듣고 울고 어떤 분은 크리넥스 박스 거의 반 이상 뽑아가서 다 쓰고, 그렇게 눈물의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매시간 시간 그렇게 막 은혜를 부어주어서 눈물이 쏟아내게 만들어주셨어요. 그 결과, 1년 반 후에 하나님께서 동경 한복판에 8층 건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은혜가 얼마가 감사한지. 한 2백억 되는 저 건물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새 성전에 들어가서 우리가 기뻐 뛰고 즐거워하며 주님을 찬양했던 날이 기억이 됩니다. 여러분, 불쌍히 여김을 받으니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업하러 오신 사장님 한 분이 계신데 일본에서 동경에서 크게 사업을 하시는데 전도를 해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어요. 평생 처음 교회를 나왔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예수를 안 믿었었고 일본에 와서 그 지사에서 이제 사장으로 사업을 하시는데, 교회에 딱 이제 인도함을 받고 앉았는데 찬송도 모르겠고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또 통성기도를 하는데 다들 기도하는데 무얼 기도해야 될지 모르겠더래요. 가만히 있어보니까 ‘목사님 기도나 따라 해야 되겠다.’ 그렇게 눈치를 보다가 제가 기도할 때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래서 자기도 그냥 따라했대요.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아, 그런데 어느 순간 성령이 임해가지고 눈물 콧물이 쏟아지고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보고 와서 심방 와서 예배 봐달라고 해서 그 집에 갔더니 그 간증을 하는 거예요. “목사님, 저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도 받고 교회 나오게 되었는데 찬송도 모르고 말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랐는데,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 기도 따라하다가 은혜 받아가지고 내가 이렇게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으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교회에서 그들이 ‘예수기도’라는 것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드리고 있는데 그 내용이 이와 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할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 앞에서,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큰 은혜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몸이 아플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자녀들이 속을 썩일 때, 가정에 여러 가지 풍랑이 일어날 때, 사람 찾아다니지 마시고 속상해하지 마시고 분노하지 마시고 주님께 조용히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은혜

 이 같은 은혜를 늘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둘째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야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디도서 3장 6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예수님 믿고 난 다음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면 얼마나 예수님 믿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지 몰라요.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합니다. 내 힘으로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니까 너무나 많은 상처가 내게 임합니다. 내 감정도 다 쏟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자꾸 어그러지고, 하는 일도 잘 되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모든 문제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 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마는 그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었지마는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다 도망갔습니다. 모두가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도 저들은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서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 잡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그들을 다 불러 모으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이와 같이 분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로 5절, 8절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리라 아멘! 이 말씀을 붙잡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저들이 열흘 동안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때에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습니다. 저들이 성령 충만함 받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서 말씀을 선포할 때에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 수만 명이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다시 불붙듯이 일어나는 것이 그로부터 약 1700년이 지나서 영국의 성공회 신부였던 존 웨슬리로부터 성령운동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원래 미국 조지아 주의 선교사로 갔었는데, 선교 사역을 실패하고 쫓겨났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났어요. ‘내가 선교 사역을 실패하고 풍랑을 만나니 여기서 죽는가보다’ 했는데 어디서 찬송 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도대체 이런 풍랑 속에서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 가봤더니 그 당시에 성령파인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여서 찬송 부르고 통성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크게 감동을 받고, 영국에 돌아와서 그들이 예배드리는 곳에 한 번 찾아가봐야겠다. 나도 그들에게 임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야 되겠다.

 그래서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예배에 참석해가지고, 밤 8시 45분 불을 받았어요. 그가 성령의 불을 받고 완전히 변화되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능력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53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그의 제자인 플렛처가 그 웨슬리를 따라 같이 성령 운동 한 사람들을 모아 만든 교단이 감리교단입니다. 그래서 감리교단의 그 깃발은 십자가에 성령의 불이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감리교가 성령 운동 하는 교단인데 시간이 차차 지나가면서 냉랭해졌어요. 그래서 다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자 해서 시작한 운동이 성결 운동이고요. 성결운동이 점점 식어져갈 때 다시 우리가 성령으로 우리 심령을 부흥시키고 교회를 부흥시키자 해서 일어난 것이 20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 운동입니다.
 1901년 1월 1일 찰스 팔함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그곳에서 성령의 불이 떨어지고 방언하는 역사가 나타났고, 그의 제자인 윌리암 시무어 목사를 통해서 1902년 아주사 LA에서 큰 부흥의 역사가 3년 반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은혜받은 사람이 한국에 와서 순복음 성령의 복음 역사를 전하고 그래서 우리 순복음교회가 1958년 탄생된 것입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하버드대학교의 하비 콕스 교수는 1995년 『FIRE FROM HAEVEN』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불’이라고 하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전 세계 성령 운동 역사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11장에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2009년에 『THE FUTURE OF FAITH』라고 하는 ‘우리 신앙의 미래’라고 하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보니까 기독교 신앙의 미래는 오순절 성령 운동에 달려있다. 우리에게 21세기 기독교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성령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되어 온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위대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상속자의 삶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상속자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린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디도서 3장 7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우리는 상속자가 되었어요. 위대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자가 되어서 이젠 가슴을 당당히 펴고 이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때때로 고난이 다가옵니다.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은 설명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나 8장 3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령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늘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16절은 말씀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핍박하고,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해도,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121편 7절과 8절에는 우리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렐루야!

 최근에 저희 교회에 북한에서 탈출해서 오신 분, 한 분이 계신데, 북한에 계실 때에 김일성 주석의 주치의를 하셨던 분이에요. 별로 안 놀라시는데...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신처럼 섬깁니다. 그러니까 그 김일성의 주치의였다고 하면 다들 그냥 북한 사람이 까무러칠 정도로 그런 영광스러운 자립니다. 그런데 원래 외할아버님이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장로님으로서 저희 할아버님도 다니셨던 그 서문밖교회, 또 장대현교회, 신창리교회를 세울 때 크게 공헌한 분이신데 공산 정권이 들어가자 이 외할아버님을 감옥에 집어넣고 고문을 해서 온몸이 그냥 성한 곳이, 한 곳도 성한 곳이 없게 되었고 감옥에서 나와서 얼마 있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공부를 많이 했던 인텔리였던 어머님은 탄광에 보냈어요.
글쎄 어머니가 비밀리 이 딸을, 어린 딸을 혁명가의 집안에 입양을 시킵니다. 그래서 그 혁명가의 집안에서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평양의과대학을 나오고. 그래서 김일성만수무강장수연구소에 책임 연구원이 되고 김일성 주치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북한 국경 지역에서 탈북 지도자를 감시하는 검역관 업무도 감당했는데 어느 날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 집을, 건물을 들어갔다가 빨간 책을 발견했는데 펼쳐보니까 성경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펼친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잠 6:5). 북한에서는 도망병을 노루라고 부르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성경에 노루 표현이 나온 것을 보고 놀랐는데 얼마 후에 남한에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탈북을 결심하고 중국으로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노루에 관한 성경 구절을 붙잡고 외할아버지가 했던 기도, 엎드려 기도합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 불쌍한 어린 양을 구원해주세요!” 불쌍한 어린 양을 구원해주세요.  불쌍한 어린 양을 구원해주세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는 간증합니다.
“압록강 둑에서 9일간 노숙을 했을 때 제가 숨어 있던 바로 위쪽에서 경비견이 있었는데 발각되지 않게 하셨고, 중국에서 6개월간 살아남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하던 때도 위기의 순간에 피하게 하셨고,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 위기 직전에 기적처럼 한중 수교가 이뤄져 기사회생하여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1992년 8월, 마흔세 살의 나이로 남한으로 와서 친아버님을 만나고 그리고 2000년 현재 남편인 이원구 장로님을 만나 결혼하고 2002년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현재 한국행복미생물 공동대표로 일하고 계신데, 미국에 있을 때 순복음 교회에 다닌 것이 계기가 되어서 7월 달에 우리 교회에 와서 등록하고 예배 때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 받은 것을 간증합니다.

 “대성전에서 가슴이 터질 듯한 느낌이었어요. 마치 내 몸이 공중에 붕 뜬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내 입술에서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제 삶의 목적이 180도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첫 느낌은 감사와 행복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안에서부터 알 수 없는 기쁨이 일어나고, 그 전만 해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 힘든 시간이 많았는데 이 문제도 해결을 받게 됐습니다. 요즘 매일 직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이 모든 일과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 김소연 박사에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당당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복 받은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체험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늘 성령이 충만하여서 하나님의 상속자로 귀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고 행복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운명이었는데 웬 일인지, 웬 은혜인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렇게 복 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남은 여생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박윤숙 권사(관악대교구) -

가족들의 기도로 낳은 손녀 ‘별이’

딸의 임신에 기쁨도 잠시, 장애 가능성에 낙심
이영훈 목사님의 기도 받고 건강한 손녀 태어나


 2015년 말이었다. 둘째 딸로부터 임신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다. 특히 첫 손녀라는 소식에 기쁨이 배가됐다. 딸 부부가 지은 태명 ‘사랑이’처럼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날 기대감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임신 5개월이 됐을 무렵 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검진차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아이에게 다운증후군 증상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아닌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얘기에 당장 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보다 정밀검사를 하려면 양수검사를 해봐야 하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주사 바늘이 잘못 찌르면 태아에게도 위험하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을 받아서 결과를 안다고 한들 사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이를 치료할 수도 없으니 위험을 무릅쓰면서 검사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딸과 ‘아이를 낳지 말까’라고 고민할 정도로 올바른 해결책이나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병원에서는 아이가 너무 자랐기 때문에 산모를 위해서도 아이를 낳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뿐이었다.  나와 딸 그리고 사위, 교구 권사님, 담당 교역자님과 함께 딸의 집에서 작정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의술도, 치료도, 방법도 불가능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베푸실 것을 믿고 선포했다. 매일 아침 9시면 이사야서의 말씀을 붙잡고 뱃속의 태아가 건강해질 것을 꿈꾸고 믿고 고백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영훈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어서 담당 교구장님을 통해 요청했다. 이영훈 목사님은 2016년 새해 첫 달에 딸을 안수기도하며 건강하게 손녀가 태어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해주셨다. 이영훈 목사님이 기도해주신 당일 밤 나는 꿈에서 아기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나쁜 물체가 떼어져 멀리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 꿈을 꾸고 나니 나는 하나님이 태아를 치료해주셨다는 분명한 확신이 생겼다.

 기도는 계속됐다. 딸의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옮겨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2016년 5월 3일 기다리던 손녀가 태어났다. 나와 딸은 태어난 아이의 얼굴부터 먼저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혹시 몰라 보고 또 봤는데 역시나 정상적인 예쁜 아기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외손녀의 이름은 별(사진)이라고 한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모르겠다. 예배에 데리고 가도 울기는커녕 찬송을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고, 기도로 태어난 아이라서 그런지 예배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이렇게 많은 기도를 받고 태어난 아이이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심을 나는 분명히 믿고 지금도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별이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영훈 목사님을 비롯해 중보기도를 해주신 담당 교역자님들과 신연숙 권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일을 계기로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가정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게 됐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온 가족에게 어둠이 드리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가정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깃들길 바라며 기도에 힘쓰겠다. 할렐루야!  

정리=정승환 기자


주님의 성령이 내게 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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