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방법                           

 

존 밀러가 말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있다고.
오프라 윈프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감사의 방법을 이렇게 일러줍니다.

1. 내 마음에 꼭 맞는 작은 노트를 장만한다.
2. 감사할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기록한다.
3. 아침에 일어날 때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때 언제든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의

   제목을 찾아 기록하는 시간을 갖는다.
4. 거창한 감사의 제목을 찾기보다 일상의 소박한 제목을 놓치지 않는다.
5.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으로부터 받은 느낌, 만남이 가져주는 기쁨 등을 기록해 간다.
6. 학교나 교회에서 '일기쓰기' 모임을 만들어 함께 한다.
7. 버스에 있거나 혼자 공공장소에 있을 때 그 동안의 감사제목들을 훑어본다.
8. 정기적으로 감사의 기록들을 나누고 격려한다.
9. 나의 감사제목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지켜본다.
10. 나만의 조용하고 편안한 장소를 선택하여 자주 그곳에 앉아 감사의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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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영 성도(교회학교 예제모) -

“포기하지 않는 사랑 덕분에 제 길을 찾았습니다”

예제모 말씀 훈련으로 비전 향한 첫걸음
소명 받고 군종사관후보생 시험 합격해


 나는 신학생으로 소명을 받고 입학했기에 대학교에서 수업도 열심히 듣고 언제나 말씀과 예배 중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월 28일 믿음을 가지고 치룬 군종사관후보생 시험에 합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하지만 예전에 나를 알았던 사람들은 180도 달라진 나의 모습을 낯설어 한다. 신학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 나는 학생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것들만 골라하는 소위 불량학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난 체격도 좋고 인기도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나쁜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술과 담배를 하며 방황했다. 반 친구들을 짓궂게 괴롭혔고 나 때문에 학교에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학교에서는 감시해야 하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선생님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내가 더 이상 나쁜 길로 빠지는 걸 막기 위해 매를 드셨다. 처음에는 연약해 보이는 어머니가 때려봐야 얼마나 아프겠나 싶었는데 종아리에 피가 나고 엉금엉금 기어 학교를 나가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바뀌지 않았다.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작정기도로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그러나 정작 나는 어렸을 적부터 다녔던 교회를 빠지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1년 간 교회를 빠지며 방황하는 나를 붙잡은건 교회학교 중등3부 담임으로 만난 황의대 선생님이었다. 황 선생님은 내가 교회를 빠진 날이면 곧장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나를 관리하자 어머니는 선생님께 가정방문을 부탁드리고 나에 대한 상담을 곧잘 하셨다. 선생님은 집이 멀다는 핑계로 청소년 철야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날 차로 데리러 오며 참석시켰고 말씀 훈련 동아리인 예제모큐티스쿨에도 억지로 참여시켰다. 나는 요리조리 빠질 궁리를 하며 온갖 잔꾀는 다 썼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를 한 번도 혼낸 적이 없고 늘 생각할 기회를 주고 소통을 시도하셨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못 이기는 척 한 번씩 큐티모임에 참여했는데 그때마다 들은 성경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부모님의 기도와 큐티모임에서 들었던 말씀들이 차곡차곡 쌓여서였는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주일 예배 시간 하나님은 나의 잘못들을 깨우쳐 주셨다. 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그동안 내가 잘 못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여태까지 반항심이 가득 차 있던 마음에 회개의 마음이 생겼다.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흘러 예배를 드리기가 어려웠다. 회개한 후부터는 큐티에 열심히 참여했다. 꾸준히 말씀 훈련을 하니 내 미래도 말씀에 대입해 생각하게 됐다. 성적을 비롯해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입학 후 나는 군복음화와 더불어 북한선교의 일환으로 말씀을 전하는 군목이 되어야겠다고 더욱 구체적인 꿈을 품게 됐다.

 

현재 예제모 교사로 봉사하고 있는데 주일 1부 예배를 드리고 기도모임, 특별활동 등을 하다보면 밤 9시가 돼서야 집에 간다. 내가 그동안 하나님께 소홀했던 시간들을 회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렵더라도 꾸준히 말씀을 보며 하나님과 친밀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우리가 세상의 주역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복 있는 사람/이영훈목사

그러나 무릇 야훼를 의지하며 야훼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 17:7~8)

 오늘은 예레미야서 17장 7절, 8절 말씀을 가지고 ‘복 있는 사람’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사람”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뿐인 인생을 삽니다. 두 번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아가자’ 그래서 쾌락주의, 물질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한없이 비참하고 슬픈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언제 마지막이 다가와도 우리는 당당히 그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우리에게는 천국이 예비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참으로 행복하고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된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세 가지 귀한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을 의지하라

 첫째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7장 7절에 ‘그러나 무릇 야훼를 의지하며 야훼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야훼를 의지하며 야훼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따르고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십니다. 진정한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사람들은 복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 어떤 높은 자리, 뭐 세상에서의 인기나 명예를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어느 순간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가 지음받은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다 맡겨야 되요.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고 의심하지 않고 믿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제가 비행기를 많이 타는데 한 번도 이 비행기가 떨어질까 하고 염려해보고 탄 적은 없습니다. 왜? 믿으니까. ‘조종사가 나를 원하는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줄 것이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책도 읽고 또 뉴스도 보면서 그러고 갑니다. 근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렇게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자꾸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 그랬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염려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말라” 그랬는데 걱정을 쌓아놓고 살고 있어요.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다 맡기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구원받아서 40년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되는 것이 당연한 그 신앙의 자세이고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 편해지니까 그 지역에 가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물질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7장 4절에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24시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갓난아이를 둔 어머님은 밤에 잠을 못자요. 부스럭 소리만 들려도 얼른 깨서 ‘우리 애기가 뭐 필요한가?’ ‘애가 배고프지 않은가?’ ‘또 기저귀에 응가하지 않았나?’ 모든 관심이 ‘어디 아프지 않나?’ 이 아이한테 있습니다. 그러나 24시간 깨어있을 수 없지요. 깜빡깜빡 잠을 자죠. 그런데 하나님은 24시간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 시편 121편 3, 4절에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고 설명합니다.

 할렐루야! 너무나 피곤하면 때때로 우리가 주님의 품에 안겨서 주일날도 잡니다. 주님이 ‘아이고, 얼마나 피곤하면 내 품에서 자냐. 나는 네가 졸고 자도 난 자지 않는다. 늘 깨어있다. 내가 너를 돌보고 너를 주님의 은혜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다.’ 할렐루야! 시편 37편 5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한 시편 37편 3절에 “너의 가는 길을, 너의 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 그러면 내가 책임을 져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맡기면 주님이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길을 갈 때 매일 같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금요일 날만 이틀 치를 내려주셨어요. 왜? 다음 날이 안식일이니까. 40년 동안 만나가 그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그들을 책임지고 돌보시는 것같이 우리도 돌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25편 1절에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입니다. 그 산이 요동하지 않는 것처럼 너희도 요동하지 않을 것이라! 왜?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딱 우리를 붙들어주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다윗의 그 사랑의 고백같이 우리도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드려야 됩니다. 시편 18편 1절에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하나님, 나의 생명보다 귀하신 나의 하나님, 나의 전부가 되신 하나님, 나의 처음과 마지막이 되신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우리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그 사랑의 팔에 품어주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으려고 사람을 찾아다니지 마세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이요, 자기한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주님만 의지해야 됩니다.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시편 124편 8절에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온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23편 1절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2. 물가에 심어진 나무의 복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때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두 번째 축복이 무엇이냐? 물가에 심겨진 나무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8절에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편 3절에도 같은 내용으로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요, 뿌리를 깊이 내려서 물줄기에 닿아있기 때문에 가뭄이 와도 잎이 푸르청청하고 또 여름에 아주 태양 볕이 뜨거워가지고 다 시들어도 그 잎사귀만은 푸르청청하다는 것입니다. 이 잎사귀가 마르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우리 신앙생활의 절개. 어떤 환란과 비난이 다가와도 늘 잎이 푸르청청하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문제와 어려움이 있으면 뒤로 뒷걸음질 치고, 어느 날 예배에 빠져서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면 시험에 들었다고 하고. 여러분, 시험 들었다고 교회를 빠지면 안 되고 그때 더 열심히 나와야 되요. 그것은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아니에요.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환란이 다가와도 핍박이 다가와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누가 물고 뜯어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그러한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은혜가 그 삶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푸르청청한 것과 같이 여러분의 믿음의 모습이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내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뿌리를 어디다가 내려야 되느냐? 나무가 물줄기에 내린 것처럼 우리 신앙의 뿌리를 이 말씀의 물줄기에 뿌리를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습니다. 얼마나 그 말씀이 은혜가 되는 지. 같은 말씀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또 은혜가 되고 또 은혜가 되고 또 은혜가 되고. 할렐루야! 말씀에 뿌리를 내릴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시편 1편 2절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는 사람이 복있는 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요한복은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4절에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위대한 부흥사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말씀을 붙잡음으로 신성의 본질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즉시 살아있는 능력과 접촉하는 자가 된다. 그 능력은 모든 것을 은혜로 변화시키며, 죽은 것들을 살리는 능력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이 역동적인 말씀을 믿을 때, 우리를 은혜에서 은혜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도록 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말씀으로 충만해서 말씀이 내 마음 속에 늘 살아 움직이고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데,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뿌리를 말씀에 강가에, 성령의 생수의 강가에 깊이 내릴 때 날마다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설명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 39절에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할렐루야! 주여, 내 배에서 생수의 성령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넘쳐나고 주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모든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물가에 심겨진 나무의 복을 받게 하여주옵소서. 사람에게 뿌리를 내리지 말고 인기 병에 뿌리를 내리지 말고 이 땅에 없어질 물질에 뿌리를 내리지 말고,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성령에 뿌리를 내리면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할 것이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3. 열매 맺는 삶

 주님께서 주신 세 번째 축복은 열매 맺는 삶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물가에 심긴 나무에 복을 주시고 그 다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주십니다. 예레미야 17장 8절에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열매 맺는 나무는 그 열매 때문에 그 나무의 가치가 인정되고 그 존재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나무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제가 어릴 때 저희 집 마당에 큰 포도나무가 있었는데요. 겨울철에 보면 포도나무처럼 볼품없는 나무가 없습니다. 이리저리 삐틀어져가지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불쏘시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의 위력이 언제 나타나느냐? 봄이 되서 싹이 돋고 잎이 푸릇푸릇 나고, 여름이 되어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야! 참 먹음직한 포도구나. 그래서 그 포도나무가 열매 때문에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 믿는 사람들답게 많은 열매를 맺을 때 우리가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고 나서도 열매를 맺지 않으니까 오히려 인간의 모습이 자꾸 나타나니까,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교회가 욕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주여, 물가에 심긴 나무가 되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여주시옵소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여주시옵소서.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딱! 주님께 달라붙어서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면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가 뿌리를 깊이 물줄기에 닿아있는 것처럼 우리 신앙의 뿌리를 깊이 말씀에 담가놓고 있으면 주님의 은혜가 임해서 우리로 하여금 열매 맺는 신앙이 되게 만들어주십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해마다 방송사에서 연말에 시상을 합니다. 연기대상, 신인상. 이런 시상을 하는데 생중계로 하기 때문에 꼭 그 나오는 탤런트나 배우들에게 얘기를 한답니다. “절대로 종교 얘기하지 마라. 절대로 종교 얘기하지 마라.” 그런데 보면 “하지 말라” 그래도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상을 타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래서 ‘야, 저 믿음 대단하다.’ 저렇게 발표하고 나면 또 핍박이 다가올 텐데도 당당하게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할렐루야! 그 또 축구 골 넣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 “기도하지 마라!” 더 열심히 기도합니다. “주여.” 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기도하는 거지요. 골을 넣었으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많은 열매를 맺으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서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 모습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되는데,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에 그 열매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설명합니다.

 할렐루야! 많은 열매를 맺을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세상이 어둡고 들리는 소식이 늘 우리를 염려, 근심, 걱정하게 하는데 우리는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명령하십니다.

 할렐루야! 주여,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기뻐하게 하여주옵소서. 감사하게 하여주옵소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여주옵소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예수 믿지 않게 하여주시고 주님 보시기에 주님 인정할 만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존경받는 모습으로 예수 믿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요한복음 15장 8절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고 사람들이 그제야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저렇게 늘 웃고 열심히 일 잘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데 알고 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네.” 이렇게 되어야 되요. “아,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야? 걸핏하면 소리 지르고 신경질 내는데? 문제가 좀 있는데?” 열매를 안맺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나면 성질도 못 부려요. 왜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걸핏하면 신경질이나 내시더라.’ 그런 말씀 성경책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까지 용서하는 사랑의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예수님 닮은꼴이 되어야 됩니다. 말을 하더라도 행동을 하더라도 우리 모습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절대로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나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러한 모습으로 예수 믿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날 때부터 장애를 가져서 어릴 때 장애를 가진 것이 늘 마음에 절망이 되었다가 예수 믿고 달라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계시는 장동호 교수님의 얘기를 소개합니다. 최근 2017년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셨는데요. 전주교대 미술교육학과 교수이십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한쪽에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서 늘 마음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열등감과 트라우마를 갖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자기 다리만 보는 것 같아가지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그러한 절망의 모습으로 살았는데,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신이 계시다면 왜 날 이렇게 불공평하게 만드셨는가! 그런 신은 신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절에 가서 백팔 배를 했는데, 아! 절의 보살이 자기한테 이렇게 말해주는 거예요. “네 다리는 조상들의 업보의 결과이다. 너는 그 저주를 받아서 다리가 불편한 것이다.” 더 큰 상처를 받아버렸어요. 그래서 자기가 이렇게 불구가 된 것에 대해서 답을 찾아보려고 철학에 빠져보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봤지만 마음에 상처와 절망만 깊어졌습니다. 폐렴까지 다가와서 ‘이젠 죽어야 되겠다.’ 자살하려고 생각했을 그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약한 사람들, 덜 똑똑해서 자기 힘, 능력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슈바이처나 링컨같이 크리스천 중에 훌륭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믿을까?” 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 성경을 봐야 되겠다.’ 그런데 성경을 보다가 은혜를 받았어요. 교회 나와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되었어요. 눈물 콧물 쏟으며 예수를 믿고 온 가족을 다 주님께로 인도하고. 할렐루야! 성경을 묵상하다가 요한복음 9장을 읽으면서 자기의 트라우마를, 자기의 열등의식을 치유해 치료함을 받았어요. 2절과 3절에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말씀을 보고 열등감이 눈물로 녹아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죄 사함의 은혜로 자유를 누렸고, 이때에 비로소 제 인생의 슬픔, 흑암, 어두움이던 이 소아마비 다리가 영광의 다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통곡하게 되었습니다.

 장교수가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 통곡하고 울고 나서 “나 이제 주님의 영광 위해 살리라.”는 결심으로 일본에 유학을 갑니다. 13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전주교대 미술교육학과 교수가 되었고 전주 지역에 있는 많은 대학생들을 말씀을 통해서 교육하고 제자훈련하고 또 전도하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2017년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하늘에서 내려와’란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수상 소감입니다. “3개월 동안 대여섯 시간을 내리 서서 나무를 파내며 작업하다보니 손목 발목은 물론 몸 전체가 더 망가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멈출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인생이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제 모습으로, 또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를 제대로 믿기만 하면 이 같은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해서 물가에 심긴 나무의 복을 받기만 하면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열매를 맺는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이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축복받은 일생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죄덩어리였는데, 늘 열등의식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왔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아주 존귀한 자라고 여기시고 택하시고 부르셔서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 이제부터 내가 과거의 나의 절망적인 모습, 상처의 모습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내 앞에 펼쳐진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면서 물가에 심긴 나무의 복을 받아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은혜로운 복음 성가 이어듣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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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태초에 무엇이 계셨는가?(1절)
2.무엇이 어두움을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였는가?(5절)
3.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6절)
4.요한의 임무는 무엇인가?(7절)
5.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은 어떤 빛이라 하는가?(9절)
6.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어떤 권세가 주어 졌는가?(12절)
7.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어찌
되었나?(13절)
8.율법은 누구로 말미암아 주신 것인가?(17절)
9.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은 무엇인가?(17절)
10.요한은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어디에서 외치는 소리라 하였나?(23절)

11.요한은 무엇으로 세례를 준다 하였나?(26절)
12.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무엇을 지고가는 어린양이라고 하였나?
(29절)
13.무엇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 위에 머물렀나?(32절)
14.번역하면 선생이라는 말은?(38절)
15.베드로의 형제는 누구인가?(40절)

16.메시야는 번역하면 무엇인가?(41절)
17.예수께서 빌립은 어디에서 만나셨나?(43절)
18.빌립,안드레 베드로는 어디 사람인가?(44절)
19.누구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하였나?(47절)
20.나다나엘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고백을 하였나?(49절)


************************정  답***************************************




1.(1)말씀 2.(5) 빛 3.(6)요한
4.(7)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함
5.(9)참빛 6.(12)하나님의 자녀 7.(13)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 8.(17)모세
9.(17)은혜와 진리 10.(23)광야 11.(26)물 12.(29)세상 죄 13.(32)성령
14.(38)랍비 15.(40)안드레 16.(41)그리스도 17.(43)갈릴리 18.(44)벳새다
19.(47)나다나엘 20.(49)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

 

관련

   

오직 믿음으로/이영훈목사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장 17절)

오늘 저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오직 믿음으로”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0년이 되는 날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당시 가톨릭의 타락과 부패한 모습을 95개조의 항목에 적어서 비텐베르크 성당 앞에 붙였습니다. 그는 힘없고 보잘것없는 한 신부였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한 사람으로 시작된 이 종교개혁이 온 유럽을 휩쓸고 교회를 변화시켜서 기독교가 탄생되어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 우리 교회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종교개혁의 모토가 된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그는 복음과 하나님의 의와 믿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의 의

 먼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복음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절망에 처한 자를 건져내고, 그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한평생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의 삶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순교하는 그날까지 이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의 삶을 마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전해지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나님의 의로부터 나옵니다. 성경은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의와 완전히 대조가 됩니다. 인간의 의는 불완전합니다. 인간의 의는 늘 자기중심입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그 의가 늘 바뀝니다. 내가 옳고 저 사람이 틀리기 때문에, 함부로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의를 휘두르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공평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뜻을 우리에게 펼치는 하나님의 의가 이 말 속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의에 굳건히 서야 되는 것입니다.

시대를 따라 변하는 사람의 의에 서면 우리는 늘 그 변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를 따라갔던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조심해야 될 것은 어떠한 힘을 가진 자리에 있을 때,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을 때,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어디 있는지를 찾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옳고 나와 맞지 않으면 다 틀리다고 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혼란과 어려움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의를 펼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는 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순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인간의 행함으로썬 절대 의로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이것이 잘못되고 이것이 잘못됐다는 그 문제를 지적할 뿐이고 우리의 죄를 들춰낼 뿐이지, 율법을 우리가 행함으로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 죄인이 죄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의는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에서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은혜로,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선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9절은 말씀합니다.“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자신의 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늘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문제 있다고 지적하던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는 끊임없는 다툼과 갈등을 일으킬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임할 때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고,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갈등과 문제와 어려움이 해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고백하고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고백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이 값없이 선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의를 우리에게 주실 때에 믿음의 손을 내밀어 그 의를 받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모두에게 값없이 주신 것인데 믿음의 손을 내밀지 않으면 그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밥상에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있어도 내가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구원의 은혜는 모두에게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 것인데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그 구원이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 모두가 다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르틴 루터는 카톨릭의 신부입니다. 늘 자신의 죄에 대해서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선한 일도 많이 하고, 또 선임 신부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합니다. 카톨릭에서는 신부에게 가서 자기의 죄를 고해성사하면 죄 사함 받는다고 하는 그러한 교리가 있어서 늘 신부를 찾아가서 자기 죄를 고백했는데, 죄 같지도 않은 죄를 가지고 와서 자꾸 와서 선임 신부한테 고해성사를 하니까 선임 신부가, “제발 죄 같은 죄 좀 가지고 와서 고해성사를 하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늘 자기의 죄를 회개했는데, 양심이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죄인이다.’ 늘 자기의 죄를 지적했어요. 그래서 그가 늘 마음의 양심과 싸우며 고통 가운데 지내다가 로마서를 읽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를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였다. 그때 나는 수도사로서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에 도무지 나의 공로로는 그분을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시는 그 의라는 것을 터득했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할렐루야!

그가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힘으로 의로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 얻게 된다는 그 놀라운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로마 교황이 거하는 성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기 위해서 저들이 모금을 하는데, 테첼이라고 하는 이 수도승이 다니면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하면 여러분이 지은 죄, 여러분의 부모가 지은 죄까지 다 용서해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참지 못해서 그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종교개혁 5대 원리는 이와 같습니다. 첫째가 ‘오직 믿음으로’, 둘째로 ‘오직 성경으로’, 셋째가 ‘오직 은혜로’, 넷째가 ‘오직 그리스도로’, 다섯 번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립니다. 이 다섯 가지 주제의 기본이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이 오직 성경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가 있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가 있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초점을 딱 예수님께 맞추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은 방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염려, 근심, 걱정이 들어오고 문제와 어려움을 바라보면 문제가 내 마음에 들어오지만, 예수님을 바라볼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늘 흔들리는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놀라운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 입니다. 로마서 9장 30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우리 이방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닌 우리 이방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되고, 우리 믿음이 진실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하면서도 내 삶이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진실된 믿음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여 주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 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가 무엇을 확신하느냐? 주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주님의 때에 주님이 놀라운 일을 다 이루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굉장히 조급해요. 어떤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빨리 이루려고 하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참고 견디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이루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삶

 셋째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니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하반절에,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완성이 아닙니다. 출발입니다. 그다음 믿음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느냐?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이름은 크리스천인데 그 삶이 크리스천답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판할 때 하는 말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은 물에 빠지면 입만 뜬다’고 그래요. 늘 말만 앞서고 삶의 열매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가 비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행함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우리가 믿고 난 다음 우리 믿음이 날마다 성장해야 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믿음이 자라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믿음이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변화가 다가와서, 내 성격이 급하고 하루에도 열 번씩 화내던 모습이면 믿음의 사람은 열 번 화냈다가 아홉 번 내고, 여덟 번 내고, 일곱 번 내고, 여섯 번 내고, 나중엔 화를 내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주셨을 때 그것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역자가 저에게 축복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할렐루야! 60년대 70년대 가난하고 못살 땐 우리가 “복 주시옵소서!”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면서 우리가 보니까 그것이 다가 아니에요. 가지고 나니까 그다음 문제가 생겨나고, 너무 많이 가져가지고 그 집안에 불화가 생겨서 최근에 살인 사건도 나고. 이런 것을 보면서 아낌없이 나누고 또 나눈다면 진정한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믿음이 더 나아져야 합니다. 열매 맺는 믿음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절대로 과거 회귀형, 뒤로 돌아가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린 미래 지향형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더 나은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구약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살고 있을 때에 남 왕국 유다는 정치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타락해서 절망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했고 저들이 우상숭배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그 어딜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죄와 불의가 가득했던 그때에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하나님의 의로움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 주신 말씀입니다. 하박국 2장 4절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세상 사람들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불의 속에 살지만 너희,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죄와 절망이 우리를 엄습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그 귀한 역사를 이루어나갈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성경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주여,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어떻게 우리가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기도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거 그거 가지고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한 주일의 시작이고 그때로부터 일주일 내내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될 때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우리에게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고 그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 승려였다가 변화받아서 지금은 한국 교회를 보호하고 동성애와 이슬람을 반대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이정훈 교수를 소개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불교에 빠져가지고 반야심경 해설서를 읽고 종교철학에 관심이 깊었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대학교 2학년 때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승려가 됩니다. 타락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적으로 개혁하고자 법철학을 연구하면서 좌파 법철학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는 없어져야 될, 말살되어야 될 원수로 여기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에 들어가서 그다음, 군종 장교 군 법사로 임관하고 군대 내 포교를 위해 군 법당도 건축하고, 전역 후에는 학생이 되어 사회를 개혁하고자 환속한 후에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을 만듭니다.

2005년 종자연 출범 때부터 산파 역할을 감당하면서 종교의 자유도 인권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민사소송, 입법청원, 헌법소원심판청구, 진정, 신고 등을 통해 한국 교회를 종교 편향 집단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고려은단이 그 큰 길에 세운 ‘Jesus loves you’라고 하는 그 간판도 내리게 하고, 대광고등학교에서 그 예배드리는 거 반대했던 학생을 뒤에서 지원하고 도와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게 하라고 하고 하는 이러한 일들에 앞장섰습니다.

더욱 여세를 몰아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서 기독교를 책을 보고 연구하면서 어떡하든지 기독교를 무너뜨리려고 그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성경책도 많이 읽고 신학 서적도 많이 사서 읽고, 그런데 2007년 어느 날 너무 머리가 아파가지고 절에서 나와서 집에 와서 기독교 TV를 틀었는데,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설교하시던 중에,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그 말하는 말씀을 듣고 속으로 ‘죄인?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하세요!’ 그런데 갑자기 혀가 꼬부라지면서 불이 임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임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고꾸라졌습니다. 늘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앞장서고 기독교의 약점, 문제점만 들춰내서 폭로하던 그인데 기독교 TV 보다가 불을 받았어요. 여러분, 그래서 집에서 기독교 TV를 많이 봐야 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제가 한국 사회를 위해 굉장히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기의 의죠, 자기 의. 하나님 의가 아니라, 왜냐하면 한국 사회를 망치는 악의 근원이 교회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대로 죽어도 항변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그냥 알아버렸어요. 신학 서적에서 봤던 전적 부패가 뭔지 몸의 구석구석, 세포까지 느껴졌습니다. 의롭다고 자만했던 저의 죄성이 낱낱이 보였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죄인을 살리신 창조주, 구세주가 확실히 믿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화인지 모릅니다. 승려로써 기독교 박멸 운동에 앞장섰던 그가 마치 사도 바울이 교회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이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 잡아넣는데 앞장서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 만나서 변화된 것처럼 그가 변화가 되었어요.

그래서 2008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울산대 교수로 그가 이제 교편을 잡으면서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살았던 그가 기독교를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반미, 이슬람 미화, 동성애 옹호 세력이 연대해서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이때에 교회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부합니다.

“지금은 순교신앙으로 무장해야 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될 때입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면 영국처럼 영적으로 황폐화되는 수준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부활 파워로 반전을 일으킬 때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성령이 임해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면 믿음이 생겨나게 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삶의 운명이 이렇게 바꿔지는 것입니다. 가장 기독교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지금 가장 기독교를 보호하고 기독교를 지키는데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무장해서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한평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금까지 나의 의로 내 스스로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내 의가 살아서 늘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임해서 나는 죄인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게 하여주시고, 전적으로 예수를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 주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사도행전 퀴즈.. 주일학교용

                 
범위: 사도행전

1. 다음은 사도행전에 있는 말씀입니다. 괄호안에 들어갈 말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① 예루살렘 ② 이스라엘

2.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이다. 다음 중 예수님의 제자인 사람은?
① 바돌로매 ② 알패오

3. `아겔다마`의 뜻은?
① 피밭 ② 불밭

4. 가룟 유다가 자살하는 바람에 사도의 수는 11명으로 줄었다. 12명을 채우기 위해서 사도들이 제비뽑아서 선택된 사람은?
① 맛디아 ② 바사바(요셉)

5. 성전에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 좀 달라고 구걸했던 사람은?
① 앉은뱅이 ② 귀머거리

6. 거짓말해서 죽은 사람은?
① 바나바 ② 아나니아

7.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태어난지 몇 일만에 이삭에게 할례를 했는가?
① 7일 ② 8일

8. 모세는 나이 80세에 가시나무떨기 불꽃을 보았다. 그때 모세는 어디에 있었게?
① 감람산 ② 시내산(호렙산)

9.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몇 년 동안을 광야에서 돌아다녔는가?
① 7년 ② 40년

10. 나쁜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서 죽은 집사님은?
① 빌립 ② 스데반

11. 에디오피아 여왕의 신하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적이 있었어요. 이 때 그 신하는 누구를 만났을까요?
① 빌립 ② 스데반

12. 사울(바울)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예수님을 만나서 바울이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디로 가고 있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① 다메섹 ② 가이사랴

13. 8년 동안 중풍병을 앓고 있던 사람을 베드로가 고친 적이 있어요. 병이 낫게 된 이 중풍병자의 이름은?
① 애니아 ② 매니아

14. 착한 일을 많이 한 어떤 여자가 죽었는데 베드로가 이 여자를 살려낸 적이 있어요. 죽었다고 살아난 이 여자의 이름은?
① 다비다 ② 마르다

15. `고넬료`의 직업은 군인이죠. 그러면 `고넬료`의 계급은 뭘까요?
① 백부장 ② 천부장

16. 여러 짐승들이 들어있는 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본 사람은?
① 바울 ② 베드로

17. 사도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칼로 죽인 사람은?
① 빌라도 ② 헤롯

18. 베드로는 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리아(마가의 어머니)의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이때 문을 열어 주려고 나온 여자아이의 이름은?
① 로데오 ② 로데

19. 벌레에게 먹혀 죽은 사람은?
① 빌라도 ② 헤롯

20. 바나바와 사울(바울)이 만난 남자 무당의 이름은?
① 밥예수 ② 바예수

21. `밥예수`인지 `바예수`인지 하는 남자 무당은 바울의 저주를 받아서 어떻게 되었는가?
① 장님 ② 앉은뱅이

22. 다음 중 `이새`의 아들은 누구인가?
① 사울왕 ② 다윗왕

23.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이 그 곳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다. 바울에게 붙여 준 별명은?
① 허메 ② 흐미

24.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학문과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은?
① 아굴라 ② 아볼로

25.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백성에게 “내 뒤에 오시는 사람을 믿으라”고 말한 사람은?
① 요한 ② 바울

26. 에베소에서 은 오만(수십억원)이나 되는 책이 불태워진 적이 있다. 어떤 책들인가?
① 만화책 ② 마술책

27. 어떤 청년이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꾸벅 꾸벅 졸았다. 그러다가 3층에서 떨어져서 죽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청년을 살려냈다. 이 청년은 누구게?
① 유두고 ② 이드로

28.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① 바리새인 ② 사두개인

29.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가던 길에 태풍을 만나게 되었죠. 이 태풍의 이름은?
① 유라굴로 ② 유리겔라

30.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가던 길에 폭풍을 만나게 되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섬에 머물게 되었답니다. 바울이 잠시 머물렀던 섬은?
① 대마도 ② 멜리데


마음을 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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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환 안수집사(구로대교구) -

순종할 때 복 주시는 하나님

결혼 전 교회출석 약속, 15년 만에 지켜
술 접대 대신 당당하게 크리스천임을 밝혀


 나는 결혼 전 “결혼하면 열심히 교회출석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이 핑계, 저 핑계대고 차일피일하며 예배 드리러 가는 것을 피했다. 연애시절 아내를 따라 우리 교회 대성전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깜짝 놀랄만한 속도로 말씀을 전하는 조용기 목사님까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말처럼 쉽게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주일이면 자녀들을 교회에 들여보내고 교회주변에서 맴돌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아이들도 매번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했다.

 나는 다소 이른나이인 33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영업을 하다보면 어쩔수 없이 술자리가 잦고, 지방출장이라도 가면 여지없이 접대는 필수였다. 열심히 사업장을 운영했지만 항상 승승장구할 수는 없었다. 해가 갈수록 자리는 잡아갔지만 그만큼 피로도 쌓여만 갔다. 사업이 여러모로 힘들었던 무렵이었는데 지역에서 교구장과 함께 지역식구들이 와서 예배를 드려주셨다. 교구장도 몇 번을 사업장에 와서 기도도 해주고 격려해주셨다. 그렇게 찾아와서 격려해주시니 불안감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고 큰 위로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교구장이 사업장에 오셔서 “교회 나오실거죠?”라고 질문하셨는데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했다. 또 연이어 “언제부터요?” “네 다음주부터 나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해서 15년만에 결혼 전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막상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니 너무 좋았다. 그 후로 어머니가 소천하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주일성수를 어긴 적이 없다. 그리고 시간이 되는대로 성경학교, 파더스드림 등을 수료하고 파더스드림에서 봉사자로도 참여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찾아가서 했다. 나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됐다. 교구 식구의 인도로 지금은 남선교회 기획조정실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교회에서 자주 접하는 말씀 중에 하나가 ‘순종할 때 하나님이 복주신다’인데 정말 그 말씀 그대로였다. 평소 목도 자주 붓고 스트레스 탓인지 몸이 아플 때가 많았는데 봉사를 시작한 이후로 아픈 일이 없다. 심지어 새벽 봉사를 하면 육체적으로 더 피곤할수도 있는 상황인데 몸은 더 건강해졌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큰 어려움은 사업장에서였다. 일의 특성상 영업과 접대는 필수였는데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로 갈등에 빠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신 직원을 보내기도 하고 핑계를 대며 피했지만 결국에는 당당하게 크리스천임을 밝히고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이 문제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관계가 더욱 좋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주변의 다른 사업장은 경기침체로 어려움에 처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자녀들이 다섯이다 보니 남들만큼 사교육도 못시켜주고 대학학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필요한 만큼을 반드시 채워주셨다. 그리고 자녀들도 조금도 엇나감 없이 잘 자랐고, 우애가 좋아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었다. 단 한 번도 자녀 문제로 고민한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주님을 믿지 않았으면 자녀들이 비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늘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내게 주님을 만나고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전에는 사업을 하면서도 누구하나 의지할 곳이 없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면 지금은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늘 든든하다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기도할 때 해결해주시는 주님이 있어 교회에 오는 것이 즐겁고 예배를 드리고 섬김과 봉사를 할 수 있어 오늘도 행복하다. 할렐루야. 


가나안의 전쟁/조요기목사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야훼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사무엘상 17장 32∼37절)

 가나안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전쟁이 승패를 결정짓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살펴보면 블레셋 군대는 사기가 충천하여 이미 전쟁에 이긴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마치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의기양양함과 같은 그런 태도였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골리앗 장군을 앞세우고 나오는 블레셋 군대 앞에 모두 공포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어느 곳에 가서 몸을 숨겨야 할지 감당을 못하고 남녀노유 할 것 없이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싸우겠다고 용감하게 나오는 사람이 이스라엘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 앞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배하지 않을까 걱정을 할 때, 다윗이 담대하게 나왔습니다. 그는 나이가 겨우 17세, 18세 쯤 되는 목동인데 누가 봐도 골리앗 대장에게 상대가 되지 않은 목동이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제일 처음 보고 저주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릴 때 부엌에서 어머니가 밥을 짓는데 자꾸 개가 들락날락하고 귀찮으니까 지팡이를 가지고서 개를 때리고 나오면 개가 부엌에서 뛰어 나오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아마 이 블레셋 골리앗도 그런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나오니까 “내가 개인 줄 알고 지팡이 들고 나오느냐? 단칼에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2절로 44절에 보면 ‘그 블레셋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이 블레셋 군대 장군의 저주를 듣고 가만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꾸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삼차원적인 저주를 한 골리앗에게 사차원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삼차원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세계에서 대답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사차원은 눈에 안 보이는 세계에서 대답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서 47절까지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말씀합니다.

1. 꿈의 싸움

 싸움은 꿈의 싸움인 것입니다. 적과 적이 서로 대립해서 마음에 꿈꿔보는 것입니다. 적이 어떤 상대인지 계산해보는 것인데, 골리앗은 쉬운 전장으로 생각했습니다. 부엌 지팡이에 얻어맞고 깽깽 소리하고 뛰어나오는 개 정도로 비해서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부가 부엌 지팡이로 개를 때리듯이 내 단칼에 베어버리겠다고 마음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꿈을 달리했습니다.

 골리앗을 보고 아버지의 양떼를 칠 때, 곰이나 사자가 와서 양떼나 염소 떼의 새끼를 물고 가면 달려가서 빼앗는데 입에서 물고 흔들고 놓지 않으면 사자와 곰의 새끼와 손으로 잡고서 쳐서 죽이고 그 입에 물려고 한 양 새끼를 잡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곰과 사자도 내가 수염을 잡고 쳐서 죽였는데 이 곰과 사자보다 더하겠느냐? 이놈도 곰과 사자 중 하나처럼 되겠다고. 그는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과 소원에 넘치게 응답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땅의 물맷돌을 하나님은 미사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적을 대적해서 싸우기 위하여 건너가 적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면서 땅에서 돌멩이 다섯 개를 잡아넣었습니다. 그 돌멩이 한 사람은 돌멩이 하나면 될 것인데 다섯 개를 왜 집어넣었을까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다윗이 골리앗을 치러 갈 때 그 온 가족이 동원해서 나오면 모조리 다 때려잡으려고 다섯 개의 돌멩이를 포켓에 넣고 가는 것입니다. 돌멩이를 물맷돌에 넣어가지고서 돌리는 것입니다. 힘차게 돌려서 “휭~”하고 나가면 이게 어디 가서 맞을지 몰라요. 그러나 미사일처럼 정통으로 맞으면 감당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들판에서 목동으로 일하면서 늘 연습 했기 때문에 그가 때리면 정통으로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처럼 그가 골리앗 잡기 힘든 것은 골리앗이 철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수 있습니다. 머리에는 철갑모를 썼으니까 어디에 돌이 들어갈 데가 없습니다. 팔다리에 돌이 맞는다고 효과가 있겠습니까? 오직 눈과 눈 사이에만 틈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까지 막아버리면 눈이 안 보이니까. 골리앗이 싸우러 나올 때 쓴 철모에 눈과 눈 사이 거기에 돌멩이 하나 들어갈 만한 여유가 있는데 다윗이 흔들어서 놓아버린 것은 그 눈과 눈 사이에 들어가서 때렸다 말이에요. 사람이 마음으로 일을 계획해도 일을 저지르는 것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돌멩이가 날아가더니 그 큰 짐승같은 골리앗이 벌떡 자빠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세게 들어갔던지 그것이 뚫고 뼈를 부수고 뇌속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못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것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8절에서 50절까지에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삼차원의 철, 쇠를 가지고한 무기를 손에 들고 싸우지 아니하고 그는 생각 속에서 가지고 있는 계획을 가지고서 친 것입니다. 

 2. 믿음의 승리

 대승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만저만한 승리가 아닙니다. 다윗이 가져온 대승리는 달아나고 숨던 이스라엘 군대들을 사기 백배하게 만든 것입니다.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 칼을 옆구리에서 빼내는 데만 진땀이 났습니다. 그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자,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드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습니다. 보통 전쟁에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대승리인 것입니다.

 승기 충천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사무엘상 17장 53잘과 54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고 말씀합니다. 군인들은 블레셋 군인들의 재산 소유물을 탈취하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가지고서 그를 끈으로 묶어서 어깨에 걸머지고 질질질질 끌면서 예루살렘까지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가서 예루살렘에 갖다놓고 다른 소유물들은 자기 목동의 소유 속 투구를 갖다놓는 곳에 함께 갖다놓은 것입니다. 과거에 경험한 꿈, 믿음의 경험은 현재 자기의 황금 같은 믿음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 다윗이 사자와 곰과 싸운 경험이 그 마음에 높고 깊은 담력을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경험한 그 경험은 실제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문제에 부딪힐 때 굉장한 희망을 주고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37절에 ’또 다윗이 이르되 야훼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고 말씀합니다. 과거에 경험이 현재의 굉장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해서 응답받은 경험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굉장히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경험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됩니다.

 이번 주에 한 성도님으로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 분은 정밀검진 결과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지난 8월 22일에 제게 와서 안수기도를 받았던 분입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수술을 할 때 검사를 해 보니 놀랍게도 암세포가 깨끗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이런 경우는 백 명 중 한 사람이 있을까 말까 하다.”고 말하면서 의아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 들으면 참 기가 막히게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고.” 우리가 병을 이길 것을 꿈과 믿음을 가지면 이런 기적도 오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이렇게 믿으라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승리의 기록을 잘 읽고 마음에 깨달아 내 것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옛날 기록으로 두지 말고 내 것으로 이것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담력을 가지고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세서 2장 13절로 15절에 보면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백전백승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우리의 소유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달려서 예수님이 그 피를 흘려서 죄를 다 청산하셨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죄의 더러움을 다 청산하시고 거룩하고 성결하게 만들어 주시고 병을 다 멸하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주시고 저주를 제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고 죽은 자가 부활하고 영생을 얻게 해주시는 이 주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이루려 하심으로 우리가 이것을 가슴속에 받아들여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죽음 내 죽음, 예수부활 내 부활, 예수승천 내 승천, 예수천국 내 천국으로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거두어야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이 이룩한 승리를 우리가 다 소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과 39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에게 상 주신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그가 돌로써 쳤지만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우리가 영적인 세계를 꿈과 믿음으로 아름답게 만들고 그것을 입으로 선언하면 성령은 그것을 이루어지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꿈과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놀랍게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같이 계심으로 다윗과 같이 이길 수가 있습니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생명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서 전쟁가운데 승리할수 있는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기는 신앙 갖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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