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조용기목사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중략)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14~21절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망의 음부를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봄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한량없는 사랑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용서와 구원을 얻게 됩니다. 

1. 인류의 첫 조상, 아담

 우리는 아담의 탯줄로 연결되어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담의 탯줄에 우리 탯줄이 연결되어서 생명의 피를 받아 인류의 하나하나가 태어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아담과 하와의 탯줄을 달고 태어난 우리들은 다 죄인인 것입니다. 죄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탯줄, 더러움의 탯줄, 병의 탯줄, 저주의 탯줄, 사망의 탯줄입니다. 요사이 의사들은 이 탯줄을 이용해서 병도 고치고 생명도 오래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위해서 많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은 애초에 탯줄에 연결된 존재인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로 19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2. 인류의 새 조상, 예수님

 인류의 조상을 아담이라고 말하는데 아담이 전체 인류조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새로운 조상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핏줄 속에서는 아담의 피가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의사들의 설명에 의하면, 탯줄에 어린 아기와 어머니의 태 사이에는 특별한 구조가 되어 있어서 피가 안 통한답니다. 서로 대치되어서 어머니의 몸에 양분이 삼투되어서 들어오는 것이지 피를 통해서는 안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가치는 말로 할 수 없을만큼 그 효과가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한 사람 피가 십자가에서 온 지구의 끝에 사는 사람들까지라도 그 피의 대가로써 죄를 다 청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새로운 조상인 예수님의 탯줄이 우리의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다 붙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16절에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다 죄인이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하나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세계 사람들이 다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빚은 갚아야 됩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천 4백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계부채가 상승속도가 세계 2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감당해야 할 빚 부담이 역대 최고인 것입니다. 빚을 갚을 수가 없어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빚이라는 것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금전적인 빚보다 무서운 빚은 없습니다. 죄의 빚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빚을 갚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지상에서 사역하셨는데 당신이 죽을 것을 일찍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너무 고통스러우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할 정도 였습니다.

 순수한 죄인으로 취급으로 받기 때문에 동정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에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며 그 완성을 감격을 간직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빚을 완전히 청산해주셨습니다. 죄를 우리 인간의 힘으로 갚으라고 말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의의 거룩함의 탯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의의 탯줄과 거룩하신 탯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신령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십에 하나 매를 제하고 때립니다. 장정이 회초리 끝에 쇠고랑이 달려있는 그 회초리를 휘둘러 때립니다. 사십대를 다 때리면 목숨을 잃습니다. 주님이 매를 맞을 때마다 세상 인류는병의 태를 꺾어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의 태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망의 세력은 탯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고 우리는 예수님의 태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의 탯줄도 우리가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려고 하나님이 택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의 탯줄을 연결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복의 탯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탯줄에 연결된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리 그런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항상 가난의식에 붙잡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탯줄에 연결된 우리가 가난한 거지가 될 수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나는 아브라함의 탯줄에 연결된 사람이니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그것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가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주장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저주의 탯줄은 끊기고 축복의 탯줄에 연결되었는데 거기에는 축복이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는 고의적으로라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해야 됩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럼 그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로 8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영원히 사는 탯줄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3. 두 인류의 자화상

 두 인류의 자화상을 우리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담 안에서 자화상은 영이 죽은 자화상인 것입니다. 무신론자요 인본주의자, 유물론자. 이것이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시편 10편 4절에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야훼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고 말씀하며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 이 자연의 일들은 우리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를 믿어 영이 살아난 사람은 어떤 자화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 신본주의자, 거듭난 자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이 살아난 사람과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확실히 구별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우리가 생명이 일치가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로 57절에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도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일치 했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원어 그대로 해석을 하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죽음의 고비를 많이 겪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경험하는 그 죽음은 실상은 그 죽음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것은 우리의 생명을 대신으로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복음은 체험적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죽음을 경험해봐야 하는거 아닙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요, 예수 부활은 내 부활입니다. 예수 천당은 내 천당, 예수 영광은 내 영광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분리할래야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생명의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가 함께 매달렸는데 그들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욕하면서 죽었고 다른 사람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누가복음 23장42절에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성령이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좌편 강도, 우편 강도인데 왜 한 강도는 예수님을 욕을 하고 협박을 하고 죽는데, 똑같은 다른 강도는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을까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이미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때가 오매 성령으로 우리 마음문을 열어서 구원을 받게 해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은 형언할 수 없이 귀한 복인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붙들어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고 의로운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현실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용서와 의로움을 받았고, 지금 거룩함을 받았고, 지금 치료함을 받았고, 지금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고, 지금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서 이정훈(울산대 법학과)교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좌파 법철학에 빠져 교회를 사회악으로 여기고 교회를 핍박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분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공립학교 내 종교 활동을 금지시키고 공무원의 종교적 중립을 강화시키며 교회 내의 투표소 설치를 반대하는 등 교회를 핍박하는 수많은 법을 관철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를 핍박하려는 목적으로 기독교 방송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혀가 굳어졌습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강력한 전류가 흐르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그 순간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바쳐서 모든 힘을 다해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십자가만 바라봐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한국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영이 살아나면,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화상을 굳세게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폐병 3기에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그 후 일생 동안 몸이 허약했는데 어지럽고 다리가 아프고 기침이 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온갖 병이라는 병은 다 갖고 있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서대문교회 시절에 설교하다가 쓰러졌는데 그때 이후로는 늘 쓰러질 것처럼 다리가 떨리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제가 확실히 배운 것은 나의 새로운 정체성인 것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당했는데 심장이 멈출 것 같고 어지럽고, 일어날 기운이 없을 때마다 나의 정체성을 생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처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고 참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 사람이다. 나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요 영생 복락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을 실천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과 생명이 일치가 되었으니까 거기에서 탯줄이 붙어있습니다. 죄인은 죄의 탯줄에 붙어 있는데, 의인은 예수를 통해서 생명의 탯줄에 4차원의 영성으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몸에 붙어 있다. 나는 병의 노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사업과 생활을 하시는 분은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고 주장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은혜의 탯줄에서 양분을 끌어들여야 됩니다. 그럼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실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성경에 그렇게 기록했구나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내게 유익이 있다는 것은 잘모르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장사지내고 더불어 부활해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탯줄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예수 생명이 곧 내 생명이 됩니다. 예수의 의로움이 내 의로움이 되고, 거룩함이 내 거룩함이 되고, 예수의 치료가 내 치료가 되고, 예수님의 축복이 내 축복이 되고,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내 영원한 생명이 됩니다.

 


박정순 집사(전국교육자선교회) -

아흔 된 시어머니 매일 주를 위해 헌신

성경 가르침 따라 시부모 섬길 때 구원 역사
고령에도 뜨개질로 선교 사역 동참, 늘 주께 감사

 나는 41년 9개월간의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마치고 3년 전 퇴직한 교사다. 그동안 결근 없이 교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38년 동안 한 집에서 살았던, 올해 아흔이신 어머니의 도움이 전적으로 컸다. 내가 오늘 나누고 싶은 간증은 성경의 가르침 따라 부모를 공경할 때 어떤 변화와 감사가 펼쳐지는지 말하고 싶어서다. 나는 29세에 크리스천 남편을 만나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했다. 그때까지 만해도 시어머니가 타종교를 믿는, 그것도 동네 대표직을 맡을 정도로 열정 있는 분임을 전혀 몰랐다. 한 집에서 생활하시던 부모님은 나와 남편이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나도 신앙생활 외에는 시어머니께 전적으로 순종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셨던 친정어머니의 가르침이 컸다. 어머니는 결혼하면 항상 입을 조심하고 부모를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성경적 가르침에 순종하며 오로지 시부모를 섬겼고 구원을 위해 기도만 했다.

 시집온 지 1년 후 시어머니가 남편과 나를 불렀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고, 나중에 천국에서 너희를 만나야겠다” 그리고는 바로 동네 교회에 등록하셨다. 시어머니의 변화는 시아버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고집이 세셨던 아버님은 제사를 중시하시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님이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셨다. 시부모님의 구원을 위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그렇게 응답됐다. 아버님은 교회를 다니신 후 제사를 추모예배로 바꿔주셨다. 할렐루야!

 교직생활을 마친 3년 전 시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불편한 몸 때문에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셨다. 그러니 ‘누워계셨다, TV 보셨다, TV를 보다 주무셨다’를 반복하셨다. 신앙생활도 전 같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시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성경 구절 암송을 시작했다. 몇 주 지나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 하셨다. 이번엔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색칠공부를 권해드렸다. 단순한 색칠부터 점차 난이도를 높여 어려운 그림 색칠까지 진행했다. 우울해하셨던 어머니 얼굴에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칠한 컬러링북은 십여 권으로 불어났다. 어머니는 삶의 즐거움이 회복 되자 건강도 되찾으셨다.

 그 때 마침 국민일보 토요일판에 ‘그림이 있는 말씀’ 코너가 생겨 어머니가 색칠하시기 좋게 확대 출력해 1년 넘게 드렸다. 지난해 구정에는 어머니의 그림과 사연이 신문에 실려 가족 모두 어머니를 격려해드린 일도 있다. 어머니가 즐거워하실 만한 일을 또 찾았다. 이번에는 뜨개질이었다. 수세미를 만드는 뜨개질은 생각보다 어머니 적성에 맞았다. 어머니는 하루에 5∼6개씩 만들며 자신이 뭔가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과 행복감에 젖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만드셨던 수세미를 모아 지난해 대만 선교 때 전도 용품으로 사용했다. 올해 여름에는 일본 선교에 200개, 국내 무주 전도 때 80개를 전도용품으로 활용했다. 어머니는 ‘내 나이에 이렇게 선교 사역에 동참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하나님의 일꾼 되심을 감격해 하셨다.

 부모와 자녀가 분리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는 부모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서로 행복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가 있는 삶을 찾아 살고자 노력했다.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전혀 깨닫지 못했을 일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돌봐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공유하도록,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지는 삼중축복을 누리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리=오정선 기자


주 안에 서라/이영훈목사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1~4)

 오늘은 빌립보서 4장 1절로 4절의 말씀을 가지고 “주 안에 서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후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사도 바울은 한때 예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공문을 받아가지고 다메섹까지 내려가서 그곳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내려갔던 사람입니다. 가는 도중에 강한 빛 가운데 오신 우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말에서 고꾸라져 쓰러지면서, 얼마나 빛이 강했던지 삼 일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그는 그 놀라운 경험을 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가 핍박하는 예수님이 참 구세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인생에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위해 순교한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사도 바울은 성령충만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주의 종으로, 선교사로, 온 아시아와 로마제국을 세 번이나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신약 성경 스물일곱 권 가운데 열세 권을 기록했고,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운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도 바울이 쓴 열세 권의 책을 가만히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 중의 하나가 ‘주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160회 이상 정도로 ‘주 안에서’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 안에 있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 살아도 주님 안에 거할 때 모든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감옥 밖에 있는 교회에,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신약 성경에 네 권 나옵니다.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인데 이것을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가보면, 4장 1절로 4절까지 네 구절 가운데 ‘주 안에서’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 첫 번째가 ‘주 안에 굳건히 서라’라는 것입니다.

 1. 주 안에 굳건히 서라

 그 첫 번째가 ‘주 안에 굳건히 서라’라는 것입니다. 4장 1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영어성경 NIV에 보면, ‘주 안에 굳건히 서라’, ‘Stand firm in the Lord’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 굳건히 서라.’ 주님 안에 굳건히 서서 절대로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죄성을 입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주님 안에 서있지 않으면 우리는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고 사람의 말 한 마디만 들어도 상처를 받고 무너지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내 힘으로 죄를 이겨보려고 몸부림쳐보지마는 죄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 죄에 끌려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니다. 하루에도 열 번씩 화를 내는 사람이 절대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화를 내고 있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는 죄를 이길 수가 없고, 인간의 노력으로는 나의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의 은혜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싸워 승리하고 문제와 싸워 승리하고 나의 문제 있는 성격과 싸워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주님 안에 머물러있어서 나를 옭아매는 모든 흑암의 권세로부터 벗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는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이 탐욕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도 같이 큰 어려움에 빠지게 만듭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내 몸 속에 있는 모든 이 죄성을 이겨야 되는데, 특별히 탐욕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진 연약하고 낮은 모습이지만 장차 주님 은혜 가운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가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은 설명합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낮은 몸을 연약한 몸을 주님 은혜 가운데 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 시민이 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천국시민권자로 삽니다. 천국시민권자답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살던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죄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비록 내 육신은 죄가 많은 이 세상을 딛고 살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가진 자로 등록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 훗날 그곳에 갈 때까지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무너지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 장인 고린도전서 15장 맨 마지막 절인 58절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믿음으로 견고해져서 흔들리지 말라! 자꾸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믿음이 엎치락뒤치락 제자리걸음 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날마다 믿음이 성장하고, 또 성장하고, 또 성장하고, 또 성장해서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을 수 있는 그와 같은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 안에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만 믿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강한 영적 군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 안에 머물러있을 때에 주님을 도우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충만함 받아서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주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이웃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 힘으로 할 때는 실패요, 좌절이요, 상처요, 절망이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것을 넉넉히 감당하고 주님 안에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 안에 굳건히 서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하나 되라

 둘째로,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주님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 될 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2절은 권면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 교회에 이 두 여성 지도자가 있는데, 여 집사님들이 얼마나 열심으로 충성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완전히 상극이에요. 맞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분이 이런 주장을 하면 저 분은 반대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 자꾸 갈등이 생기고 성도들이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편할 날이 없어요. 열심은 좋은데 그 열심을 갖고 서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또 그쪽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쪽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자꾸 부딪히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쉽게 오늘날로 비교해서 예를 들면, 교구에서 야외 예배 가자고 그러는데 "야외 갈 때 우리 도시락을 김밥으로 해 갑시다." 그러면 이쪽 편에서 "아이, 깁밥 차서 먹으면 언치니까 샌드위치 가져갑시다." 이런 식입니다. 뭐, 샌드위치 먹으나 김밥 먹으나 그것이 그것인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문이 퍼지고 퍼져 저 멀리 로마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의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어요. 좋은 소식이 들렸다면 참 좋은데, 좋지 않은 소식이 거기까지 가가지고 사도 바울의 마음에 그분들을 위해서 권면하고 기도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유 집사, 순 집사! 좀 화해하고 지내라. 왜 자꾸 교회에서 다투고 그러느냐?” 성경에 칭찬받는 이름으로 나왔으면 좋을 텐데, 다투는 사람의 이름으로 나왔으니 아마 그 편지를 받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가 됐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왜 다투느냐? 나는 옳고 저 사람은 틀리기 때문에 다투는 것입니다. 그냥 서로 다르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성격이라는 것은 전 세계 70억 인구가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인간을 기가 막히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손 지문이 같은 사람이 70억 사람 중에 한 사람도 없고, 성격이 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비슷할 수는 있죠. 그러나 100퍼센트 하나가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강한 사람끼리 결혼해서 살면 평생 싸우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싸워요. 왜? 지지 않으니까. 어느 한쪽이 져야만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져주세요. 져주세요. 그럼, 그날로부터 가정이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져야 되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느 쪽이 되었든지 간에 한 쪽이 져주면 가정은 화목하게 되는데, “내가 왜 져?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부딪히게 되는 겁니다. 근데 교회는 더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서로 은혜 받으러 나와서 주님을 섬기는 곳인데, “내가 내 시간 드려, 내 물질 드려, 내 노력을 바쳐 열심히 충성하는데, 왜 내 뜻은 알아주지 않느냐?”고 “자꾸 이런 일 저런 일을 나에게 강요하느냐?”라고 주장하게 되면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 됨을 이뤄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이 먼저 하나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부 간에, 부모 자녀 간에 하나 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구역이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구가 하나 되길 바랍니다. 온 성도가 하나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가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내 마음으로는 절대 하나가 될 수가 없어요. 내가 가진 생각이 항상 옳으니까.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생각한 것이 항상 옳으니까. 그러니까 늘 내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떻게 결정하셨을까?’를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렇습니다. 온유와 겸손이 예수님의 모습이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온유와 겸손의 모습으로 내가 낮아져서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섬길 때 하나 됨의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한테 맞추라고 하면 늘 그것은 갈등이고, 충돌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제부터는 하나 됨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 겸손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교회의 하나 됨을 얘기할 때 구조나 체계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바울은 도덕적 자질을 먼저 얘기한다. 그러면 어떤 도덕적 자질이 필요할까? 첫 번째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필요하다. 모든 불화 뒤에 교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교만심이나 존경받고 싶어 하는 허영심 때문에 공동체 안에 다툼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온갖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 예수님의 섬김, 예수님의 낮아짐은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과 6절은 설명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러므로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용서하여주옵소서!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는데, 우리가 그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어서 아직도 내 주장만 하고 나만 옳다 그러고 늘 판단하고 정죄하고 교회 내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용서하여주옵소서! 예수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에베소서 4장 1절로 3절은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천국에는 분열과 갈등과 다툼이 없습니다. 하늘 교회에는 사랑의 하나 됨 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신학 학자 알렉 모티어 교수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교회에는 하늘과 같은 모습이 있으며, 하늘에는 분열이 없다. 지상의 교회는 이상적인 하늘의 교회 그대로 닮은 것이 되어야 한다. 하늘에서는 하나 됨을 고백하고, 땅에서는 하나 되지 못하는 가운데 사는 것은 구속받은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반대되는 것이다. 또한 내적 부조화가 있는 곳에서는 외적 패배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전신갑주에 큰 약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교제권 안에 분열이라는 암이 있는지 항상 깨어 분별하며, 고쳐야 한다.

 할렐루야! 주여, 오늘 우리가 하나 되게 하여주옵소서. 가정이 하나 되고, 구역이 하나 되고, 교구가 하나 되고, 교회가 하나 되는 역사를 이루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굳건히 서서 하나 됨을 이루고 나아가서 주님 안에서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3. 주 안에서 기뻐하라

사도 바울이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4장 4절에 보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항상 기뻐하되 내가 다시 강조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기뻐하라’는 것은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과 결단을 의미합니다. 기뻐할 수 없어도, 지금 속상하고 다투고 소리 지르고 싸우고 싶어도, 다 내려놓고 기뻐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명령형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기뻐하라! 아주 기뻐하려고 몸부림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정대로 살면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소리 지르고 싶다고 소리 지르고, 주먹질 하고 싶다고 주먹질을 하고, 그렇게 살다가는 인생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달라져야 합니다. 노력해야 됩니다. 나의 옛 사람과 싸워야 합니다. 화를 내려고 하는 옛 사람과 싸워서 기뻐하는 사람으로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지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늘 자기감정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왕 예수를 믿을 바에야 인정받고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런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마음에 평안함을 유지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잘되는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세상의 영적인 지도자들로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귀한 일꾼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으며 살아가십시오. 세상이 주는 만족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생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영원하고 주님이 주시는 만족함이 우리에게 참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5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믿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신앙의 연조가 길게 쌓이면 쌓일수록 이와 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 합니다. 날마다 더 기쁨이 많아지고, 감사가 많아지고,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심과 헌신의 모습이 더 많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길 때 기쁘고 감사하고, 전도할 때 기쁘고 감사하고, 주님께 예물을 드릴 때 기쁘고 감사하고, 그런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때 주님이 우리의 소원을 응답해주십니다. 시편 37절 4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넘치는 기쁨과 감사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놓습니다. 축복받은 삶으로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를 드리면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이고,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하나님의 놀라운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주시는 그러한 축복을 참 알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늘 많은 문제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왜 난 이렇게 문제가 많고, 왜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고, 늘 사람하고 부딪히고 갈등하는가?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자신 앞에서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게 샘솟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면 어떠한 문제도 절망도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기쁨이 넘쳤다고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4절에,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여러분, 진짜 신앙의, 그분의 참 모습은 고난의 때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난당할 때. 잘될 때는 다 누구나 그저 웃고 즐겁게 지내는데 어려움 겪을 때,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분이 참 믿음이 훌륭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이지선 교수가 온몸이 불살라져가지고 불편한 몸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믿음으로 일어나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미국 가서 이제 박사 받고 와서 교수가 됐는데, 그와 똑같이 화상에서 일어나서 믿음으로 승리하고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최려나 자매가 있습니다. 중국 지린성 출신의 조선족 4세입니다.
2003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대형 가스폭발 사고가 나면서 엄마를 잃고 본인은 95% 전신 3도 화상을 입습니다. 생존할 확률 3%라고 하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2년 동안은 걷지도 못하고 그리고 그 후에야 걷게 되었는데, 얼굴이 너무나 괴물처럼 변해가지고 온몸이 탔기 때문에 어디를 나가질 않았습니다. 집에서 가족들이 거울을 다 치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한국의 한 성형외과 원장님이 “내가 당신을 치료해주겠소.” 그래서 한국에 초청을 했습니다. 중국과 한국을 사십여 차례를 오가면서 이 피부이식수술을 계속하는데, 이때 한국에 오기 전에 중국에서 사업하시는 장로님이 한국분인데, 성경책을 주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려나 자매를 사랑하시니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요.” 그러면서 성경책을 전해주었는데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이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것이라면 받지 않겠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저한테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시나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예전 모습으로 되게 해주신다면 그때는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그렇게 반항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성경을 읽다가 감동이 왔어요. “하나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나를 만나주시기 위해 이런 일을 주신 게 아닐까?”

 그때부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흉측한 모습으로 변화된 나를 사랑하시고 변함없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는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치웠던 거울도 다 다시 놓으라고 그러고, 거울 앞에서 당당하게 서서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예전과 다른 내 모습에 속상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지금 이 모습의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예뻐 보였어요. 지금도 피부이식수술을 할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쁜 모습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쁘다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거라 생각해요.”

 한국에 와서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가 믿음의 전진을 해나갑니다. 포기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해서 중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또 대입검정고시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다음, 이지선씨의 도움을 받아서 이화대학교에 지원을 하는데, 사고 10년만인 2013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을 합니다. 할렐루야! 현재 4학년 재학 중인데 화상 입은 사람들의 멘토로 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놀랍게도 지옥 같았던 마음은 천국이 되었고 입술에 감사의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희망과 긍정의 마음이 지금의 저를 이끌어주었습니다. 이제 받은 사랑만큼 베풀며 살아갈 거예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지금까지처럼 당당하고 밝게 잘 이겨낼 거예요. 저의 미래는 더 아름답고 활기찰 거예요. 저는 이 모습 그대로 행복해요. 그리고 오늘도 고백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그를 믿음으로 이끌어준 훌륭한 이지선 교수가 있었고, 또 그에게 성경책을 전해 준 장로님이 계셨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져서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 귀한 일꾼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 굳건히 서서 한마음이 되어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믿음으로 나갈 때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넘쳐날 때, 하나님의 큰 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하나 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넘치는 기쁨으로 늘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고 받은 복이 너무나 많고 은혜가 너무나 많은데,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늘 남과 비교하고 남을 판단하고 하나 되지 못하고 흔들리고 분노하며 살았던 저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주시고, 오늘 말씀 그대로 주님 안에서 굳건히 서서 하나 됨을 이루고 항상 기뻐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사도행전 퀴즈.. 주일학교용

                 


범위: 사도행전

1. 다음은 사도행전에 있는 말씀입니다. 괄호안에 들어갈 말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① 예루살렘 ② 이스라엘

2.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이다. 다음 중 예수님의 제자인 사람은?
① 바돌로매 ② 알패오

3. `아겔다마`의 뜻은?
① 피밭 ② 불밭

4. 가룟 유다가 자살하는 바람에 사도의 수는 11명으로 줄었다. 12명을 채우기 위해서

 사도들이 제비뽑아서 선택된 사람은?
① 맛디아 ② 바사바(요셉)

5. 성전에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 좀 달라고 구걸했던 사람은?
① 앉은뱅이 ② 귀머거리

6. 거짓말해서 죽은 사람은?
① 바나바 ② 아나니아

7.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태어난지 몇 일만에 이삭에게 할례를 했는가?
① 7일 ② 8일

8. 모세는 나이 80세에 가시나무떨기 불꽃을 보았다. 그때 모세는 어디에 있었게?
① 감람산 ② 시내산(호렙산)

9.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몇 년 동안을 광야에서 돌아다녔는가?
① 7년 ② 40년

10. 나쁜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서 죽은 집사님은?
① 빌립 ② 스데반

11. 에디오피아 여왕의 신하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적이 있었어요.

이 때 그 신하는 누구를 만났을까요?
① 빌립 ② 스데반

12. 사울(바울)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예수님을 만나서 바울이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디로

가고 있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① 다메섹 ② 가이사랴

13. 8년 동안 중풍병을 앓고 있던 사람을 베드로가 고친 적이 있어요.

병이 낫게 된 이 중풍병자의 이름은?
① 애니아 ② 매니아

14. 착한 일을 많이 한 어떤 여자가 죽었는데 베드로가 이 여자를 살려낸 적이 있어요.

죽었다고 살아난 이 여자의 이름은?
① 다비다 ② 마르다

15. `고넬료`의 직업은 군인이죠. 그러면 `고넬료`의 계급은 뭘까요?
① 백부장 ② 천부장

16. 여러 짐승들이 들어있는 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본 사람은?
① 바울 ② 베드로

17. 사도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칼로 죽인 사람은?
① 빌라도 ② 헤롯

18. 베드로는 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리아(마가의 어머니)의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이때 문을 열어 주려고 나온 여자아이의 이름은?
① 로데오 ② 로데

19. 벌레에게 먹혀 죽은 사람은?
① 빌라도 ② 헤롯

20. 바나바와 사울(바울)이 만난 남자 무당의 이름은?
① 밥예수 ② 바예수

21. `밥예수`인지 `바예수`인지 하는 남자 무당은 바울의 저주를 받아서 어떻게 되었는가?
① 장님 ② 앉은뱅이

22. 다음 중 `이새`의 아들은 누구인가?
① 사울왕 ② 다윗왕

23.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이 그 곳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다. 바울에게 붙여 준 별명은?
① 허메 ② 흐미

24.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학문과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은?
① 아굴라 ② 아볼로

25.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백성에게 “내 뒤에 오시는 사람을 믿으라”고 말한 사람은?
① 요한 ② 바울

26. 에베소에서 은 오만(수십억원)이나 되는 책이 불태워진 적이 있다. 어떤 책들인가?
① 만화책 ② 마술책

27. 어떤 청년이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꾸벅 꾸벅 졸았다.

그러다가 3층에서 떨어져서 죽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청년을 살려냈다. 이 청년은 누구게?
① 유두고 ② 이드로

28.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① 바리새인 ② 사두개인

29.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가던 길에 태풍을 만나게 되었죠.

이 태풍의 이름은?
① 유라굴로 ② 유리겔라

30.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가던 길에 폭풍을 만나게 되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섬에 머물게 되었답니다. 바울이 잠시 머물렀던 섬은?
① 대마도 ② 멜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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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사다노리 성도(순복음동경교회)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8년간 앓아온 무릎관절 통증 치유 
기도하자 10년간 못 이룬 금연도 성공


 나는 32년 전인 1983년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복음성회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구원 받았다. 그 때 성경 속에 나오는 상처입고 쓰러져있는 사람이 바로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 믿음이 없었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기적이 해일처럼 밀려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도관에서 받은 은혜를 잊고 일반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눈을 감고 기도라고도 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나의 이 의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 내가 뜻밖에 내 뱉었던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내가 결코 그만 둘 수없는 것을 나에게서 제거해주세요”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나님은 기억 하시고,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수십 개비를 피웠던 담배를 끊게 하신 것이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계속 금연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주님의 위대한 기적을 여러 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바로 3년 전 9월에 순복음동경교회로 인도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교회가 바로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 조용기 목사님의 교회였다는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나는 지금부터 약 8년 전 근무 중에 작은 구멍에 빠져서 왼쪽 무릎에 상처를 입었다. 균형을 잡으려고 왼발에 모든 체중을 싣는 순간 왼쪽의 반월판(관절부분에 있는 연골조직)에 부상을 입게 됐다. 그 당시는 무릎이 아파서 목욕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달에 2∼3차례 병원에 다니면서 무릎 관절에 히알루 론산 주사를 맞았다. 그 후로 계속되는 통증에 견딜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신발 속에 실리콘으로 만든 경사진 깔창을 깔거나, 철끈이 들어 있는 보호대로 무릎을 촘촘히 감싸기도 했다. 어느새 오른쪽 허벅지에 비해서 왼쪽 허벅지가 매우 가늘어져 있었다.

 그러던 2013년 초여름 어느 날 오후 식탁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펴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다리는 맞은 편 의자에 편 채로 올려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왼쪽 무릎이 ‘뚝’하는 소리와 함께 꼬였다가 펴졌다. 다음 순간 놀랍게도 무릎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고 걸을 뿐 아니라 뛸 수도 있게 됐다.

 무의식중에 2층으로 달려 올라가면서 아내 마사코에게 “무릎이 완치됐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기뻐하던 중에 시가끼 시게마사 담임목사님이 예배 때마다 “아픈 곳에 손을 대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고 나도 항상 왼쪽 무릎에 손을 얹고 기도했던 것도 생각났다.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치유가 임했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뭐라고 말할 수 조차 없었던 무릎의 통증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동안 다니던 병원의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오랫동안 통원치료를 다녔기 때문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는 늘 그랬듯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 나는 당당히 “제 다리가 치료 받았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무릎을 고쳐 주셔서 이제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사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무척 신기해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간증을 전하며 나의 치료자 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어 감사하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고 싶다.
 


주를 사모하나이다/이영훈목사

야훼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26:8-9]

오늘은 이사야 26장 8절과 9절 말씀을 가지고 “주를 사모하나이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를 사모하나이다” “주를 사모하나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로부터 출발합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아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존재로,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되어있었는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해서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깨어져서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지은 인간을 우리 하나님이 다시 용서하시고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사, 십자가에 달려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게 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시키심으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원수 되었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은혜 가운데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평생 우리는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1.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26장 8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훼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기를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렸다고 말씀합니다. 또 다른 성경의 번역을 보니까 주님의 말씀의 길에서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죄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죄악 세상에서 깨어있어서 죄에 물들지 아니하고 언제나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그러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절대로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의 복을 더하여주시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주의 말씀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투성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허물을 보고 늘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 순수한 그 사랑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8절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우리가 우리의 행함을 통하여서 우리의 선한 일, 우리가 남을 돕고 구제하고 하는 이 일을 통해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짓고 불의하고 허물 많음에도 불구하고 늘 회개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주님을 향한 순수한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인정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에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나왔더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죄짓고 부끄러워서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창세기 3장 8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야훼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야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죄지은 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때에 아담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 제가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회개했더라면 성경책을 다시 써야 할 것입니다. “제가 부끄러워 숨었습니다.” “내가 너한테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었느냐?” “하나님께서 제 배필로 주신 저 하와가 먹어라 해서 먹었습니다.” 이 남자가 이때 큰 잘못을 한 거예요. 우리 최자실 목사님 말씀대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등을 쳐서 토해내게 하고서는 “먹었으나 제가 토하게 했습니다.” 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터인데, 죄짓고 나서 남에게 핑계를 댑니다. “저 사람 때문에.” 하와는 또 “뱀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24절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빨리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늘 우리는 주님 앞에 죄 사함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 믿고 나서도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생각으로 죄를 짓고 말로도 죄를 짓고 행동으로도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습관이 되고 그것이 내 삶의 모습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빨리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정말 귀하게 쓰임 받은 큰 믿음의 사람이요,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잘될 때 왕이 되어서 전쟁에 나가 백전백승할 때 나태해졌습니다. 사람이 잘될 때 조심해야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주 앞에서 나와서 부르짖고 매달리는데, 잘될 때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데 사업이 너무 잘되고 계속 출세 길을 달려와서 그냥 어느 정점에 이르게 되면 교만해지고 나태해지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 그가 전쟁에 나가지도 않고 왕궁에서 늦잠 자다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죄를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그 죄인이오.” 그때 다윗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을 했습니다. 왕이 “당신 죄지었다!”고 할 때 “건방지게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냐?”고 “감옥에 잡아넣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만하면. 그 마음이 닫혀 있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12장 13절을 보니까,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야훼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야훼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가 즉각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죄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 그가 많은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다윗의 일생 동안 그 한 번의 실수 외에는 하나님 앞에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심판하기를 원하시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시고, 빨리 회개하고 돌아 나와서 하나님 뜻대로 살기 원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요한1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신속히 회개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고 큰 은혜를 누리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청교도 설교자 토마스 보스턴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회개를 일으키시는 수단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이다. 주님은 영혼에 말씀을 깨우쳐주시어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 말씀의 계명은 매우 방대하고 신령하기 그지없는 영혼의 거울이다. 죄인은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더러운 얼굴과 죄와 부패한 본성과 회개해야 할 행위를 깨닫는다. 말씀의 경고는 죄에 안주한 영혼을 붙잡고 흔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줌으로써 죄악의 잠에서 놀라 깨어나게 만든다!
 아멘! 죄를 지었을 때 신속히 회개하고 주 앞에 돌아 나오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둘째로, 우리는 한평생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내 삶에 첫째도 하나님, 둘째도 하나님, 마지막도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이사야 26장 8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삽니다. 형제들끼리도요. 부모가 유산을 많이 물려주면 싸우고 원수가 되더라고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같이 한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물질 때문에 원수가 되요. 왜? 내 것을 더 가지려고 하다보니까.

 늘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되어있습니다. 내 것, 내 명예, 내 인기, 내 위치. 늘 이것 때문에, 그것으로 인하여서 많은 마음의 어려움을 겪고 상처를 입고 가족 간에도 문제가 생겨나고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삶의 중심이, 주인이 내가 아니고, 나를 지으시고 나를 택하여 구원하시고 나의 일생을 인도하실 우리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14장 7절, 8절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할렐루야!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모습을 통하여, 내 삶을 통하여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 사랑을 완성해야 됩니다.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율법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은 십자가의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십자가의 수평적인 이웃과의 관계는 마태복음 22장 39절,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삽자가 사랑의 완성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은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늘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수평적인 관계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십자가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루어야 될 십자가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될 때는, 자녀들이 잘되고 가정이 화목하고 사업이 잘되고 직장에서 승진되고 할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때때로 고난이 다가옵니다. 문제가 다가옵니다. 이때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9절에,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밤에 내 영혼이 더욱더 주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고 억울한 일 당할 때, 내가 상처입고 짓밟히고 문제를 당했을 때, 내가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부르짖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만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고난의 밤을 지날 때 그때도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 길을 갈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느헤미야 9장 19절, 20절은 설명합니다.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고난을 당할 때 주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또 바위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게 하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함께하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주님이 나를 멀리 떠나셨는가?’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멀리 떠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멀리 떠난 것입니다. 주님은 늘 곁에 계십니다. 늘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고난의 때에 여러분을 붙들어주시고, 안아주시고, 업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고난의 밤이 깊을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67절의 고백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로마서 5장 3절, 4절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님. 북한에서 31개월 동안 붙잡혀서 중노동을 한 목사님입니다. 토론토 큰빛교회가 북한 선교를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희생을 했어요. 목사님이 북한에 150번 이상을 갔고 교회에서 지원한 금액만 해도 천팔백만 불이 넘는다고 그럽니다. 엄청나게 많이 북한을 도우시고 그 식량 지원, 농업 개발, 의료, 수산업 지원, 육아원, 애육원을 통해서 고아 일만 명을 돌보고, 양로원 세 곳을 지원하고, 교육 사업으로는 북한 최고 영어 교육기관인 평양교원학습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2015년 1월,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국가 전복 음모 혐의로 붙잡혀서 무기노동교화형, 종신, 죽을 때까지 노동하다 죽는 그런 최고형에 그가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김일성 대신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고 그가 한 말이 북한 당국에 전해져서 최고 존엄을 모독한 국가의 반역자다 그래가지고 이 감옥에 들어가서 24시간 365일 감시 카메라와 감시하는 인원만 4~50명이 있는 곳에서 하루 여덟 시간씩 중노동을 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150번 넘게 이렇게 북한에 와서 이렇게 돕고 저들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다했는데 나를 이렇게 할 수가 있나.’ 너무나 처음엔 억울하고 원통하고 섭섭해서 ‘하나님, 제가 이렇게 이들을 도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저에게 다가왔습니까. 저를 언제까지 여기에 두실 것입니까.’ 눈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합 2:3)

 하박국 2장 3절 말씀 붙잡고 하나님께 맡기며 매일같이 독방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늘 주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주일날에는 혼자서 일곱 여덟 시간씩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마음을 바꿔가지고 2017년 8월 9일 석방이 되었습니다. 미국하고 북한이 가장 갈등을 일으키고 있을 때 이렇게 목사님을 풀어줬는데,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작사한 ‘꽃이 피는 봄날에만’(541장)을 늘 찬양했는데,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 더 귀하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 아름답다’라는 구절이 큰 힘이 되었고, 고난은 변장된 축복임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생애를 정말 하나님을 위한 극상품의 열매를 맺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고난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를 괴롭혔던 모든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용서하게 되었고, 그들은 나를 연단시키기 위해 사용하신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 6개월 9일 동안 받았던 고난의 삶은 제가 캐나다에 가서 30년 동안 목회했던 생활보다 더 값진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북한에서 이분이 올 때마다 대환영을 하고, 목사님께서 갈 때마다 엄청난 지원을 하고. 천팔백만 불이면 약 이백억 넘는 지원을 갖다 한 거예요. 그 교회에서 정말 북한을 많이 도왔는데 북한의 지도자를 욕보였다고, 그것도 목사로서 바른말을 한 것인데 북한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감옥에 집어넣고 중노동을 시키고 결국 풀어주었지만은, 그 목사님이 당한 고난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 이 고난이 끝나는지...’ 육체적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늘 기도하고 찬송했더니, ‘그 감옥에서 있었던 31개월 기간이 삼십 년 목회했을 때 보다 더 영적으로 큰 축복이었다.’ 참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목사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을 당해도 어떤 문제를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이 목사님같이 믿음을 더 굳건히 해서 주님을 더 믿고 의지하고 절대로 흔들리지 아니하고 더 깊은 신앙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셋째로,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사사기 2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어떻게 보면 악한 사람들이 잘되는 세상 같아요. 저 사람은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하는데도 전혀 어려운 일 없이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 같고, 순수하게 예수 잘 믿는 우리들은 사기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고. “하나님, 뭔가 잘못되었지 않습니까?” 그런 불평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26장 16절을 보니까,
야훼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을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 6절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중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상급 심판이고, 예수님 믿지 않고 죄짓고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형벌 심판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가 일생 동안 한 모든 일들이 쫙 파노라마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상급 심판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잘못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고 주님을 위해서 노력한 그 아름다운 행위들을 다 기억하셔서 상급을 주시고, 악인은 섰을 때 평생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고 잘못했던 모든 일을 쫙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신 후에 그를 심판해서 영원한 불 못, 지옥에 던져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운 일 당한다고, 문제를 만났다고 상처받고 낙심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뭐냐?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내 생각을 바꿔놓을 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훨씬 더 위대하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에 뭐 잠깐 누가 잘되는 것 같아도요, 악인들이 잘되는 것은 제가 설명했잖아요. 잡초가 자라는 것 같아요. 잡초는요, 뭐 거름을 안 주고 그래도 잘 자라요. 그러나 아무짝에 쓸모가 없습니다. 어느 때가 되면 베어서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여러분, 속상해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결국 잡초처럼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 일생을 인도해주십니다. 이사야 27장 3절 4절입니다.
나 야훼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우리를 포도원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신답니다. 노하지 않으신대요.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이 결국 그들을 밟아버린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괜히 앞장서서 심판자가 된다고 악을 멸한다고 해서 상처받지 말고,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찬양과 감사로 나아가는 주님의 일꾼들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염려를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 원망 불평 다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나를 도우시고 함께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22절로 24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야훼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우리가 때때로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히 쓰러져있지 않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서 일으켜 세워주시고 우리를 부축해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갈 힘이 없으면 우리를 안고 가시던지 업고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낙심하지 마시고, 슬퍼하지 마시고, 환란과 고난을 당할 때 마음에 상처받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내가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나이다.” 한평생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가지고 오직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늘 연약합니다. 늘 부서지고 넘어지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주님, 그럴 때마다 우리를 쓰다듬어주시고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붙들어주심을 감사합니다. 한평생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조용기목사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중략)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14~21절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망의 음부를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봄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한량없는 사랑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용서와 구원을 얻게 됩니다. 

1. 인류의 첫 조상, 아담

 우리는 아담의 탯줄로 연결되어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담의 탯줄에 우리 탯줄이 연결되어서 생명의 피를 받아 인류의 하나하나가 태어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아담과 하와의 탯줄을 달고 태어난 우리들은 다 죄인인 것입니다. 죄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탯줄, 더러움의 탯줄, 병의 탯줄, 저주의 탯줄, 사망의 탯줄입니다. 요사이 의사들은 이 탯줄을 이용해서 병도 고치고 생명도 오래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위해서 많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은 애초에 탯줄에 연결된 존재인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로 19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2. 인류의 새 조상, 예수님

 인류의 조상을 아담이라고 말하는데 아담이 전체 인류조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새로운 조상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핏줄 속에서는 아담의 피가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의사들의 설명에 의하면, 탯줄에 어린 아기와 어머니의 태 사이에는 특별한 구조가 되어 있어서 피가 안 통한답니다. 서로 대치되어서 어머니의 몸에 양분이 삼투되어서 들어오는 것이지 피를 통해서는 안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가치는 말로 할 수 없을만큼 그 효과가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한 사람 피가 십자가에서 온 지구의 끝에 사는 사람들까지라도 그 피의 대가로써 죄를 다 청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새로운 조상인 예수님의 탯줄이 우리의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다 붙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16절에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다 죄인이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하나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세계 사람들이 다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빚은 갚아야 됩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천 4백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계부채가 상승속도가 세계 2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감당해야 할 빚 부담이 역대 최고인 것입니다. 빚을 갚을 수가 없어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빚이라는 것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금전적인 빚보다 무서운 빚은 없습니다. 죄의 빚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빚을 갚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지상에서 사역하셨는데 당신이 죽을 것을 일찍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너무 고통스러우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할 정도 였습니다.

 순수한 죄인으로 취급으로 받기 때문에 동정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에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며 그 완성을 감격을 간직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빚을 완전히 청산해주셨습니다. 죄를 우리 인간의 힘으로 갚으라고 말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의의 거룩함의 탯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의의 탯줄과 거룩하신 탯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신령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십에 하나 매를 제하고 때립니다. 장정이 회초리 끝에 쇠고랑이 달려있는 그 회초리를 휘둘러 때립니다. 사십대를 다 때리면 목숨을 잃습니다. 주님이 매를 맞을 때마다 세상 인류는병의 태를 꺾어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의 태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망의 세력은 탯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고 우리는 예수님의 태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의 탯줄도 우리가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려고 하나님이 택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의 탯줄을 연결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복의 탯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탯줄에 연결된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리 그런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항상 가난의식에 붙잡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탯줄에 연결된 우리가 가난한 거지가 될 수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나는 아브라함의 탯줄에 연결된 사람이니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그것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가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주장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저주의 탯줄은 끊기고 축복의 탯줄에 연결되었는데 거기에는 축복이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는 고의적으로라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해야 됩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럼 그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로 8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영원히 사는 탯줄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3. 두 인류의 자화상

 두 인류의 자화상을 우리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담 안에서 자화상은 영이 죽은 자화상인 것입니다. 무신론자요 인본주의자, 유물론자. 이것이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시편 10편 4절에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야훼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고 말씀하며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 이 자연의 일들은 우리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를 믿어 영이 살아난 사람은 어떤 자화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 신본주의자, 거듭난 자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이 살아난 사람과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확실히 구별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우리가 생명이 일치가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로 57절에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도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일치 했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원어 그대로 해석을 하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죽음의 고비를 많이 겪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경험하는 그 죽음은 실상은 그 죽음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것은 우리의 생명을 대신으로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복음은 체험적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죽음을 경험해봐야 하는거 아닙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요, 예수 부활은 내 부활입니다. 예수 천당은 내 천당, 예수 영광은 내 영광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분리할래야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생명의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가 함께 매달렸는데 그들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욕하면서 죽었고 다른 사람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누가복음 23장42절에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성령이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좌편 강도, 우편 강도인데 왜 한 강도는 예수님을 욕을 하고 협박을 하고 죽는데, 똑같은 다른 강도는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을까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이미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때가 오매 성령으로 우리 마음문을 열어서 구원을 받게 해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은 형언할 수 없이 귀한 복인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붙들어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고 의로운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현실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용서와 의로움을 받았고, 지금 거룩함을 받았고, 지금 치료함을 받았고, 지금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고, 지금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서 이정훈(울산대 법학과)교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좌파 법철학에 빠져 교회를 사회악으로 여기고 교회를 핍박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분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공립학교 내 종교 활동을 금지시키고 공무원의 종교적 중립을 강화시키며 교회 내의 투표소 설치를 반대하는 등 교회를 핍박하는 수많은 법을 관철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를 핍박하려는 목적으로 기독교 방송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혀가 굳어졌습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강력한 전류가 흐르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그 순간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바쳐서 모든 힘을 다해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십자가만 바라봐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한국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영이 살아나면,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화상을 굳세게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폐병 3기에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그 후 일생 동안 몸이 허약했는데 어지럽고 다리가 아프고 기침이 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온갖 병이라는 병은 다 갖고 있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서대문교회 시절에 설교하다가 쓰러졌는데 그때 이후로는 늘 쓰러질 것처럼 다리가 떨리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제가 확실히 배운 것은 나의 새로운 정체성인 것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당했는데 심장이 멈출 것 같고 어지럽고, 일어날 기운이 없을 때마다 나의 정체성을 생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처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고 참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 사람이다. 나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요 영생 복락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을 실천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과 생명이 일치가 되었으니까 거기에서 탯줄이 붙어있습니다. 죄인은 죄의 탯줄에 붙어 있는데, 의인은 예수를 통해서 생명의 탯줄에 4차원의 영성으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몸에 붙어 있다. 나는 병의 노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사업과 생활을 하시는 분은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고 주장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은혜의 탯줄에서 양분을 끌어들여야 됩니다. 그럼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실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성경에 그렇게 기록했구나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내게 유익이 있다는 것은 잘모르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장사지내고 더불어 부활해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탯줄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예수 생명이 곧 내 생명이 됩니다. 예수의 의로움이 내 의로움이 되고, 거룩함이 내 거룩함이 되고, 예수의 치료가 내 치료가 되고, 예수님의 축복이 내 축복이 되고,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내 영원한 생명이 됩니다.

 


사랑의 종소리 / [한경아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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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에 관한 성경퀴즈                     

                 
1.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성도의 선택 시기는?(1:4)

창세이전
모태에서부터
출생이후
예수를 믿을 때부터

2. 에베소서에서 강조한 것은?(1:15-23)

교회의 통일성
율법주의 경고
재림교리
성도의 사랑

3. 에베소서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입니까?(2:8-10)

의에 이르면 능력이 나타남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름
십자가의 징표를 얻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

4.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자랑할 것이 없는 까닭은?(2:8-9)

행위의 법에 의해서
믿음의 법에 의해서
율법에 의해서
할례의 법에 의해서

5. 이방인들이 이스라엘과 가까워지게 된 것은?(2:12-13)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바울의 전도로
시대의 변천으로
유대인의 회담 때문에

6. 믿는 자가 벗고 입어야 할 것은?(4:22-24)

죄를 벗고 새 것을 입을 것
옛 것을 벗고 새 것을 입을 것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고 새 사람을 입을 것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을 것

7.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오는 약속은?(6:1-3)

영적 축복
건강 축복
물질 축복
잘 되고 땅에서도 장수

8. 바울의 매임 당한 일이 성도들에게 미친 영향은?(6:20)

공포심을 주었음
낙심케 했음
담대하게 만들었음
자랑하게 했음

9.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무엇을 입으라고 했습니까?(6:11)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님의 전신갑주
율법의 가르침
모세의 지팡이

10.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어떠하라고 했습니까?(5:17)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시와 친미와 신령한 노래로서 찬송하라고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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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 한 분이 자신이 용서받은 체험으로 인하여 그의 사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는 너무도 자존심이 강해서 교인들 중의 누가 자신보다 더 신령하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교회 초신자들 중의 한 명이었던 필리스라는 여인은 대단한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다른 교인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이 목사님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첫째로 목사님은 주일 저녁예배 시간 중에 그녀에게 회심에 관한 간증을 하라고 한 뒤부터 화가 났다. 그녀의 간증 내용 자체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설교라고 칭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영적으로 그녀보다 우수하며 사람들은 자기를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그녀가 정말로 영적인 일들에 관해 별로 모른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노렸다. 필리스는 초신자였지만 마침내 목사님과 대면을 청했다. 그녀는 사랑속에 갈등을 품고 말했다.“목사님, 목사님은 저의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목사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제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우리는 같은 편이니까요.”그녀는 또 목사님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였다. 두 시간 반 동안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자신이 얼마나 비굴했었는지 깨닫고 심지어 당황하기까지 했다. 이 초신자는 목사님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도와드렸다. 그는 순전한 사랑 안에서 용서를 받았으며 자신의 사역을 가로 막았던 경쟁심과 시기심을 고백했을 때 그는 다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뿌듯한 해방감인가? 수 개월도 안되어 전 교인은 새로운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그의 설교도 더 나아졌다. 그의 부당한 싸움을 관대하게 품어주었던 필리스의 사랑의 영이 그가 갖고 있던 나쁜 감정을 덜쳐버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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