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혜심 집사(하노이순복음교회) -

“목사님의 안수기도후 다현이를 얻었어요”

어렵게 얻은 자녀, 믿음의 위대한 힘 깨달아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마음 기도열매 맺어


 똘망똘망한 눈과 오똑한 코가 예쁜 딸 다현이는 우리 부부가 2년 만에 어렵게 가진 귀한 보물이다. 나는 결혼 후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하노이에서 살게 됐다. 마흔 가까이 된 우리부부는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새벽에 나와 열심히 기도했지만 아기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검사를 해보니 노산이기도 하고 남편과 나에게 문제가 있어 자연 임신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게 됐다. 의사는 시험관 시술로도 임신이 어렵겠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정자를 채취해 놓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의사의 말에 따랐고 1차 시험관 임신을 시도했다. 양가 가족들은 물론 하노이순복음교회 목사님, 사모님, 성도들이 함께 기도해주었기에 아기가 생길 거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착상조차 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들었을 때 나는 크게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일 때문에 먼저 하노이로 돌아간 상태였고 나 혼자 결과를 듣는데 슬픈 마음을 주체 할 수 없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남편이 있는 하노이로 돌아갔다.

 2016년 8월 29일 부흥성회를 위해 하노이에 오신 이영훈 목사님은 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위대한 힘’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이다. 모두 불가능이라고 할 때 할 수 있다! 하면된다! 라는 거룩한 꿈을 꾸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임신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어느 순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꿈을 가지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라 설교 후 치유기도 시간에 목사님은 기도 중에 태아가 보이는데 지금 아기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생각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예배 후 안수기도를 받으러 가서 기도를 받는데 목사님은 “순산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주셨다. 나는 ‘임신만 되도 좋겠는데 순산기도를 해주시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설교 말씀을 떠올리며 감사했다. 받은 기도에 의심이 생기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남편 장하영 집사와 함께 이사야 66장 9절 말씀을 읽으며 기도했다.

 10월에 한국에 가서 두 번째 시험관 임신을 시도했지만 두 번째 역시 실패했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나에게 아기가 생길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실망보다 더욱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영훈 목사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절대 긍정이 내 마음에 가득 넘쳐나는 듯 했다. 그리고 믿음대로 3차 시도에 아이를 갖게 됐다. 할렐루야!

 우리 부부는 10개월 동안 기도로 출산을 준비했다. 남편은 어렵게 자연분만을 결심한 나를 위해 기도했고 나는 다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안수기도 받은지 1년만인 올해 8월 우리의 기쁨인 다현이를 순산했다. 나는 이 일로 확신을 가진 믿음,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힘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자녀를 맡겨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앞으로 다현이가 하나님 나라의 귀한 쓰임 받는 자녀 되도록 잘 양육할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배후의 힘/조용기목사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출애굽기 17장 8~13절)

 시골의 담벼락도 장구하려면 배후에 버팀목을 세워야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우리가 든든하게 서서 살기 위해서는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행하던 중 아말렉이라는 가나안 족속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에 여호수아라는 군대가 군대장이 군인을 끌고 가서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는 그 전쟁터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아침 일찍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아말렉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 나가서 접전이 벌어졌는데, 모세가 그 장면을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손을 들어 기도 하면 아말렉이 수적으로도 월등하고 잘 부양된 군인들인데도 패배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계속 팔을 들고 있으니깐 다리가 아파서, 팔이 아파서, 견디지 못하여서 그만 팔을 내립니다. 그러면 갑자기 여호수아 군대들이 힘이 덜해지고, 아말렉이 전쟁을 이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말렉과 원수들을 이기기 위해서 같이 산위에 올라갔는데, 아론과 훌이 모세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종종 모세를 돕기 위해서 모세의 형인 아론과 훌이 힘을 썼는데, 그 자리에서는 굵은 바위 돌을 하나 굴려 와서 그 위에 모세를 앉게 하고, 그 옆에 팔 하나는 훌이 들고 다른 하나는 아론이 들고, 손팔을 해가지도록 그렇게 들고 있으니깐 깨달을 수 없는 바람 같은 능력이 임하여서 아말렉이 전쟁에 질 이유가 없는데 전쟁에 패하고, 이스라엘이 전쟁에 이겼습니다. 인생 살면서 뒤에서 도와주는 올바른 힘이 있으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일취월장 성공을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전쟁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적이 공격해 올 때 방어 시스템이 없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많은 사람이 희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뿐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방어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방어 시스템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미 사탄을 이겨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면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방어 시스템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을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우리 속에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이긴 예수님이 지키고 있으니 방어 시스템치고는 최고의 방어 시스템입니다. “예수 없이 나는 스스로 승리하고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라고 표현합니다. 훌륭한 군사는 평상시에 전쟁을 잘 준비하는 군사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훈련도 잘 감당하고, 적이 공격해올 때에 대비하여 어떻게 해야 될 것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날마다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여 마음에 말씀이 가득하고 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 삶을 조종하는 배후의 힘

 우리의 삶을 뒤에서 조종하는 영적인 성령이 계시고, 또 마귀가 있습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이지만 성령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배후의 힘이고, 안 보이는 악한 마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파괴적인 배후의 힘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전쟁과 배후의 힘의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말렉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눈에 보이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 블레셋과 골리앗, 다윗과 야훼 하나님을 보면 사무엘상 17장 46절로 47절에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말씀합니다. 대단한 믿음의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타고 간 배가 큰 파도를 만나서 빠지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앞서 갈릴리 호수를 건너기 때문에 예수님과 떨어져 있었습니다. 파도가 너무 거세지니깐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각하기를 ‘이제 빠져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코를 골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님 우리 죽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도록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바람아 그쳐라. 파도야 그만 쳐라.”라고 명령합니다. 제자들에게는 파도라는 영적인 배후의 힘이 작용했지만 예수님은 명령하고 선포함으로 파도가 잠잠해졌습니다. 서서히 파도가 잠잠해진 것이 아닙니다. 물도 서서히 잠잠해진 게 아닙니다. 파도를 마귀가 흔들고 있다가 마귀가 손을 놔버리니깐 물은 그대로 잠잠해졌습니다. 바람도 그대로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고 제자들을 보시고 “그렇게 겁이 나느냐?” 그러니 제자들이 ‘희한하다. 어디 물과 파도도 예수님을 존경한다. 이렇게 주무시다가 순식간에 깨어나서는 파도물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꾸짖는다는 것은 여러분 산 사람보고 꾸짖지, 죽은 사람보고 “이 나쁜 자식아 잘 되어졌다.” 그래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산 사람은 가만히 안 있지요.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그냥 그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 하나님이 그 바람 배후에 있는 빽이 마귀인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적군과 싸울 때 두려움이 가득하면 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바로 신명기 20장 1절입니다.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아무리 적이 많아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야 된다. 전쟁에 나가서 적군이 아무리 많고 무장을 잘해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안 보여도 너희들을 뒤에서 밀어주어서 가나안까지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군대에 이 교훈을 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 구체적인 지침도 일러주었는데, 싸움터에 가까이 갔을 때, 제사장은 ‘이스라엘에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덜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야훼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신명기 20장 3절~4절)’ 참으로 이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고, 떨지 않고, 놀라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할렐루야 감사하며.

 또 책임자들은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신명기 20장 8절)’ 같이 직면해서 전쟁하러 나왔는데 두려워 벌벌 떨며 “아휴 저거 어찌할꼬. 죽겠는데 우리 군대수가 적은데.” 이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군대는 집에 돌아가라. 그 두려움이 같이 싸우는 동료들의 마음에 용기를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므로 다른 사람도 두려움 때문에 전쟁에 싸울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적군과 싸울 때 한 사람이 천을 돕고, 두 사람이 만을 쫓는다 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 없이 나갈 때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그런 큰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마 전쟁에 나갔는데 저를 데리고 나가면 참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용기 이쪽으로 오너라. 조용기 이리 가라. 조용기 저리 가라.” 전부 이름이 조용기이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싸우러 전쟁하러 갈 때 부정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사이 북한 김정은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원자탄을 만들고 수소탄을 만들고, 어깨에 힘을 주어서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그걸 텔레비전에서 보고, 신문에서 보고 두려우면 큰일입니다.

 그런데 내게 신앙상담 오는 신앙상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목사님 어제 미국에 있는 우리 아들, 딸들이 빨리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그럽니다. 당장 전쟁이 터지면 죽을 것인데 한국에 붙어 있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깐 빨리 오시라고. ‘아버지, 어머니 미국에 와서 우리에게 붙어산다고 우리가 더 괴로울 일 없으니 아버지, 어머니 빨리 미국으로 오세요.’ 자꾸 이렇게 말을 함으로 우리 부부간에도 두려움이 생겨서 급한 짐 보따리를 싸서 있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내가 그래서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은 전쟁에서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뒈질 사람입니다.” 죽으면 자기들끼리만 죽지 왜 내 곁에 와서 내게까지 그런 소리를 합니까? 남의 말이란 듣고 나면 끼꼼합니다. 말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해야 됩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무기는 무쇠무기를 못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면, 무시무시한 말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이 되는 것이 왜냐하면 그 말 뒤에 누가 있지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김정일이 보고 “정일아 까불지 마라. 한 대 맞고 싶냐?” 꼼짝도 못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승리

 예수님께서 우리 주님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계실 때 마귀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여러 가지 애를 썼습니다. 예수님은 배후의 세력인 악의 사탄과 싸워서 완전히 이겨주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예수 안 믿는 사람 말합니다.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골로새서 2장 13절 15절에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에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우리가 안 보이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시고, 우리를 고발하는 모든 증서를 제하였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고 삼으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잡지 못한 것이지만은, 우리를 고소하는 고소장,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 환경, 이것을 다 접수해가지고서 멸해버리고, 우리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 구원을 해서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우리 배후의 세력을 보여주는 놀라운 은혜로운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십자가 갈보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십자가가 안 보이는 죄를 없애버렸습니다. 우리가 일생에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습니까? 어린아이에서 죽을 때까지 죄를 십자가에서 주님이 보혈로 정리해서 씻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으나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등 뒤에서 우리가 안 보이는 자리에서 죄를 사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우리가 보지 않는 배후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 죄를 씻으시고, 거룩하게 해주시고, 우리 안 보이는 데서 예수님이 당신이 채찍에 맞도록 등을 내놓고 갈빗대가 나오도록 얻어맞아 우리 죄를, 병을 다 청산하시고, 그가 채찍에 맞아서 우리가 나았다는 것은 우리는 안 보아도 우리의 기적이 되시고, 나무에 달려서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으신 모습은 저주를 제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종종 너무 “나는 못 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생길 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생각하기 전에 예수님이 저주를 제하시고, 실패를 제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성공이 거기에 있습니다. 축복이 그 십자가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보고 “주님 믿습니다. 성공을 주시고, 십자가에서 축복을 주신 것을 믿사오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보지 않았지만 배후로써, 압도적인 성공을 가져오는 배후로써 십자가가 뒤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 죽으셨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빽이 되어서 여러분은 부활의 생명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용서해주는 빽이 있고, 거룩해지게 해주는 빽이 있고, 병을 낫게 하는 빽이 있고, 생활을 부요케 하는 빽이 있고, 죽어도 부활하는 빽이 있어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굉장한 빽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죽으면서 빽 하면서 죽는다는데, 그 빽은 헛빽이에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진짜 빽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도 빽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알고 빽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우리가 살 때도 마음에 든든하게 살아야 될 것은 다 무너져가는 담벼락을 뒤에 받쳐놓고 그대로 내어두더라도 집 담이 되는 것입니다. 다 무너져가는 집 담을 나무들로 모아놓은 이유가 있을 것이겠지만 모아놓기 때문에 견디는 것입니다. 안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빽이 여러분을 뒤에 밀고 있는지 제가 내려다보고 생각해보면, 여러분 뒤에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훌륭한 빽을 세워놓았다는 것을 언제나 머릿속에 생각 하십시오. 그래서 패배의식을 가지지 말라고요. 여러분은 눈에 안 보이는 모세와 아론같은 사람, 예수님 보혜사 성령께서 뒤를 받치고 있으니 이깁니다. 승리하게 돼 있어요.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 기도응답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공중의 권세 잡은 원수마귀가 스무 하루 동안 다니엘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스무 하루 만에 하나님의 더 힘 있는 천사인 미카엘이 내려와서 원수마귀를 물리치고 다니엘의 기도를 응답 받게 한 것입니다. 다니엘서 10장 12절에서 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 바사 왕국의 군주는 눈에 안 보이는 바사 왕국을 뒤에서 다스리는 마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사 왕국의 빽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천사를 불러가지고서 “이 응답을 갖다 주라”고, 응답을 가지고 내려오는데 마귀가 스무 하루를 막았다.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그러나 최고 권세에 있는 미카엘 천사가 와서 “치워. 길 트여라. 비켜.” 그래 길을 트여서 응답이 오도록 만든 것입니다, 영의 세계도.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이 빨리 안 온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기도응답을 마귀가 막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 사람은 응답 받을 자격이 없는데 왜 응답을 줍니까? 이 사람은 거짓말도 많이 하고, 도둑질도 많이 하고, 죄만 많이 짓고 사는데 기도응답 받을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편에서 아무래도 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지었어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었다.” 우리가 마귀에게 대결해서 이길 힘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람되어 오셔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이기게 할 조건을 다 허락해 놓았으니 춤추고도 놀랄 선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배후의 세력이 역사한 것을 여러분 상상할 수 있지요? 예수님이 얻어맞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갈보리 산에 올라간 그 장면이 뭣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의 배후에 와서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한복음 13장 2절)’ 예수님이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마귀의 대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팔 생각을 가룟 유다에게 집어넣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고 우리 마음의 생각 속에 마귀가 생각을 집어넣어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싸움 할 때 마귀가 남편의 마음속에 분노한 생각을 집어넣었더라. 남편은 그 아내가 이유 없이 싸운다고 화를 내지만은 성격을 아는 사람은 한 발짝 물러서서 들어보면 그 속에 마귀가 들어 앉아있습니다. 마귀가 들어 앉아있어요. 마귀가 들어 왔습니다. 평범한 생활에 마귀가 들어왔다 나왔다 출입이 너무 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쉬지 말고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나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지켜주시옵소서.’ 범사에 감사하라, 좋은 일 감사하라. 아주 단순한 주문의 그 말씀이 보배인 것입니다. 저는 주차할 때나 시간이 있으면 ‘항상 기뻐합니다.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마귀가 들어왔다 나왔다 하지만은 하나님 지켜주시니 고맙습니다. 마귀가 나가면 기쁘고, 들어오면 불평이 따라 들어옵니다. 마귀는 아예 근처 오지 말아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니깐 참 즐겁습니다.’ 그렇게 하고 다니면 참 좋습니다. 내가 집회를 했는데, 마사지를 받아서, 설교를 하고 난 다음에 몸이 찌뿌둥하고 해서 마사지를 받았는데, 마사지를 하는 사람이 무슨 중얼중얼 소리를 자꾸 내면서 마사지를 하길래 ‘미친놈이 왔구나..건강한 사람이 무슨 자꾸 말을 하는가.’ 그래서 들으니깐 성경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시편 23편 1절~3절)’ 그걸 그래서 내가 따라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그 다음에 뭐였죠? 그래 내가 같이 외우니깐 깜짝 놀라가지고서 “아휴 선생님, 어떻게 성경을 다 압니까?”, “내가 성경을 다 아는 게 아니라 성경을 설교하는 목사요.” 그러니 그 사람 아주 기분 좋게 일하고 서비스료도 조금 더 받고, 그런 좋은 일이 일어나요.

 우리 일상생활에도 언제나 마귀가 들어왔다가 쫓겨나고, 예수님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복음주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터는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전쟁터라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화나는 일이 생기는데, 화를 계속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타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로 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우리는 우리가 분을 내고 분을 품고 하는데, 성경에 보면 그 틈을 마귀가 타고 들어와서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것을 알고 우리는 언제나 눈에 안 보이는 제 3자가 따라다닌다는 것을 마음에 깨닫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기도의 힘

 배후에서 기도를 하면 마귀를 억압하고 쫓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지요? 그게 빽을 저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절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 등 뒤에 빽이, 기도의 빽이 저장이 되어 있어요. 그 기도의 빽이 제가 일하는데 밀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리 기도를 많이 해놓으면 바빠서 기도를 못 할 때라도 그 기도가 빽이 되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배후에서 기도를 하면 마귀를 억압하고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누가복음 10장 19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보낼 때, “너희 각자를 위해서 내가 기도의 저축을 해 놓을 테니깐 가서 성공적인 전도를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서로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서로 형제간이든지, 부모자식간이든지, 친구든지, 멀리 갔다고 해도 몸으론 따라가지 못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기도는 따라가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저장은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에베소서 6장 11절로 13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평소에 내가 기도를 많이 해놓으면, 그 기도가 내 주위에 담벼락을 이루어요. 군복을 입혀주는 거지요. 그가 내가 마귀와 싸우는데 이기는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나를 도와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 후원의 배후 세력이 되면은, 똑같은 사람이라도 무엇이든지 하면 잘하고 이기는 사람이 되는데, 이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야고보서 5장 15절~16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장 18절)’ 기도가 하늘에 저축이 돼있고, 일할 때 필요하면 저축을 풀어주시고, 기도를 하지 않고 마귀의 나라에서 여러분 묶여있으면, 일할 때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정 19절~20절)’ 여러분은 기도를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파탄을 당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배후의 힘이 되어 놀라운 역사를 하는 것도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이 배후입니다.

 성령이 굉장한 빽입니다. 오늘 여러분 성령이 있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여러분, 성령은 여러분의 배후로써 뒤에 있으면서 여러분 일할 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 우리 함께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우리의 빽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너무 시간을 오래 끌어서 죄송합니다. 성찬을 안 하기 때문에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로 그치겠습니다. 심리학자 데이빗 씨맨즈는,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치명적인 방법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나는 무능하다’라는 생각을,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게 만듭니다. 둘째는 ‘나에게 미래가 없다’라는 생각, 즉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만듭니다. 셋째,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생각으로 대인관계에 대하여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주는데, 한번 대답해 보세요. ‘나는 무능하다’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 있지요? ‘나는 무능합니다.’ 이것 마귀가 주는 생각인 것입니다. 둘째, ‘난 미래가 없다. 나는 끝장났다.’ 마귀가 하는 소리입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마귀가 하는 소립니다. 하나님은 쓸모없는 인간을 한 사람도 만든 적이 없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들을 심어 줌으로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통하여 마귀는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우리의 생각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생각(마음)을 지키라’고 했으니 생각에 마귀가 도둑질로 죽이고 멸망시키지 않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아멘.


-기 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절대긍정 절대희망으로 무장해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소서. 감사하는 생활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10.08. am 11:22 (입력)
 


이영자 권사(강서대교구) -

교회 나왔더니 류마티스 관절염이 나았어요

기도할 때 목에 난 종양과 치질도 고쳐 주셔

 30대 초반이던 1982년 몸에 이상이 생겼다. 류마티스관절염이 생겼는데 얼마나 심했던지 우리 집에서는 내 비명 소리 밖에 나질 않았다. 8살 6살 4살된 어린 자녀들은 내가 아픈 까닭에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류마티스관절염은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내 손으로 밥도 못 짓고, 혼자 눕거나 일어서지도 못하는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이 무당을 집으로 불러다가 밤새 굿을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는 한 구역장이 우리 집에 와서는 “젊은 사람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길래 굿까지 하느냐”며 교회로 가자고 했다. 마침 다음날이 주일인지라 나는 구역장을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 1부 예배에 참석했다. 구역장은 4주 동안 주일 아침이면 우리 집 앞에 택시를 잡아두고 걷지도 못하는 나를 부축해 교회에 데리고 다녔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였지만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에 평안이 왔다. 그렇게 4주가 지난 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몸에 힘이 느껴졌다.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아팠던 몸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부엌으로 걸어 나갔다.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던 내가 부엌까지 걸어갔다. 쌀을 씻어 보았다. 행주를 짜보았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전혀 몸이 아프지 않았다.

 신기하고 놀라워 그 길로 동네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동네 사람들, 나 좀 보세요. 어르신들, 나 이제 아프지 않아요”라고 소리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고함치는 소리에 이웃 아주머니들이 아침밥을 짓다말고 놀라 뛰쳐나왔다. 

 “아무개 엄마, 안 아파! 괜찮아? 웬일이야?” “네. 안 아파요.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교회에 나갔을 뿐인데 병이 나았어요!” 하나님은 교회에 처음 나온 나에게 참으로 큰 은혜를 주셨다. 그 후 기적은 또 일어났다. 셋째 아이를 임신 했을 때 생긴 치질로 몇 해 동안 혈변으로 고생했다. 누군가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하면 낫는다고 알려줬다. 정말로 3일간 금식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호식을 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이 주일이라 교회에서 3부 예배를 드리는데, 조용기 목사님이 신유기도 후 선포하셨다. “치질로 인해 하혈하는 분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데 나았다” 나는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할렐루야’를 외쳤다. 정말 깨끗하게 나았다.

 한 번은 또 구역장 사명을 받아 활동할 때였다. 목에 임파선 종양 3개가 났다. 나는 먼저 내 신앙을 돌아보고 회개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류마티스관절염과 치질을 고쳐주신 하나님께서 임파선 종양을 고쳐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다. 그 당시 나는 세 아이를 돌보느라 수술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무조건 하나님께 매달려 병을 치유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한달 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한 결과 혹 3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내가 할 일은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경을 돌아보면 남편을 도와 중·고등학생이 된 세 아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돈을 벌어야할 형편이었다. 나는 세 아이가 공부를 마치면 주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러자 마음속에 한 찬양이 울려퍼졌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담대히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다. 복음전파에 힘을 쏟자 하나님은 내가 돈을 벌 때보다 더 많은 축복을 부어주셨다. 세 자녀는 교사 경제인 등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고, 장막을 선물로 주셨다. 주의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복을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2005년부터 호스피스 봉사를 통해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위로를 전하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에 집중하며 주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이영훈목사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1~13

오늘은 전도서 3장 11절로 13절 말씀을 가지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뭐가 잘 되면 ‘아! 참 내게 운이 따랐다!’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 참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재수가 좋은 사람이다.’ 또 뭐가 안 되면 ‘참 운이 나빴다.’ ‘재수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겼을까!’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나서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좋았던 일, 나빴던 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된 것임을 우리가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 어떤 하나의 일어난 일들도 결국은 그 퍼즐이 다 맞춰져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 가운데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역사 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리던 솔로몬이 말년에 쓴 전도서에 보면 그가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절과 2절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고, 무엇을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또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8절을 보니까,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그 ‘때’를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주관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 ‘때’를 이루어가시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사 3장 9절에서 10절입니다.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나의 시간표로 내 원하는 것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주관하고 계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할렐루야! 그러니까 우리에게 실패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가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이 가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생의 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듬어지게 만들어주시고, 우리를 잘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을 통하여서 연단시키고 훈련시키셔서 하나님 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한평생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아야지, 어려운 일 당한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자꾸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의 상처를 또 되새겨 보고, 되새겨 보는 그런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탁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루하루 순간순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때에 성공이란 선물을 주십니다. 성공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자기의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그것을 열심히 단련시키고 훈련해서 최선의 모습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들에게 성공이라는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해주실 것을 믿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지어진 찬송가가 있습니다.

 1975년, 북 캘리포니아 기독교총회센터의 총무로 있던 다이앤 볼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가는 중간에 한 마을에 들러서 여성 오찬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아침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급한 일이 생겨서 일을 처리하고 오다가 늦게 왔습니다. 그래서 이 다이앤 볼이 남편에게 화를 냈습니다.

  “여보, 내가 오늘 12시에 말씀 전하기로 약속 했는데 늦게 오면 어떻게 해요!” 화를 내고 이제 차를 출발해 가는데 옆자리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자기가 화낸 것 하나님 앞에 너무 미안하고,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화를 낼 때는 속 시원한 것 같지만 돌아서면 마음 아픈 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화를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데, 마음에 평안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성경을 읽게 하시고 전도서 3장을 읽다가 11절 말씀이 탁 마음에 뛰어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큰 감동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 순간 하늘의 찬양대가 부르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내게 들려왔어요. 가사는 내 초조한 마음을 쓸어내렸고, 주님은 내게 평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작사, 작곡을 한 것이 찬송가 623장인데, 놀랍게도 그 약속 장소에 가보니깐 주최 측의 사정으로 시간이 연기가 되어서 딱 도착한 시간에 바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날 그분들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내 시간과 계획은 언제나 불완전해요. 주님은 주님의 시간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시죠!”

 623장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시간에/ 아름답게 모든 것 변하리/ 주님 나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니/ 주의 뜻을 따라서 살리라(1절)/ 주님의 시간에/ 아름답게 모든 것 변하리/ 나의 정성 다하여 주를 찬송하오니/ 주의 뜻을 이루어주소서(2절)’

주님의 시간에
아름답게 모든 것 변하리
주님 나의 갈 길을 인도하여주시니
주의 뜻을 따라서 살리라

주님의 시간에
아름답게 모든 것 변하리
나의 정성 다하여 주를 찬송하오니
주의 뜻을 이루어주소서

 할렐루야!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뤄지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제가 성경에서 가장 사랑하는 인물, 요셉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받는 아들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열일곱 살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온갖 고생을 해서 자리를 잡을만하니까 또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죄수로 감옥에 들어갑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이 그에게 지나갔지만 그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지 않았습니다.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모함해서 감옥에 집어넣은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는 깨어지고 또 깨어지고 또 깨어져서 가장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갔을 때, 하나님이 서른 살에 그를 탁 높여서 당시 최강대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높은 위치에 올라갔을 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자기에게 해를 입혔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복수의 기록은 없고 오히려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용서하는 장면만 나옵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둘째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3장11절에,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실 때 말씀 한 마디로 지으셨으나, 만물의 영장인 우리 사람은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후’ 하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사람이 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설명합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이 생기가 히브리 원어로 ‘루아흐’입니다. ‘루아흐’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영,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숨’ 그것을 하나님이 영을 우리 인간에 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땅을 밟고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죄짓고 타락해서 영의 눈이 흐려져서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 외에 이러한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동물이 없습니다.

 집에서 반려견들을 잘 기르지만, 반려견들이 음식 줄 때 하나님께 감사 기도 하고 먹는 반려견은 없어요. 주자마자 확 확 확 먹느라고 바쁘지요. 왜? 그에게는 혼만 있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이 있어서 늘 영혼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중세 성자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주님, 한줌 흙에 지나지 않는 피조물이오나 감히 입술을 열어 당신에게 찬양을 드립니다. 당신에게 찬양을 드릴 때에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오며, 그리하여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까지 우리의 마음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절대로 평화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에 근심이 쌓이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이 자리에서 내려갈까 불안하게 떨며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마음의 안식은 예수를 믿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로 부르고 섬길 때에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참된 평안과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 믿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화와 만족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또 찾아다니는 것이 그 영혼의 갈급함을 어떻게든지 달래보려고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쳐보기도 하고, 무당한테 굿을 해보기도 하고, 또 우상에게 빌어보기도 하지만 절대로 그것이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줄 수가 없습니다. 뭐 타로점이라고 해가지고, 카드 펴놓고 뭐 뽑아가지고 뭐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백번 뽑아봐야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이 점쟁이나 무당들은 악한 영이 있어서 과거들 좀 볼 수 있는 능력은 있어요, 과거. 그러나 그 어떤 용한 점쟁이라고 할지라도 미래는 못 봅니다. 왜?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미래가 밝은 미래, 찬란한 미래, 영광스러운 미래, 아름다운 미래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딱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렐루야! 요한복음 14장 6절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길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함께하시고 넘치는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에 갔다가 한 여인을 만났는데, 이 여인은 남자를 잘 만나면 마음에 평안함이 올 줄 알고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어요. 이천 년 전에 다섯  번이나 했어요. 대단한 여인이에요, 그죠? 다섯 번을 갈아치워도 마음에 안 들어서 여섯 번째 사람하고 사는데 마음에 평안함이 없었어요.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 누구에게서도 얻지 못했던 삶의 기쁨과 평안함을 예수님을 통하여서 그는 얻게 되었고, 그는 물 뜨러 왔다가 물통을 내려놓고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늘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절대 주권

셋째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갖고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3장 11절에,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무엇을 해서 이름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고 정상에 올라갔을 때,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서 거기에 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감사하며 살아야 됩니다. 시편 23편 1절의 고백을 해야 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번에 독일에 메르켈 총리가 4선을 했어요. 4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 지도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분은 목사님 딸이에요. 목사님 딸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번 네 번째 된 게 본인 능력으로 잘해서 된 부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해주셔서 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잘될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은혜 가운데 된 것이고, 안될 때 문제 있을 때에는 대부분 내가 잘못한 거예요, 내가. 내가 실수하고 내가 내 성격을 잘못 다스려서 남하고 부딪쳐서 상처를 입힌 거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되게 만들어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자리에 자꾸 내가 대신 앉아가지고 뭐든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걸 가리켜 죄라고 합니다, 죄.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 자리에 앉아있으니까 그것이 바로 죄고, 그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처럼 되려고 따먹은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유혹했습니다. “너, 저 선악과 먹으면 하나님처럼 돼.” 인간이 넘어야 되지 않을 선을 넘어버렸어요. 그래서 죄가 들어오고 온 인류가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까지 교만해서 내가 하나님 자리에 대신 앉던 것을 회개하고 철저히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져서 주님, 주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겸손으로 허리띠를 두르고 주님 앞에 기쁘고 감사함으로 섬김의 삶을 살아갈 때,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축복이요, 선물인 것을 알게 됩니다. 전도서 3장 13절에는 설명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생 고백은 “주님,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입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할렐루야!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순서를 바꿔 말하면 안 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훈련시키셔서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갈 때, 큰 복을 주신 갈릴리 농원의 류광열 장로님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파주의 유명한 장어 음식점인데요. 일찍이 청년 농업가로 28세에 벌써 크게 성공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아내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 앓아요. 3년 동안 이 병원 저 병원 다녔는데 병을 고치지 못했는데, 누가 전도해서 교회 나오고 나서 예수 믿던 그날 편안하게 잠이 들게 되고, 몸이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이제 이분이 사업 수단이 있는 모양이에요. 장어 양식장을 하는데 얼마나 잘되는지, 막 대 성공을 해서 해외에서까지 그 성공 사례를 연구하러 왔습니다.  그러니까 교만해지는 거예요. 잘될 땐 하나님 은혜라 그랬죠? 보세요. “감사보다는 교만이 가득했던 삶이었습니다. 아내를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피지도 못하고 오로지 성공의 달콤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더 많이 갖기 위해 고민했지 거룩한 삶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손보시기 시작하셨어요. 1996년 8월 달에 장마와 태풍이 겹치면서 파주와 문산 일대가 다 물바다가 되고, 그의 전 재산인 양식장은 파괴되어버리고 장어들은 다 떠내려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복원하는데 그 다음 해, 그 다음 해, 3년 동안 집중 폭우가 와서 장어 양식이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IMF시절의 부채가 60억이 넘습니다. 1년 이자가 25%니까 이자만 1년에 15억이에요, 15억. 별로 놀래지도 않으시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성공했던 내가 맨 밑바닥에 내가 나앉게 되었으니 이렇게 살아 뭣하나’ 할 때, 하나님이 다시 그를 붙들어서 그를 세우십니다.

 그가 다니는 교회에 장로 직분을 주신 거예요. ‘나 같은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을 주님 다시 세우셔서 일 시킨다.’는 사실에 너무너무 감사해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면서 다시 그가 일을 시작합니다. 몇 마리 남지 않은 장어를 가지고 잘 그것을 양념을 해서 좌판에 놓고 팔았는데, 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맛있다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니까 천막을 치고 이 장어집을 했는데, 사람들이 소문이 나서 막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데 2002년도에 본격적으로 갈릴리 농원을 시작해서 그 장어 음식점을 하는데,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하고 온답니다. 번호표를 받고 3시간을 기다려야 된데요. 1년에 연간 60만 명 손님이 찾아온대요. 이제 아마 이 설교가 나간 다음에 70만 명 찾아올 거예요. 상복도 많이 받아서 은탑산업훈장과 대통령 표창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와 같이 그것을 자기의 그 은혜 받은 것을 설명합니다. “매 순간 죽음을 생각했던 그 시절, 나를 건져준 것은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삼성교회 장로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헤매던 시절 장로 직분을 받은 나는 인생 중 어떤 부귀영화와도 견줄 수 없는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할렐루야!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데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많이 보내주는데도 왜 전도하지 못하느냐?” 그래서 식당을 찾는 수십만 사람, 손님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농원을 홀리랜드로 확장하여 그 안에 교회까지 세웠습니다. 올해 8월에 입당 예배를 드렸는데요, 그는 간증합니다.      “일생의 꿈과 희망이 깃들어 있는 갈릴리농원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아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마저도 지금 생각하면 모두 주님이 예비하신 순간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축복 속에 저와 우리 가정의 지경은 크게 넓어졌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합니다. 주님, 제 삶을 통해 예수님의 향기가 전해질 수 있게 인도해주옵소서. 갈릴리농원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심길 수 있게 해주옵소서. 더욱 겸손하고 순종하는 종이 되게 해주옵소서!”

 할렐루야! 모든 것에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렇게 귀하게 쓰시려고 연단의 연단을 거쳐서 그를 낮추시고 직분을 주셔서 다시 믿음으로 바로 서게 하신 후에, 큰 복을 주셔서 지금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을 가지고 매일매일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일생은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임광순 집사(말레이시아 사랑순복음교회) - 15년 간 앓던 두통이 사라졌어요
우울증까지 생겨 고통스러웠던 나날
기도와 말씀으로 치유의 감격 체험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3년 전부터 거주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자녀들을 따라 말레이시아에 왔는데 낯선 나라에서 젊은 나이도 아닌 내가 적응을 잘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30년 넘게 신앙생활해온 나는 어디를 가든지 두려움 보다는 희망을 품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나아가기를 소망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사랑과 배려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또 외국에 나와 있지만 이곳에 순복음교회가 있어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다. 말레이시아 사랑순복음교회 담임이신 염세열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나 순복음의 신앙을 이어 나가게 됐고 가족같이 서로를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났다. 그리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다시금 체험하게 됐다.

 나는 2000년 뇌수술을 받았다. 우연히 뇌종양이 발견됐고 양성이었지만 병원에서는 그냥 두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든가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며 수술을 서둘렀다. 처음 예상은 9시간이었던 수술이 12시간이나 진행됐다. 회복이 잘되는가 싶었는데 수술 이후부터 바람만 불어도 머리가 시려 모자를 쓰게 됐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두통이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와서 하루에 약을 6∼7번 씩 먹고 살았다. 약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통은 나를 많이 힘들고 지치게 했다. 병원에 가도 약만 처방해줄 뿐 고통의 발생 원인이나 통증이 안 생기게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우울증이 생겨서 내 자신이 싫고 여러 가지 계속 부정적인 마음이 들어 힘들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병원에 다니고 우울증 약도 받아서 1년 동안을 먹게 됐다. 하루도 날 가만 두지 않는 두통은 내 삶을 힘들게 했다. 아프고 힘들어서 교회에 가지 말고 누워있을까 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 때는 어린 손자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어려도 ‘할머니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교회에 가자고 귀엽게 말하는 손자들의 말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가 오랜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안 염세열 목사님은 정말 간절하게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나도 고통에서 해방되어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떤 때는 목사님께서 기도를 마치신 후 자신의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거나 눈이 아프다고 하셨다. 목사님이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셔서 그런가 감사하면서도 어서 이 통증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사모님은 매일 성경 말씀을 보내주셔서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런데 2달 전부터 자연스럽게 약병에 손이 안 가게 됐다. 어느 순간 ‘아 이상하다. 오늘은 한번도 약을 먹지 않았네’ 하는 날이 점차 많아졌다. 아플 때마다 먹는 약인지라 통증의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하루에 한번만 먹거나 아예 먹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1남 2녀 자녀를 주시고 이 아이들을 통해 6명의 손자 손녀들도 주셨다. 하나님 안에서 받고 누린 것이 참으로 많다. 그동안 신앙생활하게 하시고 고통을 치유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지만 한국에 있는 형제들도 늘 그립다. 형제들은 모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각자의 달란트대로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한마음으로 걱정해주고 함께 기도할 수 있어 정말 든든하다.

 앞으로는 건강을 회복 시켜주신 하나님과 나에게 일어난 이 일들을 사람들에게 간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다. 


생각의 중요성/조용기목사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 43장 19절)
 
 ‘생각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생각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발표에 의하면 ‘나는 늙었어.’라는 생각만으로도 뇌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나쁘다’라는 생각이 실제로 기억력을 나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나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기억력의 점수가 월등하게 높았습니다. 생각은 이처럼 우리의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뿐만 아니라, 생각은 우리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어제의 생각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당신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내일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닫힌 문만 바라보면 인생은 실패합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청각의 장애를 가지고 살았던 헬렌 켈러 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다가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하곤 한다.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지나간 실패의 기억은 떨쳐 버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으로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지만 엄청나게 행복하고 위대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1.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현재를 비관하거나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그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이 가득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은 현재라는 시간인 것입니다. 돈에 비유하면 과거는 이미 써버린 돈이요, 미래는 불확실한 어음이며, 현재는 쓸 수 있는 현금입니다. 지나간 과거의 실패에 묶여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근심과 걱정에 묶여있다면 희망 찬 오늘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삶의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내야 됩니다. 누가복음 12장 25절로 26절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못하지만, 주님을 믿고 주님이 같이 계시니 할 수 있다’ 그와 같이 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환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에게 안수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 그 환자를 데리고 온 들것에 그대로 싣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갈 수 없어도 그들은 길은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본 즉 집 지붕에 구멍을 뚫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붕에 올라가서 집 천장 구멍을 뚫고 중풍병 환자를 달아 내려서 예수님께 안수를 받고 나았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 평생에 중풍병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집 구멍 뚫을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패배한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바람을 보지 말고 주님을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파도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두려워했으나 베드로는 “만일 주시어든 나로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오라.” 그러니 예수님이 오라는 말을 듣고 베드로가 배 밖에 나갔으니까 그도 예수님처럼 물 위에 서서 걸어가는데 광풍이 불어와서 얼굴을 때리니 그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파도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잘못한 결과로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니 예수님이 팔을 잡고 끌어 일으켜 살려주시면서 베드로를 꾸짖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있을 때는 물 위로 걸었는데 파도를 바라봤을 때는 바람을 볼 때 그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차서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에는 늘 풍랑이 일어납니다. 적은 풍랑, 큰 풍랑, 풍랑이 언제든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환경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에게 삶의 길이 열립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사야 43장 19절에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면 길이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물이 없는 사막에 강을 내어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라
 생각을 바꾸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죄인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의 용서와 의의 선물을 기대하면 죄사함과 의로움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더러움을 씻고 거룩하게 될 것을 기대하면 그러한 은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바라보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의관들이 만들어낸 병명이 있는데 ‘가시철망 병’이라는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린 포로가 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수용소의 가시 철망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 삶의 의욕을 잃고 자리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하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시철망 병에 걸렸는데, 어떤 사람들은 다 같이 포로수용소에서 가시철망을 바라봤는데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까 그들은 포로가 되어서 가시철망 뒤에 있었지만 가시철망을 바라보지 않고 철망 저 너머 푸른 하늘을 늘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전쟁가운데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시철망 병에 걸려서 들어 누워서 늘 두려워했는데, 이 사람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포로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주 즐거운 삶을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믿음의 발걸음을 옮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십자가 밑에 나가면 십자가를 통해서 희망을 하나님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중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다 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어떠한 죄인도 구원받고 용서받을 수 있고, 어떠한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 더러운 사람도 청결하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도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연약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헐벗고 굶주림을 벗어나서 잘 먹고 살 수 있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천국갈 수 있는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이런 언약과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가지고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삶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음으로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떠한 처지에 부딪히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어릴 때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행동이 처음에는 거미줄처럼 약하지만 계속되면 밧줄처럼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에도 습관이 생깁니다. 물이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르면 물길이 생기듯이 생각도 계속하면 습관이 생기는 것입니다. 계속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 사람은 무엇이든지 안 되는 것만 생각하고, 못 되는 것만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잘 다스리고 훈련해야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 속에 만나기 원하면 항상 십자가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합니다. 

3.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라
 열 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 뒤로 가서 옷자락에 손만 대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안했으면 군중을 헤치고 예수님 계신대로 나가서 그 옷자락에 손을 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그 여인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그 여인이 사는 집 앞을 지나갈 때, 이 여인은 생각을 따라서 뛰어나가 그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라는 생각은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일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진퇴양난의 위기를 만날 때, 세상 사람들은 ‘이제는 길이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사통팔방 어느 곳에도 길이 없는데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은 길이 있느냐?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에 길이 열려 있습니다. 동서사방으로 다 길이 막혀도 아직 위에는 뚫려 있는 하늘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늘길이 있는데 하늘길이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하늘길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온 천지가 다 막혀도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은 열려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11장9절에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 길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기도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만년필은 루이스 에드슨 위트맨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입니다. 원래 이 사람은 보험설계사였는데, 하루는 보험계약을 하러온 사람하고 앉아서 계약서를 쓰다가 잉크병이 기울어져서 잉크가 계약서에 번져 들어가서 못쓰게 되었습니다. 이 위트맨이 새로운 계약서를 끄집어내어서 쓰자고 했을 때, “계약에 잉크가 쏟아진 것을 보니까 재수가 없다.” “계약 안하겠다” “당신은 보험에 실패할 것.”이라고 화를 내고 나가버렸습니다. 이때 위트맨은 다른 생각을 갖습니다. ‘한쪽의 길이 막히면 다른 쪽에 길이 열린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자 잉크가 안 쏟아지는 만년필을 만들어보라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래서 만년필을 만들었습니다. 보험회사보다도 돈을 더 잘 벌었습니다. 잉크가 쏟아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 생활 속에서 잘못 되는 것도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면 잘된 것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일이 안 되면 비난하고 공격하고 탄식하고 팔자 신세 한탄을 하는데 그러지 말고 일이 안 되면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길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제가 믿는 그 길을 버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다 끝장났다’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인생이 끝장나고 맙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할 수 있다, 해 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나오는데 참 과감한 말씀 아닙니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그것이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없고 빈 손 들었지만 그 모든 것 보다도 자본이 많이 가지고 있는데 믿음이 자본인 것입니다. ‘믿습니다’가 자본인 것입니다. 그 자본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불린 E.M. 바운즈는 기도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도의 손에 쥐어주신 기이한 능력이다. 기도야말로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장 강한 끈이며 연약한 인간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동참할 수가 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다.” 성도의 기도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손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4. 뒤로 물러서지 말라
 문제를 만났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편 146편 3절로 5절에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는 시련을 만날 때,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기도로써 비를 내리게 했던 사람인데 가뭄이 와서 사람들이 굶어죽은 처지에 있게되자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비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한 번 기도하고, 두 번 기도하고 또 산꼭대기에 올라가보니 아직 응답이 없습니다. 세 번 기도하고, 네 번 기도하고, 다섯 번 해도 효과가 없어요. 여섯 번 해도 효과가 없어요. 일곱 번 기도하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보니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올라요. 그가 아합왕에게 말합니다. “큰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니 마차를 정비해서 타고 빨리 시내로 들어갑시다!” 그래서 시내로 들어가는데 순식간에 온 하늘에 구름이 덮이고 비가 쏟아졌습니다. 낙심하고 한두 번 기도해서 안 된다고 뒤로 물러갔으면 그런 기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한 과부가 재판관 앞에 나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 아무리 해도 이 재판관이 말을 들어주지 않다가 나중에는 하도 끈질기게 구하니까 “내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정한 사람이지만 이 여자가 하도 출근할 때 마다 문 앞에 엎드려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면 내가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기도를 응답해주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기적은 고집스러운 면도 필요합니다.

 한 도시에 우물 파는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우물을 파야 마실 물도 얻을 수 있고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용수도 얻을 수 있는데 그 분야의 전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해서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우물을 파면 물이 늘 나오고 다른 사람이 파면 우물에 물을 얻지 못하는데 어떤 특별한 기술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 전문가는 웃음지으며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좀 파다가 물이 안 나오면 또 다른 우물을 파러 가지만 나는 물이 나올 때까지 팝니다. 그것이 비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줄곧 해도 응답을 못 받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습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응답이 올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떼를 쓰고 물러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친구가 왔는데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합니다. 주인으로서는 귀찮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당신이 나의 친구가 돼서 주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게 함으로 주는 겁니다”고. 예수님이 그 비유를 들으셨습니다. 아주 우스운 비유같지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병고침을 위해서 십년동안 기도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십년을 하루같이 끈질기게 기도했더니 고침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때 제목을 정해놓고 아침에 기도도 하고, 점심때 기도하고, 저녁때 기도하고 똑같은 기도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기도를 하려면 제목이 자꾸 변화되고 내용이 복잡해집니다. 예레미아서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마귀가 막고 있지만 끝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나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5 장                      

           

   

 사무엘하 5장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2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4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년 육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6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 어 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 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해 처로 나가니라
 
18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 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20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우니라
 
22 블레셋 사람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23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24 뽕나무 꾜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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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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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하 4장
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아브넬의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장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바아나요 하나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3 일찍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 우거함이더라
 
4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절뚝발이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 나이 다섯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
하더니 급히 도망하므로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5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행하여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저가 낮잠을 자는지라
 
6 레갑과 그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7 저희가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상 위에 누웠는지라 저를 쳐 죽이고 목을
베어 그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행하여
 
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고하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 과 그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9 다윗이 브레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10 전에 사람이 내게 고하기를 사울이 죽었다 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저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으로 그 기별의 갚음을 삼았거든
 

11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 집 침상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저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땅에서 없이 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12 소년들을 명하매 곧 저희를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가에 매어 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 덤에 장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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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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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하 3장

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2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세째는 압살롬
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4 네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6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7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
 
8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9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10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 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 라 하매
 
11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말도 대답지 못하니라
 
12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사자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이 땅이 뉘 것이니이까
또 가로되 당신은 나로 더불어 언약하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로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 다
 
13 다윗이 가로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하려니와 내가 네게 한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 올 때에 위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14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저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앙피 일백으로 정 혼한 자니라
 
15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16 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 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17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러번 다윗으로 너희 임금 삼기를
구하였으니

 
18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19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히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고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20 아브넬이 종자 이십인으로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 하였더라
 
21 아브넬이 다윗에게 고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하게 하고 마음의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저가 평안히 가니라
 

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과 그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혹이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저가 평 안히 갔나이다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가로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저를 보내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의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왕의 출입하는 것을 알고
모든 하시는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 이에 다윗에게서 나와서 사자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가에서
저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
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28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29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 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30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저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31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 가서
 
32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33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가로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34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35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해지기
전에 뗘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36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37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의 한 바가 아닌
줄을 아니라
 
38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의 방백이요 또는 대인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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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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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하 2장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2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한 종자들과 그들의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저희의 왕을 삼았음이 니라
 
8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비로소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세며 두해 동안
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해 여섯달이더라
 

12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서 기브온에
이르고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서 기브온 못가에서 저희를 만나 앉으니
이는 못 이편이요 저는 못 저편이라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
요압이 가로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15 저희가 일어나 그 수효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둘이요
다윗의 신복중에 열 둘이라
 
16 각기 적수의 머리를 잡고 칼로 적수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헬갓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
 
17 그날에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니라
 
18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
 
19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달려가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

 
20 아브넬이 뒤를 돌아 보며 가로되 아사헬아 너냐 대답하되 내로라
 
21 아브넬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쳐서 소년 하나를 잡아
그 군복을 빼앗으라 하되 아사헬이 치우치기를원치 않고 그 뒤를 쫓으매

 
22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 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하되
 
23 저가 치우치기를 싫어하매 아브넬이 창 뒤끝으로 그 배를 찌르니 창이 그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 곧 그곳에 엎드러져 죽으매 아사 헬의 엎드러져 이르는 자마다 머물러
섰더라

 
24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편 암마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25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떼를 이루고 작은 산꼭대기에 섰더라
 
26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가로되 칼이 영영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나 무리 에게 그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하겠느냐
 
27 요압이 가로되 하나님이 사시거니와 네가 혼단의 말을 내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 형제를 쫓지 아 니하였으리라 하고
 
28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29 아브넬과 그 종자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아라바를 지나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에 이르니라
 
30 요압이 아브넬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무리를 다 모으니 다윗의 신복 중에 십 구인과
아사헬이 궐이 났으나
 
31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삼백 륙십명을 죽였더라
 
32 무리가 아사헬을 베들레헴에 있는 그 아비 묘에 장사하고 요압과 그
종자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헤브론에 이를 때에 날이 밝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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