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복사기 교체에 30억?…비난 일자 ‘취소’

                                              
    
국회 복사기 교체에 30억?…비난 일자 ‘취소’                    
      

<앵커 멘트>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의원회관의 각종 집기를 일괄적으로 교체해, 비판여론이 비등했는데요.

이번엔 또, 대당 천만원짜리 복사기를 모두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내구 연한이 남아 있는 복사기까지 일괄적으로 바꾸기로 했는데, KBS 취재가 시작되자 계획을 돌연 취소했습니다.

신지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국회 사무처가 의원회관 전자복사기 300대의 교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세금 포함 한 대에 천만 원, 30억 원 가까운 예산이 배정됐습니다.

내구연한 6년이 지나 일괄적으로 교체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의원실에서 쓰는 복사기는 2012년 19대 국회 개원과 함께 지급돼 내구연한이 2년 남았는데도 교체 대상입니다.

<녹취> 국회 보좌관(음성변조) : "조금 느리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용할 수 있어요. 다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부분이니까."

7백 만 원짜리 이 복사기는 2010년에 들여왔다고 표기돼 있지만, 실제로는 역시 19대 국회 개원 때 지급돼 4년만 쓴 물품입니다.

<녹취> 주해돈(새누리당 보좌진협의회장) : "2012년 5월달에 공급을 받았는데 여기 표기는 2010년에 (공급)된 걸로 돼 있습니다."

취재가 이어지자 국회 사무처는 새 복사기 품평회를 취소하고 교체 계획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녹취> 국회 사무처 관계자(음성변조) : "수요 조사를 좀 더 하려는 거예요. (신청을 받아서 교체하신다는 거예요?) 네."

앞서 국회 사무처는 20대 국회 개원 직후 의원실마다 책상과 접견용 의자들을 한꺼번에 나눠줘 비난을 샀습니다.

<녹취> "좋아요, 이게. 누가 보더라도 이게 좋죠."

국회의장이 뒤늦게 의자 교체 보류를 지시했지만, 이미 상당수 물품이 교체됐습니다.

<녹취> 국회 보좌관(음성 변조) : "일단 밖에다 보관을 하고 있는 거고요. 1999년에 준 것도 아직까지 멀쩡한데..."

의원회관 지하 주차장엔 멀쩡한데도 교체된 의자 2천여 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앞선 19대 국회 개원 초기에도 사무집기 구입비로만 35억 원 넘는 세금이 쓰였습니다


딸을 사랑한는 아버지의 목발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여행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큰 사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아버지와 딸은 모두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딸의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딸보다 먼저 퇴원한 아버지의 신세도 딸과 다름이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사고 당시 사춘기에 있었던 딸은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다른 친구들이 조잘거리며 신나게 몰려다닐 때도 그 딸은 늘 혼자

목발을 짚고 외로이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같은 목발 신세인 아버지가

말동무처럼 딸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대해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주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딸은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투정을 부리는 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나서서 말없이 그 투정을 받아 주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버지와 공원 벤치에 나란히 목발을 기대어놓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학교에 같이 참석하여 딸을 껴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너는 나의 자랑이며 보람이란다.”

딸은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딸은 목발을 짚고 가야 했습니다.

길을 걷는 그들 앞에서는 작은 꼬마 하나가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이 큰길로 굴러갔습니다. 꼬마는 앞뒤를 살피지도 않고 공을 주우러 큰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길모퉁이에서 큰 트럭이 전 속력으로 달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의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는 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뒹굴어 위험의 순간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마를 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길을 건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순간적인 행동은 너무나 날쌔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목발 집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이었습니다.

딸은 자기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꼭 껴안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애야,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다 나았단다.

퇴원 후에 곧 정상이 되었거든. 그러나 네가 목발을 짚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도 목발을 짚고 다니기로 작정하셨던 거야. 내가 말렸지만 너랑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던 거야. 그러니까 그게 벌써 5년이 되었구나. 이 사실을 아버지 회사원도,

우리 친척도 아무도 모르지. 나와 아버지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며

딸은 주제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모습까지 갖추었다면

이는 신이 정성껏 만들어 보내신 선물입니다


아름답게 태어나서 아름다운 마음씨에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사랑과 행복을 모두 갖춘 것이지요

아름다운 사람은 웃어도 아름답고

울어도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마음에 있고 우리들 모두에게 있습니다

천국은 얼마든지 아름다운 마음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포기하고 서로를 미워합니다

미움과 시기하는 마음은 자신에게

불행과 고통만 줄 뿐입니다


밝게 보고 아름답게 보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과 행복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친구여!! 나이들면 이렇게 살게나

 

 나이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 소리 불평일랑 하지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하소

그렿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고 하지마소 적당히 져 주구려

한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친구여 !!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보면 베풀어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푼 줄 돈 있어야 늙으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잘난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니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봐도 가는 세월 잡을 수가 없으니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되오 아프면 안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오래오래 살으시구려

친구여...!!

 

== 법정스님 글 중에서 ==



☞☞ 아름다운 장미꽃축제에 초대



                             

어느 시골 청년의 사랑이야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시원시원한 성격, 섬세한 배려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촌을 좋아하는 여자가 없어서
청년은 결혼을 못했습니다.

청년은 어느 날부터 컴퓨터를 장만하고 인터넷을 하면서
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카페에서 활동을 하다가
어느 여자와 이메일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바다"라는 닉네임을 가졌고
여자는 "초록물고기"였습니다.

청년이 느끼기에 여자는 박학다식하면서도 검소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보였으며
농촌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여자와 주고받는 메일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청년의 가슴속에는 여자를 향한 분홍빛으로 사랑이
싹틈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메일을 1000여통을 주고 받으면서
두 사람이 무척 가까워졌을 때
청년은 뜨거운 마음을 담아 프로포즈를 보냈습니다.

그런나 그가 가까워지고자 할수록
여자는 점점 움츠려 들며 멀어져 갔습니다.

마치 눈덩어리에 입김을 불어 넣어서
따뜻한 온기를 넣어 주고 싶어 하지만
그 온기에 눈물로 녹아지는 눈덩이처럼
여자는 자꾸만 작아졌습니다.

청년이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는 하루에 열통씩 오가던 메일이
사랑을 고백하고 나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답장이 오곤 했습니다.

그 마저도 답장은 늘 한, 두 줄의 짧은 답이였습니다.
청년은 절망을 했습니다.

그토록 믿어 왔던, 또 믿고 싶었던 늦게 찾아온 사랑에
더욱 더 절망을 했습니다.

누구도 시골은 싫은가 보구나... 다 이상일 뿐이야...
나처럼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농촌을 지키고자 하는 내가 바보지.
누가 봐도 이건 바보짓이야...

그렇습니다.. 청년은 대학을 나와서
다른 친구들 좋은 직장으로 취직을 하고자 할 때,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촌이 신음을 할 때
농촌을 지키고자 부모님 반대를 무릎 쓰고
농촌에 정착을 했지만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였습니다.

청년은 도무지 일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의 닉네임이 "초록물고기"란 것밖엔...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이렇게 빠져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 무엇에도 두렵지 않던 자신이
이제는 초록물고기가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것이있습니다.
한 달째 멜 수신확인이 안되였습니다.

의도적으로 피하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청년은 다시 절실하게 여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초록물고기님!!
너무나 절실해서
가슴으로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남들은 쉽게 잠이 드는 밤에
술기운을 빌려서 잠이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맨 정신으로 잘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이유를
비 오는 밤 사람이 그리워서
여기저기 수첩을 뒤적여도 맘 편하게 전화할 사람이 없어서
전화기를 들지 못할 정도로
서글퍼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느끼는 소외감을.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 걷는 거리를
바쁘고도 무거운 걸음으로
혼자서 걸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왜 무거워 하는지.
누가 건들지 않아도 늘 깨질 것처럼 바람불면 날아갈듯
위태하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기댈 사람이 없어 늘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쓸데없는 생각의 깊이...
여기에 질식되어 죽을 것 같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가슴으로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지...
사랑하는 이가 그리워도 보지 못하는 아픔을
견뎌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속이 타서 얼마나 쓰린지...
한 달 후 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초록물고기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바다님!
나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하고 많은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적부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를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얼굴도 어릴 적,
덴 화상으로 흉터가 많이 져 있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은 커녕 집안에서
어둔 커텐으로 햇살을 가리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가진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몸마저 이래서 누구하나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 동안 사이버 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다들 저를 보면 그만 등을 돌렸습니다.

그 이후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
저에게 호감을 주는 남자가 있다면
먼저 등을 돌리곤 했습니다.

사랑을 하기도 전에 버림을 받는 제 자신이
너무 가여워 서지요.

바다님에게 메일을 받은 순간 기쁘고 설레였으나,
바다님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다시 아픔을 줄 수가 없어서
바다님에게 다가갈 수 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자신을 합니까?

청년은 눈앞이 아득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자의 소식이었지만
여자의 결점을 알고 나니 갈등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의 실망 하시는 모습을 떠올리자
청년은 너무 괴로웠습니다.

육체보다는 영혼이 중요하다고 자부하던 청년이었기에
고통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의 일에는 정신을 중요시 하면서
자신의 일은 껍데기를 더욱 중요시 하는 것이없습니다.

몇 날 몇 일을 고민하던 청년은 여자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초록물고기님!

사랑하는..이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내 단 한 사람....
초록물고기님 당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건강한 몸을 가진 내가
또한 저에게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말한 당신의 결점은
오히려 나에겐 기쁨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위틈에 조용히 피어나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제비꽃처럼
저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록물고기가 바다의 품에서 맘대로 헤엄치는 날
나는 비로소 내 스스로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초록물고기가 넓은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칠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서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청년은 여자의 불편한 몸이 걱정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였지만
사는걸 보고 싶어 하는 여자의 부탁으로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여자는 그녀의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3월 14일 학교에서
가장 큰 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3월 14일..
청년은 여자가 혹 못 찾을까봐
한 시간 반이나 먼저 나가서 여자를 기다렸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애 간장을 다 태우고 20분이나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교문에서부터 웬 날씬한 여자가 목발을 짚고
머리엔 노란 스카프를 두른 채
뚜벅뚜벅 거리며 청년의 눈에 점점 크게 다가왔습니다.

혹 초록물고기님이시나요?
그럼 바다님 맞나요?
여자는 부끄러운 듯이 살며시 고개를 숙이더니
이제 저를 보여 드리겠어요 하더니
여자는 안경을 벗고 스카프를 벗어서 나뭇가지에 걸었습니다.

그 순간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여자는 얼굴에 흉터하나 없이 우윳빛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굉장한 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목발을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 밑 벤치에 앉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면 놀랬나요?
처음부터 속이려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영혼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바다에서 헤엄쳐도 될까요?

청년은 물기어린 눈빛으로 와락 여자를 껴안았습니다.
멀리 바라보는 보리밭 위로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ㅡ글쓴이 미상인 글에서ㅡ



서해 불법조업 중국어선 2척 군산해경 나포



한·중어업협정 해상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던 중국어선 2척이 해경에 의해 나포됐다.

전북 군산해경서는 군산시 어청도 남서쪽 137㎞ 한·중어업협정선 내측 해상에서
무허가로 조업한 중국 석도선적 100t급 쌍타망 어선 ‘노문어’ 등 선박 2척을
배타적 경제수역(EEZ) 어업법 위반 혐의로 붙잡아 군산항으로 압송했다고 15일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이 어선들은 지난 1월 29일 중국을 출항해 서해상에서 조업하던 중
전날 한·중 어업협정선을 침범해 멸치 4t을 포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은 서해남부 전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기상악화를 틈타 불법 조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개정된 EEZ 어업법에 따라 최고 3억원까지 담보금을 부과할 방침이며, 미납시에는
선박 몰수 등 적극적인 추가 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전남도, '화재피해' 여수수산시장 영업재개 총력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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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1억, 특별교부세 10억, 전남신보 특례보증 등 


여수수산시장 화재와 관련, 전남도가 피해 상인들의 신속한 영업 재개를 위해 총력적인 지원에 나선다.

16일 전남도에 따르면 여수수산 시장 화재 피해 현장 정리에 필요한 재난지원금 1억원을 긴급 지원키로 했다.


또 국민안전처에 임시 영업장 마련을 위한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10억원 지원을 건의할 계획이다.

전남신용보증재단은 소상공인들이 빠른 시일 내에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특례보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업체당 7000만원까지 보증심사 및 보증료를 우대하고 전남도 및 여수시 등과 협의해 최대 연 3.0%의 대출금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생계가 어려운 피해 상인에게는 '전남도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지원에 관한 조례' 규정에 따라 생계비 지급 등 생활안정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전날 화재현장을 찾아 "세금 납부 유예, 학자금 지원 등도 매뉴얼상 지원이 가능하다"면서 "2018년에 여수 수산시장을 '시설 현대화 사업' 대상으로 넣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날 오전 2시21분께 여수 수산시장에서 불이 나 119개 점포 중 81개가 불에 타고 2층 1곳을 포함해 37개 점포가 그을림 피해를 입어 5억2000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설 맞아 전국 524개 전통시장 주변도로 주차 허용

- 서민경제 진작 및 전통시장 활력 도모 -


명절을 맞아 부산 깡통시장, 청주 육거리시장 등 전국 524 통시* 주변도로에 최대 2시간까지 주차가 허용된다.

(524개소) 서울 121, 부산 27, 대구 30, 인천 26, 광주 9, 대전 17, 울산 8, 세종 2,

경기 84, 53, 충북 17, 충남 16, 전북 20, 전남 28, 경북 38, 경남 23, 제주 5

정자치부(장관 홍윤식)와 경찰청(청장 이철성)은 설 명절을 맞아 중 주차 허용시장 158개소 외에 별도 366개 전통시장에 대해서도 116부터 30까지 주변도로에 최대 2시간까지 주차를 허용한다.

이번에 주차가 허용되는 시장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청의 협조 하에 도로여건을 고려하고 시장상인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선정했고,

교통혼잡을 피하기 위해 교통경찰과 자치단체 주정차관리요원이 배치되어 주차를 관리하게 된다.

 

주차가 허용되는 시장은 정책브리핑(www.korea.kr), 행정자치부(www.moi.go.kr, 뉴스소식/보도자료), 경찰청(www.police.go.kr,알림마당/보도자료), 각 자치단체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번 주차 확대 허용 조치로 인해 설을 맞아 전통시장 활성화 및 내수경기 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평상시 전통시장 이용을 꺼려하는 이유가 주차공간 확보가 곤란하고 주차시설 등 접근성이 낮은데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일정시간 주차를 허용하여 쉽게 전통시장을 이용할 수 있는 편의를 마련하였다

지난 추석 명절때 처음으로 연중 주차가 허용된 시장을 중심으로 성과분석을 실시결과 전통시장 이용객 수가 16.9%, 매출액은 27.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출처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심덕섭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실장최근 내수 경기회복이 둔화하고 일부 생활밀접품목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이번 주차 허용을 계기저렴한 전통시장을 편리하게 이용하여 가계에 보탬이 되고 전통시장 및 내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향기는 당신입니다/동목 지소영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있고

선과 악이 있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행하고 파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우지 않아도 아름다운 향기로 세워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 안의 사람이 무섭기도 합니다

겉과 속이 선명한 두 색을 지닙니다

혼돈하고 언어를 흩어지게 만드는

마술을 부립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만들고 불리는

필요에 따라 벗은 옷을 입지도 못한 채

도망하기도 하면서..

 

참과 진실은

사계절 변하지 않는 옷을 입지요

얇아지지도 않으며 자신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투구를 차고 있습니다

작은 마음 하나로

한 줄의 예쁜 글로  

슬픔 많은 세상 맑게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무슨 색깔이고 싶은가요

초록숲을 그리워해 보셨나요

무지개 향기를 경험한 적 있습니까

소나기보다 진한 전율에 휘감긴 적 있습니까

 

결코 꺾일 줄 모르는 시간보다 한걸음 느리게

흐르는 물보다 한 계단 낮게

미감처럼 감기는 바람보다 약한 온유로

불꽃같은 빛보다 어진 눈으로  

조용히 소중한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현숙한 우리

당신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

 

  

선생님, 나의 엄마!                     

            


 


 

 
선생님, 나의 엄마!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뺑소니차에 당한 사고라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했고, 
네 살 많은 누나와 저만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진 우리는 큰아버지 댁으로 보내졌습니다.
적은 액수였지만 부모님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이 있었는데 
누나 이름으로 된 통장을 큰아버지가 관리한다고 가져가셨습니다
저희는 의지할 곳이 없었고, 
너무 어렸기에 통장을 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고
정신적 충격이 컸던 저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 했습니다
생각을 하고 뭐라고 말도 하고 싶은데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라 꾸준히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큰아버지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문제라면서 병원엔 데려가 주지 않으셨습니다  
성격이 까칠했던 큰어머니는 집안에 머리카락 하나 
뒹구는 것도 용납을 안 하는 분이라서 
저와 누나가 들어온 후로 부쩍 신경이 남카로워지셨습니다
손에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닦고 
바깥에서 닦고 들어오게 하셨지요
큰아버지에게는 자식이 한 명 있었는데 저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으로 유학을 간 상태라 
방이 비어 있었는데도 그 방을 어지럽히면 안 된다고 
저와 누나는 다용도실로 쓰는 방을 사용했습니다
간혹 친척들이 다니러 오거나 손님이 오실 때만 
그 방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지냈고,
손님들이 돌아가시면 바로 다용도실로 가야 했습니다
누나는 큰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식모살이를 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마당 쓸고
집안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매일 손빨래까지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누나는 코피를 자주 쏟았고 
누나가 코피를 쏟으면 큰어머니는 더럽다고 난리를 치셨습니다  
성적이 좋았던 누나는 점점 성적이 떨어졌고 
"시험기간이라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큰어머니는 "집안일은 누가 하냐?"며 노발대발 하셨습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밥값은 해야지 니가 안 하면 
니 동생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기에 
누나는 저 대신 그 많은 일을 다 해냈습니다
아직 말도 못하는 동생에게 힘든 일을 시키다 
혹시 영원히 말을 못 하게 될까봐 
누나는 저에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큰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자 
누나와 저를 향한 못마땅한 시선은 더욱 심해졌고, 말끝마다 
"고아원에 안 보내고 데리고 살아주는 걸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큰아버지는 점점 술 마시는 날이 늘어갔고, 
유학 간 아이에게 돈을 부쳐줘야 하는데 
왜 돈을 안 주느냐고 싸우는 일이 잦더니 
큰어머니의 잔소리가 그치지 않자 술을 마시고 
매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해 겨울날, 누나와 저는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방에서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문이 열리더니 
큰아버지가 들어와 허리에 매고 있던 허리띠를 풀어 
우리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도 맞으니까 누나가 제 앞을 가로막고 
"왜 자꾸 때리느냐?"며 
"이럴 거면 고아원으로 보내주라, 
차라리 고아원에 가겠다" 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큰아버지는 "키워주는 은혜도 모르고 대든다"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누나를 무섭게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때리던지 누나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누나 때리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까지 속에서만 맴돌던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고, 큰아버지는 제가 말을 하는데 놀랐는지 때리는 걸 멈추고 방을 나갔습니다. 누나는 제가 말을 하자 너무 기뻐하면서 "집을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말도 못 하는데 고아원에 가면 혹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봐 누나는 꾹 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니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고아원에 가서 살자 어디를 가든 여기보다 나쁘기야 하겠냐?"며 그 밤에 누나와 저는 짐을 싸서 집을 나왔습니다. 고아원에 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경찰서에 찾아가 고아원에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경찰서에서 큰아버지한테 연락을 할까봐, 그래서 다시 큰집으로 가게 될까봐 저희들은 밤길을 오래 헤매야 했습니다. 누나는 고민을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누나의 담임선생님이었던 분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누나한테 힘내라고 매일 전화해주고 챙겨주던 고마운 선생님이셨습니다. 누나가 전화를 하자 선생님은 멀리 지방에서 밤새 달려 저희가 있는 곳까지 와주셨습니다. 누나와 제 얼굴을 보더니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시고 그냥 꼭 안고 목 놓아 우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선생님이 사는 집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누나는 선생님께 "고아원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으니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고,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큰집으로 가셔서 저희 짐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더러 "함께 살자"고 하셨습니다. "아들 딸 다 결혼해서 그동안 혼자 살기 적적했는데 너희가 함께 살아 주면 외롭지 않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저희 남매에게 엄마가 되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는 누나와 달리 저는 엄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쭉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선생님도 편하게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누나와 제가 부모 없는 아이들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모든 면에서 소홀하지 않게 신경을 쓰셨습니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도 저희들을 꼭 챙기셨고, 누나와 형들도 저희를 가족처럼 생각해 주셨습니다. 사춘기 시절, 제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방황을 하고 집을 나와 중국집 배달원으로 취직했을 때도 선생님은 수소문을 해서 저를 찾아와 "니가 이렇게 살면 내가 나중에 너희 친부모님을 어떻게 보겠느냐?"며 눈물을 흘리셨고, 제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일 중국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전 선생님이 고마우면서도 도움을 받는 제 입장이 너무 싫었습니다. 혼자 자립해서 살고 싶었습니다. 매일 저를 기다리던 선생님께서 학교 끝나고 저를 보러 오시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제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친부모님도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저 때문에 선생님마저 돌아가시면 저는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는 내내 '선생님이 살아만 계시면 앞으로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보니 선생님은 수술실에 계셨고, 다행히 목숨엔 지장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큰 수술이어서 석 달 동안 입원을 하셔야 했고, 그 기간 동안 저는 선생님의 간병을 해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속 썩인 것을 용서받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선생님은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선생님을 화장실에 모셔다 드렸는데, 화장실을 나오면서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는 말씀에 제가 "엄마는 아들한테 미안한 게 왜 이렇게 많으세요?" 제가 처음 뱉은 '엄마'라는 단어에 선생님이 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고, 저는 그렇게 선생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릅니다. 이젠 퇴직을 하셔서 텃밭을 가꾸고 주말에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시는 엄마. 엄마가 안 계셨으면 저와 누나가 이만큼 바르게 자라지 못했을 겁니다. 공무원이 된 누나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저. 저희들은 엄마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엄마가 제게 하신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든든한 선생님으로 기억되려고 합니다. 그것이 엄마가 제게 주신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감동실화 옮겨온 글 --

   늘 건강한 날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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