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최고 지략가의 잘못된 선택과 악한 계략, 비극적 최후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삼하 17:23)
중국 삼국시대 때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중국의 전 역사를 통해 최고의 지략가로 알려져 있다. 조조에게 패한 후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그의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갔다. 삼고초려(三顧草廬)후 유비는 제갈량을 얻었고 지방 호족 정도였던 유비는 제갈량의 도움으로 촉한을 건국하게 되었다.
제갈량은 유비가 죽은 이후에도 촉한의 국정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바람에 파도가 바뀌듯이 적벽대전에서 일순간에 극적인 승리를 일궈낸 제갈량이 중국에 있었다면, 이스라엘 역사에는 아히도벨이 있었다. 그러나 아히도벨은 제갈량이 되지 못했다. 사무엘하 17장 23절은 비극으로 끝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책사(策士) 아히도벨의 최후를 기록하고 있다.
1. 아히도벨의 등장
아히도벨의 계략은 일반적인 책사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사무엘하 16장 23절은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았다''는 말은 제사장들에게 우림과 둠밈을 사용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받은 말씀처럼 신뢰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아히도벨의 지혜가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탁(oracle)에 비유될 만큼 위엄과 권위도 있었다는 의미이다.
아히도벨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히도벨은 유다 땅 길로 출신이었다. 그의 아들은 엘리암이었고(삼하 23:34),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이었다(삼하 11:3). 그러니까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친할아버지였고 다윗은 아히도벨의 손녀사위인 셈이다.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의 한 명이기도 했다(삼하 23:23~34).
2. 압살롬의 난 : 잘못된 선택과 악한 계략
성경은 다윗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아히도벨이 무슨 이유로 다윗에게 등을 돌리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쳐 자기편으로 만들었다(삼하 15:6). 그리고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이 된 후(삼하 15:10) 길로에 있던 아히도벨까지 그의 책사로 얻음으로써(삼하15:12) 역모를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단숨에 거침없이 다윗성까지 무혈입성했다.
다윗성에 입성한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베푼 첫 모략은 아버지인 다윗 왕의 후궁들을 강간하는 것이었다(삼하 16:20~23).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을 취함으로써 다윗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표식을 삼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의 아버지였고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율법에서 금기하는 것이었다(레 18:8).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범하는 반율법적이고 패륜적인 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짓도록 했다.
예루살렘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잡기 위해 그가 세운 책략도 악했다. 그가 세운 모사는 군사 1만 2000명을 자신이 직접 이끌고 그날 밤에 쫓아가서 다윗을 죽이고 돌아오겠다는 것이다(삼하 17:1~2). 반란의 주체인 압살롬이 아니라 자신이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잡아오겠다는 것으로 볼 때, 압살롬의 난은 아히도벨이 계획했고 이 역모의 방점을 본인이 찍고자 했던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히도벨과 다윗의 근본적인 차이는 여기서 확연히 드러난다.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삼상 24:3~4; 26:7~12).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울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삼상 24:6; 26:9).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볏단을 베듯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취했던 다윗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것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아히도벨은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가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고의 책사였지만 거룩성을 잃어버리고 반인륜적이고 반율법적인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려고 한 것이다.
3. 아히도벨의 몰락
역대상 27장 33절은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謨使)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의 충신이었던 후새는 다윗이 예루살렘성을 버리고 도망갈 때 성에 남았다. 압살롬과 아히도벨에게 죽을 수도 있었지만 다윗에게 그들의 계략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무엘하 17장은 아히도벨과 목숨을 걸고 다윗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후새의 전략이 숨 막히게 대립하고 있다. 만약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선택했다면 다윗은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압살롬은 후새의 전략을 선택했고 결국 압살롬의 왕자의 난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이후 아히도벨은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정리하고 목을 매고 죽었다. 그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분노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압살롬의 난이 실패할 것을 미리 예감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던 길을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산발한 채 맨발로 도망할 때(삼하 15:30), 계속 쫓아오며 저주를 퍼붓던 사울의 친족 시므이를 살려 줬던 다윗의 관대함을 몰랐던 것이다(삼하 16:5). 지략에 뛰어났던 아히도벨의 이름의 뜻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리석음의 형제''라는 뜻이다. 그의 이름처럼 아히도벨은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것이다.
사무엘하 17장 23절은 제갈량에 비교할 만한 최고의 지략가로서 왕의 책사는 될 수 있었지만 왕의 친구는 될 수 없었던 아히도벨의 비극적 삶을 말해 주고 있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