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와 함께하는 자들을 섬기던

여자들은?(8:1-3) :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은 제자들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씨는 무엇을

뜻하는가?(8:11) :

 

하나님의 말씀

 

길 가에 있다는 것은?(8:12) :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8:13) :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8:14) :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8:15) :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거라사인의 땅에서 예수께서 만난 '군대'라는 귀신이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른 말은?(8:2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군대라는이름의 뜻은?(8:30) :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거라사인의 땅에서 예수께서 만난 '군대'라는 귀신은 어디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는가?(8:31) :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역대상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이미 살펴본 열왕기상·하 외에도 역대기 상·하가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네 권이다. 그런데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다보면 내용이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들은 서로 동일한 사건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비슷한 역사책이 두 개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열왕기가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멸망의 원인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했다면,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 본토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열왕기가 과거지향적 역사서라면, 역대기는 미래지향적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참된 믿음의 뿌리(역대상 1∼9장)


 역대상이 기록된 시대는 이스라엘이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고향으로 귀환한 시기로 나라의 모든 것이 파괴된 때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뿌리를 찾은 후에야 미래의 비전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대상의 서두가 족보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열왕기서가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권을 넘겨주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을 아담에서 찾는다. 역대기가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을 아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대상 1:1).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다(창 1:27). 이것은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백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달아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적 사명을 일깨워준다.

 역대상의 족보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러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유독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역대상에는 왜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거짓과 속임 가운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야곱 대신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믿음의 사람 이스라엘이 주는 의미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대상 전반부(대상 1∼9장)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족보가 매우 세심하게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가 인간의 변화 이전의 삶보다는 참 믿음에 의한 변화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정한 신앙의 역사(역대상 10∼29장)


 역대상의 후반부는 사울의 죽음(대상 10장)과 동시에 다윗의 왕위 등극(대상 11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는 열왕기서와 달리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보통의 역사는 정치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지만 역대기서는 믿음의 눈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언약궤를 모셔 오고 성전 건축과 관련된 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일이었다(대상 13:1∼6).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웃사의 실수로 다윗의 계획은 어긋난다(대상 13:9∼14). 이 때 하나님은 언약궤를 옮기려 했던 다윗을 축복하고 외교와 정치 그리고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하셨다. 다윗은 교만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 위해 세밀한 계획을 준비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였다(대상 15:1∼29). 이것은 역대기가 다윗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신앙의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은 마침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게 되었고, 이 궤를 섬기는 사람들의 복무규정을 제정하고(대상 16:1∼6), 기쁨으로 감사의 찬양을 불렀다(대상 16:8∼36). 그 다음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건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다윗은 전쟁으로 인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다(대상 22:8). 그러나 다윗의 열심은 멈추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는 성전 건축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성전 건축 준비까지 금지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석재, 목재, 금속 그리고 기술자 등 성전 건축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하고(대상 22:1∼5), 성전 봉사를 위한 여러 부서들과 직책들을 꼼꼼히 설치한다(대상 23:1∼28:21). 마지막으로 다윗의 삶은 감사의 기도로 끝을 맺는다(대상 29장).

 역대상이 이스라엘과 다윗의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으로 삶을 종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역사의 평가는 한 인간이 이룬 업적과 성취보다도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역대상은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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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연 권사(마포2대교구)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치매 걸린 친정엄마와 나에게 위안은 ‘성경’


나는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엄마와 10여 년 넘게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낮에는 엄마를 돌보는 일이 괜찮지만 밤에는 엄마가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않아 집안일을 하며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나의 건강은 나빠지고 신경도 예민해졌다.

늦은 밤 잠에서 깬 엄마는 화장실에 가는 길을 잊어버렸다며 나를 깨우기 일쑤였고 같이 다녀오면 또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자는 나를 깨웠다. 그럼 나도 모르게 “힘들어서 지역장 못할 것 같아. 교회도 주일만 갈 수 있겠어.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며 화를 냈다.

2018년 교회에서 말씀 통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침마다 담당 교구장님이 읽을 본문과 함께 역사 배경 등을 문자로 보내주시면 그것을 지역 식구들과 공유하며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

말씀을 읽다보면 끝없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는 ‘하나님, 죄송해요. 엄마를 사랑하고 오늘 밤에는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해도 절대 불평하거나 원망을 하지 않을게요’라고 기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불평하지 말자’고 입술을 꽉 깨물며 다짐해도 한밤중 잠자는 내 귀에 대고 찬송가를 크게 부르시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또 다시 화를 내고 말았다.

매일이 바빠도 나는 성경읽기를 쉬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을 보면서 ‘나는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만 싶은데 다윗은 어떻게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지?’라며 큰 위로를 받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성경통독과 함께 저녁마다 엄마와 예배도 드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엄마가 전과 달리 밤에 잘 주무셨고 나에게 ‘미안하다’라고 말씀도 해주셨다. 나는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임을 깨달았다.

어릴 적 한 번도 교회를 다녀보지 않았고 예수님의 ‘예’자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너무 궁금해 매일 성경책을 끼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태해져 말씀을 멀리하고 있었으니 말씀 통독이 나에게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말씀을 읽으면 가슴에 감동이 밀려왔고 감사와 기쁨이 내 안에 샘솟았다. 전에는 ‘전도’라는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됐지만 말씀에 은혜를 입자 전도 열정도 되살아나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했다.

나는 매일 소리 내어 성경을 10장씩 읽는다. 24시간 붙어있는 엄마는 내가 읽는 말씀을 듣고 행복해하신다. 말씀은 곧 힘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묵상이 길어진 요즘은 SNS를 활용해 믿음의 식구들과 매일 성경 통독 및 필사의 은혜를 나누고 있다. 지칠 때 위로를 주셨던 하나님을 통해 크리스천의 삶 속에서 말씀과 기도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교회 교구 개인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고난의 유익/이영훈목사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서 벌써 2달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또 TV 앞에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하심과 평안함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이 어려움을 통과하고 난 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이지만 절망 뒤에 다가올 희망의 내일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이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게 하여 주셔서 우리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 그 의료기술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인정받고 주목받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고 이 땅에 독버섯처럼 자란 신천지 이단이 완전히 해체되고 뿌리 뽑혀서 교회가 정화되고 교회에 제2의 부흥이 있게 하여 주시고 신천지를 통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에 분열과 사회의 혼란을 가져왔던 이 모든 문제가 싹 해결되는 좋은 결과가 있게 하여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 세워진 많은 국회의원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을 섬기고 올바르게 그 맡겨진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있는 자리에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평안을 저희의 마음 가운데 허락하여 주셔서 염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져버리고 주님이 주신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승리하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편 119편 71절 말씀 가지고 "고난의 유익"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유익" "고난의 유익"

이 세상 사는 사람들 가운데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게 고난이 다가오면 어떡하든지 고난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될 것은 아무리 애를 쓰고 피하려 해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난은 궁극적으로 신앙과 생활의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

먼저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언제 영적으로 성숙합니까. 고난을 당할 때 성숙하는 것입니다.

온실의 화초가 잘 자라는 것 같아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아도 병충해에 약하고 찬 바람 한 번 불면 시들어 버려 죽게 합니다. 왜? 고난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겪어서 찬 비바람을 맞은 화초가 굳건히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해야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가 있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 검진 가면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루에 30분 이상은 숨이 찰 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님처럼 나이가 드셨으면 하루에 30분은 숨이 가쁘게 걸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이렇게 우리가 수고하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훈련과정을 통하여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고난을 통하여서 주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119편 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왜 하필이면 이러한 일이 내게 다가왔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고난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그를 더 짓누를 뿐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올 때 오히려 자신을 살펴보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뢰하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이 고난의 과정 속에 어떻게 나를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까를 깊이 생각하며 믿음의 전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를 바로잡아 주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길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길을 바른길로 가게 바꾸어 놓으십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야 하는데 다시스로 가니까 풍랑이라고 하는 고난을 통해서 그를 물고기 뱃속에 넣으시고 다시 니느웨로 방향을 돌리신 것처럼 우리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알게 모르게 주님 뜻과는 벗어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까. 고난의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뜻이 있고 주님의 은혜가 있고 주님의 가르치심이 있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잘못된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바로잡고 바른길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삶의 나침반이요, 인생의 내비게이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과할 때 철저히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를 다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서 내 영혼을 살펴서 주님 보시기에 내가 잘못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다 찾아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50절입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고난 당할 때에 말씀이 내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치료가 되고 능력이 되어서 정말 죽을 것 같은 그 고난의 자리에서 우리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절대로 우리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절대 절망이 아닙니다.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지만 우리를 더 나은 길, 좋은 길로 인도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오히려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웬 귀신 들린 아이가 자꾸 쫓아와서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버렸어요. 그랬더니 이 점치는 여자아이를 통해서 돈을 벌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이상한 풍습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고발해서 붙잡아서 매를 맞게 하고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아마 그 지역 유지였던 모양이죠. 재판도 받지 않고 그렇게 몰매를 때리고 감옥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매 맞고 들어간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 여기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밤중에 감옥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은 설명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순간 옥터가 흔들리고 손과 발에 매인 모든 것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26절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고난의 감옥에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절망 가운데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고난의 옥터를 흔드시고 매인 것을 풀어주시고 닫혔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시편 119편 54절, 55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야훼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아프지 않은 주사가 없습니다. 한 번 어릴 때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병원에만 가자고 그러면 싫다고 그럽니다. 주사만 보면 웁니다. 그러나 그 아픈 주사가 내 몸에 있는 병균을 죽이고 나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사가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내 영혼을 찌르는 그 통증이 내 영혼 속에 들어와 있는 영혼의 악성 바이러스들을 다 죽이고 나를 치료하고 살려내는 놀라운 은혜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 중에, 절망 중에, 아픔 중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둘째로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없는 영적 성숙도 없을뿐더러 이 고난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나은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입니다.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극한 영혼의 고독과 통증을 느끼며 그냥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저 눈물의 골짜기에 이르면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픔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은 아픈 것입니다. 아프지 않은 주사가 어디 있습니까. 다 주사가 아프지요. 그러나 그 고난이 축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119편 84절, 85절입니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얼마나 힘들면 이제 내 인생의 남은 날이 며칠이나 됩니까? 막 너무 고통이 심해서 막 거의 죽게 되었어요. 마음이. 나의 남은 날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내가 너무나 힘듭니다. 나를 물고 뜯고 원수들이 나를 공격해오고 웅덩이를 파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고난이 그러한 고통이 다가왔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시며 우리 앞에 시온의 대로가 펼쳐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119편 88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잘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룩한 꿈을 꾸었을 때 형들이 시기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심부름 온 그 동생 요셉을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17살 때 이야기입니다. 꿈 많은 소년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울면서 형님들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 형들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당시에 노예로 팔려간다는 것은 죽음의 길과 같았습니다. 1년 365일 때리고 일 시키고 부려먹다가 병들면 광야에 내다 버려 짐승의 밥이 되어 죽게 하는 것이 그 당시 노예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참고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인정을 받아가지고 이제 좀 안정되려고 하니까 덜커덕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어도 누명을 씌운 그 경호 대장 보디발의 부인을 욕하거나 원망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형들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고 누명을 씌운 사람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을 당했지만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 이미 주님의 거룩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기간이 13년입니다.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린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저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고 또 참았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 같은 긴긴 세월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냥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아서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과 같이 긴 세월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13년 중에 가장 힘들었던 기간이 마지막 2년입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루는 바로왕 옆에서 섬기는 높은 관원장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한 명은 떡 맡은 관원장, 다른 한 명은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해몽을 해보니 술 맡은 관원장은 사람은 살 운명이고 떡 맡은 관원장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복직되면 바로왕에게 말해서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그는 복직이 되었지만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나가는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창세기 40장 21절에서 23절입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잊힌 인연. 요셉은 "야 이 밤만 자면 내일 나가겠구나." 밤잠을 못 자고 설렜을 것입니다. 해몽을 해준 사람이 바로왕 옆으로 갔으니 그가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예로 잡혔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한 소년을 만났는데 해몽을 잘합니다. 그 사람 살려줘야 합니다." 그 한 마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기다립니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까?" "연락이 없는데." "아마 오늘 복직해서 바쁜 모양입니다." 다음 날 아침 "연락 없습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열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시간이 길게 늦게 느껴졌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잘 참고 견뎠습니다. 참고 견디다 마침내 서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41장 38절로 41절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그가 지낸 그 긴긴 13년의 기간 그 누구도 자기를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17살 그가 소년의 때에 어린 청년으로서 애굽에 끌려왔을 때 말도 다르고 풍습도 다른 애굽 문화 가운데 노예로 자라면서 히브리 노예로 붙잡혀왔으니 얼마나 멸시를 당하고 짓밟힘을 당했겠습니까? 사정없이 등에 채찍질이 내리쳐져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를 불쌍하다고 위로해주고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였습니다. 감옥에 내동댕이쳤을 때에도 혼자였습니다. 꿈을 해몽해 준 지 2년이 지났으니까 그전에 또 얼마 정도 감옥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수년간을 감옥에서 외롭게 혼자 깊은 고독 속에서 그는 오직 주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긴긴 이 고독의 시간이 그의 영혼을 깊이 통찰하게 하고 영적으로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고난 중에 나 홀로의 시간을 갖게 될 때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내 자신이 서서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치료받고 위로받고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고독의 밤을 지나며 외로움의 밤을 지나며 슬픔의 밤을 지나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

셋째로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은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은혜입니다. 빛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입구까지 40년이 걸려서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모세가 눈이 침침하지도 않고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이제는 너의 할 일을 다 잘 감당했으니 이제는 그만 다 내려놓고 내게로 와라." 그러고 주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데려가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허탈감과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우리 지도자 모세를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 후계자로 모세의 몸종이었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를 세웠지만 40년 동안 모세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눈에 안 들어 왔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 자신도 갑자기 40년을 따라다니던 영적인 거인이요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가 천국에 가시게 되자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수아 1장 7절 8절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매 순간순간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인생길이 흑암으로 뒤덮여서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도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이 내게 호롱불이 되어서 나의 갈 길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오직 믿고 의지할 것은 주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을 때 그 말씀이 나를 절망에서 건져주고 슬픔에서 위로해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위대한 능력을 내게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7절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야훼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할렐루야! 주의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살려 주시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말합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합니다. 그 말을 통해서 내게 큰 상처를 안겨줍니다. 그 말 하나하나에 연연해하지 말고 귀 닫아버리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의 말씀이 나의 은신처가 되고 나의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4절입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말씀이 나를 붙들어 주고, 말씀이 나에게 꿈과 소망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6절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어떠한 고난이 어떠한 절망이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슬픔이 어떠한 괴로움이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십시오.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십시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말씀 붙잡고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이 고난 가운데 극한 상처와 절망 괴로움 가운데 있는 나를 살리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두 딸을 키웠던 한 엄마가 큰딸을 잃고 다시 말씀 붙잡고 일어나 승리한 홍애경 집사님. 수원 온누리교회 집사님이신데요, 이분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분은 음대 교수인 아버지 밑에 태어나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고, 남편과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두 딸을 낳았습니다.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사우스베일로 한의대를 졸업해서 한의사로 활동하며 남들이 보기에는 승승장구하고 잘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큰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큰딸이 결혼을 앞두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2년여 동안 암과 싸우다가 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엄마로서 더 큰 충격이었던 것은 자기는 세상 성공을 향해 승승장구하고 잘 달려나갔지만 큰딸 제니퍼는 얼마나 주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면에 신앙적인 면에서 부족한 것이 없던 딸이었는데 "어떻게 하나님 왜 저렇게 착한 제니퍼를 데려가셨습니까, 날 데려가셨어야죠." 울부짖어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울다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이와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니? 내가 너를 데려갔으면 너는 지옥에 갔을 거야. 그래서 너를 데려갈 수 없었어. 그러면 너는 영원히 제니퍼를 만날 수 없어. 그래서 제니퍼를 먼저 데려온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해. 그래야 제니퍼를 만날 수 있어."

쾅, 주님이 해머를 때리신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그는 이름뿐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름뿐인 크리스천. 그래서 미국에서 예수 믿느냐고 물을 때 꼭 물어보는 말이 있습니다. '아 유 본 어게인 크리스천 (Are you born again christian?) 거듭난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무엇하나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없이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려나갔던 그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모든 것 다 접었고 정리하여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때부터 바르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말씀으로 출발합니다. 큐티를 하면서 큐티하는 권사님들이 같이 모여서 간증을 나누면서 매일매일 말씀으로 무장을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를 주시는지 과거의 잘못되었던 자기 모습을 보여주시고 이제는 바로 살 수 있는 인생의 기회를 제시해 주셔서 자신처럼 고난 당한 이웃들 위해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올해 1월에 '오늘도 만나를 줍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간증집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고백합니다.

"다시는 기뻐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에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시는 감사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모든 일이 감사했다. … 어떻게 세리 같던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를 꿈꿀 수 있었는지,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이유를 안다. 말씀으로 내 영혼이 소생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이렇게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힘이 있다."

고난 없는 성숙은 없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축복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인 것을 잊지 마시고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며 철저히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껍데기뿐인 신앙생활 했던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원래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구원의 확신도 제대로 없는 채 구원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이 시간 돌이키게 하여 주시고 예수 바로 믿고 남은 인생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사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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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심판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 승리의 삶 보여줘

 열왕기상은 솔로몬을 비롯한 여러 왕들의 죄악으로 인해 이스라엘 통일왕국이 분열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그 뒤를 이어 열왕기하는 북 이스라엘이 끝까지 하나님을 배역하는 길로 나아간 결과 이방 나라인 앗수르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하는 과정과 더불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예루살렘 성마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처참히 짓밟히며 남 유다 또한 패망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열왕기서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라 지나간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담겨져 있는 고백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왕기서를 읽을 때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야훼 신앙의 마지막 수호자 엘리사(왕하 1∼8장)

 열왕기상에서는 엘리야가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로 활약을 했다면, 열왕기하에서는 그의 수제자이자 불의 용사로 알려진 엘리사가 등장한다. 엘리사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스승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다. 그가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은 자신이 엘리야의 수제자로서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을 수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왕하 2장). 과부의 빈 그릇을 기름으로 채우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낸 일과(왕하 4장), 아람 군대의 장군이었던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고(왕하 5장),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한 일 그리고 아람 군인들의 눈을 어둡게 만든 일(왕하 6장) 등은 엘리사의 위대함을 보여준 이적들이지만 사실은 엘리사의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주는 사건들이었다. 남북 왕국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악을 저지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엘리사를 통하여 그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드러내셨다.


 예후 혁명에서 북왕국 멸망까지(왕하 9∼17장)

 열왕기하 9∼17장에는 예후로부터 시작하여 북 왕국이 멸망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예후는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아합 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종의 종교개혁인 ‘예후 혁명’을 일으켰다(왕하 9∼10장).

 북 이스라엘의 극심한 우상숭배를 하나님께서는 예후라는 인물을 통해 아합 왕조를 심판하신 것이다. 북 왕국에서 바알 숭배 무리들을 전멸시킨 예후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우상의 불씨는 남쪽 유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것은 바알 종교의 신봉자였던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남유다의 여왕이 되어 바알 숭배를 계속해서 조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달랴도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었다. 6년 통치 후에 아달랴는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한 요아스 반정으로 죽임을 당한다(왕하 11장). 요아스 반정 이후 남 유다에서는 다시금 야훼 신앙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왕하 12장). 그러나 그 때 야훼 신앙의 마지막 수호자였던 엘리사가 죽음을 맞이한다(왕하 13장). 엘리사의 죽음 이후 북이스라엘은 여러 왕들, 즉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왕 등이 통치하지만, 이들에 대한 열왕기하의 비판은 일관되게 “야훼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했다”로 마무리 되고 있다(왕하 15:9, 18, 24, 28). 우상을 섬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북 왕국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이었다. 결국 북 왕국은 마지막 왕 호세아를 끝으로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백성들은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왕하 17장).


 히스기야와 요시야 그리고 유다의 멸망(왕하 18∼25장)

 남유다의 후반부 역사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이다. 이 두 왕은 성경에서 드물게 하나님께 칭찬받은 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왕하 18장), 히스기야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두 번의 작정 기도를 드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18만 5000명이나 되는 앗수르 군대를 진멸시킴으로 그의 나라를 지켜주셨다(왕하 19장).

 또한 그는 죽을 병에 걸렸으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생명을 연장받게 되는 기적을 체험했다(왕하 20장). 그리고 열왕기하는 요시야를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야훼께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요시야가 이토록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은 것은 그가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없는 종교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왕하 23장).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전쟁에서 죽음으로 그의 종교개혁은 중단되고 말았다. 뛰어난 지도자를 잃은 남 유다는 얼마 후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왕하 25장).

 이처럼 열왕기하에서는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계속되지만 그러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살아간다면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와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됨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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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조용기목사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싸늘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요사이에 밖을 내다보니까 천지가 봄기운으로 가득하고 진달래도 개나리도 활짝 피었습니다. 겨울에는 모든 것이 죽은 것만 같았는데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니까 온 천지가 부활의 생명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실제로 사람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장차 부활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함으로써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닮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왕 같은 존재로서 3차원의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반역하자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땅이 저주받은 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부자간에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직장과 사업에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납니다. 아무리 치우고 또 치워도 계속 가시와 엉겅퀴가 되살아나는 저주와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원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는데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병들고 고통당하고 결국은 죽음과 병을 얻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에는 절대절망뿐인 것입니다.


2.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절대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생활을 하면 죽어서 좋은데 간다.” 그런 말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은 예수님 한 분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인류가 절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다 죽었고 아담 안에서 버림을 당했는데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 처음 아담이 가지고 온 죄와 죽음을 다 받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다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 치료받은 사람,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 영생 복락을 얻은 사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은 사람으로 변화된 생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할 사람이 없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산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이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가 누리게 된 가장 놀라운 복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허물의 사함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허물진 인생을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허물이 없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허물을 다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이 사실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심신이 치료를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 이후로 인간은 다 병들었습니다. 영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고 가정이 병들고 생활이 병들고 세계가 병들었고 역사가 병들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며 살상과 피 흘림을 즐거워하고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원한과 원망이 들어차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와 세계 전체가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병든 세상이 치료받을 곳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이 발견한 정치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윤리나 도덕으로 치료함을 받을 수 있나요? 치료함을 받을 수 있다면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 무섭게 병들어 갈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를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 속에는 무질서나 병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질서가 우리 몸속에 흘러 들어오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근처만 가도 모든 무질서는 질서로 모든 흑암은 광명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치료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병들었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치료의 강물이 흘러내려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영적인 병, 마음의 병, 도덕적인 병, 가정의 병, 생활의 병, 모든 병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축복과 형통도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항상 모든 것에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에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예수님을 의지하며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결국은 그 모든 고난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범사에 주님을 모시면 잘되면 좋고, 안 되면 결국 좋게 되지 않느냐고 모든 것이 다 좋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과 형통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항상 감사하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고 천국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잠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그날에 모두 다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강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도 변화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3. 성령님과 함께 사는 삶

셋째로, 십자가에 죽으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바로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오순절 날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강림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 안에, 또 내가 예수님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가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 임하시기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와 계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오중복음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받아 누리게 하는 것이 바로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운 옷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거룩한 옷을 입었다. 나는 치료의 옷을 입었다. 나는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었다. 나는 부활 영생의 옷을 입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의 말로써 고백하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생활에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대조동 천막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서대문으로 옮긴 지 4개월이 지났을 때, 순복음부흥관이 완공되었는데 그때 성전 좌석이 1,500석이었습니다. 첫날 기념예배에 많은 손님들이 와서 축하를 해 주고 그날 저녁에 열린 부흥성회에는 더 많은 성도들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성회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는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첫 주일예배 인도하는데 당시 성도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저에게는 1,500석의 좌석이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성도들한테 앞쪽으로 앉으라고 하는데 그 뒤로는 빈 좌석이 너무 많아서 마치 성전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예배에 참석한 할머니와 노숙자들 중에는 설교 내내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니까 제가 더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날부터 저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노방전도도 하고 유명한 부흥강사를 초청해서 부흥회를 열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교회는 부흥되지 않고 제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미 리드 목사님과 그 아들을 초청해서 부흥회를 가졌는데 부흥회 마지막 날, 토미 리드 목사님의 아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때 제가 아직 전도사였을 때인데 그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조 전도사님, 제가 간밤에 전도사님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 꿈에 수천, 수만의 군중들이 모여서 누군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조 전도사님이 그들 앞에 나서자 모두들 기뻐서 전도사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앞으로 전도사님께서 수천, 수만의 양을 인도하시게 될 것인가 보게 됩니다.” 그렇게 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돌아가고 난 후에, 제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주님만 의지해서 처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교회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는 순종하며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속에 “네가 수천, 수만의 양을 인도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마음속에 꿈꾸면서 그날부터 하루 종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금방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빈 좌석들이 많았고 강단에 서서 빈 좌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설교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곧 성전을 가득 채울 성도들을 제 마음속에 그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할렐루야, 오늘 이 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지금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리가 부족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인사말씀을 한 후에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설교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매주 20명에서 30명 이상이 새신자로 등록해 늘어가더니 1년이 되기도 전에 재적 교인이 2천 명을 넘어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 믿음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입술의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루 동안 생활할 때 짜증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렇게 말을 하십시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나는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다. 나는 치료를 받고 건강하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함을 얻었다.” 이것을 자꾸 말하십시오.

말이라는 것은 속에 있을 때는 내가 컨트롤합니다. 그러나 일단 입 밖으로 나오면 그 말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여러분이 말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여러 가지 말을 하지, 그 말이 다 나가서 에너지가 되어서 나중에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생각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말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내일을 앙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옛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변화된 축복받은 모습을 마음속에 사진으로 찍어서 걸어놓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믿고 “나는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삶이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병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모인 장소에서 손을 아픈데 얹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사오니 주님 그 바라보는 시력을 쫓아서 각 사람 속에서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는 불의와 추악한 짐승 같은 이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나님 아버지여, 모든 짐승 같은 이 더러운 마귀를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넘쳐나게 도와주옵소서. 새로운 생명이 가득하게 도와주옵소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이제 좋은 일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날지어다! 하나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미희 집사(양천대교구) - 기도로 남편 구원받고 신유기적 체험

성령 충만 받고 180도 달라진 삶
조용기 목사 신유기도 선포 후 치유 받아

나는 1992년 파견 근무를 떠나게 된 남편을 따라 남미지역에서 3년간 생활했다. 그곳에서 믿게 된 교회 집사님의 전도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령 침례를 받고 방언도 말하게 됐다. 나는 원래 내가 열심히 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종교는 의지가 약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령 충만을 경험한 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됐고 그동안 자만했던 마음을 회개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나를 우선으로 생각했던 마음이 이타적인 마음으로 바뀌었고 구원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항상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됐고 세상 모든 만물이 아름답게 보여 순간적으로 시력이 좋아진 건 아닌지 착각까지 했다. 나는 이 구원의 기쁨을 가족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남편을 전도했다. 남편은 교회에는 나갈 수는 있지만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면서 교회출석을 꺼려했다.

나는 3년 동안 하나님께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고 행동으로도 남편을 배려하며 섬겼다. 금식기도도하고 인내하며 남편이 구원받기를 소망했지만 남편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2008년 해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귀국해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출석하게 되면서 점차 남편의 태도가 바뀌었다. 주일에 교회에 데려다주더니 주일 예배도 같이 드리면서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이 신앙을 갖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나는 개인병원에서 자궁을 제거해야할 정도로 혹이 많고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대학병원에 가기 전 주일예배를 드릴 때 나는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설교 후 조용기 목사님께서 신유기도를 하셨는데 “자궁에 혹이 있는 자매님,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멘’으로 화답했고 대학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았다. 담당 의사는 혹이 많기는 하지만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할렐루야!

나는 질병을 치유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전도로 고민하고 있던 때에 교회 내에 있는 전도훈련학교를 알게 됐고 훈련을 받아 노방전도를 하게 됐다.

나와 가족의 삶을 바꿔주시고 질병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열왕기상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삶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구약 열왕기서는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기록이다. 열왕기서는 왕들의 재임 시에 일어난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열왕기서를 읽을 때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열왕기서가 단순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왕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을 지적하는 반성의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왕기서에 나타난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깊이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 

 열왕기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1∼11장)는 다윗에서 시작한 통일왕국이 솔로몬이라는 새로운 왕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후반부(12∼22장)는 솔로몬 왕국의 종말과 분열왕국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아름다운 시작, 수치스러운 결말(왕상 1∼11장)

 열왕기상의 시작 부분은 통일왕국 시대에 솔로몬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의미있는 사건들을 다룬다.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이 왕위 쟁탈전이다. 다윗이 늙어 쇠약하게 되었을 때 다윗의 후계자로 거명된 사람은 아도니야와 솔로몬이었다. 자연히 다윗의 왕국은 두 분파로 나뉘었고, 왕위를 물려받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결국 싸움은 솔로몬의 승리로 끝난다.

 그런데 용모가 준수했던 아도니야가 왕이 되지 못했던 결정적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왕상 1:5)고 말한 것을 기록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여 왕이 되려고 했던 아도니야 대신에 솔로몬이 다윗의 후계자로 지명되도록 역사하셨다. 결국 솔로몬은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으로 선포되었다(왕상 1:32∼39).

 통치 초기에 솔로몬은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지혜와 겸손을 겸비하고, 백성을 잘 통치하는 열심을 보였다(왕상 3:1∼4:34). 또한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꿈, 즉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하여 헌신의 노력을 기울였다(왕상 5:1∼9:9).
 이처럼 지혜와 겸손으로 출발했던 솔로몬의 아름다운 나라는 안타깝게도 끝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솔로몬의 왕국은 그 위세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점차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경은 야훼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이 이방 여인들로 옮겨갔다고 기록한다(왕상 11:2).

 솔로몬은 자신의 왕국을 지키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1000명의 이방 여인들을 후궁과 첩으로 맞이했고(왕상 11:3), 그 결과 솔로몬은 이방의 신들을 이스라엘로 유입시킨 죄를 짓고 말았다(왕상 11:4∼8).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왕국에 임하였고(왕상 11:9), 하닷과 르손 그리고 심지어는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 그로부터 돌아서면서 왕국은 균열되기 시작했다(왕상 11:14∼26). 이처럼 겸손과 지혜로 시작된 솔로몬의 왕국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수치스러운 결말을 맺게 되었다.

 통일왕국에서 분열왕국으로(왕상 12∼22장)

 하나님은 솔로몬이 죽기 전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통일왕국이 분열왕국이 될 것임을 알리셨다(왕상 11:29∼40). 솔로몬이 죽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솔로몬의 통일왕국은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의 어리석고 경솔한 선택은 왕국의 분열을 가속시켰고(왕상 12:1∼20), 결국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하는 북이스라엘을 결성하게 되었다(왕상 12:21∼24). 열왕기상 후반부에 묘사되는 분열왕국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이 자행한 죄악을 고발한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설치하고,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는 등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왕상 12:25∼33). 이로 인해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죄를 저지른 왕으로 낙인이 찍힌다(왕상 13:33∼34; 14:16; 16:31).

 열왕기상의 후반부는 죄악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 희망의 불씨 가운데는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가 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벌인 바알 선지자들과의 결전은 성경에서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왕상 17∼19장). 이것은 아무리 힘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막을 자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열왕기상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증거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언제나 겸손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써 가시기 때문이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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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장로 (종로중구대교구) -

25톤 트럭과 충돌, 대형 사고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평생 좋으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어린 딸의 생명 위태로울 때도 기적 보여주셔

올해 1월 4일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사업장으로 운전해서 가는 중이었다. 서부간선도로 하행선 안양 방면 철산대교 부근에서 도로공사를 하던 25t 트럭과 내 차가 부딪혔다. 갑자기 튀어나온 트럭과 충돌했고 큰 사고로 이어졌다.

브레이크를 밟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나를 지켜주셨다”는 마음의 확신이 왔다. 차는 순식간에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찌그러졌다. 범퍼는 아예 없어져버렸고 바퀴도 다 빠져나갔다. 도저히 운전자가 살았으리라고 보기 힘들만큼 큰 사고였다. 하지만 에어백이 터지며 손끝만 살짝 데였을 뿐 작은 타박상 하나 입지 않았다. 진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지켜주신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차는 바로 폐차했지만 전적으로 가해차량의 과실이 인정돼 보상받을 수 있었고 새 차를 구입했다. 올해 차를 바꾸고 싶다는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참 좋다. 내가 우리 교회에 오게 된 것은 35년 전이다. 딸이 1.3㎏ 미숙아로 7개월 만에 태어났다.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두 달간 있었는데 당시엔 의료보험도 없어서 물질적으로도 어려웠다. 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분명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실 것을 믿었다. 부모님께서 신앙이 좋으셔서 어릴 적부터 믿음 안에 성장했기에 내 안에는 늘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병원에서 부정적인 말을 할수록 더욱 열심히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고 기도했다. 기도한대로 기적이 일어났고 딸아이는 건강하게 퇴원했다.

하나님은 그 뒤로도 내가 하는 일에 큰 은혜를 부어주셨다. 의류업을 하던 내가 음식점 사업에 뛰어들 때 사람들은 음식점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10분의 1도 안된다고 말렸지만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10분의 1이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아가 승리할 수 있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있지만 오히려 내 신앙을 점검하고 사업장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중국남방선교회에서 26년 동안 봉사하며 선교사명을 위해 힘써왔는데 올해 종로중구대교구 지구장을 맡게 됐다. 올해 내 목표는 성경을 많이 읽고 전도 열매도 많이 맺는 것이다.

주 안에 기뻐하고 꿈꾸며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함께하셨다. 누구나 삶의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고 나아간다면 분명 승리할 것임을 믿는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는 분들이 계시다면 고난을 기회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승리하시길 바란다.  

정리=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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