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 위의 놋뱀/이영훈목사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4~9)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서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지 못하고 있는 처소에서 영상을 통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또 tv 생중계를 통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코로나-19사태가 이렇게 장기화될 것은 아무도 예측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더욱 확산되는 지금 분위기입니다. 다행히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확진자가 3자리에서 2자리로 내려가고 있는데 50명 미만으로 내려가야 사회적 거리 두기나 이런 여러 지침들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도할 때 하나님 코로나-19를 속히 종식 시켜 주셔서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특별히 교회에서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또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 된 신천지가 이번에 완전히 해체되게 하여 주셔서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에 혼란을 준 이단, 사이비들이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다 같이 한 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곧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신천지 이단과 각종 사이비, 이단들은 이 땅에서 해체되어 사라지고 경제가 회복되고 모든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되는 날이 곧 다가올 줄로 믿습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민수기 21장 4절~9절의 말씀을 가지고 "장대 위의 놋뱀"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장대 위의 놋뱀" "장대 위의 놋뱀"

오늘이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3년 반 공생애 사역 가운데 가장 소중한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주일날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모든 백성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펴서 길에 깔며 주님을 환영했기 때문에 종려 주일이라 이렇게도 부릅니다.

월요일 날 다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의 모든 장사꾼을 내쫓으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화요일 날에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함께 많은 논쟁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하든지 문제를 만들어서 공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저들과 변론을 하시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세에 될 일을 예언하셨습니다.

수요일 날 특별히 주님이 하신 일이 없고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사건이 나옵니다. 목요일 날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다락방에서 저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그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금요일에 잡히셔서 금요일 날 새벽 내내 이곳 저곳을 불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시고 아침 여섯 시에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금요일 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십니다. 그래서 금요일을 성금요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도구요, 변장된 축복입니다. 십자가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은혜가 임했고 예수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온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모님들이 자녀가 잘되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복 주시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순종하고 원망, 불평하며 잘못된 길로 갈 때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징계와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요, 축복의 도구인 줄로 믿습니다.

1.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애굽에서 놓여남을 받았는데 그들의 40년 광야 생활은 원망과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먼저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민수기 21장 4절~5절입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 호르산을 거쳐서 가나안 입구인 모압 평지로 가는 길에 이 왕의 대로라고 하는 넓고 편한 좋은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에돔 족속들이 "우리 땅을 못 지나간다." 그들의 진입을 막는 바람에 그 옆의 홍해 길을 빙 돌아서 험하고 먼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고된 여정에 힘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왜 우리를 그냥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내버려두지, 굳이 애굽에서 우리를 해방 시켜가지고 이 광야에 와서 고통 가운데 죽게 하는가. 마땅히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하찮은 음식밖에 없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필요할 때마다 먹을 것을 주시고 마실 물도 주시고 그들의 옷,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추운 몸을 따뜻하게 해주시며 그들의 길을 인도해 주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조금 자기들이 불편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광야 40년은 원망과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성경 민수기에 특별히 불평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특별히 민수기를 불평기라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430년 동안이나 그들의 민족관이 말살될 정도로 정말로 인권을 유린당하며, 짓밟히며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사사건건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기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예수 믿는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며 살아도 부족한 우리가 너무나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부정적인 말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놀라운 은혜, 건강의 축복, 가정의 축복. 또 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좋은 교육 환경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할 수 있고 또 내게 재능을 주셔서 그 재능을 주신 걸 가지고 내가 이렇게 사회를 위해서 아름답게 헌신하고 쓰임 받을 수 있게 되고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인데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인데.

교회에 나와서 기쁨과 감사로 예배드려도 부족할 우리들의 모습이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되고 나서 딱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난 후에 이제는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이제야 "아이고, 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이고 은혜가 넘쳐나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구나." 많은 성도님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언제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다가올지를 너무나 사모합니다." 항상 사람들이 가득 찬 곳에 떠밀려 들어가고 떠밀려 나올 때는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감격의 예배를 드리지 못했던 것 너무나 죄송하다고.

성경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 은혜를 잊지 말아라. 잊지 말아라. 시편 103편 2절입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은혜를 잊지 않는 방법은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우리를 주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찬양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왜?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해야 옳게 주님 앞에 바로 서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자들에게 내가 구원을 베푼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라는 말을 그 앞에 조건부로 달아놓았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때때로 내 사업이 좀 안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가와도, 때때로 내가 몸이 아픈 경우가 생겨도 그래도 무조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 갔다고 감사할 수 있고 사업이 잘돼서 감사할 수 있고 그러한 감사가 아니라 그건 당연한 감사고 고난 중에도 어려움 중에도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넘치는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감사의 제사를 주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시편 150편 6절은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2. 징계하시는 하나님

원망과 불평을 할 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징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민수기 21장 6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서 물게 하셨습니다. 독사들이 와서 무니 수많은 불평분자들이 온몸이 퉁퉁 붓고 고통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징계는 사실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사순절에 원망 불평하고 불순종하고 남을 물고 뜯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징계의 불뱀에 물린 것입니다. 이 신천지의 불뱀에 물린 것입니다. 교회가 감사가 사라지니까 신천지의 불뱀을 들어서 성도들을 물어서 독이 퍼지게 해서 그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를 당할 때 회개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난 중에도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면 잘못되니까 바로 주님 앞에 하나님 인자하신 모습으로 쓰임 받게 하기 위해서 징계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6절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징계하신 것은 그들을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주님 앞에 돌아 나와야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원망과 불평은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죄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풍성한 은혜 가운데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축복을 망각하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말씀을 의심하고 그래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 이후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죄가 뿌리를 내리게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 죄의 DNA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죄. 그리고 태어난 다음 우리가 짓는 죄를 자범죄라고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죄를 행하는 것.

그래서 원죄 가운데 태어나서 자범죄를 짓고 사는 모든 사람이 철저히 부정적입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늘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앉아서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남을 모함하고 상처 입히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순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우리의 원죄를 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원죄로 태어난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고 우리는 새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육신이 입고 있는 동안 이 죄의 DNA가 남아있어서 우리를 자꾸 죄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늘 말씀 붙잡고 기도하며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권능으로 죄를 물리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모든 성도님들이 있는 곳에서 다시 성령으로 재충만 받게되기를 바랍니다. 또는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주님 앞에 열정적으로 부르짖으며 나아가서 믿지 않는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징계와 고난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환난을 잘 참고 견디고 다듬어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 십자가에 달려 고통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한 평생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징계를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 물려 죽어가면서 그제서야 자신들이 습관적으로 하던 원망과 불평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빨리 하나님께 기도드려서 이 불뱀이 우리에게 사라지게 해달라고. 민수기 21장 7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야훼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야훼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저들이 이 말씀을 보면 저들의 죄를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원망 불평했습니다. 저희를 용서해주시고 빨리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불뱀이 떠나가고 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회개는 빨라야 합니다. 회개가 빠를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신속히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의 긍휼하심이 임했습니다. 응답이 다가왔습니다. 민수기 21장 8절 9절에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불뱀 모양으로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높이 달아라. 그리고 그 장대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그래서 놋뱀을 만들어 높이 장대에 달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지금 놋뱀을 바라보라.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저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그 순간 고침을 받고 불뱀이 떠난다고 말씀하셨다." 불평하며 죽어가던 저들이 고개를 들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순간 몸에서 독이 싹 빠져나가고 불뱀이 싹 떠나가고 몸에 치료와 회복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몸이 퉁퉁 부어 죽어가며 뒹굴면서도 내가 지금 아파죽겠는데 약도 바르지 않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라고 하냐고 그러면서도 불평한 사람들은 불뱀에 물려 독이 온몸에 퍼져 퉁퉁 부은 채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 뒤틀려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있는 것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불쌍한 모습으로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들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 고통당하며 신음하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죄지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늘 부정적으로 비판만 하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은 불뱀에 물려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불뱀에 물린 것은 감사해야 돼요. 왜?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불뱀에 물린 것입니다. 아예 버린 자식은 불뱀에 물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우린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고난당한 것은 그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지 못한 것, 더 겸손하지 못한 것, 열심히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 주님 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합니다.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혀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 주님 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늘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데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 15절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살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한 주간이 고난주간입니다. 이 고난주간을 지나가면서 나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불뱀에 물렸던 우리가 그 독에서 놓여남을 받고 치료받으며 우리를 물고 있던 불뱀들이 떠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이 고난주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변화되어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할렐루야! 코로나-19가 완전히 우리 일상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너도나도 힘들고 불편하고 어렵지만, 이 중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감사하는 사람들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지난 3월 21일 날, 국민일보에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소개되었습니다. 글 쓴 사람은 여섯 살 난 아이와 백일 갓 지난 두 아이를 둔 엄마인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음압병실에 격리 중에 이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1.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음에도 증상이 없음에 감사하고, 저랑 남편이 양성임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이 붙어 지낸 아이들이 음성임에 감사합니다.

2. 갑자기 벌어진 긴급 상황에서도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3. 격리 상태로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4. 잠들어있던 새벽 시간에도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빠르게 확인한 보건소 직원분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5. 어디가 불편하진 않은지 매번 먼저 나서서 따뜻하게 챙겨주는 의료진,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병원시설팀, 영양실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6. 병원에 격리됐다는 소식에 영양제와 책들을 병원으로 보내주려는 친구들의 마음에 감사합니다.

7. 아이의 유치원에 연락하여 내가 확진자임을 밝혔음에도 따뜻한 응원의 연락을 남겨준 엄마들에게 감사합니다.

8. 우리를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랜선으로, 아이들과 갑작스레 떨어진 마음을 공감하며 쾌차하라는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어서 감사합니다.

9.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코로나-19 확진 중에 이렇게 감사했어요. 그 감사의 결과로 완전히 완쾌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렐루야.

이 정도 믿음은 되어야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금 어렵다고 불평하고 조금 무시당했다고 부평하고 섭섭해하고 상처 받았다 그러고, 조금 뭐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분노하고 다투고 이건 아닙니다. 이러한 초보적인 신앙으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전진해나가는 주님의 위대한 일꾼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불평을 제거하시려고 때때로 징계의 불 뱀을 보내시는데 불 뱀에 물렸더라도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한평생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늘 주님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고도 원망과 불평을 해서 부정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불뱀에 물렸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하오니, 주님 우리들의 삶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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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는 삶

 구약성경 사무엘상이 사무엘과 사울과 다윗이라는 세 인물을 다루는 반면, 사무엘하는 다윗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는 두 명의 다윗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고(삼하 1∼5장), 하나님께 기쁨을 드림으로써(삼하 6∼10장)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을 받은 다윗이고(삼하 1∼10장), 다른 하나는 흉악한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수치와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던 다윗이다(삼하 11∼24장). 이제 두 가지 인생길을 걸어갔던 다윗에 대한 이야기 숲으로 산책을 떠나보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인생(삼하 1∼5장)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삼상 13:14).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것은 다윗이 중요한 일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삼상 23:2,4; 30:8; 대상 14:10,14; 21:26).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사무엘하 1장부터 10장에서도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고(삼하 5:4), 다윗 왕조의 시조로서 기반을 다진다.

 다윗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삼하 1:1) 후에도 사울의 가족들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 다윗은 인내와 긍휼을 가지고 기다렸다. 때가 이르자 남 유다의 사람들이 먼저 다윗에게 나아와 그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삼았다(삼하 2:4). 그리고 조금 뒤이어 북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모든 장로도 다윗에게 나아와 그를 왕으로 삼았다(삼하 5:3). 이런 다윗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고 그의 나라가 강성해 간 것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였다(삼하 2:1; 5:19, 23). 다윗의 형통 뒤에는 늘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가 있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삼하 6∼10장)

 다윗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을 무찌른 후(삼하 5:17∼25)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궤를 자신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사는 ‘어찌하면 하나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였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다윗은 너무나도 기뻐하며 야훼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뛰놀고 춤을 추면서(삼하 6:14∼15), 온 백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삼하 6:18∼19).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은 또한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의 마음만을 받으신다(삼하 7:4∼7). 다윗의 마음을 받으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큰 선물을 허락하셨다. 바로 영원한 왕조의 약속이다(삼하 7:8∼13). 그 이후로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야훼께서 승리하게 하셔서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삼하 8:14).


 수치와 고난에 처한 인생(삼하 11∼24장)

 사무엘하 11∼24장에서 이전의 삶과는 달리 다윗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왕국이 안정되었다고 방심했던 탓일까? 다윗은 해서는 안 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야 만다(11장). 자기 신하의 부인인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삼하 11:4), 이를 덮기 위해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를 죽게 만든다(삼하 11:14∼17).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에 크게 진노하셨다. 이 날 후로 다윗은 처참한 모욕과 아픔을 경험한다. 자녀들끼리 싸우고 죽이는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했고(삼하 13∼14장),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당하는 수치와 더불어 끝내 그의 죽음도 겪어야만 했다(삼하 15∼18장).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저지르고,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다윗의 모습은 사무엘하의 후반부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기도가 사라진 때부터 다윗은 범죄를 저질렀고, 그 결과 고통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사무엘하의 다윗의 삶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자기 뜻 가운데 범죄하며 결국 수치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며 그에게 의지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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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임 권사(동작대교구) - 교통사고로 죽을뻔한 나를 살리신 하나님

뼈 부서져 장애인 될 거라 했지만 후유증 없이 퇴원
평생 몸찬양 사역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 다짐


나는 1981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받았다. 젊을 때부터 몸이 워낙 약해서 비실비실했던 나는 30대 초반부터 눈뜰 기력도 없이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고 40대에는 관절염과 오십견이 와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정도가 됐다. 지역장으로 봉사하던 중 몸찬양을 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 순복음영산율동대학을 다니게 됐고 졸업 후에는 선교회와 기도원에서 봉사하게 됐다. 몸찬양 봉사를 하면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 생각과 결심에 따라 봉사를 그만두었는데 봉사를 그만둔 뒤 일주일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건널목을 건너는 중 과속으로 달려오는 승용차에 치였는데 나중에 들으니 내가 공중에 15m 정도 붕 떴다가 떨어졌다고 했다.
 내 머리, 목, 오른팔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부스러져 의사가 붕대로 응급처치만 했다. 손을 대면 더 부서지기 때문에 다른 조치는 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6개월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생명이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걸 스스로 느낄 정도로 혼수상태가 올 때도 있었고, 나를 보고 가는 의사마다 내가 장애인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에스겔서 37장 환상처럼 골짜기에 마른 뼈들을 소생시키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절망 가운데 소망을 보고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를 정상으로 고쳐주시면 다시 몸찬양 봉사자가 되어 하나님께 충성하고 온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모든 뼈가 기적처럼 붙었고 6개월을 사용하지 못한 몸도 물리치료 없이 회복됐다. 70세가 넘은 지금도 후유증 하나 없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건강한 몸으로 찬양하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내게 많은 복을 부어주셨는데 최근에는 3년간 아이를 갖지 못해 고민하던 며느리의 태의 문이 열려 내년 4월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앞으로 천국 가는 그날까지 지금 내가 단장으로 있는 ''엔젤스 워십 전도단''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찬양 ''이제 내가 살아도''의 가사처럼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죽어도 주 위해 죽는 사명자로서 하늘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 것을 다짐한다.정리=김주영 기자


생기가 넘치는 삶/조용기목사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중략)…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장 10~17절)

사람이 기가 있어야 사람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기가 빠진 사람은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 같아서 모양은 근사해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귀신을 쫓아내고 승리하는 삶

첫째로, 우리는 사탄을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21세기에 무슨 귀신이 있느냐?”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실상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배후에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으며 먹을 것과 모든 것이 있는 에덴의 낙원을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는데 누가 아담과 하와를 파멸시켰습니까? 그 배후에 와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악한 영향을 미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였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첫째 아들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무엇이 형이 아우를 죽일 만큼 마음에 속에 불붙는 질투심을 일으킨 것입니까? 성경은 밝히 말씀하기를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다(요한일서 3장 12절)’라고 말한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가인에게 들어가서 불같은 질투심을 일으키매, 가인이 그 아우를 쳐서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울왕에게 무엇이 왔기에 그 인격이 그렇게 변화되고 만 것일까요?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는데 그가 하나님을 반역하자 악신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인격이 완전히 일그러져서 흉악하고 난폭한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그냥 판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팔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귀신은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배후에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귀와 귀신들은 하나님 없는 세상풍속을 따르도록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고 육체의 정욕과 마음의 탐욕을 따라서 하나님 없는 영원한 파멸로 가도록 그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1절로 12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어야만 우리가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가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복음 증거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예수님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고 꾸짖으시니 귀신이 즉시 그 사람에게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복음증거를 시작할 때부터 마귀의 눌림을 받아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복음의 능력을 천하에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느 곳에 가시나 천국 복음을 증거 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도 천국 복음을 전파할 때, 귀신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고 70인의 제자에게도 귀신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활 승천하면서 최후에 가장 중요한 명령을 남기실 때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귀신의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예수께서 그 일생을 통해서 집요하게 귀신을 쫓아내시고 마지막 남긴 말 중에도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한 분은 그 아버지가 무당이 굿하는 날짜를 잡아주는 일을 했었는데 그 영향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눌리고 질병이 끊이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성도님은 결혼을 한 후에도 엄청난 돈을 사기당하고 화병으로 정신의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환청이 들리고 잠도 못 자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어서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온몸에 침을 맞아 한약만 380첩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집터가 안 좋다는 말에 4번이나 이사를 하고 굿도 수차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그야말로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이분을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정신이 혼미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성전에 들어와서 누워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제가 신유기도시간에 갑자기 “오늘 이 시간, 온갖 귀신이 들린 30대 여인을 하나님이 고쳐 주십니다.” 그렇게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그 부인이 간증하기를 몸이 너무 아프니까 설교는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그 말씀만은 귀에 분명히 음성으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부터 기력이 회복되기 시작해서 혼자서 일어설 수 있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좋아져서 두통과 여러 가지 질병들이 6개월 만에 전부 다 고침 받았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지금 와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단호하게 대적하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2. 성령으로 충만한 삶

둘째로, 우리가 생기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문을 여시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께서 운행하시자 어두움은 빛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사회, 국가, 세계가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할지라도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께서 혼돈과 흑암이 가득한 곳에 운행하셔서 문제가 해결되고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만 이 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의 권세는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으로 오늘날은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놀라운 변화와 창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 성도님의 자녀가 코가 잔뜩 막혀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횡문근육종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 병은 당시에는 원인도 치료 방법도 어떠한 것도 소용이 없는 희귀병이었습니다.

담당 의사가 암이 말기라서 수술 받고도 방법이 없는데 수술을 하려면 얼굴의 반 이상을 절개해서 암 덩어리를 도려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수술 후에도 5년 이상을 살기가 힘들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가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이 어머니는 사탄이 주는 부정적 생각을 몰아내고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해서 건강한 자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자녀가 수술 후에 항암치료를 받는데 방사선 치료로 몸이 너무나 약해져 응급실로 주로 실려 가기가 일쑤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머니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의사가 외출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아이가 늘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를 가지고 저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스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는데 그 어머니가 마스크를 가지고 가서 아이에게 씌워주고 어머니가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완치는커녕 얼마 살지도 못한다던 아이가 암 수치가 완전히 정상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할지라도 성령께서 오셔서 운행하시면 치료와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면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가득한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마 7: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 충만을 위해서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세 시간도 좋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왔다 갔다 해도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기도의 교제가 없으면 성령이 내 마음속에 충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같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이상,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속에 공허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날 나와서 무슨 일을 해도 일이 잘 안되고 화가 나는 일만 자꾸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이상, 주님께 고할 것을 고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하나님을 먼저 섬기고 나면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 날은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와 총명을 주시기 때문에 생활에 생기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

셋째로, 우리가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함과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4차원의 성령께서 3차원의 세계에 역사하시면 우리 삶에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삽니다. 아무리 형편이 나빠도 마음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꿈을 가지고 있어야 성령께서 그 꿈을 통해서 운행하시고 꿈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라 할지라도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장애물을 넉넉히 뛰어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은 우리 입술의 말을 통해 우리 삶에 변화와 창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말 한마디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말은 인간과 인간과의 대화의 광장입니다. 그뿐 아니라 말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대화의 광장이며 인간과 마귀와 귀신들과의 대화의 광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말을 하면 하나님 같이 계시고 귀신이 좋아하는 말을 하면 귀신이 들어옵니다.

여러분의 말로써 귀신이 나가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로써 하나님이 찾아오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십자가 대속 중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내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께서 우리 입술의 말을 따라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공기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것같이 4차원의 영이신 성령께서 3차원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날마다 연약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고 하는데 미움이 생겨나고 평안하려고 하는데 불안과 두려움이 다가오고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데 마음의 의심이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님이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미움을 사랑으로 불안을 평안으로 의심을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과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셔야 우리가 삶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관차와 같습니다.

옛날에 부산역에 가면 화물을 싣고 이동하는 화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화차가 짐을 잔뜩 싣고 철로에 서 있는데 화차는 혼자서는 꼼짝도 못합니다. 어떤 화차는 3일, 어떤 화차는 1주일, 어떤 화차는 한 달도 움직이지 못하고 마냥 철로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차가 언제 움직이느냐? 기관차가 와서 덜커덩하고 연결이 되고 기관차가 “뿌웅~”하고 앞으로 나가면 화차들이 그 뒤를 줄줄줄 줄줄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마음속에 깊이 느낀 것은 ‘아, 기관차가 없으면 화차는 꼼짝도 못하는구나.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많이 싣고 있어도 기관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화차와 같아서 우리의 힘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영특한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아무도 일도 할 수 없어요. 보배를 잔뜩 싣고 있어도 그냥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관차처럼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면 우리가 앞으로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이끌어 주셔야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복음증거도 하고 사랑의 역사도 베풀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하게 된 것도 불광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성령의 기관차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성령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힘차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연약하고 힘이 없어도 성령께 연결되어 있으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주시고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지식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의지가 있고 인격이신 것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은 바람과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인격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이신 성령님을 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의지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시여, 감사합니다. 저를 이끌어 주옵소서.”하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교회의 총사령관이시고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부름을 받은 머슴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의 뜻을 받들어 일해야 됩니다. 내 맘대로 하겠다고 오늘은 동쪽 밭으로 가고 다음은 서쪽 밭으로 가리라 이것은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 삶에 날마다 생기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십시오. 우리는 이러한 간단한 영적 운동을 통해서 신앙의 생기가 살아나고 빛난 성도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 모두가 성령을 의지함으로써, 생활에 변화와 창조를 경험하고, 날마다 생기 넘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당신의 자녀들이 교회당에는 못 오지만은 자녀들이 사는 집에 마음을 다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다 안수하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마귀는 오늘 이 시간에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하나님 아버지,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천지를 지으신 예수님이요, 천지를 재창조하시는 예수님이요, 우리 모두 사람들을 살리는 하나님이시니 예수님을 따라서 기적을 우리 집에 베풀어 주시옵소서.

영혼이 잘 되게 하소서. 범사가 잘 되게 하소서.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오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나라! 기적이 일어나라! 기적이 나타나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행복과 기쁨을 마음속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귀들을 내어 쫓아주셨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감사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무엘상

하나님께 택함 받은 인물들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사사(士師) 시대가 왕정(王政) 시대로 바뀌는 시기가 있었다. 구약 사무엘상은 바로 이 시대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사무엘상은 이러한 역사의 전환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는 마지막 사사로 불린 ‘사무엘에 대한 이야기’(삼상 1:1∼7:17)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울에 대한 기록’(삼상 8:1∼15:35) 그리고 사울에 이어 2대 왕으로 선택받은 ‘다윗에 대한 이야기’(삼상 16:1∼31:13)가 다양한 사건들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면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펼쳐 나가셨는지 살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 사무엘

 사사 시대는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삿 17:6; 21:25) 영적 암흑의 시대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고, 비전이 없는 어둡고 답답한 시기가 되었다(삼상 3:1). 이러한 영적인 암흑기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고 계셨고 그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고난의 때에 애통하는 기도를 드렸던 어머니 한나를 통해 태어난 사무엘이었다(삼상 1:1∼28).

  사무엘은 그 태생이 레위 족속도 아니었고, 제사장 출신도 아닌 이스라엘의 평범한 집안의 소년이었다. 당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해야 할 책임이 있던 제사장 엘리는 성소를 비워두고 자신의 처소에 머물고 있었고(삼상 3:2), 그의 두 아들은 세속에 물들어 온갖 악행을 일삼고 있었다(삼상 2:12∼17,22∼25).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고, 영적인 귀가 둔감해진 그 때에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 소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삼상 3:10∼14). 사무엘은 장성한 후에 이스라엘의 첫 왕을 선택할 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삼상 9:15∼17). 이처럼 이스라엘의 왕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한 사람 사무엘에 의해 시작됐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 사울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 제도의 위험성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삼상 8:10∼18; 12:14∼15) 백성들은 줄기차게 왕을 요구하였다(삼상 8:19).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을 허락하시고 사울을 택하시고(삼상 12:13),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다(삼상 11:15). 사울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다(삼상 9:21). 사람들은 사울의 출신 배경 때문에 그를 왕으로 환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멸시했다(삼상 10:27). 그러나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삼상 11:6), 그가 암몬 족속을 크게 무찌르자 비로소 그를 왕으로 인정하였다(삼상 11:12∼15). 이처럼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람들 보기에 비천하고 탐탁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한 사람 사울로부터 시작됐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 다윗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히 왕직을 수행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시고 새로운 사람을 택하셨다(삼상 15:17∼16:13). 사무엘은 용모와 외모가 뛰어났지만, 하나님은 사람과는 다른 기준으로 다윗을 선택하셨다. 그것은 얼마만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삼상 13:14).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 다윗의 믿음과 신앙 자세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요인이라 할 수 있다(대상 10:14; 14:10,14; 21:8,26). 이처럼 실패한 듯, 위태로운 듯하며 흔들렸던 이스라엘 왕정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한 사람 다윗을 통하여 굳게 세워지고 이스라엘 나라는 점점 강성해져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역사 가운데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정을 허락하시고 왕을 세우셨지만 그 왕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사울이 폐위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 왕으로 세움 받은 것은 바로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사무엘상을 통해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주역으로 자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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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권사(순복음세종교회) - 좋으신 하나님 계시니 날마다 감사 넘쳐

기적처럼 둘째 아이 낳고 온 가족 구원
순복음 열정으로 교회 섬길 수 있어 기뻐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이상하게 생리가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없어 처음엔 암인줄 알았다. 여러 병원에 가봐도 면역체계의 문제인지 호르몬의 문제인지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뇌하수체가 파괴된 것 같다고 할 뿐이었다. 호르몬 주사를 맞을 때에만 생리가 나왔다. 스스로 호르몬을 생성하지 못하니 평생 약을 먹어야 했다. 내 몸은 점점 안좋아졌고 탈모와 두통도 생겨났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결혼하고 교회를 멀리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큰 아이가 10살 때 즈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왔다. 주일 수요일 금요일에는 꼭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매일 집에서도 기도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도 늘 머리가 아파서 차를 타려면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다는 현실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려 고침받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나는 과감히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루 한 시간 이상씩 꼭 기도했다. 그런데 자꾸 속이 메슥거려서 한의원에 갔더니 임신이라고 했다. 아이 낳고 12년째 생리가 없었는데 임신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기적을 체험하고 시부모님과 남편까지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됐다. 시아버지는 제사도 없애시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다.  

 남편 김한석 안수집사의 변화도 내게 큰 간증이다. 지금은 믿음이 뜨겁지만 한 때는 술도 많이 먹고  사기도 당하고 속을 많이 썩였다. 나는 남편의 영혼이 잘되게 해달라고 방바닥을 치면서 3년을 기도했다. 기도가 응답 돼 남편은 변화됐고 믿음의 사람이 됐다. 지금은 세종시에서 복숭아 농장을 하며 큰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군인인 큰 아들은 5남매를 낳았는데 중학교 3학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손주들이 모두 신앙이 좋고 바르게 잘 컸다.

 

우리 가족 아홉 식구는 세종시에서 20년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뜨거운 예배를 무척 그리워했다.  개척국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할 정도로 본 교회에서처럼 뜨겁게 예배를 인도해주실 목사님을 기다리고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로 순복음세종교회가 창립됐다. 담임인 염세열 목사님은 본 교회 사역은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10년동안 선교도 하신 순복음의 목회자였다. 내가 기도하던 그 목사님이셨다. 순복음세종교회에서 성령 충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 우리 아홉 식구는 주일, 수요일, 금요일은 물론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즐겁게 신앙생활하고 있다. 늘 모든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이영훈목사

<말씀봉독>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7~12)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코로나-19가 속히 종식 되어지게 하여 주시고 이 땅에 신천지 이단이 이번 기회에 완전히 뿌리 뽑혀서 더이상 사회에 혼란과 교회에 분열을 가져오지 않고 가정 파괴를 가져오지 않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있는 처소에서 함께 마음을 모아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기쁨과 감사가 없이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저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고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주님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저희를 불쌍히 보시사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저들의 첫사랑의 신앙이 회복 되게 하여 주셔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그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신천지 이단을 뿌리 뽑아 주시고 주님 그곳에 속아서 들어간 많은 형제, 자매들을 긍휼히 보시사 돌아 나와 가정으로, 교회로 복귀하게 하여 주셔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요한계시록 5장 7절에서 12절 말씀 가지고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이 길지만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약 1,600년에 걸쳐서 40여 명의 저자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냥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는데 이 성경 66권의 주제는 단 하나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구약성경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약 성경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대부분의 예언들은 역사 가운데 다 이루어졌는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아직 성취가 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말세에 되어질 일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이단이 이 요한계시록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교리를 만들고 이단 집단을 만들어서 그들의 교주를 신격화하고 다시 오실 재림주로 믿고 섬기게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미혹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구세주가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인 것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이 재림주가 될 수도 없고 사람이 메시아가 될 수도 없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대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의 특징은 그들이 따르는 교주를 신격화하고 재림주로 믿고 있다고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고 신앙을 무장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예수님만 닮아가고 예수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전하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기도

오늘 성경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기도,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합니다. 5장 7절과 8절입니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환상 가운데 천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천국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한 가운데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가 많은 천사들과 무리들 앞에 찬양을 받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높은 천사장들이 네 생물의 모습으로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고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24장로가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는데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갖고 있었습니다.해석하기를 24장로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상징하면서 전 믿는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성막을 짓게 하시고 그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성막은 크게 둘로 나누어졌는데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와 또 금 향로와 진설병 상, 일곱 촛대가 있는 성소로 나누어집니다. 여기 금 향로에서 계속 향을 피워올렸습니다. 이 향은 성경에 보니까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계시록 8장 3절, 4절에도 그 말씀이 나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아름다운 향과 같은 것입니다. 시편 141편 2절은 말씀합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성막 안을 향기가 가득 채운 것처럼 이 성전 안에 우리들의 기도가 가득 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기도가 가득해야 합니다. 기도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울 때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 신앙생활을 할 때 많은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까? 기도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문제가 우리를 둘러싸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문제의 결박을 풀어버리고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특별히 구별된 제물을 준비해 그것을 태워서 그 향기로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구별된 모습으로, 가장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기도를 주님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루를 바쁘게 지내다가 그저 생각날 때 기도하는 것이 기도가 되면 안 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할 때 주님이 그 기도를 받으십니다.

보통 새벽 첫 시간에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향기가 돼서 우리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살린 것이 바로 이 새벽기도입니다. 전 세계 어디서 볼 수 없는 이 새벽기도가 한국교회를 살려서 오늘날 이렇게 아시아 최대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열정이 사라지고 기도가 성전을 가득 채우지 못하니까 그 향이 사라지니까 이단들이 들끓고 이같이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하여 온 국민이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 진실한 기도가 주님 보좌 앞에 상달 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풍성히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인데 그리고 교회를 견고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말씀 사역인데 그리고 성도님들을 풍성한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 치료 사역인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선교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의 기도가 말씀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의 기도가 섬김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선교하는 집이고 말씀 가르치는 집이고 치료하는 집이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56장 7절입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할렐루야.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가 아름다운 향이 되어서 주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향기가 천국 보좌를 진동하여서 주님을 감동시켜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기도마다 응답으로 기적으로 축복으로 다가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생길 때 사람을 찾아다니지 말고 엎드려 기도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다섯 개의 큰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만 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많은 비용이 들어 이 고아원을 운영해야 하는데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모금하러 다니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편지해서 도와달라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그 모든 필요를 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저물어 가는 시간에 하루를 돌아보면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이것도 응답하셨다, 응답하셨다, 응답하셨다 하는 것을 일기장에 남겨 놓게 되었고 목사님이 천국 가신 후에 일기장을 보면서 응답하셨다는 그 횟수를 다 헤어려 보니까 5만 번이 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기도 내용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1844년 11월, 나는 다섯 사람의 회심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아플 때든 건강할 때든,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 18개월이 지나자, 처음으로 한 사람이 회심했다. 하나님께 감사한 뒤, 남은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했다. 5년 후 두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6년이 지나자 세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 뒤 나머지 두 사람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기도 후 한 시간이나 당일 내로 수만 번이나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그런 내가 두 사람의 회심을 위해 36년 가까이 날마다 기도했건만 그들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바라고 계속 기도하며 여전히 응답을 기다린다. 그들은 아직 회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회심할 것이다.“

다섯 친구가 예수 믿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첫 번째 친구는 18개월 만에 예수를 믿게 되고 그 다음 친구는 5년 후에, 그 다음 친구는 6년 후에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나머지 두 친구가 예수를 안 믿는 거에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고 평생 기도했는데 이 목사님이 임종할 때 그 네 번째 친구가 예수를 믿게 되고 장례식에서 다섯 번째 친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52년간 기도했던 그 기도가 장례식에서 완성이 된 것입니다. 목사님은 기도에 대해서 이러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기도란 응답 받을 때까지 하는 것이 기도이다.”

할렐루야.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질병의 문제, 어떤 문제를 가졌던 간에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반드시 응답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기도할 때 우리는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대하여서 성경은 계시록 5장 9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24장로가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새 노래는 구원받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감사의 노래, 승리의 노래, 구원의 기쁨의 노래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슬픔을 담고 이별을 담고 상처를 담고 일시적인 사랑을 담고 노래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부르는 이 노래는 오직 구원받은 사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노래, 생명의 노래, 기쁨의 노래, 축복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노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생 동안 불러야 할 우리의 새 노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다. 예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구원의 능력을 감사하는 것이 새 노래의 핵심적인 내용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약의 피의 제사를 완성하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여셨습니다. 모든 죄는 그 대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 죄의 경중을 따라서 크고 작은 형벌을 내리지만, 하늘 법정에서 내리는 그 죄에 대한 심판은 영원한 사망 하나뿐입니다. 사망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법정에서 그 죄에 따라서 형을 언도받지만, 이것이 때로는 사면을 받기도 하지만, 인간이 지은 죄는 어떠한 노력으로도, 어떠한 행위로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의 가장 사랑하는 동물을 가져오게 해서 보는 앞에서 피를 흘려 죽게 함으로 일시적으로 죄를 사하게 한 것입니다.

요즘 반려견을 자기 가족처럼 기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인이 죄를 지었을 때, 그 반려견을 제사장 앞에 갖고 와서 목을 베어 피를 흘리게 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반려견 주인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구약의 4천 년의 제사가 그런 제사였습니다. 가장 아끼는 어린 양을 갖고 와서 보는 앞에서 피를 흘려 죽게 했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서 저 어린 양이 나 대신 죽는구나!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고개를 흔들고 돌아와서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고 그래서 수많은 짐승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 없으신 몸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 19절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로 바뀐 것입니다.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 죄와 허물로 얼룩진 더러운 죄인이,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살펴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 일생을 인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이미 바뀌었습니다. 우리를 매우 존귀히 여기는 자로 일컫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입니다.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할렐루야!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감사 찬양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3. 찬송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셋째로 찬송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요한계시록 5장 11절 12절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피로 돌아가신 그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여야 합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절대로 소홀히 하거나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옮기셨으니 한평생 우리의 삶은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할 때,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메시아의 마지막 ‘죽임 당하신 어린 양’ 52번째 곡을 작곡한 것입니다. “찬송과 존귀 영광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코러스로 메시아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내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겠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이것이 우리 일생의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만이 홀로 높임 받으시길 원합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모든 감사, 찬송, 존경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됩니다.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하고, 우리가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큰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일을 잘하고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박수갈채를 받고 우리가 받을 영광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계시록 5장 13절, 1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할렐루야! 찬송과 존귀 영광을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그런데 사람들은 참 착각을 잘합니다. 조금만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잘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하나님 은혜로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니까 잘 섬겨야 하는데, 자기가 다 갖췄다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권력을 가득 휘둘러서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감옥에 갑니다. 왜 함부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인간의 자리는 절대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도, 우리의 재능도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와 축복도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주신 재능을 가지고, 주님이 주신 축복을 가지고 나가서 어떠한 업적을 남기고 사람들한테 박수갈채를 받을 때, ‘그래 내가 잘나서 그렇다.’ 착각하고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여러분이 주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지 마시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5편 1절입니다.

야훼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우리 한국에 나타난 수많은 자들이 다 주님의 자리에 자신이 대신 앉아서 이단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셨는데,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서 실패한 그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 재림주로 온 것이 나 문선명이다. 그래서 통일교를 문선명이 만듭니다. 그는 이미 죽었고, 자기들끼리 지금 갈등과 다툼이 있어서 성전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밑에서 통일교 원리강론을 배워서 30개 재단을 만들어 또 살림을 차려서 나간 것이 JMS 정명석입니다. 이 정명석이 십 년 징역을 살고 지금 나와서 다시 이 JMS 재건을 위해서 애쓴다고 하는데, 이 이단도 아주 이 땅에서 뿌리 뽑혀야 하는 이단입니다.

한때 남대문교회 장로님으로서 많은 병자를 고친 신유의 은사로 이름을 날렸던 전도관의 박태선. 영생불사한다고 했지만 그는 죽었습니다. 온갖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 밑에서 가지가 쳐서 나온 장막성전 유재열. 유재열 밑에서 배워서 또 하나의 가지를 치고 만들어진 것이 이만희 신천지입니다.

다 저들이 예수님 자리에 대신 앉아서 자기가 재림주라 자기가 보혜사라 그래서 자기를 신격화하고 그 영광을 가로챔으로 말미암아 이단의 교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단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번에 신천지뿐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각종 이단들을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한국에 한 200만이 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던 사람 중에 천만 명 중에 한 이백만은 거기에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다 찾아내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구원파, 여호와의 증인 다 이단에서 돌아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변화시켜서 신앙의 기초부터 바로 세워 오직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섬기고, 주님만 닮아가고, 주님만 전하는 그러한 주님의 자녀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만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승리합시다. 보혈의 능력으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모든 영광 우리 주님께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학교 1학년 다니다가 군대 갔다 왔는데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신천지에 들어간 김강림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7개월 동안 교육받고 나서 완전히 세뇌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교회에서 전혀 듣지 못한 새로운 성경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하다가 그만 완전히 세뇌가 되어서 신천지 멤버가 됐는데, 신천지에서 빠져나온 한 자매가 부모님에게 가서 얘기해줬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지금 신천지에 빠져 빨리 구해내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이단 상담소 가서 상담을 받고 온 가족이 힘을 합해서 이 아들을 이단에서 돌이켜 나오게 하려고 하는데 상담받으러 가자고 하니까 완전히 막 버티고 난리가 납니다. 아버지는 직장을 정리하고 매달려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위해서 밖에 못 나가게 감시하고 그를 설득합니다. “상담받고 바른길을 가자.” “절대 상담받으러 안 갑니다.” 이미 세뇌를 받았어요. “상담받으면 거기에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에 거기 가면 안 된다.” 어머님이 매일 눈물로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아버님은 생수통을 배달하느라 거칠어진 손으로 그를 안고 엉엉 우셨습니다. 그런데도 반항하고 아버지 어머니를 밀쳐냅니다. 왜냐하면, 신천지를 배신하면 다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영원한 유황불, 지옥불에 떨어지고 온 가족이 구원을 못 받는다고 세뇌를 당하기 때문에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누가 뭐라고 해도 버텨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인연을 끊더라도 그것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버텼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밀고 당기는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어느 날 생일을 맞게 되었는데 어머님이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오셨어요.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온 가족이 나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과연 내가 이 신천지 이 믿음 지키는 것이 맞는 일인가? 내가 지금 뭐 하는 것인가? 마음이 녹아졌습니다. 신천지에 돌아 나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그를 설득해서 상담받게 하는 것 밖에 없다고 그랬는데 “내가 상담받겠습니다.”

상담받은 이틀 만에 신천지가 완전히 사기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나옵니다. 그는 신천지에서 나온 후에 신학을 마치고 전도사가 되었고 지금 이단과 싸우며 주의 복음을 전하는 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투브에 이분의 간증이 많이 나오니까 한번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저는 제 교만으로, 제가 신앙적으로 (말씀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신천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버리고 내 스스로 뭘 해보겠다고 전도하고, 이만희라는 다른 구원자를 찾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 예수님의 구원을 알게 되고 수렁에서 건져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이제는 주님 앞으로 돌아 나와서 주님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한평생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혹시 우리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게 잘못 살아오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여 주님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신앙이 나태해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염려가 가득했던 저희의 삶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조용기목사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편 23절)

우리는 살면서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불평을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혼자서도 혹은 두세 사람만 모여도 쉽게 불평을 하고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우리를 점령할 수 있는 열쇠를 내어 주는 것에 같습니다. 마귀는 원망과 불평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41편 3절에 “야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원망과 평의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1. 원망과 불평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원망과 불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어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방과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 이르렀을 때, 애굽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우리를 장사 지내려고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느냐?”라고 하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서 바다 속에 길을 만들어서 육지같이 건널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걷는 중에 마실 물이 떨어지자 “목말라 죽게 하려고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나왔느냐?”고 원망했습니다. 이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서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먹을 떡이 없다.”고 불평했고,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또다시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고 “고기가 없어 영양실조가 되어 못 살겠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고기를 배불리 먹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면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열 명의 정탐꾼들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악평하자 백성들이 통곡하고 원망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민수기 14장 27절로 30절에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셔서 도와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만 원망하며 불평하고 탄식하다가 결국 출애굽한 첫 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원망과 불평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평하게 만드는 유혹을 대적하고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이기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지고 낭패를 당하고 이기면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2. 감사와 찬송

둘째로, 우리는 감사와 찬송이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 왕이 연합군의 침략을 당했는데, 그에게는 적을 상대할 만한 군대도 없고 무장한 무기도 부실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역대하 20장 20절에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그렇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사밧 왕은 감사와 찬양이 원수를 물리치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대 전쟁사에 없는 희한한 일을 했습니다. 전쟁에 나가면서 군사들 앞에 성가대를 조직해서 성가대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면서 나아간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1~23절에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야훼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송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마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는데 여호사밧 왕과 그의 군대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감사와 찬송이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받는 열쇠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감사와 찬송은 의심을 이기게 하는 무기가 됩니다.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기도하고 구한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자꾸 의심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합니까? 목사님은 의심을 하지 않으시지요?”라고 질문을 하는데 그때 저는 “아니오. 저도 여러분과 같이 의심을 합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여러분, 의심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의심 속에 빠지느냐? 의심을 이기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심을 이기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의심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 “하나님께 내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적이 나타난 것을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를 드리면 찬송을 부르면 의심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와 찬송은 불평을 이기게 하는 무기인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교회 구역장 한 분이 자궁암의 말기인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목사님, 바늘 한줌을 쥐고 쉬지 않고 찔러대는 것 같습니다. 이 고통과 이 괴로움에서 내가 정신을 온전히 하고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한 결과, “집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럽죠?” 그러니까 그렇게 앓다가 얼굴을 딱 펴더니만 정색을 하고 “목사님, 머리를 하늘로 두고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좋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인생으로 태어난 자가 어떻게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 그런 말씀 마세요.”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그게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인데 그 자매님이 마지막 떠나면서 감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3. 우리의 감사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부귀, 영화, 공명이 자기 목숨을 구해줍니까?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린다 해도 그것은 한때에 불과할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자기 인생의 종말이 다가올 때,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는 것은 다 과거의 일이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해야 될 것은 우리는 비록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못 가졌다 할지라도 가장 귀한 목숨을 가졌기 때문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것을 우리는 끝없이 끝없이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인 것입니다. 여러분,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선택하지 않습니까? 옷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가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더구나 내가 살 집 같은 것은 많이 집을 보고 선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여러분을 자기의 자녀로 선택하셨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좋아하시는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좋아하시고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매일같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장차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왕은 다스리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마귀가 가져오는 여러 가지 흑암의 세력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한 분은 골수암에 걸렸는데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받고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 다리를 다 잘랐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그러면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암이 폐로 전이되어 의사가 고개를 흔들며 방법이 없으니 퇴원하라고 했습니다. 목발을 짚고 집으로 와서 너무 아파서 누워있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병은 귀신이 가져왔으니 이제부터 내 이름을 다스려라.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쳐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성도가 일어나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계속해서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온 전신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더니 폐에서 뭐가 공기처럼 확 튀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 귀신이 떠나갔구나.’ 그러나 일어나 앉았더니 몸이 날아갈 듯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더니 의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골수암도 폐암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나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니까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건강을 얻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담대하게 기도하여 마귀의 일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아끼고 돌보시겠습니까? 시편 100편 3절로 4절에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의 소유된 백성이요, 주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삶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옮기셔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 살게 하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저 캄캄한 밤중에 방황하면서 살다가 결국은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가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 버리고 예비한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집이 아니라 영원히 들어가서 거할 곳을 주님이 예비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천당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아직 새까맣다.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깝게 느껴집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나라에 집이 있으니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가다 몸이 아플 때도, 또 몸이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자고나면 금방 회복되었는데 지금은 피곤이 많이 쌓이면 자고나도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천당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죽음을 생각하는데 우리에게는 천국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육신의 장막집을 떠날 때, 주님이 와서 내 손을 잡고 영원히 살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소망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만일 죽음이 가까울 때, 가야할 곳이 없다면 얼마나 당황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를 믿지 않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갈 곳이 없으므로 내일이 캄캄합니다. 육신의 집을 떠나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집 없는 방랑자가 갈 곳은 지옥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으셨으니 이로 인하여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설교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는데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조 목사, 네게 기쁨을 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하고 슬픔을 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하라. 나는 삶의 기쁨과 슬픔을 다함께 네게 선물로 주었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으니 좋은 일은 좋아서 기뻐하고 좋지 않은 일도 내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므로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여라.” 그래서 제가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항상 기쁘기만 하면 기쁨을 잘 모르지 않겠습니까? 슬픔이 다가와야 기쁨의 참맛을 알고 배고픔이 있어야 밥 먹는 기쁨을 알고 질병이 들어야 건강의 기쁨을 압니다. 기쁨과 슬픔이 연달아 와서 인생을 참 만족으로 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 삶에 마귀를 끌어들이는 길이고 감사와 찬송은 우리 삶에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와 찬양이 있는 곳에 임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로 문을 열면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고 싶으면 감사를 하십시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큰 은총과 축복과 영광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이와 같이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는 못 해도 우리 집에서 우리 형제들이 모이는 곳에서 손을 가슴에 얹고 아픈데 얹고 기도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시니 마음이 든든하고 위로가 되니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너희 원수 마귀는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예수의 이름으로 생명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시고 생명과 거룩함과 성령 충만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나을지어다! 나을지어다! 나을지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삼중구원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것을 사실로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 어려움과 고통을 지날 때도 예수님 이름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저 하늘에 있는 별들보다 많은 천사들이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사오니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별을 따라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따라가고 하나님을 따라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룻기

위대한 믿음의 여인들의 이야기

 룻기는 구약 성경 가운데 아가, 예레미야 애가, 전도서 그리고 에스더서와 함께 소위 다섯 두루마리에 속하는 책으로 오순절 추수절기에 읽혀졌다. 왜냐하면 룻기의 배경이 오순절과 같은 봄철 수확기이기 때문이다(룻 1:22; 2:23). 또한 룻기는 성경 가운데 아름다운 이야기의 하나로 꼽힌다. 그것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절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무법의 시대에 그리고 흉년까지 곁들어 살기 힘든 고난의 시기에 룻이라는 평범한 한 여인의 사랑과 헌신, 믿음과 구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궁핍과 방황의 시대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는 말로 시작한다(룻 1:1).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베들레헴’이란 ‘베트’(집)와 ‘레헴’(양식)이 합쳐진 말로 마을의 이름이 ‘양식의 집(베들레헴)’이 될 정도로 곡식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마을이었는데 그 곳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렇게 기이한 일이 생긴 것은 바로 당시의 시대상을 말해 준다. 사사기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였다(삿 17:6; 18:1; 19:1; 20:25). 따라서 룻기의 시작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시기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임했음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나라에서 떠도는 것이 바로 고난임을 암시한다.


 믿음의 여인들

 룻기의 주요 인물들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인들이다. 특히 야훼 하나님을 붙잡고 선택한 여인들의 이야기이다. 룻기 서두에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잠시 언급되지만(룻 1:2), 이후 대부분의 이야기는 여인들에 의해 진행된다. 룻기에 나오는 첫 번째 여인은 나오미이다. 엘리멜렉의 아내로 이방 나라인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외롭게 살던 여인 나오미는 야훼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룻 1:6)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귀향을 결심한다. 나오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야훼의 선대하심과(룻 1:8∼9; 2:20), 야훼의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여인이었다(룻 1:13, 21).

 두 번째로 룻기를 이끌어 가는 여인은 주인공 룻이다. 모압 여인인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자기의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룻은 야훼 하나님을 언급하며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믿음의 백성으로 남겠다는 결단을 한다(룻 1:16∼18; 2:11). 그리고는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헌신적으로 시어머니를 공양한다(룻 2:1∼13). 이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친척인 보아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은혜를 입게 된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고 마침내 둘은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장차 다윗 왕의 조상이 되는 아이가 태어난다(룻 4:13∼17).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룻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룻기에서 하나님은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 가까이에 계셔서 그들에게 기회를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나오미는 고향을 떠난 자신의 삶이 괴로움의 삶이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을 ‘나오미’(기쁨)이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움)로 부르라고 한다(룻 1:19∼20).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인생이 괴로움으로 끝나게 하지 아니하셨다. 룻기의 마지막에서 나오미는 야훼 하나님의 은혜로 이웃 여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여인이 된다(룻 4:13∼17). 그것은 괴로움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슬픔을 춤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 ‘마라’(괴로움)의 인생을 다시 ‘나오미’(기쁨)의 인생으로 바꾸셨기 때문이다. 괴로움이 기쁨으로 바뀐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그 은혜를 아는 사람들의 믿음의 결단이라는 것을 우리는 룻기를 통해 확인한다.

 룻기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 나오미와 이방 신을 섬기는 친정을 택하지 않고,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시댁을 택한 룻이 어떠한 축복을 받았는지 잘 보여준다. 망하고 실패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한 가정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의 가문이 되고, 예수님을 배출하는 가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배경에 대해 룻기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나님을 선택하고 신뢰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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