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이영훈목사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야훼로 말미암거니와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시 68:19~21)

귀한 은혜의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첫째도 기도, 둘째도 기도, 마지막도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노력도 예기치 못한 이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이때에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살기 바빠서 주님과의 교제가 멀어져 기도가 소홀히 되었고 말씀 묵상하는 것도 소홀했고 신앙의 열심도 사라졌고 이러한 영적인 침체에 알게 모르게 빠져있던 우리들이 그것도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이제는 다시 잠자고 있던 곳에서 깨어 일어나서 신앙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라. 기도를 회복하고 감사를 회복하고 찬양을 회복하고 말씀의 은혜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면 이 사회가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은 우리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기도할 때 주님 우리가 먼저 영적으로 회복되게 하여주셔서 이 모든 어둠이 사라지고 주님의 은혜의 찬란한 빛이 비쳐오게 하여 주옵소서.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무거운 짐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지금도 몸 된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곳에서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tv로 예배드리는 성도에게도 긍휼함을 베풀어 주셔서 그곳에도 큰 은혜가 있게 하여주시고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우리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그날 감격의 눈물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서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시편 68편 19절에서 21절의 말씀을 가지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서 인생을 살아갈 모든 힘을 다 잃어버리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한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이신데 뉴욕에서 52년 동안 목회하시면서 긍정적 사고의 힘으로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끼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께 와서 상담합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 세상 어디 염려, 근심, 걱정 없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평안히 쉴 곳이 없습니까? 제 인생의 짐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물끄러미 그 여성도님을 쳐다보고 계시다가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기 뉴욕에서 나가면 뉴저지 턴파이크를 만나는데 뉴저지 턴파이크를 타고 내려가다가 11번 출구에서 빠지면 뉴저지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정말 고요하고 염려도, 근심도, 걱정도 없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평안히 쉴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편안히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Rest in peace. 평안히 쉬라고 하는 사인이 그곳에 붙어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고난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예고도 없이 시시때때로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고난은 우리 인생의 한 부분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고 고난을 잘 견디고 극복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날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내고 있지만 믿음을 굳건히 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

먼저 무거운 인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모든 인생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이렇게 시편 기자가 기록했습니다. 이 세상 사는 사람 누구나 예외 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벌써 2월부터 시작해서 약 5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거의 다 멈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사회가 불안정하고 학생들은 제대로 학교 가서 수업을 받지 못하고 몇 차례 연기했다가 겨우 학교 갔는데 확진자가 하나 나오면 학교 전체가 폐쇄돼서 2주 동안 학교가 멈춰 서고 무엇보다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주일날 맘껏 와서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다. 늘 마스크를 써야 되고 열을 체크하고 또 아이디를 갖고 확인을 해야 예배 장소에 들어올 수 있는 그러한 불편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각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염려, 근심, 걱정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고 크고 작은 질병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각종 스트레스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짐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저주입니다. 짐이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어떤 불의도, 불행도, 문제도 없는 완전한 샬롬, 평화의 세상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평화가 사라져버리고 질병과 고통, 가난과 저주, 사망이 인류 역사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 대대로 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몸부림쳤지만 그 누구도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 누구도 스스로 죄와 사망의 짐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직 인류의 희망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죄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인생을 향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보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 앞에 나와 주님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문제 해결자가 되시고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주시고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2.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성경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주님이 지신다고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에 대해서 68편 19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모든 사람이 무겁고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고 늘 싱글벙글하니까 아무런 문제도, 어려움도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알고 보면 남에게 말 못 할 고민, 상처, 아픔, 슬픔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 마음의 이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누가 우리 마음의 고통과 고민을 알고 대신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 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 짐을 내려놓으면 주님이 우리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이사야 44장 2절에 이와같이 말씀합니다.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야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우리를 안고, 품고 업어주시고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6장 3절, 4절입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홀로 해결해 주시는 위대한 주님이 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치지만 그 짐이 날로 더 무거워질 뿐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성성해서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책임져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떠나는 세상의 친구와 다릅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이 끝까지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에 지쳐 쓰러지면 와서 안아주시고 그래도 걸을 힘도 없어 누워있으면 우리를 업고 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얼마나 날씨가 더운지 올해 여름이 일찍 찾아오고 다른 때보다 더 날씨가 뜨거운 여름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늘 밑에 가면 잠시 시원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고난의 햇볕이 내려쬐일 때 십자가 그늘 밑에 가면 우리는 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415장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찬송가 415장 (통:471) : 십자가 그늘 아래>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곳 찾았네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두려움 없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

할렐루야.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 힘으로 부친 인생입니다. 여러분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게 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뿐만 아니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내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십니다. 다음 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꼭 붙잡고 있으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잔이 넘쳐나는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시편 68편 20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야훼로 말미암거니와

할렐루야.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여! 나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내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 받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원수를 멸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셋째로 우리의 원수를 멸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적에 둘러싸여 있는지 근데 그 문제도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68편 21절입니다.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평생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대적이 있습니다. 물질에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은 물질의 고통이 참 큽니다. 요즘은 우리가 잘 살아서 그런 걱정은 안 하지만 옛날 제가 어릴 때 보면 어렵게 사는 분들 "오늘 저녁 뭐 먹지? 쌀이 떨어졌네." 그런 얘기를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대학을 다닐 때 제가 난지도 철거민촌에 갔었는데 정말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그렇게 힘들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처음 봤습니다. 아이들은 나가서 구두닦이 하고, 넝마주이하고 어른들은 나가서 아스팔트 까는데 자갈 까는 일을 하는데 참 힘들게 사는 인생들의 모습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앞으로 평생 어려운 사람들 도우며 살아야겠다.' 그런 결심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있는지 대형 병원이 꽉꽉 찼습니다. 각종 질병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물질 문제는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가 힘을 얻는 대로 수입을 얻으면 되고, 질병도 우리가 잘 치료받고 건강 관리해서 건강해지면 되는데 진짜 대적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는 문제가 많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병들었습니다. 얼마나 악한 비방이 난무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SNS에 유튜브에 막 띄웁니다. 일단 띄워놓고 상대편에 큰 상처를 입히고 나중에 아니면 말고.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참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가끔 악성 댓글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하는 그러한 일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악한 사람들하고 직접 대면해서 싸우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떠한 문제도 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감정이 상한 채로 사람들과 다투게 되면 우리의 감정을 절제하기 힘들고 그래서 큰 소리가 오가게 되면 나에게도 상처가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히브리서 10장 30절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주님이 우리의 억울함을 아시고 우리의 상처를 아시고 우리의 원수를 심판하시고 그들을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순간적으로 절제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싸우면 그 상대편 악한 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그런 악한 사람과 똑같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아무리 속이 뒤집히고 속상해도 그때는 납작 엎드려서 주님 앞에 기도드려야 됩니다. 눈물의 기도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그 모든 대적으로부터 보호해주시고 대적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주시고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을 말씀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모든 악과 싸워 승리하며 남은 일생 하나님 영광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4장 8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지금 잠깐 어렵지만 잠깐 힘들지만 잠깐 짐이 무겁지만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상처 가운데 낙심하며 주저앉지 말고 주님 붙잡고 주의 말씀으로 의지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한 분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목사님 사모님이시면서 많은 글을 쓰신 저술가이기도 하고 강연가로 유명하신 리앤 맥코이 사모님입니다. 목사님의 아내로서 목회자의 아내로서 세 자녀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사모님이신데 2010년도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습니다.

2010년도 3월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 지나고 나서, 목사님이 있던 테네시 중부에 집중호우가 와서 예배당과 교육관이 물에 다 침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피해액은 27만 5천 달러, 약 3억 원 가까운 피해가 났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지난 후에 18살 난 큰딸이 가출했어요. 자, 목사님 딸이 가출을 하면 얼마나 힘듭니까. 또 사람들이 뭐라고 비방을 할 것 아닙니까. 목사님 딸이 집을 다 나갔다고. 그런데 집을 나가서 또 남자친구랑 동거하면서 아이까지 낳았어요. 딸 가진 부모님들은 잘 보시기(watch) 바랍니다.

큰딸이 가출하고 나서 석 달이 지나고 난 다음, 그분의 아들은 전염성 단핵증이라고 하는 발열과 오한을 동반하는 바이러스성 병을 앓게 돼서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그런 고통이 와서 일 년 동안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또 그 아들이 이런 진단을 받고 난 한 달 뒤에는 남편 목사님 눈꺼풀에 피부암이 발견되어 종양 절제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주 후에는 작은딸마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고 하는 진단을 받아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 년 내에 순식간에 갑자기 이 목사님 가정에 불어닥친 것입니다. 본인은 대장암으로 또 교회는 홍수에 침수되고, 큰딸은 가출하고, 남편은 피부암이 왔고, 아들도 막내딸도 다 병이 오고 그러고 이년 후에는 또 사모님 암이 재발되었어요. 간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계속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때문에 제대로 먹지고 자지도 못하고 몸은 쇠약해지고 정신은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마치 욥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 다 잃어버리고 태풍이 불어서 열 자녀 다 잃고 몸에 건강이 사라져 온몸이 피부병에 걸려서 기왓장으로 긁고 아내는 등을 돌리고 친구들이 와서 비난하는 그러한 절망에 빠진 것 같은 말 할 수 없는 고난의 자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 코피가 터져서 코피를 닦다가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암으로 인해 죽게 되나요."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리앤,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좋아질 것이다. 내가 너로 장수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눈물 콧물 쏟으면서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살려주신다고 했사오니,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여 주시고 세 자녀가 다시 다 회복되게 해 주시고 남편도 건강하게 해 주시고 교회도 안정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궁극적으로 주관하고 계시므로 내 육신에 스며든 암세포들도 그분이 허락하신 것임을.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강렬한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신 그곳 십자가 아래에 내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았다."

십자가 밑에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십자가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십시오.

우리 함께 찬송가 415장을 부르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찬송가 415장 (통:471) : 십자가 그늘 아래>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두려움 없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날 위해 고난 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사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온갖 고난을 겪으시고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지신 우리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주님 계시기에 제가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주시고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셔서 한평생 십자가 그늘 밑에 쉬면서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김영자 집사·김종욱 성도(동작대교구) - 어머니의 길랭·바레 증후군 치유해

 

전신 마비 증세 회복과 완치 판정
말씀 의지하며 기도로 의심과 두려움 극복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이었다. 나는 어머니(사진 왼쪽)와 아내,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다리에 감각이 없다며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서둘러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어머니를 모셨다. 병원에서는 단순 근육통이라며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증세는 갈수록 나빠졌고 하루 만에 전신이 마비됐다.

병원 진단 결과 말초신경계의 손상으로 마비가 온 길랭·바레 증후군이었다. 주치의는 희귀병이지만 완치율은 높다며 어머니가 80세로 연세가 있으셔서 면역력이 약해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전날 건강하게 산책까지 하신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기도가 막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와 비위관을 의지해 누워계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지 열흘 정도 됐을 때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심각해졌다. 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신다는 믿음보다 의사의 말에 수긍하며 절망에 빠졌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장례를 준비하려고 할 때 이영훈 목사님께서 병원을 방문하셨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이영훈 목사님께 기도해주실 것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 후에도 순간순간 의심이 될 때마다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이겨냈다.

동작대교구 교역자들과 구역 식구들도 밤낮으로 찾아오셔서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지났을 무렵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급속도로 회복됐다. 손가락만 겨우 움직이셨던 어머니의 마비 증세가 점차 회복되더니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셨다. 병원에서 드디어 길랭·바레 증후군 완치판정을 받았다. 할렐루야! 어머니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영훈 목사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가망이 없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로 간구할 때 믿음을 주셨고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다. 무탈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보다 의심이 강했던 나를 굳센 믿음의 자녀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남은 일생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서리 집사로도 임명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윤혁분 권사(마포2대교구) - 계단 오르내리기 힘들었던 왼쪽 다리 치유

예수 보혈 의지할 때 기적 일어나

지난해 1월부터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앉았다가 일어서거나 계단을 내려갈 때면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가을에 산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가 왼쪽 오금이 붙어버린 느낌이 들면서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빨리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30년 째 연말이 되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며칠간 기도하는 신앙 습관에 따라 먼저 기도원을 찾았다.

아픈 다리를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려했는데 하나님은 나보다는 교회를 위한 기도를 먼저 하게 하셨다. 교회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마귀를 물리치고 우리 교회가 이 시대 복음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해를 넘겨 올해 설이 지나자 다리는 부서질 것처럼 고통이 심해졌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난간을 붙잡고 두 걸음에 걸쳐 한 계단씩 내려가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도 그때 뿐 통증은 여전했다.

5월이 지나 하루는 볼 일이 있어 지하철을 이용했다. 힘겨운 걸음으로 겨우 좌석에 앉아 그날도 어김없이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언제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지금 저를 봐 주세요. 이런 아픈 몸으로 사람들에게 좋으신 하나님을 전하면 전도가 될까요? 나를 고쳐주세요.’ 아픈 왼쪽 다리를 한 대 힘껏 치며 “예수 피로 아픈 병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선포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데 이상하게 다리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찰구를 지나는데도 걸음이 자연스럽게 걸어져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보자고 생각하고 걸음을 뗐다. 그랬더니 난간을 붙잡지도 않았는데 계단을 쉽게 오르는 것이 아닌가. 할렐루야!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나는 아픈 다리가 고침 받는 순간 ‘순종할 때 응답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됐다.

집사 시절 성경전체를 필사했지만 지난해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성경필사라는 숙제를 내주셔서 신약을 다 쓰고 올해 구약 필사노트 네 권 중 마지막 권을 남겨두고 있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씩 기도한 후 오전 8~12시까지, 또 늦은 오후에 성경을 필사하는데 하루에 적어도 필사노트 5장씩은 쓰게 된다. 하루에 말씀도 20장씩 읽으며 이웃을 위해 중보하고 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을 갖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나는 믿음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출가한 자녀들과 모여 가정예배를 드린다. 우리 교회 각 기관에서 봉사하는 세 자녀를 보면 우리 가정을 주님께 인도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날마다 은혜를 더하시고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라고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순복음의 권사로 주변에 신앙의 본이 되겠다.


정리=오정선 기자

 

느헤미야

신앙공동체 회복, 기도와 말씀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회복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원하지 않은 주변의 세력들의 수많은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지도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와 말씀에 의한 신앙 회복이 잘 나타나 있다.


기도로 시작된 공동체의 회복(느 1∼7장)


느헤미야서는 바사 왕국의 궁중에서 술을 담당하는 관리였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처참한 상황을 전해 듣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느 1:2∼3). 고국에 남아있던 자들이 큰 환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과 예루살렘 성이 불에 타 허물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첫 번째로 결단하며 행한 것은 기도였다(느 1:4).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에 대한 회개의 기도와 함께 왕으로부터 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느 1:5∼11). 6개월간 지속된 기도의 응답으로 느헤미야는 마침내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왕으로부터 허락받게 되었다(느 2:1∼9). 고향으로 귀환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반대하는 산발랏, 도비야 그리고 아람 사람 게셈의 방해를 이겨내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게 되었다(느 2:11∼3:32).

느헤미야의 방해자들이 그들을 조롱하고, 무력으로 협박도 하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지만(느 4:1∼14), 그들은 기도로 시작한 느헤미야의 열정과 지혜를 이길 수 없었다(느 4:15). 왜냐하면 기도함으로 성벽의 재건을 시작한 느헤미야를 하나님께서 돕고 계셨고(느 4:15∼20), 그 자신도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느 5:1∼19). 결국 산발랏과 게셈의 거짓 소문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은 단기간인 52일 만에 완성되었고(느 6:15∼19),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자들의 인구 조사가 행해졌다(느 7:1∼72). 성경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항상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 더 험난하고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어려운 것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 느헤미야의 경우 그 비결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다.


말씀으로 시작된 신앙의 회복(느 8∼13장)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이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공동체의 영적 회복은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영적 회복의 장소는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수문(Water Gate) 앞 광장이었다. 학사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느 8:1). 말씀 낭독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이어졌고, 사람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느 8:2∼3). 점점 말씀을 뜻을 깨닫게 된 백성들은 울기 시작했다(느 8:8∼9).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자들은 더욱 더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과거에 지켜지지 못했던 절기(초막절)와 예배가 다시 드려지게 되었다(느 8:12∼18).

예배의 회복으로 이어진 말씀은 또한 백성들 속에서 회개를 불러일으켰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였다(느 9:1∼38). 그리고 말씀으로 촉발된 신앙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사실 이제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았다. 이방 사람들과의 혼인은 신앙의 거룩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말씀을 깨달은 자들은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고,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였다(느 10:1∼39).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주민과 지방 주민들(느 11:1∼36),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고(느 12:1∼26), 그들과 함께 성전을 정화하고, 안식일을 준수하며,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지하는 등 신앙 회복을 위한 개혁적 조치들을 취하게 되었다(느 13:1∼13).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회복의 결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느헤미야서는 절망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공동체가 한 지도자의 기도에 의해 회복되고 또한 죄 가운데 방황하던 백성들이 말씀에 의해 새로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할 때, 무너진 신앙 공동체가 회복되고 끊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도 다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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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

구약 에스라서는 바벨론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합하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와해된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스라서는 무엇보다 신앙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에스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스 1:1∼6:22)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한 사건이다. 두 번째 부분(스 7:1∼10:44)은 에스라의 귀환에 의한 신앙 공동체의 개혁을 다룬다. 에스라서에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신앙으로 이겨낸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승리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감동과 은혜로 재건된 성전(1∼6장)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 바사의 초대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라는 조서를 공포하게 하셨다(스 1:1).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에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야훼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함께 일어났고(스 1:5),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금과 은과 각종 물품들을 기쁨으로 내어 놓았다(스 1:6). 뿐만 아니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갔던 야훼 성전의 그릇들도 환수 조치되었다(스 1:7∼8). 세계 역사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빼앗은 전리품을 무상으로 되돌려주었던 경우가 있었을까?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고레스 그리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 모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었다. 에스라서는 하나님의 감동만이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성전 재건의 시작은 예배의 회복에서 시작되었다(스 3:2∼6). 그리고 예배의 회복은 성전 재건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스 3:7).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옛 솔로몬 성전을 회상한 노인들은 대성통곡했지만 많은 백성들은 음악에 맞춰 찬송을 드리고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질렀다(스 3:10∼13). 그러나 이스라엘의 예배가 회복되고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스 4:1∼6). 이들의 갖은 훼방으로 인해 성전 재건은 다리오 왕 2년까지 중단되었다(스 4:7∼24).

장기간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은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감동의 말씀으로 재개되었다(스 5:1∼2). 야훼 성전의 재건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바사 왕 다리오에게 성전 건축이 정말로 허락되었는지 물었다(스 5:3∼17). 이에 다리오는 문서 창고에서 왕의 조서를 찾아보게 하였다(스 6:1). 그런데 문서 창고에는 두 개의 조서가 있었다. 하나는 건축을 허락하는 고레스 왕의 ‘허락 조서’(스 6:3)였고 다른 하나는 건축을 중단시킨 아닥사스다 왕의 ‘금지 조서’(스 4:21)였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 왜냐하면 관리들이 발견한 조서는 금지 조서가 아닌 허락 조서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다리오 왕은 유다 사람들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 것이며, 왕의 재산과 세금으로 성전 재건을 도우라는 조서를 내렸다(스 6:6∼12). 성전의 재건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역전의 기회로 바꿔 놓으셨고 성전 재건은 완성되었다(스 6:15).


기도와 금식을 통한 삶의 개혁(7∼10장)

야훼 성전이 재건되자 하나님은 학자 에스라의 지도하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다시 한 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인도하셨다(스 7:1∼9). 이 때 에스라는 야훼의 율법을 연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한다(스 7:10). 에스라 7∼10장은 예배와 성전을 회복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삶의 방식들을 개혁했는지 보여준다. 이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방 민족들과의 혼합 결혼과 이로 인한 종교의 혼합화였다(스 9:1∼15; 10:2). 이 때 에스라가 취한 방법은 기도와 금식이었다. 그는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였다(스 8:21). 에스라가 이처럼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자 백성들 사이에서 큰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다. 에스라의 가르침에 백성들은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하였다(스 10:1∼3). 에스라에게 있어서 최우선 개혁 대상은 종교의 혼합을 조장하는 이방인과의 결혼이었다(스 10:11). 왜냐하면 아무리 성전이 재건되었다 하더라도 신앙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스라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한 것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며 삶을 변화시킨 과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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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교 권사(마포1대교구) - 두 번의 수술 후 찾아온 우울증에서 해방

절대긍정 절대감사 신앙으로 몸과 마음 회복

동서를 통해 주님을 영접한 나는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녔지만 영적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인도된 후 성령을 의지하는 말씀에 은혜를 입고 믿음이 성장하게 됐다.
비록 삶은 어려웠지만 성령님을 의지하면 언제나 힘이 났다. 그런데 신장결석이라는 병이 나를 괴롭혔다.

신장에 돌이 생기기 시작한 건 39살 때부터였다.
잊을만하면 결석이 생겨 2년에 한 번꼴로 제거수술을 받았는데 몇 년 전 종합검진으로 오른쪽 신장에서
혹과 결석이 함께 발견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2017년 11월 3일 결석 제거 수술을 받은 후 남들보다 유독 나한테 결석이 많은 이유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 목 주변 내분비기관인 부갑상선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신장결석 제거 수술과 2018년 초 부갑상선 수술이 이어지면서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가사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게다가 둘째 아들까지 어깨 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게 돼 나는 마음이 무너지면서
우울증이 오고 말았다. 놀란 남편은 기력이 쇠해진 나를 위해 한약을 조제해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교구장님과 교구식구들은 나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었고 친분이 있는 장로님은 내가 이영훈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2018년 여름 전국초교파권사금식기도대성회를 얼마 앞두고 이영훈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주셨는데
신기하게도 몸이 호전을 보였다.

나와 친한 권사님은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나를 데리고 권사 금식성회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나흘간 금식하며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성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금식은 며칠간 이어졌다.
금식기도가 오히려 나를 회복시켜주었다. 또 주일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목사님이 “목이 아픈 사람이 나았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회복됐다”고 선포하시면 “아멘”하며 받아들였고 몸이 많이 힘들면 주기도문을 몇 천 번씩
외우고 또 외웠다. 그때마다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교구에서는 총무 일을 맡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 그리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시련을 이겨냈던 욥을
기억하자 주님은 나의 믿음을 보시고 마침내 연약한 몸을 세워주시고 우울증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해주셨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다.
순복음에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리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을 배웠으니 이제 나의 남은 날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지 지혜를 구하고 전도에 힘쓰겠다.

정리=오정선 기자

기도하면 천국이 보인다/조용기목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8~30절)

 

1. 하늘을 바라보라

첫째로, 문제를 당했을 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나는 병들었다. 나는 병들었다.” 그러면서 병만 바라보면 병이 한없이 커져요. 병을 바라보면, 두려움과 근심, 걱정 때문에 병이 더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여덟 식구가 들어갈 배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배를 만들 때 희한하게 만들었었습니다. 노아의 배는 옆에 창문이 없어요. 노아의 배는 오직 천장에다 구멍을 뚫어서 위에만 창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밖을 볼 수 없고 아침, 점심, 저녁 언제나 위의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비가 40일 동안 내려서 천하가 다 물에 잠겼는데 일엽편주로 이 노아의 방주만 물에 떠 있었습니다.

만일 배 옆 부분에 창문이 있어서 밖을 내다보았다면 노아의 가족은 아마 심장마비에 걸려서 다 죽었을 것입니다. ‘천하가 다 물에 잠기고 우리만 두둥실 떴는데 우리가 과연 살아남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아주 낙심하고 절망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환경과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시고 창문으로 옆에 만들어진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천장에 문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하나님만 바라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믿게 되고 그래서 방주에 탄 사람들이 홍수를 다 지나고 육지에 무사히 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큰 문제를 당했을 때, 환경을 바라보면 낙담하고 절망하여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땅만 바라보고 삽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올 때, 그들은 땅만 보기 때문에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다른 것은 우리는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 당할 때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능력을 받아서 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침범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마다 미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이스라엘의 왕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의 계획이 늘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아람 왕이 그 사실을 알고 엘리사를 잡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와서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첩첩이 둘러싸고 엘리사를 잡으려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쫙 펴고 하품을 하다가 그만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온 천지에 아람 군대의 깃발이 가득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도단 성을 완전히 포위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빠져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걸 보고 게하시가 벌벌 떨면서 들어와서 엘리사에게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 말을 듣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하나님, 이 종의 눈을 뜨게 하여 보게 하소서.” 하고 게하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게하시의 눈이 열리고 게하시가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6장 17절에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말합니다.

게하시가 영적인 눈이 열려서 보니 아람 군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람 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첩첩이 둘러싸 있는 것을 자기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의 종은 땅만 바라보니까 아람 군대를 보고 벌벌 떨고 절망에 처했지만 엘리사는 하늘을 바라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에 담대함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땅이 아니라 하늘을 볼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당하면 성경 보고 새벽에 새벽기도하고 혹은 철야기도하고 금식기도하면서 하늘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의 해답을 알게 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기도하라

둘째로, 문제를 당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도착했을 때,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 나오고 있으니 ‘이제는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해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써 그러한 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올 것을 아시고 바다 속에 길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무리 피할 길을 예비해 놓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해야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에 14장 21절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말합니다.

홍해 앞에 서서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 가운데로 지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때 마침 물을 발견했는데 먹어보니 그 물은 써서 먹지 못하는 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면서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고함을 쳤습니다.

이와 같이 문제를 당했을 때, 땅만 바라보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왜냐면 모든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문제를 당했을 때,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5절에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을 아시고 벌써 그곳에 물을 달게 하는 나무를 심어서 자라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기도할 때,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라고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문제를 당하였을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길도 이미 예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그것을 알려 주시기 때문에 원망이나 불평이나 탄식을 하는 사람은 그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실이 너무 암담하고 답답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길이 안 보인다고 말합니다. 정치도 길이 안 보이고 경제도 길이 안 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당했을 때, 사람의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 바다가 갈라질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먹을 물이 떨어졌을 때, 바위에서 물이 나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먹을 양식이 떨어졌을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릴 것을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께서 그를 살리실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지금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길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6절에 “나 야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라고 말씀합니다. 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20)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같이 길을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 하늘을 바라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셋째로, 우리가 기도로써 문제를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쉼을 줄 수가 있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된 문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병의 문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짊어지고 해결하셨습니다. 저주의 문제도 죽음의 문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60년 동안 목회하면서 수많은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 사람은 어떠한 형태든지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늘 울고불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그 문제를 자기가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그 문제를 말미암아 파멸되는 것을 또한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저는 기도할 때 이런 마음의 상상을 합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부둣가에 배를 가지고 와서 “네 무거운 모든 짐을 이 배에 짐 싣듯이 실어버리라.”고 그러면 나는 그 배에 나의 모든 짐을 다 실어버립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다 실었어요. 이제 떠나세요.” 그러면 내 짐을 실은 배가 떠나버립니다.

일단 배가 떠나면 이제는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 배를 운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 운전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맡기고 나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대개 우리 성도들이 실패하는 것은 기도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님들이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 보면 “하나님이여, 이 일도 맡깁니다. 저 일도 맡깁니다. 괴로운 나의 모든 짐을 다 맡깁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성전을 떠나갈 때, 그 짐을 도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맡아주신 것 감사합니다. 내일 와서 또 다시 한 번 더 맡겨보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잠시 맡았다가 도로 다 찾아 버려 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을 책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길 때는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문제를 완전히 주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문제를 당했을 때는 내 고집을 부리지 말고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께 배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우리 멋대로 가면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주님께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교회 부형님 한 분이 크게 사업을 했었는데 갑자기 도산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어 가족들을 이끌고 겨우 움막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세끼 라면만 먹고 사는데 부인도 낙심하고 자리에 눕고, 완전히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살던 우리 교회 구역장님이 그 가정에 가서 전도를 했는데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구역장님이 하도 열심히 전도를 하니까 마지못해서 그 집 부인이 구역장님을 따라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부인이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구역장님 등에 업혀서 나왔는데 그러기를 몇 번 하더니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그 남편이 도대체 교회가 어떤 곳이길래 병이 낫고 사람이 달라지는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금요일 저녁에 부인이 교회 간다고 하니까 그 남편이 술병을 포켓에 넣고 아내를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그날 철야예배를 드리다가 은혜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하나님, 우리 식구가 움막집에 살고 있습니다. 셋방이라도 주시고 식구들을 먹여주시고 살펴 주시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를 했단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또 사업이 잘 되어서 집도 사고 큰 공장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그만 악한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에 있어? 우연의 일치로 내가 잘 되던 차에 교회에 간 것이지, 하나님 믿었다고 잘 될게 무어냐?” 그렇게 생각하고 그때부터 하나님을 등을 지고 교회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면서 자리에 눕더니 얼마 안 있어 혼수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뇌출혈로 쓰러진 것인데 십중팔구는 죽고 살아나도 반신불수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부인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언덕길을 낑낑대면서 올라가다가 갑자기 하나님을 배신했던 자기 죄가 떠올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채 부인을 업고 집에 돌아오니까 구역식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구역식구들이 부인을 위해서 울면서 합심으로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형님이 밤늦도록 부인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옆에 있어야 할 부인이 안 보이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부인을 찾아보니까 병원에서 곧 죽는다던 부인이 밤새 멀쩡하게 나아서 부엌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당했을 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살던 것을 회개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섬기며 따라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삶에 쉬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을 향해서 팔을 활짝 펴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시간에 가지고 온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참된 쉼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다 수고하고 짐 진자들이 어디를 찾아갑니까? 병원을 찾아가도 안 되고 시장터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안 되고 지혜와 총명을 다해서 인간의 힘을 이용해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으니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님 능력으로 오늘 병든 자를 고쳐 주시옵시고 주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병마는 떠나갈지어다! 떠나가라! 떠나가라!

우리 성도들 병들어 아파 눈물 흘린 사연을 다 고쳐주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병든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 지은 자들 다 회개하고 하나님 무릎 밑에 꿇어앉아 회개하고 그 팔 밑에 들어가서 피난처로 삼으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치료함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기쁨과 행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개인문제, 가정문제, 세상문제, 사업문제 문제에 묻혀서 온갖 고생을 하고 발버둥을 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홍해수를 가르듯이 광야의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만나가 떨어지듯이 메추라기가 비처럼 어지듯이 우리 오늘날도 하나님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분명히 알고 예비해주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비한 것을 바라보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늘을 쳐다보고 살아야 되는데 땅을 바라보고 살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도 땅을 보고 살 때는 아들을 얻지 못했으나 하늘을 보고 별들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너희 자손이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해서 용기를 주고 아들을 주었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형제, 자매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 능력을 힘입어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역대하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래의 희망 보여주다

 성경 역대기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으려는 미래지향적 역사책이다. 역대상은 아담의 족보에서 시작하여 다윗 왕까지의 역사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찾는다. 역대하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된다. 그러면 이러한 시각에서 쓰인 역대하가 주는 신앙적 가치와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은혜로운 하나님의 관점(대하 1∼9장)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 치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종교 등에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열왕기서에 기록된 솔로몬의 생애와 역대기에 기록된 솔로몬의 생애는 차이가 있다. 열왕기서는 초기에는 신실했지만 후기에는 하나님을 배역했던 솔로몬의 양면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반면 역대기는 솔로몬을 일생 동안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던 왕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역대기는 솔로몬 초기, 왕위 쟁탈로 인한 형제간의 피 흘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곧장 기브온 산당에 가서 야훼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대하 1:1∼3), 백성을 바르게 통치하기 위한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솔로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대하 1:7∼13). 또한 열왕기는 솔로몬이 이방 민족과의 정략적인 결혼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우상이 들어오게 만든 죄를 지적하지만(왕상 11:1∼13), 역대기는 솔로몬을 다윗이 완수하지 못했던 다른 나라들과의 평화를 이끌어 내고(대하 9:22∼28), 다윗은 준비만 하고 완성하지 못했던 성전 건축을 강조하고 있다(대하 8:1∼16). 역대기에서는 솔로몬 왕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된, 이른바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열왕기서가 하나님의 공의의 시각에서 기술한 책이라면 역대기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솔로몬이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나,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을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열정적인 사람이었고(대하 1:6), 자신의 왕궁을 짓기 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완공한 그야말로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대하 7:11; 8:1). 결국 역대하에 기록된 신실하고 충성된 솔로몬의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시각에 비춰진 솔로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역대기하를 통해 우리를 죄인으로만 바라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랑과 은혜의 대상으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관점을 읽게 된다.


 은혜로운 하나님의 역사(대하 10∼36장)


 역대하는 솔로몬 왕 이후부터 바벨론 포로들의 귀환까지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대하 36:22∼23).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북 왕국과 남유다로 나뉘는 분열왕국의 시기와(대하 10:1∼19),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하는 시기도 포함한다(대하 36:6∼8). 이 시기에 대해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왕국이 분열되었고, 그 결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망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역대기는 그 죄악의 역사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과 낮아짐의 모습을 보였던 자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용서하신 것을 보여준다(대하 7:14∼18). 몇 가지 예를 들면 하나님은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는’ 모습을 보이자 노를 돌이키셨다(대하 12:12).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친 히스기야 왕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진노를 내리지 않으셨다(대하 32:26). 심지어 유대 왕 중 가장 악하다는 평가를 받는 므낫세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니 적국으로부터 놓임을 받았던 것을 보게 된다(대하 33:12∼13). 이 외에도 역대하는 기도와 예배의 회복을 위해 애썼던 사람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증언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대를 준비하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며 성가대를 세운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의 선물을 받았다(대하 20:20∼23).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역대하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크게 부각된다. 열왕기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역대기는 유다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하는 바사의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대하 36:22∼23).

 역대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미래의 희망을 보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은 겸손하고, 순종하며, 기도와 예배의 회복을 꿈꾸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거나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모름지기 하나님께 마음을 두며 겸손히 그 은혜를 사모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으며, 그들의 나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 역대하를 통해 밝히 깨닫게 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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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순자 권사(여의도직할성전) - 노인성 우울증 고쳐 주신 하나님

해외에서 직장 생활하던 아들이 최고 대우를 약속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2019년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새 직장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힘든 상황들이 발생해 아들이 곤란해졌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 했다.

급기야 나는 숨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워 응급실에 실려 갔고 신경정신과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노인성 우울증이라고 했다. 병원에 다니며 진찰과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차도는 없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치매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들었다.  

늘 혼자만 있기를 원했고 수면제가 없으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입맛도 잃어버렸다. 반년 동안 무력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나보다 신앙이 좋은 딸이 일어날 힘도 없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동네에서 맛집들을 찾아 함께 외출했고 내게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정성을 다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딸은 자기 일도 바쁠 텐데 매일 집에 와서 나를 살피고 무엇보다 교회에 가기를 권했다. 지인들에게 내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 교회에 가기를 꺼려했는데 딸의 끊임없는 노력에 여의도순복음교회 본당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과 회개 기도가 터져 나왔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받은 은혜가 참 많은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이 나왔다. 여의도직할성전 담임인 방경현 목사님 생각이 자꾸 났지만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까봐 찾아가지도 못하고 전화로 기도요청을 했다. 전화인데도 목사님은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셨다.

나는 복지관도 열심히 다니고 교회 권사님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갖고 대화도 시작했다. 권사님들의 따뜻하고 친절한 한마디 한마디가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됐다. 그러던 중 우리집 난방시설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수리를 해야 했다. 살림살이를 다 빼서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나는 딸네로, 아들은 오피스텔로 옮겼다. 아들을 옆에서 지켜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지만 딸과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상황을 맡겼다. 딸 뿐 아니라 사위도 주일마다 교회 출석에 동행하며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차츰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됐다. 딸의 집에서 한 달 보름을 지내면서 딸과 사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었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회복이 됐다. 또 아들의 직장 문제도 해결됐다. 깨끗이 수리된 집으로 돌아와서 구역식구들과 함께 구역예배를 드리니 그렇게 세상 기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기도했다. 그전에는 나이가 많아 찬양대 봉사를 그만두려 했는데 다시 찬양대에 가니 대원들은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하게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 특별히 구역식구들과 찬양대 권사님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항상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정리=복순희 기자

 


삶의 심판의 두 가지 근원/조용기목사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중략)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야훼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세기 18장 18~21절)


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성경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정욕이 넘쳐나 매우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무너진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에 그곳에 두 천사를 보냈는데 그들이 소돔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두 천사를 자기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서 롯의 집을 둘러쌌습니다. 그들은 롯에게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고 말합니다. 이것만 봐도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악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 당연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멸망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세상을 사랑했던지 그런 음란하고 방탕한 곳을 택하여 그곳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롯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기에 롯이 그 영혼을 유지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완전히 파멸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과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에 그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먼저 알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듣자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절히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하기를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창 18:23~24)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보면,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좇아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악인에게는 형벌을, 의인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죄인을 무더기로 함께 심판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반드시 구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공의로운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 성에 50명의 의인이 있으면 50명 때문에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창 18:2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50명의 의인만 있어도 모든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인들은 의인 덕분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북한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이 땅에 1천만 명의 이상의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도들을 위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는 하나님의 법칙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다섯 명이 부족해서 45명만 있으면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래도 용서해 주겠다." "그러면 40명만 있으면?" "4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시겠다." "그러면 30명만 있으면?" "3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그렇다면 20명만 있어도 용서해주시겠습니까?" "2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나중에는 "의인이 열 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열 명만 있어도 심판 안 하겠다."고 그러셨습니다. 의인의 수를 오십 명에서 열 명이 될 때까지 계속 기도를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이 심하게 타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심판을 받은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은 죄에 대해 엄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사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책임지게 하시되 십자가에 매달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엄하게 심판하셨는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들이라도 하나님은 인정사정없이 심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조차도 그 무서운 심판을 감내하실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엄히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효과가 없었는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지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했을 때, 아브라함의 기도로 말미암아 롯과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29절에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롯을 보시고 그곳을 피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엎으시는 중에 롯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롯의 신앙을 보신 것이 아니라 의인 아브라함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롯의 생명을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중보기도는 큰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친척들,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우리나라와 민족과 전 세계를 위해서 기도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 자매님 한 분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 아버지가 쓰러져서 뇌진탕으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뇌에 부종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이 광주에 있어서 제가 기도해 줄 테니 손수건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아버지 옆에 있어야 하니까 못 오고 딸의 친구가 대신 손수건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수건 위에 손을 얹고 간절하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자매님의 편지가 다시 보내져왔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1주일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그 손수건을 얹고 기도하자 아버지가 한 달 동안을 누워계시다가 소천 하셨는데 그 한 달 동안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감사 편지를 보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자매님을 전도한 사람이 누군가 하면 바로 손수건 심부름을 한 친구의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이 어머니가 자기 딸과 딸의 친구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했는데, 딸의 친구가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어머니의 딸이 심부름 때문에 손수건을 가지고 저에게 왔다가 기도를 받고 예수님을 잘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은혜에 감격해서 4부 성가대 찬양대원으로 섬긴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중보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응답되게 하는 것입니다. 당장은 응답이 없을지라도 그 기도가 쌓이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따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위대한 일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불의와 악이 가득 넘쳐나는데 하나님께서 바로 심판하지 않는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에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짓는다고 금방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경고하고 경고해도 그것을 듣지 않고 죄가 쌓여서 상한선에 차면 그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그 죄가 하늘에 닿았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방법은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여러 차원이 있는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섬기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데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자기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님이 대신 다 갚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죄를 다 청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네 죄를 다 갚았으니 너를 믿고 나를 믿고 용서함을 받으라."고 하셨는데, 그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제일 먼저 회개해야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내 중심으로 산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기회가 와도 이를 외면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 롯의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성을 멸할 것이므로 빨리 그 성을 떠나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경고를 무시하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어 세상의 끝이 온다는 말을 듣고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이 문 앞에 와 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받는 것은 인간이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길이신 예수님을 주셨어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놀라운 복음의 은총을 베풀어 놓았으니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인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신자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성도들도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오염된 세상에 살면서 날마다 더러워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공해 지대에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공해 지대에 살면서도 마귀의 유혹을 받아 넘어졌는데 우리는 죄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 죄가 보이고 어느 곳에 가도 죄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죄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사니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죄에 빠지고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회개를 그냥 후회만 하고 자백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후회와 자백하는 것과 더불어 삶의 방향까지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던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고 세상을 따라 살던 삶을 주님을 따라 사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란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그 말은 '되돌아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길로 가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절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돈이 하나님이 되고 쾌락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를 모두 회개하고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서 28장 13절에도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한 것입니다. 죄를 숨기면 형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을 멀리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죄를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은혜의 보좌가 나아가는 길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긍휼하심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특권이 주어져 있으므로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회개하는 여러분이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은 차원의 회개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깊은 차원의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이러한 회개는 바로 생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 깊은 차원의 회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적으로 생각하고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깊은 차원의 회개라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믿음과 순종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용서 받은 의인이라는 마음으로 무장을 하고 용서 받은 의인이니 의롭게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또, 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성령께서 내 속에 와 계시므로 성령을 항상 내 마음속에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성령과 동행함으로써,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예수님이 나의 치료자가 되시고 나를 건강하게 하셨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저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나를 해방하였으니 예수 안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부활이요, 영생천국이 내 본향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오중복음으로 무장하고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 깊은 차원의 회개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회개의 연속일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의미를 한 가지에 국한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회개라는 것은 돌이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믿은 것을 삶의 원리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회개하라는 것은 윤리와 도덕적으로 잘못된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이요, 예수님을 잘 믿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회개하라는 것은 더욱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마음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점차 마음이 말씀으로 깊은 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므로 회개하는 삶이 복된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 모두가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빨리 병든 가슴에 손을 얹으라고 하는데 간이 아픈 사람도 간에 손을 얹고 위가 나쁜 사람도 위에 손을 얹고 허리가 나쁜 사람은 허리에 손을 얹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눈에 손을 얹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은 귀에 손을 얹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은 위장에 손을 얹고 다리가 아픈 사람은 다리에 손을 얹고 모든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주를 바라보니 주님이시여 성령으로 나타 나사 그들을 다 고쳐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기적이 나타나시옵소서. 너희 모든 죄악을 가지고 병을 가지고 온 원수 귀신아, 이 시간에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병에서 고침 받으라! 이 시간에 병을 고침 받으라!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다 고쳐주시옵소서. 기적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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