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고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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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수 안수집사(강동성전) -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응답하셔
담낭에 생긴 악성 종양, 죽음의 공포 속에
수술대에서도 담담히 기도로 주님만 바라봐


 나는 1981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해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초 나는 또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교편에서 은퇴한 후 해외여행을 즐기던 나는 언젠가부터 비행기만 타면 항문주변에 큰 고통이 있었다. 때론 혈흔도 있어 여행 중에 심히 걱정하며 한국에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 병원에 갈 이유를 찾지 못해 그냥 방치했다. 그러다 올해 초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 인근 병원을 찾았다. 예상했던 치질을 판정 받았는데 검사 중에 불필요할 거 같은 복부초음파검사를 하기에 이상하게 여겼다. 치질수술을 잘 받고 퇴원을 준비하는 중에 담당의사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의사는 “담낭에 큰 혹이 있다. 크기가 크고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다른 방법은 없고 빨리 절제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악성종양 이야기에 놀라 “이제 치질수술을 받았고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대형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검진을 받았다. 마침 건강검진센터에서도 연락이 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세한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형병원에서도 건강검진에서도 담낭에 혹이 있으며 모양도 특이하고 악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평소 담낭에 암이 생기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덜컥 겁이 났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나는 하나님께 한 달간 간절히 기도했다.

 1987년 경 아내가 신장암에 걸려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병원에서 암이 너무 커진 상황이라 손을 쓸 수 없다며 돌아가라고 말했다. 사실상 사형선고인 셈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아내를 데리고 오산리기도원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했다. 정신없이 기도를 하고나니 주위에 목사님들이 함께 기도해주시고 계셨다. 한 목사님은 내게 “기도가 응답됐다”며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딸로부터 병원의사에게 연락이 왔으니 병원으로 가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의사는 재검진을 해보자고 말했고 기도가 응답됐다는 말씀에 의지해 응했다. 이전 검사결과와 이번 검사결과 사진을 비교하던 의사는 깜짝 놀라며 “암이 줄어들어 수술이 가능할 것 같다”며 즉시 수술을 하자고 말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시작된 수술은 예상시간보다 넘게 오래됐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떼어낸 신장을 보여주며 “암이 이렇게 컸는데 흔적만 남고 이렇게 축소되어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었다”라고 말했고 나는 기도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의사는 “진짜 기적이 존재하는구나”라며 놀라워했다.

 이런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을 분명히 믿었다. 혹시나 심신이 약한 아내가 놀랄까 두려워 가족들과 구역식구들에게도 수술사실을 숨기고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에 앞서 나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술대 위에서 10분간 간절히 기도했다. 정말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 병을 치료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돕는 모든 의료진들을 위한 기도가 나왔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길 바란다는 기도에 의사와 의료진들이 내게 “수술에 앞서 처음 기도를 받았다. 덕분에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며 감사했다. 수술을 잘 마치고 검진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는 수술 전에는 회복에만 일주일이 걸릴 것 같다더니 수술이 잘되었다며 하루 만에 강제퇴원을 시켰다. 실제로 검진결과도 매우 좋아 의심을 버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나는 구역장으로 섬길 때도 늘 믿음에 대해 강조했었다. 사람이기에 기도에 앞서 믿음보다 의심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그 때마다 난 ‘될까?’라는 생각보다 ‘무조건 된다’는 생각으로 기도했다. 이영훈 목사님의 절대긍정, 절대믿음, 절대순종을 떠올리며 믿음으로 기도했다. 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또한번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기도해 이와 같은 기적을 체험하길 기도하겠다. 할렐루야!


더 나아지는 인생/이영훈목사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한복음 2장 1~5절)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죄와 절망 가운데서 살던 우리 인류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과 영생을 얻고 축복받은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가난과 저주가 변하여 풍요와 축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은혜와 치료와 축복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그것을 우리가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인생은 절망 가운데 살다가, 절망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도 절망에 처했던 한 가정이 예수님의 은혜로 문제의 해결함을 받고 기쁨을 누리게 되는 말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절망에 처한 가족

 절망에 처한 한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요한복음 2장 1절로 3절은 설명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되어있는데, ‘가나’라고 하는 지역에서 일어났던 기적입니다. 가나는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약 5km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는 곳인데, 걸어서 한 한 시간 반 거리에 떨어진 곳입니다. 여기서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결혼식은 교회나 예식장에서 간단하게 예식을 하고 함께 식사 나누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보통 1주일에서 2주일 합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면, 그때로부터 잔치가 시작되어서 춤추고 노래하고, 가까운 사람들, 동네 사람들 불러 모아서 먹고 마시고 그래서 모두가 축하하고 기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 잔치를 할 때 음식이 충분히 준비되어있어야 했고, 또 그 당시 음료인 포도주가 충분히 준비되어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잔치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잔치를 하는데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니, 새롭게 결혼하고 출발하는 가정에 큰 절망이 다가온 것입니다.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미리 와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절로 2절 보니까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거기 계셨는데, 그 예수님과 제자들도 함께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얼마 안 있어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3절에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앞으로 잔치를 할 날이 훨씬 더 많고 또 올 손님도 많은데, 그 집이 워낙 집이 어려워서 준비를 적게 했든지 아니면 예상보다 사람이 많이 왔든지, 왜 포도주가 떨어졌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저들이 문제를 만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잘되던 사업이 갑자기 곤두박질해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착했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반항적이 되고 사고를 치고 부모님을 속을 썩이는 일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궂은일도 있는데 이러한 일들이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크게 절망합니다. “왜,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겼나?” “왜, 건강하던 우리 남편이 이렇게 아프게 되었는가?” “왜, 아이가 속을 썩이게 됐는가?” “왜, 사업이 이렇게 어렵게 됐는가?” 그래서 문제가 생겨날 때, 저들이 부정적인 얘기를 쏟아놓습니다. 남 탓을 합니다. “내가 부모님을 잘못 만나서 이런 일이 생겼지.” “내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이런 일이 생겼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남 탓을 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남 탓을 하고 원망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절망의 때에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께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그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님이 단번에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어제도 기적을 행하셨고, 오늘도 기적을 행하시고, 내일도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울지 마시고, 탄식하지 마시고, 원망과 불평하지 마시고 남의 탓하지 마시고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2. 희망이 되신 예수님
 
 희망이 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요한복음 2장 3절을 보니까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말씀드린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절망의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 해결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을 모셔야 되고, 우리 사업장에 예수님을 모셔야 되고, 우리 직장에 예수님을 모셔야 되고, 우리 대한민국에 예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복을 받고, 우리 가정에 복을 받고, 이 사회가 복을 받고, 이 나라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북한이 저렇게 못살고,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그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약 40배 잘산다고 하는데 그렇게 잘살게 된 이유는 이 땅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일천만 크리스천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복주시고, 함께하시고, 우리 모두가 은혜가 넘쳐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절망에 처한 그 가정에 예수님이 초청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계셨기 때문에 주님이 문제의 해결자가 되셔서 저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넉넉히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 4절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얼마나 이 말씀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내게 용기를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당했을 때 주님께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면 주님이 우리를 꼭 붙들어주시고,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걱정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우리 마음 가운데 위로와 평안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다윗 왕이 그의 말년에 지은 시편입니다. 다윗 왕이 어릴 때에 그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느라 양들을 돌봤습니다. 그래서 양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동으로서 양을 치다가 사무엘 선지자의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택함을 받았는데 양들은 고도근시입니다. 50센티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앞 양의 뒤꽁무니만 바라보고 갑니다. 그래서 목자는 맨 앞에 가장 경험 많은 양을 앞세워놓고 양들을 따라오게 합니다. 그래서 양들은 스스로 먹을 것도 찾지 못하고 길도 제대로 가지 못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짐승에 잡혀 먹게 되는데, 양이 목자를 잘 만나면 목자가 그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 풍성한 풀밭으로 인도해서 배불리 먹게 해주시고, 목이 마를 때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게 해주시고, 그리고 밤에는 밤잠을 자지 않고 그들을 지켜서 이리나 늑대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양떼들은 목자만 따라가면 일생을 복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목자 되신 예수님만 따라가면,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면, 주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돌보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요? 예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났든지, 어려움을 당하든지 간에 목자 되신 예수님께 나와,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마라. 염려할 시간에 기도와 간구를 드리고 주의 도우심을 힘입으라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생겼을 때 원망, 불평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화내고 소리 지른다고 해결이 됩니까? 누구 탓이라고 남 탓을 한다고 해결이 됩니까? 아닙니다. 문제만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절망적인 상황은 더욱더 내게 심각하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 성경 말씀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하신 말씀대로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인생에 고비 고비마다 어려움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깊은 절망에 처했을 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 뿌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주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나를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시고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안에 문제 해결이 있습니다. 응답이 있습니다. 기적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되십니다.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요, 저술가인 리 스트로벨 목사님 말씀입니다. “세상이 매일같이 내뿜는 절망의 메시지에 넘어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당신에게, 과거사에 대한 죄책감에 눌려있는 당신에게,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느껴지는 당신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에 관한 복음서의 설명을 읽어보면 그분이 소망을 퍼뜨리는 바이러스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육체적 삶을 위해 직접 소망의 삶을 사셨고, 나아가 영원한 천국에서의 소망 가득한 삶까지도 약속해주셨다! 이보다 더 큰 소망의 이유는 단연코 없다!”

 우리의 인생의 중심에, 내 삶의 자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문제의 해결자 예수님

 문제의 해결자 예수님에 대하여서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와서 얘기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아직 내가 이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시작할 때가 안 되었는데, 아직 내가 메시야 인 것을 알리고 일을 시작할 때가 안 되었는데 왜 이러한 부탁을 하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명령합니다. 요한복음 2장 5절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응답받는 비결은 무조건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항상 기뻐하라!” 했으므로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므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했으므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 생각과 의견을 내서 자꾸 토를 달면 안 돼요. “글쎄요. 그렇게 하면 될까요? 안 될까요?” 따지고 이유를 대면 기적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7절에서 8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어느 집이나 그 집 입구에 큰 항아리가 있었는데, 이 항아리는 밖에 나갔다들어왔을 때 손을 씻는 정결 예식을 하는 그러한 물이 담겨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꼭 손을 씻어야 됐고, 여러 가지 예식을 할 때 꼭 손을 씻어야 됐습니다. 그 항아리가 여섯 개가 있는데 거기다 물을 가득 채워서 그 물을 떠서 갖다 주라고 한 것입니다. 하인들은 왜 이런 쓰잘 데 없는 일을 시키나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물을 떠서 갖다 줬다가 야단맞으면 어떻게 합니까?”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그저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을 채우라” 하시니 물을 채웠고, “갖다 주라” 하시니 떠서 갖다 주매, 갖다 주러 가는 동안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기적이고, 이것이 은혜고, 이것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기적은 일어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순종이 기적을 가져옵니다. 갖다 주었는데 그 물이 아주 좋은 포도주가 된 것이에요. 그래서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이 그 물을 맛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처음에는 좋은 것을 내놨다가 술 취한 다음에 질이 떨어지는 것을 내놓는데, 너희는 지금 더 좋은 것을 가져왔구나.”

 요한복음 2장 9절, 10절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이것이 예수 믿는 삶의 축복입니다. 더 나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달 보다 이번 달이 더 낫고, 이번 달 보다 다음 달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는 더 나아지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그저 물은 필요한 것이지만 어떠한 맛도 없고 물 그 자체인데, 포도주는 값도 비싸고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무의미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인생이 되고, 무가치했던 인생에서 가치 있는 인생으로 바뀌는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주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로 우리가 바뀌어져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주여, 우리 인생이 변화되어서 가치 있고 귀하고 우리의 삶이 보람 있고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받는 그러한 모습으로 한평생 쓰임받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를 믿으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2010년도에 야식 배달을 하던 한 청년이 방송 ‘스타킹’이라는데 나와서 일약 스타가 된 그러한 일이 있습니다. 그 청년 이름이 김승일입니다. 평택 합정감리교회 집사님이신데, 지금 전 세계를 다니며 찬양과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습니다. 원래 노래에 재능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고3 때 레슨을 3개월만 받고 한양대 성악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을 합니다. 그런데 집안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어머니께서 택시 회사에서 세차, 차 닦는 일을 했는데 쓰러져 뇌출혈이 되셨어요. 그래서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니까, 그 병원 입원비를 대느라 본인은 공부를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서 택배기사, 휴대폰 판매원, 노점상, 선원, 대리운전, 야식 배달을 비롯해 열다섯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하루 스무 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뭔가 자꾸 뒤틀려지고 사기까지 당해서 빚이 1억이 넘게 되고 또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 무엇 하나. 죽어야겠다.’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자살하려고 하는 그때에, 그가 4대째 기독교인인데 교회를 그냥 건성건성 체험 없이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보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자살하려고 하는 그 때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을 붙잡고 그는 죽음 직전에 낭떠러지에서 마지막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내려놓던 그 순간에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때로부터 믿음을 가지고 마음에 넘치는 감사함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야식 배달을 하러 갔던 집에서 나온 그 음악에 감동을 받아서 핸드폰에 넣고 밤낮 불렀습니다. 그게 ‘You raise me up’이라고 하는 곡인데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내 영혼 지치고 피곤할 때에/
근심 걱정 내 맘 짓누를 때/
난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내 곁에 오실 때까지/
주님 날 일으켜 산 위에 세우네/
거친 바다 위 걷게 하시네/
주님만 의지할 때 강함 주네/
크신 능력 내게 부어주시네

 밤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들은 사장님이 본인도 몰래 방송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집에 음식 배달하는 청년이 노래를 잘 부르는데 한번 방송에 나오게 해달라고. 그래서 이 청년이 자기 집 사장님이 보내서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습닌다.

 2010년 12월 4일,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 ‘네순 도르마’, 우리말로는 ‘공주는 잠 못 들고’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노래를 부릅니다. 너무나 어려운 노래인데, 멋지게 부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나오고, 그때로부터 그가 스타가 돼서 전국을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바뀌어 진 것입니다. 한양대학교에 다시 복학해가지고 지난 해 입학한 지 20년 만에 졸업을 했어요. 미국 애틀란타 조지아 정부 청사의 초청을 받아 가서 찬송과 간증을 하고 명예 시민증도 받았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현재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특임 교수로 내정이 되어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랜 시련을 경험케 하신 후에,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고난도 복도 그분의 뜻 안에서 감당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살겠습니다!”

 그의 인생이 물 같은 인생이었으나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포도주같이 귀하고 존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야식 배달부였지만 주님이 함께하셔서 그를 높여주시매, 온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함께하시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이전에 상처입고 절망과 고통 가운데 남이 볼 때는 아무런 흠모할만한 것이 없는 그러한 구겨진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를 믿고 주님의 은혜를 입기만 하면 인생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귀한 인생으로 바꿔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분도 빠짐없이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날마다 나아지는 인생, 변화되는 인생, 축복받은 인생, 기적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물 같은 인생을 포도주처럼 귀한 인생으로 바꿔주시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게 만들어주시고,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꿈과 희망을 더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끌어주심을 감사합니다.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고, 변화된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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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에 관한 성경퀴즈                    

                 
1.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성도의 선택 시기는?(1:4)

창세이전
모태에서부터
출생이후
예수를 믿을 때부터

2. 에베소서에서 강조한 것은?(1:15-23)

교회의 통일성
율법주의 경고
재림교리
성도의 사랑

3. 에베소서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입니까?(2:8-10)

의에 이르면 능력이 나타남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름
십자가의 징표를 얻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

4.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자랑할 것이 없는 까닭은?(2:8-9)

행위의 법에 의해서
믿음의 법에 의해서
율법에 의해서
할례의 법에 의해서

5. 이방인들이 이스라엘과 가까워지게 된 것은?(2:12-13)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바울의 전도로
시대의 변천으로
유대인의 회담 때문에

6. 믿는 자가 벗고 입어야 할 것은?(4:22-24)

죄를 벗고 새 것을 입을 것
옛 것을 벗고 새 것을 입을 것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고 새 사람을 입을 것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을 것

7.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오는 약속은?(6:1-3)

영적 축복
건강 축복
물질 축복
잘 되고 땅에서도 장수

8. 바울의 매임 당한 일이 성도들에게 미친 영향은?(6:20)

공포심을 주었음
낙심케 했음
담대하게 만들었음
자랑하게 했음

9.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무엇을 입으라고 했습니까?(6:11)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님의 전신갑주
율법의 가르침
모세의 지팡이

10.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어떠하라고 했습니까?(5:17)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시와 친미와 신령한 노래로서 찬송하라고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오리털의 무게?

 

헐뜯기를 좋아하는 한 여자가 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를 헐뜯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목사님을 찾아가서

지난 날 제가 지은 죄를 보상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세요하면서 애원하였다.

목사님은 당신이 양심의 평화를 찾고 싶다면 오리털을 한 가방 담아서 가져오십시오라고 하였다.

오리털이 가득 든 가방을 준비한 여인에게 목사님은 이 오리털을 온 동네에 다 뿌리고 오시오 하고

말했다.

얼마 후 이 여자는 목사님의 지시대로 하고는 다시 찾아와 목사님, 목사님 하라는 대로 했는데요.

이제 저의 죄가 다 없어진 것인가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목사님은 아닙니다.

다시 돌아가서 조금전에 떨어뜨려 놓았던 오리털을 주워서 다시 가져와야 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한참 후에야 여인은 빈 손으로 돌아와 목사님 바람에 모두 날아가버려서 주워오지 못했습니다

라고 힘없이 말했다. 이에 목사님은 부인의 험담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남을 헐뜯는 말은 쉽게 떨어뜨릴 수 있지만 그것을 다시 거두어 들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교훈하였다.

부인은 이제서야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2)다른 사람을 헐뜯는 것은

바람에 날아가 다시 거두어 들일 수 없는 오리털처럼 거두어 들일 수 없는 무서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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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순 집사(영등포대교구) -

하나님의 손길로 모두 건강 회복

난치병 큰딸 위해 수술대 오른 둘째
수술에 대한 두려움 기도의 동역자들 있어 이겨내


 큰딸 수정이가 간외담도가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난치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말을 잃었다. 왜 이러한 병이 착하기만 한 내 딸에게 찾아 왔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수정이가 병세를 보인 건 2015년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였다. 수정이의 피부는 벌레에 물린 듯 빨갛게 올라 가라앉지를 않았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담낭염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적이 있긴 했어도 그 뒤로 별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았었는데 피부발진이 생긴 것이다. 곧장 병원에 찾아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병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는 간수치가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심해 의사의 권유로 조직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 담도폐쇄증이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나의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

 치료약이 없어 여러 약을 사용하고도 간수치가 오를 때마다 절망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동안 사용한 약이 전부 효능이 없자 올해 3월 의사는 딸에게 2주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검사를 해보니 간이 돌이킬 수 없이 나빠져 이식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수정이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1년 안에 복수가 찰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연년생인 여동생 희정이는 망설임 없이 언니를 위해 검사를 받기로 했다. 만약 희정이가 이식을 해줄 수 없다면 뇌사자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다행히 희정이가 공여자로 간이식을 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받았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두 딸이 수술대에 오를 것을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그러나 원망보다는 기도가 간절했다. 나의 기도는 물론 다른 사람의 중보기도가 절실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기도해달라며 부탁했다. 기도는 점점 확장되어 내가 기도를 부탁했던 분이 또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제주도에 있는 사람까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교구담당 목사님을 비롯한 권사님 집사님들은 딸이 난치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기도해주셨다. 특히 지역장인 안복림 권사님은 수정이와 희정이의 수술을 앞두고 금식까지 하며 기도해주셨다. 이러한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든든했다.

 두 딸의 수술을 생각하면 나의 두 손과 발이 떨렸지만 기도로 하나님이 두 딸과 함께 하실 거라는 믿음만은 흔들림 없이 확고해졌다. 기도의 힘으로 수술절차는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됐다. 둘째는 직장일을 누군가에게 맡기기 어려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다행히 수술이 잡혀있는 5월에는 쉬는 날이 많았고 다른 가정에서 수술 순서를 양보해 원하는 날짜에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의사는 공여자의 담도가 넓고 혈관도 건강해 아주 좋은 사례에 속한다고 말했다. 할렐루야!

 믿음대로 두 딸은 예정된 시간에 수술실에서 나왔고 둘째는 회복 속도도 남들보다 빨랐다. 수술을 할 때 수정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계속 떠올랐다고 한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아픔을 참을 수 있었다고.

 이번 일을 통해 함께 드리는 기도의 힘은 크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앞으로 나의 바람은 수정이도 희정이도 건강한 몸으로 회복돼 다함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딸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기도의 동역자들 너무 감사합니다!

정리=김주영 기자

 


주님께서 주신 생명과 인본주의적 모형/조용기목사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9-10절

 우리의 삶의 주변에는 많은 나무와 풀들이 있습니다. 그런 화초를 본떠서 인간이 만든 인조 화초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멀리서 보면 다 똑같이 보여요. 그러나 실제로 자연적인 나무와 풀을 손으로 만져보면 생명을 느낍니다. 사람이 만든 화초는 굉장히 아름답고 실물과 같아 보이지만 직접 만져보면 생명이 없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우리들은 사람의 생명이 달라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분위기가 다르고, 생명의 질이 달라요. 예수님의 생명과는 이 세상 사람의 생명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생명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비오스’나 ‘프쉬케’는 육신의 생명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프쉬케’는 죽을 수 있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기록할 때는 ‘조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보통 죽을 때 죽는 육신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프쉬케’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은 ‘조에’ 생명이라 그럽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말한 영생의 생명은 ‘조에’ 생명인 것입니다. 

1.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예수님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예수님은 부활하심을 통해서 우리 속에 성령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장 20절~2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1서 5장 12절)

 생명이란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아닌 다른 어떠한 종교나 의식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세계를 영원히 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시는 구주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예수님이 바로 영생을 갖고 우리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목마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에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부에 목이 마르고, 어떤 사람은 사랑에 목이 마르고, 타인의 인정에 목이 마르고,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너희들이 세상에서 보는 물은 마셔도 곧 목마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목마르지 않고 그 뱃속에서 영원히 솟아오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은 다 다르지만 그것을 목말라하는 이유는 행복을 가져오기 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시고 난 다음에 행복이 가슴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무리 마셔도 계속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목말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는 영이 거하는 자리가 있는데,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었기에 영적인 생명은 죽었고 육체의 생명 프쉬케의 생명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거기가 텅 비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의 본래는 영입니다. 육체가 아니고 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영이 죽어서 영이신 하나님과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이 죽은 사람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세상의 칭찬 등으로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데, 아무리 그런 것을 가져도 참 자기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제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참된 자아는 죽었습니다. 참된 당신은 죽었어요. 당신의 겉사람이 살아 있지만 속사람은 죽어 있기 때문에 그 허무한 감정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여러분은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슴 속에는 만족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영이 죽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이 하늘나라세계를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 13절~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고 영혼이 살아난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우리 안에 참된 기쁨과 만족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탄광촌을 방문을 했습니다. 석탄 캐는 탄광촌에 가서 예배를 인도 했는데, 예배를 인도하고 나니까 탄광 광부 한 사람이 ‘목사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음 하나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공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그 탄광부를 보고 ‘내가 하나 묻겠습니다. 오늘 갱도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까?’ ‘예,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데 돈을 얼마나 줍니까?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데 탄광 갱도에서 지하에 내려갔다가 땅 위에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에 얼마를 냅니까?’, ‘아니 우리 돈 안 내요. 회사에서 다 설비를 해서 엘리베이터를 운영을 하기 때문에 돈 안 내고 탑니다.’, ‘아 이렇게 거대한 시설을 하는데 돈을 안 내고 공짜로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내가 참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요, 여기는 돈 안 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돈을 쓰신 비용이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그 엘리베이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 엘리베이터요, 하나님께선 예수님을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서 인간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비용을 많이 들였습니까? 사람은 믿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 돈 안내고 엘리베이터 타는 것처럼 아무 비용 없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단추만 누르십시오.’

 여러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치고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것은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비용이 하나도 들지 않는 공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예수님을 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사랑,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받는데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을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종교들은 다 대가를 지불해야 구원받는다고 말을 합니다. 행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신앙은 행위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지만, 그 죄를 대신 탕감해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과거의 죄도 용서 받고, 지금의 죄도 용서 받고, 장차의 죄도 용서 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가 용서 받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생명인 성령이 들어와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해서 그 대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셔서 변화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변화와 새로운 창조적인 생명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에게 변화를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우리는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 15장 5절)고 그랬어요. 포도나무가 열매를 가지를 통해서 맺습니다. 땅의 영양분을 다 빨아올려서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주는 분은 성령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여러분은 예수님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써 하나님의 성령이 그 가지를 가진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이런 열매를 우리 힘으로 맺어집니까? 아무리 결심을 해도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의 영혼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시면 예수님의 성품이 자연적으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같은 성격이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열매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화를 만드는 것처럼 가짜를 만들어서 밀어 넣으면 들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태복음 7장 15절~18절)

 나무가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못 맺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자연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거듭나야 예수님의 성품이 속에 들어와서 좋은 열매인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생명이 그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난 다음에 인간적인 노력을 아무리해도 인간적인 노력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 2장 21절)

 예수님은 율법에서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하여 정해진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죽음으로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그러지 않고 예수 믿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예수님은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안에서 죄 지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청산하여 죽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보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면 헛되이 죽은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라디아서 6장 15절) 유대인들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고 또 할례를 받으면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있느냐? 예수 믿는 것은 헛된 수고인 것입니다. 폐이론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는 믿음 이외에 다른 것은 전혀 우리 구원에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로 신앙생활에 너무나 놀라운 것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이 과거의 죄도, 현재의 죄도, 미래의 지을 잘못된 죄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다 청산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숨이 넘어가기 전에 뭐라고 말하셨습니까?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평생의 죄악을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또 그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해서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셨고, 그 십자가에 보혈을 통해서 우리 마음과 육체의 질병을 다 청산해 버렸어요. 억센 믿음으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은 것 여러분이 더 이룰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가를 지불해 놓은 것 여러분은 수용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인간의 저주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난 다음에 이 땅은 저주를 받아서 인간의 삶이 가시와 엉겅퀴 속에 고생을 하고 살아갔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나무에 매달려서 저주를 청산한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다.’함과 같이 예수님이 저주 받을 이유가 없는데 인류를 대신해서 주님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저주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주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아 아브라함처럼 축복 속에 살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한 것은 절망을 청산해버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희망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저주와 음부를 청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늘 생각을 하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많이 받고 있는 이유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음속에 품고 다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오중복음을 통해서 절망을 청산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믿음으로 삶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기뻐함과 동시에 오중복음을 통하여서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한 것을 잊지 말아야 돼요.

 나는 한번 어느 나라인지 그것은 세월이 오래 돼서 잊어버렸는데, 부흥회를 갔는데 이 교회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하는데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막 교회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생각에 ‘이 교회는 희한한 의식이 있구나. 예배 보다가 뛰고 싶으면 마음대로 뛰는구나’ 그래서 내가 설교하다가 말고 본 교회 목사를 보고 뒤에 앉아있는데 “목사님, 저 사람 왜 저리 뛰어 다닙니까?” 목사님이 “나도 몰라요. 저 사람 20년 동안 우리 교회 나온 사람인데 왜 저리 뛰어 다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고 “예배 중에 좀 중지 하십시오. 왜 그렇게 뛰어 다닙니까?”, “몰라요. 나 왜 뛰어 다니는지.” 알고 보니까 20년 동안 휠체어에 타고 있던 앉은뱅이에요. 갑자기 하나님 성령께서 가슴을 뜨겁게 어루만져주시더니 귀에 대고 “내가 다 이루었다.” 그러니 그도 20년 만에 처음으로 뛰었는데, 왜 뛰었냐고 하니 ‘내가 다 이루었다. 의자에서 나와서 뛰어라.’ 그러니 자기도 왜 뛰었는지 모르게 뛰었고, 목사님은 20년 동안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예배를 보던 사람이 뛰니깐 왜 뛰는지도 모르고, 저는 처음 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증거 했으니깐 왜 뛰는지 모르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사망의 권세를 다 청산 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오중복음이 여러분 마음속에 얼마나 신앙을 분명하게 하는지 몰라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용서 받았다, 성령 받았다, 긍휼 얻었다, 물질적인 축복 받았다, 영생을 얻었다, 그런 희망을 주님께서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못 믿는 존재가 되지 말고 이 십자가에 여러분을 비교해서 희망을 꼭 잡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을 놓치지 말고 여러분이 희망에 붙잡힌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희망찬 삶을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언제나 분명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이 있으니 꿈이 있는 것입니다. 희망찬 꿈을 꾸고 담대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니깐 사람들이 보기에 놀라운 삶을 사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두 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10절)

 예수님의 십자가를 여러분이 걸머지고 있으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오중복음의 희망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 희망의 결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충만하게 얻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종교적이고 형식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희망찬 인생을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긍정적인 말을 자기 자신보고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낙심되면 내가 낙심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다 이루어 주시므로 희망차다고, 소망차다고, 슬프면 주님이 계시므로 기쁘다고, 자기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님이 다 이루었으므로 여러분 믿음 이외에는 더 할 일이 없습니다. 생명을 믿음으로 얻은 우리는ㄹ한없이 감사해야 될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희망을 갖고 기도를 계속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면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함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하나님이 생명을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것으로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여러분은 이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혼이 살아나서 영 속에 바람 같은 성령이 임하여 계시므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가 있고 하나님과 은혜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해지실 수가 있어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혼이 살았으니 충만한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기뻐하시고,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살려 주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교제하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열매를 풍성이 맺는 성도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대제사장의 기도/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야훼는 네게 복 주시고 지키시기 원하면”
제사장 선포통해 이스라엘에 복 주신 하나님
우리도 하나님이 은혜의 수여자이심 인정해야


 아론과 그의 자손들인 대제사장의 삼중 축복 기도가 민수기 6장 22∼27절에 언급되어 있다. 민수기는 시내광야에서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는 광야로서 뱀과 전갈이 돌아다니고, 먹을 것과 마실 물도 없는 공포의 땅이다. 그러나 광야의 여행이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야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아론의 삼중 축복은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의 힘이요, 담대함의 기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은혜로 왕 같은 제사장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사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열어놓으신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된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예수 안에서 아론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서로에게 선포하며 힘과 용기와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대제사장 아론의 삼중축복은 첫째로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자녀와 재산, 땅, 건강, 그의 임재라는 복을 주신다(창 17:16; 22:17∼18; 레 26:3∼13; 신 28:2∼14). 나아가 이러한 좋은 선물뿐 아니라 모든 위험에서 그를 보호하게 하시고(욥 1:10), 각종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지켜주신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네게 비추신다는 비유는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말씀과 부합된다(시 31:16; 67:1). 그는 곤경에 빠진 백성들을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살피시며, 은혜를 베푸사 대적과 질병과 죄에서 건져 주신다(시 4:1; 6:2; 51:1). 어려운 사람을 보고 얼굴을 돌리는 것처럼 그에게 실망과 낙심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곤고한 인생을 감찰하시고 긍휼히 여기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의 얼굴을 돌리지 않도록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앙망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축복해주어야 한다.

 셋째로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한다.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든다는 말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뜻이다(창 43:29; 시 4:6).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평강이다. 그것은 전쟁과 소요가 없는 평화의 상태뿐 아니라 풍요와 건강, 번영, 구원 등으로 가득한 상태이다. 하나님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총체적인 은혜의 수여자이시다.

 아론의 축복 기도는 모두 세 구절, 15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세 구절은 각각 3단어, 5단어, 7단어로 점층적으로 많아져서 축복이 강조되고 깊어지고 있다. 또한 구절마다 야훼 이름이 한 번씩 들어 있어서 모두 세 번 언급되고 있는데, 야훼 이름이 주어로서 한번만 언급되면 충분하지만 굳이 세 번을 반복한 것은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야훼 이름을 빼면 12단어가 남는다. 이는 복을 받는 사람이 12지파임을 상징한다. 복은 결코 사람인 제사장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매달려도 안 되고, 복 자체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 오직 복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야훼의 복주심이 아론과 그 아들들로 대표되는 제사장들을 통해 전해지게 된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선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러한 축복은 아론의 머리에 있는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적시는 것과 같다(시 133:2). 오늘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인 그리스도인의 축복된 생각과 꿈과 믿음, 특히 축복의 말의 선포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나아가서 아론의 삼중적 축복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론의 축복 기도는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의 마지막에 주어지는 축도와 연관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 종의 축도가 선포될 때 온전히 예배가 마무리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복과 마음의 복과 물질적 복을 주시는 것이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관악대교구 글로리아찬양대 “하나님 찬양은 우리의 사명이죠”


섬김과 헌신으로 23년째 찬양 봉사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후덥지근한 날씨로 나른함이 몰려오는 지난달 19일 오후, 제2교육관 5층 예배실에서는 부드러운 중년 여성들의 찬양이 문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날 모인 40여 명의 여성들은 관악대교구의 글로리아찬양대 대원들이다. 매달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드려지는 대교구 성령대망회의 찬양 봉사를 위해 한 달에 한 번 연습시간을 갖는 이들의 시선은 지휘자 홍옥선 권사의 지휘봉에 집중해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니 활짝 미소 지으며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지휘자의 제안에 함박웃음 소리가 예배실을 한가득 채웠다.

 글로리아찬양대(이하 글로리아)는 우리 교회 16개 대교구 중 유일한 대교구 소속 찬양대이다. 글로리아는 1994년 3월 당시 마창수 관악대교구장의 제안으로 교구 성도들을 중심으로 창단됐다. 이들은 대교구의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기도원 성회, 중국과 대만 등 해외 선교현장을 찾아다니며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해 왔다.
 창단 첫 해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대원이 5명이나 될 정도로 이들에게 찬양대는 각별하다. 창단과 동시에 지금껏 대장으로 섬겨온 김정희 권사는 “관악대교구에 계셨던 목사님들이 교회 개척 후 창립예배를 드릴 땐 찬양대가 없잖아요. 그런 경우 저희를 불러주실 때가 많았어요. 그 예배에 설 때면 대원들도 개척하신 목사님도, 모두 감격하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다 함께 은혜를 누렸어요”라고 말했다.

 추운 겨울, 각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강원도의 외진 교회에 도착해 철야예배에서 찬양을 부르고 그 이튿날 아침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도 있었다. 그렇게 봉사를 마친 후 대원들은 어느 곳에서든 찬양으로 사람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선물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간절히 기도하며 더욱 하나가 됐다.
 글로리아에게 해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교구 소속 교역자들과 성도 그리고 대원들은 기도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재정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십시일반 회비를 모았고, 그래도 부족할 땐 대원들이 직접 오징어, 멸치, 김 등 건어물을 떼어다 시장에 팔아 비용을 충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숨은 일꾼들의 헌신도 글로리아의 토대가 됐다. 김정희 권사는 건물 미화원으로 근무하며 받은 한 달 급여로 찬양대복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권사는 “제가 받은 하나님 은혜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2년 전부터 찬양대 지휘를 맡아온 홍옥선 권사는 지금껏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고 대원들을 섬기고 있다.
 이같은 헌신으로 30여 명이었던 찬양대는 50여 명 규모로 늘어났다. 홍 권사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하라는 시편 150편의 말씀을 되뇌일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명임을 깨닫게 된다”고 간증했다. 대원들은 “주변의 관심과 기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서로 합심했기 때문에 지금껏 찬양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대원들의 선한 마음 그리고 뒤에서 말없이 헌신해온 대원들이 있었기에 찬양대의 이름 ‘글로리아’처럼 23년째 영광스러운 찬양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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