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 안수집사(금천대교구) -

성경을 쓰면 건강하게 쓰임받는다

이삿짐 나르다 3층 높이서 추락 왼발 골절상
강한 믿음으로 전도와 성경필사하니 치유돼
 

 나는 1994년 이삿짐을 나르던 중 발을 헛디뎌 3층에서 그대로 추락했다.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병원에서 진찰결과 가장 먼저 땅에 닿았던 왼쪽 발꿈치의 뼈가 심각할 정도로 으스러졌다고 했다. 의사는 조각난 뼈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치료 후에도 못걸을 수 있다는 소견을 내게 전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내가 걸을 수 없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대로 못걷는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깁스 등 치료를 하고 한 달이 지나 병원을 퇴원하고 통원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뼈가 잘 붙기 위해서는 꾸준히 걷는 재활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 완전히 부서졌던 발을 다시 내딛는 것은 상당한 고통을 동반했다. 저절로 눈에서 눈물이 날정도로 끔찍한 통증이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면서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매달 드리는 남성연합예배에 가면 한 장로님께서 ‘전도실에 와서 봉사하라’고 권유했다. ‘네 생각해보겠습니다’라며 한 달, 두 달 그리고 몇 해를 넘겼다. 이상하게 그 상황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 같아 1995년 1월 1일 전도실 문을 두드렸다. 전도실에서 4주간 집중교육을 받고 전도현장에 투입됐다. 노방전도, 병원전도, 군부대나 경찰서 방문예배 등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들고 다니던 목발을 믿음으로 내려놓고 전도활동에 참여했는데 매주 전도에 참여하면 발이 퉁퉁 부어 고생했다. 때론 너무 아파서 포기하고 싶다가도 이것만 참으면 하나님께서 내 발을 완전히 치료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2002년쯤이었다. 하루는 당시 전도실장님이 친구의 성경필사 간증을 전하며 성경필사에 도전할 것을 실원들에게 권유했다. 서예가로도 활동하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왜 한 번도 성경을 써보지 않았을까라는 의문과 이번 기회에 성경필사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일반적인 필사와 달리 한지에 붓글씨로 성경을 쓴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인지 약 10여 년 2012년 9월에 결국 총 45권의 한지노트에 성경을 모두 필사할 수 있었다. 당시 CBS에서 성경필사캠페인을 전개하면서 한지에 붓글씨로 쓴 내 성경노트가 방송을 타고 전시회에 전시되기도 했다. 

 그런데 성경필사를 하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하다보니 자연스레 ‘왜 사람은 아픈 걸까?’, ‘병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의문들이 떠나질 않았는데 성경을 읽고 쓰다 보니 성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이나 예레미야 17장 10절 등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걸어 들어 왔다. 이영훈 목사님의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의미도 이해가 됐고 주님께서 왜 ‘항상 기뻐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지도 깨닫게 됐다. 우리가 절대긍정과 절대감사, 항상 기뻐하는 것이 이런 병마나 아픔이 찾아오지 못하는 예방법이었다. 나는 이렇게 성경에서 여러 가지 건강비결을 찾았다. 나는 내가 찾은 건강비결을 이웃에 전하며 전도하고 간증했다. 

 현재 내 발뒤꿈치는 99% 치료됐다. 걸을 수 없다던 내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일정도이니 사실상 완치나 마찬가지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최근 난 하나님의 뜻을 더 이해하고자 두 번째 성경필사에 들어갔다. 현재 민수기 2장을 쓰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실 더 큰 가르침과 복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매우 기쁘다. 바라기는 많은 성도들이 나처럼 성경필사에 도전하고 큰 복을 체험하길 바란다. 할렐루야. 


야곱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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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들어갈 말로서 맞는 것은?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  )에 들어갈 말로서 맞는 것은?(24장)
      "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               )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나는 홀로
나와 내 집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나는 전심 전력하여



징기스칸의 맹세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위대한 왕 징기스칸((1155~1227)은 매를 이용한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사냥을 위해 숲길을 달렸습니다. 많은 신하들이 그의 뒤를 따랐고, 왕의 팔목에는 사냥하는 매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날 왕은 종일토록 짐승을 찾아 다녔으나 몇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일행은 궁전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왕은 그 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름길을 택해 혼자 말을 달렸습니다. 그러다 심한 갈증을 느낀 그는 샘물을 찾았지만 오랜 가뭄으로 샘은 말라 있었습니다.  

 

왕이 너무나도 빨리 달린 탓에 한 명의 신하도 보이지 않았고 아끼던 매도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머리 위의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왕은 물 잔을 꺼내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겨우 잔에 물을 찼습니다. 이를 마시려는 순간 보이지 않았던 매가 날아와서 주둥이로 그 물잔을 치고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땅바닥에 떨어진 잔을 주워들고 다시 물방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잔에 물이 반쯤 차자 왕은 물을 마시려 잔을 들어올렸습니다. 그 순간 매가 또 다시 날아와서 잔을 엎었습니다.   

화를 억지로 참으며 왕은 또 다시 물을 잔에 받아 물을 마시 먹으려는 순간 매가 또 날라 와 물을 엎질렀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은 칼을 꺼내어 매를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왕은 물줄기를 따라 바위를 기어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고여 있던 물이 바위틈을 따라 한 방울 씩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을 마시려 엎드리다 커다란 독사 한 마리가 물에 빠져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제 서야 왕은 자신이 아끼던 매가 왜 물을 마지지 못하게 방해한 이유를 알고는 자신이 화를 내서 매를 죽인 것에 대해 크게 후회했습니다.“오늘 나는 매우 쓰라린 교훈을 배웠다. 앞으로는 어떤 경우라도 홧김에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손옥희 집사(금천대교구) -

42년 만에 꿈을 성취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가난으로 낙심과 절망 희망을 잃었던 삶에서
주님이 보내주신 사람들로 작가의 꿈 되찾아

 

어린시절 우리 집 형편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가난에 찌들어 ‘오늘만 살고 그만 살까’하는 생각이 언제나 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도 할 수 없었고 전자회사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어떻게든 학교를 졸업하고 싶어 밤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이른 나이에 남편을 만나며

끝내 마치지 못했다. 만약 내 인생에서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과 씨름하며 아무 꿈과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낙심과 절망이 아닌 꿈을 꾸고 살도록 세 명의 인도자를 보내주셨다. 

나에게 처음으로 꿈을 심어준 사람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학교 글짓기 시간에 나의 재능을 알아봐주시고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나에게 “옥희야 너는

지금 할 수 없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나중에라도 작가가 되어라”고 말해준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5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내 귓가에 맴돌아 작가의 꿈을 갖게 됐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게 바빠 그런 꿈을 잊어갈 무렵 금천대교구 고순덕 권사님이 나를 교회로 인도했다.

권사님을 처음 알게 된 건 30여 년 전으로 둘째딸을 하루 봐준 스쳐가는 인연인줄로만 생각했던 권사님을 10여 년이 흘러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권사님은 교회 구역장으로 전도의 열정이 뜨거웠다.

나에게 매일 찾아와 전도를 하는데 처음에는 웃으며 응대했지만 갈수록 귀찮아져 그분이 오실 때쯤 불도 끄고 없는 척하기에 바빴다. 그런데도 어찌나 끈질기게 전도를 하는지 어느 날은 남편 집사님과 같이 와 성경 한권을 선물하셨다.

성경 값을 확인해 보니 3만원이기에 딱 3만원어치만 같이 가주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예배를 드리는데 그 시간이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에 나는 다시 한번 꿈을 꾸게

됐다. 내가 갖고 있는 꿈을 위해 만학도 학교에 입학했다.

 나를 전도하고 신앙을 심어준 것이 고순덕 권사님이라면 신앙이 꽃 피도록 도와준 분은 박분자 권사님이다. 만학도 학교에서 박분자 권사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국민일보 후원선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찬양과 봉사를 하면서 나의 믿음은 날로 좋아졌다.

주님을 알리는 게 기뻐 ‘행복으로의 초대’를 가지고 매일 전도도 하며 점점 믿음이 커지자

나의 꿈도 분명해졌다. 만학도 학교에서도 글쓰기 대회에 나가면 항상 입상해 초등학교 때

가진 작가의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며 3번의 장학금을 받았다. 할렐루야!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오기까지 42년이 걸렸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흔들려 나는 우리 교구의 김현동 목사님에게만 이야기 하고 그 누구에게도 기도부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험날 갑자기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떠올랐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이 말씀에 따라 나는 자신 있게 시험을 보고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나중에야 김현동 목사님과 고순덕 권사님이 새벽부터 내가 시험 마칠 때까지 기도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 고순덕 권사님은 그날 수능기도회에 참석해 학부형으로서 띠까지 두르고 기도하셨다는 이야기에 내 마음이 뭉클했다.

나에게 꿈을 심어주고 희망을 주는 기도의 어머니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낙심과 실망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나도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작가가 되어 예전의 나처럼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리=김주영 기자


부활의 은혜와 축복/이영훈목사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0장 19~23절

0. 들어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적이요,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아니하셨더라면 지금 우리는 죄와 절망 가운데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고, 죽음 이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그 이유로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부활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면서 한평생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1. 평안의 축복

  주님께서 주신 축복은 평안의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은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20장 21절에는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문을 꼭꼭 닫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두 차례나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어 말로 ‘샬롬’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샬롬!’하고 인사합니다. 만날 때도 ‘샬롬’하고 인사하며, 헤어질 때도 ‘샬롬’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평안이 임하도록 ‘샬롬’하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평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샬롬’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영원한 평안입니다. 영혼육의 전인적인 평안입니다. 이 평안이 넘쳐날 때 어둠이 사라지고,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이 사라지고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안은 영원한 것이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이 평안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가 임할 때 근심, 걱정이 다 물러가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412장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2.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3.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후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어떤 문제를 갖고 나오셨습니까? 어떠한 염려, 근심, 걱정을 갖고 나오셨습니까? 어떠한 상처로 인해 고통하고 계십니까?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으시고 주님이 주신 참 평안함으로 모든 결박에서 자유함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때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여. 이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에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저 북녘 땅에도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대한민국에 평화통일의 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평안함이 임하면 그때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14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주님의 평안함이 임하고 난 다음 회복되어서 일어나서 활동하게 된 마틴 피스토리우스라는 분을 소개합니다. 평범하게 살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년이었습니다. 12살이 되던 해에 목에 통증이 오더니 갑자기 먹지도 못하게 되고, 말도 못하게 되고,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병의 원인도 모르고 의사들은 이 아이가 곧 죽을 거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어서 누워있었는데 4년이 지나고 난 다음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신마비 상태였기에 의식이 돌아온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평생을 이렇게 내가 의식은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에 갇혀 죽어가겠구나.’ 절망했습니다.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저는 화분에 담긴 식물과 같았습니다. 물을 주어야 하며,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모두들 익숙해진 탓에 제가 다시 의식이 깨어나서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제가 여생을 혼자서 내면에 갇힌 채 살게 될 거라는 잔인한 현실이 덮쳐왔습니다. ‘나는 영원히 구조되지 않을 거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저는 꿈도 희망도 기대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날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랑 다투고 난 다음 옆에서 이렇게 푸념하신 것입니다. 울면서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네가 죽어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큰 충격이 다가왔습니다. ‘엄마마저 나를 버렸구나.’ 그 절망하던 때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마음에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나서 무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마음에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그때를 고백합니다. “완전하게 의식을 찾았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모르고 죄, 성경, 회개 등의 의미는 몰랐지만 그냥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살아있음을 몰랐지만, 하나님만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육신에 갇힌 상태에서 해방하셔서 구출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재활 치료사가 어느 날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래서 재활 훈련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해서 컴퓨터 음성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고 공부까지 하게 돼서 대학을 졸업하고 웹 개발자로 사업도 하게 되고 믿음 좋은 자매(조안나)를 만나서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그리고 가장 작은 기도까지도 응답하신 은혜에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은 항상 거기에 한결같은 나의 친구로 함께하셨습니다.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만나던 그곳에 계심을 항상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고 나서 그 다음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그 사명이 무슨 사명이냐? 복음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2. 전도의 축복

  전도의 축복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는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 많고 어려움 많은 사람 가운데로 우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우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은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삽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영생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다 예수 믿고 주님 앞에 나오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한 사람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사업장에 있는 사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학교에서,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딜 가든지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니까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 살았습니다. 로마서 1장 14절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처해있습니까?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소년 소녀 가장들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전기담요 하나로 지내는 독거노인들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장애를 겪는 장애우들이 있습니다. 또 버려진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미혼모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고생하며 인권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다문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사랑을 들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사랑을 품고 그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당하고 슬피 울며 외롭게 홀로 있는 자들에게 우리가 주의 사랑 들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케리 슉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속에 품고 다니는 복음 자체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메시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신다. 메시지를 행동으로 옮기라! 세상 속에서 실제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라!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에게 복음이 되어 주길 원하신다!”
  ‘주여, 우리를 사용하여주소서.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죄와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예수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예수의 사랑 들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나아가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3. 성령 충만의 축복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오셔서 예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성령 충만 받기 원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 받을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과 5절은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할 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절은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반드시 받아야 됩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늘 시험에 잘 들고, 상처 잘 받고,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부분 이러한 분들은 자기 감정에 충만해서 쉽게 화내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 받으면 달라집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개의치 아니하고, 환난과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싸워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하오니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를 충만케 하여주시옵소서.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살리는 영입니다. 치료의 영입니다. 회복의 영입니다.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영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자연히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 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권능이 임해야 합니다. 왜 권능이 임합니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권능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우리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로 23절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 삶 가운데 넘쳐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참지 못합니다. 쉽게 분노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미워하고, 다투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셔서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기쁨이, 주님의 평화가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데 성령 충만 받고 복음을 증거 하기위해서 우리가 해결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 가운데 상처를 주고, 내 마음에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4. 용서의 축복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의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3절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용서는 부활의 메시지의 완성이요, 사랑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값없이 용서해 준 것처럼, 그것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기까지 희생의 값을 치루시면서 우리를 용서해주셨는데 우리도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값없이 용서를 받고나서도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싸움은 상대편을 때려눕혀야 이깁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싸움은 용서해야 이기는 것입니다. 용서는 최선의 복수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용서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용서할 때 응답이 다가옵니다. 기적이 임합니다. 용서할 때 우리 마음에 치료가 강물처럼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천국 열쇠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천국 열쇠를 소유하는 능력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해야만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응어리진 것이 있고 상처받은 것을 그대로 품고 살아가면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 열쇠를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도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은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자기 뺨을 때리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요즘 사람들 중에 누가  한 빰을 치는데 아주 두 뺨을 때려라고 내 주겠습니까?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합니다. 누가 나를 모욕하면 견디지 못하고 분노합니다. 이미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실 여부도 확인해보지도 않고 분노에 치를 떨면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까지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들을 용서하여주옵소서.”
  이 좁은 땅에 살면서 우리가 너무나 그동안 많이 다투고 서로 갈등하고 미워했습니다. 나와 다 다르면 적이라고 생각해서 심한 갈등과 대립이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문제가 그로 인해서 우리 사이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책임이 큽니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가 남북이 나눠져 있는데 또 동서로 나눠 서로 다투게 하고, 갈등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를 묶고 있는 결박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었던 모든 기록이 나를 칭칭 감고 있어요. 그래서 보통 때는 잘 모르는데 내가 좀 약해지면 내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내가 예배드리는 데 소홀이 하고, 내가 주님 말씀 묵상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삭 솟아올라 와서 우리를 다시 얽어맵니다. 우리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미워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화내게 하고 다투게 만듭니다.
  주여,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용서하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사로잡혀있는 나를 주님 불쌍히 여겨주셔서, 예수의 사랑으로 예수의 용서로 모든 미움과 아픔의 결박을 풀어버리고 참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전신 마비 사고를 당한 후 3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 경찰을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뉴욕경찰이었던 스티븐 맥도널드는 1986년 맨하탄 센트럴 파크를 순찰하던 중에 15살 소년이 쏜 세 발의 총을 맞고 심지어 총알 하나가 척추를 관통해서 목 아래쪽을 영원히 쓸 수 없는 전신 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경찰이 된 지 2년 밖에 안 됐는데 그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때 아내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웃고 나갔던 자기 남편이 총에 맞아갖고 온몸이 불구가 되어서 병원에 누워있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그 가정에 고통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이 경찰은 주님을 잘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난 아들을 보면서 용서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한순간에 저는 활동적인 경찰관에서 몸도 못 가누는 범죄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 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살아야 한다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지 같았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에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저를 쏜 젊은 친구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건 발생 후 9개월이 지난 1987년 3월 1일, 휠체어를 타고 아들의 유아세례 참여 후에 자신에게 총을 쏜 그 소년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있는 소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그 소년이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 자기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소년을 용서한 이유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분노는 감정 낭비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용서한다는 것이, 그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어요.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저 자신도 악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저 자신이었어요. 그 사고는 내게 호된 신앙의 시험이자 나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주고, 내면과 영원에 집중하도록 해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 화난다고 다 화내지 마세요. 그건 다 감정 낭비라고 그랬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고 웃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루가 멀다고 부부싸움을 하는 집 봤어요. 그냥 부부싸움을 안하고 그날 하루를 안 지나가면 섭섭하대요. 또 싸우고 잠자리에서 또 싸워요. 그렇게 살아서 서로 그렇게 상처에 상처를 입히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용서를 실천하고 용서 캠페인을 벌입니다. 폭력 끊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학생들을 계몽합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미국의 학교 588곳을 방문해서 말씀을 전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감동을 끼쳤습니다. 살아있는 성자, 진짜 영웅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시장, 시경국장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나와 애도했습니다.
  그가 활동한 폭력 끊기 프로그램의 주체자인 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 목사님은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그리스도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관계 속에서 깨어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다. 증오를 증오로 갚으면 증오만 더 증식시킬 뿐이며,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 짙은 어둠만을 더할 뿐이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이 미움을 몰아낼 수는 없다. 오직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은 미움을, 폭력은 폭력을, 그리고 가혹함은 가혹함을 낳는다. 사랑만이 오직 적을 친구로 변화시킬 힘이 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기도 너무 짧은 인생길을 살아가는데 미워하고 다투고 욕하고 성질내고 살다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서서 뭐라고 우리가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주님 앞에서 변화되어서 이와 같이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주여, 이 땅에 평화를 주옵소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주옵소서! 성령 충만을 받고 용서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연약해서 용서하지 못합니다. 쉽게 분노합니다. 쉽게 상처받습니다. 그런 나 자신에 갇혀있는 저희들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오늘 이후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최종학 집사(서대문대교구) -

위액 역류로 고통, 신유기도 시간에 치유 받아

구원의 확신 받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 살게 돼
남선교회 봉사하며 날마다 기쁨과 감사 넘쳐

 남선교회 외국인안내실에서 1부 차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나는 올해 2월 큰 은혜를 체험했다. 2월 말쯤 위액이 식도로 역류해 고통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러다가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약을 복용하거나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점점 더 역류하는 횟수도 많아지고 밤에 잠들 때에도 무척 고통스러웠다. 3월 6일 주일 3부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내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목사님 입술을 통해 ‘위액이 역류하는 것이 나았습니다’라고 선포해주시면 깨끗히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영훈 목사님께서 “식도에서 위로 자꾸 위산이 역류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분을 주님이 치료해 주셨습니다”라고 선포하시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그 시간 전까지도 위액이 계속 역류해서 목이 심하게 아프고 헛기침을 했었는데 그 시간 이후로 역류하는게 없어졌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저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 맞는거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시간 이후로 단 한번도 위액이 식도로 역류한 적 없이 깨끗이 낫게 됐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늘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지 못했던 나를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니 정말 감사했다. 마치 내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신유말씀을 선포해주신 목사님께도 너무 감사했다.

 나와 같은 기적을 2년 전 큰 딸도 체험했다. 아이가 교회에 가려고 콘텍트 렌즈를 끼는데 눈 흰자위가 부풀어 오르는 일이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렌즈를 끼지 못하고 그냥 교회에 갔는데 병원 문도 안 여는 주일이라 걱정이 됐다. 큰 아이가 주일 2부 예배 찬양대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그날 2부 예배 설교 후 이영훈 목사님이 신유기도 시간에 “교회 오는 길에 눈이 아파서 고통 당한 분이 나았습니다”라고 선포하셨다. 그 순간 딸의 눈은 깨끗하게 나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그동안 나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2000년에 아내의 전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게 됐다. 나는 그저 주일예배만 왔다 갔다 할 뿐 믿음이 없었다. 그러던 중 10년 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삶이 바뀌길 원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했다. 3박 4일 작정으로 기도원을 다녀왔는데도 특별한 체험이 없었다.

 두 달 후 나는 내가 구원받은게 맞는지 주님의 확실한 응답을 받고 싶어 다시 기도원에 올라가 5일 금식을 했다. 5일째 되던 마지막 날 2부 예배 때 목사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다. 목사님은 혈루증 여인에 대해 설교하셨는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말을 하며 나를 지목하셨다. 큰 창이 날아와서 내 가슴에 꽂힌 것 같았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는 확신이 왔다. 내 삶은 그 때부터 달라졌다. 매일 아침 7시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날마다 긍정과 감사의 고백이 나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나는 성경학교·대학·대학원 공부를 했다. 주님의 사랑에 감사해 봉사할 곳을 찾다가 남선교회 외국인안내실에서 봉사도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직장도 들어가게 됐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주님의 은혜로 집도 장만하게 됐다.

 하나님을 섬기니 주님은 복에 복을 더해주셨다. 두 딸도 대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큰 딸은 교회학교 유아부 교사, 작은 딸은 주일 5부예배 찬양대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아내 이명윤 집사는 지역장으로  헌신하며 기도를 많이 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을 좋아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 마음이 주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채워진다. 우리를 늘 사랑으로 이끌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셨나/조용기목사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 15장 1~8절)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하는 것은 지어낸 이야기라고 공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확실히 죽으시고 확실히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십자가 처형은 로마 시대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을 선고 받으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고문을 당하는데 이때 받는 태형은 매우 끔찍했습니다. 채찍에 뼛조각을 박아 넣어서 한번 때렸다가 채찍을 당기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왔습니다. 많은 죄수들이 이 채찍으로 맞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형벌도 받기 전에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서 그 제자들이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려고 할 때, 로마 군인이 와서 창을 가지고 예수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성경에 보면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이미 세상을 뜨신 예수님의 시체에 창을 찔러서 물과 피가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폐와 심장에서 물이 고였다가 흘러나온 것으로 주님이 죽으신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확실함 (확실히 죽으시고 확실히 부활하셨다)

  예수님께서 확실히 죽었습니다. 그런데 또 확실히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의 손에 잡혀 처참히 고통을 당하시고 만인이 보는 가운데 갈보리 산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기가 죽으면 들어려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장사한 지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의 부활하신 소식을 전했지만 제자들은 선뜻 믿지 못했습니다. 또 제자들 중에 도마라는 제자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기가 막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어떻게 온갖 조롱을 받고, 핍박을 받고 원수들에게 잡혀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았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보지도 못하고 떠도는 소문으로만 들었다면 순교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가짜임을 증명하고자 했던 미국의 리 스트로벨이라는 사람이 실화를 담은 영화를 제작해서 내놓았습니다. 리 스트로벨은 미국의 예일대학 법대 출신으로 시카고 트리뷴지의 법률 담당 기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독교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기독교 변증가요 베스트셀러 작가로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생활을 다 바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사람, 증인들이 참 많습니다.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증인들이 예수님 부활하신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1절로 14절에 보면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20장 15절로 1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제일 처음 만난 분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와 여자들이었습니다. 여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 모이는 곳에 뛰어가서 알리는데 제자들은 믿지를 못합니다. 심지어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곁에 와서 그들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로 16절에 보면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두 제자가 걸어가는데 곁에 와서 함께 걸어가는데 예수님인줄 제자들은 몰랐습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누가복음 24장 29절~31절)

  주님이 그들과 헤어지려 하자, 제자들은 예수님 함께 이야기를 좀 더 하기 위해서 여관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고 쉬고 같이 가자고 권유하고 예수님을 인도해서 여관에 들어가서 식탁에서 밥 먹으려고 할 때 예수님이 떡을 떼어 축사를 하고 나누어 주니 떡을 받자 예수님인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두려워해서 또 다른 제자들은 자신들이 모여있던 곳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고 반가워하는 것을 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한복음 20장19절~20절)

  그러나 그곳에 없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를 않습니다. 며칠 수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곳에 다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20장 24절로 28절에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마는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은 동분서주 하시면서 제자들을 끌어 모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있은 이후에도 베드로는 고기 잡으러 다른 제자들과 함께 디베랴 바다로 갑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요한복음 21장 1절~4절)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밤새 그물질을 하던 제자들이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해변가에서 흰 옷 입은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거기에 뭐 고기가 있느냐?’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때 물고기가 심히 많이 잡힙니다. 그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이다. 저 음성이 예수님의 음성 아니냐?’라고 외칩니다.

  제자들이 빨리 배를 저어서 해변에 나오니까 예수님께서 장작불을 펴 놓으시고 고기와 떡을 구워놓고 제자들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디베랴 바다에 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감격하는 모습을 봅니다.

  갈릴리의 산 위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날 처소를 예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마태복음 28장16절~17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500명 이상의 성도들이 일시에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바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로 8절에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팔삭둥이 같은 자기에게도 주님이 나타났다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을 한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5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장 9절로 11절에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예수님을 부활하신 주님으로 본 것이 아니라 수 백 명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했다는 것은 부인하려고 달려들면 부인할 수 없고, 긍정적으로 살아난 사실은 너무 증인이 많아서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2. 죄책감에 짓눌린 베드로를 용서하심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신 큰 일이 있습니다. 제자 중에 수제자라고 자랑하던 베드로가 이제 주님을 따라다니던 삶을 중지하고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면서 디베랴 바다에 어부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알고 그를 만나 주시고, 치료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뜰에서 심문을 받을 때 두 번은 모른다고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결단코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생애에서 제자들의 격려를 가장 필요로 할 때가 재판을 받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그 곳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려는 말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제자들은 다 떠나고, 심지어 두 번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도무지 그를 모르노라.’고 변명을 합니다.

  자기 선생님을 심적 도우심이 가장 필요한 때 격려하는 말 한마디 안 해주었으니 그 죄책이 베드로를 짓눌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떡을 주고 생선을 구워서 먹이고 난 다음에 베드로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은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 주님. 나는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 사람으로 사랑합니다. 아가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대답을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자신은 이미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꿇어 앉혀서 ‘야 이 비린내 나는 고기잡이야, 나를 그들 앞에서 저주 하고 맹세해서 가로되 네가 나를 모른다고 그랬지? 내 얼굴을 쳐다봐. 알겠나? 모르겠나?’라고 말하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떡 다 먹이고 생선 구은 것 먹이고 난 다음에 “베드로야, 너는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 나는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 사람의 사랑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랑은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 때 주님이 “내 양을 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 세상에 자기처럼 못 믿을 행동을 한 사람을 보고 주님이 양을 치라는 것은 인정을 해주는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예수님이 두 번째 또 묻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 하느냐?’고 질문을 하십니다. 베드로는 다시 “주님, 나는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주님이 또 한 번 “내 양을 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한참 있다가 예수님이 “베드로야, 네가 나를 필레오 하느냐?”라고 질문을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람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질문을 할 때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했다가 세 번이나 부인한 저를 보고 지금은 인간적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한다고 두 번 말을 했는데 이제는 진짜 인간적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나도 몰라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 또 다시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배반한 아주 고약한 사람이라도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셔서 다시 재기할 수 있게 해주시는 은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났던 제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잘못을 지적하고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넘어진 사람을 찾아가서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재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장 15절~17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잘못을 용서해줄 뿐 아니라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자격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때문에 베드로로서는 그날이 재생하는 날보다 더 중요한 날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람인 이상 삶의 형편에 따라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신앙에 잘못된 행동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찾아와서 도로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죄책에 눌린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 신앙을 회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해 버렸어요. 우리는 영원한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이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우리 죄의 값이 1천원이라면, 예수님은 1천원짜리 죄를 청산할 때 주님의 피 값은 1조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한 평생 지은 죄를 다 값으로 치면 천 원입니다. 거기에 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값은 1조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여러분 죄는 예수님 은혜 속에서 흔적도 없어집니다. 엄청난 은혜로서 우리를 씻어주고 용서해주고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내가 지은 죄를 내가 갚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가치 있는 예수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마귀가 우리를 참소할 수 있을 정도의 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를 지적당해서 심판 받는 일이 없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렇게 해방시켜 주셨으니 이제 내 팔자 좋게 죄 짓고 살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속에 들어와 거하심으로 성령의 꾸짖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여러분에게 변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팔 벌리고 서서 ‘이리 오라’고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줄곧 서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나선 것처럼 우리를 찾아서 나서는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목자보다 더 먼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신분에서 인간의 신분이 되기까지 죄인들을 찾아 무한히 먼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우리를 찾기 위해 인간의 신분이 필요함으로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일생을 뒤를 쫒아서 따라오며 여러분을 찾아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여러분과 나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대신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여러분 대신에 짊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아닙니다. 죽음은 예수님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끌어 모아서 그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과 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이 부활절 날 깊이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계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있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생명 내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신 것은 죄 값으로 말미암아 내가 용서받은 의인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서 전신이 살이 떨어져 나가고 가죽이 벗겨지고 했는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병을 앓고 있으면 주님에게 미안해서 못 견딥니다. 사실 주님은 여러분 병 때문에 자기가 얻어맞은 것입니다. 대신 채찍에 맞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 대신 병의 채찍에 맞았는데 이제 왜 또 우리가 병들어야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대속해주신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건강하기 위해서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대신하기 위해서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죄를 대신 갚아주셨고, 여러분의 병을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셨고, 여러분의 저주를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서 여섯 시간 동안 피를 흘리셨는데 구약에는 ‘나무에 달린 자가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은 나무에 매답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나올 때 하나님이 땅을 저주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오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비극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가시와 엉겅퀴를 당신 몸에 받아서 대신 찔리고 이 고달픈 인생살이를 대신 살아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 병을 감당하셨으니, 주님이 갚아주신 것만 해도 한없이 감사한데 내가 무슨 자랑한다고 병을 짊어지고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이 내가 너희 병을 대신 짊어졌다고 말씀하시니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믿고 나가야 돼요. 건강의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질 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4로 7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살리는 현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살아났고 지금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미래에 있을 우리의 부활이 확실히 증거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성령께서 우리 인간을 거듭나게 하신 그 능력으로 부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지나간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사건으로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해서 지금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봐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인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는 것입니다. 영으로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확신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주님 만나달라고 기도하면 여러분이 성령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어려운 환경이 닥쳐올 때마다 이렇게 소리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계신다. 우리 주님은 살아계신다!”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앎으로 굉장한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살아계심으로 여러분은 죄에 대해서 질병에 대해서 저주에 대해서 대결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이 원수들과 싸울 때, 용기와 힘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함으로 종교개혁이라는 과업을 완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장20절)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사 지금 살아계신 주님을 매순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바라보고 박수를 쳐야 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찬양을 불러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항상 우리가 같이 계시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1장 30절~31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일치가 되고, 예수님이 여러분과 일치가 되고 예수님은 우리의 안에 들어와서 우리 죄와 용서가 되시고, 우리 치료가 되시고, 우리 아브라함의 축복이 되시고, 우리의 부활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 원수들을 다 정복해 버린 것입니다. 날 대신해서 나의 인생의 부정적인 세력을 멸하시고 예수님 당신의 부활을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용서 받은 의인입니다. 여러분들은 치료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 승천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정체성이 믿지 않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완전히 거듭나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의로운 사람, 건강한 사람,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 부활을 얻은 사람, 성결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 그것을 우리가 알고 믿고 입술로 시인해야 예수님을 모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그 정체성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질병을 담당하셨고, 몸이 찢어졌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나무에 매달려 저주를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허락한 것입니다. 우리 대신해서 죽어 사망과 음부를 쳐서 멸하고 부활과 영생을 가지고 나와서 여러분에게 한없는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새 것이 된 것을 스스로 알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을 꿈꾸어 보고, 힘껏 기도해서 기적이 일어난 체험을 해야 되고, 새사람이 된 것을 끝까지 믿고 여러분 생활에 그런 열매가 맺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죄와 저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흑암에서 건지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늘 이 사랑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이제 더이상 죄와 저주의 노예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용서받은 의인으로, 성령충만하며, 복된 삶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드시                        

            

 


창세기 20선 퀴즈(1)

 

 

 

1. 창조사업에서 육지와 바다가 분리된 날은? (창1:9-10, 13)

 ① 첫째 날     ② 둘째 날      ③ 셋째 날      ④ 넷째 날


2. 제 삼일에 창조하신 것은? (창1:10-13)

 ① 빛  ② 사람         ③ 생물         ④ 바다와 육지


3. 천지 창조시 새들을 만드신 날은? (창1:22-23)

 ① 다섯째 날   ② 둘째 날      ③ 셋째 날      ④ 넷째 날


4. 사람과 동물이 창조된 날은? (창1:24-27)

 ① 각각 다른 날에      ② 같은 날에    ③ 동시에       ④ 동물이 하루 전에


5. 하나님이 채소와 과일 나무를 창조하신 날은? (창1:11)

 ① 둘째 날     ② 셋째 날      ③ 넷째 날      ④ 다섯째 날


6. 조류와 어류를 창조하신 날은? 창1:21

 ① 첫째 날     ② 둘째 날      ③ 넷째 날      ④ 다섯째 날


7. 창조가 이루어진 기간은? (창1:31, 2:1)

 ① 5일        ② 10일        ③ 6일  ④ 9일


8. 창세기 1장의 인간 창조 기간은? (창1:24-27)

 ① 천지창조 전에               ② 천지창조 후에        

        ③ 천지창조 중간에      ④ 제7일에


9. 창세기 2:7절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성 요소는?

 ① 하나        ② 둘   ③ 셋   ④ 넷


10. 에덴동산은? (창2:8)

 ① 동방에 있었음               ② 지상에 없었음        

        ③ 유럽에 있었음        ④ 아프리카에 있었음


11. 에덴동산을 흘러간 강들은? (창2:11-14)

 ①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② 유브라데, 아바나, 힛데겔, 기혼

 ③ 힛데겔, 요단, 비손, 유브라데          ④ 요단, 유브라데, 비손, 기혼


12. 에덴동산의 강 이름 순서는? (창2:11-14)

 ① 기혼, 비손, 힛데겔, 유브라데          ②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③ 힛데겔, 유브라데, 비손, 기혼          ④ 유브리데, 힛데겔, 비손 ,기혼


13. 빛과 해, 달, 별을 만드신 날이 맞게 짝지어진 것은? (창1:3,5,16,19)

 ① 첫째 날, 셋째 날    ② 둘째 날, 셋째 날     

        ③ 첫째 날, 넷째 날     ④ 둘째 날, 다섯째 날


14.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이 없는 창조 날은? (창1:6-8)

 ① 둘째 날     ② 셋째 날      ③ 넷째 날      ④ 여섯째 날


15. 육축과 새와 들짐승들의 이름은? (창2:19)

 ① 자연히 생김         ② 하나님이 지으심      

        ③ 아담이 지음  ④ 진화에 의해 생겨남


16. 구약에서 짐승이 말한 것은? (창3:1, 민22:28)

 ① 한 번       ② 두 번        ③ 세 번        ④ 네 번


17. 인간 최초의 범죄자는? (창3:6,20)

 ① 가인        ② 하와         ③ 아벨         ④ 에녹


18. 사람이 옷을 입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창3:7)

 ① 창조 직후부터               ② 범죄 후부터  

        ③ 홍수 후부터  ④ 바벨탑 사건 후부터


19.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어서 입혀 주신 옷은? (창3:21)

 ① 무화과 나뭇잎 옷    ② 털옷         

        ③ 가죽옷       ④ 통옷


20. 제일 처음 살인한 사람은? (창4:8)

 ① 두발 가인   ② 가인         ③ 셈           ④ 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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