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11> - 역사신학 ② - 중세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 <편집자 주>

 지난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신학(교회사)이란 기독교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오늘은 역사신학 연구를 위한 시대구분 가운데 중세에 대해 알아보고 이 시기에 기독교는 어떠한 특징을 갖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살펴보아야 할 주제들은 무엇인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중세의 개념

 중세란 중간 시대를 뜻하는 라틴어(매디움 애붐)를 번역한 말로서 서로마제국의 멸망(476)으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1517) 직전까지를 가리킨다. 특별히 ‘중세’라는 단어는 15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문예부흥)와 연관되어있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인문주의자들의 목표는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을 본받아 인간 중심의 사회, 즉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돌아가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근원(고전)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당대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던 고전 시대 사이에 놓인 ‘흉물스러운 시대’를 극복하려 했다. 그것이 바로 중간기(중세)였다. 그들은 그 ‘중간기’를 가리켜 ‘배워야 할 가치 있는 문화가 전혀 없는 암흑기’라고 폄하했다.


 2. 중세의 시작

 학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중세의 끝을 종교개혁의 시작 무렵(15세기 말∼16세기 초)으로 보는 것에 큰 이견이 없는 반면, 그 시작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내고 있다. 독일 할레 대학에서 문헌학 역사학 지질학을 가르치던 켈라리우스(C. Cellarius, 1638∼1707)는 중세의 시작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으로 주장했다. 이와 달리 일부 학자들은 게르만족의 용병 대장이었던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을 중세의 시작으로 여기며, 또 다른 일부는 교황 그레고리 1세가 교황 자리에 오른 590년을 내세운다. 이러한 차이는 저마다 중세를 규정하려는 시각이 달라서 나타난 현상이다.
 다만 이러한 다양한 기준들 가운데 게르만족에 의한 서로마제국의 멸망(476)을 중세의 시작으로 삼는 것이 유익하게 보인다. 그 사건을 기준으로 교회뿐만 아니라 문화 및 사회 모든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3. 중세의 특징

 고대와 구별되는 중세의 경제적 특징은 반(半)자유 농민들이 사회적 기반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문화적 특징으로는 14∼16세기에 걸쳐 전 유럽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와 ‘인문주의’(휴머니즘)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인 특징으로는 로마제국의 쇠퇴와 함께 게르만 민족이 서유럽의 정치적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흔히들 게르만족을 독일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게르만족 가운데 한 부류가 독일인이지 독일인이 곧 게르만족 전체는 아니다). 이러한 게르만 민족의 확장은 중세의 종교적인 특징의 근원이었다. 북동부 유럽으로부터 남하하여 서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던 게르만족이 기독교화되면서,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가톨릭이 서유럽 전역에 걸쳐 세속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세란 기독교를 몰랐던 게르만족이 서유럽 지역으로 이주해 와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인 기독교를 근거로 새로운 문화, 교황이나 교회의 세속 지배, 또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독특한 기독교 시대를 만들어 간 기나긴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중세는 종교의 절대성을 앞세워 인간 위에 군림하는 등 여러 가지 잘못된 일이 자행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독교 역사상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많은 단면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4. 중세 기독교의 형성

 서유럽에 정착한 후 처음 기독교를 접하게 된 게르만 민족은 처음엔(5∼6세기경) 로마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예식이나 신학을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8세기경에 이르러서는 기독교 문화는 물론 고전 문화와 완전히 융합되는 데 이르렀다. 게르만 민족의 후예로서 프랑크왕국을 세운 칼 대제(샤를마뉴, 768∼814)는 유럽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고 그곳 거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의 부흥에 힘썼는데 각지에 수도원 학교를 세우고 궁정 학교를 설립하여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를 가리켜 ‘카롤루스(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라고 일컫는다. 이 기간에 기독교 문화와 게르만 민족의 정신 그리고 고전 문화가 비로소 융합되었으며 중세 유럽 문화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10세기 초에 단절된 카롤루스 왕조는 약 40년이 지난 AD 800년, 오토 1세(카롤루스 1세)가 황제에 오르면서 명맥을 잇게 되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신성로마제국(800∼1806)의 시작으로 여긴다. 신성로마제국이 형성되면서 소위 유럽의 기독교라는 틀도 완성되어갔다.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 학문은 ‘스콜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의 경건과 금욕운동은 ‘수도원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교권과 제도권은 ‘교황제도’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신앙부흥운동은 ‘종교개혁’과 ‘평신도 경건운동’ 또는 ‘신비주의’나 ‘금욕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서유럽 특유의 기독교 문화를 이루어갔다.

 중세가 서유럽 특유의 기독교를 형성해내었다는 사실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와 같은 탁월한 수도사가 중세의 영성운동을 주도했다거나, 성 프란시스가 가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을 올바로 구현했다거나,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중세의 신학을 정리했다거나 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이들이 있기에 중세는 수많은 부정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중세라는 고유의 틀과 문화 속에서 길러진 인물들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5. 중세교회사 연구를 위한 주제들

 중세교회사를 이루는 요소들은 중세 특유의 기독교를 만들어 낸 요소들이다. 이것은 교회 내적으로는 교황제, 수도원주의, 평신도 경건운동 등이며 외적으로는 프랑크왕국이나 황제제도, 신성로마제국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중세교회사 구성 요소 중에 동방교회사는 독립된 장으로 다루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다. 중세교회사 연구를 위한 그 밖의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① 로마제국의 해체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한 서유럽의 재편과 기독교화 ② 수도원운동과 교황제도의 확립 ③ 프랑크왕국의 발전과 로마가톨릭교회 ④ 프랑크왕국의 확장과 카롤루스(카롤링거)왕조의 르네상스 ⑤ 유럽 질서의 개편과 동·서방교회의 분열 ⑥ 교회의 개혁운동과 성직 서임권 논쟁 ⑦ 11∼12세기 십자군 전쟁과 그 영향 ⑧ 중세의 경건운동 ⑨ 중세 스콜라 신학 ⑩ 중세 후기(교황권의 쇠퇴와 신학적 정황).
 다음 시간에는 ‘종교개혁’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국제신학연구원>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10> - 역사신학 ①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편집자 주>

초대 교회부터 현대까지의 기독공동체 역사

 이번 주부터는 흔히 ‘교회사’라고 일컫는 ‘역사신학’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교회사란 무엇이며(정의), 교회사 공부는 왜 중요하며(중요성), 교회사 공부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며(과제), 교회사를 위한 연구 방법은 어떤 것이며(연구 방법), 또 이를 위해 교회사를 어떻게 시대별로 구분할 수 있는지(시대구분) 생각해 볼 것이다. 그다음 고대교회사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주제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1. 교회사의 정의
 언뜻 교회사란 ‘교회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교의 역사’라는 말이 좀 더 명확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사란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과 연관된 모든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살피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신학의 한 분야이다.

 
2. 교회사의 중요성과 과제
 흔히 ‘역사’라는 말을 들으면 골치 아프고 따분해하는 경우를 본다.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많은 사건과 연도를 암기했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 공부가 단순한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닌, ‘생생한 이야기의 탐구’가 될 때 역사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흥미의 여부와 관계없이 교회사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1)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관련된 ‘올바르지 않은 신앙’, ‘공동체를 향한 위험’을 생각하게 되며, 그와 유사한 일의 반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뿐만 아니라 과거 교회사 속에서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를 위한 올바른 기준이나 모범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른바 ‘도나투스 논쟁’(AD 4∼5세기, 북아프리카)은 전자를 위한 좋은 예일 것이다. 이는 고대교회 시절,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순교까지 각오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교회로부터 쫓아내려 했던 극단적 분리주의 신앙 운동으로서,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었다(411년 카르타고 교회회의). 이와 반대로, 마르틴 루터 이야기는 후자를 위한 좋은 예이다. 중세 말기 부패한 로마 가톨릭에 맞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외치며 개혁에 앞장서던 마르틴 루터 이야기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 훌륭한 모범이 된다.
 이러한 교회사 공부의 중요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사의 과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교회사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현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향한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3. 교회사의 연구 방법
 교회의 탄생 이후 지금까지의 긴 역사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교회사 연구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1) 한 가지 방법은 역사를 횡단면으로 놓고 연도에 따라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살피는 방법이다. 이러한 연구방식은 동시대에 여러 부문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지만, 개별 사건의 인과 관계를 살피는 것은 어렵다. 2) 다른 한 가지는 특별한 영역을 선택하여 긴 시대를 걸쳐 그것을 집중적으로 추적해 가는 방법이다. 이것은 역사를 종단면으로 놓고 살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건의 전후 과정을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인 교회사 공부에서는 대체로 두 번째 방법이 적합하지만, 두 가지 방법의 장점을 잘 살려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교회사 연구의 이상적인 방법은 몇 가지 시대별 구분을 기준으로 하여, 그 가운데 특정한 사건들에 집중하고 사안들의 배경과 진행 및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다.

 
4. 교회사의 시대구분
 16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교회사의 시대 구분을 매우 세분하여 제시했다. 개신교는 100년을 단위로 이에 대응하여 가톨릭은 1년을 단위로 교회사를 정리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오늘날 주로 활용되고 있는 시대구분은 고대교회사, 중세교회사 그리고 근대교회사 세 가지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중세교회사를 종교개혁사와 구분하고, 근대교회사를 현대교회사와 구분하기도 한다. 다만 시대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정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따라서 시대구분에 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시도들의 타당성을 살피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1) 고대교회와 중세교회
 많은 학자는 고대교회의 시대적 범위를, 속사도들(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직접 친분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의 활동 시대로부터 로마제국의 멸망과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까지로 이해한다. 물론 칼로 자르듯 고대교회 시대와 중세교회 시대의 경계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와 관련된 견해는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서로마제국의 몰락(476년)을 기준으로 삼는 방법이다. 두 번째 기준은 교황 그레고리(590∼604)를 기점으로 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칼 대제(샤를마뉴, 768년 왕위 계승)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2) 중세교회와 종교개혁 시대
 중세교회 시대는 기술 학문 등의 분야에서 ‘위대한 발견’이라고 일컬어지는 발전 및 도약과 함께 끝을 맺는다. 이러한 시기의 중요한 특징은 ‘고대로 돌아가자’라는 의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개혁의 시작을 중세교회가 끝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종교개혁 시대를 그 이전과 완전히 무관한 새로운 시대로 볼 수 없긴 하지만,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된 개신교 신앙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종교개혁을 기준으로 삼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 어느 시점을 종교개혁의 출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여러 견해가 있지만, 대부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면벌부의 신학적 문제점을 게시하고, 로마 가톨릭을 향해 공개적인 토론의 불을 붙였던 1517년(10월 31일)을 상징적인 종교개혁 원년으로 본다.

 3) 종교개혁 시대와 근대교회
 종교개혁 시대에서 근대교회 시대로 접어드는 기점을 흔히 베스트팔렌 평화조약(1648)으로 이야기한다. 이를 기점으로 최초의 국제전쟁이었던 30년 전쟁이 막을 내리고, 주권국가들로 구성된 현대 유럽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합리주의 및 계몽주의 그리고 신앙부흥운동과 교파주의의 등장을 근거로 1648년 이후를 근대교회 시대로 일컫는다. 이 시기에 특별히 17세기 말부터 등장한 경건주의 운동과 18세기 전반부터 일어났던 감리교 운동 그리고 미국의 대각성 운동 등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근대교회와 현대교회의 구분점으로 보기도 하며, 일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현대적 개혁을 목표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현대교회의 출발점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5. 고대교회사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 사건들
 고대교회 시기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로마제국 내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전파가 이루어진 AD 100년까지 시기이다. 둘째, 그리스도교의 내적·외적 위기와 도전의 시기였던 AD 313년까지이다. 내적 도전과 위기란 여러 형태의 이단들을 가리키며, 외적 도전과 위기란 약 250년간 계속되었던 로마제국 내에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가리킨다. 셋째,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발전 시기이다. 이러한 고대교회 시기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주제들은 아래와 같다. 특히 이러한 주제들은 영미권과 유럽에서 실시되어오고 있는, 고대교회와 연관된 국가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들이다. 

 1) 처음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 박해 2) 처음 3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확장과 선교 3) 2세기의 이단과 정통 4) 고대교회 시대의 변증가들 5) 고대교회의 신앙고백 형성 6)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대전환  7) 도나투스 논쟁 8) 아리우스 논쟁과 삼위일체론의 형성 9) 그리스도교 수도원의 시작 10) 로마 주교제도와 교황제도의 시작과 발전(대 그레고르 교황까지) 11) 5세기의 그리스도론 논쟁 12) 펠라기우스 논쟁.

 앞으로 전개될 역사신학 강좌를 통해, 교회사 가운데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진지한 흥미가 생겨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 <9> - 신약신학 ③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 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편집자 주>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신약신학의 대표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4. 공관복음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라고 한다. ‘공관’(共觀)이란 ‘공통된 관점’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세 복음서의 진술이 거의 일치하고 있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공관복음서가 공통으로 다루는 내용은 예수님의 생애와 지상 사역이다.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기록을 통하여 자신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메시아임을 변증한다.
 공관복음서가 서로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는 있지만, 변증의 대상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첫째,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한다. 둘째, 마가복음은 우선적으로 로마인들을 향하여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한다. 셋째, 누가복음은 이방인들 특히 헬라인들을 대상으로 했고, ‘흠 없는 인자(人子)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한다. 


 5. 초대교회와 사도시대 

 초대교회는 넓은 의미에서 주후 30년경부터 4세기 초까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서 공인되기 전까지 형성되었던 교회들에 대한 총체적인 명칭이다. 이 시기는 경전들이 기록되고, 교회의 신학과 체제가 확립되던 시기로서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또 사도시대는 주후 100년경 이전의 시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이 팔레스타인과 소아시아 지방을 너머 유럽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영역을 확장하던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사도행전>이다.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 헬라 문화와 만나면서 그 경향이 달라진다. 그전까지 초대교회는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했지만, 주후 2세기를 전후해서 교회는 헬라 문화권의 사람들을 주요 선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유대적 색채를 벗고 헬라적 경향을 띠게 되면서 기독교는 세계의 종교로 성장 발전했다.
 초대교회는 놀라울 만큼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 대두됨에 따라 기존의 국가체제와 기성 종교들은 큰 위기감을 느꼈고 그래서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했다.
 초대교회는 기독교의 원형(元型)으로 후대 역사 속에서 항상 높은 존경을 받아 왔다. 특히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할 때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6. 바울신학

 바울신학은 바울의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신학 사상을 일컫는 말이다. 바울의 신학은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조직적이다. 그러나 그 시작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그의 신학은 매우 실질적이다.
 바울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는 신학으로 기독론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의 선재, 창조, 성육신, 고난, 죽음, 부활, 보좌 우편에서의 통치 등이 바울 기독론 핵심이다. 신론에 있어서 바울은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주로 보낸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바울은 인간을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로 이해하는 인간론을 가졌다(롬 3:10). 바울 구원론의 핵심은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한 칭의로서(롬 1:17), 믿음은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을 이루고(롬 3:19∼28),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킨다. 바울의 교회론에 의하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골 1:18), 교회는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구성된 성령의 전(고전 6:19)이다. 그는 교회 자체를 종말적인 단체로 이해했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최후 승리가 임한다는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성도들은 부활하여 영광의 몸을 입게 될 자들로서(살전 4:13∼17), 성령에 의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윤리론을 가지고 있었다(갈 5:25).


 7. 공동서신

 공동서신은 바울의 서신과 히브리서를 제외한 7편의 서신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이 어떤 특정 교회나 특정인을 대상으로 쓴 것이라면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는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이 편지들의 모음 앞에는 ‘모든’, ‘보편적’, ‘세계적’을 뜻하는 ‘공동’이라는 단어가 붙여졌다.
 공동서신의 주제와 내용은 서신마다 다양하고, 내용에 있어서 바울서신보다 삶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이나 교훈에 집중되고, 대중적인 가르침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8. 요한신학

 요한신학은 사도 요한의 저서들 속에 나타난 공통된 신학 사상을 말한다. 요한의 저서는 ‘요한복음’, ‘요한일·이·삼서’, ‘요한계시록’ 등 총 5권이다. 문체와 사상 전개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이는 요한의 신학은 주로 이원론과 그리스도론에 집중한다.
 요한신학의 핵심은 기독론이다. 그의 모든 사상은 기독론에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 인자, 하나님의 아들, 말씀 등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며, 그의 사상을 잘 나타낸다. 기독론은 구원론과 연결되며, 믿음, 은혜, 생명, 영생, 진리 등의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또한 요한신학의 핵심 단어는 ‘사랑’이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불릴 정도로 사랑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했고, 동시에 사랑의 윤리를 강조했다. 그의 종말론은 부활, 휴거, 메시아 왕국의 시작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요한신학에서는 교회 내에서의 생활, 목회신학, 성례전 등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많은 사람의 수고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만일 그들의 숨은 공로가 없었다면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사라졌을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담긴 신약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홋카이도 대학에서 만난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자취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누군가는 학창 시절 이 문구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원대한 미래를 꿈꾸며 학업에 정진했을 것이다. 이 말은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 삿포로 농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박사(1826∼1886년)가 남긴 말로 유명하다. 그가 말한 ‘야망’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기반 한 비전이다.
 140년이 지난 지금도 홋카이도 대학 곳곳에서는 윌리엄 클라크의 뜻과 발자취를 기리는 기념물들을 볼 수 있다.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흉상 뒤로 ‘클라크 회관’이라는 학생회관이 자리잡고 있고, 교내 이정표마다 클라크 박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정문 옆에 위치한 정보센터 ‘엘름의 숲’에서는 클라크 박사를 캐릭터로 만든 기념품과 서적들을 판매한다.
 클라크 박사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학자이자 농학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기독교 신앙으로 인생을 산 크리스천이었다. 1876년 초대 교장으로 부임할 당시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일행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유난히 큰 짐을 본 장학관이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요? 여기선 성경을 가르칠 수 없는데….”
 과거 일본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불허하였으므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클라크 박사는 “그러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당황한 장학관은 강의 시간 이후에 가르치도록 허락했고, 클라크 박사는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가르쳤고 1년이 채 안 되는 사역을 마치고 1877년 귀국했다.
 이 때 고별사에서 클라크 박사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가르침과 헌신에 힘입어 이 학교의 1기 학생들 모두가 크리스천이 됐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의 서약’이라는 각서를 작성한 삿포로 농학교 1기생과 2기생을 중심으로 삿포로밴드라는 신앙 공동체가 탄생했다. 우치무라 간조(2기)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여기서 배출됐다.
 농업학교에서 시작된 홋카이도 대학교는 일본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학으로 성장했으며 현재까지도 농업과 낙농업 분야에서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다.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학생들에게 열정을 다해 심어준 신앙과 개척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명언과 함께 남아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 <8> - 신약신학 ②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 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이번 호부터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 <편집자 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나타나신 ‘삼위일체 하나님’

 지난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신약신학이란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문이다. 특히 신약신학은 신약성경에 내포된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연구한다. 이번 주에는 여러 가지 신약신학의 주제들 가운데에서 세 가지 주제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호칭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호칭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각각의 호칭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속성과 사역의 특징들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호칭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주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호칭에는 ‘하나님’(막 1:15), ‘주’(마 4:7), ‘아빠’(막 14:36) 등이 있다. 특별히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또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다는 것이다(마 5:16; 6:9; 눅 11:2).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라 친근한 아버지로 이해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마 6:9∼13). 이 기도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시작된다. 

 2) 예수님의 호칭  신약시대가 되면서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그리스도’라는 호칭과 함께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하시는 분으로 소개한다(마 21:9; 요 10:25). 신약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예수님의 호칭이 등장한다. ‘임마누엘’(마 1:23), ‘메시아’(요 1:41), ‘인자’(눅 18:31), ‘주’(마 16:16), ‘하나님의 아들’(막 1:1), ‘다윗의 자손’(마 1:21), ‘왕’(요 18:37), ‘선지자’(눅 24:19), ‘선생님’(마 19:16), ‘구주’(딛 3:6), ‘대제사장’(히 4:14) 등이다.

 3) 성령님의 호칭  신약성경에서 성령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프뉴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프뉴마’(영)란 낱말은 총 379회 등장하는데, 그중 275회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성령은 ‘거룩한 영’(마 3:11), ‘주의 영’(행 5:9), ‘예수의 영’(행 16:7), ‘그리스도의 영’(롬 8:9) 등으로도 표현된다.

 2. 예수님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은 구약의 성취와 새로운 약속의 실현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이름은 ‘그리스도’라는 호칭과 함께 불렸는데, 헬라어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아’와 같은 의미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마 1:21). 

 1)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두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고 보도한다(마 1:18∼25; 눅 1:26∼38).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예수님이 바로 이사야 7장 14절에서 예언되었던 장차 오실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2) 예수님의 침례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후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기록한다(마 3:13∼17; 막 1:9∼10; 눅 3:21∼22).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메시아로서의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3) 예수님의 시험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당하셨다고 기록한다(마 4:1∼11; 막 1:12∼13; 눅 4:1∼13). 각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모든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속죄와 새 언약의 제물로서 거룩한 소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음을 증언한다.

 4)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을 예고하셨다(마 16:21∼22; 마 17:22∼23; 마 20:17∼19; 막 8:31; 막 9:31; 눅 9:22; 눅 18:31∼34).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의 속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동행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경험한 후에야 그의 죽음이 인류를 위한 사건임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부활의 빛 아래에서 이해하고 선포했다.

 3. 성령님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본격적인 성령의 시대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1) 성령의 인격성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활동하시는 분이다. 성령은 지, 정, 의를 가진 인격체로서 가르치고(눅 12:12), 인도하고(요 16:13), 알리고(요 16:13), 증거하고(요 15:26), 생각나게 하고(요14:26), 말씀하고(행 10:19), 명령하고(행 11:2), 금지하고(행 16:6), 위로하신다(행 9:31). 

 2) 성령의 사역  신약성경에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다양한 진술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과 초대교회 탄생 그리고 발전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셨고(마 1:18, 20; 눅 1:35), 예수님의 공생애는 침례 요한의 침례 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신 때부터 시작된다(눅 4:18∼19). 예수님의 승천 이후 성령님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 교회를 세우시고 부흥케 하시며(행 2:42∼47; 11:19∼26) 교회를 하나 되게 하셨다. 

 3) 성령의 은사  신약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표현할 때 주로 헬라어 단어 ‘카리스마’를 사용하는데, 그 본래의 의미는 ‘선물’, ‘은혜의 선물’이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과 그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성령의 사역이다(고전 12:7). 은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모든 은사는 한 성령으로부터 기인하며, 은사의 주된 목적은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상으로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에 대해 살펴보았다. 짧은 지면이지만 이러한 기회를 통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국제신학연구원>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 <7> - 신약신학①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 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이번 호부터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편집자 주>

 이번 주부터는 신약신학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신약신학은 신약성경 27권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문으로서 신약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신앙고백, 그리고 신약성경에 나타난 여러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 등을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신학의 한 분야이다.


1. 신약신학의 정의

 신약신학이란 신약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진리와 가르침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신약성경은 신약 저자들이 그 시대의 상황에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으로 그 당시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다. 따라서 신약신학의 목적은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있는 신약성경의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잘 정리하고, 그것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2. 신약신학의 기초
 
 신약신학의 기초는 신약성경이다. 신약성경은 1세기 말 즈음에 바울을 비롯한 여러 기록자들에 의해 모두 기록되었으나 구약성경처럼 원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단지 원본을 필사한 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신약의 사본에는 헬라어의 대문자를 단어와 단어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고 붙여서 쓴 대문자 사본(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에브라임 사본 등)과 현재의 헬라어 성경처럼 띄어쓰기와 구두점이 있는 소문자 사본(약 2,300여 가지)이 있다.
 이러한 사본들은 초대교회 시대에 귀중한 보물로 여겨져 여러 교회에서 회람됐다. 사도들과 초기 신도들이 죽고 교회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자 이 사본들은 더욱 귀중한 문서로 간주되어 수집됐다. 이렇게 수집된 문서들은 오랜 기간 정경화를 거쳐 주후 397년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종교 회의에서 27권의 신약성경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러나 정경으로 인정된 27권 외에도 수많은 글들이 있었다(눅 1:1∼2). 예를 들어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바울행전, 요한행전, 바나바서, 바울의 묵시록 등이다. 이러한 글들은 정경에서 탈락되었기에 ‘외경’(外經) 또는 ‘위경’(僞經)으로 불린다. ‘정경’과 ‘외경’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도성, 고전성, 공예배에서의 낭독, 기독론의 강조, 그리고 성령의 영감 등이다. 경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복음서’(4권) → ‘역사서’(1권) → ‘서신서’(21권) → ‘계시록’(1권) 순으로 배열되어있다. 이러한 배열은 기록된 순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글쓰기 방식에 따른 것이다. 이와는 달리 내용상으로 분류하면 신약성경은 역사에 강조를 둔 책, 교리에 강조를 둔 책, 예언에 강조를 둔 책 등으로 나뉜다.

1) 역사에 강조를 둔 책들은 복음서와 역사서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다루는 책으로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과 요한복음으로 나뉜다. 처음 세 권은 서로 유사점이 많고 거의 같은 관점에서 쓰였다고 해서 공관복음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예수께서 대중들에게 선포하신 내용과 행하신 사건을 주로 다루었으며, 주후 70년경 이전에 기록됐다. 반면 요한복음은 90%의 내용이 공관복음에 없는 것으로 주로 예수께서 개인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가르치신 교리 중심의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역사와 바울의 선교여행을 한눈에 보여주는 책으로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의 후속편이다. 

 2) 교리에 강조를 둔 책들은 서신서다.
 서신서에는 바울의 13 서신과 공동서신, 그리고 히브리서가 포함된다. 바울서신은 그 내용과 대상에 따라 일반서신(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으로 분류된다. 공동서신은 서신의 범위가 한 교회나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전체 교회에 보내진 것으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가 여기에 속한다. 히브리서는 교리에 강조를 둔 책으로 분류되는데, 학자마다 저자와 수신자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3) 예언에 강조를 둔 책은 요한계시록이다.
 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기록이다(계 1:1). 또한 계시록은 현재의 은혜 시대와 미래의 그리스도 재림 때에 있을 일들, 그리고 역사의 마지막에 대한 예언이다.

 
3. 신약신학의 방법론  

 신약신학의 중요한 연구 방법론에는 인물 중심, 역사 중심, 주제 중심의 방법론 등이 있다.

  1) 인물 중심 방법. 이 방법은 신약성경을 기록한 주요 저자들과 그들의 신학 사상을 다룰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 인물 중심 방법은 신약성경 저자들의 신학 사상을 구별함과 동시에 저자, 저작 시기, 그리고 저작 당시의 상황적 차이점들을 부각하면서 신약성경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2) 역사 중심 방법. 이 방법은 초대 기독교의 역사 과정에서 신약성경의 문서들이 신학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필 때 사용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을 사용하면 교회의 초기 단계와 발전 단계에서 각각 어떤 문서들이 출현했고, 어떤 신학적 관점들이 강조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3) 주제 중심 방법. 이 방법은 신약성경에 포함된 주요 신학적 주제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신약성경 안에 널리 흩어져 있는 공통된 내용을 주제별로 심도 있게 연구함으로써 신학적 통일성을 보여준다.


 4. 신약신학의 주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약신학은 신약성경 27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문이다.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신약신학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 인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부활, 요한의 기독론, 영생, 초대교회, 성령, 바울의 인간론, 속죄, 율법과 언약, 종말 등. 이처럼 신약성경에는 많은 주제가 있으며 신학자마다 연구하고 강조하는 주제들이 다르다. 본지의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에서는 신약신학의 여러 주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주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①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 ② 예수님 ③ 성령 ④ 공관복음 ⑤ 초대교회 ⑥ 바울신학 ⑦ 공동서신 ⑧ 요한신학.
 앞으로 전개될 신약신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신약성경에 담긴 하나님 말씀의 깊이와 넓이를 깨닫는 기회가 제공되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 <6> - 구약신학 ③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 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이번 호부터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 <편집자 주>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구약신학의 대표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4. 구약의 인간

 구약성경은 인간에 대하여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우선 구약은 인간을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졌으나(창 1:27) 불순종의 결과로 말미암아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즉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로 묘사한다(창 3:19). 또 구약은 인간을 갈망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갈망하는 존재다. 인간이 갈망하는 종류는 식욕에서(전 6:7) 영적인 영역까지 다양하다(시 63:1). 이 외에도 구약은 인간을 느끼고 생각하는 이성적 존재로 설명한다(삼상 12:24). 인간은 마음의 생각을 통해 하나님을 깨달을 수도 있고(호 6:3), 악을 계획할 수도 있는 존재다(창 6:6).

 
5.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과 신약 모두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완성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의 시작인 창세기는 하나님 나라의 원형과 파괴를 보여주고, 흥망성쇠의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부분적인 실현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신앙적 모범을 제시한다. 예언자들은 장차 이루어질 전 우주적인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이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곳이 될 것이다(사 11:9).

 
6. 선택과 언약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들의 기준과 다르다(삼상 16:7).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은 곧 하나님의 은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백성들과의 언약을 통해 그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홍수 심판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워 땅을 멸하는 홍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고(노아 언약, 창 9:1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아브라함 언약, 창 17:4). 이러한 점에서 언약이란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7. 창조

 구약성경에서 창조는 이스라엘 주변국들로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구별해주는 중요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성경의 창조 기사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의 가나안, 이집트, 앗수르, 바빌론 등 이스라엘 주변의 많은 나라들은 자기들만의 창조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 신화와 구약이 계시해주는 하나님의 창조 사건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에서 이방 신들은 짜증이 많고, 매우 괴팍하며 이기적으로 묘사되지만, 구약성경의 창조 기사가 계시해주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완전한 창조주시다. 또한 주변 국가의 창조 신화에서 인간은 신들의 노예로 묘사되지만, 구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로 정의된다. 

 
8. 구약과 제사

 많은 신앙인이 구약의 제사를 어렵게 생각한다. 물론 수천 년의 시간적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에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구약의 제사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제물보다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 있었다. 레위기의 제사법에 등장하는 제물은 소, 양, 염소, 비둘기, 곡식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다양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제사를 드리는 자의 형편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레 14:21).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제물보다 사람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9. 전쟁과 평화 

 구약성경에는 전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구약성경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옹호하거나 선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수비적 입장이었고, 군사 장비나 군대의 규모에 있어서 상대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고, 기적적인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신 결과였다(왕하 19:35). 구약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전쟁에 능한 야훼라고 찬양하지만(출 15:3; 시 24:8), 그것은 전쟁에서 약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일컫는 것이다. 구약에는 전쟁에 대한 언급만큼이나 평화에 대한 언급도 많이 등장한다. 일례로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사사 기드온은 자신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야훼 살롬의 이름을 불렀다(삿 6:24).

 
10. 구약과 예언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들에게 알리기 위해 예언자나 선지자를 세우셨다(암 3:7). 그들은 자신들이 본 대로, 들은 대로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만 했다. 예언은 단순히 미래 알아맞히기가 아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거짓 예언자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백성에게 악한 거짓말을 쏟아냈다(미 3:5). 그러나 참된 예언자는 예언을 대가로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렘 20:8∼9).
 구약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주제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영역을 살피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을 통해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는 하나님의 섬세함을 느껴보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성령님과 동행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시대⑪

(2014.7~12)


한기총 대표회장 취임 한국교회 연합 주력
3회 안산희망나눔프로젝트로 세월호 참사 겪은 주민 위로
전방위적 ‘사랑 실천’ 사회에 선한 영향력 끼쳐
국내외 성회 통해 오중복음 삼중축복 전해

한국 교회 이끄는 지도자로 사회와 교회 위해 헌신
    

 8월 21∼22일 인천 강화 성산청소년수련원에서 가진 제1회 지구장·교구협의회의장 워크숍에서 이영훈 목사는 순복음의 정체성은 성령 충만이라고 다시 강조하면서 우리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8월 28∼29일 홍천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열린 2014년 우리 교회 리더워크숍에서는 중직을 맡은 목회자들과 교회의 변화, 중점 사업들에 대해 논의했다. ‘지도자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인도하는 자리에서 이영훈 목사는 목회자로서 갖추어야 할 리더십에 대해 피력했다. 제79회 추계지구역장 세미나(10.1)에서는 ‘섬기는 삶’에 대해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영훈 목사는 성도들의 영성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새벽기도회에 힘썼다. 9월 특별새벽기도회와 2014년도 추수감사 및 수험생과 취업생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이영훈 목사는 영성 회복과 성령 충만한 삶을 당부했다. 수험생과 취업생들에게는 꿈과 도전에 대해 강조했다. 

 순복음 정체성과 새벽기도 강조

 이영훈 목사는 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 총회장으로서 9월 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0대 대표회장에 추대됐다. 한기총 총대원들이 만장일치로 대표회장에 추대함으로써 당선이 확정되자 역대 회장들은 이영훈 목사를 통해 한기총의 위상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면서 적극 협력을 약속했다. 이영훈 목사도 한국 교회가 영적 지도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내적으로 개혁과 갱신을 이루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교단들의 조건 없는 한기총 복귀를 통해 한국 교회가 하나 돼야 한다고 보고 연합하는 일에 매진하기로 다짐했다.

 이런 기대감이 반영된 듯 대표회장 취임 감사예배가 열린 9월 16일 63컨벤션센터에는 한국 교회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비롯 정·재계 인사 등 700여 명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 자리에서도 이영훈 목사는 “한국 교회의 영적 지도력 회복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한국 교회의 연합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교회의 연합운동에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기총의 대표회장에 취임한 뒤 이영훈 목사는 무엇보다 나누고 사랑을 실천하는 한국 교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따라 10월 8일에는 기하성 총회가 희망나눔예배를 우리 교회 대성전에서 드렸다. 이 예배는 이영훈 총회장의 한기총 대표회장 취임을 감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예배에 앞서 이영훈 목사는 희망나눔 행사를 가졌다. 소년소녀가장과 다문화가정, 독거노인, 장애인, 북한에서 온 가정, 세월호 피해 가정, 군부대 등에 선물박스 600개를 전달하는 이 행사에서 이영훈 목사는 세월호 피해자들 가정에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에 온 국가가 주목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영훈 목사는 슬픔에 잠긴 안산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 교회가 일찍부터 펼쳐온 ‘안산 희망나눔 프로젝트’ 3차 일정을 12월 18일에 또 진행했다. 이날 이영훈 목사는 1000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안산 시장을 방문해 여러모로 지역 경제를 돕고 주민들을 위로했다.
 우리 교회는 또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피플, CTS 기독교TV 등과 함께 11월 29일 서울광장에서 ‘2014 대한민국 성탄축제’를 열었다. 이영훈 목사는 정관계 인사와 교계 인사 및 세월호 유가족, 새터민들과 더불어 시청 앞에 설치된 높이 18m 대형트리에 불을 밝히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행사에 앞서 이영훈 목사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독거노인과 다문화가족,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2014 희망나눔 박싱데이’ 행사를 열고 직접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선물 포장 작업을 거들었다. 18억 원 상당의 생필품이 담긴 희망박스 1만 8000개는 서울시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다문화가정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그늘진 곳마다 위로와 희망의 선물

 이영훈 목사는 또 해남 땅끝 마을에 세워진 공동생활가정 즉 그룹홈 ‘천사의 집’ 증축 기공식에도 참석했다(7.15). 이 행사는 NGO 굿피플이 주관했다. 해남군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그룹홈인 ‘천사의 집’에서 이영훈 목사는 “땅끝 마을은 희망이 시작되는 지역”이라면서 “이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전했다.
 또 8월 20일에는 ‘제2회 미자립교회 목회자 자녀 장학금 전달식’을 갖고 135명의 목회자 자녀들과 48명의 총회목회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 1억 2000만 원을 전달했다.

 국내뿐 아니라 북한, 나아가 해외로도 위로와 나눔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영훈 목사는 남북협력지원단체인 사단법인 겨레사랑의 이사장으로도 추대됐고, 이에 따라 8월 26일에는 남북협력을 위한 감사예배를 드렸다. 굿피플과 함께 7월에는 필리핀에서 일어난 태풍 피해현장을 찾아 복구에 나섰는데, 이미 2013년 12월에도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돕기 위해 필리핀 적십자사에 800만 달러 상당의 기부물품과 20만 달러의 재해복구지원금을, 또 필리핀 하나님의성회에 교회 재건을 위한 기금 8만 달러를 전달한 바 있었다. 이 일을 잊지 않고 필리핀 하나님의성회는 7월에 다시 방문한 이영훈 목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영훈 목사는 또 우리 교회 안팎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집회에 강사로 초대를 받아 성령 충만의 메시지와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을 선포했다.
 제29회 초교파 전국 직장인 및 일반성도 초청 금식기도대성회를 시작으로 제10회 전국경찰복음화 금식기도대성회, 제40회 전국초교파여성금식기도대성회, 제3회 남선교회 하계수련회, 제28회 전국청장년금식대성회, 제68회 전국교육자 학부모하계수련회, 제20회 순복음실업인수련대회, 기하성(여의도순복음총회) 장로부부수련회, 9개국 2800여 명 중화권 목회자와 성도들이 참석한 제26회 아세아성도방한대성회, 2014 성령한국 청년대회(8.23, 잠실실내체육관) 등 여름 성회와 수련회에서 말씀을 선포했다. 

 한결같이 절대긍정과 절대감사 피력

 10월 16일에는 기하성(서대문) 교단과의 통합을 위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기도성회를 열었다. 이영훈 목사는 이 자리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교단 통합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 밖에도 거제시기독교연합회가 주최한 경남 거제시 복음화를 위한 부흥성회에서는 거제시의 영적 부흥을 기원했다(11.3∼5, 거제 고현교회).
 이영훈 목사는 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4 서울특별시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기도회(7.7)에 참석해 민족복음화를 통한 우리 사회의 건강 회복을 강조하고,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된 대한민국평화통일국민문화제 조직위원회 2014 한국평화의 종 타종식(7.26)에서는 예수님을 통한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도 강화했다.

 해외 집회도 이어졌다. 7월 20일 하와이 오아후순복음교회 새 성전 입당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전했고,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프라미스교회에서 열린 이영훈 목사 초청 뉴욕대성회(10.21)에서는 성령운동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길임을 거듭 강조했다.
 36개국 1500여 명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갈보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교회성장 콘퍼런스에서도 ‘21세기 교회 성장’을 주제로 말씀을 선포했다(10.29∼31). 이어서 11월 3일에는 순복음나고야교회 창립 25주년 기념성회에 참석해 ‘사명자의 영성 훈련’이라는 주제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대해 설교했다. 또 홍콩순복음교회 창립27주년 기념 축복성회와 홍콩영산신학대학원 제2회 졸업식(12.1), 우리나라 2세대 목회자들과 일본 목회자들이 도쿄 닛코호텔에서 가진 ‘2014 동북아시아 지도자 원탁회의’(11.24∼25) 등에 참석해 아시아와 동북아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방안을 논의했다.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 <6> - 구약신학 ③

 참된 신앙을 갖는 데 신학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신학이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신학’은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서술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이란 (바른) 신학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여 재 수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신도를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여 이번 호부터 연말까지 20회에 걸쳐 신학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집필순서는 ①조직신학(3회), ②구약신학(3회), ③신약신학(3회), ④역사신학(6회), ⑤실천신학(5회) 순이다. <편집자 주>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구약신학의 대표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4. 구약의 인간

 구약성경은 인간에 대하여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우선 구약은 인간을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졌으나(창 1:27) 불순종의 결과로 말미암아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즉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로 묘사한다(창 3:19). 또 구약은 인간을 갈망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갈망하는 존재다. 인간이 갈망하는 종류는 식욕에서(전 6:7) 영적인 영역까지 다양하다(시 63:1). 이 외에도 구약은 인간을 느끼고 생각하는 이성적 존재로 설명한다(삼상 12:24). 인간은 마음의 생각을 통해 하나님을 깨달을 수도 있고(호 6:3), 악을 계획할 수도 있는 존재다(창 6:6).

 
5.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과 신약 모두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완성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의 시작인 창세기는 하나님 나라의 원형과 파괴를 보여주고, 흥망성쇠의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부분적인 실현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신앙적 모범을 제시한다. 예언자들은 장차 이루어질 전 우주적인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이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곳이 될 것이다(사 11:9).

 
6. 선택과 언약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들의 기준과 다르다(삼상 16:7).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은 곧 하나님의 은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백성들과의 언약을 통해 그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홍수 심판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워 땅을 멸하는 홍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고(노아 언약, 창 9:1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아브라함 언약, 창 17:4). 이러한 점에서 언약이란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7. 창조

 구약성경에서 창조는 이스라엘 주변국들로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구별해주는 중요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성경의 창조 기사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의 가나안, 이집트, 앗수르, 바빌론 등 이스라엘 주변의 많은 나라들은 자기들만의 창조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 신화와 구약이 계시해주는 하나님의 창조 사건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에서 이방 신들은 짜증이 많고, 매우 괴팍하며 이기적으로 묘사되지만, 구약성경의 창조 기사가 계시해주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완전한 창조주시다. 또한 주변 국가의 창조 신화에서 인간은 신들의 노예로 묘사되지만, 구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로 정의된다. 

 
8. 구약과 제사

 많은 신앙인이 구약의 제사를 어렵게 생각한다. 물론 수천 년의 시간적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에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구약의 제사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제물보다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 있었다. 레위기의 제사법에 등장하는 제물은 소, 양, 염소, 비둘기, 곡식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다양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제사를 드리는 자의 형편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레 14:21).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제물보다 사람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9. 전쟁과 평화 

 구약성경에는 전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구약성경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옹호하거나 선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수비적 입장이었고, 군사 장비나 군대의 규모에 있어서 상대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고, 기적적인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신 결과였다(왕하 19:35). 구약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전쟁에 능한 야훼라고 찬양하지만(출 15:3; 시 24:8), 그것은 전쟁에서 약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일컫는 것이다. 구약에는 전쟁에 대한 언급만큼이나 평화에 대한 언급도 많이 등장한다. 일례로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사사 기드온은 자신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야훼 살롬의 이름을 불렀다(삿 6:24).

 
10. 구약과 예언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들에게 알리기 위해 예언자나 선지자를 세우셨다(암 3:7). 그들은 자신들이 본 대로, 들은 대로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만 했다. 예언은 단순히 미래 알아맞히기가 아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거짓 예언자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백성에게 악한 거짓말을 쏟아냈다(미 3:5). 그러나 참된 예언자는 예언을 대가로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렘 20:8∼9).
 구약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주제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영역을 살피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을 통해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는 하나님의 섬세함을 느껴보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그들은 왜 충치를 치료하지 않았을까?

독일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는 지혜 배운다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리턴즈’의 인기가 만만찮다. 평균 78.8세 노년 배우들이 함께 떠나는 황혼의 배낭여행 콘셉트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개성 넘치는 출연자들과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제법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베를린은 더욱 특별했다. 할배들은 동·서독 분단의 현장 베를린장벽과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 등을 다니면서 그들의 젊은 시절을 회고했다.
 “이번 여행은 색다르다. 우리랑 비슷한 (분단의) 역사를 가진 나라를 돌아서 조금 달랐다.”

 “우리는 기록 보존에 약한 것 같다. 우리만 살 것이 아니고 자식들도 살아야 하니까 보존을 잘해서 교훈이 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다음세대에게는 절대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라는 점에서 일본과 같지만 전후 처리 과정의 차이로 현재는 매우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그들의 지난 역사를 왜곡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독일은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고 진지하게 반성하며 재발을 방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독일의 반성과 사죄를 받아들였다.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Wilhelm-Gedaechtniskirche)’는 그러한 노력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베를린 번화가인 쿠담 거리(Kurf몕rstendamm)에 위치해 있는 이 건물은 독일의 첫 통일을 이룩한 프로이센의 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일인 1891년 3월 22일에 주춧돌을 놓았다. 이 건축물은 프란츠 슈베츠텐(Franz Schwechten)의 작품으로 2740㎡의 벽을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113븖 높이의 첨탑과 2000개가 넘는 신도석을 가진 이 교회 건축물은 1895년 9월 1일 축성됐고 중앙현관은 10여 년 뒤에 완성됐다.
 견고하고 아름답던 교회는 1943년 나치 군대에 대한 연합군의 공습 과정에서 교회당의 절반에 해당하는 63븖만이 남았고 벽면에 큰 상흔이 나면서 ‘썩은 이빨’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그들은 이 ‘충치’를 치료하지 않은 채 남겨두었다. 모든 기록은 교회 내부에 그대로 기록되었으며 온전하던 옛 모습의 사진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예배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옆에 세워진 신관에서 드리고 있다. 신관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벌집모양으로 박아 지었으며 내부에는 8각형의 설교단, 황동 예수상, 5000여 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73년, 우리는 그동안 경제를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온 특별한 역사를 가진 나라를 만들어 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과 기도가 있었다. 게다가 아직 분단의 상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과연 이 역사의 교훈을 어떻게 보전해야 할지,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가 주는 지혜를 되새겨 본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 (시편 4편 8절)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