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이미지               

 

 

 

 

 

 

 

 

 

 

 

 

 

 

 

 

 

 

 

 

 

 

 

 

  

 

 

  

 

 

 

 

 

 

       





삼손 ― 최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힌 영웅

 

 1. 인적 사항
1) 삼손은 '태양의 사람이'라는 뜻. 히브리어는 '심숀'임. 2) 단지파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3) 모친의 불임 중에 여호와의 잉태케 하사 태어남. 4) 딤나의 블레셋 여자와 결혼(삿13:8-14,24).
2. 시대적 배경
당시의 이스라엘은 수십년간 메소보다미아인, 모압인, 가나안인, 미디안인, 암몬인, 블레셋인들의 지배와 압박을 거듭 받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 때마다 새로운 사사를 통해 구원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각 종족을 중점으로 외적의 압박에 대항하는 사사 통치가 외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어서는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점차 싹트기 시작했고, 이것이 자연히 왕정 체제의 요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왕정 요구는 블레셋 40년 압제가 끝난 직후 사무엘 때에 가시적으로 드러났다(삼상 8장). 한편 이 무렵에 블레셋 사람들의 세력이 급속히 증대함으로써 이스라엘은 그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때에 단 지파 출신의 삼손이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은 구원하기 시작할 자(삿13:5)로 선택된 것이다.

3. 주요 생애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잉태가 예언됨 | ― | 삿 13:3 | 
출 생 | ― | 삿 13:24 | 
나실인으로 자라남 | ― | 삿 13:12-14 | 
성령의 감동을 입음 | B.C.1075년 | 삿 13:25 | 
딤나 여인과 결혼 | ― | 삿 14:1-4,10 | 
사자를 맨손으로 죽임 | ― | 삿 14:5-9 | 
아스글론에서 블레셋인 30명 살해 | ― | 삿 14:11-19 | 
블레셋인의 곡식 밭을 불태움 | ― | 삿 15:1-5 | 
장인과 아내를 죽인 블레셋인들에게 원수를 갚음 | ― | 삿 15:6-8 | 
유다인에게 결박당함 | ― | 삿 15:9-13 | 
레히에서 나귀 턱뼈로 블레셋인 1천 명 살해 | ― | 삿 15:14-16 | 
사막에서 기도함으로 샘물의 기적을 체험함 | ― | 삿 15:18,19 | 
가사에서 기생을 취함 | ― | 삿 16:1,2 | 
가사 성문을 헤브론까지 옮김 | ― | 삿 16:3 | 
소랙 여인 들릴라와 사랑에 빠짐 | ― | 삿 16:4 | 
들릴라에게 배신 당함 | B.C.1055년 | 삿 16:5-19 | 
블레셋인에게 붙잡혀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됨 | " | 삿 16:20,21 | 
힘의 회복과 다곤 신전에서의 최후 | " | 삿 16:22-30 |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됨 | " | 삿 16:31 |


4. 성품
1)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여인과 결혼할 정도로 고집이 센 자(삿 14:1-15).
2) 맨손으로 사자를 죽이고, 나귀 턱뼈로 사람 1천명을 죽일 만큼 힘이세고 용맹한 자(삿14:5-7;15:14-16).
3) 나실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자의 꿀을 취할 만큼 무분별한 생활 태도를 지닌 자(삿 14:8,9).
4) 수수께끼 내기에서 졌을 때나 빼앗긴 데 대한 보복으로 무자비하게 블레셋인들을 살해했을 만큼 복수 심이 강하고 성격이 급한 자(삿 14:11-19;15:1-8).
5) 블레셋의 침략을 막기 위해 아무런 저항없이 자기 동족에게 결박될 만큼 강한 동포애와 애국심을 지 닌 자(삿 15:9-13).
6)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가사의 동침과, 이방 여인 들릴라와 사랑에 빠질 정도로 정욕에 눈이 어둡고 도 덕적 실수가 많은 자(삿 16:1-4).
7) 여자의 눈물과 유혹에 의해 자신의 비밀을 얘기할 정도로 여자에게 약한 자(삿 14:16;15,16).
8)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바든 바 능력을 오용했으나,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만큼 결단력 있는 신앙의 소유자(삿 16:28-30).
5. 구속사적 지위
1)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잉태가 계시되고, 평생 나실인으로 부름 받은 자(삿 13:3-5).
2)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사사로 소명 받은 자(삿13:5;15:20).
3) 인간적 정욕으로 말미암아 수치와 고통을 겪게 된 자(삿 16:4-21).
4) 성령의 감동으로 힘을 부여받았으나 이를 오용하여 도덕적으로 많은 실수를 거듭한 사사. 그러나 최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낸 믿음의 영웅(삿 16:28-30).
5) 이스라엘 사사 시대의 마지막 사사.

6. 주요 공적
1)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함. 2)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 20년간 활동함(삿16:31),
3) 마지막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냄(삿16:28-30).

7. 실수
1) 나실인의 서원을 어겼음(삿14:1-9). 2) 하나님께 받은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함(삿16:2,3).
3) 사사로서 음란을 일삼음(삿16:1,4-19). 4)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힘의 근원을 누설함(삿16:17).

8. 평가 및 교훈
1)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부름 받았고, 또 성령의 감동으로써 영웅적인 힘을 얻은 바 된 특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이방 풍습을 따르는 등 무분별한 행실을 함으로써 여러 가지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삿14:1-10). 이처럼 택함 받은 자라 할지라도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함 받은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날마다 구별된 자답게 살아가야 하겠다(롬12:2).
2) 삼손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로서의 사명에 따라 용맹스럽게 블레셋인들을 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방의 의욕을 상실한 자신의 동족들에게 멸시를 받고, 도리어 그들 손에 묶이어 블레셋에 끌려가기까지 했다.(삿 15:11). 이처럼 때로 진리를 위해, 또 주의 일을 위해 애쓰고 수고할지라도 이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어이없는 일을 겪기도 하고, 낙심할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주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기까지 묵묵히 고난도 감수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그러면 장차 이같은 고난을 족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영광을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될 것이다(요 12:24;롬 8:12).
3) 삼손은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인 약점은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성적 방종을 일삼는 데 있다. 즉 그는 인간적 정욕에 따라 개인적, 윤리적 범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조차도 망각해 버린 것이다(삿 14:1-3;16:1-20). 이러한 모습은 사회적 퇴폐와 성적 음란이 활개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욕에 따라 성도된 사명을 망각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성결된 생활에 힘써야겠다(골 3:5;딤후 2:22).
4) 블레셋인에게 잡히어 두 눈을 뽑히고 그들의 노리개가 된 삼손은 자신의 죄악을 참회하며, 다시 한번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였다. 이에 하나님의 권능이 그와 함께 하셨고, 끝으로 그는 회개함으로써 삼손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믿음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과거에 어떠한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지금 곧 하나님께 나아와 철저히 회개할 것을 교훈 한다. 하나님은 진실로 회개하는 자를 긍훌히 여기사 죄를 다 사하시고, 승리를 주실 것이다(사 55:7).
5) 사사 삼손의 일생은 인간적 실수 투성이다. 그러나 이런 약점에도 불고하고 하나님은 그를 들어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능력을 베푸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의 크고 진실하심을 찬양하게 된다. 또한 우리의 약점을 외면치 않으시고 끝까지 힘주시고 사명을 감당토록 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더욱 강구해야 할 것이다(시34:4;사51:1).

9. 핵심 성구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소서 하고"(삿 16:28).

 


폼페이 화산 폭발로 죽은, 벨릭스의 아내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폼페이를 방문하면 21세기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2000년 전에 거주했던 사람들도 놀라운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시 폼페이에는 세탁소와 극장, 약국이나 경기장도 있었다. 집집마다 수도관을 연결했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전문가에 의하면 선거 벽보도 발굴되었는데, “나를 찍어 주면 시민들을 위해 이런 일을 하겠다”는 구호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씀이 새롭게 와 닿게 된다.

이곳은 BC 8-7세기경에 그리스 사람들이 지배했던 도시다. 그 후 BC 89년에 로마의 장군 술라에게 정복되어 로마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이 나폴리를 지배했고, 거기서 가까운 이곳 역시 그리스 사람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사실 나폴리라는 말은 헬라어 네오폴리시(신도시)라는 의미다. 그들의 후예라서 그런지, 나폴리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과 키가 작다는 공통점이 있다.

폼페이에서 멀지 않은 살레르노의 파에스툼(Paestum)도 그리스 사람들이 BC 5세기에 세운 도시다. 거기에 있는 두 신전은 얼마나 원형이 잘 보존되었는지, 아테네에 있는 신전보다 더 완벽한 모습이다. 이런 여러 면을 볼 때, 항해술이 뛰어났던 그리스 사람들이 일찍이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녔고, 도착하는 항구들마다 신도시를 건설한 것 같다. 그리스에는 섬이 약 5천 개나 존재하기에,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을 내야 했고, 그것은 항해술의 발달로 이어지게 되었다.

▲폼페이 유적지. ⓒ한평우 목사

그런데 폼페이를 공중에서 보면 생선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다. 경기장은 그 머리 부분에 있기에 마치 생선의 눈처럼 구성되었다. 그런데 꼬리 부분에는 치미테로(Cimitero, 공동묘지)가 있다. 이런 건설은 인생의 종착역은 죽음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웬일인지 폼페이 멸망 전에 살다가 죽은 이들의 무덤들에 대한 관심이 간다. 역사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 무리들 중에는 대단했던 인물들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도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존재라는 동질감도 작용할 것이고……

폼페이는 화산재로 묻혀 잊힌 도시였다가, 1549년에 운하 공사를 하던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나폴리를 지배했던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발굴한 유물들을 가져갔고, 그 후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룬 1856년경에 본격적으로 발굴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었다. 이 유물들을 통해 2천 년 전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가 화산재로 멸망한 것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티투스 장군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그는 유대인 여자를 불같이 사랑했지만 황제라는 신분 때문에 원로원의 허락을 얻을 수 없자, 홀로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동생 도미티아누스(Domitianus)는 야망이 세조 만큼이나 많았던 인물이었기에, 아버지가 형에게만 세자 교육을 시키는 것에 대해 평소에 불만이 많았었다. 그는 황제가 되고 싶어 안달했는데, 형이 2년 만에 죽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황제가 되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두면 반란도 불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서와 관련된 내용이 폼페이에 존재하기에 그 부분을 써 보려고 서론을 길게 나열했다.

사도행전 24장 24절 이하에 보면 로마의 총독 벨릭스가 나오는데, 그의 아내는 유대인 여자 드루실라였다.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들었으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겠다”고 미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천금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는 복음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뇌물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바울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행 24:25).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한다.

그런데 총독 벨릭스가 유대인 여자 드루실라와 결혼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굉장한 미녀였기 때문이었다. 드루실라는 AD 39-44년 유대를 통치했던 아그립바 1세의 셋째 딸이자 아그립바 2세의 막내 누이로, 버니게(행 25:13)와 자매였다. 그녀는 콤바게네(Commagene)의 왕자 에피파네스(Epiphanes)와 약혼하였으나, 그가 할례를 거절하고 유대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파혼했다. 그녀는 15살이 되던 해에 에메사(Emesa)의 왕 아지주스(Azizus)와 그가 할례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결혼했다. 그 후 그녀의 미모에 미혹된 총독 벨릭스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와 결혼했다.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드루실라는 벨릭스에게서 아그립바라는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옥스퍼드성경원어대전에서 인용함).

당시 폼페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로마인들의 별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환락이 함께한다. 남편이 유대 총독 출신이었고 평소 탐욕이 대단했던 자였기에 많은 돈을 모았을 것이고, 그 결과 이런 별장 지대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당시에 로마 사람들의 로망이었던 이곳 폼페이에 거주했다. 요즘으로 본다면 폼페이는 우리의 제주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수려한 환경과 시원하고 맑은 공기는 휴양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폼페이에 살던 중, 아들과 함께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재앙을 만났다. 당시 폼페이에는 약 3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날은 폼페이 사람들이 불의 신 ‘불칸’(Vulcan)을 섬기는 축제의 날이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폼페이는 불을 섬기는 축제 중에 불로 망하고 말았다.

보통 이탈리아의 8월은 더위가 최고로 치닫는 때니, 이때 화산이 폭발했다는 것은 뜨거운 화산재, 또는 유독가스가 무더운 기온을 더욱 상승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폼페이 뒤에는 두 개의 산, 즉 베수비오(Vesuvio, 1,277m)와 솜마(Somma, 1,132m) 산이 쌍둥이처럼 있는데, 불을 뿜은 것은 솜마산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 많은 화산재가 그곳에서 12km나 떨어진 폼페이까지 날아와 이 도시를 수 미터나 덮어 버렸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화산으로 인해 2천여 명이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런데 폼페이가 화산재와 가스로 멸망하는 광경을 똑똑하게 목격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해군 사령관으로 마즈노 곶(사도 바울이 하선했던 보디올 근처)에 있었던 대 플리니우스(Plinius)였다. 그는 검은 연기와 함께 화산재가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유독가스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함께 있었던 그의 조카 소 플리니우스는 당시 18세의 나이로 그 처절한 광경을 자세히 기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국인 리튼 발워가 ‘폼페이 최후의 날’을 썼다.

폼페이는 아주 방탕했던 도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유적들을 보면 당시 이곳에 술집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술에 취하면 가는 곳이 정해져 있었는데,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매춘소였다. 매춘소를 방문하면 손님들이 다양하게 선택하도록 매춘부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지금 봐도 얼굴이 붉어진다. 죄의 양태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이 배가 부르게 되면 추구하는 길은 방탕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방향을 분간할 수 없게 하는 검은 구름과 가스 속에서, 술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살려 달라고 울부짖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폼페이가 화산 폭발로 멸망을 당할 때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과 함께 삶을 마무리해야 했던, 총독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 그녀의 날카로운 절규가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듯하다. 이런 처참한 소리들을 듣고 삶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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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속의 지명(지도)                   


성전꽃꽃이-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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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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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혀의 재앙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은 대문이 닫히지 않는 짐과 같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은 대문이 닫히지 않는 집과 같다. 
[유태인 두 사람이 모이면 세 사 람 몫의 의견이 나온다]
는 속담이 있다. 유태인은 호기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어떤 질문을 하면,
그것은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오기기 십중 팔구이다.
아무튼 유태인처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 경구는 <탈무드>에 실려 있으며
유태인들의 강한 호기심으로 인해 혼자서는
평생을 걸려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성전이 되어 버렸다.
이 성전은 기원전 500년 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의

연 수만 명의 랍비들이 토의한 과정이나 결과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탈무드>에는 특히 입에 관한 경구가 많이 있다.
'말을 삼가하라',
'비밀은 누설하지 말라',
'상대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라'등등이다.

유럽의 어느 유태인 지역에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막힘없이 쉴새없이 떠들어 대어 상대방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루는 이 사나이가 이웃 마을의 랍비를 찾아갔다.

[우리 마을의 랍비가 당신 욕을 하던데요.]
[천만에! 그럴리가 없소!]
랍비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단 말이요.]
남자도 같이 언성을 높이며 말하였다.

[그럴리가 없소,
당신과 이야기를 할 때 그 랍비에게는

말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요.]
이것은 유태인의 유머이다.

 

김용만 선교사(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에 순복음의 희망 심고 은혜의 열매 맺는다

마약중독, 10대 자살률, 이혼율 유럽 1위
중독자 위한 재활사역, 신학교 운영하며 복음화 주력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당회장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뜨거운 기도에 힘입어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이곳 우크라이나는 한국의 성도님들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처음 우크라이나로 선교를 나갈 때,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우즈베키스탄…” “우루과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드리고, 그간의 사역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프랑스보다 조금 큰 크기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며, 한국의 6배 정도의 크기입니다. 동북쪽은 러시아, 북쪽에 벨라루스, 서쪽에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지형학적으로는 국토의 98%가 평지이고, 산지는 2%에 불과합니다. 제가 사역하는 도시에서 산을 가려면, 가까운 곳은 500km 정도, 멀리는 1000km를 가야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내륙은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7월이 가장 덮고 온도는 평균 23도이지만, 최고 온도는 43도까지 올라 해마다 폭염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추운 12월, 1월에는 평균 영하 10도 정도를 유지하지만, 특히 제가 사역하는 동부지역은 차가운 시베리아 풍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는 최저 온도 영하 42도까지 내려가는 아주 추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오랜 동맹을 단절하고 유럽과 서구세계와 수교를 맺고 있으며 비록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러시아, 터키, 유럽의 영향권의 교차로에 자리 잡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경제와 특히 선교의 미개척 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음주량 세계 5위(한국은 13위, 2010년 세계보건기구 통계)를 자랑(?)하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가장 마약중독자가 많은 나라, 유럽에서 10대 자살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유럽에서 이혼 가정이 가장 많은 나라(이혼율은 약 36% 정도 된다고 함) 등으로 유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동거하며 살고(이것을 합법적이라 생각하는 문화가 평범화 되어 있습니다) 이혼과 불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흔한 경우입니다. 특히 중독자 자녀들 대부분이 청소년 탈선, 정신장애, 혼전관계, 낙태 등이 한국의 몇 배나 되는 아주 심각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보면 10대 초반의 남녀 아이들이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보드카를 마시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나라, 눈물 없인 선교 할 수 없는 나라, 그래서 더 많은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해야 하는 나라, 복음의 어장인 나라입니다.



 구소련에서 독립 한 이후 자유의 물결 속에 기뻐했던 1996년 조용기 목사님께서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대성회를 인도하신 이후에 매일 수천 명씩 교회로 몰려들어 당시 국민의 80%가 예수님을 믿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세상으로 다 빠져나가 복음화율이 15%도 안됩니다. 그래서 잃은 양이 국민의 50%나 됩니다. 과거 구소련권인 CIS가 다시 종교적인 문이 닫혀지고 있는 이 때, 유일하게 복음의 문이 열리는 나라가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는 100여 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국가입니다. 종교 상황을 보면, 국민의 약 60%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정교회 신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만, 국교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2009년 조사를 보면 종교를 가진 사람 중 51%는 정교회, 28.4%는 개신교, 12%는 가톨릭, 4%는 이슬람 그 외 기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곳은 우크라이나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인 자포리쟈입니다. 인구는 100만 명 정도이고 한국의 울산처럼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공업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교회와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재활사역과 제자양성을 통한 복음화 사역을 위해 신학교를 통해 교육하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현재 교회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성인교구로 나누어 각 부서에 사역자들을 배치하여 사역하고 있으며, 성인교구를 구역조직화 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중고등부와 청년사역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신학교는 올해로 9회 졸업생을 9명 배출하고, 13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여 현재 50여 명의 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지난 9년간 기도훈련, 영성훈련,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4년 동안 훈련받은 졸업생들이 우크라이나 각 도시에 나가 교회를 세우는데, 현재 39명이 나가서 개척을 하고 있고, 이 중 10명이 30∼100명 정도의 성도를 섬기고 있으며, 향후 5년을 기점으로 100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비전을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교회와 복음 외에는 마약중독자들을 치료할 대안이 없기에 여러 제자 교회에서도 현재 마약중독자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저희교회도 현재 15명 정도를 수용해 치료와 재활을 하고 있으며 영적으로 매일 성경통독, 묵상, 기도, 체력단련을 통해 많은 형제들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6개월간의 재활을 통해 회개하고 성령체험을 하고 기름부음을 통해 주님과 진심으로 교제하는 법을 배우며, 그 후 교회에서 1년을 봉사한 후 주님께 헌신된 자들은 신학교로 들어와 신학을 하고 주의 종이 되어 복음을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가 됩니다. 현재 많은 제자교회 목회자들도 중독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고 그들이 또 마약 센터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신학을 졸업한 제자들이 교회를 세워 우크라이나 각 지역에 교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매달 제자교회들을 돌아보고 설교를 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 나가는 연합사역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기도와 후원을 통해 돕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들께서 구 소련(CIS)지역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부족한 제가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잘 깨달아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희망의 60주년을 향하여-전세계 성령운동 주도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전 세계에 타오르는 성령의 불꽃 중심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교회, 우리 교회로 몰려든 세계
새천년 발맞추어 복음 전파 방법에 다각적 대응
기도원, 영산수련원 복합 기독문화공간으로 발전

 수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하며 우리 교회는 전 세계에 전방위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성령님과 함께 더욱 힘차게 나아갔다.
 밀레니엄 첫 성회는 2000년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연인원 4만명이 참석한 싱가포르 대성회였다. 조용기 목사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것”을 역설했고 수많은 이들이 성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수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 이 성회 직후인 5월에 조용기 목사는 호주 시드니 크리스천시티교회에서 주최한 ‘리더십 2000’성회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에게 말씀을 선포했고 이는 올림픽을 앞둔 호주대륙을 성령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는 계기가 됐다.  
 6월에는 잠비아와 가봉에서 대성회가 개최됐다. 잠비아 성회는 대통령 초청으로 열렸고 가봉 성회는 3일동안 4만 5000석인 스타디움을 가득 채울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이 두 성회는 아프리카에 오순절 성령운동을 일으키며 아프리카 선교 본격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어 조용기 목사는 멀리 남미지역복음화를 위해 2002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에서 대성회를 인도했다.
 2004년 4월 솔로몬 군도에서는 수도 호니아라 라슨 타마국립경기장에서 조용기 목사 초청 대성회가 개최됐는데 이는 솔로몬 군도의 최대 개신교 성회로 기록됐다. 8월에 열린 몽골 울란바토르 성회는 몽골 기독교 사상 최대 인원인 6만 명이 운집하고 걷지 못하던 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 기적이 나타나는 등 몽골 기독교 역사에 대전환점이 됐다. 

 복음이 들어가지 못할 곳은 없다  

 우리 교회는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복음이 직접 전파 될 수 없는 지역들에 선교 방법을 다각화했다. 2000년부터 중국북방선교회는 조선족 선교에 비해 취약했던 한족복음화를 위해 한족교회를 설립하고 2001년부터 중국 선교지 답사 및 백두산 기도회를 시작하는 등 꾸준히 중국선교에 노력했다. 이즈음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러시아로 번역돼 방송설교가 시작됐다.
 또한 전세계 13억 무슬림들을 위해 그들이 지키는 라마단 기간에 이들을 위한 기도운동을 썩세스중동선교회를 중심으로 실시했다. 1990년대 소련 연방의 해체로 복음의 불모지였던 지역을 위해서도 발빠르게 대처하며 선교사 파송과 교회개척으로 동토의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소련에서 독립한 각 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구 소련지역에 80여 개의 교회를 개척, 130여 명의 주의 종들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전하게 됐다. 또한 침켄트 영산신학교와 영산신학 우크라이나 분교 설립을 통해 현지인을 제자화하며 사역의 지경을 넓혔다. 

 세계가 주목하는 조용기 목사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전도자 조용기 목사는 전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두루다니며 선교사역을 감당해 왔다. 전 세계에서 엄청난 집회 요청이 몰려들었다. 집회 대부분은 현지에서 모든 여건을 준비한 뒤 조용기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에 성회가 끝난 후에도 계속적으로 연계하며 세계복음화를 주도하기 위해 2000년 3월 선교 기구 DCEM이 창립됐다.
 2005년 5월 조용기 목사는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을 수상했다. 이 상은 세계 번영과 안정, 그리고 각 분야에서 추앙을 받는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미국 존 F.케네디, 아이젠하워, 지미 카터 등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록펠러, 포드 등 유명 경제인이 수상한 매우 권위있는 상이었다. 수상과 동시에 뉴욕시 브롱스와 브루클린에서는 5월 18일을 ‘조용기 목사의 날’로 선포했다. 2007년 조용기 목사는 한국인 최초 미 연방의회 인증서, 미국주의회 국제지도자상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세계 언론들이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을 실제로 목격하고 성령의 역사를 취재하기 위해 우리 교회를 방문했다. 2000년 4월에는 펜테코스탈 이반젤, 2001년 5월에는 국제기독언론인클럽 회장 데이비드 에크만 박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003년 조용기 목사 칼럼을 연재했으며 2003년 7월 대만 기독교위성텔레비전과의 인터뷰, 2003년 일본 주니치 신문 인터뷰 등이 있었다.  

 청년을 세계로, 월드미션 단기선교 강화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우리 교회는 청년 성도들의 월드미션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으로 세계선교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띠어 갔다. 월드미션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막 16:15) 성취를 위해 헌신된 젊은이들을 오순절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시켜 해외로 파송해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공동체이다. 1990년 3개국 5개팀 75명으로 처음 시작된 월드미션은 매년 참가자가 늘어나 2000년에는 26개국 22개팀 267명, 2007년에는 35개국 82개팀 1100여 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는 당시 단일교회로서는 세계최대규모로 평가됐을 정도다. 이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 파송 원주민 선교사 28명을 비롯해 평신도 선교사 중장기 선교사와 사역 헌신자, 선교 행정가 등 수많은 일꾼들이 선교 사역에 헌신하는 열매를 거두었다.

 중국인의 영적 축제 아시아성도방한성회

 전세계 기독중국인들의 영적 축제로 매년 여름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1986년 첫 대성회 당시에는 대만을 중심으로 200여목회자와 성도들이 참여했는데 20년이 지나자 2007년 제17회 대성회에서는 참석인원이 우려 5200명에 달하게 됐다. 이러한 성장은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기도원에서 성령침례를 체험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 자신들이 체험한 은혜를 전파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또한 대만과 홍콩 동남아시아는 물론 일본, 유럽 미주지역의 화교들로 점차 참석자들이 확대 돼 ‘작은 중국’을 방불케하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중국인 복음축제가 됐다. 특히 2006년 성회에서는 그동안 은혜를 받고 변화를 체험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목회자들을 주축으로 ‘조용기목사학교’ 발기인 모임이 결성, 200여 화교권 목회자가 참석한 가운데 정식 발대식이 거행됐다. 

 기도원, 영산수련원 건립과 복합기독문화 공간으로 발전

 1973년 파주시에 위치한 교회 묘지 공간에 설립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은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집, 응답이 이뤄지는 기도 성산으로 우리 교회 교인은 물론 교파와 지역을 초월해 성도들이 찾는 장소가 됐다. 영적인 갈급함을 지닌 이들이 하루에도 몇 천 명씩 이용하는 곳인 만큼 국제적인 기도원의 시설을 갖추게 됐다. 기도원 내에 조성된 승리로에는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높게 자란 메타세쿼이아가 300m 늘어서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못지않은 장관을 보여준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주5일 근무제와 웰빙을 중시하는 시대흐름과 함께 우리 교회는 바쁜 일상에 지친 성도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영적 휴식터 건립에 대한 필요성을 검토했다. 이에 따라 2002년 3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초입에 순복음수련원 건립을 시작해 2004년 6월 11일 준공했다.
 수련원 건물은 대지면적 9,737㎡, 연면적13,612㎡로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로서 국제규모의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대강당을 비롯해 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수영장, 협동훈련장(챌린저 코스), 야외무대, 인라인스케이트장, 레펠장, 나무숲으로 구성된 자연놀이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구비했다. 개원 1년 후 순복음수련원은 시설을 업그레이드해 영산수련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누구나 찾아와 시설을 활용하고 주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산수련원의 둘레길은 사과나무 외 9종 8460주 나무가 심겨져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기도원과 맞닿은 길을 만난다.
 현재 수련원은 기독교 단체와 기업, 대학교 및 중고교는 물론 일반인까지 이용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또한 전국청소년 수련시설 모범시설로 선정돼 2008년 ‘굿스테이’ 인증은 물론 여러 상을 수상했다.

 


기독 이미지 배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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