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히 전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서울경찰 북지역 회장

서울 동대문경찰서 이미령 경감

아버지가장로이고, 어머니가권사인 가정에서 태어나모태신앙인 저는 그 어느 때 보다 지금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광염교회에서 권사직분으로 성도들을 섬기게 하시고성경파노라마등 성경공부와 새벽기도회를 통해 주님의 세밀한 음성으로 대화하며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게 하시며,

 

경찰선교에 대한 사명을 거듭 주셔서 지난 2014년 경감으로 승진을 하게 하시고 주님이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게 하시더니 선교회원 중 여경이 하나도 없는동대문서로 발령 날 것을 미리 알게 하시고 발령 2주전부터기도로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금여유 있는 부서로 가고 싶다고 간구했더니 세밀하신 주님께서장비보급계장이란 직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할렐루야!!

 

장비계장으로 있으면서 휴게실에서 만나는 여경마다 1:1로 교회는 다니는지? 다닌 적은 는지? 어머니는 다니는지? 시댁은 다니는지? 아님 초, , 고등학교 때 다닌 적은 있는지? 물어보며 전도 대상자를 분류하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거부하는 여경들은 제외하고 과거에 다녔었다거나 시댁이나 친정이 다닌다는 여경들부터 새벽마다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4개월이 지났을 즈음, 주님은 아예 전도 대상자들이 있는 여성청소년계로 저를 보내셨습니다. 다시 바쁜 부서로 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싫고 부담이었지만, 전도 대상자들이 있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동안 전도해도 꼼짝하지 않던 여경들이 제가 주무계장으로 오니 경찰서 수요정오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지금은 금요일 저녁 제가 인도하는소그룹직장 성경공부모임에도 4명이나 참여하고 있어 잘 섬기며 인도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오직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도대상자들을 계속 품고 기도하기를 만1년이 되는 어느 날, 휴게실에서 우연히 만난 여경에게너를 위해 1동안 새벽마다 기도했단다.’라고 했더니 그동안 주님께서 그 자매의 마음을 만져 놓으셔서 순순히 다음 주부터 나오겠노라고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하고는 지금까지 잘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날아갈 듯 기뻐 소리치며 할렐루야를 외치고^^(한 영혼이 주께 돌아올 때 느끼는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여경도 직장예배에 나오기로 약속하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잘 나오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품고 기도하는 여경들 마다 때가 되니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교회새벽기도를 마치면 바로 출근하여, 경찰서 경목실에서 말씀묵상 후 오늘도 주님께서 인도하시길 바라는항복기도를 하고, 한 시간쯤 운동을 하곤 했는데

그 날은 감기 몸살기운이 있어 운동을 포기하고 휴게실에 잠깐 누웠는데 그 잠깐 동안 천국에 간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남편 손을 잡고 나란히 천국에 갔는데 다들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그야말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13:44~47)

 

저는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하며 앞을 보니 맨 앞에 저희 교회 목사님이 계시고, 다시 누가 왔는지 보려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여경 두 명이 보였습니다. 그 여경은 평소에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면서도 교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아예 복음을 전하지 않았던 여경이어서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 ~~이 여경들도 내가 전도하라는 것이구나!!’ 라고 깨닫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두 여경을 놓고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명이 같이 당직하게 되어 제가 교회 다닌 적 있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친정어머니는 지금도 다니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온 몸에 전율~~^^ 소름 쫘~^^)

 

그래서 지금은 왜 안다니냐고 했더니 남편과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시는 독실한불교신자라서 나이가 드시면 얘기를 할 까 생각 중이었고, 자신도 그렇게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라는 것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느냐? 며 전도를 하고는 그 순간 택한 백성은 한명도 놓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명은 미혼인데 아버지는 절에 어머니는 성당에 다니시며 자기 또한 절 쪽에 더 마음이 간다며 단번에 거절하여 일단 복음을 전하고는 어머니 따라 성당이라도 나가라고 하고는 전도는 내 소견의 옳은 대로 분류해서도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6:19)

 

선별적으로 골라 복음을 전했던 자신을 회개하며 다시 후배들을 품고 기도합니다.

지금은 저희 사무실에 있는 여경 6명 전체가 다 경찰서 수요정오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다른 사무실에 있는 여경들까지 8명이 예배에 잘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그들이 모두 소그룹에 참여하여 양육을 받는 것이 제 기도제목이고, 아직도 믿지 않는 동료 경찰관들을 향해 기도로 심고, 복음 들고 나아가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내가 속한 경찰서가 하나님의 통치로 하나님의 나라가 날마다 임하길 기도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섬기는 우리 경찰이 복음으로 변화되어 예수 경찰이 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으로 국민들을 대하고 섬기게 되고 그로인해 우리 국민모두가 행복하여질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복음화가 앞당겨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종암경찰서 선교사역현장에서...

주님은 사용하시는 사역자와 함께하신다.

 

 

서울청 조직법무계 서민선 경감

 

저는 서울 경찰청 조직법무계에 근무하는 서민선 경감입니다. 20132월 종암경찰서에 전입하여 20162월 서울청으로 전출하기까지 경제팀장과 경무계장으로 근무하면서 선교부회장 1, 선교회장으로 23년동안 사역한 내용을 동역자인 여러분과 나누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사역 보고는 먼저 행하신 믿음의 선배님들의 터 위에 세워진 사역이었음을 고백하며, 이 자리를 빌어 열악한 환경가운데서도 경찰선교를 한결같이 지켜 오신 선배님들께, 다음세대를 이어 달려갈 후배의 한사람으로서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경찰서 선교회는 예배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사람의 신우회원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선교회원(선교사)으로 그 정체성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사역의 동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말씀과 기도로 훈련되고 공급받는 소그룹의 활성화라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133:1~3)

3년간 재직하는 동안 경목실에 간사가 없는 종암경찰서에서는 직원들이 예배준비를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기에 별도의 소그룹이 없었음에도 끈끈한 가족애와 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종암서에 전입하면서 부회장의 직책을 맡아 회장님과 함께 매주 화요일 7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우리의 소그룹은 시작되었습니다. 선교회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둘이 모인 곳에는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기도회를 시작하였고, 전도소그룹을 통해 몇 명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도 경험 한 후, 겨울에는 매일 4~5명이 점심시간에 통독모임을 통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과 풍성한 기도응답을 주셔서 서로 간증들을 나누게 하시고 한 명 한 명 임원들을 세워가게 하셨습니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 이러라.”(3:14~15)

 

둘째 해에는 회장의 타서 전출로 회장의 직분을 맡게 되어 양육훈련을 시작하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목요일 7시에 시행되고 있는 목요 중보기도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꾸준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셋째 해에는 성북회장으로 섬기던 분의 전입으로 모임마다 빠지지 않는 핵심멤버가 4명이 되면서 보다 힘 있는 중보기도모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매주 월요일 정오 매일성경을 가지고 말씀연구와 묵상의 깊이도 더해 주셨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1:8)

 

하반기에는 예배인원이 6~9명이던 것을 11~17명까지 늘려주셨고, 일터속의 그리스도인이란 제하의 양육으로 이전 예배인원보다 많은 14명이 등록하여 11명이 수료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은혜를 받은 지체들이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되고 교회 직분을 맡는 등 믿음의 지경을 넓혀주는 놀라운 성장들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3년 내내 크리스천 과,서장 한분 없이 서장부임 축하예배를 눈물과 금식으로 준비했음에도 거절당하는 아픔도 경험했지만 주님만을 붙들었기에 어려운 환경가운데 작은 부흥을 경험하게 하셨고, 이제는 크리스천 서장을 보내주시고, 신실한 과, 계장 그리고 팀장들을 보내주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7:9~11)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셨는데, 주님의 이름아래, 말씀이 있는 곳에 모이도록 섬긴 것 밖에 없는데, 주님이 친히 일하시고 기경하시며 성장시키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선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잃은 영혼을 섬기며, 업무에서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경찰선교사들을 세워가셨습니다.

 

우리 안에 주신 예수 십자가의 생명이 삶에서 더욱 실제되게 하시는 전인격적인 소그룹과 기도모임은 경찰 선교사역의 성패를 결정짓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그룹 활성화와 기도모임이 전 경찰관서에 풍성하게 열매 맺을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기도합니다. 소자들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일하실 주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어 가실 것을 확신하며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마라나타~


 


               

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서울경찰청 최민호 경위

나는 군 전역 후 어떻게든 고향근처 대기업 공장에 취직하여 고향에 머물기를 원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고심 끝에 결국 진로를 고쳐 경찰시험에 도전을 하여 결국 합격하였다. 합격의 기쁨도 컸지만 더 설레었던 것은 드디어 고향을 떠난다는 것, 미지의 세상으로의 발 디딤이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하는 염려와 설레임 이였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상경한 그해 봄 4월에 오랜 친구였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셋방살이를 전전하다보니 생활의 궁핍함은 모든 가치를 물질적 풍요로움에 두고 황금송아지를 쫒으며 앞뒤 안보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를 따라 한 달에 한두 번 교회를 따라가 졸다가 하품만 하다가 오기도하고 어떤 때는 가기가 싫어 다툰 적도 부지기수. 그러던 어느 봄날 교회에서 60일 작정기도를 한다기에 참여해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아침에 못가면 저녁에 참석하고. 열흘을 지나 삼십일. 60일을 채워나가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 예배가 기다려지고 신기한 것은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말씀이 쏙쏙 귀에 들어오고 성경이야기가 궁금해지며 흥미가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쏠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흰옷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한 중년여성이 나타나 노려보며 왜 교회를 나가냐며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악몽에서 잠이 깨고 보니 온몸이 땀에 젖고, 매일 반복하여 꿈을 꾸며 내일도 꿈꿀 것이 분명해 두려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몇일 동안 밤잠을 설치며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닌 것 같아 교회를 다니는 주변사람들에게 상담을 했더니 잠에서 깨면 기도를 하라고 하여 기도를 할 줄 모르는 저는 주기도문을 반복해서 읽으며 귀신을 물리쳐 달라고 우는 어린아이마냥 기도를 드렸습니다. 일주일을 계속하던 어느 날 마음에 자신감이 생기며 귀신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두렵지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시고 나의 가는 길에 인도자가 되어주시리라는 믿음이 제 마음을 붙들어주시자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귀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일 이후로 하나님과 마음으로 대화하듯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동산경기가 얼어붙어 집을 팔려고 내놔도 팔리지 않고 대출을 받아 구입한 아파트의 이자폭탄이 떨어지면서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내의 실직과 거듭된 유산으로 정서적인 고갈이 심해지고 다툼이 잦다가 설상가상 아내와의 갈등으로 별거에 들어갔고 아내는 딸아이를 데리고 멀리 대전으로 내려가면서 급기야 가족이 해체직전으로 내몰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혼을 결심하고 고시원과 찜질방을 전전하면서도 아침저녁으로 근처 교회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를 했고 틈나는 대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갓난아기 같은 나의믿음은 서서히 굳어져 갔고 마음의 상함이 깊어지며 괴로움의 정도가 강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도 깊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낙담과 상심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위로해 주시며 일으켜 세워주셨고 여러 가지 사건과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이사야 41:10~11)

 

보잘 것 없는 나를 오늘까지 지켜주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이 방황하던 나를 붙들어주시고 아내를 붙들어주셨다.

사무엘 서에서 한나가 기도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둘째아이를 달라고 마음을 다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만일 아내에게 아이가 생기면 아내와 다시 가정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면서. 연이은 유산으로 산모가 위험해 질수 있으니 더 이상은 기대하지 말라는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한나의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회임을 하게 하시고 둘째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 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 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것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 이니이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1:10~17)

 

그 일로 인해 아내가 대전에서 용인으로 짐을 옮기고 서로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생각이 변하니 행동이 틀려졌고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가정에선 부부싸움과 다툼이 사라지고 화목이 찾아왔습니다. 20여 년 동안 1갑 이상 피우던 담배와 술도 끊고 그 돈으로 일천번제 헌금을 드리며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자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안락함과 승진을 통한 명예로움이었던 이제까지의 나의 인생관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선교사들을 후원하게 하시고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시며 새벽예배 차량봉사를 하게 하시면서 직장동료들에게까지도 예수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직장의 계장님은 최주임이 미친것 같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엔 나에게 닥친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붙잡고 있었던 물질적인 요소들과 세상적인 사고와 가치관들에 대해 내가 내려놓을 때까지 나를 훈련시키고 계신 것이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참고 견딜 만큼의 고난을 주시면서...

얼굴인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며, 가치관도 바뀌고,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새로운 목적이 생겼습니다. 뚜렷하고 분명한.

낡고 케케한 이기심과 내 중심의 낡은 사고는 벗어 던져졌고 이제 복음의 보따리를 어께에 둘러메고 나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경찰선교 현장으로....

고난가운데서 방황 할 때도 나와 함께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시키실 때 일하라/한규현 경장

 

마포경찰서 외사계 한규현 경장

 

저는 현재 서울경찰기독선교연합회 서지역 총무와 마포경찰서 선교회 총무를 맡고 있으며 목동 횃불교회 학생회 교사와 청년회 찬양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들은 불과 1년 사이에 제가 감당하게 된 벅찬 사역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실 때에도 모세를 사용하셨고 또한 열두 제자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용하셨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항상 아멘하고 순종하기로 작정하고 금번 간증문 요청에도 조금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간증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전통적인 불교집안으로 초등학교 1학년 옆집 권사님의 권유로 처음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2 수련회 때 회개의 기도와 함께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 분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로는 모든 삶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성적이 고등학교 내내 모두 다 가 수준이었지만 외사계 근무하는 것이 저의 기도제목이고 꿈이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마포 경찰서 외사계에서 근무하게 하시고 현재 2년 차로 외국인 범죄예방교실, 운전면허교실, 駐韓 외교사절 및 외빈 신변경호, 韓美합동순찰, 미군 소파사건 등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서강대나 홍익대에서 영어로 외국인 유학생, 교환학생들 대상으로 범죄예방 프리젠테이션도 하게 하셨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열방으로 나가 영어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11:9~13)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저는 2011년 처음 경찰에 들어왔고 기동대 2, 지구대 1년 생활을 하면서 주일 성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일 성수하는 것이 저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지금은 두 달에 한번 주일 당직과 특별한 주일 동원이 있는 경우 외에는 주일 성수를 할 수 있는 부서에서 근무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일에 순종하기로 하고 교회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 찬양팀 사역도 하면서 매일, 매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28:1~6)

 

두 가지를 꼭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신약에서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에 이단이 들끓을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현재 이단이 판을 치고 있고 그리스도인은 점점 침체되어 안타깝습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4:1.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20:4~5)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전보다 말씀을 몰라서 그러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까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통독해보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욱 깨닫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은 꼭 믿고 있습니다. 누군가 다가와 당신 누구냐? 그리스도인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딱 저는 두 가지는 꼭 믿고 기억하고 답변합니다. 그리고 저 두 가지를 위해 일상과 직장 속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금번 전국 경찰 복음화 금식 대성회 기간 중 특별히 CBS를 공격하는 이단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저를 위해서도 생각날 때마다 항상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God always be with you! ^^



최은여 권사(여의도순복음춘천교회) -

죽음의 희귀병을 고쳐주신 치유의 하나님

다리부터 서서히 굳어져 가는 시한부 인생
춘천교회 출석 후 치유의 하나님 붙잡고 기도

 2012년 2월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서울 큰 병원을 찾았다. 병의 원인을 알고자 받은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서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희귀병입니다. 짧으면 3년, 길어야 5년입니다”
 ‘뭐, 내 삶이 길어야 5년이라고?’ 나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아들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걱정이다. 엄마가 걸을 수 있고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서둘러 결혼해”

 나에게 닥친 희귀병은 다리부터 서서히 몸이 굳어져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이유 없이 잘 넘어지길래 처음에는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자주 그런 증상이 나타나자 서울에서 큰 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딸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춘천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는 아무런 이상 소견이 나오질 않았다. 딸의 귄유로 서울 대학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마지막 핵검사를 한 결과 뇌소양증, 파킨슨, 수전증 의심 소견만 나왔을 뿐 정확한 병명을 찾질 못했다. 약을 바꿔가며 처방했지만 병에 대한 차도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춘천에서 오랫동안 감리교회를 출석했다. 그런데 교회에 문제가 생긴데다 거리가 멀어 집 근처 교회로 옮길 요량에 이곳저곳을 다녀보던 중이었다. 2013년 어느 한 새벽, 집에서 차로 10분 떨어진 여의도순복음춘천교회의 새벽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마침 위성으로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됐는데 목사님이 설교 중 “교회를 여기 저기 다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내 마음에 꽂혔다. 바로 내가 처한 상황이었고, 나를 위해 하시는 말씀 같았다. 순간 ‘여의도순복음춘천교회에 등록하자’는 생각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주일, 교회에 등록하고 담임이신 이상열 목사님에게 나의 ‘희귀병’을 알리고 기도를 요청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이상열 목사님은 틈만 나면 안수기도를 해주시며 ‘살 소망’을 주셨다. 부교역자님과 교구 식구들도 나를 위해 중보 기도했다. 여의도순복음춘천교회에 처음 나올 때 내 얼굴은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형편없었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수요예배와 금요철야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자 6개월 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일의 삶은 감사의 고백이었다.
 이제 여의도순복음춘천교회를 출석한 지 4년. 병원에서 말한 3년의 시한도 지난 지 벌써 한참이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굳어지기는커녕 넘어지는 증상 없이 전보다 더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신앙 생활하자 의사도 못 고친다는 내 병을 하나님이 치유해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내가 병원에서 희귀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와 같은 증상이 있던 사람들은 지금 휠체어를 타거나 누군가의 부축 없이 걷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더 건강해져 ‘혹시 그때 병을 잘못 안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니 내 병은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난 사람들에게 치유의 하나님을 간증했다. 죽을 수밖에 없던 내가 건강을 되찾고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행복해하자 믿음이 없던 남편은 나와 함께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게 됐다. 남선교회에서 봉사하는 남편은 지난 9일 이영훈 목사님이 춘천에 오셔서 열린 ‘축복성회 및 제직임명예배’ 때 안수집사 임명을 받았다. 강단에 오른 남편 김인규 안수집사가 기도를 받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남편이 믿음의 일꾼으로 변화된 게 기뻤다.

 세 자녀도 내가 건강을 회복한 것을 보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희귀병 진단을 받았을 때 옆에 있다 놀란 막내아들에게 당시 사귀던 애인이 있었는데 주님을 모르던 그 아이가 지금은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며느리가 된 것이 무척 감사하다. 여의도순복음춘천교회를 만난 것은 나에게 크나큰 축복이었다. 이상열 목사님과 교역자님들, 성도들과 함께 신앙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오직 감사’이다.


조형태 안수집사(종로중구대교구) -

삶에 감사가 있는 이유, 어머니의 기도 때문

갑자기 찾아온 사업 부도로 절망에 빠진 삶
주님 건져주시고 새로운 인생 살도록 이끄셔
 


 얼마 전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미용선교회 주최로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분들을 위한 제19회 연합결혼식이 열렸다. 이영훈 목사님의 주례로 아름다운 남녀가 서로를 평생 아끼며 살아가겠노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처음 출석할 때부터 지금까지 미용선교회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최근에는 총무까지 맡아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어도 기쁨과 감사로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지만 한 가지,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만 가득하다.

 30대 무렵의 어느 날 나는 청량리역에서 전도지를 돌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교회에 출석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도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어머니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마주한 것에 당황하신 듯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내게도 교회에 갈 것을 종용하셨다.  

 그때는 자꾸 집으로 성도들이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힘들고 귀찮기만 했다. 당시 사업을 하던 나는 세상 문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기에 사사건건 어머니랑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수시로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내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그때 나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이 일로 가족들에게도 큰 아픔을 남기고 말았다. 승승장구하다 갑자기 추락해버린 나는 현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치 늪에 빠진 듯 점점 더 절망의 깊은 바다로 빠져만 들어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와 친구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방 곳곳에 다니며 돌을 모으는 ‘수석’에 빠져 있었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친구부부가 야외로 놀러가자며 불러낸 것이다.

 그런데 친구부부 차에 동승했더니 “출발하기 전에 교회에 가서 예배만 드리고 가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알았다고 하고 따라나섰는데 그 곳이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오래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크고 많은 사람들이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친구부부를 따라 얼떨결에 대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 한 소절을 듣는 순간 눈물 콧물할 거 없이 깊은 마음속에 있던 울분들이 터져 나왔다. 그 후부터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통곡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친구부부가 데리러 오지 않아도 내가 먼저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친구의 조언에 따라 성경학교, 성경대학도 수료했다.

 신학 공부도 하고 싶어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어머니가 그때 치매초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어머니를 제대로 간호해야겠다 싶어 사회복지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어머니를 잘 모시기도 전에 어머니는 먼저 천국에 가셨다. 내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은 드렸지만 이미 어머니는 내가 하는 말씀을 이해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진작 어머니 말을 들었더라면 어머니를 더 편안하게 잘 모셨을텐데 하는 후회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다.

 비록 넘치는 삶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기쁨과 감사로 봉사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어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 은혜에 힘입어 나는 친구부부와 함께 미용선교회에서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 지방 곳곳에 다니며 개척교회를 지원하는 등 선교회의 사역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겠다. 그리고 이 지면을 빌어 일찍이 어머니께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김정연 성도(대학청년국) -

남편에게 간이식 과정 하나님이 인도하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끄신 주님께 감사

 이제 결혼한지 2년이 됐다. 결혼 전부터 남편의 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약도 들지 않고 간을 이식을 해야 할 상황이 오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병원에서는 가족 중에 간을 기증해줄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연로하셨고 하나뿐인 누나는 임신 중이었다.

 생명만큼 절박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니면 기증자가 없을 것 같아 병원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혈연관계도 아닌데다 남편과 나는 몸집 차이도 많이 나서 어려울 거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게다가 나는 남편과 혈액형도 달랐고, 혈소판 수치가 낮아 혈액 응고력이 일반인보다 낮은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검사를 해도 부적합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수술을 한다해도 기증자와 환자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간은 전체가 혈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이식 수술은 특히 출혈이 많은 위험한 수술이기 때문에 혈소판 수치가 낮은 것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했다. 나는 무섭고 떨렸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방법으로 잘 인도해 주시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의 상담 끝에 기증자 검사를 받았다. 두 번의 검사 후 기증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나와 남편이 기증자와 수혜자로서 완벽하게 맞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힘든 수술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수술을 집도하시고 잘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이 약하다. 그리고 겁도 아주 많다. 그래서 주사도 맞는 게 늘 두려웠다. 그런데 이 엄청난 수술을 앞두자 두려운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주시되 내 마음에 조금의 두려움이나 갈등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술을 준비할 때부터 수술 후 회복하는 모든 과정 동안 내 마음에 평안과 감사가 흘러넘쳤다. 할렐루야! 특히 내가 가진 것으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또 하나의 간증은 친정어머니다. 수술을 반대 하실 것 같아서 기도만 했다. 그리고 수술 며칠 전 기증 의사를 밝혔다. 친정어머니는 오히려 담대한 마음으로 허락해 주셨고 함께 기도해 주시고 용기를 주셨다. 

 큰 수술이었던 만큼 나와 남편은 육체적 고통의 시간을 함께 지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누구보다 잘 회복할 수 있었다. 특히 남편은 3주간 있을 거라던 무균실에서 일주일 만에 일반 병실로 옮길 만큼 회복이 빨랐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들도 힘든 수술인데 회복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며 함께 기뻐했다.

 또 수술의 과정 가운데 우리 가정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간이식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의사 선생님께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고, 막대한 비용이 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금전적인 어려움도 겪지 않게 모든 상황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간이식 수술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물론 양가 모든 가족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더욱 단단한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질병으로 고통 받던 남편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건강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빛나게 살아갈 것이다.  


정정섭 장로(군선교회) -

하나님과 동행하면 형통합니다

 1945년 8월 15일 라디오에서 일본 천황이 항복문을 낭독하는 소리가 나오자, 내가 살던 황해도 구월산 주민 모두가 나와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광복이 된 수요일부터 계속 놀고 있는데 ‘일요일에 학교로 모이라’는 사발통문을 받았다. 학교에 갔더니 두루마기를 입고 흰 수염이 난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학생 전부를 모아놓고 우리 학교가 원래 교회였고 자신은 목사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셨다. 그리고 한지에 적어온 찬송가를 가르쳐 주셨다. 그날 배운 ‘예수 사랑하심을’이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집에 오자, 할머니와 어머니는 누구에게 배웠냐며 놀라셨다. 대답을 하자 “목사님이 오셨네. 목사님이 오셨어”라며 크게 기뻐하셨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목사님과 우리 할아버지는 친구 사이였다고 했다. 두 분이 함께 평양신학교를 다니셨지만 할아버지는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목회자가 되어 고향에 오자 교회를 세우는데 큰 몫을 했다고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해방 후 우리 교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산당의 박해가 날로 심해져 갔다. 그런 중에서도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학교를 다니며 나라를 빛내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공부를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이기는듯 했지만, 끝없이 내려오는 중공군으로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졌다.

 나는 어머니와 누님 두 분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 배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군산항에 도착했다. 실향민이 된 우리는 군산에서 정부가 내어준 트럭을 타고 김제 공덕면 회령리 문씨마을에 정착했다. 길고 험한 피난길이었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족과 함께 하셨다. 부잣집 머슴살이를 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꿈을 주셨고, 희망을 주셨다.

 시집간 누님을 따라 대전에 갔다. 역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당시 군산보안부대에서 일을 하면서 군산상고를 다니는 친척형이 있었다. 나는 형을 만나 형처럼 일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형은 ‘알기 쉬운 영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면서 영어공부를 해보라고 했다. 내가 황해도에서 공부했을 때는 소련어를 배웠기 때문에 나는 독학으로 알파벳부터 공부했다.

 대전에서 장사를 하던중 5군단에 발령이 난 군인이 계셨다. 그분은 나를 심부름하는 아이로 쓰시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난 그분을 따라 강원도 5군단 부대를 향했다.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는 나를 보신 대장님이 공부를 하고 싶냐고 물으셨다. 그러시더니 포천중학교에 넣어주셨다. 그분이  청주대장으로 발령을 받자 나를 청주중고등학교로 옮겨주셨고 거기서 졸업해 서울사범대학교 영문학과까지 진학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청주고등학교를 다닐 때다. 사람들은 나를 특무대장의 아들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부잣집 딸이 나를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고 서울로 가서 공부를 한 후 청주지역에 학교 발령 요청을 한 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사범대학을 나오면 먼저 발령을 받고 1년간 학보로 가면 군복무를 마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군제도가 바뀌어 3년 사병생활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너무나 아찔해 장교시험을 봤다.

 하루는 나를 특무대장의 아들로 착각을 했던 그 아가씨가 8년 만에 찾아와 결혼을 하자고 했다. 오랫동안 결혼을 위해 불공을 드렸다면서 말이다. 우린 결혼을 해서 2남 1녀를 낳았다. 나는 신앙생활을 계속 했지만 아내를 전도하기란 쉽지 않았다. 부대 안에는 교회도 있고 절도 있었기 때문에 각자의 종교대로 예배를 드렸다. 나는 아내를 위해 기도했다. 좋으신 하나님은 너무나도 인격적인 방법으로 아내를 교회로 인도하셨고, 교회에 나오자마자 십일조 생활을 했다. 군인의 월급은 뻔했다. 하지만 십일조의 축복은 물질의 축복을 넘어 자녀의 형통함으로 채워주셨다. 중령으로 예편한 후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감사뿐이다.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박영자 권사(금천대교구) -

“이번 특새 통해 목발을 던져버렸어요”

15개월간 목발 생활, 고통의 괴로움 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 응답 주셔
 

 추수감사절을 맞아 지난 2주간 진행된 특별새벽기도회 기간, 17일 새벽이었다. 이영훈 목사님의 말씀이 끝난 후 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TV화면 아래 자막이 흐르듯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는 환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데 함께 기도회에 왔던 둘째 아들이 나더러 “이번에는 아예 나을 것을 작정하자”며 10분만 더 기도하자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 ‘아픈 다리를 고쳐주세요.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고 목발을 짚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성전을 나와 차를 세워 둔 교회 길 건너까지 목발을 짚고 오는데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목발을 짚지 않았는데도 신기하게 걸음이 떼졌다. ‘목발 없이 걷다니…. 하나님이 고쳐주셨다’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입에서는 감사 고백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서둘러 김금화 지역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대로 걷기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중보하며 시간이 되면 차로 데려다주던 고마운 분이었다. “지역장님, 나 목발을 던져버렸어요. 이제 걸을 수 있어요” 수화기 너머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 감사’라는 말이 들려왔다.

 유전적 평발로 오른쪽 발이 바깥쪽으로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50세가 넘어서였다. 불편한 정도였지, 증상이 그리 심각하지 않아 그냥 뒀더니 그만 수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복숭아 뼈의 통증이 심해 지난해 8월 병원을 찾았더니 뼈 주변 살이 손상됐다는 것이었다. 썩어버린 살을 제거하고 발바닥에 고정 핀을 박아놨는데 거기서 염증이 생겨났다. 핀을 제거하고 다시 핀을 박는 수술 등 4번의 수술이 진행됐지만 그 과정에서 복숭아 뼈에 손상이 오고 말았다. 이후 나는 지금까지 15개월을 목발이 있어야만 다닐 수 있었다. 목발을 짚고 몇 걸음을 떼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두 다리로 걷는다는 것이 큰 축복임을 그 때 알았다. 힘겹게 목발을 짚고 걷다보면 두 발로 걷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더 답답한 것은 마음대로 예배를 드리러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건물 3층에 있는 기도처를 올라가는 일도, 새벽예배를 드리러 교회 오는 것도 나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예배 중간 성전에 도착해도, 헌금만 드리고 성전을 일찍 나서야 했어도, 나는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간구하며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예배를 다녔다. 걷기 힘들 때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기도원 성령대망회도 참석했다.

 이번에 2주간 열린 특별새벽기도회도 첫 주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둘째 주는 다행히 둘째 아들이 나를 교회까지 데려다 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아들은 나에게 “이번에는 정말 하나님께 아픈 발을 고쳐달라고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해요. 그래서 응답 받아요”라며 함께 기도했다. 금천대교구 목회자님들과 교구장 김현동 목사님 그리고 지역식구들도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의 이런 기도가 한 마음이 돼 이번 새벽기도회 때 하늘에 상달됐고, ‘기적이라는 응답’으로 내게 임한 것이었다. 던져버린 목발은 집 한쪽 구석에 놓여있다. 담당 목사님은 하나님이 우리 지역을 축복하시고 더 많은 일을 하시기 위해 이런 기적을 베풀어주셨다고 했다. 그래, 이제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많다. 전도도 해야 하고, 기도도 전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게 다니고 싶던 새벽예배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올 것이다. 3층에 있는 기도처도 당당하게 올라갈 것이다. 내게 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것이다.


방희도 집사(강동성전) -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다니엘기도회 완주하니 취업의 문 열어주셔
매일 학교 옥상에서 학생들 위해 기도해
 

 나는 많이 부족한 초신자다. 그래도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나는 오랜시간 타종교집안에서 자라 교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일반 회사를 퇴직하고 택시회사에서 기사로 근무했으나 나이가 75세가 되니 고령자라는 이유로 권고퇴직을 하게 됐다. ‘이제 나이가 83세가 되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싶어 체념하고 있을 때 강동성전 한종숙 권사님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갖고 있던 소원을 들어주신다. 기도해보라”며 전도했다. “당장 출석은 안해도 좋으니 교회 구경이라도 하라”는 말에 이끌려 처음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 앞서 아들이 권유해도 움직이지 않던 내가 3주 만에 새신자교육을 수료하고 교회에 등록해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일마다 “하나님 작은 소원이지만 들어주세요”라고 간절히 매달렸다. 강동성전는 매해 21일 다니엘기도회를 진행하는데 나는 2년 연속으로 21일을 완주하며 하나님께 내 소원을 아뢰었다.

 2번째 다니엘기도회를 마친지 얼마 안된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좋은 직장을 소개해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친구를 따라 간 곳에서 난 깜짝 놀란 단어를 발견했다. 바로 ‘다니엘’이었다. 친구가 나를 데려간 곳은 장애우들을 보살피는 다니엘학교였다. 두 번의 다니엘기도회 이후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곳의 이사장, 교장 선생님들을 만나 면접을 봤다. 면접을 마치고 나왔을 뿐인데 저절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기도가 먼저 나왔다. 아직 합격여부가 결정된 것도 아닌데 그냥 감사했다. 면접을 보고 난 그날 오후에 바로 연락이 왔다. “월요일부터 출근하십시오” 이 말에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기쁜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했다.

 매일 출근할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작은 액수지만 매달 십일조하고, 선교헌금, 감사헌금할 수 있음이 너무나 행복했다. 매일 새벽 6시 반이면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제일 먼저 하는 것이 학교 옥상에 올라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아침뿐만 아니라 일이 없는 시간에는 옥상에 올라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하루에 여섯 번을 기도하고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나는 선생님도 아닌데 아이들이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잘 따르고 학부모님들도 나를 좋게 평가해줘서 3년째 근무하고 있다. 200여 장애우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하다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를 토대로 작은 기도문을 만들어 학부모들에게 나누어 주고 아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있다. 

 비록 90세를 앞둔 시점이지만 이왕 시작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어 매주일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메모하고, 순복음가족신문에 게재되는 공과와 교회주보를 스크랩한다. 조용기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도 따로 정리해서 모으고 있다. 이것들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아내와 함께 틈틈이 다시 펼쳐 읽으며 신앙생활을 키우고 있다. 나의 작은 소원을 담은 기도에도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작은 일이지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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