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승 성도(서대문대교구)

- “하나님께 기도해 믿음의 가정 이뤘죠”

연하의 美 보스턴대학 교수와 결혼    
신앙 바로 세우니 결혼에 대한 기도 응답 받아


나는 지난해 12월 15일 결혼식을 올린 새색시다. 올해 내 나이 48세. 모두들 결혼을 걱정하는 노처녀였던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주님이 예비하신 배필을 만나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나는 피아노 학원 원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청년시절 교회를 다니다 교회를 떠났던 나는 2년 전 지인을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오게 됐다. 10년 만에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된 나는 처음엔 순복음 스타일의 예배가 낯설었지만 말씀에 은혜 받고 성령을 받아 주일이면 하루 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기뻤다. 지역장 이은희 집사님을 만나 지역예배도 드리고 교구실에서 기도도 받으며 신앙 훈련을 제대로 하게 됐다. 금요철야예배도 드리고 성경학교와 순복음상담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실업인연합회 다윗찬양대, 주일 4부 나사렛찬양대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내 기도 제목이었던 결혼에 대해 구체적인 꿈과 믿음을 가졌다. 지역장님은 내가 나이가 많아도 결혼할 수 있다며 강한 믿음을 갖고 기도하라고 조언해주셨다. 매일 학원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성경을 읽었다. 결혼을 놓고 하나님께 100일 작정기도를 두 차례 드리고 밤늦게 집에 가서도 쉬지 않고 찬양을 부르며 믿음의 가정을 꿈꿨다.  

 지난해 6월 이영훈 목사님께서 나사렛찬양대의 찬양을 칭찬하시는 꿈을 꿨다. 나는 하나님이 찬양을 기뻐하시는구나 생각했는데 지역장님은 내 기도가 응답됐다고 하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신랑을 만났다.

 지역장님의 소개로 보스턴 대학교 교수를 소개 받았다. 미국에 있는 분이라 SNS를 통해 사진을 보내고 대화를 했는데 성격이 너무 잘 맞았다. 상대방도 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는 매일 문자를 주고받았고 하루에 8∼9시간씩 전화하고 문자하며 사랑을 키우게 됐다. 서로 만난 적도 없이 화상통화만 하다가 한 달 만에 전화로 청혼을 받았다. 보름 후 내가 미국에 다녀오면서 우린 처음 만났고 구체적인 결혼 계획을 잡았다. 갑자기 기도가 응답돼 결혼을 준비하는 내 상황이 너무 놀라웠다. 이게 하나님의 응답이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여자 나이 40대 중반이 넘으면 결혼이 힘들다고 했지만 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국 유명 대학 교수인데다 연하의 총각을 남편으로 맞아 결혼하게 됐다. 함께 중보기도해주신 지역식구들도 모두 놀라워하며 함께 기뻐했다.

 난 지금 보스턴 신혼집에서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다. 우리 부부는 함께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가정을 이뤄나갈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강순구 장로(반석대교구) 
- 죽음에서 건져주신 주님께 영광

생사의 기로 섰을 때 중보기도 힘으로
5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해

10여 년 전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생사의 기로에서 나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고 완악하고 고집스러웠던 나를 내려놓게 됐다.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어 치료 후 3개월여 만에 퇴원을 준비하던 때였다.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며 몸에 한기가 들고 배변이 나오지 않아 배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집 근처의 병원을 찾아갔더니 의사는 장궤사가 발생했다면서 원인은 그동안 뼈에 좋다고 복용했던 홍화씨 가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장 두 곳을 절단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나고 의사가 경과를 보던 중 수술 부위가 터졌다. 결국에는 다시 환부를 벌리고 수술을 시행했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아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지게 됐다. 나는 하루에 전신 마취를 두 번 했고 혈압과 체온이 최고치로 올랐다가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몇 번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대학병원에서는 4주를 기다린 후 2차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차 수술로도 출혈 혈관을 찾을 수 없어 다시 3차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3차 수술 전 의사는 나에게 “강순구님이 믿는 하나님께 기적이 일어나도록 간절히 기도하세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수술로도 나는 완쾌하지 못했다. 두 달이 넘도록 금식한 상태였고 작은 움직임에 출혈이 일어날 수 있어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고통이 심해 몇 번이나 혼절하다가 깨어보면 아내가 나를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조용기 목사님이 찾아와 기도해주셨다. 또한 교회에서 각 예배와 기도회 때 나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있다는 소식에 긍정의 믿음과 희망이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반드시 건강을 회복해 현재 나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환우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이 사랑의 빚을 갚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담당 의사가 손상된 장기를 배 밖으로 꺼내 치료를 해보자며 4차 수술을 제안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의학의 힘보다 이제부터는 주님께 맡기겠다고 작정하며 기도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 건강한 몸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내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절대 감사의 마음을 품자 주님께서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기 시작했다. 출혈과 불순물이 줄어들었고 혈압과 체온이 정상으로 유지 됐다. 담당 의사와 의료진들은 기적이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모두가 죽을 거라고 확신했던 나는 점차 회복되어 5개월 만에 퇴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고난은 유익이 됐다. 나는 앞으로도 받은 은혜를 실족하지 않도록 내 삶을 항상 돌아보고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정은미 집사(금천대교구)
- 자녀 위한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성경 읽고 암송하니 아이들 암기력 향상돼

남편과 나는 각각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해 교회 대학청년부에서 만나 믿음의 가정을 꿈꾸며 결혼했다. 순조롭게 첫아이를 임신하고 부푼 마음으로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출산 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인서가 태어났고 요도하열이라는 선천적 질환을 발견했다. 요도하열은 서서 소변을 볼 수 없는 문제가 생겨 수술로 교정을 해주어야만 했다. 생후 7개월의 아이를 수술실로 보내며 엄마로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인서는 조용기 목사님을 비롯해 우리를 아는 모든 분들의 기도를 받고 첫 수술을 받았다.

 이후 돌 때와 3살 때 마지막 수술을 받고 완쾌될 때까지 주변 분들에게서 정말 엄청난 중보기도를 받았다. 그 기도 덕분에 인서는 건강 뿐 아니라 6살 때부터 태권도대회 동요대회 수학경시대회 영어글쓰기대회 등 나가는 대회마다 1등을 휩쓸었다. 친구도 잘 사귀는 성격이라 전도도 많이 하고 두루 사랑을 받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첫째를 조산한터라 두 살 터울로 둘째 현서를 임신했을 때 많이 조심을 했다. 하지만 현서는 임신 8개월에 2.2㎏ 작은 몸으로 태어났다. 인큐베이터에 한 달 동안 있었는데 잘 먹고 잘 자라서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후 6개월부터 말문이 트였던 형 인서와 달리 현서는 두 돌이 지나도 말을 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두 세 살이면 말을 시작하는데 걱정이 되어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다. 구강검사부터 뇌파검사까지 받았지만 결론은 ‘아무 이상 없다’였다. 나는 현서와 함께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구역예배 아동구역예배 교회에서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예배에 참석했다.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예배를 드리니 희망과 기쁨이 넘쳤다. 그리고 4살 가을 어느 날 현서가 말을 했다. 아이가 처음 한 말은 “구역장님을 만나려면 교회에 와야 하네요”였다.  

 그날부터 현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하고 싶은 말을 술술하고 무엇보다 기억력과 암기력이 좋은데 매일 성경을 읽다보니 6살인 지금 성경말씀도 잘 외우고 올해 8살인 형 인서와 나란히 성경 1독도 마쳤다. 같은 또래를 키우는 부모님들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큰아이가 영어학원을 다니지만 그 외의 사교육은 없다.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과 예배 후 집에서 교회 숙제인 성경 암송과 성경 읽기만 시켜왔다.

 또한 교회에서 교구 생활을 하며 만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자녀들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자녀로 인해 고민과 근심이 있는 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했으면 좋겠다.    


정리=복순희 기자


문귀호 성도(영등포대교구)
- 신장암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


지인들의 오랜 중보로 7월부터 교회 출석
모두 한마음으로 금식 기도할때 기적 일어나

나는 회사 직원과 친구의 오랜 전도에도 불구하고 교회 가기를 거부했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형제들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마음이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교회가 갑자기 떠올랐고 올해 7월 나를 계속 전도했던 직원(오순례 집사)에게 ‘교회에 가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에서는 “문 사장이 교회에 다닌다고? 기적 일세”라고 말했다. 그 무렵 시골에 사는 형수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었지만 다시 검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경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의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바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간에서 문맥혈전증 소견이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신장에서 지름 4㎝ 종양이 발견됐다. “암이다.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청천벽력이었다. 10월 19일로 수술날짜를 정했지만 한 번 더 검사를 받고 싶었다. 아내(노갑임 성도)는 개복수술을 두려워하는 나를 위해 로봇수술 최고 권위자가 있다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해당 의사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아내는 무작정 인터넷에 접속해 관련된 사이트를 검색했고 우연히 예약 창에 들어가 ‘선생님께 무조건 로봇수술을 받고 싶다. 남편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내용의 글을 남겼다. 내 소식을 들은 교구장과 성도, 친구(정동환 안수집사)와 지인들은 새신자인 나를 위해 금식기도를 선포하며 새벽 낮 밤으로 눈물로 기도했다.

 며칠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최고 권위자가 있다는 병원이었다. 10월 5일 내원하라는 통보였다. 우리 부부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달려갔다. 교회에 안가겠다며 오만을 부렸던 내가 눈물 콧물 쏟아가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내원한 날 의사는 MRI 검사를 실시하더니 ‘혹시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기대감이 생겼다. 검사결과까지  다시 20여 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 기간 주변 사람들의 중보기도가 또 다시 시작됐다. 이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기도의 동아줄을 엮었다.

 드디어 결과가 나오던 날 의사는 ‘신장에 있는 종양은 양성으로, 간에 있던 혈전증은 깨끗이 사라진 것’으로 최종 판정했다. 의사는 “정말 드문 경우”라며 기적이라고 했다. 종양을 떼어내는 간단한 시술로 모든 상황은 마무리됐다. 수술대에 오를 때 나는 이사야 53장 말씀을 외웠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힘들 때마다 위로를 주던 말씀이었다. 나는 요즘 행복하다. 회사에서 일할 때면 직원들과 말씀 찬양을 함께 듣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모든 것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오정선 기자


권정희 권사(강서대교구)

- “야훼 라파 치유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영훈 목사 신유기도 후 방광염 치유
날마다 넘치는 은혜 주시는 주님께 감사

나는 방광염을 자주 앓았는데 올해는 한 두 달 사이로 4∼5번씩 아팠다. 그 때마다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먹고 염증을 치료하곤 했는데 8월 24일 저녁에 아랫배가 찌릿찌릿 아파왔다. 금요일 저녁이라 주말을 지나고 병원에 가야할 텐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다. 힘들게 견디다가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갔다. 아이들과 같이 차타고 교회에 오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목사님께서 예배 후 신유기도하실 때 방광염이 낫는다고 선포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날이 8월 26일이었는데 주일 2부 예배를 드리는 중에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방광염을 치유해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 큰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다. 약간의 통증이 남아있었지만 약을 먹지 않고 믿음으로 나았음을 선포했다. 그 뒤로 완전히 나아서 지금까지 건강히 지내고 있다.

 2006년에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9월 22일 기도원에서 성령대망회가 있는 날이었다. 기도원에 가려고 오전 8시 반에 일어나서 서둘러 준비하는데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가다 미끄러지면서 뒤로 꽝 하고 넘어졌다. 평소 골다공증이 있고 척추 협착증에 디스크 증세도 있던 나는 순간 허리가 부러진 줄 알았다.

 화장실에 누운 채로 꼼짝 할 수 없었다. 입에서는 “하나님 어떻게 해요”라는 소리만 나왔다. 조금씩 움직여보니 다행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온 몸이 아팠지만 조금씩 걸을 수 있어 기도원에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넘어지면서 대리석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친 탓이었다.

 기도원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 가는 중에 “하나님 머리가 너무 아파요.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뒷머리를 만져보니 계란만한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눈을 감고 속으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원한 바람이 휙 지나갔다.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었다. 바람같이 성령님이 임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체험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두통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 나는 너무 감격해서 감사기도를 드렸다. 잠시 후 뒷머리를 만져보니 혹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그 순간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1979년부터 우리 교회에 다니며 강서분교 고등부 교사로 18년을 봉사하고 지·구역장으로 섬기면서 은혜를 많이 체험해왔다. 날마다 크신 은혜를 부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내 평생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김혜자 목사(영산회 부회장)

- 사망의 고통에서 영생으로 이끄신 하나님

 

작년 10월 1일 남편과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우리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나는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게 됐다. 나는 왼쪽 뇌를 심하게 다쳐 두 번의 뇌수술을 받았고 눈 팔 다리 허리 역시 모두 망가지는 심한 중상을 입었다. 8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중환자실로도 여러 번 옮겨지니 의사들은 내가 죽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중보기도의 힘으로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있을 때 이영훈 목사님께서 병원을 방문해 기도해 주시고 금요성령대망회 때에도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해주셨다. 또한 영산회를 비롯한 나를 아는 타교회 성도들까지 모두 기도를 해주어 나는 올해 6월 퇴원할 수 있게 됐다. 할렐루야!

 퇴원을 하기 직전까지 의사는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적 같은 일이기에 앞으로 얼마간 살지 장담을 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퇴원 후 타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기 위해 소견서를 가지고 방문하면 의사들은 “담당의사에게 굉장히 힘든 수술이었을 거다. 이건 죽는다는 말밖에는 드리지 못한다”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야훼라파 치료의 하나님은 나를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지신 것뿐만이 아니라 내게 건강까지 허락해주셨다. 보험료를 받기 위한 검사에서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아 보험료는 못 받았지만 나는 물질보다 더 큰 위로와 평안을 얻었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셨음에도 내 마음속에는 항상 두려움과 불안함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고 검사를 통해 확신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 의사들이 나의 놀라운 회복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네요”라며 믿음을 가지게 됐다.

 나는 검찰신우회 예배를 22년 간 인도했었다. 사고로 13개월 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신우회원들이 그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예배 자리에 서며 나는 단 한 명만 나와도 초심을 갖고 예배를 인도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족한 종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실 일이 남아있다는 것을 예배를 통해 알게됐다. 눈 수술을 한 사람, 빚보증을 잘못 선 사람 등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내 간증을 통해 소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덤으로 주신 삶을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감사로 살고 있다.      

정리=김주영 기자


곽은정 집사(양천대교구)

- 이스라엘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과 치유

이스라엘 성지 순례 중 자궁의 혹 사라져
선교 여행 때마다 감사와 기적 체험

 10월 16일 나는 일본 선교여행(10월 7∼11일)을 다녀온 뒤 예정되어 있던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산부인과 검진에서 자궁에 혹이 3개가 발견됐는데 의사는 나쁜 것일 수도 있으니 자세한 것은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자는 말에 “제가 11월 초에 일주일간 이스라엘을 다녀와야 해요. 그 후에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의사가 왜 가느냐고 물어 나는 “성지 순례하고 기도하러 간다”고 말했다. 의사가 활짝 웃으며 그럼 기도 많이 하고 오시라는 말을 해주어 내 마음도 환해지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11월 28일 ‘입원’ 29일 ‘수술’이라는 메모와 함께 수술에 앞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혹이 3개나 있다고 하니 신경이 쓰일 만도 했지만 원래 하던 대로 매일 새벽예배를 다니며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기도를 했다. 검진 전 다녀온 일본 나가사키 순교지 방문을 떠올리니 참혹한 고난 속에서 죽음도 불사하며 믿음을 굳건히 지킨 일본의 크리스천들이 생각났다. 이들을 생각하며 나 역시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잠잠히 기도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11월 4일부터 10일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 이영훈 목사님과 함께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참여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던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성지순례에 임했다.

 그러던 중 11월 7일 아침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요단강을 방문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 지역이라 양쪽에 군인들이 서 있고 강이라 하기엔 좁은 폭에 흙탕물인 곳이었지만 가만히 예수님의 침례를 묵상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요단강 안쪽으로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아랫배에 수술 직후처럼 통증이 몰려왔다. 갑작스런 통증에 놀랐지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해주시는 중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고통은 사라졌고 다음 장소인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 유적지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확신하고 더욱 성지 순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은혜롭게 전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11월 20일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의사는 “지금은 혹이 없어졌네요”라고 말했다. 22일 혈액검사도 받았는데 역시 결과는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셨다는 사실도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만 30년 넘는 신앙생활을 뒤돌아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걱정과 눈물 대신 언제든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하다.

 고침을 받은 것도 이번만이 아니다. 4년 전 조용기 목사님의 대만성회에 참석했을 때는 어렸을 때 물지게를 지면서 굽었던 허리를 하나님께서 곧게 펴주셨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아픔과 상처도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듯해 마음의 응어리도 사라졌다.

 나는 젊었을 때 두 자녀를 양육하면서 맞벌이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랬던 내가 노년기를 향해 가는 지금은 하나님께서 때마다 물질을 채워주시고 환경을 열어 주셔서 내가 가고 싶은 선교 여행에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어 마음에 결단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신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우경구 성도(순복음강북교회)

- 조용기 목사 신유 선포 후 실명된 눈 또렷이 보여


‘예수님 부활, 내 부활’ 바디매오의 기적 나타나    
좋으신 하나님 믿고 어려운 삶과 환경 모두 변화

 “눈이 먼 사람이 지금 치유를 받았습니다” 지난달 26일 순복음강북교회 성전확장 및 독립6주년 기념 축복대성회에 참석한 나는 조용기 목사님의 신유 선포에 심장이 터질 듯 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얘기인가?”하고 조심스레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내 눈에 하얀 불빛이 회오리쳤고 눈을 까맣게 덮고 있던 피가 아래로 쓱 빨려내려갔다. 형광등, 태양 빛도 못보던 내 눈에 강대상의 십자가가 보이더니 조용기 목사님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기적이었다.

 2년 전에 실명한 눈이 하루아침에 깨끗하게 보였다. 평생 안없어진다고 했던 눈의 잔상도 깨끗해졌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가 체험하게 됐고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나는 성경책, 찬송가를 보면서 하루하루 감사의 고백으로 살고 있다. 

 지난해 6월 전도를 받고 교회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절대 절망에 빠져 살아갈 힘이 없었다. 11년 전 아내는 갓 돌 지난 아이와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아이를 버리고 내 퇴직금과 전 재산을 갖고 도망갔다. 그 뒤로 세차장, 고물상, 계란장사 등 안해본 일 없이 일했다. 트럭운전을 하게 됐는데 백내장을 앓고 있던 왼쪽 눈은 2년 전부터 실명돼 오른쪽 눈으로만 의지해 운전을 하며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운전을 하며 내부순환로를 가는데 오른쪽눈에 피가 터져 고이면서 앞이 안보였다. 내가 당장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하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병원에 가서 전 재산이었던 300만원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했는데 예후가 좋지 않았다. 희미하게 보이던 색 마저 안보이게 됐다. 나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종합병원으로 옮겨 다시 수술을 받았다. 왼쪽 눈은 이미 너무 늦어서 수술이 불가능했고 오른쪽 눈에 약간의 신경이 남아있는 것에 희망을 걸고 수술을 했다. 퇴원하고 집에 왔는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눈이 빠질 듯 아팠다. 병원에서 오라는 날짜에 다시 병원을 찾으니 눈이 아팠으면 진작에 왔어야지 왜 눈을 실명해가지고 왔냐며 이미 신경이 다 죽어 더 이상 손쓸 수 없다고 했다.

 수술이 분명 잘못됐는데 내 탓을 하며 실명한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내게 남은 것은 절망 뿐이었다. 수술 후에 양쪽 눈이 완전히 안보이게 됐으니 말이다.

 세 아이랑 당장에 먹고 살 일이 막막해 한 달 동안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간 그 날, 길에서 강북교회 권사님의 전도를 받았다. 권사님의 손을 붙들고 주일에 교회에 갔다. 교회는 다니기만 해도 복을 받는 곳이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물질의 복을 먼저 주셨다. 나와 세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었는데 교회, 구청, 동사무소에서 쌀과 라면 등 먹을 것을 보내줬다. 새신자교육을 마친 후에는 더 좋은 소식이 왔다. 구청에서 당뇨병을 치료해준다며 병원에 입원을 시켜줬는데 이랜드 복지재단에서 찾아와 200만원을 주고 돈을 잘 관리하는 법까지 알려줬다. 그리고 지원이 끝나던 날 바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동사무소에서 40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달부터 매달 생활비를 지원받게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했는데 입학금과 등록금 300만원이 당장에 필요했다. 나흘안에 등록하지 않으면 입학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마감 몇 시간을 남겨두고 어느 독지가가 300만원을 보내주어서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당뇨로 인한 팔과 다리의 마비증상도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깨끗이 고침받았다. 

 교회에 가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채찍질을 당하시고 피흘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성경 속 바디매오처럼 눈을 뜨게 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좋으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이경술 안수집사,정해경 집사(영등포대교구) -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주신 하나님

이유 없이 아팠던 몸 교회 다니며
치유예배와 기도로 가족 사랑 회복
남편과 아들 생명 지켜주신 주께 감사

 올해 남편이 집사 안수를 받았다. 시댁은 어머니에 이어 큰형님이 신내림을 받아 굿을 하던 무속인 집안이었다. 그랬던 집안에서 남편이 세계적인 교회의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나는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이유 없이 아팠다. 형님은 내가 자신에 이어 신내림을 받아야만 아픈 몸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굿 하는 것을 보며 자란 남편은 결사반대였다. 차라리 교회에 다니라고 했다.

 마침 이웃 주민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녔는데 그 구역 식구들과 함께 나를 전도했다. 계속된 전도에 ‘한 번만 교회에 나가고 말자’는 생각으로 그들을 따라 교회에 왔다. 그때 말씀이 ‘혀’에 관한 것이었는데 입술의 부정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말씀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나는 부정적인 말을 자주 쏟아냈다. 이유 없이 주변 사람들을 미워했던 마음을 반성하게 되면서 나는 더 말씀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예배를 사모하게 됐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에 출석하게 되자 남편과 자녀들도 함께 교회를 출석했다. 신기하게도 눌렸던 마음과 아팠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언젠가 말씀을 듣는데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꽂혔다. 가정과 자녀의 축복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임한다는 사실이 강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나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상 집안에 흐르는 저주를 기도로 끊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먼저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자 영적 전쟁이 시작됐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이었는데 남편이 일터에서 사고가 나 허리를 크게 다쳤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그나마 다친 부위가 신경을 살짝 비껴나가 전신마비는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기도로 위기를 이겨내고 4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으며,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아들이 초등학교 때 일어났다. 남편과 아들이 탄 차가 교차로에서 승용차와 정면충돌 후 인도로 올라가 벽을 치고 반 바퀴 돌다 멈춘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는 내가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던 중이었다. 기적적으로 큰 부상은 없었는데 그 사고로 아들 머리에 물혹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내 사정과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 아들을 치료해달라고 매일 철야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던 중 아들의 오른쪽 뇌에서 뱀이 빠져나가는 환상을 보게 됐다. 아들은 그 뒤 아무런 탈 없이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는 이렇듯 큰 기적을 낳았다. 놀라운 주 은혜에 보답할 길은 오직 주를 향한 순종과 예배, 기도와 전도뿐이었다. 이웃들에게 전도지 ‘행복으로의 초대’를 건네며 복음을 전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기도할 때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올해 계속 새벽기도회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우리 가정에 주셨다. 그 말씀에 순종해 남편이 안수집사가 됐다. 남편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성도들을 위해 새벽마다 차량 봉사에 나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크니 모든 이들에게 주의 사랑을 베풀고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연단을 통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더 큰 사명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겠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리=오정선 기자


차정숙 권사(강서대교구)

- 성경 읽는 동안 혹이 사라졌어요

고난 오면 감사하고 작정예배 드려
온 가족이 하나님 은혜로 감사 찬양

 

지난해 4월 20일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어 올해 1월 8일까지 3독을 했다. 그런데 올해를 시작하면서 이영훈 목사님께서 성경 통독을 적극 권장하셨다. 나는 하루에 5시간씩 성경을 읽어 다시 8독을 했다. 평균 42일이면 1독을 하는 것 같다. 올해가 가기 전까지 9독을 마칠 예정이다. 성경을 읽다보니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됐다. 갱년기가 심해 5년 전부터 호르몬제를 먹고 있는데 이 때문에 매년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11월 20일 정기검사를 받는데 목에 있던 2㎝ 크기의 혹이 사라졌다. 원래 2016년 검사 때 목에서 혹을 발견하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성경 통독을 할 때 소리를 내서 읽었더니 목에 혹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처음 주님께로 나올 때부터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 1988년 4월 5살짜리 작은딸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면 무료로 심장병 수술을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교회에 등록했다. 아이는 당장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교회에 간 지 2주 만에 딸아이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교회의 지원이 확정됐다. 그때부터 우상을 섬기던 어머니와 나는 좋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작은딸 수술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폐동맥협착증을 앓았는데 검사를 해보니 심장에 구멍까지 생긴 상태였다.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 쇼크가 와서 온 몸이 마비돼 식물인간으로 20일간 누워 있기도 해서 사람들은 다들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새신자였지만 아침 금식을 하며 20일 작정예배를 드렸다. 작정예배가 끝나자 온 몸이 마비됐던 아이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심장 수술도 성공적으로 받았다.  

 딸아이의 건강이 회복되자 나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했다. 구역장 직분을 주실 때도 지역장 직분을 주실 때도 ‘아멘’으로 기쁘게 순종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20년 동안 지역장과 구역장 직분을 통해 주님께 내 삶을 드릴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큰딸도 중학교 1학년 때 녹내장으로 실명의 위기가 왔으나 1주일 작정예배를 드린 후 수술하지 않고 깨끗이 치유됐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가까이 두시려고 작은 문제를 주셨네요. 기도할게요” 말하며 곧바로 작정예배를 시작한다. 그러면 고난은 기쁨이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된다.

 남편은 척추협착증으로 6년 동안 다리가 저려 고생했다. 급기야 2016년 추석에 왼쪽 다리가 마비되어 병원에 실려 갔다. 명절이라 병원에 가도 수술 일정을 잡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척추 분야의 명의를 만나게 해주셔서 바로 검사를 받고 수술할 수 있었다. 5시간 수술을 예상했는데 10시간 동안 수술이 진행됐다. 길어지는 수술로 불안했지만 대기실에서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은 큰 수술을 하고도 한 달 만에 회복해서 직장도 다니고 건강하게 지낸다.

 

나는 지역장으로 섬기면서 늘 이렇게 기도했다. “저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셨으니 직장에 나가 돈을 벌지 않겠습니다.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남편은 직장생활을 잘하고, 집도 여러 채 생길 만큼 넘치는 복을 주셨다.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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