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대교구 단기선교>소록도와 완도에서 펼친 ‘이웃 사랑’


한센병 선입견 변화, 함께 하는 이웃 깨달아
지역 사회 반응 “순복음, 와줘서 감사해요”            

 어린 사슴과 비슷하게 생겼다해서 이름 지어진 섬 ‘소록도’. 그러나 이름의 의미와는 달리 터부시 되었던 섬. 그런 소록도에 사랑의 꽃이 활짝 피었다. 소록도로 향하는 6시간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년대교구 성도들 얼굴에는 왠지 모를 기대가 가득 차 보였다.
 소록도 안에 있는 다섯 교회 중 한 곳인 신성교회 앞에 멈춰 선 차량, 차창 밖으로 펼쳐진 마을 풍경이 평안함을 자아낸다. 이곳에 거하는 주민은 560여 명. 지난 1991년 우리나라에서는 한센병이 완전히 퇴치됐다. 그러나 그 후유증만 있는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다. ‘신앙이 아니었다면 벌써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말하는 주민들.
 “‘한센병을 통해 주님을 믿었고 거기서 시작된 신앙이기에 하나님을 진짜 만날 수 있었어. 천국을 알게 됐으니 나는 참으로 재수 좋은 놈’이라고 소개하는 어르신의 얘기를 듣자니 눈물이 핑 돌았고, 안아드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장년대교구 성도들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나흘간 소록도에 머물렀다. 새벽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이곳 어르신들과 함께 새벽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난 후 한 어르신이 조심스레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미안한데 교회 창문의 커튼을 빨아줄 수 있을까. 외지에서 봉사자들이 더러 오지만 차마 부탁할 용기가 나지 않아 10년 동안 손을 보지 못한 커튼이거든” 이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했다.
 장년대교구 성도들은 기꺼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커튼을 떼어 세탁을 하는 동안 한 쪽에서는 어르신이 사는 집을 방문했다. “얼마 전 휴대폰을 샀는데 사용법을 잘 모르겠어…” “이것 좀 저리로 옮겨줄 수 있을까” 어느새 소록도 어르신과 장년대교구 성도들은 오랜 이웃처럼 편안한 사이가 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실 이 곳에 오기 전에는 병이 옮지 않을지,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어르신들과 잠시나마 생활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편견’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번이 처음 방문이지만 이미 여기 어르신들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2003년부터 10년 넘게 소록도를 찾아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박찬표 성도는 한센병으로 온전치 못한 손이 됐지만 봉사자에게 배운 피아노 반주로 찬송가를 연주하시던 장로님을 잊지 못하겠다고 했다.
 “언제가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던 곳’이었다는 기록만 남을 날이 오겠죠.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았기에 행복했다는 이 분들의 미소는 제 가슴 속에 평생 남을 것 같습니다”
 전남의 또 다른 섬 완도군 신지도. 이곳에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장년대교구 성도들이 방문했다. 30,40대 부부와 이들의 자녀 등 모두 39명이었다. “서울에서 신지도까지 오는 것 자체가 이곳 주민들에게는 큰 위로”라고 이야기해 준 순복음동산교회 송경호 목사를 따라 성도들은 가가호호 방문했다. 서울에서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가 고향을 방문한 것 같은 풍경이었다.
 마을회관에서는 신지도 어르신의 몸보신을 위한 삼계탕 끓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식사 후에는 장년대교구 아이들이 태권무 등 여러 공연을 선보이고 손 마사지와 안마를 해드리는가하면, 함께 손지갑을 만들어 선물로 드렸다. 또 경제 사정으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조손 가정 아이들을 위해서는 운동화를 선물했다.
 박은덕 집사는 “지역사회를 돕고 나아가 개척교회와 선교지를 후원하는 동산교회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교회에 보탬이 될까 해서 성도들이 정성을 모아 교회 환경 개선 사업비로 후원금을 전하고 왔다. ‘순복음에서 와 줘서 고맙다’며 저희의 방문을 환영해주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나눔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눔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이번 봉사를 통해 알았어요. 사랑을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모두들 감동이었죠. 그래서 이 여름이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송문규 선교사(인도 뉴델리순복음한인교회)

인도의 한인들 위한 구원 방주 역할 감당



 인도는 지정학적으로 동서양의 가장 중간에 위치하는 나라입니다. 대륙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반도라 하기에는 너무 큰 땅 덩어리로서 ‘아대륙’이라 불리웁니다.

 그래서 지정학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의 중간지대로서, 역사적으로 걸출한 영웅들에게 침략을 받은 전략적 요충지이며, 드넓은 평야의 곡창지대이기도 합니다.

 인도는 현재 12억이 넘는 인구 대국이며, 향후 2050년대는 중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대부분 토지가 기름지고 더운  기후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많은 향신료를 생산해 내는 옥토의 땅이기도 합니다.

 곡창과 향신료로 인해 많은 침략과 약탈의 전쟁이 일어나는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쟁의 역사가 깊은 북인도 지역은 뉴델리를 중심으로 인종도 다르며, 정서도 상당히 호전적이며, 냉정한 인성의 토착 인도 원주민들이 거주합니다.

 이러한 이 땅에 오래 전에 유럽에서 남하한 아리안족이 비옥한 인도 땅에 들어와 현지 원주민인 드라비디안 족속들을 굴복 시키고 하얀 피부의 자신들과 구별시키기 위해 카스트 제도와 힌두교를 전파하여 오늘날 인도는 힌두교의 성지요, 카스트의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카스트라는 말은 사람을 구별한다는 의미인데, ‘너와 내가 다르다’라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지배 민족인 아리안 족들이 자신들의 우월적 정체성을 지키고, 동등할 수 없는 검은 피부의 지역 원주민 지배를 영구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토착시킴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구적으로 지켜 나가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 지혜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도는 이러한 카스트 제도와 이 카스트 제도위에 형성된 종교 사상인 힌두교가 거대한 인도를 지탱해 나아가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통치 기반이며, 이곳 인도인들의 하루 아침에 결코 바꿀 수 없는 독특한 그들의 문화와 정서가 되어버렸습니다.

 누가, 어떠한 사상과 힘이 과연 이러한 인도를 변화 시키고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기적만이 이 땅과 이 민족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도에서 뉴델리순복음한인교회는 2007년 설립 이후 오늘날 북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 뿌리 내리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복음을 증거하고자 빛을 발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 뉴델리에는 3500여 한인들이 주재원과 자영업 등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인도의 경제 붐과 현대화 등으로 인해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최대의 소비 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현대, 삼성, LG 등 한국의 대기업은 물론,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인도의 경제적 여건 속에서 경제적 선점과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한인들의 진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강력한 인도의 토착 전통 종교인 힌두교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영혼들을 메마르게 하며, 기독교의 활동을 제한하는 선교 제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모든 기독교와 선교사의 비자와 선교 활동을 금지하며, 기독교 선교사의 신분이 노출되면 바로 추방당하는 상황이 이곳 인도의 현실입니다.

 뉴델리순복음한인교회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도 뉴델리 시내의 한가운데 성전을 마련해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핍박 받는 인도 뉴델리 시에서 오히려 가톨릭 재단인 돈 보스코 직업 훈련 학교의 캠퍼스 안에 예배 장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도의 이러한 핍박의 상황 가운데에서도 든든한 보호아래 안전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이 이뤄졌습니다. 참으로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직 자체 성전이 있지 않아 전 성도들이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뉴델리순복음교회의 성전을 꿈꾸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마음껏 통성 기도하고 찬양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체 성전 마련을 위해 성전 마련 헌금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현재 어려운 인도의 상황 가운데 특별히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서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흘러 나갈 수 있도록, 인도 선교를 위해 애쓰는 원주민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하며, 물질적인 후원을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향후 뉴델리순복음교회의 비전이 인도 원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돕는 것 뿐 아니라, 뉴델리순복음교회가 직접 인도 원주민들을 성령의 대사로서 복음으로 사랑으로 섬기는 그날을 바라보며, 꿈을 품으며 오늘도 예배 공동체로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단순히 예배 장소뿐 아닌, 기독교 문화를 알리고 보여주는 가스펠 문화 센터로서의 교회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아름다운 다목적 기능 복합 건물을 구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혹 사업상이나 출장,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인도 방문의 기회가 있는 성도분들은 언제든지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본교회의 성도님들께서 인도의 이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 뉴델리순복음한인교회가 재 인도 한인들을 위한 구원 방주로서의 교회 역할 뿐 아니라, 선교지에 있는 한인 교회로서 선교지의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원주민들까지 포용하여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증거하며, 성령의 역사를 드러내는 예배 공동체, 복음의 공동체, 이 인도의 영혼 구원의 방주가 될 수 있도록 뜨거운 중보의 기도와 사랑의 관심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인도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 인도를 변화시키다

이영훈 목사 인도 성회 후 목회자와 성도 은혜 충만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같은 부흥 꿈꾸며 새벽기도에 힘써


 하나님의 역사는 주(主)되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만이 볼 수가 있다. 지난 9월 14일에서 16일까지의 행사는 하나님의 계획과 작품이었기에 우리 모두의 승리였다. 올해 초부터 성도들은 릴레이 금식 기도로 행사를 무장했지만 8월에는 본격적인 영적 전쟁이 시작됐다. 한 학생의 부모는 공부방 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거짓으로 만든 영상 자료로 협박을 가했고, 지역관할의 위생담당자는 물탱크 안에 모기를 문제 삼아서 고소를 해서 법원에 가야 했으며, 극도의 육체적인 연약함으로 귀 밑 사이가 곪아 부어 올라서 몸과 마음이 소진됐다. 더욱 힘을 빼는 일은 우리들의 사역에 관한 모든 것을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공개하고, 내쫓겠다는 강한 압박도 있었다. 복잡하게 얽매인 상황들을 풀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었다.

 길게 느껴지는 8월을 보내면서, 매 주일, 수요일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되새김질하며, 하루하루를 이겨 낼 수 있는 은혜와 감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성령님께서 주신 해석을 통해서 바른 방향으로 인도함을 받았으며 갑자기 쳐들어오는 문제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분들의 기도의 큰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9월 15일 이영훈 목사님 초청, 조찬 기도회에 D지역을 중심으로 현지 시니어 목회자들이 모였다. 이 조찬기도회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첫 번째의 모임이며, 나라를 위한 기도회도 처음이었다. 67명의 시니어 목사님들의 진지한 눈빛은 이영훈 목사님의 건강한 교회성장의 비밀을 풀어내는 메시지에 집중했고 현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번 조찬 기도회에서 목회자들은 연합과 인도 교회의 부흥을 꿈꾸게 됐다. 또한 여의도순복음교회 부흥의 역사를 재현하고자 성령 충만에 대한 열망을 품었고, 소수의 인도 여성 사역자들은 큰 위로와 비전을 받았다. 인도는 남녀가 이른 아침 교회에서 함께 기도드리는 것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있지만 은혜를 받은 여성사역자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새벽기도에 동참하며 인도의 거룩한 변화를 꿈꿨다.

 서아세아 지역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출발하는 순복음미션센터는 인도 뿐 아니라 네팔, 스리랑카 및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부탄, 몰디브 더 나아가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중동을 향한 선교적인 교회와 사명자들이 비전을 품게 됐다.
 이영훈 목사님께서 주신 메시지로 예수님의 지상명령(마 28:18∼20)을 감당할 수 있는 권세를 이미 부여 받았고, 이에 미션센터는 이 시대의 변화에 훈련되고 양육되는 제자들을 세워가는 전초기지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8년의 시간 동안 미션센터를 꿈꾸고, 기도했고, 건축과정 2년의 시간은 사탄의 궤계와 환경의 장애가 많았지만, 헌당예배를 통해서 승리의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9월 15일 오후 7시 넘어서 시작된 청년집회는 D지역의 중심부의 정부기관에 속한 시리대극장에서 기도와 워십으로 시작됐다. 1990년, 경제 개방이후 사회변화와 인구 12억 8000만명 중 25세 미만이 50% 그리고 35세 미만의 65%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기독 청년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찾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또한 이번 대극장에서 집회를 갖는 일이 처음이고, 집회가 열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난 1월 27일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청년들에게 강연을 했던 곳이었고, 종교적인 모임에 제약이 있었기에, 시리대극장에서 집회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3개 지역의 경찰 관계자의 허락을 받는 일은 수월치 않았지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하나님께서 이영훈 목사님을 통해서 대언하실 비전의 메시지를 사모하며 집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 성회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꿈의 사람(The Dreamer)으로서 결단하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나라와 민족을 품는 꿈의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결단했다. 꿈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떤 고난과 유혹도 말씀으로 이기고, 21세기의 요셉이 되겠다고 했다. 이영훈 목사님께서 청년들의 헌신과 결단을 위한 축복 기도에 수많은 청년들의 헌신의 다짐과 눈물로 ‘아멘’으로 고백하며, 꿈과 비전을 가졌다. 2000명 넘는 청년들이 새로운 인도를 향하여, 꿈의 사람으로 탄생되었다. 청년들의 인생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새로운 도전의 획을 긋는 역사의 시간이었다.  

 9월 16일 시내 중심을 통과해 사데리 빈민촌으로 갔다. 무더움으로 흘러내리는 땀줄기는 멈추지 않고, 옷을 흠뻑 적셨다. 1998년 영광순복음교회를 개척하고, 제자 악발 목사가 성도들을 섬겼고, 다른 제자 비빈 형제가 가정교회를 섬기고 있다. 식수 공급이 안 되서, 물차로 마실 물을 받아야 하고, 전기는 들어오지만 정전이 하루에도 수 없이 되고, 상하수도시설이 안되어서 펌프를 사용하는 물이 오염되어서 질병들이 잦고, 그 가운데도 핍박은 끊임없이 있다. 악발 목사의 사모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기 하루 전날에 옥상에서 떨어져서 아이를 잃은 아픈 일도 있었고 가난한 성도들과 지역 아이들을 품으면서, 변화되는 일이 더디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역의 사람들에게 빛을 보이고자 계획하신 일이 있었다.

 9월 16일 이영훈 목사님께서 심방을 하신다는 말에 성도들은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종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콜라와 과자를 사서 접시에 담아 놓고 심방을 해주신 이영훈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을 꽃다발로 표현했다. 이렇게 누추한 자신들의 집에 이영훈 목사님께서 찾아 주셨다며 예수님도 지금 우리와 함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기도하면 응답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악발 목사에게 큰 격려가 되었던 것은 의료봉사였다. 병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지역 주민들 500명 이상과 미션센터에서 500명 이상으로 1000여 명이 진료를 받게 돼 목회에 큰 힘이 됐다. 성도 한 가정의 한 칸의 방을 교회로 섬기면서 시작된 곳에서, 교회가 세워졌고 그 성도의 가정에서 6명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랐고, 지금 장남인 하렌드라 전도사가 주의 종의 길을 가게 됐다. 본이 되는 가정으로 세워진 영광순복음교회는 352명, 성도들의 믿음은 10만 명의 사데리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푯대를 정했다.

 인도 행사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모든 것에 감사만 드리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도님들과 조용기 원로목사님 그리고 이영훈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번에 함께 동행해 주신 순복음의료팀들과 서아세아선교회의 동역에 감사를 드리며, 바쁘신 일정에도 인도 방문을 해 주신 이영훈 목사님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을 향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에 감사를 드리며,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인도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모델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지성전 청소년 연합 수련회로 ‘영성 강화’


 지성전 연합 중고등부 여름수련회가 10일부터 12일까지 강화 성산예수마을에서 진행됐다. 이번 수련회는 강동 강서 경인 광명 금옥 남구로 남대문 동대문 동작 서대문 양서 용산 은평 등 13개 지성전과 여의도순복음강릉교회가 연합했다.  수련회는 ‘힐링&워십’을 주제로 국해현 목사가 개회예배를 인도했으며, 함덕기 유경민 김 길 이창호 목사가 강사로 초청돼 성령대망회와 청소년 영성 함양을 위한 주제로 강연했다. 수련회에서는 지성전 지교회별 연합을 위한 시간도 마련돼 청소년들이 각 지성전 지교회에 대한 사랑을 다지는 시간이 됐다. 또 청소년들이 ‘순복음’이라는 한 공동체로 모였기에 성령 회복과 충만에 나서는가하면 주의 대사들로 거듭나 차세대 리더를 꿈꿨다. 영성 강화와 재미가 더해졌던 수련회로 힐링 시간을 보낸 청소년들은 이번주부터 개학을 시작했다.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약속했기에 건강한 청소년들로 각 학교 생활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전 꽃꽂이-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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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  --

 

 

 

    해바라기(2),신지매(2),

 

    장미(5),리시안(1),잎새란(2),

 

    편백(2),명자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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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도회제작동영상 "휴거 너는 준비됐느냐"           

동영상 중 애니메이션은 외국작품 인용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

 

기원전 1000년경 다윗 왕이 여부스인들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았다. 이곳은 수원이 풍부하고 유다교, 예루살렘, 벤자민 3파의 종교적 중심지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곳인가 하면, 모슬렘교도들에게는 예언자 모하메트가 승천했다고 믿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로 4,000년 역사를 가진 예루살렘은 그러나 어느 도시보다도 테러와 전쟁을 많이 겪었다. 현재 약 33(유다인 255,000, 아랍인 75,000)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묘지는 성곽 안에 있다. 유다교, 기독교, 회교의 성지로 구시가의 성벽에 둘러 싸여 있다. 고적으로는 겟세마니 동산, 성모성당, 통곡의 벽이 있고, 신시가는 신 헤브라이 같은 문화 기관이 있다
.
예루살렘 성벽은 여량시대의 건축양식이 집약되어 있으며 1542년 슬레이만 지배 아래 터키에 의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로 신축되었다. 성벽 둘레가 25마일이고, 평균 높이가 40피트, 벽에는 34개의 탑과 8개의 성벽 문이 있다. 그리스도는 베타니아 동산에서 오시어 예루살렘을 돌아보신 후 멸망할 것을 영감으로 아시고 우셨는데 그곳이 통곡의 벽이다.

 

1. 통곡의 벽 (The Wailing Wall)

 

유다인은 이곳을 신앙의 원천이라 믿는 중요한 장소이다. 비록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3000년 전통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긍지를 갖고 산다.
모슬렘 교도는 기도할 때 메카를 향해 기도하며 성전을 건축할 때도 메카와의 방향을 고려해 짓는다. 모슬렘 교도는 단순해서 언행을 믿지 않고 유일신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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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us는 거의 모든 벽을 부수었으나 거대한 벽돌의 일부분은 그의 후손들에게 로마군대의 위용을 보여 주기 위해 남겨 놓았다. 로마 통치기간 동안 유다인이 예루살렘에 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비잔틴시대에 들어와 그들은 사원 몰락 기념일에 신성한 사원의 잔해인 이 벽에 와서 그들 민족의 이산의 슬픔을 나누기 위하여 일년에 한번씩 방문이 허락되었다. 19481967년까지 유다인은 이 벽이 요르단 지역에 있기 때문에 방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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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전쟁 후 통곡의 벽은 예배의 장소일 뿐 아니라 국가의 기쁨의 장소가 되었다. 큰 광장은 수 천명이 예배드릴 수 있게 정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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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올리브동산의 겟세마네동산 

올리브 동산은 300피트의 높은 산으로 키드론 계곡을 가로질러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한 곳으로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하시고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곳이며 명상에 잠기셨던 곳이다.
예수님이 배반을 당하고 체포된 겟세마니 동산은 올리브산 기슭에 놓여 있다.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올리브 산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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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리아산 바위

 

모리아산 바위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봉헌한 곳으로 길이가 5야드, 폭이 12야드, 지상에서 2야드 높이이며 돌이 돔 아래 높여 있다.
바위는 희생제물의 제단으로 사용했고 바위 표면에는 희생된 제물의 피를 흘려 보낸 구멍이 있다. 십자군시대부터 있어온 바위를 둘러싼 철 휘장은 제거되어 최근 튼튼한 난간으로 대치되었다.

4.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갔던 전통적인 길이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이 길을 성역화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길은 좁고 길 양쪽에는 가난한 아랍인들이 의류, 돌 등 각종 토산품을 파는 영세상점이 즐비하다.
이 십자가의 길 중 9개는 복음에 관계되고, 5개는 전통에 의해 전해진다. 그 첫 2개는 안토니오 자리 안에 위치해 있고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십자가의 길을 따라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주례한다
.
이 길의 시작을 나타내는 아치는 Ecce homo로 알려져 있는데 본시오 빌라도가 ", 이 사람이다"(요한 19, 5)라고 한 곳에 이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4처는 기도서에 있는 장면 그대로이다.
3
처는 옛날에 계곡이었고 첫 번째 예수가 넘어지신 장소
.
8
처부터는 밖으로 나옴
.
8, 9
처 처형 받고 묻히신 장소를 모아 교회를 세움
.
10
처 옷을 벗기신 곳
.
11
처 돌아가신 장소
.
12
처 갈바리아 산(처형당하고 묻히신 장소).


갈바리아는 큰 돌로 이 꼭대기에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곳이요, 또 하나는 예수님이 옷을 벗고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이다.
이 두 교회의 양끝은 실제 암반에 놓여 있다.

5. 예수무덤성당, (예수부활성당) -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The Church of the Resurrection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요한19, 41-42)
예수의 무덤은 갈바리아산 기슭에 놓여 있고 이 돌로 깎은 새 무덤은 아리마테아 요셉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리마테아 요셉의 무덤은 부유한 유다인의 묘 양식으로 되었는데 2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어 하나는 애도자를 위한 만남의 장소, 또 하나는 시체가 누워있는 돌로 된 침대 판으로 사용되었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왕후는 80세의 고령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길을 떠나 예수님의 무덤과 십자가, 승천하신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각각 성당을 지었다. 예수의 실제 무덤은 109년까지 존재하였으나 칼리프 하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헬레나 성녀에 의해 복구되었다. 이 성당에는 헬라나 성녀의 동상이 세워졌다
.
교회는 처형된 장소보다 묻힌 장소를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므로 부활신앙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쪽에서 해가 뜨므로 교회도 동쪽을 향하고 있어 희망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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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후의 만찬 성당 (Coenaculum)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신 곳이며(마르 14, 12-16, 루가 22, 7-13) 부활 후 2번이나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사도 2, 1-4)
이와 같이 Coenaculum은 성체/신품/견진/고해성사를 행하신 곳이다. 13C 나폴리 임금이 이곳을 사서 교황에게 희사한 것을 교황께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주었다. 성령강림 때의 견진성사가 이루어진 다락방에서는 회교도에 의해 추방되어 그곳에서 400년간 미사를 드리지도 못했고 1948년 전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공식적인 기도도 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은 프란치스코 수도원 식구들에게 공동기도만 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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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윗왕의 무덤 (Tomb of King David)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통곡의 벽 다음으로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유다인의 성지 중 하나로 Tudela의 랍비 Benjamlne 1173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여기에 안치되었고, 다윗의 무덤이라 불렀다. 돌로 만들어졌고 수놓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Torah의 은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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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황금의 문 (Golden Gate)

 

이는 7C 비잔틴 건축으로 Mercy gate(자비의 문) 장소에 세워져 있다. 측면 벽의 일부는 원시 건축양식으로 이 문을 통해 예수는 개선 입장 후 도시에 들어갔다.
기독교인들은 베드로가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기억을 덧붙이는데(사도 3, 1-8) 이 아름다운 문이 '황금의 문'이고 이곳은 1530년 터키에 의해 완전히 벽을 쌓게 되었다.

9. 겟세마니 동산 (Gethemane)

 

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겟세마니 동산은 올리브산 기슭에 놓여 있고 오늘날에도 2,000년 전 그대로를 보여준다. 키드론 계곡을 가로질러 반대 언덕에 현대 도시들이 줄지어 있으나 이 동산은 변한 것이 없다.
예수께서 가끔 은둔과 기도를 위해 이곳에 오시어 기도하셨고(루가 22, 39) 수난 당하기 전날 밤 가장 슬픈 수난의 시간을 체험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곳이다
.
"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 42) 라는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보니 제자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루가 22, 45) 예수께서 최후만찬 후 이곳에 계신 것을 알고 유다가 대제관의 하인들을 데리고 와 예수를 잡아 넘긴 곳이기도 한 이곳에 헬레나 성녀가 성당을 지으셨다.

10. 주님의 기도 성당 (The Church of the Pater Noster)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쳤고 예루살렘의 몰락을 예언(루가 21, 5-7; 마태 24, 1-4)하셨으며 주님의 마지막 오심과 제3의 종말을 예고하셨다.(마르 12, 1-4)
콘스탄틴 로마 황제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어 올리브산 정상에 교회를 세웠는데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몰락했고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새로 세워졌다. 십자군이 멸망하자 교회도 몰락하여 모슬렘 교도에게 점령되었다
.
1868
Aurelia de Bassi 왕자는 그 교회가 있던 장소를 사서 프랑스에 기증했으며 1875년 프랑스는 가르멜 수녀원을 세워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교회 안의 회당 벽에는 주님의 기도가 62개 국어로 쓰여져 있고, Bassi 왕자는 회당에 묻혀있다.

11. 예수승천성당 (The Chapel of the Ascension)

 

사도행전 1, 9-12에서는 예수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올리브산으로 데려왔고 그들을 축복하신 후 하늘에 올라가셨는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곳은 가장 정확한 승천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올리브산을 떠났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을 떠나는 100야드 거리의 안식일 여행이었고 예수 승천 장소와 예루살렘을 나누는 경계가 되는 거리였다
.
원래 14세기에 이곳에 이미 비잔틴 교회가 지어졌으나 614년 페르시아인에 의해 몰락, 또 다시 십자군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의 작은 성당은 예수 승천 시 남겨진 전설적인 예수 발자국이 난 돌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워졌고 아직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모슬렘 사람들은 아치형의 벽을 쌓고 현재의 둥근 천장을 더했다. 회교도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지만, 예수 승천 날은 우리도 미사를 드릴 수 있다.

12. 베드로 회개기념성당 (닭울음성당) (The 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

 

키드론 계곡을 굽어드는 이 성당은 1931 Caiphas의 전통적인 집터에 지어졌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배반당하신 예수님은 대제관 Caiphas의 집으로 인도되어 그 날 밤을 세웠는데 여기가 베드로의 첫 시험장소였다. 발굴 결과 신부들은 Caiphas집터에 세워진 것을 확인했고 거의 완전한 히브리척도(), 돌절구, 종들의 주거지, 법정, 비잔틴 교회의 잔재가 발굴되었다.

13. 성 안나 성당 (The Church of St. Anne)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했을 때는 그들이 있는 동안 건축했거나 재건한 7개의 교회를 남겨 놓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곳이 안나 성당이다.
1100
년 발드윈의 부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그곳은 성벽으로 된 천장과 아름다운 둥근 지붕, 고딕식 입구를 가지고 있다. 이 교회는 성모가 태어난 곳이고 그의 부모의 집이기도 하였다
.
1856
년 마지드는 전쟁 중 나폴레옹의 지원에 대한 답례로 이곳을 나폴레옹 3세에게 주었고 교회는 복원하여 화이트 신부에게 주었다.


십자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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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 ― 남북 왕국 분열의 장본인

1. 인적 사항
① 르호보암은 '백성이 늘다'의 뜻.
②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마지막 왕이자 남유다의 제1대 왕(왕상 14:21).
③ 솔로몬과 암몬 여자 나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왕상 14:21. 31).
④ 처 18명, 후궁 60명,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둠(대하 11:21).
⑤ 그리스도의 조상(마 1:7).

2. 시대적 배경
르호보암이 통일 왕국의 왕위에 오를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번영과 부를 누리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각 지파들간의 갈등의 심화와 솔로몬 때부터 쌓였던 세금과 부역 등으로 인한 수많은 불평들이 백성들 안에 잠재해 있었으며 이것이 남북 왕국 분열의 근본 원이 되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여호와 신앙이 극도로 와해된 채 이방 신앙에 젖어 들고 있었다.
한편 솔로몬 전성기 때까지만 해도 거의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말기부터 주변 국가들의 침입을 받기 시작하다가 르호보암 때에는 애굽 왕 시삭의 대 규모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외적의 위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으며, 대신 남북 왕국간의 계속된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노인의 교도를 무시하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의견만을 들을 만큼 어리석은 자(왕상 12:8-11).
② 백성들의 불만과 지파간의 갈등을 무시한 채 무모한 강압 정치만을 단행할 만큼 권력욕이 강하고 경솔한 자(왕상 12:14).
③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나머지 아들들에게 각 성읍을 다스리도록 하여 국력을 강화시킨 것을 볼 때 책략이 뛰어난 자(대하 11:22, 23).
④ 나라가 강성하여 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고 나갈 만큼 교만한 자(대하 12:1).
5. 구속사적 지위
①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최후의 왕인 동시에 분열왕국 남유다의 최초의 왕.
② 동족간의 전쟁을 항상 치룬 대표적인 왕(대하 12:15).
③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마 1:7).
④ 이스라엘 왕국 분열의 주범(대하 10:10-14).

6. 주요 업적
① 15개 성읍을 건축하고 군대를 정비함(대하 11:5-11).
② 아비야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지혜롭게 처신함으로써 아들들 간의 왕위 쟁탈전을 사전 방지함(대하 11:22).
③ 즉위 3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고 국력을 강화시킴(대하 11:17).

7. 실수
① 백성들의 민의 와는 달리 획일적인 강경책을 고수함으로써 왕국 분열의 비극을 초래함(왕상 12:13-17).
② 나라가 강성해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고 온갖 우상을 숭배함(왕상 14:22-24;대하 12:1,2).
③ 선민의 왕으로서 많은 처첩을 거느림(신 17:7;대하 11:18-21).

8. 평가 및 교훈
①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 주위 백성들의 탄원과 원로들의 진언을 무시한 채 강압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을 초래하였다(왕상 12:3-20). 이처럼 자신의 명에와 권력에만 급급하는 자는 지혜자의 말도, 사태의 정도도 도무지 알지 못한 채 우매한 길로만 나아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도자 된 자가 판단력을 상실했을 때는 그 결과가 극히 치명적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혹여 우리 가운데도 그와 같이 자신을 위한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가 돌아보아야 하겠다.
② 르호보암은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자 교만에 빠져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렸다(대하 12:1).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의 머리와 지혜로 견고히 쌓았던 요새화된 성읍과 국방이 하나님이 보내신 바 된 애굽 왕 시삭의 파괴 아래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풍요롭고 형통할 때 자칫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외면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 함이 허사임을 깨달아(시 137:1) 형통할 때에 더욱 스스로를 겸비해야하겠다.

9. 핵심 성구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 받은 지라"(대하 12:1).

삶의 위기를 당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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