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영 선교사(캄보디아)

복음으로 ‘킬링필드’를 ‘힐링필드’로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센터부지 계약 
아이들 위해 유치원과 기술학교 세울 예정

 할렐루야! 저는 캄보디아 깜뽕치낭에서 7년째 사역하는 조재영 선교사입니다. 깜뽕치낭순복음교회에서 성도들을 양육하고 있고 2년전부터는 깜뽕레잉 뜨러바엑지역에 지성전을 건축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캄보디아하면 떠오르는 것이 ‘앙코르 와트’일 것입니다. 그러나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킬링필드’입니다. 이 말은 캄보디아의 역사를 대표하는 한 단어이지만 또한 실제로 캄보디아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저희가 이곳 캄보디아에 들어와 사역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캄보디아의 기독교 인구는 여전히 단 1%에 불과합니다. 캄보디아에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와 처음 복음을 전한 것은 약 9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땅에 기독교 복음화가 단 1%에 그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킬링필드’의 그림자가 이 땅을 뒤덮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캄보디아가 복음 전하기 쉽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캄보디아가 열려 있어서 수월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땅을 덮고 있는 사탄의 강력한 세력은 지금도 이 땅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곧 수많은 믿음의 백성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 믿고, 바라보며, 꿈에 그려보았습니다. 더구나 첫 교회 장소로 계약한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건물 정 중앙에 설치되어 있던 신전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주인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자 우리는 과감하게 창립예배를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이 신전을 아예 부수었고, 가루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처음부터 아름다운 간증을 써내려가며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사탄의 거센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특히 이곳 캄보디아에서 사탄이 우리에게 많이 사용하는 공격 수단은 바로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 일 없이 잘 진행되다가 어김없이 우리를 흔들어  실망하거나 좌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마다 반복되었습니다. 이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보혈 찬양을 부르고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늘 우리에게 힘을 주는 가장 큰 말은 바로 이영훈 목사님이 늘 하시는 ‘절대 긍정, 절대 감사’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사역을 하다 보니 주님은 그 때 그 때마다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필요한 일들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사역이 7년째가 되어 첫 번째 분기점을 맞이한 저희는 현재 사역을 두 지역으로 나누어 집중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금까지 저희는 깜뽕치낭 시내에 렌트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려 마음 한 구석이 안타까웠습니다. 건물 렌트비로 너무 많은 돈이 지출되기 때문에 이미 몇 년 전부터 저희는 센터를 짓게 해 달라고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였습니다. 센터에 교회와 사택, 단기 팀 숙소, 강의실 등 다양한 용도의 시설들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제 마음 한 구석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남에게만 강요하지 말고 네가 먼저 믿음으로 심어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올해 약간의 자금이 생겼는데 주님은 이 자금을 제가 드리는지 시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마침 제 아내 역시 같은 말을 하였고 저희는 기도하면서 이 자금을 저희 센터 대지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기꺼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드디어 이 달 초에 땅 계약을 하였고 계약이 마무리되자 하나님은 즉시로 또 다른 후원자를 보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직은 확정 단계가 아니지만 분명 주님은 이를 선으로 바꾸실 것이고, 다른 많은 중보자와 후원자들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역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크게 두 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움직여 나갈 것입니다. 첫 번째 이슈는 바로 이곳 깜뽕치낭과 깜뽕레잉 땅에 예배 리더들을 개발하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일명 ‘교회개척학교’를 준비하여 이를 통해 매년 예배 리더들을 발굴, 훈련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된 리더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져 들어가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교회를 세워나가고자 합니다. 마치 과거 우리 여의도가 지역장, 구역장들을 통해 강력한 지역조직을 활용하고, 평신도 리더들을 세웠듯이 이곳 캄보디아에도 이러한 리더들이 일어나 각 지역을 성령의 바람으로 변화시키도록 리더들을 준비시키려고 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매년 반복 훈련이 가능하고, 가장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훈련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슈는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사역’입니다. 캄보디아는 과거 킬링필드라는 사건을 통해 수많은 리더들과 지식인들을 잃었기 때문에 현재 캄보디아는 새로운 리더들과 일꾼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캄보디아는 다른 주변 국가들에 비해 자원도 거의 없고, 국고도 튼튼하지 않으며, 다른 대체 수단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사람’ 자체인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다른 그 어느 것보다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셨던 것처럼 저희도 이곳 캄보디아 미래인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센터 부지에 그 첫 사역의 신호탄으로 유치원을 건축하고자 합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곧 좋은 소식들이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유치원을 준비하면서 저희는 앞으로 먼 미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걸어왔습니다. 유치원에서 가르칠 교사들을 꾸준히 준비하고 있으며, 또한 최근 단기선교 팀의 사역 초점도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사역들을 준비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이런 사역들이 전개되면 필요하게 될 현지 캄보디아 동역자들도 계속하여 찾아왔습니다. 또한 저 자신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도 과감하게 투자했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도, 이곳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오직 하나입니다. 즉 캄보디아의 미래는 결국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 새로운 사역에도 도전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곳 캄보디아 청소년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줄 기술학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이들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기 위함입니다. 이제 캄보디아는 이제까지 들어왔던 ‘킬링필드’라는 오명을 벗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야 될 것입니다. 이른바 ‘힐링필드’, 즉 사람과 영혼을 살리는, 치료하는 들판으로 새롭게 불리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역하는 캄보디아 선교사들인 우리가 지금까지의 사역을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여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사역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가 다 함께 이를 위해 중보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강경보 선교사(마케도니아 공화국)

마케도니아에 순복음의 영성을 전하다 



8년간 복음 전파 주력 예배와 말씀 중심으로 양육  
집시 위한 지성전 세워 신앙교육, 주님의 일꾼 세워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저는 발칸반도 동유럽 구 유고슬라비아 남단에 위치한 ‘마케도니아 공화국’에서 주님께 부름 받아 2008년 9월 이후 마케도니아 원주민들을 섬기고 있는 강경보 선교사입니다. 1991년 마케도니아는 티토 사회주의 정권이 해체되면서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평화적으로 독립한 나라입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 : 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은 남동부 유럽 발칸 반도 한가운데에 있는 내륙국으로 북쪽으로 세르비아, 동쪽으로 불가리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알바니아와 접하고 있습니다.

 수도는 스코피에이며, 면적은 남한의 4분의1 정도의 면적이며 인구는 200만으로 수도인구가 100만입니다. 인종은 마케도니아 슬라브인(66%), 그리스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 터키인, 세르비아인, 집시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는 대부분의 알바니아인과 터키인은 이슬람교, 슬라브인은 그리스정교를 믿고 있습니다. 언어는 마케도니아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8년 9월 워싱턴에 사는 저희 가족들이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를 통해 1년 발령받아 간 나라가 마케도니아였습니다. 제 맘속에는 1년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는 마케도니아 지도를 주일학교 공과책 양면에 보여주셨고, 워싱턴에서 사역하고 있는 저에게는 새벽예배를 마친 후 잠깐 잠이든 순간 꿈에 주님께서 정확한 목소리로 “이 삽으로 저 밭을 일궈라!”하시며 ‘삽’을 저에게 주시면서 끝이 안보이는 밭과 이제 막 30센치 자란 줄기와 잎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 24년을 미국 유럽 아시아에 거주했던 저희 가족에게 또 하나의 나라를 접하는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환경이 어려운 나라라기에 조금은 고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저희 부부와 아들 딸 네 식구 모두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보여주시므로 “가라!”고 하셨고 저희들은 주님께 순종하며 그곳에 가서 개척하여 순복음의 깃발을 꽂자고 다짐했습니다. 3주만에 워싱턴의 일들을 정리하고 마케도니아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전 17세에 선교사로 부름 받아 지금까지 31년간 하나님의 훈련과 인도를 받아왔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니 순종하며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따뜻하고 밝고 낙천적인 사람들로 알렉산더대왕의 후손이라는 자존심이 대단합니다. 첫날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은 매우 반가워하면서 친절하게 저희들을 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너무 잘했을 때 저는 “모든 것이 가능하겠구나. 할 수 있다”라는 생각과 확신을 얻었습니다.

 도착한 첫날부터 쉬지 않고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전도한 성도들과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여 현지인 교회를 빌려 매주 예배드리며 3개월 후에 교회 개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야훼 이레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길거리 상점원이나 택시운전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고스포드 테 사까!)”를 외치며 전도하기 시작해 3개월간 가정에서 셀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현지인 교회를 10개월 빌려 예배드린 후 지금 현 아파트교회를 렌트해 7년동안 사용해 예배드렸습니다. 교회 주변의 마케도니아인들이 집시(로마)인들의 건물 출입을 꺼려하여 갈등을 빚어 그 예배장소에서 다 같이 예배드릴 수가 없게 되어 집시지역에 따로 2014년 3월부터 지교회를 세워 지난 8년동안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번도 예배를 드린 적이 없는 저들에게 말씀과 예배와 기도의 훈련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달아 예배중심 말씀중심 기도중심으로 나아갔고 제8차 다니엘 21일 기도회를 하며 새벽기도회에 힘썼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독일로 여섯가정이 이민을 갔지만 영적갈급과 고향이 그리워 지금도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경제수준이 열악하다보니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마다 직장을 달라거나 교회에 나오니 월급을 달라거나 끊임없이 도와달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도 지난 8년간 믿음을 같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같이 세워온 일꾼들도 있습니다. 저의 사역이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도 자라면서 아이들은 미국으로 대학을 가고 남편은 회사 전근을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저 혼자서라도 마케도니아에 남아서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셨습니다.

 벌써 혼자서 4년을 견뎌내며 더 강해지고 어떤 상황에도 잘 이겨내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언어와 문화, 생각이 다르지만 복음전파 사명을 잊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영어로만 계속 설교하다가 해를 거듭하면서 이젠 저의 귀가 뚫리고 혀가 풀리면서 3년 전부터는 마케도니아어로도 설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좀 더 신앙적 경험을 넓혀주기 위해 8명을 데리고 유럽총회에서 주관하는 부활절금식성회에도 22시간을 운전하여 달려갔습니다. 매일 말씀을 사모하고 찬양하며 성도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이곳을 지키며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주님의 때에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필요한 성전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성전도 건물주인들의 핍박으로 벌써 네 번째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건물이 아니고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눈바람 비를 피하고 은혜가 있는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면 감사드립니다. 매일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주님께서 인도해주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함으로 복음에 참여하는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 선교사역국 산하의 모든 분들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뜨거운 눈물의 선교후원과 기도에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마케도니아를 통해 유럽에 복음이 전해졌듯이 이 곳에 순복음의 영성을 전해 세계로 뻗어나가길 소망합니다. 성령의 불이 일어나 이 땅이 변화되는 그 날까지 복음의 씨앗을 심겠습니다.

 오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품에 오기를 소원합니다.


마가의 다락방 내부           

       


마가의 다락방은 다윗왕 무덤 윗부분에 있다. 
이 다락방의 크기는 막 14:15에 큰 다락방이라고 하였고,
행 1:15에 의하면 120명이 모일만한 꽤 큰 방이었다.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 후 성찬예식을 제정하시고
마지막으로 유월절 식사를 한 곳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부활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신 곳(요 20:19-29)이고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신 곳으로 유명하다.(행 2:1-4)





마가의 다락방의 한쪽 벽면의 모습


원래 마가의 다락방은 지금처럼 천장이 없었다고 한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막 2:4)
처럼 마가의 다락방도 그런 모습이었는데 비잔틴시대 때 지금의 천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성전 꽃꽂이-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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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리 ― 북왕국 최대 왕조의 시조
1. 인적 사항
① 오므리는 '여호와께 예배하는 자'라는 뜻. ② 북이스라엘의 6대 왕으로 12년간 재위(왕상 16:23).
③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왕조의 설립자(왕상16:29). ④ 엘라 왕 때 군대장관을 지냄(왕상 16:16).
2. 시대적 배경
B.C.885-874년까지 약 12년간 북왕국의 제6대 왕으로 통치한 인물. 이스라엘 왕국 분열 이후 북왕국은 이 당시까지 계속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왕국으로서 기반이 매우 약했다. 그러나 군대장관이었던 오므리가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그의 놀라운 군사적 역량에 의해 북왕국의 분산되었던 힘들이 하나로 규합되면서 사마리아 성읍을 수도로 하여 강력한 강력한 국가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또 대외적으로 활발한 정복 사업을 펼침으로써 북왕국의 국제적 지위도 많이 격상시켜 놓았다. 이로 인해 '오므리 왕조'하면 북왕국의 대명사로 멀리 예후 왕 때까지도 사용되었다. 또한 북왕국 제7대 왕인 아합 왕이 정치, 경제적으로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오므리 왕의 공헌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시므리의 반란시 백성들에게 왕으로 추대된 것으로 보아 용감하고 뛰어난 명성을 지닌 자(왕상16:16).
② 반란자들을 죽이고 북의스라엘의 내란을 평정할 정도로 군사적 지략이 탁월한 자(왕상 16:21,22).
③ 앗수르 문서에 이스라엘이 '오므리의 땅'으로 표현될 정도로 대외적으로 정책이 능했던 자.
④ 우상 숭배와 악한 율례를 세워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할 정도로 완악한 자(왕상 16;25,26;미 6:16).
5. 구속사적 지위
① 정치적으로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린 가장 유능한 왕들 중의 하나였으나, 신앙적으로는 악의 대명사가 된 왕(왕상 16:23-27). ②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사마리아 성읍을 건축함(왕상 16:24).
③ 후대에게 불 신앙의 대표적 모습인 '오므리의 율례'를 남김(미 6:16).
6. 주요 업적
① 북왕국이 분열되었을 때에 나라를 하나로 결집함(왕상 16:21,22).
② 사마리아를 수도로 세워 북이스라엘의 기강을 확립(왕상 16:24,27).
7. 실수
① 우상 숭배의 정도가 역대 왕보다 심함(왕상 16:25).
② 후대에게 사악한 율례를 남겨 혼합적 신앙을 야기함(왕상 16:25).
8. 평가 및 교훈
① 오므리는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 무척 뛰어난 왕이었다. 즉 그는 사마리아를 건설하여 이스라엘의 기강을 확립하였고, 당시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땅'이라 부를 정도로 대외적인 안정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렇듯 훌륭한 업적을 쌓았을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 온갖 불의한 일을 행하였기에 악의 대명사로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왕상16:24-27).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이 없이는 다른 어떠한 것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결국 심판을 피할 길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소속된 집단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의를 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② 오므리는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고, 그가 남긴 사악한 전통과 우상 숭배는 그의 아들 아합 왕 때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왕상 16:25-34). 결국 이러한 종교적 전통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우리는 먼저된 자가 이룩해 나가는 전통이 후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다윗과 골리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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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대상을 마음 속에 그리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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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시편 66장 19절)

내가 목회한지 몇 달밖에 안되는 아주 궁색한 때였습니다.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었으므로 조그만 방에서 나 혼자 살았습니다. 방 안에는 책상은 물론, 의자도 침대도 없어서 마룻바닥에서 그냥 먹고 자며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영적으로는 승리감에 충만하여 매일 몇십리 씩을 걸어다니면서 열심히 전도하고 심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요 14 : 14). 또한 내가 하나님의 당당한 아들이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되신 하나님의 자녀 (요 1 : 12)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나는 성경의 약속을 믿으며 내게 필요한 것을 주님께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제게는 책상도 없고, 의자도 없고, 침대도 없습니까? 더구나 자전거 하나 없이 매일 몇십리씩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녀야 합니까? 적어도 조그만 책상이나 앉을 만한 의자, 심방할 때 타고 다닐 자전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주십시오" 나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 물건들이 속히 내게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도 없이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달, 석 달, 넉 달, 다섯 달, 무려 여섯 달이 지나갔으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던 날, 나는 정말 낙심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아무것도 먹지못해 배도 고프고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하염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는 여러 달 전부터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놓고 기도했는데, 아직 하나도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가난한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주님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자신도 체험하지 못한 믿음이나 기도 응답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이렇게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지경인데 저들에게 어떻게 인생이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저는 지금 너무나 낙심되어서 아무 의욕도 없습니다. 저의 이번 기도가 왜 응답되지 않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시간이 지나면 다 응답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래 전에 드린 기도가 언제, 어떻게 응답되는지를 지금 당장 분명히 확신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만일 제가 죽고 난 다음에 응답하시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왕 응답하시려면 지금 저의 형편을 보시고 제발 좀 빨리 응답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한참 울며 신세 타령 반, 기도 반 쏟아놓고 나니 마음이 아주 평안해 지고 안정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이 넘쳐나기 시작했으며, 성령의 음성이 마음 속에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나의 영혼의 깊은 곳에 말씀하시기 때문에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성령께서 나의 영혼을 진동시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오래 전에 너의 기도를 들었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불쑥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 책상과 의자, 자전거는 다 어디 있습니까? "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비롯한 내 자녀들이 온갖 부탁과 요구를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응답하기에 합당치 않은 막연한 말로 달라고만 하는구나.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의 종류가 수십 종이나 되는 것을 모르느냐? 네가 언제 내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에 대한 분명한 종류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있느냐? 단지 막연하게 달라고만 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신 이 말씀은 나의 일생 일대에 놀라운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것은 신학교에 다닐 때,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큰 실수를 했지만, 이것을 깨닫게 된 것은 엄청난 복이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진정 분명한 말로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이때 성령께서 나에게 히브리서 11장을 펴 보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서두부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기도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기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번에는 책상을 놓고 기도할 때 종류를 분명히 했습니다. 책상 종류는 내가 좋아하는 필리핀제 마호가니 책상이라야 하며, 크기는 어느 정도라고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의자는 철로 테를 두른 것으로, 아래에 작은 바퀴가 달린 가장 좋은 것이라야 책상 주위를 밀고 다닐 수 있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놓고 기도할 때에는 정말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제, 일본제, 대만제, 독일제 등등, 자전거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주 튼튼한 자전거가 필요했기에 그 당시 자전거의 품질 중 최고인 미국제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기어가 있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튼튼한 미국제 자전거를 갖고 싶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기도대로 착오 없이 응답하시도록 분명한 말들로 항목들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믿음이 뱃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떨렸습니다. 그날 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깊이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 4시 30분에 일어났을 때에는 갑자기 가슴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그 전날 저녁에는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믿음이 있었는데, 자고 나니 믿음은 날개를 치고 날아가 버려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에 믿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응답을 주실 때까지 믿음을 간직한다는 것과는 정말 별개의 문제군요.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반사로 겪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집회에서 아주 은혜로운 강사의 설교를 들을 때에는 믿음이 강해져서 무엇이든지 다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집회가 끝나고 나면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믿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 새벽,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적절한 성경구절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눈길이 로마서 4장 17절에서 멈추었습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나는 이 말씀에 사로잡혔고, 이 말씀은 내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나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다. 벌써 그렇게 한 것이다. 하고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믿음을 간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이 성경 구절에서 얻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는 성도들이 이미 하나 둘씩 모여 기도하고 있는 천막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몇 장 부른 후에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로마서 4장 17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필리핀제 마호가니로 만든 아주 좋은 책상과 끝에 작은 바퀴가 달리고 쇠로 테를 두른 아름다운 의자와 또 기어가 달린 미제 자전거를 제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다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이 나의 형편이 어떤지를 다 잘 알고 있는데 너무 엄청난 말을 하니까 놀란 것입니다. 내가 계속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자랑하자, 우리 성도들은 혹시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귀를 의심하는 듯했습니다. 나는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음으로 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데 세 명의 청년들이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로 따라 나왔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께서 자랑하신 물건들을 보고 싶습니다. 좀 보여 주세요." 나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나는 믿음의 고백을 했을 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천막 교회는 빈민촌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새벽 예배 때 한 이야기가 성도들에게 굉장한 간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성도들이 그 말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면 그로써 끝장입니다. 누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들으려고 다시 교회에 오겠습니까?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속으로 잠시 묵도했습니다.

"주여, 처음부터 이번 일은 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 것은 순전히 당신 탓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단지 순종하여 이미 응답받은 것처럼 말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곤란한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설명해야 됩니까? 항상 도와 주셨으니 제발 지금도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성령께서 지혜로운 한 생각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모두 내 방으로 가봅시다." 그들은 방에 들어서면서 자전거랑 의자랑 책상을 찾느라 두리번거렸습니다. "뭐 그렇게 둘러볼 것 없어요. 제가 나중에 보여 드리지요."

나는 박 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목사로 훌륭하게 시무하고 있습니다.)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하겠소. 만일 박 군이 내 질문에 대답하면 여러분에게 그 물건들을 보여주리다. 박 군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얼마 동안 어머니 뱃속에 있었소?"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음, 아홉달이요." "그러면 아홉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요?" "그야 자라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아무도 당신을 보지 못 했잖소?" "어머니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거지요." "맞아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보여도 여러분들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 분명히 어머니 뱃속에 있었어요. 저도 어제 저녁 이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제 마음 속에 아까 말한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하나하나 그려가며 기도했어요. 그것들은 지금 눈에는 안 보여도 믿음으로 여기 내 마음 속에 자라고 있어요. 이제 때가 되면 사람들이 보게 될 바로 그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가 내 속에 들어 있어요."

이렇게 말을 하자, 그들은 배를 잡고 뒹굴며 웃었습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임신한 남자는 처음 본다구요. 그들은 방에서 뛰쳐나가자마자, 온 마을에 남자 전도사가 의자, 책상, 자전거를 임신했다고 하더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나는 이일 때문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면 모여서 비웃을까봐 밖에 나다니기가 어려웠습니다. 개구쟁이 꼬마들은 주일이면 내게 와서 배를 만지며 놀려댔습니다. "전도사님, 어디 좀 봐요. 얼마나 더 커졌는지요."

나는 온 동네에 웃음거리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극히 담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한 물건들이 믿음으로 내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해서 낳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여 기도한 것이 응답되어 실제로 이루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 원리를 되새기며 계속 기도한 물건들을 주실 주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고 입술로 줄기차게 시인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자, 내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기도한 내용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가 원한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도록 어떤 사람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가서 보니, 책상은 마호가니로 만든 것이었고, 의자는 일본 미쯔비시에서 만든 것으로 바퀴가 달려서 앉은 채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는 미국 선교사의 아들이 좀 쓰던 것이긴 했지만 기어가 달려 있는 튼튼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아주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매우 막연한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깨달은 이후로는 지금까지 한번도 막연한 말로 기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막연한 기도에 응답하시면, 여러분은 그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인지 아닌지를 잘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분명하고 특별하게 요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믿음으로 구체적인 기도를 해야 그대로 응답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 마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어느 날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즉각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직접 물어 보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예수님께서는 그의 분명한 뜻을 듣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바디매오는 그 즉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가 눈을 치료해 달라고 특별히 간청하기 전에는 치료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가 자신의 분명한 소원을 믿음으로 말했을 때 바로 그때 주님께서는 그대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막연히 중언부언하지 말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정한 대상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근거로 유아에게 세례를 줍니까?”

 


[들어가는 말]

비기독교 가정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 모든 교회들은 세례를 시행합니다. 그러나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유아세례에 대한 찬반론이 교회들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신자들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만 할까요? 아직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른의 경우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유아에게 신앙고백도 없이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요? 유아 세례에 관한 찬반론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입장이 확실한 성경적 동의가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신앙의 전통은 일관되게 유아 세례를 베풀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기로는 견고한 성경적 근거와 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유아 세례에 관한 성경적 근거들과 이유들을 댈 수 있겠습니까?


[읽어야할 성경]

창 17:1-14; 마태 19:13-14; 행전 2:38-39; 10:47; 16:31; 고전 7:14; 골 2:8-15


[가능한 대답들]


1. 하나님은 자기의 언약 안에 신자들의 ‘자녀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 안에 그가 부르신 자들의 자녀들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경우는 할례예식을 통해서이고 신약의 경우는 세례를 통해서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옛적부터 실행되어 온 전통을 다음과 같이 다시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너희 각 사람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약속은 너와 네 자녀들과 먼데서 온 자들 모두를 위한 것이니, 이들 모두를 우리의 주 하나님께서 부르실 것이다.”(행전 2:38-39)


2. 예수는 어린 아이들을 왕국의 시민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새로 온 이민자들에게 일정기간을 두고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배우게 한 후에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이 기간에 그들을 그 나라의 언어와 역사도 배우고 생활습관을 익히게 됩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시민권 취득 시험을 보고 선서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 나라의 시민이 됩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태어난 어린아이에게는 다른 의미나 조건 없이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이 경우를 가리켜 속지주의라고 합니다. 그 땅에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그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말입니다. 미국과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런 법을 따릅니다. 우리나라는 혈연주의이기 때문에 부모가 외국인이면 그 자녀가 우리나라 영토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시민권을 자동적으로 부여하지는 않습 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우 예수님은 속지주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어린아이가 내게로 오게 하라. 오는 것을 막지 말라. 하늘나라는 이러한 자들의 것이니라.”(마태 19:14). 국가는 시민권 증서로 출생증명서를 발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신자들의 자녀들에게 주는데 그것이 세례라는 성례를 통해서입니다.

 

3. 가족을 통한 언약의 선(線)은 신약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사도들은 어떤 가족이 신앙을 갖게 되면 그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관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니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행전 16:31). 그들이 복음을 듣자 “그와 그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행전 16:33)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반응을 앞섭니다. 

달리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실 때, 그분은 먼저 우리에게 약속들을 제시합니다. 즉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응답할 것인지를 물어본 다음에 약속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를 언약적 교제 안으로 부르시고 그 후에 우리의 응답을 요구하신다는 말입니다.


언약의 자녀들이 자신의 사고와 생각으로 무엇인가 분별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게 되면, 즉 앞뒤를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을 지닌 나이가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주장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해야 합니다.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영의 새롭게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의 축복들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한다면, 그들은 자신들 위에 언약의 저주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받는 세례는 그들에게 그들은 결코 선택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교회는 말하기를]


질  문: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대  답: 그렇습니다.

        그것은 유아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에 속하였고,

        또한 어른들 못지않게 유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속죄와

          믿음을 일으키는 성령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아들도

           언약의 표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되고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외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구약에서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나

           신약에서는 그 대신

          세례가 제정되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질문과 대답 74번)

조용기 목사 G12 한국콘퍼런스 참석한 청년들에게 메시지 전해


조용기 목사 “큰 꿈을 품고 기도하라”

 G12 한국콘퍼런스가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개최됐다. ‘너희는 빛이라’를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에는 조용기 목사와 G12 대표 세자르 카스텔라노스 목사(콜롬비아), 로렌스 콩 목사(싱가포르), 라우자이르 게라 목사(브라질), 아트 세펄베다 목사(미국 하와이), 이성방 목사(열방교회) 등이 강사로 초청됐다.
 주강사인 조용기 목사는 28일 ‘하늘을 바라보라’는 주제로 성회에 참석한 청년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조용기 목사는 “꿈을 꾸되 큰 꿈을 꾸라”고 당부하며 “하나님은 꿈을 통해 여러분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기도할 때 꿈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오늘도 기적이 일어난다’고 고백한다. 마음의 고백을 할 때 창조의 기적이 일어난다”며 “성경을 바라보고 자꾸 읽으면 꿈과 믿음이 생겨난다. 꿈을 품고 믿음으로 기도하라, 그리고 창조의 선언을 하라”고 역설했다.
 참석자들은 조용기 목사의 설교대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더욱 큰 꿈을 갖고 믿음으로 기도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조용기 목사는 지난달 29일 CCMM 빌딩에서 G12 창시자인 세자르 카스텔라노스 목사(콜롬비아 MCI 담임)와 G12 한국콘퍼런스 관계자들과 만나 환담했다. 세자르 목사는 G12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에게 강한 꿈과 비전을 전해준 조용기 목사에게 감사를 전하고 세계선교를 위한 비전에 대해 묻기도 했다. 조용기 목사는 세자르 목사에게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제자들을 육성해서 세계선교를 이루어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권태 선교사(캐나다 수정교회)
23년간 선교하며 토론토와 세계에 순복음 영성 전해  



원주민 선교 주력하며 러시아, 가이아나 성도들 복음화 힘써  
‘오직 예수’로 부흥, 출석 1000명 선교사 20명 파송 비전 세워 
  
 1980년 6월 조국을 떠나 가족 이민으로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저는 불신자 청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순복음교회를 다니며 구원의 은혜를 크게 체험했고 하나님께 제 삶을 온전히 바쳐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순절 신학교를 졸업한 후 순복음교회의 청빙으로 7년 동안의 영어권 사역을 마친 후 현재 수정교회를 개척하여 23년 동안 토론토와 전 세계에 순복음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담대하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유명한 관광명소인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약 12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대단히 기독교적이었습니다. 온타리오 주 공립학교에서는 주기도문으로 먼저 기도하고 수업을 시작했으며, 1982년도에 캐나다 대법원은 ‘주의 날의 법’을 재천명하여 대형 가게들은 사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캐나다는 기독교의 모든 전통과 문화를 떠나 현재는 자유주의와 인본주의 물결로 인해 타락한 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985년도에 공립학교에서 주기도문을 불법으로 ‘주의 날의 법’을 위법으로 판결했습니다. 1988년도에 낙태를, 2005년도에는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했습니다. 매년 6월이면 시내 한복판에서 열흘동안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열리며, 2014년도에는 전세계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토론토에서 있었습니다. 기독교 인구비율은 1971년에 41%에서 2011년에 27%로 추락한 반면, 비종교인의 인구는 4%에서 24%로 증가했습니다.

 23년 전 비록 한인교회로 시작하였으나 교회는 반드시 국내외에서 선교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개척교회로서 연약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확실한 비전이 있어서 1996년부터 10년 동안 우크라이나를 다니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파송받은 김홍인 선교사님과 함께 2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지원하는 일을 했으며, 우크라이나 영산순복음신학교를 세우는 일에 협력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이 있어 우크라이나 선교를 끝내고 현재는 미전도 종족이 가장 많은 나라, 인도에 다니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가정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있는 곳이 선교지입니다. 그래서 땅끝까지 이르러 선교하고 전도해야 하지만 또한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도 선교지로 생각하고 대내외적으로 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캐나다에 복음의 빚을 진 나라입니다. 원산 부흥을 일으킨 하디(R. A. Hardie) 선교사, 평양에서 의료선교를 하다가 순교한 윌리엄 홀과 그의 아내 로제타 홀, 크리스마스 실을 창시한 그들의 아들 셔우드 홀, 한국 최초의 한영사전을 간행한 게일(J. S. Gale)박사, 3.1운동의 34인이라고 하는 스코필드(F. W. Schofield) 박사, 그리고 “한국을 제 2의 고향으로 삼겠다”는 결의를 갖고 황해도 소래교회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옷을 입고 목회하다가 순교한 매켄지(W. J. Mackenzie) 선교사 등 그 분들의 눈물과 피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수출하던 캐나다가 이제는 한인교회들의 선교대상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심으신 이 땅에서 캐나다를 축복하며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가장 큰 문제는 원주민 이슈입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문화를 약탈당한 캐나다 원주민들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소망없이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자살률은 캐나다 평균보다 5∼7배가 높으며 Inuit(에스키모 족)은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더 나아가 고등학교 졸업률은 22.8% 밖에 되지 않으며, 수감된 사람 중 원주민 남자는 22.6%, 여자는 34.5%입니다. 우리 교회는 캐나다에 복음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원주민 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원주민 신학교의 학장으로 돕고 섬기고 있습니다. 매년 북부 온타리오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단기선교팀을 파송하여 어린이들과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원주민 마을을 복음화 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정식으로 원주민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는 지난 30년 동안 이민자의 급증으로 인구의 51%가 이민자이고 230개의 민족이 어울려 살며 14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전 세계에서 최고의 복합문화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따라 나는 복합민족 교회의 모델을 꿈꾸었고 하나님은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크라이나 선교를 하던 중 하나님은 토론토에 러시아 교회를 개척하라는 소원을 주셨습니다. 기도했더니 우즈베키스탄에서 난민으로 이주한 고려인 가족이 우리 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러시아 교회가 개척이 됐습니다. 현재 러시아 교회는 우리 교회 부교역자가 영어로 설교하고 러시아어로 통역하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2003년도에 우리 교회는 서인도지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심으신 곳이 내 선교지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그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회개척의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와 친분이 있던 가이아나 목사님을 모셔서 교회를 개척하게 됐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한인교회, 영어권 교회, 러시아교회, 가이아나 교회가 있으며 매년 두번(어버이날, 성탄절)에 전 교인이 함께 모여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이 때마다 나는 우리 교회의 비전헌장에 나온대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찬양하는 꿈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실감나게 합니다.

 교회가 선교했더니 하나님은 교회를 부흥시켜 주셨습니다. 2003년도에 우리가 빌려쓰던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오히려 축복이 되어 건평 1300평의 건물을 구입할 수 있었으며 현재 500명 성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석성도 1000명의 목표와 20/20 비전으로 2020년도까지 2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비전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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