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제가 다른 나라에서 케직설교를 할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집회가 끝난 후 어떤 부인이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 부인은 아프리카에서 첫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선교사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응답받은 많은 기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에서 너무 고독해서 자신이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해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래서 다시는 선교지에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요한일서1:9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의 일부분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권면했지만 그 선교사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선교사와 여러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선교지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편지를 보면 언제나 우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영국에서 열린 케직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집회기간에 외국에서 온 방문객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참 재미있는 시간입니다.

어떤 때에는 6070개의 국가에서 온 손님들을 소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부인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절 기억하시겠읍니까?”

저는 기억력이 없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물으면 좀 당황합니다.

그래서 저는 흔히 하는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 이름이 뭐지요.” 그녀가 자기 이름을 말했을 때 저는

아 물론 기억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분은 제가 오래 전에 만났던 그 여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그런 죄도 용서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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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능력/이영훈목사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장 23-24절


 전 세계 어느 교회를 가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구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 되고,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되고, 우리의 신앙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만난 이후에 한평생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여러분 삶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구원의 능력

 예수님의 십자가는 첫째로,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노력으로, 또 많은 수행을 해서, 업적을 남겨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단순하고 분명하고 정확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것이 우리의 복음 전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셨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라고 하는 큰 장벽에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누구도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누군가 죄를 지었을 때 그가 가장 아끼는 짐승이 대신 피를 흘려 죽어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그의 수치를 가려주시느라고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린 그 피의 제사가 시초가 되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짓기만 하면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짐승을 가지고 나와 피를 흘려 죽게 하고 일시적인 죄 사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래서 죄를 짓기만 하면 그 주인의 죄 때문에 주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 집의 짐승들이 피를 흘려 죽어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피를 흘렸는지 모릅니다.  
 요즘 많은 가정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는데 주인을 대신하여 강아지, 고양이가 대신 죽는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강아지, 고양이, 아마 씨가 말라버릴 것입니다. 또 실제로 주인을 대신해서 죽는다고 할 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무너지겠습니까? “아! 내 죄 때문에 나의 사랑하는 동물들이 죽는구나. 다시는 죄짓지 말아야지.” 고개를 저으면서 되돌아섰다가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그 모든 구약의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죄 사함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침례 요한이 말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용서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원해서 구약에는 짐승이 대신 피를 흘려 죽게 하셨고, 그다음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여 영원한 제사로 하나님 앞에 피를 흘려 드린 바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요,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 사함받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피 흘리며 돌아가실 때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다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을 때 죄 사함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이 선물로 값없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후에 주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주 앞에 귀한 예물을 드리며 섬기는 것이지, 그것이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는 데는 우리의 믿음만 필요한 것입니다.
 “날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믿습니다!” 그 구원의 사건이 우리의 일생을 바꾸어놓는 것입니다.

 인도의 부유한 시크족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무엇 하나 부러움이 없이 자랐던 선다 싱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집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집에서 쫓겨나온 그는 16살 때부터 맨발로 온 인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를 맨발의 성자로 불리게 됐는데, 불교 국가인 티벳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그 후로 그가 어찌 되었는지, 히말라야를 넘은 후에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어느 날 티벳에서 쓰러져 죽는다고 해도 저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저는 해마다 티벳으로 들어갑니다. 제 생명이 그곳에서 끝났다는 소식을 어느 해에 들으시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선다가 죽었구나’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선다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그것 때문에 모든 것 다 포기하고 한평생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다가, 그는 어느 날 어디서인지 모르게 복음 전하다가 마지막 그의 삶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에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해서 우리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엔 두 가지 길만이 열립니다. 한 길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길이요, 다른 한 길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다가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의 호흡을 연장시켜 주실 때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지혜

 둘째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때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아 알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그 의미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 보면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가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구약의 율법에서 저주를 받은 자가 나무에 달린다고 했기 때문에 그 십자가가 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그 마음에 불편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헬라인들에게는 사형 틀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는 수치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게 이뤄지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면 날마다 주님 은혜 가운데 십자가 은혜에 더욱 감사하고 또 감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매일같이 가정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내용을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밤낮 들었습니다. 그저 듣고 아는 지식으로 십자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복음교회에 와서 1966년 2월 달에 성령 체험하고 나니까 그 순간 십자가가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나고 주님의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그 전엔 십자가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성령을 받고나니까 진짜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걸어 들어오셨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기도만 하면 주님의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구나. 얼마나 울었는지. 그 당시 서대문 시절의 우리 순복음교회는 통성기도 하면 그 통성기도가 통곡으로 이어지고, 주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이어져서 종을 쳐도 기도가 그치질 않았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성령 받고 나니까 평생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쌓였다 나오는지, 기도만 하면 통곡과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감사해서, 너무 기뻐서, 너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고마워서. 그저 그저 눈물만 흘렀습니다.

 요즘 우리가 생활이 풍족해지고 큰 어려움이 없으니까 옛날 같은 그 간절함이 사라졌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한번 눈물을 흘리려면 온몸을 비틀고 침을 발라도 잘 눈물이 나지 않아요. 옛날에 그냥 기도만 하면 통곡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던 그때가 있었는데. 아마 서대문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은 ‘나도 옛날에 한때 저랬지’ 생각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눈물의 기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첫 사랑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 부르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골로새서 2장 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설교자인 싱클레어 퍼거슨의 말씀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전부 담당하셨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비극 같았던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열쇠요, 그분의 부활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용서되었다는 것을 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임재를 믿고 그분과 교제하며 살 수 있으며, 예수님이 그분의 영을 보내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지혜 안에서 성장하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마음 가운데 충만히 임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성경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대부분 처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태복음 1장에서 걸립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태복음 1장 1절)는 괜찮은데, 그 다음 2절부터 걸립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낳고, 낳고, 낳고...”

 무슨 성경이 이렇게 어렵냐? 1장을 못 넘어가고 ‘낳고, 낳고...’에서 그치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말씀 읽을 때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또 은혜가 되고, 또 은혜가 되고, 또 은혜가 되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되고, 한없는 영광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자녀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령으로 충만 받아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자랑

 셋째로, 우리의 자랑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한평생 우리의 자랑은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의 되어야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는 훌륭한 가문을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혈통을 자랑할 수 있었고, 또 그의 학벌을 자랑할 수 있었고, 자랑할 것이 많이 있었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8절에 고백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자랑하며 살았는지. 주님,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자신이 가진 것들을 너무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많이 공부한 사람은 그의 공부한 그 학문적인 업적을 자랑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 가진 돈을 자랑하고,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 권력을 자랑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 자랑하는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자랑을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았는지 우리 자신을 보면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르신은 저를 만날 때마다 옛 이야기를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하는데 들었던 얘기를 또 하시고, 또 하시고, 또 하세요. 그런데 그게 제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자랑거리가 아닌데 본인은 자랑으로 생각하세요. 조선 총독부 시절에 그 국장급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 그때 자기 밑에 사람들이 다 줄서서 인사했다고... 그 이야기를 한 두 시간씩 하세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게 지금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내용인데, 본인은 “내가 이런 권력의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때 내 밑에 있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독립되고, 해방되고 난 다음에 뭐 어디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자기 얘기를 자꾸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수님을 자랑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옛날 자랑만 하다가 그냥 세상을 떠나셨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예수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여, 나의 고집과 교만과 나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여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상처, 미움, 원망, 불평들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만 위하여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자랑하고, 주님 위해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만을 자랑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 김정화 권사님. 『내가 급하다』라고 하는 책을 내셨어요. 본인은 교사, 남편은 의사로서 평안할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주님, 십자가 은혜에 너무너무 감사해서 한평생 복음 증거 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하고 지금도 시간과 물질을 주님 앞에 드려 헌신하고 계신 주님의 귀한 일꾼입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 했지만 그냥 본인 말 그대로 맹숭맹숭한 신앙이었습니다.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성경도 알고 찬송도 알고 다 아는데 은혜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학교 교사로 나가서 가르치는데 한 선생님이 열심히 학생들에게 전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 그러니까 본인에게 그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김 선생님, 혹시 성령 세례 받았습니까? 아, 이 말 듣고 본인이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성령 세례를 못 받아서 그렇구나.’ 매일같이 성경 보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면서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또 사모하고, 사모했습니다. 8일째 되던 날 교사 기도회 때,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에 3년 동안 무릎이 아팠는데 무릎 통증까지 나았어요.

 2002년 의사 남편의 고향인 경북 의성에 병원을 개원하게 되어서 의성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가서 ‘내가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되겠다.’며 겨자씨 선교회를 만들어서 전도지를 제작하여 보급하고, 전도자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2011년 건강이 악화돼서 대상포진으로 3년 동안 고생하게 되었는데, 그때 아픈 가운데 본인이 자신의 그 인간적인 열심만을 갖고 주님을 섬겼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와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나의 실체, 즉 철저히 내가 주인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열심 있는 한 율법주의자를 보았다! 유일한 처방은 그 죄인이 죽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복음 중의 복음이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자,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복음을 만나고 나니 가정이 회복되는 것이 당연했다!”

 겨자씨 선교회를 통해서 100명이 넘는 전도인을 훈련시키고, 매달 학생들에게 250만원씩 장학금을 내놓고, 또 불우이웃을 돕는데 병원 수익의 절반을 불우 이웃을 돕는데 헌신하고. 온 지역사회에 존경받고 사랑받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 책 끝에 이와 같이 말씀이 소개되어있습니다.
 “내 나이 또래 할머니들의 특징은 휴대폰에 꼭 손주 사진을 넣고 다닌다는 것이다. 손주가 너무 예뻐서 자랑하고 싶어서 야단이다. 전도는 왜 손주 자랑하듯 하지 못하는 걸까? 손주처럼 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해서다. 당신 안에 계신 예수님을 교리로만 알지 말고, 진짜 알아야 한다. 체험해야 한다. 같이 살아야 한다. 아니 그분만이 사셔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어서 입만 뻥긋해도 예수님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오늘부터 핸드폰 갖고 “우리 애 예쁘죠, 예쁘죠?”만 하지 말고 여러분 마음속의 예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만난 예수님, 여러분에게 은혜 주신 예수님, 여러분의 병을 고쳐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가정 위에 평안함과 축복을 주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 평생 자랑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개인을 자랑하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거 자랑하지 말고, 나와 함께 계시고 나의 주인 되시고 나의 일생을 인도해 주실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일생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 뜻을 이 땅에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생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조용기목사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5∼30절)

사람들은 모두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며 삽니다. 돈이 많으면 돈 때문에 수고하고 허덕이고 권력이 있으면 권력 때문에 수고합니다. 우리는 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벽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자진하여 우리의 의지할 수 있는 벽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국 위스콘신 의과대학의 리처드 스웬슨 박사의 <여유>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유가 없는 삶은 마치 여백도 없고 띄어쓰기도 안 된 채 글자만 빼곡히 채워진 페이지를 읽는 것과 같다’

여백도 없고 띄어쓰기도 없이 글자만 가득한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여유가 없는 삶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바쁘고 피곤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되어 이전에는 며칠씩 걸리던 일을 몇 초 만에 해치우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바쁩니다. “바쁘다”는 말이 입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바쁘게 살다 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피로를 호소합니다. 예전에는 휴가철이면 예전에는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났는데 요즘은 ‘무위 휴가’가 인기입니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가가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휴가를 떠나면 그 휴가 자체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적 피로보다 더 무서운 게 근심이 걱정이 마음을 짓누르고 그 마음이 피곤해 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면 최고급 호텔에서 쉰다고 하더라도 참된 쉼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고 쉼을 얻으려면 예수님께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고 말씀하시며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화해를 이루지 못하면 참 휴식은 마음에 가질 수가 없습니다.

1.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질문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질문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늘과 땅과 우주가 제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것이지요. 삶이 제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지요. 그러면 저는 오늘밤 안심하고 평안히 자도 괜찮지요?”

우주가 내 것이고 삶이 내 것이라면 내가 걱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모두 예수님의 것으로 우리는 안심하고 편안하게 쉬면 됩니다.

‘우주가 누구 것인가?’를 우리가 은밀하게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역대상 29장 11절에 “야훼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야훼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 땅, 밤, 낮, 나의 생명이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 그렇다면 여러분도 편히 주무십시오. 만일 이것들이 다 내 것이면 평안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 것이 여러분이 대신하여 편안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편 121편 4절로 6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생들을 일컬을 때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표현합니다. 보배는 예수님, 질그릇은 여러분과 접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이 보잘 것없는 존재이지만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보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창기에 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왔는데, 그 외국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화장실 사용이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에게 편하게 용변을 보라고 집집마다 요강을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에 심방을 갔더니 그 선교사들이 전부 요강을 들고 나옵니다. 왜 요강을 들고 나오는가 보니까 요강 안에 과자들을 잔뜩 넣어가지고서 찾아오는 한국 사람들에게 대접한다고 내놓으니 요강통이 아니라 과자통입니다. 졸지에 더러운 오물을 담는 요강이 맛있는 사탕 그릇이 된 것입니다. 가장 천한 그릇이 가장 귀한 그릇이 된 것입니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싼 도자기라도 그 안에 쓰레기가 들어 있으면 쓰레기통입니다. “아 그렇게 귀한 통을 왜 쓰레기통이라고 하느냐?” 내용이 쓰레기 있으니까 쓰레기통이라고 그러지요. 아무리 보잘것없는 질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물이 담겨 있으면 보물단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도 판정을 받을 때, 보배단지가 될 수 있습니다.

2.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 보배로운 예수님을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담아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한없이 값이 나가는 보화에 비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보화를 우리에게 담고 있으면 우리는 보배를 담은 함이 되고 예수님은 우리 속에 거처를 마련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속에 모시고 있으니까 보배함이 되어서 사람들이 짓밟을 수 없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서 부서질 것 같은데 그 보배함 속에 보배가 들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배를 그대로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보배함은 질그릇이라도 질그릇 안에 보배인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 잘못 건드리면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그 안에 담아놓은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어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복하시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겨쌈을 당하는 자는 보배인즉, 누구든지 우리를 공격하면 보배이신 예수님의 반격에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만 따로 계산하지 말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우리를 계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우리와 같이 계시니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 없는 형식적인 신앙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님을 담고 있는 그릇인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9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원수들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몸담고 계시는 보배함이 우리 몸이기에 예수님이 완벽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원수마귀가 여러분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을 해나가면 마귀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귀는 우리를 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이 진흙그릇이 힘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고 난 다음에는 간혹 마귀가 흉악한 모습을 가지고 잠을 자는 저를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마음에 염려 근심을 퍼부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엄청난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늘 기억해야 될 것은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심으로 나는 아무리 질그릇이라도 예수이름으로 대적하여 싸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고 찬송을 부르고 그렇게 하면 원수 마귀가 떠나가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우리는 항상 우리 속에 예수님을 힘차게 모시고 예수님 십자가 밑에 항복해 놓은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야, 나는 예수님의 보혈을 밑에 있다. 보혈이 나를 덮고 있으니 나를 훼방하지 못한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성령을 모실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는데 우리는 건강을 얻을 수가 있다. 예수님이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으니까. 우리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축복해줄 수 있는 이유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매달려 우리가 받을 저주를 청산해 주셨으니까 우리는 저주받은 존재가 아니라 축복받은 존재가 되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셨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이 죽었다가 부활한 존재가 되었음으로 네가 나를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내려갈 수가 없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무장을 하고서 마귀에 일일이 변호사가 변호인을 위해서 변호해주는 것처럼 저희들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귀에게 대놓고 이야기를 해주고 고함을 치면 마귀가 떠나가요.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 한 주부가 우리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정신적인 혼란을 많이 겪고 있을 뿐 아니라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중풍기가 좀 있어요. 그런데 그 남편이 적십자 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의사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남편이 자기 부인을 온갖 정성을 다해서 돌보았으나 건강하지 못합니다. 자꾸 헛소리를 하고 마음에 고통을 느낍니다.

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 그 자매님에게 안수기도를 했는데 그 자매님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떨치면서 ‘네가 무엇인데 남의 부인의 머리에 손을 얹느냐? 내가 네게 쫓겨나갈 줄 아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매님, 왜이러십니까?’ ‘왜 이러긴 뭘 왜이래? 네가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내가 이 여자 속에 들어 있은지 오랜 세월이 됐는데 쉽게 나갈 줄 아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 누구요?’라고 질문하자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너는 나를 쫓아내려고 그러느냐? 나는 이 여자 몸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입입니다. 제가 ‘귀신들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을 모아가지고서 그 마귀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나가라” “안 나간다” “나가라” “안 나간다” “나가라” “안 나간다” 그 이야기 밖에 할 이야기가 없어요. “예수님 보혈의 능력으로 명한다. 나가라” “나는 안 나간다. 나갈 곳이 없다” 저녁에 날이 어두워져 가는데 그때야 그 자매님 속에 있던 귀신이 “우리 좋은 말하고 헤어지지, 서로 미워하면서 헤어지지 말자.”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네가 사람을 점령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용납할 수가 없다.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고 외치니까 그 자매님 속에 있던 귀신이 큰 소리로 고함을 치더니 정상적인 정신으로 돌아왔어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이 아니라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 우리가 사람 괴롭히는 이단들인가 오해를 사겠다고. 새벽에 교회에 나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집에 안돌아가니 어떻게 하냐고. 빨리 나가라고.” 그래 집으로 보냈는데 얼마 안 있다가 또 고함을 치고 들어와요. “아이고, 하나님 못해먹겠습니다. 실컷 하루 종일 싸워서 이겨놨는데 이제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난 뒤에 도로 돌아오니 어떻게 합니까? 돌아가시지 왜 또 돌아옵니까?” “아이고, 목사님 나 좀 보십시오. 날 좀 보소.” “왜요?” “내가 절름발이였는데 온전한 몸이 되었습니다. 걸어가다가 보니까 내가 몸을 온전히 사용해서 걷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마귀가 정신적으로 여자를 속박하고 육체적인 질병을 가져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이 그릇이 좋은 그릇인지 나쁜 그릇인지 그 자체는 평가할 수가 없고 그 그릇 속에 계신 예수님을 평가하면 높임을 받는데,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것은 우겨쌈을 당한 보배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있음으로 예수님과 같이 사방으로 우겨싸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 8장 31절~32절)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과 더불어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누가복음 10장 19절)

여러분이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원수 마귀가 여러분을 쉽게 짓밟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그 사실을 알고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게 원수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기 아니합니다. 우리 질그릇이 답답한 일을 당해도 질그릇 안에 보배인 예수님이 와계심으로 예수님께 의지하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44편 7절에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우리를 나쁘게 고통을 주려고 해도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서 12장 9절)

우리가 이 세상에 너무나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직접 당해도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이 갚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하면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갚아주시는 것은 감사한데 제가 경험을 해보니까 하나님 시간이 너무 멀게 계산을 했어요. “하나님 지금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좀 더 기다려라.” 하나님 기다리라니까 나중에는 원수가 누군지 모르게 되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베드로전서 2장 9절)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닌 고귀한 사람으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 버리면 예수님 그 진토 속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버림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해서 버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박해를 받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기지 못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장 38절~39절)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부둥켜안고 있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시에 뜨겁게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망하게 되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예수님 정복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껴안고 있으면 죽음도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편 1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안고 있으면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함으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가 않습니다.

“야훼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편 23~24절) 우리가 예수님을 품에 품고 있으면 예수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습니다.

 결론

질그릇인 우리에게 보배를 담아 놓고 그 질그릇을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거리에 내동댕이쳐 놓아도 진흙그릇이 속에 있는 보배를 끌어안고 있으면 아무도 그 질그릇을 훔쳐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 알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질그릇으로 잘나지도 못했고 높은 자리에 있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질그릇을 축복한 것은 예수님을 담아놓은 질그릇이기 때문에 질그릇이 아니고 보배함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질그릇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여러분 그릇에 그리스도가 들어 있음으로 질그릇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보배함인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질그릇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심으로 보배함이 되었다.” 하늘의 천사들도 다 우리를 존경하고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지 않을 이유가 바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음으로 여러분은 존귀한 자가 되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으로 하나님과 동일하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자기를 무시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은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 가슴 속에 예수님이 와계시고 저의 가슴에도 예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장 8절)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데리고 주님 원하시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와 칼빈은 카톨릭의 우물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면서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씀과 믿음으로 주님의 은혜로 세우시는 교회를 꿈꾸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밖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로운 꿈과 목표를 갖게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사람보고 “너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러면 네 눈으로 보는 그 이상 하나님의 눈으로 보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고 새로운 꿈과 목표를 갖게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 바라보는 그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게 되고, 스터드는 하나님 바라보는 눈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게 되고, 윌리엄 캐리는 인도를 바라보는 하나님 눈을 바라보게 되어 인도를 위해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우리는 어찌하든지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배기 때문에 여러분 보배함이 되고, 하나님이 천국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여러분 함께 천국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승리자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함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예수님을 모셨음으로 모든 일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계획하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일하고 살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데리고 같이 바라보자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면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혼육의 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늘 우리를 보호하사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김양순 집사(종로중구대교구) -

하나님 은혜로 안 들리던 귀 치유받아

10월 기도대성회에 참석해 기적 체험 
지역장으로 섬기며 주님께 순종, 신앙생활 힘써


 2011년에 왼쪽 귀에 메니에르병을 앓게 됐다. 귓속의 내부 압력이 높아져 청각과 전정신경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병인데 귀가 꽉 찬 느낌과 함께 먹먹함을 느끼고, 잘 들리지도 않아 몹시 괴로웠다. 늘 비행기를 타는 것처럼 멍멍한 상태가 반복됐는데 3개월이 지나자 조금씩 안들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었다. 왼쪽 귀가 안들리니 오른쪽 귀로 온전히 들어야 하는데 심지어 오른쪽 귓속이 기형적으로 아주 작아 잘 안들리는 상태였다. 나는 내 귀가 기형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는데 이번에 알게 돼 놀랐다. 이비인후과에서 검사하기 위해 넣는 기구조차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귓속이 작아 귓밥이나 물이 조금만 차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역장이기에 구역예배를 드려도 5∼6명이 이야기하면 안 들려 난감할 때가 많았다. 구역식구들에게 말도 못하고 늘 답답한 생활을 해야 했다. 구역식구들이 웃으면 내용을 몰라도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의학적으로는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세계평화와 한반도 안정, 희망나눔을 위한 기도대성회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밥 로저스 목사님이 ‘7가지 선포의 기도’를 주제로 특별기도를 할 때 들리지 않던 귀가 치유받는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밥 로저스 목사님이 기도하던 그 시간에는 구역식구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귀 아픈 사람 치료 받을지어다”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깊게 와닿았다. “나 치료받았네?”하며 한쪽 귀를 막고 들으니 소리가 잘 들렸다. 옆에 앉은 집사님께 “아멘” 해보라고 했더니 아멘 소리가 잘 들렸다. 심지어  병을 앓기 전보다 더 선명하게 잘 들렸다.

 평소 나는 내 귀를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이미 고칠 수 없다는 판명을 받았고 구역식구들의 기도제목을 먼저 놓고 기도하느라 내 귀의 치유는 구하지 못했었다. 구역식구들 말 소리를 못들어 너무 답답할 때 “하나님!지역장인데 말 소리를 못 들으니 어떻게 해요 저 낫게 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두 세 번 정도 기도한게 전부였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왜 나를 치료해주셨는지 생각해보니 기도대성회를 준비하며 주님께 순종한 마음을 잘 봐주신 것 같다. 한끼금식 희망나눔을 할 때에도 순종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섬겼다. 한 명이라도 더 성회에 참석하게 하려고 성회 전날 전화심방을 해서 못간다는 분을 세 분이나 더 모시고 갔다. 내가 귀가 치유받으니 가족들도 모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돼 교회에도 나오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35년 전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다. 막내 아이가 병명도 없이 한 달 동안 열이 계속 나서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교회에 나왔었는데 집에 붙여놨던 부적을 떼고 전도사님의 기도를 받은 날부터 아이가 깨끗이 나았다. 아이가 결핵에 걸렸을 때는 구역예배에 참석한 자리에서 성령을 받은 후 간절히 기도했을 때 치유받았고,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눈이 안보였을 때도 내 기도에 주님이 응답하셔서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셨다.

 그 뿐 아니다. 남편이 결핵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있었을 때에도 구역식구들과 함께 한달 작정기도를 하고 깨끗이 나았다. 남편은 지금 아주 건강하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다. 귀머거리가 낫고 벙어리가 고침받는 성경 속 기적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나는 더욱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도하고 모이기 힘쓰는데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예배를 드리며 주님을 깊이 만나는 그 시간이 나에게 더없이 소중하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 덕분에 나는 항상 행복하다. 


해같이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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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성경퀴즈 (1)

                                

                 

1. 창조사업에서 육지와 바다가 분리된 날은? (창1:9-10, 13)

 ① 첫째 날     ② 둘째 날      ③ 셋째 날      ④ 넷째 날


2. 제 삼일에 창조하신 것은? (창1:10-13)

 ① 빛  ② 사람         ③ 생물         ④ 바다와 육지


3. 천지 창조시 새들을 만드신 날은? (창1:22-23)

 ① 다섯째 날   ② 둘째 날      ③ 셋째 날      ④ 넷째 날


4. 사람과 동물이 창조된 날은? (창1:24-27)

 ① 각각 다른 날에      ② 같은 날에    ③ 동시에       ④ 동물이 하루 전에


5. 하나님이 채소와 과일 나무를 창조하신 날은? (창1:11)

 ① 둘째 날     ② 셋째 날      ③ 넷째 날      ④ 다섯째 날


6. 조류와 어류를 창조하신 날은? 창1:21

 ① 첫째 날     ② 둘째 날      ③ 넷째 날      ④ 다섯째 날


7. 창조가 이루어진 기간은? (창1:31, 2:1)

 ① 5일        ② 10일        ③ 6일  ④ 9일


8. 창세기 1장의 인간 창조 기간은? (창1:24-27)

 ① 천지창조 전에               ② 천지창조 후에        

        ③ 천지창조 중간에      ④ 제7일에


9. 창세기 2:7절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성 요소는?

 ① 하나        ② 둘   ③ 셋   ④ 넷


10. 에덴동산은? (창2:8)

 ① 동방에 있었음               ② 지상에 없었음        

        ③ 유럽에 있었음        ④ 아프리카에 있었음


11. 에덴동산을 흘러간 강들은? (창2:11-14)

 ①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② 유브라데, 아바나, 힛데겔, 기혼

 ③ 힛데겔, 요단, 비손, 유브라데          ④ 요단, 유브라데, 비손, 기혼


12. 에덴동산의 강 이름 순서는? (창2:11-14)

 ① 기혼, 비손, 힛데겔, 유브라데          ②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③ 힛데겔, 유브라데, 비손, 기혼          ④ 유브리데, 힛데겔, 비손 ,기혼


13. 빛과 해, 달, 별을 만드신 날이 맞게 짝지어진 것은? (창1:3,5,16,19)

 ① 첫째 날, 셋째 날    ② 둘째 날, 셋째 날     

        ③ 첫째 날, 넷째 날     ④ 둘째 날, 다섯째 날


14.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이 없는 창조 날은? (창1:6-8)

 ① 둘째 날     ② 셋째 날      ③ 넷째 날      ④ 여섯째 날


15. 육축과 새와 들짐승들의 이름은? (창2:19)

 ① 자연히 생김         ② 하나님이 지으심      

        ③ 아담이 지음  ④ 진화에 의해 생겨남


16. 구약에서 짐승이 말한 것은? (창3:1, 민22:28)

 ① 한 번       ② 두 번        ③ 세 번        ④ 네 번


17. 인간 최초의 범죄자는? (창3:6,20)

 ① 가인        ② 하와         ③ 아벨         ④ 에녹


18. 사람이 옷을 입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창3:7)

 ① 창조 직후부터               ② 범죄 후부터  

        ③ 홍수 후부터  ④ 바벨탑 사건 후부터


19.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어서 입혀 주신 옷은? (창3:21)

 ① 무화과 나뭇잎 옷    ② 털옷         

        ③ 가죽옷       ④ 통옷


20. 제일 처음 살인한 사람은? (창4:8)

 ① 두발 가인   ② 가인         ③ 셈           ④ 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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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스물 다섯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았으나

결국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학년 때에 그는 어떤 교수님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지 몇달 후 그는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 자네는 내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솜처럼 빨아들여. 게다가 어떤 답변에도 만족하지 않는 지성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질문을 할줄 아는 사람이야." 그로부터 일 년 후 그 교수님은 또 밥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가르쳤네. 솔직히 말해서 자네는 나보다 능력이 많아. 자네에게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는 다른 학교로 옮겼으면 좋겠네..."

그 교수는 밥을 사랑했고 학생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와 같이 관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약사가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서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대학에 다니고 싶으나 형편이 되지 않는 재능 많은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까닭에 그는 맏아들로서 두 남동생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많이 하고 나서, 약사는 그의 두 동생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 주어 형이 그들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는 대학 과정을 마치는데 필요한 전 비용을 빌려 주었다.

5년 후, 그 젊은이는 석사 학위를 받고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았다. 이제 돈을 갚을 준비가 된 그는 자기 은인을 찾아가서 말을 꺼냈다.

"계산해 보니까 매달 얼마씩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약사는 고개를 저었다.

"난 젊은이에게 돈을 빌려 주긴 했지만 되돌려 받고 싶지는 않소. 과거의 당신처럼, 도움을 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내가 했던 것처럼 해주기를 바라오."

그 교수와 약사는 관대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가 되려면 그런 자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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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옥 집사(종로중구대교구) -

나와 남편을 살려주신 좋으신 하나님

뼈를 뚫고 자란 혈관은 ‘기적 중 기적’
절대긍정·절대감사만이 삶의 기적 일으켜   

 나는 신장이 좋지 않아 늘 부어있었다. 신장 뿐 아니라 원인 모를 고통도 늘 나를 괴롭혔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딸 미란이가 9살 때였다. 하루는 미란이가 “죄가 많으면 교회에 못 간다는데, 엄마는 무슨 죄를 지어 교회에 못 가?”냐고 물었다. 평소 같으면 흘려들었을 말이 그날따라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을 알게 됐고, 남편의 결단과 주변 지구역장들의 도움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신기한 건 예배를 드리고 나면 아팠던 몸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몸이 부어 남자 슬리퍼를 신고, 남편과 딸의 부축을 받아야만 교회에 올 수 있었지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초신자인 나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싶어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다. 그때 주님은 꿈을 통해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하시며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셨고, 주의 종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나와 동행하시며 내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시기도 했다. 이런 증거로 인해 나는 더욱 주님만 믿고 예배에 집중하게 됐다.
 딸 미란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5월 5일 연휴에 집에서 빨래를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방에 있던 남편더러 “와 보라”는 말을 하고선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119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에 도착해서는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뇌출혈이었다. 13일 만에 깨어났을 때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수술 후 신경이 눌렸는지 어지러움증이 생겨나 길을 똑바로 걷는 것이 어려웠다. 마음에 빨간 구역장 가방을 들고 다니면 살 것 같아 치유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구하고 또 간구했다. 지금은 깨끗이 나아 누구의 부축도 없이 교회를 편히 올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오직 감사 밖에 없었다.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으로 살아가던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이 또 다시 일어났다. 지난해 건강검진으로 뇌 사진을 찍어본 남편은 혈관이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머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종종했지만 상황이 이런 줄 몰랐다. 뇌경색을 우려해 혈관 확장수술이 그나마 해결책이었지만 수술하기엔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게 의사의 견해였다. 다행히 뒷머리 목 위로 작은 혈관들이 잔가지처럼 나 있어 작은 혈관들의 도움으로 큰 위험은 면할 수 있었다고 의사는 전했다. 우리 가족은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께 간절히 기도했다.

 1년이 지나 최근 다시 병원을 찾았다가 우리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작게 뻗어있던 혈관 중 하나가 뼈를 뚫고 굵고 튼튼하게 자라 머리에 피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깜짝 놀랐다. 의사인 내가 수술을 한다해도 이처럼 정교하게 만들 순 없다. 이건 기적이다”라고 했다.

 그 혈관이 남편의 머리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해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살아서 우릴 위해 역사하고 계셨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인자와 자비가 넘치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 안에서 순종하며 사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일 것이다. 남편과 딸 그리고 나는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주의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겠다. 할렐루야!     

 정리=오정선 기자

 


그가 나를 사랑한 즉/이영훈목사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편 14~16절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런데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의 성격, 습관은 변하지 않고 평생 갑니다. 그래서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한국 속담이 있기도 합니다. 이 변화시키기 힘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바로 사랑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자녀의 삶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아내의 사랑이 남편을 바꿉니다.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근원이 바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요한 1서 4장 7절과 8절은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혜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91편 14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예수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건져주시고 풍성한 은혜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주시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문제가 많고 어려움 많고 절망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 주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한평생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주시고 우리를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2절, 3절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한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세 전에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설명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온 우주 만물이 지어지기 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로 예정하시고 택하신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가 우리 발로 걸어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이곳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죄와 상관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올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와서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세수를 해야 되는 것처럼, 알게 모르게 세상에 나가서 내 얼굴에 먼지가 묻듯이 죄의 때가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아올 때마다 주의 보혈로 씻어서 우리 죄를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왔사오니 저를 용서하여주옵소서. 내 마음에 미움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있습니다. 분노가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주의 보혈로서 우리를 정결케 하여주시고,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고,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마음에 감사를 주시고, 마음에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해서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613계명을 저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십계명을 가지고 또 세분화해서 613계명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중에 365계명은 하지 말라는 것이고 248계명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율법사가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많은 계명 중에 가장 으뜸 되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때 주님께서 답변하신 것이 마태복음 22장 37절, 3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시편 18편 1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나의 능력이 되시고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나의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우리 주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때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등지고, 분열하여 산다고 하면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분열과 다툼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화목과 하나 됨은 승리의 역사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요한1서 4장 20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여기서 형제는 우리, 예수 믿는 형제자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같이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등을 돌리고 산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중인격적인 신앙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지 못하느냐?’ 성경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내 마음 가운데 누군가에게 마음에 불편함이 있고 섭섭함이 있고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으면 다 내려놓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인정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것이 입술에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도 그렇게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91편 14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이름을 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내가 인정하고 믿고 의지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구의 이름을 부를 때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름을 갖고 있는 그 순간 그 사람의 존재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김 아무개야!” 하면  그 사람이 김 아무개라는 사람으로서 존재가 인정되는 것이고, 박 아무개라고 하면 박 아무개라는 사람으로서 그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로 함께해주십니다.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하든지 잘 보이려고 하고 힘을 가진 사람에게 줄을 서서 뭔가 유익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인정받으려고 하는 노력은 참 소홀히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잠언 3장 5절로 6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시편 37편 5절입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미있는 예화가 기억이 납니다. 어느 여름철에 아버지와 아들이 그 시골 논밭을 지나고 있었는데 보니 참외가 아주 잘 익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한테 “잠깐 여기서 망보고 있어라”하고 그 참외를 따러 들어가는데, 따려고 하는 직전 아들이 소리를 칩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래서 급히 뛰어 나와 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야, 왜 그러냐! 누가 왔냐? 가만히 있어.” 다시 또 따러 들어가는데 또 “아버지, 아버지!” 부릅니다. 그래서 달려 나와서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교회 학교 선생님이 그러시는데요, 위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신대요.” 그래가지고 그 아버지가 아들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고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잘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옛날에 시골에서 참외 따본 기억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계셨을 테니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앞에서’의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금 보고 계신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때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모습으로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사업을 할 때도 정말 성실하게, 정직하게, 최선의 모습으로 상품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아야 해요. 눈가림만 하면 안 됩니다. 옛날에 수출하면 나라에서 상을 줬는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적당히 잘못된 것을 끼워서 보낸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 그것이 드러나서 신용도가 떨어졌다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그런 일이 별로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그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 받아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더해주세요.

 마태복음 6장 33절에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일생 다가도록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고 축복받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구약에 요셉은 예수님을 가장 닮은 그러한 모습으로 한평생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았던 위대한 신앙의 조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얘기함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갔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그래서 노예로 팔려가서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노예로 팔려간 집에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9장 3절입니다. “그의 주인이 야훼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야훼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에도 얼마나 감옥에서 그의 모습이 모든 면에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모습이었던지 간수장, 교도소장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간수장, 요즘말로 하면 교도소장이 열쇠 꾸러미를 맡겼어요. 감옥에 있는 죄수에게 교도소장이 열쇠꾸러미를 맡기고 감옥을 돌보게 한 일은 이 성경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39장 23절입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이 인정받는 이 모습이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고 13년 동안 그가 연단 받고, 연단 받고, 연단 받은 후에 서른이 되었을 때에 당시 최대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하루아침에 승격당한 것입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말씀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기회의 문을 여셨을 때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교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명성과 권력을 잘 감당했으며, 어렵고 압박받는 상황에서도 인내함으로 견뎠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요셉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지목되었고, 선택받았으며, 준비되었고, 정금으로 정련되었다. 바로 이것이 요셉이 어떻게 왕의 인장 반지를 끼고, 왕궁의 의복을 입고, 금목걸이를 걸고 왕궁의 수레를 탈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면 이렇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하나님이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한평생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 세 개를 봉헌한 유경화 장로님을 소개합니다.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사시다가 6.25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합니다. 그가 신앙 하나 가지고 월남한 것입니다. 젊었을 때 이렇게 서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하여주시면 제 집보다 먼저 하나님의 집부터 장만하여 드리겠나이다.”

 서울에 와서 연탄 장사를 하는데 너무나 사업이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을 마련했는데 문득 주님께서 주님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학개서 1장 4절)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때 본인이 서원하였으나 잊고 있었던 것을 회개하고, 바로 대지 102평을 헌납하여서 교회당을 짓고, 1964년에 그 첫 번째 교회를 헌당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자기 전 재산을 바쳐 교회를 지었기 때문에 그 건축의 가장 큰 공로자가 됐고, 또 그 교회의 1대 장로가 됐지만, ‘내가 이곳에 있으면 내가 교회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을 영광을 내가 대신 받게 되니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길 일이지, 건축한 주역이 거기 남아 있으면 텃세하기 쉽고 목회자나 교우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므로 저는 깨끗이 떠나는 것입니다.”

 동숭교회로 옮기면서, 장로로 시무하시면서 공릉동에 130평 땅을 사서 개척 교회를 또 건축합니다. 1997년에 록원교회를 완성합니다. 헌당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께 이 교회를 드리고 그다음 그 교회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록원교회 2대 목사님인 장창만 목사님 말씀입니다. “장로님은 그렇게 시작한 교회에 그림자도 나타내지를 않으셨습니다. 그 까닭은 만약 그 교회에 오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받게 될까봐 곁을 지나면서도 오시기를 거부한 거죠.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까? 요사이 교회들의 분쟁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 대부분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데서 생깁니다. 유 장로님 같은 분이 참 아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뭔가 교회에 큰 공을 세우고 많은 물질을 드리고 어떤 일에 주역으로 헌신한 후에는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내가 이렇게 오늘에 있기까지 많은 수고를 했는데”, “내가 이렇게 많은 물질을 드렸는데” 하고 자신을 알아달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될까봐 첫 번째 교회도, 두 번째 교회도 본인이 하나님께 지어 드리고 그리고 목사님께 맡겨 드리고 본인은 묵묵히 교회에 헌신하셨습니다.

 1987년 동숭교회 장로님으로 은퇴하신 후에 동화학원 이사장으로 있을 때, 학교 입구에 길가에교회를 건축해서 2005년에 세 번째 교회를 봉헌합니다. 교회 봉헌 후에 하나님께 받은 비전이 교육 사업입니다. 평양 오산학교처럼 많은 민족의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민족 사관학교를 만들고 싶어서 남양주의 도농학원을 인수해서 지금의 동화학원을 지어서 이곳에서 매일 아침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교직원들도 예배를 드리는 신앙의 명문 학교를 세웠습니다. 95세까지 청교도적인 삶을 사신 장로님의 신앙 고백입니다. “사람의 선행은 하나님이 모두 알고 계시잖아요.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어요.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릅니다.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 땅의 많은 청소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지막 소망입니다. 인생의 가치는 사랑과 헌신의 크기로 결정됩니다.”

 참으로 훌륭하신 장로님이십니다. 교회 셋을 지어 바치면서도 절대 본인의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마지막 교육 사업에 전념하시다가 95세를 일기로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우리 교회 모든 장로님이 그와 같은 장로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이 그와 같은 성도님의 모습으로 쓰임받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 간구하라.

 이와 같은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간구하지 않고는 어떠한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어떠한 기적도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91편 15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기도할 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가고,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기도할 때 병이 고침 받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힘들고 어려울 때, 고통 중에 있을 때, 억울한 일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사업에 어려움 있을 때, 자녀들이 속을 썩이고 문제가 생겨났을 때, 이리저리 사람을 찾아 뛰어다니지 말고 먼저 엎드려 눈물 뿌려 기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많은 고난의 시간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시편 10편 1절에 “야훼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고 했으며, 시편 22편 1절과 2절에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겸손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주님 앞에 어떤 기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먼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을 넘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2000년도에 제가 LA에 있는 베데스다대학교 총장으로 있으면서 미국 대학교 인가를 다 받았을 때, 조용기 목사님께서 저를 동경으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제가 내일 일본 들어갑니다.”하니까 저를 가만 보시더니 “가서 교회 지어라.”라고 말씀 하셨어요.

 일본 동경에 가보니 그 전임 목사님들이 교회 지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 워낙 물가가 비싸서... 땅 한 평에 보통 1억씩 합니다. 그러니 100평만 사도 100억입니다. 교회를 지을 엄두가 나질 않아요. 교회가 오랫동안 건축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모아놨던 건축 헌금이 40억이 있는데, 40억을 가지고는 무엇을 시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교회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미국에서 제가 고생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다른 것 다 뒤로 물리치고 기도만 하기로 결심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석 달에 한 번씩은 두 주 동안 특별 새벽기도회, 열두 광주리 새벽기도회를 석 달에 한 번씩 하고 그다음 1년 365일을 계속 새벽 기도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평일 새벽 기도회에는 한 150명 나오고, 열두 광주리 새벽 기도회에는 500명에서 한 600명, 교인의 3분지 1일이 그 특새에 나와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 자세한 설명을 다 드리면 오늘 아침 시간이 다 지나겠고요, 하나님의 은혜로 2년이 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동경 한복판에 있는 8층 건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영상 자료는 우리가 성전을 준비하고 입당 예배를 드릴 때의 모습인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은혜 가운데 다 이뤄주셔서 150억 규모의 성전을 구입하여 이렇게 입당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도로 지은 집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 다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건물을 우연히 심방 가는 길에 보게 해주셨어요. 대로변에 큰 건물이 하나 서있는데 문이 닫혀있더라고요. 그래서 차를 잠깐 세워놓고서 들어가 보니 건물에 열쇠가 잠겨있고 건물이 쓰지 않는 건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200억 정도 빚이 있는데 빚을 갚지 못해서 건물이 차압된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에서 건물을 차압해가지고 그냥 가지고 있던 건물이에요. 어디 부동산에 나온 것도 아니고 팔 의향도 없었습니다. 무조건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사장님 찾아가서, “사장님, 우리가 그 건물을 살 테니, 현금으로 드릴 테니까 우리에게 건물을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분의 마음을 감동시켜 줘가지고 200억 건물을 150억으로 준다기에 더 깎았지요. “현금으로 다 줄 테니까 더 깎자”고 그래서 120억에 사고. 할렐루야! 30억은 그 건물이 오래 되가지고, 파이프까지 다 새로 교체해가지고, 완전히 건물을 새 건물로 리모델링을 해가지고 2년이 되지 않아서 저 건물을 구입하고 우리 조용기 목사님 모시고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뛰어 다니면 하나님은 이렇게 구경하시는 것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만들려면 여러분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기적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한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인정받으며 기도의 일꾼으로서 위대한 축복과 승리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무릎을 꿇는 기도 용사가 되어서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네 마음을 지켜라/조용기목사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우리의 삶의 주변에는 각 영역마다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들이 있습니다. 날씨는 일기예보를 통해 예측할 수 있고, 경제 동향은 주가 지수나 물가 지수를 통해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 삶의 미래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연구를 해도 인간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우리 삶의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기준이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읽으면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떨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마음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기 때문에, 현재의 마음상태를 보면 우리 삶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마음이 우울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평소에 우울한 것에 마음을 쏟기 때문에 우울한 앞날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반면, 기쁘고 긍정적인 사람은 늘 좋은 것을 생각하여 즐겁고 행복한 삶의 결과 삶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성경에 보여주신 은혜의 말씀으로 채울 때, 우리의 내일이 밝고 희망찬 꿈과 소망이 가득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1. 삶의 불안과 두려움

삶의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세상에 사는 이상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한 가정의 남편 마음에도, 아내의 마음에도, 서로 다 틀어 보일 수는 없지만은 불안과 공포의 마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적은 걱정과 불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걱정과 불안은 우리 몸을 병들게 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던 알렉시스 카렐은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불안과 걱정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불안과 신앙과의 관계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불안과 걱정에 덜 시달린다고 결론을 말해주었습니다.

잠언 3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아담의 범죄 이후에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떨어져서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의 원초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마음에 항구적인 평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평안의 근본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연약한 인간, 강하신 하나님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십니다. 연약한 인간을 불란서의 유명한 화가인 고흐가 재미있게 표현을 해주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그림 그리는 화가인 고흐가 젊었을 때 광산에서 노동자들 도와주는 전도사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한 사람이 광산에 물건을 담은 포대를 가지고 집에 가서 셔츠를 만들었습니다. 그래 셔츠를 만든 그것을 입고서 나왔는데, 그 물건 담고 올 때 쓰는 글을 그대로 써 넣은 그대로 만들어 입었어요. “이 물건은 부서지기 쉬우니 조심하십시오.” 그 다음에 고흐가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부서지기 쉽다는 표현으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마음에 큰 변화를 고흐가 얻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이구나”하는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고흐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스스로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강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태산을 움직일만한 힘을 지닐 수도 있고, 마음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낙망하고 불안하면 인생이 비참하게 되고 맙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음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중심이 하나님께서 점령하고 계셔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면 인간은 강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중심이 허무하고 질서가 없고 방황하면 말할 수 없이 허약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에서 32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기도원에서 설교를 하면서 한참 중심을 잡고 말씀을 뽑아내는데, 바람이 불어가지고서 내 원고가 날아가 버렸어요. 아주 낭패 났어요. 그런데 권사님 권사 회장님이 뛰어가서 원고를 주워가지고서 그것을 어설펐지만 맞춰가지고서 내 책상에 가져왔습니다. 내가 그래서 ‘이때 살아온 동안 어려움을 당할 때 어머니와 같은 권사님이 제일 나를 많이 도와주는데, 이제 늙어가지고서 설교할 때 이럴 때도 역시 어머니와 같이 돌보아주시는구나’라는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마음중심을 붙잡을 사람들만 있으면 사람들은 튼튼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있으면, 성령이 이끌어가는 삶을 튼튼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질그릇입니다. 질그릇 자체는 가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보배가 들어 있습니다. 엄청나게 값나가는 보배가 들어 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질그릇에 보배가 들어 있으니 그 질그릇 자체도 잘못 손댔다간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보잘 것 없는데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버티고 있으면, 얕잡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받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상항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8절~10절)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예수님을 감당할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가 몸 안에 모시고 있으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절대로 우리가 패배자가 되지 않습니다. 우겨싸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할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므로, 죽음도 꿈쩍하지 못 합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그 생명의 역사가 예수님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위해서 못 박혀 죽었으니 그 보혈이 우리들의 죄악을 영원히 용서해 버렸어요. 죄가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그가 나무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매에 맞아 몸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를 치료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있으니 우리를 쉽게 질병으로 멸망시킬 수가 없습니다.

요사이 저는 재미있는 편지를 많이 받습니다. 또 우리 교회 나오는 집사님의 남편인데, 별로 예수님을 열심히 안 믿었다가 암이 걸리고 암이 온 몸에 다 퍼져나가고 있어서 살아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남자를 열심히 꾀어가지고서 교회에 데리고 나왔어요. 그런데 수술을 할 날짜를 정해놓고 열심히 교회 나와서 저에게 데리고 와서 제가 기도를 해주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그날 제 앞에 나왔는데 내 느낌이 ‘나는 힘이 없고 무력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사 나의 손을 통해서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그래서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고 난 다음에 수술을 받을 날짜를 정해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려고 엑스레이 촬영을 했는데 암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병원에서 하는 말이 “이런 법은 없다. 기계가 고장이 났나 보다.”고. 그래서 기계를 다시 손보고 난 다음 사진을 찍어도 거의 암이 사라질 뻔 되었으니깐 “수술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겠다. 저번엔 너무 퍼져있기 때문에 수술할 재간도 없었거니와 살아날 기력도 없었는데, 이제는 당신 마음대로 해라. 수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해도 좋고 안 해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너무 좋아가지고서 또 편지를 했어요. “안수를 한 번 더 받아야 되겠다.”고. 그런 것은 큰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질그릇 속에 들어있으니 암이 들어와서 그를 죽이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보혈을 다 흘리고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거룩하게 해주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병을 고쳐주시고, 저주가 되어서 나무에 매달렸음으로 가난과 저주를 철폐해주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삶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시니 이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님이 질그릇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질그릇에 누가 있는지 그분을 알아내서 그분과 함께 일어서면 질그릇이 황금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을 들여다보고 “주님 보혈을 흘렸으니 나는 주님 때문에 용서와 의를 얻어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오냐, 두려워하지 말라” 또 질그릇 속에 “주님,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다고 하니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병을 대신 짊어졌다.”, “주님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이 어려운 환난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래 내가 갈릴리 풍파도 잠잠하게 한 사람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같이 가자”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어떠한 형편으로 와 계신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가면 그 효과가 발생되어 여러분에게 생명의 은총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두려움을 이기고 살기를 하나님이 원하고 계십니다. 독일의 문학가 장 파울이 두려움에 대해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마음이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서 벌벌 떱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합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다 지나고 난 다음에 ‘아 그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구나’ 그렇게 말합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하며,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우왕좌왕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려 떱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에 사태를 깨닫고 위험했던 것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택하여 부르시고,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로 2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에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장 1절)

네 것, 내 것 따지는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내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이사야 43장 2절)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으로 환경에 그 무엇으로도 두려워 말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너를 도와주고 하나님의 의로운 손으로 붙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응해 주십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하나님이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장 4절)’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결론

마음에 평안이 없고 염려와 두려움이 가득하면 그 사람은 불행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내주하시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엄청난 각오로써 사단의 무리들인 귀신을 대결하여 우리를 점령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 하께 살면 그것이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자나 깨나 마음에 불안, 공포, 좌절, 절망, 고통이 다가올 때 사탄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사탄에게 잘 대접을 해주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그것을 강하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마귀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귀신들로써 우리에게 도둑처럼 늘 따라옵니다. 늘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예수님의 보혈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저는 종종 자다가 밤에 일어나서 한 10분, 20분 마귀를 쫓아내고 잘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꿈자리가 시끄럽고 가슴이 답답하면 쫓아내고 자야지 그거 내버려놓고 자면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독을 먹을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된다.”고. 마귀를 늘 쫓아내고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91편 14절부터 1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 같이 여러분과 우리를 품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암탉이 얼마나 병아리를 다정하게 돌보는가를 잘 압니다.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치고 천둥이 나도, 새끼들을 모두 불러서 자기 날개 아래 품고 보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평생 품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6장 3절로 4을 보면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안고 업고 품어주시니 우리가 하나님 바라보고 살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4절로 6절에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이사야 41장 10절)고 말씀함으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다른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나 같은 인생에 무슨 관심을 가지겠는가?’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이런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아무도 두려워할 이가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입술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의 고백은 우리 신앙에 권위가 있습니다. 믿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는데, 믿고 난 다음 이것이 자꾸 사라지고 의심이 들어오는데, 이를 막고 강하게 붙드는 것은 입술의 고백입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마음에 많이 간직했다가 입술로 고백하면 그 말씀이 굉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늘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니 이 얼마나 다정한 말입니까?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하고 같이 계시니깐,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형통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여러분 개인하고 같이 계시면, 여러분이 점점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형통의 기운이 여러분에게 같이 있으니깐 무엇을 해도 형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와 같은 번영과 형통의 기운이 같이 있으므로 아주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다윗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점점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와 역사의 주권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아무리 약한 국가라도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경배하니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면에 같이 하시면 김정은이가 아무리 원자탄을 가지고서 큰 소리를 해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두려워할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우리들을 강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원수 마귀가 끊임없이 공격해 오더라도 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굳게 주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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